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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길원 교수 정년퇴임展

    강길원 공주대 교수가 5월3일부터 8일까지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갤러리 1전시실에서 개인전을 연다. 강길원의 작품세계는 크게 네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후기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주로 그린 1960년대,풍경 그림을 통해 현실을 풍자한 1970년대,상징주의적 화풍의 1980년대,그리고 199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는 ‘순수 풍경시대’가 그것이다. 이번 정년퇴임 기념전엔 ‘가을찬가’‘청송의 여름’‘대둔산의 추경’‘변산의 해변’ 등 자연의 사계를 노래한 35점이 출품된다.풍경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던 1970년대 ‘만능’ 같은 작품과는 구분되는 보다 순도 높은 자연,즉 풍경 그 자체로서의 자연을 담았다.작가는 자연을 눈에 보이는 대로 모사하지 않는다.강조와 생략을 통해 일필휘지로 단숨에 그리는 편이다.자연은 작가 특유의 눈으로 재창조된다.그런 만큼 강길원의 풍경화는 한층 자연의 순수함과 힘을 느끼게 한다.그러나 강길원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역원근법을 시도하는 다시점(多視點) 회화란 점이다.(02)2000-9737.˝
  • 베르베르-현각스님 파리대담

    ‘벽안의 구도자’ 현각(40) 스님과 소설 ‘개미’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왼쪽·43)가 만났다. 선수끼리는 서로를 금방 알아본다는 말이 꼭 맞았다.22일 저녁 프랑스 파리의 테아트르가 31번지에 있는 베르베르의 아파트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약 2시간여 동안 인생과 종교,그리고 과학과 물질문명에 대해 격의없이,그러나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며 어느새 ‘도반’이 됐다. |파리 함혜리특파원|베르베르는 “평소 느끼고는 있었지만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현재’의 개념과 그 중요성을 스님이 일깨워 주었다.”고 말했고 현각 스님은 그에게 “당신도 아마 전생에 승려였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영어·프랑스어 통역이 자리를 함께 했지만 보다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이들은 줄곧 영어로 대화했다. 이들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베르베르의 아파트를 나와 근처의 한국식당으로 걸어 가는 동안에는 도(道)에 대한 이야기를,식당에 마주 앉아서는 음식과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로 화제가 옮겨지기도 했다. 오직 ‘현재’에 충실하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파리의 서쪽 하늘에 붉게 물들었던 노을은 점차 어둠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뉴스 들을 때면 최후의 순간 맞는 느낌 베르베르 현실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만 매일 뉴스를 들을 때마다 걱정스럽기만 합니다.마치 인류 최후의 순간을 맞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양심이 없는 과학은 이렇듯 인류에게 위험을 가져오고 있습니다.물질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새로운 영적인 방법론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스님’(베르베르는 ‘스님’이라는 발음을 한국어로 하려고 노력했다.)께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각 나는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희망은 없다.”는 것입니다.희망이란 존재하지 않는 미래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모든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귀로 듣고,코로 냄새를 맡고 있는 지금에서 출발합니다.현재에 충실하면 현재가 쌓여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미래에 대해서는 묻지 마세요. 베르베르 내 작업은 주로 미래에 대해 얘기합니다.글을 쓰기 위해 뇌를 움직이는 동안은 지금 이 순간이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가 무엇인지,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의식도,양심도 없는 물질문명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시작과 끝은 같은 것… ‘현재’에 충실해야 현각 예수님께 누군가 물었지요.“마지막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예수님께서는 “그럼 당신은 시작은 어땠는지 이해하고 있나요?”라고 되물으셨습니다.마찬가지입니다.시작과 끝은 같은 것입니다.과거,현재,미래는 결국 ‘현재’라는 시간의 다른 모습입니다.따라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것입니다. 베르베르 현재는 그럼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현각 (대답 대신 손바닥으로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 베르베르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세요. 현각 (다시 탁자를 손으로 탁 친 뒤)과거,현재,미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베르베르 그렇다면 수백년 전에 그려진 ‘모나리자’를 현재의 우리가 바라보며 감명을 받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현각 좋은 지적이에요.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과거의 현재를 보는 느낌을 받습니다.바로 그것입니다.다빈치는 모나리자를 그리면서 완벽하게 ‘현재’에 충실했기 때문에 우리가 감명을 받는 것입니다. 베르베르 스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을 이제 조금 알 듯합니다.새벽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할 때 나는 주변의 모든 것을 잊고 글 속에 빠져 듭니다.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하지요.명상을 하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현각 그게 바로 명상입니다.당신은 컴퓨터로 일하는 승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나는 그냥 보통 승려이고요. 베르베르 스님은 전생에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각 신부이거나,승려이거나 그런 영적인 일을 했을 것입니다.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요.나는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자였고 지금은 머리깎고 승려가 됐지만 내 자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베르베르 가톨릭 신자였던 당신이 불교를 접하고,문화와 관습이 다른 나라 한국에서 승려 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현각 어려움도 물론 있었지요.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나의 스승이신 숭산 스님으로부터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였습니다.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책도 많이 읽었지만 그런 질문을 누구도 하지 않았거든요.결국 그 ‘엄청난’ 질문은 나를 한국으로 이끌었고 내 종교생활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베르베르 바보 같은 질문을 한가지 하고 싶습니다.불교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회피하는 것이 아닌지요? 현각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이렇게 있습니다.불교에서는 세상에 있되 집착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 나가는 것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얘기지요. 베르베르 무저항과 비폭력,명상으로 어떻게 세상의 악을 물리칠 수 있을지요. 현각 지금 우리 두 사람이 앉아서 차를 마시는 이것이 바로 평화입니다.창 밖의 새 소리를 듣고 순수한 마음으로 순수한 현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베르베르 티베트의 많은 승려들은 중국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결국 종교가 그들을 죽인 셈인데…. 현각 그들은 종교로 인해 목숨을 잃었지만 이 생에서 몸이 사라진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가장 중요한 가치는 물질(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참 나(眞我)’에 있는 것입니다. ●관조하는 자세가 바로 불교 베르베르 스님께선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현각 순간적으로 위험이 닥쳤을 때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신적인 두려움은 없습니다.어떠한 두려움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비어 있거든요.아무것도 없어요.멀리서 보면 구름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그냥 물방울인 것과 같습니다.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달라이 라마도 두려움이나 욕망을 느낀다고 했습니다.하지만 인식하지 않을 뿐이지요. 베르베르 감정을 다스리시나요? 현각 아니요.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얘기합니다.고통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나도 명상을 처음 할 때 가부좌를 하느라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그런데 그 고통도 ‘아프다.’는 사고(思考)에 의해 생긴 것이거든요.(펜을 집어들면서)이 펜을 이렇게 보면 길게 보이지만 돌려서 보면 둥근 점이잖아요.마찬가지입니다.다르게 보면 고통은 고통이 아닙니다.그러나 고통은 고통으로 남아 있습니다(Pain is not pain,but pain is pain).관조하는 자세,이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lotus@seoul.co.kr ■현각이 유럽으로 간 까닭은… 현각(玄覺) 스님은 한국관광공사 파리지사 초청으로 한국 불교를 알리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 중이다. 지난 19일 프랑스의 명문 상경계 그랑제콜인 에섹(ESSEC·고등경영대학원)에서 ‘선(禪)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한데 이어 21일에는 프랑스 공영방송인 2TV에서 ‘부처의 음성’이라는 프로그램을 녹화했다. 2TV측은 ‘한국 선 불교의 전통’과 ‘현각 스님의 인생 행로’를 주제로 15분짜리 방송프로그램 2회 분량을 제작해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로 프랑스 전역에 방영할 예정이다. 현각 스님은 베르베르와의 만남을 끝으로 프랑스 일정을 마치고 30일까지 영국에 머물면서 공영방송 BBC에 출연하고 옥스퍼드대학 등에서 강연한다. 현각 스님은 1964년 미국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했으며 하버드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하버드대학원 재학 중인 1990년 5월 숭산(崇山) 대선사의 설법에 크게 감명받고 2년 뒤 출가,선 불교의 전통이 가장 잘 이어지고 있는 한국으로 건너왔다.그는 현재 화계사의 국제선원 원장을 맡아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 베르베르, 가을 ‘신들의 왕국’ 탈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961년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태어났다.7살에 첫 소설 ‘벼룩의 모험’을 지어 주위를 놀라게 한 그는 만화와 시나리오,소설과 과학에 탐닉하면서 고교시절인 1978년에는 고등학생을 위한 만화신문 ‘유포리(Euphorie)’를 창간하기도 했다.툴루즈대학에서 법학을,국립언론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그는 83년부터 90년까지 시사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과학담당 기자로도 활동했다. 12살 때부터 개미의 생태를 관찰했다는 그는 200여차례의 개작을 거친 끝에 1991년 소설 ‘개미’를 발표,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과학적 근거와 관찰을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경이롭고 환상적인 필치로 펼쳐나가는 그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나간다.‘개미’ 외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1993년),‘타나토노트’(1994년),‘여행의 책’(1997년),‘천사들의 제국’(2000년),‘뇌’(2001년),‘나무’(2002년) 등을 발표했으며 올 가을 ‘신들의 왕국’ 탈고를 앞두고 있다. ˝
  • 노화랑 ‘20세기 7인의 화가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도상봉 오지호 이상범 변관식.민족의 보편적인 정서를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로 승화시킨 거장들이다.2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리는 ‘20세기 7인의 화가들’전에선 이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골라 소개한다. 박수근이 서민생활의 애환을 다뤘다면,이중섭은 민족의 힘과 아이들의 천진함을 그렸다.김환기는 자연의 영원함과 추상적 미의 세계를,도상봉은 자연에의 순응을,오지호는 빛과 대기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이상범의 나지막한 동산이 친근함을 준다면,변관식의 산야는 힘찬 기운을 내뿜는다.전시 작품은 박수근 ‘모자’,이중섭 ‘닭과 어린이’,김환기 ‘노점’,도상봉 ‘항아리’,오지호 ‘항구’,이상범 ‘하경’,변관식 ‘추경’ 등 30여점. 이번 전시에선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도상봉과 오지호를 각각 짝지어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20세기 전통회화의 두 거장인 청전과 소정의 작품세계는 퍽 대조적이다.명지대 이태호(미술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청전의 산수화는 잔잔한 수평구도인데 비해 소정의 그것은 수직이나 사선구도로 드라마틱하다.도상봉과 오지호는 동경미술학교 선후배 사이로 똑같이 인상주의의 세례를 받았다.하지만 두 사람의 작업 방향은 크게 달랐다.도상봉이 조심스러운 필치로 조용한 감수성을 내세웠다면,오지호는 캔버스에 속도감 넘치는 격정을 표출한 것이 특징이다.(02)732-3558. 김종면기자˝
  •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김용규 지음

    2년 전 18편의 영화를 철학적으로 성찰한 기발한 영화해설서 ‘영화관 옆 철학카페’에 주목했던 독자라면 반가울 책이 나왔다.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김용규씨가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김용규 지음,이론과실천 펴냄)에서 철학과 영화를 접목시키는 시도를 다시 했다. 이번에는 논의의 초점을 ‘컬트적’ 팬층을 거느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에게 모았다.타르코프스키는 단 7편의 영화로 베니스·칸국제영화제 등 세계적 영화제를 석권한 러시아 태생의 거장감독.책에서 조명한 감독의 작품은 ‘이반의 어린 시절’‘안드레이 루블료프’‘솔라리스’‘거울’‘잠입자’‘노스탤지어’‘희생’ 등 7편 전부. “어렵다.”거나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다.”는 등 감독의 작품세계를 애매하게 받아들인 관객들에게 책은 단순한 영화비평서 이상의 역할을 한다.작품을 분석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철학적 사유를 유도하는 것. 예컨대 감독의 자전적 작품인 ‘거울’은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과 라캉의 ‘거울 이미지’로 재해석한다. 대표작 ‘노스탤지어’는 플라톤과 프루스트의 철학적 이론을 제시하며 새로운 영화보기를 권유한다.1만 6000원. 황수정기자 sjh@˝
  • 선화랑 ‘임효­생성과 상생’ 展

    한국 미술사학을 개척한 우현 고유섭은 한국미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구수한 큰맛’을 꼽았다.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화가 임효(49)만큼 한국미의 근원적인 정서와 맞닿아 있는 작가도 드물다.임효는 이미 자신이 고안해낸 ‘우림수묵’과 ‘들임수묵’이란 작업을 통해 독창성을 인정받아 왔다.콩을 쪄서 메주를 만든 뒤 발효시켜 장을 만들듯 그는 종이죽을 쑤어 바탕을 만들고 먹을 우려내 작품을 완성한다.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우림수묵,그의 표현을 빌리면 ‘장맛수묵’이다. 들임수묵은 우리 전통한복의 천연염색 과정처럼 한지를 물들이는 선염 절차를 말한다.작가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보다 완결된 형태의 미감을 얻기 위해 끝없는 조형실험을 펼친다. 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는 ‘임효­생성과 상생’전은 작가로서는 또 다른 변신의 장이다.특히 마무리 작업은 임효의 작품세계의 특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그는 가히 도침장(搗砧匠)이라 할 만하다.마무리 작업으로 으레 자신이 만든 한지를 수없이 두드려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작가는 이 작업을 위해 도침망치를 20개나 직접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물에 불린 콩을 갈아 바르는 콩댐작업과 옻칠작업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정.때문에 그의 그림은 변색이 전혀 없다.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한지의 부조 이미지 위에 수묵채색으로 드로잉을 함으로써 판화와 회화를 아우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평한다. 임효의 작가적 관심은 자연과 신화로 요약된다.그는 1983년 실경산수를 중심으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지금까지 자연을 화두로 작업해 왔다.설악산이나 지리산,홍도의 용바위벽·떡시루바위 등 산과 암벽은 그가 즐겨 그린 자연의 대상이다.90년대부터는 그의 그림에 성녀·신목·한밝산·개천대도 같은 신화적 요소들이 등장한다.이같은 흐름은 이제 ‘생성과 상생’이란 하나의 주제로 묶였다.작가는 자연과 신화의 본질을 생성과 상생으로 본다.만물은 흐른다는 것,시간과 역사는 순환한다는 것이 그의 화론의 핵심이다. 임효는 시간의 흔적을 작품에 끌어들인다.최근 여행한 인도에서 만난 허물어진 옛 성벽과 강원도 철원 옛 노동당사의 잔해에서 본 포탄의 상흔은 작가로 하여금 묵은 세월의 이미지를 화폭에 옮기게 했다.작가는 그것을 ‘시간의 그림’이라 부른다.이번에 선보이는 62점의 작품은 하나같이 그런 태고적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마치 선사시대 암각화 같다.새빨간 주사(朱砂)로 부적처럼 새겨넣은 ‘태양’이 인상적이다. 작가가 강조하는 생성의 에너지는 종종 에로틱한 형상으로 드러난다.2003년이란 글자로 여인의 소담스러운 둔부를 묘사한 ‘상생­관계’나 ‘상생­연가’,‘상생­음양’ 같은 작품이 그 대표적인 예다.작가 스스로 표현하듯 “음양의 조화가 빚어내는 축제 한마당”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의미를 우리문화의 정체성 찾기에 둔다.그 일환으로 내년쯤엔 전통한지와 수묵,그 웅숭깊은 미의 세계를 소개하는 ‘수묵과 한지의 만남’(가제)이란 책도 펴낼 계획이다.(02)734-0458. 김종면기자 jmkim@˝
  • [책꽂이]

    ●세이렌(오현종 지음,이룸 펴냄) 99년 등단한 뒤 발표한 10편의 단편 모음집.기억을 중심축으로 사랑·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들이다. 평론가 강상희는 “무협·본격소설·멜로 등의 다양한 형식을 빌려 인간의 정체성이 성립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심문한다.”고 분석.9000원. ●직소포에 들다(천양희 지음,문학동네 펴냄) 등단 40년을 맞은 시인이 처음 낸,시에 대한 산문집.자신이 아끼는 일곱편의 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가볍게 시를 쓰는 세태를 꼬집으며 “시는 나의 분신이고 욕망이 아니라 존재”라는 진정성을 글 곳곳에 묻어두었다.6000원. ●김윤식의 비평수첩(김윤식 지음,문학수첩 펴냄) 한국근대문학 비평의 초석을 다진 문학평론가의 새 비평집. 근대가 지닌 역사·사회학적 상상력의 변모과정,시문학사적 측면에서의 4·19혁명 등을 살피고 박완서·최인훈·이청준·오정희·신경숙·조경란 등 중견·신인작가의 작품도 분석.1만 3000원. ●박완서 소설연구(이선미 지음,깊은샘 펴냄) 스테디셀러 작가 박완서의 소설을 내면 심리묘사의 틀로 연구.거대담론이 개인의 일상을 통제하고 그에 대응하는 주체의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작가의 힘이 ‘인물 성격화방식’에서 비롯된다고 파악한다.1만 5000원. ●신비의 거울을 찾아서(장경렬 지음,문학수첩 펴냄) ‘문학을 위한 비평’ 입장에서 평론활동을 해온 저자의 두번째 비평집.신비함이 사라진 메마른 삶이 지배하는 현대에 문학이 추구할 바를 모색한다.황동규·송수권·김춘수 등 시인들의 작품을 분석.1만 3000원. ●질 나쁜 연애(문혜진 지음,민음사 펴냄) 98년 등단한 시인이 62편의 작품을 모아 낸 첫 작품집.평론가 신범순은 “짓물러 가는 영혼의 순수성에 대한 애처로움과 나쁜 아이들의 몸짓을 뒤섞으며 황량한 도시에 사는 주민들의 꿈을 보여준다.”고 평가.6000원.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조정인 지음,천년의시작 펴냄) 98년 등단한 시인의 작품집.생명의 가치에 대한 깊은 명상이 시집의 주된 정조다.시인 이승하는 나무와 아버지를 키워드로 작품세계를 해설하면서 ‘존재의 심연’이라고 풀이한다.6000원.˝
  • [책꽂이]

    ●봄바람(박상률 지음,사계절 펴냄) 시·희곡·소설 등 다방면의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의 성장소설.60년대말 남도의 농어촌을 배경으로 13살 소년의 꿈·호기심·모험·짝사랑 등 통과의례를 통해 세상과 자아에 눈떠가는 과정을 아련히 보듬고 있다.8000원. ●어머니(이선관 지음,선 펴냄) “이제 나도 서정시를 쓰고 싶다.”고 할 만큼 현실에 참여해온 시인의 작품 가운데 99편을 모았다.한평생 마산을 지키며 써온 군더더기 없는 환경·생태시 등은 시대를 앞선 혜안을 보여준다.9000원. ●그 사랑이 나를 부르네(김상옥 지음,열매출판사 펴냄) 자신의 절절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하얀 기억 속의 너’로 화제가 된 작가가 낸 실화소설.3대째 무병에 걸린 미스코리아 출신 여인의 사랑과 출생 비밀을 다룬다.8500원. ●바람의 나라(김진 지음,제이북 펴냄) 12년 동안 21권의 만화로 출간돼 인기를 누리며 게임·뮤지컬로 소개된 작품이 소설로 나왔다.고대사를 배경으로 신화·인간의 세계를 팬터지 기법으로 처리.모두 2권,각권 9000원. ●쾌걸 조로(존스턴 매컬리 지음,김정미 옮김,황금가지 펴냄)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등 여러 버전으로 나온 조로의 모험담.아동용이나 해적판이 아닌 첫 완역본.19세기 스페인 지배하의 미국 캘리포니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권선징악과 로맨스가 줄거리.9500원. ●테이블(프랑시스 퐁주 지음,허정아 옮김,책세상 펴냄)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시인의 유작.‘사물의 시인’으로 불릴 만큼 감정을 아끼고 가장 객관적 언어로 사물을 형상화한 시인의 작품세계가 잘 묻어난다.테이블의 눈길로 테이블을 일기처럼 그린다.4900원. ●제발 조용히 좀 해요(레이먼드 카버 지음,손성경 옮김,문학동네 펴냄) 1980년대 미국 단편소설 붐을 주도한 작가의 첫 작품집.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을 통해 섬뜩하면서도 단순한 정체성을 그리면서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을 담았다.1만 1000원.˝
  • 카이스 갤러리 ‘월 워크스Ⅱ’전

    선사시대 이래 벽화는 말과 글 못지않게 효과적인 시각매체였다.고대인들의 거처인 동굴에서 시작된 벽화는 종교와 신화·권력·역사 등을 반영하는,인간의 삶과 밀착된 미술형식이었다.이러한 벽화에서 생활이 분리된 것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한 모더니즘의 영향이 크다.서울 청담동 카이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월 워크스(Wall Works)Ⅱ’전은 벽화를 ‘생활을 위한 미술’‘삶 속의 미술’로 다시금 자리잡게 하려는 하나의 시도다. 전시에는 고낙범·문경원·서정국·서혜영·성낙희·이미경·정연두·홍승혜 등 8명의 젊은 작가들이 작품을 냈다.이들은 회화·영상 등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다르지만,전시 공간을 거대한 캔버스로 삼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각 작품들은 판화처럼 수량이 한정되고 에디션이 정해져 있다.작품은 작가들이 정해놓은 규칙과 설명에 따라 정확한 공정을 거쳐 전문기술자에 의해 만들어진다.그런 만큼 작품의 정체성은 수공적인 완성도에 있는 게 아니라 작가의 아이디어 자체에 있다. 이들의 작품은 벽과 미술작품의 경계를 허문다.에디션 개념에 의해 복수로 제작되는 벽화들은 어느 장소에나 설치할 수 있도록 고안돼 있어 상업적으로 유통이 가능하다.벽화가 과연 대중적인 미술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이번 전시는 그 시금석이 될 만하다.4월24일까지.(02)511-0668. 김종면기자 jmkim@˝
  • 네번째 소설집 ‘누가‘ 펴낸 윤대녕

    지난해 4월 창작에 전념하러 제주로 내려간 윤대녕이 네 번째 소설집 ‘누가 걸어간다’(문학동네)를 들고 서울에 들렀다. 5년 만에 낸 작품집은 지난해 쓴 4편 등 6편의 작품을 모은 것인데 “중·단편을 정기적으로 쓰는 게 문학적 긴장과 감각을 유지하는 데 좋았다.”고 말했다.제주 생활에서 나온 여유와 성찰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제주로 내려간 것은)문학적 환경을 바꾸려는 시도였는데 냉정해지고 객관적이 되면서 집중력과 문학적 내구력이 늘고 글에 대한 허영심도 가셨다.”고 스스로 진단했다.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자기 속으로 더 들어간 덕분에 작가의 창작 열기는 더 그윽해지고 치열해진 듯 “매년 중·단편 3∼4편을 쓰고 한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통해 우주·시간에 대한 아름다운 생명의 고독감을 다룰,쓸 만한 장편도 쓸 계획”이라고 들려준다. 작가는 90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달의 지평선’‘미란’‘눈의 여행자’ 등 장편과 ‘은어 낚시 통신’‘남쪽 계단을 보라’ 등 중·단편을 가로질러 왔는데 그 차이를 물었더니 “단편이 문학하는 느낌을 더 주지만 힘은 더 든다.200∼300장 분량이 제일 편하다.”고 고백했다. 이번 작품집에는 ‘걷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흑백 텔레비전 꺼짐’의 일도와 정원은 서울 도심의 새천년 맞이행사장 주위를,‘찔레꽃 기념관’의 주인공 소설가와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여자 방송작가는 남산의 찔레꽃을 보러 무작정 비 오는 심야의 도심을 걸어간다.‘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의 남자는 아예 무작정 걷는다.작가는 그 ‘걸음 속 대화와 묘사’로 인물들의 내면과 삶의 흔적을 비춘다.그들은 대개 자기 정체성을 잃고 현실에서 표류하는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하원(‘흑백 텔레비전‘),출생과 관련해 심한 열등감을 갖고 있는 독신녀나 현실에서 탈출구가 봉쇄된 탈영병(표제작),문학적 가치가 무시되는 현실에서 방황하는 예술가(‘찔레꽃 기념관’) 등의 모습으로 투영된다.해설을 쓴 평론가 이남호(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정체성의 위기를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제기하면서,그 현상과 원인을 정치적·문화적·사회적·존재론적으로 다양하게 탐구한다.”라고 분석한다. 이런 작품세계는 ‘무더운 밤의 사라짐’‘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에서도 잘 나타난다.‘올빼미와의 대화’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듯한 사나이와 대화를 시도하면서 자아를 찾으려고 모색한다.이에 대해 작가는 “유독 걷는 것을 좋아한다.”며 “삶의 경계를 걸으면서 자아이면서 타자,그림자이면서 내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이번 작품들은 이전에 보이던 과감한 생략이 많이 줄어 눈길을 끈다.‘시적(詩的)’이라는 평까지 듣던 그의 세계에 설명이 늘어났다.작가는 그에 대해 “아마 불교적 취향 때문에 가능하면 설명을 줄이고 공간과 여백을 키워서 그런 평을 들었는데 내심 달갑지 않았다.”면서 “그 점을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차츰 달라진다.생활 얘기도 늘리고 서사구조도 취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자기 나이를 관통하는 달라진 찰나의 느낌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며 “늘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면서 나이에 걸맞은 소설을 쓸 계획”이라고 의욕을 비친다. 글 이종수기자 vielee@˝
  • [i 센터] 삼청동 갤러리 ‘빔’

    이번주는 아이들과 품격(?)있게 미술관 나들이를 한번 해 보자.서울 삼청동에 있는 갤러리 ‘빔’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와 동화를 소재로 한 그림과 설치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근사한 미술관을 생각하면 외관을 보고는 실망을 할 수도 있다.하지만 ‘빔’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 눈빛이 달라진다.“이 임금님은 너무 재미있다.”,“달빛 별빛이 너무 예쁘다.” 등 아이들의 감탄사가 이어진다. ‘아라비안 나이트’,‘벌거벗은 임금님’ 등 동화부터 ‘빨간머리 앤’,‘키다리 아저씨’등 만화,‘어린왕자’‘예수님의 탄생’등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작가들의 독특한 해석으로 재구성해 그린 작품들과 해,달,별 등을 주제로 한 설치미술작품 4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회원들을 대상으로 ‘작가가 안내하는 동화나라로의 여행’ 이벤트를 실시한다.오는 26일은 동화를 테마로 도자기 작품을 많이하는 ‘백진’씨,사진작가 ‘최광호’씨 등과 사는 이야기부터 작가의 작품세계까지 구분없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이며 입장료는 없다.‘동화나라 여행’ 이벤트 참가는 회원들로 제한한다.갤러리 빔의 회원은 어려운 작가들을 지원하는 의미로 연 10만원의 후원금을 내야 한다.주차장은 근처의 유료주자장을 이용해야 한다.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내려 15분정도 걸으면 된다.가는 길에 경복궁과 유명한 갤러리들이 많이 있다.아이들과 구경을 하며 걸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매주 월요일은 휴관하며 오전 11시에 문을 열어 저녁 7시에 문을 닫는다. 근처에 유명한 ‘삼청동 수제비’집이 있다.맛있는 수제비를 한그릇 먹고 봄볕을 맞으며 경복궁을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다.갤러리 빔(www.biim.net),723-8574 삼청동수제비 735-2965. 한준규기자 hihi@˝
  • [책꽂이]

    ●삶은 조심스럽게,문학은 거침없이(한명희 지음,천년의시작 펴냄) 삼척대 교수인 시인이 만난 문인들의 삶을 모았다.고은·김남조·박상륭·천양희 등 문인들의 ‘문학 이면’을 조명하면서 작품세계를 분석해 부담없이 읽힌다.9500원. ●문화통합의 시대와 문학(김종회 지음,문학수첩 펴냄) 경희대 교수인 문학평론가가 낸 5번째 비평집.현실의 변화 자체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설정하고 문학을 바라보는 입장.작품 자체의 내재적 성과와 의미 구명의 중요성을 역설.1만 3000원. ●비목어(정호승 지음,아침바다 펴냄) 시적 감성을 따스하게 풀어내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내온 시인이 ‘사랑’을 주제로 쓴 동화.물고기·개·꽃·나무 등 동식물을 주인공으로 한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힘겨운 세상살이를 달래준다.9000원. ●유산(한국 버지니아 울프 학회 옮김,솔 펴냄) ‘의식의 흐름’기법을 도입한 버지니아 울프의 2번째 단편집.초기부터 죽기 한달 전까지의 작품을 망라,전통기법에 충실한 작품과 다양하고 독특한 소재를 모색한 울프의 여러 가지 실험기법 등 작가의 변모과정이 담겼다.9800원. ●폴 오스터-인터뷰와 작품세계(이노 도모유키 외 편저,김경원 옮김,열린책 펴냄) 시·소설·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이름을 날리는 미국 작가에 대한 종합적 해설서.키워드를 중심으로 작품세계와 구성요소를 상세하게 설명.8500원. ●붉은 여우의 겨울나기(이덕수 지음,시와사람 펴냄) 시집 곳곳에서 발견되는 시인의 정조는 슬픔이다.‘화석의 새’ 등의 비유로 그 슬픔을 자주 드러내지만 한편으로는 ‘미친 말’ 등의 상징을 통해 현실에서의 탈출을 꿈꾼다.6000원. ●고독할 때 나는 나를 향해 이렇게 얘기한다(우원호 지음,열매출판사 펴냄) 46세에 등단한 늦깎이 시인의 첫 작품집.“내가 이리 고독한 것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따스한 시선이 60대 노가수,40대 실직자 등을 비춘다.6000원.˝
  • 두번째 시·시론전집 출간 김춘수 시인

    “최근 연예인 대상 앙케이트에서 제 시 ‘꽃’이 1등을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이유가 ‘멋진 연애시’라는 데 놀랐습니다.‘꽃’은 말과 존재의 의미,사람의 존재양식 등 두 테마를 담은 시입니다.불만은 있지만 해석은 독자의 권리이니 뭐랄 수 없지요.” 최근 현대문학에서 시전집과 시론전집을 낸 원로 김춘수(82) 시인은 11일 기자와 만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시 ‘꽃’에 대한 반응으로 말문을 연뒤 지난 60여년의 시작(詩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80세를 맞아 작품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1000편이 넘는 시를 초판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정리하다보니 1년이 걸렸어요.4∼5월쯤 수필·소설을 담은 산문집을 낼 계획입니다.” 자신의 삶을 ‘수난의 세대’라고 회고한 김 시인은 도쿄 유학시절 동료 학생들과 일왕을 욕하고 총독체제를 비판한 게 빌미가 돼 1년 동안 옥고를 치른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당시 고문에 대한 두려움에 시키는 대로 순순히 진술하면서 맛본 좌절감과 우연히 취조실에서 본 도쿄대 좌파교수의 언행이 다른 것을 보고 갖게 된 이념에 대한 회의가 시 세계에 깊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82년 첫 전집 출간 이후 발표한 시집·시론을 보완한 이번 전집에서는 시인의 온전한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
  • 김남주 10주기 추모 첫 평전 발간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소나무 뿐이다.”라는 괴테의 말은 ‘진리의 힘’을 돌아보게 한다.이론과 실천이 결합된 그 영원한 싯푸름을 삶으로 보여준 인물로 우리는 칼 마르크스,체 게바라를 떠올린다.좀 더 가까운 곳에서는 ‘시인 김남주’를 기억한다. 13일은 그가 평생 사랑했던 민중의 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날.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기리는 책이 나오고 추모문화제가 열려 ‘김남주의 자리’를 되새기게 한다. 대구가톨릭대학 철학과 강대석 교수가 지은 ‘김남주 평전’(한얼미디어 펴냄)은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첫 평전.강교수는 감옥도 가두지 못한 김남주 시인의 사상·문학의 고갱이를 ‘계급의식’으로 규명한다.김지하와 황석영의 저항정신과 문학적 형상화를 뛰어넘는 김남주,그만의 미덕을 ”철저한 역사의식과 세계관을 견지했다.”고 평가한다. 이런 입장에 바탕하여 지은이는 1부에서 김남주 시인의 삶을 상세하게 추적한다.시인은 전남 해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79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남민전)’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아 1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와 5년 동안 살다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평전이 돋보이는 대목은 시인의 삶을 단순 연대기로 서술하는게 아니라 작품을 적절하게 배치해 삶의 편린들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어릴적 성장기에는 ‘아버지’‘이야기’,중고교시절엔 ‘그러나 나는 잘된 일인지 못된 일인지’같은 시를 얹어 고뇌와 인간성을 살려낸다. 2부 ‘투쟁의 무기’는 시인의 예술세계를 보듬는다.주요 시집 ‘조국은 하나다’와 산문집 ‘시와 혁명’ 등을 토대로 시인의 통일·민중에 대한 애정의 원천을 풀어낸다.당연히 지은이의 철학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이 바탕이 됐다.저자는 또 정세 분석을 병행하면서 ‘시인의 선택’이 어떻게 나왔고 필요했는지에 대해 당위성을 부여한다.여기에 중학교 친구로서 변혁의 길을 함께 걸은 이강,선배 박석무,남조선민족해방전선의 동지 박석률 등 관련 인물의 생생한 증언을 덧붙여 평전을 살아있게 한다.덕분에 ‘민중의 벗’ 김남주는 영원히 푸른 소나무로 되살아 난다. 한편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관련 단체들과 함께 13일부터 이틀간 전남 해남문예회관,김남주 생가,5·18기념문화관 등지서 추모문화제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김남주 시 ‘노래’의 첫 행)를 연다.추모제는 가수 안치환,극단 ‘토박이’‘신명’의 공연과 ‘소설가 황석영이 본 김남주의 삶과 문학세계’강연으로 이뤄진다.15일에는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추모제도 갖는다.(02)313-1486. 이종수기자 vielee@˝
  • 먹으로 그린 ‘인간 은하수’/고암 탄생 100주년 기념전

    고암 이응노의 작품에는 늘 인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다.80년대에는 군상 연작의 형태로,70년대에는 문자추상 속에서 기호화된 형태로 인간이 등장한다.60년대의 추상화,1958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이전의 사실적인 풍경화 속에서도 어김없이 인간의 모습이 드러난다.한지에 먹으로 그린 수백,수천의 인간들.고암은 한번의 붓놀림이 곧 한 사람이 되는 일격의 운필을 수없이 반복해 ‘인간 은하수’를 만들어냈다.서로 손을 잡고 같은 율동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운이 생동하는 모습이다. 올해는 고암(顧菴) 이응노(1904∼1989) 화백이 태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해.서울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에는 고암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80년대 이응노 군상전’이 마련됐다.고암은 1980년을 기점으로 생의 마지막 10년간 그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집약된 군상 연작을 남겼다.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군상 연작 51점이 나와 있다.그림 속의 사람들은 남녀노소,민족,계층의 구별 없이 똑같은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고암은 생전에 자신의 군상 연작에 대해 “모두 서로 손잡고 같은 율동으로 공생공존을 말하는 민중 그림”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암은 충남 홍성의 선비 집안 출신으로 일본 도쿄 가와바타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했으며,남종화의 대가 마쓰바야시 게이게쓰의 덴코(天香)화숙에서도 그림수업을 받았다.1958년 54세의 나이로 프랑스로 건너간 뒤에는 동양의 서예와 문인화 정신을 기반으로 서양의 콜라주 기법을 혼용한 환상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여왔다.1967년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강제 소환돼 2년반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전시는 6월27일까지.(02)3217-5672. 김종면기자 jmkim@
  • 책꽂이

    ●하루(한만수 지음,실천문학사 펴냄) 2002년 실천문학 신인상 수상작.농부의 하루생활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황폐한 농촌의 참상과 농민들의 애환을 생동감있게 그렸다.9000원. ●미들섹스(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이화연·송은주 옮김,민음사 펴냄) 2003년 퓰리처상 수상작.14년 동안 여성으로 자란 주인공이 남성이라는 진단을 받고 겪는 좌절감을 그렸다.성과 젠더,인종 차별 등의 문제도 담겨있다.모두 2권,각권 9000원. ●비만한 이성(이재복 지음,청동거울 펴냄) ‘몸’을 중심틀로 해서 문명과 자연의 상생을 탐색해온 평론가의 비평집.소설가 윤대녕·신경숙,시인 이승훈·이은봉 등의 작가론과 90년대 페미니즘·생태주의 문학론 등을 분석.1만 5000원. ●이문구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과 탈식민지성 연구>(고인환 지음,청동거울 펴냄) 지난해 타계한 이문구의 작품세계에 대한 본격 연구서.현실과의 관련성과 문체 미학에 중심을 둔 기존 분석과는 달리 이문구 문학의 현재적 의미와 미래 지향성을 고찰.1만원. ●나를 찾아가는 동화여행(레스카 카우프만지음,조경수 옮김,문예출판사 펴냄) 호기심 많은 소녀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 나선 여행을 액자소설 형태로 다룬다.자작나무 앵무새,스라소니 등과의 만남을 통해 삶에 대한 16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8500원. ●연애소설(가네시로 가즈키 지음,김난주 옮김,북폴리오 펴냄) 재일동포로는 처음으로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소설집.표제작 등 3편의 작품에서 지난날의 사랑을 현재형으로 불러오면서 사람 사이의 대화가 중요함을 이야기.8000원.
  • 18세기 문예계 큰 스승 강세황의 詩·書·畵·評/새달 29일까지 예술의전당서 특별전

    표암(豹菴) 강세황(1713∼1791)은 시서화 삼절(三絶)의 문인예술가이자 서화비평가였으며 김홍도·이인문·신위 등을 키워낸 18세기 조선 문예계의 큰 스승이었다.아호인 표암은 태어날 때부터 등에 흰 얼룩무늬가 표범처럼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표암은 32세부터 30년 동안 일체의 벼슬을 단념하고 안산 초야에 묻혀 학문과 예술에 전념했다.그는 안산시절 체득한 충만한 자의식과 72세 때 사신으로 연경에 다녀온 이후 고양된 안목으로 18세기 조선의 사회 문화 전반을 휩쓴 변화의 기운을 표출했다.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18세기 예술의 큰 스승-표암 강세황의 詩ㆍ書ㆍ畵ㆍ評’전은 표암의 시서화평에 담긴 정신세계를 ‘문인예술가’라는 측면에서 살핀 대규모 기획전이다. 표암은 서양화법을 최초로 도입했으며 중국에서 들어온 남종문인화의 조선화 내지 토착화를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지금까지 표암은 주로 화가로서 연구돼 왔고 전시도 회화를 중심으로 이뤄졌다.시인이나 서예가로서의 면모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다.표암의 시서화평 모두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제는 푸른 솔은 늙지 않는다는 뜻의 창송불로(蒼松不老).표암이 죽기 직전 오도송처럼 남긴 절명구다.전시에는 초상,글씨,산수인물,사군자 및 초충화훼,서화평과 교유관계를 보여주는 작품 등 5개 분야 114건의 작품이 나와 있다.이중 표암이 79세 작고하던 해에 쓴 ‘표암유채첩’은 연행(燕行) 이후 일변된 모습을 보여주는 말년 최고의 득의작이다.골기(骨氣)가 뚜렷이 드러난 이 작품은 19세기 ‘완당바람’의 전조를 느끼게 한다.표암의 글씨는 중국에서조차 ‘미하동상(米下董上·미불보다는 아래이지만 동기창보다는 위이다)’이라든가 ‘천골개장(天骨開場·천품이 글씨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이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필력이 뛰어나다. 표암의 생애는 초기 학습기(32세 이전),안산시절(32∼61세),출사와 연행(61∼79세) 등 세 시기로 나뉜다.이 가운데 특히 안산시절과 연행은 표암의 예술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가장 중요한 시기로 꼽힌다.표암은 평생 중국과 조선의명작·화보에 대한 임모(臨模)와 방작(倣作)을 통해 그 작품들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자 했다.이번에 공개된 ‘방석도필법산수도’‘방공재춘강연우’‘표옹서화첩’ 등에서는 그런 근거들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표암은 안산에 칩거하면서 시나 서화를 주고받거나 시회(詩會) 등을 통해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표암의 교유관계는 성호 이익을 중심으로 한 여주이씨 일문과 안산15학사,유경종을 중심으로 한 진주 유씨 가문으로 요약된다.이들은 대부분 현실정치와는 거리가 먼 기호남인이나 소북계 인사들로 현실에 구애됨이 없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들이었다.전시에서는 ‘강내한수친연송시첩’‘단원아집’‘무이구곡도’‘현정승집’‘섬사편’ 등 안산시절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한편 표암의 셋째아들 관이 쓴 ‘계추기사’는 표암 초상화의 제작내력,표구 제작과정 등을 적은 초상화 제작일기로 눈길을 끈다.전시 기간중인 2월7일에는 표암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도 열린다.서울대 안휘준 교수가 ‘표암과 18세기 조선의 문예동향’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2월29일까지.(02)580-1511. 김종면기자 jmkim@
  • “물방울 그림 30년… 고생한 보람 느껴”/프랑스 국립주드폼미술관서 회고전 여는 김창열 화백

    |파리 함혜리특파원|지난 30여년간 물방울을 화두 삼아 도 닦듯이 회화 작업을 해 온 ‘물방울 화가’ 김창열(金昌烈·사진·75) 화백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회고전이 13일부터 3월7일까지 약 두달간 프랑스 국립 주드폼미술관에 열린다. 물방울이라는 하찮은 소재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미적 체험을 제공해온 그는 “선배들도 많은데 먼저 미술관 전시회를 갖게 돼 송구스럽다.”면서도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파리에서 처음 갖는 미술관 전시회에 대한 기대감이 엿보인다. 주드폼미술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대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온 현대 미술관.19세기 중엽 건립된 미술관으로 오랑주리 미술관과 함께 1954년부터 오르세 미술관 개관(1986년) 이전까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던 유서깊은 곳이다.한국 작가로는 이우환씨가 97년 처음 초대전을 가졌고 조덕현씨가 아시아 작가 그룹의 한 명으로 이 미술관 앞뜰에서 설치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김 화백의 회고전은 올 봄부터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모습을 바꾸기에 앞서이곳에서 열리는 마지막 전시회다. 그는 미술관 전시가 갖는 의미에 대해 “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미술사에 기록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작품이 공인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라고 말한다. 물방울의 생성과 소멸 사이의 한 순간을 포착해 캔버스 위에,모래판에,나무판자 위에,천자문 위에 극사실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의 물방울 시리즈 작품들은 ‘우리의 존재 방식에 대해 우리 스스로를 규정하도록 요구하는 내면성의 그림’이라는 찬사와 함께 동서양을 초월한 보편적인 시각언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시회에는 60년대 초 미국에서 작업한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미술 작품 ‘제사’부터 파리에 건너온 초기의 스프레이 작업,화면 바탕에 천자문을 써 넣은 ‘회귀’,최근의 ‘황토’까지 30여년간 작업 중 대표적인 작품들이 소개된다.총 34점의 그림과 함께 지름 20㎝의 물방울 모양 수정작품 ‘명상’도 전시된다. 그는 ‘미련하리만치’ 오랜 세월 동안 물방울에만 천착하는 이유에 대해 “1969년 말 어느 아침에 캔버스 뒷면에 영롱하게 맺혀 있는 물방울을 발견했습니다.바람이라도 불면 후두둑 떨어져 버리는 덧없는 운명 앞에서도 아침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순수한 물방울의 아름다움은 충격적이었지요.그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지금까지 씨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금껏 물방울과 씨름하며 묵묵히 살아온 그는 또다시 물방울을 그리기 위해 붓을 잡았다. lotus@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타원형 감옥의 외부-백민석 소설 목화밭 엽기전과 그 맥락

    강 경 석 1.기율과 충동의 사이 백민석의 소설들은 낯설다.그래서 그는 활동 초기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그러나 그런 만큼 오해와 풍문속에 내버려져 있기도 했다.그에 관한 논의들 대다수가 “긍정과 부정의 양 극단에 서”(하상일)있다는 지적은 여기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작가 백민석은 과장된 지지와 일방적 폄하 사이에서도 소설적 기율에 대한 자의식과 하위문화적 충동 간의 길항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다.이는 그의 소설을 전위주의(avant garde)나 키치적 신세대론으로 소급하게 만든 흔한 실마리이기도 했다.그러나 이 길항이 가지는 가시적 면모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그보다는 하위문화소들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 작가가 무엇을 배치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90년대적 공통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혹은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261면)진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그의 소설들이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범주로의 손쉬운 편입을 수락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들은버려지고 배제된 것들(abjection) 말하자면 “병원 수술실에서 나온 적출물더미”(74면)의 잡종교배를 통해 태어났다.하위문화적 기시감으로 얼룩진 “적출물더미”들이 작중현실을 대신하면서 이들을 단순한 상징이나 알레고리로 보이게끔 만들지만,백민석의 서사전략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는 비유적 세계의 너머에 있다. 우리가 길어 올리고자 하는 주제들은 모두 그의 네 번째 장편 ‘목화밭 엽기전’(이하 엽기전)을 경유한다.‘헤이,우리 소풍 간다’(이하 헤이)로부터 본격화된 백민석의 소설 작업은 자못 활력적이었다.그리고 그 도정의 옥매듭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엽기전’이다.이후 출간된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하 장원)이나 장편 ‘러셔’도 이 텍스트의 장력 바깥은 아니다.‘엽기전’은 백민석의 성공과 실패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창이다. 2-1.기생(寄生)과 평질변이의 공간들 벤야민은 카프카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것을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초점이 있는 타원과 같다.”라고 썼다.이처럼 ‘엽기전’ 또한 두 개의 초점을지닌 타원 구조를 띠고 있다.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이 현대사회의 알레고리적 재현이라면 ‘엽기전’은 그 ‘재현’의 재현이다.은폐된 두 개의 초점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축척의 개략도 한 장을 준비하기로 한다. 주인공 한창림은 대학 강사이다.그에게는 수학과외 교사를 하는 아내 박태자가 있다.과천에 살고 있는 이들은 비교적 분명한 사회적 신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작업에 몰두한다.그것은 미소년들을 자신들의 집 지하실로 납치해 스너프필름을 찍는 일이다.이는 시종 “흰 연기”(281면)에 비유되는 공포스러운 존재 “펫숍삼촌”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펫숍의 영어표기 pet에’는 ‘성애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으며 거기에서는 “도착적인 냄새”(128면)가 난다고 설명되듯 그가 한창림 부부에게 돈을 지불한 뒤 얻는 것은 관음증적 쾌락이다.이야기는 박태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소년 윤수영이 이들 부부에게 납치·살해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생면부지의 한 회계사를 양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폭행하게 되고,그 때문에 오장근 형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일이 “질서에서 어긋나”(188면)자 펫숍삼촌은 박태자를 살해한다.한창림은 오장근과 펫숍삼촌에 대해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실패하고 체포된다.이 파국의 막바지를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그는 “모자이크 처리가”(280면)된 “목화밭”을 발견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개략도만으로 우리의 목적지가 금세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도착적 수사들을 일단 괄호치고 나면 텍스트는 의외로 쉽다.그것은 실존공간에 틈입한 우발적 폭력이 파국의 빌미로 된다는,매우 익숙한 플롯을 배면서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같은 맥락에서 “햇빛 때문에” 한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뫼르쏘(‘이방인’)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한창림과 뫼르쏘가 행사한 폭력은 부조리한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양담배”나 “햇빛”은 사후에 조작된 것일뿐 폭력의 본질적인 동기는 아니기 때문이다.요컨대 ‘엽기전’은 지식인 주인공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폭력적 충동 앞에 느닷없이 노출된 상황과 이질적이고 도착적인 수사들의 짜깁기로 구성되어 있다.이 발견을 열쇠로 삼아 텍스트에 좀더 가까이 가 보자. 우선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傳)이라는 이름의 작품 형식표지 때문이다.이것은 한 인물의 인생유전을 시간의 흐름에 입각해 서술하는,동아시아 고전문학의 대표적 형식 중 하나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적 굴절을 거듭해왔다.인물의 궤적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박씨부인전’‘홍길동전’ 혹은 ‘라울전’(최인훈)‘유자약전’(이제하)과 같이 인물 지시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필경 전 형식을 새롭게 전유하면서 그 스타일이 고안되었을 ‘한씨연대기’(황석영)도 사례에 포함시킬 만할 것이다.그러나 엽기(獵奇)는 인물이 아니라 어떤 사태를 지시하는 말이다.그로테스크(grotesque)의 일본식 번역어일 가능성이 높은 이것은,최근 폭발적인 유행과 함께 하나의 문화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그러므로 ‘엽기전’은 엽기라는 문화적 표상들의 탄생과 성쇠를 기록한 형식이다.그러나 텍스트에 파종된 엽기들은 발생·성장·소멸이라는 시간적 체험과는 무관하게비선형(非線型)적으로 뒤엉켜있다.이런 측면은 자연스레 공간적 상상력을 유도한다.텍스트의 문면에 돋을새김 된 모티프들이 “동물원”“펫숍 건물”“지하작업실”“서울랜드”“목화밭”“과천” 등의 공간 표상들임은 시사적이다.지하분묘(grotta)의 벽에 표현된 반인반수의 기괴한 신체들로부터 파생,매스미디어적 운반을 거치면서 그로테스크는 엽기로 굴절되었거니와 엽기는 먼 기원에서부터 이미 공간 자질(지하분묘/일그러진 신체)을 보유했던 것이다.그런 면에서 ‘엽기전’의 전(傳)은 교란부호 내지 착란이다.그것은 엽기가 전(傳)이라는 선형(線型)적 시간에 뿌리내리면서 빚어진 형질변이의 결과여서,결국 의식의 ‘적출물더미 하치장’을 표상하는 공간 기호로 작동한다.이것의 대표적 작중 용례는 일상의 표면에 묻힌 한창림 부부의 “지하작업실”일 것이다.이곳에서는 마치 무의식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설정 자체는 나체의 주술사가,흰 피부의 사내애와 벌이는,섹스의 향연이다.신께 제를 올리는 것이다.제물은 섹스이고,체액이고,신체이다.(212면) 재갈과 가죽 끈으로 포박당한 희생자는 끊임없는 린치의 반복앞에 저항할 힘조차 잃고 있다.한창림 부부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상황을 연출하면서 마치 마계의 제사장처럼 행동한다.악마숭배의 제의적 모티프는 하위문화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헤비메탈 밴드의 라이브 공연장은 가장 적절한 참조 대상이다.이들은 “무시무시한 대형 두개골 모형이 놓여 있고,사방에 스티로폼으로 만든 시체 조각 뼛조각들”(‘장원’146면)이 널린 무대에서 연주하곤 했다.그들은 관중을 향해 “날엉덩이”까지 흔들어대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는다.작가가 여기에 깊은 공감을 보이는 이유는 “모든 가식을 뚫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는 추잡한 날엉덩이의 미학”(‘장원’ 147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은 한창림의 지하작업실과 유사한 공간 자질을 갖는다.성스러운 신의 전당들이 지상으로부터 영원을 향한 상승 이미지라면,엽기전적 공간은 지하로 숨어든 하강 이미지이며,그것은 서구 고딕(Gothic)소설들이 공간적 배경으로 흔히 채용했던 폐쇄공간들(외딴 성,숲속의 저택 등)과도 통한다.한창림의 지하작업실이 “서울랜드와 동물원이 지어질 때 고립”(18면)되었다고 진술되면서부터 이들과 일정한 상호텍스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오트란토 성’(H 월폴) 같은 작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지하실이나 비밀통로,폭력적인 남성형상 등의 모티프들이 두루 겹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엽기전’이 일반적인 공포물이나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소재주의에 함몰된 비약이다.상호텍스트성이 아무런 매개도 없이 동질성으로 전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를 과장하다보면 최인훈의 ‘웃음소리’나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또는 이승우의 몇몇 근작조차 고딕소설의 일종으로 배분해야 지 모른다. ‘오트란토 성’이 봉건 이념의 종식을 징후적으로 포착한 경우라면,‘엽기전’은 근대 자본주의의 세포단위인 부르주아 핵가족의 내파(內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내력부터 다르다.이 앞뒤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의 심연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인데,그렇다고 텍스트에 드러난 고딕적 요소를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그것은 ‘신체 상해’의 문학적 상관물들이 동시대의 한국문학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것이 도시 체험의 축적에서 유래하는 일탈의 감각과 깊이 연루된 것이고 보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던 징후의 하나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그런데 테리 이글턴 같은 경우는 여기서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자체를 오히려 “고딕의 뒤늦은 부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그에 따르면 고딕이란,“편파적 시선에 의해 내던져진 괴기스러움의 그림자이며,허구 속에 안전하게 봉인된 팬터지이자 분노이기도 한,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의 포스트모더니티를 과장하는 일도,서구적 맥락에서 고딕을 규정하는 일도 아니다.고딕환상물들이나 하위문화 양식들이 다양한 방향의 역사적 분절과 매체 전이를 경험하면서도 “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기원적 동질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에서 말한 ‘재현(가상)의 재현’이란 무엇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다.‘무의식”이라는 표현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하위문화적 충동의 1차적 재현이란 이미 “안전하게 봉인된” 저항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백민석이 수행하고 있는 ‘재현의 재현’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버려지고 배제된 “적출물더미” 혹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들”(166면)은 “지하작업실”이나 “펫숍건물”에서 벌어지는 린치행위들(악마적 희생제의)과 함께 표면적으로는 위반의 정치학을 구사하면서도,내면적으로는 “사회체계”의 안전망 안에서 자기보존의 영속적 지위를 획득한 것들이다.그것은 또,하위문화 기제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엽기전’은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그리하여 텍스트는 반항의 에네르기를 통제하는 봉인,“과천의 위생 처리된 맨홀 뚜껑”을 해체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이때부터 텍스트 전개의 중심축은 지하작업실의 은폐된 사실들이 표층으로흘러넘치면서 발생하는,파국을 향해 이주한다.한창림이 지하작업실을 불태우는 장면(234면)은 그 전환점이다.이 상상적 봉인해체 작업을 통해 백민석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이 얼마나 안일한 기초 위에 축조된 것인가를 묻는다.한창림은 이를 “몰락”(232면)이라고 말한다.이것은 그의 목소리를 빌려 미리 암시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의 위협적인 눈들로부터 폭넓게 노출되어 있는지 깨닫곤 놀랐다.사람들은 다만 망상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자기가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았다.(68면) 첫 장편 ‘헤이’의 “퐁텐블로”나 ‘엽기전’의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낸 과천”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을 외화시킨 인공낙원이다.그리고 이 공간들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작업은,그 전제에서부터 “사회체계”의 기초를 탐색하는 작업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엽기전’의 전략을 논리적 비약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듯하다.이러한 종류의 탐색 작업은 늘 집 또는 가족의 문제와 관계 맺는다.근대문학의 전통이 끊임없이 물어왔고 또 동시대의 문학적 상상력들이 여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백민석 또한 가족이라는 공간에 대해 묻는다.그곳은 “우리의 지옥”(‘헤이’,244면)이다. 2-2.집의 포자(布子)들과 두 갈래의 초월 근대적 가족 이미지의 거처(topos)로 기능해온 ‘집’은 백민석에게 와서 다시 씌어진다.그는 가족 이념의 내파를 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는 실존주의 모티프를 통해 보여준다.임신 중인 박태자가 “가족 없이도(…)그럭저럭 결혼까지 하며 제법 꾸려져왔”(142면)던 자신의 삶을 강변하며 아버지의 방문을 거절하는 장면,그리고 화장실에서 사산(死産)하는 장면.이 두 장면의 연속배치는 결정적이다.자신의 기원을 부정하면서 재생산의 고리마저 끊어낸 ‘집’(또는 가족)이란 그 자체로 전복적인 하위문화 공간이자 “지옥”이다.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강렬도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서 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이타카(Ithaca)의 회복을 욕망하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백민석의 인물들은 기억의 서사를 추구하는 윤대녕의 주인공들과 대조적이다.그곳에는 어떤 기억이나 회상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부조리한 충동은 거의 언제나 우발적인,비가역적 동시성의 소산이기 때문이다.기억의 돌출은 기껏해야 한창림이 자기 어머니를 떠올릴 때처럼 파편적 이미지로 던져지거나(154면),박태자의 경우처럼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암페타민의 환각”(99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행위가 작가의 궁극적 주제를 직접 매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이는 작가가 한창림과 박태자의 교차진술을 통해 작중 상황을 반복 객관화시키면서 더욱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주인공의 욕망이 작가론의 직접적 상관물로 환원될 수 없다는,일견 단순한 사실이 지금껏 무시되면서 ‘엽기전’은 냉소나 허무주의적 저항담론의 일방통행로에 갇혀 버렸다.물론 ‘헤이’와 같은 초기작의 경우,하위-충동의 허무주의를 준거점으로 삼으면서 결국 세대론적 인정투쟁에 희생된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충동의 무정부적 방출을 일삼는 주인공이란 하나의 설정일 뿐이지 궁극은 아니다.이들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마치 스크린 속에서 만난 괴기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재현의 재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는 듯 담담하다.작중인물들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그러므로 허무주의적 세계관 또한 출발점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헤이’ 이후 작가에게는 단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출발점의 진화를 위해 망설임없이 밀고나가는 길,그리고 부조리한 충동들의 존재근거를 되짚는 길이 그것이다.앞의 것은 “목화밭”으로 가는 길이고 뒤의 것은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이 친구를 보라’로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길이다.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목화밭”으로 가는 길 끝에서 한창림 부부가 몰락한다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자칫 이 끔찍한 존재들의 실패담이 무책임한 냉소로 비칠 수 있겠지만,하위문화의 봉인된 저항이 늘 그런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태생적 한계에 의해 몰락하는 것뿐이다.그것은 기원 혹은 자신의 존재근거(집)를 스스로 거절하면서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백민석은 이것을 “괴물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숙명’이라는 말에 이미 전제된 것처럼,한창림 부부의 몰락은 단지 기성질서나 사회체계의 견고함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충격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아니 좀더 일반론적으로 말해서,주인공의 몰락은 늘 체제에 대한 굴복을 뜻하고 마는가.우리는 그 반대의 사례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쥘리앙 쏘렐((적과 흑))의 몰락이 단지 타락한 욕망의 몰락일 뿐이며 이동혁((객지))의 실패가 영웅주의의 실패에 불과한 것처럼,한창림의 파멸은 가상의 식민지 위로 흘러넘친 그 무정부적 충동의 패배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엽기전)에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토대는,기억의 환원작용을 철저히 단속하면서 “훗날,그의 기억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끔”(234면) 집이라는 상징을 소각시켜 버린 데에 있다.그것은 다만 지하작업실의 끔찍한 린치와 패악들을 포장하는 초월적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위-충동의 공간으로 전락한 집(獵奇傳)은 단순한 상징이기를 멈추고 마치 암세포나 포자식물들이 그렇듯 확산 증식한다.지하작업실에서 “섹스”와 “신체”가 “제물”(212면)이 된다는 진술은 그래서 설명 가능해진다.근대적 주체 재생산의 전제가 되는 남녀간의 성적 교환을 악마적 제의로 탕진하면서,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등치시켰기 때문이다.이 공간이 지닌 능력은 통상적 상상을 넘는 것이어서,거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에 필적한다.이 “지하작업실의 깜깜한 자궁”(91면)에서 길러져 나온 포자들이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 비정상적 존재들이며 체계의 관리망 안에서 “도착적”으로 왜곡된 인공 “수컷성”의 담지자들이기도 하다.“학교 안의 새끼 수컷들”(69면)이나 “동물원의 독방에 갇힌 만드릴 육식원숭이”(175면),“정신병원의 조울증 환자들”(138면) 등은 바로 그 증식의 사례들이다.지하작업실의 포자들은 훈육시설 즉 사회체계의 관리 시스템에서 기생한다. 이것은 빅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어두컴컴한 실험실이 괴물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자궁으로 기능한다는 지적(G 스피박)을 연상시킨다.그러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년)이 여행(모험)의 구조를 통해 비정상적 존재(괴물)의 정신적 성숙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면,‘엽기전’에는 성숙 혹은 교양(Bildung)의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조화로운 가족서사에 대한 강렬한 향수(괴물은 빅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를 지닌 반면 후자는 가족서사 자체를 히스테리에 부쳐버린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전(傳)이라는 시간적 형식이 왜 엽기라는 그로테스크의 변종과 만나면서 공간화 되는지를 부연한다.가족은 주체의 인큐베이터이며 성숙이란 그 시간적 진화 과정이다.텍스트는 전통적인 소설의 중심축이라 할 성숙의 문제를 수락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성의 장력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이 텍스트가 읽기의 습속에 저항하는 것은,한편으로 비선형적이고 공간적인 그래서 공시적 사유방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서사의 절연과 접합된 공시적 사유방식은 의미심장하다.근대적가족 이미지가 학교나 군대와 같은 훈육시설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본주의에 의해 수행되는 상징조작의 일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었다는 성찰과 맞닿으면서,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 작가들은 가족의 문제를 자신들의 중심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집단적 주제로부터 ‘엽기전’은 그러나 조금 더 전진해있거나 약간 비켜 서 있다. 약간의 비약이 허락된다면,분단 이후의 한국소설사는 가족의 균열을 중요한 축으로 설정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이것은 주로 결손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이데올로기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아비부재에 집중되어 있었다.이것은 김소진에 이르기까지 승계되었다.이 전통은 근원적 실향의식과 친족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해왔다.그러나 90년대의 풍속 주체들은 그것을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이들의 공과를 떠나서라도,가장 급진적인 작가로는 배수아가 적임일 것이다.그는 동요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이미 파산선고를 내린 듯이,“어머니”를 새로운 해체대상으로 설정한다.그러므로 결손의 모티프를 구사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아비부재가 아니라 어미부재로 나타난다.그러나 “어머니,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겠어요”(‘부주의한 사랑’)라고 외치는 배수아의 “아이들”마저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강렬한 향수야말로 이 도저한 거부의 진정한 추동력인 셈이다.‘엽기전’을 동시대의 유사한 징후들 속에서도 분별하게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텍스트는 가족서사의 부정적 연혁을 작성하면서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음각(陰刻)하고 마는 평균적 해체작업에 만족하지 못한다.그 거부의 의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양상을 띤다.텍스트는 가족서사에 대해 “너무나 흔해서 얘깃거리조차 안”(48면) 된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주인공들의 이러한 진술 자체가 텍스트의 궁극적 주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잠정적으로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라 부를 만한,근대적 가족제도의 구체적 질곡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작가는 이것을 요약하기 위해 “수컷성”이라는 특유의 조어를 반복 사용하고 있다. 그 외피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란 심층에서 남성적 지배질서를 지속시키려는 “사회체계”의 작동 방식을 함축한다.‘아버지와 아들의 경쟁’으로 상징되는 오이디푸스적 세계 안에서 성숙이란 결국 남성적 성숙에 다름 아니며,이는 근대적 가족 제도를 경쟁 이데올로기의 기초로 삼는 자본의 요구이자 동력이기도 하다.텍스트의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수컷성”이란 “영역싸움”“패권주의”“위계질서” 등으로 예시되는데 이것들은 경쟁 구조의 자기보존 양식을 말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이 질서에 붙들린 존재들은 어떠한 준거로도 윤리적 판단대상이 될 수 없다.이 세계에서는 선악의 이분 구도 따위가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는다.충동적 가상들(수컷성)만이 거주하는 끔찍한 세계이기 때문이다.이는 전작(前作) ‘불쌍한 꼬마 한스’에서 오이디푸스적 성숙의 발생학을 탐사했던,백민석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꼬마한스는 프로이트의 주력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 사례이다.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낳고,그것이 다시 말(言)에 대한 공포로 전이되어 꼬마 한스의 신경증을 구성한 것이다.백민석의 주인공들도 공포의 기척 앞에서 실어증을 경험하곤 한다. 한창림은 공포에 전율할 때마다 “누군가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박아넣은 것”같다고 느낀다.이 공포감은 “사회체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이는 백민석의 끈질긴 문제의식 중 하나인데,표현의 추상성을 넘어 은연중 역사적 환기력을 구체적으로 회복한 경우는 그에게 ‘엽기전’이 처음일 것이다.그는 ‘엽기전’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이곳 안양 평촌으로 이사오고 나서,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그게 94년이니까 벌써,칠 년 전의 일이다.(…) ‘뭔가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97년의 일이다.그저 엮어 놓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컸던 것이다. 97년은 국내 경제를 준 공황시대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 사태 혹은 신자유주의의전경화가 본궤도에 오른 시점이다.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엽기전’은 자본주의 사회체계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충격적 확인을 내면화한,우리들의 보고서다.한창림 부부와 그 혈육들이 하나같이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이라는 것과 “뷰티풀 피플”의 남편이 파산한 사업가로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예증이 된다.“퐁텐블로”나 “과천”이 보여주는 위장된 혹은 상상적 안온함은 생산자본이 투기자본에 압도된 ‘거품경제’ 만큼이나 “텅 빈”,그리고 아슬아슬한 것이다.그가 작중현실로 설정하고 있는 하위문화적 충동의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그것은 파국의 예감을 이기지 못한다.작품 구상 단계의 모호함이 명료한 의지를 얻게 된 것도,무정부적 충동의 발산에 기울어 있던 작품세계가 일정한 전환점을 획득한 것도 모두 동시대 감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엽기전’은 우리 시대의 집단신경증(부조리한 충동)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관철 혹은 “수컷성”의 일방통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이는 백민석이 의도적으로 성숙의 문제를 삭제한 결과이다. 그런데 성숙의 문제를 괄호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인가.하위문화적 충동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는 이런 의문들이 도사리고 있다.성숙은 블랙홀의 심처와 같이 끊임없는 소환의 인력을 발산한다.성숙의 저 끝 간 곳은 초월의 영역일 것이며 이것은 텍스트 내부에서 두 갈래의 길을 연다.하나는 수컷성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펫숍삼촌”을 제거함으로써 빅 브라더(‘1984’)에 필적하는 질서의 지배자 혹은 신적인 관람자(펫숍은 모든 것을 알고,또 본다)가 되는 길이며,다른 하나는 무정부적 충동을 끝까지 밀고나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편의상 앞의 것을 상승초월,뒤의 것을 하강초월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면,텍스트는 이 두 개의 극점을 지닌 일종의 타원 구조를 갖고 있다.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두 개의 극점이 발산하는 인력 사이에서 진동하는 존재들이다.이는 일반적인 성숙의 서사와 그 음각인 ‘프랑켄슈타인’류의 ‘하위-충동’ 서사를 양 극점으로 삼는 구조이기도 하다.앞에서 벤야민의 카프카론을 예시했던것도 이 때문이다. 하위문화적 충동의 포자들은 소설적 기율(또는 성숙의 플롯)에 기생하면서 ‘엽기전’이라는 변종을 만들어낸다.이 변종의 변종성은 텍스트 내부의 공간 배치,확산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의 공간으로 작동한다.이들의 공동 거처는 “제2정부종합청사”“서울랜드”,“동물원”이 있는 공간 과천으로 설정되어 있다.이곳은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로 뽑힌”(165면) 곳이며 그 이유는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냈기 때문이다.이곳은 그러므로 엄연한 실재이기를 그치고 ‘헤이’의 “퐁텐블로”처럼 중간계급적 이상의 재현물로 전도된다.“냄새”나는 “적출물더미”들을 은폐하면서 보편적 행복을 가장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나쁜 냄새”란 “수컷성”의 기화작용 혹은 확산을 말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의 상징 조작이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할 때 “살기 좋은” 계획도시 과천의 지하에서는 배제의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었던 것이다. 이 배제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초월적 수컷이 되는 수밖에 없다.실제로 “펫숍삼촌”의 수컷성은 배제 프로그램(사회체계)을 넘어서 있다.“세상의 눈은 그걸 볼 수가 없”(125면)는 상승초월의 영역에 놓이는 것이다.“어디에도 없으면서 어디에나 있는”(117면) “펫숍 공간”은 삼촌이라는 이름의 친숙성과 결탁하면서,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그에 반해 한창림의 엽기전 공간은 “뷰티풀 피플(사업실패로 와해된 가족 형상)”과 함께 프로그램의 희생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다.그들의 충동은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그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166면)들이다.영역 싸움과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한 수컷들인 셈이다.‘엽기전’은 “흰 연기”(281면)로 표상되는 “펫숍삼촌”의 신적인 수컷성(상승초월)과 결국은 거름이 되고 말,야수의 수컷성(하강초월) 사이에서 전율하고 있는 텍스트다. 2-3.타원형 감옥에서 목화밭으로 ‘야수적 하강’과 ‘비교(秘敎)적 초월’의 두 갈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갖고 뻗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장소-표면에서다시 만나기도 한다.그것은 타원 구조의 양 극점이 자신의 몸을 뒤틀어 다시 만나는 뫼비우스의 띠이다.그 장소란 린치의 장소-표면이다.거기에서는 감시와 처벌,혹은 임의적인 폭력이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등장인물들의 모든 탈출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텍스트의 세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마치 버튼만 누르면 언제라도 반복재생되는 스크린처럼,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감옥이자 부서지지 않는 벽들이다. 작중 공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펫숍공간은 가까이 다가가 “정체를 머릿속으로 짜맞춰보다가는,금세 덩치나 안전문이 떠올라 스스로 사고를 정지해버리”(123면)도록 만들면서 영역침범을 가로막는다.이것은 감시의 내면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태어나기 전의 공간”(122면)인 펫숍에 구체적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벽,“시멘트벽”이다.텍스트 내에서 하강의 경험적 한계인 한창림의 지하작업실 또한 피범벅의 벽들이다.거기서는 린치의 흔적이 끊임없이 번지고 미끄러지지만,벽면들에 안전하게 둘러싸인 채이다.그러므로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은 주인공들의 폭력적 도주를 이끄는 강한 유혹이자 인력의 중심이면서,동시에 막혀 있는 어떤 것이다.“사회체계”의 어두운 핵심으로 직핍하는 길은 아무 데도 없다.저항도 발악도 체계의 허가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이 출구 없음은 그들이 중심 혹은 주체가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 즉 “사회체계”로부터 호출받은 타자들이기 때문이다.그들은 한갓 게임속의 평면 캐릭터에 불과한 자신의 실존을 증언한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날 때부터 운명지어진 존재들이었다.(…)괴물스러운 위력이 얼마나 막강하든,바깥에 존재(타자성-필자)하는 한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물은 장난감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잠들어 있던 괴물을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 놓곤,재미로 쫓아다니며 괴롭히고,종국엔 괴물이 왔던 곳,사회 체계의 바깥으로 다시 쫓아보내는 악취미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261면) 그들이 줄곧 “내면 없는” 존재로 진술되는 이유가 그것이다.그들은 오직 표면만을 가질 뿐이며 마치 “뷰티풀 피플” 공간에 진열된 “웃는 플라스틱”(인형)들처럼 속이 텅 빈 존재들이다.신체상해 혹은 “린치”는 텍스트의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수도 없이 자행된다.“텅 빈 목소리” 혹은 “사색하지 않는”과 같은 수사들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린치 장면들.‘엽기전’의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내면이란 기껏해야 히스테리나 조울증·분노 등으로 표면화된다.신체는 하나의 표면이고 그 내부는 또 다른 해부학적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참혹한 인식이 텍스트를 무심히 곁눈질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이 피비린내 나는 일상 어디에도 사색이란 물건은 없다.”(134면) 이것은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이 막힘 혹은 “육중한 안전문”,“지표면”과 같은 일종의 벽면(표면)으로 제시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이것들은 끊임없는 표면들의 연속체로 구성되어 있다.“펫숍의 공간 구조는 자연스레,네 번째 공간,다섯 번째 공간,여섯 번째(…)갈수록 안전문은 육중해지고 접근 불가능해”(123면)지는 것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바닥없는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이다.그것은 그들이 스크린의 격자에 갇힌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견고한 감옥의 구조 안에서,한창림은 윤수영을 린치하고,펫숍삼촌은 한창림을 공포로 길들인다.여기서 초월의 전망은 ‘성숙한 깨달음’을 통해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절망적 추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두 극단의 장력이 이루어내는 벡터 운동의 산물이다.실제의 공간 과천을 주무대로 배치하면서 실제의 실제성을 마음껏 왜곡하고 있는 ‘엽기전’은 표층 차원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현실주의의 산물이 된다.여기서의 현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벡터운동이라고 했듯 생성과정 중인 어떤 것이다.그것은 근대적 가족이념의 이데올로기적 침윤 혹은 수컷성의 영역 분쟁으로 요약할 만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기괴하게 드러낸다.“현실을 직시하는 날엉덩이의 미학”은 여기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텍스트는 현실을 괄호안에 묶는 팬터지도 아니고 은연중에 독단적 현실을 들이대고 마는 낡은사실주의도 아니다.텍스트는 생성과정 중인 현실 자체이며 끊임없이 포자 증식하는 전경화된 공간 표면들의 연쇄이다.이것이야말로 비가역적 동시성의 산물이다.이 찢어지지 않을 것 같은 혹은 “육중한 안전문” 같은 표면들은 박태자가 늘상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이기도 하다.이 표면들의 연쇄는 단지 화소조합에 불과했던 한창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들면서 파국을 맞이한다.이때 자신의 근원적 종속성을 지각한,이 불길한 주연배우의 두 눈 앞에 “목화밭”이 출현한다.“목화밭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3부 제목) 한창림은 파국의 절정을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마치 우연인 듯,이 거대한 감옥의 바깥을 본다.그것은 초월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표면들의 완고함 앞에서,마치 자유의 계시인 것처럼 나타난다.그것은 언어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너무나 낯설어서 오히려 공포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다.텍스트는 그것을 “목화밭”이라고 부르지만,이미 통상적 기호로는 지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마치 최초의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떼듯,“목화밭”이라고 우연히 발음된 것뿐이다.그것은 숭고(崇高)한 대상이다.체계에 붙들린 어떤 의미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저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그는 알 수 없었다.어째서 여기가 목화밭인가? 씨는 아직 뿌리지도 않았는데,언제부터 목화밭인가? 그는 볼 수도 없었다.둔덕 전체에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었다.(…) 그는 목화밭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그는 삽을 놓고,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린 다음 울기 시작했다.누군가 그의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넣은 것 같았다.커다란 쇠뭉치를 그의 입에 처넣은 것 같았다.(280면) 파멸의 순간에 우발적으로 그리고 모호하게 던져진 ‘그것’은 그러나 ‘엽기전’을 허무주의로부터 구원하면서 동시에 미래로 운반해간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백민석은 언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다만 하나의 자족적인 사물을 생성시키고자 한다.그는 텍스트 위에 어쩌면 자기 자신과도 전혀 무관한 자유를 창조하려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어느 누구의 승리도 견인하지 않는다.우리는 모두 참패한 것이다.작가도 독자도 또 그 사이의 주인공들도 이 무시무시한 자유의 숭고한 출현을 그저 흔적의 형태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그것은 “모자이크” 너머의 현실,진정한 현실이다.“목화밭”이라는 우발적이고도 가난한 기호가 ‘진짜 현실’의 숭고한 출현을 계시하고 있다.존재의 근본적 종속성을 깨닫는 순간 “아주 작은 한 구멍”으로 그것도 “모자이크”에 가려진 채로 그것은 나타났다.부서진 몸을 이끌고 나타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자신의 가난함을 최대치로 드러내면서,이 타원형 감옥의 외부로부터 자유의 기억이 도래하는 것이다.그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형벌”(사르트르)일지도 모르지만,그 형벌은 해방의 약속과 함께 하는 형벌이다. 3.어쩌면 위험하기도 한 미래 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과 스크린 속의 괴물들은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엽기전’은 결국 한창림의 실패담이 우리 자신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어쩌면 우리들 관객조차도 스크린의 표면에 붙들린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인간은 누구도 예외없이,아직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아도르노의 말처럼,우리는 하나이면서도 여럿인,전지구적 자본주의·수컷성의 경쟁 이념·패악의 은폐전략인 가족로망스·안전처리된 저항의 초월적 가상들에 중독된 채로,우리 자신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망각한 것인지 모른다.이 중독성은 그 바깥을 사유하지 못한다.‘엽기전’은 바로 이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을 껴안으며,동시에 가상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뛰어넘으려는,우리들 모험의 기록이다.동시대의 소비적 재현들이 보여주는 무분별한 질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청신하게 환기시키는 것,이 거대한 감옥에 길들지 않은 ‘고통스러운 자유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것은 ‘엽기전’이 ‘재현의 재현’을 전략적 준거로 삼으면서 얻어진 결론이며,어떠한 질서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간고한 투쟁의 결실이다. 그러나 ‘목화밭 엽기전’이 도달한 자유의 가능성은 매우 아슬아슬한 역학 장(場) 속에 놓여 있다.그는 알레고리적 재현 전략이 갖고 있는 근본적 허무감과 형이상학적 환원주의를 힘들게 벗어나면서,90년대의 평균서사를 딛고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 중 하나를 열었다.그러나 또 다른의 수준의 위험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해체와 전도의 전략은 얼마든지 동어반복에 떨어질 수 있다.이제는 자신의 전제들조차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가 출발한 전제들에 동의하지 않은 채로는 텍스트를 거의 읽을 수 없을 만큼 부자유스럽다.특히 그의 유난한 반인간주의가 그렇다.그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은 모두 알 수 없는 장력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들이다.이것은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소급시키는,전형적인 구조주의식 사유법이다.반인간주의야말로 진정한 인간주의의 전제조건일 테지만,그것은 주장되고 선언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것은 반인간주의가 지니는 미학주의적 성격 때문이다.계몽이성을 독단으로 몰아붙이면서,그 자리에 광기와 착란을 대신 들어앉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물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쉬고 있는 n개의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살려내는 가운데,그것은 소멸해갈 것이다.미래를준비할 시간은 아직 필요하지 않은가. 지면 관계상 당선자의 양해 아래 원고 일부를 줄였습니다. ■당선 소감 먼저 심사를 맡아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그 분들은 내게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를 터 주셨다.다만 성실한 보행객이 되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당황했다.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세상을 보는 눈과 귀는 여태 어둡고 그것과 반드시 겹쳐져 있을 문학도,몸과 마음에서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그러나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헐거운 공부와 삶을 조금씩이라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그것이 이 무책임을 모면하는 유일한 길이겠다. 이런 자리에서 문학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은 내 깜냥도 깜냥이려니와 풋내기로서 주제넘은 짓이다.그러나 한 시대와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역동적 협업으로서의 ‘문학’이라는,큰 그림 하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이 협동작업의 작은 일원으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스승 아닌 분이 없다.은사님들은 물론이고 선후배 친구들,가족들까지도 모두 스승이었다.나는 그저 한 장의 백지가 된 것처럼 그들의 말없는 가르침에 어두운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다.그들의 빛나는 존재감이 나를 이리로 오게 했다.그래서 오늘의 이 고마운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갚지 못할 부채다.이 또한 잊지 않으려고 한다. 우선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하나뿐인 내 여동생 경희에게 공을 돌린다.모자란 글줄이나마 더듬더듬 쓰는 법을 가르쳐준 인하대 국문과의 선생님들,선후배 동료 분들께는 소주라도 한 잔 올려야 할 것이다.학부 시절을 내내 함께 했던 청하 동인들에게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아득하다.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마음 뉠 곳을 마련해준 나의 든든한 후원자 금희에게는 사랑과 고마움을 함께 전해야 하리라. 약력 1975년 대구 출생.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강정구씨의 ‘세상을 떠도는 목어들’은 차창룡의 시 세계를 풍자의 범주 안에 넣고 차창룡만의 특별한 풍자의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 글이다.텍스트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평론의 길이라면 강정구씨는 평론의 ABC를 안다고 할 수 있다.다만 문학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경험이지 주제의 그것이 아니다.주제를 가지고 경험의 세계를 휘젓다 보니 글이 겅중거리고 성길 수밖에 없다.김용하씨의 ‘비윤리적 세계의 재현과 윤리적 풍경의 기원’은 시적 직관을 통해 순간적으로 구현되는 창조적 공간으로서 시를 이해하고 그 창조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화의 경험을 읽겠다는 의욕이 두드러진 글이다.그러나 하나의 형식에 끈덕지게 매달렸다는 것이 개성의 표지가 될 수도 있지만,글을 도식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이원동씨의 ‘떠도는 가족,주변부 삶을 보듬는 결곡한 서사’는 공선옥의 소설을 길동무처럼 따라 읽으면서 공선옥 소설의 존재의의를 설득력있게 부각시킨 글이다.그럼으로써 이 글은 독자에게는 개안을,작가에게는 위안을,그리고 글쓴 이 자신에게는 텍스트와 더불어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텍스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강경석씨의 ‘타원형 감옥의 외부’는 백민석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와 미학적 경험 사이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조망한 글이다.생의 적출물의 의미,폭력적 충동의 존재 형식,고딕의 정치적 무의식,가족 이념의 내파,세계의 남성적 지배와 타원형 감옥 구조,디지털 화소조합으로서의 삶의 경험 등등 현대성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망라하는 한편 문학의 글쓰기가 그 주제들과 동일체를 이루면서 또한 해체·변형을 행하는 가운데 도출되는 미학적 경험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다.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김인환 정과리
  • 미발표작 장편 ‘푸른 탑’ 등 수록 이효석 전집 개정증보판 나왔다

    빛나는 단편소설로 향토색 짙은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던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1902∼1942).시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산문언어를 갈고 닦아 우리 문학을 풍성하게 했다는 이효석의 전집이 대폭 보완돼 나왔다. 창미사에서 최근 펴낸 ‘새롭게 완성한 이효석전집’은 지난 83년 나온 ‘이효석전집’의 개정 증보판.모두 8권으로 이뤄진 이 전집은 작가의 장녀와 외손자가 그 동안 빛을 못본 장편 ‘푸른 탑’을 비롯해 시나리오 ‘애련송(愛戀頌)’,수필 ‘산협의 시’ 등을 새로 실어 작가의 문학세계를 온전히 복원한 게 특징이다. 이들 작품은 작가가 생전에 발표했으나 이후 존재가 잊혀져 빛을 못본 것들.작가의 외손자인 조경서씨가 베이징 등지서 자료를 조사하다가 발견,국내외 전문가의 도움으로 작품이 실린 당시 신문을 찾아 수록한 만큼 국문학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전집을 작품 발표 순서대로 편집하여 당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 쉽도록 하고,작가가 단편소설만이 아니라 장편과 시나리오·평론 등 다방면에서글을 썼음을 보여줘 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데 좋은 안내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8권에는 작가가 요절하기 직전까지 재직했던 평양 대동공전 제자들의 60년전 ‘은사 이효석’을 추억하는 글과 당시 일본어로 발표한 작품을 번역한 글을 모았다. 이종수기자
  • 이 주일의 어린이 책/왜 미술을 하나요?

    엘리자베스 뉴베리 지음 신상호 옮김 / 동산사 펴냄 미술사조나 유명화가의 작품세계를 단편적으로 조명하는 어린이 미술교양서는 꾸준히 발간돼왔다.하지만 좀더 입체적이고 체계적인 안내서가 아쉬웠다면 ‘왜 미술을 하나요?’ 시리즈를 눈여겨볼 만하다. 지은이는 대영박물관 큐레이터 출신으로 현장경험을 책속에 고스란히 녹였다.전문가적 식견을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흥미진진하게 포장했다. 예컨대 미술이 서사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이렇게 귀띔한다.신화와 전설을 좋아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상상 속의 이야기를 생활용품에 투영시켰다는 해설과 함께 기원전 540년경의 그리스 술항아리 사진을 나란히 배치하는 식이다. 미술이론을 설명하는 데 동원한 소재도 매우 다양하다.메시지를 담는 대화창구로서의 미술기능은,미국 독립기념일 경축엽서에 등장한 샘아저씨 그림으로 이해시킨다.미국(United States)의 첫 글자인 ‘US’를 상징한 표현물 샘아저씨(Uncle Sam)와 성조기,독수리가 어우러져 미국의 애국심과 긍지를 극대화시킨다는 사실을 친근한이야기체로 들려준다. 미술기법에 대한 해설서 ‘어떻게 미술을 하나요?’ ‘미술과 색’ ‘미술의 비밀’ 등이 함께 나왔다.초등 3년 이상.각권 8500원. 황수정기자 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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