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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보는 이들을 위한 추석

    돌보는 이들을 위한 추석

    거꾸로 매단 수액 주머니에 주사침을 찌르고 수액을 뽑는다. 주사기에서 바늘을 빼내고 기다란 관이 달린 나비침을 대신 연결한다. 고양이의 목덜미를 한 움큼 잡아 텐트 모양이 되게 들어올린 뒤 털가죽과 근육 사이 빈 공간에 나비침을 찔러 넣는다. 반항하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는다. 주사기 피스톤을 천천히 눌러 수액을 주입한다. 신장질환이 있는 고양이는 음수량이 부족해 보통 아침저녁으로 피하수액을 맞혀야 한다. 하루에 일고여덟 번 약도 먹인다. 인간의 알약을 먹도록 태어난 몸이 아니니 이물질을 목으로 넘기는 일이 즐거울 리 없다. 아니 상당히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살리기 위해서는 약을 먹여야 한다. 상태가 나빠 스스로 사료를 먹지 않는다면 반려인이 주사기나 젖병으로 강제급여도 해주어야 한다. 수시로 상태를 체크해야 하고, 이상이 있다면 케어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보조제는 다른 약들과 시간차를 두고 먹여야 효과가 있다. 새벽까지 깨어 있어야 한다. 수면부족이 당연해진다. 하루도 쉴 수 없다. 최대한 건조하게 썼지만 아픈 고양이를 집에서 돌보는 일은 웬만큼 체력이 좋은 사람도 탈진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중노동이다. 고양이의 나이가 많거나 병이 많이 진전되어 차도가 없는 경우엔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돌본다는 슬픔이 따라붙는다. 반대로 하루, 또 하루가 주어지는 것에 지극히 감사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나는 내 고양이들을 통해 죽음을 배웠다. 가족을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고, 아픈 생명을 돌보는 일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알게 될 거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알고 싶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아주 빠른 시간에 후회와 자책과 함께 배웠다. 누군가는 사람을 걱정하기 전에 동물을 걱정하는 일이 온당하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소나 돼지는 먹고, 열대어에겐 이름도 붙여 주지 않으면서 개와 고양이는 각별하게 여기는 일이 기만이라고 할 것이다. 잘 모르겠다. 내겐 그냥 두 마리 고양이가 몹시 가까운 가족이었다. 단지 순서가 반대였을 뿐이다. 고양이들이 늙고 병드는 것을 보며 나는 인간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 부모님을 간병하게 될 날을, 설과 추석에도 병상에 누워 있을 사람들을, 그들의 가족을, 그들이 의지할 의료진을, 고향에 가거나 쉬지 못하고 일할 다양한 직종의 많은 사람들을. 한국에서 반려동물은 가족이면서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 사실이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때도, 가장 많은 동물이 유기되는 때도 명절이다. 건강하다면 데리고 갈 수도 있겠지만 환대받는 경우는 드물고, 예민해서 이동하기 어려운 동물은 호텔이나 병원에 맡기거나, 지인에게 펫시팅을 부탁하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걱정을 하며 하루이틀쯤 집에 혼자 두고 가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중병을 앓고 있어 도저히 남의 손에 맡기거나 혼자 둘 수 없는 반려동물이라면 반려인이 집에 남아 돌봐주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 가족 구성원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것을 감수하면서. 20대 때 독립해 자취를 하던 내게 명절은 어쩐지 쓸쓸한 날이었다. 형제도 없이 혼자인 내가 혼자 사는 엄마를 찾아가 나보다 조금 더 쓸쓸한 엄마의 얼굴을 보고 돌아오는 날. 결혼을 하고 찾아갈 친정과 시가가 생긴 다음부터는 이 기름진 음식들 대신에 가볍게 샐러드와 파스타 같은 걸 해먹으면 안 될까, 함께 있지만 대화도 없이 각자 심심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다같이 영화나 한 편 보면 어떨까,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요즘은 명절 풍속도도 바뀌어 굳이 만나지 않고 각자 지내는 일도, 여행을 가는 일도, 여성의 노동을 고민하고 명절 파업을 하는 일도 늘어 가는 듯하다. 조금 더 가볍고 산뜻하고 평등한 명절이 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픈 생명을 돌보는 사람들에겐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내 고양이를 돌보는 일을 해본 뒤에야 겨우 알게 되었다. 명절에도 간병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아픈 생명의 안부를 묻는 한마디의 말, 고된 노동을 대신해 줄 수는 없더라도 잠시나마 곁에 있어 주는 일, 아주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할 시간이 아닐까. 우리는 거의 생각하지 않지만, 돌보는 사람에게도 돌봄을 받을 시간이, 활기를 재충전할 여유가 필요하다. 아픈 반려동물을 돌보는 이들과 그들의 동물 가족 모두가 이번 추석에는 고립감과 절망감을 조금이나마 덜 느끼기를, 고양이를 살리고 싶어해 본 사람의 아픈 마음으로 빈다. 그리고 그들이 잠시라도 따뜻함을, 휴식을, 마침내는 건강과 희망과 회복을 선물받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윤이형 작가는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2005년 단편 ‘검은 불가사리’로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 ‘큰 늑대 파랑’, ‘러브 레플리카’, ‘작은마음동호회’, 중편소설 ‘개인적 기억’, 청소년소설 ‘졸업’, 로맨스소설 ‘설랑’ 등을 펴냈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 [월드피플+] 사고로 하반신 잃은 남성, 장애 여성 만나 인생역전한 사연

    [월드피플+] 사고로 하반신 잃은 남성, 장애 여성 만나 인생역전한 사연

    사고로 불구가 된 남성이 수차례의 극단적인 선택 끝에 희망을 찾게 된 삶의 여정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베트남 남성 응웬 반 녀(32). 그는 지난 2010년 23살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잃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배설 기능조차 인공 장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건장한 20대 남성에게 신체의 절반이 잘려 나간 현실은 지독히 잔인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육체의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은 훨씬 더 심했다. 한순간 삶의 빛이 꺼진 암흑 속을 헤매야 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수차례 시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마지막 순간 생명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이후 그는 술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술을 마실수록 비참한 자신의 인생만 더욱 또렷하게 인식될 뿐이었다. 절망 속에 빠져 살던 그에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은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당시 출산을 마친 누나가 조카를 데리고 그의 집에 들어와 지냈다. 하루는 아기가 울자, 누나는 아기를 어르고 달랬고 아기는 다시 곤히 잠이 들었다. 그 순간 ‘누군가의 사랑이 아기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데, 나도 저 아기와 같지 않은가? 울며 불며 바둥거리는데 내게도 나를 지극히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도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누나 또한 “그렇게 죽으려 해도 살아났다면, 제대로 살아보라”고 충고했다. 이후 그는 하노이 타이빈 성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 교육을 받았다. 그곳에서 인생의 반려자인 응아를 만났다. 근위축을 앓는 그녀는 무뚝뚝한 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그의 거동을 도왔다. 하지만 그는 ‘밝은 미래는 감히 나의 몫이 될 수 없다’는 비관적 생각에 빠져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헌신적인 도움과 진심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는 그녀와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장애인끼리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았다. 장애 남성에게는 한 가정을 책임질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들은 하노이에 작은 집을 구한 뒤 새벽 4시에 기상했다. 길거리에서 차를 파는 장사를 하면서 다양한 IT 수업을 수강했다. 한 달에 700만동(36만원)을 벌어 300만동(15만4000원)을 저금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야채 위주의 식단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이후 둘은 회사에 취업해 알뜰히 더 많은 돈을 모았다. 이윽고 2017년 그의 잔고에 2억동(1030만원)이 모였다. 은행에서 7억만동(3600만원)을 대출받아 광고, 웹디자인 회사를 차렸다. 장애인 40여 명을 고용한 뒤 그는 하루 18시간 일을 했다. 그의 성실함 덕분에 사업은 승승장구하며 번창했다. 지금은 은행 빚의 절반을 갚았고, 지난해에는 새 아파트로 이사까지 했다. 이사 첫날 그는 “우리 이제 결혼해요. 이제 내가 당신을 평생 돌봐줄게요”라면서 프러포즈를 했다. 그녀의 부모도 그들의 결혼을 마침내 승낙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에서 감동적인 결혼식을 치렀다. 죽음의 문턱에서 배회하던 한 남성이 가족과 연인의 사랑으로 당당히 삶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순간이었다. 이제 이들의 다음 목표는 아기를 갖는 것이다. 병원 치료를 통해 또 한 번의 기적 같은 희망이 실현되길 바라고 있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jongsil74@naver.com
  • ‘남편을 스승처럼’… 빈곤과 싸우며 독립운동 헌신한 사대부 집 여인

    ‘남편을 스승처럼’… 빈곤과 싸우며 독립운동 헌신한 사대부 집 여인

    1920년대 초 심산(心山) 김창숙이 중국 베이징 우당(友堂) 이회영 집에 찾아갔더니 그의 얼굴이 매우 초췌해 보였다. 심산이 “공원에 나가서 바람이나 쐬자”고 했더니 우당은 거절했다. 우당의 아들 규학이 말했다. “이틀 동안 밥을 짓지 못하였고 의복도 모두 전당포에 잡혔습니다. 아버지께서 문밖에 나서지 않으려는 것은 입고 나갈 옷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가치로 600억원대의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우당은 죽는 날까지 빈곤과 싸우며 고통 속에 살았다. 그런 우당을 평생 뒷바라지한 사람이 부인 이은숙 여사다.이은숙은 1889년 8월 8일 충남 공주에서 고려 말 충신 이색의 후손인 한산 이씨 진규공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달성 서씨와 사별한 우당과 1908년 10월 상동예배당에서 혼례를 치렀다. 백사(白沙) 이항복의 10대손인 우당은 노비를 풀어주고 과부가 된 여동생들을 개가시키며 마흔 넘은 나이의 결혼식도 신식으로 치를 만큼 열린 사고의 소유자였다. “우리 형제가 당당한 호족의 명문으로서 차라리 대의가 있는 곳에 죽을지언정 왜적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구차하게 도모한다면 어찌 짐승과 다르겠는가.”(이관직, ‘우당 이회영 실기’)우당 6형제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그해 1910년 12월 30일 모든 재산을 처분해 압록강을 건넜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선택한 고행의 시작이었다. 이은숙과 출가한 딸까지 일족이 마차 10여 대를 타고 만주 벌판을 달려 도착한 곳은 유하현 추지가였다. 우당 형제들은 먼저 동포들의 정착과 농업을 지도하기 위한 경학사를 조직했다. 1911년 5월에는 광복군 양성의 본산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몇 해 만에 그 많은 재산도 바닥이 드러났고 곤궁한 생활이 시작됐다. “농사는 강냉이와 좁쌀, 두태(콩팥)고 쌀은 2,3백 리나 나가 사오는데 제사에나 진미를 짓는다. 어찌 쌀이 귀한지 아이들이 이름 짓기를 ‘좋다밥’이라고 하더라.”(이은숙, ‘서간도 시종기’)독립운동의 터전을 다져 놓은 다음 우당은 1913년 조선으로 잠입했다. 자금 마련 말고도 우당은 고종 망명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만주에 남은 식구는 열셋이나 되었는데 양식은 강냉이밖에 없었다. “강냉이를 따서 3주가 되면 그걸 연자에 갈면 겨 나가고 쌀이 두 말도 못 되니 며칠이나 먹으리오.” 설상가상 마적 떼의 습격을 받았다. 이은숙도 왼쪽 어깨에 총탄을 맞았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살아남았다. 우당이 조선에서 체포된 소식이 전해졌다. 이은숙은 전전긍긍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면서 혼자 몸으로 대식구의 생계를 보살피는 고난의 세월을 이어갔다. 와중에 홍역으로 우당의 형 이석영의 큰아들이 사망하고 이은숙까지 같은 병으로 죽을 고생을 하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 이중고, 삼중고를 당했다. 우당이 돌아오지 않자 1917년 이은숙은 아들, 딸을 데리고 국내로 들어왔다. 그것도 잠시, 고종이 승하하자 우당은 중국 베이징으로 두 번째 망명길에 올랐다. 이은숙도 곧이어 아이들을 데리고 따라갔다. 고난의 베이징 생활이 시작됐다. 우당의 집은 독립운동 본부이자 사랑방이었다. 우국 지사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좁은 집에 함께 지냈다. 어려운 살림의 책임은 이은숙에게 있었다. 적게는 10명 많게는 40여 명이 우당 집에서 먹고 자고 했으니 감당하기 어려웠다. 집세가 싼 집을 찾아 이사한 것도 1년에 수십 번이었다. 그러면서도 독립운동가 남편을 스승처럼 극진히 섬겼다. 1~2년은 동지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그럭저럭 견뎠지만, 그 후 지원이 끊겨 먹을 양식이 없었다. 신분을 숨기고 지내야 하는 처지였기에 돈을 벌 수도 없었다. “하루 잘해야 일중식(日中食)이나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절화(絶火·밥을 짓지 못함)하기를 한 달이면 반이 넘으니 생불여사로다.” 만석꾼이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기아를 겪게 된 것이다. 이은숙은 굶주리는 남편을 보고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 마음이 아팠다.우당은 그즈음 아나키즘(무정부주의)에 심취해 이을규 형제, 백정기, 정화암 등과 먹으며 굶으며 함께 생활했다. 단재 신채호 등 독립운동가들도 여전히 드나들었다. “짜도미라는 쌀은 사람이 먹는 곡식을 모두 한데 섞어 파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가장 하층민이나 사다 먹는 것으로…그도 없으면 강냉이를 사다가 죽을 멀겋게 쑤어 그것으로 연명하니…” 사정을 잘 아는 정화암 등은 약간의 돈을 주면서 “선생님 진지는 쌀을 사다 해 드리고 우리는 짜도미 밥도 좋으니 그것을 먹겠소”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에 김달하 사건이 터졌다. 김달하는 겉으로는 애국지사인 양 행동했지만, 사실은 밀정이었다. 그런데 김창숙이 우당을 김달하와 한패인 것으로 잘못 알고 절교 편지를 보냈다. 이은숙은 칼을 품고 찾아가 사실이 아니라고 항의했다. 남편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리겠다는 결기였다. 오해는 풀렸고 김달하는 항일 테러단체 다물단이 처단했다. 우당의 딸 규숙도 처단에 연루돼 근 1년 동안 중국 공안국에 구금당했다. 와중에 아들 규학의 딸 둘과 우당의 아들이 성홍열로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언제나 굶는 극한의 빈곤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당과 아들, 딸을 베이징에 남겨두고 이은숙은 궁여지책으로 돈을 마련하고자 귀국했다. 1925년 여름이었고 임신한 몸이었다. 그 길이 우당과 영영 이별하는 길이 될 줄은 몰랐다. 이은숙은 귀국하자마자 다소간의 돈을 변통해 우당에게 보내주었다. 출산한 작은아들 규동을 품에 안고 친척집을 떠돌며 베이징 가족의 생계부터 먼저 생각했다.우당은 만주에 재만조선민주주의자연맹을 결성했다. 또 톈진으로 가 아나키스트들과 파괴공작을 도모했다. 1926년 나석주 의사의 폭탄 투척 사건으로 일제의 추적이 심해지자 우당은 돈 한 푼 없이 걸어서 상하이로 갔다. 환갑이 지난 나이였다. 두 딸은 빈민구제원으로 보냈다. 그러나 도적을 만나 행장을 다 잃는 변을 당해 다시 톈진으로 돌아왔다. 우당은 딸 규숙의 옷까지 팔아 연명했지만, 끼니를 거르기는 다반사였다. 국내에 있던 이은숙도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고무공장에 취직해 다니고 삯바느질과, 심지어 사대부 집안 딸의 몸으로 유곽집 삯 빨래를 하며 자기 입에도 풀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돈을 버는 대로 우당에게 보냈다. 굶으면서도 우당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상하이로 가 남화한인연맹을 결성하고 남화통신을 발행하는 한편, 흑색공포단을 조직했다. 이어서 만주로 다시 가서 지하공작망을 조직하고자 했다. 여러 사람이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다롄에서 배를 타고 가려다 해상에서 일경에게 붙잡혔다.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우당은 심한 고문을 받은 끝에 사망했다. 65세 노인의 몸이었다. 일제는 자살이라고 했지만 12일간의 혹독한 심문을 받은 끝의 명백한 고문사였다. 딸 규숙이 우당의 신체를 봤는데 눈을 뜨고 있었고 안면에 선혈이 낭자했으며 중국식 의복에도 피가 많이 묻어 있었다고 한다. “일생의 몸을 광복운동에 바치시고 사람이 닿지 못하는 만고풍상을 무릅쓰고 다만 일편단심으로 ‘우리 조국, 우리 민족’ 하시고 지내시다가 반도 강산의 무궁화꽃 속에서 새 나라를 건설치 못하시고 중도에서 원통 억색히 운명이 되시니 슬프도다.” 비통한 심정을 이은숙은 축문에서 이렇게 썼다. 이은숙은 남편이 그토록 바라던 광복을 보고 1979년 12월 11일 90세에 서울에서 작고했다. 정부는 우당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이은숙에게 지난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美 유명 가수 다녀간 뒤…30년 된 코리아타운 사진관 ‘북새통’

    美 유명 가수 다녀간 뒤…30년 된 코리아타운 사진관 ‘북새통’

    미국의 유명 싱어송라이터가 다녀간 사진관이 한꺼번에 몰린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CNN과 ABC뉴스 등은 컨트리 가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가 다녀간 뒤로 LA 코리아타운의 한 사진관에 팬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전했다. 머스그레이브스는 제61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유명 컨트리 가수. 지난달 20일 라스베이거스를 시작으로 월드투어에 돌입했으며 23일과 25일에는 LA 더 그릭 시어터에서 공연을 펼쳤다. 공연 당시 촬영한 사진을 바로 현상하고 싶어 했던 여동생과 함께 LA 코리아타운을 방문한 머스그레이브스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오래된 사진관 한 곳을 소개했다.베트남계 미국인 톰 투옹(60)이 운영하는 이 사진관은 1991년 문을 연 뒤 3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머스그레이브스는 한동안 인산인해를 이루던 이 사진관이 디지털카메라와 새로운 현상 기술, 포토샵 도입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구멍가게였지만 투옹은 정말 친절하다. 직접 사진을 찍어주는데 향수를 자극하는 느낌이 인상적이다. 가격도 저렴하다”고 말했다.실제로 벽면을 가득 채운 세피아 톤의 결혼사진과 투옹의 젊은 시절 사진은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킨 사진관의 역사를 말해준다. 머스그레이브스가 투옹의 사진관을 소개한 이후, 160만 명에 달하는 그녀의 팔로워들은 그의 사진관을 찾아 코리아타운을 방문했고, 가게가 모처럼 활기를 띠자 투옹과 아내 리사 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투옹은 온종일 몰려드는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아내 리사는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통을 붙잡고 있다. 투옹은 “이렇게 사진관이 바빴던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며 감사를 전했다. 투옹의 딸 티샤도 “아버지가 과거 손님들에게 받았던 사랑이 재현되는 것 같아 기쁘고 놀랍다”며 감격스러워했다.손님들은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투옹의 사진에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 한 전문 사진작가는 투옹의 사진에서 풍기는 90년대 느낌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머스그레이브스의 여동생 켈리 크리스틴 서튼 역시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타임캡슐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머스그레이브스의 응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매력적인 사업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며 직접 사진관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만들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머스그레이브스는 ‘더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소도시에서 작은 가게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쇠퇴해가는 소도시의 가족 사업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라고 전했다. 또 “우리 세대에 레트로 열풍이 불고 있고, 모두 이것이 금광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이 흐름에 적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투옹의 사진관이 현대식으로 변하는 건 원치 않는다면서 “그가 계속 투옹으로 남기를 바라며, 그저 SNS를 활용해 젊은 고객에게 어필하는 방법 정도만 찾아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9살 계집아이의 고함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9살 계집아이의 고함

    화곡동 구도로에서는 한 달에도 두어 군데 가게가 문을 아주 닫고, 두어 군데 가게가 문을 새로 연다. 서민들이 적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 비교적 월세가 싼 이 구도로가 적격인 모양이다. 분식집, 호프집은 물론 이제는 거의 사라진 컴퓨터 수리점, 코딱지만 한 크기의 옷집, 원색적인 간판의 무한 리필 고깃집, 이전 세입자의 간판만 바꾼 세탁소, 편의점 등 종류도 많고 크기도 다양한 ‘생계’(生計)가 폐업하고 신장개업을 한다. 한두 달도 못 버티고 문을 닫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10년 넘게 행복하게 장사를 하는 가게도 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어떤 가게든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망할 집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 특히 식당의 경우 나오는 반찬을 보면서 폐망과 번창을 점쳐 본다. 갓 버무린 색깔 좋은 겉절이가 나오는 식당은 오래 버티지만, 퉁퉁 부은 콩자반에 익을 대로 익은 우중충한 색깔의 사다 쓰는 김치가 나오는 식당은 곧 망한다. 흔한 말로 다 장사하기 나름이다. 주말 오후 구도로를 하릴없이 걷다가 식탁이 두 개뿐인, 동굴처럼 좁은 분식집에 들어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옆 식탁 아가씨가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보니 내가 좋아하는 반찬 한 가지가 따로 더 놓여 있었다. 젓가락도 대지 않은 듯하여 주인아주머니 몰래 끌어와서 젓가락을 막 대었다. 그때, 식당 구석에서 태블릿피시로 게임을 하고 있던 초등학교 1~2학년쯤 돼 보이는 계집아이가 벌떡 일어나 “안 돼요, 그거 먹으면 할머니께 혼나요” 하고 아주 크게 나무라듯 소리쳤다. 무안하고 부끄러워 얼른 반찬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작은 목소리로 “왜 소리 지르고 그러니? 아저씨 부끄럽잖아” 하고 속삭였다. 계집아이는 “남이 먹던 건 다 버려요. 내가 하나 갖다 줄게요.” 그러고는 콧구멍만 한 주방으로 들어가 할머니, 할머니, 어쩌고 하며 주인아주머니께 나의 거지 행각을 일러바쳤다. 잠시 뒤 부처 같은 얼굴을 한 주인아주머니가 미소를 가득 머금고 방금 만든 듯한, 빛깔 곱고 윤이 나는 가지볶음을 밥보다도 많게 한 사발 내왔다. 순간 속으로 버릇처럼 또 점을 쳤다. 이 가게는 망하려 아무리 노력해도 망할 수 없는 가게로구나. 앞으로 이 가게에서 다시는 옆 테이블 것 주워 먹지 말자고 다짐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밥을 먹었다. 밥 먹는 동안, 아니 가지볶음을 다 먹는 동안 아이는 부모가 자식 밥 먹는 것 보듯이 나를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한 숟갈 한 숟갈 최대한 정성스럽게 밥과 반찬을 먹어야 했다. 밥을 양보다 두 배는 먹었다. 종일 남산만 하게 튀어나온 배를 쓸며 땡볕 아래 걸어다녔다. 며칠 굶어도 배고프지 않을 것 같았다. 하기야 주인아주머니의 넉넉한 미소와 아이의 염려와 관심까지 다 먹었으니. 만리타관 서울 천지 어디에 이만한 부끄러움과 이만한 행복이 있으랴. 내가 임금이었다면 아이에게 ‘네가 스무 살이 넘으면 이 번호로 전화를 하거라. 내 너와 결혼하리라’ 하는 쪽지를 남기고 나왔을 텐데, 생각해 보니 나는 임금도 뭣도 아니었고 거지급 시인이었다. 오래 전 쓴 졸시 ‘한 끼’를 읊으며 서울 하늘을 아득히 올려다보았다. 무릎이 많이도 튀어나온 때에 전 바지의 사내가 마른 명태 같은 팔로 몸의 추위를 감싸고 표정 없이 걷다가 시장 입구 버려진 사과 앞에 멈추어 선다 산발한 머리를 들어 사방을 한번 둘러보더니 발가락이 삐져나온 시커먼 운동화 발로 슬쩍슬쩍 사과를 굴려 구석으로 몰고 간다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비겁하게 살 권리, 가난하게 살 권리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비겁하게 살 권리, 가난하게 살 권리

    얼마 전 ‘소확행’이란 말이 크게 유행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듣기 좋은 말이다. 부자가 아니면 어떠랴. 해외여행 맘대로 못 가고, 외식은 동네 중국집 정도로 만족하고, 아이들 사교육 좀 부족한들 무슨 대수랴. 행복은 눈높이라는 말도 있으니 형편, 사정 내에서 큰 욕심 없이 소소한 일에 만족하며 살면 그만 아닌가.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내 삶도 소위 ‘소확행’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싶다. 결혼 후 서울에 전셋집을 마련했지만, 점점 외곽으로 떠밀리다가 10년쯤 전 이곳 변두리 마을에 정착했다. 아쉽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서울에서야 열 평 안팎의 비좁은 다세대주택 전세방이었지만, 이곳에 오니 똑같은 집세로도 두세 배 넓은 아파트가 생겼다. 집을 나서면 어디나 산과 계곡과 강이 있고 작은 텃밭이나마 생전 처음 내 손으로 흙을 만지고 작물을 키울 기회도 주어졌다. 경쟁이 덜한 덕분인지 아이들도 큰 부침 없이 자라 주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만족, 그야말로 ‘소확행’이 아닌가. ‘소확행’이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정의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두환 정권 시절 국민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사실이든 아니든) 3S정책(sports, screen, sex)을 강화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쩌면 ‘소확행’이라는 개념도 민초들의 신분상승 욕구를 막고 부자들을 향한 부질없는(?) 분노와 반감을 달래기 위해 만든 허위 개념일 수 있다. 얼마 전 어느 칼럼에선가 이런 글을 보았다. “(소확행을 권하는 책들은) 타인에게 피해 보지도 주지도 말고 나만의 작은 행복을 지키며 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약탈적 자본주의, 사회적 불평등, 민주주의의 세계적 퇴조 같은 거대 담론은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바깥세상의 일이고, 창문도 없는 쪽방 속의 삶들은 내 눈에는 가려진 이 사회의 잔여물이다.” 옳은 지적이다. ‘소확행’은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아니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동”이어야 할 수도 있겠다.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고 소위 기득권층에서는 불법과 탈법과 편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특권을 세습한다. 아직은 자기만족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한 친구가 강사법 시행으로 강단을 잃고 끝내 귀촌을 결심했다.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누구보다 선봉에 서서 고군분투해 그나마 강사법이라는 결실을 맺었건만 돌아온 건 해고 아닌 해고 통보,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친구도 머지않아 낯선 자연과 만나고 농작물을 키우며 마음을 달랠 것이다.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기도 할까?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 주변엔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불의와 싸우다 상처투성이가 된 채 하루하루 회한을 어루만지며 살아가는 사람들. 왜 우리는 패배와 좌절의 기억보다 이긴 후의 배신감에 더 크게 상처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걸까? 사실 이른바 ‘특혜 전쟁’에도 별 감흥이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차피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가. 부의 세습, 취업 청탁, 화려한 스펙, 어제오늘 일도 아니건만, 유독 그나마 낫다는 정권에서 늘 폭탄이 되는 것도 우습기만 하다. 불공평하니까 싸우자고? 여기서 뭘 더 어떻게 싸운다는 건가? 그 겨울, 그렇게 치열하게 싸워서 얻어 낸 정부가 아니던가? 더이상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라는 말인가? 소확행은 없다. 그 자리엔 대신 그들의 욕망을 위한 대리 전쟁에 더이상 소모품이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싸우다 싸우다 지친 사람들의 자조적 한숨만 있을 뿐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존재도 몰랐던 ‘스펙’으로 시끄러운 요즘 난 ‘약탈적 자본주의, 사회적 불평등, 민주주의의 세계적 퇴조’ 같은 거대 담론보다 친구가 시골로 내려간다며 던진 얘기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가진 자는 점점 더 많이 가지려는데, 없는 자는 왜 자꾸 욕심 버리고 가난하게 살려는 걸까?”
  • 장혜진-강승호 대표 이혼 “결혼 27년 만에 친구로”[공식]

    장혜진-강승호 대표 이혼 “결혼 27년 만에 친구로”[공식]

    가수 장혜진이 결혼 27년 만에 이혼한다. 2일 장혜진이 남편 강승호 캔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속사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는 “소속 아티스트인 장혜진의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어 죄송하다”며 “장혜진은 지난달(8월) 초 남편과의 성격차이로 합의 이혼을 결정했다. 현재 합의이혼의 모든 서류 처리가 끝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많은 상의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으로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서로를 응원하며 좋은 친구 사이로 남기로 했다”며 “그 외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생활이기에 확인해 드릴 수 없는 점 정중히 양해를 구한다. 장혜진을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에게 심려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전했다. 장혜진은 한국연예제작자협회 이사 등을 역임한 연예 기획자 강승효 대표와 1992년 결혼했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딸이 한 명 있다. 장혜진은 1987년 MBC 합창단에 입단해 1991년부터 가수로 활동했다. ‘이젠’ ‘키 작은 하늘’ ‘내게로’ ‘완전한 사랑’ ‘꿈의 대화’ ‘영원으로’ ‘아름다운 날들’ ‘다시 돌아와’ 등의 히트곡을 냈으며, 최근 윤민수와 함께 부른 ‘술이 문제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하 장혜진-강승호 이혼 공식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입니다. 먼저 저희 소속 아티스트인 장혜진 님의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장혜진 님은 올해 8월 초 남편분과의 성격차이로 합의 이혼을 결정하게 되었으며, 현재 합의이혼의 모든 서류 처리가 끝난 상태입니다. 많은 상의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으로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서로를 응원하며 좋은 친구 사이로 남기로 했습니다. 그 외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생활이기에 확인해 드릴 수 없는 점 정중히 양해를 구합니다. 장혜진 님을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심려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앞으로 좋은 모습으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오세연’ 박하선 “얄미워 보일까봐 웃는 것도 조심”

    ‘오세연’ 박하선 “얄미워 보일까봐 웃는 것도 조심”

    “웃는 장면도 조심해서 연기했어요. 많이 웃으면 얄미워 보일까봐서요. 주인공이 미움을 받으면 안 되니까요.” 29일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하선(32)은 최근 종영한 채널A 드라마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의 손지은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듯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촬영에 들어갔을 때보다 2~3㎏가량 빠졌다고 했다. “다른 작품들은 끝나고 나면 캐릭터와 저를 잘 분리했어요. ‘걔는 어디에서 잘살고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지은과 정우(이상엽 분)는 ‘둘이 잘살 거야’라고 빌면 안 되는 작품 같아서, 죄스러워서 그런지 아직도 입맛이 없네요.”(웃음)‘평일 오후…´는 일본 후지TV 인기 드라마 ‘메꽃, 평일 오후 3시의 연인들’(2014)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사랑이 메말라 버린 남편(정상훈 분)과의 관계에도 불륜은 혐오하던 주인공이 어느 순간 스며들 듯 비집고 들어온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뜬다. 작은 불씨처럼 시작된 불륜은 갈수록 거센 화염이 돼 주변을 파멸로 몰고 간다. 스스로 책망하고 속죄하는 지은의 내레이션이 반복되지만, 그러면서도 사랑의 감정에 불나방처럼 이끌린다. ‘불륜을 극혐해요’라는 초반 대사에 몹시 공감했다는 박하선은 “감독님, 스태프, 배우들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며 ‘불륜’보다 ‘사랑’에 방점을 찍었다. “작가님이 ‘인간의 품격에 대한 드라마’라고 하신 게 처음에는 의아했다”면서 “그런데 갈수록 지은이가 고뇌하고 끝에는 온전한 나로 돌아가게 되니까 ‘혹독한 성장기’라는 걸 이해하게 됐다”고도 덧붙였다.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명대사와 내레이션이 매회 호평을 받았다. 박하선은 잊히지 않는 내레이션 중 하나를 말했다. 마법같이 화려한 사랑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문득 움튼 사랑을 그려 낸 드라마와 꼭 닮은 대사. “시간을 돌려 스무 살 무렵의 당신과 내가 만났다면 우리는 달라졌을까요. 스무 살의 우린 아마도 서로를 그냥 지나쳤을 겁니다. 바람이 꽃잎을 스치듯 무심히, 그렇게.”3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을 통해 시청자의 감사함을 알게 됐다. 1회 0.9%의 눈에 띄지 않는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후반부에는 2.1%를 넘었다. 포상휴가 기준 3%에는 못 미쳤지만 채널A 역대 드라마 최고 시청률이었다. 박하선은 “팬분들이 ‘지하철에서도 보지 말고 집에 가서 본방으로 보자’는 얘기도 하고, ‘포상휴가 보내주겠다’는 DM(다이렉트 메시지)도 많이 보내주셨다. 너무 감사했다”면서 “주변 반응도 좋아서 시청률이 5~6%는 나온 것 같다”며 웃었다. 결혼, 출산을 비롯한 개인적인 일들로 짧지 않은 공백기를 가졌던 박하선은 “예전에는 하고 싶은 역할을 골랐다면 지금은 좋은 작품에서 제 역할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며 많은 작품을 통해 시청자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정-치어쓰] ‘백색국가 제외’ 끝내 강행한 아베는 누구인가

    [정-치어쓰] ‘백색국가 제외’ 끝내 강행한 아베는 누구인가

    일본이 지난 28일 예정대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 대상국)에서 제외하는 제도를 강행했습니다. 이날 밤 12시를 기해 일본 기업들의 대(對) 한국 수출 절차가 대폭 강화된 겁니다. 지난 24일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한 바 있는데요.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리한 경제 보복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경제, 안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자 일본 내에서도 “일본이 과거사를 직시하지 않은 게 원인”이라는 자성론이 나옵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5일 ‘태평양전쟁 종전(패전) 74주년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해 반성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죠. 도대체 아베 총리는 어떤 인물이길래? 이런 ‘일방독주’의 모습을 보이는 걸까요. 아베 총리의 모든 것, 7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봤습니다.<아베와 세 친구(?)> 현재 아베 총리는 과거 한국 침략했던 일에 대한 사과 없이 개헌을 통해 전쟁국가로 거듭나려 합니다. 여기에 영향을 준 인물이 세 사람 있는데요. 첫 번째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입니다. A급 전쟁범죄 용의자로 구속 수사를 받았고, 군국주의의 화신이라 불리는 인물이죠. 총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아베 총리의 어머니이자 기시 전 총리의 딸인 기시 요코는 “아베 정책은 (외)할아버지를 닮았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두 번째는 아베 총리의 정신적 지주인 ‘요시다 쇼인’입니다. 요시다 쇼인은 정한론(征韓論·조선정복론)을 주장하고 조선 침략의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를 길러낸 인물입니다. 대표적인 일본 우익 사상가죠.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 현의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카스기 신사쿠’입니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인데요. 아베 신조 총리와 그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 두 사람 모두 이 사람의 ‘신(晋)’이라는 한자를 함께 씁니다. 세 친구(?)를 보면 아베 총리의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겠죠.<비선 실세? ‘일본 회의’> 비선 실세는 권력을 가진 자의 뒤에서 은밀히 실제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아베 총리에게도 이러한 비선 실세가 있는데요. 바로 ‘일본 회의’라는 조직으로 우익세력의 정점에 있다고 지목되는 곳입니다. 사실상 공개된 조직이니 비선실세라기 보다 아베 총리의 지지세력이라고 보는 게 맞겠네요. 여하튼 이들은 “헌법개정을 통해 패망 이전처럼 자위대를 군대 화 해서 동아시아의 패권을 잡아야 한다”라고 일관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일본 회의 소속 국회의원 모임인 ‘일본 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입니다. 여야 의원들이 국회 안에 만든 모임인데요. 여기 속해 있는 각료가 전체의 80%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회의가 일본 정계를 주무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아베 총리는 특별 고문이고요. 어떤 사람을 알고 싶으면 주변 친구들을 보라고 하는데요. 아베 총리의 주변 인물과 조직을 보면 아베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느낌이 오실 겁니다. <‘매파의 젊은 기수’ 아베> 아베 총리는 1993년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지역구 야마구치현을 물려받습니다. 이후 한국의 국무총리실 역할을 하는 내각 관방부의 ‘넘버 2’에 오르는 등 이른 나이에 중요한 자리에 오릅니다. 집안의 후광을 받아 승승장구했지만 정치인 개인으로서 ‘아베 신조’의 능력을 널리 알리는 데는 실패하죠. 그러다가 2002년 당시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함께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로 방북하면서 정치적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북한이 납치 문제에 사과와 인정을 하지 않자 아베 총리가 “안이한 타협은 없다. 차라리 도쿄로 철수하자”라며 강경하게 대응한 거죠. 국내로 돌아온 뒤 아베 총리의 강경한 발언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아베 총리는 ‘매파의 젊은 기수’로 떠오릅니다. 2004년에는 납치 피해자 5명이 일본으로 일시 귀국하는데 아베 총리가 “(피해자들을) 북한으로 다시 돌려보내면 안된다”라고 역시나 강하게 주장합니다. 자연스레 ‘납치 피해자 문제=아베’ 이런 공식이 생겼죠. 이 사건으로 북한과 일본은 외교적으로 갈라섰지만 ‘아베 신조’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기반을 닦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최연소 총리, 최장수 총리(올해 11월 이후)라는 타이틀도 달 수 있었던 거죠.<왜 개헌에 집착할까> 앞서 말했지만 아베 총리와 세 친구들이 꿈꿨던 세상은 군사적으로 강한 일본입니다. 아베 총리는 3연임에 성공한 뒤 “나의 맡겨진 임무로 남은 임기 동안 당연히 헌법 개정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도 “일본이 헌법 9조를 버릴 때가 됐다”라고 말했고요. 이들은 왜 헌법 개정에 집착할까요. 현재 일본 헌법은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만들어졌습니다. 당연히 패망한 직후다 보니 전쟁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내용(헌법 9조)이 들어갔죠. 일본이 직접적으로 군사행동을 못 하게 한 겁니다. 실제로 일본은 군대가 아닌 자신들만을 지키기 위한 부대인 자위대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정리해보면 일본 헌법은 아베가 꿈꾸는 ‘군사대국’ 일본으로 가는 데 걸림돌인 겁니다. 그래서 헌법, 특히 헌법 9조의 내용을 바꿔서 전쟁 도발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나라로 가려고 합니다. 아베 총리 인생의 과업이지만 국회와 국민들의 찬성이 있어야 해서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사학 스캔들’의 중심, 아베 아키에> 아베 아키에는 아베 총리의 부인입니다. 현재 일본은 ‘혼인한 부부는 동성(同姓)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민법 750조에 따라 부부는 서로 다른 성을 사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름은 남편의 성인 ‘아베’를 따라 쓴 거죠. 여하튼 아키에의 아버지는 대형 제과회사인 모리나가제과의 사장을 지낸 사람입니다. 재계 사람인 거죠. 이러한 이유로 1987년 두 사람의 결혼 당시 정재계의 정략결혼이라는 말이 많았습니다. 아키에는 매우 사교적이고 술 마시기를 좋아해 아베 총리와는 좀 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아키에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요. 아베 총리가 두 번째 총리가 됐을 때 술집을 연 겁니다. 최근에는 사학 스캔들의 중심에 서면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아베의 한국 인맥은> 아베 총리 한국 인맥의 핵심은 롯데가(家)입니다. 유명한 일화는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시게미쓰 사토시, 한국 이름은 신유열씨의 결혼식 피로연장에 아베 총리가 등장한 건데요. 그냥 얼굴만 내민 게 아니라 실제 축사를 하고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롯데가는 신격호 명예회장이 재일교포로서 대그룹을 일구는 과정에서 일본 유력 정치인들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신 회장이 결혼할 때도 주례를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맡고 그 외에 2명의 전현직 총리가 참석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아베 총리는 한국 인맥이 넓은 편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일간에 물밑 인맥이 중요하던 시절에는 정계에서 아베 총리가 비중 있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불매운동의 중심’ 유니클로> 요즘 불매운동의 직격타를 맞은 유니클로의 본사는 야마구치현에 있습니다.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 야마구치현 출신이죠.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고향과 같습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정재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왔죠. 여하튼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일본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매년 부자 1, 2위를 다툴 정도로 기업의 성공을 일궈냈습니다. 처음부터 회사가 엄청났던 건 아니고 시작은 야마구치 현에서 조그맣게 오고리 상사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습니다. 1984년까지는 아버지가 사장을 맡아서 하고 이후에 야나이 다다시가 사장으로 취임해서 운영을 한 겁니다. 같은 해 6월 일본 서부 히로시마 시에 유니크한 의류라는 뜻의 유니클로 1호점을 열었고요. 지금은 전 세계에 매장만 2000여 개 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골든벨 누가 울리나… 31일 경북 군위서 삼국유사 퀴즈대회

    골든벨 누가 울리나… 31일 경북 군위서 삼국유사 퀴즈대회

    ‘만 가지 파도를 쉬게 하는 피리, 쑥과 마늘의 시간 백일을 견딘 곰,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미추왕, 문무왕, 현세의 부모뿐 아니라 전생의 부모에게도 마음을 다하는 김대성, 선화공주와 결혼한 서동….’ 지난 10년간 이맘때면 전국의 고교생들이 ‘삼국유사의 도시’ 경북 군위로 모였다. 인구 2만여명의 작은 도시 군위에 해마다 1000명 안팎의 학생들이 몰린 것이다. 이유는 바로 전국 최대 규모의 학생 퀴즈대회로 자리매김한 ‘삼국유사 퀴즈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군위군은 올해에도 오는 31일 군위 삼국유사문화회관에서 이 대회를 개최한다고 27일 밝혔다. 700여년 전 일연(1206~1289) 스님이 삼국유사를 완성한 곳이 군위 인각사라는 점 등을 청소년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군이 이번 대회 참가 신청을 받은 결과 74개교에서 848명이 신청했다. 지난해 41개교 748명보다 늘었다. 대회는 삼국유사 내용에 관한 퀴즈를 푸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예선을 거친 50명의 본선 진출자 중에서 최후의 1인을 가린다. 본선 성적 상위 9명에게는 교육부장관상, 경북도지사상, 경북도교육감상, 군위군수상 등과 함께 상금 200만~50만원씩을 준다. 김영만 군위군수는 “삼국유사 퀴즈대회가 전국적인 명성과 평판을 자랑하는 에듀테인먼트 문화 행사로 진화했다”면서 “앞으로 잘 계승 발전시켜 세계적인 명성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대장금→지정생존자’ 지진희, 걸어온 길마다 인생작 [SSEN리뷰]

    ‘대장금→지정생존자’ 지진희, 걸어온 길마다 인생작 [SSEN리뷰]

    배우 지진희가 ‘대장금’부터 ‘60일, 지정생존자’까지 걸어온 길마다 인생작을 남기며 어떤 연기도 다 가능한 독보적인 배우임을 증명했다.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지진희는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 역을 맡아 열연했다. 매 작품 깊이감이 남다른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지진희는 이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그동안의 인생 캐릭터를 뛰어넘는 역대급 싱크로율과 명품 연기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다. 지진희가 소화한 박무진은 극에서 가장 큰 변화와 성장을 이룬 인물로,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날부터 한반도 전쟁 위기, 총격 테러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갖은 시련을 겪으며 진정한 국가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정치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선택, 지혜롭게 위기를 극복하는 ‘이기는 좋은 리더’ 박무진의 정직한 리더십은 매회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지진희의 묵직한 연기가 감동과 희열의 여운을 더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소박한 인간미를 지닌 박무진의 매력은 대중의 높은 신뢰를 자랑하는 배우 지진희를 통해 200% 발현됐다. 지진희가 아닌 다른 배우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진희는 한층 물오른 연기력으로 박무진 캐릭터와 완벽히 일체화된 모습을 보여주며 명실상부 ‘믿고 보는 배우’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특히 다양한 감정과 내공을 함축시킨 얼굴과 눈빛이 감탄을 자아냈다. 이러한 지진희의 인생 연기에 힘입어 ‘60일, 지정생존자’는 입소문을 타며 시청률 상승세를 나타냈고, 키를 잡은 선장으로서 순조롭게 항해를 이끈 지진희를 두고 많은 호평이 쏟아졌다. 지진희는 이번 작품으로 전작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고 새로운 인생작, 인생 캐릭터를 안았다. 30대엔 MBC ‘대장금’이 대표작이었다면, 40대 대표작은 멜로연기가 빛을 발한 SBS ’애인있어요‘, JTBC ‘미스티’ 그리고 올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의 인정을 받은 ‘60일, 지정생존자’가 추가됐다. 한류 열풍의 주역으로 만들어준 ‘대장금’의 민정호 역을 시작으로 애틋하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보여준 ‘애인있어요’ 최진언, 치명적인 어른 멜로의 열풍을 일으킨 ‘미스티’ 강태욱, 원톱 주연으로 강한 저력을 보여준 ‘60일, 지정생존자’ 박무진까지. 지진희는 ‘멜로 장인’이라는 타이틀에 국한되지 않고, 어떤 연기도 다 가능한 독보적인 배우로서 ‘믿보배’ 타이틀을 단단히 다졌다. 이 밖에도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 ‘봄날’ ‘스포트라이트’ ‘결혼 못하는 남자’ ‘동이’ ‘따뜻한 말 한마디’ ‘끝에서 두 번째 사랑’ 등 현대극과 사극,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가진 역할들을 꾸준히 소화하며 한계를 돌파했다.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데에는 노력으로 쌓은 19년의 신뢰의 연기 역사가 있기에 가능한 것. 걸어온 길마다 진정성 있는 연기력으로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온 지진희의 변신과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60일, 지정생존자’로 황금 전성기를 맞은 지진희의 다음 대표작은 무엇이 될지 높은 관심과 기대가 쏠린다. ‘60일, 지정생존자’ 최종회는 오늘(20일) 화요일 밤 9시30분 tvN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도플갱어 연구 참여한 ‘닮은꼴 사람들’ DNA 검사해보니

    도플갱어 연구 참여한 ‘닮은꼴 사람들’ DNA 검사해보니

    당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 즉 ‘도플갱어’를 만날 확률은 100만 분의 1도 안 된다. 그런데 3여년 전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는 당시 20대 여성 니암 기니(30)는 SNS를 통해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를 찾아나섰고, 이를 통해 인근 지역에 한 명, 이탈리아에 또 다른 한 명의 도플갱어가 산다는 것을 알아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었다.기니는 18일 오후 8시30분(현지시간) 호주에서 방영한 채널세븐 방송의 뉴스 프로그램 ‘선데이 나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내 첫 도플갱어 캐런 브래니건과 처음 만났을 때 서로 두 시간 동안 말을 별로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묵묵히 바라봤다”면서 “정말 멋지지만 기분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외모는 닮았지만, 성격이나 성향은 전혀 달랐다”고 덧붙였다. 그 후로 그녀는 두 번째 도플갱어 루이사 구이차르디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이에 대해 그녀는 “닮은 사람을 만나는 데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이상한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3개월 뒤 그녀는 세 번째 도플갱어를 찾았다. 이번에도 아일랜드 인근 지역에 사는 여성이었다. 아이린 애덤스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당시 도플갱어를 찾아나선 기니의 소식을 친구들로부터 전해들었다고 밝혔었다. 기니는 “자신이 특별하고 독특해서 이 세상에 자신과 같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다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 자신이 생각만큼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니라는 여성만이 자신의 도플갱어들을 기적적으로 찾아낸 유일한 사람은 아니었다.이날 방송에는 영국 에식스 카운티에 사는 닐 리처드슨(73)과 존 제미선(79)이 등장했다. 두 남성은 거의 똑같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같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사실 리처드슨은 지난 2014년 아내 매리언 리처드슨과 함께 브레인트리라는 이 작은 마을로 이사를 왔는 데 그 후로 주민들이 그를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리처드슨은 “난 마을에서 누구도 알지 못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날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모습에 의아했다”면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내게 다가와 ‘안녕 존! 오늘 어때?’라고 인삿말을 건넸다”고 회상했다. 또 그는 “아내와 한 카페에 갔는데 다른 테이블에서 한 남성이 내게 다가와 ‘내 아내는 당신이 존 제미선이라고 한다’고 말해서 난 ‘그럼 그는 틀림없이 잘 생긴 친구일 것’이라고 농담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리처드슨은 주민들에게 자신이 존이 아니라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날 카페 주인도 내게 다가와 ‘안녕, 존!’이라고 인사했다”면서 “그래서 난 ‘아니, 난 존이 아니라 닐이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닐은 그 주인에게 자신이 아직 실제로 만나지 못한 존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신분증까지 꺼내 보여줬다. 리처드슨과 제미선은 2015년 일일 런던 역사 여행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처음 만났다. 리처드슨은 “버스에 올라탔을 때 난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는 존을 봤다. 그래서 난 그에게 다가가 ‘실례하지만 난 당신이 존 제미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그 후로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는 두 사람은 단지 외모만이 비슷한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시를 매우 좋아하며 같은 대학에서 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았고 모두 종교 교육을 가르쳐 왔다는 것이다. 유사한 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각각 아내와 만난지 2주 만에 청혼했고 결혼한지 똑같이 50년이 됐다. 사실 두 사람의 각 아들들은 호주 전통악기인 디저리두도 똑같이 연주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닐은 “그것은 그야말로 운명의 사건”이라고 말했다.아일랜드에 사는 섀넌 로너건(25)과 스웨덴에 사는 사라 노르드스트룀(21) 역시 눈에 띠게 닮았지만, 4년 전 처음 만난 사이다. 로너건은 “낯선 사람 같지만 그녀를 아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나와 닮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다”면서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두 여성은 닮은 외모와 달리 성격은 전혀 반대다. 노르드스트룀은 “(섀넌은) 훨씬 더 외향적이고 사교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로너건은 “그건 스웨덴 사람 특성인 것 같다. 난 약간 사교적이고 사라는 매우 조용하다”고 말했다.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두 여성은 어떻게 이렇게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도플갱어를 연구하는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팀 스펙터 유전학교 교수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스펙터 교수는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던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나서 도플갱어 연구를 시작했다. 그 사진은 우연히 비행기 옆자리게 앉게 된 두 남성의 외모가 거의 똑같아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연구에 사람의 모든 얼굴 윤곽을 측정할 수 있는 첨단 얼굴매핑 시스템과 3D 영상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로너건과 노르드스트룀이 유전적으로 낯선 사람이었음에도 얼굴 유사성 점수가 90%로 매우 높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또 그는 리처드슨과 제미선에 대해서도 검사를 진행했고, 두 남성이 서로 알지 못하는 먼 조상이 같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두 사람의 유사성은 81%인데 이는 앞서 두 여성보다 낮지만 일란성 쌍둥이의 점수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두 남성이 상당한 버릇과 보디랭귀지(몸짓 언어)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단계에서는 이를 검사할 방법은 없다고 스펙터 교수는 말했다. 스펙터 교수는 니암과 아이린에 대해서도 DNA 검사를 진행했었다. 하지만 두 여성은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태어났을 가능성은 0.0006%, 부모 중 한 명의 피를 받았을 가능성은 0.1%, 2만 년 전 같은 조상에 뿌리를 두고 있을 개연성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전문]조국 전 제수 “위장이혼·위장매매 아니다…사생활 보호해달라” 호소

    [전문]조국 전 제수 “위장이혼·위장매매 아니다…사생활 보호해달라” 호소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남동생의 전처가 위장이혼 및 아파트 위장매매 등 불거진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직접 해명했다. 그는 자신과 자녀의 사생활을 보호해달라며 취재진에게 호소했다.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팀에 따르면 조 후보자의 전 제수(동생의 처)인 A씨는 19일 호소문을 내고 “조 후보자에 대한 공격을 하면서 제 이혼을 포함한 숨기고 싶은 사생활이 왜곡되어 온 세상에 퍼지고 있다”며 “이혼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알리고자 이렇게 호소한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조 후보자의 남동생 조권씨가 40억원이 넘는 빚 변제 의무를 피하려고 재산을 A씨에게 넘긴 뒤 위장 이혼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A씨가 이혼 후에도 조 후보자의 아내와 해운대 아파트 매매 거래를 하고, 지금도 전 남편과 살고 있다는 주민 증언이 나오면서 의혹이 증폭됐다. A씨는 위장이혼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A씨는 남편이 사업을 하면서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않았고 오히려 A씨가 번 돈 1억원을 사업에 쓴다고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2009년 4월 합의이혼을 했지만 위자료를 한푼도 받지 않고 친정 도움을 받아가며 직장을 다니며 어린 아들을 키웠다고 A씨는 털어놨다. 이혼한 후에도 아이와 아빠가 한달에 한두번, 주말에 집에서 만나긴 했지만 같이 산 적은 없었다고 A씨는 밝혔다. A씨는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혼한 사실을 직장에 알리지 않았고, 아들을 보호하려고 주변 이웃들에게도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A씨는 조 후보자 가족과의 부동산 거래 역시 위장매매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A씨는 2014년 12월 부산 해운대 우성빌라를 2억 7000만원에 매입했다. 같은 날 조 후보자 부인 정경심씨는 해운대 경남선경아파트를 같은 가격에 전세로 내줬다. A씨는 2017년 11월 이 아파트를 정씨한테서 3억 9000만원에 사들였다. 야권에서는 이런 거래가 부적절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A씨는 빌라 매입자금을 조 후보자 가족한테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혼 위자료와 자녀 양육비 명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형님(정씨)이 경남선경아파트 전세금을 빌라 구매자금으로 보내셨는데 시어머니께서 제게 돈을 주시면서 같이 계약을 하러 가자고 하셔서 우성빌라를 사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시어머니께서 이혼 위자료도 못 받고 아이 양육비도 못 받고 있는 사정이 딱하다고 하시면서 ‘이 빌라를 네가 사고 나를 그 집에 죽을 때까지 살게 해주면 된다’고 하셨다”고 덧붙였다. 아파트 매입에 대해서는 “경남아파트에 그해 봄부터 살던 중 형님이 가을쯤 고위공직자 다주택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아파트를 처분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다”며 “제가 이미 살고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팔면 제가 또 이사를 가야 할 수도 있어서 상의 끝에 사게 됐다”고 해명했다. A씨는 언론에서 의혹을 보도하고 이웃에게 자신과 아들의 사생활을 물어보며 다녀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다음은 A씨의 호소문 전문이다.<호소문> 저는 조국씨의 동생과 결혼생활을 하다 이혼한 사람입니다. 여기저기에서 이번에 장관후보로 내정된 조국씨에 대한 공격을 하면서, 저의 이혼을 포함한 숨기고 싶은 사생활이 왜곡되어 온 세상에 퍼지고 있기에, 이혼모로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엄마로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알리고자 이렇게 호소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먼저, 힘겹게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언론과 정치권에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조국씨에 대한 검증은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저와 아이의 사생활이 무차별적으로 털리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누구의 잘못이든 부모의 이혼으로 인하여 아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노력하며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의혹의 눈초리로, 흥미거리로 삼아 털어내는 저와 아이의 사생활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내고자 했던 소중한 일상이었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결코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들입니다. 저와 아이의 사생활이 공개되어 버린 것도 고통스러운데, 이를 넘어 사실이 왜곡되고 조롱당하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현재 수많은 기자들이 저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하고, 집 앞에 진을 치고 대기하고, 심지어 직장까지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신적인 고통과 불안함에 잠도 이룰 수 없습니다. 부디, 제발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특히 아이가 충격과 불안을 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는 위장이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황당했고, 말도 안되는 억측이 마치 사실인양 언론에 쏟아지자 분노했지만, 이제는 수치심을 느낍니다. 제가 2005년 10월경 조국씨의 동생인 남편과 결혼할 당시, 그는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고백하면서도 사업을 새로 시작한다며 의욕을 보였고, 저는 그러한 솔직함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약속과 달리 결혼 생활이 계속되면 될수록 생활비를 제대로 가져다 주지도 않고, 큰 돈이 생길거라며 시작한 사업에서 사기를 당했다고 원통해 하고, 결국 제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결혼 초부터 이런저런 사업을 한다며 조금씩 조금씩 제 돈을 가져갔고, 그 돈을 전부 합하면 1억원이 넘습니다. 믿었던 남편이었지만 제대로 돈벌이도 안되고 하자 남편과 싸우는 일이 많아졌고, 남편은 제게 미안했는지 웅동학원에 공사대금 채권이 있는데 그 중 10억원 채권을 넘겨준다고 하여, 저도 힘든 상태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받아들였고 판결문을 받아두라고 하여 판결문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판결을 받아봐야 학교 재산은 함부로 팔 수 없어 실제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남편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남편이 벌인 사업은 연이어 실패하였습니다. 남편이 경제적 능력과 여유도 없으면서도, 돈도 안 되는 사업을 한다며 지방 출장도 잦고 밖으로 돌기만 하고, 이제 갓 태어난 아들을 돌보는 일도 어느 것 하나 도와주지 않고... 남편과의 서울 결혼 생활은 전쟁같은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로서는 당시 너무 힘들어 더 이상 이 사람과는 함께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여 이혼을 결심하였습니다. 결국 2009년 4월경 합의 이혼하였고, 저 혼자서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기가 어려워서 서울 생활도 접고 김해 친정으로 내려와서 직장을 다니며 친정의 도움을 받아가며 혼자 어린 아들을 키웠습니다. 위자료는 한 푼도 받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위장이혼 비난을 벌이는데 대하여 수치심을 느낍니다. 세상 어느 부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음에도 쉽게 이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엄마 입장에서는 더욱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불화를 겪어 결국 이혼하였습니다. 모든 부부 사이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많은 일들이 있고, 저희 또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저와 제 아이의 삶을 거짓으로 만들어버리는 세간의 억측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지경입니다. 전 남편과는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이와 아빠가 가끔씩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이혼 할 때, 부부는 이혼하여 남남이 되지만 아이에게 각자 엄마, 아빠 역할을 다 해주어야 하고, 아빠가 아이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이혼한 제가 아이에게 혈육인 아빠와 할머니를 만나게 한 것이 그렇게 돌팔매질을 당할 일인지요. 이혼 후 초기에는 아이가 어리기도 하고 저도 마음이 힘들어 아이 아빠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 아이를 자주 보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말을 하고 아빠, 엄마를 알게 되면서, 아들인 아이는 아빠를 찾기 시작했고 아이 아빠는 아이를 만나고 놀아주기 위하여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김해의 저희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제가 부산으로 이사와 살게 되면서는, 아이 아빠가 아이를 보러 주말에 오는 경우가 잦았지만, 제가 아이 아빠와 이혼 이후 같이 산 적은 없습니다. 저는 이혼 이후에도 계속 같은 회사를 다니면서 직장 생활을 해왔습니다. 이혼하게 된 사실을 직장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지를 두고도 많은 밤을 고민했습니다. 우리사회는 결혼, 이혼, 동거 등의 아주 사적인 부분들까지도 모두 오픈할 것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도 굳이 가장 사적인 이혼 사실을 회사나 사람들에게 다 알릴 필요 없다는 조언도 해주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혼녀로 살아가는 경우,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괜한 오해를 받는 것도 무섭고 싫었습니다. 제게 세상의 전부인 아이 하나만 잘 키우고 싶은데, 이혼녀라고 혼자 산다고 누군가가 추근대거나 새로운 남자를 만나보라고 제게 쓸데 없는 관심을 가질 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장에는 이혼한 사실을 알리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세상의 이목에 쿨하지 못해서, 이혼녀인 사실을 직장에 알리지 않고 살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제가 가짜로 이혼을 한 것이라는 세상의 의심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이가 크면서 아이에게도 아빠의 사업상 떨어져 사는 것으로 얘기했고, 아이가 충격을 받을까봐 이혼 사실을 숨겨 왔습니다. 주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남편이 찾아와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주변 이웃들에게 최대한 자연스러운 가정처럼 보이기 위해 신경 썼습니다. 주변 이웃들이 이혼한 가정임을 알게 되면 아이와 아이 친구들도 알게 될 수 있어서, 최대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의 아이가 아빠와 같이 살지 않으면서 주말에 아빠를 만나 밥을 먹거나, 목욕탕을 같이 가는 것이 아빠와 나누는 가장 큰 즐거움인데, 그런 순간을 주변 이웃들이 모두 이혼 한 아빠가 찾아와 그날만 특별히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이렇게 보도를 하고 집 앞까지 찾아오고 주변 이웃들에게 저와 아이의 사생활을 물어보고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가 부모 이혼 사실을 알게 되고, 지금 이렇게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너무나 두렵습니다. 전남편은 이혼 후에도 일정한 소득이 없어 아이 양육비 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밉지만 전남편이 자리를 잡아야 아이도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전남편이 사업을 한다며 이름을 빌려달라고 하는 등 도움을 요청하면 어쩔 수 없이 도와주곤 했습니다.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고, 그래야 양육비라도 받을 수 있다는 아주 작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이것도 잘못된 것이라면 제가 책임을 져야겠지요... 제 아이의 친할머니(조국씨의 어머니)는 제게 너무나 감사한 분입니다. 시어머니와 시댁 가족들은 전 남편과 달리 항상 제게 잘해주셨습니다. 늘 네가 고생한다며 감싸주시던 분들입니다. 이혼을 할 때에도 제 입장을 이해해 주셨습니다. 이혼 이후 홀로 아이를 키울 때에도 아이는 친할머니를 자주 만났고, 저 또한 아이와 함께 만나기도 하며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혼 이후 저는 홀로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기 위해 친정인 김해로 갔습니다. 그러나 친정에서 아이를 더 이상 맡아 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직장 생활을 그만 둘 수 없었고,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아이 친할머니께서 저와 손자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으로 손자를 돌봐주시겠다고 하여, 2013년 시어머니가 살던 해운대로 이사하였고, 이후 시어머니가 계속 손자를 돌보아주셨습니다. 이혼한 여성이 홀로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잘 아실 것입니다. 가끔 전남편으로부터 양육비라며 일부 돈을 받기도 했으나, 전적으로 제가 생활비를 벌어야만 생계가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돌봐주시겠다며 해주셨습니다. 제가 그 덕분에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고, 제 아이도 살 수 있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늘 시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형님(조국씨의 부인)과의 ‘위장매매’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저와 형님이 부동산을 ‘위장매매’하였다고 의혹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우성빌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2014년 11월쯤에 형님은 혼자되신 시어머니가 살 집을 찾고 있었습니다. 형님 소유인 경남선경 아파트의 전세금을 빼서 시어머니 집을 구해드리려고 한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여기 저기 집을 보시던 시어머니는 이 우성빌라가 좋다고 하셔서 우성빌라로 결정을 했습니다. 형님이 경남선경 아파트 전세금을 빌라 구입자금으로 보내셨는데, 시어머니께서 제게 돈을 주시면서 같이 계약을 하러 가자고 하셔서 제가 우성 빌라를 사게 되었습니다. 이 돈으로 형님이 우성빌라를 샀으면 지금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당시 시어머니께서 아들이 결혼생활 동안 생활비도 못 가져오고 오히려 제 돈을 가져다 쓴 것도 잘 아시고, 이혼하면서도 제가 이혼위자료도 못 받고, 아이 양육비도 못 받고 있는 사정이 딱하다고 하시면서 죽어서도 눈에 밟힐 것 같은 손자가 나중에 살 집이라도 있어야 편히 살 것 아니냐면서, “이 빌라를 니가 사고 나를 그 집에 죽을 때까지 살게 해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말씀듣기로는, 시어머니께서 나중에 형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다고 해도 이혼한 동서에게 빌라 살 큰 돈을 그냥 주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저의 속을 썩인 전남편과 시어머니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 때문에 저를 생각해서 그런 것으로 알고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집에서 시어머니께서 살고 계셨지만, 제 집이어서 저는 든든했고 저를 가족으로 품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집이 제 것이 아니라는 둥 말이 많은데 정말 가슴을 칠 노릇입니다. 경남선경 아파트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2017년 3월에 제가 형님이 가지고 있던 경남선경 아파트에 3억5천을 주고 전세계약을 맺고 살게 되었던 것은, 당시 제가 전세를 살던 해운대 아파트 전세대금이 크게 뛰었고 상대적으로 경남선경의 전세금이 싼 상태이고, 아이를 돌보시는 시어머니가 오래 살던 곳이기도 해서 이곳으로 이사를 간 것입니다. 아들이 할머니 이사하기 전에 그 집에도 지내봤고, 다른 무엇보다 1층이라 시끄럽게 걷거나 뛰어다녀도 어른들이 혼내지 않는 것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 제가 전세 살던 전세금을 빼서 이사를 갔습니다. 제가 그때 이사를 가면서 조국씨께서 민정수석이 되실지, 이렇게 장관 후보자가 되실지 어떻게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바뀌고 조국씨께서 민정수석이 되셨고, 저는 이 곳 경남아파트에서 그해 봄부터 살던 중 형님이 가을쯤 고위공직자 다주택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아파트를 처분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1층 아파트에서 아이가 좋아하면서 편히 지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저는 다시 이사를 가야 하는지 고민을 해야 했고, 시세를 알아보니 약 4억정도 되어서, 제가 이미 살고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팔면 제가 또 이사를 가야 할 수도 있고, 제가 돈을 더 내고 구입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상의 끝에 3억9천만원에 사게 된 것입니다. 2017년 3월에 전세매입한 자료와 2017년 11월에 매매한 것에 대한 송금자료, 공인중개사의 계약서, 세금납부서류 등 모든 자료가 제게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위장매매라고 떠드는지요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저와 아이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부디 집과 직장을 찾아오지 말아주세요. 동네 주민들에게 저와 아이에 대해 캐물으며 이상한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 아이가 충격을 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발 간곡히 호소합니다. 제게 세상의 전부인 저의 아들이, 어린 초등학생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제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시한번 호소합니다. “제 아이가 상처받게 하지 마세요.” 2019. 8. 19. 조국씨 전 제수 올림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같이 펀딩’ 유준상, 태극기함 목표 달성 “난 전생에 독립투사”

    ‘같이 펀딩’ 유준상, 태극기함 목표 달성 “난 전생에 독립투사”

    ‘같이 펀딩’이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첫 항해를 시작했다. 첫 번째 주자로 나서 아주 특별한 태극기함을 준비한 유준상의 이야기는 우리가 잊고 있던 태극기의 가치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숨은 영웅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진심이 통할 때 전해지는 기분 좋은 즐거움과 유익함,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다. 18일 첫 방송된 MBC 새 예능 프로그램 ‘같이 펀딩’에는 배우 유준상이 준비한 3.1주년 100주년 기념 아주 특별한 국기함 프로젝트가 베일을 벗었다. MC 유희열을 비롯해 유준상, 유인나, 노홍철, 장도연이 한자리에 모여 유준상이 꺼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공감 수다를 펼쳤다. ‘같이 펀딩’은 혼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분야의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이 확인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같이’ 실현해보는 예능. 우선 첫 방송은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루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MC 유희열은 펀딩에 대해 잘 몰랐다고 밝히면서도 “시청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힘들이 하나둘 모여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며 ‘같이 펀딩’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했다. 가장 먼저 프로젝트를 공개한 유준상은 ‘진심’을 꺼냈다. 유준상은 “나는 전생에 독립투사였을 것”이라며 체격이 왜소했던 어린 시절 이 생각만 하면 든든했다고 밝히면서, 성인이 되어 3.1절에 태극기를 걸고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다녀온 이유도 들려줬다. 평소 나라를 향한 마음을 표현해 왔던 유준상은 “태극기를 다는 날 너무 기뻤다. 예전에는 태극기를 안 단 집이 드물었다. 자랑스럽게 달았었다. 태극기가 모두의 마음에 펄럭이길 바라면서 시청자들과 같이 만들어가고 싶다”고 태극기함 프로젝트를 준비한 이유를 밝혔다. ‘같이 펀딩’ 출연진은 학창 시절 태극기함을 만들었던 경험부터 태극기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나눴다. 그러면서 “축제 때는 태극기가 있는데, 정작 달아야 할 그날에는 없다”, “이건 알아야 한다”면서 국기함 프로젝트에 공감했다. 유준상은 5월부터 제작진과 회의를 하고 이웃 주민들과 동료들을 찾아 국기 게양에 대한 현재의 인식을 살펴봤다. 또 아이템 제작에 앞서 태극기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 역사 강사 설민석과 함께 진관사를 찾았다. 설민석은 역관 이응준이 고안했다는 최초의 태극기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의 그 순간에도 휘날리던 태극기의 의미를 들려줬다. 독립운동 불교계 대표였던 초월스님의 이야기도 소개됐다. 지난 2009년 진관사 칠성각 보수 공사 중 보자기가 하나 발견됐는데, 이 보자기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초월스님의 이야기가 공개된 것. 일장기 위에 덧대고 그린 태극기 보따리 안에는 민족의 독립운동 기사가 실린 신문이 담겨 있었다. 진관사를 방문해 처음 초월스님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는 유준상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태극기에 의미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영웅의 이야기는 일요일 저녁 안방극장에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태극기의 의미를 다시 마음의 새긴 유준상은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태극기를 달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며 시장 조사 및 아이템 회의에 돌입했다. 방송 말미에는 유준상이 평창동계올림픽 메달 디자이너 이석우와 함께 태극기함을 만드는 과정이 살짝 공개돼 향후 그려질 이야기에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진심이 전해지니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 역시 움직였다. 유준상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국기함 프로젝트는 언젠가부터 국경일에도 태극기를 다는 것에 소홀해지고 진짜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고 있던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두드리며 그가 나누고자 한 생각을 같이 만들어보고 싶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같이 펀딩’ 첫 방송 중 시작된 유준상의 국기함 펀딩은 오픈된 지 약 10분 만에 1차 목표인 815만 원을 달성했고, 사이트 응답 지연 속에서 1차 준비 수량인 5000개의 펀딩이 방송 종료시점인 오후 8시 전에 조기 종료됐다. ‘같이 펀딩’ 측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발빠르게 응답하면서 추가 수량을 올렸고 총 1만 개가 오후 8시 30분 전에 마감됐다. 최종적으로 1차 펀딩 달성률은 4110%를 기록했다. ‘같이 펀딩’ 측은 펀딩 마감 이후에도 “국기함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고 싶다”라는 시청자들의 뜨거운 공감을 접하고 2차 펀딩을 논의 중이다. 시청자가 지켜보는 것은 물론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새로운 도전을 바탕으로 한 ‘같이 펀딩’은 진정성이 담긴 생각 위에 작은 힘이 모이면 큰 변화를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같이’의 힘을 보여주며 새로운 힐링 예능의 탄생을 알렸다. 향후 유인나의 오디오북, 노홍철의 소모임 특별전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새로운 재미를 안길 예정이다. ‘같이 펀딩’은 매주 일요일 오후 6시 30분에 방송되며, 네이버 해피빈 페이지를 통해 실제 펀딩에 참여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갈등 만져보기…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살지

    갈등 만져보기…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살지

    작은마음동호회/윤이형 지음/문학동네/356쪽/1만 4500원 윤이형(43) 작가는 올 초 중편소설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로 제43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혼한 부부가 함께 기르던 고양이의 죽음을 기리는 내용이었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자기 소설의 강점을 묻는 질문에 작가는 “강점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제게 굉장히 강렬했던 감정에 대해서 끝까지 가 보고 싶었다”고 했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단순하게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굉장히 복합적인 이유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사회의 남녀 갈등 양상은 피해 갈 수 없고 어떤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쉽게 ‘옳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에는 남녀 갈등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갈등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 사람들, 이를테면 우리의 ‘스테레오 타입’을 비껴 간다. 퀴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가둘 수 없는 누군가, 세상 속 일종의 여집합 같은 사람들이다. 집회에 참여하고 싶은 엄마, 아이를 갖고 싶은 레즈비언, 여성성을 버리고자 평생을 투쟁해 온 딸과 딸이 버리고 싶은 바로 그 자궁에 암이 생겨 세상을 떠난 엄마 등이다.일찍이 SF문학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작가의 연작 ‘의심하는 용- 하줄라프1’, ‘용기사의 자격- 하줄라프2’에 등장하는 용조차도 이를테면 경계에 서 있다. 싸우는 용과 번식하는 용이라는 두 세계에서 비껴난, 번식을 하고 싶지 않은 암컷을 사랑하는 암컷 용. 최근 페미니즘 진영에서 뜨거운 기혼·비혼 여성 간 갈등을 그린 표제작 ‘작은마음동호회’는 남녀 갈등으로 국한되는 기존의 논의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간 작품이다. 정치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대통령 탄핵 집회에 나가기로 한 일련의 기혼 여성들은 ‘작은마음동호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그 결심을 책으로 묶는다. 편집장을 맡은 ‘경희’가 옛 친구 ‘서빈’에게 일러스트를 의뢰하면서 둘의 묵은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서빈은 결혼 후 소식이 뜸해진 경희를 ‘남자 없이는 살지 못하는 친구’로 오해하고 배신감을 느꼈지만, 경희는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서빈의 오해를 풀어 줄 여력이 없었다. 서로를 잘 알아서 더욱 물러섬이 없는 여여(女女) 갈등의 끝에서, 친구라는 이름의 이들은 어떤 행보를 보일까. 작가의 소설에서 눈에 띄는 것 하나는 3인칭 서사다. 책에 실린 소설 중 ‘승혜와 미오’, ‘피클’, 하줄라프 연작을 3인칭으로 썼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갖는 일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레즈비언 커플 ‘승혜와 미오’, 편집장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선배가 등장하는 ‘피클’ 등에서 3인칭 서사는 너와 나의 구분을 넘어 모두를 공평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준다. 승혜를 베이비시터로 고용한 이호 엄마는 “왜 승혜 누나는 여자를 사랑해?”라는 아들의 말에 이렇게 답한다. “엄마도 모르겠어, 엄마가 좋은 엄만지 나쁜 엄만지. 엄마는 그냥 엄마지. 회사에서 늦게 오지만 그래도 엄마지. 마찬가지야. 세상에는 다른 누나랑 사랑해서 같이 사는 누나도 있는 거야. 그냥 원래 그런거야.(중략) 모르는 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는거야.”(56~57쪽) 이호 엄마의 입을 빌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집약된 문장 같다. ‘말을 할 때마다 상처가 생기지만 그래도 말을 건넨다. 화해나 행복이나 위로를 위해서는 아니다. 나는 우리가 왜 함께할 수 없었는지 정확히 알고 싶다. 우리가 서로의 어떤 부분에 무지했고 어떤 실수들을 했는지, 어떻게 해야 같은 오해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지, 자세히 이야기 나누고 부끄럽게 적어 두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 함께하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우리가 마지막이 아닐 테니까.’(353~354쪽). 책 말미에 남긴 진짜 ‘작가의 말’이다. 첨언하기보다 ‘그냥’ 읽어 보라고 말하고 싶은 책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日 사죄하고 배상하라”… 광복절 10만명 ‘NO 아베 촛불’ 들다

    “日 사죄하고 배상하라”… 광복절 10만명 ‘NO 아베 촛불’ 들다

    750개 단체 광화문광장 ‘범국민 문화제’ 자유발언 땐 “신혼살림도 日 제품 불매” 낮엔 서울광장 ‘강제동원 해결 시민대회’ 참가자들 주한일본대사관 앞까지 행진 日 시민단체도 도쿄서 아베 비판 시위 일본의 경제보복 탓에 촉발된 한일 갈등 국면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가운데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반(反)아베 집회가 열렸다. 750여개 시민사회 단체로 꾸려진 ‘아베 규탄 시민행동’은 1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8·15 제74주년 아베 규탄 및 정의 평화 실현을 위한 범국민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 10만명(주최 측 추산)은 우산을 내려놓고 ‘NO 아베’ 촛불을 들었다. 시민들은 광장 곳곳에서 “강제징용 사죄하라”, “침략 지배 사죄하라”, “경제 침탈, 평화 위협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공연과 자유발언이 이어지는 형식으로 진행된 문화제에서 발언자로 나선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0)씨는 “여러분,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젊은이들이 한몸, 한뜻이 돼야 한다”며 “아베한테 할 말은 다 하고, 용기를 내서 우리 한국 사람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지 말고 끝까지 싸워 아베를 끌어내리자”고 말했다. ‘평화의 소녀상’ 조각가 김서경 작가도 발언대에 올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 트리엔날레에서 전시 중이던 소녀상이 사흘 만에 전시 중단을 당했다”면서 “하지만 일본인들이 우리를 위해 시위를 해 주고 있다. 소녀상이 이름에 걸맞게 평화의 소녀상으로 역할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동참하며 신혼살림을 장만하고 있다는 예비부부 성치화·최경은씨는 “답답한 마음에 결혼 준비를 미루고 이 자리에 왔다”면서 “아베의 도발에 똘똘 뭉쳐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자”고 강조했다. 문화제가 진행되던 광화문 일대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도 동시에 열려 작은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문재인 퇴진’ 머리띠를 맨 여성들이 탄 트럭이 촛불 문화제 무대 근처로 접근하자 문화제 참가자들이 “부끄러운 줄 알라”며 이들을 쫓아냈다. 꽹과리를 치면서 문화제를 방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촛불 문화제 시민들이 “매국노”라고 외치며 부딪치자 경찰은 이들 사이를 막아섰다. 앞서 이날 오전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서울광장에서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대회’를 열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2000명(주최 측 추산)가량의 참가자들은 장대비 속에 우산을 들거나 비옷을 입고 “강제동원 사죄하라”, “아베는 사죄하고 배상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대회에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도 참여했다. 징용 피해자 이춘식(95)씨는 “할 말은 많지만 목이 메어 못한다. 미안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참가자들은 대회 종료 후 비둘기 형상 풍선 200여개를 들고 주한 일본대사관 앞까지 행진했다. 노동자들도 한데 모여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 민주노총은 광화문광장에서 ‘8·15 전국 노동자 대회’를 열었다. 일본과 북측 단체도 아베 정부의 행보에 비판 목소리를 더했다. ‘8·15민족통일대회·평화손잡기’ 행사에서는 일본 평화포럼, 재일한국인민주통일연합,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가 국내 단체와 함께 공동호소문을 내며 아베 정부를 비판했다. 행사 참가자들은 항의의 의미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욱일기를 찢었다. 전국 곳곳에서도 광복절 행사가 열렸다. 경북 울릉도 사동항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태권도 퍼포먼스가 개최됐고, 경기 용인의 용신중 학생 100명은 만세삼창을 하며 광복의 순간을 재현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저녁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 앞에서도 아베 정권 비판 집회가 열렸다. 일본 시민단체 ‘평화와 민주주의를 목표로 하는 전국 교환회’ 등은 ‘아베 그만둬라’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동아시아 평화를 만들어가는 한일 평화시민 공동선언’을 낭독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日 사죄하고 배상하라”… 광복절 10만명 ‘NO 아베 촛불’ 들다

    “日 사죄하고 배상하라”… 광복절 10만명 ‘NO 아베 촛불’ 들다

    일본의 경제보복 탓에 촉발된 한일 갈등 국면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가운데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반(反)아베 집회가 열렸다. 750여개 시민사회 단체로 꾸려진 ‘아베 규탄 시민행동’은 1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8·15 제74주년 아베 규탄 및 정의 평화 실현을 위한 범국민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오후 늦게 비가 그친 광화문광장에는 시민 10만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NO 아베’ 촛불을 들었다. 시민들은 광장 곳곳에서 “강제징용 사죄하라”, “침략 지배 사죄하라”, “경제 침탈·평화 위협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문화제 공연을 즐겼다. 문화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했던 촛불집회 당시에 행해진 자유발언 형식을 본떴다. 신혼살림도 일본 제품 불매 운동으로 마련하고 있다는 예비부부 성치화·최경은씨는 “답답한 마음에 결혼 준비를 미루고 이 자리에 왔다”면서 “아베의 도발에 똘똘 뭉쳐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자”고 말했다. 문화제가 진행 중 광화문 일대에서는 주말과 공휴일에 열리던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도 동시에 열려 작은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문재인 퇴진’ 머리띠를 맨 여성들이 탄 트럭이 촛불 문화제 무대 근처로 접근하자 참가자들이 “부끄러운 줄 알라”며 이들을 쫓아냈다. 꽹과리를 치면서 문화제를 방해하려는 경우도 있었다. 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매국노”라고 외치며 부딪치자 경찰은 이들 사이를 막아섰다. 앞서 이날 오전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서울광장에서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대회’를 열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2000명(주최 측 추산)가량의 참가자들은 장대비 속에 우산을 들거나 비옷을 입고 “강제동원 사죄하라”, “아베는 사죄하고 배상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대회에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도 참여했다. 함성과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오른 징용 피해자 이춘식(95)씨는 “할 말은 많지만 목이 메어 못한다. 미안하다”면서 참가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에서 가마이시제철소를 승계한 일본제철을 상대로 승소 판결을 받았다.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0)씨는 “우리나라도 강해졌으니 아베 말 듣지 말고 일본을 규탄하자”면서 “아베한테 사죄 한마디 듣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도 국경일을 맞아 한데 모여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8·15 전국 노동자 대회’를 열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우리는 아베 정권의 한반도 평화 방해에 맞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과 북측 단체도 아베 정부의 행보에 비판 목소리를 더했다. ‘8·15민족통일대회·평화손잡기’ 행사에는 일본 평화포럼, 재일한국인민주통일연합,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가 국내 단체와 함께 공동호소문을 내며 “일본은 사죄하고 배상하기는커녕 역사왜곡, 독도영유권 주장, 경제보복 등 도발을 이어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행사 참가자들은 항의의 의미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욱일기를 찢었다.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일본에 등장한 ‘로봇 스님’… 프랑켄슈타인 탄생 vs 관음보살 화신

    일본에 등장한 ‘로봇 스님’… 프랑켄슈타인 탄생 vs 관음보살 화신

    일본 고도 교토의 400년 된 사찰에 이색적인 스님, ‘로봇 승려’가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이라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관음보살의 화신’(化身)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고 프랑스 뉴스 통신사 AFP가 14일 보도하였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에서도 사찰의 승려가 되려는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로봇 스님이 절을 찾는 신도들에게 예불을 드리는 시대가 된 것같습니다. 법명이 마인다(Mindar)인 안드로이드는 자비의 부처인 관음보살로, 교토에 있는 임제종 계열의 교다이지(高台寺)에서 설법을 전합니다. 인간 동료 스님들은 안드로이드에 장착된 인공지능(AI)으로 하루 만에 가없는 지혜를 ‘획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마인다가 예불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올 1월부터랍니다. 이 사찰의 주지 스님 고토 텐쇼는 AFP에 “이 로봇 승려는 결코 죽는 법이 없으며, 항상 자신을 최신으로 상태로 업데이트합니다”며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지식을 영원히 그리고 끝없이 저장할 수 있습니다”고 자랑합니다. 고토 스님은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으면, 우리는 고해에 빠진 사람들이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지혜를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불교를 변화시키는 것이지요”라고 말합니다. #마인다 기도할 땐 합장신장이 2m로 어른보다 약간 큰 키의 마인다는 몸통과 팔, 머리를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손과 얼굴, 어깨는 사람의 피부처럼 보이게 하고자 실리콘으로 덮여있습니다. 기도할 때 두 손을 모아 합장할 수 있고, 목소리는 소녀의 톤으로 부드럽고, 로봇의 다른 기계적 부분은 선명하게 보입니다. 머리는 위쪽이 열려 있으며, 전선과 깜빡거리는 전구로 채워져 있습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알루미늄의 몸통은 전선들이 휘감고 있습니다. 왼쪽 눈에는 작은 비디오 카메라가 심겨 있습니다. 기묘한 사이버그 같은 몸체는 암울한 미래를 그린 할리우드의 공상과학(SF) 영화에서 바로 튀어나올 법한 모습입니다. 선사(禪寺)와 오사카대학의 유명한 로봇학 교수 이시구로 히로시가 공동으로 만들어 탄생하였습니다. 약 100만달러가 들었다고 합니다. 자비와 연민을 가르치고, 욕망과 분노, 에고의 위험에 대해 설법합니다. 마인다는 신도들에게 “이기적인 자아에 집착하지 마라. 세상의 욕망은 고해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한 조각의 마음”이라고 경고합니다. #시시껄렁한 스님 아냐일상 생활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큰 일본에서 고토 스님은 고다이지의 로봇 스님이 전통적인 승려들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젊은 사람들은 아마 절은 장례나 결혼 장소라고 여길 겁니다”고 말하는 그는 종교와의 단절에 대해 설명합니다. “저와 같은 고리타분한 스님들이 생각해내는 것이 어렵겠지만 로봇 스님은 젊은 층과의 갭을 이어줄 재미난 다리 역할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로봇을 보고 불교의 진수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고토 스님은 마인다가 관광객들로부터 수입을 올리려는 장치가 결코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로봇 스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 누구든지 구제받는 곳이 여기입니다.” 신앙심이 깊은 안드로이드 스님은 반야심경을 일본어로 설법하고, 외국인들을 위해 스크린에 영어와 중국어로 번역해 줍니다. 고토 스님은 “불교의 목표는 고통을 완화하는 것입니다”며 “현대 사회는 많은 스트레스를 주지만 2000년이 넘는 동안 목표는 정말로 변하지 않았습니다”고 주장합니다. #“따뜻함 느껴” vs “너무 기계적”오사카대학이 예불을 드리는 로봇 승려를 본 소감에 대해 조사한 결과가 재미납니다. 많은 이들은 놀라움을 표합니다. 조사에 응한 한 사람은 “사람 같아보입니다. 보통의 기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을 느꼈습니다”고 답하였습니다. 다른 신도는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였지만 로봇 승려는 따라하기 쉬웠습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칭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로봇이 너무 나간 “가짜”라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신도는 “설법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로봇의 설법이 너무 기계적으로 느껴졌습니다”고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탄생고다이지는 종교의 신성함을 조작한다는 혹독한 비판을, 그것도 대부분 외국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고토 스님은 일본 방문객 대다수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는 것을 들면서 “서양 사람 대다수는 로봇에 의해 기분을 망쳐버립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아마 성경의 영향 때문이겠지만, 서양 사람들은 로봇 승려를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 비유합니다”고 덧붙여 말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로봇에 대해 어떤 편견도 없습니다. 우리는 로봇이 우리의 친구인 만화의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만 서구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합니다.”그러면서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방문 당시 신성모독죄를 범했다는 비난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관음보살 무엇이든 변신…로봇 변신일뿐고토 스님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기게는 영혼이 없습니다”고 잘라 말합니다. “불교 신앙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계로 표현되든지, 고철 덩어리로 표현되든지 나무로 나타나든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고다이지는 자비의 관음보살은 자유자재로 자신을 변신할 수 있으며, 안드로이드라는 로봇은 단순히 최신 버전의 관음보살 화신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고토 스님은 “인공지능이 개발되면서 우리는 부처님이 로봇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인 단계에 이르렀습니다”고 설명합니다. “로봇 승려가 상처받은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어루만져주길 기대합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슈메이커스 박은혜 “지루한 이미지 깰 기회 될 것”(일문일답)

    이슈메이커스 박은혜 “지루한 이미지 깰 기회 될 것”(일문일답)

    ‘이슈메이커스’ 박은혜가 이미지 변신에 나선다. 박은혜는 최근 SBS 미디어넷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프리즘과 한뼘 TV의 웹드라마 ‘이슈메이커스’ 촬영을 마쳤다. ‘이슈메이커스’는 유명 에디터들과 인플루언서들이 모여 트렌드한 아이템을 소개하는 신생 매거진 이슈메이커스의 동남아 시장 진출기를 담은 오피스 드라마. 박은혜는 극중 국내 넘버원 여성 잡지의 잘나가는 에디터에서 작은 스타트업 회사를 차린 지 2년만에 해외 진출을 코앞에 둔 이슈메이커스 사장이자 워커 홀릭녀 박은혜 역을 맡았다. 촬영장에서 만난 박은혜는 “제가 연기를 좀 오래 쉬기도 했고, 마침 웹 드라마라고 해서 새로운 도전일 것 같아 하게 됐다. 웹 드라마의 경우 기회가 별로 없는데 재미있겠다 싶었다”라고 전했다. ‘이슈메이커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현지 채널에서 8월 중 방영되며 북미, 중미, 남미 OTT 서비스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박은혜가 원조 한류스타인만큼 기대감도 남다를 터. 박은혜는 “저의 기대감은 하나다. 어렸을 때 해보지 않은 역할이어서 사람들이 봤을 때 지루한 이미지를 깰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웃어 보였다. ‘이슈메이커스’는 대중소농어업협력재단 협력 아래 동남아 커머스 마케팅 사업의 일환으로 SBS 미디어넷과 이베이코리아, 미디어허브가 제휴한 10부작 웹드라마. 동남아 태국 현지 인포모셜 제작 및 편성을 통해 중소기업들의 동남아 시장 진출에 마케팅을 지원할 계획이다. 8월 16일 KT 올레 모바일을 통해 첫 공개되며 이후 월, 수, 금요일 주 3회 만나볼 수 있다. 8월 20일부터는 매주 화, 목요일 오후 5시 스튜디오 프리즘, 한뼘TV을 통해서도 업로드 된다. <다음은 박은혜의 일문일답> 1. ‘이슈메이커스’에 출연을 결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연기를 좀 오래 쉬고 있는 상태였는데 웹 드라마라고 해서 하게 됐다. 웹 드라마가 어린 친구들 이야기가 많아서 젊은 층을 상대로 하지 않냐. ‘이슈메이커스’는 어린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 재미있겠다 싶었다. 출연배우들과도 친분이 있어서 우리끼리 재미있게 촬영 하는 느낌이다. 2. 웹 드라마는 처음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간 찍었던 드라마와 차이점이 있던가. 완전 다르다. 내용도 빠르게 진행되고 편집도 빠르다. 10분 분량의 드라마에 내용이 압축 돼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설명적이지 않고 간단히 풀어놨다. 웹 드라마가 다 똑같이 진행되지 않겠지만 새롭다. 제가 기대가 되는 것은 웹 드라마가 만화적으로 편집된다고 들었는데 그게 재미있을 것 같다. 3. 촬영장 분위기는 어떤가. 재미 있다. 배우들끼리 음료수 내기 사다리 타기도 하고, 장난도 많이 치고 한다. 친하니까. 서로 장난도 잘 받아주고 있다. 촬영 중에 서로 애드리브도 많이 한다. 대사가 없는 신들을 만들고 한다. 촬영이 늦게 끝나 몸이 힘들어도 사람들 덕분에 스케줄 나오고 싶어. 영화 찍고 있는 느낌이다. 4. 극중 박은혜는 워커홀릭녀, 실제 박은혜와 비슷한 점이 있나. 제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워커홀릭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부분은 다르고, 극중 캐릭터와 성격은 비슷하다. 이 여자 같은 경우는 야망이 있고, 많은 사람도 끌고 가야 하고, 회사를 차려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사는 것은 정말 비슷하다. 그리고 감정 표현에 솔직한 것도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지금은 감정 표현에 조심스러워진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솔직한 편이라 비슷한 것 같다. 5. 극중 이슈메이커스 사 대표인데 직원들의 면면은 어떤가. 한보름과 동현배는 친분이 있었다. (한)보름이랑은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여행을 다녀온 적 있고, 동현배도 친분이 있다. 한보름은 보면 볼수록 매력 있다. 현장을 재미있게 해주고 선,후배 중간에서 열심히 하는 친구다. 동현배도 친하니까 같이 일해보고 싶었다. 친하니까 편하고 눈만 봐도 무슨 생각인지 안다. 이종원은 막내라 귀엽다. 웃는게 너무 예쁜데 계속 웃으면서 일한다. 강대현도 열심히 한다. 처음 만났는데 캐릭터 연구를 많이 해서 작은 것도 신경 쓰는 친구다. 베스티는 한국인이 아닌데 한국 사람이 아닐 정도로 싹싹하다. 연기 잘하고 있다. 6. ‘이슈메이커스’ 출연배우 중에 선임인데 극을 끌고 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나 어려움이 있나. 촬영 오기 전에는 부담스러웠다. 이제는 못했을 때 이해가 되는 나이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작품을 해도 똑 같은 상황이다. ‘이슈메이커스’는 내가 제일 선배라 더더욱 그렇다. 친구들(후배 배우)이 먼저 촬영하고 제가 들어왔는데 챙김 받고 있다. 친구들이 저를 배려해주고 있다. 저도 꼰대가 안 되려 하고 있다. 7. ‘이슈메이커스’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준다면. 처음에 대본을 읽었는데 공감이 되고 다음 회가 궁금했다. 우리가 대본을 처음 받아 읽을 때는 3자가 돼 읽는데 다른 사람도 이걸 보면 키득키득 웃으며 가볍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대본을 잘 살려서 연기하려 했다. 시트콤과 드라마의 중간 장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 있다. 그 정도로 재미있다. 신입 사원, 파견 사원, 회사를 다니다가 창업을 한 나 같은 역할도 있어서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다. 8. ‘이슈메이커스’가 동남아에도 방영이 되는데 원조 한류스타로서 갖는 기대감이 있을 것 같다. 제 기대감은 하나다. 그동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나이를 먹어 올드해진 부분이 있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지루해지는 이미지를 깰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극중 박은혜는 솔직하지만 히스테리적이고 감정 기복도 심한 역할인데 어렸을 때 해보지 않은 역할이라 사람들이 봤을 때 지루한 이미지를 깰 수 있으면 하는 바람, 기대감이 있다. 9. 끝으로 시청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 웹 드라마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제겐 새로운 도전이다. ‘이슈메이커스’는 TV로도 볼 수 있고 웹으로도 볼 수 있는데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으니 꼭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요즘 세대 유행하는 장르를 보며 공감하면 좋을 것 같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코쿠닝78, ‘구해줘 홈즈’에 소개된 인천 부평 그 집

    코쿠닝78, ‘구해줘 홈즈’에 소개된 인천 부평 그 집

    지난 11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구해줘! 홈즈(이하 홈즈)’가 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현재 집보다 작은 평수를 구하는 의뢰인의 사연과 연예인 군단의 역대급 매물 전쟁이 일어나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번 방송에 등장한 의뢰인은 1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를 원했다. 최근 누나의 결혼으로 가족이 줄면서 다운사이징 매물을 의뢰, 현재 거주 중인 인천 부평 인근 매매를 조건으로 밝혔다. 특히, 가슴 아픈 사연의 의뢰인을 위해 이날 연예인 군단이 소개한 매물 중 하나인 인천 계양구의 주거용오피스텔인 ‘코쿠닝78’은 의뢰조건을 만족시키는 매매가와 작전역 역세권은 물론 프리미엄 신축빌라에서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옵션으로 주목을 끌었다.코쿠닝78은 공기순환기를 층마다 설치한 것은 물론 층간소음재, 방범CCTV, 소방설비, 엘리베이터 등 편리한 주거환경을 자랑하는 매물로 주목 받았다. 또한 기계식이 아닌 자주식(지하램프식)으로 100% 주차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2층 세대의 경우 넓은 테라스가 있는 구조로 인기를 끌고 있다. 3층~14층까지는 테라스가 없는 3룸 구조로 설계됐다. 다양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주거용오피스텔 코쿠닝78은 현재 분양 중에 있으며 전용 면적 84.96㎡(1,2호 라인), 84.94㎡(3,4호 라인), 84.66㎡(5,6호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근에 인천1호선 작전역, 체육공원, 이마트 계양점이 가까워 연로한 홀어머니의 거주 및 출퇴근에도 편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도 인서울외곽순환도로 진출입이 편리한 입지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매입이 가능하다. 코쿠닝78 관계자는 “방송에서 소개됐듯 코쿠닝78은 넓은 주방과 기본 옵션이 아일랜드 식탁 등 실생활의 편의 위주로 맞춤 설계된 신축빌라”라며 “집 자체가 막힘이 없어 채광 및 환기가 용이해 주거 만족도 역시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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