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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낯선 감정 만나보는 기쁨이란…

    “좋아서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은 것도 아닌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녀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57쪽) 이런 오글거리는 이야기를 비록 짧은 소설이지만 뻔뻔스럽게도 잘도 늘어놓은 사람은 일본의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45)이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은행나무 펴냄)는 작가가 ‘하늘 모험’에 이어 두 번째로 내놓은 여행 작품집. 단편소설보다 짧은 원고지 30장 안팎의 짧은 소설과 에세이가 18편 들어 있다. 주인공들은 서른 살에서 쉰 살 사이의 사람들로,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쿄의 대학으로 떠난 아들이 자취하는 집을 찾아가는 어머니, ‘베스트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생애 첫 해외 여행지인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미혼 여성, 고등학교 때 어느 기차 역에서 만난 도쿄의 낯선 여행객처럼 쉬는 날이면 비행기를 타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시골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부동산업자 등이다. 여행에 대한 설렘과 불안, 자유와 불편들이 한 소설 안에 엇갈리며 소개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여행이란 어떤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친구나 이성에게 도전하고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낯선 감정들 역시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파리로 제과 공부를 떠난 10여년 전 연인을 비행기 안에서 만나 그녀의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슬쩍 찾아보는 태도나, 도쿄에 살며 이젠 잘나가는 소설가가 됐지만, 고등학교 때는 뭔지 야비하달까, 의리가 없달까 했던 친구를 기다렸지만 ‘신주쿠까지 나오는 것이 귀찮다’는 음성메시지에 기뻐하는 태도 등 말이다. 국내에 적잖은 팬을 가진 작가의 글은 대단히 감각적이고, 평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솔직하다 못해 무거운 돌로 꾹 눌러놓고 싶은 비양심적인 이야기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놓는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말이 죽었다, 너와 통할 수 없다, 나도 말없이 사라진다

    말이 죽었다, 너와 통할 수 없다, 나도 말없이 사라진다

    우리는 멸종한 공룡에 열광하고 매머드를 그리워하며 살아 있는 화석 물고기 실러캔스의 존재에 감정이 고양된다. 그런데 현재진행형인 언어의 사멸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왜 백악기 공룡 화석에 대한 열광만도 못한 것일까.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전 세계에서 소멸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소수민족의 언어는 보름에 한개꼴로 사라지고 있고, 2100년까지 살아남을 언어는 고작 150개 정도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개의 언어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적정 인구가 1억명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남북한 7000만명이 쓰는 한국어도 안전지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최연소로 2013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김애란(33)의 단편소설 ‘침묵의 미래’는 소멸 위기에 처한 소수민족의 언어에 관한 소설이다. 1월 초 시상식에서 권영민 평론가가 이 소설을 두고 ‘말에 의한 말의 운명에 대해 쓴 알레고리적 소설’이라고 소개했을 때 궁금증이 한껏 고조됐었다. 한 종족이 자신들의 언어를 상실하는 과정은 문화와 역사, 그 존재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이다. 문화적 제국주의에 의한 지구 다양성의 파괴라고 할까. 종의 다양성은 동식물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삶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나’는 언어로서, 후두암 때문에 고생하던 아흔 살 노인이 죽은 뒤 빠져나온 언어의 혼이다. 노인이 살던 곳은 중앙에서 비켜난 황량한 땅에 세워진 ‘소수언어박물관’이다. 낮에는 박물관, 밤에는 기숙사가 된다. 소수언어를 지키고 있는 고령의 언어담지자 한두명은 ‘마지막 화자’들이다. 이들은 대화할 수 없다. 그저 1000여개의 전시장을 각각 지키고 앉아 드문드문 관람객이 찾아오면 인사말을 건네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보여줄 뿐이다. 대화와 소통이 안 돼도 언어라 할 수 있을까. 김애란은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자신이 쩌렁쩌렁한 모어(母語) 한복판에, 우주 한가운데에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뒤늦게 울어 봐야 소용없었다. 다 죽고 살아남은 건 오직 자기 자신과 엄청나게 아름답고 어마어마하게 정교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그 ‘말’뿐이라는 걸….”(16쪽) 소설은 묻고 있다.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해 세웠다는 박물관이 오히려 잊어버리기 위해, 멸시하기 위해, 죽여 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냐고. 그저 기록과 관리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기계적 배려에 대한 독설이다. 당선작과 함께 실린, 김애란이 직접 뽑은 대표작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나 문학적 자서전 ‘카드놀이’, 선배 작가인 편혜영이 쓴 ‘작가론: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당선작과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카드놀이’에서 김애란은 ‘송방’(가게)이라는 말을 듣고 “모름지기 부모란 자식들에게 옛말을 새말처럼 알려주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지…”라고 서술한다. 편혜영의 작가론은 김애란을 두고 “유머를 다룰 줄 안다”고 평가하는데 그 맥락도 이해할 수 있다. 편혜영은 “애란이는 눈으로 생각하는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 애는 검고 커다란 눈을 장난스럽게 뜨고 우선 세계를 오래, 고이, 깊이, 머물러 바라본 후에 검은 눈으로 자기 안쪽을 들여다본다. (중략) 근육을 수축해 생각을 도약한 다음 애란이는 대개 농담으로 착지한다”고 했다. 2013년 이상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 펴냄)에는 이 밖에도 우수상을 받은 8개 작품이 소개됐다. 멕시코에서 날아온 한 통의 이메일을 통해 어린 시절 멕시코 삼촌이 들려주던 아코디언 선율과 먼 곳에 대한 향수를 그린 함정임의 ‘기억의 고고학’과 성폭행범으로 지목돼 고통을 당해야 했던 한 남자를 피해 당사자인 소녀와 대면시킴으로써 거짓과 타협해 간신히 파국을 면한 위태로운 삶을 보여주는 편혜영의 ‘밤의 마침’, 건조하면서도 사실적이고 강한 흡입력을 보이는 김이설의 ‘흉몽’ 등이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한국연합복권, 복권에 희망을 담다

    한국연합복권, 복권에 희망을 담다

     한국연합복권 (대표 강원순)은 26일 오전 11시 본사 대회의실에서 ‘2012 복권에 담긴 희망공모전’ 시상식을 개최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가 후원하고 한국연합복권이 주최한 이번 공모전은 ‘복권 한 장으로 느끼는 기대, 희망, 그리고 꿈’ 이라는 주제로 스토리(수기), UCC(동영상), 인쇄 복권 상품 디자인 등 3개 부문의 작품들을 모집했다. 지난 7월 23일부터 8월 31일까지 총 472편의 작품이 접수됐으며 내·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거쳐 총 39편의 수상작(수기 15편, UCC 11편, 디자인 13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수기 부문 대상(여행상품권 200만원)을 수상한 강민구씨의 ‘아버지가 주신 복권’은 군 전역 후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겪던 필자가 아버지께서 주신 연금복권을 통해 희망을 되찾은 뒤 지금은 작곡공부에 매진하며 꿈을 키워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UCC 부문 대상(상금 300만원) 수상작은 정훈씨의 ‘행복한 복권, 희망의 복권’이라는 작품으로, 복권의 밝고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내용을 신나는 멜로디의 창작곡과 애니메이션을 곁들여 구성해 눈길을 끌었다.  대상이 선정되지 않은 디자인 부문에서는 오유민씨의 ‘마음으로 그린 민화’가 최우수상(상금 200만원)으로 선정됐다. 복을 주는 의미의 동·식물을 고전적인 느낌을 살린 디자인으로 재해석해 복권에 담은 이 작품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저마다의 꿈과 희망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을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원순 한국연합복권 대표는 “복권을 통해 꿈과 희망을 갖게 된 여러분들의 사연을 보며 잔잔한 감동과 뿌듯함을 느꼈다.”면서 “앞으로도 복권을 통해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국민들에게 희망과 행복 및 재미를 전달하기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각 부문별 수상작은 공모전 공식홈페이지(contest.bokgwon.or.kr) ‘수상작 갤러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오는 10월에는 작품집으로 만들어져 복권 판매점에 배포될 예정이다. 인쇄복권 디자인 부문 수상작은 내년부터 실물 복권으로도 제작돼 시중에 판매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쉽고 친숙한 음악으로 관객 직접 찾아가 소통… 클래식의 대중화 절실”

    “쉽고 친숙한 음악으로 관객 직접 찾아가 소통… 클래식의 대중화 절실”

    올해 들어 국내 클래식 공연 무대에 가장 많이 선 사람을 꼽으라면, 피아니스트 권순훤(32)을 대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이지 클래식’이라는 큰 틀 안에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 시의적절한 주제를 담거나 명화 같은 다른 영역의 작품을 접목하면서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신당동 충무아트홀에서도 그는 어김없이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날 저녁 예정된 청소년 실내악 콘서트의 첫 문을 여는 ‘나는 피아니스트다’ 리허설 중 그는 “뭘 좀 먹고 올게요. 배고파서 정신이 없어서.”라면서 대기실로 뛰어들어갔다. 허기를 고작 샐러드 정도로 채웠는데도 꽤 말쑥하고 생기있게 변해 무대로 돌아왔다. 연주 활동뿐만 아니라 음반 녹음과 저술 활동에, 최근 서울종합예술학교 음악예술학부 피아노과 겸임교수로 임명되기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英 로열왕립음악원 합격도 포기 “클래식 음악의 성장 동력이 바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적극적으로 관객층을 넓히고 지역 곳곳에 있는 공연장을 찾아가면서 저변을 확대해야 하죠. ‘클래식 대중화’는 클래식 음악이 가진 격조나 품위를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디딤돌이 되고, 징검다리가 되고 싶어요.” 그가 이다지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이유이다. 2007년부터 체르니 피아노곡 컬렉션, 부르크뮐러 연습곡 시리즈와 소나티네 작품집 등 차곡차곡 음반들을 선보이고, ‘피아노 콜렉션’이라는 책도 내면서 대중을 만났다. 그러던 2008년 굉장한 기회가 왔다. 영국의 음악 명문학교인 로열왕립음악원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서울대 음대와 대학원을 나오면서 음악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그에게 유학은 거쳐야 할 다음 차례였다. 그런데 런던으로 떠나지 않았다. “내게는 더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고 잘라 말했다. 음반으로, 책으로 대중과 만나는 일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믿음이었다. ●재미있는 해설 곁들인 음악회 빅히트 “사실 걱정도 컸다.”고 고백했다. “왜 그렇지 않았겠어요. 잘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쌓아온 평판까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강한 믿음과 노력이 어디 배신을 하던가. 그가 선보이는 다양한 음원들이 관심을 끌고 호평을 받으면서 용기를 얻은 그는 내친 김에 음원기획사인 ‘네오무지카’도 세웠다. 그렇게 지금까지 낸 음반이 50장이 넘는다. 체르니와 바이엘 같은 ‘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음악들로 채워 넣은 것이 발상의 전환이었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체르니와 바이엘, 하논의 작품을 접하는데 정작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아요. ‘내가 배우는 것을 원래는 어떻게 연주해야 하지’라는 궁금증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음반을 냈는데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죠.” 쉽고 친숙하게 다가간 음악들을 무대로 올려 2009년에 선보인 것이 ‘이지 클래식’이다. ‘말발 좋은’ 그가 해설을 곁들여 만든 음악회는 전석 매진을 기록하기도 하는 인기공연이다. 음악에 깃든 사랑 이야기를 담기도 하고, 명화를 덧대 적절한 음악을 선곡해 들려 주기도 한다. 명화를 보면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공연은 몇 해 전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만난 도슨트(해설가)에게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했다. “그림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클래식 공연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도슨트의 도움으로 공연에 이어 서적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내년 초쯤에는 ‘미술관에 간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으로 독자를 만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동생 아닌 제 이름만으로 충분” 그는 ‘클래식 대중화’라는 확고한 목표가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을 소개하면서 마냥 즐거워했다. 좋은 분위기를 틈타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늘 ‘가수 보아의 친오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 기분이 어떤가라는 물음이다. 그는 “동생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니까.”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공연기획사로서는 분명히 관심을 끌 수 있는 수단이 될 테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기획하는 공연에서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아요. 이제는 제 이름만으로도 충분해져야죠.” 인터뷰 내내 명쾌했던 그는 끝까지 호쾌한 모습으로 마무리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11)만화 비평서 냈던 시인 함성호

    [만화는 내 사랑] (11)만화 비평서 냈던 시인 함성호

    만화에 대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집이나 사무실로 찾아가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면 책장에 어떤 만화책이 꽂혀 있나 눈길을 주게 된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함성호(49) 시인의 집이자 사무실인 소소재(素昭齋)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웬걸, 서재에서 만화책을 찾아보기 힘든 게 아닌가. “만화는 만화당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냄새 퀴퀴한 소파, 라면 끓이는 냄새와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이중 책장, 복작복작한 분위기에서 봐야 제맛이죠.” 그런데 만화당이라니? 그가 나고 자란 강원도 속초에서는 만화가게를 만화당으로 불렀다고 했다. 함 시인의 추억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만화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만화책을 뒤적이다 저절로 한글을 깨우쳤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약주를 드신 아버지가 늦게 귀가해 만화책을 빌려 오라고 하면 밤길을 달려 만화당에 갔어요. 영업이 끝난 가게 문을 두드려 주인을 깨우곤 했죠. 하도 꼼꼼하게 고르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식구들이 모두 잠들어 있던 적도 많아요.” 그는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아버지가 특히 좋아했던 김기태 작가의 칼싸움 만화와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이근철 작가의 전쟁 만화를 꼽았다. “당시에는 만화가들의 그림체가 지금보다 더 개성 넘치고 다양했어요. 이근철 작가는 인물 얼굴을 길쭉하게 그리는 모딜리아니나 뒤뷔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정말 독특한 그림을 보여줬죠.” 함 시인은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로 허영만 작가를 꼽았다. 기본적으로 깊이가 있고 독자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취재가 잘된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전세훈·전인호 작가의 관상 만화 ‘신의 가면’을 좋은 작품으로 추천했다. “사실 초등학교 교과서는 만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옛날에는 만화가 황당무계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요즘에는 만화만 봐도 웬만한 교양을 다 습득할 수 있잖아요.” 그는 젊은 세대 못지않게 웹툰도 많이 본다. 새로운 표현 방법과 만날 때마다 열광한다고. 그는 정병식 작가의 ‘가족 사진’에 대해서는 스크롤에 따라 변화하는 시선 처리에 정말 감탄했고 난다 작가의 ‘어쿠스틱 라이프’의 경우 처음엔 몰랐던 감동이 해가 갈수록 서서히 생겨나게 하는 진정성이 엿보인다고 소개했다. “요즘 한국 만화는 일본과는 다른 범주로 다양하게 나가고 있어요. 한국만의 독특한 게 있지요. 우리 만화는 한국인의 삶을 기록하는 데 아주 탁월하다고 봐요. 기록화적인 역할을 하는 거죠.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고 당시 삶을 가늠하듯 요즘 우리 만화가 나중에 대단한 자료가 될 수 있어요. 지금 순수미술이 하지 못하는 일이죠.” 그는 창작에는 비평이 따라 줘야 하는데 우리 만화에 대한 비평이 활발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함 시인은 만화 비평서를 낸 얼마 되지 않는 국내 글쟁이 중 한 명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회화적인 시각에서 만화를 바라본 ‘만화당 인생’을 2002년에 냈다. 우리 만화를 비롯해 미국, 프랑스, 일본, 말레이시아 작품까지 다뤘다. 잘 안 팔려 ‘저주받은 걸작’이 됐다고 하는 그에게 비평서를 또 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부정적인 반응이다. “평생 즐겁게 만화를 봤는데 만화 보는 자체가 일이 되니까 가끔 짜증도 나더라고요. 올 초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주일에 한 번 만화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파업으로 중단하게 되니 너무 좋은 거 있죠. 허허허.” 그 대신 ‘페이퍼’ 등 대중잡지에 그렸던 카툰을 모아 작품집을 하나 낸다고 슬며시 말을 꺼낸다. 어쨌든 역시 만화 사랑 인생이었다.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4개국서 동시 사진전 여는 배병우 사진작가

    [김문이 만난사람] 4개국서 동시 사진전 여는 배병우 사진작가

    사진은 진실이다. 진실은 감동이다. 감동은 사랑이다. 여기에서 문제 하나, 피사체를 담는 카메라는 언제부터 나왔을까. 궁금하다. 잠시 어원을 들여다본다.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방 안을 어둡게 한 뒤 한쪽 벽면에 바늘 구멍을 뚫어 놓으면 방 밖에 있는 물체의 영상이 방 안의 벽면에 비친다는 것을 알았다.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네모난 상자의 한쪽 면에 바늘구멍을 뚫어 놓고 반대 면에 종이를 붙여 그림의 윤곽을 잡았다. 바늘구멍이 향하고 있는 쪽의 영상이 상자 속으로 들어와 종이에 비치는 기능을 활용했다. 이 같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는 오늘날의 사진기, 즉 카메라의 어원이 됐다. 재미난 과거의 뉴스 하나. 1839년 프랑스인 다게르에 의해 현재의 사진기가 처음 개발됐을 때 당시 유럽의 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하느님의 형상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포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신(神)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기계를 만들었다고 떠드는 다게르는 분명 바보 중의 바보다.” 아마 사람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이 영혼을 빼앗는 걸로 여겼던 것 같다. ●‘대양을 향하여’ 30일까지 여수서 사진전 지난 19일 오후 카메라를 들고 오롯이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다. 배병우(62)씨. 소나무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바다에 풍덩 빠진 사람이다. 서해안, 남해안, 제주도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올해로 사진 인생 40년, 궁금한 것은 만나서 물어보자는 생각으로 경기 파주 헤이리마을 작업실로 갔다. 어라, 약속된 시간인데도 탁구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업실에 있는 조교랑 주거니 받거니 잘도 한다. 약이 올랐다. 탁구 라켓을 잡고 같이 치자고 했다. 그런데 배씨는 왼손잡이.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왕년의 탁구 실력을 발휘해 볼 생각에 열심히 덤벼들었다. 오른쪽, 왼쪽으로 푸싱을 했다. 그런데 잘도 받아 낸다. 20분쯤 지났다. 땀이 눈을 자극했다. 항복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 왜 그렇게 체력이 좋으세요.”라고 인사했다. 육십이 넘었는데 민첩하게 탁구를 잘도 친다. 돌아오는 답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탁구에는 급수가 있어요. A급은 프로 선수고 B급은 아마추어인데 내가 B급 정도는 되지.”라고 한다. 그러고는 슬쩍 웃는다. 흘리는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물과 냉커피를 갖다준다. 얼른 물었다. “여수 바닷가 출신이지요.”라고. 배씨는 오는 30일까지 여수에서 ‘대양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열고 있다. 그는 소나무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바다를 먼저 시작했다. 1970년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바다를 그리워했다. 태생이 바다였기 때문이다. 배씨에게 다시 “탁구는 일주일에 몇 번 치세요.”라고 물었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한테 강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웃으면서 말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땐 유도를 했습니다. 탁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했고요.” 잠시 시간이 흐른다. 창밖에는 6월의 열정으로 가득 찬 나무들이 있다. 배씨는 그것을 잠시 응시하면서 말했다. “1999년이죠. 아내가 죽었을 때 탁구장 회원 등록을 했어요. 술을 많이 먹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건강도 생각해야 했고요. 그때부터 했어요, 탁구를….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탁구를 칩니다. 한 시간 30분 정도씩…. 웬만한 상대를 만나도 자신 있습니다.” ●1년 중 3분의1씩 바다·소나무와 보내 배씨는 건강에 대해서는 자신 있단다. 건강해야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했다. 얘기를 여수 전시로 돌렸다. 지난달 경주 전시에 이어 여수엑스포에 맞춰 전시 중이다. 소나무 작가인데 왜 바다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제 나이 29살 때 제주를 처음 갔지요. 카메라 들고 말입니다. 그 바닷가가 너무 좋았어요. 그때부터 계속 바다를 찍었습니다. 지금도 1년의 3분의1은 제주도(바다), 또 3분의1은 경주(소나무), 나머지는 서울에 있지요.” 다음 전시는 언제 하는지 물었다. 피식 웃으면서 답을 한다. 늘 하는 건데 새삼 묻느냐는 의미로 다가온다. “올 11월 4개국에서 동시에 전시를 합니다. 따로따로 하는 경우는 있었는데 동시에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서울, 파리, 베를린, 안트베르펜(벨기에)에서 합니다. 주제는 바다로 3년 동안 찍은 제주바다를 전시합니다. 아직 제목을 정하지 않았지만 바람과 바다를 접목시켜 정하려고 합니다.” 그는 생선장수의 아들이다. 그래서 바다를 좋아한다. 어머니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바다를 보면서 수채화를 그렸고 나중에 미술대학을 갔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바다로 갔다. 어머니 품을 담으려고 했다. 고향이었고 삶 그 자체였다. 울릉도도 가고 서해안과 남해안 섬에도 갔다. 제주 마라도에도 갔다. 그러던 33살 때 소나무를 찾았다. 소나무는 아버지였다. ●독일 등 유럽 귀족들에 내 작품 인기 그는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손의 떨림, 시선은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이 들어 질문을 했다. “열 명이라고 합시다. 각자의 신체, 손이나, 손가락의 움직임, 감각, 숨결, 사상, 재능 따위가 다르겠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인문학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이미지와 플러스알파, 뭐 이런 것도 있고요. 사진은 온갖 것을 찍을 수도 있지만 자연을 대할 때는 마음가짐이 좀 달라집니다. 사람의 자질도 자연을 대할 때 각자 달라지겠지요.” 소나무로 다시 돌렸다. 전국 방방곡곡 소나무 숲을 전부 다녔을 터이니 말이다. “바다를 찍다가 우리나라의 상징이 무엇인가 고민하던 중 소나무를 찾게 됐다.”면서 “지금은 소나무가 많이 사라져 안타깝다.”고 말한다. 제주도 자리돔이 울릉도에 와 있듯이 온도 변화로 활엽수가 침엽수를 이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갔던 숲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곳이 어디냐는 물음에 “가야산 숲이 최고다.”라고 대답한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창밖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배씨 뒤에는 온갖 책들이 있다. 사진집, 미술 서적, 대부분 영어로 된 책이다. 문득 사진 예술가로 걸어 오면서 누구를 좋아하는지 물었다.“에드워드 웨스턴이 멘토였어요. 만나지는 못했지만 집에 가서 남겨놓은 작품들을 살펴봤습니다.”라면서 책꽂이에서 사진집을 꺼냈다. ‘캘리포니아 오두막에 살면서 사진관도 하고 자연과 인간의 삶을 담아낸 작가’라는 설명이 나온다. “보세요, 누드도 얼마나 잘 찍었는지….” 배씨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까닭 중에 하나는 2005년 팝스타 엘턴 존이 2700만원을 주고 배씨의 사진을 구입한 일이다. 이 얘기를 꺼냈더니 그는 “엘턴 존이 애틀랜타 별장에 사는데 거기에다 걸어놨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사실 스페인, 스웨덴, 독일 등 유럽의 귀족들 별장에도 많이 걸려 있다.”고 말한다. 하기야 그는 스페인에서 2년 동안 알람브라 궁전만 찍었다. 그러면서 사귄 유럽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어디 유럽뿐일까. 2009년 호주에서 사진 발명 170년에 맞춰 선정한 세계적인 사진작가 60인에 들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필름을 사용한다. 디지털이 영 안 맞는다고 했다. 린호프(4x5) 카메라를 주로 들고 다닌다. ●필름 없어질지 몰라 2년 쓸 것 구입해 놔 “내가 필름을 사용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겁니다. 필름이 없어지는 것을 대비해서 2년치는 구입해 놨지요.” 그래서일까. 그가 찍은 사진에는 사람이 없지만 사람의 기척 같은 것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기는 한데 인간의 모습이 숨어 있다. 사람의 숨결이 감돌고 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그와 술잔을 기울였다. 술병, 술잔, 도자기, 달력 등등 모두가 배씨의 그림이 새겨져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런 거 저런 거 묻기가 부끄러워 술 친구들 많이 있느냐고 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인문학이라고 하잖아요. 사진도 그래요. 역사를 살피는 것, 자연을 살피는 것은 바로 인문학입니다. 내가 디자인을 전공했잖아요.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바다로 갔어요.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움을 갈망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조용한 기다림이라고나 할까요.” 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잠시 후 시계를 본다.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에게 고약한(?) 질문을 했다. 혼자 살기 때문에 여자 친구가 있는지라는 말을 꺼냈다. “귀찮아요.”라고 했다. 에구 역시 잘못 물었나 보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배병우 작가는 미대시절 사진 독학… “발 부르트도록 대상 찾아다녀” 1950년 여수에서 태어났다. 여수고를 나와 1974년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동대학 대학원 공예도안과를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했다. 대학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바다를 찾았다. 사진은 독학했다. 1984년부터 사진작가 배병우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소나무 작업에 매달렸다. 자신이 태어난 바다와 산과 제주 오름 등 한국의 자연에 천착했다. 국내는 물론 프랑스, 일본, 캐나다, 미국, 스페인, 독일 등 국외에서도 많은 전시를 열었다. 세계적인 팝 가수 엘턴 존이 작품을 구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세계 유수의 아트경매에서 1억원을 호가하며 낙찰되는 등 세계적인 작가로 활동 중이다. 사진 찍는 법을 물어오는 이들에게 “손 대신 발이 부르트도록 대상물을 찾아다닌다.”고 말한다. ‘풍경을 넘어서’ ‘사진-오늘의 위상’ 등 다수의 기획전과 개인전을 했으며, 일본 국립근대미술관 ‘90년대 한국미술’(1996), 토론토 파워 플래닛 ‘Fast Forward’(1997), 파리 OZ 갤러리 ‘배병우 개인전’(1998), 서울 박영덕갤러리 ‘배병우 개인전’(2000) 등의 전시 경력이 있다. 1981년부터 최근까지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주요 작품집으로 ‘종묘’(1998), ‘청산에 살어리랏다’(2005), ‘Sacred Woo’(2008), ‘창덕궁: 배병우 사진집’(2010), ‘배병우 빛으로 그린 그림’(2010) 등이 있다.
  • [김정은 기자의 백스테이지] 연극 ‘헤다가블러’ 무대 디자이너 여신동

    [김정은 기자의 백스테이지] 연극 ‘헤다가블러’ 무대 디자이너 여신동

    연극이 시작됐다. 관객의 시선은 이윽고 무대라는 공간에 고정된다. 관객은 그렇게 극장 내 객석이란 공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무대 위 공간으로 오롯이 정신력을 옮긴다. 극이 시작되어 관객이 가장 먼저 대면하는 것은 작품의 줄거리도, 배우도 아니다. 무대라는 공간, 바로 그것이 관객을 연극 속으로 몰입시키는 첫 관문이다. 그래서 무대 디자인은 작품의 몰입도를 결정한다. 무대 디자이너는 무대의 전체적인 콘셉트를 잡는 것은 물론 무대의 제작, 무대 위 소품의 제작까지 모두 책임진다. 요즘 공연되고 있는 작품 가운데 무대 디자인이 관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연극 한 편이 있다. 그만큼 무대 디자인이 멋지다는 말이다. 바로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헤다가블러’다. ‘헤다가블러’의 무대 디자인은 지난해 한국 뮤지컬 대상에서 뮤지컬 ‘모비딕’으로 무대미술상을 거머쥔 여신동(35) 디자이너가 맡았다. 그는 ‘헤다가블러’의 무대 콘셉트를 잡고 완성하는데 한 달 반가량의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멋진 무대 디자인과 세트가 완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칠까. 배우와 연출과는 달리 여신동 디자이너는 대본을 처음 받게 되면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며 읽어내려간다. 스스로 생각한 공간의 느낌을 텍스트를 통해 확인한다고. 이후 연출과 배우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무대 디자이너가 상상했던 이미지가 맞는지 조율 과정을 거친다. 여 디자이너는 “배우마다 억양이라든지 말투가 다 다르다. 배우들이 무대에 섰을 때 내가 그린 무대 모습과 어울리는지 등을 고민하면서 확신이 생길 때까지 머릿속으로 무대를 이미지화한다.”고 했다. 그러고 난 뒤 이미지 조사에 돌입한다. 각 미술 작가 작품집, 사진, 낙서 등을 수집 또는 만들어 가며 1000장가량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 다음 1000여장의 이미지 가운데 사용할 만한 것을 추려 낸다. 추려 낸 이미지를 이용해 무대의 색깔이라든지 느낌을 잡아 낸다. 특히 여 디자이너는 이미지를 추리면서 스스로 짧은 단어 또는 문장으로 무대의 콘셉트를 잡는다. 그는 “‘헤다가블러’의 경우 ‘큐빅’(cubic·정육면체)이라는 단어로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큐빅의 6개면이 모든 걸 만날 수 있고, 동시에 많은 걸 품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또 유리 같은 예민한 느낌도 지녔다고 판단했다. 헤다가블러란 여성을 분석해 보니 육감이 열려 있어서 모든 게 예민한 인물이었단다. 그래서 헤다의 공간을 다소 민감하게 표현했다. 무대를 자세히 보면 곳곳이 예민하고 날카롭다. 거울을 걸어놓은 와이어도 그렇고, 벽에 줄 맞춰 장식된 총 세 자루도 그렇다. 무대의 콘셉트를 잡고 나서는 제작소에 무대 세트를 맡긴다. 소품도 무대를 표현하는 훌륭한 도구다. ‘헤다가블러’ 무대의 가구와 소파 모두 그가 디자인한 뒤 직접 제작했다. 무대 디자이너는 단순히 세트를 만드는 일에만 역할이 국한되지 않는다. 무대 디자인은 연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의 무대디자인 하나로 탄생한 장면이 있다. 바로 헤다의 자살 장면이 그것. 그는 헤다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과 헤다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는 시선을 9개의 거울로, 또 자살 직전 불안한 헤다의 심리를 400개의 글라스 초로 표현했다. 이런 무대 덕에 박정희 연출의 처음 의도와 달리 헤다가 총으로 거울 세 개를 깨며 자살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자살하기 직전까지 헤다의 발 밑에는 헤다의 심장을 의미하는 글라스 초 400개가 예민한 소리를 내며 흔들거린다.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 중 하나다. 또 대본에는 헤다 집에 그녀의 아버지 가블러 장군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고 돼 있지만, 그는 과감하게 동상으로 표현했다. 아직도 그녀가 아버지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지하 계단을 파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어 헤다의 공간을 좌우는 물론 위·아래에도 존재하게 했다. 헤다를 모든 걸 초월한 인간으로 표현하고 싶어서다. “무대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자칫하면 공연의 백스테이지 스태프, 그냥 무대를 제작하는 사람으로만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연출가와 배우 못지않게 무대 디자이너 또한 작품을 분석하고,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사람이죠.”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아시아 창작 시나리오 공모 7월 6일까지 인터넷 접수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은 9일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문화원형을 보존하고 이를 문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아시아 창작 시나리오 국제 공모전’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아시아 100대 스토리는 아시아 35여개국의 대표적인 설화로서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구성됐다. 추진단은 지난해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에서 전승된 이야기의 현황을 조사하고, 대표적인 민담·전설 등을 선정했다. 한국의 ‘바리공주’와 ‘주몽신화’를 비롯해 이란의 ‘샤나메’·‘오디세이’, 키르기스 공화국의 ‘영웅서사시’·‘마나스’, 몽골의 ‘마두금 전설’ 등이다. 공모는 오는 7월 6일까지 홈페이지(www.asiastoryroad.com)에서 접수하며 개인이나 팀 구분 없이 참가할 수 있다. 최종심사는 8월 광주에서 열리는 ‘제2회 아시아문화주간’ 행사 기간에 진행된다. 모두 6편을 뽑아 500만~2000만원의 상금을 준다. 수상작은 작품집 발간과 동시에 문화 콘텐츠로 제작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톡톡 튀고 힘있는 청춘들의 단편소설

    어느 날 시력을 잃어버린 남편과 근근이 살아가는 아내가 있다. 아내는 똑똑한 남자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멍청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자책하면서, 구청 문화센터에서 미국 대중음악을 가르치는 강사의 ‘똑똑함’을 동경한다. ‘빽빽하게 책이 꽂힌 고급 원목 책장’이나 ‘작지만 격식 있는 티테이블’을 연상시키는, 딱 봐도 교양 있어 보이는 아내와 남편도 있다. 똑똑한 아들은 기숙사가 딸린 명문 사립중학교에 다닌다. 앞의 부부는 불행하고, 뒤의 부부는 행복할까. 두 부부를 보노라면 한 속담이 생각난다. ‘모든 사람의 옷장에는 해골이 있다.’ 삶과 배경이 정반대인 두 부부에게는 각각의 불행이 있다. 과연 이 두 부부의 불행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교차하면서 풀어낸 두 부부의 이야기는 하나의 지점을 향해 간다. 이 세상의 불행들에 벗어나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이다. 손보미(2011년 동아일보) 작가의 단편소설 ‘폭우’는 올해 3회를 맞는 젊은 작가상 대상작이다. 문학동네는 등단 10년 이내의 작가들이 지난해 주요 문예지, 공동소설집 등에 발표한 중·단편 소설들을 두고 선정한 젊은 작가상 수상작 7편을 묶은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펴냈다. 젊은 작가들의 톡톡 튀는, 또는 다소 진부한 듯한 서사를 끝까지 읽어내게 하는 힘을 가진 단편소설들이다. 김미월(2004년 세계일보) 작가의 단편 ‘프라자 호텔’은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이라면 옅은 미소를 머금거나, 키득댈 법하다. 여름휴가마다 서울시내 호텔 순례를 하는 부부가 이번에 머물 곳은 프라자 호텔이다. 남자에게 이곳은 아내에게 말하지 못한 대학시절 추억과 연관돼 있다. 택시 기본요금으로 읍내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에서 자란 남자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심지어 7개월 아르바이트비를 쏟아부어 호텔방을 잡기까지, 그 추억을 떠올리며 그 시절 서울 광화문과 명동을 이야기하고, 대학생활을 더듬는다. ‘맞아, 그땐 그랬지.’를 연발하며 풋풋한 사랑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여자’를 ‘엄마’로 부르기까지 미묘하게 변화하는 감정과 관계를 그린 김이설(2006년 서울신문) 작가의 ‘부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한 남자의 배설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유쾌하면서도 철학적으로 풀어낸 이영훈(2008년 문학동네) 작가의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 양산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의 하루 속에 정치사회적 상황과 풍속을 녹인 황정은(2005년 경향신문) 작가의 ‘양산 펴기’, 한 인간 속에 숨은 죄의식을 집중력 있게 파헤친 정소현(2008년 문화일보) 작가의 ‘너를 닮은 사람’ 등이 담겨 있다. ‘국경시장’을 쓴 김성중(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작가는 젊은 작가상이 만들어진 첫 회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상자로 선정되고 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9일 TV 하이라이트]

    ●6시 내고향(KBS1 오후 5시 40분) 스튜디오를 벗어나 야외 버라이어티처럼 버스에서 특집 방송을 진행한다. 버스에서는 전 출연진의 토크 한마당이 펼쳐진다. 리포터들의 입을 통해 듣는 생생한 촬영현장과 ‘6시 내고향’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헬기까지 타게 된 미녀 리포터 김태희의 하늘과 땅을 오가며 진행되는 초특급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사랑비(KBS2 밤 9시 55분) 패션 화보 촬영을 위해 일본 홋카이도에 도착한 준. 하나 역시 엄마의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홋카이도로 향한다. 그렇게 준과 하나는 기차역에서 부딪치며 하나의 휴대폰이 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뒤늦게 그 사실을 안 하나는 휴대폰을 찾기 위해 준을 찾아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준을 만난 하나는 준과 단 둘이 산속에 고립되고 만다. ●일일시트콤 스탠바이(MBC 밤 7시 45분) 진행은 생방송 도중 대본을 잘못 읽는 방송 사고를 낸다. 준금은 진행의 방송사고 3종 세트를 말하며, 진행을 프로그램에서 자르려고 한다. 한편 자신의 어머니 희정과 몰래 연애를 하면서도 선을 보러 다니는 진행이 미운 시완. 진행은 시완과 시완어머니를 자신의 마지막 생방송 스튜디오에 초대한다. ●백세 건강스페셜(SBS 낮 12시 30분) ‘핑크리본’은 유방암과 관련된 활동에 사용되는 상징물로 여성의 아름다움과 건강과 가슴의 자유를 의미한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행사를 통해 유방암 조기 진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유방암의 검사법, 치료법, 수술 후 추적관리에 대해 명의를 모시고 집중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헬스 투데이(EBS 오전 6시) 나이가 들어 퇴행성 변화로 생기는 디스크나 허리통증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동작들을 소개한다. 월요일 첫 시간에는 잠에서 깨어나 허리 통증 때문에 온몸이 뻐근한 사람들을 위해 누운 자세에서 가볍게 따라할 수 있는 체조를 준비했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허리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덜고 허리 건강을 지켜본다. ●차인태의 명불허전(OBS 밤 10시) 1984년 첫 작품집을 시작으로 총 27권의 작품집을 출간해 온 서예가 박원규. 그가 스튜디오에서 직접 명필 탄생 과정을 보여 준다. 흑룡의 해를 맞아 그가 써 준 글자는 바로 용(龍). 어마어마한 내공을 쌓아 온 그가 쓴 용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또한 ‘명불허전’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 제작진을 감동케 했다고 하는데….
  • [2일 TV 하이라이트]

    ●과학카페(KBS1 밤 11시 40분) 원인도 치료법도 확실하지 않은 난치병. 최근 난치병 치료에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성체줄기세포’다. 줄기세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남성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생성된 수정란에서 시작되는 ‘배아줄기세포’. 또 다양한 형태로 재생이 가능해 난치병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성체줄기세포’가 있는데…. ●월화 드라마 사랑비(KBS2 밤 9시 55분) 인하는 이젠 확실히 윤희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려고 결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윤희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고백한 인하는 훌쩍 스케치 여행을 떠나버린다. 이에 윤희는 무작정 인하를 찾아 가고,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이들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감정을 친구들에게도 털어놓고자 한다. ●아침드라마 천사의 선택(MBC 오전 7시 50분) 결혼 2년차 주부 은설은 예비 올케 유란이 등장하는 악몽을 꾸다, 사랑하는 남편 상호의 품에서 잠을 깬다. 은설의 동생 은석은 예비 장모님께 한시라도 빨리 인사드리고 싶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여자친구 유란은 자꾸만 말을 돌린다. 한편 상호의 어머니는 ‘손주 얻기 프로젝트’를 위해 은설에게 속옷을 선물한다. ●헬스 투데이(EBS 오전 6시) 화장실에 갔다 하면 기본 30분에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반가운 소식은 없다. 나이가 들수록 변비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5명 중 1명이라고 한다. 이번 시간에는 변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요가를 준비했다. 요가의 기본인 복식 호흡을 통해 복근을 강화하고, 장의 연동운동을 높이는 동작을 통해 답답한 변비에서 탈출해본다. ●하나뿐인 지구(EBS 밤 11시 10분) 작은 불씨는 순식간에 산을 집어 삼킨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불은 연평균 427건에 달한다. 이렇게 인간의 부주의로 시작된 산불은 지난 17년간, 여의도 면적의 약 58배가 넘는 규모의 산림을 집어삼켰다. 결국 식목일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여 애써 가꾼 소중한 산림들이 산불로 한 순간 잿더미가 된 것이다. ●명불허전(OBS 밤 10시) 사진작가 배병우는 17권의 사진작품집을 냈다. 그의 꿈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준 사람과 사진작가의 길로 이끈 사람, 그리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배병우는 지금까지 만난 모든 이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얘기했다. 또 미래의 자신을 있게 해줄 분들이라며 인연의 소중함을 전한다.
  • [책꽂이]

    ●사상으로서의 3·11 (쓰루미 슌스케 등 지음, 윤여일 옮김, 그린비 펴냄) 동일본 지진에 대해 일본 학자들이 언급했다. 과학기술만능론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주목되는 부분은 일본의 우경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크나큰 재앙 앞에서 우경화될 가능성, 이는 일본 우경화에 항상 상처받아 왔던 한국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재앙이 될 위험으로 작용한다. 1만 5000원. ●속담 인류학 (요네하라 마리 지음, 한승동 옮김, 마음산책 펴냄) 2006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지목한 일류 통역관이기도 한, 그리고 뛰어난 관찰력과 해학적인 문체로 유명한 저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책이다. 어릴 적 동유럽 체류와 통역관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각지의 여러 속담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인간사에 대한 재기 넘치는 평을 내린다. 1만 4000원. ●뉴욕의 상뻬 (장 자크 상페 지음, 허지은 옮김, 미메시스 펴냄) 섬세하고 유머가 넘치는 화풍으로 사랑받는 프랑스 그림작가 장 자끄 상페의 작품집. 1978~2009년 ‘뉴요커’지 표지를 장식했던 그의 그림 150여점을 수록했다. 함께 담긴 마르크 르카르팡티에 ‘텔레라마’ 전 편집장과 나눈 인터뷰에서 그의 삶과 그림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 2만 4000원. ●국제인권법원론 (한희원 지음, 삼영사 펴냄) 검사,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국장을 거쳐 현재 동국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가 그간의 경험을 살려 국제인권법에 대한 논의를 정리했다. 저자는 인권은 반박, 항변, 데모로 이뤄지기보다 민주주의 확립과 경제력 확보를 통해 이뤄진다는 신념을 내비친다. 3만 2000원. ●그래도 원자력이다 (이정훈 지음, 북쏠레 펴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자력을 폐기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원자력 폐기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다. 원자력 축소는 화석연료 확대를 낳고, 이는 오히려 환경에 부정적이라는 반론이 대표적이다. 해서 원자력이 위험하다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정말 꺼내기 어렵다. 저자는 이 말을 꺼낸다. 1만 2800원.
  • 창원, 아동문학 도시로

    경남 창원시가 아동문화 수도로 육성된다. 국내 처음 지난해 아동문학을 주제로 한 종합축제인 세계아동문학축전을 개최한 게 계기가 됐다. 창원시는 24일 아동문학축전 개최 시기를 대형축제가 많은 10월을 피해 5월로 조정하고 격년제로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축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행사를 충실히 준비하기 위해서다. 또 행사를 대행업체에 맡기지 않고 문인협회·대학교수·언론계·아동문학 원로·아동문학 대표 등으로 조직위원회와 자문단을 구성해 준비하기로 했다. 시는 내년 행사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세계적인 아동문학인 초청행사, 세계 문예지 편집인·발행인이 참석하는 국제아동문학 심포지엄, 영상과 전시를 접목한 세계아동문학 영상관 등을 기획할 예정이다. 지난해 처음 제정한 창원아동문학상은 아동문학 발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해마다 시상한다. 어린이가 자전거 타기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동화 ‘바람처럼 달렸다’로 제1회 창원아동문학상을 받은 김남중씨와 문학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도 준비한다. 창원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집 발간, ‘창원동화’ 공모 등 아동문학작품 창작활동도 적극 지원한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보자기도 예술…한땀 한땀 魂을 수놓다

    보자기도 예술…한땀 한땀 魂을 수놓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아주머니들의 속닥이는 찬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들리는 목소리는 대개 일본어다. 일본인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니 그런가 보다 했다. 한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다. 1995년 일본 첫 전시부터 화제를 모았단다. 1999년 작품집을 내놨더니 1만부가 팔려나갔다. NHK에 출연하고,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 퀼트 축제에 단골손님처럼 초대받았다. 그의 작품 사진이 일본 고등학교 가사 과목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지금도 전시를 하거나 작품을 낼 때면 일본 사람들이 제일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작품이 하버드대박물관, 오스트리아 국립민속박물관 등에도 소장되어 있다. 29일까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복을 수놓다’ 전을 여는 자수명장 김현희(65) 작가다. 김 작가는 왜 이렇게 높게 평가받을까. 당연히 솜씨 때문이다. 그는 조선말 궁중 수방 나인으로부터 정통 자수를 배운 윤정식 선생의 눈을 처음부터 사로잡았다. ●19살부터 자수 배워… 하루 8시간씩 작업 “그때 제가 열아홉이었고 선생님이 예순다섯이셨어요. 자수 배우던 어머니 따라갔는데 딱 보시더니 ‘나한테 배워라’ 하시대요.” 심심풀이 삼아 만든 것을 보더니 돈 안 받고 따로 가르치겠다고 했단다. “그냥 손재주가 있는 편이었어요. 학교 다닐 적에 붓글씨나 그림 같은 걸 하면 솜씨 있다 칭찬을 받는 정도?” 그 많은 재주를 놔두고 왜 자수를 택했을까. “하하. 딱히 이유는 없었어요. 처음엔 사실 선생님한테 잡혀서 배운 거예요. 자꾸 배우다 보니 점점 더 좋아지더라고요.” 스승은 살아생전에 이미 “나를 넘어섰다.”고 선언했고,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은 ‘신이 내린 솜씨’라고 격찬한다. 쉽지는 않았다. 바늘 한번 잡으면 앉은 자세 그대로 계속 바느질을 해야 했다. 온몸이 불편하고 뒤틀렸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젊어서는 천 만들고 염색하고 바느질하는 전 과정을 혼자 다 했어요. 그땐 팔, 어깨에다 커다란 침을 꽂아놓고 누워야 잘 수 있을 정도였지요.” 지금도 하루 7~8시간 정도 작업한단다. 그게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예전 작업시간은? “그냥 쭉이에요. 쭉.” 시간 계산 같은 것은 해보지도 않은 말투다. 김 작가는 1986년부터 보자기 하나에만 집중해 왔다. 다른 여러 개를 하다 보니 집중이 안 됐다. 보자기를, 자수를 이용해 근사한 작품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스승이 “네 것은 삯 받고 팔기는 아까우니 작품을 해라.” 하고 북돋아준 것도 힘이 됐다. “어느 분은 옛것에 대해 교통정리를 잘해 놨다고 하시던데, 앞으로도 교통정리를 좀 하려고요. 민보(민간 보자기)에는 우리 민속의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더 좋습니다.” 궁중에서 쓰던 보자기 ‘궁보’와 민간에서 쓰는 민보를 열심히 연구했다. 아이디어를 거기서 가져왔다. 애착은 민보에 더 있다. 궁보에 비해 조악하기도 하고 중구난방인 면은 있지만, 소박한 손길에 더 정감이 갔다. 최근작에는 현대적, 추상적 풍경도 눈에 띈다. ●“민보의 소박함에 애착… 한국서 푸대접 야속”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 인기가 높아 좋겠다고 했더니 여전히 불만이란다. “아직 인정을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더니 입술을 앙다물 뿐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보자기에 대한 푸대접 때문이다. 해외,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바느질의 인기가 대단한데 한국에서는 정작 큰 관심을 못 받는다. 해서 자신이 수십 년간 만들어 온 보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 상황이 야속한 듯했다. “그래도 저거 보면 속이 시원해요.” 보자기라서 그 끝에는 물건을 싸매기 위한 끈이 달려 있게 마련. 그걸 쫙 펼쳐서 마치 가오리연처럼 전시해 뒀다. “전시 때마다 저 끈 처리를 어떻게 할까가 걱정이었는데, 저렇게 펼쳐 놓으니 당당해 보여서 좋아요.” 보자기 냉대에 대한 분노는 스르르 사라진 표정이다. (02)726-4428.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다재다능 시인 둘 새 작품집 선보여

    다재다능 시인 둘 새 작품집 선보여

    이채로운 경력의 두 시인이 각각 새 작품집을 내놓았다. 함성호(48) 시인과 강정(41) 시인이다. 건축평론가 직함을 갖고 있는 함 시인은 사진이 있는 산문집을, 밴드 멤버로도 활동중인 강 시인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네 번째 시집을 들고 나왔다. ■산문집 낸 건축평론가 시인 함성호 시로 지어낸 거유의 뜨락 철학을 품다 지방을 돌다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옛집들과 만난다. 한 칸의 초가부터 90여 칸에 이르는 저택까지, 크기와 모양, 위치, 건축 자재 등이 닮은 듯하면서도 제각각이다. 한결같은 것도 있다. 그 집 건물과 뜨락에 간과할 수 없는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것. 문제는 집이 품고 있는 철학을 모르면 누구에게든 그저 ‘낡은 집’에 불과할 뿐이란 거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씨가 지은 ‘철학으로 읽는 옛집’(열림원 펴냄)은 집 지은이의 마음과 집 안에 깃든 뜻을 읽어내는 데 제격이다. 저자는 조선시대 학자들이 지은 옛집 9곳을 답사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만났다.’가 옳겠다. 그리고 그는 옛집들에서 그 안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를 읽어냈다. 이를테면 회재 이언적의 ‘독락당’(獨堂)은 ‘시로 지어진 집’이었고, 정약용의 ‘다산 초당’은 ‘철학의 정원’이었던 것이다.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인 이언적은 조선을 통틀어 가장 독특한 건축가로 꼽힌다. 그가 경북 경주 양동마을에 지은 ‘독락당’에선 역설이 돋보인다. 반대파의 탄핵으로 40세에 벼슬자리에서 밀려난 뒤 낙향해 지은 집이다. ‘독락’의 뜻 그대로 남 들일 생각이 없었는지 폐쇄적인 대문을 세웠다. 솟을삼문은 없앴고, 중문은 두 개를 세웠다. 이 같은 건축특성은 그의 정치·사상적 이해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저 희한한 공간일 뿐이다. 중앙 정계에서 밀려난 송시열은 충북 괴산 화양리 금사담의 바위에 ‘암서재’(巖棲齋)를 짓고 은거한다. 하지만 그곳은 다시 벼슬길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암중모색의 집이었다. 이황은 가장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안동에만 다섯 채를 지었다. 집이 많았던 것은 그의 학문적 추이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자 9명의 집을 ‘만나서’ 그들의 철학을 ‘읽어낸다.’ 저자는 무엇보다 옛집과 옛집을 둘러싼 ‘이야기’에 마음을 둔다. “그 집과 그 집을 지었던 사람의 생각, 무엇보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할 때 집이 가진 맨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유(巨儒)들이 직접 집을 지었다는 것도 생경하지만, 여기에 선인들의 학문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잘 버무려져 역사책을 읽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저자가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는 또 하나의 믿음은 “우리 건축은 건물 자체만이 아닌 자연과 함께 계획된다.”는 것이다. 집의 건축 방식보다 집이 지어진 위치에 대해 더 많은 설명을 할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새 시집 낸 밴드 출신 시인 강정 청춘 끝나니 비로소 들린 팽팽한 적막 당기고 있는 순간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도 한 단어로 말해야 한다. 언뜻 생각이 나지 않을 터. 그렇다면 시 한 편을 들여다보자. ‘팽팽하던 힘을 놓아버리면/하나의 점이 수천만 배의 면적을 갖는다/스스로 공간이 되면서 스스로 지워진다’(사물의 원리 중에서) 시인 강정은 ‘활’(문예중앙 펴냄)이라는 시집을 통해 언어라는 화살을 당기고 있는 순간의 팽팽한 적막을 노래한다. 당기고 있는 그때의 긴장, 그때의 몰입, 그때의 적막, 삶의 절정의 순간이 늘 그러하다고 말한다. 그와 같은 절정의 팽팽함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시편들을 마음껏 보여준다. 빈자리의 적막 속에서 태어난 시들은 그 빈 곳을 메우고 있는, 사라지지 않은, 사라짐을 준비하기에 더욱 강렬한 정념을 표출한다 ‘활’은 2008년 ‘키스’를 발표한 후 3년여 만에 선보이는 네 번째 시집이다. 20대 초반인 1992년 ‘현대시세계’ 가을호에 ‘항구’ 외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시인은 지난 20년 동안 시, 소설, 음악, 문화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내공을 쌓아왔다. 그래서일까. ‘활’을 통해 비로소 자신만의 한 세계를 이루었음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다른 세계로의 비상을 예비하고 있는 것 또한 시편 곳곳에 담겨 있다. 이 시집의 특징은 ‘고별사’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두개의 내가 있다고 합니다/둘은 하나의 상대어일 뿐/알고 있는 모든 수의 무한 제곱일 수도 있습니다’(고별사 첫부분)에서 보듯 팽팽한 긴장감으로 감아 돌아 고별사가 아닌 시편의 무한한 출발을 알린다. 조강석 문학평론가는 ‘적막을 장전한 키메라’라는 해설제목을 통해 “강정의 새 시집은 시적 언어의 혁신을 모티브로 한 트릴로지의 완결편이자 새로운 자유의 시작이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두개의 모멘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이 시집의 언어는 한 정념이 완결될 때의 적막과 새로운 자유가 꿈틀댈 때의 카오스적 에너지를 동시에 지닌 키메라에 비견될 수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시집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이 기미와 예감으로 가득한, 새로운 말을 기다리는 느낌이라면, 그리고 세번째 시집 ‘키스’가 폭발과 파국의 현장에 대한 사후(事後) 술회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때 ‘활’은 앞선 두 시집과 더불어 하나의 트릴로지를 구성하며 대미를 장식하는 느낌을 던져준다. 청년 시인과 성년 시인이 교차하는 정거장이라고나 할까.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제 소설은 공상이고 망상… 가능성 찾는 자세로 봤으면”

    “제 소설은 공상이고 망상… 가능성 찾는 자세로 봤으면”

    그의 인상은 자매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경숙 작가와 닮았다. 하지만 신 작가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인간의 내면을 향했다면 소설가 강영숙(44)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 신 작가가 ‘국보급’인 데 견줘 자신은 장편소설 2편을 냈고 그중 한편은 일본에서 번역 출간됐음에도 ‘신인급’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20년 넘게 한 직장 다니며 두 자녀 키워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8월의 식사’로 등단한 강 작가가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이후 2년여 만에 네 번째 소설집 ‘아령 하는 밤’을 펴냈다. 가장 처음 실린 단편 ‘문래에서’는 2011년 김유정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구제역’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하진 않았지만 구제역으로 수많은 동물을 살처분한 이의 정신적 상처를 다뤘다.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아이오와가 배경인 ‘라디오와 강’, 허리케인으로 삶의 터전이 무너진 뉴올리언스에서 펼쳐진 이야기 ‘재해지역투어버스’ 등 올 상반기에 쓴 세 편의 단편이 모두 공교롭게도 자연재해를 다루고 있다. 서울 노원구 일대 주택가에서 치명적인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을 접한 도시인들로서는 ‘프리퍄트창고’ 역시 눈이 가는 소설이다. 프리퍄트는 치명적인 방사능 누출 사고가 있었던 체르노빌 원자로의 근로자들이 살던 주거 지역이다. ‘프리퍄트창고’에서 주인공은 ‘프리퍄트’를 자신의 심리적 고향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방사능에 노출된 ‘잠재적 암 환자’라고 믿어버린다. “기질인 거 같아요. 아이오와에 가도 누구는 음악에 끌리는데 저는 홍수의 흔적을 찾아다녔으니까요.” 재해로 가득한 도시를 그린 작품을 쓰는 까닭에 대한 작가의 답이다. 미국 아이오와는 국제창작프로그램을 통해 3개월간 머물렀던 도시이기도 하다. 그는 20년 넘게 한 직장을 다니는 생활인이자 두 자녀를 키우는 엄마다. 직장이 사회단체라 자유로운 근무가 가능하지만 하는 일의 중량은 크다. 작가는 ‘노동의 감각’을 놓치지 않고자 직장 생활을 계속한다고 밝혔다. 글은 주로 주말에 몰아서 쓴다. ●“문학, 경향성 안 따졌으면… 다양하면 좋아” 강 작가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신춘문예에 당선되기까지는 8년이 걸렸다. ‘이번이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응모한 신춘문예에서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여성 작가들이 존재론적 문제에만 천착한다는 의견에 대해 “성별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은 뭔가 큰 얘기를 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니다. 문학을 하나의 경향으로 몰기보다는 다양하면 좋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공대생들도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나오면 한 권씩 사곤 했다. 문학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떨어진다는 걱정에 대해 소설가도, 문학을 담당하는 신문 기자도 뾰족한 대안을 찾진 못했다. 작가는 “결국 고급 독자가 남지 않겠느냐….”는 비관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작가 자신도 소설보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이 더 재미있다고 하면서. ●“인터넷글 소설보다 재미… 고급 독자만 남을 것” “이상한 이야기를 재미있다고 억지로 만들지 말고 가까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부터 써라.” 작가가 소설창작론을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여전히 문학 청년들은 있지만 9·11밖에는 겪은 게 없는 이들에게서 나오는 이야기가 신통하지만은 않다. 김유정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거푸 수상한 작가는 “잘 쓰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실에 대입하기보다는 가능성을 찾는 자세로 봤으면 좋겠어요. 제 소설은 결국 다 공상이고 망상이니까요.” 그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말이다. 많은 여성 작가들은 설거지를 끝낸 저녁 식탁에서 작품을 썼다. 그 문학 작품은 노동하는 손에서 나온 것이기에 삶에 대한 끈질긴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새음반]

    ●헬 더 시퀄(Hell: The Sequel) 에미넴이 돌아왔다. 동향(디트로이트) 친구인 래퍼 로이스 다 파이브 나인과 결성한 프로젝트 듀오 ‘배드 미츠 이블’(Bad Meets Evil)의 이름으로 새 앨범을 내놓은 것. 미국에서 발매 첫 주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했다. 첫 트랙 ‘웰컴 투 헬’부터 숨이 턱 막힌다. 엄청난 속도로 흐름을 타는데도 또박또박 뱉어내는 라임은 귀에 착착 감긴다. 유니버설뮤직. ●왓츠 잇 올 어바웃(What´s It All About) 재즈 기타리스트 팻 매스니가 10년 만에 솔로작품집을 발표했다. 첫 트랙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사이먼 앤드 가펑클)부터 마지막 트랙 ‘앤드 아이 러브 허’(비틀스)까지 10곡 모두 매스니가 즐겨 듣던 팝의 명곡들을 재해석한 커버앨범이다. 워너뮤직. ●타임 애프터 타임-80년대 추억 속 음악이야기 ‘세시봉’으로 점화된 음반시장의 복고 바람에 올해 최다관객 한국영화 ‘써니’가 기름을 끼얹었다. ‘써니’의 주요 삽입곡으로 쓰인 ‘써니’(보니 엠) ‘터치 바이 터치’(조이) 등을 비롯한 1980년대 팝송 명곡 38곡을 담은 편집음반이 나왔다. 소니뮤직.
  • [열린세상] 행복과 믿음/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열린세상] 행복과 믿음/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이지 않다. 저 산 너머 어딘가에 있어 찾아가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행복이란 기분에 해당하는 느낌으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족과 기쁨이 충만하여 흐뭇한 상태를 일컫는다. 행복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에 걸쳐 특정한 기운이 지속되는 경우에 나타난다. 사람은 어떤 일이나 사안에 흥미나 열성을 갖게 되면 기분이 매우 좋아지며 신명이 일어난다. 이것이 즐거움으로 이어지고 마음 가득히 만족스러운 기분이 밀려오면 다시 흥분되고 상쾌한 느낌으로 전이되는 가슴 벅찬 현상, 즉 기쁨이 솟아나는데 이러한 꽉 찬 기쁨을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행복은 부정의 기운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긍정의 기운에서만 나타난다. 긍정의 기운은 사람을 주관하는 마음이 육신의 두뇌에 저장되어 있는 자료들을 꺼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판단할 때 작동되는 마음가짐으로, 어떤 사실이나 주장 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조화로운 마음자세를 말한다. 나와 너의 개념에서 비롯되는 소유와 무소유의 상대적 양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안이든 처음부터 나의 입장뿐만 아니라 상대방까지 이해하려는 자세에서 긍정의 기운은 작동한다. 마음자세는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낮추고 너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나만의 세상이 아니므로 너를 위해 양보할 수 있고 내가 손해볼 수 있다는 너그러움을 발현시키는 긍정의 힘이 확고해야 한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이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늘의 뜻이 7할이요 노력은 3할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자조(自嘲)하는 말이다. 이 말은 청나라 포송령(蒲松齡)이 쓴 ‘요재지이’(僥齋志異)라는 작품집에 나오는데, 포송령은 사람의 행로는 하늘이 미리 정해 버리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으므로 이것을 운으로 받아들이라고 설명한다. 어찌 보면 그것도 운명이니 집착을 버려 체념해야만 긍정의 기운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면이 은연중에 엿보이기도 한다. 운(運)이란 용어는 칠천년 전부터 우리 민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천부경(天符經)에 나타난다. 아마도 가장 먼저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경전에서 운은 하늘이 정해준 행로가 아니고 사람이 올 때 갖고 온 기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주관자로 태어날 때 가지고 온 초심의 기운 중 7할만 사용하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배우고 익힌 기술 3할이면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운칠기삼은 패배자가 읊조리는 푸념이 아니라 승자가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함축된 모습으로 이해해야 한다. 요즈음 길 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어깨가 늘어져 보인다. 왠지 신나는 기운이 느껴지질 않는다. 사회 전체적으로 무엇인가에 지쳐 있어 무겁고 부정적인 기운만이 감돌고 있을 뿐 눈을 돌려 재미있게 몰입할 즐거운 일거리가 보이질 않는다. 해마다 수능시험 때만 되면 따뜻하던 날씨가 추워지면서 변덕을 부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학생을 비롯하여 부모·형제 등 수백만명의 기운이 일시에 근심으로 움츠러들어 하늘의 파장을 부정적 기운으로 끌어당기면서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작금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보면 하나같이 너와 나 간의 책임 전가를 위하여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기운을 작동시켜 싸움에 젖어 있다. 무엇을 위한 것일까?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믿지 못하는데 행복이란 것이 다가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이 사회에 서로를 위하여 양보하고 의지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마음자세를 심어줄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고통스러운 다툼에 연연하는 슬픈 자들의 자화상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인가? 정녕 같이할 수 있는 행복은 저 멀리 손짓하는 신기루인가? 그래도 행복은 마음먹기에 따라 곁에 둘 수 있다는 긍정의 기운을 키우고 그것을 우리 모두 믿어보자.
  • 서양에서 먼저 알아본 사진작가 민병헌…은은한 맛이 동양화 보는 듯

    서양에서 먼저 알아본 사진작가 민병헌…은은한 맛이 동양화 보는 듯

    “예전에 어떤 신문기자분이 그러시대요. 기사를 쓰고 싶어도 제 작품 사진을 쓸 수가 없어서 난감하다고. 미술 하면 뭔가 화려한 게 있어야 하는데 제 작품은 희끄무레하다 보니 신문에 크게 실어 놓으면 딱 제작 사고처럼 보인다나요.” 희끄무레한 사진이 나오는 이유를 설명해 보자면 이렇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는 당대에 등장한 카메라의 렌즈가 대상을 찍어내는 방식에서 점묘법을 착안했다. 사람의 손으로 그리되 카메라의 눈으로 바라본 것. 민병헌(56) 작가가 내놓은 ‘폭포’(Waterfall) 시리즈는 정반대다. 대상은 카메라의 손으로 거머쥐는데 바라보는 것은 사람의 눈이다. 쇠라가 사진 같은 그림을 그렸다면, 민병헌은 그림 같은 사진을 찍는다. ●‘동양화 같은 사진’ 美·佛서 주문 밀려 작업방식에서도 드러난다. 화창하지 않은 날, 그러니까 비나 바람이나 안개가 적당히 있는 날에 촬영한다. 여기다 흑백 필름만 고집하고 인화작업도 직접한다. 인화 때도 톤을 최대한 낮춰 뽑아낸다. 흑백만 해도 색채감이 뚝 떨어지는데 톤까지 낮춰버리니 몇몇 작품은 뭔가를 찍었다기보다 뉘앙스를 풍기는 정도에 그친다. 바로 이 뉘앙스를 봐달라는 게 민 작가의 말이다. “저도 처음엔 콘트라스트(명암 대비)가 명확한 사진을 찍었어요. 흑백 사진의 묘미가 거기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명확한 콘트라스트는 그냥 검고 흰 것만 남기고 디테일들을 다 죽여요. 그래서 콘트라스트를 최대한 억제해 보니 모든 디테일들이 다 살아나더라고요. 흰색, 검은색 속에 모든 게 녹아드는 게 아니라 다양한 높낮이의 회색톤들이 나오는 거죠.” ●“명암 억제하니 디테일이 살아나” 이런 작품이다 보니 에피소드도 있다. “1990년대에 ‘잡초’ 시리즈를 내놨어요. 큰 회사 사모님이 마음에 드셨나봐요. 양수리 작업실까지 오셔서 사가셨죠. 그런데 다음날 사진을 바꾸재요. 왜 그러시냐 했더니 남편 분이 집안에 웬 잡초를 들이냐고 야단쳤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꿔 간 게 하늘을 찍은 ‘스카이’ 연작이에요. 이 연작은 구름 하나 없는 하늘을 찍은 거라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하늘이라면 괜찮다고 하셨대요. 더 웃긴 건 나중에 한 갤러리에서 제 작품을 고객에게 선전하면서 ‘들풀’ 연작이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아하, 잡초가 아니라 들풀이라고 했으면 더 잘 팔렸을 텐데 싶더라고요.” 처음부터 환영받은 작업은 아니었다. 1980년대 유행은 ‘마사지’한 사진들이었다. 때문에 있는 그대로 우직하니 찍어 승부를 내는 그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별로 없었다. 작가 스스로도 1980년대를 일러 “그때를 생각하면 소외감, 열등감 같은 단어만 떠오른다.”고 할 정도다. ●“필름 인화하는 내내 조바심… 불안함이 좋아” 그의 작품을 먼저 알아본 곳은 해외. 1990년대부터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주문이 밀려들면서 시쳇말로 ‘떴다’. 작품에서 풍겨져 나오는 은은한 맛이 마치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전부 수작업이다 보니 작품은 커 봤자 가로·세로 130㎝를 못 넘긴다. 더욱이 디지털카메라의 유행으로 인화지를 구하는 일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재고를 써 보기도 했지만 질이 떨어져 작품을 망친 뒤로는 쓰지 않는다. 그래도 옛 방식의 수작업이 좋단다. “불안함이 참 좋아요. 디지털 사진기는 찍고 바로 확인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흑백필름은 그게 안 되니까 찍고 나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고 불안하고. 인화하는 내내 괜찮게 나올까 조바심도 나고. 그러다 보면 풍경이나 대상을 사진기가 아니라 내 마음에 품어 올 수 있어요. 그게 제일 좋아요.” 그래도 색에 대한 갈망은 없었을까. “한때 컬러를 해 볼까도 했어요. 완전 수작업이라 비용과 돈이 많이 들어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러나 깔끔하게 포기했습니다. 대신 옷에는 관심이 많아요. 패션 같은 데서 대리만족하고 사나 봐요.” 그러잖아도 작품을 보고 작가를 보면 언뜻 조화가 잘 안 된다. 믹 재거 같다는 얘기에 크하하 웃는다. “작품만 보신 분들은 생활한복 입고 수염 기른, 어디 인사동 같은 데 앉아 있는 사람이 떠오른대요. 그러다 저를 직접 보면 다들 놀라요. 이런 날라리가 없거든요.” 하반기에는 작품집도 나온다. 프랑스 전시도 준비 중이다. 이번엔 누드 시리즈다. 일반인 모델을 썼는데 톤은 기존 시리즈와 비슷하단다. “일반인들은 희미하게 찍히면 싫어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은은한 톤 때문에 오히려 더 좋아한다.”고 한다. 오는 5월 10일까지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 ‘안개’(Deep Fog), ‘나무’(Tree), ‘스노랜드’(Snowland) 시리즈 등 전작(前作)도 만날 수 있다. 3000~4000원. (02)418-1315.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그래, 책이야!(레인 스미스 지음, 김경연 옮김, 문학동네 펴냄)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데콧상 등 여러 그림책 상을 받은 레인 스미스가 디지털 시대의 ‘책’에 대한 절묘하고 유머러스한 통찰을 편안하고 재미있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9000원. ●아트 어드벤처(정나영 글, 김강호 그림, 상상의집 펴냄) 예술 작품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학습 만화 시리즈로 첫 번째 이야기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다. 만화와 고흐의 작품집이 함께 출간돼 아이들의 미술 교육을 돕는다. 1만 1800원. ●옛그림 속 우리 동물(이소영 지음, 낮은산 펴냄) 젊은 한국 화가이자 연구자인 심홍 이소영씨의 세 번째 책으로 열두 띠 동물을 중심으로 옛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친근하고 귀여운 동물 그림으로 동양 예술 정신을 조근조근 설명해 준다. 1만 1000원. ●라몰의 땅(A 라마찬드란 글·그림, 엄혜숙 옮김, 보림 펴냄) 인도를 대표하는 화가의 그림책으로 다채로운 색으로 신비로운 이야기를 더없이 아름답게 그려냈다. 인도 그림의 전통적인 색채와 혁신적 표현법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그림책의 세계를 열어 준다. 1만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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