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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플러스] 윌리엄 클라인 사진전 내년까지

    현대 사진의 대가로 꼽히는 윌리엄 클라인(79)의 사진전이 서울 신문로 갤러리 뤼미에르에서 열리고 있다.미국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오래 작품활동을 해온 클라인은 1956년 사진집 ‘뉴욕’을 통해 종전과는 다른 기법의 사진을 발표해 유명해졌다.1965년에는 사진 분야의 최고 권위상인 나다르 상을 받았고, 지난해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1950∼90년대 작품 약 80점이 선보였다. 내년 2월17일까지.(02)517-2134.
  • 한국 추상미술의 맥 짚어보기

    한국 추상미술의 맥 짚어보기

    북악산 등산로의 가을 정취까지 덤으로 만끽할 수 있는 운치 만점의 전시가 있다. 지난 9일부터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에 마련된 ‘신사실파 60주년 기념전’.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장욱진 이중섭 백영수 등 한국 근대미술을 주도한 6인의 작품이 회고전 형식으로 선보인다. 신사실파란 모든 그림을 사실에 기초하되 표현에 있어서는 추상이나 구상에 구애받지 않고 그리자는 미술 동인들의 모임.1947년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등 3인이 첫 동인전을 개최하면서 출발했다. 여기에 장욱진 이중섭 백영수가 가세하면서 6인 동인이 됐던 것. 이들이 한국 추상미술의 발판을 다졌던 셈이다. 이번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매우 풍성한 전시다. 김환기 작품 15점, 유영국 22점, 장욱진 20점, 이규상 4점, 이중섭 9점, 백영수 13점 등 모두 81점이 선보인다. 이들의 활동내용을 따로 설명해 주는 사진과 전시 리플릿 등 자료도 50여점이나 된다. 이중섭의 ‘소’, 장욱진의 ‘독’, 김환기의 ‘피난열차’ 등 한국미술의 교과서 같은 유명작들이 포함됐다. 이들 가운데 현재 유일한 생존자는 백영수(85) 화백. 그가 들려주는 당시의 일화는 한국 추상미술 태동기의 역사 그대로이다.“나는 일본을 떠나 1948년 서울 화신백화점에서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과 함께 첫 전시회를 가졌다. 당시 화가들은 소공동의 플라워, 명동의 동방싸롱 등을 배회했고 명동의 돌체다방에서 매일 만나 얼굴을 맞대었다. 3회 전시 때 장욱진과 유영국은 작품에 붉은색을 많이 써 빨갱이로 의심돼 정보부로 소환되기도 했다. 그때 그 그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중섭이 얻어먹은 찐빵이 미안해 주인에게 유화를 줬는데 그게 장독대 뚜껑으로 사용됐으니 그림들이 잘 보관될 형편이 아닌 시기였다.” 지난 77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백 화백은 이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100여 차례의 전시회를 여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왔다. 무엇보다 남아 있는 작품이 거의 없는 이규상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이중섭·백영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개인 소장자가들에게서 빌렸다. 환기미술관 채영 학예연구원은 “한국 추상미술의 맥을 짚어 보고 이를 발판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고자 기획한 전시”라고 소개했다. 내년 1월13일까지.(02)391-7701.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부고] 시인·불교학자 이원섭씨 별세

    [부고] 시인·불교학자 이원섭씨 별세

    현대시인협회장을 지낸 시인이자 불교학자 이원섭씨가 9일 오전 1시25분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83세. 고인은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혜화전문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한 뒤 1948년 ‘예술조선’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향미사(響尾蛇)’‘내가 뱉은 가래침’ 등 선시(禪詩) 색채 짙은 시집 두 작품을 남겼다. 불교학자로도 활동하며 ‘법구경의 진리’‘깨침의 미학’을 비롯해 수십 권의 책을 저술했고 ‘당시(唐詩)’‘시경(詩經)’‘논어(論語)’‘노자(老子)’‘불교대전’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문인협회 부이사장과 현대시인협회장을 역임했다. 유족은 부인 박영자씨와 성규ㆍ홍규씨 등 2남. 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2일 오전 8시.(02)2072-2022.
  • [문화플러스] 소마미술관, 중견 작가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은 내년 1월6일까지 ‘쉬지 않는 손, 머물지 않는 정신’전을 연다. 김주호, 이건용, 박한진 등 30년 이상 작품활동을 해온 한국 중견작가들을 재조명하는 자리. 작가의 작업실을 전시장 안으로 옮겨 놓아 작품활동 과정을 그대로 살펴볼 수 있다.(02)425-1077.
  • 바퀴벌레를 붓 대용으로? 이색 화가 화제

    바퀴벌레로 그린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그림을 꼭 붓으로만 그리라는 법은 없다. 최근 미국에서는 거미나 나비, 심지어는 바퀴벌레와 같은 곤충들을 붓으로 삼아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색적인 그림을 그리는 이 화가는 이순의 나이에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뽐내고 있는 스티븐 커쳐(Steven Kutcher·63). 색색의 물감을 묻힌 곤충의 다리를 이용해 기존의 예술작품에서 보기 어려운 다양한 문양을 표현해내고 있어 “대단히 이색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스티븐이 곤충들의 다리에 물감을 발라 캔버스에 놓기만 하면 곤충들은 움직이면서 고유의 흔적을 남기게 되고 이로써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또 그는 곤충의 움직임이 그림에 잘 나타날 수 있도록 곤충마다 가진 특성을 공부하는 데에도 열심이다. 스티븐은 “내가 원하는 효과를 곤충들이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곤충들마다 가진 고유의 행동을 알 필요가 있다.”며 “결국은 (내가 아니라)곤충이 진짜 화가인 셈”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좋은 작품을 위해 예술과 곤충학을 같이 공부하게 된다.”며 “할리우드에서 곤충 소재의 영화작업에 참여했을 때 작품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 같은 방식의 작업이 곤충들에게는 고역이 되지 않을까? 스티븐은 “(내가) 곤충학 석사이자 환경보호론자인만큼 곤충들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수용성 재질의 무독성 물감을 사용하기 때문에 묻혀진 물감은 쉽게 지워진다.”고 대답했다.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응로 화백 창작 활동 예산군 ‘수덕여관’ 복원

    이응로 화백 창작 활동 예산군 ‘수덕여관’ 복원

    현대 미술계의 거장 고암 이응로(1904∼1989) 화백이 머물면서 작품활동을 했던 충남 예산 ‘수덕여관’이 복원돼 5일 문을 연다. 이 여관은 2005년 말 수덕사가 이 화백의 큰조카 이모(57·경기 성남시)씨로부터 1억여원에 사들였다. 2일 수덕사에 따르면 4억 4000만원을 들여 방 8개를 터 3개로 넓히고 화장실과 주방을 현대화했다. 초가 지붕과 아궁이 등은 그대로 뒀다. 사찰측은 개관기념으로 14일까지 고암과 제자 금동원 등의 작품 40여점으로 전시회를 연다. 이후에 신도 등을 위한 템플스테이 장소로 활용된다. 남도는 여관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도 기념물 103호로 지정했다. 예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말라 주연 ‘내아이는 저것을 그릴수 있었다’는 어떤 영화?

    말라 주연 ‘내아이는 저것을 그릴수 있었다’는 어떤 영화?

    세계 최대 독립영화제로 유명한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된 ‘내아이는 저것을 그릴수 있었다’(My Kid Could Paint That)는 아미르 바르-레브 (Amir Bar-Lev)감독의 첫 작품으로 감독 본인과 주인공 말라가 함께 출연했다. 천재소녀로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말라의 작품활동을 그린 이 영화에는 말라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4살때부터의 영상이 차례대로 기록되어 있다. 또 말라의 영상 뿐 아니라 아이의 가족과 그림을 판매해오던 아트딜러의 모습을 함께 담아 그림이 유명해지기까지의 과정 또한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말라가 천재인가 아닌가의 문제에서 벗어나 예술에 대한 어린 소녀의 열정을 그렸으며 작품에 대한 각 계의 반응과 평가도 함께 담았다.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6세 소녀의 그림 수입이 무려 20만달러?

    6세 소녀의 그림 수입이 무려 20만달러?

    미국의 한 어린 소녀가 자신의 그림을 팔아 번 돈이 무려 20만달러(한화 약 1억 8천만원)에 달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뉴욕에 사는 6세 소녀 말라 옴스테드(Marla Olmstead). 아마추어 화가인 아버지 마크 옴스테드(Mark Olmstead)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매우 친숙했다는 말라는 3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인 마크는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는 도중 어린 딸 아이가 그림 옆에 앉아 자신도 그리게 해달라고 졸랐다.”며 “그 이후 말라에게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마크는 말라의 그림을 친구의 권유로 한 카페에 전시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얼마 후 첫 그림은 250달러(한화 약 23만원)에 팔리게 되었다. 이후 말라의 그림을 찾는 사람이 점점 늘면서 뉴욕의 한 화랑에서’4 years old’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고 그림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7년 국제 선댄스 영화제에 아미르 바르-레브 (Amir Bar-Lev) 감독은 ‘내아이는 저것을 그릴수 있었다’(My Kid Could Paint That) 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출품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이의 인기가 높아지고 각종 매체에 의해 ‘천재소녀’라고 소개가 되면서 말라의 부모는 “자식을 팔아 돈을 번다.” “아버지가 대신 그린 것 아니냐” 등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말라의 부모는 “아이가 매스컴에 의해 상처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조용히 작품활동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위쪽은 말라와 그의 그림(the sun), 아래는 영화 포스터 ☞ [관련기사] 말라 출연 동영상 보기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거리 미술관 속으로] (39) 테크노마트 ‘빛-우주21’

    [거리 미술관 속으로] (39) 테크노마트 ‘빛-우주21’

    단 3초만에 상대방에게 호감이나 비호감을 갖게 하는 것은 첫인상이다. 건물의 첫인상 역할을 하는 것이 로비. 어떤 인상을 주느냐에 따라 건물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서울 광진구 테크노마트의 첫인상은 33m 높이의 보이드 공간(몇개 층을 관통해 뚫려있는 곳)에 달린 ‘빛-우주21’(27m·알루미늄)로 좌우됐다. 얼핏 크리스마스 장식줄을 꼬아 달아놓은 듯, 커다란 다슬기 모양의 용수철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듯, 육중한 몸이 바람을 타고 천천히 돌아가며 화려한 빛의 변화를 보여준다. 국내 최대 규모의 모빌인 이 조형물은 ‘빛의 화가’로 유명한 고 하동철(1942∼2006) 전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의 작품이다. 천장에 철골을 박고 원판을 매달아 바람에 따라 움직이도록 했다. 그 움직임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다채롭게 빛이 번지면서 신비로움 그 자체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30년 가까이 ‘빛’에 집중하며 작품활동을 해온 하 교수는 줄곧 “예술은 결국 우주의 질서를 닮으려는 몸짓이고, 빛은 우주 질서를 상징하는 불변의 요소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내 작품은 색의 변조를 통해 본질을 가리는 싸움의 연속”이라면서 그림이나 조형물에 빛을 담는 데 애써 왔다. 빛을 등지고 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고향의 모습, 어머니의 상여를 따라가며 본 태양의 눈부심, 비행기를 타고 북극을 지나며 본 오로라 등이 그에게 빛의 영감을 주었다. 그의 작품 세계를 단조로운 모노톤으로 고요한 명상의 빛을 담은 초기와 다양한 색으로 감성을 풍부하게 내보인 후기로 구분짓는다면, 이 작품은 단연 후반기 작업의 특성을 담고 있다. 그만큼 웅장하고 현란하다. 더불어 빛을 다루는 그의 내공이 작품의 면, 모서리, 꼭짓점 곳곳에 오롯이 녹아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전통가옥 4채 중요민속자료 지정예고

    문화재청은 전남 신안의 화가 김환기가 살던 집을 비롯한 전통가옥 4채를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로 27일 지정예고했다. 김환기의 집과 ▲전남 강진의 시인 김영랑 생가 ▲경북 봉화의 송석헌(松石軒) ▲경북 청송의 송소고택((松韶古宅)이다. 신안 안좌도 읍동마을에 있는 김환기 가옥은 김환기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광복 이후 작품활동을 했던 곳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강진의 영랑 김윤식 생가는 전형적인 부농의 생활공간으로 영랑의 문학적 세계를 후손이 길이 체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치가 높이 평가됐다. 송석헌은 동암 권이번이 아들 선암 권명신에게 지어준 집으로, 조선 후기 영남지역 사대부저택의 기능과 면모를 잘 보여준다.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시대 만석부자였다는 심처대의 7대손 심호택이 1880년 지은 집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문화키워드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문화키워드

    ■ 신문 연재소설로 본 시대상 신문 연재소설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열망과 한숨이 배어 있다. 이것은 대중과 호흡을 함께해 나가는 신문이 그들의 이목을 끌고 그들을 지면에 이끌어 들이고자 만들어 내는 현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문 연재소설을 써나가는 주체란 단순히 작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신문과 독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당대를 만들어 나가는 사회 그 자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저 멀리 ‘대한매일신보’가 숨쉬던 구한말에서 애달픈 식민지 시대, 해방공간, 한국전쟁, 긴 독재체제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주 긴 목록의 신문 연재소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한국인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 했고 무엇에 아파했으며 무엇을 원했는지 보여준다. 신문 연재소설은 우리에게 당대의 문화적 코드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준다. 신문 연재소설을 통해 당대의 문화키워드를 살펴본다. 구한말의 문화적 키워드는 단연 나라 지키기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애국계몽을 표방한 신문 ‘대한매일신보’에는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1905.11.17∼12.3),‘거부오해’(1906.2.20∼3.7) 같은 작품들이 연재되었다. 이 과도기적 ‘소설’들에는 어떻게 기울어가는 나라를 개혁할 것인가, 외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복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1910년대의 지식인들은 국권을 침탈당한 비극적 분위기 속에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을 여전히 유학과 교육과 계몽에서 찾았다. 문단으로 보면 이때는 이광수와 최남선의 시대였다. 이광수의 ‘무정’(‘매일신보’,1917.1.1∼6.14)은 경성학교 영어교사인 이형식과 기생 영채의 사랑의 엇갈림을 그리면서 그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새로운 학문을 위한 유학에서 찾았다. 여기서 이광수는 과학이라는 새로운 구호를 제창했다. 1920년대는 3·1운동의 좌절이 가져다 준 절망적 분위기 속에서 고독한 자아의 구원을 열망하는 흐름과 절망을 대신할 새로운 사회적 희망을 추구하는 흐름으로 나뉘었다. 어머니를 잃고 오빠와 함께 살아가는 혜숙의 가련한 운명을 그린 나도향의 ‘환희’(‘동아일보’,1922.11.21∼1923.3.21)는 전자의 흐름을,3·1운동의 좌절을 배경으로 순영과 봉구의 사랑과 죽음, 기약을 그린 이광수의 ‘재생’은 후자의 흐름을 대변한다. 1930년대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인식과 식민지 근대의 성숙 과정에서 배태된 대중문화, 그리고 여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때였다. 한 예로 염상섭의 ‘삼대’(‘조선일보’,1931.1.1∼9.17)는 타락한 윗세대와 사회주의 운동이 풍미한 복잡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삶의 균형을 고민하는 새로운 세대의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1940년 8월10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되자 신문 연재소설의 현장은 다시 ‘매일신보’로 넘겨졌다. 이태준, 채만식, 박태원, 이효석 같은 대작가들은 가혹한 천황제 파시즘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체제의 강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문제의식을 그들의 소설들에 각인시켰다. 예를 들어 이효석의 ‘창공’(‘매일신보’,1940.1.25∼7.28)은 천일마라는 주인공이 만주 하얼빈에서 만난 러시아 여성 나아자와 결혼하여 함께 조선의 문화를 공유해 나가는 이야기를 통해 천황제 파시즘의 대동아주의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냈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발발에 이르기까지 잠시 침체한 양상을 보였던 신문 연재소설이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 것은 1950년대였다. 대중의 폭발적인 반향을 얻으면서 논쟁에까지 휩쓸려 이른바 낙양의 지가를 올린 정비석의 ‘자유부인’(‘서울신문’,1954.1.1∼8.9)은 대학의 국문학 교수 장태연과 그 부인 오선영의 뒤얽힌 생활상을 통해 당대의 문화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자 한국사회는 군사독재 체제, 산업화, 타락과 부패라는 복합적인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손창섭의 장편소설들, 예컨대 ‘이성연구’(‘서울신문’,1965.12.1∼1966.12.30)나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동아일보’,1966.2.8∼10.31) 같은 작품들은 대도시화한 서울을 배경으로 간척사업, 공공사업 등과 같은 당대적 사건들을 다루면서 물신주의가 팽배한 1960년대 사회의 기묘한 위선, 타락, 무질서, 음모를 그려나갔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민중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군사독재와 산업화 속에서 짓눌린 민중에 대한 관심은 수많은 문제작들을 낳았던바 신문 연재소설에서 이것은 대하소설이라는 문제적인 양식과 접맥된다.‘서울신문’에 1979년 6월부터 1983년 2월까지 약 4년에 가깝게 연재된 김주영의 ‘객주’는 보부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 역사적 상황과 생생한 민중생활 양상을 풍부하게 재현한 문제작이다.‘한국일보’에 1974년부터 1984년까지 10년씩이나 연재된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도 단 몇 줄의 역사기록밖에 없는 인물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민중의 애환과 바람을 그린 작품이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격변의 시대에 신문 연재소설의 주된 테마를 이룬 것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심이었다.1983년부터 잡지에 연재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태백산맥’에 이어 1998년부터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은 파란으로 점철된 한국현대사에 연속성을 부여하려 한 작가적 신념의 소산이다. 여러 곳에 나뉘어 연재되면서 1994년에 완간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거작이다. 2000년대에는 민주주의가 사회적 원리로 정착해 나가는 대신에 자본주의의 물질적 독점력이 새로운 문제로 부각된다. 고도로 국가화·독점화한 자본주의가 과거의 정치적 독재를 대신하여 새로운 권력적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바로 2000년대다. 경제적 갈등, 반목과 생존 경쟁, 물신주의가 이처럼 일상을 확고히 지배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여기에 민주주의가 낳은 정신적 타락 및 비속화·비소화한 시민들의 삶은 새롭고 숭고한 정신적 가치를 찾아 헤맨다. ‘서울신문’에 2004년 1월5일부터 최근까지 장기간 연재됐던 최인호의 ‘유림’은 그러한 숭고에 대한 열망이 투영된 소설이라고 하겠다.‘상도’에서 ‘유림’에 이르는 최인호의 집필과정은 시대의 추이를 예민하게 감지할 줄 아는 능력의 존재를 시사한다. 이렇듯 신문 연재소설은 한국사회 및 대중의 관심사와 그 문화적 추이를 깊이 있게 받아들이고 촉진한 시대의 바로미터와 같은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방민호(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 서울신문 연재소설 소개 ▶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 1905년 11월17일부터 12월3일까지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된 개화기 신소설로 신문에 실린 최초의 소설 형태의 글이다. 개화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복술가 소경과 망건장수 앉은뱅이의 대화가 전개되는 문답체로 자주적 국권 의식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 무정 1917년 1월부터 6월까지 이광수가 매일신보에 연재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다. 한국 현대 문학의 출발점이 된 작품으로 근대문명에 대한 동경과 신교육 사상, 자유연애 찬양, 남녀 평등 사상 등을 주제로 내세우면서 대중계몽 역할을 꾀해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근현대문학 사상 가장 많이 읽혀지고 연구되어온 이광수의 대표작이다. ▶ 자유부인 1954년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된 작품으로 한국 신문 연재 소설 사상 최고의 화제를 낳았다. 성윤리에 대한 논란을 비롯, 갖가지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정비석의 화제작. 대학교수 부인 오선영의 ‘일탈’를 통해 6·25전쟁 직후 만연한 퇴폐적인 사회 풍조와 전쟁 미망인들의 취업상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 객주 1979년 6월6일부터 1983년 2월29일까지 서울신문에 1465회 연재돼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가 김주영의 역작.3부작으로 구성됐으며 조선 후기 보부상과 노비, 관료, 농민들의 갈등과 유착을 다루며 당시 사회의 변동상을 그려냈다.19세기 말의 풍속을 구체적으로 재현했으며 평민층의 입말을 잘 살려내 사실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 유림 1977년 서울신문에 소설 ‘파란 꽃’을 첫 연재한 최인호가 2004년 1월5일부터 2006년 12월30일까지 연재한 장편소설. 유교가 흘러온 2500년의 역사를 조망한 작품으로 왕도국가를 세우려다 실패한 조광조와 이상국가를 꿈꿨던 공자, 성리학을 발전시킨 퇴계 이황 등 유학자들의 삶을 엮었다.‘유림’은 유교와 유학자들을 소설로 형상화해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프론티어 5인이 말하는 미래 문화키워드 서울신문은 창간 103주년을 맞아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미래 사회의 문화를 이끌 화두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문학·영화·방송·음악·미술 방면의 전문가 5명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면서도 명징한 키워드로 향후 문화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 ‘예술가 사회’‘글로벌’‘탈경계’‘다양화’‘탈장르’ 등으로 요약되는 이 문화 핵심어들은 저마다 고유한 속성을 지니면서도 의미있는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진지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 “장르파괴 가속화” 최완규 ‘주몽’ 드라마 작가 “앞으로는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드라마 연출자가 영화 감독을 맡거나 영화제작사가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렇다할 성공 사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제작인력의 양분화가 점차 미미해지고 두 장르간 벽을 허무는 사례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국민 드라마 ‘주몽’의 최완규(43) 작가는 미래 방송계의 키워드를 이처럼 ‘탈경계’란 말로 압축해 표현했다.‘종합병원’‘허준’‘올인’ 등 사극과 현대물을 오가며 인상깊은 작품들을 남겨온 그는 현재 그 자신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이 불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 사람들도 새삼스럽게 미드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할리우드의 우수한 영화 제작인력과 기획력이 드라마로 대거 투입된 결과로 볼 수 있어요. 우리도 이같은 탈경계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드라마 제작환경은 아직까지 그리 여의치 않다. 최 작가는 “현재 방송사·외주제작사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십중팔구는 제작비를 맞추지 못해 적자를 떠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드라마는 한류 열풍을 등에 업고 규모를 급속도로 키워 왔지만, 그 수혜가 몇몇 연기자와 작가들에게 집중되는 등 문제점도 함께 키워 왔다.”고 덧붙였다. 최 작가는 “‘CSI’나 ‘프리즌 브레이크’는 작가 한명의 머리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작품”이라며 “무엇보다 사전제작을 염두에 둔 시리즈물이 일반화돼야 하며, 밀도 높은 작품을 위한 집단창작시스템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권고도 잊지 않았다. 시청률이나 해외 마케팅에 신경쓰기 앞서 ‘질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시청자들이 먼저 알아 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프로·아마 벽 무너져” 김영하 소설가 “미래는 모두가 예술가가 되는 세상입니다.‘예술가 사회’라 하면 어떨까요?” 소설가 김영하(39)는 20세기 후반, 자본가가 된 우리 모두는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예술가가 될 거라 장담했다. “요즘 삼청동에 가보면 사진기자들이 쓸 만한 장비를 들고 수백명이 순례를 하고 있어요. 모든 예술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거죠.” 그는 프로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아마추어가 ‘후진’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경계는 무너질 것으로 내다봤다.“문학이야말로 아마추어가 하는 겁니다. 뭐든 쓸 수 있죠. 랭보와 카뮈도 아마추어였어요. 문학사는 아마추어가 쓴 엄청난 작품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는 ‘개인’도 미래의 문화 키워드로 꼽았다. 사람들간에 공통적인 경험이 줄어들고 다른 처지에서 세상과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는 1950년대,60년대 문학과 같은 트렌드는 사라지고 작가 개인의 문체 특성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전망한다.“문학도 이제 개인의 내면과 경험을 제출하는 방식입니다. 김영하 다르고, 박민규 다르죠. 공통분모를 찾는 건 부질없는 노력입니다. 서구 비평가들이 하듯 한 작가에 천착하게 되고 작가는 우주의 별처럼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장편소설 대망론을 믿으면서도 최근 출판사와 일부 언론에서 일고 있는 ‘장사 논리’는 경계했다.“문학을 해외시장에 수출하기 위해, 일본 문학에 대응하기 위해 장편소설을 내라는 건 박정희 시대의 논리죠. 요즘 일부 언론에서 만든 문학상이나 출판사들은 새로운 네이밍을 통해 작가들에게 대중소설이라는 수요를 창출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독자들이 원하는 거죠. 잘 된 장편은 독자를 일주일간 기쁘게 해줍니다.” 김영하는 ‘예술가 사회’에선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고 내다봤다.“미래에 나쁜 일만 생길 거라 보는 문화적 비관주의는 언제나 실패해왔습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영어제작으로 월드마켓 공략” 이승재 LJ필름 대표 “향후 한국영화 산업을 지배할 키워드는 ‘글로벌’이다.” 이승재(43) LJ필름 대표는 “지난 15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온 한국영화 산업은 현재 한계점에 다다랐다.”면서 “이제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 유통 등 성장을 담보하는 제반 여건이 다 갖춰진 한국영화 내수시장은 더이상 ‘파이’를 늘릴 수 없는 상태라는 것. 그는 비용 대비 수익률이 마이너스 30∼40%에 달하는 현 시점에서 대안은 해외시장 개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영화를 잘 만들어 수출하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우리의 문화를 영어로 제작해 알리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제작해 알렸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는 ‘괴물’을 예로 들면서 아무리 훌륭한 콘텐츠라도 자국 언어로 제작되면 ‘월드 마켓’에서 뛰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망을 대변하듯 올들어 충무로에서는 해외 합작이 심심찮게 추진되고 있다. 나우필름이 미국 영화사 VOX3과 손잡고 만든 첫번째 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이 얼마 전 한국 관객과 만났고, LJ필름 또한 ‘프린세스 줄리아’를 한·미합작으로 제작한다. 영화는 조선의 마지막 황태손이었던 이구와 그의 미국인 부인 줄리아 멀록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와호장룡’ 등을 제작한 미국 유니버셜 포커스와 손잡은 이 영화는 현재 시나리오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 2억달러를 벌어들인 그리스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처럼 한국적인 소재이면서도 다같이 공감할 수 있는 ‘크로스컬처 아이템’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대가보다 다수 결집 창작 증가” 김현철 작곡가 겸 가수 가수 김현철(39)은 미래 대중음악의 키워드로 ‘다양화’를 제시했다. 그것은 또한 21세기와 이전의 대중음악을 구분짓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2000년 가까이 전해져 내려온 음악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쯤 전입니다. 대중에게 대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음반이란 형태의 ‘디바이스(도구)’가 등장한 덕분이죠. 현재도 CD를 거쳐 MP3 등으로 더욱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고요. 이런 다양한 형태의 도구들이 급격한 음악시장의 변화를 가져왔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튈지는 아무도 쉽게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21세기 대중음악의 트렌드는 소수의 대가가 아니라 다양한 뮤지션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특징. 방송과 몇몇 가요제가 가수 등용문의 전부였던 예전과 달리 UCC 등을 통해 누구라도 쉽게 가수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대중이 음악을 접하는 도구 또한 공중파 방송 일변도에서 모바일, 케이블 음악방송, 인터넷 음악전문 사이트 등으로 다양하게 재편되고 있다. “음악을 전달하고 수용하는 도구의 확대는 음악가들에게 더욱 다양한 음악을 생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장르의 융합단계는 이미 넘어섰습니다. 이제 모바일에 적합한 음원은 물론, 데커레이션 음악(장난감에 사용되는 음악)까지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다양성이 양질의 음악 생산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문화가 활성화되면서 ‘공연 브랜드’가 많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 또한 음악가와 다양한 ‘디바이스’를 연결해주는 기획·프로모션 부문에 현재보다 한층 진보된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표현도구 다양화” 정연두 최연소 ‘올해의 작가’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는 밝고 발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동안 작품의 질에 비해 저평가돼 왔죠.” 회화, 조각 등으로 경계를 나누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한 현대미술.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독특한 접근방식을 보여주는 작가 정연두(38) 역시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탈장르’로 규정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그는 멀티 플레이어적인 작업으로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95년부터 매년 뽑는 ‘올해의 작가’에 30대로는 처음 선정된 정연두는 현대미술의 변화와 흐름을 잘 보여주고 대처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무형에 의해 지배되는 유형’처럼 현대 미술에서 장르의 경계를 만드는 것 자체가 우습다.”며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확실한 세계가 있다면 어떤 표현매체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 역시 대학에서는 조소를 전공했지만 요즘 주로 사용하는 표현방식은 사진과 비디오다. 정연두는 앞으로 그처럼 작품활동만 하는 한국의 전업작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전업작가 한 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한 작가를 공부하고, 응원하는 팬이자 컬렉터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인구의 겨우 1%가 컬렉터지만, 그 수가 늘어나면 전업작가 시스템도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 작가들은 일회성이 아닌 꾸준한 작업태도를 견지할 수 있고, 컬렉터층도 극소수의 부유층이 아닌 개미군단으로 넓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지원받는 작가가 진짜 예술을 한다

    독일에서 ‘세오(Seo)’로 알려진 재독 화가 서수경(30)씨는 요즘 스포츠카를 몰고 다닌다.27살의 배고픈 유학생에서 그는 ‘베를린 신데렐라’로 바뀌었다. 지난해 서씨를 만나본 한 작가는 “서씨가 밤새워 작품을 만드느라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고 말했다. 서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서씨는 수년전, 지난해 서울 청담동에 지점을 내 한국에도 소개된 독일 화랑 마이클 슐츠 갤러리의 전속작가가 됐다. 서씨의 작품은 마이클 슐츠가 전량 구매한다고 한다. 서씨는 작품 판매나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작업에만 매진하면 된다. 한국의 전업작가로서는 꿈 같은 이야기다. 미술 전문가에 따르면 인상주의 이후 굵직한 사조 뒤에는 유능한 화상이 존재했다. 입체주의·야수파 뒤에는 볼라르가, 추상표현주의에는 페기 구겐하임, 팝아트에는 레오 카스텔, 영국의 YBA에는 찰스 사치 등이 있었다. 이는 미술시장이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시장으로 편입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시기에 작가들도 후원자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나갔다. 우리나라에도 현대화랑과 가나화랑 등에서 작가들과 전속계약을 맺고 작품활동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 숫자와 범위가 제한적이고 지원 폭도 한계가 있다는 평가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한 젊은 작가는 “예술은 배고파야 한다지만, 지원을 받는 예술가가 진짜 예술을 할 수가 있다.”고 말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최은주 덕수궁미술관장은 “화랑은 자영업자들이니까 작가들과 합의가 된다면 이익구조를 6대4나 5대5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국제적으로 발전하려면 ‘국제적 표준’이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화랑에서 작가의 작품을 구입한 뒤 일정한 마진을 붙여 일반인에게 팔면 탈세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최 관장은 “한국 미술시장을 선진화하기 위해 미술시장을 진단하는 용역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영국 정부는 ‘터너상’ 제정, 미술관 개조 등에 수없이 돈을 쏟아붓고 미술업계를 장려했다. 100억원 이하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신규 작품 구매 예산도 확충돼야 한다. 한 점에 40억원이 넘는 박수근씨의 작품 서너 점을 구입하면 끝나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K옥션의 김순응 사장은 “유럽에는 미술작품이 거래될 때마다 일정한 비율을 작가나 유족에게 지불하는 제도가 있다.”면서 “일종의 저작권 같은 것인데,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라도 비싸게 거래될 때 그 혜택을 주는 제도로 우리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문소영기자symun@seoul.co.kr
  • [김종면 기자의 책 안 세상 책 밖 풍경] 시인의 길,소설가의 길

    “당신들처럼 시를 쓰면, 나는 발가락에다가 볼펜을 찔러가지고 하룻밤에 백 편도 더 쓸 수 있어요.” 소설가 한승원(68)이 30대 초반, 문인들의 망년회에서 술에 취해 시인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몰매라도 맞을 일이지만 그 자리에 있던 시인들은 그냥 웃기만 했다고 한다. 한승원은 훗날 치기어린 당시의 일을 첫 시집 ‘열애일기’(1991년) 서문에 사죄하듯 이렇게 적었다.“아아, 그 얼마나 오만방자한 소리였던가.…그때 맞지 않은 몰매를 세상의 모든 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맞을 생각이다.” 한승원은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사실 어릴 적부터 시를 써온 수준급 시인이다. 시와 소설 혹은 소설과 시. 그의 고백이 아니더라도 이는 우열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다. 시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여름호가 ‘시 쓰는 작가, 소설 쓰는 시인’이라는 특집을 꾸몄다. 시와 소설, 그 장르 이동의 양상을 소상하게 다뤘다. 눈길을 끄는 것은 동국대 김선학 교수가 지적하듯, 시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소설가로 변신한 ‘시인 소설가’들은 많지만 소설가에서 시인으로 전향한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그 이유의 일단을 소설의 환전성(換錢性)에서 찾았다. 시와 달리 소설은 ‘돈’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긴 하다. 원래 시로 등단했지만 소설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공지영이 끝내 시의 길을 걸었다면 오늘날 ‘고소득’ 문인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시인들이 콤플렉스 속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가끔 푸념 아닌 푸념을 할 뿐이다. 신문사 신춘문예 철이 되면 시인들은 문학기자에게 항의섞인 말을 던지곤 한다. 왜 시와 소설의 상금이 차이가 나느냐는 것이다. 단지 글의 분량 때문에, 아니면 소설이 시보다 더 어려운 장르라서? 기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림에도 호당가격제라는 게 있지 않으냐는 되지도 않는 말만 해줄밖에. 신춘문예에서만이라도 시는 소설과 같은 값을 받아야 한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돈의 유혹에 이끌려 시를 버리고 소설 쪽으로 자기 문학의 본령을 옮기지는 않는다. 정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쓰지 않을 수 없을 때 시인은 소설을 쓰기도 한다. 정호승의 소설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 같은 것이 그 두드러진 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 시의 영토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나이가 들면 시를 쓰게 되는가.‘통섭(統攝)의 지식인’ 이어령은 언젠가 “반세기에 걸친 내 글쓰기의 대단원은 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말대로 그는 최근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시업(詩業)에 들었다. 시는 어쩌면 문학의 알파요 오메가인지 모른다. 시든 소설이든 하나의 장르만을 고집해야 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장르를 가로지르는 글쓰기는 다양성을 요구하는 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상업성에 휘둘려 이웃 장르를 기웃거리고 시류를 좇는 문학상업주의, 독자영합주의다. 현실이 아무리 고단해도 고고한 문학정신의 끈은 놓지 말아야 한다. jmkim@seoul.co.kr
  • [교정 대상 특별상]

    ■ 면려상 이경수 김천교도소 교위 정신질환을 앓는 수용자를 매일 직접 목욕시키고 보살핀 희생정신의 소유자다.1996년부터 2년 동안 징벌사동 근무를 자원해 불우한 징벌자들을 도왔다.2005년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워 변호사 선임을 할 수 없는 수용자들에게 국선 변호인 선임절차를 홍보해 150명이 김천변호사협회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받도록 도왔다.■ 성실상 김원태 여주교도소 기계장 자신의 일을 스스로 찾아 업무에 힘쓰는 성실한 공무원으로 남들이 꺼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1973년부터 86년까지 봉제2급기능사 13명, 기능사보 22명, 차량정비기사 7명, 기타 자격증 소지자 17명을 배출시켰다. 운전면허증을 딴 수용자도 23명에 이른다. 매달 독거 노인을 찾아 보살피는 등 지역사회 봉사에도 적극적이다.■ 창의상 김재우 부산구치소 교위 소년·여성 수용자들을 위한 한자 교육을 지원해 수용자들이 의욕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1990년 수용자가 어머니와 만난 뒤 비관해 자살까지 생각하자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주선하고 상담하며 수용자가 심리적 안정을 갖게 했다.2003년 ‘제례’ 책자 100여권을 직원들에게 배포하는 등 충효를 몸소 실천한다.■ 교화상 김남경 제주교도소 교위 수용자들의 작업 훈련과 수용자 기능자격 취득, 기능경기대회 입상지도에 힘썼다. 불우 수용자 3명의 벌금 108만원을 대납해 사회에 복귀할 길을 터줬다. 직원들과 ‘한라교정봉사회’를 결성해 수용자 29명에게 87만원을 지원했다. 시내버스가 교도소 입구까지 오지 않자, 시청과 협의해 교도소 입구에 정류소를 설치했다.■ 박애상 박상구 안양교도소 종교위원 안양신망애성결교회 목사로 1980년 서울구치소와 안양교도소 종교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형수 20명과 특별관리대상 수형자 40명, 무의탁수용자 20명과 자매결연을 맺어 계속 상담했다. 출소자에게는 취업과 결혼식을 주선해 삶에 대한 의욕을 불어넣었다. 출소자 보호시설인 ‘오네시모선교회 사랑의 집’을 운영한다.■ 자비상 박덕례 목포교도소 종교위원 옥주민속무용학원을 운영하며 한국무용협회 전남지부 부회장을 맡고 있다.1976년 수용자 대상 공연으로 교화활동을 시작해 교화 기자재 기증, 출소자 취업 알선에 힘써 왔다. 서화에 재능을 보인 수형자가 출소하자 목포 유명화가 화실을 소개해 서화지도를 받게 해 작품활동을 도왔다. 수용자 특별활동반 농악대 창설을 지원했다.■ 자애상 조남덕 대구구치소 종교위원 대구 경진가구사 대표로 1994년 대구교도소 교정사목후원회를 통해 수용자 생일잔치에 참석한 이후부터 수용자 종교상담, 출소자 취업알선에 참여했다.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때 교정 참여인사를 중심으로 성금을 모아 전달하고, 서문시장 화재나 광주지방 폭설 때에도 현장을 방문해 자원봉사를 했다.■ 공로상 최태향 대구교도소 교화위원 한·몽 불교교류협회 부회장으로 1989년 수용자와 자매결연을 맺으며 교화활동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175차례에 걸쳐 2320여명의 문제 수용자와 자매결연을 맺어 상담하고 영치금과 다과비 등 2430여만원을 지원했다.2001년 대구교도소에 관세음보살 입상을 봉안하며 1750만원을 건넸다.
  • [HAPPY KOREA] 부산 기장군 대룡마을

    [HAPPY KOREA] 부산 기장군 대룡마을

    기장군은 ‘부산’이란 대도시에 속해 있으면서도 농사와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많다.1995년 행정구역개편으로 부산시에 편입되기 전까지 경남 양산군에 속해 있었다.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개발이 덜 됐다. 고리 원자력 발전소 주변인 장안읍 지역은 30여년간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다. 그만큼 주민들이 재산권 행사를 못했다. 넓은 녹지와 천혜의 자연 환경이라는 얘기도 된다. 그런 기장군이 요즘 관광·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관광 및 산업단지, 신도시 등이 조성되고, 행정자치부의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시범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전환기를 맞은 것이다. 부산지역 문화·예술인의 메카로 변신하는 장안읍 오리 ‘대룡마을’을 다녀왔다. ●“시범지 선정됐을때 소 한마리 잡았죠” 요즘 대룡마을엔 또 다른 ‘봄’이 왔다.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마을 전체가 발전을 못했는데,2002년 그린벨트에서 해제된 데 이어 올해는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시범지역’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최근엔 수십년간 사용해 온 마을 공동의 간이 상수도를 부산시에서 공급하도록 시설을 교체 중이다.“2월에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시범지역으로 선정됐을 때 큰 소 한 마리 잡아 주민들이 잔치를 했죠.”마을 이장 김덕용(45)씨의 말이다. 그린벨트로 묶여 개발의 사각지대에 있다가 마을에 ‘좋은 기회’가 오자 주민들이 모여 대대적인 잔치를 벌이고 ‘의기투합’을 한 것이다. 실제로 이 마을은 대도시에 있으면서도 도시라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78가구로 형성됐지만 상당수의 집들이 낡았다. 그동안 개·보수를 못한 탓이다. 마을 입구엔 1960∼70년대에 농촌에서 볼 수 있던 정미소가 여전히 남아 있다. 정미소 주인 이수봉(75)씨는 “네 아이를 모두 공부시켰는데 이제는 집집마다 도정기계가 있어 ‘자가용’이 됐다.”며 웃는다. ●78가구중 21가구가 도예·조각등 예술종사자 마을 골목길을 따라 토담이 정감 있게 꾸며져 있고 일부 집들은 몇년 전부터 폐가로 방치됐다. 이 마을은 인근에 고리원자력 1∼4호기가 건설되면서 그린벨트로 묶였다. 요즘엔 원자력 관련 시설이 들어오면 여러 모로 특별대책이 마련됐지만 그 당시는 그런 것이 없었다. 국가 발전의 일익을 담당했지만 희생만 따른 것. 이곳의 또다른 특징은 문화·예술인들이 많다는 점이다. 몇년 전부터 예술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이제는 부산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인촌이 됐다.78가구 가운데 21가구가 도예, 조각, 조형, 목공, 서각, 불교 등의 예술에 종사한다. 이곳에서 생활을 하며 직접 작품활동도 하는 것이다. 이들이 이주하면서 줄어들던 주민 수도 늘고 있다. 이장 이씨는 “다른 지역의 경우, 원주민과 외지에서 들어온 예술인들이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마을은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이 장점”이라면서 “달집 태우기 행사 등 마을 행사에도 예술인들이 적극 참여한다.”고 귀띔했다. 예술인들은 작품 활동 장소로 폐축사를 이용하고 있다. 소를 키우던 축사가 방치되자 개조해 사용한다. 도자기 작가인 하영주(34·여)씨는 “7∼8년 전 남편과 함께 이곳에 들어왔는데 전혀 불편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곳에 사는 예술인들은 1997년 모임인 ‘아트인 오리’를 결성한 이후 도시보다 활동하기가 좋다고 입을 모은다. 주민인 김경호(34)씨는 “젊은 작가들이 전시회를 할 때 마을 주민들이 초대권을 만들어 주는 등 협조를 많이 해준다.”면서 “예술가들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전시한 작품 중 마을에 맞는 것을 전시해 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우리마을은 서로 잘 어울리는게 장점”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 김수환(69) 추진위원장은 “마을에 특색 있는 것은 없지만 인화가 잘돼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을 출신으로 예술인들의 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정동명(38·동아대 강사)씨는 “이제 시작이지만 주민간 단결이 잘되는 만큼 마을 어르신들과 힘을 합쳐 정말 좋은 곳으로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의지를 내보였다. 부산 김정한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생활예술문화터’ 만들기 사업은 대룡마을은 오랫동안 개발에서 소외됐었지만 최근 들어 각광을 받는 곳이다. 개발이 안됐던 것이 오히려 기회가 된 셈이다. 주민간에 단단한 유대감이 사업 추진에 무게를 더 실리게 한다. 특히 고리원자력발전소로부터 매년 7000만원씩 받는 지역개발기금 수입으로 주민 부담을 최소화해 생활 여건을 더 개선할 수 있다. 주민 가운데 예술가들이 많은 점도 마을을 재창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군과 주민들은 대룡마을을 삶과 문화, 예술, 놀이, 휴식, 레저를 아우르는 ‘생활예술문화터’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도시민에게는 농촌 및 문화·예술 체험 공간으로, 주민에게는 소득 증대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곳은 수십년간 국가 발전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것을 감안해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가 우선 이뤄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마을 내 3㎞가량의 계획도로를 내기로 했다. 마을 내에 어린이공원을 조성해 주민과 외지인의 휴식 공간으로 제공한다. 예술 작품을 구입하러 오는 손님들을 위해서는 700평 규모의 주차장을 마련한다. 상수도 공급을 마무리하고, 전선도 미관을 고려해 모두 지하로 넣기로 했다. 하수처리장을 설치하는 한편 마을 앞 하천도 자연형으로 정비를 추진한다. 주민의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보건진료소 시설을 보강하고, 문화·환경시설도 집중 설치한다. 공동 부지에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복합 전시관을 세울 계획이다.1층은 마을회관과 노인정, 찜질방, 휴식공간 등을 조성한다.2층엔 전시실과 아트숍, 예술체험관 등을 설치하고 3층은 종합 회의실과 마을 운영센터, 휴식공간 등을 꾸민다. 마을 진입도로변에 조각공원을 만들고 밀랍인형전시체험관도 마련한다. 마을의 숲이 우거진 곳에 가족단위로 마음놓고 즐길 수 있도록 체험교육장, 놀이시설, 어린이도서관 등을 갖춘 어린이캠핑장도 조성한다. 아울러 자전거도로를 겸한 산책로로 꾸민다. 공동작업장과 농특산물 직거래 장터도 만든다. 부산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30년동안 그린벨트 생활여건 개선부터 “다른 나라들이 조상들의 문화를 잘 보존해 많은 혜택을 보는 것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어요.” 최현돌 기장군수는 “지난해 해외 연수 중에 여러 나라들이 관광 및 문화자원을 이용해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에 감탄했다.”고 털어놨다. ‘살기좋은 지역만들기’해외 연수 차원에 유럽 지역을 다녀왔는데 대부분의 나라에서 선조들이 남긴 문화를 잘 보존해 후손들이 혜택을 본다는 것이다. 굴뚝산업처럼 자연 파괴나 매연 유발 등을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관광산업으로 톡톡히 수입을 올리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고 했다. 최 군수는 “연수에서 돌아오면서 대룡마을도 잘 가꾸면 ‘명품마을’로 만들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섰다.”고 설명했다. 대룡마을은 30년간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탓에 자연이 잘 보존된 장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게다가 울산과 부산 사이에 위치해 문화와 관광쪽에 포커스를 맞추면 좋은 결과를 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쪽 도시 주민들이 휴식과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군수는 일단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생활여건 개선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생활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올해 27억원의 추경 예산도 편성했다. 살기좋은 지역만들기를 추진하기에 앞서 대룡마을의 생활 여건을 개선할 예정이다. 그는 인근에 고속 전철이 놓이고,100만평 규모의 동부산권 관광단지 개발사업과 신도시, 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마무리되면 기장군의 인구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역에 원자력의학원 동남권 분원이 내년 말 완공되고 중립자 가속기 유치가 성사되면 최고의 의료중심도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도예촌과 체험센터 등 도시민을 위한 다양한 학습장을 만들면 문화·의료가 어우러진 ‘살기좋은 지역’으로 변모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부산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아하! 이 그림] 루이스 부르주아 ‘출구 없음’

    [아하! 이 그림] 루이스 부르주아 ‘출구 없음’

    요즘 한국의 안방극장은 김수현 작가의 독한 ‘불륜 드라마’에 점령당했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불륜을 어떻게 풀어갈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루이스 부르주아(96)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자적 조각작품으로 불륜의 상처를 극복하려 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양탄자 수선사업을 해온 집안에서 태어난 부르주아는 영어 가정교사와 불륜관계를 맺은 아버지를 보고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배신의 상처와 아버지에 대한 증오, 어머니에 대한 연민은 부르주아가 아흔이 넘어서까지 작품활동을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부르주아는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옥상 조각공원과 리움미술관 야외에 전시된 거대한 거미조각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합니다. 거미는 작가가 스무살 때 사망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부르주아는 거미 조각에 ‘마망’이란 작품명을 붙이기도 했지요. 그럼 오는 6월29일까지 국제갤러리(02-733-8449)에서 전시되는 그의 회고전 ‘추상성’전에서 아버지는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볼까요. 거미 외에 ‘밀실’과 같은 거대한 설치작품은 부르주아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출구 없음(사진 위)’은 일단 그 모양 자체가 남성의 고환처럼 보입니다. 계단 뒤로는 부모의 이야기를 엿듣는 아이를 형상화한 추상적인 조각이 있습니다. 아무 곳으로도 향하지 않는 계단에서는 근본적인 불안감과 도피심리를 엿볼 수 있는데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실망한 부르주아의 마음이겠지요. 두달전 부르주아를 만난 이현숙 국제갤러리 대표는 작가가 여전히 건강하다고 전했습니다. 정신은 말짱해 창작의욕에 불타지만, 몸이 따르지 못해 괴로운 처지라고 하네요. 기존의 어떤 양식이나 범주로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 온 부르주아. 추상에 가까운 기둥 형태의 인물상, 신체의 부분이나 성적인 이미지를 에로틱한 형상으로 표현한 조각, 손바느질한 천조각까지 작품의 소재나 기법도 매우 다양합니다. 젊어서는 불륜에 대한 분노를, 나이 들어서는 용서와 화해를 표현한 부르주아의 대규모 회고전이 올 가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하네요.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한국 畵商, 中미술시장 주무른다?

    한국 畵商, 中미술시장 주무른다?

    “한국 화랑들이 중국에 진출함으로써 국제아트페어나 비엔날레에서 소개되던 작가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중국인에게 열렸다.” 지난해 11월 베이징에 문을 연 PKM갤러리의 중국 직원 거스 체(27)의 말이다. 지난 2005년 갤러리 이음을 시작으로 현재 중국에 문을 연 한국 화랑은 7곳에 이른다. 지난 15일 아트사이드는 한국의 인사동이라 할 만한 중국 베이징 다산쯔(大山子) 798지구 중심가에서 한국 작가 박선기의 개인전으로 개관식을 했다. 1999년 인사동에 문을 연 아트사이드는 2000년부터 장샤오강, 웨민준 등 중국의 블루칩 작가들을 한국에 소개해 왔다. 베이징 아트사이드는 그간 중국 화랑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아트상품으로 눈길을 끈다. 중국의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으로 수첩·가방·티셔츠·그릇 등의 아트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230여개 화랑과 작가들의 아틀리에가 밀집한 798지구를 찾는 중국인과 해외관광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아트사이드가 중국 개관전으로 선택한 박선기는 숯을 이용한 설치작품을 만든다. 박선기는 지난 2월 스페인 아르코 아트페어에서 포르투갈 화랑이 그의 작품을 출품해 모두 판매될 정도로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고 있다. ●한국미술수집가들 현지작품 싹쓸이 현재 베이징은 내년 8월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온 도시가 공사중이다. 새로 들어서는 호텔과 건물을 장식하기 위해 수많은 조형작품과 그림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다. 한국 화랑들로서는 큰 시장이자 기회인 셈이다. 아직 중국 화랑과 한국 화랑 사이에는 간극이 크다. 회화를 주로 전시하는 중국 화랑에 비해 한국 화랑은 비디오나 설치 작품으로 중국 미술계에 신선함을 주고 있다. 표갤러리의 경우 서울 화랑과 상하이 미술관의 전시를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 전시됐던 스페인 여성작가 알리시아 프라미스의 작품이 베이징에서 전시중이다. 지난해 3월 표갤러리, 아라리오 베이징이 있는 주창(酒廠) 지역에서 개관한 문갤러리는 활발하게 중국 작가의 작품을 판매중이다. 박철희 대표는 “베이징 아트페어 등 전시가 많은 4∼5월에는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그림을 사러 오는 사람이 하루에 수십명씩이나 된다.”고 밝혔다.2×4m의 작품이 2억원 이상의 값으로 팔리는 인기작가 펑정제의 경우,1년 이상 기다려 겨우 작품을 얻어낼 정도라고 한다. 해외경매를 통해 명성을 얻은 소위 블루칩 작가들은 1년 사이 그림값이 3∼4배 오른 탓인지, 한국의 미술수집가들이 중국에 몰려오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20대의 젊은 컬렉터들도 있어, 한명이 자오넝즈 등 중국작가 작품 5점 이상을 한꺼번에 싹쓸이하는 경우도 있었다. 박 대표는 “그림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명단이 너무 길어 주문을 받지 못할 정도”라고 현황을 전했다. ●해외 진출하는 한국 미술의 미래 중국의 소호라 불리는 798지구에서는 국내 화랑 아트사이드와 이음이 독일, 이탈리아, 태국 등의 해외 화랑 및 중국 화랑과 경쟁중이다. 한국 화랑들의 주요 고객은 중국에 지사를 낸 다국적 기업과 6000만명으로 추산되는 중국인 수집가와 한국인들이다. 중국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림의 가치와 가격이 다르다는 중국 내부의 분석도 있다. 한국의 화랑들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 영국, 홍콩 등에도 지점을 내며 미술의 세계적 흐름을 함께하고 있다. 조각가 박성태씨 등 중국에서 작업장을 열고 작품활동을 하는 한국 작가들도 늘고 있다. 한국 화랑의 세계화가 한국 작가들의 세계화와 얼마나 같이 보조를 맞출지는 두고 볼 일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Metro] 이원달 전 광진구청장 1억원대 미술작품 기증

    서울시 공무원 출신(전 광진구청장, 중랑구 부구청장 역임)으로 서울미술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이원달 서양화가가 1억원 상당의 미술작품 26점을 서울시 보호시설 13곳에 무상으로 기증하기로 했다.미술작품은 이 화가가 38년간 작품활동을 하며 7회의 개인전과 2006년 고희기념 작품전시회에 출품했던 것이다. 기증식은 30일 오후 5시 시청본관 태평홀에서 열린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Metro] 이원달 전 광진구청장 1억원대 미술작품 기증

    서울시 공무원 출신(전 광진구청장, 중랑구 부구청장 역임)으로 서울미술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이원달 서양화가가 1억원 상당의 미술작품 26점을 서울시 보호시설 13곳에 무상으로 기증하기로 했다.미술작품은 이 화가가 38년간 작품활동을 하며 7회의 개인전과 2006년 고희기념 작품전시회에 출품했던 것이다. 기증식은 30일 오후 5시 시청본관 태평홀에서 열린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민주화 됐지만 민중미술은 계속될 것”

    30여년간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얻은 이익을 모두 미술품 수집에 쏟아부은 한 기업인의 발품과 식견이 전시회를 통해 빛을 보게 됐다. 1985년부터 특히 민중미술 작품을 200여점 수집한 조재진(60)씨가 그간 모은 작품 100여점을 가나아트센터에서 2∼19일 ‘민중의 힘과 꿈:청관재 민중미술컬렉션展’이란 이름으로 전시한다. 청관재는 미술애호가 조씨가 추사 김정희의 낙관 청관산인을 따서 과천에 있는 자택에 붙인 이름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신학철, 오윤, 홍성담, 임옥상, 강요배, 박불똥 등 8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미술 작가 23명의 작품이 모였다. 조씨는 미술품 수집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1일 “아이들 교육과 부부가 평생 같이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순한 취미로만 그치지 않아 지난 30년간 매주 수요일이면 부부가 인사동 화랑가를 함께 순회했다. 살면서 닮기 마련이라는 부부는 나중에는 고르는 그림도 일치했다. 조씨의 민중미술 수집에 필연적으로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었던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민족미술협의회에서 개관한 화랑인 그림마당 민의 첫번째 고객이 청관재였다.”고 회고했다. 군사정권으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은 민중미술은 그림이 압수되고, 화가가 구속되고, 벽화가 지워지고, 전시장 대여가 통제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피가 뚝뚝 흐르고, 머리가 잘려나가고, 똥이 등장하는 등 남들은 지저분하다고 외면하는 작품도 조씨는 선뜻 구매했다. 조씨는 “민중미술은 힘과 생명력을 느낄 수 있고 감동을 준다.”고 설명했다. 또 민중미술은 이미 관에 묻혀 못질을 당했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올해가 민주화 20주년이지만 민중미술은 끝나지 않았다. 신학철, 임옥상, 김정헌 등의 작가는 여전히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중미술 작가들은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려 하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했을 뿐이란 것이 조씨의 생각이다. 빛나는 시대정신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의 씨를 뿌린 민중미술 작가들의 활동은 최근 ‘회화의 복권’이란 유행어를 만들며 주목받는 표현주의 회화로 열매맺었다는 것이 미술계의 평가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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