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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 지체아·복합 장애아 가족…상처있는 풍경 보듬기/김원일 소설집 ‘물방울 하나‘

    “선배 작가중 김원일 선생이 젊은 작가들의 감성을 가장 잘 읽어낸다.” 한 작가가 사석에서 남긴 말이다.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김원일은 문단에서 쉼없이 현실 변화를 감지하면서 그 속에 담긴 문제를 날카롭게 끄집어내는 작가로 통한다. 김원일(62)이 12년 만에 낸 소설집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문이당 펴냄)에는 시대에 영합하지 않은 채 냉정하게 마주보려는 긴장감을 그동안 쌓은 연륜으로 빚어낸 흔적이 역력하다.작가는 그 동안 장편 ‘겨울 골짜기’‘불의 제전’ 등 주로 전쟁 전후의 상처를 탁월하게 그리는데 주력했다.성장기에 ‘좌익 아버지’라는 상처가 준 개인의 고통을 실존적 차원에 가두지 않고 민족사적 문제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이번 작품집도 가족사를 다룬 점에서는 연장선에 있지만 그 폭과 깊이는 질적으로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표제작 등 근래 쓴 5편의 작품을 모은 작품집에서 작가는 이제 자신의 가족사가 아닌 타인의 상처,구체적으로는 장애인을 둔 가족들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다루면서 그들의아픔을 따뜻하게 품고 있다.물론 남파 간첩으로 체포돼 장기 복역한 작은 할아버지의 사연을 추적하는 ‘손풍금’이나,인혁당 사건을 소재로 한 ‘고문 일지’ 등 분단으로 인한 상처를 다룬 이전 경향의 작품도 있지만 장애인을 둔 가족 이야기가 주조를 이룬다. ‘미화원’은 폐암에 걸린 운전사 김씨가 정신 지체아인 아들의 홀로서기를 걱정해 미화원 자리를 구해주고 자신의 여동생에게 뒷날을 부탁하는 내용이다.표제작은 시립도서관 사서인 여 주인공이 인터넷에서 복합장애1급인 동수의 공개구혼서를 보고 결혼,그의 마음을 열어가면서 하나가 되는 과정을 담았다.‘4가 네거리의 축대’에는 군인이 장난삼아 쏜 총알에 맞아 고자가 된 뒤 정신이 이상해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런 상처가 있는 풍경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아늑하고 따뜻하다.장애인은 대부분 선량하며,그들을 바라보는 주위 인물들도 훈훈한 인정의 소유자다. 작가의 연륜이 빛나는 것은 이런 주제를 풀어가는 문체.문장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빚기로 유명한 작가는 이번에도 자잘한 표현을 다 버린 채 인물들을 덤덤하게,그러면서도 면밀하게 관찰한다.현란한 수식어가 춤추는 흐름과는 멀찍이 거리를 둔 채 사실주의 기법에 충실하면서 주인공들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려준다.감정의 난무가 아닌 절제로 더 생생한 감동을 주는 이런 문체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객관적인 사유로 사건과 정황을 정시하며 그 사태의 내면을 바라보게 만드는 문학적 진지함의 성과를 유도한다.”며 “쉽게 읽히는 것만큼 쉽게 쓰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주말매거진 We/우리 결혼해요

    변요한·조수련씨-겨울바다서 반지 건넸죠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 8:7). 저와 수련씨가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 가고픈 말입니다. 우린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이제 석달이 되었지요.그렇지만,저희는 3월27일,꽃피는 화창한 봄날에 결혼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이렇게 빠르다면 무척 빠르게 서로를 평생 반려자로 결정한 데에는 무엇보다 신뢰가 바탕이 되었습니다.수련씨의 아버님은 작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전하고 계시는 목사님이십니다.제 아버지는 교회에서 장로님이시고요.이렇듯 우리의 관계는 신앙이라는 공통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련씨를 처음 만날 당시에 저는 인하대학원을 졸업하고 LG화학 기술연구원에 입사해 있었습니다.고향인 인천을 처음으로 떠나서 직장생활을 대전에서 하던 중에 수련씨를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그리고 수련씨는 작곡과 피아노에 매진하다가 여러 사정으로 건국대 영문과를 졸업하고,또 다른 자기 발전을 도모하던 시기에 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수련씨를 처음 만날 때가 생각납니다.작은 얼굴에 큰 눈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수련씨는 저에게서 책임감과 긍정적으로 사는 생각이 좋았다고 하더군요.물론,잘 생기진 않았지만 편안한 웃음을 지닌 외모도 한몫했다고 합니다.그렇게 좋은 생각으로 시작된 첫 만남 후 한달 정도 지났을 때 우리는 강릉에 겨울 바다를 보러 갔습니다. 강릉에 도착해서 겨울바다가 있는 경포대에 갔지요.모래사장에 앉아서 많은 얘기를 하다가 저는 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수련씨는 꽤나 당황하는 눈치였습니다.그렇지만 제 진심이 전해졌는지,전해주는 반지를 손가락에 끼었습니다. 저희는 유성에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장만했습니다.저와 수련씨 모두에게 대전에서의 생활은 처음이기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주변에 아는 이 한명 없는 객지 생활이 수련씨에게는 더더욱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그렇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서로를 신뢰하며 감사하며 생활할 수 있기에 우리의 결혼생활은 행복할 것입니다.저는 32년동안,수련씨는 26년 동안 각자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젠50년 이상 둘이 하나가 되어 살아갈 것입니다.지금껏 우리 둘을 위해 기도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우리의 시작은 분명 거창하진 않습니다.그렇지만 앞으로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창대해질 것입니다. 우명균·권은미씨-시아버님이 마담뚜? 처음 그를 보았을 땐 차분하고 침착한 목소리와 절제된 외모,제스처,너무나 민주적으로 생긴 외모도 아닌 그렇다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핸섬한 얼굴도 아닌,참 넉넉해 보이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잠깐 쉬었다.(심각한 폭탄이 아니라서 일단 안심…) 그를 처음 만나게 된 동기는 아주 아주 재미있다.난 그의 아버지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몇 번 뵌 적도 있었다.우리 아빠에겐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이자 형님 아우하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기에 그에 대한 존재도 조금은 알고 있었다.(시어버님이 장가 못간 아들 때문에 무척 고민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다.)맘속으로 “얼마나 까다롭고 눈이 높기에 여태껏(35살이 되도록) 결혼도 못했을까.” 이런 저런 상상과 함께 분명 심각한 하자가 있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아님 이혼남이거나…(호적등본 떼어 보려고 했음.)그래서 그와 만날 생각은 까맣게 하지도 않았고,아빠가 내 친구를 소개하라 해서 내 친구와 그와의 만남을 주선시켰다.친구는 그와 한 번 보고 연락없이 지낸다며 시큰둥했다. 그러다 9개월이 지났고 엄마와 같이 길을 가다 그의 아버지(시아버지)와 집 앞에서 마주쳐,인사를 했다.이렇게 해서 시아버님의 적극적인 중매로 내가 처음으로 그를 보게 됐다. 난 지금까지도 뭔가에 홀려 결혼하는 것 같다.내 친구는 번갯불에 콩구어 먹듯 결혼한다 해서 콩녀라 부른다.하지만 그래도 좋다.늦은 시간 집에 들어가기 싫어 동네를 몇 바퀴 돌고.이 나이에 주책이지…. 양성호·신정화씨- 중고차 덕에 만났답니다 오랜 기다림을 뒤로한 채 1월10일 반려자를 맞이합니다.정말 사랑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나나 봅니다.중고자동차 시장에서 그녀를 만났거든요. 어느 날 중고자동차를 사러 갔어요.얼마후 차량 등록을 위해 그 곳 회사 사람과 구청에 가게 됐어요.그때 같이 간 친구가 바로 이 사람이지요.구청에가면서 몇 마디 주고 받은 것이 인연이 됐습니다.사려깊은 이해심에 마음이 끌렸지요. 그 친구는 처음에 맘에 들지 않았대요.자동차를 사러 갔을 때,그 곳에 근무하는 남자 직원한테 결혼할 여자 친구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거든요.그때 사진을 보고 호의로 말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더군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에게 호감을 보였습니다.그리고 ‘이 사람이 바로 내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그동안 짝이 나타나지 않아 주위에서 걱정이 많았는데,정말 인연은 생각지 않은 곳에서 오는군요.아직 장가 못 간 친구들은 저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랍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1월10일! 설령 살면서 어려운 일을 만날지라도 하느님께서 주신 이 사람과 함께 항상 행복하게 살렵니다.할머니,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이 사랑 변치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끝으로 바쁜 시간에 결혼 준비하느라고 여러 가지 신경쓰고 맘고생도 많았을 정화에게 다시한번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정화야~~오빠랑 결혼해주어서 너무너무 고맙고.그리고 사랑한다, 정화야~!~”
  • 주말매거진 We/시네마 천국-풋풋한 동심영화 2편

    동심을 자극하는 영화 2편이 오는 16일 나란히 간판을 건다.영원히 늙지 않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소년을 그린 영화 ‘피터팬’(12세 이상 관람)과,곰과 인간의 우정을 그린 디즈니 애니메이션 ‘브라더 베어’(전체 관람).누구와 보러 가든 모처럼 풋풋한 동심에 감상의 키높이를 낮춰야 할 영화들이다. ●피터팬 동화책은 물론 연극,텔레비전 드라마,뮤지컬,애니메이션,실사영화 등으로 다양하게 태어난 바 있다.이번 작품의 전체 얼개도 비슷하다.동화 세계에 젖어 공상을 즐기는 웬디 3남매가 창문으로 들어온 피터팬에 이끌려 환상의 나라 ‘네버랜드’로 날아가 인디언과 어울리고 해적 후크선장 일당과 싸우는 등 갖가지 신비한 모험을 하고 돌아온다는 내용. 아무래도 이 영화에 쏠리는 관심은 기존 피터팬과 무엇이 달라졌는가일 듯.‘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으로 흥행성을 인정받은 P J 호건 감독은 원작에 충실하지만,상투적이다시피 굳어진 인물의 성격에 새로운 특징을 부여해 영화의 재미를 살렸다. 피터팬은 사랑에 무감각하고 약간은 당돌한 성격으로 나온다.주요 배역을 원작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 제러미 섬터(피터팬)와 레이첼 허드 우드(웬디)가 맡아 동심을 물흐르듯 빨아들인다.웬디의 비중도 부쩍 커졌다.그저 피터팬을 바라보기만 하는 수동적 소녀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편다.피터팬과 ‘비밀의 키스’를 나누는가 하면 후크 선장에게도 야릇한 감정을 갖는다.후크 선장도 기존의 악당 이미지에다 음악을 즐기고 외로움도 타는 로맨틱한 성격이 보태졌다. 여기에 1억 2000만달러를 들인 특수 효과나 스튜디오도 팬터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네버랜드에 도착한 웬디 일행이 솜처럼 몽실몽실한 분홍빛 구름에서 펼치는 연기는 환상적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브라더 베어 삼형제의 끈끈한 우애와,곰으로 변해버린 인디언 청년이 어린 곰과 나누는 우정을 핵심어로 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실사영화 뺨치게 입체적인 3D애니메이션을 기대했다가는 화면이 싱거울 수도 있겠다.영화는 컴퓨터 기술을 배제하고 선(線)으로 윤곽을 다듬은 전통적인 방식의 ‘셀’애니메이션.화면에서 따스한 체온이 스며나오는 듯한 느낌은 오히려 장점이다. 거대한 매머드들이 살고 있는 먼 옛날 북미대륙이 배경.우애가 유별난 삼형제가 숲속에서 큰 곰을 만나고,곰을 유인해 위기를 모면코자 맏형은 빙하 아래로 몸을 던진다.이때부터 남은 두 형제는 엇갈린 모험담을 펼친다.형의 원수를 갚으려던 막내 키나이는 주술에 걸려 곰으로 변해버리고,키나이의 변신을 알아채지 못한 둘째형 데나히는 그를 원수 곰으로 오해하고 죽이려든다. 키나이와,엄마를 잃은 수다쟁이 새끼곰 코다가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에 훈훈한 감동이 스며든다.간결한 이야기 구도 속에서도 교훈적인 메시지를 건져올리는 디즈니 특유의 재치가 돋보인다.예컨대 곰들의 시각에서 죽창을 들고 쫓아다니는 인간이 ‘몬스터’로 객관화되는 등의 묘사가 그렇다. 하지만 어른 관객들의 눈에는 주변 캐릭터들이 다양하지 못해 지루할 수도 있다.티격태격 끊임없이 말다툼을 해대는 말썽쟁이 사슴 두마리가 끼어들어 간간이 웃음을 던져주는 정도다. 이종수 황수정기자 vielee@ ■관객과 번개팅 피터팬 하이루ㅋㅋ 저 아직 안죽었어요 안녕하세요?피터 팬이에요.몇가지 더 할 말이 있어서 잠깐 영화 밖으로 나왔어요. 그동안 제 모습을 다양하게 그렸지만 사실 일그러진 게 많았어요.그저 맘껏 하늘을 날고 해적과 신나게 싸우는 정도였어요.심지어는 로빈 윌리엄스처럼 약간 ‘징그러운’ 어른이 분장하기도 했지요.이번엔 감독님께 본래 모습대로 살려달라고 애원했어요. 저는 원래 1902년 ‘작은 흰새’라는 소설에서 태어났는데 빨리 잊혀졌어요.그러다 1904년 극작가 제임스 배리 아저씨의 연극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어요.1924년에는 하버드 블레논 감독이 영화로,1953년엔 월트 디즈니사가 만화영화로 만드는 등 어린이 관련 문화 프로그램에서는 단골 손님이 됐어요.‘리턴 투 네버랜드’(Return to Neverland)라는 속편 애니메이션도 나왔을 정도예요.한국에선 이연경 누나나 윤복희 아줌마 등이 뮤지컬로 선보였죠.지금도 지구촌 어디에선가 저와 만나는 사람이 있을 걸요. 숱한 모습으로 땅에 내려왔지만 여전히 어른들은 제 마음을 잘 읽지못해 속상해요.그저 초록색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용감하고 낙천적인 한 소년 정도로 알지요.하지만 어른도 아이도 아닌 어정쩡한 사람이라는 남모를 슬픔도 지녔어요.이번 영화를 보세요.함께 놀던 아이들이 현실로 돌아가 아빠·엄마를 만나 기뻐할 때 저는 창 밖에 숨어 있잖아요. 그러나 더 쓸쓸한 것은 어른들이 제가 나오는 영화나 뮤지컬을 어린이날에 맞춰 한번쯤 보여주고는 잊어버리는 거예요.그래서 이번엔 좀 빨리 찾아왔어요.제발 늘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고 같이 느껴 주시면 좋겠어요. 이종수기자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타원형 감옥의 외부-백민석 소설 목화밭 엽기전과 그 맥락

    강 경 석 1.기율과 충동의 사이 백민석의 소설들은 낯설다.그래서 그는 활동 초기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그러나 그런 만큼 오해와 풍문속에 내버려져 있기도 했다.그에 관한 논의들 대다수가 “긍정과 부정의 양 극단에 서”(하상일)있다는 지적은 여기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작가 백민석은 과장된 지지와 일방적 폄하 사이에서도 소설적 기율에 대한 자의식과 하위문화적 충동 간의 길항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다.이는 그의 소설을 전위주의(avant garde)나 키치적 신세대론으로 소급하게 만든 흔한 실마리이기도 했다.그러나 이 길항이 가지는 가시적 면모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그보다는 하위문화소들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 작가가 무엇을 배치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90년대적 공통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혹은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261면)진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그의 소설들이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범주로의 손쉬운 편입을 수락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들은버려지고 배제된 것들(abjection) 말하자면 “병원 수술실에서 나온 적출물더미”(74면)의 잡종교배를 통해 태어났다.하위문화적 기시감으로 얼룩진 “적출물더미”들이 작중현실을 대신하면서 이들을 단순한 상징이나 알레고리로 보이게끔 만들지만,백민석의 서사전략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는 비유적 세계의 너머에 있다. 우리가 길어 올리고자 하는 주제들은 모두 그의 네 번째 장편 ‘목화밭 엽기전’(이하 엽기전)을 경유한다.‘헤이,우리 소풍 간다’(이하 헤이)로부터 본격화된 백민석의 소설 작업은 자못 활력적이었다.그리고 그 도정의 옥매듭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엽기전’이다.이후 출간된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하 장원)이나 장편 ‘러셔’도 이 텍스트의 장력 바깥은 아니다.‘엽기전’은 백민석의 성공과 실패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창이다. 2-1.기생(寄生)과 평질변이의 공간들 벤야민은 카프카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것을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초점이 있는 타원과 같다.”라고 썼다.이처럼 ‘엽기전’ 또한 두 개의 초점을지닌 타원 구조를 띠고 있다.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이 현대사회의 알레고리적 재현이라면 ‘엽기전’은 그 ‘재현’의 재현이다.은폐된 두 개의 초점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축척의 개략도 한 장을 준비하기로 한다. 주인공 한창림은 대학 강사이다.그에게는 수학과외 교사를 하는 아내 박태자가 있다.과천에 살고 있는 이들은 비교적 분명한 사회적 신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작업에 몰두한다.그것은 미소년들을 자신들의 집 지하실로 납치해 스너프필름을 찍는 일이다.이는 시종 “흰 연기”(281면)에 비유되는 공포스러운 존재 “펫숍삼촌”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펫숍의 영어표기 pet에’는 ‘성애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으며 거기에서는 “도착적인 냄새”(128면)가 난다고 설명되듯 그가 한창림 부부에게 돈을 지불한 뒤 얻는 것은 관음증적 쾌락이다.이야기는 박태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소년 윤수영이 이들 부부에게 납치·살해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생면부지의 한 회계사를 양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폭행하게 되고,그 때문에 오장근 형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일이 “질서에서 어긋나”(188면)자 펫숍삼촌은 박태자를 살해한다.한창림은 오장근과 펫숍삼촌에 대해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실패하고 체포된다.이 파국의 막바지를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그는 “모자이크 처리가”(280면)된 “목화밭”을 발견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개략도만으로 우리의 목적지가 금세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도착적 수사들을 일단 괄호치고 나면 텍스트는 의외로 쉽다.그것은 실존공간에 틈입한 우발적 폭력이 파국의 빌미로 된다는,매우 익숙한 플롯을 배면서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같은 맥락에서 “햇빛 때문에” 한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뫼르쏘(‘이방인’)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한창림과 뫼르쏘가 행사한 폭력은 부조리한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양담배”나 “햇빛”은 사후에 조작된 것일뿐 폭력의 본질적인 동기는 아니기 때문이다.요컨대 ‘엽기전’은 지식인 주인공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폭력적 충동 앞에 느닷없이 노출된 상황과 이질적이고 도착적인 수사들의 짜깁기로 구성되어 있다.이 발견을 열쇠로 삼아 텍스트에 좀더 가까이 가 보자. 우선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傳)이라는 이름의 작품 형식표지 때문이다.이것은 한 인물의 인생유전을 시간의 흐름에 입각해 서술하는,동아시아 고전문학의 대표적 형식 중 하나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적 굴절을 거듭해왔다.인물의 궤적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박씨부인전’‘홍길동전’ 혹은 ‘라울전’(최인훈)‘유자약전’(이제하)과 같이 인물 지시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필경 전 형식을 새롭게 전유하면서 그 스타일이 고안되었을 ‘한씨연대기’(황석영)도 사례에 포함시킬 만할 것이다.그러나 엽기(獵奇)는 인물이 아니라 어떤 사태를 지시하는 말이다.그로테스크(grotesque)의 일본식 번역어일 가능성이 높은 이것은,최근 폭발적인 유행과 함께 하나의 문화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그러므로 ‘엽기전’은 엽기라는 문화적 표상들의 탄생과 성쇠를 기록한 형식이다.그러나 텍스트에 파종된 엽기들은 발생·성장·소멸이라는 시간적 체험과는 무관하게비선형(非線型)적으로 뒤엉켜있다.이런 측면은 자연스레 공간적 상상력을 유도한다.텍스트의 문면에 돋을새김 된 모티프들이 “동물원”“펫숍 건물”“지하작업실”“서울랜드”“목화밭”“과천” 등의 공간 표상들임은 시사적이다.지하분묘(grotta)의 벽에 표현된 반인반수의 기괴한 신체들로부터 파생,매스미디어적 운반을 거치면서 그로테스크는 엽기로 굴절되었거니와 엽기는 먼 기원에서부터 이미 공간 자질(지하분묘/일그러진 신체)을 보유했던 것이다.그런 면에서 ‘엽기전’의 전(傳)은 교란부호 내지 착란이다.그것은 엽기가 전(傳)이라는 선형(線型)적 시간에 뿌리내리면서 빚어진 형질변이의 결과여서,결국 의식의 ‘적출물더미 하치장’을 표상하는 공간 기호로 작동한다.이것의 대표적 작중 용례는 일상의 표면에 묻힌 한창림 부부의 “지하작업실”일 것이다.이곳에서는 마치 무의식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설정 자체는 나체의 주술사가,흰 피부의 사내애와 벌이는,섹스의 향연이다.신께 제를 올리는 것이다.제물은 섹스이고,체액이고,신체이다.(212면) 재갈과 가죽 끈으로 포박당한 희생자는 끊임없는 린치의 반복앞에 저항할 힘조차 잃고 있다.한창림 부부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상황을 연출하면서 마치 마계의 제사장처럼 행동한다.악마숭배의 제의적 모티프는 하위문화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헤비메탈 밴드의 라이브 공연장은 가장 적절한 참조 대상이다.이들은 “무시무시한 대형 두개골 모형이 놓여 있고,사방에 스티로폼으로 만든 시체 조각 뼛조각들”(‘장원’146면)이 널린 무대에서 연주하곤 했다.그들은 관중을 향해 “날엉덩이”까지 흔들어대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는다.작가가 여기에 깊은 공감을 보이는 이유는 “모든 가식을 뚫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는 추잡한 날엉덩이의 미학”(‘장원’ 147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은 한창림의 지하작업실과 유사한 공간 자질을 갖는다.성스러운 신의 전당들이 지상으로부터 영원을 향한 상승 이미지라면,엽기전적 공간은 지하로 숨어든 하강 이미지이며,그것은 서구 고딕(Gothic)소설들이 공간적 배경으로 흔히 채용했던 폐쇄공간들(외딴 성,숲속의 저택 등)과도 통한다.한창림의 지하작업실이 “서울랜드와 동물원이 지어질 때 고립”(18면)되었다고 진술되면서부터 이들과 일정한 상호텍스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오트란토 성’(H 월폴) 같은 작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지하실이나 비밀통로,폭력적인 남성형상 등의 모티프들이 두루 겹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엽기전’이 일반적인 공포물이나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소재주의에 함몰된 비약이다.상호텍스트성이 아무런 매개도 없이 동질성으로 전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를 과장하다보면 최인훈의 ‘웃음소리’나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또는 이승우의 몇몇 근작조차 고딕소설의 일종으로 배분해야 지 모른다. ‘오트란토 성’이 봉건 이념의 종식을 징후적으로 포착한 경우라면,‘엽기전’은 근대 자본주의의 세포단위인 부르주아 핵가족의 내파(內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내력부터 다르다.이 앞뒤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의 심연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인데,그렇다고 텍스트에 드러난 고딕적 요소를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그것은 ‘신체 상해’의 문학적 상관물들이 동시대의 한국문학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것이 도시 체험의 축적에서 유래하는 일탈의 감각과 깊이 연루된 것이고 보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던 징후의 하나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그런데 테리 이글턴 같은 경우는 여기서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자체를 오히려 “고딕의 뒤늦은 부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그에 따르면 고딕이란,“편파적 시선에 의해 내던져진 괴기스러움의 그림자이며,허구 속에 안전하게 봉인된 팬터지이자 분노이기도 한,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의 포스트모더니티를 과장하는 일도,서구적 맥락에서 고딕을 규정하는 일도 아니다.고딕환상물들이나 하위문화 양식들이 다양한 방향의 역사적 분절과 매체 전이를 경험하면서도 “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기원적 동질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에서 말한 ‘재현(가상)의 재현’이란 무엇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다.‘무의식”이라는 표현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하위문화적 충동의 1차적 재현이란 이미 “안전하게 봉인된” 저항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백민석이 수행하고 있는 ‘재현의 재현’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버려지고 배제된 “적출물더미” 혹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들”(166면)은 “지하작업실”이나 “펫숍건물”에서 벌어지는 린치행위들(악마적 희생제의)과 함께 표면적으로는 위반의 정치학을 구사하면서도,내면적으로는 “사회체계”의 안전망 안에서 자기보존의 영속적 지위를 획득한 것들이다.그것은 또,하위문화 기제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엽기전’은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그리하여 텍스트는 반항의 에네르기를 통제하는 봉인,“과천의 위생 처리된 맨홀 뚜껑”을 해체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이때부터 텍스트 전개의 중심축은 지하작업실의 은폐된 사실들이 표층으로흘러넘치면서 발생하는,파국을 향해 이주한다.한창림이 지하작업실을 불태우는 장면(234면)은 그 전환점이다.이 상상적 봉인해체 작업을 통해 백민석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이 얼마나 안일한 기초 위에 축조된 것인가를 묻는다.한창림은 이를 “몰락”(232면)이라고 말한다.이것은 그의 목소리를 빌려 미리 암시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의 위협적인 눈들로부터 폭넓게 노출되어 있는지 깨닫곤 놀랐다.사람들은 다만 망상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자기가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았다.(68면) 첫 장편 ‘헤이’의 “퐁텐블로”나 ‘엽기전’의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낸 과천”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을 외화시킨 인공낙원이다.그리고 이 공간들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작업은,그 전제에서부터 “사회체계”의 기초를 탐색하는 작업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엽기전’의 전략을 논리적 비약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듯하다.이러한 종류의 탐색 작업은 늘 집 또는 가족의 문제와 관계 맺는다.근대문학의 전통이 끊임없이 물어왔고 또 동시대의 문학적 상상력들이 여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백민석 또한 가족이라는 공간에 대해 묻는다.그곳은 “우리의 지옥”(‘헤이’,244면)이다. 2-2.집의 포자(布子)들과 두 갈래의 초월 근대적 가족 이미지의 거처(topos)로 기능해온 ‘집’은 백민석에게 와서 다시 씌어진다.그는 가족 이념의 내파를 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는 실존주의 모티프를 통해 보여준다.임신 중인 박태자가 “가족 없이도(…)그럭저럭 결혼까지 하며 제법 꾸려져왔”(142면)던 자신의 삶을 강변하며 아버지의 방문을 거절하는 장면,그리고 화장실에서 사산(死産)하는 장면.이 두 장면의 연속배치는 결정적이다.자신의 기원을 부정하면서 재생산의 고리마저 끊어낸 ‘집’(또는 가족)이란 그 자체로 전복적인 하위문화 공간이자 “지옥”이다.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강렬도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서 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이타카(Ithaca)의 회복을 욕망하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백민석의 인물들은 기억의 서사를 추구하는 윤대녕의 주인공들과 대조적이다.그곳에는 어떤 기억이나 회상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부조리한 충동은 거의 언제나 우발적인,비가역적 동시성의 소산이기 때문이다.기억의 돌출은 기껏해야 한창림이 자기 어머니를 떠올릴 때처럼 파편적 이미지로 던져지거나(154면),박태자의 경우처럼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암페타민의 환각”(99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행위가 작가의 궁극적 주제를 직접 매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이는 작가가 한창림과 박태자의 교차진술을 통해 작중 상황을 반복 객관화시키면서 더욱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주인공의 욕망이 작가론의 직접적 상관물로 환원될 수 없다는,일견 단순한 사실이 지금껏 무시되면서 ‘엽기전’은 냉소나 허무주의적 저항담론의 일방통행로에 갇혀 버렸다.물론 ‘헤이’와 같은 초기작의 경우,하위-충동의 허무주의를 준거점으로 삼으면서 결국 세대론적 인정투쟁에 희생된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충동의 무정부적 방출을 일삼는 주인공이란 하나의 설정일 뿐이지 궁극은 아니다.이들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마치 스크린 속에서 만난 괴기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재현의 재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는 듯 담담하다.작중인물들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그러므로 허무주의적 세계관 또한 출발점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헤이’ 이후 작가에게는 단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출발점의 진화를 위해 망설임없이 밀고나가는 길,그리고 부조리한 충동들의 존재근거를 되짚는 길이 그것이다.앞의 것은 “목화밭”으로 가는 길이고 뒤의 것은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이 친구를 보라’로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길이다.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목화밭”으로 가는 길 끝에서 한창림 부부가 몰락한다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자칫 이 끔찍한 존재들의 실패담이 무책임한 냉소로 비칠 수 있겠지만,하위문화의 봉인된 저항이 늘 그런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태생적 한계에 의해 몰락하는 것뿐이다.그것은 기원 혹은 자신의 존재근거(집)를 스스로 거절하면서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백민석은 이것을 “괴물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숙명’이라는 말에 이미 전제된 것처럼,한창림 부부의 몰락은 단지 기성질서나 사회체계의 견고함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충격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아니 좀더 일반론적으로 말해서,주인공의 몰락은 늘 체제에 대한 굴복을 뜻하고 마는가.우리는 그 반대의 사례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쥘리앙 쏘렐((적과 흑))의 몰락이 단지 타락한 욕망의 몰락일 뿐이며 이동혁((객지))의 실패가 영웅주의의 실패에 불과한 것처럼,한창림의 파멸은 가상의 식민지 위로 흘러넘친 그 무정부적 충동의 패배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엽기전)에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토대는,기억의 환원작용을 철저히 단속하면서 “훗날,그의 기억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끔”(234면) 집이라는 상징을 소각시켜 버린 데에 있다.그것은 다만 지하작업실의 끔찍한 린치와 패악들을 포장하는 초월적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위-충동의 공간으로 전락한 집(獵奇傳)은 단순한 상징이기를 멈추고 마치 암세포나 포자식물들이 그렇듯 확산 증식한다.지하작업실에서 “섹스”와 “신체”가 “제물”(212면)이 된다는 진술은 그래서 설명 가능해진다.근대적 주체 재생산의 전제가 되는 남녀간의 성적 교환을 악마적 제의로 탕진하면서,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등치시켰기 때문이다.이 공간이 지닌 능력은 통상적 상상을 넘는 것이어서,거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에 필적한다.이 “지하작업실의 깜깜한 자궁”(91면)에서 길러져 나온 포자들이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 비정상적 존재들이며 체계의 관리망 안에서 “도착적”으로 왜곡된 인공 “수컷성”의 담지자들이기도 하다.“학교 안의 새끼 수컷들”(69면)이나 “동물원의 독방에 갇힌 만드릴 육식원숭이”(175면),“정신병원의 조울증 환자들”(138면) 등은 바로 그 증식의 사례들이다.지하작업실의 포자들은 훈육시설 즉 사회체계의 관리 시스템에서 기생한다. 이것은 빅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어두컴컴한 실험실이 괴물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자궁으로 기능한다는 지적(G 스피박)을 연상시킨다.그러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년)이 여행(모험)의 구조를 통해 비정상적 존재(괴물)의 정신적 성숙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면,‘엽기전’에는 성숙 혹은 교양(Bildung)의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조화로운 가족서사에 대한 강렬한 향수(괴물은 빅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를 지닌 반면 후자는 가족서사 자체를 히스테리에 부쳐버린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전(傳)이라는 시간적 형식이 왜 엽기라는 그로테스크의 변종과 만나면서 공간화 되는지를 부연한다.가족은 주체의 인큐베이터이며 성숙이란 그 시간적 진화 과정이다.텍스트는 전통적인 소설의 중심축이라 할 성숙의 문제를 수락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성의 장력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이 텍스트가 읽기의 습속에 저항하는 것은,한편으로 비선형적이고 공간적인 그래서 공시적 사유방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서사의 절연과 접합된 공시적 사유방식은 의미심장하다.근대적가족 이미지가 학교나 군대와 같은 훈육시설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본주의에 의해 수행되는 상징조작의 일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었다는 성찰과 맞닿으면서,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 작가들은 가족의 문제를 자신들의 중심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집단적 주제로부터 ‘엽기전’은 그러나 조금 더 전진해있거나 약간 비켜 서 있다. 약간의 비약이 허락된다면,분단 이후의 한국소설사는 가족의 균열을 중요한 축으로 설정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이것은 주로 결손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이데올로기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아비부재에 집중되어 있었다.이것은 김소진에 이르기까지 승계되었다.이 전통은 근원적 실향의식과 친족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해왔다.그러나 90년대의 풍속 주체들은 그것을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이들의 공과를 떠나서라도,가장 급진적인 작가로는 배수아가 적임일 것이다.그는 동요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이미 파산선고를 내린 듯이,“어머니”를 새로운 해체대상으로 설정한다.그러므로 결손의 모티프를 구사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아비부재가 아니라 어미부재로 나타난다.그러나 “어머니,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겠어요”(‘부주의한 사랑’)라고 외치는 배수아의 “아이들”마저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강렬한 향수야말로 이 도저한 거부의 진정한 추동력인 셈이다.‘엽기전’을 동시대의 유사한 징후들 속에서도 분별하게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텍스트는 가족서사의 부정적 연혁을 작성하면서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음각(陰刻)하고 마는 평균적 해체작업에 만족하지 못한다.그 거부의 의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양상을 띤다.텍스트는 가족서사에 대해 “너무나 흔해서 얘깃거리조차 안”(48면) 된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주인공들의 이러한 진술 자체가 텍스트의 궁극적 주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잠정적으로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라 부를 만한,근대적 가족제도의 구체적 질곡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작가는 이것을 요약하기 위해 “수컷성”이라는 특유의 조어를 반복 사용하고 있다. 그 외피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란 심층에서 남성적 지배질서를 지속시키려는 “사회체계”의 작동 방식을 함축한다.‘아버지와 아들의 경쟁’으로 상징되는 오이디푸스적 세계 안에서 성숙이란 결국 남성적 성숙에 다름 아니며,이는 근대적 가족 제도를 경쟁 이데올로기의 기초로 삼는 자본의 요구이자 동력이기도 하다.텍스트의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수컷성”이란 “영역싸움”“패권주의”“위계질서” 등으로 예시되는데 이것들은 경쟁 구조의 자기보존 양식을 말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이 질서에 붙들린 존재들은 어떠한 준거로도 윤리적 판단대상이 될 수 없다.이 세계에서는 선악의 이분 구도 따위가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는다.충동적 가상들(수컷성)만이 거주하는 끔찍한 세계이기 때문이다.이는 전작(前作) ‘불쌍한 꼬마 한스’에서 오이디푸스적 성숙의 발생학을 탐사했던,백민석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꼬마한스는 프로이트의 주력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 사례이다.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낳고,그것이 다시 말(言)에 대한 공포로 전이되어 꼬마 한스의 신경증을 구성한 것이다.백민석의 주인공들도 공포의 기척 앞에서 실어증을 경험하곤 한다. 한창림은 공포에 전율할 때마다 “누군가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박아넣은 것”같다고 느낀다.이 공포감은 “사회체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이는 백민석의 끈질긴 문제의식 중 하나인데,표현의 추상성을 넘어 은연중 역사적 환기력을 구체적으로 회복한 경우는 그에게 ‘엽기전’이 처음일 것이다.그는 ‘엽기전’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이곳 안양 평촌으로 이사오고 나서,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그게 94년이니까 벌써,칠 년 전의 일이다.(…) ‘뭔가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97년의 일이다.그저 엮어 놓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컸던 것이다. 97년은 국내 경제를 준 공황시대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 사태 혹은 신자유주의의전경화가 본궤도에 오른 시점이다.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엽기전’은 자본주의 사회체계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충격적 확인을 내면화한,우리들의 보고서다.한창림 부부와 그 혈육들이 하나같이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이라는 것과 “뷰티풀 피플”의 남편이 파산한 사업가로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예증이 된다.“퐁텐블로”나 “과천”이 보여주는 위장된 혹은 상상적 안온함은 생산자본이 투기자본에 압도된 ‘거품경제’ 만큼이나 “텅 빈”,그리고 아슬아슬한 것이다.그가 작중현실로 설정하고 있는 하위문화적 충동의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그것은 파국의 예감을 이기지 못한다.작품 구상 단계의 모호함이 명료한 의지를 얻게 된 것도,무정부적 충동의 발산에 기울어 있던 작품세계가 일정한 전환점을 획득한 것도 모두 동시대 감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엽기전’은 우리 시대의 집단신경증(부조리한 충동)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관철 혹은 “수컷성”의 일방통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이는 백민석이 의도적으로 성숙의 문제를 삭제한 결과이다. 그런데 성숙의 문제를 괄호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인가.하위문화적 충동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는 이런 의문들이 도사리고 있다.성숙은 블랙홀의 심처와 같이 끊임없는 소환의 인력을 발산한다.성숙의 저 끝 간 곳은 초월의 영역일 것이며 이것은 텍스트 내부에서 두 갈래의 길을 연다.하나는 수컷성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펫숍삼촌”을 제거함으로써 빅 브라더(‘1984’)에 필적하는 질서의 지배자 혹은 신적인 관람자(펫숍은 모든 것을 알고,또 본다)가 되는 길이며,다른 하나는 무정부적 충동을 끝까지 밀고나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편의상 앞의 것을 상승초월,뒤의 것을 하강초월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면,텍스트는 이 두 개의 극점을 지닌 일종의 타원 구조를 갖고 있다.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두 개의 극점이 발산하는 인력 사이에서 진동하는 존재들이다.이는 일반적인 성숙의 서사와 그 음각인 ‘프랑켄슈타인’류의 ‘하위-충동’ 서사를 양 극점으로 삼는 구조이기도 하다.앞에서 벤야민의 카프카론을 예시했던것도 이 때문이다. 하위문화적 충동의 포자들은 소설적 기율(또는 성숙의 플롯)에 기생하면서 ‘엽기전’이라는 변종을 만들어낸다.이 변종의 변종성은 텍스트 내부의 공간 배치,확산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의 공간으로 작동한다.이들의 공동 거처는 “제2정부종합청사”“서울랜드”,“동물원”이 있는 공간 과천으로 설정되어 있다.이곳은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로 뽑힌”(165면) 곳이며 그 이유는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냈기 때문이다.이곳은 그러므로 엄연한 실재이기를 그치고 ‘헤이’의 “퐁텐블로”처럼 중간계급적 이상의 재현물로 전도된다.“냄새”나는 “적출물더미”들을 은폐하면서 보편적 행복을 가장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나쁜 냄새”란 “수컷성”의 기화작용 혹은 확산을 말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의 상징 조작이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할 때 “살기 좋은” 계획도시 과천의 지하에서는 배제의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었던 것이다. 이 배제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초월적 수컷이 되는 수밖에 없다.실제로 “펫숍삼촌”의 수컷성은 배제 프로그램(사회체계)을 넘어서 있다.“세상의 눈은 그걸 볼 수가 없”(125면)는 상승초월의 영역에 놓이는 것이다.“어디에도 없으면서 어디에나 있는”(117면) “펫숍 공간”은 삼촌이라는 이름의 친숙성과 결탁하면서,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그에 반해 한창림의 엽기전 공간은 “뷰티풀 피플(사업실패로 와해된 가족 형상)”과 함께 프로그램의 희생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다.그들의 충동은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그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166면)들이다.영역 싸움과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한 수컷들인 셈이다.‘엽기전’은 “흰 연기”(281면)로 표상되는 “펫숍삼촌”의 신적인 수컷성(상승초월)과 결국은 거름이 되고 말,야수의 수컷성(하강초월) 사이에서 전율하고 있는 텍스트다. 2-3.타원형 감옥에서 목화밭으로 ‘야수적 하강’과 ‘비교(秘敎)적 초월’의 두 갈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갖고 뻗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장소-표면에서다시 만나기도 한다.그것은 타원 구조의 양 극점이 자신의 몸을 뒤틀어 다시 만나는 뫼비우스의 띠이다.그 장소란 린치의 장소-표면이다.거기에서는 감시와 처벌,혹은 임의적인 폭력이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등장인물들의 모든 탈출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텍스트의 세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마치 버튼만 누르면 언제라도 반복재생되는 스크린처럼,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감옥이자 부서지지 않는 벽들이다. 작중 공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펫숍공간은 가까이 다가가 “정체를 머릿속으로 짜맞춰보다가는,금세 덩치나 안전문이 떠올라 스스로 사고를 정지해버리”(123면)도록 만들면서 영역침범을 가로막는다.이것은 감시의 내면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태어나기 전의 공간”(122면)인 펫숍에 구체적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벽,“시멘트벽”이다.텍스트 내에서 하강의 경험적 한계인 한창림의 지하작업실 또한 피범벅의 벽들이다.거기서는 린치의 흔적이 끊임없이 번지고 미끄러지지만,벽면들에 안전하게 둘러싸인 채이다.그러므로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은 주인공들의 폭력적 도주를 이끄는 강한 유혹이자 인력의 중심이면서,동시에 막혀 있는 어떤 것이다.“사회체계”의 어두운 핵심으로 직핍하는 길은 아무 데도 없다.저항도 발악도 체계의 허가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이 출구 없음은 그들이 중심 혹은 주체가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 즉 “사회체계”로부터 호출받은 타자들이기 때문이다.그들은 한갓 게임속의 평면 캐릭터에 불과한 자신의 실존을 증언한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날 때부터 운명지어진 존재들이었다.(…)괴물스러운 위력이 얼마나 막강하든,바깥에 존재(타자성-필자)하는 한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물은 장난감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잠들어 있던 괴물을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 놓곤,재미로 쫓아다니며 괴롭히고,종국엔 괴물이 왔던 곳,사회 체계의 바깥으로 다시 쫓아보내는 악취미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261면) 그들이 줄곧 “내면 없는” 존재로 진술되는 이유가 그것이다.그들은 오직 표면만을 가질 뿐이며 마치 “뷰티풀 피플” 공간에 진열된 “웃는 플라스틱”(인형)들처럼 속이 텅 빈 존재들이다.신체상해 혹은 “린치”는 텍스트의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수도 없이 자행된다.“텅 빈 목소리” 혹은 “사색하지 않는”과 같은 수사들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린치 장면들.‘엽기전’의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내면이란 기껏해야 히스테리나 조울증·분노 등으로 표면화된다.신체는 하나의 표면이고 그 내부는 또 다른 해부학적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참혹한 인식이 텍스트를 무심히 곁눈질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이 피비린내 나는 일상 어디에도 사색이란 물건은 없다.”(134면) 이것은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이 막힘 혹은 “육중한 안전문”,“지표면”과 같은 일종의 벽면(표면)으로 제시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이것들은 끊임없는 표면들의 연속체로 구성되어 있다.“펫숍의 공간 구조는 자연스레,네 번째 공간,다섯 번째 공간,여섯 번째(…)갈수록 안전문은 육중해지고 접근 불가능해”(123면)지는 것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바닥없는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이다.그것은 그들이 스크린의 격자에 갇힌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견고한 감옥의 구조 안에서,한창림은 윤수영을 린치하고,펫숍삼촌은 한창림을 공포로 길들인다.여기서 초월의 전망은 ‘성숙한 깨달음’을 통해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절망적 추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두 극단의 장력이 이루어내는 벡터 운동의 산물이다.실제의 공간 과천을 주무대로 배치하면서 실제의 실제성을 마음껏 왜곡하고 있는 ‘엽기전’은 표층 차원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현실주의의 산물이 된다.여기서의 현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벡터운동이라고 했듯 생성과정 중인 어떤 것이다.그것은 근대적 가족이념의 이데올로기적 침윤 혹은 수컷성의 영역 분쟁으로 요약할 만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기괴하게 드러낸다.“현실을 직시하는 날엉덩이의 미학”은 여기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텍스트는 현실을 괄호안에 묶는 팬터지도 아니고 은연중에 독단적 현실을 들이대고 마는 낡은사실주의도 아니다.텍스트는 생성과정 중인 현실 자체이며 끊임없이 포자 증식하는 전경화된 공간 표면들의 연쇄이다.이것이야말로 비가역적 동시성의 산물이다.이 찢어지지 않을 것 같은 혹은 “육중한 안전문” 같은 표면들은 박태자가 늘상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이기도 하다.이 표면들의 연쇄는 단지 화소조합에 불과했던 한창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들면서 파국을 맞이한다.이때 자신의 근원적 종속성을 지각한,이 불길한 주연배우의 두 눈 앞에 “목화밭”이 출현한다.“목화밭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3부 제목) 한창림은 파국의 절정을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마치 우연인 듯,이 거대한 감옥의 바깥을 본다.그것은 초월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표면들의 완고함 앞에서,마치 자유의 계시인 것처럼 나타난다.그것은 언어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너무나 낯설어서 오히려 공포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다.텍스트는 그것을 “목화밭”이라고 부르지만,이미 통상적 기호로는 지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마치 최초의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떼듯,“목화밭”이라고 우연히 발음된 것뿐이다.그것은 숭고(崇高)한 대상이다.체계에 붙들린 어떤 의미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저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그는 알 수 없었다.어째서 여기가 목화밭인가? 씨는 아직 뿌리지도 않았는데,언제부터 목화밭인가? 그는 볼 수도 없었다.둔덕 전체에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었다.(…) 그는 목화밭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그는 삽을 놓고,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린 다음 울기 시작했다.누군가 그의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넣은 것 같았다.커다란 쇠뭉치를 그의 입에 처넣은 것 같았다.(280면) 파멸의 순간에 우발적으로 그리고 모호하게 던져진 ‘그것’은 그러나 ‘엽기전’을 허무주의로부터 구원하면서 동시에 미래로 운반해간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백민석은 언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다만 하나의 자족적인 사물을 생성시키고자 한다.그는 텍스트 위에 어쩌면 자기 자신과도 전혀 무관한 자유를 창조하려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어느 누구의 승리도 견인하지 않는다.우리는 모두 참패한 것이다.작가도 독자도 또 그 사이의 주인공들도 이 무시무시한 자유의 숭고한 출현을 그저 흔적의 형태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그것은 “모자이크” 너머의 현실,진정한 현실이다.“목화밭”이라는 우발적이고도 가난한 기호가 ‘진짜 현실’의 숭고한 출현을 계시하고 있다.존재의 근본적 종속성을 깨닫는 순간 “아주 작은 한 구멍”으로 그것도 “모자이크”에 가려진 채로 그것은 나타났다.부서진 몸을 이끌고 나타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자신의 가난함을 최대치로 드러내면서,이 타원형 감옥의 외부로부터 자유의 기억이 도래하는 것이다.그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형벌”(사르트르)일지도 모르지만,그 형벌은 해방의 약속과 함께 하는 형벌이다. 3.어쩌면 위험하기도 한 미래 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과 스크린 속의 괴물들은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엽기전’은 결국 한창림의 실패담이 우리 자신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어쩌면 우리들 관객조차도 스크린의 표면에 붙들린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인간은 누구도 예외없이,아직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아도르노의 말처럼,우리는 하나이면서도 여럿인,전지구적 자본주의·수컷성의 경쟁 이념·패악의 은폐전략인 가족로망스·안전처리된 저항의 초월적 가상들에 중독된 채로,우리 자신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망각한 것인지 모른다.이 중독성은 그 바깥을 사유하지 못한다.‘엽기전’은 바로 이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을 껴안으며,동시에 가상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뛰어넘으려는,우리들 모험의 기록이다.동시대의 소비적 재현들이 보여주는 무분별한 질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청신하게 환기시키는 것,이 거대한 감옥에 길들지 않은 ‘고통스러운 자유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것은 ‘엽기전’이 ‘재현의 재현’을 전략적 준거로 삼으면서 얻어진 결론이며,어떠한 질서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간고한 투쟁의 결실이다. 그러나 ‘목화밭 엽기전’이 도달한 자유의 가능성은 매우 아슬아슬한 역학 장(場) 속에 놓여 있다.그는 알레고리적 재현 전략이 갖고 있는 근본적 허무감과 형이상학적 환원주의를 힘들게 벗어나면서,90년대의 평균서사를 딛고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 중 하나를 열었다.그러나 또 다른의 수준의 위험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해체와 전도의 전략은 얼마든지 동어반복에 떨어질 수 있다.이제는 자신의 전제들조차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가 출발한 전제들에 동의하지 않은 채로는 텍스트를 거의 읽을 수 없을 만큼 부자유스럽다.특히 그의 유난한 반인간주의가 그렇다.그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은 모두 알 수 없는 장력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들이다.이것은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소급시키는,전형적인 구조주의식 사유법이다.반인간주의야말로 진정한 인간주의의 전제조건일 테지만,그것은 주장되고 선언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것은 반인간주의가 지니는 미학주의적 성격 때문이다.계몽이성을 독단으로 몰아붙이면서,그 자리에 광기와 착란을 대신 들어앉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물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쉬고 있는 n개의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살려내는 가운데,그것은 소멸해갈 것이다.미래를준비할 시간은 아직 필요하지 않은가. 지면 관계상 당선자의 양해 아래 원고 일부를 줄였습니다. ■당선 소감 먼저 심사를 맡아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그 분들은 내게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를 터 주셨다.다만 성실한 보행객이 되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당황했다.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세상을 보는 눈과 귀는 여태 어둡고 그것과 반드시 겹쳐져 있을 문학도,몸과 마음에서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그러나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헐거운 공부와 삶을 조금씩이라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그것이 이 무책임을 모면하는 유일한 길이겠다. 이런 자리에서 문학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은 내 깜냥도 깜냥이려니와 풋내기로서 주제넘은 짓이다.그러나 한 시대와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역동적 협업으로서의 ‘문학’이라는,큰 그림 하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이 협동작업의 작은 일원으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스승 아닌 분이 없다.은사님들은 물론이고 선후배 친구들,가족들까지도 모두 스승이었다.나는 그저 한 장의 백지가 된 것처럼 그들의 말없는 가르침에 어두운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다.그들의 빛나는 존재감이 나를 이리로 오게 했다.그래서 오늘의 이 고마운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갚지 못할 부채다.이 또한 잊지 않으려고 한다. 우선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하나뿐인 내 여동생 경희에게 공을 돌린다.모자란 글줄이나마 더듬더듬 쓰는 법을 가르쳐준 인하대 국문과의 선생님들,선후배 동료 분들께는 소주라도 한 잔 올려야 할 것이다.학부 시절을 내내 함께 했던 청하 동인들에게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아득하다.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마음 뉠 곳을 마련해준 나의 든든한 후원자 금희에게는 사랑과 고마움을 함께 전해야 하리라. 약력 1975년 대구 출생.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강정구씨의 ‘세상을 떠도는 목어들’은 차창룡의 시 세계를 풍자의 범주 안에 넣고 차창룡만의 특별한 풍자의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 글이다.텍스트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평론의 길이라면 강정구씨는 평론의 ABC를 안다고 할 수 있다.다만 문학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경험이지 주제의 그것이 아니다.주제를 가지고 경험의 세계를 휘젓다 보니 글이 겅중거리고 성길 수밖에 없다.김용하씨의 ‘비윤리적 세계의 재현과 윤리적 풍경의 기원’은 시적 직관을 통해 순간적으로 구현되는 창조적 공간으로서 시를 이해하고 그 창조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화의 경험을 읽겠다는 의욕이 두드러진 글이다.그러나 하나의 형식에 끈덕지게 매달렸다는 것이 개성의 표지가 될 수도 있지만,글을 도식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이원동씨의 ‘떠도는 가족,주변부 삶을 보듬는 결곡한 서사’는 공선옥의 소설을 길동무처럼 따라 읽으면서 공선옥 소설의 존재의의를 설득력있게 부각시킨 글이다.그럼으로써 이 글은 독자에게는 개안을,작가에게는 위안을,그리고 글쓴 이 자신에게는 텍스트와 더불어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텍스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강경석씨의 ‘타원형 감옥의 외부’는 백민석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와 미학적 경험 사이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조망한 글이다.생의 적출물의 의미,폭력적 충동의 존재 형식,고딕의 정치적 무의식,가족 이념의 내파,세계의 남성적 지배와 타원형 감옥 구조,디지털 화소조합으로서의 삶의 경험 등등 현대성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망라하는 한편 문학의 글쓰기가 그 주제들과 동일체를 이루면서 또한 해체·변형을 행하는 가운데 도출되는 미학적 경험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다.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김인환 정과리
  • 하이 서울, 예스 서울신문/외국인 4인 ‘서울 생활’ 방담

    ‘서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주한외국인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피부색도,눈빛도,언어도 다르지만 ‘서울’이란 주제로 한바탕 수다를 떨었습니다.서울에 대한 첫인상,서울에서 감동받은 일,월드컵 이후 서울 사람들의 태도 변화 등 얘기 보따리가 풀어질 때마다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일본인 우에치 규지(37)와 프랑스인 벤자민 주아노(34),미국인 제임스 로겐백(34),모로코인 마리얌 탈비(33)는 선입견을 버리는 것이 서울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벤자민 주아노 처음에 서울에 왔을 때 프랑스 파리보다 큰 도시라 크게 놀랐습니다.넓은 도로,콘크리트 건물들이 눈에 띄더군요.옛 건물이 많은 유럽과 비교할 때 서울은 새롭게 변신하는 역동적인 도시란 인상을 받았습니다.이젠 서울에 있다가 유럽에 가면 그곳이 ‘죽은 도시’란 생각이 듭니다. 제임스 로겐백 서울이 뉴욕과 별로 다르지 않아 당황스러웠습니다.아시아 국가의 수도인 만큼,미국 등 서양과는 사뭇 다를 거라 기대했거든요.언어를 제외하면,패스트푸드점,유명브랜드 가게 등이 미국 대도시와 똑같습니다.너무나 현대적이라 600년 역사를 지닌 도시라 믿기 어려웠어요. 우에치 규지 빈부 차이가 매우 큰 도시라 느꼈습니다.도쿄에선 큰 부자도,아주 가난한 사람도 많지 않거든요.모두가 중산층이지요.하지만 서울에선 100평 넘는 집에 사는 사람도,판자촌에 사는 사람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리얌 탈비 서울시민에 대한 첫 인상은 매우 정직하다는 거예요.동대문·명동 등에서 상인들은 물건을 밖에다 진열하잖아요.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훔칠 수 있는데 도둑질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어 놀랐습니다. 로겐백 서울시민들은 아주 사소한 일로 감동을 안겨줍니다.얼마전에 면접을 하러가는데 길을 잃었어요.두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휴대전화까지 걸어가며 끝까지 길을 안내하더군요.서울 생활이 고달플 때 따뜻한 서울 시민들을 생각하며 용기를 냅니다. 주아노 서울 시민들은 외국인에게 언제나 넉넉합니다.인구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예요.외국인을 집으로 흔쾌히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도와주는 사람들.서울시민들에게 받은 감동은 수없이 많습니다. 탈비 동생이 수술을 받아 3개월 동안 휠체어 신세를 진 적이 있어요.지하철을 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습니다.한번은 혜화역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나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어요.40대 중반의 아저씨가 다가오더군요.그리고 한 손으로 휠체어를 들어 옮겨줬습니다.마음 속으로 ‘이왕 도와주는데 두손으로 하면 좋을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아저씨가 어떻게 알았는지 반대쪽 손을 살며시 보여주더군요.그 분은 한쪽 팔을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이었습니다.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어요.그리고 잠시나마 불평했던 것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주아노 월드컵은 서울시민들에게 다양한 세계문화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다른 나라의 서포터스로 활동하면서 외국인을 편견없이 대하게 된 것 같아요. 탈비 월드컵 전엔 흑인 친구들과 서울 시내로 나가기가 꺼려지곤 했습니다.서울시민들의 차별대우로 민망해질 때가 많았거든요.그러나 월드컵 이후엔 그런 경험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피부색으로 차별하는 모습이 사라진 거죠. 우에치 외국기업·외국인 투자자가 점차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서울시민들도 외국인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로겐백 지난해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반미감정이 고조되면서 위협을 느끼기도 했어요.밤에 술취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으면 겁이 덜컥 났습니다.미국인 친구가 봉변을 당한 적이 있거든요.서울시민들이 미국정부의 정책을 반대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주한 미국인을 미국 정부와 동일시하지 말아주세요.저를 비롯해 미국정책을 반대하는 미국인이 많습니다. 탈비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9·11테러 이후 파키스탄인 등 무슬림들이 한동안 외출을 하지 못했어요.서울시민들이 이슬람 복장을 한 남성들을 보면 “왜 그렇게 끔찍한 짓을 했냐.”고 꾸짖었기 때문입니다.사실 주한 외국인이 무슨 잘못이 있나요. 우에치 외국인들은 독특한 한국문화를 이해하겠다는 애정 어린 눈길로 서울을 바라봐야 합니다.또 서울시민들도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개개인을 한인간으로 존중해 주길 바랍니다.그럴 때 서울이 진정한 ‘메트로폴리탄’으로 거듭날 거라 믿습니다. 정은주 박지연기자 ejung@ ●벤자민 주아노/프랑스인 (34) 서울생활 10년차.94년 군복무 대신 서울 프랑스학교 교사로 부임했다.의무기간 2년이 지났지만,한국문화에 완전히 매료돼 떠나지 않았다.대학교수로 일하다 2000년에 프랑스식당 ‘르 생텍스’를 열었다.값싸고 맛있는 프랑스 요리를 서울시민에게 소개하고 싶어서다.프랑스어로 한국 관광책자를 펴내는 등 ‘민간 외교관’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마리얌 탈비/모로코인 (33) 서울생활 6년차.모로코로 아랍어를 공부하러 온 한국인을 만나 결혼,딸을 낳았다.딸은 현재 일곱살.98년 박사학위를 마친 남편을 따라 서울에 왔다.한국인들은 혼혈아를 차별한다고 얘길 들어 걱정했는데, 딸을 편견없이 예뻐해줘 너무 고마워한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고향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보육원 등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우에치 규지/일 본 인 (37) 서울생활 5년차.지난 99년 일본인 아내와 서울에 온 뒤 별정통신업체인 프리즘커뮤니케이션스의 경영기획실장 겸 이사로 일하고 있다.지난해 아들을 낳았다.웹사이트(users.hoops.ne.jp/yorokaji)에 ‘한국사회 체험기’를 올려 큰 인기를 얻었다.부인도 요리학원에서 배운 솜씨로 닭볶음탕·육개장·북어국 등 한국요리 코너를 함께 운영한다. ●제임스 로겐백/미 국 인 (34) 서울생활 2년차.미시간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 법률회사에서 근무했다.뮤지컬을 전공한 덕에 94년부터 연극 3편에 출연했다.연극 ‘나의 아름다운 아가씨’(My Fair Lady)로 홍콩,방콕,싱가포르 등에서 순회공연을 했다.새로운 경험을 위해 지난해 홀연히 서울을 찾았다.지금은 강남구 대치동에서 아이들에게 동요·연극을 영어로 가르치고 있다. ■외국인이 추천한 서울의 명소 좌담에 참석한 외국인들은 서울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서구화된 빌딩 숲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역사도시란 이미지와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그래서 이들은 옛 정취를 간직한 곳을 서울명소로 꼽았다.또 이곳만큼은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지켜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공통적으로 뽑힌 명소는 인사동.전통의 향취가 물씬 배어나는 소품이 가득해 눈요기에 좋다는 것이다.다만 최근에 외국식 건물이 들어서는 등 ‘개발’ 조짐이 보여 안타깝다고 했다. 주한 외국인은 서울 주변 산에도 큰 매력을 느꼈다.대도시에 북한산·관악산 같은 명산이 위치한 것은 이례적이란 것이다.이들은 “세계 어느 곳을 돌아봐도 인구 100만명이 넘는 메트로폴리탄에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산이 몇개씩 있는 도시는 없다.”고 밝혔다.미국인 제임스 로겐백은 특히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서울대생은 누구보다 행복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여유있는 삶의 태도를 강조한 프랑스인 벤자민 주아노는 틈이 나면 종로구 가회동 한옥마을에서 산책한다고 말했다.서울의 ‘어제’를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고향 친구가 찾아오면 제일 먼저 가회동에 데려간다고 했다.그는 “모두들 한옥이 너무 아름답다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고 자랑했다.주아노는 특히 가회동 주민들이 한옥마을을 지키기 위해 서울시의 개발 방침에 적극 반대하고 나선 것을 높게 평가했다.그는 또 “클럽문화의 거리로 유명한 홍대 앞 노천카페에 앉으면 마치 유럽으로 돌아간 것 같아 행복해진다.”고 했다. 일본인 우에치 규지는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게 드는 남산도로,특히 한남동 하얏트호텔 앞에서 힐튼호텔까지의 드라이브 코스가 환상적”이라고 말했다.가족과 함께 잠실 올림픽 공원과 한강시민공원도 자주 찾는다는 우에치는 “시원한 한강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면 그 맛이 일품”이라고 말했다.유일한 여성 참석자였던 마리얌 탈비는 “이슬람교 예배당과 전통 음식점이 있는 용산구 이태원을 가장 좋아한다.”면서도 “밀리오레 같은 패션몰이 있는 명동에 나가 바쁘게 움직이는 서울 시민을 구경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고 말했다.제임스 로겐백은 “조선의 왕이 살았다는 창덕궁에 가면 옛 가옥구조와 왕조의 법도까지 한눈에 보인다.”면서 “작은 골목길마다 미술관,찻집이 들어서 있는 삼청동은 운치있는 가로수길이 마음에 든다.”고말했다. 박지연기자 anne02@
  • 38선 명퇴시대/ 성공한 30대에 듣는다-800만원으로 14억만든 조상훈씨 신년 덕담

    멀쩡히 점심을 잘 먹었다.그런데 뜬금없이 “멈춰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너무 분주했고,너무 어수선했다.그 날 저녁 사표를 썼다.2002년 10월 그렇게 회사를 그만둔 조상훈(33)씨는 이후 지금껏 표면적으로는 ‘백수’로 지내고 있다.이쯤 되면 샐러리맨들은 두가지 생각을 할 터다.“말이 사표이지,회사에서 잘렸겠지.”라거나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겠지.”라고.그렇다.그는 후자쪽이다.본인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에게는 믿을 구석이 있었다.돈이다.800만원을 굴려 14억원을 만들었다고 해서 갑자기 유명해진 젊은이가 바로 그다. ●명확히 보일때까지 현업에 충실해야 ‘38선’의 비애에 노출돼 있는 동년배 30대들을 위해,인생의 방향을 먼저 튼 선배로서 ‘신년 덕담’을 부탁했다.그런데 의외의 충고가 되돌아왔다. “30대는 시행착오를 겪을 여력이 없다.무모한 도전에 자신을 베팅(내기)하지 마라.안 보이면 쉬워보이는 법.명확히 보일 때까지 공부하고,그 때까지는 현업에 충실하라.만약 준비가 되기 전에 회사에서 잘렸다면 차라리 눈칫밥을 먹더라도 백수로 지내라.내몰려 방향 전환을 시도하거나 설익은 투자에 나섰다가는 넘어진다.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은 중간에 넘어지지 않고 한번에 서야 한다.” ●8년동안 부동산으로 돈벌어 부산이 고향인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조금씩 모았다.하지만 이 때만 해도 부자보다는 군인이 더 되고 싶었다.94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군대에 입대했고,시쳇말로 ‘말뚝’(장기근무)을 박았다.이듬해 스물넷의 나이에 일찍이 결혼날짜를 잡았다. 그러나 막상 결혼식이 다가오자 ‘(경제문제를 포함해)책임있는 가장(家長)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도망쳤다.부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였다.96년 800만원으로 주식을 샀다.3주만에 2배로 불어났다.순전히 운이었다.‘운에 인생을 계속 맡길 수 없어’ 곧바로 주식을 팔고 빠져나왔다. 신문의 경제기사를 샅샅이 읽어가며 ‘공부’를 시작했다.직업군인으로 전국을 돌아다닌 덕분에 부동산에 대한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1억 6000만원으로 97년 대전에 미분양 아파트 6채를 샀다.2년만에 8배로 값이 치솟으면서 자산이 단숨에 10억원을 넘어섰다.임대사업자로 등록하려니 군인 신분은 아무래도 불편해 2001년 육군대위로 예편했다.서울의 작은 기업체에 취직했다.연봉은 3000만원이 채 안 됐다. 직장생활이 2년이 되어가던 무렵,불쑥 사표를 던지고 빈둥빈둥 놀다가 지난해 6월 교통사고가 났다.무료한 병원생활을 이겨낼 겸,자신이 돈 번 이야기를 글로 써 인터넷에 올렸다.곧바로 출판 제의가 들어왔다.‘33세 14억,젊은 부자의 투자 일기’라는 책을 펴냈다.인터넷 다음카페에 ‘선한부자’(cafe.daum.net/fq119)라는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인터넷에서의 이름은 ‘죠수아’(여호수아의 영어식 발음). ●선한부자 만들기 무료 오프라인 개설 그는 선한 부자 1만명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다.선한 부자 1만명은 중산층 4만명을 만들어내고,이는 다시 40만명의 고용창출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계산에서다.“부자가 되면 외로워진다.덜 외로우려면 나눠야 한다.선한 부자는 외로운 부자의 반대말이다.” 2004년 2월에는 선한 부자가 되는 법을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선한부자 스쿨’도 오프라인으로 개교한다. 서울대 강당과 서대문구청이 제공하는 공간을 확보해놓았다.수강료는 공짜.억대 자산가이지만 집안에서 그는 여전히 천덕꾸러기 장남이다.그의 부모는 “(아들이)직장이 없어 장가도 못간다.”며 여간 속앓이가 심한 게 아니다.조씨는 “느닷없이 부자됐다고 선언하기가 뭣해서”라며 얼버무린다.그는 “지금껏 미등기 전매를 한번도 한 적이 없고,세금을 빼돌린 적도 없다.”며 일각의 ‘투기꾼’ 시선에 당당하게 맞섰다. 안미현기자 hyun@
  • “행복한 생활에 소외감” 친구·아들·딸 목졸라 여고동창이 ‘질투殺人’

    독신인 30대 여성이 화목하게 사는 여고 동창생 가족을 질투해 여고동창생과 그의 두 자녀를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9일 오후 7시쯤 서울 송파구 거여동 모 아파트 나모(34)씨 집에서 나씨의 아내 박모(31)씨와 아들(3),딸(1)이 목이 졸린 채 숨져 있는 것을 나씨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나씨는 “퇴근 후 벨을 눌렀으나 대답이 없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3명 모두 작은방에 쓰러진 채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30일 오후 숨진 박씨의 여고 동창인 이모(31)씨를 용의자로 추적한 끝에 붙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이씨는 경찰에서 “친구의 집에 가면 소외감을 느꼈고,친구의 시댁에서 내가 친구 집에 자주 드나드는 것을 헐뜯었다.”면서 “내가 결혼하지 못하고 혼자 살자 친구가 무시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사건 당일인 29일 오전 박씨의 집에 들러 150만원을 빌려준 뒤 오후 3시쯤 다시 박씨의 집을 찾아가 오후 5시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이씨는 작은방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처럼 속여 박씨를 안심시킨 뒤 아들의 입을 수건으로 막고 보자기를 머리에 씌운 채 목졸라 살해했다는 것이다.이씨는 이어 “아이들이 깜짝쇼를 보여준다.”며 안방에 있는 박씨의 눈을 가리고 작은방으로 데려가,빨랫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목을 졸라 숨지게 한 뒤 한살짜리 딸의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워 질식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씨가 범행 직후 현관열쇠가 든 박씨의 손가방을 들고 나가 현관문을 밖에서 잠근 뒤 창문으로 손가방을 집어 넣고 귀가했다고 밝혔다.박씨의 남편 나씨는 퇴근 직후 인기척이 없자 이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며,이씨가 창문을 통해 열쇠가 든 손가방을 꺼내자 함께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고교 시절 절친한 친구였던 이씨와 박씨는 2년 전 동창 모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다시 만났으며,혼자 사는 이씨가 박씨 집에 일주일에 3,4차례씩 왕래하면서 한가족처럼 지내왔다.경찰은 “이씨가 친구의 남편인 나씨에게 일방적으로 ‘좋아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종종 보냈다.”면서 “박씨의 화목한 가정생활을 시기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 서울신문 재탄생 특별칼럼 ‘이혼 클리닉’김영희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의 상담 이야기

    “살아보니까 인생이란 참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에요.결혼생활과 자녀교육 등 모든 문제를 동생이나 자식,친구와 얘기하듯 상담하고 싶습니다.” 김영희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은 새해 서울신문에 게재할 에세이 칼럼 ‘이혼클리닉-만남,사랑 그리고 헤어짐’을 통해 “한 가정의 불행이라도 줄이고 싶다.”며 작은 소망을 밝혔다.올해 이순(耳順)의 나이에 접어든 김 위원 자신도 신문기자의 아내로 37년 동안 힘든 결혼생활을 하며 늘 이혼이란 단어를 마음에 담고 살았다.그런 경험이 이혼 조정을 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그래서 김 위원의 조정 성공률은 조정위원들 중에서 매우 높아 70%를 웃돈다.칼럼에서도 경험을 바탕으로 이혼하려는 부부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생각이다. 부부가 그의 설득을 받아들여 이혼소송을 취하할 때는 고맙기 그지없다.한 번은 30대 부부의 조정을 한 적이 있는데 남편 태도가 너무 완강했다.전업 주부인 아내가 10년 동안 밥을 제대로 차려주지 않아 지긋지긋하다는 것이었다.아내는 한 번 싸우면 며칠씩 말도 하지 않고,낭비도 심해 결혼한 후 저축한 돈도 없었다.김 위원은 부인을 야단치고 남편을 타일렀다.‘세상에 완벽한 여자가 있겠어요.아내와 재혼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시작해봐요.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노력해 보면,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이혼을 1∼2년 늦게 한다고 생각하세요.” 본심에서 우러난 설득에 남편은 이혼소송을 취하하기에 이르렀다.눈물을 떨구는 아내를 보며 김 위원도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그래도 늘 허전함을 느낀다.덜 다투고,덜 상처받도록 다독거려주지만 그와 마주 앉았다가 결국은 이혼하는 젊은 부부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혼을 생각한 초기에 진심어린 대화를 나눴다면 이혼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부부들을 많이 만나요.저를 조금만 일찍 만났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때문에 김 위원은 스스로 신문사로서 처음 시도하는 지상상담 칼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상처가 곪아터져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는 부부가 아니라 얼마든지 행복한 결혼생활로 되돌릴 수 있는 부부들을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이혼율이 해마다 높아지지만 부부생활의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할 곳이 없는 것이 김 위원은 늘 안타까웠다.신경정신과는 비용이 비싼 데다 정신병력 기록이 남아 부담스럽고 법률상담소는 거꾸로 ‘이혼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이라는 것이다.그래서 새 칼럼을, 고충을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는 공간으로 꾸며보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병도 조기 발견이 중요하듯이 결혼생활도 사소한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해요.그걸 슬기롭게 해결하면 행복한 결혼생활로,그렇지 않으면 이혼의 길로 접어드는 거죠.” 글을 통해서지만 해결 방안을 찾는 데 칼럼의 많은 부분을 할애할 작정이다.이혼의 씨앗이 되는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면 극한 상황을 맞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위원의 결혼 37년을 들어보면 이혼을 해도 몇 번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1966년,5년 동안 열애한 남편과 결혼했지만 ‘되돌아 보기도 두렵고 힘든 신혼생활’을 보내야 했다. 중앙일간지 기자였던 남편은 술과 친구를 너무 좋아한 탓에 한달에 서너번밖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불편한’ 사람이라 온전한 월급봉투를 10년 동안 가져오지 않았다.“1년 365일중 360일은 이혼을 생각했다.”고 김 위원은 고백했다.그렇지만 참고 또 참으며 결혼 생활을 지속시켰고 그의 말대로 ‘눈꽃’이 내린,행복한 인생의 황혼을 맞았다.요즘 이혼하려는 젊은 부부들에게 ‘이혼하지 말라.’고 큰소리로 충고할 수 있는 자부심이 거기에 있다.“‘화채’ 때문에 이혼하지 못했어요.언젠가 몸이 많이 아팠는데 음식을 생전 하지 않던 남편이 화채를 만들어 왔더라고요.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어요.이혼을 결심할라치면 비뚤비뚤한 화채가 자꾸 눈에 들어와서….” 하지만 김 위원은 이혼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참고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결혼과 마찬가지로 이혼도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이혼은 죄악이 아닙니다.잘못된 선택이었다면 헤어지는 게 나아요.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니까요.그렇지만 결혼이 달콤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듯 이혼도 마찬가지란 사실을알려주고 싶습니다.” 칼럼에서도 때론 ‘이혼하라.’고 단호하게 말하려 한다.이혼 후 펼쳐질 험난한 세상을 잘 헤쳐 나가도록 도움이 되는 말도 전해주려고 한다. “아이들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사랑해야 합니다.언젠가 떠날 부모는 세상에 남는 아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김 위원은 칼럼에서 남다른 ‘자녀교육 철학’도 펴보겠다고 말했다.사랑만 주면 자식을 ‘인생 낙오자’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난 남편과 13년 동안 산 미국에서도 손에서 매를 놓지 않았다.아들과 딸 둘은 중·고교,대학을 미국에서 나왔지만 누구보다 예의바른 ‘한국인’으로 자랐다.미국인 며느리는 시어머니 김 위원에게 무릎을 꿇고 차를 따른다.특히 그는 자녀에게 물질적 유산을 물려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단언했다.부족한 재산을 자신들이 모으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인생의 즐거움이며 그것을 부모가 빼앗아서야 되겠느냐는 논리다. 김 위원은 한 가지 고민을 털어놓았다.“조정은 눈을 마주치고 마음과 마음이 맞닿아야 하는데 활자로 얼마나 진심을 전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상처받은 사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야 할 텐데….” 그래서 상담을 받은 독자가 원한다면 기꺼이 만나겠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 ■행복한 결혼생활 7계명 우리나라가 이혼율 세계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세웠다.1년에 30만쌍이 결혼을 하는데 그 절반인 15만쌍 가까이 이혼을 한다.하루 400쌍이 이혼을 하는 셈이다. 이혼을 하지 않더라도 결혼 생활에 100% 만족하며 사는 부부를 찾기란 쉽지 않다.김영희 조정위원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7가지 비법을 제시했다. ●혀끝을 조심해라 따뜻한 말은 상대를 감동시키지만,독한 말은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마음의 상처는 평생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혀끝에 달린 ‘독화살’을 조심하라. ●상대의 단점을 고치려 들지 말라 상대의 단점을 들춰내지 마라.수십년간 함께 산 배우자라도 고칠 수 없다.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단점을 발견치 못하고 결혼한 자신을 탓하라. ●잔소리는 1분을 넘기지 마라 멈추지않고 계속되는 잔소리는 끔찍한 고문이다.상대가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않게 부드럽고 온화한 말씨로 얘기하라.더 큰 효과를 얻을 것이다. ●두 사람만의 대화시간을 가져라 살림살이·아이들 얘기가 아닌 두 사람만의 대화를 가져라.아파트 단지를 걷거나 집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연애시절 추억,여행계획 등을 얘기하라.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라 실수했을 때 군색한 변명을 내세우지 마라.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라.잘못을 인정치 않고 맞서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또 큰 부부싸움의 원인이 된다. ●상대의 좋은 점을 찾아내 칭찬해 줘라 칭찬은 기쁨을 주기에 상대방은 더 큰 칭찬을 받고자 노력하게 된다.상대가 자신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는 것처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자존심을 지켜 스스로를 높여라 아내 자리,남편 자리를 지키는 자존심을 가져라.자존심을 지키려면 노력이 필요하다.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멸시받을 행동을 하지 않는다.
  • ‘13억아파트’도 화재 무방비/스프링클러등 설치안돼 변호사 부부 질식사

    두 명이 사망한 서울 한강변의 25층짜리 고급 아파트 화재는 스프링클러 등 불이 났을 때 바로 끌 수 있는 소화시설이 없어 피해가 커진 인재(人災)였다.화재가 난 아파트는 시가 13억원인 65평형으로 지난 3월 주민이 입주했다.소방법은 고층아파트의 경우 고가사다리가 접근할 수 없는 ‘16층 이상’에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돼 있다. ●‘16층 이상’에만 스프링클러 설치규정 지난 20일 오전 4시14분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LG자이아파트 101동 3층 신형근(50·변호사)씨 집에서 불이 나 신씨와 부인 이모(46)씨가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신씨는 침대 위에서,부인은 안방 베란다 쪽에 쓰러져 있었다.유독가스를 마신 작은아들(19)과 윗집 주민 이모(58)씨 등 4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불은 신씨의 아파트 내부 20평을 태우고 1300여만원(경찰 추산)의 재산피해를 낸 뒤 15분 만에 꺼졌다.이 과정에서 주민 수십명이 대피했다. 화재 신고는 인근 주민과 발코니로 몸을 피한 숨진 신씨의 작은아들이 “불이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경비원 송모(62)씨가 했다.신군은 “잠자다 뭔가 타는 냄새에 깨어 불길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측은 “불이 나면 가정마다 설치돼 있는 화재감지기를 통해 관리사무소의 경비벨이 울리도록 돼 있다.”면서 “벨이 울리기 전 경비원의 전화를 먼저 받고 119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리사무소 통제실에서 벨이 울렸다고 주장한 시간이 화재가 신고된 시간과 차이가 나 경찰은 경비벨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조사 중이다. 현장에 출동한 용산소방서 관계자들은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고 말했다.서울시는 지난달 10일 고층아파트의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와 자동식 소화기를 갖추도록 하는 ‘고층 아파트 소방안전대책’을 내년에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꼬마전구에서 합선 추정 경찰은 불이 나기 열흘 전부터 거실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었고,장식용 꼬마전구도 계속 켜놓았다는 유족의 진술과 화재 당시 누전차단기가 내려져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일단 꼬마전구 장식의 합선이나 누전으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인을 조사 중이다.경찰 관계자는 “불이 플라스틱 재질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태우고 카펫과 소파 등으로 옮겨 붙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전날인 19일은 신씨 부부의 결혼기념일로 가족이 함께 축하파티를 가진 뒤 잠자리에 들었다가 변을 당했다.큰아들(21)은 친구들과 여행 중이어서 화를 면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 사진집 ‘작은 평화’낸 가수 한대수 씨/나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히피’

    ▲1948년 부산 출생 ▲66년 미국 뉴햄프셔대 수의학과 입학,중도 포기 ▲68년 뉴욕 사진학교 졸업후 귀국,최초의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악활동 시작 ▲70년 국전 사진부문 입선 ▲74년 군제대 후 첫 앨범 ‘멀고 먼 길’ 발표 ▲75년 2집 ‘고무신’ 발표,‘체제전복 음악’이라는 이유로 모두 금지곡 처분 받음 ▲77년 미국으로 이주,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중 한대수는 히피다.일부일처제를 인간 본성에 역행하는 ‘쇠우리’로 규정하는 자유주의자.그에게 예수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에 사랑과 평화의 씨앗을 심은 ‘원조히피’요,자신은 “80년 존 레넌이 뉴욕에서 총맞아 죽은 뒤 지구상에 살아남은 유일한 히피”다. 한대수는 미니멀리스트다.혼자서 먹고 누울 작은 방 한 칸이면 대저택이 안 부럽다.삼촌이 빌려준 서울 연희동의 8평짜리 오피스텔에는 1인용 매트리스와 기타 2대,낡은 괘종시계,CNN뉴스가 나오는 액정 모니터가 전부다. 한대수는 반자본주의자다.그에게 자본주의란 ‘탐욕’과 ‘이기심’으로 움직이는 반인간적 시스템일 뿐이다.무엇보다“50세 이상을 쓰레기로 만드는 반(反)노인적 체제란 점에서” 그는 21세기의 ‘월스트리트’ 자본주의를 증오한다. ●혼자 누울 방 하나면 기쁜 미니멀리스트 연희동의 오피스텔을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배꼽을 드러낸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상반신 포스터였다. “여러 여자들을 모델로 사진을 찍어보았지만 솔직히 브리트니처럼 ‘동’하는 여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어요.무엇보다 저 배꼽이 인상적이었지요.물론 우리나라 이효리도 배꼽의 ‘도발성’에선 브리트니 못지 않지요.” 맞은 편 벽에 걸려 있는 또 하나의 여자 그림.지하도에서 20만원 주고 샀다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였다.‘마지막 히피’다운 인테리어 컨셉트였다.그의 히피적 기질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스무살 나이에 세상이 못마땅하고 사는 것이 화가 나 ‘물 좀 달라.’며 고함을 내질렀다.군인들은 ‘물 좀 주소’란 그의 노래가 정보기관의 ‘물고문’을 비꼬았다며 마이크를 뺏었다. 하지만 가수가 아닌 사진가 한대수의 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그는 뉴욕사진학교를 졸업하고 당당히 대한민국 국전 사진부문에 입선한 ‘제도권’작가다.고통이 애인이고 고독이 정부(情婦)이던 시절,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맨해튼 거리를 헤맸다.이런 그가 35년 작가 인생을 결산하는 사진전을 지난달 서울 서교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었다.그는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충격에 무감각한 ‘언쇼커블’세대 “원래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입니다.그런데 주변에서 영화가 좋다고 성화길래 영화관에 갔어요.박 감독하고는 ‘공동경비구역’에 내 노래를 삽입한 인연으로 술도 가끔 마시는 사이지요.그런데 도저히 눈을 뜨고 못 보겠더라고요.그날 밤 무서워서 잠도 못잤어요.그런 걸 ‘엽기’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리들리 스콧 감독의 ‘한니발’을 볼 때하고 비슷했습니다.” 의외였다.1960년대 ‘반문화’의 메카 뉴욕에서 20대를 보낸 사람이라기엔 너무 여리고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그는 요즘 세대를 “웬만한 충격에는 좀체 반응하지 않는 ‘언쇼커블(unshockable)’세대”라고 규정했다.음악이든,영화든 자꾸 강한 충격을 주려고만 하니까 대중들의 무감각이 심해진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사회가 너무 선해서 ‘에브리보디 해피’하면 엽기도 하나의 오락거리가 될 수 있어요.하지만 어디 그렇습니까.매일 폭탄이 터지고 하루에도 수백명이 굶어죽어 갑니다.이런 때일수록 예술은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인간과 자연에 포커스를 맞춰야 합니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못마땅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지난달 그가 펴낸 사진집의 제목도 ‘작은 평화’다.1967년부터 뉴욕과 로마,런던,모스크바,울란바토르 등 전 세계 12개의 도시를 돌며 찍은 80여개의 장면들을 크고 작은 프레임에 담았다.모델들은 뒷골목의 악사부터 지하도 노숙자,몽골 유목민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정착하지 못한’ 유랑민들이다.사진에는 제목도,설명도 없다. “어디에서 누구를 찍은 사진인지는 중요치 않아요.전세계의 인간들이 처한 보편적 상황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그것은 고통과 소외입니다.뉴욕이나 서울이나 울란바토르나 약자들은 주리고 소외되고 억압받고 있어요.” 그는 무엇보다 50살이 넘는 사람들을 ‘퇴물’로 전락시키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강하게 비난했다.교육받지 못하고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지금쯤 서울역 어딘가에 사과박스를 깔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지난 97년 펴낸 자서전에서 “우리에게도 히피문화가 있었다면 사람들이 좀더 개방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적었다.그는 히피를 ‘고정관념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도덕에,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는 맹목에,일부일처제라는 반(反)생물학적 관습에. “뉴욕은 이혼율이 50%가 넘고 우리나라도 세쌍중 한쌍이 이혼합니다.만약 이혼율이 80%에 육박한다면 결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우고,자연스럽게 헤어지고….이게 인간 본성에 가까운 것 아닌가요?” ●한대수는 휴머니스트다 그는 히피정신의 핵심을 ‘동의하지 않음을 동의하라.’는 말로 요약한다.그가 볼 때 살육과 전쟁은 ‘다름’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독선과 아집’에서 시작된다.이라크 전쟁도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은 지금 심각한 ‘오만병’에 걸려 있습니다.테러를 빌미로 오리엔트의 중심지 바그다드를 무력으로 정복했지만 보복의 악순환은 3대를 갑니다.미국은 당장 침략행위를 멈춰야 합니다.” 한대수는 어떻든 휴머니스트다.그가 음악과 사진을 업으로 삼은 것도,미니멀리스트적 삶에 집착하는 ‘마지막 히피’로 체제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고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에 대한 지독한 애정 때문이다.도대체 인간은 왜 고통당하는가.그것은 ‘행복의 나라’를 만든 열여섯살 시절부터 9장의 자작앨범을 발표한 지금까지 그가 줄곧 매달려온 ‘화두’다.그는 오늘도 기타와 카메라를 앞에 두고 일생을 매달려온 ‘인간이라는 화두’에 정직하게 대면하고자 노력한다. 글 이세영기자 sylee@ 사진 강성남기자 snk@
  • 주말 화제/ ‘한국속 아랍’ 율도

    인천 서구 율도는 ‘한국의 아랍땅’으로 불린다.율도의 한가운데에 있는 자동차 수출단지에서 연유한 이름이다. ●한국인 인정에 이라크상인 몰려 지난 3월 이라크전 발발 직후 이곳 자동차매매상들이 이라크인 중개상들에게 인정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자 소문이 금방 퍼져 중동 상인들이 몰리기 시작했다.최근 이슬람교 금식기간인 라마단의 영향과 이라크내 테러로 아랍상인들의 발길이 뜸했지만 아랍인치고 율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랍상인들은 웬만한 인사는 우리말로 한다.김치찌개와 컵라면도 즐겨 먹는다.잠은 주로 인천 동암역 주변 빌라에서 4,5명씩 함께 잔다.한국 여인과 동거하거나 결혼한 아랍인도 있어 율도 주변은 ‘작은 아랍’으로 변모하고 있다.만타무역회사의 정정태 과장은 “이라크전 발발 전후로 율도에 들어선 업체들이 이라크인들에게 싸게 파는 등 인정을 베풀면서 신뢰감이 형성돼 아랍인들이 율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미국을 도와주는 외국인은 모두 적” “한국인은 인정이 많은 좋은 친구들입니다.제발무기만큼은 들지 마세요.이라크 저항세력들은 피를 나눠 마신 죽음의 투사들입니다.” 중고자동차 수출을 전문으로 하는 ‘알 아쉬르’ 무역회사의 고객으로 한달째 이곳에 머물고 있는 마제트(28·이라크 바그다드 거주).그는 5일 신문보도를 통해 최근 이라크에서 발생한 한국인 피살사건을 소상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평민처럼 (이라크에)가면 이라크인들은 환영하지만 무기를 들고 가면 한국과 이라크의 관계는 크게 악화될 겁니다.무기를 든 외국인이 이라크에 있는 한 지금보다 더한 비극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율도에서 만난 요르단인 2명도 비슷한 말을 했다.중고차 바이어로 10년째 활동하면서 얼마 전 한국 여인과 결혼했다는 라이얀(33)은 “한국군이 이라크에 파병되면 신변보장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한때 중동에 2만대나 수출 인천에는 자동차 수출단지 두 곳이 있다.3만여평의 송도 단지는 남미·필리핀·베트남에서 온 상인들로 붐빈다. 한국인들이 호의를 베푼 뒤 아랍권 바이어들은 율도로 몰려갔고 단지가 자연스럽게 양분됐다.올들어 가장 많이 수출된 지난 5월에는 율도의 수출량 3만 5000여대 가운데 2만여대가 중동지역으로 빠져나갔다.바이어들이 하루 수백명씩 율도에 몰려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가장 인기있는 차종인 프린스 승용차의 경우 96년산이 국내에서는 120만원 정도에 거래되지만 운반료 등이 붙어 중동 현지에서는 300만원가량에 팔린다.율도는 3년 전 한진중공업에서 5만여평의 매립지를 인수하면서 최대의 중고자동차 수출단지로 변모했다.100여개의 업체가 영업중이다.율도는 한국내 아랍인들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김문 기자 km@
  •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같이 즐기실래요?

    “이번 달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는 게 좋겠지?” “신나면서도 한편으론 로맨틱한 것도 가미하면 좋을 것 같아.” “그럼 멋진 테라스가 있는 카페를 빌려 신나게 놀면서 분위기를 잡는 건 어때?” 지난 2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파티 플래너와 호스트 그리고 파티 게스트 등 6명이 머리를 맞댔다.누구나 행복하고 또 행복해야만 하는 12월에 파티가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연말이 다가오면서 여기저기 파티 준비가 한창이다. ●12월 빠질 수 없는 키워드 ‘파티'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낯선 문화 ‘파티’.당연히 파티를 즐기는 사람도 극소수였다.최근에는 파티도 많이 보편화되고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특히 홍대를 중심으로 한 ‘댄스 파티’가 주를 이루었다가 최근에는 만남을 위한 ‘사교 파티’의 비율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파티.파티의 어떤 매력이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파티의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여러 직업의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 연령대를 뛰어넘어 격의 없이 친해질 수 있습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파티를 즐기지 않았던 99년에 이미 파티의 진가를 알게 됐다는 김석(32·사업)씨는 새로운 만남을 통해 기쁨을 주는 것이 파티라고 말한다.“내일은 어떤 사람을 만날까를 생각하다 보면 저절로 흐뭇해집니다.”라고 웃어보인다. ●자신을 표현하는 또다른 기회 파티 주최자(호스트)를 맡고 있는 김지연(24·회사원)씨는 “매일 직장 혹은 그와 관련해 같은 사람들만 보다 파티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파티 자랑에 입이 마른다. 파티를 즐기는 3∼4시간만이 파티가 가진 매력의 전부가 아니다.파티 참석을 준비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김도현(21·대학생)씨는 “파티 컨셉트에 맞춰 의상을 준비하거나 미리 파티 날을 상상하는 것도 신나는 일”이라며 파티 예찬론을 폈다.도현씨는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자신을 표현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파티의 또 다른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모르는 사람들이 깔끔하게 차려입고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나눈다면 다소 표면적인 만남이 되지는 않을까.이에 파티 커뮤니티 파티즌 대표 이경목(30)씨는 “파티에 오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열려 있죠.때문에 파티에서의 만남을 어떤 관계로 발전시키느냐는 각자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파티에서 만나 얼마 전 결혼에 골인한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오크우드 호텔에서 만난 김사라(34·블랑코 사장)씨와 임서희(24)씨는 ‘파티를 진정 느낄 줄 아는 사람’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밍크 장식의 아이보리색 니트에 빨간 바지를 입은 사라씨는 파티의 장점에 대해 묻자 쉼없이 쏟아낸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됐어요.처음에는 고작 손에 꼽을 정도의 사람만 알고 있었죠.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교파티를 한두차례 열다보니 수백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죠.6명만 거치면 모두 아는 사람이라는 ‘6단계 분리법칙’이 저한테는 한 2단계 쯤으로 좁혀졌다고나 할까요.” 친분을 쌓는 데 파티만한 것도 없다는 뜻이다.그녀는 최근 EQ(감성지수)보다 더욱 관심을 갖는 NQ(Network Quotient·공존지수)를키우는데도 파티가 제격이라고 설명한다. ●좋은 분위기서 좋은 사람들과 대화 긴 머리를 한쪽으로 올려 묶고 큼직한 귀고리와 목걸이로 패션에 포인트를 준 서희씨도 “일반적으로 어떤 모임을 가질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음주’인데,파티에서는 적당히 술을 마실 수 있어서 좋다.”라며 거든다. “내가 원하는 분위기에서,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죠.특히 파티가 끝날 때까지 남아있는 사람들과는 정말 진솔한 얘기도 털어놓을 수 있어요.결코 파티가 가볍게 놀고 먹자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죠.” 파티는 이렇게 즐겁지만 발길을 향하기에는 역시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파티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얘기를 해야 하기도 할테고,옷은 또 어떡하나.모르는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것은 호스트가 할 일.파티복은 화장,스카프,액세서리 등에 포인트를 주는 것만으로 훌륭하게 연출할 수 있다. 여전히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에게 맹지선(27·대학원생)씨가 보내는 초대장이다.“파티와 잔치는 다르죠.하지만 마음만은 잔칫집 가는 기분으로 부담없이 오세요.” 글 최여경 나길회기자 kid@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 Q&A로 보는 파티 아무리 ‘파티 예찬론’을 들어도 역시 선뜻 파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어렵다. 파티 초보들의 발목을 잡는 파티에 대한 편견 혹은 궁금증을 풀어보자. 옷은 꼭 정장을 입어야 하나요? -‘드레스 코드’라고 하는 파티 복장은 초청장에 명시돼 있다.‘정장’이라는 표현이 없으면 흔히 생각하는 드레스나 턱시도같은 파티복을 입을 필요가 없다.드레스 코드에서 색깔을 지정했다면 그 색상의 옷이나 소품,화장을 해주어야 한다.별다른 표시가 없다면 나름대로의 ‘베스트 드레스’를 꾸며보자.복장에 공을 들이는 것도 파티에 참여하는 재미를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정말 혼자 가도 괜찮을까요? -물론.혹자는 오히려 혼자 가야 ‘제대로’파티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각 파티에는 ‘호스트’가 있어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만약 혼자가는 것이 싫다면 호스트에게 물어보는 것도 방법.“친구를 데려가도 될까요?” 파티에 쉽게 적응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파티에 오는 사람들은 마음이 열려 있어 말을 건네기 쉽다.선뜻 대화하는 그룹에 끼어들기 어렵다면 자신처럼 혼자 온 사람을 찾아라.둘이서 얘기를 하다가 또다른 사람에게 함께 다가가서 말을 건네다보면 어느덧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입장료는 얼마인가요? -규모가 작은 파티는 3만원 정도.규모가 크거나 전문 파티 업체의 경우 10만원까지 받는다. 파티 정보는 어디서 얻나요? -처음엔 인터넷을 이용하는 게 손쉽다.다음 카페 ‘파티넷(cafe.daum.net/partynet)’ ‘파티플래너 바로 알기(cafe.daum.net/partyplanneris)’나 인터넷 사이트 ‘파티즌(www.partizen.com)’, ‘테크노게이트(technogate.co.kr)’ 등을 찾으면 된다. 파티 정보 하나! 12월20일 6시부터 서강대 동문회관 ‘이니고’에서 ‘Dreams come true’라는 주제로 파티가 열린다.입장료는 3만원.문의는 02)704-2501. 나길회기자 kkirina@ 연말연시엔 와인파티를/파티호스트 김사라씨 파티는 편안하고 부담없이 꾸며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그래서인지 사람이 많은 파티는 별로 좋아하지 않죠.30명 이내의 사교파티가 사람들과 진솔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지 않은 사람을 초청해서 파티를 한다면 장기자랑 파티나 와인파티가 좋죠.장기자랑 파티는 노래,댄스,시 등 자신만의 끼를 보여주는 것이죠.와인파티는 자신이 가지고 온 와인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고요. 보통 파티를 할 때 무엇인가를 먹고 마시고 나면 늘 이런 고민에 빠지잖아요.“이제는 뭐할까….” 이럴 때에 장기자랑이나 와인을 소재로 상대방을 알 기회를 갖고 우정을 쌓는 거죠.연말연시 지인들과 하는 파티로도 적당한 것 같아요. 장소가 마땅치 않다면 오크우드 호텔과 같이 장기투숙객을 위한 호텔 객실을 빌리는 것도 좋죠.주방 시설이 돼 있어 요리를 할 수 있거든요.연말연시 특별 상품을 이용하면 객실을 보다 저렴하게 빌릴 수 있습니다. ‘포트럭 파티' 부담없어요/파티 플래너 박보희씨 호텔과 같은 장소를 빌리기부담스럽다면 조촐하게 집에서 파티를 열어보세요.초대받는 사람들이 음식을 한두개 준비해오는 ‘포트럭 파티’는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걱정도 덜어줍니다.친구들끼리라면 예쁜 트레이닝복이나 파자마(잠옷)를 입어 흥을 돋울 수 있죠. 집을 꾸미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천장에 붙인 풍선들에 리본을 길게 뽑아 흘러내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파티 분위기가 풍기거든요.투명 그릇에 물을 담아 ‘물에 뜨는 초’를 띄워 선반 곳곳에 두면 더욱 좋고요.디지털카메라를 준비해서 모습을 담는 것도 잊지 마세요. 근사한 파티장을 찾는다면 성신여대 문화산업대학원 출신의 예비 파티플래너들이 여는 ‘상상 영화관속 파티’(17일·3만원)나 SK커뮤니케이션에서 주최하는 ‘7드림 페스티벌’(12월31일∼1월1일)에 참가하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영화속 댄스나 음식을 직접 맛볼 수 있고,신나는 퍼레이드와 이루마 콘서트 등을 즐길 수도 있거든요. 최여경기자
  • [스포츠 라운지]전자랜드 돌풍의 핵 앨버트 화이트

    흑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운동은 역시 농구다.흑인 선수 못지 않게 농구를 잘 하는 선수도 많지만 웬지 뻣뻣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00㎏이 넘는 거구들이 가볍게 날아 슬램덩크슛을 터뜨리거나,190㎝ 이상의 장대들이 현란한 드리블을 하는 것을 보면 농구는 흑인을 위해 만든 운동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03∼04프로농구에는 검은 ‘화이트’ 열풍이 불고 있다.지난달 시즌 시작과 함께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딘 전자랜드의 앨버트 화이트는 ‘흑인 농구’의 진수를 잘 보여주는 선수로 꼽힌다.다소 튀는 모습도 있지만 패스 등 팀 플레이에 소홀함이 없다. ●“코리안 드림 꼭 이룰것” 미국프로농구(NBA) 하위 리그인 CBA와 USBL,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리그에서 뛴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들어봤지만 한국에도 프로농구가 있는 줄은 몰랐다.그는 “지난 7월 시카고에서 열린 한국농구연맹(KBL)의 트라이아웃에서 한국 사람들도 농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 농구에 대한 그의 첫 느낌은 작지만 강하다는 것.특히 림으로 쏙쏙 빨려들어가는 키작은 슈터들의 3점포에 깜짝 놀라곤 한다.그러나 기계적인 플레이는 빨리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감독의 작전에 따라 선수들이 도식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창조적인 농구의 묘미가 죽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아직 한국 음식을 먹지 못한다.“이렇게 매운 음식을 먹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그는 햄버거와 피자만 먹고 코트를 휘젓는다. 그렇다고 향수병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지방 원정을 떠날 때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기자기한 풍경에 흠뻑 매료됐다.구단에서 구해준 널찍한 아파트는 TV조차 없던 미국 숙소에 견주면 ‘화이트 하우스’급 이라며 만족해 한다. 그는 ‘신기한’ 한국을 보여주기 위해 7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 키샤 햄비(25)를 최근 초대했다.햄비는 독거노인과 장애인들을 돌보는 간호사다.이번 시즌 ‘코리안 드림’을 일군 뒤 햄비와 결혼할 계획이다. ●한국은 나를 인정해준 나라 정규리그 6라운드 가운데 1라운드가 끝난 14일 현재 그는 득점 단독선두(평균 28.33점)를굳게 지키고 있다.파워를 바탕으로 한 골밑슛은 기본이고 외곽슛도 다른 용병들보다 한 수 위다.그러나 그의 진가는 득점이 아닌 어시스트 능력에서 나온다.어시스트는 그동안 득점과 리바운드 싸움에서 용병에게 밀린 토종선수들의 전유물이었다.그러나 그는 한경기 평균 5.67개를 기록해 4위를 달리고 있다.대다수 용병들이 큰 키와 덩치를 이용해 득점과 리바운드만 신경쓰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변변한 포인트가드가 없어 늘 중·하위권을 맴돈 전자랜드가 ‘돌풍의 팀’으로 주목받는 것도 그의 날카로운 패싱 능력 때문이다. “팀이 경기에서 지면 개인성적은 무의미하다.”면서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보다 팀의 승리가 먼저”라고 말했다.심판의 판정에 불같이 화를 내는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농구 선수들이 그렇듯 그의 꿈도 NBA 무대에 서는 것이다.특히 NBA에서 ‘트리플 더블러’로 명성을 날리는 케빈 가넷(미네소타 팀버울브스)과는 죽마고우여서 그의 집념은 남다르다.그는 가넷과 함께 미주리주 고교리그에서‘베스트 5’에 뽑힐 정도로 유망주였고,전미대학선수권(NCAA)에서도 빠지지 않는 선수였지만 끝내 NBA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는 “NBA에서 뛰는 날이 오더라도 내 능력을 존중해준 한국을 잊지 못할 것”이라면서 “한국에 있는 동안 기량과 추억을 차곡차곡 쌓겠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프로농구 역대 최고의 용병은 지난 1997년 2월 출범한 프로농구에서 그동안 활약한 외국인선수는 모두 132명. 이 가운데 ‘용병의 힘’을 가장 먼저 전한 선수는 원년 ‘나래 돌풍’을 이끈 제이슨 윌리포드.빼어난 개인기와 두뇌 플레이를 뽐내며 신생팀 나래를 단숨에 챔피언결정전으로 끌어 올려 말로만 듣던 ‘용병 파워’를 실감케 했다.전문가들은 아직도 가장 뛰어난 용병으로 윌리포드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7시즌째 뛰는 조니 맥도웰(모비스)은 용병 역사의 산증인이다.올해에는 체력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지만 초창기 맥도웰은 승리의 ‘보증수표’였다.KCC의 전신인 현대는 맥도웰을 앞세워 두차례(97∼98·98∼99시즌)나 챔피언에 올랐다. 최고의 테크니션으로는 동양의 마르커스 힉스가 꼽힌다.시즌 직전 허리 부상으로 미국으로 돌아간 힉스는 01∼02시즌 정규리그 및 챔피언결정전 우승,02∼03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득점과 슛블록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며 NBA급 기술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성실성을 바탕으로 나산 골드뱅크 LG 코리아텐더 등에서 활약한 에릭 이버츠,현대와 SK를 우승으로 이끈 재키 존스 등도 기억에 남는 용병이다. 이창구기자 ·1977년 6월 13일 생 ·197㎝,100㎏ ·1999년 미국 미주리대학 졸업,전미대학선수권(NCAA) 평균 16.4득점 8.7리바운드 ·1999년 미국 CBA리그 ·2001∼2002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리그 ·CBA 02∼03시즌 평균 22득점 7.5리바운드 ·2003CBA리그 올스타 ·2003년 KBL 트라이아웃 전체 2순위
  • 韓·美·유럽 안무 한무대에/국립발레단 ‘트리플 빌’ 17~20일

    국립발레단이 한국,미국,유럽 안무가의 세 작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다.오는 17∼2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올리는 ‘트리플 빌’은 금세기 최고 안무가 중 한명인 조지 발란신의 ‘심포니 인 C’,‘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도베 라 루나’,그리고 국립발레단 김긍수 예술감독의 ‘결혼’을 한자리에서 펼친다. 이중 ‘심포니 인 C’와 ‘도베 라 루나’는 국내 초연작이다.고전발레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강한 작품들이어서 정통 러시아발레를 주로 소개해온 국립발레단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맞춰 전통 혼례를 발레화한 김긍수 예술감독의 ‘결혼’은 ‘한국적 창작발레’의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러시아 태생으로 뉴욕에서 활동한 조지 발란신의 ‘심포니 인 C’는 신고전주의 발레의 전형으로 꼽힌다.동작은 고전발레에 기초하지만 특별한 줄거리가 없고,음악에 맞춰 무용수가 움직이는 것만으로 안무가의 의도를 전달한다.1934년 초연작으로 발란신의 작품중 가장 유명하지만 무용수들의 고난도 기량이 요구되는 탓에 국내에는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다. 프랑스인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도베 라 루나’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달빛 아래 춤추는 무용가들의 몸짓으로 표현한 작품.‘도베 라 루나’는 ‘달은 어디에’라는 뜻이다.94년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초연했다. 김긍수의 ‘결혼’은 2000년에 소개해 호평을 받았던 작품을 이번에 안무와 무대장치,의상을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선보인다.타악과 합창,첼로 연주가 어우러지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떠들썩한 시골 혼례 잔칫집의 풍경을 무대화했다.(02)587-6181. 이순녀기자 coral@
  • “술빚기 18년째 매달려 전통주 맥 이어가야죠”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

    우리 전통주는 술 빚는 방법이 대략적으로나마 전해오는 것이 600여가지다.이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420여가지를 직접 재현한 이가 있다. 박록담(朴碌潭·본명 德焄·45)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우리 술 재현에 18년째 빠져 있다.서울 은평구 지하철 녹번역 근처의 전통주연구소는 입구부터 술익는 구수한 냄새로 코끝이 간질간질하다. ●우리술 420여가지 재현 그의 ‘술방’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술독과 500여개의 보관용 작은 술병들,소줏고리(증류기)·용수(술거르는 대바구니)·주합(나들이용 술과 안주통) 등 양조 도구들이 빼곡하다. 우리 술은 이름만 들어도 감흥이 인다.눈꽃이 핀 듯한 백화주(白花酒),연꽃 향기가 은근한 하향주(荷香酒),매실 향에 톡쏘는 맛의 호산춘(壺山春)….지난 1986년 이후 그가 재현한 술이다.“제대로 빚어졌는지는 우리 술의 이름으로 대개 알 수 있지요.”그가 지금까지 빚은 술을 쌀로 환산하면 6t이 넘는다. 이렇듯 그가 우리 술에 빠진 데는 순전히 효심 때문이다.“84년 취직한 이후 술 욕심이 많았던 아버지께 술을 자주 사다드렸지요.하지만 과음한 다음날 숙취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건강을 해치지 않는 술을 찾다가 그만 전통주에 빠졌지요.” 그는 주량이 양주 한병에 이르는 부친(65)을 위해 건강에 좋은 술을 찾아나섰다.당시 실낱같이 이어지던 밀주를 사드렸더니 “술이 참 좋다.어디서 난 것이냐.”며 관심을 보였다.이에 신이 난 그는 우리 술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탐주여행을 시작했다. 시골의 할머니들에게 ‘술을 빚어달라.’고 쌀을 미리 보내기도 했고,누룩을 빚고 고두밥을 찌면서 할머니들과 며칠씩 보냈다.그래서 ‘미친놈’이란 소리도 들었고 오해도 많이 받았다.“‘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면서 빚는 술인데 내가 죽고 나면 이 아까운 것을 누가 이을까.’하는 것이 당시 할머니들의 공통된 푸념이었습니다.” “사라지는 우리 술을 보존하기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술 빚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대학 졸업 이후 2년째 다니던 서울청소년지도육성회도 그만뒀다. ●좋은 전통주는 상품화해야 그가 술을 빚는 데는 타고난 구석이 좀 있었던듯 보였다.무안 박씨 해남파 37대 종손인 그의 집 가양주(家釀酒)는 좁쌀소주.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가 술빚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가 혼자서 빚은 최초 술은 석탄주(惜呑酒).떡을 만들어 술 빚는 방법을 적은 ‘주방문(酒方文)’은 전해 오지만 술은 이미 실전됐다.발효와 숙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 6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7번째 성공했다.사과 향기가 감도는 향은 이름 그대로 ‘삼키기가 아까웠다.’당시 촬영차 왔던 모방송 스태프진이 술을 더 달라고 간청해왔다. 이어 동정춘(洞廷春)을 빚었다.개떡으로 밑술을 만드는 동정춘은 물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이 특징.물이 없는 탓에 고두밥이 바짝 말라버리는 바람에 서너번 허탕 끝에 ‘조청 빛깔에 자두꽃 향이 나는’ 술을 완성했다.“쌀 1말을 쓰면 청주가 1되 반(2.7ℓ) 정도 나오는 귀한 술이지요.” 하지만 맛과 향이 좋은 전통주가 제대로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포도주 감별사(소믈리에)에다 일본술 사케 감별사까지 활개치면서 우리 술이 서양에서 들어온 위스키나 포도주보다 저급한 술로 치부되는 게 현실이다. 또 주세법의 규정과 제약도 전통주의 대중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집에서 우리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은 되지만 시장이나 음식점에서 파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지요.좋은 전통주의 상품화를 허용해야 합니다.”그리고 완성된 술의 품질에 대해 검사를 하고,세금을 부과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과거,우리 술은 차례와 제사를 위해 집집마다 빚던 가양주가 대부분이었다.하지만 1907년 조선통감부의 주세령에 의해 가양주가 금지됐고,밀주 단속이 거셌다.때문에 당시엔 이웃간에 ‘술있느냐.’는 말 대신 ‘호랭이(호랑이) 있느냐’,‘벽 있느냐’는 등의 은어가 쓰였다고 한다. 이후 쌀의 재고량이 넘쳐난 1987년에서야 비로소 양곡관리법의 규제가 풀렸고,자가양조가 가능하게 됐다.80년 동안 계속된 규제 탓에 전통주의 맥이 서서히 끊어졌고,공장에서 획일적으로 만든 막걸리나 동동주처럼 우리 술은 맛과 향이 좋지 않고 숙취가 남는 술로 인식됐다.그러나 경주 교동법주,안동소주,서울 삼해주처럼 당국의 단속을 피해 제조된 밀주들은 그런 편견을 이겨냈다. ●전통주 전문학교 세우는게 꿈 시중에 나오는 우리 술은 150여가지에 이른다.그도 한때 우리 술의 상업화를 시도했다.하지만 양조법을 전수받고는 사라져버리는 사기와 배신을 몇차례 당했다.“결혼 이후 외식 한번 못한” 그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운영되는 연구소와 탐주 탓에 가정 불화도 잦았다.술에 넌더리를 칠법도 하지만 그의 우리 술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지금도 술빚는 도구들이 보이는 대로 사 모으고 있다.“전통 도구들이 사라지는 게 아깝잖아요.다음에 술 박물관이라도 생기면 기증할 생각에….” 술독에 빠져 사는 인생이지만 그는 정작 술을 못한다.주량은 소주 서너잔.“맛 본 술을 모두 뱉어버립니다.좋은 술만 맛보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술을 맛보는 경우도 많지요.”그의 코끝은 늘 조금 빨갛다.지난 2000년 3월 설립된 전통주연구소의 수강생들이 붙여준 별명은 ‘빨강코’다. 전통주 전문학교를 세우는 것이 그의 꿈이란다.“술빚는 이론과 실습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전문가를 육성하자는 것이지요.정부가 우리 술에 신경을 써야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명주(銘酒)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기철기자 chuli@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
  • 이런 책 어때요 / 데이비드 베컴

    데이비드 베컴·톰 와트 지음 / 임정재 옮김 물푸레 펴냄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축구소년’.영국 이스트 런던 리튼스톤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베컴은 또래보다 한 뼘이나 작은 키에 깡마른 체구에도 불구하고 피나는 노력을 통해 축구영웅이 됐다.이 책은 베컴 스스로 자신을 성찰한 내밀한 인생고백서다.어린시절 그를 축구의 세계로 이끈 아버지,유년시절부터 맺어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의 인연과 갈등,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였던 빅토리아 애덤스와의 연애와 결혼생활,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사연 등이 진솔하게 펼쳐진다.모델이자 패션 리더로서의 베컴의 모습도 살폈다.1만 5000원.
  • 집중기획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상)김춘옥 할머니의 고달픈 삶

    “죽기 전에 하루 밤만이라도 따뜻한 방에 자봤으면….없는 사람에겐 추위보다 더위가 낫지요.” 창고같은 허름한 건물에 딸린 어두컴컴한 방 2칸을 월 6만원씩에 얻어 정신이상자인 큰 아들(49)과 작은 아들의 딸(15·중2)·아들(14·중1) 등 세 식구를 데리고 살고 있는 김춘옥(75·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할머니는 눈앞에 닥친 겨울이 걱정이다.말이 방이지 일년내내 불 한 번 땔 수 없는 냉방에서 겨울을 지낼 생각을 하면 아픈 무릎이 더 쑤시고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다. “온기가 있어야 얼어 죽지 않는다.”며 지난해 겨울 이웃주민이 갖다 준 중고 전기장판은 아직 쓸 때가 멀었다.전기료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한 겨울 밤,잠시 켜는둥 마는둥 한다. 김 할머니는 3살과 2살 되던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손녀·손자를 데려와 지금까지 키우고 있다.아이들 아버지는 혼자 이리저리 떠돌이 생활을 하다 지난해 교통사고를 내 교도소에 가 있다. 김 할머니 가정의 고정 수입은 지난 1999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돼 국가로부터 다달이 생계비로 지원받는 40여만원이 전부다.매달 방세와 수도료·전기료로 20여만원,쌀값 15만원,가스비와 아이들 준비물 비용으로 1만원씩이 고정적으로 나가기 때문에 네 식구가 입에 풀칠을 하기에도 늘 벅차다. 손녀·손자는 가방만 겨우 들려 학교에 보낸다. 속옷은 입혀본 적이 없고 겉옷은 거의 남들이 준 것이다.학원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책 한 권 제대로 사줄 수 없는데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학교에 가는 손녀·손자가 기특할 뿐이다.학교에서도 딱한 사정을 알고 급식비를 해결해주는 등 신경을 써 주는게 고맙다. 둘째 손자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할 때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새 교복 한 벌이 얼마나 좋았던지 할머니 앞에 몇번이나 치켜들어 보이며 자랑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감기나 웬만큼 아픈 것은 참고 견디다 보니 오히려 건강하다.할머니는 애들이 한창 먹을 나이에 뭐든지 잘 먹는데 제대로 먹이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얼마 전에는 쌀이 바닥나 집앞 빈터에 심어 놓았던 호박 하나를 따 죽을 끓여 주었더니 둘이서 눈깜짝 할 새에 다먹어 치우고는 ‘더 달라.’고 졸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6개월째 못내고 밀려 있는 방세가 할머니의 당장 고민거리다.날씨가 추워지자 할머니는 그동안 틈틈이 주워 모아놓았던 종이상자를 방 장판 아래 두툼하게 깔았다. 찬 방바닥 냉기를 최대한 막아야 조금이라도 덜 춥게 겨울을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낮에는 햇볕이라도 쬘 수 있어 괜찮은데 냉방에서 추운 겨울 밤을 새는 일은 여간 힘든게 아니지요.겨울은 왜 그렇게 긴지….” 김 할머니는 지난 겨울 아이들이 “추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길래 “너희들이 따뜻한 방에 지낼 복이 되느냐.”고 말해놓고는 한동안 목이 메었다고 한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내 한몸도 간수하기 어려운데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할머니는 “애들이 이제 어디가서 심부름을 해도 밥은 굶지 않겠지만 불쌍하게 큰 놈들이라 꿋꿋하게 제 앞가림을 하는 것을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량면 복지담당 간규태씨는 “관내에 이처럼 할머니와 사는 손자가정이2∼3가구 된다.”면서 “다른 농촌지역에도 이혼하거나 어머니가 가출하는 바람에 손자손녀를 데려다 키우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정해체 원인·문제점 결손가정 어린이의 증가는 최근 급증하는 가정해체에서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이후 이어진 경제불황과,이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풍조 등으로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단란했던 가정이 하나 둘씩 산산조각나고 있다. IMF 당시에는 대량 해고에 의한 경제난이 가정해체의 주 원인이었다.지금은 달라졌다.각종 언론매체의 확대보급으로 사회가 급속히 서구화되면서 자녀를 볼모로 한 ‘불행한 결혼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부부들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가정해체의 주범은 이혼 결혼 5년 만에 이혼한 H씨(36·여)는 “주변의 이목 때문에 참고 살았지만 내 인생을 당당하게 찾는 게 낫겠다 싶어 이혼을 결심했다.”면서 “아이에게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이혼건수는 14만 5324건으로하루 398쌍이 갈라섰다.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건수)은 3.0으로 10년전인 92년(1.2)에 비해 2.5배이상 늘었다. 경남가정위탁지원센터(소장 최중열·39)가 조사한 ‘경남도내 가정위탁 세대 현황’도 부모의 이혼이나 재혼이 가정해체를 가져왔음을 보여주고 있다.최 소장이 최근 도내 가정위탁 소년·소녀 691명을 면접,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아버지가 가출하자 엄마도 가출했거나 이혼한 사례가 174명이나 된다.아버지가 질병이나 사고로 사망하자 엄마가 재혼했거나 가출한 사례는 239명으로 집계됐다. 더 큰 문제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가정해체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인터넷 채팅에 빠진 중년,장기실업자와 노숙자 같은 사회적 무기력층,300만명이 넘는 신용불량자 등으로 언제,누가 또 가정을 버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허술한 사회안전망 사회·경제적 능력이 약하거나,늙고 병든 조부모 손에 맡겨진 아이들은 ‘고아 아닌 고아’로 자란다.대부분 학습능력이 부진하고,소외감과 열등의식으로 교우관계도 원만치 않다. 대구대정신건강상담센터 최웅용(심리학박사) 소장은 “조부모 등 친인척의 손에서 어렵게 자라는 아이들은 경제적·심리적 결핍으로 성장과정에서 반사회적 심리를 갖게 되거나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사회안전망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지난 96년부터 할머니(77)와 함께 살고 있는 경북 군위군 G초등교 김영일(가명·13·6학년)·영민(가명·11·4학년)군 형제는 정부가 주는 월 30여만원의 생계비와 양육비 13만원(1인당 6만 5000원)으로 생활한다.김장철이면 김장비 12만원이 따로 나오지만 정부와 자치단체의 정신적인 지원은 없다.이 때문에 가정위탁사업은 겉돌고 있는 것이다. 현도사회복지대 이태수 교수는 “우리나라의 사회보장비 지출은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이며,선진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 1만달러 시대와 비교해도 절반 정도”라며 “사회보험과 기초생활보장제도,각종 수당제도 등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반
  • [화제의 사이트]www.onmaum.com

    지하철을 탈 때마다 불이 나지는 않을까 고민한다.직장 동료에게서 왕따를 당하니 출근할 맛도 잃었다.주변 사람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고 이야기 하려해도 혹 이상한 사람 취급 받지나 않을까 더 걱정이 된다. 이럴 때는 대한신경정신과개원의협의회가 최근 개설한 ‘온마음’(www.onmaum.com)을 클릭하자.신경정신과 병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유독 많은 이 땅에서 병원 문턱을 낮추기 위해 전문의가 만든 사이트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자 하는 이들이 가장 즐겨찾는 곳은 ‘온마음 상담실’.우울·신경증,학습·수험생,부부·결혼,성(性),직장·대인관계 등 9개 항목으로 나눠 네티즌의 고민거리를 들어준다.답변은 실시간으로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이 차분하게 올리고 있다. 매사에 항상 민감해서 화도 잘 내고 자주 울게 된다는 한 네티즌의 고민에 편한 친구를 대하듯 일상생활을 해보라는 충고가 오른다.혼자 힘으로 감당이 안될 때는 가까운 전문의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사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원치 않는다면 상담내용을 공개하지않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직접 병원에 가려고 해도 어느 곳으로 가야할 지 모르겠다면 ‘병원검색’ 코너를 활용하자.전국의 신경정신과 병원이 망라돼 있다.의학계 뉴스를 읽으면서 상식도 높이고,전문의가 추천하는 영화와 음악을 감상하면서 지친 마음도 달래보자.협의회 사승언 총무이사는 “전문 상담이 필요한 사람은 물론 빡빡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작은 위안이 되는 사이트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박지연 기자 anne02@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윟하여 / (하)부부싸움과 화해

    부부상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화해를 잘하면 큰 문제없다.”라고 말한다.부부싸움을 할 때 지난 시대의 유물까지 되새김질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쿨하게’‘아름답게’ 부부싸움하는 ‘규칙’을 지킨다면 그 부부는 튼실한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우리 부부의 부부싸움을 돌아보자.그리고 우리 부부만의 ‘화해기술’을 익혀서 건강한 부부로 거듭나자. 유명 여배우 H는 자신의 이혼이유를 이렇게 말했다.“서로 화해하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나는 감정이 수그러질 때까지 혼자 시간을 갖고 싶은데 그는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돌아서면서 금방 잊어버렸고,나도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하지만 나는 그의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마치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고,날 존중하면 그렇게 행동을 할 수 없을 것이란 불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성경희(34·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씨는 한번 기분이 나빠지면 좀체 풀어지지 않는 남편 때문에 늘 고민이다.“무슨 남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삐져 있는지 몰라요.저는 어떻게든 빨리 풀려고 맛있는 반찬도 준비하고,애교도 떨면서 노력하지만 좀체 풀리지않아 나도 지쳐서 포기할 때쯤,그때서야 그는 어색한 웃음을 보이죠.나는 이미 싸늘해져서 부아가 끓어오르지만 다시 싸우기 싫어서 풀린 척하고 겨우 휴전합니다.물론 제 마음에 감정은 차곡차곡 쌓입니다.” 갈등없는 부부는 없다.아무리 금실좋은 부부도 싸우지 않을 수는 없다.아니,오히려 금실좋은 부부일수록 토닥토닥 싸우면서 산다.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는 갈등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지속되는 갈등으로 근본적인 성격차이와 생활양식,원칙,성향,정체감 등 좀체 해결할 수 없는 거리감이다.다른 갈등은 해결가능한 갈등으로 한가지 주제에 대해 일시적으로 의견이 달라 일어나는 갈등이다.해결가능한 갈등은 서로 타협을 잘하면 해결된다. 그러나 대부분 다른 원칙과 성향을 갖고 있는 부부로서는 지속적인 갈등에 대해서는 예민해지게 마련.그러나 해결되지도 않을 문제에 집착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해야 한다. ●부부싸움에도 ‘규칙’ 필요 부부싸움에 있어 비난과자기방어,경멸,도피는 절대 피해야 할 요소다.이 요소들은 이혼에 이르는 계단 역할을 한다. 비난하기보다는 불만을 이야기하고 자기방어 대신 자기 책임을 인정하며,경멸 대신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부부싸움은 ‘싱겁게’끝나고 만다.부부싸움 도중에 자리를 피하거나,집 밖으로 나가버리는 도피는 부부싸움을 더욱 악화시킨다. 정현아(32·서울 강남구 서초동)씨는 작은 말다툼에도 주섬주섬 옷을 차려입고 집 밖으로 나가는 남편 때문에 늘 마음이 상한다.“큰 문제없지만 이런 식으로 감정이 쌓이면 이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내가 하는 말을 좀 들어주면 안될까요?” 또 싸움을 끝내는 방법은 행복한 부부와 불행한 부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화해’를 잘하면 싸움도 큰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한 부부는 자신들만의 화해법으로 싸운 뒤 화해하는 과정에서 더 가까워지고,새롭게 사랑을 확인한다.그러나 불행한 부부는 화해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한 쪽에서 화해를 시도해도 무시하는 태도로 싸움을 연장시켜 결국 상처를 덧나게 할 뿐이다. ●화해 잘하면 약,못하면 독 자동차 운전을 배울 때 브레이크 밟는 것을 먼저 배우듯 결혼에서는 ‘화해’란 브레이크 장치의 역할을 먼저 아는 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의 ‘기술’이다. “그렇게 마음이 상했어? 내가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네.미안해.” “이제 당신 마음을 알았어요.이제 마음 풀어요.” 등 아내든 남편이든 한 쪽에서 먼저 화해의 말을 하면 다른 쪽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고 감정을 누그러뜨리면 된다.이쯤에서 그만 싸움을 마무리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해 낫다는 결론에 재빨리 동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회사원 이정기(38·경기 고양시 일산구 주엽동)씨는 외식으로 화해를 시도한다.“작은 말다툼이 있어 서로 따지다가도 ‘오랜만에 우리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고 말하면서 갈등을 끝냅니다.때로는 아내가,때로는 제가 외식을 제안하는데 바깥공기를 마시면서 같이 걸어나가는 동안 마음이 안정되고,별 일도 아닌 것으로 화를 낸 것이 미안해지지요.” 이씨의 부인 김성주(37)씨도 화해방법으로 함께 외출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부부싸움을 하면서 뭔가 바로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거든요.다만 감정이 상한 것을 남편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죠.일단 불평을 쏟아내면 마음이 가벼워져서 ‘이렇게 싸울 이유가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부부가 더 화해시도를 많이 할까? 행복한 부부? 불행한 부부? 답은 불행한 부부 쪽이다. 먼저 이성을 되찾은 쪽의 화해 사인에 상대방이 동의하면 싸움은 끝이 난다.그러나 불행한 부부는 한쪽의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좀체 화답하지 않아,화해시도는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브레이크 기능은 하지 못한다.물론 거듭되는 화해시도는 결국 응어리로 남아 오히려 결혼생활에 짐이 되고 만다. 정신과 ‘마음과 마음’ 김준기 원장은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불필요한 자존심과 오기를 부리며 소모적인 다툼을 할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마음의 태도를 갖고 있어야 화해시도가 가능하다.그러므로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비판적인 논쟁보다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일로 우리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정말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야한다.”고 말했다.가끔 서운한 마음에 미워하고,싸우지만 사실은 더 가까워지고 싶은 것이 대부분 부부들의 생각이다.더 가까워지고,더 사랑하고 싶다는 진실을 잘 전달할 수 있는 ‘화해방법’을 10가지쯤은 개발,준비하는 것이 좋다. 외식이나 영화관람,음악 함께 듣기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나는 상처받는다.’‘우리 둘 다 지금은 차분해질 필요가 있어요.’‘내가 너무 지나쳤어요.미안해요.’‘잠깐만,우리 지금 서로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우리 이쯤에서 타협해요.’라고 말하면서 부부싸움을 중단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우리 부부는 건강한가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사이코드라마로 풀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결혼지능연구소(소장 이호영)에서 22일부터 제일화재세실극장 무대에 올리는 ‘부부 쿨하게 살기’(연출 손기호)는 두 남녀의 설레는 만남부터 꿈같은 결혼,신혼을 거쳐 세월만큼더께가 앉은 평범한 부부를 통해 누구나 원하는, 그러나 쉽지 않은 ‘결혼의 행복’을 함께 풀어갈 예정이다. 이 연극의 특징은 연극배우 임학순,염혜란 두 사람이 부부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하지만 이들이 여는 부부와 마찬가지로 좀체 풀지 못하는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정신전문의 김준기 박사가 함께 풀어간다는 점이다.또 부부치료할 때 사용되는 갖가지 테스트를 관객에게도 제공,연극을 즐기는 것뿐만이 아니라 스스로 그들의 결혼생활을 되돌아볼 기회도 제공한다. 허남주 기자 hhj@
  •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김영희/ “이혼조정 시작은 섣불리 훈계 안하기”

    ▲43년 7월 광주 출생 ▲61년 광주여고 졸업 ▲65년 숙명여대 국문학과 졸업 ▲78년 미국 워싱턴 한인소수민족센터 총무 ▲96년 국제소롭티미스트 한국협회 영동클럽 회장 ▲99년 국제소롭티미스트 한국협회 여성인권 및 지위향상위원장 ▲97년∼현재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실.재산분할 소송을 낸 부부가 들어선다.두 사람은 10여년 이상 같은 직장에서 일해온 동료 사이.이혼합의는 끝난 상태다.아내는 재산을 50대50으로 나누길 원하고,남편은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맞섰다.김영희(60) 조정위원은 아내를 내보낸 뒤 남편을 타일렀다.“재산을 60대 40으로 나누지요.다만 남편분이 10%를 그동안 함께 살아온 부인에게 선물해 50대50으로 분할하면 어떨까요.”남편은 김 위원의 설득에 감복했다.선물받은 아내도 고마워했다.솔로몬 판결로 부부는 만족스럽게 조정실을 나섰다. ●상처받은 영혼 보듬어주기 “조정은 상처받은 영혼을 보듬어 주는 일입니다.이혼당사자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서로에게 독기를 품고 있지요.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아픔을 다독이는 것,그것이 조정의 시작입니다.” 조정은 양측이 정식재판에 회부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자리.‘조정전치주의’에 따라 가사사건은 반드시 조정절차를 거쳐야 한다.대법원의 추천으로 선정된 조정위원은 현재 서울가정법원에 76명.대부분 법대교수·변호사·법무사 등 법조계 인사다.김 위원은 97년 당시 윤관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조정위원이 됐다. 90년대초부터 세계여성봉사단체인 국제소롭티미스트(soroptimist)에서 활동한 경력을 인정받았다. 다소 생소한 단체인 국제소롭티미스트는 1921년 결성됐고 113개국 10만여명의 전문직 여성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여성봉사단체.국내에도 800여명의 회원이 있다. 지난해 가사소송사건은 5만 2731건.조정 성공률은 20% 정도.하지만 김 위원의 조정성립률은 70%에 육박한다.비결이 궁금했다.“나이가 많다고,인생을 조금 더 살았다고,섣불리 훈계하지 않습니다.나름대로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견디고 법원을 찾았으니까요.다만 공감하고 진심으로 얘기를 들어주다보면 자연스레 신뢰가 생깁니다.그러면 인생의 선배로서 설득하지요.” ●김위원의 조정성립률은 70% 육박 조정 3∼4일 전에는 골방에 앉아 소장을 탐독한다.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거짓으로 꾸민 경우가 많기에 명상의 시간도 갖는다.실체를 파악하고 상황을 재연해 보기 위해서다.이제 당사자들과 만날 준비가 된 것이다. “기선제압이 중요합니다.일부 사건당사자들은 조정을 형식적인 통과의례라고 생각하지요.조정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지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원·피고에게 조정내용이 기록에 첨부되며,재판장이 면밀히 검토한다고 알려준다.그래도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우선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묻습니다.그렇다고 확신하면 100점짜리 인생이 없다고 조언합니다.자유를 얻으면서,재산도 넉넉히 챙기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요.양쪽 손을 움켜쥐고 고통을 지속하기보단 한 쪽을 포기하더라도 새 인생을 빨리 시작하라고 설득하지요.” ●술 좋아하는 기자 남편…10년간 독수공방 자신의 결혼생활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오히려 남들보다 더 이혼을 생각했던 굴곡진 삶이었다.그렇게 ‘견뎌낸’ 40년 가까운 결혼생활의 경험 덕에 오늘 훌륭한 조정자가 됐는지 모른다.결혼을 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24살 때.남편은 신문기자였다.모 중앙지 간부까지 지내다 지금은 퇴직했다. 60년대 당시의 기자란 ‘술과 풍류를 즐기고 가정은 잘 돌보지 않는 직업’으로 알려지지 않았던가.김 위원 자신도 결혼후 10년간을 ‘뒤돌아보기도 두려운 고통의 나날’이라고 표현했다.“365일 가운데 360일을 이혼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술과 후배를 좋아하던 남편은 한달에 서너번밖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온전한 월급봉투를 받아본 일이 없다고 했다.“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의 호주머니를 만져보면 노란봉투에 동전 몇개만 딸랑거렸습니다.쌀값·분유값 때문에 늘 종종걸음쳐야 했지요.”친정 부모님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할 만큼 힘든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번도 남편에게 어디에서 외박을 했는지,어디에 월급을 탕진했는지 묻지 않았다.“거짓말을 할 텐데 꼬치꼬치 물어보면뭐 하겠어요.남편 거짓말을 그대로 믿으면 어리석은 아내가 되는 것이고,믿지 않고 따지면 싸움만 일어나고….현명한 아내라면 모르는 척하는 거지요.” 김 위원이 사회활동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결혼후 10여년이 지난 1978년 남편이 미국 워싱턴특파원으로 발령나면서부터였다. 워싱턴 한인소수민족센터에 들어가 교포들의 이혼·자녀교육 문제를 상담했고 패션디자인 학교에도 등록했다.사업활동 경험도 쌓았다.뉴욕과 보스턴 지사로 옮겨 다닌 남편의 미국 근무 기간은 길어 13년 동안이나 미국에서 살았다. “결혼생활은 사계절을 갖고 있습니다.달콤하고 따뜻한 봄,이때 대부분 결혼을 하지요.열정적이고 뜨거운 여름이 오면 장마와 태풍을 만납니다.그리고 수확의 계절 가을.하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이 남지요.마지막으로 추운 겨울입니다.하지만 4계절을 함께한 부부에게만 주어지는 찬란한 ‘눈꽃’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 부부들이 여름 장마를 헤쳐나가지 못하고 이혼을 결심한다고 안타까워했다.조금만 눅눅해도 참지 못하고,클릭하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픈 디지털 세대의 특징이라며 한숨지었다. ●행복한 결혼생활 비결 ‘혀에 돌 달고 살기'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비법’을 물었다.“혀에 돌을 달고 사세요.혀는 독화살이라 살인도 할 수 있지요.한번 퍼부은 독은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어느 아낙네가 물을 건네주면서 찻잎을 띄워 주는 여유가 바로 결혼생활의 지혜라고 말했다.“물이 체하지 않도록 찻잎을 ‘후후’ 불며 마시는 것,한번만 참고,조금만 돌아가는 것이 비결입니다.” ‘눈꽃’을 기다리는 김 위원에겐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아 있다.병든 사람들을 위한 사회사업이다.“지난해부터 수술을 몇번 받았어요.정말 몸이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아이들에게 재산을 물려 줄 생각이 없으니 차곡차곡 정리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계획입니다.” 정은주기자 e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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