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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원로화백 하반영씨, 80여점 2억 상당 선뜻

    80대 원로 화가가 결식아동과 생활이 어려운 국가유공자들을 위해 수억원대의 미술작품을 잇따라 내놓아 화제다. 전북 화단의 원로 하반영(河畔影·82·익산시 동산동 세경아파트)화백은 최근 상이군경회원 등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써달라며 자신의 그림 80여점을 상이군경회 등 익산지역 보훈단체에 내놓았다.그의 작품은 호당 평균 50만원씩 유통돼 기증작품은 시가 2억원대에 이른다. 그가 이번에 그림을 기증한 이유는 이 지역 보훈단체들이 시로부터 옛 신동사무소 청사를 보훈회관으로 사용하도록 허락받고도 건물 내부 보수작업을할 돈이 없어 입주조차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상이군경회 익산시지회(회장 卓敬律) 등 이 지역 3개 보훈단체들은 이에 따라 보훈회관 입주에 맞춰 오는 29일부터 한달 동안 보훈회관 건물에서 ‘국가유공자 돕기 하반영 화백 작품전시회’를 열 계획이다.국가유공자도 돕고미술 애호가들에게 값싸게 그림도 공급한다는 취지에서 시중보다 60∼70% 싼 값에 그림을 판다. 그는 지난해 말에도 결식 어린이를 돕기 위해 작품 50점을 기증한 바 있다. 하화백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북미술대전과 한국현대미술대상전 심사위원을 맡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5회)-문학평론가 金宇鍾씨

    “칸트도 ‘순수이성비판’에서 말하기를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이라고 했다.아무리 직관으로 아름다움에 통하는 시라 하더라도 거기서 시인이진정 무엇을 호소하려 했는지 그 개념이 빠져 있다면 그 시는 맹목의 시,동공이 빠져 있는 시,알맹이가 없는 시이다.그러므로 순수문학은 그 작법의 제1장 제1절부터가 진정한 예술정신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金宇鍾씨(70)가 1965년 일본의 교포잡지 ‘한양(漢陽)’지에 발표한 ‘순수의 자기기만’이란 글의 한 대목이다.문학은 현실문제에 어떻게대응할 것인가.60년대 순수-참여논쟁의 중심에는 늘 金씨가 있어 풍요로웠고 든든했다.그에게 순수문학은 “겉볼상만 깨끗한 매춘부의 문학이요 도금(鍍金)문학이요 페인트칠 문학”이었다.그는 “순수의 성벽을 허물고 민중의 광장으로 뛰쳐나오라”고 외쳤다.그러나 그의 주장은 애당초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60년대 순수문학에 대한 비판은 그를 문단의 미운 오리새끼로 만들었다. “순수비판과 참여운동은 60년대 초반에는 ‘현대문학’지를 중심으로 전개됐습니다.그뒤 60년대 중후반 ‘창작과 비평’ 등이 나오면서 이 운동은 한층 확산돼 갔지요.초기단계에는 어려움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당시 문단은 순수문학의 독천장이었어요.한번 이단자가 돼 고립되면 발표지면도 얻기 어려웠지요” 金씨는 지난 57년 ‘현대문학’에 ‘은유법논고’와 ‘이상론’이 趙演鉉선생에 의해 추천되면서 등단했다.‘현대문학’은 처음부터 순수문학을 표방했다.그가 비록 ‘현대문학’을 통해 평단에 나왔지만 그 지면을 통해 순수문학 타도를 외치기는 곤란한 일이었다.‘한양’지에 글을 발표하게 된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유신체제를 탄생시킨 朴정권은 문인탄압의 구실을 찾고 있었다.그러던중 문인 몇몇을 ‘한양’지와 연결시켜 이른바 ‘문인간첩단사건’을 만들어내게된 것이다.74년 2월 5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서울을 거점으로 한 ‘문인 및 지식인 간첩단’을 적발,李浩哲(43·소설가) 任軒永(34·문학평론가) 金宇鍾(45·경희대교수) 鄭乙炳(40·소설가) 張秉禧씨(필명 張伯逸·41·문학평론가) 등 5명의 문인을 반공법 위반 및 간첩혐의로 구속했다”고 발표했다.구속된 5명의 문인은 북한 노동당 재일공작지도원 金基深에 포섭돼 문단·언론계 등의 동태를 보고하고 반정부 활동을 선동하는 작품활동을 해왔다는 게 혐의 내용이다.한편 金基深은 49년 북한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62년 민단에위장입적한 뒤 ‘한양사’란 회사를 세워 일본에 오는 문인·학자들을 포섭해왔다는 것이다.‘한양’지는 바로 金基深씨를 발행인으로 한 국문(한글)월간 종합지였다. 金宇鍾씨에 따르면 ‘한양’지는 1973년까지도 주일 한국공보관에 전시돼있었으며 국내에도 정식으로 수입·배포되던 잡지였다.정부기관이나 민단측에서도 이 잡지를 ‘불온’으로 문제삼은 적은 없었다.‘한양’은 구속된 5명의 문인들뿐 아니라 한국의 각계 인사들이 전부터 기고해오던 잡지로 불온서적으로 낙인찍은 것은 구실에 불과하다는 게 金씨의 설명이다. “‘한양’지는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했습니다.남한의 사회상과 정부시책을 비판적으로 본 측면이 있긴 했지만 그것이 곧 반국가단체의 위장출판물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될 수 없어요.그럼에도 당국이 무리하게 기소를 감행한것은 피고인들이 73년 11월 문인 60여명의 연명으로 된 개헌요구 성명에 참여했기 때문이며 지식인 사이에 그런 개헌운동의 확산을 막아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당시 검찰당국은 ‘한양’지의 자금 출처가 조총련쪽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그렇게 볼만한 증거는 찾기 힘들다.이에 대해 金씨는 金基深씨가 경영하는 ‘한양원’이라는 음식점에서 나오는 수익과민단계의 협찬광고 등이 그 재원이었다고 증언한다. ‘문인간첩단사건’으로 내몰린 5명의 문인들은 결국 검찰 발표에 앞서 73년 12월 투옥됐다.金宇鍾씨의 회고.“감옥에 들어가면서 이브 몽탕이 주연한 프랑스영화 ‘생사의 고백’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주인공은 억울하게스파이 누명을 쓴채 법정에서 진술하는 연습까지 강요당하지요.그는 텔레비전에 생중계되는 공개재판에서 할 수 없이 스파이임을 자백한 뒤 사형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제 경우 영문도 모르고 체포된 뒤 숱한 반증자료들을 제시했지만 무죄언도를 받지는 못했습니다.결국 몇개월의 형을 산 뒤 74년 6월집행정지로 풀려났습니다” 출옥되자 金씨는 경희대 국문과 교수직에서 강제휴직됐다.이어 76년 해직됐다.80년 덕성여대 국문과 교수로 취임하기까지 6년동안의 세월은 소태보다쓴 것이었다.그 시절 그는 피폐한 심신을 추스리기 위해,아니 생계를 위해그림 그리는데 몰두했다.“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나가 조개나 잡겠다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외려 깨어진 뱃조각을 주워 모아더 큰 고기를 잡겠다는 오기가 솟더군요.그때 그린 그림들은 모두 분노의 시절 제 마음의 무늬들입니다” 金씨의 삶의 자취는 75년에 나온 에세이집 ‘그래도 살고픈 인생’(학진출판사)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한낱 수상집에 불과하건만 유신당국은 이 책을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금서목록에 올렸다.“판금조치가 된 이유를 알 수 없어요.살풍경한 감옥의 일상을 그린 글 ‘옥중인생’이 당국의 눈에 거슬렸는지…” 엄혹한 ‘겨울공화국’에서도 金씨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그를 부축했다.그때의 심경을 그는 글로 남겼다.“비단실을타고 봄의 정액이 땅속으로 스며든다.얼어버린 대지는 어느새 봄을 잉태하고…” 그래서 그에게 인생은 ‘그래도 살고픈’ 것인지 모른다.서슬퍼런 감옥의 한평 쪽창 어둠 속에서도 그는 밝게 타오르는 촛불이었다.
  • 하버드大 연구교수로 가는 시인 高銀

    시인 高銀(66)씨가 미국 동·서부의 대표적 명문인 하버드대학과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학에서 1년간 한국시 등을 강의하기 위해 20일 출국한다.하버드대 교환교수로 가는 부인 이상화 중앙대교수,딸과 함께다. 미국으로 떠나는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간다.그는 미국 동부의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사색에 빠지고 싶었다고 말했다.그러나 그 꿈은 접어두었다.할일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시도 쓰고 강의도 해야 하고^274.세계의 정보중심지인 미국에서 세기의 바뀜을 맞으며 동아시아의 새로운 가치도 모색하고 한국도 객관적으로 다시 볼 생각이다. 그는 13일 경기도 안성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센터인 옌칭연구소의 에드워드 베이커 부소장 초청으로 하버드대 연구교수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베이커 부소장은 89년 옌칭연구소 초청으로 하버드대에서 시낭송회와 문학강연을 했을 때 처음 만난 후 그의 시에 많은 관심을보여 왔다. 그는 “하버드대 연구교수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버클리대 한국학 센터의루이스 랭커스터 교수도강의를 요청해 버클리대에서도 초청교수로 강의하게 됐다”고 말했다.버클리대에서는 지난 97년 말 미국의 유명한 시인 로버트하스와 원로 시인 게리 스나이더와 함께 두번째 영어번역시집 ‘Beyond Self(자아를 넘어서)’ 시낭송회를 갖고 문학강연을 한 바 있다.하스씨는 특히그의 시와 시세계를 소개하는 글을 98년 1월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해 미국시단에서 고은 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버클리대에서는 2월부터 7월까지 한학기만 강의한다. “전통시를 배경으로 현대시론을 강의할 예정이다.시는 언어의 꽃이다.한국시가 조금이라도 미국에 소개되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그의 말에는 미국사람들이 한국 시를 새롭게 인식하고 많은 관심을 갖기 바라는 마음이 짙게배어 있었다. “40년간 시작활동을 해왔다.그동안의 작품활동을 되새겨 보고 다른 단계로 진입하고 싶다.미국에 있는 동안 본격적으로 새로운 시세계를 찾아 작품활동을 하고 싶다.하버드대에서는 과제도 많아 작품활동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된다.1년동안 3권의 시집등 4권의 책을 내기로 하버드대와 약속했다.”하버드대는 또 4월15일을 ‘고은 시 낭송의 날’로 정하고 그의 시를 평가하는행사를 한다. 옌칭연구소는 동북아시아와 미국문명의 만남을 많이 연구해 왔다.그는 “옌칭의 이러한 전통 속에서 한국이 동아시아와 세계에서 어떤 얼굴을 가져야하는 가를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7회)-일본문학보국회원 장혁주

    한국 문학사전보다는 일본 현대문학사전에 더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 작가 장혁주는 식민지 시대 때 일본문단으로 등단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문명을 떨 쳤던 인기작가였다.1932년 ‘아귀도’(餓鬼道)란 사회성 짙은 작품이 일본의 유명한 ‘개조’(改造)지 제5회 현상공모에 당선된 후 그는 일·한 두 나라 에서 두 언어로 민족의식이 짙은 작품활동을 하여 금서 조처를 받는 등 아나 키즘적 경향이 짙은 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1905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장은중(恩重)이고,창씨개명은 노구치 가쿠주(野口赫宙),일본인으로의 귀화명은 노구치 미노루(稔)이다.그가 쓴 단편 ‘다른 풍속의 남편’은 일인칭 소설로 ‘나’는 작가이다.모국(한국) 에서 간통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피신,본처와 헤어지고 일녀 게이코와 결 혼하여 겪게 되는 서로 다른 풍속의 부부생활 중 아내로부터 온갖 수모와 학 대를 견디면서도 일본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각오를 다지는,말하자면 단순한 ‘친일’의 차원이 아니라 혈연적인 일본인화의 표상이다.자전적 요소가 짙 은 이작품처럼 그는 일본문단으로 등단한 이후 일녀 노구치 게이코(野口桂 子)와 결혼,아내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는 ‘무지개’ 등의 작가에다 문단 페스트균의 논쟁 유발자로 여전히 장혁주란 이름으로 남아있는 노구치의 친일행적은 임종국이 ‘친일문학사’에서 간략히 밝혔고,광복 이전 일본에서의 활동은 하야시 고 지(林浩治)의 ‘재일 조선인 일본어 문학론’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숱한 친일문인을 제치고 새삼 장혁주를 거론하는 까닭인 즉 그가 친일을 위하여 조선문인보국회가 아닌 일본문학보국회 회원으로 맹활약했었기 때문이다. 두 저서가 다 광복 이전의 ‘친일’행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해방 후의 활동은 묻혀 있었는데,장혁주가 일본인으로 귀화했던 1952년 전후에 취했던 그의 태도는 가히 충격적이다.그는 구태여 해방된 조국을 버리고 일본으로 귀화한 이유를 “한국 조야가 자기를 환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반역자 취급 을 하고 있기 때문”(조선일보 1952.10.14)이라고 밝혔다. 귀화 직후인 10월 19일부터 28일까지 열흘 동안 일본 잡지 ‘부인구락부’ (婦人俱樂部) 특파원 자격으로 한국전쟁을 취재한 그의 행위를 ‘서울신문’ 은 ‘민족반역자 장혁주 변장가명으로 불법입국’(1952.11.2)이란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수난의 조국을 배반하고 일신의 영화를 누리기 위하여 스스로 일본국에 귀화한 민족의 반역자 장혁주가 .....그 더러운 발자국을 유엔 종군기자라는 복장에 감추어 극비리에 이 땅에 들여 놓고 다시 돌아갔다는 사실이 일본의 신문보도로써 이제 밝혀졌다.....그는 10일간이란 체류 기간에 서울을 비롯 하여 그의 더러운 눈으로 본 한국의 그릇된 일편을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 에 게재케 하여 결국 일본에 귀화함으로써 왕도낙토(王道樂土)를 얻었다고 술회하였다......그는 이번 여행을 극비밀리에 계획하여 유엔군 병사의 복장 을 빌려 입고 심지어는 변장을 위하여 검은 안경에 안대까지 하여 유엔종군 기자의 패스포트로써 이 땅의 눈을 속여 가면서 온갖 곳을 돌아 다녔다는 것 이다.” 이어 ‘서울신문’은다음날 ‘장혁주 등의 비국민 행위를 규탄’이란 기 사에서 “친일작가 장혁주가 자기의 과거를 돌아보아 그 잘못을 회개하지 못 하고 아직도 8.15 해방 전과 꼭 같은 죄과를 범하고 있다”고 서두를 쓴 뒤 “조국에의 반역을 감행하고 조국을 팔아 외국인의 안목을 현혹하게 하며 민 족의 위신을 떨어뜨리게 하는 일은 우리가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위정당국 은 하루 빨리 이 자를 체포해 오게 하여 국민의 엄정한 심판을 받게 해야 된 다”고 역설한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행동했던 재능있는 이 작가의 초상은 역사와 문학을 다시 진지하게 생각토록 만들기에 충분한 자료가 될 것이다. 任軒永(문학평론
  • 원로 서양화가의 ‘어린이 사랑’

    ◎하반영옹 결식아동 위해 원불교에 작품 50점 기증 전북 화단의 원로 河畔影옹(81)이 최근 결식아동을 위해 써달라며 50여점의 애장품을 원불교 재단에 기증했다.원불교 산하 사회복지법인인 삼동회는 이에 따라 27일까지 익산시 중앙동 롯데리아 3층 전시실에서 결식아동 돕기 기금마련을 위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애호가들에게 값싸게 그림을 공급하라는 河옹의 뜻에 따라 4호짜리는 호당 20만원,6호는 30만원,20호 짜리는 50만원씩에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이 시중에서 호당 50만원을 호가하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이다.전시작품은 그의 전공인 유화와 동양화,서예작품 등이며 크기도 4∼20호로 다양하다.河씨는 지난 37년 조선총독부 주최 선전(鮮展)에서 ‘나팔꽃’으로 최고상,프랑스 파리 공모전 금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으며 80을 넘긴 고령에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河씨는 “아이들이 끼니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 IMF 한파로 ‘꽁꽁’/국내 미술시장 ‘봄은 언제 오려나’

    ◎수요급감으로 마비상태 전업작가들 생계걱정까지/주요화랑가 퇴락현상 기업 지원도 갈수록 줄어 국내 미술시장이 혹독한 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80년대말 부동산시장의 활황과 더불어 호경기를 맞았던 미술시장은 90년 말을 부터 서서히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으나 IMF이후의 불황은 유례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부르는게 값이던 유명·작고·원로작가들의 작품을 포함,대부분의 미술품 가격이 IMF이전에 비해 많게는 50%까지 내렸으나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예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이처럼 미술품 수요가 급감하자 미술시장이 마비 상태를 보여 특히 전업작가들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대학교수를 겸직하는 작가와 달리 전업작가들은 작품판매로만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환율상승도 작품활동을 어렵게 만든다.오일 등 대부분의 미술재료가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재료비는 지난 연말에 비해 40%까지 올랐다. 한국화랑협회 권상능 회장(조선화랑 대표)은 “화랑 경력 30년에 이런 극심한 불황은 처음”이라며 “대부분의 화랑이 일손을 놓고 있는데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숨지었다. 이같은 불황은 미술 지형도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미술의 거리’ 인사동에 버금갈 만큼 80년대 주요 화랑가로 급부상한 서울 강남지역이 퇴락하는 양상을 보인다.청담동의 박영덕화랑만이 꾸준히 전시회를 열뿐 이일대의 전시활동을 주도한 주요 화랑들이 개점휴업 상태이다. 인사동 화랑들도 마찬가지다.10년 전통의 화랑 사계가 카페로 영업형태를 바꿨고 샘터화랑,갤러리 현대,가나화랑 국제화랑 등도 카페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부족한 재원을 보충하고 있다.또 젊은 작가 발굴에 주력해온 갤러리2000도 간판을 내렸으며 동아건설이 지원해온 동아갤러리도 곧 미술사업에서 손을 뗄 것으로 전해졌다.벽산그룹의 갤러리 아트빔도 올해초 폐관했다. 이에 따라 미술품 가격도 심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 시인 경무관 後廣문학상 받는다/全龍燦 치안정책보좌관

    ◎92년 데뷔… 지난 5월 ‘벼랑위의 깃발’ 출간 행정자치부 장관 치안정책보좌관인 全龍燦 경무관(54·시인)이 제6회 후광 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게 돼 화제다. 후광 문학상은 월간 ‘우리 문학’이 93년 金大中 대통령의 아호인 後廣을 빌어 작품활동이 왕성하고 문학계에 기여한 공로가 큰 문인들에게 주는 상이다. 시상식은 오는 25일 갖는다. 서울경찰 문인회장이기도 한 全경무관은 92년 문단에 데뷔해 꾸준한 작품활동을 해왔다. 지난 5월에 ‘벼랑위의 깃발’이라는 시 모음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全경무관은 “생활의 틈새를 이용해 한글자씩 모으며 참본성을 찾으려는 작은 정성을 쏟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 화가 墨昌善씨 작품 70점 서울동부署 기증

    ◎경찰 정서순화에 도움됐으면…/“내 권유로 경찰투신 처남 13년전 교통사고死/87년부터 군경에 1,800여점 진혼의 기탁”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경찰관들의 정서순화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화가 墨昌善씨(55)는 지난 8일 온 정성을 들여 그린 산수화 화조도 풍속화 맹호도 서예 등 70점(6,700만원 상당)의 작품을 서울 동부경찰서에 기증했다. 墨씨는 지난 87년부터 지금까지 양구·파주·강화·부산진경찰서와 일선군부대,재활원 등에 1,800여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시가로 10억여원에 이른다. 墨화백은 “저의 권유로 경찰에 투신했던 막내 처남이 13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경찰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작품을 기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악계의 거목인 명창 墨계월 선생(인간문화재 53호)의 친조카이기도 한 墨화백은 현재 전남 강진에서 도자기 및 서화 등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종합미술대전 특선을 비롯,한국전통예술대상전 동상,한국미술문화대상전 대상,한국서화대전 최우수상등을 수상한 중견 화가이다.
  • 합동청사에 그림 구경 오세요/전산교육과 金景姬씨 전시회 구상

    ◎비구상 서양화 60여점/딱딱한 분위기 쇄신 한몫 정부 세종로청사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을 오른쪽에 끼고 청와대쪽으로 가자면 왼편에 정부합동청사가 있다.‘수용소’라는 별명처럼 정부청사 가운데도 가장 낡고 칙칙한 건물에 속한다.이곳에 있는 정부전산정보관리소 전산교육장이 화랑으로 탈바꿈했다. 전시공간은 3층 복도와 휴게실.7일 시작된 전시회에는 60여점의 비구상 계열 서양화가 출품됐다.陰賢貞·朴顯珽·吳惠媛씨 등 서울산업대 응용회화과 대학원 출신으로 최근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3인의 소장화가가 참여하고 있다. 전시회가 성사되기까지는 전산교육과 金景姬씨(36)의 역할이 컸다.그녀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그림그리기를 배우면서 이 전시회를 구상했고,그 꿈은 곧바로 딱딱한 전산교육장의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방안을 찾던 魚允德 전산교육과장의 뜻과 맞아떨어졌다. 전시 작품은 앞으로 40일마다 바꿀 계획.프로화가뿐 아니라 그림에 취미가 있는 아마추어 공무원들의 그림도 적극 소개할 방침이라고 청사 전시회의 ‘큐레이터’격인 金씨는 밝혔다. 한편 李星烈 전산정보관리소장은 “청사 전시회는 공무원들에게는 새로운 문화환경을 만들어주고,젊은 화가들에게는 전시공간을 마련해주는 효과가 있다”면서 “합동청사는 물론 세종로청사에서도 전시회가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풍요… 재앙… 두 얼굴의 양쯔강

    중국의 양즈강이 지구촌의 눈실을 모으고 있다.6월12일부터 시작돼 2개월 이상 계속되고 있는 장마로 금세기 최악의 재앙이 우려되기 때문이다.양쯔강은 그러나 애물단지만은 아니다.중국인들에게는 ‘약속의 땅’이다.일용할 양식을 도맡아왔다.개혁과 개방정책 이후에는 중국산업의 요충지로 모습을 바꿨다. 뿐만 아니다.양쯔강은 중국문화의 모태였고 철학을 가르쳐 준 ‘스승’이기도 했다.내면세계의 풍요로움도 역시 양쯔강의 몫이었다. 중국 역사속에 서 재앙과 함께 삶의 자양분을 도맡아온 양쯔강의 ‘두 얼굴’을 조명해 본다. ◎중국인과 양쯔강/강 유역 180만㎢는 ‘약속의 땅’/비옥한 토지 中 전체 곡물량의 40% 생산/홍수땐 ‘천문학적 피해’ 두려움의 대상 양쯔강은 중국인들에겐 ‘어머니’다.일용할 양식을 주고 때로는 준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주변의 180만㎢ 비옥한 토지는 중국인들에게 먹고 살 식량을 대주었고 양쯔강은 평원에 물을 공급해 준다.중국 전체 논가운데 70%가 주변에 자리하고 있고 곡물의 40%를 생산한다.인자하고 자상한 어머니같은 양쯔강의 모습일테다. 양쯔강은 내면세계도 살찌워 줬다.특히 도도한 양쯔강의 물결이 쉬어가는 둥팅(洞庭)호는 시성(詩聖) 杜甫 등이 작품활동의 무대로 삼았던 중국 문학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양쯔강은 인자하기만 한게 아니다.여름철이면 수마(水魔)로 돌변한다.스스로 키운 인명,재산,유적까지 가차없이 앗아간다.중국인들은 사랑하는 만큼 양쯔강을 두려워한다. 두 얼굴을 지닌 양쯔강을 어떻게 다스리느냐는 고대이래 중국의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그리고 치수(治水)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요즘 홍수와 싸우면서 밀리는 물줄기를 끝내 막기보다는 피해가 적은 곳에서 제방을 폭파해 흐름을 열어주려는 것은 바로 치수 철학의 한 모습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양쯔강 중·하류지역/중 내륙 경제개발 거점 부상/풍부한자원·노동력 공업도시 여건 충족/물류수송 쉬워 내륙지역 연계개발 효과 상하이(上海)에서 충칭(重慶)으로 이어지는 양쯔강 중·하류는 예나 지금이나 중국 경제의 심장부다. 개혁과 개방을 표방한 78년부터 고도성장을 이뤄낸 중국인들은 유역을 하나의 공업단지로 개발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중국 국가계획위원회의 ‘長江(양쯔강)개발전략’이 그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양쯔강을 흔히 용으로 비유해 왔다.상하이가 용의 머리가 ‘長江개발전략’은 유역의 풍부한 전력과 노동력,그리고 자원과 축적된 기술을 양쯔강의 수로를 통해 하나로 묶어 거대한 공업단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륙지역의 무한한 인적,물적 자원을 활성화하고 유역 도시들을 거점으로 경제발전을 내륙 깊숙한 지역으로까지 확대해 나가겠다는 생각이다.육상교통으로는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는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의 부족을 물길의 활성화를 통해 뚫어보자는 계산도 깔려있다. 양쯔강 유역의 핵심지는 후베이(湖北)성의 우한(武漢).용의 배에 해당하는 곳으로 ‘장강 개발전략’의 선도 도시가 된다.충칭과 난징도 포함시켜 강철·자동차산업을 일으키고 과학기술 연구단지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중국 대륙을 남북으로 가로 지르는 양쯔강 주변지역을 발달한 연해지역과 결합시켜 개발한 뒤 발전효과를 구이저우(貴州),쓰촨(四川),광시(廣西),칭하이(靑海),간쑤(甘肅) 등 8개성 내륙 빈곤지역까지 확산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대홍수 원인·역사/서부 고원지대 폭설이 화근/비 800㎜ 쏟아져 제방 버팀력 한계/31년 14만여명 숨져 피해규모 최대 양쯔강의 역사는 범람의 기록들이다.해마다를 예외없이 크고 작은 홍수들이 꼬리를 물었다.특히 양쯔강의 홍수는 규모가 방대해 피해 또한 엄청나다. 20세기에 들어서만 기록으로 남을 엄청난 대홍수가 서너차례나 있었다.31년과 54년의 대홍수가 대표적인 사례다.31년의 대홍수 때에는 무려 14만여명이 숨지고 3,000만명의 이재민을 냈다.54년 대홍수에서도 3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1,000만명이 살던 집을 떠나야 했다. 올해의 홍수도 지독하다.54년 대홍수이래 최악의 대재앙이다.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것으로 보인다.예년보다 비가 훨씬 많이 내렸기 때문이다.양쯔강 유역의 여름철 월 평균 강수량은 300㎜ 정도.올해는 3배에 가까운800㎜ 이상이 쏟아지면 양쯔강의 수위를 높였다. 7월21일과 22일 이틀동안 후베이성의 우한(武漢) 일대에 무려 400㎜를 쏟아지며 홍수는 절정을 맞았다.자그마치 4,600여곳의 제방이 붕괴 위험에 처했다. 중국 정부는 홍수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3일에는 후베이성에서 제방 11곳을 폭파하는 등 극약처방을 내리기도 했다.모든 지역을 홍수로부터 방어하고 지킨다는 전방전수(全防全守) 방침을 철회했다.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공업지대인 대도시나 하류 지대를 지키기 위해 농촌지역의 제방을 폭파시켜 물길을 돌리기로 했다. 중국 기상국은 올겨울 칭하이(靑海)성과 티베트고원에 30년이래 가장 많은 눈이 쌓인게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서부 고원지대에 적설량이 많으면 동아시아 계절풍의 온난한 대기가 북상하지 못하고 한랭기류와 만나 많은 비를 뿌린다고 설명했다. ◎‘江속의 만리장성’ 三崍댐/홍수조절·전력생산 등 다목적 기능/총저수량 393억㎥ 소양댐의 14배 양쯔강에 만들고 있는 싼샤(三崍)댐은 현대판 만리장성 쌓기에 비유된다. 도도한 강물을 막는 역사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로 홍수를 막고 전력을 얻는 명실상부한 다목적 댐이다.중국의 야심찬 양쯔강유역 개발계획의 핵심사업이다.서부 내륙지역에 부족한 전력과 물의 공급원이다 될 것이다. 공사 현장은 양쯔강 중류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현 싼더우핑(三斗平). 이창에서 서북쪽으로 40㎞쯤 떨어져 있다.93년 12월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10월에 물살을 막는 차단벽을 설치하는 등 1차 공정을 마쳤다.지금은 본격적인 댐건설에 돌입했다. 2003년까지 댐건설 공사를 마무리지으면서 제1호 발전기도 가동시킨다.2009년까지는 1기당 70만㎿의 발전용량을 가진 26개의 수력발전소를 완공한다는 계획이다.공사가 완공됐을 때의 발전량은 1,820만㎿.핵발전소 18개의 발전량과 같은 규모다.세계최대규모인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이타이푸댐을 앞서게 된다. 댐은 높이 175m,길이 2,300m.총 저수량은 393억㎥로 소양강댐의 13.6배.저수지는 너비 1.1㎞에 길이가 644㎞. 그러나 싼샤댐 건설에 반대와 회의도적잖았다.댐 건설을 위해 120만명이 이주해야 했다.건설비용도 자그만치 500억달러.환경 파괴와 함께 지진 등으로 댐이 파괴됐을 경우 인류 최대의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양쯔강/커커시리산서 발원 총 길이 6,300㎞ 대륙 중심부 횡단 중국 대륙 중앙부를 횡단하는 가장 긴 강.총 길이가 6,300㎞로 유역면적이 180만㎢에 이른다.중국 사람들은 흔히 창장강(長江)이라고 한다. 발원지는 멀리 칭하이성(靑海省) 서부 커커시리(可可稀立)산맥의 남사면. 쿤룬(崑崙)산맥과 바예카라(巴顔喀拉)산맥의 남쪽,탕구라(唐古拉)산맥의 북쪽을 남동쪽으로 흐른다.여기서 다시 쓰촨(四川)성 서부와 시짱(西藏 티베트)자치구 경계를 지나 중국 심장부로 성큼 접근한다. 중·하류 지역에는 비옥한 양쯔평원이 발달,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둥팅호와 푸양호 등 곳곳에 유명 호수들이 자리하고 있어 관광명소로도 유명하다. 특히 하류지역에서는 잦은 범람을 막기이 위해 강 양쪽으로 2,700㎞의 제방을 덧붙여 쌓아 놨다.그러나대홍수를 막기에는 부족해 연례적으로 물난리를 치른다.
  • 폐교 문예산실로 거듭난다/창작 스튜디오로 활용

    ◎문화부 내년 시범설치/예술인 창작의욕 부축 폐교가 창작스튜디오로 활용된다. 문화관광부가 창작공간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가들에게 폐교 등 사장된 공간을 제공하기로 한 것. 문화부는 우선 내년까지 수도권과 충청권,영·호남권 등 권역별로 1∼2개소의 창작스튜디오를 시범설치한 뒤 이를 각 시도로 확대해나가는 한편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예술단체,민간기업이 추진중인 창작공간사업도 계속 지원할 방침이다. 창작스튜디오는 작품활동 위주의 창작공간과 전시 및 공연·강좌·세미나 등의 다목적 공간,인터넷 등 정보통신과 비디오 필름 서적 등을 갖춘 자료실,예술체험과 작품제작실습을 위한 학습체험공간,화장실·주방·숙박시설을 갖춘 휴게공간 등으로 꾸며진다. 이들 스튜디오는 3가지 유형으로,작가의 성향과 주민의 문화수요 등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다. A형은 회화실·판화실을 갖춘 평면조형 위주이고,B형은 목조형실·철조형실·단조실로 구성된 입체조형 위주,C형은 유리공예실과 도예실·금속장신구실 등의 창작공간을 갖춘다. 작품제작에 필요한 각종 기기와 기구,설비 등은 공통적으로 갖춰진다. 지금까지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문예단체가 농촌지역의 폐교에 창작실을 운영하고 있으나 시설과 장비 등의 미비로 제구실을 다하지 못했다. 창작스튜디오가 본격 운영되면 창조적인 작품활동의 산실이 될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소중한 예술체험 학습장으로,또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지역 문화예술의 교류장터로,주변 문화공간과 문화유적이 연계된 새로운 문화관광명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부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폐교 가운데 600개가 활용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창작스튜디오의 운영은 지자체에 맡기되 관리는 문화예술단체나 스튜디오 입주자들에게 위탁할 예정이다. 현재 문예진흥원이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창작스튜디오는 2곳. 충남 논산시 양촌초등학교의 장원분교,강화군 불은면의 신성초등학교 등에 설치돼 있다. 지금까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되어온 문화예술분야 투자는 도서관 박물관 문예회관 등 주로 주민 문화향수권 확대에집중돼 왔다. 그러나 이번 창작스튜디오는 생산자를 위한 즉,문화예술인들의 창작의욕 고취와 작품활동 여건 조성에 주력하면서 주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의 참여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는 지난 76년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미국의 비영리 미술공간을 모델로 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매년 4천여명이 활용하는 70여개의 창작스튜디오가 폐교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에도 3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인간’ 주제 40년 작업/중진 황용엽 개인전

    ◎고통이 있어 삶은 아름답다/우울한 색조 일관 초기화풍 탈피/아픈체험 잊은듯 관조의 美 넘실/무속이미지·민화 차용 독창성 구가 ‘인간’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40여년동안 작업해온 중진 서양화가 황용엽씨(67)가 15일부터 오는 8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화랑(735­8449)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황씨는 앙상한 인간형상과 그것을 둘러싸고 얽히고 설킨 선묘로 인간의 실존상황을 호소력있게 다뤄온 작가. 서구사조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내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면을 구축한 많지 않은 구상 작가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양출신의 실향민으로 6·25 동란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는 작가는 오랜기간 우울한 색조 속의 왜곡된 인간형상을 통해 고통스러운 삶과 존재의 한계 상황을 표현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년 사이 그의 작업에서는 이런 어두운 화풍이 조금씩 변모했다. 과거의 아픈 체험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관조와 고통 이전의 아름다웠던 삶에 대한 향수가 은은한 조형언어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이번 전시에서 이같은 경향의 근작들이 선보인다. 특유의 중첩된 선묘에 의한 화면의 밀도를 추구하며 무속적 이미지와 민화적인 형상을 구성적으로 적절히 응용,회화의 깊이와 독창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이번 전시작품의 특징이다. 우리 민족 모두의 서러운 삶의 역사적인 맥락과 작가 개인의 자전적인 삶의 조건들이 중첩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 그의 체험이 이제 보다 원숙한 예술작품의 형태로 그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그리움의 정서가 보는이들에게 커다란 공명으로 다가온다. 황씨는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미술학교를 중퇴하고 월남,홍익대 미대에서 수학했다. 화단에 데뷔한 후 어떠한 단체에도 관여하지 않은 야인적인 작가이지만 그는 개인전 발표를 통해 누구보다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며 지난 90년 조선일보사 제정 제1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95년 조선일보사 초대전 이후 3년만에 갖는 이번 전시회는 통산 20번째 개인전. 미발표 근작 40점이 전시된다. ‘어느 날’ ‘꾸민 이야기’ ‘삶이야기’ 등12호 미만의 소작 위주로 꾸며지는 이번 전시는 작품들이 주는 친근한 이미지를 통해 그의 예술세계를 보다 가까이서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 내정 高洪株씨

    ◎5·16때 망명자 아들 美 인권책임자 됐다/한국계 첫 예일법대 교수… 국제법 권위자/주미공사 지낸 부친 고광림씨 60년 망명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한국인 정치 망명자’의 아들이 미국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 자리에 오른다. 워싱턴 포스터는 3일 한국계 2세인 高洪株(44·미국명 해럴드 고) 예일대법대 교수가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에 내정됐다고 보도했다. 상원에서 인준을 받아 정식으로 임명되면 한국출신으로는 사실상 최고위의 미 공무원이 되는 셈이다. 82년 조지 워싱턴대를 시작으로 85년에는 예일대로 자리를 옮겼고 90년에는 한국계로서는 처음으로 정교수가 됐다.뉴헤이븐학파를 이끄는 국제법의 권위자로 국제인권연구소 소장직도 겸하고 있는 인권운동가. 하버드와 영국 옥스퍼드를 거쳐 하버드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대법관 해리 블랙먼의 서기로도 일했던 그가 인권운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高光林씨(89년 작고)는 60년 당시 주미 대사관 공사였다.5·16이 발발하자 공무원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선택한다. 가족들은 이국생활이 어려웠지만 학업에는 유달리 집념을 보였다.아버지 高씨와 어머니 全惠星씨(69) 그리고 4남2녀가 받은 박사학위만 무려 12개.형제들이 하나같이 하버드,예일,MIT 등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장녀 慶信씨는 서울의 중앙대 화학과,장남 京株씨는 보스턴 의대,차남 東株씨는 MIT 의대에서 교수로 있고 3남인 그와 차녀인 慶恩씨는 예일대 법대에서 남매교수로 일하고 있다.4남 定株씨는 화가로 작품활동과 함께 저술도 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인권단체들은 그의 발탁에 대해 “정치적 이유가 아닌 원칙에 따라 인권정책을 펼 수 있는 인물”이라고 반기고 있다.
  • 마크 트웨인 장편 완역본 출간

    ◎사실과 허구의 조화 ‘미시시피강의 추억’/유년기 체험 바탕 미 토속적 정서 그려 【金鍾冕 기자】 미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19세기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장편소설 ‘미시시피 강의 추억’(원제 Life on the Mississippi)이 두 권으로 완역돼 나왔다.태혜숙 옮김·중명출판사.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이 예언하고 소설가 윌리엄 딘 하우얼스가 즐겨 묘사하던 인물인 마크 트웨인.어느 비평가가 말했듯이 그는 ‘끝내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였는지 모른다.아니면 또 다른 비평가가 주장했듯이 ‘단점까지도 장점이 된 천재’였는지도 모른다.어쨌든 미시시피강 서쪽에서 태어난 최초의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미국정신의 다양성과 넓은 폭과 힘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트웨인은 1835년 미시시피 강 근처 미주리 주의 작은 마을 플로리다에서 태어났다.네살 때 그는 가족과 함께 해니벌이라는 곳으로 이주했다.해니벌은 세인트 루이스에서 80마일 떨어진 곳으로 미시시피 강과 외부 세계를 연결짓는 통로였다.원시적 자연이 아늑함을 안겨주는 이곳은 트웨인이 작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정서적 배경이 됐다.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미시시피 강을 “끔찍한 도랑”이라고 표현했다.하지만 트웨인에게 있어 이 강은 동맥(動脈)과도 같은 것이었다. ‘미시시피 강의 추억’(1883)은 ‘톰 소여의 모험’(1876),‘허클베리 핀의 모험’(1885)과 함께 미시시피 강을 다룬 3부작이다.‘미시시피 강…’은 소설형식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사실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허구를 섞어 넣은 일종의 역사기행문으로도 읽힌다.트웨인은 이 3부작을 쓰면서 유머작가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편이나 콩트양식에서 벗어나 장편형식을 수용,그가 관심을 가졌던 주제나 소재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이같은 변신에 성공함으로써 트웨인은 후세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다른 유머작가들과는 달리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트웨인의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먼즈.필명인 ‘마크 트웨인’은 원래 뱃사람들 용어로,안전수역을 나타내는 ‘두 길’을 의미한다.미시시피 강에서는 이 수심을 경계로 기선이 강바닥에 닿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고 한다.열두살 때 아버지를 잃고 인쇄공이 돼 뉴욕·필라델피아·키어커크 등지를 방랑한 그는 1857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4년동안 미시시피강의 수로안내인 노릇을 했다. 작가 트웨인은 남부 오지에서 태어나 서부와 북부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남부지역 문학을 미국문학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끌어올렸다.쿠퍼 이후 호손·에머슨·소로·멜빌 같은 북부 작가들은 미국적인 사상인 초절주의를 작품에 반영했다.그러나 쿠퍼와 같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초절주의는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만 맴돌았을 뿐이다.트웨인은 무엇보다 미국인의 시각으로 글을 썼다.미국적인 소재와 정서를 반영하면서 미국의 토착적인 면을 크게 부각시켰다.그렇지만 트웨인은 당대 미국 남부를 휩쓸던 영국의 낭만주의 작가 월터 스코트식의 수사적인 문어체나 과장된 언어는 사용하지 않았다.그의 작품에는 남부의 순진한 어린이와 서부의 무식한 개척민이 주인공으로,미국의 남북을 관통하는 미시시피 강과 그 주변의 도시들이 배경으로 등장한다.트웨인은 나중에 북부에 정착해 부유층이 거주하는 코네티컷 주의 하트포드에 살면서도 서부 개척민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이 ‘서부의 아들’은 1910년 75년간의 삶을 마감했다.
  • 화랑가 대규모 파격 경매 싸고 파란 예상

    ◎동숭갤러리­바람직한 거래 정착… 15개 화랑 동참 강행/화랑협회­중지 요청… 물의땐 제재조치 등 강경 대응 최근 잇따른 파격경매로 논란을 일으킨 동숭갤러리가 오는 8일과 22일 여러 화랑들이 동참한 가운데 실시할 대규모 경매를 둘러싸고 화랑협회가 중지요청을 한데 대해 주최측이 강행키로 하는 등 화랑가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특히 이번 경매는 종전 동숭갤러리만의 개인 화랑전 성격이 아니라 국내 활약상이 적지않은 15개 화랑들이 동참해 실내소품조각과 100호미만 그림·옥외 대형조각및 100호이상 1천호 미만 그림 경매를 두차례에 걸쳐 진행하기로 해 큰 파란이 예상된다. 심상치않은 분위기는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화랑협회 이사진이 이 경매가 현실적으로 적지않은 문제점을 노출했고 일반인들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는 지적에 따라 주최측과 참가화랑에 경매중지를 요청하는 공식문건을 전달하면서 불거진 것. 동숭갤러리측은 우리 미술품의 거품빼기 차원에서 바람직한 미술품 거래관행 정착을 앞당길 수 있는 행사라며 예정대로 경매를 진행하겠다는 회신을 협회측에 보냈다.이에따라 화랑협회는 일단 경매를 지켜본뒤 결과가 또다시 물의를 불러 일으킬 경우,긴급이사회를 소집해 제재조치 등 강경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파문은 크게 일 것으로 보인다.특히 미술계의 불황이 쉽사리 돌파구를 찾지못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같은 파격경매가 줄이을 전망이어서 협회와 화랑,화랑 상호간 갈등은 더욱 심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화랑협회의 입장은 경매자체에 대한 반대보다는 경매방식의 문제점에 따른 미술시장의 왜곡을 막아야 한다는 것.미술품 거래가 막혔다고 작가의 예술혼을 무시한채 파격적인 재고정리의 인상이 짙은 상거래를 자제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실제로 지난 두번의 경매에서 출발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은데다 낙찰가도 시중 거래가에서 큰 차이없이 형성돼 애호가나 작가들의 큰 반발을 샀다는 것이 미술계의 지배적인 견해다.이에대해 동숭갤러리와 참가화랑의 견해는 “미술시장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거품제거와 호당가격폐지·2중가격구조 개선에 따른 거래 투명성 확보차원에서 미술시장과 작품활동의 활성화 방안으로 각광받고 있다”면서 물러설 수 없다는 것.오히려 동숭갤러리측은 협회의 경매전 중지요구 사항이 개인의 거래행위를 방해하고 규제하는 불공정거래로 공정거래법에 위배된다”는 강력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무튼 오는 8일과 22일 경매에서 결정될 작품가격과 낙찰 작품수에 따라 앞으로 국내에서 진행될 미술품 경매형식이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동숭갤러리는 경매후 낙찰가와 평균 작품가격을 공개한다는 입장이어서 경매형식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화랑협회의 입장과 경매참가 화랑들간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미술인들 발길 잦은 광주군 ‘예술마당’

    ◎전업작가들 전시회·도예교실도 운영 서울 근교 남한강변의 광주군 퇴촌면에 있는 ‘예술마당’(대표 蔡奎泓)은 경기 일원의 전업작가들을 위한 전시장 제공과 도예문화교실운영을 통해 지역문화공간으로서 한 몫을 하고 있다.다듬지 않은 원목기둥과 황토벽으로 어우러진 건물이 인상적인 예술마당은 대지 2천평에 총 340평의 건물 다섯채로 이뤄져 있다. 전시공간,도예공방,강의실,실습실,휴식공간으로 나뉘어진 예술마당의 부설 백천(白泉)갤러리는 이미 지난 연말과 올 2월 두차례에 걸쳐 경기 일대의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했다.첫번째는 테라코트 흙그림 3인전이,두번째는 도자기소품 4인전이 열렸다. 지난 14일부터는 중견 및 신예작가 6인전이 오는 4월10일까지의 일정으로 열리고 있다.지난 14일 개막된 이 전시회에는 김학대,김기일,이영환,설경민,박호창,인순옥씨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화려한 색감을 빠른 붓놀림으로 처리한 추상화 ‘5월의 마음을 갖고’(김학대),흙으로 빚은 옹기의 몸통에 그로테스크한 얼굴모습을 담은 ‘표정’(인순옥)등의 작품은 눈길을 끌고있다.이들 6인의 전업작가들은 경기도 이천시 일원에 거주하면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도예교실 회원들을 중심으로 국내외 도요지 답사와 외부작가 초청특강과 세미나등도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준공된 예술마당은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영동리 43­10에 있다.(0347)66­7707
  • 55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락스네스 타계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 DPA AFP 연합】 지난 5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이슬란드 작가 할도르 락스네스가 8일 레이캬비크 교외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아이슬란드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향년 95세. 아이슬란드 유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락스네스는 80년대 초반부터 작품활동을 중단했으며 최근 몇년간은 치매현상을 보여온 것으로 그의 가족들이 전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발카 전설”,“아이슬란드 벨”,“피시 콘서트” 등이있다.
  • 서양화가 서양순(이세기의 인물탐구:159)

    ◎화폭마다 혼담긴 ‘꽃과 여인’의 화가/초창기 ‘발레리나’ 시리즈로 국전 3회 입선/한국여류화가회장으로 작품활동도 활발 서양순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과 여인’의 이미지를 과시하면서 밀턴의 ‘꽃피는 시트론의 숲’을 향유하는 시기다. 최근의 그의 회화세계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유랑의 필치’로 포비즘의 요소를 포함시키는 새로운 조형방법에 접근하고 있다. 이른바 색채의 의장을 중시하는 큐비즘과 구상을 지우는 특유의 기법으로 ‘꽃이 여인이며 여인이 꽃’인 팬태스틱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파스텔조의 꽃의 향연은 캔버스의 한정된 공간이 아닌 드넓은 벌판에 마음껏 펼쳐진채 바람에 흩날리듯 꽃향기 퍼트릴 듯 송이송이마다가 싱싱하게 살아숨쉰다. 그래서 일찍이 그의 스승인 박득순은 ‘서양순의 그림은 삶에 대한 힘찬 도약과 환희의 축제’라고 표현했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모르면 아름다움을 그릴수 없듯이’ 그의 눈부신 인물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인간적인가를 한눈에 알게 된다’는 것이다. ○‘환희의 축제’로 표현 그의 꽃들도 동양적 정서와는 거리가 먼 목련과 장미, 국화와 해바라기,튤립과 서양란같은 화판이 확실하고 탐스러운 꽃중의 꽃들로 화면을 채운다. 언제나 꽃과 여인이 공존하는 가운데 여인의 눈동자는 신비와 미지의 소망이 반짝이고 목걸이와 팔찌 등 서구적 연출은 때때로 베르사유의 앙트와네트, 정열의 카르멘, 르누아르의 청신한 이렌느와 어느때는 마농레스코같은 퇴폐적인 쓸쓸함과 메마른 사색을 풍겨낸다. 이른바 밀집한 꽃의 형상과 풍부한 무희들이 제시하는 회화세계는 그것이 ‘미술’이기 때문에 철두철미 ‘아름답다’는 것을 지키면서도 해맑은 아름다움의 이면속에 엄격한 결벽증이 도사리는 것이 이채롭다. 서양순은 그의 그림이 설명하는 것처럼 내면으로부터의 열망과 열정이 끓어넘치는 화가다. 타고날 때부터 솔직하고 활달한 성격이어서 무슨 일에든지 쉽게 좌절하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단지 가파르지 않은 후덕한 인간성을 지녔으나 남에게 폐끼치기를 싫어하고 만사에 빈틈없는 완벽주의로 대인관계에서의 신의를 중시한다. 그러한 성격형성은 그가 성장한 철없던 어린시절과 다양한 예술적 체험들이 정신적 성장을 준 때문일 수도 있다. 어릴때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의사’가 될것을 꿈꾸었으나 화가가 된 지금 심신장애자를 위한 국제 시비탄클럽의 멤버가 되어 그들을 돕고 있다. 전북 정읍에서 과수전지를 지도하던 서갑준씨와 이말예 여사의 3남3녀중 막내, 넉넉한 집안의 막내답게 부족함없는 환경에서 그림도 잘그리고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이었다. 정읍여고시절 전라북도 고교미술실기대회에서 정물화로 도지사상을 수상하자 당시의 교장과 담임이 권유하여 의대가 아닌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심신장애자 돕기도 대학졸업후 박득순 스승의 명동 화실에 나가 학생지도를 보조하는 동안에도 언제나 드가의 ‘발레리나’시리즈에 심취해 있었고 발레리나의 율동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속도감에 매혹되어 한 시기에는 오로지 발레리나만을 그린 적도 있다. 이른바 ‘한줄기 빛이 물체에 닿는 순간, 그 빛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것’이라는 르누아르의 말대로 공간이동을 시키듯이 대상을 생명감 자체로 화면에 옮기는 방법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의 ‘무희’나 꽃들은 마치 토슈를 신고 필루에트를 추는 발레리나의 움직임을 알레그로 콘브리오의 리듬감으로 생생하게 재현해낸다.박득순외에도 변종하 최덕휴 김창락 김원등 기라성같은 스승들을 사사.그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변종하씨는 서양순을 향해 ‘장래를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화가’로 손꼽았고 그때부터 자신감을 갖고 ‘인물에서의 최고봉’이 되기 위한 야망을 불태웠다. 65년부터 국전에 ‘발레리나’를 출품해서 3회 연속입선, 특선을 향한 집념을 불태우던 무렵에 박득순 화실에서 만난 서양화가 강길원씨(공주대 교수)와 결혼, 77년 부군이 제주대에 근무하던 제주시절에는 섬만의 독특한 풍광과 제주여인을 그리면서 초기의 화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중간톤을 창출할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언제부턴가 남청 담청 군청과 감청속에서 선록)과 선홍이 흘러나오고 전에는 점하나를 찍는데도 구도를 계산했으나 그림에서의 형상과 색깔은 오랜 관념과 관습에 불과할뿐 ‘어떤 위대한 예술도 죽음이나 삶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삶의 욕망 화폭에 점화 지난 91년 일곱번째로 가진 개인전에서도 ‘선명한 터치와 화면마다 생동하는 생명감’으로 다시 한번 화단의 호평을 모았고 그의 그림을 아끼는 사람들은 최근의 ‘꽃과 여인’을 향해 ‘검은 비로드에 싸인 한아름의 금강석’, ‘허화가 없는 사치의 극치’로 찬사하기도 한다. 그는 항상 아름다움만을 추구할뿐 ‘문학성’과 ‘작품성’이 의식된 어질러진 도시의 뒷골목이나 초라한 낭인의 모습은 체질에 맞아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의 화제는 화려한 ‘꽃’들과 눈이 크고 서구적인 ‘여인’이 될것이다.지난해엔 한국여류화가회 회장에 선임, 결코 쉽지않은 승부였으나 평소의 스케일과 덕량이 주변을 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전혀 연고지가 아닌 강남구 신사동에 정착한지 20년. 화단의 중진인 부군과의 사이에 딸(보나양)하나가 있다. 낯설고 새로운 수많은 미학적 체험과 깊은 모색의 과정을 지나 그는정미를 끌어내기 위해 생의 욕망을 화폭에 점화하려는 시기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선보이려는 100종의 꽃과 100인의 미인은 지나온 족적을 되돌아보는 화가 자신의 심상의 그림자에 틀림없다. 긴 휴식과 사색을 끝내고 그의 여인은 탐색직전의, 비상직전의 긴장속에서 간결·절제의 수직구도로 만개의 향기를 미래를 향해 내뿜고 있다. □연보 ▲1940년 전북 정읍출생 ▲1961년 세종대 미술과졸업 ▲1965­67년 국전 서양화입선 ▲1966년 제1회 개인전(정읍) ▲1969­72년 신기회회원전 출품 ▲1972­현재 한국미술협회회원전 ▲1973년 한국여류화가회 창립전 ▲1978년 개인전(제주 한라미술관) 1981년 프랑스 아카데미 드 라 그랑 쇼미에르수학, 스페인국제미술제 특별상수상 ▲1982년 서울 개인전, 도쿄 아시아현대미술전및 한·불여류작가전(파리) ▲1983년 뉴욕및 상파울루 개인전 ▲1986년 현대작가 100인전 ▲1990­현재 한국구상작가 회화제 ▲1991년 제7회 개인전(현대미술관) ▲1992년 동북아 여성문화교류전 ▲1995년 북방8개국 우수작가초대전, 한국현대미술 뉴욕초대전, BESETO미술제 서울전, 광주비엔날레기념 한국여류화가회 광주전, 인도풍물 스케치전,목우회전 ▲1997년 썬화랑개관 20주년기념전, 한·중수교5주년기념전 ▲1998년 관훈미술클럽창립전, 한국여류화가회전(2월10일부터 서울갤러리) ◇현재:한국여류화가회회장, 군자회자문위원, 회화제운영위원
  • 도스토예프스키/탄생 175주년 생애 재조명

    ◎모스크바서 미공개 자료 등 1천여점 전시/러 전역서 수집·발굴… 일기·낙서 첫 공개/악에 집착하는 기인 행적 한자리서 감상 【모스크바=유민 특파원】 ‘악을 다루는 천재’ 표드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생애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전시회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가 최근 모스크바에서 막이 올라 문학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탄생 1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이번 전시회는 러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그에 관한 자료가 모스크바 페트로브카거리 국립문학박물관 한 곳에 모여져 일목요연하게 전시된다는데 의미가 크다.더욱이 상당부분 자료가 처음 공개되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 새롭게 발굴된 일기와 각종 낙서 등은 생전에 그가 ‘악’에 집착하는 기인에 가까운 행적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어 세계 문학연구가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이 이번 전시회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시물은 부인이었던 안나 그리고리예브나가 문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모두 5개의 방으로 꾸며져 있는 전시실은 방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읽던 당시 문학작품 및 서적류,초고들,개인휴대품,가족과 친인척 사진,그의 생애와 관련된 사진과 그림 등 1천여점이 꽉 들어차 있다. 제1전시실의 전시물로 보아 그는 젊은 시절 작품으로 ‘오딧세이’‘돈키호테’를,작가로는 괴테나 월터 스코트의 작품들을 즐겨 읽은 것으로 보인다.이와 관련된 서적류가 많기 때문이다. 한때 스코트 작품에 나오는 카드놀이에도 심취된 것으로도 여겨진다.성경에 나오는 신의 형벌보다 더 무서운 악의 인간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애지중지하던 은제 뱀장식물도 관람인들의 눈길을 끈다.하필 ‘왜 뱀인가’라는 의문도 관람인들의 뇌리에 끊이지 않는다. 페테르부르그주에 산재해 있던 원고들도 모두 한데 모아졌다.초기 활동무대인 페테르부르그 사저에 있던 ‘죄와 벌’‘카라마조프 형제’‘백치’의 초고,작품활동과 관련된 각종 낙서 메모도 모스크바로 가져 왔다.그가 등장인물의성격을 정하기 위해 직접 그린 것으로 보이는 각종 인물소묘도 전시물로 나와 있다.‘죄와 벌’초고에는 뚱뚱하고 추한 두상이 전면에 나온다. 19세기 후반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럽 각 지역을 여행한 기록과 사진도 한 관람실을 만든다.바덴바덴,드레스덴,베니스,플로렌스,로마 등을 두루 여행한 그는 여행목적이 ‘간질’로 알려진 그의 질병치료를 위해서였다는 것도 이번 자료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이번에 전시된 그의 초상화들도 모두 공통점이 있다.사진·그림작가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눈매에서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즉 깊은 사색에 잠긴듯하면서도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불같은 격정이 담겨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있다.사실 ‘가장 인간적인 특성을 지닌 인간’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전시회의 의미라면 의미라는 평이다.
  • 올 미술대전 대상작에 대한 여성단체 반발을 보고/김용중(기고)

    ◎여성계 예술곡해에 실망·분노 한 여성단체(한국여성민우회)가 이번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작인 내 작품 ‘팀’에 대해 직장 여성의 실상을 외면한 작품 운운하며 한국미술협회에 심사기준 등에 대해 공개질의를 하고 나선 사실에 당혹감을 느낀다. 나 역시 생계를 위해 전문직 실내디자이너로 오랜 직장생활을 하면서 조직속에서 유능한 여성들의 능력이 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를 숱하게 보아온 장본인이다.나의 경험뿐만 아니라 그림에 전념하는 내 곁에서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아내를 통해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 또한 절실히 알게 됐다. 여러 채널을 통해 아직도 여성에게 불이익이 주어지는 측면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뜻밖에 많은 능력있는 여성들의 성공사례를 들으며 사회가 점차 바람직한 쪽으로 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갖게 됐다. 이번 수상작은 어려운 지난 과정에서 겪었던 직접적인 체험이 동기가 돼 소재를 택하게 됐고 본격적으로 작품화하게 된 결실이다.이번 작품을 하면서 되레 나 자신은 은근히 여성을 고무시키는 작의를 갖고 있었으며 작품을 보고 일반직에 종사하는 많은 직장인들이 종래의 고정관념을 떨쳐버리기 바라는 마음도 감히 갖고 있었던게 사실이다. 흔히 예술은 시대의 소산,또는 체험의 소산이라고 한다.예술가 특히 미술작가들도 현실사회의 체험이 자연스럽게 담긴 작품에 유난히 신경을 쓰고 집중하는게 요즘 분위기이기도 하다.오히려 작품 ‘팀’을 출품한 뒤 지속되는 불황으로 인해 해고당한 수많은 남성들로부터 반발이 있지나 않을까 우려했지 엉뚱하게도 여성단체에서 이같은 반응이 나올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인권운동가도 아니며,또 민중미술가도 아니며 단지 순수한 작품활동만을 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입장이 오히려 왜곡당한 사실에 다시한번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자유로운 정신속에서 태어난 순수한 예술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작가의 순수한 의도가 어떠한 동기에서든 왜곡된 방향으로 받아들여질때 작가가 느낄수 밖에 없는 정신적 고통을 여성단체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깊이있게 생각해볼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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