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작은 결혼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고등법원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장바구니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축구감독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제주·전남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894
  • SBS ‘신화’ 김태우 “착한 외모와 달리 마음은 강철”

    김태우(30)는 축 처진 눈에 선한 인상을 지닌 탤런트다.그탓인지 그동안 드라마 ‘거짓말’에서 다소 모자란 인물인장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순진한 남한병사 등착한 역을 주로 맡았다.지난달 26일부터 인기리에 방영중인SBS ‘신화’에서 연기하고 있는 강대웅도 지금까지 보여준이미지와 별로 다르지 않다. 김지수를 지고지순하게 짝사랑하는, 1세대 벤처기업가로 너무 순수한 나머지 바보같아 보이기도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착해만 보이는 외면과는 달리 연기에 몰입하는 김태우의 내면은 지나칠 정도로 격렬하다. “어떤 역에 들어가면 그 인물이 되기까지 심하게 앓아요. ‘느낌’으로 연기하는데 그 인물의 느낌을 찾기까지 너무힘들어요.” 지난 3월 결혼한 아내조차 밥도 제대로 못 먹고,잠도 잘못 자면서 인물 연구에 몰두하는 그를 보고 놀랬을 정도다. 7년간 열애 끝에 결혼한 동갑내기 권은정씨에게 연기하는것이 너무 힘들다며 “이민이나 가버릴까”라고 얘기했다가작은 파란을 낳기도 했다. 183㎝,큰 키의 김태우는 초췌해 보일 정도로 말라 있었다. 중학교 2학년때 이후로 몸무게가 70㎏아래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는 그의 현재 체중은 66㎏.처음 주연을 맡은 영화‘버스,정류장’때문에 두달만에 7㎏를 뺐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맡은 역이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학원강사거든요.술 끊고,매일 빠짐없이 5㎞씩 달리고,기름기없는 한식으로 하루 두끼씩 먹으니까 살이 빠지더군요.” 김태우는 ‘버스,정류장’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로 일상의 미세한 것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했다.영화를설명하는 그에게서는 약간의 흥분이 느껴질 정도로 새 영화에 큰 애착을 보였다. ‘버스,정류장’에서 김태우는 17세의 여고생(김민정)을사랑하는 32세의 학원강사를 연기했다.처음으로 정사장면도연기했지만 “저의 벗은 몸을 볼 수 있다라는 정도의 부담없는 장면이에요”라고 설명한다. 신혼생활에 대해 묻자 “깨소금도 없고, 그저 ‘생활’도아닌,연애할 때와 똑같이 친구처럼 지내요”라며 특유의 ‘착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윤창수기자 geo@
  • [대한포럼] ‘퍼주기’ 시비속 유진 벨

    지난주 말,작지만 뜻 깊은 모임이 있었다.북한의 결핵퇴치 지원사업을 하는 유진벨 재단을 돕는 후원의 밤 행사였다.‘감나무집’으로 불리는 과천의 한 주택에서 열린 비공식적인 행사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 모임이참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8·15 평양축전 파문 이후 우리 사회는 극도로 어지럽다. 남측 방북단의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앞 행사 참석과 만경대 방명록 내용으로 촉발된 보혁갈등은 역사가 거꾸로역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안겨줄 정도였다. 방북을 허가한 임동원(林東源) 전 통일부 장관에 대한 한나라당의 해임건의안 가결은 DJP공조체제 붕괴를 초래하고정치권에 지각변동을 가져왔다.여소야대로 바뀐 정국에서야당과 보수세력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햇볕정책’을 실패한 정책이라고 공격하고 있으며 이번주부터 시작된국정감사에서도 금강산 관광사업등 대북 ‘퍼주기’정책이도마위에 올라 있다. 유진 벨 재단 돕기 행사에 초청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도‘퍼주기’시비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이 빠지고도 뜻을 함께 한 사람들이 100명 가까이 모였다. 이들은북한에서의 유진 벨 재단의 활동과 4대째 1백여년간 이어지는 유진 벨 가족의 헌신적인 한국 사랑에 뜨거운 감동을느꼈다. 19세기말 한국에 온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은 목포,광주,순천 등에 수피아·숭일·매산학교와 제중병원 등을 설립했다. 그의 딸 샬롯 벨과 결혼한 윌리엄 린튼은 대전에 한남대학을, 린튼의 아들 휴 린튼은 순천에 결핵진료소와 요양소를 세웠다. 외증조부를 기려 유진 벨 재단을 만든 스테판 린튼(한국명인세반·하버드대 한국연구소 연구원)과 요한 린튼(한국명인요한·세브란스병원 외국인 인권진료소장)형제는 휴 린튼의 5남1녀중 둘째와 막내로 ‘순천 촌놈’을 자처하며 전라도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유진 벨 재단은 북한 전역의 13개 결핵병원과 63개 요양소를 지원해 결핵약과 엑스레이,현미경,이동검진차 등을보낸다.환자들의 영양 보충을 위해 온실 설치와 농기구,씨앗,비료등도 지원한다. 지금까지 결핵치료 지원으로만 총 150여억원 상당의 대북물품을 지원했으나 북한 결핵환자의 약 5% 정도에 겨우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고 린튼 형제는 안타까워한다.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그랬듯이, 북한에서는 지금 결핵이가장 위험한 전염병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어 인구의약 5%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강한 통일을 위해 죽어가는 북한 사람들을 우선 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 유진 벨 재단의 북한 결핵퇴치 지원사업 이유다. 한국인보다 더 헌신적인 린튼 형제의 북한동포 사랑에 부끄러워하는 한국인들을 그들은 오히려 이렇게 위로한다.“우리는 단지 미국과 한국에서 북한의 결핵환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내는 사람들의 심부름꾼(짐을 나르는 나귀)일 뿐입니다.앞으로 한국사람들이 북한에 쉽게접근할 수 있다면 우리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때가 되면 우리는 이 일을 그만 둘 생각입니다.”스테판 린튼은 “지난 봄에는 우리들의 ‘심부름’이 금방 끝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제는 얼마나 오래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두번의 결핵 감염 경험을 지닌 그는 치명적인 세번째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도 피하지않는다. 한국인을 위해 모든 것을 내주고 한국땅에 묻힌 유진 벨과 그 후손들 앞에서 북한에 대한 남한의 ‘퍼주기’를 시비하는 것은 얼마나 옹졸하고 왜소한 짓인가. “정치적 통일은 정부만이 할 수 있다.그러나 통일전에 거쳐야 하는 화해단계는 민간이 하는 것이다.화해하지 않는상태에서의 통일계획은 물없는 바다에서 뱃놀이 하는 것과같다”고 스테판 린튼은 말한다. 감나무집 모임은 그 바다에 조용히 흘러든 작은 시냇물이었다. 이번주 말인 오는 15일부터 서울에서 남북장관급 회담이열린다.통일의 배가 순항할 수 있도록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시내와 강물을 이루어 바다로 흘러들기를 꿈꾸어 본다. 임영숙 논설위원실장 ysi@
  • 원시 비경 간직한 필리핀 보라카이섬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쪽빛 바다, 하얀 산호가루들이 쌓여 다져진 은빛 해변, 끝없이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방카’(필리핀 전통 목선)와 요트들이 오가며 남국의 환상적 경관을 끊임 없이 만들어내는 곳. 남태평양의 원시 비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필리핀 보라카이(boracay)섬.훔칠 수만 있다면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떼어다 우리나라 끝자락에다 숨겨두고 몰래 즐기고 싶은 섬이다.바다와 하늘을 온통 태워버릴 듯이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마주하면 탄성이 절로 난다.스쿠버다이빙,스노클링 등의해양 레저스포츠도 한껏 즐길 수 있어 휴양지로서의 조건을빠짐 없이 갖추고 있다.낭만을 즐기는 신세대 신혼부부들의‘밀월여행’지로 그만이다. 보라카이는 더이상 우리들에게 생소한 곳은 아니다.우리나라 여행객들이 최근 연간 10만명씩 다녀갈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이달부터 본격 결혼시즌이 시작된다.아직 마땅한 신혼여행지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한번쯤 권해보고 싶은 곳이다. [볼거리] 필리핀은 섬의 나라다.지금까지 발견된 것이 7,700여개.아직까지 지도 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섬이 얼마나 되는지아무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조그마한 섬들이 널려 있다.보라카이도 70년대 초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섬들 중 하나였다.루손섬과 민다나오섬 사이에 위치한 파나이섬 북서쪽에 길이 7㎞,폭 2㎞에 9,000여명이 상주하는 작은 섬이다.비행기로 마닐라에서 1시간30분 거리. 보라카이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의 설들이 있지만 현지어로 솜(cotton)과 거품을 뜻하는 낱말의 합성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섬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산호가루와 부서지는 파도가 어우러진 해안이 마치 하얀 솜을 풀어 놓은 듯 아름다워 붙인 이름이란다. 지명이 말해주듯 이 섬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화이트 비치’.하얀 산호가루가 만든 은빛 해변의 길이가 4㎞ 달하는‘은사십리(銀沙十里)’다.이 섬의 32개 해변중 가장 큰 해변으로 세계 3대 유명 해변의 하나로 꼽힌다.에메랄드빛 바다에 몸을 내 맡기는 해수욕도 좋지만 ‘은사십리’를 걷는기분도 그만이다. 해변의 산호가루는 밀가루를 부어 놓은 것처럼눈부시고 부드럽다.파도가 쓸고간 자리 위를 맨발로 걸으면 푹신한 밀가루 위를 걷는 기분이다.수정 같이 맑은 물이 발 끝에 부딪히며 부서지면 어느새 태초의 자연과 하나가 된다.해변을 따라 늘어선 야자나무와 야자잎으로 지붕을 이은 오두막형의 방갈로,비키니 차림의 늘씬한 미녀들이 남국의 환상적 이미지를 그려낸다. 특히 달빛과 별빛,파도소리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밤의하모니는 로맨틱한 분위기의 극치를 이룬다.은은한 달빛 아래 쏴 밀려드는 파도,쏟아져 내리는 무수한 별빛….해변에맞닿아 줄지어 서있는 리조트의 생음악 카페들이 불을 밝히고 유혹한다.현지인들이 구수하게 부르는 올드 팝송을 들으며 ‘산미구엘’ 맥주 한잔을 곁들이며 깊어가는 남국의 밤을 즐기는 맛도 일품이다. 해변 가운데에서도 북서쪽 끝에 위치한 프라이데이스,테라시스 리조트 앞 해변이 가장 넓고 분위기가 좋다.저녁을 프라이데이스 리조트에서 들면 전통민속공연 관람의 ‘부수입’도 챙길 수 있다. 이 섬에서는 해변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구경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지루하지 않다.싫증이 나면 카티클란 재래시장에서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다.해산물과 과일은 신선하고 가격도 저렴하며 값을 깎는 재미도 쏠쏠하다.전통 공예상품들도구경해 볼 만하다. [해양 레저스포츠의 천국] 보라카이 해안은 해양 레저스포츠의 보고다.특히 섬주변이온통 형형색색의 산호초 군락으로 이뤄져 있어 세계적인 스킨스쿠버다이빙 포인트로 명성이 자자하다.구명재킷을 입고수면위에서 물속 세계를 엿보는 스노클링,쪽을 풀어 놓은 듯한 푸른 바다 위를 시원스럽게 달리는 제트스키에다 모터보트 뒤에 밧줄로 매달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는 바나나보트.뿐만이 아니다.요트,바다낚시,패러세일링 등 초보자들도즐길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목들이 망라돼 있다. 이들 가운데서도 압권은 스쿠버다이빙이다.수영을 못하는초보자들도 한나절을 투자하면 물속에서 갖가지 화사한 열대어와 함께 노닐며 TV에서나 봐오던 무지개빛 산호초 군락의별세계를 만날 수 있다.빵을 하나 들고 들어가면 온갖 열대어들이 떼로 몰려와 순식간에 다 빼앗아가 버린다.가끔 덩치가 큰 녀석을 만나면 놀라기도 하지만 원색의 산호초 속으로 유유히 헤엄치는 열대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두려움은커녕 시간가는 줄 모른다.하루 60∼100달러(3,000∼5,000페소)로 값이 좀 비싼 것이 흠. 다이빙이 어려우면 스노클링을 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물이 수정처럼 맑아 수경을 끼면 물위에서도 5∼10m 깊이까지는 훤히 들여다 보인다.구명조끼를 착용하기 때문에 안전은걱정 할 필요가 없다.단 해변과 달리 해파리들이 달려들어따끔하게 쏘기 때문에 가벼운 긴 바지,긴팔 옷을 하나씩 준비해 가면 좋다. 대부분 여행사들은 신혼여행 상품에 스노클링과 바나나보트,바다낚시 등을 패키지 상품에 포함시킨다.점심으로 먹는 새우 등의 바다음식도 일품이다. 이 섬에는 18홀 골프장도 있다.주중에는 2,000페소,주말엔3,000페소.캐디피 등을 포함,3,500∼4,500페소면 충분하다. 보라카이(필리핀) 서은수특파원 sunsoo@. ■‘필리핀 보라카이섬’ 숙박과 문화. 보라카이에는 원주민이 운영하는 민박에서부터 특급 리조트까지 다양한 숙박시설들이 있다. 1급∼특급 수준의 리조트는1박에 2인기준 5,000∼8,500페소(1달러 약 50페소) 정도.민박은 에어컨 유무에 따라 값이 차이가 나지만 대체로 1박에400∼900페소 수준.민박을 하면 해변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어느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연평균 기온은 26∼27도. 건기인 11∼3월이 여행 적기다.시간은 한국보다 1시간 늦다. 필리핀은 카탈로그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다.칼리보공항에 내리면 우리말로 “샌들 사세요”하며 다가온다.한국여행객들이 많아 상업에 종사하는 원주민들은 우리말을 한두마디씩 할 줄 안다.가는 곳마다 교포가 운영하는 음식점과술집도 접할 수 있다. 보라카이의 주 교통수단은 트라이시클과 방카.트라이시클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들이 사용하던 것처럼 오토바이에바퀴를 하나 더 붙여 개조한 것이다.120㏄급 엔진에 최고 5명까지 태우고 다닌다.섬에 들어서면 해변가에 택시들처럼즐비하게 늘어서 손님을 기다린다.기본요금은 한 사람당 10페소.아주 먼거리는 부르는게 값이다.방카는 폭이 좁은 카누식 배에다 파도에 넘어지지 않게 양 옆에 통나무를 덧대어놓은 것이다. ■필리핀 보라카이섬 가는길. 보라카이로 바로 가는 교통수단은 없다.일단 필리핀 수도인 마닐라로 먼저 가 칼리보행이나 카티클란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카티클란행은 15인승 경비행기로 1시간30분 정도걸린다.트라이시클로 5분이면 카티클란 항구에 갈 수 있다. 카티클란 항구에서 보라카이까지는 배로 10분.칼리보행은 비행기가 커 안정감이 있지만(50분 소요) 카티클란 항구까지가려면 버스로 1시간30분 더 가야한다. 비행기 여행이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 도 있으나 일단방카에 몸을 실으면 모든 피로가 눈녹듯 사라진다.서울∼마닐라 노선은 필리핀항공(02-774-3581)에서 매일 운항하고 있다.
  • 페미니스트 이숙경씨 23일부터 ‘내공프로’ 시작

    꿈이 없는 소녀는 없다.그러나 그 소녀가 결혼해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아이의 엄마가 되면 그 많던 ‘꿈’들은 대체 어디로 가버리는 것일까. “사람마다 제각기 가능성이 있잖아요.하지만 집안에 틀어박혀 여유없이 살아가는 우리 ‘아줌마’들은 자신을 돌아볼 계기가 없어 ‘헛헛하게’살아갑니다.” 오는 23일부터 ‘내공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아줌마들의 잠재된 능력을 계발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아줌마페미니스트 이숙경씨(37)는 “의식화된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계도당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삶을 성찰하고 거기에서얻은 힘으로 미래의 행복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도록 하겠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씨가 이 프로그램을 처음 선보인 것은 98년 가을 무렵. 당시 결실은 제법 쏠쏠했다.비슷한 고민을 지닌 아줌마 5∼6명이 1주일에 한번 모여 수다를 떨다가 인터넷 웹진 ‘아줌마’를 펴내게 됐다.여대생들은 머리를 맞대고 행사기획,가상 실습을 해보더니 ‘월경 페스티벌’이라는 이색행사를 탄생시켰다.이후 부정기적으로 대여섯차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러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올해는 ‘글쓰기로 돈 버는 힘기르기’와 ‘마음의 힘 기르기’ 등 2개과정을 선보인다. “글 쓰고 싶어 안달이 난 여성들이 주변에 많습니다.그들의 능력을 취미가 아닌 생활비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거죠.” ‘글쓰기’과정의 강사로 참가하는 월간 육아전문지‘앙쥬’편집장 김영미씨(34)는 “단순한 작문법에 그치지않고 실질적인 취재요령도 가르쳐 잡지,단행본,웹진 등 활동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월간 교양지 ‘작은이야기’ 기자이자 ‘청일점’인 노정환,아줌마 논객 최보은,전 ‘씨네’편집장 조선희씨 등도 강사로 나선다. ‘마음의 힘 기르기’에는 이씨를 비롯해 이안혜성,로리주희씨 등 여성단체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활동가들이 나온다. 내마음의 자화상 그리기,심리검사,칵테일 파티 등 다채로운 코너를 마련했다.여섯살배기 딸을 둔 이씨는 “남편,시댁과의 관계에서 사소하게 열받는 게 알고보면 ‘정치적’인것”이라면서 “혼자서는 힘들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기대면 해결점을 얻을 수 있다”며 많은 여성들이 참가해줄 것을 바랐다.물론 미혼여성도 환영이다.이씨는이번 내공프로그램 출발과 나란히 ‘아줌마들의 인터넷 해방구’를 표방한 ‘줌마네’(www.zoomanet.co.kr)를 20일개설한다.이 사이트는 ‘내공’을 닦으려는 여성들의 신바람나는 놀이터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019-255-6566허윤주기자 rara@
  • [굄돌] 돌아오지 않는 손지갑

    며칠전 독일에 사는 친구가 오래동안 발레단에서 파트너로 일했던 독일인 신랑과 함께 결혼식을 하러 한국에 왔다. 우리 부부가 신랑 신부의 들러리를 서기로 했기에 결혼식전날 인천에서 신랑 신부를 만나 저녁을 먹으며 여러 가지 의논도 하기로 했다.도착 후 전화를 했더니 친구는 “정말 기가 막힌 일이 갑자기 생겨서 약속을 취소해야 될것 같다”고 말했다. 사연인즉 두 사람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독일과 미국에서 온 신랑의 남동생,친구와 함께 관광 겸 쇼핑을 한 뒤분식점에서 간식을 먹었다.그런데 신랑의 가방(작은 남성용 가방)을 두고온 게 생각나 분식점에 다시 갔다.3,4분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가방이 식당 카운터 선반 위에 놓여 있어 다행이다 생각하며 가방을 열었는데 그 안에 있어야할 손지갑이 없어진것이다.분식점 직원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친구 일행은 믿을수 없는 일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여권은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경찰서에 신고하고 신용카드회사에 연락을 하는 등 여러 가지 불편을 겪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순간 지난 1월 국제 무용 콩쿠르에 참석하러 스위스 로잔에 갔다가 버스에 두고 내린 가방을 되찾은일이 생각났다. 행사기간 동안 통역으로 자원봉사하던 분에게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스위스에서는 90%이상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수 있으니 아무 걱정을 말라고 했다. 정말로 이틀 뒤 호텔로 전화가 왔다.가방을 찾으러 분실물 신고센터로 오라는 것이었다.몇가지 질문과 내용물을확인한 뒤 가방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몇년전 일본에 공연하러 갔을 때 화장실에 놓고나왔다가 찾은 손지갑 생각도 났다.잃어버린 것도 아니고두고 나왔으니 당연히 누군가 가져갔겠지 하고 마음을 비운 상태로 40분 후에 가봤는데 그 자리에 손지갑이 있는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일본사람들은 절대 남의 물건에손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지만,그 일을 겪은 뒤 일본과일본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이 바뀌었다. 신랑신부는 많은 하객의 축복과 사랑속에 결혼식을 마치고독일로 떠났다.떠나기 전에 꼭 지갑을 되찾게되길 바랐었는데…. 한국에서 경험한 많은 좋은 일들과 함께 영원히기억할지갑분실 사건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김 인 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 외국인 에세이/ 영국 부모와 한국 장인장모

    나는 가끔 내가 고향 영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오래 살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한다.내 부모님은 세계 곳곳을 많이 돌아다니셨다.덕분에 나도 5개국을 돌아다니며 공부했고 공부를 마친 뒤에는 더 많은 나라에서 영어 등을 가르쳤다.마침내 나는 아름답고 현명한 한국 여성과 결혼까지 하게됐다. 나의 가족을 보면 세상은 정말 좁다는 생각이 든다.아버지는 스페인계 스코틀랜드인이다.어머니는 영국계로 남미 북부의 작은 나라 가이아나 출신이다. 누이들은 셋 모두 외국인과 결혼했거나 약혼했다.누나는 호주계 유고인과 결혼했으며 바로 아래 여동생은 브라질인과약혼했다.막내는 파나마 남자와 열애중이다. 처음 한국에 온 1991년 피부색이 서로 다른 커플의 데이트 모습은 무척 낯설었다.더군다나 결혼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그러나 요즘은 어느정도 평범한 일이 된 듯하다.1994년아내를 만나 결혼을 결심했을 때 아내의 가족과 나의 가족이 보인 반응은 너무나 달랐다.나의 가족은 결혼 자체를 축하해주었을 뿐 외국인과의 결혼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내 신붓감이 한국인이라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지?”라고 묻긴 했으나 내가 사랑하는사람과 결혼한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워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내가 전화했을 때 그는 직장상사와회의중이었고 “그래 잘됐다.나중에 다시 전화하렴.안녕”이라고 말씀하시는 게 전부였다.다시 전화해 약혼녀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을 때 “알고 있다.근데 왜 결혼할사람의 국적을 일부러 알리려고 신경쓰느냐”며 반문할 정도였다. 반면,나를 사위로 받아들이기까지 장인·장모와 얽힌 사연들은 길고도 많다.그중 그래도 즐거운 에피소드 하나.아내가 “외국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았다”고 말했을 때 장모의표정은 굳어졌고 이어 대뜸 나온 질문은 “미군이냐”였다. 아내가 영국인 영어선생이고 옥스포드대를 졸업했다고 소개하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얼굴표정도 이내 풀렸다.“아,신사 나라”라는 말과 함께. 마크 고메즈 키세스어학원 강사
  • [CULTURE & JOB] 케이크 디자이너·초콜릿 공예가

    ‘아름다움만으로 미각을 느끼게 한다’ ‘맛’뿐 아니라 ‘멋’을 중시해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들이 있다.케이크 디자이너 김원선씨(28)와 초콜릿 공예가인 쇼콜라티에 김성미씨(34)가 그들이다.이들은 케이크에 연인들의 사랑의 역사를 담고 초콜릿에 감미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각각 대한민국 1호가 된 ‘신(新)요리인’ 두 김씨를 소개한다. [케이크도 개성시대] 일본의 도쿄제과학교를 졸업하고 케이크 전문점 ‘아루’를 운영하는 김원선씨는 자신을 케이크디자이너라고 부른다. 그는 케이크를 장식하거나 모양을 종이에 디자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밀가루를 묻혀가며 케이크를 만든다.이를테면 ‘디자이너 겸 제빵사’이다. 96년 명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보석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하지만 8개월 동안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정작 그를 사로잡은 것은 다름아닌 케이크였다. 동네의 작은 빵집에서 만들어내는 맛있는 케이크에 반해 2년 과정의 도쿄제과학교 양과자 본과에 입학했다.학원이 끝나면 고급일본어를 배웠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맨하탄 호텔에 다니며 숨쉴 틈 없이 케이크에 관한 모든 것을 익혔다. 도쿄제과학교의 2년 과정 학비는 3,600여 만원으로 학생 가운데 약 10%가 한국 사람이다. 99년 한국에 돌아 온 김씨는 ‘호텔리어들의 사관학교’격인 신라호텔에서 6개월동안 일을 더 익힌 뒤 지난해 1월 서울 명동에 아루 1호점을 열었다. 김씨가 만든 일본풍의 케이크는 깔끔하고 예쁜데다 달지 않아 큰 인기를 끌었다.치즈,산딸기,커피 등으로 만든 담백한무스케이크가 특히 20대 한국여성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비결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반죽 거품’에 있었다.손으로 탁탁 쳐서 살려낸 거품이 케이크의 부드러운 맛을 살렸다. 코엑스몰,신세계백화점 강남점,롯데백화점 소공점에 이어다음달에는 롯데백화점 강남점에도 아루가 들어선다.1년여만에 4개의 지점을 열었으니 대단한 성공인 셈이다.앞으로 서울에만 지점을 두 개 더 늘린 뒤 케이크 디자이너 본연의 임무인 작품 완성에 주력할 계획이다. 만들고 싶은 것은 만든 지 1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결혼기념 케이크이다.설탕만으로 만드는 이 케익은 1단은 결혼식날 먹고,2단은 결혼식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3단은 결혼 1년뒤 아기를 낳을 때 먹는다.케이크 디자이너라하면 자칫 화려하한 케이크를 연상할 수 있지만 지나친 장식은 오히려 미각을 떨어뜨릴 수 있어 자제하고 있다.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케이크를 즐기러 가게를 찾는 손님의 99%가 여성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향커피보다는 녹차와 함께 들면 케이크의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다”라고 조언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초콜릿도 예술 작품] 5살짜리 딸을 둔 아줌마 김성미씨는초콜릿을 영국에서 배웠다. “초콜릿을 만드는 사람인 쇼콜라티에는 유럽에서는 400년전통을 갖고 있지요” 김씨는 벨기에,프랑스 등에서 수입되는 2.5㎏짜리 초콜릿덩어리인 커버츄어를 녹인 뒤 생크림,과일 등을 넣어 갖가지 모양의 초콜릿을 만들고 있다. 그가 처음 초콜릿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대학을 마치고 전공인 사회학을 좀더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유학을 갔다.이 때 케이크와 차가 한끼 식사가 되고 케이크전문점이 번성하는 것을 보고 내심 크게 놀랐다.하지만 ‘폼나게 유학 떠났다가 밀가루 뒤집어쓰고 빵 만들수는 없어’일단 마음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인생행로가 바뀐 것은 92년 영국 여행 때였다.시골의작은 구멍가게 같은 곳에서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초콜릿을맛보고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일본어 강사로 일하다 ‘아줌마의 길’로만 접어드는 것같아 결국 99년 영국 런던의 르 코르동 블루 요리학교에 입학했다.한국에서는 어디서도 가르쳐 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9개월 동안 빵-케이크-디저트-초콜릿 과정을 이수하면서 런던의 리츠호텔,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초콜릿 가게인 ‘레지스 부위’ 등에서도 일하며 잠잘 시간을 아껴 공부했다. 지난 1월 귀국,초콜릿 공예전을 가진 뒤 경기도 분당의 국제제과기술학원에서 3개월 동안 초콜릿 특강을 했다.처음 배출한 제자 가운데 2명이 벌써 이번달에 초콜릿 가게를 연다. 인터뷰 도중에도 20대 남성 2명이 초콜릿 가게를 열기 위해 김씨의자문을 구하고 있었다.서울 압구정동에 ‘초코 바’라는 술집을 열려고 하는데 안주를 초콜릿으로만 준비해 손님을 끌 계획이란다. 김씨의 최종 목표도 전문 초콜릿 가게를 여는 것이다.시골구석구석에 위치하고 있지만 가게마다 서로 다른 독특한 맛을 내는 유럽식 초콜릿 가게를 우리나라에도 만들고 싶다. 각 고장의 초콜릿을 입에 물고 관광을 다니는 유럽처럼 경주 관광을 할 때는 불국사가 새겨진 초콜릿을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김씨의 또 다른 꿈이다.벨기에의 세계적인 초콜릿 상표 ‘고디바’처럼 인삼 초콜릿이나 말린 과일대신 대추,곶감 등을 넣은 한국식 초콜릿을 개발하는 것도 장기 계획중 하나이다. 윤창수기자 geo@
  • “감각 총동원 대형벽화 그릴것”

    ‘배창호’라는 이름과 ‘블록버스터’.언뜻 들어선 영 균형이 잡히질 않는다.‘고래사냥’‘기쁜 우리 젊은날’‘깊고푸른밤’등으로 80년대 대표감독으로 자리매김된 배창호 감독(48).중견으로 밀린 그의 이미지 때문일까.아니면 한국영화판에서 블록버스터란 ‘팔팔한’ 신인감독들의 전유물쯤으로 굳어진 편견 탓일까.다 맞는 풀이다.감독의 솔직담백한얘기가 그걸 뒷받침해준다.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배창호의 때가 됐다고,제작사나 투자사도 판단했을 것이다.털어놓자면,자꾸 잊혀져 간다는 것도 두려웠고.”그는 요즘 새 영화 ‘흑수선’(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을 찍느라 온정신을 쏟고 있다.그런데 서울 청담동의 제작사에서만난 감독에게선 화색이 돈다.주연배우인 안성기와 몇시간째 콘티작업중이던 모양이다.관록은 못 속이는 법.묻지도 않았는데 선수를 친다.“그때그때 하고 싶은 영화가 있게 마련이다.소위 블록버스터란 걸 이용해 요행수로 인기를 되찾아보자는 셈부터 하진 않았다.울림있는 작은 풍경화로 조용히 다가갈 때도 있고,대형벽화로 대중과 왁자하게 호흡하고 싶을때도 있는 거다.”순제작비만 40억원인 ‘흑수선’은 그에게 의미가 크다.90년대 들어서도 한참 침묵하다 이정재를 주인공으로 ‘젊은 남자’를 찍어 성공한 게 95년.본격 충무로 제작방식을 빌려영화를 찍는 건 그로부터 6년만이다. 지난 3월 소리소문 없이 크랭크인한 영화는 벌써 20%나 촬영했다.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는,“액션 스릴러 멜로”다.장르를 오가며 50년이란 시간까지넘나드는 영화라서 카메라 이동폭도 무척 넓다.서울,구례,지리산,거제도에 그치지 않고,일본 ‘원정’까지 하게 된다.“놀랄만치 스펙터클한 화면을 보여줄 것”이라고 장담할 만하다. ‘흑수선’은 극중 남로당 스파이인 여주인공의 암호명이다. “제일 좋아하는 배우”라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안성기와,이정재 이미연이 주연한다. “흥행부담? 그런 건 없다.철저히 안정성을 담보받은 작업이다.스타출연진에 막강 투자·배급력(시네마서비스)이 떠받쳐 주는데? 문제는 감각과 깊이다.쏟아부은 돈 이상의 알맹이를 담는 것,내 몫은 그거다.”뼈가 든 소리다.최근의 영화들은 기획단계에서 성공의 절반이 결판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바꿔말해 뭔가.“영화에서감독의 연출기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은 콩나물 시루같다.한꺼번에 싹이 터진 아이디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또 언제 불쑥 ‘정’(2000년)같은 독립영화를 들이밀지도 모른다. 황수정기자 sjh@. * 중견감독들 ‘불안한 기지개’. 중견감독들,어디로 갔나 “한국영화판에는 허리가 없다”는자조가 터지는 이즈음.‘젊은피’만 밝히는(?) 제작풍토에밀려 ‘뒷방’으로 밀려난 40∼50대 중견감독들이 슬슬 움직이고 있다. 지난 90년 ‘혼자도는 바람개비’이후 11년만에 하명중 감독이 돌아온다.‘땡볕’으로 베를린영화제 본선까지 나갔던 그의 신작은 액션 ‘블러드 저스티스’(가제).제작비 20억원선에서 잘하면 가을부터 촬영할 계획이다.이장호 감독의 복귀소식도 반갑다.가톨릭 사제와 여대생의 사랑이야기를 그린멜로 ‘행복’을 95년 ‘천재선언’이후 6년만에 준비한다.‘북경반점’을 끝으로 두문불출했던 김의석 감독도 조만간무협물을 만든다.데뷔작이자 출세작인 ‘결혼이야기’때의명성을 되찾겠다는 열의다.정지영 감독도 신작 ‘은지화’로 돌아온다. ‘올가미’ ‘신장개업’등을 연출한 김성홍 감독은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사이코스릴러 ‘세이 예스’를 8月쯤 선보인다.장선우 감독도 ‘거짓말’ 이후 뜸했던 후속작을 찍느라요즘 부산에 묶여있다. 새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연말에 개봉될 예정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이들의 영화는 언제 ‘엎어질지’ 모른다. 일단 스타 캐스팅이 힘들다.또 흥행성이 보장되지 않은 한,충무로에 넘쳐나는 뭉칫돈들이 그들차례까지 돌아오진 않기때문이다.
  • [名士의 책읽기] 김진선 前2군사령관 ‘호치민 평전’

    대한매일은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간을 소개하는 ‘명사의 책읽기’ 코너를 신설했습니다.첫회는 호치민연구가로이름높은 김진선 전 2군사령관의 ‘호치민 평전’(찰스 펜지음,김기태 옮김,자인 펴냄)입니다. 호치민은 불란서 영국 중국 옛소련 홍콩 태국과 베트남 등을 돌아다니며 이름을 열 번이나 바꾸어야 했다.홍콩과 중국에서 감옥 생활도 보내는 등 베트남 독립을 위한 그의 생애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약소국의 지도자였기에 불란서와 미국에게 네번이나 피가끓어오르는 배신을 당한 후 내린 결론은 무력으로 이기는길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그러나 베트남인들은 맨주먹뿐이었다. 이때 그들은 호치민이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쳤다.20세기 최강인 프랑스와 미국에게 차례로 군사적 승리를 거두고 지금의 베트남을 세우게 한 원동력은 호치민의 정의롭고순수한 정신과 베트남인들의 단결이었다. 지도자로서 그의 일생이 존경스러운 것은 그가 겪은 고난의 길이 단 한줌이라도 자신의 영광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아니고 오직 베트남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봉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이를 좋아하고 정감적이어서 흔히 세상에서 보는 정치인들처럼 혀끝이나 머리로 말하지 않았고 가슴으로 얘기한 사람이었다. 그가 공산주의 세력과 제휴한 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로 어쩔 수 없었다.이 책은 그가 오직 베트남인의 자유와독립에 생애를 건 순수한 민족주의자였음을 밝히고 있다. 유서에서 ”나를 영웅으로 만들지 말라.나를 위하여 동상을 세우지 말라.내가 죽거든 화장하여 베트남의 남부 중부북부에 나누어 뿌려라.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자유와독립뿐이다.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싸우라”고 했다. 또 주석궁이 호화스럽다하여 수리공의 집에서 살았으며 각료회의도 누각에서 했다. 그는 베트남 민족과 결혼하였다하여 79세의 총각으로 이세상에 자식도 재산도 보석도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베트남 사람들은 정부에서 종용하지 않지만 그의시신이라도 보기 위해 줄을 지어 참배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이 군사적으로 미국에 승리하고 민족의 완전한 독립과 자유를찾은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베트남은 미국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강대국에 대항하여100%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으며 호치민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의 정신적 유산이 있는 나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나라에도 자기의 욕심과 개인의 명예를 100% 완전히 다 버린 호치민과 같은 순수한 지도자가나오기를 학수고대한다.백성이 그 얼굴만 보아도 사랑을 느끼고 진실을 볼 수 있으며 일할 기분을 느끼게 되는 그런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빈털터리로 왔다가 빈털터리로 돌아가는 호치민과 같은 지도자를 보고싶다. 작은 체구이지만 순수성이 태산도 머리를 숙이게 한 호치민,그의 지도자 상에 경의를 표한다.
  • [CULTURE & JOB] 개 전용카페 ‘바우하우스’낸 정진우씨

    “인간의 영원한 친구인 개들에게 작은 공간이나마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정진우씨(36)는 개를 ‘미치도록’ 사랑한 나머지 미술학원장을 과감히 단념하고 개를 위한 카페를 만들었다. 서울 홍익대 근처에 40평 크기로 차린 카페의 이름은 ‘바우 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노란 색의 널찍한 바닥위에서 ‘코커스 파니엘’‘콜리’‘슈나우저’‘아이리쉬 세터’등 유명한애완견 10여마리가 뛰놀고 있다.잡종도 2,3마리 섞여있다.개들은 손님이 오면 왁자지껄 출입구 쪽에 모인다.새로운 사람이 신기하기 때문이다.잘 모르고 들어온 손님은 깜짝 놀라지만 개들의 열렬한 환호에 이내 즐거워진다. 정씨가 이곳에서 키우는 개들 가운데 대장은 ‘하트’.유럽 목양개의 일종인 콜리종이다.양을 질서정연하게 몰던 옛 솜씨가 남아있는 지 카페의 개들이 소란을 떨면 ‘하트’는 규칙을 지키라는 듯 이리저리 참견하며 개들 사이를 누빈다. 소문을 듣고 애견과 함께 카페를 찾은 김유진씨(21·여)는“개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기쁘다”면서 “개도 카페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연히 카페를 찾은 허민구씨(28)는 “개전용 카페인 줄 모르고 왔지만 개들의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면서 “다른 친구들하고도 종종 오겠다”고 즐거워했다. 정씨는 “개를 데리고 다니면 갈곳이 마땅하지가 않아요.공원에도 못가고 영화관이나 커피숍은 상상할 수도 없지요.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개에게 작은 보답을 해주고 싶어서 이런 카페를 차리게 되었습니다”고 카페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카페에는 개와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는 넓은 의자가 탁자들이 놓여져 있다.메뉴에는 개를 위한 음식들의 목록이 예쁜 글씨로 적혀 있다.주인들을 위한 식사와 음료도 준비돼 있다.한 끼당 가격은 개나 사람이나 비슷하다.각각 4,500∼6,000원 쯤 한다. 아직 한달밖에 안 됐지만 제법 입소문이 났다.손님이 많이몰리는 날은 주말.이 때는 모처럼 개를 데리고 홍대 인근으로 산책 나온 애견가들이 많아 카페는 북적북적한다.애견 동호회의 모임 장소로 쓰이기도한다. 그러나 아직 카페 수입은 적자이다.평일에 찾는 사람이 적은 데다 자신이 키우는 개 10여 마리를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이들을 잘 보살피려고 시간당 2,000원씩 주는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했다.사료비와 병원비도 만만치가 않다.순종일수록 유전병이 많고 몸이 약한 편이다. 정씨는 “우리나라 애견문화는 좀 답답해요.혈통을 보전한답시고 근친 교배를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개도 사람처럼 근친교배를 할 경우 유전병도 생기고 머리도 둔해져요.외국은형제끼리는 40㎞이상 떨어뜨려 분양합니다”라고 말한다.근친교배한 순종보다는 잡종이 훨씬 똑똑하고 건강하다는 말이다. “개와 산책할 때는 비닐봉투와 휴지를 꼭 준비해야 합니다.개의 배설물을 방치하는 것은 큰 실례잖아요.”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동네 아이들보다는 개하고 어울릴 만큼 개를 좋아해 지금까지 결혼도 하지 못한다고 주위에서 놀린다”면서 “그래도 돈을 많이 벌면 커다란정원이 있는 교외로 카페를 옮겨 개들에게 더 좋은 공간을마련해주고싶다”고 소망을 밝혔다.(02)334-5152이송하기자 songha@. *날로 확산되는 애견 문화. 개에 대한 사랑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애완견미용실,애완견병원 등은 모두가 다 아는 익숙한 것들.요즘에는 애완견 콘테스트도 열리고 애견을 주제로 한 소설들도 인터넷상에서 활발히 오르내리고 있다. 서울대 임현진 교수(사회학)는 “인터넷 등으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들은 대인관계를 갖는 방법을 모른다”면서 “따라서 손 쉽게 키울 수 있는 개에게 모든 돈과 사랑을다 쏟게 된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산업화로 인한 핵가족화,맞벌이 부부의 증가,아이를 적게 낳는 풍조에 의해 인간은 정에 굶주리게 되었고 결국 개라는 애정의 대체물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회 현상을 반영하듯 개를 위한 문화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개전용 카페는 근래에 서울과 일산 등에 4개정도 들어섰다. 딱딱한 분위기의 개 훈련소는 이제 ‘애견학교’로 불린다. 개가 주체가 되어 교육을 받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애견들이 해마다 모여아름다움을 뽐내는 콘테스트가 열린다.여행중에는 개전용 호텔에서 잠을 잔다.개전용 영화관과 공원도 있다. 영화와 만화에서도 개는 자주 등장한다.개를 소재로 한 ‘벤지’와 ‘베토밴’등의 영화는 이미 고전이다.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에 ‘플란다스의 개’라는 애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등장했다.일본에서는 개의 습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만화도 있다. 인터넷 상에서 애견가들의 개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한국에만 인터넷 상 애견동호회가 227개나 된다. 개의 종류별로 세분화돼 있다.애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동호인끼리 주고 받는다.동호회에서는 최근 애견을 소재로소설쓰기가 유행하고 있다. 애견의 생생한 모습과 애견정보를 제공하는 개전용 인터넷방송국도 있다.개의 일상 생활,생일파티,탄생모습 등을 그대로 중계하는 인터넷 방송은 애견가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다. 개생활 용품만 취급하는 인터넷 쇼핑몰도 다양하다.쇼핑몰에는 사료와 과자뿐만 아니라 전용 빗과 악세사리,옷,애견백과사전 등이 구비되어 있다. 이송하기자
  • [여성일기] 남자같은 이름 때문에

    “얘야 너 군에 가라고 신체검사 통지서가 나왔다.” 대학교 일학년 여름 여자인 내게 신체검사 통지서가 나왔다고 집안이 발칵 뒤집혀졌다.‘정일태’라는 남자이름 탓이었다.웃어야할 지 울어야할 지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엄마와 나는 한참을 서로 쳐다봤다.이런 에피소드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결혼식때에는 신부가 정일태가 맞느냐는 확인전화가 쇄도했다.신혼시절에도 우리는 호칭에 있어 아주 불편했다.이름 부르며 무드 잡기는 아예 글렀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어른들 앞에서의 호칭도 어색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데이트 할 때도 남편은 내 이름을 잘부르지 않았던 것 같다.물론 지금도 내 이름을 잘 부르지않는다.업무상의 이유로 나를 찾는 사람들도 몇번이나 정일태씨가 맞느냐고 물어보곤했다. ‘정일태’.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불려진 나의 호적상이름이다.그전까지는 집에서 ‘은주'로 통했었다. 우리 집은딸 넷에 아들 셋,4녀 3남이다. 그 중 나는 넷째 딸이다.경주 정씨 집안 장손인 아버지 입장에선 넷째 딸로 태어난 내가 예뻐 보일 리 없었다.아들 손자를 바라셨던 할아버지는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 먼저 지어놓고 나를 기다리셨다.그런데 이러한 바램도 아랑 곳 없이 넷째 딸을 보게된 아버지는 작은 이불보에 담긴 나를 저 만큼,아니 더 자세히말하면 웃목 책상 밑으로 밀어 넣으시곤 담배를 꺼내 물고한숨만 푹푹 내 쉬셨다고 한다. 장손이신 아버지는 딸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붙여주면 동생으로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호적에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한일 자에 클태(一泰)라는 큰 이름을 그대로 올리셨다.그리고 정확히 3년 후 난 남동생을 보았고 이름 덕을 얼마나 톡톡히 봤는지 그후 남동생을 셋이나 둔 누나가 되었다. 사회 생활을 할때에는 남자 이름이 편했다.“정 형!”.사무실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 팀장이 바쁠 때 부르기도하는 나의 호칭이다.또한 남자 후배가 “일태 성(형)!”하고 부르기도 한다.난 “정 형”이나 “일태 성(형)”이라는호칭으로 불리는 게 싫지가 않다.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깨우쳤던 이름과 성격과의 상관관계.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적을 두고 부터는 아예 ‘은주’란 이름을 잊고 살았다.사회는 씩씩함과 용감함 그리고 적극성과 과감성을 나에게 요구했고 그에 성실히 부응해 나가다보니 이젠 ‘일태’라는 이름 외에 나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없다고 느껴진다.. 아버지는 넷째 딸 이름 덕에 아들 셋을 얻으셨다며 만족해 하신다.그리고 지금은 아들이 넷 이라며 자랑하고 다니신다.애교 많은 딸로서 보다는 집안 대소사를 깔끔히 처리하는 아들로서의 몫을 당당히 하고있는 나이기에. 정일태 KBS 홍보실
  • ‘빈부의 벽’앞에 멈춰버린 사랑

    남녀의 사랑이 정말 신분도 나이도 국경도 초월할까? 서로를 사랑함에도 불구,주위의 반대 때문에 헤어진 수많은 연인들은 사실은 사랑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MBC-TV 주말드라마 ‘그 여자네 집’은 극 초반 무조건적인 사랑에 짙은 조소를 드리운다.2년간이나 깊은 관계를 유지해 온 영욱과 태주는 아씨와 머슴 관계와 다름없는 사이다. 태주의 아버지는 작은 수리점을 운영하며 궂은 일을 마다않는 동네머슴같은 사람이고 어머니는 영욱의 집 파출부였다.따라서 영욱과 태주의 사이를 눈치챈 부모들은 고통스럽다.태주의 어머니는 영욱의 집에서 얻어 온 옷을 찢으며 스스로를 ‘속없는 년’이라고 욕하며 통곡하고 영욱의 아버지는 영욱의 뺨을 후려친다.세상에 딸 가진 부모 중에 딸이친정보다 못한 곳으로 시집가길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영욱과 태주는 부모의 아픔을 헤아려 서로에게 이별을 고한다.이기적이고 철부지이기 때문이 아니다. 영욱과 이별을 한 뒤,치매증상이 있는 할머니를 모시고 한강 둔치로 나들이를 나온 태주는 ‘강을 보면 서럽다’고말한다.한번도 가난한 집을 탓해 본 적이 없었던 태주지만그때만큼은 가난이 뼈저리게 서러웠다. 천애고아가 으리으리한 부자집 왕자님과 결혼하는 비현실적 드라마에 익숙해진 10대에게는 드라마가 다소 어색하다. MBC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그 정도의 빈부격차 때문에 헤어져서야 되겠냐’는 10∼20대들의 의견이 많다.그러나 세월의 쓴맛을 조금은 맛본 30∼40대 시청자들은 오랜만에 취향에 맞는 드라마가 나왔다고 반색이다.시청률도 20%를 넘어섰으며 꾸준히 상향세를 보인다. ‘그 여자네 집’의 박종PD는 “주말 저녁 온 가족이 함께볼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면서 “고부간의 갈등, 신구세대간의 갈등,빈부 차이에서 벌어지는 갈등 등을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결말로 흐르도록 하겠다”고말했다. 이송하기자 songha@
  • [이사람] 장애 입양아 키우는 신주련씨

    장애인들에게 척박한 이 땅에 한떨기 들꽃처럼 피어난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장애 입양아를 키우는 신주련씨(40). 그는 우리시대의 ‘천사’다.신씨는 온갖 정성과 사랑으로 아이를 돌보고 있다.너무 힘들어 지칠 때도 많다.그러나신앙과 사랑의 힘으로 고단한 삶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그의 사랑으로 아이는 이제 방끗 웃을 수 있다.그는 탐욕의세상에 사랑의 위대함을 전파하고 있다.그의 사랑은 세상을 바꿀 큰 힘은 아닐지 모른다.그러나 그의 사랑은 큰 감동이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신씨를 4월 중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일산병원에서 만났다.입양 딸인 아영이는 14개월째의 선천성 뇌기형 아기.아영이는 엄마품에서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웃는 아이를 내려다 보는 신씨의 얼굴도 아이만큼 맑았다. 아영이를 입양한후 병원이 그의 ‘집’이 됐다.많은 병원을 전전해야만 했다.본격적인 재활치료를 위해 1월10일부터 2월13일까지 세브란스 소아재활병동에 입원했었다.3월7일부터 4월14일까지는 일산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지금대전에 있는 자신의 집에 머물고 있다.그가 집으로 돌아오며 온 가족이 오랜만에 다시 모였다.부산 이모집에 있던 딸 하영이도 집으로 돌아왔다.신씨의 가족은 다섯 식구.남편 전순걸씨(40),자신이 낳은 삼천중학교 1학년인 아들 현찬이,네살짜리 입양 딸 하영이 그리고 아영이. 하영이는 지난 98년 5월 IMF경제위기 때 파산가정으로부터 입양했다. 신씨 가족은 오랜만에 단란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그러나 가족들은 그 단란함이 길지 않음을 잘 안다.아영이가 5월7일 일산병원에 다시 입원해야 하기 때문이다.하영이는 다시 부산에 있는 이모집으로 가야한다.많은 사람들이 5월의 봄을 즐길 때 신씨 가족은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헤어짐은 이제 익숙한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힘겨운 슬픔이다.대전에는 다시 아들과 남편만이 남게된다.남편은 대전에 있는 홍인호텔에서 경리를 맡고 있다. 가족들은 홀로 떠나야 하는 하영이와의 헤어짐을 특히 안쓰러워한다.이모네 있을 때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전화를하고 싶지만 참는단다.전화를 하면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라며 울까봐 전화를 못할 때가 많다고 한다.그 말을하는 신씨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현찬이에게 따뜻한 밥을 제대로 챙겨줄 수 없는 것도 가슴아픈 일입니다”라고 말할 때도 눈물이 고였다.그는 인터뷰하는 동안 여러번 눈물을 글썽였다.그 눈물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듯했다.그래도 아영이가 웃을 때는 그의 얼굴에도 웃음이돌아왔다. 아영이가 신씨 가정에 입양된 것은 2000년 3월.아영이는미혼모의 아이였다.34주만에 태어난 미숙아로 몸무게는 2. 4kg.아영이는 처음부터 힘들었다.너무 많이 울어 이웃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많은 불평을 들어야 했다.눈도 사시고,숨도 몰아쉬고,몸도 뻣뻣하고,잠도 안자고….아영이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어 너무 힘들었다고 신씨는 말한다.여러병원을 다녔으나 이유를 알 수 없었다.입양한지 7개월이지난 지난해 10월에야 정밀검사결과 선천성 뇌기형임이 밝혀졌다.병원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그 말을 듣는순간 앞이 캄캄했습니다.집에 돌아와서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주위에서 포기하라는 말을 많이했다고 한다.친정 어머니의 ‘간절한 설득’이 특히 가슴을 아리게 했다.어머니에게 “저 생각하지 말고 엄마 편한대로 살아가면 안돼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그때 “너는 네 아이 때문에울지만 나는 내 딸인 너 때문에 운다”는 어머니의 말을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은 아직도 심하다.우리는 지금 적지않은 장애아들이 버려지는 황량한 세상에 살고있다.장애아란 이유로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사람까지 있다.장애인들에게는 너무나 척박한 우리 사회에서 장애아를 입양하여 키우는 신씨 부부는 어떤 사람일까.그들은 어릴 때부터 특별난 사람들은 아니었다.신씨는 고향인 부산의선화여상을 졸업하고 81년 은행에 들어가면서부터 사회봉사에 눈을 떴다.부산 조흥은행 동료들과 봉사활동을 하며‘나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여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재활원·고아원 등을 다니며 그들에게 밥도 먹여주고몸도 닦아주고 함께 어울려 놀았다.그것이 즐거웠고 작은행복이었다.그러던 중 여동생 남자친구의 소개로 지금의남편을 만났다.그때 남편은 경성대 3학년이었다.남편도 청년시절부터 교회 봉사활동을 많이 해왔다.그들은 87년 9월 결혼했다.남편의 직장을 따라 대전으로 왔다. 그들은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는데까지 입양하자고 약속했다.봉사활동을 통해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너무많음을 알았다.IMF 경제위기때 많은 아이들이 버려지는 것을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알고 괴로웠다.‘입으로만 입양한다고 했지 행동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들은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기로 했다.그들의 아름다운 꿈은 하영이의 입양으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아영이는 그들의 두번째 꿈이다. 아영이는 너무나 힘겹게 자라고 있지만 신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신씨는 재활치료를 받으며 아영이가 조금씩 나아지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늦었지만 앞니가 두개나 났다”고 자랑하는 신씨는 행복해 보였다. 그래도 힘들 때가 많다.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겨우 먹고 사는 정도다.경제적 여유도 없으며 장애 입양아를 키우는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신씨는 너무나간단하게 말한다.“신앙과 사랑입니다.”말은 간단하지만 실천은 보통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많은 희생의 연속이다. 신씨도 보통사람들의 편한 생활을 동경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편하게 살고 싶을 때가 있어요.저도 사람인걸요.그러나 하나님이 저를 크게 쓰기 위해 선택했다고 받아드립니다.그것은 저에게 축복이죠.”신씨의 얼굴에 경건함이 스쳐 지나간다. 신씨 부부와 아영이는 지난 4월7일 소중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롯데호텔에서 한국을 방문중인 애덤 킹(한국이름오인호)과 그의 미국인 아버지를 만난 것이다.그때 애덤킹의 아버지는 앨범 속의 입양한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신씨부부에게 말했다고 한다.신씨는 그 ‘행복’을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다리도 없고 손가락도 네개밖에 없는 애덤 킹이 티타늄 다리로 우뚝 서 희망의 볼을 던지는 밝은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나도 아영이를 저렇게 당당하게 키워야겠다고 다짐했죠.” 애덤 킹은 한국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었다.그러나많은 장애인들이 외국으로 입양돼 가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도 함께 보여주었다.한국사람들은 장애아 입양을 무척 꺼린다.신씨 부부는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조금은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이고 있다. 신씨는 “시간이 흘렀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도 정성껏 아영이를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한국입양홍보회 홈페이지(www.mpak.co.kr)에는 아영이의 쾌유를 기원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그러나 아영이의 미래는 사실 불투명하다. 어느 정도까지 나을지 알 수 없다.병원비도 걱정이다.지금까지는 한국입양홍보회를 비롯한 여러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그러나 아영이의 밝게 웃는 모습에서 미래의 희망을 본다.신씨 부부는 장애아들도 사랑의 보살핌을 받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일산 이창순편집위원 cslee@. *장애아 입양 현실. 우리나라의 장애아 입양 현실은 너무나 부끄럽다.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00년 장애아 국내 입양은 전체 국내입양 1,686명중 1.07%인 18명이었다.같은해 장애아 해외입양은 전체 해외입양 2,360명 중 26.8%인 634명이었다.그나마 조금 다행인 것은 최근 국내 장애아 입양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다. 98년에는 전체 국내입양 2,289명중 장애아는 0.26%인 6명에 지나지 않았다.같은해 해외입양은 2,443명이었으며 그중 장애아는 917명이었다.99년에는 전체 국내 입양 2,492명중 장애아는 0.56%인 14명이었다.같은해 전체 해외입양2,409명중 장애아 입양은 825명이었다. 장애아 입양 가정에는 월 20만원의 생활비와 연 40만원까지의 의료비가 지원된다.그러나 장애아들은 병원 치료가필요한 경우가 많아 정부지원액은 크게 모자란다고 입양가정들은 말한다.
  • [여성 선언] 여성의 결혼

    사회 통념에 따른 결혼 적령기에 도달한 여성들은 누구나결혼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된다.시간이 흘러 바라보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을 했고,또 소수의 여성들은 독신생활을계속한다. 그런데 이런 선택들이 그 자체로 한 여성을 행복하게 해주거나 또는 불행 속으로 곧장 데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적령기가 되어서도 결혼에 대해,그리고 또다른성(性)인 남성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기는 대단히 어렵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과연 결혼이,남성이,또 시댁이란존재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식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이런 점은 남성의 경우 그 강도가 현저히떨어지는 것이 사실 아닌가. 우선 남성들은 결혼을 했다고 해서 하는 일을 바꾸는 경우가 거의 없고,환경이 바뀌는 경우도 적다.새로이 분가를 해서 사는 경우라고 해도 본가와 깊은 유대를 계속하는 것이보통이고,또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일이년 정도는 시집살이를 한 후 분가를 하는 형태가 많다.따라서 결혼을 한다는것은 남성의 경우 동종의 업종에서 직장만 바꾼 정도의 변화가아닐까 싶다(물론 어떤 여성과 함께 사는가 하는 것에따라 이후 자신의 삶이 많이 바뀌게 되지만).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가사와 육아라는 두 거대 산맥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로 비추어 미국의 정치학자인 캐럴 페이트만은‘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이란 자신의 저서를 통해 결혼이란 근원적으로 불평등 계약임을 입증해 보인다.그녀는시민사회가 진행되면서 개인과 개인,개인과 집단간에 자유로운 계약이 이루어진다고 전제하고 결혼계약이라는 것도여성과 남성간의 자유로운 계약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남성 예속성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4대 계약,즉 결혼계약,고용계약,매춘계약,대리모계약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지적한다. ‘인간들이 서로 동의하여 맺는 원초적 계약을 소설적으로묘사하는 것을 넘어서 중요한 정치기구의 설립 근거를 찾으려는 것’이라는 그녀의 계약론 규정에는 다소 동의하지않지만 결혼 자체가 퍽이나 불평등한 계약인 것 같다는 느낌은 좀처럼 내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독신 여성이며 시인인 조은이 쓴 ‘벼랑에서살다’란 책을 기획,발간하게 되었다.이 책에는 독신 여성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 뚜렷한 인간의목소리가 정갈한 언어로 각인되어 있다.나이 사십 넘어 혼자 사는 조카를 보다 못해 작은 아버지가 선을 보라고 강권했을 때,대책 없이 늙어가는 조카를 안쓰러워하는 인자한말씀이겠거니 하는 마음만은 고맙게 생각하려다가도 너무나깊은 피해의식에 한순간 “그렇게 결혼이 좋으면 작은 아버지나 한번 더 하세요”라고 소리치고 만 예화가 나온다. 이처럼 여성들은 기혼의 상처, 미혼의 상처로 에워싸여 있는것이다. 비단 결혼 생활의 스트레스 때문은 아니었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천재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어느 시에다 이렇게적었다. ‘금반지 안에서 희망이 보인다고? 거짓말, 거짓말이다. 슬픔만이 거기에 있다’ 계약론에 의지해서 말해 보자.여성의 결혼은 정말 합당한계약일까?이 의문의 답은 너무나 쉽다.‘아니다’. 정은숙 시인·마음산책 주간
  • FARBE 5월호 소개

    20대 여성을 위한 고품격 패션매거진 ‘FARBE’(파르베) 5월호가 18일 발행된다.이번 호는 본격적인 결혼 시즌을 맞아 웨딩 드레스,커플링 등 사랑과 결혼의 모든 것을 망라하는 특집을 마련했다.톱스타 김민종의 LA 촬영 화보와 김현주의 웨스턴 스타일링 화보가 눈길을 끌며 포지션 임재욱,강성연 등도 멋진 패션 감각을 선보였다. 코르사주 프릴 레이스 리본 등 로맨틱한 디테일을 잘 보여주는 화보 ‘로맨틱 레이디’,명품 팔찌를 우아하게 보여주는 ‘럭셔리 팔찌’는 비주얼한 파르베 패션화보의 결정판. 올 여름 세계의 유행 패션을 한발 앞서 소개했으며 디자이너 폴 스미스,톱모델 데본 아오키 등 패션상식도 폭넓게 다뤘다. 뷰티 부문에서는 이영자와 박철의 다이어트 성공기를 비롯해 작은 얼굴 만들기,고기능 헤어 케어법 등 실용적 기사를집중적으로 실었다.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 2001 가을/겨울 컬렉션 북과 2001봄/여름 선글라스 북 등 별책부록 2권 포함,정가 5,000원.
  • [21세기 담론-생명을 말한다](7)함석헌선생의 ‘씨알사상’

    (7)박재순박사에 들어본 咸錫憲선생의 '씨알(아래아)사상'. ●함선생님은 ‘씨알(아래아)’(씨알)의 옛글자 ㅇ을 큰 나(하늘),ㆍ(아래아)는 작은 나,ㄹ은 둘을 관계짓는 역동성이라고 풀이 하셨는데 개개인을 하늘이라고 보신건가요. 하늘의 기운과 뜻이 씨알 하나에 맺혀 있다.씨알 하나가하늘과 맞닿아 있다.사람 속에 하나님의 씨앗이 있다.이런뜻이지요. ●함선생님이 지금 살아 계신다면 생명운동을 하실 거라는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은 생명(生命)을 ‘생의 명령’이라고 풀이하신 적이 있습니다.‘살까’‘말까’가 아니라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라는 거지요.삶의 기본 원리는 ‘스스로 함’(自由)에두었습니다.스스로 하는 존재니까 삶은 새롭고 다양하면서도 하나로 통한다고 보셨습니다.동양의 무위자연과 서양의주체적인 사상이 융합돼 있습니다. ●선생님은 삶 자체를 싸움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생명의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환경과 부단히 싸워야 한다는 건 삶 속에서 갈등과 투쟁을 일종의 숙명으로 보신 건가요? 숙명이 아니고 ‘스스로함’에 대한 거스림과 반생명에대한 맞섬 이지요.선생님은 새가 나뭇가지에서 노래할 때지구의 중력과 싸움이 있어서 노래가락이 나온다고 봤습니다.순간순간 죽음과 싸움으로써 삶이 존속하고 삶 자체가솟구쳐 오르는 생명의 본래 모습을 지키려는 부단한 싸움이라고 보신 거지요.이 싸움을 그치면 죽음 입니다.사회적인삶에 있어서도 밀고 당기는 싸움을 통해서 공동체적 삶을유지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반생명과 맞섬,조화를 이루기 위한 싸움과 평화가 어떻게양립 할까요. 벌레 한마리가 상처를 입고 있어도 측은지심이 일어 나는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생명의 아픔에 반응하고 함께 하는 마음이 우주적으로 있다고 보셨지요.삶에는근원적으로 하나임을 느끼게 하고 큰 조화를 이루고 서로어울리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씨알’즉 생명은 하나님(전체,영원)과 맞닿아 있으므로 자기 안에 불멸의 힘이 있습니다.이 불멸의 힘을 깨닫고 마음을 열게 하는 데는 비폭력이라야 합니다.비폭력 투쟁은 모든 인간(상대방을 포함)에게빛,즉 양심이 있음을전제한 싸움입니다. ●불멸의 힘과 관련해 선생님 글중에 [클로버 씨앗 하나가소와 말의 내장을 통과하고 똥 속에서도 죽지 않고 있다가싹이 터,온 들을 푸르름으로 꾸민다’]는 대목이 인상적 입니다. 소나 말의 내장은 험난한 역사를 비유한 것입니다. ●힘 없는 민중,비폭력 투쟁이 끝내는 이긴다는 뜻이겠지요. 비석에 새겨진 역사나 문화는 죽은 역사,죽은 문화입니다. 그것은 지배자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산역사 산문화를 보려거든 민중 속으로 들어가라.]50년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1970∼80년대에 유행한 민중담론을 앞지른 것이지요.여기서 영감을 얻어 민중신학이 나왔고 세계적으로 붐을일으켰습니다. ●씨알 하나에 수억년 생명의 역사가 응축돼 있다는 대목은요즈음 생명공학에서 말하는 유전자 이야기와 상통 합니다. 씨앗이 대개 둥글다는 관찰도 생태학자들이 말하는 생태순환론과 맥이 닿고요. ‘네 속에 5천년 역사가 있고 무궁무진한 미래가 있다’는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씨알 하나,한 생명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지요.둥글기 때문에 그 착지점은 한점,즉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 입니다.묘하게도 그 후 문익환,김지하,박노해 등이 모두 감옥에서 창틀이나 담장 틈새에서 피어난 풀씨를 인연으로 생명의 힘을 깨닫고 생명사상을 말하게 되는데 이 씨앗이 주는 어떤 영감이 있는 것같아요. ●한 점 입지(立地)는 ‘맨사람’과 연결되는 것 같은데 지금은 누구도 ‘맨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우리 사회가 농민 노동자가 절대다수여서그런 말씀이 자연스러웠습니다.대통령이든 죄수든 사회적규정을 벗어 던지고 자기를 들여다 보면 씨알이 되겠지요. ●태평성대였더라면 노자 같은 분이 되셨을 것 같아요. 씨알을 억압하는 정치·사회적 구조에 대한 저항이지 정치·사회적 욕심은 없었습니다.성공은 못했지만 농장 공동체를 여러번 시도하시기도 했고요. ●‘씨알(아래아)의 소리’ 창간호에 [천하 씨알(아래아)이다 소리를 내도룩 하기 위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이살아 계신다면 요즈음 세무조사를 둘러싼 언론탄압 논쟁에대해 뭐라고 하실까요? 선생님은언론자유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씨의 소리’ 자체가 언론자유를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아까그 말씀도 이런 전제가 있습니다.[씨알이 나라의 주인이다. 정부나 언론사가 망해도 씨알은 영원히 남는다.씨알을 억누르는 지배층의 소리만 요란하고 씨알은 침묵을 강요 당한다.] ●언론의 자유지 언론권력의 자유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지요.씨알의 언론자유거나 씨알을 대변하는 언론자유지 씨알의 뜻을 왜곡하고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자유가 아닙니다.그것은 이미 언론이 아니니까요. ●선생의 유명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의 ‘생각’과데카르트가 말한 ‘생각’은 어떻게 다를까요. 요즈음 생태학에서는 데카르트를 자연에 대한 인간,여성에 대한 남성,감성에 대한 이성의 이분법적인 우위 내지 지배문명의 단초를 연 것으로 보거든요. 함선생님은 생각을 ‘하는 생각’과 ‘나는 생각’으로 나누셨습니다.여기서 ‘나는 생각’은 일종의 영감(Inspration)이고 ‘하는 생각’이란 이성적인 것으로 볼 수 있어 결국 서양 철학과 동양철학이 융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와 하나의 조화 철학이군요. 그렇지요.함선생님의 생명사상은 개인주의적,생물학적 생명론이 아니라 민족과 민중단위의 역사적 삶에서 피어난 주체적 사상입니다. △함석헌선생 연표. ▲1901년,평북 용천에서 태어남 ▲1919년 3·1운동 참가,오산학교 입학,스승 이승훈,유영모 만남.▲1923년 동경유학,첫 수감,1924년 동경사범학교 입학 ▲1928년 귀국,오산학교 역사교사 ▲1930년 오산학교 ML당 사건으로 두번째,1940년 세번째,1942년 네번째 수감 ▲1976년 3·1 구국선언 사건으로 여덟번째 수감,1977년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협의회 창설,한국인권운동연합회 의장 ▲1979년 10·26후 YW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아홉번째 수감,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1980년 가택연금,‘씨 의 소리’폐간 ▲1985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1987년 암으로 입원,1988년 서울평화올림픽위원장으로 추대,‘씨 의 소리’ 복간 ▲1989년별세(89세)△박재순 박사. ▲1950년생.▲1974년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1978년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 1978년 동대학교 대학원 졸업 ▲1994년 한국신학대학교 신학박사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장,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역임 ▲저서 민중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민중신학과 씨알사상’‘한국생명신학의 모색’외 5권 ▲번역 도로테 죌레의 ‘사랑과 노동’대담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씨알’ 4·19정신 표상 암흑기의 횃불. ‘씨알’은 함석헌(咸錫憲)선생의 시,역사철학,종교,정치,민족 사상을 일관하는 단어다.선생은 일평생 ‘씨알’을 화두로 삼았다.민족의 얼이 짖밟히는 것을 참지 못해 독립투사로 나섰고 ‘씨알’의 자유가 억압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어 민주 투사로 나섰다.선생의 시는 ‘씨알’의 노래요 선생의 역사철학은 한 알의 ‘씨알’이 섞어서 수많은‘씨알’로 다시 태어나는 역사를 이론화한 것이다. ‘씨알(아래아)의 소리’는 4·19 10주년인 1970년 4월에 창간됐다.그래서 시종일관 4·19 정신을 이어 받았고 5·16군사정권에 저항했다. 4·19가 씨알의 부활이라면 5·16은 씨알의 짓밟음이기때문이다. 선생은 ‘씨알(아래아)의 소리’를 내는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하나는 한 사람이 죽는 일입니다.씨알의 속에는일어만 나면 못 이길 것이 없는 정신의 힘이 있습니다.말중에 가장 강한 말은 피로써 하는 말입니다.전체 씨알을 봉기케 하는 데는 피로써 말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둘째는 유기적인 공동체가 생겨야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못삽니다. 사람이 강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요, 약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평소에 약하던 사람도 여럿이 뒷받침해 주면놀라운 용기를 얻어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게되고 반대로 아주 용감하던 사람도 자기가 감옥에 갇힌뒤어린 것들이 길가 헤맬 생각을 할 때 그만 간장이 녹아버립니다.그러므로 악과 싸우려면 개인 플레이를 해서는 안됩니다.] ‘씨알(아래아)의 소리’는 끝없는 탄압과 무수한 칼질을당했다. 그래도 이 연약한 ‘씨알(아래아)의 소리’를 매개로 민주인사들은 장작불처럼 열정을 모아 겨울공화국을 녹였다.
  • 3·26 개각/ 장관(급)·청와대수석 14명 프로필

    ■신건 국정원장. 164㎝의 단신이지만 강한 추진력과 칼같은 기질이 있어수사를 맡으면 끝을 보는 특수부 검사 출신.외모와 달리소탈해 부하직원을 편하게 해주는 장점도 갖고 있다.‘이철희·장영자 사기사건’을 담당했다.97년 DJ진영에 합류,98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을 지냈고 개각 때마다 법무장관 후보에 올랐다.김영삼(金泳三) 정권 초기 법무차관까지올랐으나 슬롯머신 대부인 정덕진씨와의 친분 시비로 중도하차했다.부인 한수희(韓受熹·59)씨와 1남3녀. ■임동원 통일. 치밀하고 깔끔한 업무처리 능력 때문에 육군소장을 지낸군인출신의 체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을 듣는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통일부 장관,국가정보원장 등 외교·안보·통일분야의 3박자를 두루 갖췄다. 95년 아태평화재단에 합류,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 및 3단계 통일론 등을 구체화했고 대북 포괄접근구상을 기획·집행했다. 국민의 정부 첫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부인 양창균(梁昌均·62)씨와 3남. ■한승수 외교통상. 치밀하면서도 원만한 성품의 국제경제통.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국제경제를 강의한 3선 의원이기도 하다.공사가 분명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외모에 비해 시원시원하고 통이 커 ‘작은 거인’이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주미 대사,청와대비서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현 미 공화당 행정부 인맥을 잘 아는 ‘미국통’으로평가받고 있다.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처조카사위이며 부인 홍소자(洪昭子·61)씨와 1남1녀. ■김동신 국방. 잔정이 없어 친화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아이디어가 풍부한 군내의 대표적인 작전 및 전략통.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해 대미 관계에 밝으며 부시 미 행정부 고위직에기용된 군출신 인사들과도 교분이 두텁다. 지난 96년 강릉 무장간첩 침투 당시 작전을 지휘하면서능력을 인정받았다.호남 출신 첫 육군참모총장을 기록했으나 96년 ‘북풍 사건’ 연루설 및 군 인사잡음이 화근이돼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부인 이혜정(李惠貞·57)씨와 1남1녀. ■이근식 행정자치. 조용하고 깔끔하며,다정다감한 성격의 정통 행정관료 출신이다.경남고와 서울법대를 나와 행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한 뒤 내무부와 총리실,청와대 등주요 부처를 두루 거쳐 행정경험이 풍부하다.꼼꼼한 스타일로 업무공백이 거의 없으며,원만한 대인관계를 바탕으로조직운영도 매끄러운 편. 부드러운 언행으로 실무를 이끄는 능력은 탁월하지만,소신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있다.부인 허위순(許渭順·53)씨와 3녀. ■김영환 과학기술. 노동운동가에서 치과의사, 시인, 국회의원,장관….곱상한외모와 달리 다양한 삶의 굴곡을 헤쳐 온 인물이다.94년펴낸 시집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는 70∼80년대학생운동권을 조망하는 내용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민주당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이 이끌던 재야단체 ‘통일시대국민회의’에서 활동하다 95년 6·27 지방선거 때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했다.기획력과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부인 전은주(全銀珠·42)씨와 1남2녀. ■장재식 산업자원. 지난 1월 민주당에서 자민련으로 이적한 여권내 대표적인경제통. 미 하버드대 국제 조세과정을 수료하고 국세청에서 근무한 경력이 말해주듯 특히 조세정책에 밝다.14대 총선 때 등원에 성공한 뒤 의정활동을 하면서 서울대와 한양대 등에서 세법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바둑실력(아마 7단)이 국회의원 가운데 최고수급에 속한다.소탈하지만 고집이세다는 평을 듣는다.부인 최우숙(崔又淑·64)씨와 2남1녀. ■양승택 정보통신. 지난 96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시절 CDMA(코드분할다중접속)이동통신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주역이다.TDX(전전자 교환기) 개발단장으로 전화 현대화의새 지평을 열기도 했다. 부드럽고 소탈한 성격의 테크노크라트라는 점에서 조직장악력은 미지수.박지원(朴智元) 신임 청와대정책기획수석과 가까운 게 발탁의 또다른 배경으로 대두된다.부인 황영자(黃英子·61)씨와 1녀. ■오장섭 건설교통. 건설사업가 출신의 3선 의원으로 14대 때 민자당 의원으로 등원했다.15대 총선때 신한국당 후보로 나섰다가 자민련 후보였던 조종석(趙鍾奭) 전 의원에게 패했으나 재선거에서 조 전 의원을 꺾은 뒤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겼다.원내총무,사무총장을 맡으면서 당의 안정에 크게 기여한 공로가 인정됐다.외유내강형으로 추진력과 협상력이 뛰어나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의 신임이 두텁다.부인 인계선(印桂善·51)씨와 2남1녀. ■정우택 해양수산.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자민련을 대표하는 경제통. 단정한외모에 논리적인 언변을 갖춰 TV 토론에 자주 얼굴을 내비쳤다.지난 2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미국 방문때 수행,입각이 점쳐졌다.14대 총선 때 통일국민당 후보로 출마,낙선한 뒤 15대에서 자민련 당적으로 국회에 입성했다.지난 79년 김영삼(金泳三) 신민당 총재가 직무정지 가처분을받았을 때 총재직무대행을 맡았던 5선의 정운갑(鄭雲甲)씨가 부친이다.부인 이옥배(李玉培·44)씨와 2남. ■김덕배 中企특위위원장. 활달하면서도 보스 기질을 지닌 의리파이다. 자수성가형사업가 출신으로 한국청년회의소(JC) 회장과 민주당 외곽조직인 ‘연청’의 회장직을 맡아 왔다.경기도 정무부지사재직때 구속된 임창열(林昌烈) 지사의 공백을 메워 실무능력과 의리를 인정받았다.현직만 14개에이를 만큼 활동반경이 넓다.연청회장으로 뛰어난 조직관리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김홍일(金弘一) 의원 및 동교동계 의원들과도가깝다.부인 유인숙(兪仁淑·42)씨와 2녀. ■나승포 국무조정실장. 행시 10회 합격후 전남 함평군수와 여수시장,목포시장,전남 행정부지사 등을 역임한 ‘지방 행정통’.원만한 성품에 시의성 있고 정확한 정책결정과 강력한 추진력이 장점으로 꼽히나 중앙무대에서의 지명도는 낮은 편이다.호탕한성격 덕에 직원들 사이에서는 ‘나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지난 95년 7월부터 3년10개월동안 전남 행정부지사를맡아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최장수 기록을 세우기도.부인 송순자(宋順子·58)씨와 3남. ■박지원 정책기획수석. ‘김심(金心)’을 누구보다 잘 헤아린다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핵심측근 가운데 한명이다.발군의 부지런함과치밀함,뛰어난 화술로 야당시절부터 ‘명대변인’이라는평을 얻었다.한빛은행 불법대출 의혹사건때 야당의 집중공세로 문화관광부장관에서 물러났으나 그 뒤에도 여론 수집및 전달의 역할을 해왔다. 이번 청와대 재입성으로 여전히김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보여줬다. 부인 이선자(李善子·58)씨와 2녀. ■이태복 복지노동수석. 시장 지게꾼에서 노동운동가,신문사 발행인에서 청와대수석으로 탈바꿈했다.국민대 2학년 때 반유신 독재투쟁으로제적된 뒤 서울 용산시장에서 지게꾼 생활을 하다 노동운동에 투신했다.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인‘노동의 역사’등 20여권의 노동저서를 펴냈다.‘불의에는 비타협적이나 소박한 노동자’라는 게 동료들의 평.88년 특별사면된 뒤 노동일보를 창간했고 뒤늦게 심복자(沈福子·44)씨와 결혼했으나 자녀는 없다.
  • SBS 새 드라마 ‘소문난 여자’ 촬영현장

    300여채 한옥들이 나붓이 엎드려 물오른 봄볕을 즐기는지난 22일.충남 아산시 ‘온양 민속마을’ 초입 솔밭동산이 드라마 촬영팀으로 모처럼 시끌벅적하다. “작은 정님아,자 걸어!”감독의 큐사인에 갈래머리 소녀가 사뿐사뿐 걸어오는가 싶더니,커다란 나무기둥 뒤를 지나며 나타난 이는 어느덧 성숙한 처녀.SBS 새 일일드라마‘소문난 여자’ 여주인공 정님이 16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순간이다. 다음달 2일 밤 8시45분 첫 방송되는 ‘소문난 여자’의시대 배경은 1946년부터 80년대까지.‘옥이이모’ ‘은실이’등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성준기 PD와 ‘울밑에선 봉선화’ ‘백정의 딸’의 작가 박정란은 “고통과 굴곡의 삶에 내던져진 이 땅의 여성들이 꺾이지 않고 정면으로 헤쳐나가는 모습을 그리겠다”는 각오다. 줄거리는 이렇다.아편쟁이 남편과 이혼한 뒤 어머니는 딸정님(강성연)을 데리고 재가한다.사랑하는 남자인 부자집외아들(박용하)과 혼담이 오가지만 아편쟁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재혼 등 집안 배경이 흠이 돼 이별한다.정님의 어머니는 홧김에 더 좋은 혼처를 찾아 시집보내지만 알고 보니 신랑은 정신질환자.얼마 후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의손에 끌려 친정에 돌아온다.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고 평소 자신을 흠모하던 남자(손지창)와의 재혼,모진 시집살이가 그녀의 앞을 막아선다. 강성연의 시대극 출연은 SBS 주말극 ‘덕이’에 이어 두번째. “비슷한 이미지로 굳어질까봐 부담스럽기도 했지만데뷔때부터 꿈꿔온 ‘길게 가는’ 연기자로 크는 데 시대극만큼 좋은 기회는 없는 것 같다”고 깊은 속내를 내보인다.곁에 앉아 있던 성 PD는 “20대 연기자 중 제대로 연기를 아는 두세명 중 하나”라고 연방 추켜세웠다. 드라마 ‘진실’이후 1년 만에 TV에 출연하는 손지창은결혼 후에도 정님을 잊지 못해 본처를 버리는 ‘병훈’역을 맡는다. 박용하는 정님을 깊이 사랑하지만 인습을 뛰어넘지 못한 채 평생 그녀의 보호자로 남는 ‘우진’으로,김미숙은 배운 것 없는 시골 아낙이면서도 시대를 앞서가는용기를 지닌 ‘정님 엄마’로 출연한다. 촬영장은 주로 온양 외암리 민속마을과 일산 제작센터 오픈 스튜디오.시대극이다보니 설탕 뽑기,칼갈이,땜쟁이 등향수를 자극하는 정겨운 풍경과 소품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성 PD는 “빠르고 통통 튀는 현대물과 시트콤 속에서헐렁하면서도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는 드라마를 보여주겠다”고 덧붙였다. 강성연,손지창 등 성인 연기자들은 아역들이 퇴장하는 15회부터 등장한다. 아산 허윤주기자 rara@
  • 외국인 에세이/ 여전히 ‘남편 돌보는’ 한국 직장여성

    11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아 보니 많은 변화가 곳곳에서있었다.한국 사회의 국제화같은 것이다.아주 작은 일이지만지금은 택시를 타면 나에게 “미국인이예요?”라고 묻는 대신 “어디서 왔어요?” 라고 물어온다.그것이 나에게는 즐거운 변화다. 그러나 아직 변화가 더디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다.한국인의 ‘집단 제일주의’와 ‘개인욕구’의 균형 등이다.뉴질랜드인과 한국인의 사고의 차이겠지만…. 몇주 전 비슷한 또래로 갓 결혼한 한국인 친구와 ‘직장인과 아내’라는 역할 병행에 대해 얘기했다.친구는 남편을사랑하지만 일 외에 집안일과 남편까지 돌봐야 해 피곤하고,시집의 중요한 행사 때는 월차를 내야 한다고 했다.얘기중그녀는 남편이 열쇠를 안 갖고 다녀 그가 오기 전에 집에가야 하며, 세탁소에서 남편의 셔츠도 찾아야 한다며 먼저일어섰다. 며칠 동안 이 일을 생각한 후 친구에게 왜 남편이 스스로자기 셔츠를 찾지 않는지 물었다.그녀는 남편이 더러운 옷을 입고 출근하면 친구와 친척이 자신을 나쁜 아내로 취급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상했다.뉴질랜드에서는 내 남편이 더러운 옷을 입고 출근하면 사람들은 그냥 그가 더럽다고 생각할텐데…. 많은 한국 남편들이 집 열쇠를 갖고 다니지 않는 것에도놀랐다.뉴질랜드에서 “문열쇠를 가진다”는 표현은 그 사람의 독립을 뜻한다. 남편을 도우려는 그녀의 마음과 시댁에 대한 효성과 이해한다.하지만 난 친구가 가정에 대한 부담없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직장에서 인정받기 원하는 것도 알고 있다. 지금부터 11년이 지난 뒤에 누군가 한국의 인상을 물었을때 “여성 역할의 진보”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서울에서 일한 지난 4년간 만난 높은 학력과 능력,자신감있는한국 여성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노동력 50%의공헌’을 버리는 것이 아닐까. 주한뉴질랜드대사관 2등서기관 캐롤린 웨더롤
  • 정치 뉴스라인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과 부인 손명순(孫命順)씨가 6일결혼 50주년을 맞았다. 민주당은 이날 김중권(金重權)대표가 김성호(金成鎬)대표비서실장을 통해 난 화분을 전달했으며,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도 화환을 보냈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민국당 김윤환(金潤煥)대표는 5일 오후 상도동 자택으로 난을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의 야당 총재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김덕룡(金德龍)·서청원(徐淸源)의원,김봉조(金奉祚)·신상우(辛相佑)전 의원,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한승수(韓昇洙)의원,김용태(金瑢泰)전 의원 등은 6일 저녁 롯데호텔에서 금혼 축하연을 열었다.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가 7일 정부특사 자격으로 일본을방문,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한 우리측 입장을 전달하고 시정을 촉구한다. JP는 지난 2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회동 뒤 교과서문제와 상관없는 일정으로 9일 출국하려던 일정을 갑자기 이틀 앞당겼다. 이와 관련,반기문(潘基文)외교통상부 차관은 5일 신당동 자택으로 JP를 방문,교과서 왜곡에 대한 일본 내 진행상황 및우리측 대응전략 등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김원웅(金元雄)의원은 6일 미 공화당 헨리 하이드 국제관계위원장 등 대북 강경파 하원 의원 3명에게 서한을 보내 제네바 합의가 한반도 평화에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김 의원은 서한에서 “지난 2일 귀하께서 다른 두 분 의원과 함께 부시 대통령에게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때 제네바 합의 준수를 약속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는 보도를 접했다”며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는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을 주었고 한국 정부와 국민이 추구하는 방향과도일치한다”고 반박했다. 또 “지난 50년 한국전쟁으로 수백만명의 사상자가 났으며한국 국민은 다시 이런 전화(戰禍)를 맞고 싶지 않다”며 “미 정부가 눈 앞의 작은 국익에 매달리다가 국제 사회에 평화의 파괴자로 비치는 일이 없기 바란다”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