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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시대-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그는 누구

    [이명박 시대-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그는 누구

    ■ 정치 입문~청와대 입성 ‘정치인 이명박’이 걸어온 길은 ‘기업인 이명박’과 달랐다. 현대그룹에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조하며 달려온 출세가도가 아니었다. 좌절을 맛보기도 했고, 그래서 다시 도전하기도 했다. 정치무대를 떠나 전공인 건설이 아닌 금융분야에서 제2의 신화를 꿈꾸다 여의치 않아 접고는 수도 서울의 수장으로 도약기를 거쳐 최고 권좌에 오르게 됐다. ●현대와의 결별… 정치 입문 그는 ‘왕 회장’으로 불리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하려는 것을 만류하면서 현대그룹과 결별하게 된다. 이후 왕 회장의 상대 진영인 김영삼(YS) 진영으로 합류, 지난 1992년 14대 총선 때 전국구(비례대표)로 국회에 등원한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1995년 지방선거 때 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YS가 밀던 정원식 전 국무총리에게 패하고 만다. 첫번째 정치적 시련이었다. 그 이듬해 15대 총선을 준비하며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다. 여당의 중진 이종찬 국민회의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98년 이 당선자는 다시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도전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총선 때 적발된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아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했다. 당시 비용 초과 지출을 폭로했던 김유찬 당시 비서를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되면서 “이명박의 정치 인생은 끝났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서울시장으로 화려한 재기 이후 2년간 미국에서 ‘정치 방학’을 보내며 와신상담하다가 2000년 귀국해 정치 재개에 나섰다.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다시 도전했다. 한나라당에서 5선의 중진 홍사덕 의원과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경쟁해 후보 자리를 거머쥐게 됐다. 본선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의 김민석 후보를 꺾으면서 세번째 서울시장 도전만에 입성에 성공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때 내건 청계천 복원과 시내 5개 간선도로에 버스전용중앙차로제 도입을 내걸었다. 막상 당선되자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주변에선 적잖이 만류했다. 하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4년 만에 해결했다.‘제2의 신화’는 ‘청계천 신화’로 이어지면서 대선 주자로서 주목받게 된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지독한 경선 2006년 6월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이 당선자는 다시 여의도 정치로 들어온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는 그가 살아온 세상과 달랐다. 한나라당의 벽은 높고 높았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당내에서 철옹성을 세우고 있었다. 여론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가 이 당선자보다 높게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는 높기만 하던 당심을 허물기 위해 민심을 공략했다.‘한반도 대운하’ 등의 공약과 성공한 경제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으며 높은 지지를 얻게 된다. 그 해 추석 전후로 북한의 핵 실험 후 지지율 40%를 돌파,‘이명박 대세론’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경선룰 등을 둘러싸고 박 전 대표측과 사사건건 갈등하며 극한의 대치에 이르기도 했다. 고비마다 특유의 승부수로 돌파해 나갔다. 이상득 부의장의 동생 평이다.“내가 명박이보다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나도 대기업(코오롱) 최고경영자(CEO)까지 해봤다. 하지만 명박이에게는 나에게 없는 게 하나 있다.”며 “위기 상황에서 담대하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명박이는 그걸 가지고 있다.” 그는 땅 투기 의혹과 ‘도곡동 땅’ 차명 의혹,‘BBK 주가조작 의혹’ 등 ‘지독한 경선’을 거쳐 지난 8월 20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에 올랐다. 박 전 대표와 불과 2452표차(1.5%)밖에 나지 않는 신승이었다. 그나마 현장 투표에서 500여표 뒤진 것을 여론조사에서 뒤집었다. ●더 지독한 본선…‘BBK 공세’와 김경준의 귀국 경선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주요 당직을 놓고 친박(친 박근혜)과 친이(친 이명박)의 갈등은 계속됐다. 박 전 대표가 ‘오만의 극치’라고 직격탄을 쏜 최측근 이재오 최고위원은 물러나야 했다. 여권의 ‘BBK 주가조작’ 공세도 거셌다. 자녀들의 ‘위장 전입’과 위장취업으로 한때 이 당선자는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이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표와의 틈새를 파고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회창 후보는 “불안한 후보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며 박 전 대표에게 집요하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 당선자도 박 전 대표에게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내며 “도와달라.”고 SOS를 보냈고 박 전 대표는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이 당선자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의 BBK 수사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당선자의 측근들이 검찰에 불려나가 수사를 받았고 본인도 서면조사를 받았다. 급기야 대선을 한달 앞두고 ‘BBK 의혹’의 당사자인 김경준씨가 범죄인 인도 송환에 따라 한국으로 송환됐다. 대선판은 요동쳤다. 검찰수사 결과 ‘BBK 주가조작’에 이 당선자는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여론은 냉정했다. 검찰의 무혐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국민들이 BBK와 이 당선자가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여론이 출렁거렸다. 이 당선자는 다시 한번 승부수를 띄운다. 부부가 살 집 한채 빼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오랜 기업인 생활을 끝내고 공인으로 나섰던 10여년 전부터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작정했다.”며 “재산 환원은 가난한 살림에 고생하면서도 아들을 바르게 키워 주신 어머니와의 약속이자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당은 소위 ‘이명박 특검’을 내세워 압박 강도를 최고조로 높였다. 여야는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며 극한 대치를 이뤘다. 대선을 불과 사흘 앞두고 밤 11시30분에 대선후보 TV합동토론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전격적으로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고비와 시련마다 과감한 승부수로 87년 민주화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로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9일은 공교롭게도 이 당선자의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대통령 당선으로 세번째 축하 케이크를 받게 됐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유년기~현대건설 회장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사상 처음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당선자는 만 35세인 1977년 현대건설 사장에 올라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며 ‘월급쟁이’들의 우상으로 통했다. 기업인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던 그는 92년 정계입문 후 시련을 딛고 마침내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기업생활 27년, 정계입문 15년 만의 일이다. 그는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 상실 등으로 정치생명이 끝나는 듯했지만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마침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됐다. ●가난과 싸웠던 소년 시절 소년 이명박을 키운 건 가난과 어머니였다. 목장 목부로 일하던 이충우씨의 4남 3녀 중 다섯째로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다른 형제들의 이름은 상(相)자 돌림이지만 본인만 ‘명박’인 이유는 “어머니가 보름달이 치마폭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시고는 ‘밝을 명(明), 넓을 박(博)’자를 넣어 지었다.”고 설명했다. 족보에는 ‘상정’(相定)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한다. 소년 이명박은 가족들과 함께 1945년 11월 귀국선에 오른다. 하지만 배는 쓰시마섬 앞바다에서 가라앉고 말았다. 가족들은 구조됐지만 살림살이와 짐은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맨몸뚱이만 귀국했다. 고향에 대한 첫 기억은 포항 시장통의 가난이었다.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가난이 굴 껍데기처럼 우리 대가족에 들러 붙었다.”고 말했다.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이 했다. 학교 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중학교 때 영양실조로 쓰러져 넉 달간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등록금을 가져오라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어린 이명박은 철들기도 전에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좌판을 벌였다. 김밥, 풀빵, 엿, 아이스크림, 뻥튀기 장사 등 닥치는 대로 생활비를 벌었다. 어머니는 엄격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가난했지만 자식들을 당당히 키웠다. 자식들에게 “정직하다면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새벽 4시면 가족들은 어머니의 새벽기도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심부름으로 이웃집 일을 하러 가더라도 어머니는 어린 이명박에게 “물 한모금이라도 얻어 먹으면 안 된다. 음식을 준다고 받아 와도 안 된다.”고 단단히 일렀다. 가난은 그의 몸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군의관은 “이런 몸은 군대에서도 안 받아 준다.”고 병역 면제 처분을 내렸다. 병명은 기관지 확장증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집에 돌아온 막내아들을 부둥켜 안으며 “내 자식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내가 팽개치고 있었구나.”하고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엄하신 어머니가 처음으로 보인 눈물이었다. 이명박은 그 때를 기억할 때마다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한다고 한다. ●대학 시절 6·3사태로 옥고 그에게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었다. 집에서는 막내아들의 고교 진학도 말렸다. 집안의 기둥 작은형(이상득 국회부의장)의 학비를 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학비는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약속하고 동지상고 야간부에 수석 합격했다.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고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가족들은 상득이형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 이태원으로 이사갔다. 이 당선자는 이태원 재래시장 환경미화원으로 돈을 벌며 살림에 보탰다. 하지만 학업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돈이 없어 중퇴하더라도 고졸보다는 대학 중퇴가 낫지 않겠나.”하고 생각했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수험서를 사서 입시를 준비, 고려대 상대에 붙었다. 합격 소식을 들은 이태원 시장 상인들이 새벽에 쓰레기 넝마주이 일을 맡겨준 덕에 학비를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단과대 학생회장이던 64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반대하며 6·3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6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다. 죄목은 내란선동죄였다. 어머니는 그가 구속됐을 때도 “소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라.”고 가르쳤다. 출소 후 한달 여 만에 인생의 스승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는다. 그는 “돈 벌면 어머니에게 새옷 한벌 사드리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말하곤 한다. ●현대그룹 입사… 초고속 승진 거듭 청년 이명박은 여느 운동권 출신과 달리 정치권이 아닌 기업을 택한다. 운동권 출신의 취직은 쉽지 않았다. 중앙정보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발목을 잡았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나라가 열심히 사는 젊은이 앞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고 편지를 썼다. 결국 박 대통령의 배려로 그는 당시 중소기업이던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왕 회장’으로 불리는 오너 정주영 회장의 눈에 띄었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29세에 이사,35세에 사장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를 써내려 간다. 그는 종업원 96명의 현대건설을 16만명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군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현대그룹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오너가 정해 주는 목표치를 항상 초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오너와 경쟁했다.”고 당시를 떠올린다. 기업인 시절 ‘왕 회장’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 에피소드도 많다. 태국 고속도로 건설공사에서 각목과 칼을 든 폭도들에 맞서 금고를 지킨 ‘태국 금고 사건’은 그 중 하나다. 현대건설 과장 시절 경부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불도저가 자주 고장을 일으켰다. 기술자들이 텃새를 부려 공사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명박 과장은 밤새도록 불도저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구조를 익혀 나중에는 불도저를 직접 몰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다 보니 오해도 많이 받았다. 이웃들은 현대건설 사장과 살고 있는 부인 김윤옥씨를 가리켜 “세컨드(둘째부인)아니냐.”고 뒷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 사업상 건설부 장관실을 방문했을 때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이 당선자를 장관실로 안내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이 당선자가 따지자, 장관 비서는 “사장 비서를 어떻게 장관실로 모시냐. 빨리 사장 데려 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현대그룹에 27년 동안 몸담으면서 주요 계열사 10개사의 사장 및 회장을 역임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초·중·고 학적부 열어보니 궁핍했던 시절이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초·중·고교 성적은 좋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행동발달사항에 “그림을 좋아한다.”라는 평이 인상적이다.2학년 때는 담임교사로부터 “경솔하다.”는 평도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결석이 없었지만 4학년에서 6학년까지는 몸이 아파 결석하는 일이 잦았다.4학년 때 16일,5학년 때 5일,6학년 때 32일을 병으로 결석했다. 이 당선자측은 “가난으로 인한 영양실조 탓으로 누워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중학교 때도 질병으로 인한 결석이 많았다.1학년 때는 결석이 74일에 이른다. 담임 교사로부터 “명랑하고 온순하다.”는 평을 받았다. 동지상고 시절에는 지금처럼 석차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당선자는 성적이 가장 안 좋았을 때가 3등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장래 희망으로 ‘관리’(官吏)를 썼고, 이 당선자의 부모도 ‘본인과 동일’이라고 기재했다.‘취미 또는 특기’란은 영어로 적었다.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특기는 ‘체육(탁구)’이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이명박 시대-당선자 가족들] 당선자 친인척

    대선을 사흘 앞둔 16일 밤 11시쯤. 이명박 당선자가 황급하게 당사 기자실을 찾았다. 그리고는 ‘이명박 특검법’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친형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설득해 이뤄진 것이다. 대통령을 꿈꾸는 그에게 ‘상득이 형’은 빼놓을 수 없는 자산이라는 게 주변 설명이다. 이 부의장은 17대 국회 초반부터 당내 인맥을 꾸준히 관리해 왔다. 영남권 의원을 자주 만나 구애했다. 오로지 동생을 위해서다. 이 당선자가 원외이면서도 당내 기반을 차근차근 넓혀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이다.5선 관록으로 선거 기간에 불거진 복잡한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선 것도 이 부의장이었다. 이 부의장 위로는 ‘도곡동땅’ 논란으로 유명해진 큰형 이상은씨가 있다. 그는 이 당선자의 처남 김재정씨와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다스를 공동 설립했다. 다스를 중심으로 얽히고 설킨 금전거래 덕에 이 당선자는 차명재산 의혹도 샀다. 검찰이 “도곡동땅 중 이상은씨 몫은 제3자 차명의혹이 있다.”고 했지만 실소유주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당선자 손위 누나와 남동생은 6·25전쟁 때 미군 폭격에 숨졌다. 부인 김윤옥 여사쪽으론 바로 아래 남동생 김재정씨가 유명세를 치렀다. 그가 이 당선자의 차명재산을 관리했고, 전국에 땅투기를 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검찰 조사도 받았다. 이 때문에 김 여사는 요즘도 동생 얘기만 나오면 휠체어를 탄 채 검찰에 출두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친다고 한다. 혈육과 별도로 혼사로 정·재계의 유명 가문과 연이 닿아 있다. 막내딸을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친조카와 결혼시키면서 재벌가와 친사돈 인연을 맺었다. 여기에다 작은 형 이상득 부의장을 통해서는 LG가와도 통한다. 이 부의장의 맏딸 성은씨가 구자두 LG벤처투자 회장 아들인 구본천씨와 결혼하면서다. 구 회장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작은아버지이다. 특히 당선자의 셋째사위를 고리로 SK그룹은 물론,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과도 인척으로 묶일 수 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의 아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셋째아들 재만씨와 동서지간이다. 또 조 회장의 동서인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를 사위로 맞았다. 여기에다 노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가 SK 최태원 회장과 부부의 연을 맺었기에 당선자도 몇 다리 건너면 자연스레 이들과 인척이 되는 셈이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性 소수자들 절망의 외침] 그들에게도 봄날은 올까

    [性 소수자들 절망의 외침] 그들에게도 봄날은 올까

    7년째 동성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는 김현정(가명·여·30)씨는 파트너가 미국지사로 발령을 받아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김씨는 법적 가족관계로 인정받지 못해 ‘가족비자’가 아닌 ‘학생비자’로 체류할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학교를 다니며 6개월마다 비자를 갱신했던 김씨는 결국 학비부족으로 1년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안정된 삶’을 위해 가족을 일군다. 그러나 김씨와 같은 성(性)적 소수자에게 가족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성소수자라는 고된 손가락질을 이겨내고 끝내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일궈도 험난한 제도적 차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가족은 ‘안정된 삶’이 아닌 ‘고된 삶’의 시작이다. ●수술 동의서에 도장도 못 찍는 부부들 성적 소수자 김흥근(가명·42)씨는 2006년 여름 위경련이 일어나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검사를 위해 가족 동의서를 요구했으나, 같이 살고 있는 파트너는 김씨와 법적인 가족이 아니라 도장을 찍을 수 없었다.“서로 연락이 뜸한 동생은 보호자로 인정되는데 배우자나 마찬가지인 파트너는 보호자가 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김씨는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에 몸 담으며 수 많은 제도적 차별 사례를 봐왔다. 현정씨가 겪었던 비자문제도 김씨가 많이 접했던 사례다.“제가 아는 한·일 동성애 커플은 법적 부부로 인정받지 못해 비자 문제로 6개월에 한 번씩 일본을 다녀옵니다. 부부지만 부부가 아닌 셈이죠.” 레즈비언 커플들은 제도적 차별이 더 심각하다.5년째 동성 파트너와 살고 있는 손규희(가명·27·여)씨는 신용에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대출을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은행이 내세우는 ‘남편을 보증인으로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단지 배우자가 여자라는 이유였습니다. 대출문제는 미혼모 등 모든 비혼여성이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여성 커플들은 성적 소수자의 아픔과 비혼여성의 아픔을 모두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법적 어려움에 위장 결혼도 6년째 동성 파트너와 살고 있는 성민현(가명·44)씨는 국민연금 문제를 지적한다.“지금까지 국민연금으로 2000만원을 납부했는데, 내가 죽는다면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는 ‘서로 법적인 혼인관계가 아니므로 전혀 받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죠.”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부부생활을 하고 있는 성씨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는 ‘배우자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것도 큰 상처다. 또 파트너가 직장의료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해 지역의료보험에 따로 가입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김경배(가명·29)씨는 이런 작은 차별이 성적 소수자들에게는 인생이 달린 문제라고 말한다. 심지어 법적인 차별을 피하기 위해 게이와 레즈비언이 위장결혼을 하는 경우도 많다.“커밍아웃을 할 자신은 없고, 결혼을 해야 하니 집안에 핑곗거리를 삼는 거죠. 어쩔 수 없이 두 동성커플이 합의해 서로 엇갈려 위장 혼인신고를 합니다. 제도적 차별이 일반인에게는 별 것 아닌 듯보이지만, 성적 소수자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성적 소수자 문제는 소외 계층의 문제 “왜 이렇게 어렵게 사니?그냥 생긴 대로 살지.” 레즈비언 조미선(가명·여·37)씨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항상 되묻는다.“왜 꼭 정상가족의 틀에 맞춰야 하죠?” 조씨는 법률이 규정하는 정상가족에게만 제도적 혜택을 부여하는 것도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성소수자처럼 제도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가족을 이룰 권리조차 박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씨가 바라는 것은 단순히 성적 소수자만의 행복추구권이 아니다. 성적 소수자의 문제를 통해 ‘제도적 차별’을 받고 있는 다른 소외계층을 보듬어 안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제도가 원하는 가족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민주주의와 복지의 시작이 아닐까요.”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그들이 느끼는 제도적 차별 제도적 차별은 성적 소수자들에게 얼마나 심각하게 다가올까. 이들은 제도적 차별이 주변의 왜곡된 인식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사회의식조사 기획단이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387명의 성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적 소수자로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가.(복수응답)’란 질문에 38.2%가 ‘제도적·법률적 차별’이라고 답했으며,‘가족으로부터의 소외 및 차별’은 30.0%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를 나타났다.‘교제와 결혼의 어려움’(25.2%)과 ‘정체성 형성 과정의 혼란과 갈등’(23.9%)이 그 뒤를 이었다. 성적 소수자들이 세간의 손가락질보다 제도적 차별을 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제기에도 성소수자들에 대한 제도 개선은 불투명하다. 이들에 대한 편견이 너무 깊어 과연 제도적 변화가 가능할지 자조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성적 소수자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팽배한 이 시점에 과연 제도 개선이 가능할지 스스로 의심할 때가 많다.”고 아쉬움을 타나냈다. 제도적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정부조차 이 일에 관심이 없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성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못해 ‘적대적’이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특히 지난 10월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차별금지법에 ‘성적 지향’등 7개 부분이 삭제된 것이 불을 지폈다. 성적 소수자는 여전히 인권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는 이유다. 성적 소수자 모임은 연대를 이뤄 지금까지도 이 법안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친구사이’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성적 소수자 인권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임에도 한국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런 문제점의 근본 원인은 사회 제도의 눈높이가 ‘정상가족’에 맞춰져 있는 현실이다. 가족에 대한 제도적 혜택이 ‘일정연령 이상의 남성과 여성이 만나 혼인신고를 한 가족’에 한해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은 “사회의 모든 기준이 정상가족의 기준에 맞춰져 성적 소수자와 같이 정상 가족을 일굴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큰 폭력으로 다가온다.”면서 “성적 소수자들은 가족을 구성할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장은 커밍아웃을 한 성적 소수자로서는 처음으로 내년 4월 총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보호장치 무엇이 있나 동성애 가족들은 ‘사랑’으로 맺어져 ‘친밀감’과 함께 살아간다는 점에서 일반 가족과 차이가 없다. 정서적이고 경제적인 공유관계를 오랫동안 맺고 살아도 그들의 삶은 순탄치 않다. 그러나 일부 선진국에서는 성적 소수자들의 아픔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프랑스에서 1999년 제정된 PACS(민간결합계약)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성인 커플에게 기혼자와 동등한 재정적·사회적 권리를 주는 법안이다. 거주지의 관할 법원에 등록을 하면 배우자 사망에 따른 상속권 보장, 사회보장과 파트너의 경조사 등에 따른 유급 휴가 등을 신청할 수 있다. 등록 뒤 3년이 지나면 세금 감면 혜택도 따른다. 최근 PACS법은 결혼을 원하지 않는 이성애자들의 결혼 도피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어 법안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결혼한 남녀를 중심으로 묶여 있었던 ‘가족의 경계’를 확대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덴마크와 독일은 각각 1989년과 2001년에 ‘동반자 등록법’을 제정해 동성 커플의 법적 관계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 나라에서는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성적 소수자의 인권 확대가 세계적 시류인 만큼 이들에 대한 보호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를 직접 등록하는 방법으로 제도적 차별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배우자 등록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 초쯤 발의할 예정이다. 일부 선진국에서 시행 중인 배우자 등록법은 동성혼과는 명백히 구분된다. 동성혼이 기존의 혼인제도에 그대로 편입된 형태라면 배우자 등록법은 혼인제도와는 별도로 운영되며, 등록이 된 커플에 한해 혼인 관계에 버금가는 제도적 혜택을 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최현숙 위원장은 “일반 국민들이 동성혼을 정서적으로 과격하게 느낄 수 있고, 또 동성애자들을 현 혼인제도에 그대로 편입시킨다면 또 다른 비정상 가족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배우자 등록법을 추진하게 됐다.”면서 “성적 소수자에 대한 문제제기로 견고한 한국의 가족주의 한계를 되짚어 봤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사회공헌] 삼성생명-여성가장 창업 돕는 든든한 후견인

    [사회공헌] 삼성생명-여성가장 창업 돕는 든든한 후견인

    경남 진주에서 지난달 치킨·피자가게를 연 이모(50)씨는 삼성생명이 숨은 조력자다. 이씨 남편은 뇌경색 장애로 정상적 생활이 힘들고 아들은 군대에서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어렵게 살다 지인의 소개로 삼성생명의 창업지원을 받게 됐다. 이씨는 “이곳저곳 식당을 다니다가 내가 직접 운영하게 돼 너무 기쁘다.”며 “주변 사람들이 도와준 것만큼이라도 꼭 돌려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창업지원은 사회연대은행 심사를 거친 뒤 1500만원이 지원된다. 창업 이후에는 해당 지역 삼성생명 직원들이 후견인 노릇을 톡톡히 한다.10월말 현재 여성가장 135명이 창업지원을 받았으며 연내에 15명을 추가지원할 계획이다. 사회연대은행은 금융기관과 일반인의 기부를 받아 저소득층에게 무보증 소액신용대출을 해주는 대안금융기관이다. 삼성생명의 사회공헌은 여성 지원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여성의 지위향상과 복지 증대가 회사 발전은 물론 사회 발전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삼성생명의 계약자 60%가 여성이고 설계사 3만명이 여성이다. 첫 시작은 어린이집이었다.1991년 인천에 ‘삼성 어린이집’을 지었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육아문제 해결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삼성 어린이집은 현재 서울·인천 등 17개 도시 25곳에서 운영중이다. 지난해부터는 산모 도우미도 지원하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도우미를 둘 여유가 없는 출산 여성들에게 삼성생명이 교육한 도우미를 보내주는 방식이다. 탈북 여성, 동남아 이주여성 등을 포함해 총 2300여명이 도움을 받았다. 특히 올여름에는 베트남과 필리핀 출신 여성 결혼 이민자 33명이 가족들과 함께 친정을 방문하도록 후원했다. 총 129명의 해외여행비를 전액 지원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영화 리뷰] 싸움

    [영화 리뷰] 싸움

    여자의 휴대폰에 남자는 ‘shit’이라고 저장돼 있다. 남자의 휴대폰에 여자는 ‘fuck’으로 기억돼 있다. 영화 ‘싸움’(제작 시네마서비스·13일 개봉)에 나오는 남녀 이야기다. 모든 연인들이 그랬듯 너 없으면 죽는다 했던 연인이 결혼·이혼을 거치며 적이 된다. 연애지사는 아니다. 진아(김태희)와 상민(설경구), 두 사람은 죽도록 싸우다 ‘어른답게 이별하는 법’에 도달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늘 “사과해”라고 하지만 남자는 뭘 사과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의 공식이다. 우주에서 홀로 욕조를 박박 닦고 있는 설경구와 우주에서 홀로 보랏빛 가발을 쓰고 엉엉 우는 김태희의 모습은 그 공식이 영화에 투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초 ‘싸움’이 기대를 모은 이유는 세 가지였다. 김태희가 망가졌다. 설경구는 소심해졌다. 드라마 ‘연애시대’의 한지승 감독이 만들었다. 그러나 영화는 일단 ‘왜’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서 영화 안에서뿐 아니라 관객과도 막무가내 싸움에 돌입한다. 대체 왜 저렇게 죽고 못 살 정도로 싸우는지, 이유가 겉도니 자연히 감정이입이 안 된다. 김태희의 변신에 대한 평가는 유보적이다. 검은 마스카라 국물이 무참히 가로지른 얼굴로 전 남편을 죽일 듯이 몰아대는 모습이나 그가 아끼는 사슴벌레 ‘우혁이’를 졸도시키는 괴기스러운 표정은 확실히 ‘변화’다. 그러나 금세 회복하는 예의 그 ‘CF 미소’는 장면장면 걸쳐 있고 우는 연기는 농도가 약하다. 날선 눈빛에 육중한 무게감으로 부딪치는 캐릭터를 주로 빚어온 설경구는 힘을 알맞게 뺐다. 그는 시계추 하나에 전전긍긍하고 바닥에 부스러기 하나 용납하지 못하는 편집증에 신경증까지 지닌 듯한 소심남을 가볍게 날리는 잽처럼, 시답잖은 농담처럼, 편하게 보여준다. 주변인들을 활용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웃음 혹은 감동의 파문을 던지는 감독의 능력은 ‘싸움’에서도 여전히 돋보인다.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손예진이 감우성에게 “밥 먹어”라고 소리치자 허겁지겁 밥을 퍼먹던 주변인들은 ‘싸움’에도 그대로 옮겨 왔다. 엉뚱하고 비정상적인 ‘4차원 조연’들의 내공도 크다. 젖소를 사랑하는 축산과 교수 서태화의 에피소드와 김태희의 상대역이자 원군으로 나서주는 전수경의 입말은 극에 탄력을 더했다. 그러나 작은 일상과 연애 심리 묘사에 탁월한 한지승 감독의 재기가 도돌이표 같은 영화적 설정에 짓눌린 것은 한숨으로 남는다. 차량 두 대를 박살내는 자동차 추격전, 의례적인 공항 장면, 느닷없는 화재 장면 같은 도식은 과감히 버리는 게 외려 용기가 아니었을까.15세 관람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탕아(蕩兒)「시내트러」의 여성편력 그 전부(全部)

    탕아(蕩兒)「시내트러」의 여성편력 그 전부(全部)

    돈·여자·주먹- 남자라면 어느 하나도 선망의 과녁이 아닐 수 없는 3가지를 한 손에 쥔채, 노래·영화·「쇼」의 세계를 세상이 좁다고 30년간 가로 세로 주름잡던 연예계의 왕자「프랭크·시내트러」(55)-바로「프랭키」가 스스로 왕좌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아무래도 미남 아닌데 국제적 플레이·보이로 『웨스트·사이드·스토리』의 소년들처럼 하고한날 싸움이나 하고 다니던,「뉴저지」주「호버케인」시 빈민가의 똘만이가 노래로 몸을 일으키더니 이제는 정치를 하겠단다. 하기야 노래보다 사업가로 더 커버린 자신을 돌이켜, 늙으막의 정리도 바람직한 것이지만 여자라면「마릴린·몬로」, 남자라면「프랭키」- 하던 그가 노래와 여자를 빼면 과연 무엇이 남을는지......? 한세상을 내노라 지내던 국제적「플레이·보이」인「프랭키」지만 그에게 아무리 점수를 잘 줘도 결코 미남이라고는 할수 없다. 작은 키에 얼굴도 어딘가 원숭이를 닮았다. 「일대의 탕아」된 요인은 천성적인 불량성 때문 도대체 무엇이 1940연대 여자들의 가슴을 태우도록 인기를 불러 일으켰을까. 물론 최대의「포인트」는 그의「달콤한 목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빙·크로스비」따위를 멀리 아래로 굽어 보게 한것은 그가 지닌「불량성」과「호색성」의 숨은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란 것이 또한 묘한 동물로,「안방골 선생」「타이프」나「신사의 얼굴」로는 선량한 줄을 알아도「섹시」한 매력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 불량성은「플레이·보이」의 자격구비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건. 그에게는 무엇보다 돈을 쓸줄 아는「논다니」로서의 천성적 불량성이 보배가 된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로하여금「일대의 탕아」로 만든 요인. 아무리 돈을 벌어「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백만장자가 되었어도 그의 몸에 배어있는 불량성은 빠지지 않았다. 좋게 말해「서민적」이라 할수 있을지 모르나「서민적」치고는「깡패적」이었다. 그가 공식적으로 결혼한것은 3번. 1951년「낸시·밸버드」와 이혼한 후 바로「에바·가드너」와 결혼, 5년을 채 못살고 헤어졌다. 혼외정사 수가 없어도 여자끼리 싸우겐 안해 「시내트러」치고는 긴 편이었는지 모르나, 아뭏든 61년엔「줄리에트·프라우즈」와 약혼했다 파혼, 66년「미아·패로」에 정착했는가 했더니 2년만에 다시 깨지고 말았다. 결혼생활은 그렇다치고 혼외의 정사는 어떠했을까. 그가 꺾고 그가 지나간 여자들, 아마 그 자신도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가 감독으로「하와이」에서『용감한 사람만이』라는 영화를「로케」한적이 있었다. 「시내트러」는 전용 별장에 미국 본토에서 미녀를 불러들였는데, 들고 나고 그 수가 10명 남짓. 불과 40일간의 체재중의 일이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촬영현장을 구경하러 왔기 때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눈에 띄게된 셈인데 이들은 이틀 정도로 돌아가기도 하고 5~6일씩 묵는 아가씨도 있었다. 아뭏든 어떻게 교묘하게「스케줄」을 짜는지 아가씨들끼리 얼굴을 맞닥뜨려 싸우는 일을 볼수가 없었다는 후일담. 스타들은 모조리 거쳐「그레이스」와도 염문 「시내트러」감독은 어떤 여자에게도 부드러운 얼굴로 환대하곤, 오는대로 순서 있게 돌려 보낸다. 비행기「티케트」는 물론 여비 일체에다 용돈까지, 두둑하게 얹어 보낸다. 이렇게 수많은 여자를 거의 매일처럼 바꿔가며 즐겨도 도무지 체력에 축이 나는 줄 모른다니, 감탄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에바·가드너」는 지금껏 그의 매력을 잊지 못해 한숨을 짓는다고 하지만 그녀이래 그의 여인 편력은 한말로 다 할수 없다. 『밤의 표범』,『황금(黃金)의 딸』에서 공연한「킴·노박」과도 정을 통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로렌·바클」과도 소문이 자자했다.『상류사회』에서 공연한「그레이스·켈리」와는 어떠했을까?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 워낙 놀라운 솜씨라 일단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는것이 옳다.「도로시·프로바인」과도 어울려 다닌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리타·헤이워즈」,「라너·터너」와의 염문도 자자했었다. 조강지처 못잊는 늙음 파티참석도 이젠 싫어 영화제작에「네트·워크」「텔레비전·프로」제작,「레코드」회사, 연주회,「호텔」경영, 광고선전회사등등…「시내트러」집안에서 직접 경영하는 것만 해도 영화「프러덕션」, 항공회사,「미사일」공장, 비행기 부품공장,「라스베이거스」의「산즈·호텔」따위가 있고, 전 미국에 걸쳐 토지, 부동산에 투자하기도 하고 세계적으로도 20여가지 일에 손을 대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그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줄잡아 한해 3백50만$. 한화로 계산 12억원이 되는 셈이다. 「레코드」는 얼마나 팔렸을까. 이것도 또한 수백만장. 한장 한장 쌓아 올리면 실로 1만7천5백「피트」.「매디슨·스퀘어·가든」에 하루 밤 나가 노래만 불러도 10만$쯤은 거뜬히 벌수가 있었다. 이러한 일세의「플레이·보이」도 나이에는 어쩔수 없는지 이제는 한물 간듯「파티」에 나가는것도 싫어한다고. 29살이나 나이가 아래인 딸자식뻘 밖에 안되는「미아·패로」와의 파경도 그런데 있었던거나 아닌지. 2년 남짓한 교제끝에 맺어진 부부지만 그후의 2년간의 부부생활중「별거」가 많았다. 젊은 시절을 실컷 바람을 피우다 늙으막에 돌아온 탕아 처럼「시내트러」도 조강지처는 잊지못하는 듯, 첫아내「낸시」에게 되돌아 왔다. 환갑을 앞두고 이제 겨우 철이 들었는지『모험이나 젊은 여자들과의 불장난에 싫증이 났다. 역시 이해력 많고 가정적인 여자가 최고』라는 것이었다. [선데이서울 71년 4월 4일호 제4권 13호 통권 제 130호]
  • 국내 첫 ‘블루노트 아티스트’ 곽윤찬 4번째 앨범 발표

    국내 첫 ‘블루노트 아티스트’ 곽윤찬 4번째 앨범 발표

    ‘노란 고래’가 재즈의 바다에 떴다.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39)의 네번째 앨범이다.“물 속 생물 중 드물게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고래의 자식 사랑을 묘사했어요. 동양인이 세계로 나가 재즈 음악을 한다는 의미도 담았죠.” ‘해외진출’은 그에게 헛된 상투어가 아니다. 그의 앨범은 유럽과 홍콩에서도 라이선스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내년에는 뉴욕 공연도 추진 중이다. 무엇보다 그의 음악 인생의 방점은 2005년 세계적인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에 국내 음악인으로 처음 입성했다는 것. 이번 앨범은 블루노트에서 두번째 내는 음반이다.“뉴욕에서 드루 그레스, 내시트 웨이츠와 트리오로 녹음을 했어요. 재즈계에서는 정말 유명한 사람들이에요. 사실 늘 섭외가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블루노트 아티스트가 되니 섭외가 너무 쉽더라고요.” 지난번 그의 3집 앨범 ‘누마스’는 결혼 후 10년만에 아이를 얻은 기쁨을 표현했다. 당시 여행했던 몰디브에서 산 열쇠고리의 이름을 딴 것. 이번 4집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재즈’라는 컨셉트를 박았다.“재즈는 영감이 많이 필요한 음악이에요. 제게 음악을 표현하는 계기는 늘 곁에 있는 아들이니까요.” 점성 높은 눅진한 음색보다 밝고 맑은 음악을 선보이는 그의 재즈는 팬이나 음악관계자들에게 ‘해피재즈’라 불린다. 이번에도 사랑을 주제로 한 9곡을 앨범에 녹여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over the rainbow’와 ‘I’ll be seeing you’‘작은 별’등을 골랐다.3곡의 창작곡도 유려한 멜로디로 흐른다. 1990년대 초반, 차인표가 색소폰을 불어대던 드라마로 국내에도 ‘재즈 붐’이 일었다. 당시만 해도 거품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재즈는 대중 속에 나붓이 안착했다.“예전에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하면 몇 천명 왔는데 지금은 8만명 정도가 옵니다. 미국에 재즈 배우러 가는 사람이 저 공부할 때는 십수명이었는데 지금은 300여명 돼죠. 연주자뿐 아니라 직장 다니면서도 취미로 하는 사람이나 입시 준비하는 학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대중의 반응과 달리, 정부나 기업에서 클래식에만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현실은 아쉬운 점이다. 곽윤찬의 꿈은 소박하다. 일반인을 위해 재즈 콘서트와 강의를 결합한 공연을 선보이는 것.“음반 시장은 죽었지만 공연문화가 발달된 건 다행”이라는 그의 자족이 온화한 고래를 떠올리게 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30일 TV 하이라이트]

    ●다큐 10(EBS 오후 9시50분) 현대는 패션의 개념이 생겨난 시기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특색있는 옷을 내놓는 디자이너들이 생겨나고 이들이 자본과 만나면서 명품 브랜드가 탄생, 여성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며 패션의 우상으로 떠오른다. 바야흐로 패션의 선택권이 전적으로 소비자에게 맡겨진 시대. 오히려 소비자들은 부담스럽다.   ●못말리는 결혼(KBS2 오후 6시50분) 호텔에서 구국과 마주친 말년, 당신과 격이 안 맞는 호텔엔 어쩐 일이냐며 비꼬듯 물어보자, 구국은 “있는 척 유세 떠는 꼴불견으로밖엔 안 보인다.”며 맞대응한다. 불쾌해진 말년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기부해 폼나는 호텔 사장으로 구국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려 하는데….   ●주말의 명화 ‘사랑해 말순씨’(MBC 밤 12시45분) 1980년 대통령의 유고로 온나라가 슬픔에 빠졌건만, 소년의 머릿속을 꽉 채운 건 하숙방 은숙 누나의 봉곳이 솟은 가슴뿐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인생의 태클’을 거는 인생의 강적(?)이 있으니 그녀의 이름은 김말순 여사, 소년의 엄마다. 문소리의 연기가 압권이다.   ●신동엽의 있다! 없다?(SBS 오후 6시30분) 100회를 맞이 특집으로 꾸며진다. 첫번째는 요가신동의 탄생. 생후 5개월된 아기가 요가 동작을 한다. 머리와 발바닥만 바닥에 닿은 채로 허리를 활처럼 휘는 아기의 동작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사진은 한 주간 인터넷에서도 화제였다. 눈을 의심케 하는 요가동작의 꼬마 주인공을 만나본다.   ●영상앨범 산(KBS1 밤 12시15분) 중국은 그 넓은 땅덩이만큼이나 아름다운 명소들을 곳곳에 품고 있다. 현재 33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이어 세계 3위이다. 쓰촨성에 있는 아미산은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에 신비한 풍광을 품고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중소기업UP 한국경제UP(YTN 오전 10시40분) 매월 소방교육을 실시하는 한편으로 회사 내 곳곳에 소화기를 설치해 화재를 예방하고 직원들 스스로 깨끗한 작업장을 실천해 나가는 안전한 일터. 회사 내에 정원이 있어 사원들이 편안한 쉼터로 활용하고, 그렇게 휴식을 취한 직원들 하나하나가 애사심에 충만해 있는 현장을 탐방한다.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경남 하동군 악양면 상신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경남 하동군 악양면 상신마을

    경남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는 면소재지가 있는 중심지이자 하동에서도 가장 연대가 오래된 마을로 손꼽힌다. 하동군 자료에 따르면 기원전 5000년쯤 이미 마을이 형성됐고 삼한시대인 변한 때는 악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낙노국의 심장이었다. 이후 1633년 상촌, 성지촌, 성후촌으로 불렸고,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정서, 상신, 주암, 성덕을 합해 정서리가 되었다. 지금은 상신(새터말)과 정서로 크게 나뉜다. 마을 북서쪽의 형제봉∼신선대 능선은 섬진강 조망이 뛰어난 산행 코스로 특히 철쭉이 만개한 5월에 등산객이 집중적으로 몰리는데, 이 길은 19번 국도에서 시작해 해발 1116m의 형제봉을 지나 지리산 주능선 영신봉(세석대피소)으로 이어진다. 19번 국도에서 지리산 쪽으로 열린 2차선 아스팔트 도로변 한쪽에 ‘조씨 고가’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다. 조씨 고가는 1876년 개항으로 신문물이 쏟아져 들어올 때 조재희라는 사람이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부를 얻어 지은 집으로 완공까지 무려 17년이란 세월이 소요됐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사흘간 불에 탔으며 그 뒤 다시 지었다. 흔히 ‘조부잣집’으로 더 유명한 이 집의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들어서면 정서리 상신마을에 닿는다. 마을의 가장 끝 집, 그래서 지리산과 더 가깝게 살을 부빈 곳에 이제 막 귀농하여 터를 잡은 젊은 부부가 산다. 개띠 동갑내기 서교철·김형예 부부는 2003년 늦은 나이에 결혼, 이듬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으로 내려왔다. 신출내기 부부의 산중 생활이 출발부터 쉬운 건 아니었다. 처음엔 아랫동네에서 다른 이의 집을 얻어 살았다. 금방이라도 천장이 내려앉을 듯한 낡은 집이었는데, 몇 번의 누전 사고 끝에 결국 화재로 모든 게 불타버렸다. 김형예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하다. “다행히 젊은 부부가 열심히 산다고 주위 분들이 기특해 하셨어요. 집 뒤의 둥근 산을 이곳에선 꽃뫼산(화봉산)이라고 부르는데, 저를 꽃뫼새댁이라고 부르며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서씨 내외가 지금의 터에 집을 짓고 민박(작은영토,055-882-6263) 간판을 내건 건 1년이 조금 넘었다. 민박 외에도 솜씨 좋은 아내 김씨가 차와 효소를 만들고, 남편은 매실, 감, 밤 등 과실 농사에 주력한다. “차밭은 산 귀퉁이에 있어요. 비료도 퇴비도 없이 그저 풀과 같이 크는 차나뭅니다. 쑥차용 쑥도 농약 오염 때문에 논이나 밭두렁에선 절대 캐지 않습니다. 감잎차도 산속 똘감잎의 새순만 골라요. 먹는 사람이야 그런 정성을 알아줄 리 없지만 몸이 아픈 사람에겐 재료 선택 하나하나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이런 차라면 가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가격은 늘 김형예씨 마음 내키는 대로다. 투병 중인 사람이 오면 헐값에 주기도 하고, 여유가 되는 사람들이 오면 정당한 대가를 받고 팔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셈하는 것조차 잊었다는 그다. “황토집을 짓는 동안 3번이나 119에 실려갔어요. 기본 토대만 목수가 만들었지, 실질적인 집 짓기 작업은 저희 부부가 1년간 했거든요. 힘들이지 않고 얻는 게 어디 있나요? 지금은 코펠에 라면만 끓여도 호사라고 생각합니다.” ‘작은영토’의 좁은 채마밭 안으로 지리산 능선을 타고 온 초겨울 햇살이 그득히 쏟아지고 있었다. 주섬주섬 농기구를 손보는 서씨의 어깨 한쪽엔 푸른 꽃이 활짝 피었다.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이 부부의 지리산 희망꽃이다. # 교통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화개행 버스를 탄 후 화개에서 다시 악양행으로 바꿔 탄다. 경상권에서 올 경우엔 하동에서 하차해 악양으로 이동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진주에서 남해고속도로로 들어서 하동IC로 진입한다.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나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이용해 악양으로 갈 수도 있다. 글·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 “사랑의 미소돼지 드디어 잡아요”

    “사랑의 미소돼지 드디어 잡아요”

    “불우이웃돕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서울 은평구 지하철 6호선 구산역에서 일하는 청소원 아주머니 6명은 힘든 일을 하면서도 이웃사랑을 잊지 않는다. 일하다 주운 재활용품을 판 돈으로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미소돼지’ 저금통을 꼬박꼬박 채우고 있다. 이 저금통이 ‘미소돼지’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권미향(51·여)씨가 지난해 말 선행을 제안하면서부터다. 지난해 6월 청소원 관리장으로 부임한 권씨는 “지하철 이용객들에게 때론 무시를 당하지만 미소는 잃지 말자.”며 동료들에게 ‘미소돼지’ 모금을 제안했고, 동료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작은 선행을 하려는 청소원들이 감내해야 할 이용객들의 무례는 너무 컸다. 재활용쓰레기를 팔기 위해서는 쓰레기 더미에서 종이컵이나 전화카드를 골라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를 보고 일부 이용객들이 “당신들이 불우이웃인데 누구를 도우려 하느냐.”고 비아냥거렸다. 전화카드 한 장당 50∼100원밖에 받지 못해 1000원을 모으기도 쉽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에는 역사 천장 청소를 하다가 한 아주머니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는데 승객이 대뜸 “당신들 여기 유람왔냐. 청소하는 주제에 누굴 내려다보면서 뭘 먹냐.”고 핀잔을 줬다. 권씨가 휴대전화를 주워 찾아주려고 주인과 통화했더니 주인이 “당신이 전화를 썼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권씨와 함께 일하는 김모(48)씨도 “쓰레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는 경우 자기 돈을 주워서 넣은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하거나, 지갑을 찾아주었는데 돈이 없어졌다며 경찰을 부를 때는 너무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권씨는 “한껏 차려입고 역장의 아들 결혼식에 가면서도 종이컵을 모은 적도 있다.”며 웃었다. 또 “주변에 ‘미소돼지’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기업에서 10만원의 성금을 보내왔고, 어떤 할머니가 쌈짓돈 5000원을 주고 가기도 했다.”고 밝혔다. 청소원들의 ‘미소돼지’는 어느덧 배가 불렀다. 오는 27일 저금통을 뜯어 구산동 동사무소에 전달할 계획이다. 권씨는 “못 배운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선입견이 많아 힘들다.”면서도 “청소원도 당당한 직업인이고, 우리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김정일 공산주의 딜레마 잘 알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현실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눈과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공산주의의 딜레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배우 최은희(75)씨가 5일 출간된 에세이집 ‘최은희의 고백’(랜덤하우스)에서 김정일 위원장에 얽힌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최씨는 1978년 홍콩에서 납치돼 평양에 도착한 뒤 김정일이 입은 옷 그대로 북한에온 자신을 위해 화장품까지 챙겨 주는 호의를 베풀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현관 앞 응접실에 크고 작은 종이박스와 나무박스들이 40∼50개나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양복감, 한복감, 코트감, 망사 등 온갖 춘하추동 옷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내가 쓰던 화장품까지 들어 있어 김정일이 나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씨는 “남한에서 배우생활을 할 때도 그렇게 사치해본 일이 없는 나는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었다.”며 특히 김정일은 집에 만들어 놓은 영사실에서 남한 TV방송을 빠짐없이 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최씨는 책에서 은막 스타로서 살았던 화려한 삶 이면에 가려진 두번의 결혼과 이혼, 육아, 재결합까지 여자로서의 솔직한 인생담을 담담하게 털어 놓았다. 해방 전 처음 무대에 오를 당시의 감회부터 6·25 전쟁기간 중 피란 생활, 군사정권에서 힘겨운 영화활동, 납북과 북한 생활, 미국 망명까지 우리 근현대사의 얼룩이 고스란히 담겼다. 12살 연상의 첫 남편에게 상처를 받은 뒤 운명적으로 만난 고 신상옥 감독과 허름한 여인숙에서 했던 결혼식, 신 감독이 신인 배우 오수미와의 스캔들로 아이 둘을 낳자 헤어지고 각각 북한으로 납치된 사연도 눈에 띈다. 북한에서 어렵게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한 뒤 이혼의 원인을 제공했던 오수미와의 질긴 인연도 비껴가지 않았다. 오수미가 낳은 아이들을 데려와 키우지만 오수미는 교통사고로 숨져 직접 그 유골을 수습한 최씨는 “같은 여성으로서 그의 삶을 되새겨 보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정연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재결합 아내와 또 헤어져야 할 형편

    Q사업 부도로 위장이혼을 했다가 실제 이혼한 뒤 오랫동안 따로 살다가 3년전 재결합했습니다. 그동안 다른 여자와 재혼할 생각이었는데 자녀 문제로 다시 연결되었고, 법적으로는 동거 상태였습니다. 이혼 후 아내는 사업에 성공하고 경제권을 쥐고 있었고, 다시 결합해 사는 동안 부부관계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자녀들도 독립하여 부모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며, 나는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로 아내의 집에서 나가야 할 형편입니다. -오명수(가명·47세)- A우리 주변엔 재결합에 성공한 분도 있지만, 재결합해도 부부문제가 다시 불거져 헤어지는 부부가 많습니다. 오명수님의 경우는 경제문제가 거듭된 이혼의 주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이혼 후 각자 독립적으로 살면서 한 편은 사업에 성공하고, 다른 한 편은 아직도 빚에 시달리는 상태라면 재결합의 유혹은 더욱 강렬해질 수 있습니다. 자녀들도 부모가 조금씩 양보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겠지요.50세가 가까운 남성에게는 어지러울 정도로 변화해가는 세상에 적응하기도 어려운데 실패로 끝난 가정생활로 인해 무척 힘든 상태라고 보여집니다. 오명수님은 단지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두 번씩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아내와 자식에 대한 섭섭함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게 살아도 고난을 함께 견디며 행복하게 잘 사는 부부도 많이 있습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배우자를 한평생 간병하며 그래도 살아있기만을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어진 힘든 여건 내에서도 그들을 함께 묶어 놓은 것은 그동안 일구어온 사랑과 믿음의 역사입니다. 단지 사업이 어려워지고 부도가 나고 집이 경매에 넘어간다고 해서 부부가 갈라서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았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인 것 같습니다. 사랑과 미움이 교차하는 게 인생이지만, 상대방에게 어떤 것을 주고받았는지가 기준이 아닙니다. 부부가 어떤 수준의 관계맺음을 해왔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무적인 관계, 겉도는 관계로 지속해왔다면,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습관적인 관계이며, 작은 풍랑에도 부서지기 쉬운 배와 같습니다. 잉꼬 부부로 소문난 부부 중에도 어느 날 갑자기 파경을 겪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갈등을 은폐해 왔을 수도 있지만, 행복한 경우에도 신뢰가 무너지고 나면, 나중에 수습하려고 두 배, 세 배의 노력을 해도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명수님의 경우도 두 번에 걸친 결혼 생활에서 신뢰가 무너진 경우, 그 후에라도 계속 노력을 하였더라면 지금 상황과는 달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금으로선 현실을 직시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우선, 함께 사는 노력보다는 잘 헤어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안부 인사라도 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헤어지는 예절이 필요합니다.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더 이상 같이 살 수는 없다 해도,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될 필요는 없으며 인간에겐 최소한의 연결이 있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입니다. 각자 살면서도 힘들 때 옆집 아줌마·아저씨 정도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이별의 대가로 받은 적지 않은 보상이 되지 않을까요. 함께 살아온 사람의 휴대전화에서 내 전화번호가 지워지는 날이 온다 해도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으며, 내 건강을 지키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이야말로 다른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누구나 강한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산의 정상에서 비바람을 맞고 서 있는 소나무의 모습이 그리워 사람들은 겨울 산행을 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단지 지금은 떠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 뿐이며, 선한 바람은 다시 꽃을 피우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목포대교수·한국가족상담사협회장>
  • 곰보 색시 보조개는 많기도 하지

    곰보 색시 보조개는 많기도 하지

    「한 여자에 두 남자」인 3각관계쯤 세상엔 흔한 일. 그런데 그 두남자가 형제사이이고 여자가 양귀비같은 미인이 아닌 곰보아가씨라면 얘기가 좀 재미있어진다. 사랑에 미치면 곰보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아뭏든 동생의 아이를 가졌던 아가씨가 형에게 다시 시집을 갔다는데-. 소꿉친구 자라서 「남(男)과 여(女)」 곰보면 어때, 동생이 먼저 유원지로 이름난 경춘(京春)가도를 달리다 마석에서 오른쪽으로 10리쯤 들어간 경기(京畿)도 양주(楊州)군의 한마을. 여기가 바로 「아더메치」한 형제지간 3각관계 치정극이 벌어진 곳. 20여호 남짓한 작은 마을에 문제의 세 남녀 집이 약 1백m 거리를 두고 마치 3각관계라도 상징하듯 3각형으로 떨어져 있다. 풍수지리로 보아도 숙명적으로 3각관계를 맺을 운명인가? 말썽난 신부 유덕자양(兪德子·26·가명)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았기 때문에 얼굴 전면에 지독한 마마자국이 있는 속칭 곰보 아가씨. 말짱한 정신으로 본다면 결코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아가씨다. 이 아가씨를 사이에 놓고 고종 사촌 간인 이(李)원서씨(25·가명)와 박(朴)종운씨(24·가명)가 치사찬란한 역사를 엮은 것. 먼저 관계를 맺은 것은 유양과 박씨. 그러니까 먼저 동생과 역사가 엮어진 셈인데 지금으로부터 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마을에 살고 있으니 서로 왔다 갔다 하며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 더구나 박씨의 어머니와 유양의 어머니는 자매를 맺은 사이. 박씨는 유양의 집을 제집처럼 자주 드나들었고 유양과는 소꿉친구이기 때문에 다정하게 지냈다. 그런데 나이가 20세쯤 되고 보면 남녀 사이란 결코 소꿉친구만일 수는 없는 모양. 이게 일이 벌어진 근원이다. 박씨와 유양은 어느덧 서로를 그리는 「남과여」가 되었고 부모들과 마을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밀회(密會)를 즐기는 사이가 되었다. 사랑의 씨앗·눈물의 씨앗 약혼준비중 이번엔 형이 2살연상의 여인이고 게다가 지독히 얽은 얼굴이지만 한번 정이 들고 보니 물불을 분간못하게 사랑에 빠졌다. 유양 방에서, 또는 박씨의 방에서, 마을 뒷산에서 사랑을 나누고 살을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사랑의 씨앗」이 잉태됐을 것은 당연한 순서. 유양의 배가 점점 불러갈 즈음에는 벌써 마을에 소문이 파다해졌다. 처녀의 몸으로 배가 불렀으니 창피하고 부끄러운 집안 망신이지만 딸의 못난 얼굴 때문에 항상 시집보낼 걱정을 해온 유양의 어머니는 차라리 잘된 일이려니 생각하고 두사람을 결혼시키기로 작정, 혼인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유양의 어머니에게는 그때 수양아들을 삼은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박씨의 고종사촌형인 이원서씨. 하나 있는 아들은 서울에 살림나서 살고 있고, 유양 위로 딸 둘은 출가, 오로지 유양 하나만 데리고 단촐하게 사는 처지가 외롭고 쓸쓸해서 이씨를 수양아들로 삼고 가까이 지낸 것. 이씨는 유양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잔심부름도 해주고 아들처럼 다정히 지내며 한살위인 유양을 「누나」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게 또 말썽일줄이야…. 수양아들을 삼아서 맺어진 누나 동생 관계라지만 처녀 총각이 만났으니 미묘한 움직임이 싹틀 수 있고 소문도 올바르게 날리가 만무하다. 이러쿵 짝짜쿵 소문이 나고보니 박씨의 마음이 고와질 턱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곰보 며느리를 얻는다는 것을 탐탁찮게 생각하던 박씨의 부모들에게는 더욱 못마땅한 일이었다. 그것도 남이 아닌 바로 친고종 사촌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 창피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기가 찰 밖에. 판정승 형이 동생 각서받고 화촉 켜는데… 하지만 유양은 임신 6개월의 몸. 이제 와선 이도저도 못할 딱한 처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두 집안 어른들은 구수회의를 열고 이씨와 소문은 덮어두기로 결정, 그대로 박씨와 유양을 짝지어 주기로 했다. 그래 우선 약혼날을 받아 놓고 사주를 쓰고 혼인절차를 진행시켰다. 그런데 그때 뜻밖에도 신부 유양이 행방불명이 된 것. 하도 말도 많고 창피한 생각에서 유양의 어머니가 『왜 어미 속을 썩히느냐』면서 한대 쥐어박았더니 그길로 어디론지 사라져버린 것이다. 약혼날까지 받아놓았는데 신부가 증발을 해버렸으니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박씨는 유양과 고종형 이씨와의 관계를 더욱 의심했다. 『오냐! 너희 둘이 붙었구나』고 확신을 한 그는 유양과의 약혼을 취소하기로 결심했다. 사랑이 가셔버린 마음엔 증오심만 끓어 올랐다. 혼인이 취소되자 유양은 서울에서 낙태수술을 해버렸다. 여기서 일이 끝났다면 청춘남녀가 한때 철모르고 저지른 「잊고 싶은 사연」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그로부터 3년남짓의 세월이 흐른 지난해 가을 이씨와 유양이 결혼을 했기 때문에 말썽은 또 꼬리를 문 것이다. 과거야 어떻든 간에 그동안 유양과 이씨가 누이-동생 사이를 넘어 연인이 된 것. 어차피 얼굴도 그런데다가 과거까지 가진 딸을 둔 유양의 어머니는 아예 이번에는 짝을 지어주기로 다짐하고 이씨의 부모와 만났다. 그때 이씨에게는 여러 곳에서 청혼이 들어오고 한군데 혼담은 꽤 구체적인 데까지 진전되고 있었는데, 본인들이 좋아한다니 모든 청혼을 물리치기로하고 둘을 맺어주는데 동의했다. 단 과거 박씨와의 석연치 않은 문제를 완전히 씻어버리기 위해 박씨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래서 유양의 집에서는 박씨의 집을 찾아가 딸과 이씨와의 결혼을 양해해달라고 사정, 동의를 얻는데 성공했다. 형제간이라지만 박씨와 이씨는 성(姓)이 다르고 또 박씨는 유양을 깨끗이 잊었으니 두사람의 결혼에 이의가 없음을 밝히고 각서까지 써주었다. 곰곰 생각하니 울화터져 동생은 잔치집 쳐들어가 약혼을 하고 택일을 했다. 결혼날이 닥치자 신랑 신부 집에서는 잔치 준비를 하고 친척들이 모여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잊어버린 사람이라지만 조금쯤 미련이 남는 것이 사랑의 피인가. 결혼식을 이틀 앞 둔 날 박씨가 유양을 찾아갔다. 막상 만나고 보니 오가는 말이 고울수만은 없었다. 『XX같은 놈』『XX새끼』욕설이 오갔다. 여기서 박씨의 울화통이 터졌다. 신랑 신부가 식을 올리기 위해 다음날 서울로 올라가기로 돼있었는데 새벽같이 박씨는 유양의 집을 습격, 잔치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손님들이 흩어져 도망가고 잔치는 엉망. 그러나 신랑과 신부는 무사히 박씨의 감시를 뚫고 서울에 가서 다음날 식을 올리고 유양은 머리를 얹을 수가 있었다. 3일 동안의 「허니문」을 즐긴 신혼부부가 마을로 돌아왔다. 신부는 이제까지 시댁에 들어가지 않고 친정에 살면서 시댁엘 왔다갔다 한다. 점장이의 점괘에 『돼지해가 되기전에(음력으로) 시집에 들어가면 큰 화가 있을 것』이라고 나왔기 때문에 기다렸던 것. 날짜를 잡아서 지난 가을에 하다 만 잔치를 하고 들어갈 것이란다. <영(英)> [선데이서울 71년 2월 21일호 제4권 7호 통권 제 124호]
  •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취재, 글 이만근 기자 ’교통 혁명’이라 부를 만큼 프랑스 파리의 무인 자전거 대여 서비스(Velib)가 크게 성공하고 있다. 건강에 좋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는 데다 요금이 거의 공짜니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 우리도 뒤질세라 웰빙 문화의 보급으로 자전거 소비가 늘고 자전거 도시를 표방하는 지자체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늘어난 자전거 수만큼 버려지는 자전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너도나도 자전거를 권하는 이 시대, 달리지 못하는 자전거에 눈을 돌린 이들이 있다. “뱃살 빼려고 샀던 자전거도 작심삼일이면 오래도록 방치되기 십상이죠. 뱃살은 뱃살대로 다시 늘고 자전거는 꼼짝 못한 채 녹슬어 갑니다. 훌쩍 커버려 거들떠보지 않는 아이들의 세 발 자전거는 어떻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버려진 자전거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 70여 단지 주변에 20만 대가 넘습니다.” 사단법인 ‘신명나는 한반도 자전거에 사랑을 싣고’(이하 ‘자전거 사랑’)의 김용석 사무국장(39세)은 쉽게 소비하고 자원을 아끼지 않는 사회 풍토를 꼬집으며 자전거 재활용의 당위성을 역설한다. 아직 자전거가 요긴한 운송 수단인 북한이나 저소득층 이웃에게 재활용 자전거를 보급하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자전거 사랑’ 현장에서는 날마다 30여 대의 자전거가 새로 태어난다. 철도공사의 도움으로 고양시 수도권철도차량관리단 내 300평 부지에서 사무직 2명과 수리 인력 9명이 매일같이 1,500여 대의 폐자전거와 씨름하며 분주히 움직인다. 이들의 수고로 일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총 1,000여 대의 재활용 자전거를 지역아동센터 등에 기증할 수 있었고 얼마 전에는 고양시에 사는 저소득층 아이들 250명을 초청해 자전거로 맘껏 달리게 했다. 북한과의 협약도 이미 체결되어 상황을 살피고 있는 중이고 요즘은 이번 달에 있을 용산구 지역 행사 때 주민들에게 나눠줄 자전거를 손보는 데 여념이 없다. “아파트 관리소장이나 입주자 대표 등을 찾아 버려진 자전거를 기증받으려 해도 처음에는 고철 팔아먹는 엿장수로 취급되어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어요. 물론 요즘은 활동 취지를 공감하는 고양시나 용산구 같이 지자체가 직접 나서 수거에 협조하고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곳도 있지만요.” 물론 현재 활동하고 있는 40여 명의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으는 후원금도 큰 버팀목이다. 차츰 자리를 잡아 일감이 늘자 정부 지원으로 노숙자 등을 고용하며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김 국장은 덧붙인다. 추석이 코앞이다. “올 안에 장가가라”는 어머니의 성화가 귀에 쟁쟁할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김용석 국장은 제 앞가림을 뒤로하고 집안에서 녹슬고 있는 자전거를 찾아보라는 오지랖 넓은 충고를 한다. 막장갑을 끼고 바퀴를 굴리며 이리저리 부품을 손보고 있는 박상호 씨(48세)는 일을 시작한 지 5개월 남짓 되었는데 이젠 거리를 지나다 버려진 녹슨 자전거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사람도 무관심 속에 쓸쓸하게 버려져 외로움을 느낄 때부터 병이 나죠. 자전거도 마찬가지예요. 바퀴를 계속 굴려야 오래도록 제 역할을 해요. 왜 군대에서 매일 ‘닦고, 기름 치고, 조이자’를 외치잖아요.” 새것에 가까워 품이 들지 않는 자전거도 있지만 보통 서너 대 정도를 분해해야 쓸 만한 부품들이 모여 달릴 수 있는 한 대의 자전거가 탄생한다. “사람으로 치면 장기를 기증한 것과 같죠. 결국 고철 처리되지만 자원이 선순환 되는 거예요.” 불혹에 가까운 나이지만 아직 미혼인 김 국장은 결코 자신은 자전거와 결혼한 것은 아니라며 올 가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함께 자전거를 탈 처자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작은 혁명을 이끌면서 말이다. 2007년 10월
  • 국제가족영상축제·유럽영화제 개막

    국제가족영상축제·유럽영화제 개막

    자타가 공인하는 영화팬인 당신, 올해는 부산영화제를 놓쳤다고? 하지만 크게 아쉬워할 것은 없다. 부산 못지않은 수작들을 볼 수 있는 영화제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최근 재해석되고 있는 가족의 의미나 최신 유럽 영화의 흐름을 짚어보고 싶다면 다음 두 영화제에 주목할 만하다. ●‘오늘, 가족을 본다´ 전세계 31개국 작품 상영 18일부터 6일간 정동,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는 제1회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는 가족영화란 모름지기 온가족이 보는 따뜻한 영화라는 공식에서 벗어난다.‘오늘, 가족을 본다’라는 주제의 이 영화제는 오늘날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살핀다. 이번 영화제는 전세계 31개국에서 온 모두 103편(장편 32편, 단편 71편)의 작품이 상영되며, ‘가족’을 중심 주제로 한 세계의 장편영화들을 소개하는 ‘월드 패밀리 나우’와 한국사회 내 가족을 재조명하는 ‘코리아 패밀리 나우’를 비롯해 ‘세계 단편영화 초청전’,‘부성애 특집’,‘시네마테라피, 가족을 만나다’ 등 모두 7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특히 가족 내 관계에 초점을 맞춘 한국 단편영화 경선 부문에서는 예심을 거친 33편의 본선 진출작이 상영된다. 이번 영화제 개막작은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스위스의 장 스테판 브롱 감독의 2006년작 ‘내 동생의 결혼식’.20년 전 스위스 가정에 입양된 빈의 결혼식을 맞아 베트남에서 생모가 방문하자,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온가족이 어색한 ‘행복’을 연기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한국 가족영화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는 ‘씨네토크’ 섹션도 눈에 띈다.2003년 여름 시즌 3주간 박스 오피스 1위를 석권한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을 비롯해 ‘가족의 탄생’(2006),‘좋지 아니한家’(2007) 등 순차적으로 탄생한 가족영화 3편을 차례로 만나볼 수 있다. ●17일부터 유럽거장 신작등 선보여 올해로 8회째를 맞는 메가박스 유럽영화제(17∼21일)에서는 유럽 거장들의 신작을 선보이는 ‘마스터스 초이스’를 비롯해 ‘하트 투 하트’,‘슈팅스타’ 등 6개 부문에 걸쳐 총 30편의 작품이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개막작으로 선정된 크리스 크라우스 감독의 ‘포미니츠’는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교도소 수감자 제니와 그의 스승 크뤼거의 감동 휴먼 스토리를 그린 작품으로, 올해 독일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화제작. 이밖에 유럽식 로맨틱 코미디를 맛보고 싶다면 ‘러브스토리 인 유럽’ 섹션의 ‘당신은 나의 베스트셀러’와 ‘센스 오브 유머’ 섹션의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을 주목할 만하다.‘결혼하고도’는 파리 사람들의 독신 생활을 코믹하게 그린 작품으로 지난해 프랑스 흥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유럽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이번 영화제는 유럽 영화는 무조건 어렵고 예술적이라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센스 오브 유머’ 섹션을 신설해 유럽식 코미디 영화의 새로운 면모를 소개할 예정”이라며 “평범한 2030여성들을 포함해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영화들로 꾸몄다.”고 밝혔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110cm신랑과 70cm신부의 러브스토리

    ‘세계에서 가장 작은 부부’가 중국에서 탄생할 것 같다. 키가 110cm인 신랑 리탕용(李堂勇)씨와 70cm인 신부 천구이란(陈桂兰)씨가 지난 28일 ‘세계에서 가장 작은 부부’로 기네스북에 등재를 신청해 눈길을 끌고 있다. 선천적인 요인으로 키가 작은 리씨는 7년 전 고향에서 키가 70cm인 천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청혼을 했다. 그러나 양쪽 부모와 의사는 두 사람이 결혼할 경우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이유로 극구 반대했고 두 사람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키워가던 두 사람은 광동(廣東)성의 순더(順德)에서 열릴 합동결혼식에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작은 부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세계 기네스협회에 등재 신청을 하게 되었다. 리씨는 “비록 우리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에게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며 “합동 결혼식과 기네스 기록 도전 모두 매우 독특한 경험이라 생각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기네스협회의 심사결과는 10월 중순에 발표될 예정”이라며 “신기록 수립 소식이 결혼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女談餘談] 명절은 괴로워/ 최광숙 정치부 기자

    추석이 되면 몇년 전 같은 출입처에서 동고동락했던, 한 남자 후배의 얘기가 떠오른다. 어느 날 그 후배는 추석을 며칠 앞두고 “정말 명절 때 여자들이 힘드냐.”고 심각하게 물어왔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묻기에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며 다시 반문했더니만 돌아온 말이 걸작이다. “우리 와이프가 저보고 ‘당신이 고아라면 좋겠어.’라고 말해 정말 충격 받았거든요.” 그때 기자는 그 후배 부인의 말에 ‘공감’을 표시하며 후배를 위로했다. 오죽하면 ‘사랑하는 남편이 가족도 없는 혈혈단신’이길 바랄까 싶을 정도로 여성들에게는 명절 시댁 챙기기는 부담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긴장과 육체적 노동이 결합해 극도의 피로감을 주는 것이 바로 명절이라는 것을 우리네 남편들은 잘 모른다. 결혼한 여성이라면 명절 전날과 명절 당일, 적어도 이틀은 완전히 죽었다(?)고 봐야 한다. 보통 명절 전날부터 장봐서 음식 장만해 명절 전야제를 화려하게 보낸다. 명절 당일에는 아침 일찍 차례상을 차려 내가고, 식사 하고 나면, 설거지하고…. 명절 다음날은 성묘가고…. 아내들이 동분서주하는 동안 남편들은 대부분 TV 시청, 신문 읽기, 낮잠자기 등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같은 명절 지내기가 여성에게 지옥이라면 남성들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요즘 여성들은 옛날 선배들보다는 형편이 나아졌다. 감히 생각하지도 못하던 친정 방문이 이젠 일상화됐다. 기자만 해도 결혼 초기에는 명절 당일 아침은 물론 점심식사까지 시댁에서 먹고 설거지를 마쳐야 친정에 갈 수 있었다. 밥 먹고 나면 별 할일도 없는데 거실에 모여 TV 보며 가능한 한 ‘오랜’시간을 보내야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침 설거지를 물리면 바로 인사하고 나온다. 어머님 돌아가신 뒤 오빠네 집에서 차례를 지내는데 고향 강릉에서 상경한 작은오빠네 가족들을 이때 아니면 보기 힘들어서다. 귀여운 조카들과의 상봉도 놓칠 수 없어서다. 이번 추석에도 역시 이같은 빡빡한 일정을 보내야 했다. 여성들에게 긴 추석 연휴가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긴 추석 황금 연휴에 해외 나들이를 나가는 이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야, 정말 남편 잘 만났구나 싶기도 하고, 역시 장남은 피곤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최광숙 정치부 기자 bori@seoul.co.kr
  • 사랑이 변해도, 있긴 있는 거죠?

    사랑이 변해도, 있긴 있는 거죠?

    가을 하면 역시 멜로 영화다. 한 여자를 위해 순정을 바치는 부산 사나이(곽경택 감독의 ‘사랑’)가 인기몰이 중인 가운데 사랑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줄 한국영화 두 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자신을 위해 헌신한 여자를 헌신짝처럼 버린 비열한 남자(허진호 감독의 ‘행복’)와 변덕스런 남자들을 믿지 않는 쿨한 30대 여성들(이언희 감독의 ‘어깨 너머의 연인’)이 잇따라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 행복 “은희야, 넌 내가 그렇게 좋으니?” “응. 영수씨는?” “그런 게 있긴 있구나.” 한 이불 덮고 마주 보고 누운 남녀가 사랑의 달콤함을 만끽하는 순간, 묘하게 방향을 돌리는 남자의 말에서 연인의 불안한 운명이 예감된다.‘8월의 크리스마스’‘봄날은 간다’‘외출’ 등 전작에서 한번도 사랑의 완성을 보여주지 않았던 허진호 감독은 네 번째 영화 ‘행복’에서는 아예 사랑의 잔인한 얼굴을 작정하고 드러낸다. 도시남자 영수(황정민)는 방탕한 생활로 간경변 진단을 받고 시골 요양원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폐질환을 앓고 있는 순수한 여자 은희(임수정)를 만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작은 집을 얻어 살림까지 차린다. 은희의 헌신적인 보살핌에 건강을 회복한 영수는 슬슬 도시생활이 그리워진다. 옛 애인 수연(공효진)의 방문에 마음이 흔들린 영수는 결국 은희를 버린다. 삶의 위기에 처하면 사랑이 싹튼다고 했던가. 이 비상한 상황에서 나이, 외모, 직업, 재산 등 현실적인 조건은 뒷자리다. 은희는 건강처럼 사랑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지가 달라지면 균형이 깨지고 균열이 일어난다.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조건들은 이제 큰 걸림돌이 되고 그렇게 사랑은 무너져 내린다.“너 밥 늦게 먹는 거 지겹지 않니? 난 지겨운데.” 아무렇지 않게 툭 뱉는 영수의 말은 사랑이 식으면 얼마나 차갑고 시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시골과 은희는 순수와 휴식의 쉼터로, 도시와 수연은 퇴폐와 타락의 공간으로 대비된다. 단정적인 편가르기가 불편함을 주지만 영수가 내던진 행복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겉모습으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황정민과 임수정은 모순된 사랑과 행복을 말하는 영화이기에 오히려 적절한 배역이라고 할 만하다. 황정민은 비열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나쁜 남자로 제몫을 해냈고, 임수정의 성숙한 연기는 앳된 외모가 주는 불안함을 가뿐히 뛰어넘었다.15세 관람가, 새달 3일 개봉. ■ 어깨 너머의 연인 “왜 결혼하는 순간 섹스가 따분해지는 거지?(희수)” “나, 불륜에 딱 어울리는 애인 아닌가?(정완)” 30대 여성의 성과 사랑을 다룬 영화 ‘어깨 너머의 연인’의 두 주인공이 사용하는 언어는 사뭇 노골적이다.“결혼은 안심보험”이라며 아무도 건드릴 것 같지 않은 남자를 골라 공주처럼 사는 희수(이태란). 사랑을 믿지 않는다며 구속 없는 연애를 부르짖는 정완(미연)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 둘은 속옷부터 남자 취향, 결혼관에 대해 상이한 반응을 보이지만 자유로운 연애에 관해서 만큼은 서로 통한다. 사랑한다면 유부남도 상관 없으며, 남편이 바람나고 나니 오히려 끌린다는 식이다. 세련되고 매끈한 배경, 음악, 의상만큼이나 그녀들의 사고방식은 ‘쿨’함을 과시한다. 사랑에 ‘칼’같던 그녀들은 자를 수 없는 감정도 있음을 확인한 뒤 흔들리기 시작한다. 정완은 “잠만 자려고”만난 유부남에게 진짜 사랑을 느끼고, 희수는 순순히 이혼에 동의해준 남편을 자신이 더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영화는 ‘처녀들의 저녁식사’나 ‘싱글즈’와 같은 범주에 놓인다. 싱글 여성의 대열에 뻔뻔한 유부녀를 동참시키고 무턱대고 홀로서기를 강요하지 않은 결말은 앞선 두 영화와 비슷한 궤적을 밟아 가나 신선함을 준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왜 공허해지는 걸까. 영화에서 성과 사랑에 관한 여성들의 ‘열린 생각’은 거침이 없다. 스크린 밖은 어떤가. 비밀스런 사생활을 공개한(또는 공개당한) 여자들에게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는 게 현실이다. 미국의 인기 시트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와 그의 친구들의 자유분방한 삶을 아무리 갈망한다 해도 한국 땅에서 대놓고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명품을 걸치고 브런치를 즐기는 것 정도가 고작 아닌가.18세 관람가,18일 개봉.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요리전문가 김수진의 계절별미 오감만족] 송 편

    [요리전문가 김수진의 계절별미 오감만족] 송 편

    한가위의 대표적 음식이 송편이다. 떡을 찔 때 솔잎을 깔고 찌기 때문에 한자로 솔잎을 뜻하는 송병(松餠)이라고도 한다. 송편은 절식(節食)의 하나로 조선조 초기에 중국 중화절(中和節)의 영향을 받아 음력 2월1일을 국가적으로 실시했으나 궁중에 국한된 행사였고 민간에서는 ‘노비일(머슴날)’로 쇠었다. 콩을 넣은 송편을 빚어 나이 숫자대로 노비들에게 먹였다고 하여 ‘나이 떡’이라고도 했다. 송편은 멥쌀가루를 익반죽하고 대체적으로 콩, 팥, 밤, 깨, 대추 등으로 만든 소를 넣어 만든다. 송편은 지방마다 특색이 있어서 경상도 지방에서는 모시 잎을 삶아 넣어 빛깔을 냈다. 강원도 지방에서는 감자를 갈아 녹말가루를 내어서 끓는 물로 익반죽한 감자송편이 있으며 이외에 쑥송편, 치자송편, 호박송편, 사과송편 등이 있다. 갓 시집왔을 때 기억으로, 시어머니는 고구마도 넣으셨는데 아마도 맛있다고 생각되면 나름대로 융통성 있게 창조적으로 만들어 먹었던 것 같다. 송편을 찔 때 켜켜이 솔잎을 까는데 여기에서도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가 있다. 향긋한 솔잎향기는 입맛을 돋울 뿐 아니라 솔잎의 자국이 자연스러운 문양의 멋을 더한다. 또한 솔잎에는 살균물질인 피톤치드 (phytoncide: 피톤사이드)가 다른 식물보다 10배 정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 유해성분의 섭취를 막아줄 뿐 아니라 위장병, 고혈압, 중풍, 신경통, 천식 등에 좋다고 한다. 솔잎으로부터 피톤치드를 흡수한 송편에는 세균이 침입하지 못해 오래도록 변질되지 않고 먹었으니 삶의 지혜가 새삼 놀랍다. 요사이는 송편을 빚는 집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어렸을 적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오손도손 송편을 빚으면 어머니께서는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잘 생긴) 사람하고 결혼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송편은 대개 반달형, 모시 조개형으로 만들어지는데 만드는 사람마다 솜씨의 특징이 있어서 첫눈에 식구 중 누가 만들었지를 알 수 있었다. 어려서 송편을 예쁘게 잘 만든다고 어머니한테 칭찬도 제법 들었는데 정작 말씀대로 과연 남편을 잘 만났는지 모르겠다.  ■꽃송편 이렇게 만들어요 재료 및 분량 멥쌀가루 6컵, 소금 1큰술, 설탕 2큰술, 뜨거운 물 12큰술, 쑥 20g, 송기가루 10g. 소 재료:거피팥 2컵, 설탕 2큰술, 소금 1/2작은술, 솔잎 적당량, 식용유 11/2 작은술. 만드는 방법 1. 거피한 팥은 불려 찜통에 푹 쪄서 뜨거울 때 찧어 중간체에 내린 후 바닥이 두꺼운 프라이팬에 중불에서 주걱으로 저어가며 볶는다. 여기에 설탕과 소금을 넣어 볶아준다. 손으로 뭉쳐지면 식힌 후 새알심 정도의 소를 만든다. 2. 멥쌀(3컵)을 깨끗이 씻은 후 하루 정도 불린 후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 후 3등분한다. 3. 쑥, 송기 송편용은 각각 멥쌀에 섞어 빻아 체에 내린다. 4. 흰색 송편용은 그대로 빻아 체에 내린다. 5.3,4의 재료에 식용유, 끓는 물, 설탕을 넣어 익반죽한 후 부드러워지면 각각 젖은 보자기를 덮어둔다. 6. 익반죽한 것을 지름 2㎝ 정도의 크기로 동글게 한 다음 가운데 소를 넣어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꼭꼭 만진 후 입술 모양으로 송편을 빚고 그 위에 꽃 모양으로 장식을 한다. 7. 솔잎은 씻어 물기를 뺀다. 8. 예열된 찜기에 베보자기와 솔잎을 깔고 송편을 얹은 후 반복하여 두 켜 혹은 3켜 정도를 올려 뚜껑을 덮은 후 15∼20분 정도 찐다. 9.5분 정도 뜸을 들인 후 솔잎을 떼어내고 참기름에 송편을 넣어 버무려 접시에 예쁘게 담아낸다. 푸드앤컬처코리아 원장
  • [지방시대] 농촌도 이제 ‘쇼’를 하라/송재호 제주대 교수·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

    “쇼 곱하기 쇼는 쇼. 쇼 곱하기 쇼 곱하기 쇼는 쇼. 쇼 곱하기 쇼 곱하기 쇼 곱하기….” 흥겨운 노래와 쉽고 재미있는 몸 동작 캐릭터로 유명한 이 광고는 최근 CF계의 화제입니다. 캐릭터 숫자가 노래와 동작을 반복할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단순하지만 볼수록 깊은 인상을 줍니다. 이 광고를 보면서 문화와 관광이 만나고, 관과 민이 만나고, 문화와 산업 등이 만나 어우러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이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아가 이 광고를 우리의 농촌 현실에도 대입시켜 봅니다. 갑자기 농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추석을 앞두고 마음은 이미 고향에 가 있을 듯해서입니다. 그러나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 일컬어지는 한가위 앞에 넉넉하고 따뜻해야 할 우리네 고향을 떠올리면 답답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농사 일이 힘이 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그래도 농사를 지어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킬 수 있을 때만 해도 희망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누르디누른 들판을 배경으로 ‘올해도 풍년’이라는 9시 뉴스의 헤드 라인을 보기만 해도 배불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농민 시위에다 생산비조차 건지기 힘들다며 배추밭을 갈아엎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걱정하는 농가의 한숨 섞인 뉴스를 보면 곪을 대로 곪은 상처에 소금을 치는 기분이 듭니다. 소비자들은 우리 것이 최고라며 ‘국산, 국산’을 외치는데 그것을 생산하는 농민은 한숨만 늘어가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희망의 불씨는 분명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농촌에 문화와 관광이 어우러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농촌 플러스 문화·관광’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농촌 곱하기 문화·관광’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단순한 만남을 넘어서 상생을 통해 남루해질 대로 남루해진 농촌을 새롭게 단장하고 활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구석구석 문화·관광적 요소를 찾고 이를 가시화시켜야 합니다. 그런 다음 농촌 일상으로 천천히 흡수되어야 합니다. 이미 문화와 관광은 농촌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전북 진안군 백운면의 한 작은 마을은 간판 바꾸는 작업 하나만으로 세간에 마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의 참여와 합의, 지역 서예가의 서체라는 문화가 더해지고 곱해져 아름다운 간판 마을을 만들어냈고, 마침내 스쳐 지나가는 곳에서 머물고 싶은 마을로 살려 냈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이곳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속속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농촌 곱하기 문화·관광’은 또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어내 농업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바로 ‘쇼’입니다.‘농촌 곱하기 문화·관광’을 통해 얻은 결실을 잘 포장하고, 마케팅하고, 서비스하는 ‘쇼’가 필요한 것입니다. 농산물 생산만 하는 농촌이 아니라 새로운 발상이 가미된 농촌으로 탈바꿈해 일상 탈출을 꿈꾸는 도시민들이 ‘농촌으로, 농촌으로’ 발걸음할 수 있도록 쇼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속칭 ‘쇼하고 있네!’의 쇼에 그쳐선 안 됩니다. 지역의 정체성을 간직한 문화, 지역사회에 바탕을 둔 관광, 이것을 선도할 사람 등이 어우러져 ‘살기 좋은 마을’을 향한 쇼가 지금 시작되어야 합니다. 무대는 농촌이며, 무대의 주인공은 농민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성과 지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농촌 곱하기 문화·관광 플러스 쇼’를 실천하여 살기 좋은 농촌마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그 날이 오기를 이번 추석 보름달에 빌어 봅니다. 송재호 제주대 교수·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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