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작품활동
    2026-03-09
    검색기록 지우기
  • 나리
    2026-03-09
    검색기록 지우기
  • 지도
    2026-03-09
    검색기록 지우기
  • 헬스
    2026-03-09
    검색기록 지우기
  • 서방
    2026-03-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99
  • 염상섭 소설 ‘불연속선’ 복원

    ◎1936년 매일신보 연재물… 1년간 재구성/식민지시대 청춘남녀 연애 이야기 횡보 염상섭의 장편소설 ‘불연속선’이 도서출판 프레스21에서 처음으로 단행본으로 발간됐다.1년여 동안에 걸쳐 원본을 재구성하고 복원해 염상섭 문학의 결정본을 냈다.1936년 매일신보에 연재됐던 이 작품은 횡보가 국내에서의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만주로 떠나기 직전 발표한 것으로,식민지 시대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불연속선’은 세태풍정 묘사에 초점을 맞춘 청춘남녀의 연애 이야기다.택시운전사 김진수와 일본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카페 여주인 송경희라는 두 인물이 교통사고를 계기로 우연히 만나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어 간다는 것이 기둥줄거리.횡보는 신파조의 황홀한 연애행각을 그리는 한편 혼사장애의 이야기를 낯설게하기의 기법으로 재현한다.특히 이 소설에는 ‘제야’와 ‘표본실의 청개구리’‘만세전’‘삼대’ 등에서 보여준 현실인식은 증발되고 무정란같은 닫힌 현실에 안주하는 인물들만 넘쳐흘러 눈길을 끈다.무위도식하며 유희나 즐기는 가리사니없는 이들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일까.전형적인 신흥 부르주아의 자제이자 모던 보이인 김진수는 조선의 사이비 신흥 부르주아의 모습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1930년대의 횡보는 근대를 문제 삼았고 근대를 작품에 담아냈기 때문에 주목받는 작가로 남아있다.그러나 ‘불연속선’에서의 근대는 역사적 의미에서의 진정한 근대가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사이비 근대 혹은 유사근대에 가깝다. 한편 이 소설 끝에는 식민지 시대의 분위기를 보다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현재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 우리말에 대한 풀이를 실어 주목된다.고팽이(한 차례의 왕복),낫세(‘나잇살’의 비표준어),널치(몹시 지친 상태),떨뜨리다(위세를 드러내 뽑내다),민주대다(귀찮고 싫증나게 굴다),바자위다(성미가 깐깐해 너그러운 맛이 없다),버릊다(파서 헤집어놓다),뼈지다(하는 말이 매우 야무지다),안차다(겁이 없고 깜찍하다),어숭그러하다(유난스러운 데가 없이 수수하다),지다위(제 허물을 남에게 덮어씌움),채심하다(정신차리다),첫대바기(맞닥뜨리자 처음으로),흑책질(교활한 꾀로 남의 일을 방해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 기인 중광 화백 초대전/청담동 미화랑

    시와 그림,행위예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한국화단의 기인 중광 화백의 신작을 감상할 수 있는 초대전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 미화랑(549­0254)에서 열리고 있다. 중광화백은 지난 81년 한국화단에선 처음으로 미화랑에서 초대전을 가져 눈길을 끌기 시작,이후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잇따라 선보여 온 작가.기존 회화의 형식을 뛰어넘어 자유분방한 삶과 예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틀에박힌 회화를 거부하고 행위를 가미하는 작품이 해외에서도 소문나 지난 93년 LA아트페어 전야제에 동양인으론 처음으로 행위예술 초대작가로 참가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사진을 오브제로 쓰면서 간결하고 자유분방한 필치로 동양사상을 표출한 ‘산’ 연작 등 한지에 수묵채색과 연필로 작업한 신작 30점을 내놓고 있다.10월8일까지.
  • 시인 ‘백석’문학 총체적 복원/실천문학사 전집 발간

    ◎해방뒤 북 귀향… 88년 작품 해금/향토성 짙은 시·소설·평론 망라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가즈랑집은 고개 밑의/산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즘생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닭 개 즘생을 못놓는/멧도야지와 이웃사춘을 지나는 집/…/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산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네우림을 생각하고/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 한다…〉 한국 근대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재북시인’ 백석의 ‘가즈랑집’이라는 시의 일부이다. 향토적인 시어로 우리 민족의 원형적인 삶의 모습을 노래한 백석.그동안 냉전이데롤로기에 묻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던 백석 시인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최근 활기를 띠고 있다.백석의 문학작품을 소개한 책으로는 지난 87년 시인 이동순씨가 펴낸 ‘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이 처음.지난해에는 시집 ‘여우난골족’(솔)이 출간됐으며 올해 들어서는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시와사회)가 잇따라 나왔다.이와 함께 최근 실천문학사에서 ‘백석전집’을 펴냄에 따라 백석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에 이른 느낌이다. 백석은 본명이 백기행으로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1935년 시 ‘정주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백석은 관서지방 방언을 잘 살린 첫 시집 ‘사슴’(1936년)으로 일제하 지식인과 문인들 사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그러나 백석은 45년 광복이후 신의주를 통해 귀향,북에서 시작활동을 해왔다.때문에 그는 88년 정부의 납·월북작가 작품에 대한 해금조치가 있기 전까지는 ‘잊혀진 시인’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자인 김재용씨가 엮은 ‘백석전집’은 시는 물론 소설,동화시,평론과 정론까지 망라해 백석문학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특히 그동안 나온 책들이 대부분 해방전 작품만을 대상으로 한 것과는 달리 이 전집은 해방후의 작품까지 싣고있어 주목된다. 백석 문학의 특징중 하나는 민속적 세계를 즐겨 다루고 있다는 점.백석의 작품세계에 대해 김씨는 “‘여우난골족’이나 ‘고야’등의 작품에서 보듯 백석의 시들은 단순한 동심의 세계가 아니라 전근대적인 공동체의 생활리듬속에서 느끼는 공동체적 연대와 우주적 합일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평했다.또한 백석의 방언사용과 관련,그는 “일차적으로는 표준어에 대한 저항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근대의 중앙집권화와 물신화에 대항해 인간의 진정한 삶을 모색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광복직후 남북현실에 대해 특히 비판적이었던 백석은 당시 복잡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매우 미묘한 위치에 서게 됐다.그는 분단이후 북쪽에서 시보다는 동화시를 주로 썼다.전후 해빙기에 자신의 문학관을 강하게 주장하다가 부르주아 잔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작품활동이 위축됐던 백석은 58년 숙청돼 국영협동조합의 축산반에서 일하게 됐다.이 시기에 그는 다시 시작활동을 시작했지만 62년 10월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관련,일체의창작활동을 중단했다.
  • 초가을 독 현대미술 바람

    ◎‘뷔르트미술관 소장품전’ ‘바우하우스 사진전’ 등 잇따라/‘고전­전위 양존의 독특한 흐름 조명/백남준씨 등 17명 ‘비디오조각’ 소개 초가을 미술계에 독일 현대미술 바람이 거세다. 국내 화랑가에 교환전을 포함,외국작가 작품전이 풍성한 가운데 독일미술을 소개하는 굵직한 전시들이 잇따라 열려 이색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국립현대미술관이 28일까지 독일 뷔르트미술관 소장품전을 열고있는 것을 비롯해 예술의전당 미술관은 오는 13일부터 10월 7일까지 ‘독일 비디오 조각전’을 마련한다.그런가하면 워커힐미술관은 지난달 7일부터 20일간 열었던 ‘바우하우스 사진전’ 을 관람객들의 요청에 따라 오는 20일까지 연장해 열고 있다. 이 전시들은 지금까지 세계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치며 맥을 이어오고 있는 바우하우스 작가들의 사진작품에서부터 1960년대이후 최근에 걸친 독일출신 작가들의 비디오 조각작품을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고전의 무게와 전위적인 성향이 양존하는 독일미술의 흐름을 잘 읽게 한다. 예술의전당이 마련할‘독일 비디오 조각전’은 1963년부터 지난 94년까지 독일출신 작가들이 만든 비디오를 매개로한 미술작품을 통해 독일미술의 전개양상을 들여다볼수 있는 흔치않은 자리.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씨를 포함,작가 17명의 비디오조각과 비디오 설치작품 60점을 소개하게 된다.국내에는 아직 익숙치 않은 조각의 연장선상에서 비디오를 이해하는 비디오조각 비디오설치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전시되며 과슈 판화 사진 등 종이작품 42점도 함께 나온다.한국 태생의 백남준과 호주태생의 제프리 쇼,독일에서 공부하고 작품활동을 하고있는 장 프랑소아 귀통,프란치스카 매거트 등 비디오 미술의 대가들을 통해 독일에서 비디오미술이 발전하게 된 요인을 찾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뷔르트미술관 소장품전’은 독일 작가들을 중심으로 구상에서 기하학적 추상미술에 이르는 20세기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자리.기업가 라인홀트 뷔르트가 30년 이상 수집한 작품들로 구성돼 있는데 61명의 회화 조각 130여점이 나와 있다.기업 뷔르트사가 운영하는 뷔르트미술관은 상설전과 함께 독창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조망하는 기획전을 연중무휴로 마련,기업의 ‘대중을 위한 투자’ 측면에서 주목받는 전시장.이번 전시는 이 미술관 소장품 3천500점 가운데 인상주의의 제텔·피사로를 시작으로 표현주의의 놀데·야블로스키,재현적 회화로 유명한 에콜 드 파리파와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에르벵·야콥센·알레친스키,그리고 제로그룹까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또 기업가가 수집한 미술품들을 전시하는 미술관 소장작품들을 소개해 미술과 기업문화의 관계를 엿볼수 있게 하는 것도 있다. 연장전시에 들어간 ‘바우하우스 사진전’도 주목받는 볼거리.지난 1920년대 서양의 모든 예술에 영향을 미쳐 지금까지도 그 맥을 잇고있는 옛 독일 국립건축디자인학교인 바우하우스의 예술가 41명의 오리지널 사진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 소규모 풍력발전소 건설(북녘 뉴스라인)

    북한은 가뭄이 심화되자 전력난 해소책으로 물레방아식 중소형 수력발전소 건설에 이어 풍력을 이용한 소규모발전소의 조기 건설을 재촉하고 있음이 최근 중앙방송의 보도로 확인됐다. ○김부자 우상물 양산 촉구 북한은 2일 평양에서 열린 4·15문학창작단 창립 30주 기념보고회에서 전체 작가들에게 당의 문예방침에 적극 호응,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찬양물을 더욱 많이 창작해낼 것을 촉구했다. ○김정일논문 관철 발표회 북한은 김정일이 발표한 ‘주체성·민족성 고수’ 논문(6월19일 발표)과 관련,최근 평양에서 철학·역사·문예부문 등의 학술발표회를 잇따라 갖고 논문을 강령적 지침으로 삼아 향후 작품활동에 이를 반영해 나갈 것을 독려했다. ○나이지리아와 군사협력 북한은 4일 평양에서 나이지리아 군사대표단(단장 방위참모장 압둘살람 알하지 아부바카르)을 맞아 연회를 열고 쌍방간 군사협력 및 친선증진을 다짐했다고 중앙방송이 이날 전했다. ○3대 결사각오 무장 강요 북한은 6일 중앙방송을 통해 전체 주민에게 굶어 죽을 각오,얼어 죽을각오,맞아 죽을 각오 등 3대결사각오로 무장해 김정일을 견결히 옹호 보위할 것을 독려했다.
  • 설치미술가 전수천(이세기의 인물탐구:130)

    ◎자연을 캔버스로 상상을 형상화 한다/평면·입체·설치 등 장르파괴 끝없는 모색/시·공문 넘나들며 삶의 문제 근원적 접근 강물을 캔버스로 하여 그 위에 뗏목을 띄우고 흐르는 물줄기에 따라 뗏목이 교차되는 수상드로잉.88올림픽 1주년 기념으로 한강에서 펼쳐진 전수천의 행위미술은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강렬한 이벤트였다.잠실 메인올림픽 스타디움과 여의도 63빌딩에 이르는 12㎞구간에서 그는 자연과 인간대응의 장려한 퍼포먼스로 화단에 충격을 던졌다. 이에 앞서 지난 84년에는 뉴욕 103번가와 73번가 사이,배터리 파크에서도 신문잡지를 가루처럼 잘게 오려서 바람에 날려 뿌리는 「시간의 추적」을 시도하여 일상적인 것을 외면하는 뉴욕시민의 시선을 집중시켰다.1천여명의 관람객이 운집한 이 행사에서 「아트 인 아메리카」의 부편집인이자 미술평론가인 재닛 코플러스는 「그의 예술은 인간론적이고 철학적」임을 전제,『수많은 다른 아시아 예술가들이 그런 것처럼 하나의 포맷이나 양식에 안주하지 않고 전생애에 걸쳐 눈부신 변형으로 그는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설립하고 있다』고 논평한 바 있다. ○한강서 충격적 퍼포먼스 세계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95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방황하는 혹성들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 역시 현대의 무질서와 방약무인에 대한 섬뜩한 경고였다.이른바 흙으로 빚은 1천300여개의 토우들은 TV모니터와 네온 등 산업폐기물 위에 꼿꼿이 도열하여 옛한국인의 엄숙함과 도도한 기상을 유감없이 도출해내었다. 그해 봄 「올해의 작가­전수천전」을 주관했던 국립현대미술관장 임영방씨는 『전수천은 재료의 가소성·일회성을 대담하게 체험하여 신화와 역사,우주의 운행에 얽힌 질서(logos)와 혼돈(chaos)을 초월하는 장대한 스케일과 독창적 상상력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그는 왕성한 창작의지로 평면 입체 설치등의 장르를 붕괴하면서 인간의 역사와 삶의 문제에 근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작가다. 호암갤러리의 김용대씨는 『전수천은 전수천이라는 화면의 대지위에서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난다』고 표현한다.따라서그의 회화와 회화에서 출발된 인스털레이션(설치)과 퍼포먼스는 자연이라는 공간에 격랑을 일으키기도 하고 혹은 분출하는 용암같은 위협적인 피안의 세계를 형성하기도 하면서 「정신적 무풍지대를 방황하고 있는 인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작은 체구에 비해 한번 작업에 들어가면 두들기고 달구고 칠하고 매달고 설치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는 끈질긴 극기를 감내하고 있다.실제로 이 작가는 작은 혹성처럼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녔고 행성주위를 방황하다 충돌로써 존재를 마감하는 수많은 별똥별(혹성)의 운행과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빗댄 동기를 작업에 부여해왔다.뉴욕의 평론가 루시 리파드가 「이세상을 변형시키기 위해 산책나온 신의 사절」이라는 말은 그를 두고 과장이 없어 보인다. 주로 일본과 뉴욕을 무대로 작품활동을 하면서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도쿄·교토 국립근대미술관과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이 동시에 기획한 「형상의 사이에서」초대전에서는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이 이례적으로 그의 대작 「대지의 저편에서」를 구입하여 미술관에설치하고 있다.이와 관련하여 한국 화가로서는 다루어지기 힘든 뉴욕타임스의 존 러셀,빌리지보이스의 킴 레빈 등 권위있는 평론가들로부터 「오리지널리티와 풍부하고 강렬한 상상력」에 대한 대대적인 찬사를 받았다.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일본과 뉴욕에서 고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그의 삶 자체가 치열한 인간승리의 드라마틱한 내력이 아닐수 없다. 전북 정읍에서 농사를 짓던 집안에 태어났으나 중학졸업으로 학업을 중단했고 학비를 벌기위해 베트남 백마사단의 통신병으로 근무하다가 서양미술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 건너갔다.일본에서도 도로공사와 페인트공 등 허드렛일로 무사시노(무장야대)미대를 졸업,그림에 대한 야심찬 계획으로 일본활동 7년만인 83년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에 정착했다.그의 작업장이 있는 맨해튼 하층부는 소호미술구역과 중국인촌,리틀 이탈리안이 밀집한 예술의 온상으로 그는 수시로 예술가들을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행위예술을 펼칠수 있었다.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한 유행적 사조인 신표현주의 회화에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결국 뉴욕이라는 독특한 사회적 상황은 그의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시간과 공간을 해체하면서 의식의 심층을 온통 뒤흔들어 놨다고 할수 있다. 그의 작품은 때때로 시퍼렇게 노한 파도가 지구를 집어삼킬듯 공포적 장관을 연출하는가 하면 대지위에 부유하는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힘에 유도되는 신비한 기운을 내뿜기도 한다.과거와 현재,동서양을 넘나드는 역사적 상상력에 기초한 그의 작품은 자연에 대한 착취가 몰고올 자원고갈의 무질서와 엔트로피에 대한 경종이 되기도 한다.도쿄에 있을때는 베트남에서 제대날짜를 기다리던 군인들의 「기다림」에 지친 인간의 갈등이 작품에 반영되었고 뉴욕에서는 표현주의적인 색채와 매재로 현대인의 허망한 환상을 불식시키고 있다. 정체됨을 거부하는 그의 미술은 간혹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다」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미술과 일상,미술과 사회,미술과 문명」의 접점을 찾아 변신과 모색을 멈추지 않는 처절한 아픔이 배어나온다. ○일·뉴욕서 고학으로 우뚝 국내에서보다 일본과뉴욕에서 먼저 성공하고 역으로 국내에 들어온 그는 지금도 남들앞에 나서기를 꺼릴만큼 내성적이고 나약해 보이지만 아무리 중병에 걸려도 진통제 한알 먹은 적이 없는 강단이다.이상시대의 마지막 시인같은 인상이지만 그의 작업스케일은 남성적으로 광활하고 무변하다.결혼이나 가족은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독신주의.오로지 화가로만 살면서 요즘은 일산 구산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오는 7월 노르웨이 콩스버그미술관 초대 신작전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뉴욕에서나 도쿄,서울에서나 빈에서 그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종횡무진의 코스모폴리탄이다.가장 첨단적인 세계를 구축하지만 체삽이 없고 오히려 볼때마다 청렬한 경이로움을 발산한다. 이세상을 변모시키기 위해 산책나온 예술의 신사,불꽃같은 정열을 자연에 사르면서 그는 언제까지나 높고 넓게 그리고 자유자재롭게 우주를 넘나드는 광채일 것이다. □연보 ▲1947년 전북 정읍 출생 ▲74년 대입검정시험 합격 ▲76년 서울 개인전,도일 ▲76∼83년 일본 무사시노(무장야)미술대 및 와코(화광)대 졸업 ▲79∼81년 도쿄개인전 ▲83년 도쿄개인전(화이트아트갤러리·갤러리 큐·갤러리 제로 개인전),도미,뉴욕개인전 ▲84년 뉴욕 플랫인스티튜트석사과정 수료,뉴욕개인전 「시간의 추적전」(뉴욕 바테리파크 및 맨해튼문화센터) ▲85년 플랫인스티튜트초대 개인전,도쿄개인전(화이트아트갤러리·후쿠오카 애리아­듀화랑) ▲86년 뉴욕개인전(히긴스홀) ▲87∼88년 개인전(뉴욕 22우스터갤러 및 도쿄 화이트아트갤러리) ▲89년 88서울올림픽 1주년기념 한강수상드로잉전 및 개인전(과천국립현대미술관·가나화랑),도쿄개인전(화이트아트갤러리),뉴욕개인전(수연 이갤러리) ▲90년 도쿄개인전(화이트아트갤러리) ▲91년 LA개인전(앤드류사이어화랑),도쿄개인전(화이트아트갤러리),서울 「움직이는 문화열차」기획 ▲92년 서울개인전(가나화랑),도쿄개인전(무라마스화랑 및 화이트아트갤러리) ▲93년 대전 엑스포상징조형물「비상의 공간」제작,도쿄개인전 ▲94년 서울개인전(가나화랑) ▲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대표,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선정,「방황하는 혹성들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전」 ▲96년 미국 힐우드미술관 초대전 〈현재〉국립예술종합학교 교수 〈수상〉국민문화훈장 은관·일신문화상(95년)
  • 이태백의 당도시(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

    ◎취라산 강변공원 곳곳에 시선기린 유적이…/달 잡으러 몸던진 채석강물에 태백의 환상 어리고/청산아래 외로운 무덤 묘포엔 「시인」아닌 「명현」으로 새 기획연재물 허세욱 교수(고려대 중국문학)의 「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가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 서울신문을 통해 독자들을 만난다.이 시리즈는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만년을 보내고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송나라 문호 소동파,「수호전」의 저자 시내암,송나라 시인 백낙천,중국현대문학의 비조 노신 등이 태어나고 작품활동을 벌인 위대한 중국문학의 산실인 양자강 하류의 어제와 오늘을 필자의 깊이있는 시각으로 새롭게 조명해나게 된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의 동요처럼 당나라 시선 이태백은 살아서 달에 놀았지만 죽어서 땅에 묻혔다.그 묻힌 땅을 찾아서 가는 길이다. 그는 천재시인으로 세상에 이름을 남겼다.심지어 한국의 어린이조차 남의 나라 시인으로 여기지 않을 만큼 친숙했던 시인이건만 낳아서 묻힐 때까지 기구한 구름나그네였다. 이태백은 기원 701년,무역상이던 아버지를 따라 서역의 쇄엽,그러니까 지금의 키르기스공화국 토크마크부근에서 출생,다섯살때 고향인 사천성 강유현 청련향으로 귀국했다.고향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뒤 출향관,중국의 강남·강북 많은 땅을 떠돌다가 예순한살되던 761년 섣달,당도의 현령으로 있던 족숙 이양빙 집에 기식하다가 이듬해 11월,끝내 늑막염으로 병사했다.당도의 동북교외에 위치한 용산 동록에 매장됐다 다시 58년 뒤인 기원 820년,역시 용산 건너편 청산의 서쪽 산자락에 이장,오늘에 이른 것이다. 혈통에 대한 이설도 분분했다.부조의 오랜 외유때문에 혼혈일 가능성 외에도,심지어 이족으로 보는 호인설도 있지만 그의 자작시나 행장·묘비의 기록에 따라 한족,그것도 장상의 후예로 보인다. 이백과 당도의 인연은 깊었다.중·만년에 방랑점으로 삼은 선성·금릉(지금의 남경)·광릉(지금의 양주)등지를 연결하는 중간점인 데다 그가 숭모하던 남조의 시인 사조(464∼499)가 태수를 지낸 곳,그래서 한동안 선성서 살면서도 일곱번이나 당도를 출입했다.지금 태백이 영구지지로 묻힌 곳도 사조의 고택이 있던 청산 그 산자락이었다. 당도시에서 북쪽으로 10㎞도 안되는 마안산시,서남쪽에 양자강 강줄기를 치마처럼 휘감고 우뚝 선 해발 130m의 취라산은 전체가 이태백기념관이랄 만큼 그를 기리는 유적으로 널려 있다. 평생 벼슬을 마다하고 시주화월에 미쳐서 강호를 떠돌던 이태백은 인생이 몽땅 저물어버린 기원 756년,나이 56세에 당나라 현종의 열여섯째 아들인 영왕이 형인 숙종과 벌인 친위쿠데타에 연루,심양에서의 옥고과와 야랑으로의 유배를 겪다가 나이 59세에 석방된다.그러니까 그의 만년 6년은 반란에 옥고,가난에 병고,끝없는 시련에 꺾이고 만 것이다.그가 친위쿠데타에 끼어든 것은 당시 장안을 협공한 안록산의 반군,그 무도한 발굽에 무력해진 정부군을 돕겠다는 비분강개 때문이었다. 과연 그의 절필로 알려진 「임종의 노래(임종가)」엔 뜻을 이루지 못한 한이 서려 있다. 「대붕이 난다,사방을 떨치며, 중천서 날개를 꺾이자 건널 힘이 없어라. 바람에 사무치고,저 해솟는 나무에 노닐었지만 옷소매가 걸렸어라. 뒷날 누가 알랴! 공자가 가버린 뒤라 슬퍼할 이 없거늘」 대붕비혜진팔예 중천추혜력부제 여풍격혜만세 유결상혜괘좌결 중니망혜수위출체 필자는 이 절필이 씌어진 현장에서 이를 암송하면서 이태백 최후의 땅을 밟았다.그의 문학을 사랑한 지 40여년,그가 객사한지 1천2백34년만에. 남경에서 서남쪽으로 한시간남짓,마안산 시계에 접어들자 하늘을 뚫는 굴뚝에 까만 연기.마안산 속스러운 거리를 뚫고 계속 남하했다.이윽고 오른편에 신록의 작은 산이 보였다.그 모양이 파란 고동 같다 하여 「취라산」.하지만 우리에겐 「채석산」이 다정하여라.작은 돌다리를 지나 「채석진」이란 방문을 지나자 채석산 강변공원의 경내에 들어섰다.신록이 옹알대는 오솔길을 걷자 뜻밖에 누런 기와의 대웅전이 육중하게 버티고 섰다. 바로 「태백루」다.그 지붕,그 기둥,그 처마.과연 건물의 웅장함에 표일한 이태백의 기상이 넘쳐 흘렀다.당나라 원화연간에 창건했지만 여러번 병화에 소진,지금 이 3층누각은 청나라 광서연간에 세운 것이다. 문간 양쪽에 웅크리고 있는 돌사자로부터 정루앞의 굽이굽이 병풍,정루 2∼3층마다 바람인 듯 표표하게 유랑하는 이태백의 유람도에 쇠탈한 조각상,거기다 그를 기리는 비명들.과연 「태백루」는 저 동정호의 「악양루」,무창의 「황학루」와 함께 중국 3대누각으로 칠 만했다. 하지만 필자는 어서 이 엄숙한 전당을 벗어나고 싶었다.저 산꼭지에는 비록 전설이지만 이태백의 최후를 증언하는 현장이 지금도 채석강 맞바람에 천리장강을 굽어보고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거기서 엉망진창으로 취한채 저 채석강의 달을 잡으려 풍덩 투신해버리는 그 미치광이의 환상을 잡고 싶어서였다. 채석산 정상은 과연 가슴이 후련했다.장강이 아찔하게 굽어뵈는 벼랑위로 넓은 반석위에 「연벽대」란 큼직한 글씨.그러니까 옥을 꿰어놓은 관망대라는 뜻이지만 어디 천년전부터 전설로 불리던 「착월대」만큼 친숙하랴! 착월대서 조망하는 장강의 도도함이나 착월대서 굽어보는 천인단애의 「채석기」는 분명 절경이었다.그래서 이태백은 여기서 「우저에 배를 매고 (야박우저회고)」란 명시를 썼고,송나라 시인 매요신은 이태백의 투강설화를 시에 옮겼다.그뿐만 아니었다.현대의 요절시인 주상(1904∼1933)은 이태백이 투신했다는 채석기 밑에서 1933년12월5일 새벽,상해서 남경으로 가는 연락선에서 투신자살했다.지금은 착월대옆에 붕조처럼 두팔을 활짝 벌리고 훨훨 비상하는 이태백조상을 세웠고,그 위로는 이태백의 투강자살을 기념하는 의관총이 있다. 채석산을 내려와 당도시 동남쪽 청산 아래 당도현 하동향 태백촌에 있는 이태백의 무덤으로 발을 옮겼다.말하자면 전설의 현장에서 사실의 현장으로. 청산은 해발 200m에 가까운 낮은 산.하지만 평지에 있는 이태백의 묘는 초행자가 인가로 알고 지나치기 일쑤다. 건너편 용산에서 이장한 이 묘는 그의 고향 사천 강유로부턴 만리타관이었다.이태백 생전의 친구이던 범작의 아들 범전정이 이 지방 관찰사로 있을때 이태백의 두 손녀 청에 따라 이장을 결정한 것이다. 묘역은 상당히 넓었다.공원을 방불케 다양한 관상수,초입엔 장중한 「태백사」,당나라 헌종때 세웠다지만 여러 차례 중건한 듯새로웠고,열몇개의 비,그중에 「임종의 노래」가 새겨져 가슴을 뭉클케 했다. 무덤은 묘각안에 있었다.다섯겹의 두레석에 둘러싸인 무덤,2m높이의 운석 묘표엔 「당명현이태백지묘」가 이국나그네를 어리둥절케 했다.그의 호방한 일생에 비추어 한낱 시인으로 묘비를 달지 않고,하필이면 그가 혐오하던 도덕군자인 명현으로 받들었을까. 이태백 스스로는 어이없게 찡그리고 있을지 몰랐다.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이 「시인 이태백」을 찾고 있는데 말이다.당나라의 명시인 가도는 여기 이백묘를 참배타가 객사하지 않았던가?
  • 문화사랑 앞장서는 “공무원 화가”/서울 중랑구 이원달 부구청장

    ◎34년간 작품활동 담은 「일사랑 그림사랑」 책 펴내/문호재 보존에도 큰 공… 14일부터 3번째 개인전 지난 연말 공무원으론 처음 한국미술협회회원으로 정식등록돼 화제가 됐던 서울 중랑구 부구청장 이원달씨(61)가 그동안의 그림작업과 문화활동 내용을 담은 책 「일사랑 그림사랑」을 펴내고 이를 기념하는 개인전을 14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제2전시실(3991­672)에서 갖는다. 오는 6월 정년을 앞둔 이씨는 지난 63년 경주시청 근무를 시작으로 34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그림작업을 꾸준히 병행해온 작가.중학교때 미술반에서 유화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오랜 세월 캔버스에 묻혀 살아 지금까지 개인전 3회를 비롯,10여차례 전시를 가진 미술계에선 잘 알려진 공무원 화가이기도 하다.이씨는 특히 그동안 미술인 저변확대에 앞장서 강동·용산 부구청장과 광진구청장,중랑구 부구청장에 이르기까지 관내 미술인 초대전을 지속적으로 마련하는 등 문화사랑에 앞장서 왔다.이같은 활동을 토대로 지난해 5월 중랑·강동·용산구 지역문화센터 출강 강사 5명으로 청색회를 결성,이들과 함께 각 구에서 순회전을 열어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문화재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경상북도 문화공보실 근무당시엔 문화재보존관리에 정성을 쏟아 당시 경북도 관내 사찰과 문화재 소재지는 빠지지 않고 답사했다.특히 심하게 훼손돼 멸실위기에 처해졌던 경북 상주군 화북면 상오리 7층석탑을 1977년 보물 제683호로 탄생케 하고 포항과 울진을 잇는 동해안고속화도로 착공계획발표후 불영계곡의 명승지 지정을 추진,결국 이 지역을 전국 최대면적의 명승지로 지정되게 한 장본인이다. 「일사랑 그림사랑」은 지난 34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남긴 이같은 문화활동을 총정리한 책.친지,동료,후배들의 이씨에 대한 추억과 지금까지의 전시회에 출품했던 115점의 작품,그리고 네번째 개인전에 발표될 60여점의 작품을 함께 실었다. 이번 개인전에선 그동안 틈틈이 답사를 통해 스케치한 월악산 북한산 등 정취어린 풍경 유화들을 내놓는다.
  •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세계 문화유산 순례:21)

    ◎대국의 옛영화 증언 ‘환상의 도시’/겨울궁전·피터요새·이삭성당 등 걸작 건축물 즐비/세계 3대미술관 「에르미타즈」 전시품 3백만개/르네상스이후 예술·건축양식 다시 되살아난듯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보지 않고서는 유럽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유럽예술의 축소판이 이 도시이기 때문이다.르네상스 이후 계몽시대의 문학과 예술,건축양식이 다시금 되살아난 곳이 이곳이기도 하다.도심을 지나는 네바강 수로,수백개의 아름다운 바로크식 다리가 여행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주변은 예술가의 혼이 깃든 건물 하나하나가 모두 진귀한 문화유산들이다.백야때의 황혼빛 놀은 네바강 잿빛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예술품을 만든다. 네바강을 호령하는 것은 피터요새다.이 요새는 피터대제가 도시를 창건하면서 생각해낸 첫번째 프로젝트였다.1703년 수로를 다스려 운하를 만들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나무·진흙으로 벽을 쌓았으나 점차 붉은 벽돌로 성벽을 만들어 나갔다.요새는 팽창욕에 사로잡힌 스웨덴왕군을 막기 위해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군사적 기능이 필요없게 되었을때 요새는 용도가 변경됐다.차르시대 「반골」혁명가들이 옥사한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을 날렸다.피터대제의 아들 알렉시스가 아버지의 명령으로 사형을 당하기 전 6개월도 여기에서 보냈다.이 요새는 차르시대 화폐주조소를 보호해주기도 했다. ○피터요새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 요새안의 가장 화려한 건축물은 스위스의 건축가 도메니코 트레치니가 거의 20년동안 네덜란드양식으로 지은 피터성당이다.금잎으로 만든 원추형탑이 금십자가를 품은 천사의 모습을 떠받치는 동상은 과연 화려의 극치다.이곳에 피터대제가 묻혔고 후손 대부분도 이 교회에 묻혀있다. 네바강변에 자리한 겨울궁전은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고전양식이 가미된 바로크건축물 가운데 하나다.궁전은 세가지 점에서 유명하다고 한다.하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마지막 6황제가 살았던 곳이요,두번째는 세계3대 박물관의 하나인 에르미타즈 박물관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마지막으로 하나는 신고전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건물이라는 것이다.18세기 중반에 지은 이 건축물은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건축가 바르톨로미오 라스트렐리의 최고의 걸작으로도 꼽힌다.조각가 플로렌틴의 아들인 라스트렐리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돌이 부족하자 「스터코(치장벽토)」를 처음으로 이용했다고 한다.창문을 아치형태로하면서 현란한 컬러의 벽토를 이용했다.경사져 들어오는 겨울햇빛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겨울궁전안에 자리한 에르미타즈는 세계3대미술관으로 꼽힌다.4백개의 전시관은 1주일을 둘러봐도 전시관 주위의 대리석상 정도 밖에 감상을 못할 정도로 진귀한 보물들이 그득하다.카테린여제가 미술품을 수집하면서 시작된 에르미타즈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미술품까지 3백만개의 작품이 진열돼 있다.다른 141개 방들은 이전의 황제들이 전리품으로 획득한 서유럽의 보물들로 그득하다.10월 혁명후 전시공간은 개인소장품을 압수하면서 더욱 알차게 채워진다.한 예로 모스크바의 한 상인한테서는 마티스의 그림 27점과 피카소의 그림31점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유럽전시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돈나상,미켈란젤로의조각품「쭈그려 앉은 소년」외 렘브란트의 작품등 이른바 명화들이 헤아릴수 없이 많다.들라크로와,로댕에서부터 피사로,드가,모네,로트렉,르노아르,고호,고갱,세잔느 등 인상파 화가까지 다양한 화풍을 보관하고 있다.에르미타즈는 입체파의 그림이나 추상화는 잘 전시하지 않는다.사회주의 현실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한 소비에트 정부의 영향 때문이다. 페테르부르크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건축물은 이삭성당이다.실내내부가 온통 금을 입힌 천사상이다.프랑스의 건축가인 아우구스트 몽페랑이 로마의 베드로성당에 영감을 받아 지은 건축물이다.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건물이기도 하다.처음 지을때 불완전한 기초때문에 완성하는데 꼬박 40여년이 걸렸으며 50만명의 인부가 동원됐다고 한다.천정 원추형 꼭대기는 햇빛이 비치면 성령을 의미하는 비둘기의 형상이 그리스도인들의 심중을 흔든다. ○금 입힌 천사상으로 이삭성당 장식 페테르부르크의 주요간선도로는 네프스키 대로.이 도로는 18세기초 피터대제때 초지를 갈라 만든 것으로 동서로 10㎞나 된다.이거리를 따라 양쪽에는 성당·상가·극장·박물관 등이 즐비하다.이들 건축물 모두가 예술성이 짙은 작품들이나 다름없다.페테르부르크에는 「잔인했던」혁명유산도 적지않다.레닌이 혁명전 살았던 주택이 레닌박물관으로,1917년 핀란드역에서 연설할 때 쓰던 무장차량도 야외에 그대로 전시돼 있다.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로 빠뜨릴 수 없는 곳중의 또 하나는 시에서 서쪽으로 32㎞쯤 떨어져 핀란드만에 자리잡은 「페트로 드보레츠」(피터궁전).황제의 여름궁전으로 알려진 곳이다.시중심부에서 배편으로 30분,혹은 승용차나 기차편으로도 40여분이면 닿는 곳이다.배를 타고 들어서면 수백미터의 운하를 통해 궁전에 도착한다.운하의 끝에 자리한 현란한 계단장식과 화려한 분수대가 마치 방문객을 궁전의 안주인처럼 도취하게 만든다.음악가 글린카,림스키­코르사코프,무소르그스키,보로딘,차이코프스키 모두가 이곳에 살았다.푸시킨,고골리,투르게네프,도스토예프스키,고리키 등 많은 불멸의 문학가들도 이곳에 살았거나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벌였다.페테르부르크의환상적 아름다움은 바로 러시아의 역사이자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가이드◁ 서울에서 모스크바까지 대한항공과 러시아국영 아에로플로트가 직항편을 운항한다.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열차편을 이용하면 8시간 정도가 걸린다.모스크바에서 밤 12시에 출발하는 침대차를 이용하면 기차안에서 1박을 하고 아침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떨어지므로 편리하다.1박 2일 코스로는 동서로 뻗은 네프스키대로와 네바강변도로인 드로르소바야 나베레즈나야를 차를 전세내 둘러보는 것이다.라스트렐리,트래치니,보로니킨,몽페랑,로시,자하로프등의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영향으로 다운타운인 네프스키대로 주변에는 신고전양식과 바로크양식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거의 망라돼 있다. 3일이상 페테르부르크에 머물 사람이라면 네바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페테르부르크시 경관을 우선 감상한다.그 다음의 우선순위는 겨울궁전∼피터요새∼이삭사원∼카잔성당∼여름궁전∼황제마을식으로 잡는 것이 좋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푸슈킨이나 도스토예프스키박물관,음악을 좋하하는 사람이라면 림스키코르사코프 기념관을,발레를 좋아한다면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 다음으로 손꼽는 키로프예술극장을 들러보는게 좋다.
  • 김창수씨 18일 예술의 전당서 독주회

    ◎“감정과 흥”… 이것이 인도 전통음악 『인도 음악은 연주자의 감정과 흥이 최대한 발휘되는 매력적인 음악입니다.인도 전통의 수학적인 논리 구조에 연주자의 단련된 즉흥성이 곁들여지는 음악이죠』 우리나라 최초의 인도음악 연주가 김창수씨(34).오는 18일 하오 7시30분 서울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에서 「김창수의 소리 그리기」란 제목의 독주회로 인도 전통음악을 선보인다. 주어진 악보를 읽는 발표회식 연주가 아니라 현장에서 즉흥의 소리를 만들어낸다는,다시말해 「소리를 어루만진다」는 자신의 연주철학에서 「소리 그리기」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설명한다. 김창수씨는 서울대 음대 작곡가 출신이다.유럽이나 미국음악에 만족하지 못하고,무엇에 홀린듯 흠뻑 취해야 직성이 풀리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끼」가 자신을 인도음악으로 이끈 것같다고 말한다. 천조각 설치작가로 세계곳곳을 돌아다니며 작품활동을 하는 김수자씨가 친누나임을 보면 이 「끼」는 다분히 그의 집안 내력인 것도 같다. 『인도음악을 처음 들었을때 도대체 사람의 소리인지,악기 소리인지 헷갈렸습니다.그정도로 흥분했던 거죠』 그가 연주하는 악기는 타블라라는 인도 정통 타악기.「탈」(Taal)이라는 리듬체계를 통해 절묘하고 환상적인 음을 토해내는 악기다. 사랑기라는 악기의 반주를 받는데 이번 연주에는 인도에서 같이 공부한 음악친구 산토시 쿠마르 미스라가 내한,함께 공연한다.친형 김길수 교수(부산교대 음악교육학)가 탄푸라 반주를 맡았다.
  • 금호갤러리/관훈동시대 “마감” 사간동에 “새 둥지”

    ◎대지 210평 연건평 680평 규모/4개전시장 마련… 오는 9일 “오픈”/지역격차 해소·해외작품 중점 소개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개성있는 기획전을 꾸준히 열어온 금호갤러리가 서울의 새 미술거리로 부상되고 있는 종로구 사간동에 둥지를 틀었다. 금호그룹이 운영하는 금호갤러리가 7년간의 관훈동 시대를 마감하고 새 건물을 신축,오는 9일 경복궁 맞은 편에서 「미술관시대」를 개막하는 것. 건축가 김태수씨 설계로 2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새 미술관은 대지 210평에 연건평 680평,지하3층 지상4층 규모.지하1층부터 지상3층까지 4개층에 전시장을 마련한 것과 함께 수장고·세미나실·연구실·사무실등을 갖춰 본격적인 기업미술관의 외형을 지니게 됐다.이와함께 운영방식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금호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의 친여동생인 박강자씨가 관장직을 맡은 이 미술관은 기존 젊은 작가 위주의 공간성격을 유지하면서 지역문화 격차해소와 각국의 미술흐름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로 살려나가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예작가 발굴과지역작가전을 통해 미술문화의 중앙집중현상을 해소하면서 ▲미술사적으로 의미있는 기획전 정기 개최 ▲우리 현대미술사의 재점검 대상 작가초대전과 해외작가전 및 미술관·화랑의 공동기획전을 활발히 펼치겠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내년 예산으로 10억원을 책정,이 경향을 살릴 수 있는 전시를 시험적으로 다양하게 준비할 계획이다. 금호미술관은 9일 정식 개관행사를 갖고 이날부터 12월27일까지 2부로 나눠 「한국 모더니즘의 전개 1970∼90년대의 초극」이라는 주제로 기념전을 갖는다. 이 전시는 70년대로부터 최근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과정을 미학적 내용과 계기를 통해 점검,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기회를 갖기 위한 자리.9일부터 12월3일까지 계속되는 1부 「모더니티,사회,매체」에는 한국화·서양화·조각부문에서 모두 53명의 작가가 출품한다.강남미 김병종 김호득 문봉선 민경갑 서세옥 송수남 송영방 숨결새벌 신산옥 안상철 이영석 이응노 이종상 이철량 정치환 홍석창 황창배(이상 한국화),강국진 고영훈 곽덕준 구본창 김구림 김용민 김용익 김차섭 김홍주 문범 박현기 성능경 송번수 신학철 윤동천 이석주 이종구 이호철 조덕현 최병소 최정화 한운성 홍성민(이상 서양화),강은엽 김진영 문주 박석원 박종배 신옥주 안규철 이상갑 이승택 이형우 전국광 홍명섭(이상 조각)씨가 참여작가.국내 화단에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한 중진부터 개성있는 작품활동을 벌여 주목받고 있는 30∼40대의 젊은 층이 망라돼 있다. 12월6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2부 「모더니티,대중,표현,」에는 전통적인 매체를 고수하는 평면 경향의 작가 58명의 작가가 출품한다.
  • 불 퐁피두센터 초청작가 김인겸씨

    ◎“새로운 분위기 작품활동에 힘 쓸 계획”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 대표작가로 참가했던 조각가 김인겸씨(51)가 프랑스 퐁피두센터 초청으로 6개월간 파리에 작업실을 마련,현지에서 작품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김씨는 퐁피두센터가 세계 각국의 유망작가를 초청하는 이 행사에 초대된 최초의 한국작가로 11월초부터 내년 5월까지 퐁피두센터가 주선하는 30평 크기의 작업실과 주택에서 일정액의 작업비를 지원받으면서 현지 큐레이터,작가들과 깊이있는 교류를 가진다. 『한국 작가와 작품세계에 대한 관심확대와 인식개선 측면에서 생긴 결과라고 봅니다.동양권에서도 드물었던 초청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저 이후에도 한국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세계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에 나선형 설치작품을 선보여 각국 작가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던 김씨는 작품활동에만 전념,지난 11일부터 표화랑에서 그간의 작업성과를 선보이는 개인전을 열고있다.이번 전시에서는 김씨가 주로 사용해온 브론즈,철판,합판과 함께 물 아크릴을 이용해 평면과 입체 조각과 설치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을 내놓고 있다. 『작가는 주어진 환경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합니다.퐁피두센터 초청작가로 6개월간 얼마만큼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나름대로 그동안의 작업패턴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 새 분위기의 작품에 힘써볼 계획입니다』 『퐁피두센터측에 현지 체류기간 연장의 뜻을 밝혀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김씨는 이번 전시가 끝나는 대로 바로 출국할 예정이다.〈김성호 기자〉
  • 고 이응로 화백 미망인/박인경씨,첫 국내 개인전

    ◎「자신의 삶」 화폭에… 9일까지 가나화랑서 지난 89년 작고한 고암 이응로 화백의 미망인 박인경 여사(69)가 국내에서 전시를 가질 예정이다.오는 9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가나화랑(733­4545)에서 열리는 박인경 작품전이 그것으로 박씨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담은 이례적인 전시란 점에서 국내 화단의 눈길을 끌고 있다. 박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한뒤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작품활동을 계속해 왔지만 남편 고암의 그늘에 가려 별 빛을 보지 못했던 작가.특히 동백림사건과 윤정희·백건우 부부 납치사건에 연루돼 오랜 세월 고국을 찾지못하고 살아야만 했다. 그의 작품은 남편 고암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오랜 세월 작업끝에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일부 작품은 고암의 작품으로 오인받을 정도로 수준급이라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번 서울전에서는 50년대 후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작업해온 회화 50점을 출품한다.모두 국내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미공개 작품들이란 점이 특징이다.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에 걸친 도불 초기의 고암 영향을 받은 작품에서부터 한글을 여러 층으로 겹쳐 써 독특한 형상을 드러내는 독자적인 작품까지 그동안 박씨의 작품세계를 간추려 보여준다.
  • 현대건축 창조의 선구자/마이클 브레이브스 작품전

    ◎대표적 작품 망라… 한남동 로탄다서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이면서 회화작가인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10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민빌딩 로탄다에서 열리는 「텔링 스토리스」라는 타이틀의 건축전이 그것. 여기에는 미국 콜로라도 덴버 중앙도서관을 비롯해 국제금융회사 본부,톰슨전기사 미국 본부,한국의 레이크힐 컨트리클럽,일본 후쿠오카 하얏트호텔,후쿠오카 사무실 빙빙,중국 상해의 싱리은행 타워,대만 대평시 국립역사박물관,필리핀 마닐라 국제무역센터 빌딩등 작가가 만들었던 대표적인 작품들을 망라해 선보이게 된다. 1934년 미국출신인 마이클 그레이브스는 신시내티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건축교육을 받고 뉴저지 프리스턴시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현대건축 창조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는 작가.뉴욕 소재 근대미술관(MOMA)에서 소위 「뉴욕5」라는 피터 아이젠만,찰스 과스메이,존 헤이덕,리처드 마이어등과 함께한 합동전시회와 출판을 통해 유명해졌다.19 80년부터 2년간 지어진 포틀랜드빌딩은 최초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라는 평가를 받아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대표적인 건축가로 자리를 굳혔다. 마이클 그레이브스는 무엇보다도 건물에 주어진 주변환경을 최대한 반영시킨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건축물외 가구 장식물,생활용품 디자인에도 솜씨를 발휘하고 있으며 드로잉과 회화에도 재능을 인정받아 20세기 건축과 디자인 역사에 굵은 선을 그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대표적인 건축 조형물,사진과 함께 그의 이같은 건축 분위기를 그대로 담은 디자인 소품들이 함께 선보여 그의 총체적인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전시 첫날인 10일 하오4시 마이클 그레이브스가 직접 자신의 작품인생과 작품들에 대해 설명하는 강연회도 열릴 예정인데 여기에서는 그의 디자인이 담겨진 식기류,장신구류,손목시계,양탄자들이 함께 소개된다.
  • 소설가 김하기씨 노동당 입당/안기부 밀입북 조사

    ◎84년 「부림사건」 연루 수감중/미전향 장기수에 「주사」학습/송환뒤 북 지시 작품활동 지령받아/북서 장기수동향 보고… 만취가장 고의 입북 가능성 국가안전기획부는 5일 술을 마신 뒤 월북,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지난 달 19일 구속된 김하기씨(38·소설가·본명 김영)가 지난 84년 「조선 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안기부는 김씨가 84년 9월 이른 바 「부림사건」으로 전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남파간첩 안모씨(67) 등 미전향 장기수 3명으로부터 주체사상과 소비에트 경제사상 등을 교육받고 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을 자백했다고 말했다. 안기부는 김씨가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선서하는 정식 입당절차를 거치지는 않았지만 북쪽을 향해 「당과 수령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구두선서를 한 뒤 당원번호까지 부여받았다고 전했다.김씨는 그러나 이같은 자백을 했으나 『너무 오래 돼 당원번호를 기억할 수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전주교도소 특별 사동에 수감된 김씨는 이들 장기수들로부터 사상교육을 받으면서 교도관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만년글판」(나무판에 안티푸라민을 바르고 비닐을 씌워 비닐을 들면 글씨가 사라지게 한 것)을 사용했다고 안기부는 전했다. 김씨는 밀입북 당시 교도소의 장기수 명단과 교도소내 사상투쟁 동향 등을 북한당국에 보고하는 등 기밀사항을 누설한 혐의사실도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또 중국을 통해 밀입북한 뒤 북한당국의 조사를 받던 중 『남한에 돌아가면 통일에 도움이 되는 소설을 쓰라』는 지령을 받은 사실도 밝혀졌다. 이에 따라 안기부는 김씨가 취중임을 가장,고의로 월북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장기수를 소재로 소설을 쓰는 작품활동을 해왔다. 한편 김씨의 동생 김완씨(33·회사원)는 이날 전화 통화에서 『안기부 수사관이 최근 면회온 가족에게 「장기수들이 노동당에 가입해야 한다고 해서 가입했다고 김씨가 자백했다」고 말했으나 이 말의 진실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부인 임정렬씨는 『남편으로부터 「수사과정에서 발길질을 한차례 당했으며 수사관들이 공포분위기를만들어 정신적인 고통을 많이 겪었다」는 말을 들었다』며 『남편은 「검찰에서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서울지검은 이날 안기부로부터 김씨의 신병과 사건기록 일체를 송치받았으나 『기소전까지는 피의자의 혐의사실을 말할 수 없다』고 확인을 거부했다.
  • 문신 선생 생전 예술세계 한눈에/마산 문신미술관서 1주기 추모전

    ◎청동·흑단조각·미공개 친필자료 등 전시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선생의 타계 1주년을 맞아 생전 그의 예술세계를 보다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추모전이 23일부터 올 가을까지 경남 마산시 합포구 추산동 문신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문신미술관측은 지난해 5월24일 타계한 문선생의 1주기를 맞아 「문신 추모 1주년 흑단,친필자료전」을 마련해 이날부터 전시한다. 미술관 제1전시관 1층 전시실에는 지난 60년대이후 제작한 나무조각작품에서부터 20여점의 브론즈,타계직전 제작한 흑단조각작품 등 문씨의 열정이 깃들여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전시된다. 2층 전시실에는 그동안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문씨의 친필자료 등이 전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예술계에 처음 발을 디딜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평한 평론가들의 친필원고를 비롯해 젊은 시절 그가 기고한 각종 수필원고,작품활동 틈틈이 적은 메모노트,그동안 국내외 여러 보도자료 등이 전시됐다.작품제작에 사용하던 여러가지 도구 등도 함께 진열돼 있다. 특히 이번 추모전을 계기로 문씨의 예술성을 대표하는 흑단조각작품을 미술관 전시실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됐다.지난 94년 5월 미술관이 문을 연 뒤 잠시 전시를 한 흑단작품은 도난우려가 있어 전시를 하지 못했다.브론즈는 다시 찍어낼 수 있지만 단단한 나무인 흑단을 일일이 손으로 깎아 다듬은 흑단조각작품은 작품 하나하나가 귀중한 것이다.따라서 흑단은 문씨가 타계한 뒤 예술적 가치가 더욱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술관측은 미처 정리가 안된 친필자료 등은 정리가 되는대로 2층 전시실에 계속 전시하는 등 문씨가 50년 예술여정에 쏟은 땀과 열정 등 생전의 숨결을 그가 직접 지은 전시관 공간에 모두 담아나갈 계획이다. 파리 유학시절 회화에서 조각으로 전환한 그는 80년 고향에 돌아와 정착했다.88년 올림픽때는 올림픽조각공원에 「올림픽의 조화」을 선보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으며 92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정부가 수여하는 프랑스 예술문화영주상을 수상했다.그는 사망 1년전 마산시 고향집터에 건평 3백40평의 실내전시장과 2천5백평의 야외조각전시장으로 이루어진 문신미술관을 개관,생전의 숨결을 담아두었다.〈마산=강원식 기자〉
  • 노벨문학상 시인 엘리티스

    【아테네 AFP 로이터 연합】 7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리스 시인 오디세우스 엘리티스(75)가 아테네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아테네 라디오방송들이 18일 보도했다. 최근 수년간 은둔생활을 해온 엘리티스는 그리스 영웅주의및 신화의 전통을 현대에 접목시킨 작품활동으로 많은 그리스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특히 지난 59년 출간한 시집 「To Axion Esti」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었다.
  • 오세창 선생 서예특별전/전서 등 3백여점 한자리에

    ◎사후 40여년만에 전시회/3·1운동 민족대표… 격동기 “정신적 지도자”/저술·독립선언서 원본·전각실인 등 포함 한국 근대서예사의 거두이자 근대전각의 아버지,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의 1인이며 광복후 서울신문 초대사장을 지낸 우리나라 근세격동기의 정신적 지도자. 한두 줄로 압축하기엔 너무나 뛰어난 업적과 예술적 위상으로 시대를 풍미한 위창 오세창 선생. 서울신문사와 예술의 전당은 12일부터 4월7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그의 서예특별전을 마련한다. 이 전시에는 뜨거운 민족애와 예술혼을 불태우며 이 땅의 개화기에서부터 일제강점기,6·25등 격동기를 고고히 살다간 그의 삶을 투영한 서예등 명편 3백여점이 출품된다.유족과 개인소장자는 물론 공공미술관이나 도서관등에서 출품,사후 40여년만에 빛을 보는 전시작은 서예 70점을 포함한 저술원본과 감식관련자료 1백18점,전각분야의 실인 2백40여점,「근역서화징」원본등 10여점,독립운동선언서원본,제·발문 대표자료 20점,유품 10점,청조문인간독첩 7책등. 전서의금자탑을 이룬 그의 서예와 독보적 경지를 이룬 전각작품은 조형의 현란함보다 표정 없는 묵직한 필획구사로 걸출한 예술성을 드러낸다.독자적 상형문자의 의미구성으로 그의 깊은 정신적 기저를 간파할 수 있게하는 대표작들이 전시장을 무게 있게 채움과 동시에 미술사연구의 결정서인 「근역서화징」이 의미를 더해준다.우리나라 역대서화가 1천1백17명의 사적과 평전을 편년체로 엮은 이 저서는 위창 이후에 없는 서화사의 귀한 필독서다. 1864년 개화선각자이자 금석문의 대가인 오경석의 장남으로 서울 중인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8대에 걸친 역관가문의 환경에서 일찍이 한학을 접하며 16세에 역과에 합격했다. 그후 박문국 주사를 역임하며 언론과 인연을 맺어 한성주보 기자를 거쳐 만세보와 대한민보사장,광복후 서울신문 초대사장을 지내며 국민계몽활동에 남다른 정열을 쏟았다.민족지도자로서의 면모 또한 굳건해 일제식민통치에 항거하다 33인중의 1인으로 3년의 옥고를 치렀으며 항일정신은 광복까지 계속됐다. 「근대전각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독보적 경지를 이룬 그가 작품활동에 몰입한 것은 서화사의 격동기인 1920년대이후.청·장년기를 사회활동으로 놓쳤으나 가문에서 전해오는 방대한 양의 고서화정리와 함께 금석문탁본,전각의 무서운 수련을 통해 60대이후 서예에 일가를 이루게 된다. 당대최고의 서화수집가이며 엄정한 품평가로도 실력을 발휘한 위창은 지난 53년 피난지인 대구에서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 박영덕화랑·미술세계공모전/문경원·권정찬·강용면·이환씨등 4명선정

    ◎발굴작가에 작품활동비 지원/시상으로 끝나는 타공모전과 차별/전시회 열어주고 해외활동도 도와 새해들어 이채로운 성격의 두 공모전이 수상작가를 발표하고 이들의 밝은 미래를 예고,눈길을 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박영덕화랑이 국내 화랑계에 전례없는 개인화랑 차원의 공모전을 개최,신인작가 문경원씨((28)를 선정했는가 하면 미술전문지 「미술세계」가 「뉴 프리미티비즘」이란 주제를 내세워 「원시성」에 새로운 해석을 내리고 있는 3명(권정찬·강용면·이환)의 작가를 발굴한 것.대한민국미술대전을 위시한 많은 공모전이 범람해도 출신작가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제도 하나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국내미술계 현실에서 두 공모전이 제시한 수상작가들에 대한 청사진은 매우 긍정적 시선을 보내게 한다. 공신력을 지닐 수 없는 개인화랑 처지에서 소위 「자신만만하고 과감하게」일을 벌였다고도 볼 수 있는 박영덕화랑의 공모전은 그러나 권위있는 심사진과 엄중한 공모과정을 거쳐 제1회 대상작가 문씨를 선정했다. 화랑은 지난해 6월 국내유수의 미술전문지를 통해 요강을 발표했고 이에 57명의 작가가 응모했다. 이들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정준모·김용대(큐레이터)·김영호(현대미술사가)·김복기(미술전문기자)·문인수·문범(작가)씨 등 국내미술계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30∼40대 심사진이 숙고끝에 결과를 냈다. 다양한 실험적 작업으로 대상에 뽑힌 여성작가 문씨는 오는 8월 박영덕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지며 계속되는 작가활동에 이 화랑의 지원을 받게 된다. 이례적으로 「뉴 프리미티비즘」이란 다소 어렵고 관념적인 주제를 내세운 공모전 「뉴 프리미티브 아트 ’96 대상」의 탄생은 주최측인 「미술세계」가 미술전문지로서 국내미술계 속에 그 권위를 키우기 위한 전략의 소산. 평면·입체·설치 등 현대미술의 세 주요장르에서 인물을 찾아 평면의 권정찬(42·한국화),입체의 강용면(39·조각),설치의 이환(44)씨를 뽑았다. 이 작가들의 선정에는 「우리문화의 시원과 원시주의 미술가치를 검증하고 그것이 우리 현대미술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으며 작가개인의 독창성 구현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까」란 점이 전제됐다.지난 88년 올림픽개최 이후 「한국성」이란 주제와 관련된 작업을 선보인 80여명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박용숙·김인환·김진엽씨 등 미술평론가들과 권상릉 한국화랑협회 회장등 미술계 인사들이 오랜 검토작업을 거쳐 지명한 이들은 오는 3월과 6월,9월 세차례에 걸쳐 모란미술관,조선화랑 등에서 발표전을 갖는다. 주최측은 「뉴 프리미티비즘」을 구현하는 작품전 기회부여와 함께 올 1년간 작품활동비로 1명당 5천만원씩과 함께 앞으로 5년간 전시활동과 해외활동에 대한 지원을 하게 된다. 두 공모전은 여타 공모전들과 달리 「시상」의 의미를 강조하기보다 선정작가들의 향후 지원을 자신있게 내놓고 있다.
  • 1995년에 사라진 별들

    ▷국내◁ ◎전 국무총리 진의종씨 해방후 상공부차관과 한전부사장을 거쳐 8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10대 선거에 낙선한뒤 10·26 이후 보사부장관으로 입각.11·12대 민정당의원으로 당선된뒤 대표위원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의학박사 장기려씨 지난 25일 서울 백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별세한 「한국의 슈바이처」.서울대·가톨릭대 의과대학교수를 역임했으며 68년 영세민을 위한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했고 79년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민법학자 안이준씨 지난 3월19일 서울 중앙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 향년 65세.안교수는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뒤 경희대교수로 재직했으며 민사법학회장을 지냈다.주요 저서로는 민법총칙,채권법 등이 있다. ◎법조인 김성일씨 법관의 정도로 일컬어졌으며 10월31일 상오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60세의 나이로 순직.그는 서울법대를 졸업한 후 천안지원 판사를 거쳐 대법원 재판연구관,제주지법원장을 역임했다.간결한 판결문 정착에 애썼다. ◎전 대법관 김갑수씨 강직한 대법관의 대명사로 꼽혀온 변호사.1월26일 하오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향년 82세.김변호사는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나와 평양법원판사를 거쳐 법무·내무차관을 역임했고 지난 60년 대법원장 직무대리 시절 군사정권에 맞서다 법복을 벗었다. ◎충남방적 이종성 회장 지난 70년 부실기업인 국안방적을 인수한지 10년도 안돼 오늘날의 충남방적으로 키웠다.81년에는 국민당에 입당,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국민당의 부총재·전당대회의장 등을 거쳤다.공직자·기업인·정치인으로 거듭된 변신을 하면서도 성공을 거뒀다. ◎명창 김소희여사 우리 시대의 소리꾼.지난 4월17일 78세로 별세.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기능보유자로 우리 국악의 양갈래를 이루는 「동편제」소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국창」.그의 소리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로 제1회 한국국악대상,대한미국 문화예술상등을 수상했다. ◎추상조각가 문신씨 지난 5월24일 73세를 일기로 타계한 추상조각의 거장. 국내보다 세계화단에서 더 명성을 떨친 추상조각가로 90∼92년 미술의 본고장 유럽을 순회하며 가진 회고전에서 호평을 받았고 91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기사 훈장을 받았다. ◎작곡가 윤이상씨 세계적인 음악가이면서도 끝내 이역땅에서 유명을 달리 한 비운의 예술가.지난 11월4일 78세를 일기로 독일땅에서 서거한 그는 「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꼽힐 만큼 큰 족적을 남겼다.67년 동백림사건으로 「이데올로기의 멍에」를 쓰고 71년 독일에 귀화했었다. ◎작곡가 길옥윤씨 지난 3월 17일 68세로 별세한 우리 가요계의 대표적인 작곡가. 대표작으로는 「서울의 찬가」 「이별」 「빛과 그림자」 「4월이 가면」. 가요생활 50년을 통해 작사·작곡·편곡한 노래가 3천여곡이 넘는다. 서울 세종로공원에 「서울의 찬가」 노래비가 건립됐다. ◎소설가 김동리씨 지난 6월 17일 82세로 별세한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60여년 작품활동을 통해 「무녀도」「황토기」「사반의 십자가」「을화」등 1백여편의 장·단편소설을 남긴 현대문학의 증인.서라벌예대 교수,한국문인협회장을 역임했다. ◎레슬링선수 송성일씨 위암으로 1월29일 타계한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1백㎏급 국가대표선수. 자신의 몸에 암세포가 번지는 것도 모른 채 위암으로 투병중인 어머니를 걱정하며 혼신의 투혼을 발휘,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배구선수 김병선씨 대학졸업을 불과 4일 앞둔 2월21일 심장마비로 숨진 남자배구의 큰 별. 2m의 장신으로 성균관대학 1년 때부터 부동의 국가대표 센터로 활약하며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데 주역을 담당했다. ◎경제학자 고승제씨 함남 출신으로 학술원회원을 지낸 원로 경제학자.일본 릿교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서울대·고려대·연세대 교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한국경제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대림창업주 이재준씨 지난 39년 대림그룹의 모태인 부림상회를 세워 목재업과 건자재업에 진출한뒤 한평생 건설 외길을 걸어왔다.한국전쟁후 복구특수를 활용해 기반을 다졌고60년대 중반부터 해외건설사업에 주도적으로 나섰다.지난 88년 장남인 이준용 대림그룹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겼다. ▷국외◁ ◎반전기수 풀브라이트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의 설립자이자 베트남전 당시 「권력의 오만」을 출간,반전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인물.지난 2월10일 워싱턴 자택에서 90세로 타계했다.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맹비난,미군의 베트남철수에 기여했다. ◎전 일 총리 후쿠다 지난 7월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그는 대장상과 외상 및 자민당 간사장을 역임한 뒤 76년 미키 다케오 전총리에 이어 67대 총리로 취임,중국과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고 도쿄국제공항 개항등 현안을 처리했다.그는 86년 중의원 14선을 역임한뒤 90년 정계에서 은퇴했었다. ◎미 언론인 레스턴 미국 언론인들의 최고상인 퓰리처상을 두번이나 수상하는등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언론인중의 한 사람.지난 12월6일 워싱턴DC의 자택에서 암으로 숨졌다.그는 뉴욕타임스에서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제임스 레스턴 칼럼」을 연재,필명을 떨쳤다. ◎중 실용주의거두 진운 중국의 최고실력자 등소평과 함께 모택동사후 중국정치를 요리해온 인물.지난 4월10일 노환으로 90세에 사망했다.모택동으로부터 「당내 제일의 경제통」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50년대부터 실용주의 경제노선을 지향,모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중동평화 상징 라빈 지난 11월4일 텔아비브에서 중동평화협상 지지집회에 참석중 극우파학생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그는 군생활 28년을 거치는 동안 아랍세계와의 6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었으며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모색한 평화노력으로 9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케네디 모친 로즈 1월 1백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그녀는 19 14년 조지프 페트릭과 결혼,케네디가와 인연을 맺은후 대사의 아내로서,대통령과 두 상원의원의 어머니로서 최상의 영광을 누렸으나 9명의 자녀중 두명의 아들이 총탄에 목숨을 잃는 암살의 비극을 겪기도 했다. ◎전 영국총리 윌슨 60년대와 70년대초 영국 노동당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으며 79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그는 29세때 하원에 진출한뒤 2년후 무역장관으로 취임해 최연소 입각기록을 세웠다.64년 총선에서 승리한뒤 총리 재임기간동안 줄곧 미국의 베트남 파병요청을 거부하고 반전무드를 조성해 영국노동당 시대를 주도했다. ◎전 일 부총리 와타나베 지난 9월 72세를 일기로 사망한 그는 『한일합방은 원만하게 체결됐으며 36년간 통치했지만 식민지 지배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는 망언을 남긴인물.63년 고향에서 중의원에 당선된이래 대장상·당정조회장등 요직을 거쳤고 대북한 쌀지원 협상에서는 막후조정을 벌였다. ◎영국시인 스펜더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자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지난 7월 86세로 타계했다.그는 20세기 영국의 인도주의적 사상을 대표한 강력한 자유주의적 운동을 펼쳤으며 30년대 비평가들로부터 이 시대의 가장 저명한 3인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고의 양심 질라스 공산주의의 모순을 비판한 저서 「새로운 계급」으로 유명한 티토치하 유고의 대표적 반체제인사.83세를 일기로 4월20일 심장병으로 사망.부통령에 올라한때 티토의 후계자로 지목되기까지 했으나 공산체제에 염증을 느껴 반체제 이론가로 변신했다. ◎백신개발 선구자 소크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해 인류를 불구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킨 의료계의 선구자.80세를 일기로 지난 6월23일 사망했다.뉴욕대학 의학부를 졸업,면역학및 세균학을 연구했으며 「소크백신」개발 후에는 샌디에이고 소크연구소에서 다발성 경화증과 암연구에 몰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