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작은 결혼
    2026-04-09
    검색기록 지우기
  • 중동산 원유
    2026-04-09
    검색기록 지우기
  • 제임스 김
    2026-04-09
    검색기록 지우기
  • 하루하루
    2026-04-09
    검색기록 지우기
  • 미국 중국
    2026-04-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894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서 활동하는 中 ‘반상의 철녀’ 루이내웨이 9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서 활동하는 中 ‘반상의 철녀’ 루이내웨이 9단

    장강삼협(長江三峽), 삼국지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도도히 흐르는 장강(양자강)에 빼어난 경치의 서능협(72㎞), 무협(44㎞), 구당협(33㎞)을 말한다. 웅장함과 험준함, 오묘함이 극치를 이루는 대자연의 창조물이다. 위·촉·오 세나라가 삼협의 꼭짓점에 있었다는 것만 상상해도 어느 정도인지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1987년 여름, 장강의 삼협을 유영하는 선상(船上). 내로라하는 중국과 일본의 고수들이 참여한 바둑대항전이 벌어졌다. 대회 폐막을 하루 앞둔 날 오후. 대표선수로 참가한 루이내웨이, 장쉬엔, 요다 노리모토, 이마무라 등이 숙소 근처에 산책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요다가 루이에게 속기바둑을 한번 두자고 불쑥 제안을 했다. 이어 둘은 흑백돌을 가리고 숙소 복도에서 서로 마주 앉았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자 요다 9단이 밝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해 속기바둑은 요다의 방에서 계속됐다. 가토 9단과 장주주 9단 등이 구경꾼으로 관전했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루이를 찾는 전화였다. 중국 지도부에서 저녁회식이 있으니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싼샤 사건´으로 日유학길 올랐다가 한국행 이튿날 바둑대항전은 모두 끝나고 중국팀이 합계성적에서 일본에 패했다. 그런데 루이는 중국 지도부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다. 일본 기사의 방에 들어가지 말라는 훈령을 어겼다는 것이다. 앞서 중국 지도부에서는 “여류기사는 일본 남자 기사들의 방에 가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내렸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데다가 루이가 그걸 깜빡 잊고 요다의 방에서 바둑을 둔 것이 화근이었다. 동료 프로기사 장주주 9단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루이는 반성문까지 썼고 나중에는 국수전 등 주요 기전의 참가자격을 박탈당했다. 중·일 바둑계에서는 이를 샤(三峽)사건이라고 한다. 결국 견디다 못한 루이는 2년 뒤 장주주와 함께 중국 국가대표팀을 떠났다. 장주주는 미국으로, 루이는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다. 루이는 일본에서 살아 있는 전설 오청원(吳淸源) 9단의 제자가 돼 바둑공부를 더 할 수 있었으나 각종 기전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일본기원측이 루이가 일본 여류기전을 싹쓸이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6년을 그렇게 보내다 장주주와 결혼, 미국을 거쳐 1999년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이듬해 조훈현 9단을 눌러 외국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국수전 우승을 차지, 파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한국기원의 정식기사가 되면서 제2의 인생길을 걷게 됐다.“바둑 둘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 집이다.”고 말하는 그는 자서전 ‘우리집은 어디인가’(마음산책)를 펴낼 정도로 비록 중국 국적이지만 한국생활에 많이 익숙해지고 있다. 올해 44세의 루이내웨이(芮乃偉).18세에 중국 국가 대표선수가 됐고 35세에 9단으로 승단, 세계 바둑 역사상 여성으로는 최초로 입신(入神)의 경지에 올랐다. 그래서 세계 바둑계에서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불세출의 여류기사”라는 찬사와 함께 ‘반상의 철녀’라고 부른다. 가을바람이 감미롭게 스치던 지난주, 서울 성동구 홍익동에 위치한 한국기원 프로기사 대국실에서 루이를 만났다. 그는 “한국말을 잘 못하는데….”라며 수줍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인터뷰 도중 간간이 한자를 써가며 이해를 도와주려는 ‘친절한 철녀’였다. 한국생활이 어떠냐고 했더니 “(한국에 온 지)8년이 됐다. 프로기사 생활을 할 수 있는 한국이 좋고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이어 남편과 같은 방향의 바둑인생을 사는 게 즐겁다며 해맑게 웃었다. 자택도 한국기원 바로 옆에 마련했단다. 근황을 물었다. 대국이 없는 날에는 오전 10시쯤 기원 연구실에 나와 공부를 하거나 다른 프로기사들의 대국을 지켜보고, 또 집에 돌아가서는 남편과 함께 복기(復碁)를 꼭 한다. 이창호 9단, 유창혁 9단 등과 기원에서 복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럴 때 점심식사를 기원 옆 작은 식당에서 하는데 하얀 쌀밥이 바둑돌로 보일 때가 많단다. 집에서는 바둑TV를 시청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기보를 검색한다. 남편과 바둑을 두면 누가 이기느냐고 했다.“남편은 내가 다음 돌을 어디에 둘지 아는 것 같고, 반대로 나는 그걸 잘 모른다. 그런 것으로 봤을 땐 내가 남편보다는 머리가 나쁜 것 같다.”며 웃는다. 알다시피 루이 부부는 세계 최강의 9단 커플이다. 한살 연상인 남편은 산시성(山西省)의 타이위안(太原) 출생으로 1978년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1984년과 1985년에 벌어진 중·일 바둑대항전에서 일본의 고수들을 차례로 물리쳐 중국 국민들에게 ‘항일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세계최강 9단 커플… 한국기원 옆에 ‘둥지´ 루이와는 국가대표 시절 알게 됐고 싼샤사건으로 가까워지면서 결혼에 골인했다. 루이와 서울에 정착할 때까지 10년 넘게 외국을 돌아다녀 ‘바둑집시’라는 말도 듣는다. 루이는 “남편은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한다. 집에 DVD와 음향기기까지 설치해 영화감상을 자주한다.”면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함께 영화보는 재미가 그만이라고 말했다. “중국 국가대표를 떠난 10년 동안은 정말 무척 괴로웠지요. 특히 일본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노동으로 연명하며 견뎌야 했던 세월은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인지 요즘 한국에서는, 내몫이 아닌 것 같은 행복과 평화, 그리고 한국의 친구들이 실감나지 않을 때가 많아요. 남편이 있고, 우리 집이 있고, 새로운 삶을 열어준 바둑친구들이 있어 아주 행복해요.” 한국의 바둑기사 중에서는 목진석 9단과 김승준 9단과 친하다. 특히 김성룡 9단, 박승철 5단, 김영삼 7단 등은 중국어 실력이 상당한 수준이어서 기사실에 같이 있을 경우 한국말과 중국어를 섞어가며 열띤 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자기사 중에는 중국어를 비교적 잘하는 이지현 3단, 한해원 2단 등과 가깝게 지낸다. 루이 부부는 경희대 국제교육학원에 입학,2년여 동안 한국어를 배웠다. 한·중·일의 바둑수준에 대해서는 “한국과 중국이 엇비슷하고 일본은 좀 어렵다.”면서 한국은 힘이 센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향의 가족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지난달 중국에서 양가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했다.”면서 바둑은 어릴 적 아마초단인 아버지한테 배웠고 남동생이 아마5단의 실력이라고 귀띔했다. 상하이에서 태어난 루이는 평소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으로 집중과 인내력이 필요한 바둑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예 바둑선수가 되려고 체육중학에 진학했으며 1년반 만에 상하이 시대표에 발탁되면서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남들은 전투형이라고들 합니다. 제가 어떻게 두는 것인지 잘 몰라 일단 싸움부터 걸다 보니 그런 얘기를 듣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두터운 바둑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인생의 좌우명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하얀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이 막힘없이 써내려갔다.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달팽이 뿔 위에 싸워서 무엇하리.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부싯돌 번쩍이듯 찰라에 기대 사는 몸.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부귀든 가난이든 그대로 즐길 일이니.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크게 웃지 않는 그가 어리석구나.-백거이(白居易)의 시 중에서.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3년 상하이 출생 ▲76년 상하이 체육중흥학교(바둑훈련반) 입학 ▲78년 상하이 시대표 ▲80년 중국 국가대표 ▲88년 여성최초로 9단승단 ▲90년 일본 유학 ▲99년 한국기원 객원기사 ▲2000년 제43기 국수전 우승 ▲01년 한국기원 정식기사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8) 침술의 대가 허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8) 침술의 대가 허임

    의원은 전형적인 중인의 직업이지만, 모두 중인은 아니다. 중인이 형성되기 전인 조선 전기에는 물론 선비들이 의원 활동을 했으며, 중인층이 형성된 조선 중기 이후에도 선비 출신의 의원이 많았다. 이들을 유의(儒醫)라고 하였다.‘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도 서얼이긴 하지만 양반 출신이다. 그랬기에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의원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허준과 함께 선조의 주치의였던 허임은 관노의 아들인데 의원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은 의원으로 대를 잇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의 집안은 중인층으로 정착되지 못했지만, 그의 대표적인 제자 최유태와 오정화의 집안을 통해 그의 의술이 전승되었다. ●관노 허억봉과 여종 사이에 태어난 허임 허임이 선조나 광해군의 신임을 받아 승진할 때에도 끝내 따라다닌 꼬리표가 관노의 아들이라는 점이다.1617년 2월12일에 광해군이 허임을 영평현령에서 양주목사로 승진시키자 사헌부에서 “허임의 아비는 관노이고 어미는 사비(私婢)이니, 비천한 자 가운데 더욱 비천한 자입니다.”라고 출생 신분을 들고나와 반대하였다.18일부터 26일까지 계속 반대하자, 광해군도 결국 지쳐서 3월9일에 부평부사로 내보내는 형식으로 타협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지만, 관노와 여종 사이에 태어난 천민을 서울 인근의 목사(정3품)로 내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강원도 양양의 관노였던 허억봉은 어린 나이에 장악원 악공으로 뽑혀 서울에 올라왔다. 악생은 양민이지만, 악공은 천민이었다. 장악원 첨정 안상이 ‘금합자보(琴合字譜)’를 만들었는데, 허억봉의 연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악보는 목판본으로 간행된 악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 보물 제283호로 지정되었는데, 안상은 서문에 이렇게 썼다.“내가 가정 신유년(1561)에 장악원 첨정이 되었는데, 악공을 시험할 때에 쓰는 악보와 책을 보니 문제가 있었다. 예전의 합자보(合字譜)를 버리고 다만 거문고와 상하 괘(卦)의 차례만 있으며, 손가락을 쓰는 법과 술대를 쓰는 법은 없으니, 거문고를 처음 배우는 자들이 쉽게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악사 홍선종을 시켜 당시의 곡조를 모으고 약간의 악보를 보태어, 합자보를 고쳐 내게 하였다. 또 허억봉에게 적보(笛譜)를 만들게 하고, 이무금에게 장구보를 만들게 하여 그 가사와 육보(肉譜)를 함께 기록했다. 홍선종은 기보법(記譜法)에 통달하였고, 허억봉과 이무금은 젓대와 장구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자들이다.” 이달의 시에는 그가 악사(樂師)로 소개되고, 서성의 시에는 전악(典樂)으로 소개된다. 관노 출신이었지만 장악원 연주자 사이에 솜씨를 인정받아 연주 책임자까지 승진한 것이다. 그의 아우 허롱도 악사였다. 허씨대종회 허장렬 부회장은 “허조(許稠)가 좌의정으로 있던 세종 때까지는 하양 허씨가 떳떳한 양반이었는데, 아들 허후와 손자 허조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반대하다가 죽고 자손들은 관노가 되어 충청북도 괴산군에 배속되었다.”고 고증했다. 그래서 허임의 선조 묘소가 괴산에 있게 된 것이다. 관노가 된 허임이 좌의정 김귀영의 계집종과 부부가 된 사연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데, 허임기념사업회 손중양 이사는 이렇게 추측하였다. 허임이 태어났다고 추정된 1570년 직전에 김귀영이 예조판서가 되었다.‘금합자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장악원의 대표적인 연주자로 인정받은 허억봉은 당연히 김귀영의 집에 자주 부름받았을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계집종 박씨와 눈이 맞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관노인데다 어머니도 여종이었으면 허임은 당연히 종이 되었어야 하는데, 허임을 비난하는 글에도 그가 종이었다는 기록은 없다. 아버지가 전악까지 오르면서 제도에 따라 면천되고, 허임도 천인의 신분을 벗어난 것이다. ●어머니를 고쳐준 의원에게 품을 팔며 침술 배워 어머니 박씨가 병에 걸렸는데, 집이 가난해 의원을 불러다 치료할 수가 없었다. 의원이 진맥해서 처방을 내주어도 약재가 비싸기 때문에, 서민들은 몇 차례 침만 맞고도 고칠 수 있는 침술을 더 좋아했다. 그런데 허임의 집안은 너무 가난해서 침 놓은 수고비조차 갚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침 놓아준 의원의 집에 가서 잡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치료비를 대신했다. 그런 과정에서 눈썰미가 있던 허임이 침구법을 배운 것이다. 신통한 침술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75세 때에 자신의 평생 경험을 집대성하여 ‘침구경험방’이란 책을 냈는데, 그 머리말에서 자기가 침술을 배운 과정을 이렇게 기록했다.“명민하지 못한 내가 어려서 부모의 병 때문에 의원의 집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오랫동안 공들여 어렴풋이나마 의술에 눈을 떴다.” ‘의가(醫家)’라고만 표현했는데, 앞뒤 문맥을 보면 침의였던 듯하다. 전의감이나 혜민서에서 의학생도로 정식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그는 스무살이 갓 넘자마자 현장에 나가 침술을 베풀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해군을 따라 황해도, 충청도 등지를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광해군의 신임을 받기 시작했다.1595년에는 종6품 의학교수가 되었으니, 체계적으로 의술을 배우지 않은 그로서는 상당히 빠르게 승진한 것이다. 의원은 크게 약을 쓰는 약의(藥醫)와 침을 쓰는 침의로 나뉘어지는데, 약의는 의과에 합격해야 했고, 침의는 민간 출신도 많았다. 약의를 침의보다 높게 여기긴 했지만, 병에 따라 약의와 침의의 역할이 달랐으며, 약재가 넉넉지 않은 전쟁 중에는 침의의 할 일이 많았다. 허임을 치종교수(治腫敎授)라고도 표기했으니, 외과적인 치료도 겸했음을 알 수 있다. 선조 말년에 병이 깊어지자 여러 의원들이 자주 입시하여 치료했는데, 실록에는 허준과 허임의 이름이 번갈아 나온다. 특히 1604년 9월23일 한밤중에 편두통을 일으키자 선조가 허준에게 “침을 놓는 것이 어떻겠는가?” 물었다. 허준이 “침의들은 항상 ‘반드시 침을 놓아 열기를 해소시켜야 통증이 줄어든다.’고 말합니다. 소신은 침 놓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만, 그들의 말이 이러하기 때문에 아룁니다. 허임도 평소에 ‘경맥을 이끌어낸 뒤에 아시혈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선조가 병풍을 치게 하고, 허임에게 침을 놓게 했다.50대의 허준이 30대의 허임의 침술을 임금 앞에서 인정했는데, 약으로 며칠 끌다가 침을 맞고 완쾌된 선조는 한 달 뒤에 허임을 6품에서 정3품으로 승진시켰다. 허임이 현역에서 물러나 공주에 살 때에도 광해군은 그를 왕궁으로 불러 침을 맞았으며, 너무 늙어 말을 탈 수 없게 되자 처방이라도 보내 달라고 하였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그는 한평생 치료경험을 집대성해 ‘침구경험방’을 지었는데, 내의원 제조 이경석이 발문을 썼다. “태의 허임은 평소 신의 기술을 가진 자로 일컬어져 평생 구하고 살린 사람이 손으로 다 헤아릴 수 없다. 그간 죽어가던 사람도 일으키는 효험을 많이 거두어 명성을 일세에 날렸으니, 침가(針家)들이 추대하여 으뜸으로 삼았다.” 18세기 초엽에 조선으로 유학을 온 오사카 출신의 일본 의사 야마카와(山川淳庵)가 ‘침구경험방´을 일본에 가지고 가서 1725년 일본에서 간행하였다. ●제자 최유태와 오정화를 통해 침술 전승 허임이 공주에 정착하자 후손들이 서울의 중인들과 연결되지 못했지만, 허임의 침술은 제자들을 통해 대대로 전수되었다.‘급유방(及幼方)’이라는 의서에 숙종시대 명의 두 사람을 소개했는데, 이들이 모두 허임의 제자였다. 그 기사는 이렇다. “숙종시대에 태의(太醫) 최유태와 별제(別提) 오정화는 모두 허임에게서 침술을 전수받아 당대에 이름났다. 나는 이 두 사람에게서 그 침술의 연원을 전해들었으므로 자세히 기록하였다.” 최유태는 9대 의원으로 이름난 청주 한씨 출신이다. 최귀동부터 계손, 덕은, 준삼, 응원, 유태를 거쳐 만선, 익진, 택증과 택규에 이르기까지 9대가 모두 의원으로 활동했다. 응원은 내침의(內針醫)인데,23세 되던 1651년 의과에 합격한 작은아들 유태는 아버지의 침술을 전수받지 않고 허임의 침술을 전수받았다. 응원의 맏아들 유후는 1639년 의과에 합격했는데, 그의 후손들도 만상, 익명, 홍훈까지 의원으로 활동했다. 오정화의 집안은 11세 오인수까지 문과 합격자를 낸 양반이었지만,13세 오구가와 14세 오대종이 무과에 합격해 무반이 되었으며, 오대종의 맏아들인 15세 오인량이 역과에 합격하여 역관 가문이 되었다. 둘째아들인 오제량은 무과에 급제해 무반의 전통을 이어받았는데, 그의 아들 오정화(吳鼎和)가 역관의 딸과 결혼했지만 가업을 잇지 않고 허임의 침술을 전수받으면서 그의 후손 가운데 한 계파는 역관으로 이어지고, 한 계파는 의원으로 이어진다. 의과에 합격해 활인서 별제(종6품)까지 오른 오정화는 침만 잘 놓은 것이 아니라 약까지 처방을 내려 의약동참의로 이름을 올렸는데, 그의 후손들은 17세 지철,18세 덕신,19세 명검,20세 인풍까지 여러 대에 걸쳐 모두 침술 의원으로 대를 이었다. 오정화의 아들 17세 지항부터 24세 경석까지 8대에 걸쳐 역관을 낸 것도 유명한데, 이미 26회부터 29회까지 4회에 걸쳐 역관 오경석과 오세창의 중인 활동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오경석의 사위 이용백은 대표적인 중인 집안의 족보를 집대성한 ‘성원록’ 편찬자로도 널리 알려졌는데, 그는 이 책의 해주 오씨 항목에서 역관으로 이어지는 17세 지항의 계파를 정통으로 놓고, 의원으로 이어지는 17세 지철의 계파를 왼쪽에 배치하였다. 허임의 후손들은 중인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허임의 침술은 제자 최유태와 오정화를 통해 대대로 전수되면서 중인 침의의 전문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WBA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 김주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WBA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 김주희

    “발톱 모으기가 취미죠. 히히히.” 앳된 처녀의 고운 입에서 나온 대답이라곤 정말 상상 밖이었다. 무슨 ‘본 콜렉터’도 아니고…. 그럴 만한 사연이 있겠지. 지난해 11월이었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에서 시작된 염증이 어느새 발목까지 퍼졌다. 나중에는 온몸에 고열까지 생기는 등 증상이 심해졌다. 워낙 낙천적 성격인 데다 아버지 병수발 등으로 차일피일 미룬 것이 화근이었다. 감당해 내기가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혼자 끙끙 앓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래, 저 산꼭대기에 오르는 거야. 그럼 하느님이 낫게 해주시겠지.’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곧바로 서울 도봉산으로 향했다. 막상 산을 오르려니 이날따라 초겨울 찬 바람과 오른쪽 발·다리 통증으로 인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운동화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절룩절룩, 걷다가 풀썩 주저앉고 또 주저앉고…. 그러기를 여섯시간 만에 겨우 정상에 다다랐다. 평소 같으면 두 시간도 채 안 걸리는 높이였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쳤고 정신이 몽롱해져 한참을 드러누웠다. 그러면서 ‘하느님이 있다면 제게 의지를 주십시오. 제발 몸을 낫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절히 염원했다. 잠시후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때였다. 눈앞에 ‘복서’라는 글자가 크게 들어왔다. 아니?! 갑자기 기운이 생기면서 그쪽으로 절뚝절뚝 걸어갔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봤더니 그것은 ‘북서, 남서’라는 방향표지판 글씨였다.‘북서’를 ‘복서’로 착각했던 것.‘피식’ 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어 허공을 향해 “그래, 나는 복서야 복서, 죽어도 링에서 죽을 거야.”라고 크게 외쳤다. 비로소 ‘복서는 나의 운명’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받는 순간이었다. ●‘골수염´ 딛고 따낸 세계챔피언 그는 이날 등산객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산을 내려왔고 이튿날 병원에 입원했다. 골수염으로 발가락 뼈를 잘라내는 등의 수술을 받았다. 하루 20㎞ 이상 달리는 심한 훈련 등으로 염증이 생겼던 것. 이로 인해 빠진 발톱을 자주 찾다 보니 취미가 됐다. ‘얼짱’ 효녀복서로 알려진 김주희(21)가 바로 주인공이다.2004년 12월 최연소 나이로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세계챔피언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이후 파죽지세로 3차방어까지 성공한 그는 지난달 24일 세계권투협회(WBA) 라이트플라이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에서 일본의 사구라다 유키를 TKO로 이겨,IFBA와 WBA 양대 기구를 석권하는 또 한번의 대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날 경기가 끝난 직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다시 링에 올라선 제가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라며 한동안 울먹여 주위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5개월 동안 250여회 연습스파링 등의 고된 훈련, 이로 인해 발톱이 빠지고 뼈를 잘라내는 수술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링에 오른 일, 또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극진히 병수발하는 숨은 효행 등이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보통 또래 같으면 대학생활의 낭만을 한참 즐길 나이였기에 이런 사연은 안타까움과 진한 감동으로 전해졌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체육관에서 흔치 않은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을 만났다. 체육관 입구에는 ‘작은거인 김주희 세계 챔피언 획득’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는 시합 뒤에 따르는 회복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첫인상이 복서라는 느낌은 전혀 안들었다. 화장기 없는 ‘생얼’에 모자쓴 모습이 영락없는 평범한 20대 초반의 앳된 처녀였다. 화장을 안 하느냐는 질문에 “화장품도 없고, 또 화장할 줄도 몰라요. 피부가 하얀 것은 새벽에 운동해서 그래요.”라는 즉답이 돌아온다. 그런데도 얼짱이라고? 눈치를 챘는지 “얼짱이라는 말에는 ‘얼짱구’와 ‘얼짜증’도 포함돼 있어요.”라고 재치있게 웃어 넘긴다. ●“얼짱요? 얼짱구 아닌가요?” 몸상태가 어떤지 궁금했다.“발가락 절단수술로 근력이 떨어지다 보니 걷는 게 힘들어 제대로 운동을 못하고 있어요.”라면서 “지난번 시합 때 발가락 부상 부위를 피해 복사뼈 쪽으로 복싱 스텝을 밟다가 오른쪽 발목 인대가 늘어났어요. 요즘 인대를 조이는 운동도 병행하고 있지요.”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의사의 거듭된 권유로 인대수술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선천적으로 빈혈이 조금 있었지만 요즘에는 많이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수술하면 아버지 병수발은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깁스하고서라도 해야죠. 또 직장다니는 언니도 있고요.”라고 대답했다. 그의 부친은 IMF 외환위기때 실직과 이혼을 겪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혈압과 당뇨가 심해졌다. 심지어 뇌경색으로 여러번 쓰러져 현재 말도 제대로 못하는 중환자 신세다.. 김주희는 이런 아버지를 손수레에 태우고 일주일에 2∼3차례 꾸준히 병원엘 다녀 동네에서는 소문난 효녀로 칭찬받는다. 아울러 그는 세계 챔피언이 된 뒤 대학(대학원까지 장학생 혜택)에 들어갔고 얼마 전에는 가난한 셋방살이에서 8평짜리 장애인 아파트로 이사를 하는 등 가장노릇도 톡톡히 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링은 사실상 삶의 전부나 다름없는 셈이다. “원래는 육상선수였어요. 솔직히 육상보다 더 거친 복싱을 좋아하게 될 줄 미처 몰랐지요. 중학1년 때 말수가 점점 적어지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저를 보고 언니가 불쑥 복싱을 권유하더군요. 그래서 언니가 주유소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 옆 복싱 체육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됐지요.” ●저돌적 기교파, 복부공격이 특기 이렇게 해서 복서의 길로 들어선 그는 때마침 당시 관장(현 정문호 스프리스체육관장)의 배려깊은 지도로 이어지면서 숨은 재능과 실력이 일취월장, 발전을 거듭했다. 김주희 자신도 복싱에 재미를 붙여 하루 다섯 시간 이상 잠을 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지독한 연습벌레가 됐다. 중3 때 프로테스트에 무난히 합격했으며 고1 때인 2001년 6월 일본의 사와이미와 선수와 시합(무승부)을 통해 정식 프로선수로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그는 중학생 때부터 교내매점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하면서 자립심은 물론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근성을 스스로 길렀다. 이후 2002년 9월에는 첫 KO승을, 그리고 11월에는 이인영 선수에게 첫 KO패를 당하는 쓰라림을 맛보았다.2003년 3월 국내 플라이급 챔피언에 오른 데 이어 2004년 12월 드디어 IF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등극했다. 지금까지 12전 10승 1무1패(3KO)의 전적이 말해주듯 저돌적으로 파고드는 기교파. 특히 여자선수가 하기 힘든 복부 가격을 주특기로 한다. “흔히 복싱을 무식한 운동이라고 하잖아요. 맞아요. 몸을 사리지 않고 그저 열심히만 하기 때문이죠. 자격증도 어렵게 따야 전문가가 되잖아요. 저는 세상을 살면서 성실이 최상의 무기라고 생각해요. 잘하지 못하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는 못당해요.” IFBA와 WBA 등 두번에 걸친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르면서 김주희는 더욱 성숙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프로는 방어가 아닌 다양한 공격을 통해 관중들에게 이것저것 많은 재미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나름대로의 복싱철학을 피력했다. 아울러 “모든 시합에서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반은 이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차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은퇴시기를 언급하자 “도봉산 꼭대기에 있는 방향 표지판의 ‘북서’글씨가 제대로 보일 때가 아니겠어요.”라며 활짝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86년 서울 출생. ▲2005년 영등포여고 졸업. ▲01년 프로데뷔. ▲03년 한국 플라이급 챔피언. ▲04년 한국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IF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 ▲06년 IFBA 주니어플라이급 3차방어 성공. ▲07년 8월 WBA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현 대전중부대학교 엔터테인먼트학과 2학년 재학중. ▲전적 12전 10승1무1패(3KO승).
  • [길섶에서] 이별의 기술/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이별하는 사람, 이별을 얘기하는 사람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져, 그 조각이 부딪치며 고통스러운 소리를 낸단다.‘이별의 기술’의 저자 프랑코 라 세클라 이야기다. 이별, 헤어짐은 때론 존재의 의미를 잃게 한다. 롤랑 바르트는 이별은 당사자들을 공중분해하게 한다고 했다. 그 아픔이 ‘기술’로 극복될 수 있을까. 어느 문인의 추억담이다. 대학시절 정말 좋아한 여성이 있었단다. 결혼하자고 졸랐지만, 그녀는 답변을 미뤘다. 조바심의 그는 어느날 분필을 내밀었다. 결혼 결심이 서면 금요일 오후 그녀 대학의 정문에 동그라미를, 아니면 가위표를 그리라고 했다. 금요일 오후. 그는 학교로 달려갔다. 멀리서 교문이 보였다. 가슴은 두방망이질이었다. 기차가 요란한 기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그는 행운의 전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커먼 철문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동그라미도 가위표도 아니었다. 작은 세모였다. 세모는 이별을 전하는 배려였을까. 기술이었을까. 지금도 세모 문양을 보면 가슴이 뛴단다. 애인이 변심했다고 해코지했다느니 하는 기사가 눈에 띌 때면, 이따금 떠오르는 삽화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누가 울어~ 교장(校長)과 여학생(女學生)과 교사(敎師)와

    누가 울어~ 교장(校長)과 여학생(女學生)과 교사(敎師)와

    학교에서 파면당한 여선생이 파면에 불복 소송, 급기야는 대법원에까지 올라가게 되어 화제가 되더니 똑같은 학교에서 파면당한 또 한분의 여교사도 소송을 제기 - 패소와 승소로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파면조치뒤엔 교장선생과 제자의 「스캔들」이 있다는게 이 여선생님들의 주장. 파면불복 승소한 두선생 “교장이 스캔들 숨기려고” 68년 11월 26일. 서울D여고 교장 이운하(李雲夏)씨(67·가명)는 국어담당여교사 강(姜)모씨(45)를 「파면」 했다. 강교사는 이에 불복, 69년 초 서울지법에 「면직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과 「면직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어 승소했다. 이교장은 『파면됐으면 순순히 물러나야 할게 아니냐』는 생각으로 즉시 불복항소했지만 역시 패소, 대법원에 까지 밀고 올라갔다. 70년 대법원은 이를 다시 고법에 환송, 지금껏 계류중에 있고 강교사는 학교에 계속 나오고 있으나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강교사가 파면당한 이유는 68년 2월에서 3월 사이 여러차례 벌어진 학생들의 「데모」사건에 개입,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것. 또 화학교사인 13년 장기근속자 손(孫)모여교사(40)가 68년 6월 초순께 파면당했다. 이유는 출근도 하지않고 도장을 사환에게 맡겨 출근부에 찍게 했으며, K대학 부도사건에 관련, 스승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는 것. 그러나 손교사는 한 시간도 빠뜨린 일이 없고, 징계위원회도 소집한 일 없이 즉흥적으로 파면처분한 것이라 주장, 69년 5월 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70년 2월 1심에서 패소한 손씨는 2월 14일 고법에 항소, 70년 12월 18일 승소판결을 받았다. 『저나 강선생 뿐만이 아니고 많은 선생들이 뚜렷한 이유없이 파면당했읍니다. 현재 C국민학교에 간 서(徐)모교사, S여고에 간 박(朴)모교사, 서무실 근무의 백(白)모·정(鄭)모선생, 고등학교 한(韓)모교감이 모두 그만 두었어요』 손교사는 이렇게 많은 인원의 교사들이 전원 타의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은 바로 모종의 「스캔들」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문제의 「스캔들」사건은 지난해 연말 12월 24일께 표면화 되기 시작했다. D여고 이운하 교장의 양조카이며 동계여중의 교장인 이천승(李天昇)씨(가명·48)와 제자간에 얽힌 소문. 『70년12월24일 상오에 전화가 왔었어요. 이천승씨 부인인데 돈을 줄테니 만나자는 거예요. 그래서 동생들이 멋모르고 나갔는데, 종로(鍾路)서의 이(李)모형사가 「좀 갑시다」해서 끌려 갔대요. 3일동안이나 경찰서 보호실에 있었어요. 죄목은 「공갈협박죄」라는데 이상한건 잡아넣었으면 법원에 넘길 일이지 3일만에 되돌려 보낸건 뭐죠?』 학생때 몸버렸다는 제자 교장부인은 공갈로 고소 이 「스캔들」사건의 당사자인 양(梁)모여인(27·미혼)언니가 전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양모여인 언니의 주장과는 달리 경찰조서에서 나타난 사실은 사뭇 의외다. 즉 70년12월24일 종로서 형사과는 이교장부인의 고발로 양여인과 그 오빠를「공갈및공갈미수」혐의로 입건하고 검찰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조서에 따르면 양여인과 그 오빠는 지난 8년간 모두 1백만원의 돈을 이교장으로부터 받아 썼으며 다시 이교장과의 관계를 청산한다는 조건으로 2백만원을 요구했다. 이교장쪽과 상의한 결과 이 금액은 1백만원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이교장쪽이 미처 1백만원의 돈을 만들지 못하고 50만원만 준비, 그러자 양여인쪽은 1백만원을 채워줄 것을 요구하고 50만원마저 받지않아 공갈미수의 혐의를 받게된 것. 한편 검찰에 청구한 구속영장은 ①사건원인발생기간이 너무 오래 경과되었고(62년부터) ②양여인이 처녀의 몸이란 이유로 기각, 이 사건은 불구속입건된채 현재 종로서에서 수사를 계속중. 양여인은 이천승 교장과의 간통사실에 대해서 「사실증명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 「사실증명서」는 잇따른 교사파면 사건과 이교장의 추문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동교출신 동창생들이 모여 양여인과 직접 면담, 본인의 자필로 된 고백서를 받아둔 것이라함. 날짜는 미상, 양여인의 지장이 찍혀있다) 『저는 학생시절에 방송실에서 선생님한테 처녀성을 뺏겼읍니다. 야간수업이 끝날 무렵 교실에서도 또 교장실에서도 또 강당에서도 그리고 D동 목욕탕에서도 그랬고 중국집 M마루에 가서도 여러번 그랬읍니다. 학생시절에 제가 뭘 압니까? 저는 제몸이 이렇게 됐으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달라고 그랬읍니다. 이천승이라는 분이 나를 괴롭힌 그 죄를 어떻게 씻을 수가 있겠읍니까』 “당했다” “당하지 않았다” 는 자백서 두가지 당시 양여인은 고교 3년생으로 방송반에 있었다. 62년 전방위문을 가면서 양여인과 당시 교감이던 이씨의 관계는 막을 열었던 것으로 돼있다. 학교를 졸업한 양여인은 생활수단으로 이교장으로 부터 돈을 얻어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치사하지만 돈받은 액수를 생각나는대로 기입하겠읍니다. 4월4일(연도는 명시하지 않음) 8만원, 자기집 방에서 부인으로부터 5만원, 2만원은 5월께에 주고, 나머지 3만원은 결혼청첩장을 보고 확인을 한 다음에 준다고하여 청첩장(주(註)=가짜로 찍은 것으로 추측됨)에는 언니의 지장을 받고 3만원을 주었읍니다』 이 사건의 가장 걸작은 이천승교장쪽에 추행당하지 않았다는 양여인의 자백서와 녹음 「테이프」가 있다는 것이다. 『부인이 나한테 전화로 자기집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이씨가 나를 강간하지 않았다고 쓰라고 해서 서면으로 썼읍니다. 그것을 교장선생님한테 갖다 드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양여인이 두사람의 관계를 부인하는 녹음이 교장실에 비치되어 있다는 것. 녹음할 당시 이씨쪽으로부터 20만원을 받았다는 양여인쪽의 주장이다. 한편 문제의 녹음 「테이프」에 관해 본인인 이교장의 해명을 요구했으나 연3일간에 걸친 면담요구에 이교장은 무슨 까닭인지 계속 회피했으며 녹음 「테이프」의 제시도 거절했다. 이씨를 대신해 기자와 만난 동교서무실장은 녹음 「테이프」의 유무(有無)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으며 제시요구에 『이교장과 직접 만나보라』며 회피. 작년 12월 24일, 양여인과 그의 오빠가 갑작스럽게 종로서에 구속된 것은 바로 이러한 8년에 걸친 거래관계가 깔려 있었던 것. 양여인쪽의 「금전요구」와 때로는 『악착같이 교장선생님과 살아 보겠다』는 끈덕진 압력에 못이겨 이씨의 부인이 「공갈협박」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치사한 「사제지간」의 소문은 양여인이 학교를 찾아 갈 때마다 더욱 번져갔다. 서모교사는 양여인의 고백을 들었고 박모선생 역시 같은 「케이스」. 서무실 근무자들은 울며불며 포악하는 양여인을 달래다가 소문의 내막을 알게 됐던 것. 이러한 소문은 자꾸 퍼지는 법. 교장쪽의 입장도 짐작할만하다. 한편 양여인쪽은 혼인을 빙자한 간음죄로 곧 이씨를 사직당국에 고발할 예정. 교장선생쪽은 「공갈협박」혐의로 이에 맞설것이 예상되어 어떻게 시시비비가 가려 질지는 모르지만 만일 파면당한 여선생의 주장처럼 교장선생의 비행을 감추기 위해 무고한 교사들을 파면했다면 결코 감추어 두거나 덮어두어야 할 일은 아니다. <식(植)> [선데이서울 71년 1월17일호 제4권 2호 통권 제 119호]
  • [열린세상] 최저임금제와 아파트 경비원/최병서 동덕여대 경영경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최저임금제와 아파트 경비원/최병서 동덕여대 경영경제학부 교수

    얼마 전에 한 아파트 경비원이 정리해고에 항의하면서 관리사무소에 불을 지르고 자신도 불에 타 숨졌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이 비극적 사건의 원인은 그다지 언론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 원인은 역설적으로 아파트 경비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임금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시행된 최저임금제 때문이었다. 최저임금제가 도입되면서 비용부담이 가중된 아파트 입주민들이 경비원을 줄이고 운영비가 다소 저렴한 무인경비시스템을 설치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최저임금의 70%를 보장하면 아파트 경비원 월급은 평균 110만원에서 130만원으로 오른다. 결국 최저임금제 자체가 취지는 좋은데 정작 나이 많은 경비원들은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모르겠다며 허탈해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수많은 아파트에서 경비원 대량해고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최저임금제란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기능을 인위적으로 규제하는 제도로서 시장에서 결정된 임금 수준이 최저 생계비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이를 보전해주는 제도이다. 이러한 규제가 도입되면 시장에서는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그 하나는 수요자 측에서 경비원 고용을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금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더 많은 경비원 지원자들이 노동시장에 나온다는 점이다. 이 경우에는 보다 젊은 노동자들이 시장에 뛰어들어 점차 생산성이 떨어지는 나이 많은 경비원들은 퇴출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경비원 노동에 대한 대가가 비싸짐에 따라 이를 보다 싼 비용의 자본재로 대체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무인경비시스템의 도입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최저임금제의 도입은 제조업 부문에서 저기술 노동자들의 실업을 증가시킨다. 가령, 청소년 노동자들이나 결혼한 부인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들의 저임금을 보전해주려는 이 제도가 오히려 이들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경제학 교과서에 소개되어 있고, 바로 이러한 이론이 오늘의 아파트 경비원의 비극적 죽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는 작은 기사가 실렸다. 맨해튼 도어맨에 관한 것으로, 내용은 이렇다. 뉴욕시 링컨센터 근처 67가 어느 건물 로비에는 사람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북적이고 있었다. 잠시 후 그 모임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서프라이즈’하는 환호가 들려왔다. 이 서프라이즈 파티의 주인공은 바로 이 아파트에서 40년 이상 일해온 도어맨이고, 이 날이 그의 72번째 생일이었고 이를 축하하기 위한 모임이었다는 것이다. 뉴욕의 아파트에도 무인 보안 장치들이 설치되고 있지만 여전히 제복입은 도어맨들이 문을 열어주고 택시를 잡아주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뉴욕의 지하철에서도 요새는 승차권 무인판매기가 설치되어 있어 ‘메트로카드’라는 교통카드를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매표소에는 주로 뚱뚱한 흑인 여자가 앉아서 토큰을 팔고 있다. 자동판매기를 완전히 보급하면 토큰 판매원을 대체할 수 있지만 그들의 실업을 우려한 시당국은 여전히 토큰 부스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두 기사가 시사하는 바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서울의 아파트 경비원들의 사정은 어떤가? 2중,3중 주차를 할 수밖에 없는 아파트일수록 조금이라도 있을지도 모르는 접촉사고를 우려하면서 경비원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우리나라 아파트 주민 가운데 자신의 아파트 경비원의 생일파티는 고사하고 그들의 이름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질문은 우선 나에게 먼저 해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최병서 동덕여대 경영경제학부 교수
  • ‘내 생애 최악의 남자’서 첫 주연 탁재훈

    ‘내 생애 최악의 남자’서 첫 주연 탁재훈

    TV 오락프로그램의 방청객 혹은 출연자가 된 기분이다. 탁재훈과의 인터뷰 내내 그런 느낌이었다. 거의 10초마다 한번씩 폭소가 터지지 않았을까 싶다. 고운 목청은 어머니에게서 왔고,“바람끼를 포함한 모든 끼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익살을 떤다. 유머 감각은 외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체득한 것이라고 한다. ‘컨츄리 꼬꼬’란 간판을 걸고 8개월째 빈둥거리다 출연한 오락프로그램에서 사생결단하고 입담을 펼쳤다. 뭘 하든 개그맨보다 더 웃긴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 꼬리표는 언젠가부터 ‘부적’이 됐다. 그리고 이제 그는 어디에 갖다 놔도 평균 이상은 하는 만능 연예인으로 각인됐다. 카메오로 출발,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해 사람들의 눈에 든 영화만 7개. 마침내 불혹의 나이에 당당하게 주인공 자리까지 올랐다. 그의 첫 주연작은 30일 개봉하는 ‘내 생애 최악의 남자’. 술김에 치른 ‘거사’로 10년 우정을 깨고 대학 동창과 결혼하는 소심남 성태 역이다. 영화는 결혼 직후 완벽한 이상형을 만난 뒤 흔들리는 커플의 이야기다. ●1998년 영화계 첫발… 가수로 데뷔했지만 다시 영화품으로 사실 그는 영화에 먼저 몸담았다.1988년 ‘마님’이라는 작품에서 연출부로 일했다. 군대 제대 후 93년 다시 충무로로 돌아온 끼 넘치는 그에게 주변에선 배우를 권했고,‘혼자 뜨는 달’로 데뷔했다. 하지만 인연은 여기까지였다.4년을 놀다가 31살에 가수로 새출발했다. 가슴 한 구석에 미련은 늘 있었고, 한참을 돌아 원점에 섰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이제야 기회가 오는구나.”했다. 그에 앞서 고마움도 느꼈다고 했다.“나를 택하기까지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그래서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연기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끔 만든 작품은 코미디 ‘가문의 위기’다.“이 영화로 청룡영화제 신인상 후보까지 올랐어요. 그런데 0표를 받았어요. 이건 저한테 약을 친 거예요.(웃음)한 세 표 정도 나왔으면 이쯤에서 됐다 했겠는데 자극이 확 되더라고요.” ●“시나리오 제목만 봐도 감이 팍팍” 지금까지 그가 맡은 배역들은 TV에 나온 코믹한 이미지를 차용한 것들이다. 이번 영화도 그럴까. 뚜껑을 열어보니 망가지는 건 오히려 상대 배우 염정아다.“얼마큼 자연스럽게 가느냐가 관건”이었다는 말처럼 탁재훈은 너무나 멀쩡하다. 그가 아주 많이 웃겨줄 거라고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탁재훈이 망가지지 않으면 무슨 재미? 하지만 현재 촬영 막바지에 있는 그의 또 다른 주연작 ‘어린왕자’를 놓고서는 입을 다물지 못할 듯하다. 여기서 그는 깊은 상처를 간직한 음향효과 기술자로 나온다. 감독은 그의 슬픈 눈을 보고 낙점했단다.“맨날 울어서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에요.(웃음)” 시나리오 선택의 제1요건은 ‘제목’이란다. 실컷 웃었는데 그는 사뭇 진지하다.“진짜로 저는 제목을 보면 감이 와요.” 폼 잡지 않는 것 또한 그의 매력이 아닐까. 다음 작품은 역시 제목에 ‘필’이 꽂혀 선택한 로맨틱 코미디 ‘어젯밤에 생긴 일’이다.“노래는 생계가 아니라 생활”이라는 그는 당분간 영화에 ‘올인’할 작정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유대인인 난 나치 마스코트였다”

    “다섯살이던 1941년 10월이었다. 나치 친위대 병사들은 내게 군복과 작은 총을 두 자루 쥐어줬다. 나는 나치의 구두를 닦거나 물을 길어 주고, 불을 켜는 등 심부름을 맡았다. 그러나 가장 큰 임무는 병사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었다. 마스코트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가족을 잃은 벨로루시 출신의 한 유대인 소년이 나치 친위대(SS·Schuth Staffel)의 마스코트로 3년간 지내야 했던 기구한 사연이 공개됐다. 주인공은 호주에 사는 알렉스 쿠르젬(70). 수십년 동안 과거를 숨겨오다 1997년에야 비로소 부인과 자녀에게 사실을 털어 놓은 쿠르젬은 최근 자서전 ‘마스코트’를 통해 오래된 비밀을 공개했다고 BBC방송 인터넷판이 21일 보도했다.1941년 10월20일 나치가 벨로루시의 고향 마을을 침공하면서 그의 운명은 격랑에 휘말렸다. 당시 다섯살에 불과했던 그는 부모와 형제가 모두 죽임을 당하는 와중에 가까스로 숲속으로 피신해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죽은 병사들의 군복에서 먹을 것을 구해 목숨을 연명하며 숲에서 9개월을 보내다 마을 주민에 발견돼 독일군 병사에게 넘겨진 그는 “나를 죽이기 전에 빵 한 조각만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독일 병사는 무슨 이유에선지 “다른 병사에게 너를 러시아 고아라고 알리겠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이후 SS는 그에게 유대인을 색출해 수용소로 보내는 임무를 맡기기도 했다. 1944년 나치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SS사령관은 그를 라트비아의 한 가정으로 보냈고,5년 후인 1949년 그는 호주로 건너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서커스단에서 일하다 TV수리공이 되어 멜버른에 정착, 호주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유럽을 떠나면서 스스로에게 “너의 과거는 모두 잊어라. 너는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 것이다.”라고 굳게 다짐했다는 쿠르젬은 가족에게 과거를 밝힌 후에야 고향 마을을 다시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본명이 ‘일리야 갈페린’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라트비아의 한 기록영화에서 어린 시절 SS복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이 달에 만난 사람] 그 남자 감독, 그 여자 편집

    [이 달에 만난 사람] 그 남자 감독, 그 여자 편집

    취재, 글 이미현 기자 ┃ 사진 한영희 한눈에 보아도 두 사람은 참 다르다. 조용조용한 말투에 순박해 보이는 박흥식 감독(46세)과 경상도 사투리에 말도 생김도 시원시원한 박곡지 편집기사(43세).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박곡지 씨를 ‘열 감기’, 박흥식 감독을 ‘해열제’라고 부른다. 내로라하는 감독과 제작자를 쥐락펴락하는 그녀도 남편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는 이야기.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이미 박곡지 씨는 성공한 편집기사였고, 박 감독은 아직 조감독으로 일하고 있었다.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박 감독이 프러포즈를 했는데 박곡지 씨가 그리던 장소가 아니었다. “그랬더니 장소만 옮겨 똑같은 프러포즈를 다시 하는 거 있죠.” 그녀는 그의 그런 순수함이 좋았단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 그로 인한 갈등이 없었을까? 박 감독이 <역전의 명수>로 감독 데뷔를 한 것이 결혼하고도 8년 뒤라는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신기하게 그런 것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어요. 사람들 사는 게 다르지 않겠지만, 우린 좋은 집, 좋은 차… 그런 고민들을 조금 덜하며 사는 것 같아요. 둘 다 이상이나 꿈에 대한 허용치가 크달까요.” 얼마 전 개봉을 마친 영화 <경의선>의 제작자는 바로 부인인 박곡지 씨다. “그간 모아둔 돈 많이 들어갔죠. 남들처럼 좋은 집 사는 데 보탤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영화 한 편 샀다고 기쁘게 생각하려고요.” 이런 두 사람도 크게 부부 싸움을 한 적이 있다. 바로 <역전의 명수>를 편집할 때다. 남편의 첫 장편영화인 만큼 애정과 욕심이 앞섰던 것. 그 시간들이 두 사람에게 좋은 약이 되었던지 <경의선> 때는 별 마찰 없이 편집을 마쳤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할 때만큼은 두 사람 모두 양보가 없다. “상업영화, 예술영화 구분이 없다고 하지만, 이런 구도로 하면 예술영화라고 외면당하게 돼.” “그건 편견이지. 상업적인 잣대로 만든 영화들이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그 잣대를 가진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그걸 무시할 수는 없어.” “그 잣대를 바꾸어야 해. 코미디도 깊이를 지닐 수 있다고.” 어째서일까? 옥신각신 논쟁 중인 두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박흥식 감독의 영화에는 가족이 있다. IMF 사태로 가족이 깨지는 것이 가슴 아파 실직자의 하루를 다룬 단편 <하루>를 만들었고, <역전의 명수>는 쌍둥이 현수, 명수의 가족이 배경이다. 영화 <경의선>에선 가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주인공인 만수와 한나는 한 가정의 아들, 딸로 등장한다. 실제로 박 감독은 6남매의 맏아들이고, 박곡지 씨는 9남매 중 다섯 째다. 박 감독에게 가족은 당연히 늘 함께인 ‘사람’이자 내가 머무는 ‘자리’이다. 아내 박곡지 씨는 가족을 이렇게 말한다. “거짓말이 아닌 한, 나와 같은 편이 되어주는 사람.” 몇 년 전 <역전의 명수>를 준비하면서 영화 제목 관련 표절 사건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남편이 박곡지 씨에게 당신이 삭발을 해야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두말없이 “그럴게”라고 했다. 당시 그녀는 임신 9개월, 만삭의 몸이었다. <경의선>이 개봉하자 박 감독은 관객이 한 명만 있어도 무대 인사를 가겠다고 했고, 박곡지 씨는 남편이 받을 상처가 염려되어 그를 말렸다. 하지만 박 감독은 무대 인사를 강행했고, 뒤에서 아내는 혼자 마음을 졸여야 했다. 이런 아내의 마음을 그는 알 것이다. 박곡지 씨도 인터뷰를 빌어서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남편의 마음을 알 것이다. 가족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일에 있어서는 철저한 박곡지 씨이지만, 천하의 그녀도 못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정리’다. 하지만 박 감독은 정리의 달인. 냉장고 속까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일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아내의 고자질에 지지 않고 한마디 하는 남편. “어떻게 당신은 자기 옷장 정리도 안 해.” “해도 당신이 다시 할 거잖아.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지.” “그래도 당신은 좀 심해.” “당신도 심해.” “맞아, 우린 둘 다 심해.” 웃어버리고 마는 두 사람. 사랑 찍고 행복 편집하는 찰떡궁합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그 남자 감독, 그 여자 편집’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시작은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로 해서 중반부터는 홈 드라마가 될 테고, 부부 싸움 씬에서는 약간의 액션 장면도 들어가겠지? 아직 그 영화는 촬영 중이다. 박흥식 감독은 1999년 실직자의 하루를 다룬 단편 <하루>로 토리노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영화 <역전의 명수> <경의선>을 감독했다. 올 연말 크랭크인을 목표로 한국 남자와 일본 여자의 사랑을 다룬 세 번째 영화 <연>을 준비 중이다. 그는 무엇이든 다 늦었다. 대학 입학도, 결혼도, 영화감독 데뷔도…. 늦게 시작한 만큼 오래오래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반대로 그의 아내 박곡지 씨에게는 최연소 편집기사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1987년 편집기사로 일하기 시작해 5년 뒤 정식 편집기사가 되었고, 이후 탁월한 편집 감각을 인정받아 수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접속> <친구>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미녀는 괴로워>에 이르기까지 100여 편의 영화를 편집했으며, 1997년 <은행나무 침대>로 페낭국제영화제 편집상을 수상했다. 둘 사이엔 일곱 살 딸 혜민이와 다섯 살 아들 보민이가 있다.
  • [강유정의 영화 in] 관타나모로 가는 길

    가혹한 역사는 인간을 우연적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역사란 인간이 밟아온 인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때론 역사가 더 힘이 세다. 때로 역사는 마음대로 사람들을 끌고 가 인생의 지침을 돌려놓는다. 잔혹하다. 우리를 관통하는 ‘역사의 힘’ 앞에서 사람들은 속수무책 나약해진다. 그 지침을 다시 돌려 놓을 수 있는 것도 인간이지만 역사로 인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는 것도 인간이다. 마이클 위터바텀의 영화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지금, 이곳 지구상 가장 뜨거운 격전지인 아프가니스탄을 조감하고 있다. 영국에서 공부 중인 파키스탄 청년 네 명은 우연히 아프가니스탄에 가게 된다.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이들이 호기심으로 아프가니스탄행에 나서게 된 것이다. 시작은 호기심이었지만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세상은 그들은 그냥 두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인종적 유사성 하나만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추종하는 알카에다로 지목된다. 그리고 그 이후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다른 길로 가고 만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인물들은 영어가 희망이 되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더욱더 신랄한 고문의 빌미로 전도된다. 자백을 하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처럼 심문은 계속된다. 미군은 비디오 화면이나 사진에서 비슷한 얼굴을 찾아내 저 사람이 당신이 아니냐고 밀어붙인다. 아니라는 부정은 의미없는 비명으로 전락한다. 자신을 증명하려 아무리 애써봐도 소용이 없다. 미군에게 붙잡혀 하루 5분의 산책시간만을 허용받은 채 지낸 시간은 자그만치 2년이다.2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은 천천히 소진되어 간다.‘인 디스 월드’로 우리에게 알려진 마이클 윈터바텀은 격전지의 상황을 리얼하게 전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형식을 선택했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이란 등지에서 촬영된 화면은 실제 장면과 섞여 긴장감을 높여 준다. 세미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채 웅크린 그들을 보면 그 답답한 현실이 바로 전달되는 듯하다. 정말 갑갑한 것은 그들이 아무런 혐의 없이 잡혔던 2년이 영화적 설정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엄연한 현실로 여전히 ‘그들’이 거기에 존재한다. 이는 수용소를 벗어난 다른 아프가니스탄에도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곳은 그렇게 점차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상 그들의 삶이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한때 우리의 과거도 역사로 인해 우연적 존재로 전락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이 그랬고 광주항쟁이 그랬다. 우연히 1980년 5월18일 광주에 있었다면 그에게는 지울 수 없는 화인이 남게 된다. 어쩌다 우연히 1987년 6월9일 신촌에 있었다면 지독한 최루가스와 함께 쓰러진 한 남자를 모른다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지독한 역사는 개인의 삶과 추억을 허용하지 않는다. 언제나 전쟁 중인 이 세계, 암담한 현실을 목도하는 작품이 바로 ‘관타나모로 가는 길’이다. 영화평론가
  • [김숙기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느긋한 남편 답답해 때리게 됩니다

    Q저는 매사에 급하고 화끈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남편은 반대로 언제나 느긋하고 무엇을 하든 급할 게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 옆에 있으면 답답하여 큰 소리가 나오고 화가 나서 일상 생활에서도 툭하면 화를 잘 내고 공격적이 됩니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제 시간에 일어나는 법이 없고, 차려놓은 식탁에 먼저 와 앉는 일이 없습니다. 너무 화가 나 싸울 때면 착한 남편을 때리기도 하는데 곰같이 맞고만 있으니 점점 제 자신이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친정아버지의 무서웠던 성격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정준희(가명·39세) A공포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될 정도로 변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고 있군요. 한편으로는 다행한 일입니다. 자신의 폭력적 결과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행동을 수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해석하는 방법을 바꾸면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연애할 때에는 나와 다른 성격을 가진 상대에게 매력을 느껴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생활해 보니 ‘다르다.’는 그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합니다. 상대방의 성격은 연애 때나 지금이나 사실 달라진 게 없습니다.‘여유로운 성격이라 좋다.’에서 ‘답답해서 미치겠다.’로 내 해석이 바뀐 것이지요. 감정은 우리의 해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해석하는 대로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행동을 결정하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남편이 제 시간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 곧바로 화나게 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생각 즉,‘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또 나를 무시하네.’라는 해석이 당신으로 하여금 화나게 하고 폭력적인 결과를 만든 원인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바꾸기에 앞서 내 해석방법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보는 것을 먼저 해야 합니다. 일부러 아내를 힘들게 하기 위해, 골탕 먹이기 위해 늦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또한 잔소리는 상대방을 무력하게 만들 뿐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 “앞으로는 깨우지 않겠다.”고 선언하시고 잔소리를 중단하세요. 자기 책임 하에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행복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 결정권을 가진 주체로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았을 때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감정을 조절하고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감정이 폭발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분노 표출을 상대에게 풀어서는 안 됩니다.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낼 때 남편뿐 아니라 가족들은 공포를 경험하게 됩니다. 상대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좌절하고, 불안해지면서 크게 움츠러듭니다. 화를 잘 내는 배우자와 함께 사는 사람은 깊은 상처를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서 무기력해지고 관계를 해결할 힘을 잃어버립니다. 또한 ‘화’를 내는 입장에서도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기 때문에 툭하면 쉽게 화를 내고 자주 우울하다고 느끼며 신경질적으로 변해 악순환이 됩니다. 작은 것이라도 남편에 대한 장점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바꿔나가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재빨리 아무도 없는 방으로 들어가서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겨 보세요.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기 감정에 대해서 깊게 들여다 보세요. 일어난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내가 어떤 해석을 하고 있었는지 살펴보고 그와 반대되는 해석을 해보면서 화난 감정에 반박을 해보는 것이지요. 또한 안전장치로 ‘타임 아웃!’이라는 신호를 보내면 무조건 즉시 중단한다는 약속을 설정해 놓으세요. 남편과 대화하다가 감정폭발과 행동자제가 어려워지기 직전 ‘타임 아웃!’ 신호를 보내고 즉시 자리를 떠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입니다. 화가 났을 때 그 ‘화’를 잘 다루는 방법을 배워서 실천해 나가야 자신의 삶을 원하는 방향대로 살 수 있습니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장>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헐리우드 스타들이 즐겨찾는 ‘5대 휴양지’ 어디?

    무더운 한여름. 바야흐로 휴가철이다. 많은 사람들이 잠시 일상을 잊고 도시를 떠나 해변으로 향하고 있다. 이는 태평양 건너에 있는 할리우드 스타들도 마찬가지. 여름을 맞아 속속 휴양지로 떠나고 있다. 스타들은 주로 어디서 휴가를 보낼까. ◆ LA인근 말리부 “가까운 곳이 좋아!” 할리우드 스타들의 휴양지는 비슷하다. 대부분의 스타들이 가까운 LA인근의 캘리포니아주 말리부에서 휴가를 보낸다. 팝스타 힐러리 더프, 브리트니 스피어스, 톱모델 알렉산드라 앰브로시오, 배우 다이엘 로이드, 패리스 힐튼, 린제이 로한 등이 말리부를 찾았다. 특히 할리우드 문제아 3인방 힐튼, 로한, 스피어스는 말리부의 마니아들. 이들은 말리부에 별장을 지어놓고 한 달에 수 차례씩 찾아가 썬탠을 하거나 수영을 한다. 한 번 말리부를 방문할 때마다 며 칠씩 머무르는 편. 혼자서 갈 때도 많지만 가끔 남자친구와 동행하기도 한다. 해외로 가는 스타들은 프랑스 생트로페스와 스페인 이비자 섬을 주로 찾는 편이다. 최근 결혼한 섹시스타 에바 롱고리아, 배우 우마 서먼, 팝스타 비욘세 등이 최근 생트로페스에서, 배우 시에나 밀러는 이비자 섬에서 휴가를 보냈다. 이 외에 마이애미, 하와이 등의 해변을 방문하거나, 유럽 로케를 가서 휴가를 즐기는 스타들도 있다. ◆ 해변에서 생긴일, ‘피서지 노출 사건’ 스타들의 휴양지에서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들이 많이 생긴다. 스타들의 진한 애정 행각이나 밀회 현장이 포착되기도 하고, 비키니를 입은 스타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그 중에서도 쌩얼이나 가슴을 노출한 스타들의 모습은 가장 놓칠 수 없는 볼거리. 힐튼, 로한, 신디 크로포드가 최근 휴양지에서 가슴을 노출했다. 힐튼은 지난달 17일(한국시간) 말리부 해변에서 서핑 보드를 정신없이 즐기다가 가슴이 노출되는 사고를 겪었다. 로한은 지난 6월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남자친구와 즐겁게 놀던 중 비키니가 흘러내리면서 가슴을 노출하게 됐다. 크로포드는 스타들이 자주 가는 생트로페스에서 요트를 띄어놓고 가슴을 노출한 채 휴식을 즐겼다. 때문에 말리부를 비롯해 스타들이 주로 가는 휴양지에는 파파라치들이 항상 상시 대기하고 있다. 파파라치들은 휴양지 곳곳에서 스타들의 모습을 찍어 네티즌들에게 공개한다. 올해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스타들의 휴양지 사진이 각종 연예사이트에 올라와 네티즌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 힐튼과 로한은 ‘비키니 마니아’ 할리우드의 패셔니스타인 힐튼과 로한은 휴양지에서 서로 경쟁하듯 남다른 비키니 패션 감각을 뽐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둘은 말리부에 머무르면서 매일 다른 디자인의 비키니를 갈아입었다. 하지만 디자인은 달라져도 특유의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힐튼은 화려한 디자인의 비키니를, 로한은 심플한 디자인의 비키니를 주로 착용했다. 먼저 힐튼은 화려한 비키니로 섹시한 느낌을 살렸다. 별 모양, 표범 무늬, 밀리터리 무늬와 주로 원색의 색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골반이 훤히 파인 ‘치골’ 비키니를 즐겨입었다. 섹시한 ‘치골’ 비키니는 키 170cm 자랑하는 힐튼의 늘씬한 몸매에 잘 어우러졌다. 반면 로한은 섹시보단 큐티한 매력을 강조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많이 입는 치골 비키니도, 끈 비키니, 작은 비키니도 입지 않은 것. 중요 부위를 최대한 많이 덮는 비키니로 노출을 자제했다. 디자인은 심플하고 세련된 모양을 선택했다. 몸매는 힐튼에 못 미치지만 로한 특유의 귀여운 매력을 잘 표현했다. ◆ 비키니 드레서 ‘최고 VS 최악’ 힐튼과 로한 외에도 많은 스타들이 휴양지에서 비키니를 입는다. 돈많은 스타들은 대부분 대담하면서도 파격적인 스타일의 비키니를 즐겨입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완벽한 비키니 맵씨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로한처럼 세련된 감각의 비키니를 선보인 스타가 있는가하면, 우마 서먼처럼 어정쩡한 느낌의 비키니를 입은 스타도 있다. 로한은 네이비 컬러의 비키니 상의에 네이비&화이트 스트라이프 하의로 믹스매치했다. 네이비로 통일된 비키니였다면 평범하고 지루해 보였겠지만 아래위 다른 무늬의 비키니는 어색하지도 않고 세련되어 보였다. 여기에 짙은 하늘색 플랫폼 슈즈를 매치하는 센스를 보여줬다. 최근 아이들과 함께 해변을 찾은 서먼은 멋스러운 화이트 홀터넥 스타일 비키니 상의를 입었다. 하지만 서먼이 입은 비키니 하의 스타일은 상의가 주는 느낌과 천지차이였다. 윗 배까지 올라온 비키니 하의는 마치 거들을 연상케 했다. 평소에 그가 보여줬던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 송은주·탁진현기자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길섶에서] 아, ‘돌베개’/이용원 수석논설위원

    누구에게나 평생 간직하고픈 책이 몇권 있을 터인데, 내게는 그 중 하나가 고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였다.10대 중반이던 1971년 그 책을 사서 읽고는 장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마음에 심어두었다. 아울러 ‘돌베개’는 가장 아끼는 책이 되어서, 가령 친구가 빌려달라고 해도 무슨 핑계를 대서건 손에서 놓지를 않았다. 내가 결혼해 분가할 때도 ‘돌베개’는 당연히 챙겼다. 그런 어느날 시골 작은아버지가 집에 와 하룻밤 묵으셨다. 그리고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네 책 몇권 빌려가야겠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돌베개’를 집어드시는 게 아닌가. 말릴 방도가 없었다. 다음에 시골집에 내려가 찾아보니 ‘돌베개’는 이미 없었고 작은아버지는 그 행방을 모르셨다. 그 ‘돌베개’가 며칠 전 돌아왔다. 그때 그 책이 아니라 2007년 나온 개정판으로. 책장을 넘기며 옛날의 감동을 되살리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 돌아온 책은 아들·딸에게 먼저 읽혀야겠다. 그러면 우리 사이에 공감대가 또 하나 형성될 테니까.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이정연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허세 심한 남편 뒷바라지 힘들어

    Q회장 직함이 몇 개나 되는 허세가 심한 남편 때문에 정말 힘듭니다. 아이들은 등록금과 용돈을 벌려고 시간당 30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도 식당일을 하며 생활비를 버는데, 탤런트처럼 잘생긴 남편은 부유층 행세를 하고 다니며 집에 한 푼도 가져오지 않습니다. 성실하게 돈을 벌려고 하기보다는 다단계 사업으로 한번에 큰 돈을 벌 생각만 하고 그러다 사기에 걸려들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집을 줄여서 사업 자금을 해달라고 합니다. 남편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나도 모르게 자식들에게 폭언을 하게 되고, 아이들에게도 이혼할 테니 아버지랑 살아라 하고 말해 버립니다. -최인숙(45·가명) A평생 알뜰하게 살아오신 최인숙님의 가정에 남편으로 인한 경제문제라는 괴물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정확히 확인하지 않았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다면, 부인 모르게 카드나 대출로 인한 빚이 늘어갈 수 있습니다. 친목회 회장이라는 체면 유지를 위해 허세를 부리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부인이 평생 하시다 보니 마음의 병을 얻은 것 같습니다. 최인숙님의 가정 문제는 표면상으로는 경제문제와 우울증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더 많은 근본적인 문제도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현재 남편과 부인의 가족이며 결혼생활의 역사까지 다 평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금이라도 변화될 수 있는 부분을 하나씩 점검해 보겠습니다. 우선 남편의 스타일이 지금 갑자기 바뀔 수는 없습니다. 가정에 무책임한 것은 분명 문제이나 만원이 있어도 책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치장하는 데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인은 아마도 큰 돈이 생겨도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못할 분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소비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가치관이나 성격과 연결돼 있습니다. 성격은 바뀔 수 없으니 이런 분에게 매일 성실하게 일하고 고정적인 월급을 가져오는 자상한 남편을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비현실적인 기대일 수 있습니다. 그 대신 화려하고 매력적인 그리고 남에게 호감을 주는 남편의 성격이나 외모, 행동을 자원으로 활용하는 부업을 부부가 같이 하는 방향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을 끌어모으기는 하나 사업 수완이 부족한 남편을 부인이 보완하여 함께 작은 가게라도 한다면 남편이 혼자 일을 벌이다 실패를 반복하는 것보다 안전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남편과의 갈등 때문에 자녀와의 관계도 악화되는 것 같은데, 현재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것을 자녀들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잘 자란 아이들에게 타격을 주는 말은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더 늙은 후에 방황하던 남편은 돌아와도 마음에 상처를 입은 자녀들은 내 곁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시고, 자녀에게 화풀이나 과잉 기대를 할 때마다 자신의 욕심을 늦추시기 바랍니다. 부인께서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나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의도적으로 활발한 외부 활동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우울증이 나를 찾아온 게 아니라 내가 들여와 기르는 어둠의 꽃입니다. 내가 우울증에 기대고 하소연할수록 꽃과 잎이 번성하여 우리 집 전체가 어두워집니다. 이 화초에 안방을 내줄 수 없듯이, 부인이 스스로 걷어내시기 바랍니다. 남편에 대한 원망을 버리고, 경제적인 능력이 없더라도 아이들 아버지로서 건전한 생활을 하도록 기대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기만 해도 부인의 가슴에 박힌 돌덩어리가 작아질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교과서에는 정답이 없는 경우도 있고, 열심히 살아도 늘 시험 점수가 낮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오답은 아닙니다. 부인에겐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지켜온 강한 유전자가 분명히 있으며, 자녀들도 강한 인내심을 기르게 되어 크고 작은 난관을 극복하는 데 유리할 것입니다. 남편을 비난하지 말고, 현재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부인께서 중심 역할을 하시기 바랍니다. <목포대교수·가족상담문화센터장>
  • 내 맘속에 초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 맘속에 초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글 홍승범(본지 편집장) | 사진 한영희 2005년 4월호 장영희 교수로부터 2007년 7월 가수 이은미까지, 그간 ‘초대’에는 총 스물여섯 분이 참여하여 진솔한 대화를 나눠주셨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 있는 분들을 한 자리에 초대하는 일은 매회 산고를 안겨주었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모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릴레이 인터뷰 ‘초대’가 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이후 더 풍성하고 실팍한 내용을 담아 돌아올 것을 약속드립니다.이번 호에는 그간 ‘초대’에 등장했던 대담자의 면면과 어록을 살펴봅니다. 장영희(영문학자, 서강대 교수)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장영희-김점선(화가) 관능의 힘이 그대를 이끈다 김점선-신희섭(뇌 과학자) 단순함의 아름다움 신희섭-정말로(재즈 보컬) 꽃잎 날리네, 햇살 속으로 / 머물다 가네, 꽃그늘 아래 정말로-이외수(소설가) 고독한 산보자의 꿈 이외수-류승완(영화감독) 유쾌하고 정직한 분노의 방식 류승완-최일도(목사) 지상의 양식 최일도-인요한(의사) 1백 년 린튼 가의 ‘조선 살림, 한국 사랑’ 인요한-최불암(탤런트) 홀로 안으로 익어가면 / 그게 남자요, 아버지요 최불암-한준호(한국전력 CEO) 한 가지 마음으로 한길을 걸어가다 한준호-문국현(유한킴벌리 대표) 청년의 꿈을 청산에 심다 문국현-김후란(시인) 재능이 아니다, 열정이다 /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김후란이병훈(유니베라 대표) 꿈은 현실보다 힘이 세다 이병훈-한젬마(화가) 그림 밖으로 걸어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한젬마-유인촌(서울문화재단 대표) 내 꿈은 그대를 꿈꾸게 하는 것 유인촌-장미희(배우) 여름, 보리울의 길목에서 장미희-홍세화(한겨레신문 시민편집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홍세화-정혜신(정신과 전문의) 다시, 인간에 대한 예의로부터 정혜신-한비야(국제 NGO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내 어여쁜 사람아, 일어나 함께 가자 한비야-박경철(시골의사) 쓸모없음보다 두려운 것은 없다 박경철-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행복한 자유주의자와의 대화 공병호-심재명(엠케이픽처스 사장) 모든 평범한 삶은 특별하다 심재명-장윤주(모델) 날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나요? 장윤주-배한성(성우) “친구, 인생은 더빙이 안 된다구” 배한성-정관용(KBS 심야토론 진행자) 대한민국의 정중앙에 서다 정관용-이은미(가수) 화려하고 쓸쓸하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장영희 행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절대 행복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갖고 있습니다. 행복에 관한 한 우리는 참으로 변덕꾸러기라서 손에 넣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행복은 영원이 아니라 순간적인 것이고, 그래서 진정한 가치와 행복은 위대한 성취의 이면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김점선 상대적으로 둔하고 끈질긴 예술가들만 남게 돼. 너무 예민하면 죽어. 무시도 이겨내야 하고, 운명 같아. 조물주가 작가 하나를 만들 때 일부러 굳센 의지를, 뚝심을 심어 놓지. 스무 살에 빛나지 않고 육십, 칠십에 빛나게 아주 조금씩 키워갈 수 있는 씨앗만을 집어넣지, 누구나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런 조숙하고 완성된 재능을 넣지는 않아. 그렇게 되면 타락하기 쉬워. 시들어 버린다니까. 신희섭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그 일을 쉽게―다른 사람이 보기에―잘 해내는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부른다. 그는 그 일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다. 정확하게는 ‘뇌에 배어 있다’가 맞는 표현이다. 뇌에 배어 있는 기능이 몸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일상의 전문가이다. 자는 일, 먹는 일, 걷는 일 하나만 해도 우리가 얼마나 오랜 연습 끝에 이룩한 기능인가? 정말로 진실과 맞닥뜨리려면 얼마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해요. 입맛에 맞는 달콤한 음악을 하기는 쉽지만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잖아요. 재즈가 좋은 건, 음악과 나 사이의 공간에 거짓이 존재할 틈이 없다는 거예요. 거칠지만 그만큼 진솔하니까. 이외수 험, 험. 하던 얘기 마저 합시다. (담배 하나 물고) 옛날에 내가 심산유곡에 들어가 문장공부를 했거든. 겨울에 냉방에서 자고, 밥할 때만 불 떼고. 눈이 첩첩이 쌓여있으니 나무 구하기가 힘들어 아예 달밤 같은 때는 문 열어놓고 닫으나 여나 춥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밖을 내다보는데, 아! 그 달빛 속의 나무가 너무 거룩해 보이는 거요. 이렇게 추운데, 저자는 홀딱 벗고서 홀로 서서 겨울을 나는구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렇게 초연하게 겨울을 날까. 딱 보면 내 신세 같은데… 그러다가 문득 그와 내가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얻은 겁니다. 그때부터 문장도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묘사하고 설명하는 문체가 아니라 그 사물의 마음으로 말을 하게 된 거지. 류승완 자칭 걸작 시나리오를 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람들을 가끔 만납니다. 그러나 만나고 보면 그들은 시나리오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써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제가 직접 만든 단편 영화를 가지고 대한민국의 모든 영화제에 출품해서 모조리 떨어져 봤습니다. 영화학과 시험에도 빠짐없이 낙방을 경험했고요. 데뷔하기 전까지 열한 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썼는데, 한 번도 공모에 당선되지 못했고 영화사에도 팔지 못했습니다. 재능은 극복할 수 있지만 열정은 극복할 수 없어요. 시쳇말로 중요한 것은 펀치가 아니라 맷집이 세야 한다는 겁니다. 최일도 어느 날, ‘밥퍼’ 현장에서 진지를 드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신문을 보시다가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어이, 최 목사! 또 책을 냈구먼. 아, 네. 졸작을 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건 아는구먼. 예? 무슨 말씀…. 이 사람아, 예수는 책 한 권 낸 적 없는데, 그 제자라는 사람이 뭔 책을 그리 많이 내? 아, 예. 그래서 늘 부끄럽습니다. 내고 싶어 낸 게 아니라…. 지난번에 저쪽에서 냈으니 이번엔 이쪽에서 내달라고 하도 졸라서…. 아, 시끄러워! 어쨌든 당신이 냈잖아. 이것 봐. 우리는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목사 말고 예수님처럼 사는 목사를 기다리는 게야…. 인요한 가난과 역경에 맞닥뜨려도 웃으면서 헤쳐나가는 것이 조선 사람의 본래 얼굴입니다. 결핵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한 주민이 해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몹쓸 병에 걸렸지만 어쩌겠어요. 열심히 끝까지 싸워봐야죠.” 너무나 의연한 자세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용기 있게 맞서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린 지금 어떻습니까? 걸핏하면 한강에 풍덩, 목숨을 버리는 풍조가 생겨났어요. 병원에 와 보세요.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목숨은 선물인데, 그런 나약한 태도는 원래 우리의 모습이 아니에요. 비겁한 도피예요. 최불암 요즘 들어 내가 주례를 많이 보는데, 아버지가 울면 딸이 울고, 딸이 울면 반드시 아버지가 울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손으로 눈물을 닦지 않아요. 마치 흘린 적 없다는 것처럼 눈만 껌벅거릴 뿐. 그래서 결혼식장에서는 아무도 아버지의 눈물을 볼 수 없고 다만 딸이 그것을 느끼게 되는 거지요. 내 사무실에 여직원이 하나 있었는데 아주 어렵게 자란 친구예요. 시집갈 때 내가 주례를 봤는데 그이 아버지도 역시 눈물을 떨구고 있더라구. 신부는 화장 지워가면서 같이 울고…. (아들? 그때는 어머니가 울지) 한준호 북한 현지 KEDO발전소 건설 당시 작업에 참여한 현지 인력 4백 명 가량을 강당에 모아 놓고 교육을 시켰어요. 그런데 하루는 그중 한 사람이 와서 강당 불이 밝아 글을 볼 수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전등의 삼분의 이를 끄고 나머지만 켰더니 그제야 눈이 편하다고 했답니다. 우리 눈에는 너무나 익숙한 불빛이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눈이 부실 만큼 밝다는 사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어떤 문명을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한 방증이라 할 겁니다. 문국현 언젠가 피터 드러커 선생을 만나 뵈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비가 막 쏟아지는 날인데, 아흔다섯의 연세에 다리가 불편하셔서 워커에 의지하시면서도 식사를 굳이 나가서 하자시는 겁니다. 아! 선생님, 도대체 이 도전하는 정신의 정체는, 그 정열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여쭈었더니 답이 명쾌했습니다. “인생은 긴 달리기이고, 사람은 모름지기 젊게 살아야 해! Life is long running, people must keep young!”. 김후란 미래는 현재다, 이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요. 미래가 현재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미래로 달려가는 것이잖아요. 이병훈 일터는 우리가 하루 3분의 2 이상의 시간과 정력을 쏟는 곳입니다. 당연히 자아성취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자아라는 건 개인과 기업의 꿈이 하나 될 때 성장하니까 가능하면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그래서 제게는 10조짜리 회사를 만들겠다는 욕망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함께 일하는 ‘참 좋은 회사’ 하나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한젬마 잘 어울려서 내 몫만큼 살고 가는 것. 그게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일 거라고 생각해요. 나이 들면서 모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제가 정말 싫어하는 거예요. 젊은 나이에는 잘 모르고 달려드는 패기도 좋고 날카로움도 좋지요. 하지만 나이 들어 그러는 것은 부담스러워요. 너무 공격적이거나 강한 것도 싫고요. 조용하고 침착하고 내면의 힘이 느껴지는 사람이 좋아요. 유인촌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계층에 있는 사람들, 예술에 대해 별로 인식이 없어. 말로는 뭔 소리 못 해. 하지만 옷 벗고 속에 있는 얘기 다 끄집어내다 보면 예술을 하찮게 생각해. 문화를 해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이다 떠들지만 말 뿐이야. 결국 예술가들이 그이들의 머리를 깨우쳐줘야 하는데 부끄럽게도 대부분 역량이 부족해. 예술가? 딴따라? 그 역할 너머냐, 안쪽이냐로 구분하면 돼! 장미희 언제 어디서든 당당한 배우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못 그래요. 전날 밤 준비하고, 고민하고, 그러고도 막상 나가야 할 때가 닥쳐오면 “정말 싫어!” 혼자 떼를 써요. 요즘도 공적인 자리에 가면 “말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편안히 놔주었으면 좋겠어” 중얼거리면서 귀퉁이에 숨어요. 아직도 저는 왜 배짱이 요만할까, 혼자 고민하지요. 홍세화 한국으로 돌아가면 땅을 많이 밟아보리라, 파리에 있을 때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자동차가 사람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위로 가라, 밑으로 가라 아니면 건물 속으로 들어가라…. 사람의 길이 없구나, 길이 없어서 사람들이 길을 찾지 않는구나, 나는 독백을 했습니다. 정혜신 ‘인간은 자기가 아닌 만큼만 인간일 수 있다.’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던 한 유태인 정신과 의사가 이런 말을 남겼어요. 인간은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 만큼만 인간이라는 거고, 본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의 자의식 속에서만 진정한 이성적 존재가 나타난다는 거죠. 한비야 생각하는 사람thinker도 있고, 행동하는 사람actor도 있어요. 저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어떻게든 손발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니 후자이겠죠. 생각해보세요. 목욕탕 가서 생각보다 뜨거운 물에 들어갔어요. 견딜 수 없죠? 튀어나가야 하죠? 그게 절박감이에요. 난 그게 뭐가 됐든지 일단 ‘필’이 오면 100도까지 끓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요. 성에 안 차! 박경철 죽어서 아버지를 만나서는 “그래, 잘했다” 칭찬을 받아야 하고, 아픔을 함께해준 친구에게는 언제든 힘이 되어주어야 해요.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아내에게도 실망을 줄 수 없으니 결국 이들이 저를 하루 24시간 감시하고 격려하는 거죠. 당연히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할 수밖에요. 공병호 안분지족, 나는 노! 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좀 더 높은 목표에 에너지를 쏟고 그것에 몰입할 때 행복을 느낍니다. 일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절반의 행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이 항상 좋을 수는 없겠지만, 마찬가지로 사람도 항상 행복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행복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일을 하면서 행복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심재명 재테크요? 문외한이에요. 성격이요? 직관적이고 감성적이랄까, 지레짐작해서 일을 그르친다고 남편에게 늘 주의를 받아요. 화나는 일이요? 영화 잘 만들 고민을 하지 않고 잘 살아남을까만 궁리하는 사람을 마주 보는 일. 화를 자주 내냐고요? 못내요. 좌우명이요? 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말자. 성공이요? 그런 걸 꼭 생각해야 하나요? 나이에 따라 현명하게 자신을 변화시켜가면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그게 성공 아닐까요? 장윤주 리허설 백 번 하고 관객 앞에 딱 한 번 서면 그만인 게 쇼예요. 하루 만에 끝날 거 할 짓 없어서 이렇게 준비하나,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한 번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되풀이하지 않는 비장한 올인이 멋있잖아요. 예전에는 쇼가 끝나고 나면 아쉬운 기분에 맥주도 한 잔씩 했는데, 이제는 박수를 뒤로하고 무대를 내려와 본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모습도 너무 좋아요. 쿨하게 안녕히 계세요, 하면서 총총 발걸음을 돌리는 그런 내 몸짓들이 진짜 멋있다, 완전 카리스마다, 스스로 감탄하기도 해요. 배한성 방송 잘하는 법 궁금하시죠. 책 나와 있어요. 조금 두꺼운 게 흠이긴 한데, 읽다가 지치면 훌쩍 뛰어넘어 맨 뒤를 봐도 좋아요. 거기 아마 이런 이야기가 쓰여 있을 거예요. 여태껏 얘기한 건 이론이다, 방송은 타고나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뭘 타고나느냐, 재능? 아니, 끈기. 정관용 토론 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것은 교육에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지선다 주입식 학습의 폐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거죠. 정운찬 총장 재직 시 서울대학교에 기초교육원이 만들어졌습니다. 거기서 뭘 가르칠까요. 말하기와 글쓰기랍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에 들어온 우수한 학생들이 정작 학문을 위한 기본 소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은미 남 모르는 아픔과 고민 갖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도 제 주변에는 세상이 다 그런 거다, 너 혼자 고민하는 것 아니다, 코웃음 치는 사람이 없었어요. 늘 한 발짝 뒤에서 지켜주기만 하는 그런 진짜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정작 제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 [대선주자 25시] 한명숙 前총리

    [대선주자 25시] 한명숙 前총리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린다. 오후 9시 광주 무등극장.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말이 없다. 체구가 작은 그는 숫제 의자에 파묻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충격적인 장면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 전 총리는 옆자리에 앉은 남편의 손을 살짝 잡아본다. 남편 박성준 교수도 문득 부인의 존재를 깨닫는다. 서로 잠시 눈을 맞춘다. 둘 다 영화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둘은 지난달 27일 ‘5월 어머니회’ 회원들과 함께 5·18을 그린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했다.‘5월 어머니회’는 5·18 당시 가족을 잃은 여성들의 모임이다. 이날은 이 영화의 광주 개봉일이었다. “꼭 5·18 현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역사를 가졌나 가슴에 새기고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한 전 총리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광주 금남로에 왔다고 했다. 영화가 끝난 뒤 그는 목놓아 우는 ‘5월 어머니회’ 회원들과 손을 맞잡았다.“이런 좋은 날이 와서 영화까지 만들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래도 아직은 억울하고 원통해서….”반백이 다된 여성들이 말을 잇질 못한다. 한 전 총리도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 선언 후 벌써 세 번째 호남을 찾았다. 범여권 대선 주자들에게 호남은 특별한 의미일 수밖에 없다. 호남 지지가 없으면 대권도 없다. 이번 방문에서 그는 광주와의 특별한 인연을 새삼 강조했다. “저는 광주교도소에서 5·18을 맞았습니다. 감옥 안에선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질 않았어요.”한 전 총리는 광주 지역 원로 윤공희 대주교를 만난 자리에서 옛 일을 회상했다.27년 전, 두려웠다고 했다. 당시 그는 총소리가 들리고 헬리콥터가 드나들어 전쟁이 난 줄 알았다.“전쟁이 나면 정치범부터 죽이잖아요. 그 현장에서 저는 하루 24시간 감시받으며 목숨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그 열흘을 버텼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한 측근은 “5·18 광주를 생각하면 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범여권 후보가 될 수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전 총리 삶의 궤적은 역사 앞에서 부끄럼 없이 당당하다.”고 덧붙였다. “손 전 지사는 80년 5·18 당시 어디에 있었나요. 그리고 93년 정치 입문은 어떤 당 간판을 달고 했나요.”범여권 주자들이 두고두고 손 전 지사를 공격하는 대목이다.“최근까지의 행적·발언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우리 범여권이 반성해야 합니다.” 한 전 총리는 ‘여성 리더십’과 ‘새로운 가치’에 대해서도 역설했다.“지금까지의 남성중심적 문화와 국정운영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여성적 가치, 부드러운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를 겨냥하기도 했다.“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박근혜씨나 남편의 후광을 입은 여성 리더십이 아닌 자기 손으로 운명을 개척한 여성 리더십을 보여주겠다.”고 호언했다. 자신만만 했다. “세계가 여성지도자를 원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아일랜드의 메리 로빈슨과 독일 메르켈 총리, 그리고 이제는 인도에서도 여성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우리도 여성대통령, 나올 때 되지 않았을까요.”외유내강형인 한 전 총리의 권력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이 쉽사리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지지율은 낮고 역전의 기미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 전 총리측 반응은 간단했다.“흔들림 없이 우리 갈 길을 갈 뿐입니다. 처음 출마 선언 때 누구나 우리가 곧 포기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명숙처럼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사람이 있습니까.”아직 시간은 남아있고 변수는 많다는 이야기다. 그는 “안정된 모습을 강조하다보면 경선판이 흔들릴 때 유력한 제 3의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안정되고 편안한 이미지로 뚜벅뚜벅 가는 게 필승전략”이라고 소개했다. 과연 그 의도가 적중할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광주에서의 밤.‘한명숙 팬클럽 회원’들이 금남로 근처 한 호프집에 모였다. 한 전 총리와의 팬 미팅이다. “바깥양반이 저를 위해 13년 반을 고생했습니다. 이제 바깥양반을 위해 안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한 전 총리의 남편 박성준 교수가 인사말을 한다. 남편이 아내를 ‘바깥양반´이라 부른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웃음을 머금었다. 한 전 총리는 혼인신고도 못한 채 끌려간 남편을 13년 반 동안 옥바라지했다. 결혼 6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박 교수 표정이 진지하다. 허튼 소리가 아니다.“부정한 힘으로 쓴 역사는 정의로 지켜온 역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저희 바깥양반은 꼭 승리할 겁니다.”박수가 쏟아진다. 광주 일정 마지막 날. 통합신당 광주시당 창당대회에서 한 전 총리는 외로워 보였다. 행사 초반 대선주자 소개 때 다른 이들에게 쏟아지던 연호·함성은 그에게 없었다. 인지도가 아직 낮다.‘가나다’ 연설순서에 따라 한 전 총리의 연설은 항상 마지막이다. 그가 연설할 때쯤 청중의 3분의1은 이미 행사장을 떠난다. 그러나 그의 대중연설은 의외로 설득력 있었다. 분위기가 고조된다. 연설 말미 “본선 경쟁력에 한사람 한사람 대입해 보십시오. 한명숙 괜찮지 않겠습니까?”란 마무리에 생각지 못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광주 시민은 마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연단을 내려오는 한 전 총리가 살짝 웃는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한총리의 약점은 ‘단점 없는 게 장점, 장점 없는 게 단점’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특별히 흠 잡을 데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내세울 것도 없다는 얘기다. ‘여성 후보 무임승차론’은 여기서 나온다. 콘텐츠가 부족하고 특별한 정책과 비전을 내세우지도 못하면서 단지 여성후보라는 점만을 부각시키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무총리 재임 기간 동안 국민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부분도 한계다. 캠프쪽에서는 안정되고 편안한 이미지를 장점으로 꼽고 있지만 지지율을 높이는 것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비호감’은 아니지만 확실한 호감도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안티는 별로 없지만 팬도 별로 없다는 얘기다. 한 전 총리는 “나는 돈도 조직도 계파도 없는 ‘3무(無)’ 후보다. 오직 국민의 바다에 뛰어들어 당당히 승부하겠다.”고 말한다. 선거전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없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호남이나 충청, 수도권 그 어느 지역에서도 우위를 보이지 못하는 등 지역적 기반이 취약한 것도 한 전 총리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친노와 비노 후보 이미지가 겹치는 것도 한 전 총리에게는 약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친노 대선 주자들에 밀려 친노 지지층에서도 확실한 지지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비노 지지층에서 한 전 총리를 친노로 분류할 경우 그쪽에서도 표를 얻기가 쉽지 않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누가 돕나 한명숙 전 총리의 캠프는 현직 국회의원과 여성계 인사, 총리 시절 참모그룹 등 40여명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1970년대 ‘크리스챤 아카데미’ 출신 인사들과 신인령 전 이대 총장 등 모교 이화여대 출신 인맥, 후원회장인 한승헌 변호사를 비롯,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및 시민사회 인사들이 주요 지원그룹이다. 현역 의원으로 김형주(대변인)의원을 비롯, 백원우(조직)·이미경(여성 총괄)·이경숙(서울지역)·장향숙(장애인 담당)·신명(직능)의원이 결합했다. 실무진에는 청와대와 총리실 출신 참모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황창화 전 총리실 정무수석(총괄기획)과 김형욱 전 민정수석(조직), 김승호 전 정무비서관과 양상현 전 청와대 행정관(정책)이 힘을 보태고 있다. 신상엽 총리실 전 정무비서관이 공보를, 조한기 전 의전비서관은 의전과 일정을 맡았다. 지원그룹 면면에는 한 전 총리가 재야활동 시절부터 관계를 맺었던 지인들이 많다. 후원회장인 한 변호사를 비롯해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 박영숙 전 의원 등이 한 전 총리를 돕고 있다. 이 밖에도 홍보 및 연설기획, 메시지를 담당하는 선거 전문가와 방송작가 등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오프라인 팬클럽 ‘행복한(韓) 사람들’ 회원 3000여명도 한 전 총리의 든든한 후원자다. 신상엽 공보팀장은 “캠프는 한 전 총리가 내세우는 ‘소통과 화합’을 중시하는 분위기”라면서 “후보가 수시로 참모들과 대화하며 자유롭게 토론하는 열린 캠프”라고 자랑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육지 속 섬마을 ‘예천 회룡포’

    육지 속 섬마을 ‘예천 회룡포’

    뭍을 그리워하는 섬이라고 해야 할까, 물길과 몸을 섞고 싶은 뭍이라고 해야 할까. 금방이라도 인연을 단절할 듯 뭍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이를 두고 버선발을 닮은 안동 하회마을에 비유해, 금방이라도 가지에서 똑 떨어질 것 같은 호박을 닮았다고 했다. 경북 봉화군 북쪽 선달산과 옥석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의 제1지류 내성천이 영주와 안동 등을 지나 남녘을 향해 흐르다 경북 예천땅에 접어든다. 난데없이 앞길을 막아선 예천의 명산 비룡산에 부딪친 내성천이 350도 태극무늬 모양으로 돌아나가며 거대한 모래사장을 만들어놓고, 그 위에 마을을 하나 얹어 놓았는데,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물돌이동이라 평가받는 회룡포(回龍浦)다. 말 그대로 비룡산을 부여잡은 용이 몸을 외로 꼬며 돌아나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곳. #비룡산 전망대 오르면 회룡포가 한눈에 내성천과 회룡포의 진면목을 한눈에 보려면, 장안사가 있는 비룡산 중턱의 회룡대에 올라야 한다. 솔 향기 그윽한 장안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경남 기장과 황해도 개성, 그리고 예천 등에 세운 같은 이름의 절집 3곳 중 하나. 고려시대에는 문인 이규보가 머무르며 ‘장안사에서’란 절창(絶唱)을 지어낸 유서 깊은 도량이다. “장안사에 머무르며 산에 이르니 번뇌가 쉬어지는구나/하물며 고승 지도림을 만났음이랴/긴 칼 차고 멀리 나갈 때는 나그네의 마음이더니/한 잔 차로 서로 웃으니 고인의 마음일세/맑게 갠 절 북쪽에는 시내의 구름이 흩어지고/달이 지는 성 서쪽 대나무 숲에는 안개가 깊구려/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옛동산 소나무와 국화는 꿈 속에서 잦아드네.” 장안사 뒤편 산길을 따라 400m쯤 걸어 회룡대에 올랐다. 바닥색을 닮은 황톳빛 내성천이 희디 흰 모래사장, 그리고 짙푸른 하늘과 희롱하며 흘러가고 있다. 마을 왼편으로 한때 유일한 뭍과의 연결통로였던 ‘뽕뽕다리(공사장에서 쓰는 구멍뚫린 철판을 연결해 만든 다리)’의 모습이 아련하다. 제방 옆길에는 나무를 심어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다. 회룡포 마을 주민수는 20명가량. 우리네 농촌이 그렇듯 55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대부분이다. 경주 김씨 동성만 모여 사는 것이 이채롭다. #세금 내는 나무 황목근과 석송령 회룡포 인근 금남리 금원마을에는 세금 내는 팽나무가 있다. 황목근(黃木根)이란 어엿한 이름도 갖고 있다.5월이면 누런 꽃을 피운다 해서 성을 황,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에서 이름을 목근이라 했다. 무려 1만 2899㎡나 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부자나무. 나이는 약 500세로 추정된다. 천연기념물 제400호. 황목근 보존회에서 대납의 형태로 일년에 9000원가량 종합토지세를 낸다. 감천면의 석송령(石松靈·천연기념물 제294호)은 나이 600세로 황목근의 형뻘된다. 토지대장에 자신의 이름으로 땅 6000여㎡를 등재해 놓고 있다.1년에 1만여원가량 세금을 낸다. 역시 석송령 보존회에서 대납하고 있다. #늙은 회화나무 아래 삼강주막 회룡포를 돌아본 후 풍양면 삼강리의 삼강(三江)주막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유장하게 흘러가는 낙동강 700리 길에 마지막 남은 주막.1900년 전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 등 삼강의 합수머리에 있다 해서 삼강주막이라 불린다. 이 시대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가 2005년 89세를 일기로 세상과 이별하면서, 이젠 덩그러니 빈집으로만 남았다. 일제 강점기 때만 해도 삼강주막이 있는 삼강나루터는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부산과 대구 등에서 서울로 향하는 과객과 장사치들, 그리고 온갖 물산들로 북적댔다. 특히 부산에서 올라온 소금배, 내륙에서 내려온 미곡선 상인들이 활발하게 물물교환하던 곳이었다. 그러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다리가 놓이고, 제방이 생기면서 인적이 뚝 끊겨 버렸다. 고 유옥연 할머니는 16살 되던 해인 1932년 이 마을 배봉송(50년전 작고)씨와 결혼한 뒤 70여년간 삼강주막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담배를 즐겨 피웠던 유 할머니는 말년에 간혹 찾아오는 마을 주민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막걸리와 멸치 안주 등을 팔며 생활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여간 안타깝지 않다. 200년 된 회화나무가 굽어보고 있는 삼강주막은 흙바람 벽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서 있었다. 방은 2개. 수많은 과객들이 발고랑내 풍기며 잠을 청했을 봉놋방은 장정 예닐곱이 앉아 술추렴했을 마루와, 주모가 사용했음 직한 작은 방은 시커먼 검뎅이가 묻은 부엌과 각각 연결돼 있다. 주막과 회화나무 사이 너른 공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국밥과 술로 요기를 했을 게다. 경상북도에서는 삼강주막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금년 중 완공이 목표다. 삼강주막 옆에 있던 뱃사람 숙소 등도 함께 복원할 계획. 옛 정취는 고스란히 살리되, 과유불급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하길 바란다. 예천군청 문화관광과 (054)650-6391. 글 사진 예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2007 예천 곤충바이오 엑스포(www.insect-expo.co.kr)가 11∼22일 예천읍 일대에서 열린다. 곤충의 산업적 이용 가능성을 재확인하고, 어린이들에게는 신기한 곤충의 세계를 보여줄 이색 행사다. 주행사장인 공설운동장에 곤충생태관과 곤충놀이관,3D영상관 등이 설치되고, 특별행사장인 곤충산업연구소에는 곤충생태원, 유리온실 등이 만들어져 곤충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다.(054)650-6291∼8. ●예천 천문과학문화센터 100여명이 숙박을 겸해 별을 관측할 수 있는 곳. 감천면 덕율리에 있다. 낮시간에는 인근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보조프로그램도 마련해 두었다.654-1710. ●진호국제양궁장 예천 출신 양궁선수 김진호의 세계대회 제패를 기념해 세운 국제 규모의 양궁장. 예천읍 청복리에 있다. 일반인에게 무료 양궁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반드시 예천군청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www.yecheon.go.kr,650-6411∼2. ●금당실 마을 전통가옥과 7.2㎞에 달하는 돌담길 등 옛 정취를 맛볼 수 있는 마을. 용문면 상금곡리에 있다. 돌담길에 무시로 핀 과꽃 등이 인상적이다. 마을 정원 격인 금당실 쑤(소나무숲)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지친 걸음 쉬어가기에도 맞춤하다.654-2222. ●가는 길 금당실 마을과 석송령, 곤충바이오엑스포 행사장 등을 찾기 위해서는 중앙고속도로 예천 나들목, 회룡포와 삼강주막, 황목근 등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 나들목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파키스탄 귀화인 “사촌인 아내와 같이 살게해달라!”

    30일 오후 경기 김포이주민센터에서 ‘8촌 이내 근친혼’을 금지하는 국내법으로 인해 사촌동생이자 아내의 입국비자를 거절당한 파키스탄 귀화인 임란말리(37)씨를 만났다. 2005년 7월 한국국적으로 귀화한 그는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의 큰아들이 가족 전체를 돌봐야하는 파키스탄의 관습에 따라 지난 3월에 사촌여동생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부인의 비자발급 인터뷰과정에서 그와 서로 사촌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키스탄 주재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하게 되었다. ”내가 나고 자란 파키스탄에서는 사촌과 결혼하는게 흔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사촌과 결혼할 수 없는 것을 정말 몰랐다.”고 말문을 연 그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아내의 사진을 꺼내보이며 “아내는 지금 임신4개월째다.”, “나는 한국사람이다. 한국에서 아내와 함께 생활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현재 임란말리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파키스탄의 결혼관습이 우리와 다르지만 오래전부터 살아온 생활방식이며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해 달라.”고 진정서를 제출한 상태다.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날 떠나지마오”

    “두 분은 서로의 눈과 손발이 돼 주셨어요. 죽는 순간까지 두 분이 함께 하셨으면 좋을 텐데….”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 알콩달콩 살아온 장애인 노부부가 병환으로 생이별을 하게 돼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27일 경기 하남시 종합사회복지관에 따르면 지난 20여년간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사랑을 키워온 시각장애인 최채선(65·하남시) 할머니가 지난 10일 폐암 선고를 받은 데 이어 지난 20일 이동기(77) 할아버지가 그 충격으로 쓰러졌다. 결국 할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할머니는 정밀 검사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시각장애 할머니·지체장애 할아버지 ‘동화같은 사랑´ 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 그의 삶은 암흑과도 같았다. 술만 마시면 구타를 일삼던 전 남편에게 머리를 잘못 맞아 서른네 살 때 두 눈을 잃어버렸고, 급기야 빈 손으로 집에서 쫓겨났다. 깜깜한 세상에서 근근이 살아가던 할머니에게 실낱 같은 희망의 빛줄기가 드리워진 것은 23년 전.1984년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며 홀로 살아가던 할아버지를 이웃의 소개로 만나게 됐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쾌활한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한눈에 반했고, 할머니가 42세가 되던 해에 결혼했다. 그러나 잉꼬부부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던 이들에게 시련이 닥쳐왔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줄 감을 따러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허리와 다리를 다치게 된 것. 할아버지는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없는 처지가 됐지만, 불의의 사고도 이들의 사랑을 갈라놓지는 못했다. 사고 이후로 부부는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 더 큰 사랑을 키워갔다. 동화 같은 행복을 꿈꾸기엔 현실이 너무 각박했던 것일까. 지난해부터 할머니는 기침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목감기가 낫지 않나 보다.’며 감기약을 먹었지만 기침이 가시기는커녕 더 심해졌다. 검사 결과 “폐에 작은 혹이 있어 수술하지 않아도 항생제를 사용하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기침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고, 목에서 피가 나온 뒤에야 대학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 할머니에게 폐암 선고가 내려진 지난 10일 부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큰 충격을 받은 할아버지는 열흘 뒤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할머니도 다른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떨어져 있으니 정말 눈앞이 깜깜” 최 할머니는 “주위에서 몸이 불편하니 각각 양로원에 들어가라고 했지만 절대로 보낼 수 없다고 했는데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정말로 눈앞이 깜깜하다.”면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던 약속 꼭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하남시 종합사회복지관 임지은 간호사는 “노부부는 정부 보조금으로 한 달에 60만원을 받고 이 가운데 매월 20만원을 집세로 내고 있어 생활하기도 빠듯한 실정”이라면서 “쓰러진 남편을 생각하며 치료비 걱정에 잠을 못 이루는 할머니를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후원 계좌는 농협 560-17-002021, 예금주 하남시 사회복지관.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사랑해도 괜찮아(KBS2 오전 9시) 석훈에게 끌려 서울로 올라온 지인에게 범수는 당장 나가라며 호통을 치고, 석훈은 무릎을 꿇어 사죄한다. 지인은 석훈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석훈은 결국 범수의 동의를 얻어 일방적인 결혼을 추진하려 한다. 화자는 지인이 결혼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한몫 챙겨야겠다고 결심한다.   ●클로즈업(YTN 낮 12시35분) 201 4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에서 평창은 러시아 소치에 패했다. 소치에 패한 게 아니라 푸틴에게 졌다는 말도 있다. 국력이나 지도자의 리더십 같은 스포츠 외적인 요소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평창이 세 번째 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정길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의 말을 들어본다.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언제나 엄마와 함께 하기를 바라는 44개월 영민이. 집에서뿐만 아니라 놀이터에 나가 친구들과 놀 때도 늘 곁에 엄마를 둬야 한다. 엄마의 고민을 해결하고 영민이의 폭력적인 행동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놀이평가’를 실시했다. 놀이평가를 통해 마침내 영민이의 진실과 맞춤 양육법이 공개된다.   ●결정! 맛 대 맛(SBS 오후 6시50분) 2007년 뜨거운 여름, 지친 더위에 기를 불어 넣어줄 보양음식 대격돌이 펼쳐진다. 몸에 좋은 최고의 보양식을 한 그릇에 모두 담았다. 보양식의 종합선물세트, 강수정의 ‘해물오골계탕’. 닭뼈로 우린 깔끔하고 개운한 전골 속에 담긴 힘, 류시원의 ‘창코나베’. 최고의 보양식을 선사한다.   ●7옥타브(MBC 오후 6시50분) 10대부터 70대까지 대한민국 남녀노소의 추억을 되살린다.‘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이 순간만큼은 창피하다, 애인이나 배우자가 창피했던 순간은?’. 설문조사 결과, 누구나 동감하게 되고, 여성 대 남성으로 확연히 차이나고,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답변들. 그 실체가 ‘1070 베스트’에서 공개된다.   ●환경스페셜-신들의 바다정원, 팔라우(KBS1 오후 10시) 필리핀 남동쪽에서 1600㎞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구 2만의 팔라우.340여개의 작은 섬들로 이뤄진 팔라우의 바다는 에메랄드 빛, 산호 빛 등 33가지의 바다빛이 보석처럼 빛난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해역, 그 신비로운 바다 속 세계를 고화질 HD영상으로 들여다본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