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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협조 없이 핵 잠수함 도입 가능할까 “미국 도움 없이 불가” “제3국 연료 수입”

    美 협조 없이 핵 잠수함 도입 가능할까 “미국 도움 없이 불가” “제3국 연료 수입”

    정부가 연일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시사하는 가운데 미국의 협조 없이 도입이 가능한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미 원자력 협정 등으로 미국이 막는다면 제3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6일 한 언론은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달 16~20일 미국 방문 당시 핵추진 잠수함에 사용되는 핵연료를 미국으로부터 공급받고 싶다고 제의했으나 미국이 난색을 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국익에 관한 일이니 신중한 접근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협조 없이는 핵추진 잠수함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한미 간 합의로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만 저농축해야 하고 그마저도 군사적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적 목적’을 두고 다른 주장도 나온다. 참여정부 당시 핵추진 잠수함 사업단장을 지낸 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20% 미만의 저농축 핵연료로도 핵추진 잠수함 운영은 가능하다”며 “잠수함 운용에 핵을 연료로 사용할 뿐 핵무기는 아니기 때문에 군사적 목적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미국이 아닌 프랑스나 영국, 러시아 등 제3국에서 연료를 수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핵추진 잠수함 추가 건조를 계획하는 나라와 공동으로 건조 작업에 참여해 핵연료를 얻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제3국의 핵연료를 도입하려면 별도의 협정이나 합의가 필요하고, 미국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자체적으로 핵연료를 추출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현실성은 낮다. 현재 한국은 저농축 핵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농축 시설이 없다. 시설을 만드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또 저농축 기술 확보는 고농축과 바로 연계돼 국제사회로부터 핵무기를 가지려 한다는 견제를 받을 수 있다. 90% 이상의 고농축이면 핵무기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당시 0.2g의 시험용 농축우라늄을 추출한 사실이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로 드러나 국제사회가 한국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낸 바 있다. 문 교수는 “20% 미만의 저농축으로는 핵무기를 절대 만들 수 없다는 점과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을 미국에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지난 8월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하며 4000t급 차기 잠수함 도입 계획을 공개해 핵추진 잠수함을 시사한 것 아니냔 분석이 나왔다. 군은 2030년대 초까지 3000~4000t급 잠수함 9척을 전력화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1~6번함은 디젤엔진 등 재래식 추진으로 결정됐지만 7~9번함(4000t급)은 아직 추진 방식이 결정되지 않았다. 핵추진 잠수함이 도입되면 북한에 비해 양적으로 열세인 잠수함 전력을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핵추진 잠수함은 평균 시속이 37~47㎞로 디젤 잠수함에 비해 속력이 2~3배 빠르고 무제한 잠수 작전이 가능하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재차 떠오르는 핵추진 잠수함 논란…美 협조 없이 가능할까

    재차 떠오르는 핵추진 잠수함 논란…美 협조 없이 가능할까

    정부가 연일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시사하는 가운데 미국의 협조 없이 도입이 가능한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미 원자력 협정 등으로 미국이 막는다면 제3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6일 한 언론은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달 16~20일 미국 방문 당시 핵추진 잠수함에 사용되는 핵연료를 미국으로부터 공급받고 싶다고 제의했으나 미국이 난색을 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국익에 관한 일이니 신중한 접근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협조 없이는 핵추진 잠수함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한미 간 합의로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만 저농축해야 하고 그마저도 군사적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적 목적’을 두고 다른 주장도 나온다. 참여정부 당시 핵추진 잠수함 사업단장을 지낸 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20% 미만의 저농축 핵연료로도 핵추진 잠수함 운영은 가능하다”며 “잠수함 운용에 핵을 연료로 사용할 뿐 핵무기는 아니기 때문에 군사적 목적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미국이 아닌 프랑스나 영국, 러시아 등 제3국에서 연료를 수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핵추진 잠수함 추가 건조를 계획하는 나라와 공동으로 건조 작업에 참여해 핵연료를 얻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제3국의 핵연료를 도입하려면 별도의 협정이나 합의가 필요하고, 미국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자체적으로 핵연료를 추출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현실성은 낮다. 현재 한국은 저농축 핵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농축 시설이 없다. 시설을 만드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또 저농축 기술 확보는 고농축과 바로 연계돼 국제사회로부터 핵무기를 가지려 한다는 견제를 받을 수 있다. 90% 이상의 고농축이면 핵무기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당시 0.2g의 시험용 농축우라늄을 추출한 사실이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로 드러나 국제사회가 한국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낸 바 있다. 문 교수는 “20% 미만의 저농축으로는 핵무기를 절대 만들 수 없다는 점과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을 미국에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지난 8월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하며 4000t급 차기 잠수함 도입 계획을 공개해 핵추진 잠수함을 시사한 것 아니냔 분석이 나왔다. 군은 2030년대 초까지 3000~4000t급 잠수함 9척을 전력화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1~6번함은 디젤엔진 등 재래식 추진으로 결정됐지만 7~9번함(4000t급)은 아직 추진 방식이 결정되지 않았다. 핵추진 잠수함이 도입되면 북한에 비해 양적으로 열세인 잠수함 전력을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핵추진 잠수함은 평균 시속이 37~47㎞로 디젤 잠수함에 비해 속력이 2~3배 빠르고 무제한 잠수 작전이 가능하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100 Goal’ 매직 손프라이즈, 올드 트래퍼드에서!

    ‘100 Goal’ 매직 손프라이즈, 올드 트래퍼드에서!

    부상 회복에 3~4주가 걸릴 것이라는 전망을 깨고 일주일 만에 깜짝 복귀한 손흥민(28·토트넘)이 멀티골로 추석 연휴 마지막 밤을 장식했다. 한국 선수 최초의 유럽 빅리그 정규리그 100호골이라는 이정표도 세웠다.손흥민은 5일 새벽(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4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출장해 73분을 뛰며 2골 1도움을 쏘아 올렸다. 토트넘은 해리 케인의 2골 1도움까지 묶어 6-1 대승을 거뒀다. 리그 5, 6호 골을 거푸 넣은 손흥민은 도미닉 칼버트 르윈(에버턴)과 함께 EPL 득점 공동 선두로 나섰다. 시즌 전체로는 7골 3도움으로 벌써 공격 포인트 10개다. 손흥민의 맨유전 득점은 2015년 EPL 데뷔 이후 10경기(FA컵 포함) 만에 처음이다. 손흥민은 또 독일 분데스리가 41골, EPL 59골을 합쳐 유럽 빅리그 정규리그 100호골(299경기)을 기록했다. 차범근(98골)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넘어선 한국 선수 최초 기록이다. 손흥민은 이미 지난해 11월 차 전 감독의 유럽 무대 통산 골 기록(121골)을 돌파한 바 있다. 앞서 손흥민은 지난달 27일 뉴캐슬전에서 전반만 소화한 뒤 햄스트링 부상 소식이 전해져 이달 중순 이후에나 복귀할 것으로 점쳐졌다. 그러나 이날 선발로 나와 수차례 스프린트를 선보이며 부상이 그리 크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교체 아웃될 때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킥오프 1분을 조금 넘어 브루노 페르난데스에게 페널티킥을 얻어맞을 때까지만 해도 토트넘에 쉽지 않은 경기가 기다리는 듯했다. 그러나 수비가 시원치 않은 것은 맨유도 마찬가지였다. 2분 뒤 토트넘의 압박에 맨유 수비진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흘러나온 공을 탕기 은돔벨레가 차 넣으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전반 7분에는 케인이 프리킥을 얻자마자 전방으로 깔아 준 공을 잡은 손흥민이 루크 쇼와 에릭 바이 사이를 뚫고 들어가 맨유 골키퍼 다비드 데 헤아를 넘기는 칩샷으로 경기를 뒤집었다.접전이 될 것 같은 흐름에 변곡점이 찍힌 것은 전반 28분. 토트넘의 코너킥 상황에서 에리크 라멜라와 자리를 다투던 앙토니 마르시알이 라멜라의 얼굴을 가격해 퇴장당했다. 앞서 팔꿈치로 마르시알의 목을 밀친 라멜라는 옐로카드만 받았다. 2분 후 토트넘의 압박에 맨유 수비진이 또 실수를 했고, 이 과정에서 손흥민이 빈 공간에 있던 케인에게 공을 건네며 한 골 더 달아났다. 전반 37분에는 스프린트로 뒤쪽 공간을 파고든 손흥민이 세르주 오리에의 크로스를 데 헤아 가랑이 사이로 방향을 돌려놓으며 멀티골을 작성했다. 후반에도 오리에와 케인의 득점이 이어졌다. 2주간 A매치 휴식기에 들어가는 손흥민은 구단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햄스트링에 마법이 일어났다”고 농담을 던지며 “이번 빅매치에서 팀에 도움이 되고 싶어 열심히 치료받고 훈련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맨유전 첫 골에 대해 “어려서부터 올드 트래퍼드 경기를 포함해 박지성이 뛰던 맨유 경기를 많이 봤다”며 “이곳에서 골을 넣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손흥민의 부상과 관련해 연막작전을 펼친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은 조제 모리뉴 감독은 “어제 급하게 출전을 결정했다”면서 “손흥민의 정신력과 의료팀의 노력 등이 이뤄 낸 결과”라고 밝혔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중진국의 덫’ 빠지지 말자… 반도체·전기차 키우는 中

    ‘중진국의 덫’ 빠지지 말자… 반도체·전기차 키우는 中

    中, 美 화웨이 고사작전에 정면돌파 선언韓 외환위기 교훈 삼아 선진국 진입 목표中 호황 꺼지면 공산당 일당독재 치명상외환시장 구조 취약… 외국자본 쉽게 빠져 반도체·원유 수입액 연간 6000억弗 육박전체 수입의 3분의1… 무역적자 ‘경고등’전기차 배터리 부문 육성에 전폭적 지원美 압박에 반도체 국산화 드라이브 ‘난항’지난달 17일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창업자 런정페이 회장이 베이징 중국과학원을 찾았다. 런 회장은 “중국 최고 과학 학술기구의 협력이 절실하다”며 “이곳의 연구 성과를 경제사회 발전의 강력한 동력으로 전환하자”고 당부했다. 화웨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전방위적 제재로 반도체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6개월 뒤 미래조차 점칠 수 없는 상황. 그의 발언에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기술을 개발해 달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같은 달 11일 과학자 간담회를 열어 “지금 중국은 국내외 환경이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국가의 미래가 과학기술 혁신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서 기술 자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절박함의 표시였다. 미 정부의 반도체 수출 제재로 화웨이와 중신궈지(SMIC) 등 중국 굴지의 정보기술(IT) 기업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이를 정면 돌파하고자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21~2025년 경제발전 계획을 담아 발표할 ‘14차 5개년 계획’에도 트럼프 대통령 보란 듯 차세대 반도체 집중 지원 내용을 담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왜 미국과의 극한 대립을 감수하며 ‘반도체 굴기’에 나서는 것일까. 미국의 압박에도 반도체 자립을 성공시킬 복안은 무엇일까. ●한국을 교과서 삼지만… 국가부도 피해야 중국 정부가 우리나라를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경제 규모는 약 14조 달러(약 1경 6800조원)로 미국(21조 달러) 다음으로 크다. 하지만 1인당 소득(1만 달러)은 한국(3만 달러)의 20년 전 수준이다. 우리가 일본을 공부해 성장 전략을 짜듯 중국도 우리를 교과서 삼아 미래를 내다본다. ‘시진핑 신도시’로 불리는 허베이성 슝안신구가 우리나라 세종시를 벤치마킹해 행정중심도시로 건설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중국이 성장 과정에서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한국의 국가부도 사태와 같은 외환위기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 ‘3저 호황’(저금리·저유가·약달러)을 기반으로 사상 유례없는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임금이 올라 전통 제조업 경쟁력을 상실했다. 반면 국민의 소비 수준은 높아지면서 수입이 빠르게 늘어 무역적자 구조가 고착화됐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수많은 개발도상국이 경험한 난제로 ‘중진국의 덫’으로 불린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내걸고 자본시장을 외국인에게 개방했다. 무역으로 빠져나가는 외화를 해외 자본 유치로 메우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한국은 1997년 IMF 관리 체제에 들어가며 국제 금융자본의 ‘양털 깎기’ 대상이 됐다. 양털 깎기란 양의 털이 무성히 자라게 내버려 뒀다가 불시에 정리하는 것에 비유해 금융자본이 한 나라에 뿌렸던 달러 자금을 한꺼번에 회수하는 것을 말한다. 해당국은 십중팔구 신용 경색 사태를 맞는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10배 가까이 큰 중국에 외환위기가 오면 그 충격은 가늠하기 힘들다. 중국 공산당이 약속한 ‘전면적 샤오캉 사회’(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 일당독재의 정당성에 치명상을 입는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 1년만에 1조弗 증발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시작된 2018년 중국의 연간 무역흑자는 3518억 달러로, 정점이던 2015년(5945억 달러)에 비해 40% 이상 줄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도 중국에 대놓고 무역흑자 축소를 요구한다. GDP 대비 기업 부채 비율 역시 2007년 100%에서 2017년 160%로 급증해 여러 환경이 녹록지 않다. 중국도 중진국의 덫에 빠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는 “세계 최대 외환보유고(3조 1500억 달러)를 가진 중국에 국가부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중국은 2014년 6월 보유 외환이 3조 9990억 달러로 최대치를 기록했다가 1년여 만에 1조 달러가량 증발한 경험이 있다. 기업과 개인의 국외 송금이 갑자기 늘자 인민은행이 외환보유고를 헐어 환율 방어에 나선 탓이다. 대만 빈과일보 등 중화권 언론은 2012년 시작된 시 주석의 반부패 드라이브에 불안감을 느낀 기득권 세력이 미국이나 홍콩 등으로 자산을 빼돌렸기 때문으로 본다. 중국에서 1조~2조 달러는 언제라도 눈 녹듯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위안화가 전 세계 주요 기축통화로 자리잡는다면 ‘달러 고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모건스탠리는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올해 2%에서 2030년 5~10%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의 위상을 감안하면 여전히 미미한 수치다. 중국의 불안정한 정치체제와 낙후된 금융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으면 위안화가 달러화나 유로화를 영원히 대체할 수 없다는 전망도 다수다. ●지속적 무역흑자 기조 지키려 안간힘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외환위기를 겪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IMF 이후 한국’처럼 지속적인 무역흑자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2018년 중국의 양대 수입 품목인 반도체와 원유 수입액은 각각 3000억 달러, 2400억 달러에 달했다. 이 둘을 더하면 6000억 달러 가까이 돼 중국 전체 수입액(2조 1000억 달러)의 30%에 육박한다. 반도체와 원유의 해외 의존도만 낮춰도 무역적자 우려 없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자동차 보급이 크게 늘어 원유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다만 이 문제는 전기차 보급과 2차전지 개발 등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해 보인다. 중국의 자동차용 배터리 회사 닝더스다이(CATL)는 설립 10년 만에 LG화학과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중국 IT 거인 텅쉰(텐센트)이 최대주주인 전기차 업체 ‘니오’도 ‘본토의 테슬라’로 불리며 배터리 교체형 승용차 판매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세계 1위 전기차 대국’으로 발돋움한 중국은 지금도 이들 업체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반도체 분야는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업계에서는 중국 기업과 삼성전자 등 글로벌 선두 업체 간 기술 격차를 3년 이상으로 본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 정도로 당초 목표치인 2020년 40%, 2025년 75%에 크게 못 미친다. 이에 중국 정부는 내년부터 시작되는 14차 5개년 계획에 반도체 국산화 정책을 포함시켜 더 강력히 밀어붙일 것이 확실시된다.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전문 인력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양산 노하우를 하나씩 모아 가며 성장한다. 이른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가 해외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서 간극을 메우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미국 제재를 피할 수 있는 글로벌 강소기업 위주로 매집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미 정부가 이를 보고만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배하는 첨단 IT 분야는 넘보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가디언은 “미중 갈등은 중국 자본시장 개방과 만리방화벽 철폐 등과 함께 정치적이고 전면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내다봤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잊혀진 어린 영웅’ 6·25 참전 인천학생 2000명의 못다한 이야기

    ‘잊혀진 어린 영웅’ 6·25 참전 인천학생 2000명의 못다한 이야기

    ●1996년 7월 ‘인천학생스승6·25참전사 편찬위원회’ 창립 70년 전 한국전쟁 때 국군에 자원입대했던 인천 지역 까까머리 중고생들의 참전 역사를 추적기록해 온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이경종(86)씨와 그의 장남인 이규원(58·이규원치과) 원장이 바로 그들이다. 이씨는 참전 중학생 중 한 명이다. 부자는 1996년 7월 ‘인천학생스승6·25참전사 편찬위원회’를 창립했다.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을 직접 찾아다니며 참전 과정을 육성 녹음했다. 흑백 사진과 관련 유물 등 증거가 될 만한 모든 것을 수집해 2004년 12월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을 전액 자비로 세웠다.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지역 학생 2000여명과 참전한 스승의 나라사랑을 기억하고 전사한 학생 208명과 스승 심선택(당시 24세) 소위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고위층 자녀들의 군 복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 시대 부자는 이름 없이 잊히는 어린 전쟁영웅들의 이야기를 밝히고 알리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씨는 1995년에 전쟁 중 생긴 허리병 때문에 입원 중이었다. 누군가 가져다 놓은 신문에서 ‘정부가 6·25 참전 용사 증서를 준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이듬해 7월 중·고등학교 졸업장 모양의 참전 증서가 정말 액자에 담겨 배달돼 왔다. 아직 어머니 가슴속이 그리운 솜털 뽀송뽀송한 청소년기 4년을 조국에 바친 보상이 50년이 지난 후 종이 증서 한 장으로 온 것이다. 참전하지 않은 중학교 동창들은 상당수 학업을 계속해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됐지만, 이씨는 전역 후 생계가 어려워 곧장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그래서 그의 학력은 ‘중졸’이다.●당시 수많은 또래들 인민의용군 끌려가 실종 “그들은 너무나 어려서 입대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중학생들이었습니다.” 참전 증서를 받아 들자 이씨는 1950년 12월 18일 인천을 출발해 20일 동안 부산까지 걸어가서 참전했던 옛일이 하나둘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지나갔다. 이씨는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했을 때 열여섯 살 중학교 3학년으로, 인천 동구 송림동 333번지에 살고 있었다. 당시 수많은 중학생 또래 청소년들이 인민의용군에 끌려가 대부분 실종되는 터라, 그는 용유도로 피란 가서 친척 집에 숨어 있었다. 9·15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인천이 수복되고 지역사회가 안정을 되찾을 무렵인 그해 10월 초 인천학도의용대가 창립됐다. 이씨를 비롯해 인천 지역 청소년 및 청년 수천명이 가입했다. 그들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하게 되자, 인천이 다시 북에 점령되면 예전처럼 인민의용군에 끌려갈 것을 우려했다. 공포가 인천 전역으로 엄습해 오자,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4000여명은 1950년 12월 18일 인천 병사구사령부(현 병무청)에서 나온 국민방위군 관계자를 따라 동인천역 앞 인천 축현초등학교(현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를 출발해 경남 통영충렬초등학교에 있던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로 향했다. 이씨의 홀어머니는 그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마련했는지 두 살 많은 형(기종)과 이씨에게 6000원(당시 80㎏짜리 쌀 10가마 상당)씩을 눈물을 흘리며 손에 쥐여 줬다. 옆집 살던 두 살 어린 조순범(당시 중학교 1학년) 등 중학생 50여명도 인천학도의용대 남동지대장이었던 최수보(당시 고려대 2학년) 선배를 따라 길을 나섰다. 출발지는 눈물바다를 이뤘다. 부모들은 전쟁 중에 어린 자식을 군에 보내야 하는 절절함이, 학도병들은 유난히 추웠던 그해 12월 통영까지 500㎞ 거리를 매일 25㎞씩 20일을 걸어야 하는 막막함이 겹치면서 모두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인천은 이듬해 1월 초 또다시 북에 점령당했다.1950년 12월 하순의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처음 인천에서 출발할 당시 4000여명에 이르던 행렬은 안양, 수원을 지나면서 절반으로 줄었다. 추위와 배고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되돌아간 것이다. 칼바람을 맞으며 추풍령 고개를 지날 때에는 굶거나 얼어 죽어 가는 국민방위군 행렬을 만났다. 길가에 나뒹구는 국민방위군 시신이 허다했지만, 땅이 꽁꽁 얼어 묻어 줄 형편이 안 됐다. 국민방위군은 1950년 12월 40세 미만 제2국민병역으로 조직됐으나 운영이 미숙해 1·4후퇴 때 부산으로 걸어서 철수하다 아사자·동사자·병자가 약10만명이나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참한 모습을 본 이씨 등 일행은 국민방위군 입소를 포기하고 해병이 되고자 마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중학교 4학년(현 고1) 이하는 체력검사에서 대부분 탈락했다. 할 수 없이 마산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해 1951년 1월 10일 천신만고 끝에 부산진초등학교에 임시로 문을 연 육군제2훈련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거부됐다. 우여곡절 끝에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는 편법으로 입대했다. 같은 달 31일 군사 기본훈련을 마친 이씨는 공병학교로, 조순범은 부산육군통신학교로 가면서 헤어지게 됐다. 이씨의 형은 해병이 됐으나, 얼마 안 돼 질병으로 귀가했다. 이씨는 1954년 12월 5일 만기 전역했다.●李씨, 장남 권유로 소년병 참전과정 기록 참전 증서를 받아 든 후 이씨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학생 소년병으로 참전했던 전우들이 그리웠다. 그러던 1996년 7월 어느 날 장남인 이 원장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챘다. 아들은 “아버지 제가 도와 드릴 테니 모두 만나 보고 그분들의 참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20만원이 든 봉투와 카메라, 수첩, 소형 녹음기를 내밀었다. “아버지는 아무도 관심 없는 인천 소년병에 대한 얘기를 더 늦기 전에 기록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6·25 참전 인천 학생들이 진술한 녹음테이프와 인터뷰 수첩, 참전 사진과 제대증, 교육필증 등 참전 관련 각종 공문이 점점 쌓이면서 이 원장은 때로 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서기도 했다. 이 원장은 부친에게서 듣기만 했던 6·25 참전 인천 지역 학생들이 수천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전사자도 200여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낸 뒤에는 의무감마저 생겼다.●참전사 4권 출판… 향후 10권까지 계획 1951년 1월 31일 이후 소식이 끊긴 옆집 후배 조순범의 전사 사실을 알게 된 건 6·25 참전 학생인 변광선(인천상업중 4년) 선배가 제공한 자료에서였다. 1998년 4월 서울 국립묘지를 찾은 이씨는 조순범의 묘비를 쓸어 안고 “너는 전쟁터에서 죽고 나는 살아 돌아와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됐구나”라며 통곡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아들 이 원장도 눈물을 쏟았다.인천학도의용대 남동지대장을 맡아 중학생 50여명을 이끌고 부산으로 내려갔던 최수보(별세)씨는 1997년 7월 7일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단 1명의 낙오도 없이 후배들을 데리고 부산통신학교로 갔다. 그는 대학생이라 훈련소 현지에서 장교 임관 제의를 받았으나 자신이 데려간 어린 후배들과 함께 사병으로 복무하며 그들을 안전하게 돌보기 위해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생전 이씨를 만난 자리에서 “당시 나의 마음은 어떻게 해서든지 어린 중학생 대원들을 잘 보호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회고했다. 50여년 세월이 흐른 뒤 참전 인천 지역 학생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작은 실마리만 있어도 무조건 달려갔다. 그곳에서 작은 정보라도 얻으면 그것으로 또 다른 연결점 찾기를 반복했다. 1996년부터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발품을 판 결과 2500여점에 달하는 6·25 참전 인천학생들과 전사학생들의 흔적이 담긴 증서·인쇄자료·훈장증·전사 통지서 등을 모을 수 있었다. 이 원장은 이 자료들을 모아 2004년 12월 자신의 병원 건물 1~2층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을 열었다.●아들 李원장 “전후세대 전쟁 참뜻 이해했으면” 참전관은 추모기억추억 등 3개의 테마공간으로 이뤄졌다. 이 원장은 “참전관이 전쟁을 모르고 자란 세대가 전쟁의 참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달 중순 약 10억원을 들여 대로변 5층 건물 1·2층 연면적 660㎡ 규모로 확장 이전해 새로 문을 연다. 아버지와 아들이 모은 인천 학생 참전 역사 기록사업은 책으로도 펴낸다. 1996년 만든 편찬위원회가 2000여명의 참전 과정과 전사자 208명에 대한 모든 얘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07년 첫 번째 책을 출판한 뒤 2013년 4권까지 나왔다. 앞으로 총 10권까지 제작할 계획이다. 오늘도 이씨는 이규원치과 1~2층에 마련한 인천학생 6·25 참전관에 들어선다. 먼저 출근한 아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아버지 오셨어요” 하면 이씨는 “감사합니다” 하며 자신의 소원을 들어준 장남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다. 아들은 “에이, 아버지~” 하며 멋쩍어한다. 그런 부자를 바라보는 직원들과 주변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가 피어 오른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檢 ‘사자명예훼손’ 전두환 1년 6개월 구형

    檢 ‘사자명예훼손’ 전두환 1년 6개월 구형

    검찰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89) 전 대통령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5일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전씨의 결심 공판에서 이같이 구형했다. 검찰은 전씨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전일빌딩 감정 결과 등 회고록 발간 당시까지 헬기 사격에 부합하는 자료가 다수 존재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조비오 신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기갑학교 부대사, 전교사 항공 작전 교훈집(높은 탄약 소모율) 등 각종 군 문서 기재 내용만 보더라도 5·18 때 헬기 사격은 있었다”면서 “실탄 분배·발포 허가, 무장헬기 출동 등 핵심 정보가 피고인 전씨에게 전달됐다는 보안사 일일 속보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씨는 반민주적인 결론에 부합하는 절반의 진실 또는 잘못된 논거를 모아 객관적 증거로 포장해 왔다.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피고인 회고록의 편집 지침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부분만 선택해 저술했다”며 “판결을 통해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워 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전씨의 변호인은 “광주 상공에서 단 한 발의 총알도 발사된 적이 없다”면서 “헬기사격설은 비이성적 사회가 만들어 낸 허구”라면서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수만명의 광주시민이 그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고 백주대낮에 벌어진 사건의 증거는 차고 넘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여기는 남미] 이 정도면 진짜 전쟁…멕시코 마약카르텔 ‘장갑차’로 무장

    [여기는 남미] 이 정도면 진짜 전쟁…멕시코 마약카르텔 ‘장갑차’로 무장

    멕시코 마약카르텔이 군대처럼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 멕시코 군은 최근 미초아칸에서 악명 높은 멕시코의 마약카르텔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의 장갑차 3대를 압수했다. 군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마약카르텔의 장갑차는 군용 전투차량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웬만한 총탄을 막아낼 수 있는 강철판이 차량을 감싸고 있고, 사방으로 총구가 뚫려 있다. 사방으로 기관총을 발사할 수 있도록 돌출형 360도 총구가 차량 위쪽에 설치돼 있는 모델도 있었다. 관계자는 "현금수송업체들이 사용하는 차량보다 훨씬 튼튼하게 제작된 것 같다"며 "범죄카르텔의 전쟁장비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약카르텔은 영토 분쟁이 벌어진 곳에 장갑차를 투입하고 박격포를 쏘면서 ‘진짜 전쟁’ 같은 전쟁을 벌인다. 멕시코 군은 이번 작전에서 장갑차와 함께 박격포, 기관총 등 다수의 전쟁용 무기를 노획했다. 마약카르텔의 무장이 갈수록 강력해지면서 커지는 건 주민들의 공포다. 마약카르텔은 경우에 따라 민간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다. 군이 장갑차를 노획한 미초아칸은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과 또 다른 범죄조직 '기사단'이 영토 주도권을 놓고 혈전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현지 언론은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 등 마약카르텔이 힘을 과시하기 위해 장갑차를 동원해 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한다"며 "이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주차된 차량을 폭파시키거나 민가에 총을 쏘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이주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미초아칸 인권위원회는 "마약카르텔의 무장 시위, 민간인 공격이 늘어나면서 온가족이 집을 버리고 콜리마주, 멕시코시티 등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최근 보고서에서 밝혔다. 견디다 못한 일부 주민들은 방위대를 결성, 총을 들고 있다. 범죄카르텔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평범한 주민들까지 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은 "미초아칸주가 일명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마약 루트'에서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어 카르텔 간 주도권 경쟁이 다른 곳보다 치열하다"며 주민 이주나 무장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멕시코군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마약왕 에스코바르 집에서 숨겨진 수백 억 돈, 금 와르르”

    “마약왕 에스코바르 집에서 숨겨진 수백 억 돈, 금 와르르”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남미 마약세계의 전설인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조카 니콜라스 에스코바르를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자문한다. 니콜라스는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촌(에스코바르)이 금고로 사용하던 아파트를 찾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현장 취재까지 허용, 에스코바르가 금고처럼 사용했다는 아파트의 내부를 공개했다. 화제의 아파트 금고는 콜롬비아의 대도시 메데진의 라스팔마스 지역에 위치해 있다. 언론에 공개된 아파트 내부를 보면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먼지가 쌓여 있고 온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파트에는 에스코바르가 생전에 애용했던 물건과 막대한 현찰이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 니콜라스는 "아파트에서 볼펜, 가공하지 않은 금덩어리, 무전기, 카메라, 타자기 등이 발견됐다"며 "미화 1800만 달러가 보관돼 있었다"고 말했다.1800만 달러면 지금의 환율로 약 210억원, 지금도 큰돈이지만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사망한 1990년대 당시로선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이다. 하지만 그가 발견했을 때 돈은 이미 무용지물인 상태였다고 한다. 니콜라스는 "전액 구권인 데다 오랫동안 방치돼 지폐가 모두 훼손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아파트 금고에서 나온 물건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어진다. 볼펜에 대해 그는 "평소 삼촌이 윗주머니에 꼽고 다니며 사용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타자기는 "당시 삼촌이 이끌던 카르텔이 공포의 메시지를 보낼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니콜라스는 5년 전 메데진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런 그를 삼촌의 아파트 금고로 인도한 건 '영적 존재'였다고 한다. 그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누군가 (아파트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며 "무언가가 있는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추적한 끝에 삼촌의 아파트 금고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에스코바르의 조카인 그는 지난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망한 삼촌의 시신 일부를 수습해 삼촌의 생전 뜻에 따라 농장 나무 밑에 매장해드렸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에스코바르는 1980~90년대 남미 마약세계를 호령하던 콜롬비아의 마약왕이다. 미국으로 코카인 등을 팔아넘겨 막대한 부를 축적한 그는 초특급 호화 저택에 동물원을 만들어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하마들을 풀어놓기도 했다. 1993년 그는 소탕작전에 투입된 군에 의해 저택에서 사살됐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차라리 사무엘 잭슨이 진행을…”, ‘진흙탕’ 美대선 토론에 혹평 봇물

    “차라리 사무엘 잭슨이 진행을…”, ‘진흙탕’ 美대선 토론에 혹평 봇물

    29일(현지시간) 미 대선 TV토론이 인신공격과 설전으로 얼룩지며 토론 진행자인 폭스뉴스 앵커 크리스 월리스에게도 비판이 제기됐다. 인터넷 상에는 마블 히어로 영화 등으로 유명한 배우 사무엘 잭슨 등이 진행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첫 TV토론이 끝난 뒤 제기된 월리스에 대한 비판 여론을 전하며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토론을) 방해하는 것을 여러번 제지했지만 멈추게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날 트럼프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발언 중에 계속 말을 끼어들었고, 월리스는 이를 제지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월리스는 “토론 규칙을 지키라”, “지금은 바이든 발언 차례”라고 수차례 얘기하며 토론을 본궤도에 올리려고 시도했지만, 아예 시작전부터 ‘막무가내 전략’을 들고 나온 듯했던 트럼프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날 토론은 상대에 대한 존중도 없었다. 트럼프는 바이든에게 “반에서 성적이 가장 나빴다”고 조롱했고, 바이든도 트럼프를 향해 ‘광대’, ‘푸틴의 꼭두각시’ 등 막말을 쏟았다. 토론이 끝나고 올리버 다시 CNN 기자는 “월리스가 초반부터 토론의 주도권을 잃었다”면서 “그가 트럼프에게 토론 규칙을 존중해달라고 하는 모습은 부모가 통제불능인 아이에 간청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꼬집었다. 레스터 홀트 NBC 방송 앵커도 토론에 대해 “우리가 뭘 보고 있었던 건지 표현하기가 어렵다. 할 말을 잃었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넷상에는 코미디언 배우이자 종합격투기 대회 해설자로 유명한 조 로건이나 할리우드 배우 사무엘 잭슨이 토론을 진행하도록 하라는 풍자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트럼프는 “조 로건에게 진행을 맡기라”는 글을 리트윗하며 이날 월리스의 진행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2016년 이미 한차례 토론을 진행한 바 있는 베테랑 방송인 월리스조차 비판을 받으며 15일과 22일 예정된 2·3차 토론에 대한 걱정도 벌써부터 나온다. 또다른 트윗에는 “마이크를 묵음처리하지 못하면 다음 진행자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느냐”는 글도 올라왔다. 한편 이날 토론 후 CNN 방송과 여론조사 기관인 SSRS가 진행한 “누가 더 토론을 잘했느냐”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는 바이든을, 28%는 트럼프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80세까지 80번 풀코스 완주 도전… 난 결코 걷지 않는다

    80세까지 80번 풀코스 완주 도전… 난 결코 걷지 않는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 일본 심장부인 도쿄에서 비가 오는 가운데 한 번도 걷지 않고 고개를 들고 뛰었습니다. 마치 독립투사가 된 듯한 착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고동현(70) 서대구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이 지난해 3월 3일 도쿄마라톤대회 풀코스를 완주한 직후 평소 친분이 있는 서길수 영남대 총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고 이사장은 이 메시지에서 “하루 내내 비가 내려 저체온증으로 고생했지만 도쿄 시민들에게 보란 듯이 달렸다”고 밝혔다. 고 이사장에게 도쿄마라톤대회는 큰 의미가 있었다. 이 대회 완주로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꿈인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다. 보스턴(2004년·3시간46분12초)을 시작으로 베를린(2010년·4시간4분29초), 시카고(2011년·4시간10분8초), 뉴욕(2014년·4시간18분2초), 런던(2016년·4시간34분24초)에 이어 도쿄까지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대회를 완주했다. 아마추어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국내 50번째 주인공이 됐다. 그의 나이 69세였다.고 이사장이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51세인 2001년 2월이었다. 동창 모임에서 마라톤을 하겠다고 ‘깜짝 발표’를 한 다음날이었다. 당시 그는 고혈압, 고지혈증 등 성인병을 앓고 있었다. “부모님이 모두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50세를 넘어서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죠.” 첫걸음은 쉽지 않았다. “첫날 회사 근처 구민운동장을 3바퀴 뛰니 머리가 핑 돌았습니다. 그래도 참고 매일 달렸더니 6개월 뒤에 운동장 100바퀴를 뛸 수 있게 되더라고요.” 늦은 나이에 마라톤을 시작했지만 8개월도 안 돼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다. 마라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모두 59차례 기록했다. 하프코스 등까지 합치면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이 달렸다.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 가장 큰 건 건강이다. 시작 당시 키 168㎝에 몸무게 77㎏, 허리 37인치였다. 지금은 몸무게 64㎏, 허리 33인치로 줄었고 근육도 탄탄해졌다. 그를 괴롭히던 성인병도 완전히 사라졌다. 마라톤으로 체력을 다진 고 이사장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영남대 섬유공학과를 나온 그는 섬유공학과와 의류학과를 통합한 영남대 섬유패션학부 동창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동창회 장학회 기반을 다져 봄가을로 재학생 20명에게 장학금을 준다. 중소기업중앙회 윤리위원회 위원, 대구섬유제품관협동조합 이사장, 대구달성초등학교 총동창회장을 역임했다. 달성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르며 비용을 절약해 동문장학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특히 2013년부터 3년간 서대구산업단지 이사장을 맡았다가 지난해 3월 또다시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2500여개에 달하는 입주업체 대표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산업단지 재생사업과 서대구역사 건립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한 고 이사장의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이사장 재선임은 50년 서대구산업단지 역사상 처음이다. 또 고 이사장은 2015년부터 대한제면공업협동조합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조합 설립 53년 만에 처음 나온 지방 출신 이사장이다. 그는 2002년부터 4년간 대한제면조합 감사로 활동했다. 이 밖에도 대한제면공업협동조합 이사장과 전통제조업위원회 공동 이사장, 대구서구청 교육위원회 위원, 영남대 총동창회 수석부회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고 있다. 이화제면을 1983년 창립해 기능성 침구류를 생산, 판매 중이다.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고 이사장은 엄청난 기록도 갖고 있다. 55세였던 2005년 4월 3일 전주마라톤대회에서 2시간59분44초로 골인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에겐 꿈의 기록인 3시간을 깨며 ‘마라톤 명인’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를 ‘서브 스리’라고 한다. 서브 스리 달성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식이요법과 꾸준한 운동으로 체중을 3㎏ 이상 줄였다. 체중 1㎏을 감량하면 마라톤 풀코스 기록을 3분 단축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당시 그는 아침엔 삶은 계란 흰자 3개, 점심으로는 삶은 닭 반 마리, 저녁에는 소고기 샤부샤부 150g과 소금기 없는 채소를 먹었다. 이 대회 직전에 참가한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3시간8분54초로 아깝게 서브 스리 달성에 실패했다. 따라서 전주마라톤대회에서 기록을 달성하겠다는 그의 생각은 더욱 간절했다. 그는 “전주 마라톤 전날엔 수능시험을 목전에 둔 수험생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 5㎞ 지점에서는 몸의 균형에 신경을 썼습니다. 15㎞ 지점 기록만 보면 서브 스리 기록보다 1분 정도 빨랐어요. 이때 조금 방심했습니다. 이로 인해 반환점 지점을 1시간30분30초에 통과했어요. 나머지 절반을 1시간29분대에 들어가야 합니다. 몸 상태가 좋아 초조하지는 않았죠. 38㎞ 지점부터 치고 나갈 작전이었죠. 이때 ㎞당 4분 속도로 달렸습니다. 경북기계공고에서 동료와 훈련한 것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운동장 입구에 들어섰을 때 20초의 여유가 있었죠. 37등으로 골인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두 팔을 번쩍 들며 함성을 질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서브 스리 후유증으로 2005년 아킬레스건이 부분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수술을 3번이나 하고 2년을 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심한 부상도 마라톤에 대한 그의 열정을 멈추게 하진 못했다. 재활에 성공, 2008년부터 다시 뛰기 시작해 연간 평균 5차례 정도 풀코스를 완주했다. “수술 후 모두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재활 끝에 결국 재기했습니다. 2㎏의 모래주머니를 온종일 양쪽 발목에 차고 생활했습니다.” 그는 “마라톤을 하면서 20만원이 넘는 고가 마라톤화 밑창이 너무 빨리 닳는 게 싫어 자동차 타이어를 운동화 뒤꿈치에 붙였다”며 “이게 부상의 지름길이었다.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자책했다. 마라톤에 대한 열정으로 고 이사장은 2005년 대구계성고등학교 마라톤 동호회 창단을 주도했다. 가장 보람된 마라톤 관련 활동으로 그는 2001년 6월 ‘대구달리네 부부 마라톤 동호회’를 만든 것을 꼽았다. ‘달리네’는 그가 작명한 것으로 ‘달리는 가족’이란 의미를 담았다. 처음에 대학 동기 등 지인 7쌍(14명)이 모여 창단했다. 지금은 17쌍으로 늘어났다. 평균 나이 67세로, 전국 최고령 부부 마라톤 동호회로 발전했다. 매주 토요일 합동훈련을 하는 것은 물론 1박 2일 하계수련회, 봄가을 국내 대회 참가, 2년에 한 번 해외 대회 참가 등을 통해 건강과 함께 형제애 같은 우정까지 다져 오고 있다. 경북 문경 출신인 고 이사장은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상 3회, 대구시장상 2회, 경북지방중소기업청장상을 받았으며 제1호 자랑스러운 달성인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부인 이민숙씨와의 사이에 3녀 1남을 두고 있다. 고 이사장의 좌우명은 ‘달리면 영혼이 맑아진다’였다. 그런데 이 좌우명을 ‘Age Runner’로 바꿨다. 골프의 ‘Age Shooter’에서 가져온 말이다. 자기 나이만큼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을 뜻한다. 고 이사장은 80세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80번 이상 완주하는 게 목표다. 그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런 글을 남기겠다고 했다. ‘나는 결코 걷지 않았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국방부 “‘北 총격 후 시신 불태웠다’ 판단에 변화 없어”

    국방부 “‘北 총격 후 시신 불태웠다’ 판단에 변화 없어”

    국방부가 북한군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 피격 사건과 관련한 첩보 재분석 작업을 진행 중인 가운데, 시신 훼손 부분과 관련 남북 간 주장이 엇갈린 것에 대해 “총격 후 시신을 불태웠다”는 기존 판단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문홍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29일 정례브리핑에서 “현재로서는 군의 월북 의사와 시신 훼손에 대한 기존 판단은 변화가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저희들이 따로 그 이후로 다른 말씀을 드린 적은 없었다”고 답했다. 문 대변인은 “북한이 시신에 연유(燃油)를 발라 불태우라는 지시를 국방부가 확인했다”라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의 주장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말씀드리기 제한된다”며 말을 아꼈다. 국방부는 지난 24일 최초 설명에서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 “북한이 표류 경위와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이는 정황을 확인했다”며 A씨가 월북을 시도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튿날 청와대 앞으로 보낸 통지문에서 이번 사건을 ‘불법침입자 단속 과정에서 일어난 불상사’로 주장하며 A씨의 시신이 아닌 타고 있던 부유물만 소각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 부대변인은 “당시(24일) 언론에 발표했던 내용은 여러 가지 다양한 첩보들을 종합해서 그때까지 나온 결론을 설명한 것”이라며 “그 이후 (북측 통지문과) 내용상에서 일부 차이가 있었고, 현재 전반적으로 관련된 자료들을 쭉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또한 국방부는 아직까지 남북 간 군 통신선은 복구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에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희생자에 대해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북한에 군 통신선 복구를 재차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문 부대변인은 “현재 군 통신선은 복구가 되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연락이 좀 제한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A씨 시신 수습을 위한 우리 측 수색작전이 진행 중인 이날도 우리 함정을 향해 영해를 침범하지 말라는 경고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2005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신들의 황혼’을 쓸 때 나는 ‘연희고지 전투’ 장면에서 가장 가슴이 아팠다. 주인공은 겨우 스무 살이었다. 6·25 전쟁이 시작되고 사흘 만에 빼앗긴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연합군이 감행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한국 해병대원. 불과 한 달 전에 입대한 학도병이었지만 그는 어느덧 죽음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남아 있었다. 포성과 화염에 휩싸인 인천항에서 상륙주정의 문이 열리자 무조건 앞을 향해 뛸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많은 인민군이 남쪽으로 내려간 상태에서 항공 폭격과 함포 사격을 퍼부은 뒤였으므로 인천에 상륙한 병사들에게 다가온 것은 전투가 아니라 시체 썩는 냄새였다. 적들이 버리고 간 각종 중화기 사이에서 뒹구는 인민군의 시체들, 불타버린 시체들…. 후퇴하는 적군과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도달한 행주 나루에는 허옇게 불어터진 시체들이 물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오기 직전에 서울 진격의 교두보 확보를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증거였다. 수륙양용 장갑차를 타고 건너면서 내려다본 한강에는 인민군과 미군과 국군의 시체가 뒤엉켜 있었다.그러나 서울 서쪽 안산의 줄기인 연희고지 근처에 이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눈앞의 104고지에는 인민군이 기관총과 박격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고지 앞을 흐르는 하천과 구릉은 적에게만 유리한 지형지물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땅은 엄폐물 하나 없이 트여 있는 개활지였다. 그의 소총 부대는 그 모든 것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훈련장이기도 했던 연희 104고지는 천연 요새이자 적의 최후 방어선이었으므로 서울 탈환을 위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교전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스무 살 청년은 정신없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고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와도 무조건 나아가야 했다. 한국 해병 제1대대는 26명만이 생존했으나 104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서울 수복 전투의 승기를 잡았다.바로 그곳, 연희 104고지 전적지를 찾았다. 지난 26일 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의 18번째 여정 ‘104고지와 안산’에서였다. 서울 수복 7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주말, 하늘은 높고 햇살은 투명했다. 6·25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 수복을 이룬 것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1950년 9월 15일과 28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서대문구 연희동, 이 평화로운 주택가가 바로 그 시기의 격전지였다. ‘연희104고지앞(구 성산회관)’이라는 이름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눈앞에 보이는 대형 건물(구 성산회관, 현 지오영) 뒤의 낮은 산이 104고지다. 그곳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지도를 살펴 가며 주택가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1982년에 세워진 ‘해병대104고지전적비’가 그곳의 주인공으로 높게 서 있다. 그러나 1958년에 처음 설치했다는 자연석 비석을 찾을 길 없어 둘러보니 전적비 맞은편 아래로 뒷모습의 윗부분만 조금 보였다. 그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있으나 표지판이 없었다. 지금은 ‘궁동 공원’으로 바뀐 104고지 정상이 아닌 산자락에 전적비가 설치된 까닭은 바로 이 비석 때문이었을 터인데,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0년대에 비문을 새겼던 역사적인 바윗돌로 이끄는 표지판이 없는 게 아쉬웠다. 연희 104고지 전적지는 서울미래유산이자 현충시설이다. 70년 전에 이곳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젊음을 기리며 우리는 전적비 앞에서 묵념했다. 인민군은 최후까지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어린 병사들의 발목과 기관총을 쇠사슬로 묶어놓고 끝까지 저항하게 했다. 하지만 서울을 탈환하려는 아군의 의지는 그보다 강했다. 아군 전사자 178명, 인민군 사살자 1750명의 치열한 전투였다. 한미 해병이 안산 일대의 주요한 봉우리들을 모두 점령한 것은 9월 25일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9월 27일, 한국 해병대 청년들이 중앙청에 걸려 있던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전적비 옆에 있는 ‘해병대 수도 서울 탈환 작전’ 안내판에는 그 사진이 중앙에 가장 크게 게시돼 있다. 사진과 지도가 어우러진 설명문을 읽으며 6·25 전쟁을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잠시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다. 안내판에는 ‘104고지 탈환 후 서울 시내를 바라보는 해병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 속의 서울은 포연에 휩싸인 폐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서울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104고지의 총성이 시작된 지 1주일 뒤 수도탈환기념식에 개선부대로 참석한 해병대 청년들처럼.우리는 연희동 주택가를 지나고 연세대 캠퍼스를 거쳐 안산 자락을 넘어 서대문 쪽으로 코스를 잡았다. 연세대는 당시 6일 동안 엄청난 포격전이 벌어진 격전지였다. 6·25 발발 직후에 인민군 사령부가 들어섰고 서울 수복 후에는 미군이, 1·4 후퇴 때는 중공군이 각각 진지를 구축해 전란 내내 군인들이 주둔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들의 자유와 교정의 평화가 가득하다. 1922년에 세워진 핀슨관 앞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춰 섰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남학생 기숙사였고 지금은 윤동주 기념관으로 쓰는 국가지정 문화재 건물이다. 윤동주 시인은 1938년과 1940년에 각각 이곳에 머물렀는데, 하숙집터로 알려진 종로구 누상동에서 등교할 때는 안산 자락을 넘어다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우리는 캠퍼스 북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온실을 지나자 안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쪽문이 나타났다.안산은 자락길이 잘 갖춰져 있지만, 그 길로 진입하기까지는 등산로의 숲길을 헤치며 가야 한다. 서울 수복을 위해 한미 해병대가 진격했던 길, 일제강점기의 윤동주 시인이 하숙집을 오갔던 길, 그 길을 가늠해 보면서 흙길을 밟아 오르다가 숨이 차오를 무렵 안산 자락길을 만났다. 휠체어와 유모차도 다닐 수 있게 조성한 순환형 무장애 숲길답게 주말을 맞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종류의 숲과 여러 방향의 조망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안산 자락길은 총 7㎞로 이어져 있다. 평탄한 데크 길을 걷다가 우리가 걸어온 연희동 쪽을 내려다보면서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유와 평화라는 유산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의 세대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자락길에 만발한 꽃무릇의 진홍색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올 무렵, 우리는 서대문형무소 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정권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혀서 고통당했던 서대문형무소의 담벼락을 따라 걷는 동안, 우리의 현재는 앞선 세대가 물려준 선물 같은 유산이라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김광섭의 시 ‘독방 62호실의 겨울’과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받은 이 선물을 미래에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동안 독립공원을 지나 독립문 사거리에 이르렀다.독립문 건너편에 자리잡은 영천시장도 서울미래유산이다. 1960년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재래시장으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자유 민주주의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 서민들의 생활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골목형 전통시장인 영천시장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석교교회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조금 빠듯했던 일정을 따라 마지막 목적지인 석교교회에 이르자 1916년에 건립된 고딕 양식의 적벽돌 건물이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하고 의미 있게 여겨졌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의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모든 것을 지켜본 교회. 저 안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들로 기도했을까. 이것은 유형의 유산이지만 무형의 유산이기도 하다. 오늘 둘러본 모든 것들이 그랬다. 외형상 문화적 인공물에 해당하는 유산이라도 거기에는 문화적 행위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물리적 배경이 존재한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은 어쩌면 유형과 무형으로 나눌 수 없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의미 있게 살아가다 보면 유·무형의 유산은 저절로 쌓여갈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을 둘러보는 서울미래유산 투어. 치열했던 전쟁의 결과로 얻은 자유와 평화의 길을 걸었던 여정의 마지막에서 맑디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연희고지 전투를 끝낸 뒤 피아의 구분 없는 시체더미 속에서 허탈한 마음으로 밤을 맞이했을 때, 동쪽 하늘로 한가위의 둥근 달이 떠올랐다고 했던가. 올해도 그 달은 어김없이 떠올라 우리를 비춰 줄 것이다. 100년 후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글·해설 고은주 소설가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9회 4·19민주묘지 ●출발 일시 10월 3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2005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신들의 황혼’을 쓸 때 나는 ‘연희고지 전투’ 장면에서 가장 가슴이 아팠다. 주인공은 겨우 스무 살이었다. 6·25 전쟁이 시작되고 사흘 만에 빼앗긴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연합군이 감행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한국 해병대원. 불과 한 달 전에 입대한 학도병이었지만 그는 어느덧 죽음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남아 있었다. 포성과 화염에 휩싸인 인천항에서 상륙주정의 문이 열리자 무조건 앞을 향해 뛸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많은 인민군이 남쪽으로 내려간 상태에서 항공 폭격과 함포 사격을 퍼부은 뒤였으므로 인천에 상륙한 병사들에게 다가온 것은 전투가 아니라 시체 썩는 냄새였다. 적들이 버리고 간 각종 중화기 사이에서 뒹구는 인민군의 시체들, 불타버린 시체들…. 후퇴하는 적군과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도달한 행주 나루에는 허옇게 불어터진 시체들이 물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오기 직전에 서울 진격의 교두보 확보를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증거였다. 수륙양용 장갑차를 타고 건너면서 내려다본 한강에는 인민군과 미군과 국군의 시체가 뒤엉켜 있었다.그러나 서울 서쪽 안산의 줄기인 연희고지 근처에 이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눈앞의 104고지에는 인민군이 기관총과 박격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고지 앞을 흐르는 하천과 구릉은 적에게만 유리한 지형지물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땅은 엄폐물 하나 없이 트여 있는 개활지였다. 그의 소총 부대는 그 모든 것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훈련장이기도 했던 연희 104고지는 천연 요새이자 적의 최후 방어선이었으므로 서울 탈환을 위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교전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스무 살 청년은 정신없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고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와도 무조건 나아가야 했다. 한국 해병 제1대대는 26명만이 생존했으나 104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서울 수복 전투의 승기를 잡았다. 바로 그곳, 연희 104고지 전적지를 찾았다. 지난 26일 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의 18번째 여정 ‘104고지와 안산’에서였다. 서울 수복 7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주말, 하늘은 높고 햇살은 투명했다. 6·25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 수복을 이룬 것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1950년 9월 15일과 28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서대문구 연희동, 이 평화로운 주택가가 바로 그 시기의 격전지였다. ‘연희104고지앞(구 성산회관)’이라는 이름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눈앞에 보이는 대형 건물(구 성산회관, 현 지오영) 뒤의 낮은 산이 104고지다. 그곳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지도를 살펴 가며 주택가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1982년에 세워진 ‘해병대104고지전적비’가 그곳의 주인공으로 높게 서 있다. 그러나 1958년에 처음 설치했다는 자연석 비석을 찾을 길 없어 둘러보니 전적비 맞은편 아래로 뒷모습의 윗부분만 조금 보였다. 그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있으나 표지판이 없었다. 지금은 ‘궁동 공원’으로 바뀐 104고지 정상이 아닌 산자락에 전적비가 설치된 까닭은 바로 이 비석 때문이었을 터인데,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0년대에 비문을 새겼던 역사적인 바윗돌로 이끄는 표지판이 없는 게 아쉬웠다. 연희 104고지 전적지는 서울미래유산이자 현충시설이다. 70년 전에 이곳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젊음을 기리며 우리는 전적비 앞에서 묵념했다. 인민군은 최후까지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어린 병사들의 발목과 기관총을 쇠사슬로 묶어놓고 끝까지 저항하게 했다. 하지만 서울을 탈환하려는 아군의 의지는 그보다 강했다. 아군 전사자 178명, 인민군 사살자 1750명의 치열한 전투였다. 한미 해병이 안산 일대의 주요한 봉우리들을 모두 점령한 것은 9월 25일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9월 27일, 한국 해병대 청년들이 중앙청에 걸려 있던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전적비 옆에 있는 ‘해병대 수도 서울 탈환 작전’ 안내판에는 그 사진이 중앙에 가장 크게 게시돼 있다. 사진과 지도가 어우러진 설명문을 읽으며 6·25 전쟁을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잠시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다. 안내판에는 ‘104고지 탈환 후 서울 시내를 바라보는 해병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 속의 서울은 포연에 휩싸인 폐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서울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104고지의 총성이 시작된 지 1주일 뒤 수도탈환기념식에 개선부대로 참석한 해병대 청년들처럼.우리는 연희동 주택가를 지나고 연세대 캠퍼스를 거쳐 안산 자락을 넘어 서대문 쪽으로 코스를 잡았다. 연세대는 당시 6일 동안 엄청난 포격전이 벌어진 격전지였다. 6·25 발발 직후에 인민군 사령부가 들어섰고 서울 수복 후에는 미군이, 1·4 후퇴 때는 중공군이 각각 진지를 구축해 전란 내내 군인들이 주둔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들의 자유와 교정의 평화가 가득하다. 1922년에 세워진 핀슨관 앞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춰 섰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남학생 기숙사였고 지금은 윤동주 기념관으로 쓰는 국가지정 문화재 건물이다. 윤동주 시인은 1938년과 1940년에 각각 이곳에 머물렀는데, 하숙집터로 알려진 종로구 누상동에서 등교할 때는 안산 자락을 넘어다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우리는 캠퍼스 북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온실을 지나자 안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쪽문이 나타났다.안산은 자락길이 잘 갖춰져 있지만, 그 길로 진입하기까지는 등산로의 숲길을 헤치며 가야 한다. 서울 수복을 위해 한미 해병대가 진격했던 길, 일제강점기의 윤동주 시인이 하숙집을 오갔던 길, 그 길을 가늠해 보면서 흙길을 밟아 오르다가 숨이 차오를 무렵 안산 자락길을 만났다. 휠체어와 유모차도 다닐 수 있게 조성한 순환형 무장애 숲길답게 주말을 맞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종류의 숲과 여러 방향의 조망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안산 자락길은 총 7㎞로 이어져 있다. 평탄한 데크 길을 걷다가 우리가 걸어온 연희동 쪽을 내려다보면서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유와 평화라는 유산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의 세대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자락길에 만발한 꽃무릇의 진홍색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올 무렵, 우리는 서대문형무소 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정권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혀서 고통당했던 서대문형무소의 담벼락을 따라 걷는 동안, 우리의 현재는 앞선 세대가 물려준 선물 같은 유산이라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김광섭의 시 ‘독방 62호실의 겨울’과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받은 이 선물을 미래에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동안 독립공원을 지나 독립문 사거리에 이르렀다.독립문 건너편에 자리잡은 영천시장도 서울미래유산이다. 1960년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재래시장으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자유 민주주의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 서민들의 생활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골목형 전통시장인 영천시장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석교교회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조금 빠듯했던 일정을 따라 마지막 목적지인 석교교회에 이르자 1916년에 건립된 고딕 양식의 적벽돌 건물이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하고 의미 있게 여겨졌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의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모든 것을 지켜본 교회. 저 안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들로 기도했을까. 이것은 유형의 유산이지만 무형의 유산이기도 하다. 오늘 둘러본 모든 것들이 그랬다. 외형상 문화적 인공물에 해당하는 유산이라도 거기에는 문화적 행위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물리적 배경이 존재한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은 어쩌면 유형과 무형으로 나눌 수 없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의미 있게 살아가다 보면 유·무형의 유산은 저절로 쌓여갈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을 둘러보는 서울미래유산 투어. 치열했던 전쟁의 결과로 얻은 자유와 평화의 길을 걸었던 여정의 마지막에서 맑디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연희고지 전투를 끝낸 뒤 피아의 구분 없는 시체더미 속에서 허탈한 마음으로 밤을 맞이했을 때, 동쪽 하늘로 한가위의 둥근 달이 떠올랐다고 했던가. 올해도 그 달은 어김없이 떠올라 우리를 비춰 줄 것이다. 100년 후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글·해설 고은주 소설가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9회 4·19민주묘지 ●출발 일시 10월 3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靑 “北사과 긍정 평가”…야당 “김정은 잃을까 전전긍긍”(종합)

    靑 “北사과 긍정 평가”…야당 “김정은 잃을까 전전긍긍”(종합)

    대통령 주재 긴급 안보관계 장관회의“군사통신선 복구 요청” 서해상 실종 공무원에 대한 북한군 총격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정부가 북한 측에 공동조사를 공식 요청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인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은 27일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긴급 안보관계 장관회의 결과 이 같은 내용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서 차장은 “북측의 신속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남과 북이 파악한 사건의 경위와 사실관계에 차이점이 있으므로 조속한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조사를 요청한다. 남과 북이 각각 발표한 조사 결과에 구애되지 않고 열린 자세로 사실관계를 함께 밝혀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한 소통과 협의, 정보교환을 위해 군사통신선의 복구와 재가동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서 차장은 “시신과 유류품의 수습은 사실 규명을 위해서나 유족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배려를 위해 최우선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일”이라며 “남과 북은 각각의 해역에서 수색에 전력을 다하고, 필요한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협력해 나가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서 차장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인 중국 어선들도 있으므로, 중국 당국과 중국 어선들에 대해서도 시신과 유류품 수습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회의에는 서욱 국방부 장관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서훈 안보실장, 서 차장 등이 참석했다. 청와대에서 이날 남북 공동조사를 공식적으로 제안한 만큼 조만간 북측에서 응답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다만 북한이 이날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시신을 습득하는 경우 관례대로 남측에 넘겨줄 절차와 방법까지도 생각해두고 있다”면서 ‘영해 침범’을 주장하며 경고하고 자체 수색 입장을 시사함에 따라 공동조사 성사가 쉽지만은 않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조중통 보도에서 “우리는 남측이 자기 영해에서 그 어떤 수색 작전을 벌리든 개의치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우리 측 영해 침범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야당은 비판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국민을 잃은 슬픔보다 김정은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문재인 정부의 속내를 공식화한 회의”라고 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도 “북측 지도자의 한마디 사과를 하늘처럼 떠받들고 국민의 피눈물 나는 현실을 외면한 채 ‘긍정적’이라는 말을 썼다”며 “절망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北 ‘영해 침범’ 억지에 軍 “정상적으로 해상수색 활동”

    北 ‘영해 침범’ 억지에 軍 “정상적으로 해상수색 활동”

    北 “서해 군사분계선 무단침범 중단하라”1999년 일방적으로 ‘서해경비계선’ 설정軍 “해상수색활동 정상적으로 하고 있어”군은 27일 북한의 ‘영해 침범’ 주장에 대해 “우리 군은 현재 해상수색활동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NLL(북방한계선) 부근에서 중국어선이 수십여 척 조업 중이어서 이를 통제하는 활동도 같이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런 설명은 군 당국이 서해 NLL 이남의 남측 수역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측에서 지난 25일부터 숱한 함정과 기타 선박들을 (피격된 공무원 시신) 수색작전으로 추정되는 행동에 동원하면서 우리측 수역을 침범시키고 있다”며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무단침범 행위를 즉시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북한이 침범했다고 주장하는 해상군사분계선은 NLL보다 훨씬 남쪽을 기준으로 자신들이 지난 1999년 일방적으로 선포한 해상 경계선으로 추정된다.북한이 ‘서해 경비계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분계선은 현재의 NLL보다 훨씬 남쪽으로 설정되어 있고 서해 5개 도서의 광범위한 남단 해상이 모두 이 분계선 안에 들어간다. 군 당국은 이 분계선을 기준으로 할 경우 서해 5개 도서의 남단 수역을 고스란히 북측에 내어주는 꼴이 되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서해 NLL은 1953년 8월 30일 유엔군사령관이 유엔군 측 해·공군의 해상초계 활동 범위를 한정하기 위해 설정한 기준선으로, 남북이 합의로 설정한 경계선은 아니었지만 남북 간의 실질적인 해상경계선 역할을 해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김정은 “대단히 미안”…이틀만에 北 “영해 침범 엄중 경고”

    김정은 “대단히 미안”…이틀만에 北 “영해 침범 엄중 경고”

    “시신 습득하면 관례대로 남측에 넘겨줄 것”남북 간 해역 기준 달라…향후 수색작업 시 긴장 발생 가능성 북한이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사살 사건과 관련, 서해상에서 시신 수색 중인 우리 해양경찰청을 향해 경고했다. 북한은 27일 오전 ‘남조선당국에 경고한다’란 제목의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우리 해군 서해함대의 통보에 의하면 남측에서는 지난 9월25일부터 숱한 함정, 기타 선박들을 수색작전으로 추정되는 행동에 동원 시키면서 우리 측 수역을 침범시키고 있으며 이 같은 남측의 행동은 우리의 응당한 경각심을 유발시키고 또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고케 하고 있다”며 우리 해양경찰청 등의 시신 수색 활동을 비판했다. 북한은 “우리는 남측이 자기 영해에서 그 어떤 수색작전을 벌이든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측 영해 침범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며 “우리는 남측이 새로운 긴장을 유발시킬 수 있는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무단 침범 행위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은 “우리는 서남해상과 서부해안 전 지역에서 수색을 조직하고 조류를 타고 들어올 수 있는 시신을 습득하는 경우 관례대로 남측에 넘겨줄 절차와 방법까지도 생각해두고 있다”며 시신 확보 시 우리 측에 인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정은 “대단히 미안” 이례적 신속 사과했는데… 앞서 북한 대남기구 통일전선부는 25일 청와대에 보낸 통지문에서 “우리 측은 북남 사이 관계에 분명 재미없는 작용을 할 일이 우리 측 수역에서 발생한 데 대해 귀측에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고 신속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국무위원장 김정은 동지는 가뜩이나 악성 비루스(바이러스) 병마에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대단히 미안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대남 공식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은 초유의 일로 그만큼 한반도 긴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대응 의지가 강하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남한 내에 고조되는 반북 정서를 한층 누그러뜨리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출석해 김 위원장의 사과와 관련해서 “이례적으로 미안하다는 표현을 두 번씩 사용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같은 김 위원장의 신속한 사과에는 긴장 완화뿐만 아니라 실리적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남북관계는 교착 국면을 넘어 긴장 국면으로 발전한 상황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북한 “남측이 수색 빌미로 영해 침범, 우리가 조직해 시신 습득 땐 넘길것”

    북한 “남측이 수색 빌미로 영해 침범, 우리가 조직해 시신 습득 땐 넘길것”

    북한이 남측이 소연평도에서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공무원 수색 작업을 벌이는 과정에 북측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며 중단하라고 27일 경고했다.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우리는 남측이 새로운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무단침범 행위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우리는 남측이 자기 영해에서 그 어떤 수색작전을 벌리든 개의치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우리 측 영해 침범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서남해상과 서부해안 전 지역에서 수색을 조직하고, 조류를 타고 들어올 수 있는 시신을 습득하는 경우 관례대로 남측에 넘겨줄 절차와 방법까지도 생각해두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북측 해군 서해함대의 통보를 인용해 “남측에서 지난 25일부터 숱한 함정, 기타 선박들을 수색작전으로 추정되는 행동에 동원하면서 우리측 수역을 침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남측의 행동은 우리의 응당한 경각심을 유발하고 또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고하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이렇게 우리의 수색 노력을 공개한 것은 간접적으로나마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에서 우리측 8급 공무원 이모(47) 씨가 지난 22일 북측에 의해 변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주민들에게 공개한 셈이어서 주목된다. 북측이 주장해온 영해의 기준은 남측과 다르다. 남측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등거리-등면적’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나, 북측은 1999년 일방적으로 선포한 서해 해상경비계선이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실제ㄹㅗ 지난 2018년 남북이 서해 NLL 지역 평화수역 설정 논의 당시에도 이 점 때문에 난항을 겪었다. 9·19 군사합의서에는 명확한 정리 없이 ‘북방한계선’이라는 문구만 들어갔다. 한편 이날 북한은 남북 간 신뢰가 훼손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웠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 25일 우리는 현 북남관계 국면에서 있어서는 안 될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남측에 벌어진 사건의 전말을 조사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고지도부의 뜻을 받들어 북과 남 사이의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훼손되는 일이 추가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안전대책들을 보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청와대는 소연평도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지난 25일 저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소집해 북측에 추가 조사를 요구하고 남북 공동조사 요청도 검토하기로 했다. 아울러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서해에서의 감시 및 경계태세를 더욱 강화하는 조치를 시급히 취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인영 “北, 두 번씩이나 사과 매우 이례적…파국 막으려는듯”(종합)

    이인영 “北, 두 번씩이나 사과 매우 이례적…파국 막으려는듯”(종합)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우리 국민 공무원 A(47)씨를 북한군이 총살한 사건에 대해 사과한 것과 관련해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면서 “이 상황이 파국으로 가지 않도록 대응하는 과정이 아닌가 판단한다”고 밝혔다. 윤건영 “北최고지도자 사과한 적 있나”李 “두 번씩이나 미안 표현 쓴 적 없어” 이낙연 “상당한 변화… 얼음장 밑에서 강물 흘러” 이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해 “북한 최고지도자가 대한민국 국민과 대통령에 대해서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한 적이 있는가”라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장관은 “신속하게 미안하다는 표현을 두 번씩이나 사용하면서 북의 입장을 발표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 사례로서는 1968년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1·21 사태)과 관련해 “1972년 김일성 주석이 이후락 정보부장을 면담하면서 구두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또한 “(대상이) 대통령은 아니지만, 2002년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의원 신분으로 방북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극단주의자들의 잘못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라는 표현을 한 적은 있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과에 대해 외통위 회의에서 “과거 북측의 태도에 비하면 상당한 정도의 변화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얼음장 밑에서도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남북관계가 엄중한 상황에서도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관계장관회의서 불태운 부분 논의” 북한이 정부 발표와 달리 시신이 아닌 ‘부유물’을 태웠다고 해명한 것과 관련해서는 “(정부 발표와) 차이가 나는 부분에 대해 서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며 “관계장관회의 과정에서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이날 통지문에서 우리 국민에 대한 총기 발포는 인정했으나 사망 후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는 시신 훼손 부분은 “사격 후 침입자가 부유물에 없었다”며 사실상 부인했다.北 “사격 후 침입자 부유물에 없었다”“부유물, 방역규정에 따라 해상서 소각” 북한 통일전선부는 이날 이런 내용이 담긴 통지문을 청와대 앞으로 보냈다. 북측은 통지문에서 “우리 군인들이 정장의 결심 밑에 10여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했다”며 “이 때 거리는 40∼50m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사격 후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어 10여m까지 접근해 확인 수색했으나, 정체불명 침입자는 부유물 위에 없었다”며 “(대신) 많은 양의 혈흔이 확인됐다고 한다”고 했다. 북측은 “우리 군인들은 불법 침입자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했고, 침입자가 타고있던 부유물은 국가비상방역규정에 따라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앞서 우리 군은 A씨가 해상에서 총살된 지 30분 만에 북한군이 기름을 붓고 40분간 시신을 불태웠다고 밝혔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전날 긴급현안질의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이 불태운 우리 국민의 시신을 서해에 버렸고 일부 훼손된 시신이 떠다닐 개연성도 있다고 밝혔다.서욱 “40분간 시신 태우는 불빛 관측”“시신 바다에 떠다닐 개연성 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긴급현안보고를 위해 열린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40분간 시신을 태우는 것으로 추정되는 불빛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서 장관은 “시신을 훼손하는 불빛은 야간 감시장비에 몇 분 정도 보였는가”라는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한 40분 정도 보였다”고 답했다. 서 장관은 김 의원이 “해상에서 휘발유 등을 뿌리고 태웠을 텐데, 해상이기 때문에 완전히 시신이 훼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신이 바다에 떠다닐 확률이 높은 것 같다”고 하자 “그럴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시신을 찾아 유족에게 돌려주도록 노력해달라는 김 의원의 지적에 “경비작전 세력들에게 임무를 부여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 장관은 북한이 A씨 시신을 남측에 인도하지 않고 서해에 버렸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시신의 행방을 묻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그 해역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 의원이 재차 “북측이 시신을 불태우고 바다에 버렸다는 말인가”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변했다.“공무원 봤지만 적 지역에 있어 대응 못해”군 “바로 사살하고 불태울진 상상 못했다” 군, 22일 北과 A씨 접촉 감시망서 포착6시간 뒤 해상서 공무원 사격 후 불태워 군 당국은 지난 24일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공무원인 실종자 A씨와 관련한 대북첩보 등을 종합분석한 결과 A씨가 실종 다음 날인 22일 오후 북측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의해 최초 발견됐으며, 6시간 만인 오후 9시 40분쯤 총살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입장문을 통해 “우리 군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소연평도 실종자)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의 설명에 따르면 군은 지난 21일부터 수색에 나섰으나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22일 오후 3시 30분쯤 A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북한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수상사업소 선박이 황해도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A씨로 추정되는 인물과 접촉하는 장면이 우리 군 감시망에 포착된 것이다. 군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부유물에 탑승해 있는 기진맥진한 상태의 A씨를 발견했다. 이후 북한 선박은 A씨를 해상에 그대로 둔 채로 월북 경위 등을 물었고 6시간 만인 오후 9시 40분쯤 돌연 단속정을 현장으로 보내 A씨에게 사격을 가했다. 이후 30분 뒤인 오후 10시 11분 시신에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 군은 북한이 A씨를 사살하고 불태우기까지 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바로 사살하고 불태울 것이라 상상 못했다. 북한이 그렇게까지 나가리라 예상 못했다”면서 “북한이 우리 국민을 몇 시간 뒤 사살할 것이라 판단했다면 가만 안 있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군은 사격을 가했던 곳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너머 북한 지역 인근이어서 군사작전을 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강조했다. 군 관계자는 “적 지역에 대해서 즉각 대응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주호영 “김정은 대단히 미안? 안보리 때문에 사과…사실관계도 왜곡”(종합)

    주호영 “김정은 대단히 미안? 안보리 때문에 사과…사실관계도 왜곡”(종합)

    “진정성 없다… 與 사실관계 밝혀야”“월북? 군, 경계실패 책임 떠넘기는 것”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5일 북한이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 A씨를 북한에서 발견한지 6시간 만에 피격한 뒤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단히 미안하다”며 사과한 데 대해 “사실 관계를 왜곡한 진정성 없는 사과”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소를 의식해 사과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김정은, 살해 방법·참혹상 때문에 안보리 제소 고려해 사과” 주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살해 방법이나 (시신을) 태운 참혹상 때문에 유엔 인권위원회나 안전보장이사회 제소 움직임이 보이니 사과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사과 배경에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을 고려한 계산이 있었다는 것이다. 주 원내대표는 “북한이 미안하다는 표시를 한 것은 (사과가) 없는 것보다는 일보진전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무참하게 살해하고 소각한 전체로 미뤄볼 때 진정성이 없는 사과”라고 말했다. 북한 통일전선부는 이날 청와대로 보낸 통지문에서 “김정은 동지는 가뜩이나 악성바이러스 병마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 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런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 전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또 북측이 통지문에서 시신을 태운 게 아니라 숨진 공무원이 타고 온 부유물을 소각한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북한의 주장은 진실된 사과가 아니라 사실 관계를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 원내대표는 “어느쪽이 맞다 아니다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국방부의 발표를 믿고 싶다”면서도 “추가적인 정보로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北 “사격 뒤 침입자 부유물에 없었다” 북측은 통지문에서 “우리 군인들이 정장의 결심 밑에 10여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했다”며 “사격 후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어 10여m까지 접근해 확인 수색했으나, 정체불명 침입자는 부유물 위에 없었다”고 했다. 북측은 이어 “우리 군인들은 불법 침입자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했고, 침입자가 타고있던 부유물은 국가비상방역규정에 따라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전날 A씨가 해상에서 총살된 지 30분 만에 북한군이 기름을 붓고 40분간 시신을 불태웠다고 발표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전날 긴급현안질의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이 불태운 우리 국민의 시신을 서해에 버렸고 일부 훼손된 시신이 떠다닐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서욱 “40분간 시신 태우는 불빛 관측”“시신 바다에 떠다닐 개연성 있다” 서 장관은 이날 긴급현안보고를 위해 열린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40분간 시신을 태우는 것으로 추정되는 불빛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서 장관은 “시신을 훼손하는 불빛은 야간 감시장비에 몇 분 정도 보였는가”라는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한 40분 정도 보였다”고 답했다. 서 장관은 김 의원이 “해상에서 휘발유 등을 뿌리고 태웠을 텐데, 해상이기 때문에 완전히 시신이 훼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신이 바다에 떠다닐 확률이 높은 것 같다”고 하자 “그럴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시신을 찾아 유족에게 돌려주도록 노력해달라는 김 의원의 지적에 “경비작전 세력들에게 임무를 부여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 장관은 북한이 A씨 시신을 남측에 인도하지 않고 서해에 버렸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시신의 행방을 묻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그 해역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 의원이 재차 “북측이 시신을 불태우고 바다에 버렸다는 말인가”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변했다.주호영 “與, 사실관계 명확히 밝혀야”28일 민주당에 긴급현안질의 요구 “군, 안전하게 송환하라 요구했어야”“일언반구 없는 대통령, 대단히 실망” 주 원내대표는 또 더불어민주당에 긴급현안질의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월요일(28일)에 대북규탄결의안을 채택하고, 이 문제에 관해 긴급현안질의를 하자고 민주당에 요구하고 있다”면서 “민주당이 아직 확답을 하지 않고 있지만, 이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야 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주 원내대표는 국방부와 청와대의 대응에 대해서는 “우리 군은 안전하게 송환하라고 요구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그런 조치가 빠졌다”며 “대통령은 일언반구가 없었고,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월북 가능성을 제기한 국방부를 향해 “신발을 배에 두고 갔다, 구명조끼를 입었다, 이런 걸로 월북을 판단한 건 섣부르고 책임을 그쪽에 넘기려 한 흔적이 보인다”면서 “경계실패나 판단 착오를 본인이 넘어가려 한 것으로 떠넘기려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전문] 우리 국민 불태우진 않았다는 北 “사격 뒤 침입자 부유물에 없었다”(종합)

    [전문] 우리 국민 불태우진 않았다는 北 “사격 뒤 침입자 부유물에 없었다”(종합)

    “40~50m 거리서 10여발 총탄 사격”“많은 양의 혈흔 확인 돼”“대한민국 아무개” 듣고도 현장 총살북한이 25일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 A(47)씨 피살 경위와 관련, 총기 발포는 인정했으나 사망 후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는 시신 훼손 부분은 “사격 후 침입자가 부유물에 없었다”며 사실상 부인했다. 다만 북한이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남한 국민의 신원을 확인했음에도 남측에 알리지 않고 6시간 만에 해상에서 즉결 처형식 총살을 한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北 “사격 후 정체불명 침입자 없었다”“부유물, 방역규정에 따라 해상서 소각” 북한 통일전선부는 이날 이런 내용이 담긴 통지문을 청와대 앞으로 보냈다. 북측은 통지문에서 “우리 군인들이 정장의 결심 밑에 10여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했다”며 “이 때 거리는 40∼50m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사격 후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어 10여m까지 접근해 확인 수색했으나, 정체불명 침입자는 부유물 위에 없었다”며 “(대신) 많은 양의 혈흔이 확인됐다고 한다”고 했다. 북측은 “우리 군인들은 불법 침입자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했고, 침입자가 타고있던 부유물은 국가비상방역규정에 따라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신원 확인 과정에서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A씨로부터 들은 사실을 전했다. 다시 말해 북한군은 우리 국민인 것을 인지하고도 남측에 알리거나 바다에서 구조해 표류하게 된 경위를 조사하는 대신 현장에서 6시간 동안 방치했다가 고의로 사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앞서 우리 군은 A씨가 해상에서 총살된 지 30분 만에 북한군이 기름을 붓고 40분간 시신을 불태웠다고 밝혔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전날 긴급현안질의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이 불태운 우리 국민의 시신을 서해에 버렸고 일부 훼손된 시신이 떠다닐 개연성도 있다고 밝혔다.서욱 “40분간 시신 태우는 불빛 관측”“시신 바다에 떠다닐 개연성 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긴급현안보고를 위해 열린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40분간 시신을 태우는 것으로 추정되는 불빛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서 장관은 “시신을 훼손하는 불빛은 야간 감시장비에 몇 분 정도 보였는가”라는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한 40분 정도 보였다”고 답했다. 서 장관은 김 의원이 “해상에서 휘발유 등을 뿌리고 태웠을 텐데, 해상이기 때문에 완전히 시신이 훼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신이 바다에 떠다닐 확률이 높은 것 같다”고 하자 “그럴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시신을 찾아 유족에게 돌려주도록 노력해달라는 김 의원의 지적에 “경비작전 세력들에게 임무를 부여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 장관은 북한이 A씨 시신을 남측에 인도하지 않고 서해에 버렸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시신의 행방을 묻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그 해역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 의원이 재차 “북측이 시신을 불태우고 바다에 버렸다는 말인가”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변했다. “공무원 봤지만 적 지역에 있어 대응 못해”군 “바로 사살하고 불태울진 상상 못했다” 군, 22일 北과 A씨 접촉 감시망서 포착6시간 뒤 해상서 北 공무원에 사격 후 불태워 군 당국은 지난 24일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공무원인 실종자 A(47)씨와 관련한 대북첩보 등을 종합분석한 결과 A씨가 실종 다음 날인 22일 오후 북측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의해 최초 발견됐으며, 6시간 만인 오후 9시 40분쯤 총살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입장문을 통해 “우리 군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소연평도 실종자)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의 설명에 따르면 군은 지난 21일부터 수색에 나섰으나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22일 오후 3시 30분쯤 A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북한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수상사업소 선박이 황해도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A씨로 추정되는 인물과 접촉하는 장면이 우리 군 감시망에 포착된 것이다. 군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부유물에 탑승해 있는 기진맥진한 상태의 A씨를 발견했다.이후 북한 선박은 A씨를 해상에 그대로 둔 채로 월북 경위 등을 물었고 6시간 만인 오후 9시 40분쯤 돌연 단속정을 현장으로 보내 A씨에게 사격을 가했다. 이후 30분 뒤인 오후 10시 11분 시신에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 군은 북한이 A씨를 사살하고 불태우기까지 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바로 사살하고 불태울 것이라 상상 못했다. 북한이 그렇게까지 나가리라 예상 못했다”면서 “북한이 우리 국민을 몇 시간 뒤 사살할 것이라 판단했다면 가만 안 있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군은 사격을 가했던 곳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너머 북한 지역 인근이어서 군사작전을 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강조했다. 군 관계자는 “적 지역에 대해서 즉각 대응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김정은 “文대통령·남녘 동포 대단히 미안” 한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우리 국민에 대한 북한군의 총격·시신훼손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북측의 통지문 전문을 공개했다. 다음은 북측이 보낸 통지문 전문 『청와대 앞 귀측이 보도한 바와 같이 22일 저녁 강령군 금동리 연안 수역에서 정체불명인원 1명이 우리측 영해 깊이 불법 침입했다가 우리 군인들에 의해 사살(추정) 되는 사건 발생했다. 사건 경위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 측 해당수역 경비담당 군부대가 어로작업중이던 수산사업소 부업선으로부터 정체불명 남자 1명을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고, 강령반도 앞 우리측 연안에 부유물을 타고 불법 침입한 자에게 80미터까지 접근해 신분확인 요구했으나, 처음에는 한두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측 군인들의 단속 명령에 함구하고 불응하기에 더 접근하며 두발 공포를 쏘자 놀라 엎드리며 정체불명 대상이 도주할 듯한 상황 조성됐다고 합니다. 일부 군인들 진술에 의하면 엎드리면서 무엇인가 몸에 뒤집어 쓰려는 듯한 행동한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정장의 결심 밑에 해상경계 근무규정이 승인한 행동 준칙에 따라 10여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 향해 사격했고 이때 거리는 40~50미터였다고 합니다. 사격 후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어 10여미터 접근해 확인 수색했으나 정체불명 침입자는 부유물 위에 없었으며 많은 양의 혈흔이 확인됐다고 합니다. 우리 군인들은 불법 침입자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했으며 침입자가 타고있던 부유물은 국가비상방역규정에 따라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우리 지도부에 보고된 사건 전말에 대한 조사 결과는 이상과 같습니다. 우리는 귀측 군부가 무슨 증거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불법 침입자 단속과 단속과정 해명에 대한 요구 없이 일방적 억측으로 만행, 응분의 대가 같은 불경스럽고 대결적 색채가 강한 어휘 골라 쓰는지 커다란 유감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지도부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발생했다고 평하면서 이같은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상경계감시 근무 강화하며, 단속과정의 사소한 실수나 큰 오해 부를 수 있는 일이 없도록 해상에서 단속취급 전 과정을 수록하는 체계를 세우라고 지시했습니다. 우리 측은 북남사이 관계에 분명 재미없는 작용 할 일이 우리 측 수역에서 발생한데 대해 귀측에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 지도부는 이런 유감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최근에 적게나마 쌓아온 북남 사이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허물어지지 않게 더 긴장하고 각성하며 필요한 안전대책을 강구하는 것에 대해 거듭 강조했습니다. 국무위원장 김정은 동지는 가뜩이나 악성 비루스 병마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런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 전하라고 했습니다. 벌어진 사건에 대한 귀측의 정확한 이해를 바란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2020.9.25』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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