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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내 자주국방 토대”盧대통령, 8·15경축사… 군비체계 재편 주한미군 재배치도 안보상황 맞춰 조절

    노무현(사진) 대통령은 15일 “앞으로 10년 이내에 우리 군이 자주 국방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3·15면 노 대통령은 이날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58주년 광복절 경축식 축사를 통해 “자주독립국가는 스스로의 국방력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정보와 작전기획 능력을 보강하고 군비와 국방체계도 그에 맞게 재편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대책없이 미군철수 반대만 외친다고 될 일도 아니며,이제 현실의 변화를 받아들일 때가 됐으며 주한미군의 실질적인 전력이 약화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주한미군)부대의 재조정도 수용하려고 한다.”면서 “용산기지는 가능한 최단 시일내에 이전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어 “주한미군 제2사단의 재배치 등 전반적인 재조정은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안보상황에 맞춰 그 시기를 조절해 시행하도록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협의하겠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미군은 앞으로도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이지만,우리의 안보를 언제까지나 주한미군에 의존하려는 생각도 옳지 않다.”면서 “국군은 6·25 전쟁을 거친 이후 꾸준히 성장해 나라를 지킬 만한 규모를 갖추고 있는 데 아직 독자적인 작전수행 능력과 권한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참여정부 출범초 공론화 의사를 내비쳤던 ‘전시(戰時)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재거론한 데 이어 장기적인 주한미군 철수 문제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자주국방을 하더라도 한·미동맹 관계는 더욱 단단하게 다져나가야 한다.”면서 “자주국방과 한·미 동맹은 결코 모순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북핵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우리는 북한의 경제개발을 위해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노 대통령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면서 “현재 추진중인 각종 협력사업을 계속 추진해나가고,금강산 관광사업도 계속되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또 “향후 10년 이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들어갈 수 있는 토대를 임기내에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태헌기자 tiger@
  • 6·25 53주년과 휴전 한미동맹 / 새 역할 찾는 駐韓미군

    올해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53년전 6월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다음달 27일은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이,오는 10월1일은 한·미동맹조약 체결 50주년이 되는 날이다.최근 급격한 변화 양상을 보이고 있는 한·미동맹의 바람직한 변화 방향과 문제점 등에 대해 알아본다. 한·미 동맹관계에 변화의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민주화와 함께 지난해 발생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사건과 이어진 촛불시위 등은 한·미 양국간 대등한 형태의 동맹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한·미 동맹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전시작전통제권(작통권) 환수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등을 꼽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韓國軍으로 전시 작통권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상징으로 지적된다. 평시 작통권은 1994년 반환됐다.그러나 전시 작통권은 여전히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주어져 있다.연합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국방부는 전시 작통권이 연합사령관에게 있고 인사,작전,군수,정보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군 지휘권은 한국의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입장은 다르다.경기대 김재홍 교수는 “사실상 전시 군령권을 외국군에 넘겨준 것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SOFA불평등규정 개정 현행 SOFA는 몇 차례 개정으로 ‘형사재판권 자동 포기’ 등 이른바 ‘독소조항’은 제거됐다.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가해자에 대해 철저한 책임을 묻지 못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현행 SOFA는 양국의 원칙적 수사협조만을 규정하고 있어 미군범죄에 대한 우리 수사기관의 초동·공조수사를 근본적으로 어렵게 하고 있다.공무 이외의 범죄에 대해 미군이 재판권 포기를 요구할 경우 한국은 호의적으로 검토한다고 돼 있는 조항도 문제다. ●양국정부 연말까지 협상 현재 한·미 양국은 한·미동맹의 미래 청사진을 새로 그리기 위한 공동협의를 진행중이다.지난달까지 2차례 실시된 공동협의에서는 미2사단의 한강이남 이전문제와 용산 미군기지 이전문제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한 상태이다. 3차 회의는 다음달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다.이어 연말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 정식 의제로 올린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전시 작통권환수문제와 주한미군 재배치 등 한·미 양국 군 관련 사안은 오는 연말까지의 협상을 통해 전에 없던 커다란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오피니언 중계석/ 주한미군의 위상과 미래 학술회의

    경희대와 국방대는 26일 한국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주한미군의 위상과 미래’를 주제로 공동 안보학술회의를 열었다.학술회의에서 발표된 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양준희 경희대 교수 현재 주한미군의 병력감축 및 배치 변화,정전협정 관리체제나 연합 지휘체계 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고,많은 연구들도 나와있다. 하지만 우리가 인식해야 할 부분은 주한미군의 재편에 대한 논의는 기술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지금 남·북한,미국의 관계는 과거 냉전시대 미·소의 관계와 비슷하다.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아주 사소한 기술적인 문제도 목숨이 걸린 것처럼 다투고,상대방이 무엇을 제안하면 무조건 반대하는 그런 상황이다. 따라서 주한미군 재편에 관한 기술적 논의보다는 남·북한과 미국이 서로에 대한 관념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바꾸어야 한반도에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주한미군 철수 뒤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전쟁 가능성을 부각시키지만,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지나친 공포심을가질 필요는 없다.한국이 자주국방 잠재력을 가진 데다 유사시 자동개입 약속 등 우호적 상황에서 미군 철수가 이뤄진다면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김열수 국방대 교수 올해는 한·미동맹 50주년,월남 패망 30주년,그리고 독일 통일 13주년이 되는 해이다.한국과 북한,월남과 월맹,서독과 동독은 모두 체제모순과 분단모순의 구조를 가졌지만 세 나라의 운명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세 나라 운명의 중심 축에는 미국이 있는데 그 이유는 세 나라 모두 문서상이든 실질적이든,미국과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반도의 평화시계는 점점 위험쪽으로 기울고 있다.북한 핵보유 발언과 아직 가시지 않은 한국내 반미정서,미국의 군사력 재편성 정책으로 인한 전반적인 한·미동맹 관계의 재검토와 북한핵 문제 해결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이견 등으로 인해 한반도 상황이 난마처럼 얽혀버렸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은 ‘피뢰침 효과’와 ‘인계철선 효과’,그리고 ‘바그다드 효과’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서로가 상대방에자신의 주파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강대국 중에서 한국의 통일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독일이 부러운 것은 서독과 세계를 대량살상무기로 위협하지 않았던 동독이 존재했다는 점이고,미국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일의 통일을 지원했던 점이다.한반도의 현재·미래를 위한 주한미군의 군사적 역할은 계속되어야 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 주한미군은 한·일간 긴장완화나 중·일간 군비경쟁 억지 등 동북아의 세력균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한·미동맹의 역할을 기능적으로 확장해 지역안보 위협을 저지하는 역할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중장기전략이 중국을 국제사회에 포용하는 것보다 전략적으로 봉쇄하는 것에 중점이 주어지는 한 한·미동맹을 지역안보동맹으로 군사협력의 적용범위를 확장하는 것은 국익에 비춰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미국이 원하는 한 한·미동맹의 우의를 굳건히 지켜나가되 우리가 미국에 신세지고 있는 정보력 등에서 자주국방 능력을 확보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실질적인 적이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있는 북한뿐이라는 점에서 미국에 전시작전통제권을 계속 맡기고 있다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미국의 주한미군 재배치 및 부분 철수 요구에 대해 전향적으로 이를 수용하고,전시작전통제권의 회수 시점을 정해놓은 뒤 이를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추진하면서 정보력과 작전능력 등 우리의 부족한 군사력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 정리 조승진기자 redtrain@
  • 진상조사 보고서 내용 / “제주 4·3사건 인명피해 3만명”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4·3 진상조사 보고서’는 이 사건을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으로 규정했다.보고서는 사건으로 2만 5000∼3만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됐기 때문에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추모사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집단 인명피해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최종 책임이 있고,미 군정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돼 관심을 모았다.다음은 보고서 내용 요약. ●경찰의 발포사건으로 촉발 4·3사건은 광복 이후 급격한 인구 증가와 실직,생필품 부족,콜레라 발생,흉년 등의 악재 속에 47년 3·1절 발포사건이 도화선이었다.3·1절 발포 사건은 경찰이 시위군중에게 발포해 6명 사망,8명 중상의 피해를 입혔고,희생자 대부분이 구경하던 일반 주민이었다. 이에 남로당 제주도당은 조직적 반경(反警) 활동과 ‘3·10총파업’을 벌였다.총파업은 관공서·민간기업 등 제주도내 전 직장 95% 이상이 참여한 한국 최초의 민·관 합동 총파업이었다.4·3사건 직전까지 1년 동안 2500명이 구금됐고,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다.결국 1948년 4월3일 오전 2시 350명의 무장대가 12개 지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하면서 무장봉기가 시작됐다. ●인명피해 2만 5000∼3만명 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수는 1만 4028명이지만 미신고·미확인 희생자가 많을 것으로 추정돼 정확한 규모파악은 어렵다.위원회는 당시의 인구 변동 통계 등을 감안,인명피해를 2만 5000명∼3만명으로 추정했다. 위원회는 “1950년 4월 김용하 제주지사가 밝힌 피해자 2만 7719명 등을 감안한 숫자지만 향후 더욱 정밀한 검증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이 사건으로 전사한 군인은 180명,경찰은 140명 안팎으로 추정됐다. ●대량 희생의 최종 책임은 ‘이승만’ 48년 10월부터 49년 3월까지 6개월 동안 전체 희생자의 80%가량의 희생자가 나왔다.이 기간에 작전을 지휘한 9연대장과 2연대장에게 1차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1949년 1월 국무회의에서 “미국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사건 등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拔根塞源)해야 미국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라며 “지방 토색 및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해 법의 존엄성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고 강경작전을 지시했다. ●미 군정 개입도 밝혀져 사건은 미 군정 아래에서 시작됐으며,미군 대령이 제주지구 사령관 자격으로 직접 진압작전을 지휘했다.미군은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도 한·미간의 군사협정에 의해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계속 보유했고,제주 진압작전에 무기와 정찰기 등을 지원했다. 중산간마을을 초토화한 9연대의 작전을 ‘성공한 작전’으로 높이 평가했다.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이 송요찬 연대장의 활동상을 널리 알리도록 한국 정부에 요청한 기록도 있다. ●미완의 진상규명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전체 모습이 드러났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위원회의 평가다.경찰 등 주요기관의 관련문서 폐기와 군 지휘관의 증언거부,미국 비밀문서 입수 실패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게 위원회의 지적이다.보고서는 “국가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희생자와 그 유족을 위로하고 적절한 명예회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동맹관계 정책구상 논의 안팎/ 휴전선일대 한국군역할 강화

    8∼9일 이틀간 서울에서 열린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공동협의 회의는 향후 달라질 양국 동맹에 대한 새로운 밑그림을 처음 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한·미 양국은 그간 국내외 우려와 달리 주한 미군의 전투능력 강화 등 한반도 안보 능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동시에 우리측의 책임 확대 문제를 공식 언급했다.미측은 인계철선(引繼鐵線) 기능을 하는 제2사단의 한강 이남 철수 문제와 관련,한국민의 안보 우려를 감안해 북핵 문제 해결 전까진 본격 논의를 하지 말자는 ‘속도조절론’에는 동의했다.하지만 잠시 수면 아래 들어갔을 뿐이다. ●한반도 방위력 증강원칙 속 한국군 책임 확대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21세기 전쟁 전략 개념에 맞춰 한반도에서의 방위력 증강 입장을 밝혔다.이 원칙을 통한 재조정 과정에서 미측은 한국군의 ‘역할증대’를 강조했다.한국의 군사 능력 발전에 따라 선택된 임무(selected mission)에 대한 책임을 우리가 맡기로 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선택된 임무에 대해 보안을 이유로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제2사단이빠질 경우 휴전선 일대에서의 한국군 역할 강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측은 주한미군이 동북아 역내 안정을 위한 첨단기동군으로의 배치를 시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한반도에 있어서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역할 분담 협의 과정에서 우리측의 방위비 분담금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 주한미군 재배치에 대해선 “계속 협의해 나가자.”는 데 합의했다.하지만 제2사단 문제와 관련,우리측은 국민들의 안보 우려 및 2사단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고려,2사단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강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롤리스 부차관보는 일단 “한국민의 우려에 이해를 표명한다.”고 해 급속한 추진은 하지 않을 방침을 시사했다.미측의 기본 입장은 ‘안보력 강화 기조 위의 한강 이남 배치’이지만,북핵 문제가 현안으로 걸려 있는 현 상황에서 구체적 논의는 뒤로 밀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정부 관계자는 “전력 강화와 미군 재배치 협상이 진행됨에 따라 2사단 문제도 계속 논의될 것”이라고말했다.국방부 차영구 정책실장도 “우리 군의 능력이 커지면 미군이 하던 임무를 맡을 수 있다.”고 말해 앞으로 미군 감축과 2사단의 한강 이남 이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논의될 것임을 시사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양측은 한·미 연합지휘 체계를 연구하는 중장기 차원의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미측은 현재의 지휘체계에 만족하고 있지만 미래 장기적 계획은 한·미 공동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고,우리측은 전시 작전통제권은 연합방위 능력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사안인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결국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는 차원에서 협의체 구성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 당초 예상대로 양측은 용산 미군기지의 조속한 이전에 합의했다.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여건을 보전한다는 취지에서다.이번 회의에서 미측이 가장 강력히 요구한 사안도 사실 용산기지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따라 이르면 올해 말부터 용산기지 이전사업이 시작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이사람/폴리시 메이커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용산기지 이전 전략적 접근 필요””

    국방부 차영구(車榮九·56·육사 26기·중장) 정책실장은 국방부에서 가장 바쁜 장성으로 통한다.정책실 업무가 워낙 방대한데다 민감한 현안도 많기 때문이다. 다른 중앙 부처처럼 국방부에도 기획관리실이 있긴 하다.하지만 직제 서열상 정책실이 더 앞선다.기획관리실장은 민간인이 맡고,정책실장은 현역이 맡고 있는 점만 봐도 정책실장의 ‘비중’이 읽혀진다. 그는 새벽 6시면 어김없이 국방부로 출근,하루 2∼3차례 열리는 각종 회의를 주재하거나 참석한다.각종 현안때문에 장·차관실에도 수시로 불려간다.주한미군 재배치와 한·미 동맹 재조정 문제 등이 현안으로 떠오른 요즘에는 더욱 부산하다.대부분 그를 비롯한 정책실에서 ‘머리’를 짜내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인 때문이다. 최근 국방부내 육군회관에서 국방부·합참의 전 장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방장관 이·취임식에도 그는 참석하지 못했다.그 시간 자신의 사무실에서 방한중인 미 국방부 관계자들과 한·미 동맹의 발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회담이 열렸기 때문이다. 차 실장은 “용산미군기지 이전 협상이 과거에도 여러차례 논란이 되지 않았느냐.”며 협상 전망을 묻자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고 운을 뗐다. 그는 “용산기지 이전을 위해 한·미양국은 지난해 말 한국에 있는 미국의 전문 용역기관에 소요조사를 공식 의뢰했으며,5월 말쯤이면 최초 종합계획이 나오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런 논의가 처음은 아니지만 양국 합의아래 공신력있는 기관에 객관적인 조사까지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최초 종합계획이 나오면 이를 토대로 올 연말까지는 정확한 이전비용을 산출하고 이전 대상 부지 물색에도 나서게 될 것”이라고 밝혀 사업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용산 미군기지가 이전할 경우 현재로선 한강 이남으로 갈 가능성이 높지만 정확한 이전 부지는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으며,언론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이전 부지 결정 과정이 언론에 그대로 알려질 경우 자칫 주민반대 등으로 이전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국방부 정책실은 국방정책을 수립·조정하고 국방부의 위기관리 체계를 관리 운영하고 있다.북한핵 문제 등과 관련되는 군비통제 업무,대(對)국회업무,홍보업무 등도 중요한 업무에 속한다. 또 대외 군사정책과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 등 군사·외교 분야 역시 정책실 소관이다.이런 사정 때문에 국방부 정책실은 ‘국방부 내 외교부’로 통하기도 한다. 차 실장은 영어와 프랑스어·중국어·일본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하다. 오는 4월 한·미 양국이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하는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공동협의’의 사전 조율차 최근 방한한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보와는 오래 전부터 자주 만나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용산 미군기지 이전 논의 때문에 요즘 자주 만나는 미측 협상 파트너 찰스 캠블 주한 미8군사령관(육군 중장) 역시 그와 절친하다. 그는 군 생활의 대부분을 정책분야에서 보냈다.현역 장교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해외파’이기도 하다.1970년대 중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1979년 파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땄다.박사 학위 논문은 ‘중국 신장성 생산건설 병단(兵團)에 관한 연구’. 소령이 되던 지난 1981년 한국국방연구원(KIDA)으로 자리를 옮겨 1994년까지 14년 동안 그 곳에서 안보협력실장과 군비통제센터 소장 등을 역임하면서 국방정책 브레인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그 당시 그는 국방문제 전문가로 TV 등 언론에 자주 등장,국민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현역 군인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1999년 국방부 대변인 시절엔 정책 마인드를 토대로 국방홍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았으나,서해교전 당시 남북간 무력대치를 ‘부부싸움’에 비유하는 발언으로 뜻하지 않은 해프닝에 연루돼 전격 해임된 적도 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작전통제권 환수 등 최근의 현안에 대해 그는 우선 “상호방위조약의 경우 현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조항이나 문구는 특별히 없다.”고 전제한 뒤 “다음달부터 이뤄질 한·미간 협상에서 전반적인 분야에 대한 분석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 작전통제권의 환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무조건적인 환수 주장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작전통제권이 환수될 경우 한반도 위기때 미국의 개입 의지가 약해질 것이 분명하다.”면서 “이 경우 크게 늘어날 방위비 부담과 전력 공백 대체 문제 등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순서”라면서 협상에서의 ‘전략적 사고’를 강조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조국방 기자간담회, 軍수뇌부도 임기보장

    조영길(曺永吉) 국방부장관은 28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미 동맹관계의 변화 요인이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른 것은 몰라도 군사 분야에서의 양국간 동맹에 급격한 변화가 초래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조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주한미군 재배치,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등 양국간 군사 현안을 다루기 위해 오는 4월부터 시작될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회의를 앞두고 나온 것이어서 향후 한국의 정책 향배가 주목된다. 그는 또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2년 임기제인 군 수뇌부 대장급 장성들의 경우 임무 수행에 문제가 없는 한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혀 임기가 만료되지 않은 수뇌부들에 대한 인위적인 인사를 단행하지는 않을 뜻임을 내비췄다. 이밖에 북한 핵문제 해결과 관련한 미국의 선제 공격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며 “전쟁을 하기에 남북한 전력은 너무 커져 있다.”고 밝혔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韓·美 동맹관계 개선 협의/주한미군 ‘南下’ 가속화 전망

    한강 이북에 위치한 미 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는 문제와 용산 미군기지 이전사업 등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추진될 전망이다. 국방부의 한 당국자는 “오는 4월 시작되는 ‘미래 한·미 동맹 정책구상 공동회의’를 앞두고 27일 국방부에서 열린 한·미 양국 국방부간 사전 조율 협상에서 미측이 이같은 현안에 대해 조기 추진 의사를 적극 타진해 왔다.”고 밝혔다. 양측은 특히 미군이 서울로부터 이전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앞으로 이전 시기와 위치 등을 고려하면서 대화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차영구(육군 중장) 국방부 정책실장과 방한중인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는 이날 국방부에서 열린 회담에서 한·미 동맹관계 개선과 관련,한국 방어에 있어서 한국 역할이 커져야 한다는 것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의 성공적 이행 등에 대해 견해를 같이했다. 차 실장은 ‘한국의 역할 증가' 문구에 대해 “방위비 분담문제를 포함,모든 사안에서 주한미군의 역할과 임무를 조정하는 등 모든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 놓자는 것”이라며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도 논의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오는 4월부터 1∼2개월에 한 차례씩 서울과 워싱턴에서 번갈아 가며 협의를 진행키로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용산기지 대체부지 물색중”허바드 美대사 밝혀

    4월로 예정된 한·미동맹 재정립을 위한 협상을 앞두고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상호방위조약 개정,전시 작전통제권 이전 등 현안에 대한 미측의 입장이 드러나고 있다. 토머스 허바드 주한미대사는 21일 “한국 정부와 함께 용산기지의 대체 부지를 물색중”이라고 밝혔다.그는 한국국방연구원과 헤리티지 재단,한미교류협회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우리의 군사력이 변화함에 따라 기지통합 문제를 고려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국방부는 대북한 전비태세 등을 감안할 때 서울 근교의 수도권 지역을 우선 검토중이다. 한·미 양국의 협상 일정과 관련,콜린 파월 국무장관,리처드 롤레스 국방부 차관보 등 미 국무·국방부 관계자들이 노 당선자의 취임에 즈음해 잇따라 방한할 예정이어서 사실상의 협상은 다음주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韓·美 동맹관계 재정립 ‘신호탄’주한미군 위상 논란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가 새 정부의 중요 어젠다로 급부상할 조짐이다.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국과 미국의 주요 관계자간 ‘한·미 동맹 재조정(rebalance)’문제가 집중 거론되면서 주한미군 위상이 그 핵심으로 떠올랐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7일 “미국측은 오는 25일 노 당선자의 취임식에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함께 이례적으로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 등을 보내 한국 정부와 북핵 문제와 함께 주한미군 현안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올해 한·미 안보동맹 50주년을 맞아 양국 동맹관계의 발전방향을 논의할 정부차원의 협의체가 오는 3월중 본격 가동된다.국방부는 지난해말 열린 제34차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합의한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에 관한 약정서(TOR)’에 따라 양국 동맹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첫 회의를 3월 말 서울에서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미간 ‘동맹 재조정’논의가 본격화되면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서울 용산기지 재배치 문제 등이 우선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지상군 감축 여부 ▲한강 이남 지역으로의 미군2사단 이전 ▲작전통제권 이양 등이 거론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한미연합사 해체,주한미군의 한수 이남 주둔에 따른 전쟁시 참전 조건 등이 이슈가 되면서 한·미 양국간은 물론,우리 사회내의 찬반 논란도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미측 반응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추진되다 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중단된 전 세계 미군의 신속·경량화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의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체니 부통령은 지난 2∼6일 워싱턴을 방문한 노 대통령 당선자 특사단에게 주한미군 감축·철수 문제를 거론했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했다.그러나 한·미 양측은 이를 부인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주한미군 철수논란/美 “”감축아닌 기지이전””해명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6일 “한국이 원한다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럼즈펠드 장관이 한·미 동맹관계의 ‘재조정(rebalance)’을 지적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의 고위 대표단에게 한수 이북의 미군기지 이전을 한국측과 적극 협의하겠다는 취지로 설명한 게 주한미군 철수로 와전됐다고 강조했다.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본지 특파원의 질의에 “미국의 주한미군 정책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다.”며 “주한미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조정 문제는 지난해 11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국의 새 정부와 긴밀히 논의하기로 이미 합의한 상태”라고 밝혔다. 제프리 데이비스 국방부 동아태 담당 대변인도 “럼즈펠드 장관이 그같은 발언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미군의 주둔을 바라지 않는 나라에서 미국이 철수한다는 원칙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라며 필리핀처럼 미군의 주둔을 원치 않아 철수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그럼에도 북핵 문제와 한국 내 반미 정서 때문에 한·미 관계에 앙금이 남은 상태에서 럼즈펠드 장관이 굳이 역내 긴장과 갈등을 부추길 만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거론한 배경에는 적지 않은 의구심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반도 주변에 미 군사력을 증강시키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가 노 당선자측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으로 해석한다.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라는 것. 워싱턴 조야의 대북 강경파들은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볼모로 잡혀 있어 북한의 핵 위협에도 미군이 핵 시설을 공습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이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한미군의 철수를 외쳤고 럼즈펠드 장관 등 군사행동을 배제하지 않는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도 이에 동조하기는 마찬가지다. 때마침 한국에선 주한미군에 대한 반대 정서가 팽배했고 노 당선자측도 새로운 한·미 동맹관계를 요구,럼즈펠드 장관이 이를 정치적으로 역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이처럼 표면화하고 있지만 부시 행정부 내 다수는 동북아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에 긍정적이며 노 당선자 역시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강조한 만큼 이 문제가 당장 한·미간 최대 현안으로 부상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미군기지 이전과 군 장비의 첨단화 계획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주한미군 병력이 부분적으로 감축될 가능성은 보다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mip@kdaily.com ★재배치 추진 어떻게/미군기지 2011년까지 통폐합 최근 주한미군의 재배치 문제가 철군·감군 논란으로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그동안의 논의 경과가 주목되고 있다. ●90년대의 미군 감축 한·미동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주한미군은 현재 3만 7000명이다.주독미군(7만여명)과 주일미군(4만 3000여명) 다음으로 많다. 지난 1990년까지만 해도 4만 3000명이었으나 91∼92년 지상군 5000명과 공군 2000명 등 병력 7000명이 감축됐다. 감축은 냉전종식 분위기에 따라 1989년 미 의회에서 채택된 넌워너 법안과 이듬해 미 국방부가 이 법안에 근거해 마련한동아시아전략구상(EASI)에 따라 이뤄졌다. 당시 미측 구상에 따르면 미측은 1단계(90∼92년)로 7000명,2단계(93∼95년) 6500명,3단계(95∼2000년)는 향후 전략 상황에 따라 병력을 감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불거진 북한핵 문제 등과 맞물리는 바람에 1단계까지만 이뤄졌고,후속 조치는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역할도 ‘주도적(leading)’에서 ‘보조적(supporting)’으로 바꿔 나가기로 했다.94년 이뤄진 한국군의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도 이같은 역할변경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다. ●LPP(Land Partnership Plan·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 LPP는 주한미군의 시설 및 훈련지역 조정안이다.한강 이북에 있는 미군 기지의 재배치 등과 연관되는 대목이 많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4월 양국이 확정한 LPP에 따르면 전국 28개 미군 기지 및 시설 214만평과 3개 미군 훈련장 3900만평 등 모두 4114만평이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우리측에 반환될 예정이다.그 대신 한국은 미군 기지 통·폐합을 지원하기 위해 오산·평택 등 기지시설 7곳과 훈련장 1곳 등 8곳에서 총 154만평을 매입해 미군측에 제공하게 된다. 다수의 군사 전문가들은 LPP 추진 과정에서 미군 병력의 약간 감축은 있을 수 있지만,기본적으로는 통일 이후까지 미군의 주둔을 상정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방부는 어찌 보나 국방부는 이번 주한미군 재배치나 철군·감군 논란에 대해 “미측과 공식으로 협의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다만,지난해 12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오는 3월부터 ‘한·미동맹 미래발전 방안’을 논의하기로 한 만큼 이 때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에 대해서 부인하지는 않았다. 조승진기자 redtrain@kdaily.com ★정대철의원””철수얘기 없었다”” 정대철 의원 등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특사단의 워싱턴 방문을 계기로 주한 미군 감축 및 재배치 논란이 거세지면서 이를 둘러싼 정부 안팎의 기류도 심상치 않다.노 당선자와 주변 인사들이 밝혀온 ‘동등한 한·미관계’,‘동맹관계 재조정’ 등에 대한 미측의 불만이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일각에선 ‘동맹관계 재조정’ 등에 대한 국민적 합의 없이 강한 대외적인 수사(修辭)를 던진 결과로,이제는 국익 차원에서 냉철하게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인이 원한다면” 여권의 한 관계자는 7일 정대철 의원 등 특사단이 워싱턴 방문기간 중 미측 인사들로부터 들은 전제어는 “한국인이 원한다면”이라고 했다.럼즈펠드 장관의 정확한 언급도 “한국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주한미군 철수든,뭐든 다 들어주겠다.”는 것으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냉랭했다고 전했다. ●파장 우려하는 정부 외교통상부측은 “한·미 동맹 재조정을 최근 우리측이 요구한 이상,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른 미군의 재배치 논의 과정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한 당국자는 새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나온 이같은 논의들이 북핵 사태에 어떤 영향을 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한 미군의 한강 이남 재배치나,작전권 이양,지상군 감축으로 논의가 확대될 때의 상황에 대비,국민적인 의견수렴이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은 부인 파장이 확대되자 정대철·장영달 의원 등은 ‘미군철수 언급’ 자체를 부인했다.럼즈펠드 장관과 체니 부통령 등과 협의한 정 의원은 “내가 럼즈펠드를 만나 이야기한 당사자이지만 주한미군 철수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反美해법’ 전문가 진단 - ‘反美해법’ 전문가 진단

    다수 전문가들은 최근 반미(反美) 움직임이 격화되고 있는 것을 새로운 한·미 관계 정립을 위한 ‘진통’으로 풀이하면서도 그것이 일정 수준을 넘어갈 경우 국익을 해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정치권,정부를 포함한 사회 지도층이 국민들의 분노를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이용하려 하지 말고,국가이익이라는 원칙에 따라 냉철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그러나 SOFA 전면개정 필요성 등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고유환(高有煥) 동국대 교수 이번 반미현상은 큰 흐름에서 볼 때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전통적으로 지지해 왔던 한·미 공조란 틀이 남북 화해협력이라는 민족공조로 비중이 옮겨가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났다고 분석된다. 또 하나는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즉 동계올림픽 당시 미국의 오노 선수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사건,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무죄평결 포함),한·미간의 대북정책 갈등 등이 연결돼 반미감정이 반미주의 차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반미주의는한·미동맹,유엔사,작전통제권,정전협정까지 문제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우리는 한·미 동맹체제로 인해 안보우산과 경제성장 등을 누려왔는데 잘못된다면 한·미 간의 갈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특히이런 갈등이 양국 간의 결정적인 이해관계로 진전될 경우 미국이 여러가지수단을 동원해 대응할 수 있다. 미국의 힘의 실체라든가 경제적인 영향력을 고려할 때 정치권에서 수습하지 못하면 나라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다.반미 시위의 경우 평화적인 의사표시까지는 괜찮지만 더 격렬해질 경우 국가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이장희(李長熙) 한국외국어대 교수 효순이·미선이 사망 사건의 무죄평결로 인해 한·미 간의 신뢰는 사실상깨졌다.국민들의 분노는 근본적으로 한·미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깨달은 데서 출발하고 있다. 지난해 개정된 현행 SOFA 부속협정은 ▲1심 무죄뒤 검사의 항소 불가능 ▲미군 관리의 수사·재판과정 참여 ▲기소뒤 한국 수사당국의 신문금지 ▲형사관할권의 판단기준인 공무증명서 발급 주체를 미군측으로 한정한 점 등 독소규정을 고스란히 남겼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이번 여중생 사망사건을 통해 드러남으로써 현행 SOFA가과거보다 한국의 형사사법주권을 더 침해할 수 있음을 실증했다. 미국이 한·미 관계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구체적인 협력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직접 사과하고 이러한 불공정한 재판의 재발방지를 위해 현행 SOFA의 독소조항을 근본적으로 개정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우리 정부 역시국민의 여론무마에만 급급해할 것이 아니라 SOFA 제28조에 따라 SOFA 개정협상을 위해 한·미합동위원회를 소집,단순한 개선이 아닌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소파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 ◆박수길(朴銖吉) 전 유엔대사 두 여중생이 희생당한 사건은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그러나 SOFA라는 법제도가 잘못돼서 그런 사건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SOFA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맺은 것과 비교할 때 그리 불평등하다고 볼 수 없으며 우리에게 유리한부분도 있다.전세계적으로 외국 주둔군이 공적 임무를 수행하다가 잘못한 것에 대해 재판관할권을 넘겨주는 경우는 없다. 유엔 평화유지군의 예를 봐도 그렇다. 순수한 애도감정을 반미 및 주한미군까지 연결시키려는 일부 움직임과 이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게 문제다. 미국은 한국 국민이 이번에 간절하게 느낀 메시지를 잘 알고 있으며,우리 국민의 정서를 이해하는 쪽에서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고 본다.양국간 법제도가 틀려서 다소 어려운 점은 있지만,한국내 상황이 계속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은 우리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정치지도자 및 정부 관계자 등 오피니언 리더들은 포퓰리즘에 영합하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확고한 원칙을 세워 대중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윤덕희(尹德熙) 명지대 교수 대선 주요 후보 모두 SOFA 개정을 외치고 있지만 미묘한 입장 차이는 존재한다.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그동안의 ‘친미(親美)’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호기로 삼고 적극적으로 SOFA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반미(反美)’ 지도자로 인식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면서 SOFA 개정에 관해 다소 원론적인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민노당 권영길 후보는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는 원칙하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국민여론을 의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론에 밀려 급조한 공약인지,세부적인 실천 계획은 세워져 있는지,집권후에 이를 실행할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SOFA 개정 불가를 천명한 미국 정부에 대해 차기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가 중요하다.SOFA 개정 문제는 차기 정부의 첫 번째 대미 외교력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외교부, 움직임 주시 “”北·美대화 핵심은 군비통제””

    조만간 북·미대화가 재개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정부는 군비통제 문제가 향후 북미대화의 핵심의제가 될 것으로 보고 북미간 접촉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통상부 외교안보연구원(원장 鄭泰翼)은 24일 ‘부시정부의 대북 포괄적 협상제의,평가와 전망’이란 보고서에서 “북한이 내달 북·중 정상회담 이후 본격적인 대미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와 관련,미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23일 잭 프리처드 미 한반도 평화담당특사와 김계관(金桂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오는 10월쯤 대좌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군비통제 협상과 관련,“정부는 주한미군 및 작전통제권 문제에서 종래의 수세적 정책에서 벗어나 군사위협을 제거하고 전략적 안정을 이루는 군비통제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또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등이 미국 때문에 진전되고 있지 않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한·미간을 이간하고,한국이 미국에게 대북정책을 완화토록 압력을 가하게 하는,‘용남압미(用南壓美)’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의제별 ‘역할분담’보다는 굳건한 공조를 바탕으로 ‘팀플레이’를 중시해야 성공적인 대북협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아울러 북한이 이미 배치된 노동미사일 100여기를 미국의 요구대로 해체하면 일본이 북한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부시 정부가 국방정책의 전면적 재검토를추진하고,특히 해외 주둔미군의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중무장 보병 중심의 주한미군 구조 및 배치에 있어 중대한 변화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밖에 북한이 주한미군을 인정하고,남북한과 주한미군의단계적 감군안을 제안할 수도 있지만,철군 주장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주한미군의 지위변경을 통한 중립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민·관·군 통합방위 중앙회의

    제34차 통합방위 중앙회의가 19일 오전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와국무위원,군·검·경 관계관,지방자치단체장,언론사 대표 등 19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통합방위본부(본부장 조영길 합참의장)는 보고에서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안보상황과 군사대비 태세를 평가한 뒤 “흔들림없는 군사대비태세 유지와 지방자치단체장 중심의 지역 단위 민·관·군 통합방위태세를 완벽하게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경상남도 방위협의회,육군 제50사단,인천지방경찰청,한국은행 본점이 통합방위 유공기관으로 뽑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전남 목포시민방위대 등 6개 기관은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정부는 지난 95년한·미 연합사로부터 평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면서 이전의 대간첩대책본부와 민·관·군 국가방위요소를 통합,국가방위를 총괄적으로 조정,통제할 수 있는 통합방위본부 기구로 개편,매년 통합방위중앙회의를 열고 있다. 노주석기자 joo@
  • [대한시론] 평화보장체제는 신중하게

    지난달 워싱턴을 방문한 북한 조명록 특사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의 회담에서 북·미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로서 지금의 정전협정을 평화보장 체제로 전환해 6·25전쟁을 종식하는 데합의하고,그러기 위해서는 4자회담과 같은 여러가지 방도가 있다는데 견해를 같이했다.이러한 북·미간 합의는 그간 쌍방이 반세기 이상 지속해온 군사적 적대관계 청산과 함께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를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북·미관계의 긍정적 변화로 우리에게는 평화보장 체제의 구축이 현실 과제로 떠오르게 됐으며,통일관련 연구단체들은 이와 관련한 ‘포럼’‘토론회’ 등을 활발히 전개하는 실정이다. 그간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방도로 북한은 1984년 1월 ‘3자회담’ 즉 북·미 간에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북간에는 불가침을 선언한다는 방식을 제안한 바 있다.그후 96년 4월 한·미 제주도정상회담에서는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공동 제안했는데 이를 북한이 수용함으로써 지난해 8월까지 6차에 걸치는 본회담이진행됐다.그러나 결실을 보지 못한 채 중단되고 말았다. 4자회담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 문제로알려져 있다.남북이 협정 당사자가 되고 미·중이 이를 보장한다는한국과 미국측의 주장과 북·미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북측의 상반된 입장이 대립해 끝내 합의를 보지 못했다.북측 주장은 미국은 정전협정의 법적 당사자이며 평화보장의 실질적 당사자라는 것이다.그리고 남한의 작전통제권을 미군이 장악했기 때문에 평화협정체결의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최근 김대중 대통령은 4자회담 개최에 관해 몇차례 의견제시를 한 바 있으며 북한 당국도 이에관한 검토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1월초 평양을 방문한 중국 양원창 외교부부장은 백남순 외무상 등과 회동한 자리에서 이같은 북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또 지난 15일 브루나이를 방문한 중국 탕자쉬안 외교부장은 일본‘교도통신’과의 회견에서 한반도 정세에 관해 “작년 8월 중단된 4자회담을 조속히 개최하고 그틀 안에서 김대통령의 제안을 검토하는것이 바람직하다…김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4자회담을 재개하는것은 하나의 방책”이라고 했으며,올브라이트 장관과의 회담에서도 4자회담에 관해 협의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난 10월의 북·미간 공동성명과 남한·중국의 4자회담에관한 적극적인 입장표명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 4자회담 개최 전망이밝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는 몇가지신중한 연구와 검토가 있어야 하겠다. 먼저 지적할 것은 접근방식의문제다.이에는 ‘분리’와‘동시해결’이라는 두 가지 방식을 예상할수 있다. 그것은 남·북 또는 북·미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이를관련국들이 보장하는 방식,남과 북 그리고 관련국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해 협정과 보장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식 등일 것이다. 최근 거론되는 4자회담은 후자 방식의 하나다.이 방식들에서 우리는자주적 통일과 자주권 확보라는 민족사적 요구 차원에서 보다 냉철하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그리고 이러한 선택도 중요하지만 당사자들의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음으로는 종전방식의 하나로 평화협정체결 대신 국교수립·공동선언 등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방식이 원용될 수 있다는 점을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 6·25전쟁이 국가간 전쟁이아니며 또한 정전협정의 당사자 일방이 유엔군으로 돼 있기 때문에더욱 그러하다. 끝으로 남과 북은 국가간 관계가 아니며 6·25공동선언에 따라 화해와 협력·통일의 길에 들어섰고,한반도 평화보장의 주체가 우리 민족과 우리의 방위력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보장 체제에서 외세를 되도록 배제하는 방도를모색해야 한다. 우리 근현대사의 쓰라린 역사적 경험이 이 점을 더욱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김남식 경실련 통일협회 고문
  • [김삼웅 칼럼] 韓美 현안 어떻게 풀 것인가

    연초 미 정치학회장 로버트 코핸은 한 인터뷰에서 “제국(Empire)이라는 말은 미국을 표현하는 데 적절치 않다.역사상의 제국들과 달리 미국은 민주주의 체제이고 식민지 확장에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대국(Great Power)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미국의 지위는 기술적 지위가 계속되는 한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란 말을 남겼다. 미국에 비판적인 사람(국가)들은 ‘미제(美帝)’ 즉 미제국주의라 부르고우호적인 사람들은 ‘우방’ 또는 ‘혈맹’이라 호칭한다.코핸은 미국이 민주주의 체제이고 식민지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제국’이 아니라지만 보기에 따라 민주주의는 ‘국내용’이고 수많은 약소국가에 대한 이해 다툼은 ‘신식민지’ 정책이나 ‘속방’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그렇지만 과거 일본제국주의나 독일·러시아제국주의와는 존재양상이 크게 다른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두 얼굴의 미국’이 우리에게는 어떤가.일제로부터 나라를 찾아준해방자, 6·25전쟁에서 국가를 지켜준 구원자,배고플 때 도와준 은혜의 나라,수많은 유학생과 이민을 받아준 기회의 나라,상품수출의 최대시장 등 긍정적인 측면이 너무 많다.반면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침략을 양해해준 행위,분단의 배후,양민학살,독재정권 지원,대리전쟁(한국전과 베트남전) 조종,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SOFA) 등 부정적 측면 또한 심한 편이다.호오(好惡)와 선악이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두 측면 함께 살펴야 개인이나 국제관계나 좋은 부분은 발전시키고 좋지 않은 부분은 시정해 나가는 것이 정도이다.한·미관계도 마찬가지다.80년 광주항쟁 이전까지 “양키 고 홈” 소리가 없는 곳이 한국이었다.그러던 것이 최근 양국관계가 곳곳에서 마찰이 생기고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노근리와 매향리,린다 김,그리고 미8군 소속 매카시 상병 사건이 엎치고 겹치면서 그동안 묻히고 맺힌 일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주한미군의 본질문제에서부터 행정협정 개정,여기에 미군기지와 훈련장 등이 들어선 ‘공여지’문제,심지어 미군기의 착륙소음과 쓰레기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언젠가드러나고 시정돼야 할 일들이지만 한꺼번에 분출되고 이것이 감정적으로 악화되어 양국의 우호관계와 공조체제에 손상을 가져와서는 안되겠다. 무엇보다 미국측이 한·미행정협정을 미·일협정이나 나토협정의 수준으로개정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노근리나 매향리 사건도 진실을 밝히고 응분의 배상을 해야 한다.한·미 두 나라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대등한 동반자관계이기 위해서는 상호주의 원칙이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전쟁억지력인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유지에 크게 기여해온 한편 미국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병력과 예산으로 동북아지역의 안전유지라는 국익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결코 일방적 시혜가 될수 없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로서는 미군이 수도 한복판에 주둔하고 전시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현실적·역사적 상황을 인식하면서도,“일본이 미국의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가는(借船出海)식으로,이 기회를 자주방위의계기로 삼으려는”(李景治 북경인민대 교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주한미군의존재는 한반도의 전쟁억지력과 함께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과 대립을 완충시키는 동북아지역의 힘의 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감정적이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만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처할 것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안목에서 이를 인식하면서 친미냐 반미냐의 수평논리보다 독일과 일본처럼 그들을 ‘활용’하는 입체논리가 중요하다. ■정상회담 앞둔 반미분위기 우려 우리는 지금 분단 반세기 만에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정부의 역량인지 국가의 행운인지,워싱턴·베이징·도쿄·모스크바가 모두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정상회담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이 기회에 한반도의 냉전체제 종식과교류협력의 증대를 위해 모든 역량을 정상회담의 성공에 집중시켜야 한다. 주한미군 문제나 SOFA 문제도 이 큰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미국측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미제’가 아닌 ‘우방’이기 위해서는 아메리카정신인 ‘합리주의’의 바탕에서 SOFA 문제나 현안을 풀어나가는 성실성을 보여야 한다.“웃는 얼굴에 침뱉을 수 없다”는 전통적인 한국인의 정서를 미국은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김삼웅 주필.
  • 美 정예航母 5척 속속 한반도로

    한미연합군은 한반도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한미연합작전계획(일명 5027-작전계획)에 따라 대응한다. 92년 수립된 5027 작전계획은 미군의 신속억제전력 배치(1단계) 북한전략목표 파괴(2단계) 북진 및 대규모 상륙작전(3단계) 점령지 군사통제확립(4단계) 한국정부 주도하 한반도 통일(5단계) 등 5단계로 구성돼 있다. 작전계획은 대북 전투태세준비인 데프콘과 대북 정보감시태세준비인 워치콘이 평상시보다 한 단계씩 격상되면서 실행에 옮겨진다. 이번 서해 교전사태 때에는 워치콘(평상시 3단계)은 2단계로 격상됐지만 데프콘은 평상시인 4단계를 그대로 유지했다.데프콘4에서 데프콘3로 격상되면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한미연합사령부(CFC)로 넘어간다. 작전권을 이양받은 한미연합사령관은 일본 요코스카의 7함대에 연락,7함대에 배속된 공중조기경보기(AWACS)와 고공 정찰기 U-2,첩보위성 KH-11,KH-13등을 한반도 상공에 투입시켜 북한군의 움직임을 낱낱이 감시한다.‘1단계작전’에 돌입하는 셈이다. 한반도 위기상황이 북한군의 기습 남침 징후 포착으로 발전하면 미군의 시차별 증원계획(TPFDD)에 따라 미 항모가 한반도로 이동하고,병력·장비·물자 등도 본격적으로 동원된다.시차별 증원계획은 한미연합사령관이 미 합참의장에게 요청해 결정된다. 시차별 증원계획이 선포되면 먼저 각종 지휘장비 운용팀과 미사일 요격을담당하는 패트리어트부대가 한국에 급파된다.오키나와,미 본토,괌 기지 등에 주둔한 미군병력과 전투기 등도 며칠 내에 부산항,오산기지 등에 도착한다. 동시에 7함대 소속 항모 키티호크 외에 미국 샌디에이고의 3함대 소속 항모 3척과 하와이에 주둔한 남태평양사령부 소속 항모 1척 등 항모 5척이 한반도에 단계적으로 투입된다.항모마다 F-14 30여대,F-18 20여대 등 80여대의전투기와 토마호크 미사일이 장착된 이지스함,구축함(6척),로스앤젤레스급핵잠수함(1만2,000t) 2척 등을 거느리고 있다.이밖에 정찰기 E-2(4대),EA-6등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항모 5척이 움직이면 400여대의 최신예 전투기와 50여척의 최신예 함정 등이 투입되는 셈이다.현재 국내에 주둔하고 있는미군은 보병 1개 사단(3만5,000여명),첨단전투기 90대로 구성된 2개 비행단,전차 160대,장갑차 310대 등이다. 김인철 주병철기자 ickim@
  • 러軍 선제 주둔 배경·전망

    11일 서방측을 놀라게 한 러시아군의 프리슈티나 진입은 코소보 평화협정의이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보스니아 주둔 러시아 장교의 ‘실수’이든 크렘린측의 ‘의도적’인 시위이든 이번 사건은 평화이행의 물줄기를 돌릴만한 큰 변수는 되지 않는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러시아의 돌출 행동 배경이 코소보 평화유지군(KFOR)내 러시아의 지위와 관련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입지를 강화하려는 속내에서비롯된 것이고,현실적으로 그 이상의 위협적인 군사행동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건이후 나토 사령부나 미 행정부 등 서방측은 ‘경악스럽고 혼란하다’면서도 대수롭지 않은 단순 사고 정도로 의미와 파장을 축소하는 분위기다. 러시아도 이내 서방측에 다시 협조하는 태도를 보였다.이고르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을 갖기 위해 러시아에 도착한 스트로브 탤보트 미 국무부 부장관은 13일 러시아의 책임있는 고위관리로부터 ”더이상 서방과 사전 협의 없이 코소보에 러시아군을 진주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말했다. 나토의 평화유지군 원칙은 확고하다.단일 명령통제권(마이클 잭슨 영국 사령관)을 유지하는 것이다.그 아래 코소보를 영국과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 5개국이 분할해 주둔하는 구상을 해왔다.반면 러시아는 독자적인 작전통제권과 공간적으로 세르비아 주민의 밀집지인 코소보 북부지역을 할당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서방측은 향후 러시아의 지위와 관련,체면을 살려주는 쪽으로 양보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탤보트 부장관도 이날 “러시아에 ‘책임’이 주어지는 영토가 할당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그러나 서방측은 과거 동서분할식의 ‘작전통제권 보유 지역 분할’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작전 통제권 없는 지역 할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주한미군:上(대한민국 50년:16)

    ◎45년 日 항복후 4만5천명 첫 진주/6·25땐 최대 32만명 파병 ‘韓國수호’/국력 신장 따라 우리방위비 분담 늘어 이땅의 주한미군 역사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지 25일만인 1945년 9월 8일부터 시작됐다.이날 하지중장 휘하의 제7사단이 1진으로 인천에 상륙했다.인천 내항에는 해방군으로서 입성하는 미군을 환영하는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으며 부두는 온통 태극기와 성조기의 물결을 이루었다.이어 29일과 10월 8일 40사단과 16사단이 부산과 목포에 도착,38선 이남지역을 지배하는 점령군으로 주둔하기 시작했다.당시 주둔병력은 4만5천명. 이후 주한미군의 존재는 대한민국 50년사의 전개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이땅의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특히 주한미군의 철군을 둘러싼 한미간 논쟁과 갈등은 두나라 관계의 본질을 대변해줄 만큼 양국의 정치적 상황과 국민적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며 전개됐다. ○닉슨 ‘괌독트린’ 2만명 철수 주한미군에 의한 군정통치는 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끝났다.그리고 한반도를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하는 애치슨라인이 설정됨에 따라 49년 5월부터 6월 사이에 군사고문단 500명만 잔류시킨뒤 철수했다.주한미군의 첫번째 철군이다.이 과정에서 당시 李承晩 대통령은 미국측에 충분한 보상과 확실한 안전보장 등을 요구했지만 결국은 점령군의 철수완료 시기만을 통보받았다. 그러나 미군은 이로부터 1년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써 유엔 참전국의 일원으로 재진주해야 했고 이때 치른 대가는 컸다.전쟁기간중 가장 많을 때는 32만7천의 병력을 파견했으며 전사 3만3천여명,부상 10만3천여명 등 인명피해만도 엄청났다.하지만 종전 이후인 8월8일 한국정부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합의하고 10월1일 조인함으로써 한반도에 합법적으로 주둔할수 있게 됐다. 70년대 들면서 한미간에는 또 한차례 주한미군의 철수를 둘러싸고 신경전과 갈등이 전개됐다.70년 닉슨이 아시아에서의 미국역할의 축소를 밝히는 이른바 괌독트린을 선언함에 따라 그해 후반기부터 71년 3월에 걸쳐 7사단 병력 2만명이 철수했다.한국측은 미국의 일방적인 주한미군 감축계획은 66년한국군이 월남에 증파될때 맺은 ‘브라운 각서’의 주한미군 감축시 사전협의 약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결국 이후 열린 협의에서 미국은 한국군 현대화 5개년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약 15억달러의 군사원조및 차관을 제공하는 한편 양국간 연례안보협의회를 개최하기로 합의를 보았다.우리의 방위산업 육성과 국군현대화 등의 추진이 본격화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세번째 철군은 이로부터 5년이 지난 76년 7월 인도주의를 표방한 민주당대통령후보 카터가 대선공약으로 내걸면서 쟁점화됐다.당시 한국은 유신의 철권통치하에 있던 시기로 한국의 인권문제가 미국내에서 여론의 쟁점으로 부각돼있었다.미의회 프레이저소위원회 청문회가 “한반도가 적화되더라도 미국과 일본의 안전에 영향이 없는 만큼 인권탄압적인 한국으로부터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못박을 정도로 미국내의 반한여론은 드높았다.한국정부는 이를 내정간섭의 논리와 핵개발 위협으로 맞받아침으로써 양국관계에는 살얼음판 같은 핵긴장이고조됐다.朴正熙는 75년 6월 12일자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을 갖고 있으나 지금은 개발하고 있지 않다.만일 미국이 핵우산을 걷어가면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다”고 공개선언,미국정부를 압박했다.그런 한편으로는 ‘선보완 후철군’론을 주장하며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균형 유지책과 한국의 자체 방위력 증강조치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카터의 철군결정은 미의회 및 군부로부터 많은 비판과 반발을 샀고 이에 카터는 싱글러브 장군을 주한 미8군 참모장에서 해임,철군 반대론에 쐐기를 박기도 했다. ○韓·美軍 역할­위상 큰 변화 아무튼 3차 철군을 둘러싼 한미간의 밀고 당기기에서 한국은 20억달러 상당의 무기 및 군사시설을 제공받고 미공군의 강화,한미 합동군사훈련 실시,한미연합사령부 설치 등의 부수적 성과를 거뒀다.또한 3천4백명의 철수가 이뤄진뒤 미국은 대북한 군사력 재평가결과에 따라 81년까지의 주한미군철수 동결조치를 발표함으로써 3차 철군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로 일단락됐다. 이상에서 보듯 80년 이전에 거론되거나 실행된 주한미군 철수는 철저하게 미국의 입장에서 결정된 것이며 한국의 입장이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80년대 초 한국이 정치적 격변을 거치면서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됐다.광주의 참극에서 행해진 주한미군의 역할문제다.주한미군은 전에 한국의 정치적 격변기 때마다 민주화를 지지하는 태도를 취하기는 했으나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61년 5·16 쿠데타때는 매그루더 사령관이 이의 저지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79년 12·12 쿠데타태도 위컴사령관이 신군부에 항의를 했다고는 하나 항의로 그쳤다.그러나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신군부측의 병력이동과 관련,주한미군 작전지휘권 아래 있는 부대의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주한미군이 직·간접적으로 신군부를 지원 내지는 묵인했다는 비난을 샀다.그리고 이때부터 한국민들로부터‘반전반핵’‘양키 고홈’의 야유를 받으며 시위의 대상으로 몰리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철군을 둘러싼 양국간 대립과 해소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역할 및 위상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즉 한국전쟁 이후 70년대 말까지는 한반도의 안보를 미군이 주도하고 한국군이 보조하는 관계에서 80년대초 동반자관계로 격상했고 90년대 들어서는 94년 미군의 평시작전통제권 이양이 상징하듯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보조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점점 미묘한 문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의 문제다.한국의 경제력 신장을 반영하기도 하는 방위비 분담은 78년 한미연합사 창설이후 어김없이 제기되면서 특히 대한군사판매차관(FMS)를 졸업한 86년 이후로는 연례안보협의회의 최대 관심사로 등장했다.
  • 국방대학원 안보학술세미나 주제발표

    ◎“북한도발때 군사적 응징 필요”/군 구조개선 미래 안보환경 대비를/미군의 전시작전권 환수 조기 검토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도발을 막기 위해서는 적절한 군사적 응징이 필요하며 미군에 있는 전시작전권을 환수하기 위한 논의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또 오는 21세기 우리나라 군사·안보·외교의 초점은 군사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과의 실질적인 정치·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8일 하오 국방대학원에서 열린 「안보학술세미나」에서 주제발표자들은 한국의 안보위기는 대부분 북한에 의해 발생했지만 군사적 응징은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북한의 군사도발이 계속됐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세미나 발표문요지. 이민용 육군사관학교교수=한국의 안보위기는 대부분 북한에 의해서 발생했고 주요위기사태에서 정부가 천명한 대응방식은 응징보복이었다.그러나 군사적 응징은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응징의지와 능력이 부족한 데다 미국의 견제가 있었기 때문이다.그 결과 북한의 군사도발이 지속돼왔다.위기사태마다 응징보복을 실천할 수는 없지만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군사적 응징을 시도하는 것은 국가위기관리방식의 폭을 넓혀줌으로써 앞으로의 위기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21세기 환경에서 군사전략의 수립은 ▲평시 ▲위기시 ▲전쟁시의 세가지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위기시의 군사전략방향은 이제까지 소홀히 다뤄진 부분이었지만 앞으로의 환경에서는 이 수준에서 많은 역할과 기능이 필요하다.국가의 전반적인 위상이 높아지는 데 따라 전면전의 위험은 줄어드는 대신 국가이익을 침해하는 여러가지 형태의 분쟁과 테러발생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군사전략이 합리적·체계적으로 이뤄지기 위한 내부개혁도 시급한 과제다.안보정책의 주관부서인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군사전략이 함참수준에서 수립될 수도 있겠지만 안보정책 주관부서가 확고하게 서지 않는 한 군사전략의 상위목표는 늘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 있게 돼 혼선을 초래할 것이다. 장문석 국방대학원교수=군구조개선은북한과 경쟁한다는 사고에서 탈피,미래안보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기반적 방위력을 조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경제적 군운용개념을 도입해 방위력개선예산을 확대하고 간부급을 소수정예화하는 것도 필요하다.유사시 즉각적인 보복 및 신속한 기동전에 대비한 구조와 장비확충,정보체계 및 미사일체계의 지속적인 개발도 시급한 과제다.상부지휘구조의 개선은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함으로써 효율적인 한국군 지휘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전시작전권문제는 정치·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지만 군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시작전권의 한국화 없이는 상부지휘구조의 모순점을 해결할 수 없게 돼 있다.건군 반세기를 넘기는 한국군의 전통과 능력은 자주적인 군사지휘체제를 갖출 기회에 와 있다고 본다.전시작전권의 독자성이 이뤄질 경우 현재의 불균형적이고 복잡한 지휘구조를 개선하는 획기적인 기회가 될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전시작전권의 환수는 21세기를 지향하는 군구조개혁의 핵심과제가 돼야 한다.만일 21세기를 한국군의 한국지휘로 시작한다고 가정할 때 이를 준비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이 최소 3∼4년이기 때문에 작전권문제를 검토하는 것은 지금부터 이뤄져야 한다.〈정리=황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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