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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은평구 화재 2시간 만에 진화…경찰서도 그을려

    서울 은평구 화재 2시간 만에 진화…경찰서도 그을려

    서울 은평구 모델하우스에서 원인 불명 화재 소방관 776명, 차량 81대 등 투입해 진압서울 은평구 지하철 3호선 불광역 인근 모델하우스에서 난 불이 2시간 만에 꺼졌다. 13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오후 4시 16분쯤 이 모델하우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가건물인 모델하우스 전체가 불에 탔다. 불은 오후 6시 8분쯤 완전히 꺼졌다. 모델하우스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타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모델하우스 직원이 1층에서 연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119 신고를 한 뒤 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모델하우스는 효성중공업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임대 중인 철골 구조 건물이다. 2008년 가설건축물축조허가를 받았고, 허가 기간은 2020년 6월까지다. 연면적은 4009㎡다. 출동한 구조대는 모델하우스와 인근 건물 안에 있던 23명을 대피시켰다.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모델하우스 전체가 순식간에 불에 휩싸이면서 검은 연기가 일대를 뒤덮었다. 소방진압대가 신고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불은 건물 전체로 번진 상태였고 일대는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현장 인근에 주차된 차 5대가 완전히 불에 탔고 20여대도 일부 불에 탔다. 건너편 가전제품 매장 화단에도 불이 붙었다. 모델하우스 인근 KT 은평지점과 대조동우체국 건물의 유리창도 화재로 일부 손상됐다. KT 은평지점은 유리창 교체 작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불이 나자 경찰은 모델하우스 인근 통일로 일대의 교통을 통제했다. 모델하우스 인근 도로 3차로가 통제돼 퇴근길 극심한 차량 정체가 빚어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불씨가 건너편 아파트로 날아가 작은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모델하우스 건너편 아파트 11층과 8층 발코니에 불씨가 떨어져 화재가 발생했다. 인근 상가와 아파트에 발생한 화재도 모두 진압됐다. 모델하우스 옆 서울 서부경찰서도 외벽 일부가 불에 그을렸다. 경찰서 내 250여명은 불이 나자 긴급 대피했다. 소방당국은 소방관 776명과 81대의 장비를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으며, 굴착기 등 중장비를 동원해 잔불 정리에 들어갔다.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모델하우스 화재가 난 때와 비슷한 시각 2㎞ 떨어진 인근 북한산 곳곳에서도 불이 났다. 북한산 5곳에서 불이 발생했고 소방헬기 4대가 동원돼 진화 작업을 했다. 오후 9시 30분 현재 북한산 5곳 중 4곳은 불이 완전히 꺼졌고, 나머지 1곳도 진화가 거의 마무리됐다. 해가 지면서 소방헬기는 철수한 상태다. 소방 관계자는 “불은 거의 꺼졌지만, 낙엽에서 연기가 나는 곳이 있어 잔불을 정리 중”이라며 “80%는 진화가 됐다. 불이 번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은평구청은 장비 96대와 500여명을 투입해 산불을 진압 중이라고 밝혔다. 소방 관계자는 “북한산 5곳에서 동시에 불이 나기는 했지만, 모델하우스 화재와 산불의 연관성을 현재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며 “다만 불씨가 날아간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원인은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은평구 모델하우스에 화재 발생해 북한산으로 번져

    은평구 모델하우스에 화재 발생해 북한산으로 번져

    오늘 13일 오후 4시 17분쯤 서울 은평구 지하철 3호선 불광역 인근 모델하우스에서 불이 나 인근 북한산으로 번졌다.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2층짜리 모델하우스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가건물인 모델하우스 전체가 불에 탔다. 소방당국은 현재 큰불을 잡고 잔불을 진화 중이다. 경찰은 모델하우스 인근 통일로 일대의 교통을 통제했다. 이 불로 현재까지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장 인근에 주차된 차 5대가 완전히 불에 탔고 20여대도 일부 불에 탔다. 인근 가전제품 매장의 가전제품 일부도 불에 탔다. 모델하우스 옆 서울 서부경찰서도 외벽 일부가 불에 그을렸다. 소방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해 350여명과 장비 74대를 동원해 화재를 진압 중이다. 소방헬기도 투입해 산으로 옮겨붙은 불을 끄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동시장 옆 청량리농수산물시장 화재…인명피해 없어

    경동시장 옆 청량리농수산물시장 화재…인명피해 없어

    15일 오전 8시 41분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농수산물시장에서 불이 나 일부 점포를 태웠다. 이 불로 3개 점포가 불에 타고 3명이 대피했다. 현재까지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은 “큰불은 진화해 더는 번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현재 잔불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오전 8시 52분쯤 대응 1단계를 발령해 소방차 38대와 소방관 156명을 투입해 화재 진압에 나섰다. 진화작업으로 이날 오전 청량리역에서 경동시장 방면으로 가는 도로가 통제돼 출근길 혼잡이 빚어졌다. 소방당국은 불이 시장 내 상가 건물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서울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화재, 불길 잡혀

    서울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화재, 불길 잡혀

    현재까지 인명 피해는 없어, 청량리역 일대 출근길 혼잡1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농수산물시장에서 불이 나 일부 점포를 태웠다. 이날 오전 8시 41분쯤 발생한 화재로 시장 내 점포 3개가 불에 탔다. 현재까지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은 소방차 38대와 소방관 156명을 투입해 큰불은 진화했으며, 현재 잔불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다만 진화작업으로 청량리역에서 경동시장 방면으로 가는 도로가 통제돼 출근길 혼잡이 빚어졌다. 소방당국은 불이 시장 내 상가 건물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농촌 빈곤 목도한 늦깎이 목민관, ‘토지 공개념’ 제시하다

    농촌 빈곤 목도한 늦깎이 목민관, ‘토지 공개념’ 제시하다

    우리 형님 얼굴과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我兄顔髮曾誰似)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날 때마다 우리 형님 쳐다봤지.(每憶先君看我兄)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드메서 본단 말고(今日思兄何處見) 두건 쓰고 도포 입고 가서 냇물에 비친 나를 보아야겠네.(自將巾袂映溪行) 연암 박지원은 1787년(정조 11년)에 많은 사람을 잃었다. 새해가 되자마자 아내와 사별하고, 7월에 형님상을 당하고, 얼마 뒤에는 며느리까지 떠났다. 이별 가운데 가족과의 이별은 더욱 아프다. 떠나보내고서도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슬픔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아내 잃은 박지원은 죽을 때까지 17년 동안 ‘홀아비’로 살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런 박지원은 아버지를 여의고서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형님의 얼굴을 봤다. 이제, 형도 죽고 없다. 형이 보고 싶을 때면? 시냇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그려볼 수밖에. 언제나 의관을 정제하고 지내던 형님의 생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버지에서 형으로, 형에서 아우로 이어지는 혈육의 애잔함과 함께 단아하던 형님의 인품까지 단 스물여덟 자로 그려 내는 솜씨가 놀랍다. 조선 최고 문호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그런 박지원은 1737년(영조 1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반남’으로 부친 박사유의 2남 2녀 중 둘째였다. 그리고 열여섯에 농암 김창협의 학통을 계승한 이보천의 딸과 결혼했다. 명문가의 후예로서 당대 최고의 지성과 학맥을 댄 노론계 일원이었으니 그의 미래는 보장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세 차례의 운명적 만남을 계기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삶은 굽이쳐 갔다. #첫 번째 만남, 미더운 벗들과의 학문적 우의 박지원도 여느 선비들처럼 한때 과거 공부에 몰두했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벼슬길로 나아갈 것인지, 학문세계에서 자유롭게 노닐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북한산 암자에서 독서할 즈음 스물여섯의 박지원은 사도세자가 죽는 참극을 목도했다. 숙종·경종·영조로 이어지며 벌어지던 숱한 정치적 부침의 결정판이기도 했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박지원은 마침내 젊은 시절 꿈과 결별한다. 대신 뜻을 같이하는 벗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금강산을 비롯하여 송도 평양 천마산 속리산 가야산 단양 등을 함께 유람했다. 그러던 중 개성 부근의 ‘제비바위골’(燕巖)을 발견하고, 뒷날 은거를 다짐하며 자신의 호로 삼았다. 박지원이 현실 정치 진출을 포기한 데는 평생 벼슬하지 않고 포의로 지낸 부친과 장인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장인은 사위가 과거장에서 시험 답안도 제출하지 않고 나왔건만 내심 기뻐했다고 한다. 박지원 자신도 아들에게 “모름지기 수양을 잘해 마음이 넓고 뜻이 원대한 사람이 돼야지 과거 공부에 매달리는 쩨쩨한 선비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을 정도였다. 모두가 간절하게 소망하던 과거를 하찮게 치부했던 그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학문과 그 길을 함께하는 벗들이 벼슬보다 더욱 미더운 삶의 동반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옛날에 벗(朋友)을 말하는 사람들은 벗을 ‘제2의 나’(第二吾)라거나 ‘주선인’(周旋人)이라 일컬었다. 이런 까닭에 한자를 만든 사람이 ‘날개 우’(羽) 자를 빌려 ‘벗 붕’(朋) 자를 만들었고, ‘손 수’(手) 자와 ‘또 우’(又) 자를 합쳐서 ‘벗 우’(友) 자를 만들었다. 벗이란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에게 두 손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박지원, ‘회성원집(繪聲園集)’ 발문 시서화에 뛰어났던 청나라 문인 곽집환의 문집에 써준 서문의 첫 대목이다. 홍대용이 1776년 북경에서 그의 문집을 가지고 왔는데, 박지원이 읽고 서문을 지어줬다. 미지의 중국인에게 건넨 첫 번째 인사가 ‘벗이란 어떤 존재인가’였다. ‘제2의 나’라는 표현이 적실하게 와서 꽂힌다. 박지원만 그리 생각한 게 아니다. 이덕무도 “함께 살지 않는 아내요, 핏줄을 같이하지 않은 형제”라고 했고, 박제가도 “사람에게 하루라도 벗이 없으면 좌우 두 손 잃은 것 같다”고 했다. 그들에게 벗은 타인이 아니라 아내이자 형제와 같았다. 일찍이 마테오 리치가 ‘교우론’에서 갈파한 것처럼 “나의 벗은 타인이 아니라 나의 반쪽이요, 바로 제2의 나”(吾友非他, 卽我之半, 乃第二我也)였던 것이다. 실제로 담론과 음악을 함께 즐겼던 홍대용이 죽자 박지원은 그 이후 음악을 듣지 않고, 갖고 있던 악기들도 모두 남에게 줘버렸다고 한다. ‘지음’(知音)이란 이렇게 절절한 또 다른 자기였던 것이다.#두 번째 만남, 중국으로의 가슴 벅찬 여행 박지원은 많은 벗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많기도 했지만, 출신과 개성도 다양했다. 홍대용 유언호처럼 명문가문의 후예,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처럼 서자 출신, 정철조와 같은 과학과 그림의 달인, 백동수와 같은 창검술의 고수 등.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잘 깨우쳐 준다면 비록 돼지 기르는 종이라도 나의 어진 벗이요, 의로운 일을 보고 충고해 준다면 비록 나무하는 아이라도 나의 좋은 벗”(홍대용에게 보내는 편지 중)이라던 박지원의 우정관은 빈말이 아니었다. 박지원과 그의 벗들은 주로 종로 탑골공원 안의 원각사탑 근처에서 모임을 가져 일명 ‘백탑파’로 불렸다. 그곳에서 “비 뿌리고 눈 날리는 날에도 연구하고, 술이 거나하고 등잔불이 꺼질 때까지 토론”(‘북학의’ 서문)하며 떠들썩한 우정의 향연을 벌였던 것이다. 담론의 주제는 조선을 넘어 드넓은 중국으로 향해 있기 일쑤였다. 1766년(영조 42년) 중국에 다녀온 홍대용은 자신의 견문을 연행록에 담아 과시했고, 1778년(정조 2년) 이덕무와 함께 중국을 보고 온 박제가도 ‘북학의’라는 저작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지적 호기심이 남달랐던 박지원은 무한 부러웠을 터.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홍국영을 피해 연암에 은거하고 있다가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는 사절단을 따라가게 된 것이다. 1780년(정조 4년)의 일이다. 압록강을 건너 말로만 듣던 중국 땅으로 들어섰다. 열흘을 걸어도 산이 보이지 않는 요동벌판을 바라보며 “참으로 좋은 울음 터로다. 크게 한번 울어볼 만하다”(‘호곡장론’)라고 했던 감격 어린 발길은 마침내 만리장성 너머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무령산을 돌아 광형하를 건너 밤중에 고북구(古北口)를 빠져나가는데, 때는 삼경이었다. 관문을 나와 말을 장성 아래 세우고 높이를 헤아려 보니 10여길이나 되었다. 붓과 먹을 끄집어내어 술을 부어 먹을 갈고 성벽을 어루만지면서 “건륭 45년 경자 8월 7일 밤 삼경, 조선의 박지원이 이곳을 지나다”라고 썼다. 그리고는 곧 크게 웃으며 “나는 서생으로서 머리가 희어서야 한 번 장성 밖을 나가는구나” 했다. -박지원 ‘밤에 고북구를 나서며’(夜出古北口記) 조선의 사신은 청나라 북경까지 다녀오는 것이 관례였는데, 마침 건륭제가 황제의 별궁이 있는 열하에 머물고 있어 거기까지 가야 했다. 허탈하고 고달프지만,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북경에서 열하로 가기 위해 만리장성의 북쪽 관문인 고북구를 지나가는 경이로운 체험. 조선인으로서는 최초의 발걸음이었던 만큼 감회가 남달랐다. 여느 연행록과 달리 ‘열하일기’라고 명명한 까닭이다. 그 순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물 대신 술로 먹을 갈아 자신의 자취를 장성에 써내려가는 문사의 풍류가 멋들어지게 보이지만, 이내 씁쓸한 헛웃음을 터뜨린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이제껏 좁은 조선 땅에 갇혀 살았다는 회한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던 탓이다. 그때 박지원의 나이 마흔넷이었다. #세 번째 만남, 궁핍해져 가는 농촌 현실 대면 박지원은 중국에서의 견문을 기록해 둔 여행 메모를 고치고 다듬어 1783년(정조 7년) ‘열하일기’를 탈고했다. 그의 문명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하지만 문체가 정통 고문에서 벗어났다거나 오랑캐인 청나라 연호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호된 비난을 함께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정조의 질책과 함께 원고 전체가 불태워질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시비가 분분하던 즈음 박지원은 젊은 날 포기했던 벼슬길에 쉰 살이 되어 나서게 된다. 너무 궁핍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평생의 지기 유언호의 천거로 1878년(정조 10년)부터 관직생활을 시작했지만, 별로 두드러진 업적은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1792년(정조 16년) 안의현감을 시작으로 면천군수, 양양부사 등 지방관으로 있은 10여년은 박지원의 삶을 재조명하게 하는 각별한 시기였다. 수차, 베틀, 물레방아 등을 제작해 농민의 수고를 덜어주는 한편 왕성한 창작력으로 많은 작품을 짓기도 했다. 특히 1799년(정조 23년)에 지어 올린 ‘과농소초’(課農小抄)의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는 주목할 만하다. 토지 소유 상한선을 정해 부호들이 토지를 무한정 늘려 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일종의 토지공개념인 셈이다. 주나라의 정전제나 한나라 동중서의 논의를 이어받은 것이긴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심해지는 농촌 현실을 목도한 목민관으로서 제기한 혁신적 방안임이 분명했다. 그 책을 읽고 감탄한 정조도 ‘농서대전’의 편찬을 맡겨야겠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그의 꿈은 빛을 보지 못했다. 1805년(순조 5년) 69세로 생을 마치고 말았다. 정출헌 한국고전번역원 밀양분원장·부산대 교수 ■ 문학·여행·농업 등 망라한 연암집 필사본으로 전승되다 20세기 들어서야 공간됐다. 김택영이 선집 형태로 1900년 6권 2책 ‘연암집’, 1901년 3권 1책 ‘연암속집’, 1917년 7권 3책 ‘중편 연암집’을 간행하고, 박영철이 1932년 17권 6책 ‘연암집 전집’을 간행했다. 제1~10권은 일반 시문, 제11~15권은 열하일기, 제16·17권은 과농소초이다. 연암집 번역본은 우전 신호열 선생과 김명호 교수가 공역으로 2007년 출간했다. 열하일기 번역본은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연민 이가원 선생이 1968년 최초 완역하고서 김혈조 교수가 2017년 개정 신판을 출간했다.
  • 울산 농수산물도매시장 화재로 수산물종합동 전소, 상인들 시름 깊어

    울산 농수산물도매시장 화재로 수산물종합동 전소, 상인들 시름 깊어

    울산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1층짜리 수산물종합동을 모두 태웠다. 이날 불로 설을 앞둔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울산시소방본부에 따르면 24일 오전 2시 1분쯤 남구 삼산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내 수산물종합동(전체면적 1021㎡·철근콘크리트 구조)에서 불이나 1층 건물을 모두 태웠다. 이날 화재로 건어물, 젓갈류 등을 판매하는 78개 점포를 모두 태워 소방당국 추산 13억 5000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다행히, 화재 당시 시장 영업이 끝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소방당국은 신고를 받은 지 10분 만인 오전 2시 12분쯤 2개 이상 소방서 인력·장비를 동원하는 ‘대응 2단계’를 발령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건물이 전소되고, 주변 시장 건물로 불이 확대될 우려가 줄어 오전 2시 35분쯤 관할 소방서 인력·장비만 동원하는 ‘대응 1단계’로 하향했다. 이날 화재 진압에는 소방대원 95명 등 인력 107명, 펌프차와 탱크차 등 장비 35대가 동원됐다. 소방당국은 오전 3시 24분 초진을 완료하고, 건물 내부에서 잔불을 잡았다. 시장 경비원은 경찰과 소방당국 조사에서 “화재 경보가 울려 확인해보니 건물 안에서 화염이 발생했다”고 진술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진화를 완료하는 대로 화재 경위와 피해 규모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서울포토] 양양산불 진화 완료… 잔불 정리작업

    [서울포토] 양양산불 진화 완료… 잔불 정리작업

    2일 산불이 발생한 강원도 양양군 서면의 야산에서 군인들이 잔불제거 작전을 펼치고 있다. 2019.1.2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서울포토] 의용소방대원들, 산불 진압 완료후 늦은 점심 식사

    [서울포토] 의용소방대원들, 산불 진압 완료후 늦은 점심 식사

    2일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서 산불이 발생한 가운데 의용소방대원들이 화재현장 인근에서 잔불을 진압 후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2018.1.2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양양 산불, 20㏊ 태우고 20시간 만에 진화…잔불 정리 수순

    양양 산불, 20㏊ 태우고 20시간 만에 진화…잔불 정리 수순

    올해 첫날 강원 양양에서 발생한 산불이 산림 20㏊를 태우고 20시간 만에 잡혔다. 산림·소방 당국은 2일 낮 12시 15분쯤 큰 불길을 진화하고, 잔불 정리와 뒷불 감시 단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전날 오후 4시 12분쯤 서면 송천리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로 현재까지 산림 20㏊(20만㎡)가 불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명피해는 없었고, 대피했던 송천리 주민 40명과 장애인복지시설 원생 등 154명, 상평리 주민 103명 등 297명은 모두 귀가했다. 산림당국과 소방은 산불 진화작업에 초대형 3대 등 헬기 24대와 군 장병 800여명 등 1600여 명, 진화 장비 80여대 등을 투입했다. 초속 6∼7m를 넘나드는 강풍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불길을 잡아냈다. 산림당국은 곳곳에 숨어있던 불씨가 강풍을 만나 재발화하지 않도록 진화인력과 장비, 헬기 등을 철수시키지 않고 잔불 정리를 하고 있다. 산림당국 관계자는 “강풍주의보 및 건조경보 발령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주불 진화에 성공했다”며 “잔불 정리와 뒷불 감시를 철저히 해 더는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포토] 양양 산불 진압후 늦은 점심 먹는 의용소방대원들

    [서울포토] 양양 산불 진압후 늦은 점심 먹는 의용소방대원들

    2일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서 산불이 발생한 가운데 의용소방대원들이 화재현장 인근에서 잔불을 진압 후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2018.1.2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의정부 모델하우스 화재…불길 10m 치솟아

    의정부 모델하우스 화재…불길 10m 치솟아

    9일 오후 8시 40분쯤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동의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불이 났다. 불은 모델하우스 전체로 붙어 불길이 10여m 높이까지 치솟았다. 소방당국은 소방차 20여대와 소방대원 70명을 투입해 1시간 만인 오후 9시 45분쯤 큰 불길을 잡았다. 현재 잔불을 정리하는 중으로 알려졌다.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모델하우스 근처 250여 가구가 한때 전기 공급이 끊기는 불편을 겪었다. 주민 A씨는 “화재로 정전이 되었다가 10여분 만에 전기가 들어왔다”고 전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화재 현장 부근에 고압선이 지나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오후 9시 15분부터 14분동안 송전을 중단했다”면서 “이 때문에 의정부 2동 일대 주민이 불편을 겪으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날이 밝는 대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할 예정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수원 골든프라자 화재로 46명 부상…지하PC방 250명 긴급대피

    수원 골든프라자 화재로 46명 부상…지하PC방 250명 긴급대피

    30일 경기 수원의 대형 상가건물인 골든프라자에 화재가 발생, 46명이 연기를 들이마시는 등 부상을 입었다. 이날 오후 4시 14분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11층짜리 골든프라자 상가건물 지하층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건물에 있던 46명이 연기를 들이마시는 등 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 중 한때 의식을 잃었던 10대 여성 1명은 병원으로 이송 중 CPR을 통해 의식을 되찾았다고 소방당국이 전했다. 오후 8시 현재 이 이상의 인명 피해는 더 이상 집계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불은 지상 11층~지하 5층 규모인 이 건물의 지하층에서 시작됐다. 건물 지하는 지하 1~2층이 PC방, 3~5층이 주차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찰은 PC방 매니저로부터 “지하 1층 환풍구에서 원인 모를 연기가 흘러나왔다”는 진술을 확보, PC방이 아닌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시작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화재 당시 PC방에는 250여명의 손님이 있었지만, 모두 긴급히 대피해 피해를 최소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PC방 환풍구를 통해 연기가 들어오는 것을 목격한 PC방 매니저는 손님들에게 “대피하라”고 소리쳐 대피를 유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재 현장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는 금세 건물 주변을 뒤덮었다. 이 때문에 건물 바로 옆 매산동 주민센터 직원과 민원인, 주변 상가와 숙박업소에 있던 시민들도 모두 밖으로 대피했다. 소방당국은 신고 접수 뒤 4분 만에 현장에 도착,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 작업에 착수했다. 아울러 화재 발생 15분 만에 대응 2단계를 발령, 펌프차 등 장비 84대와 소방관 210명을 동원해 3시간여 만에 큰 불길을 잡았다. 대응 2단계는 인접한 5~6곳의 소방서에서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는 경보령으로, 화재 규모에 따라 대응 3단계로 확대한다. 수원시는 오후 4시 45분쯤 “골든프라자 화재로 검은 연기가 발생했으니, 안전에 유의해달라”는 내용의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오후 5시 40분쯤 현장에 도착해 상황을 보고받았다. 소방당국은 오후 8시 현재 잔불 정리를 하면서 인명 검색에 주력하고 있다. 경찰은 날이 밝는 대로 소방당국 등 유관기관과 함께 합동 감식을 벌여 정확한 발화 지점 및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또 화재감지기나 경보기의 정상 작동 및 안전 점검 여부도 살펴보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PC방 관계자와 손님, 건물 관계자 등을 상대로 화재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KT 화재 10시간 만에 완진…완전복구에 일주일 걸릴 듯

    KT 화재 10시간 만에 완진…완전복구에 일주일 걸릴 듯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 지사 건물에서 큰 불이 나면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 유·무선통신 장애가 발생해 큰 불편이 빚어졌다. 불은 10시간이 지나서야 완전히 꺼졌다. 24일 오전 11시 12분 충정로 KT 아현국사 건물 지하 통신구에서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생했다. 통신구는 케이블 부설을 위해 설치한 지하도를 뜻한다. 해당 통신구에는 전화선 16만 8000회선, 광케이블 220조(전선 세트)가 설치돼 있었다. 건물 밖 통신구 위쪽에는 지상으로 이어지는 맨홀이 있다. 소방당국은 인원 208명과 장비 60대를 투입,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이 통신구 맨홀 아래에서 계속되면서 소방 인력 진입이 불가능해 진화가 어려웠다. 소방당국은 외부에서 물을 계속 주입하는 한편 맨홀로 장애물을 투입해 불길이 통신구를 따라 사방으로 번지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통신구에 설치된 광케이블이 불이 타면서 현장 주변은 한때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특수구조대도 투입돼 인명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발생 장소가 상주 인원이 없는 곳이라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불이 난 통신구에 소화기가 비치돼 있었지만 스프링클러는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당국은 3시간여 만인 오후 2시 23분 불길을 대부분 잡는 초진에 성공했다. 그러나 연기가 계속 발생해 잔불 정리에 나섰다. 소방당국은 굴착기를 동원해 땅을 파고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신고가 접수된 지 10시간여 만인 오후 9시 26분 불이 완전히 꺼졌다고 소방당국은 밝혔다. 이에 따라 관할 소방서 역량을 모두 투입하는 대응 1단계도 해제됐다. 소방 관계자는 “인력이 진입 중이나 내부 열기가 여전하고 통신구 길이가 길어 상황이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불이 건물 지하 통신실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날 화재로 아현국사 회선을 이용하는 중구·용산구·서대문구·마포구 일대와 은평구·경기도 고양시 일부 지역에 통신 장애가 발생했다. 해당 지역에서는 KT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IPTV 서비스 모두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KT 통신망을 사용하는 카드결제 단말기와 포스(POS·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가 ‘먹통’이 되면서 커피전문점, 편의점, 식당 등 상점들이 영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종로구에 있는 세종문화회관도 화재의 여파로 일반전화와 콜센터 연결에 장애가 발생하면서 “예매는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을 이용해달라”는 안내 메시지를 고객들에게 발송했다. 소방당국은 설비 복구 전 임시 우회망을 설치해 통신을 재개하는 가복구에 1~2일, 완전 복구에는 일주일가량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KT는 이날 오후 입장자료를 통해 “화재가 진압된 후 소방당국의 협조를 받아 통신 서비스 복구에 즉시 임할 것”이라면서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통신망 우회 복구, 이동기지국 신속 배치, 인력 비상근무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대전 관저동서 큰 불로 11명 부상···“여성 라커룸서 발화”

    대전 관저동서 큰 불로 11명 부상···“여성 라커룸서 발화”

    19일 오후 3시 23분쯤 대전시 서구 관저다목적체육관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현장 근로자 박모(43)씨가 중상을 입고 김모(51·여)씨 등 근로자 10명이 다쳐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연기를 흡입한 근로자가 많아 부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불은 지하 1층 수영장 여자 탈의실에서 시작됐다. 오는 12월 준공하는 이 건물은 연면적 4907㎡에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화재 당시 근로자 39명이 투입돼 건물 안팎의 마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불이 나자 소방당국은 헬기, 소방차 등 장비 59대와 인력 369명을 동원해 진화에 나섰으나 페인트와 마감재 등이 많이 쌓여 어려움을 겪었다. 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휴대전화로 재난문자를 보내 인근 주민의 긴급 대피를 당부했다. 주민들은 건물 전체로 불이 번져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폭발음이 계속되자 놀라 대피했다. 불은 이날 오후 5시쯤 잡혀 잔불 정리가 진행되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공사 관계자와 근로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 및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혁명의용군 조작 사건, 해방 후 친일파 군부 보호의 신호탄이었다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혁명의용군 조작 사건, 해방 후 친일파 군부 보호의 신호탄이었다

    지난 5월 4일 ‘일베’ 게시판에는 이런 제목의 ‘뉴스’가 떴다. “탁현민 뒤를 졸졸 따라다닌 육사 교장 김완태(중장)/백선엽 장군 기념관 없애.” 출처는 박근혜 인터뷰로 유명한 ‘정규재TV’로 돼 있었다.“육군사관학교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념 비석을 빼서 야산에 방치” “박근혜 대통령 기념 물건 모두 폐기” “백선엽 장군 기념관 없애고” “육사의 기원은 조선 독립군이라 역사 바꾸며” “탁현민(청와대 행정관) 방문 때 3성 장군(김완태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뒤를 졸졸”. 육사총동창회(회장 김병관)는 감사단을 편성해 육사로 ‘파견’했다. 이른바 감사단은 육사 안 교회에 진을 치고 김완태 교장을 비롯해 관계자들을 오라 가라 하며 따졌다. 당시 무자격 감사단의 강짜가 얼마나 심했던지 교회가 이들에게 ‘퇴거’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확인 결과 소문은 모두 가짜였다. 그러나 김완태 교장은 지난 5월 말 결국 경질됐다. 수도군단장 시절, 훈련 중 물의를 빚은 예하 부대의 노모 중령에 대해 경징계를 찾아내 집요하게 문제 삼은 결과였다. 이들의 회를 뒤집은 것은 육사의 기원 문제. 김 교장은 육사의 정통성을 신흥무관학교나 임시정부 육군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 속에서 새로이 세우려 했다.육사는 지금까지 그 뿌리를 미군정(美軍政)이 설립한 남조선경비사관학교에 두었다. 이 학교의 전신은 미군정 군사영어학교. 육사가 이렇다 보니 국군 역시 연원을 미군정이 설립한 남조선국방경비대에 두었다. 1946년 1월 15일에 출범한 경비대는 군사영어학교 출신 장교 110명으로 출범했다. 이 가운데 87명은 일본군 출신, 21명은 일본의 괴뢰국 만주군 출신이었다. 1, 2대 사령관은 일본군과 만주군 장교였던 이형근과 원용덕이었다. 이형근의 장인 이응준(일본군 육군 대좌 출신)은 미군정 군사 고문이었다. 미군정은 1946년 말 통위부장(미군정기 국방장관)과 경비대사령관을 유동렬(광복군 총참모장)과 송호성(광복군 훈련처장) 등 독립군 출신으로 교체했다. 독립군을 우대한 것이 아니라 여론 때문이었다. ‘이게 일본군이지 대한민국 군대인가!’ 제1연대에선 “이 따위 경비대 해산시켜라. 빨갱이 노랭이 같은 놈 몰아내라”며 소요사태가 벌어졌다. 놀란 이응준은 미군정에 수뇌부를 광복군 출신으로 임명하자고 제안했다. 유동열·송호성 체제는 서둘러 독립군 출신을 특임 장교 형태로 충원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경비대의 뼈대는 이미 일본·만주군 출신 장교들이었다. 정부 수립 후엔 이런 노력마저 제동이 걸렸다. 초대 국방장관이 광복군 제1지대장 이범석이었지만 그는 김구와 각을 세우고 있었다. 광복군 출신은 대부분 김구 계열이었다. 그는 초대 총참모장에 이응준, 육군사령관에 이형근을 앉혔다. 이들에게 김구 계열의 광복군 출신들은 눈엣가시였다. 광복군 출신들은 친일파 청산을 물고 늘어졌다. 게다가 제헌국회가 1948년 9월 22일 반민족행위자처벌특별법을 제정, 공포했으며, 10월 22일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반민특위)를 설치했다. 총참모장, 육군사령관 등 핵심 간부는 형사처벌을 당하거나 경질돼야 했다. 조병옥, 장택상 등이 장악하고 있던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특별법 공포 후 6일 뒤인 9월 28일 독립군 출신의 14연대장 오동기 소령이 체포됐다. 사흘 뒤 최능진 전 경무부 수사국장 등이 체포됐다. 10월 5일자 도하 각 신문엔 이런 경찰 발표가 실렸다. “1일 오후 3시경 최능진, 서세충, 김진섭 등이 수도청 형사대에 체포됐다. 지난해 11월경부터 국군 소령 오동기 등과 공모하여 국방군속에 혁명의용군을 조직하고 현정부를 붕괴시키려 한 바, 군자금으로 15만원을 제공한 혐의라 한다.” 해방 후 첫 조작사건인 ‘혁명의용군 사건’이다. 친일 군부와 경찰이 합작한 ‘숙군’의 신호탄이었다. 그 칼날은 정치권까지 겨냥하고 있었다. 오동기는 항일전선에 투신했던 독립군 지휘관이었다. 그는 경비대 감찰총감직에 있으면서 군내 일본군 출신 장교들의 부패를 단호하게 처리하려 했다. 상층부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다가 결국 야전으로 밀려났다. 좌익에 대해서도 단호했다. 14연대장 시절, 김지회 중위를 요시찰 인물로 찍어 작전과장에서 포병중대장으로 전보시켰다. 반란을 주도한 인물이다. 최능진은 일제 치하에서 2년간 복역한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소련군의 압박을 피해 월남했다. 미군정 경무부 수사국장으로 경찰 내 친일파 청소를 주장해 친일경찰의 대부 조병옥 경무부장, 장택상 수도청장과 마찰을 빚었다. 두 사람은 노덕술, 이익홍, 최연, 최운하, 김정빈, 김홍걸, 백원교, 박경후 등 일제의 조선인 악질 경찰관들을 요직에 앉힌 터였다. 최능진은 10·1 대구사건을 계기로 미군정 당국에 조병옥과 장택상의 처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5·10선거 때는 동대문 갑구에 입후보한 이승만을 낙선시키기 위해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려다 정권의 방해로 실패했다. 두 사람은 군과 경찰의 상징적 민족주의자였다. 그 둘을 좌익과 연계한 내란음모 사건의 주동자로 엮은 것이다. 10월 19일 14연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21일 이범석 국무총리는 이 사건을 공산주의자가 극우 정객들과 결탁해 일으킨 반국가적 반란이라고 규정했다. 이튿날 김태선 수도청장은 ‘혁명의용군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모자 최능진, 오동기, 서세충, 김진섭 등이 남북 노동당과 결탁해 (그들이) 숭배하는 정객을 수령으로 공산정부를 수립하려는 것으로 …이번 여수 사건을 야기했다.” ‘극우 정객’이란 김구였다. 이후 군과 경찰 친일파들은 반민특위 무력화와 군내 민족주의 계열 제거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이승만은 물론 광복군 출신의 이범석 총리가 지원사격을 하고 있었으니, 거칠 게 없었다. 만주특설대 출신의 백선엽 국장의 지휘 아래 육군 정보국은 1949년 7월까지 전체 국군의 10%에 이르는 4700여명을 제거했다. 이 중에는 좌익 외에 광복군, 학병 출신 등 친일파를 혐오하는 중간계열이 광범위하게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송호성 사령관도 끼어 있었다. 처형된 장교 중 김종석, 오일균, 최남근 등은 일본군 장교 출신이지만, 중간계열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김종석, 오일균은 미 군사고문관 하우스만이 구명에 앞장설 정도로 유능한 인재였다. 그러나 ‘진짜 남로당원’ 박정희가 일관되게 두 사람을 군내 좌익 책임자로 몰아 구할 수 없었다. 그때 박정희에게 ‘스네이크(독사) 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4연대장이었던 최남근은 반란군에 잡혀 고초를 겪다가 탈출했지만, 다시 진압작전에 나서라는 요구에 ‘동족에게 총을 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들은 형장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죽었다. 군내 숙청이 정리되면서 군은 정치권을 정조준했다. 육군 헌병대는 1949년 5월 이른바 ‘국회프락치 사건’을 수사했다. 친일파 처단을 앞장서 주장해 온 소장파 10여명을 국제공산당 프락치로 몰아 처벌했다. 국회가 얼어붙자 경찰은 6월 6일 반민특위를 습격해 특경대를 무장해제했다. 이승만은 10일 반민특위 해체를 명했다. 13일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은 “군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체의 파괴행동에 대해 용서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군의 정치개입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13일 뒤 육군 정보국 소속 포병 소위 안두희는 김구를 암살했다. 이른바 ‘숙군’의 대단원이었다. 당시 수사본부장으로 헌병대 실세는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으로서 경찰 최고직위에 올랐던 전봉덕이었다. 의열단 출신에 중국군 상위였던 장흥이 사령관이었지만 실권이 없었다. 장흥은 김구 암살 다음날 경질됐다. 잔불 정리만 남았다. 이범석은 ‘숙군’에 앞장섰지만, 순망치한의 화를 자초했다. 광복군 계열이 정리되자 그의 사조직 대한민족청년단(족청)도 이승만의 압박으로 해체되면서 국방장관에서 밀려났다. 전쟁 발발 이후 내무장관으로 기용돼 ‘부산정치 파동’에서 크게 이용당한 뒤 결국 ‘팽’당했다. 이른바 ‘숙군’으로부터 70년 뒤, 군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려는 작업이 육사에서 시도됐다. 그러나 불과 7개월여 만에 지휘관은 정치적으로 ‘저격’당했다. 더러운 ‘숙군’의 칼날은 여전히 자주와 독립을 겨냥한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안양 삼성산 불…헬기 4대 투입해 7시간만에 큰 불 진화

    안양 삼성산 불…헬기 4대 투입해 7시간만에 큰 불 진화

    안양 삼성산에서 불이 나 소방당국이 7시간여 만에 큰 불을 잡았다. 지난 18일 오후 11시 59분 경기도 안양시 삼성산 천인암 부근 8부 능선에서 불이 났다. 산 중턱에서 야간에 발생한 불로 소방당국은 19일 날이 밝자마자 산림청 등과 함께 150여 명과 헬기 4대 등 장비 15대가량을 투입해 이날 오전 7시 2분 큰불을 잡았다. 이 불로 산림 0.5ha가 불에 탔으며 소방당국 등은 잔불을 정리가 끝나는 대로 화재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美캘리포니아 산불, 서울 절반 이상 ‘잿더미’…70세 할머니, 어린 증손주 구하려다 참변

    美캘리포니아 산불, 서울 절반 이상 ‘잿더미’…70세 할머니, 어린 증손주 구하려다 참변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속 한 소방관이 29일(현지시간) 일주일 전 자동차 화재로 발생한 산불 ‘카 파이어’로 잿더미가 된 캘리포니아 샤스타 카운티 지역에서 잔불을 확인하고 있다. 미 국립기상청에 따르면 최고 시속 80㎞의 돌풍을 타고 ‘화염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빠르게 확산한 불길은 이날까지 323㎢의 산림과 시가지를 태웠다. 서울시(605㎢) 면적의 절반 이상이 타들어간 것이다.화재 진압에 나선 레딩소방서 소속 대원과 사설 불도저 운전자가 화재 진압 도중 숨지고, 70세 여성 멜로디 블레드소가 어린 증손주 두 명을 구하려다 함께 참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지금까지 최소 8명이 숨졌다. 레딩 AFP 연합뉴스·NBC 뉴스 캡처
  • ‘인천 화재’가 커진 이유는?… “사람 키 두배 만큼 쌓인 고무매트 때문”

    ‘인천 화재’가 커진 이유는?… “사람 키 두배 만큼 쌓인 고무매트 때문”

    인천 서구의 한 합성수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이유는 사람 키의 두배 만큼 쌓인 고무매트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소방본부는 17일 이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고무발표수지류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급격하게 확산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 공장은 포장 완충재, 보온 단열재 등을 만드는 곳으로 원료가 되는 고무발포수지류 등을 공장 내부에 적재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진압에 나섰던 한 의용소방대원은 “형형색색의 고무 매트가 사람 키 두배 정도로 공장 주변에 곳곳에 쌓여 있었다”며 “이 매트가 특히 불에 잘 타는 성질이어서 급속도로 불길이 번졌고, 열기로 인해 진화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진화 당시 공장 곳곳에 천막이 쳐진 작업 공간이 마련돼 있어 방화 구획이 없었고, 건물간 이격거리도 협소했던 점도 불을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소방 관계자는 “도로 곳곳에 상당한 높이로 고무 매트가 쌓여 있는데다, 공장 내부 곳곳에 설치된 작업공간 때문에 더 빠르게 불이 번진 것”이라며 “이 탓에 소방차 진입에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불은 전날 오후 11시40분 발생해 공장 건물 전체 4개동(3866㎡) 중 3개동을 태웠으며 나머지 1개동(기숙사)과 인근의 가구·금속가공 공장 일부를 태웠다. 당시 기숙사에 외국인 노동자 등 5명이 있었으나, 긴급 대피시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은 화재 발생 4시간 만인 17일 오전 3시43분께 큰 불길을 잡았다. 하지만 화재 구역이 광범위해 대응 1단계를 유지한 채 잔불을 정리하며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소방 관계자는 “공장 직원들이 작업하던 도중 공장 외부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물과 닿으면 폭발우려” 김포 폐알루미늄가루 창고 화재 이틀째 진화중

    경기 김포소방서는 지난 3일 오전 5시 54분쯤 통진읍 가현리 폐알루미늄 가루 보관창고에서 불이 나 이틀째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4일 밝혔다. 이 불로 486㎡ 규모인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 창고가 일부 타 소방서 추산 566만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다행히 창고에 사람이 없어 인명 피해는 없으나 인근 주민들이 매연과 악취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불이 붙은 알루미늄가루는 물과 닿으면 폭발할 수 있어서 물을 뿌리지 못하고 대신 모래로 불길을 잡느라 진화가 늦어지고 있다. 소방당국은 현재 포클레인과 트럭을 동원해 진압중으로 창고의 큰불은 꺼지고 잔불을 정리하고 있다. 김포소방서는 잔불까지 모두 잡히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인천항 선박 화재, 차량 1500대 태우고 3일째 진화작업

    인천항 선박 화재, 차량 1500대 태우고 3일째 진화작업

    소방당국이 인천항에 정박 중인 화물선에 난 불을 3일째 끄고 있다. 선박에 실린 중고차 1500여대가 태운 불은 23일 새벽부터 잦아들고 있다.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21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항 1부두에 정박해 있던 파나마 국적 화물선 오토배너호(5만 2224t급)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후 소방당국은 이틀 연속 밤샘 진화작업을 벌이며 완전 진화에 주력했다. 그러나 화물선 규모가 워낙 큰 데다 선박 내부 연기와 열기가 거센 탓에 진화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당국은 이틀간 선박 측면 10mm 두께의 강판에 가로·세로 1m 크기의 구멍 13개를 뚫어 연기와 열기를 배출했다. 또 선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선박 최상층 갑판에 고압 방수작업을 하고 펌프차로 평형수 200t을 급수하며 선박 균형을 유지했다. 구조대원 60명을 5개 조로 나눠 한 번에 선수와 선미를 통해 각각 6명씩 투입해 화물선 내부에서도 진화작업을 벌였다.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사흘째인 이날 오전 현재 그동안 화물선 내부에서 발생하던 거센 연기가 거의 잦아든 것으로 보고 곧 완전히 진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서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거의 진압이 완료됐다”며 “방화선을 구축한 선박 9층 이하로는 화재 피해가 없었고 9층부터 12층 갑판까지는 불이 완전히 꺼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13층 갑판 선미 쪽에 아직 불이 남아 있다”며 “선박 내부에 300도가 넘는 열을 빼낸 뒤 모든 소방대원을 투입해 잔불까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는 이달 21일 오전 9시 39분 인천시 중구 항동 7가 인천항 1부두에 정박해 있던 오토배너호에서 중고차 선적 작업 중 발생했다. 이 불로 화물선에 선적된 중고차 2438대 중 선박 11∼13층에 있던 차량 1천460대가 모두 탔다. 화재 첫날 5000여개의 타이어가 타면서 발생한 검은 연기가 남동풍을 타고 10km 떨어진 연수구·남동구 일대까지 퍼져 고통을 호소하는 200여건의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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