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작은 결혼
    2026-04-03
    검색기록 지우기
  • 긴축 예산
    2026-04-03
    검색기록 지우기
  • 석유·화학
    2026-04-03
    검색기록 지우기
  • 박영선 의원
    2026-04-03
    검색기록 지우기
  • 조직위원장
    2026-04-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894
  • ‘친정’ 역할할 이주여성 쉼터 턱없이 부족

    ‘친정’ 역할할 이주여성 쉼터 턱없이 부족

    2009년 국제결혼 이혼 건수는 1만 1692명. 우리나라 총 이혼 건수(12만 3999명) 대비 9.4%를 차지했다. 2004년(2.4%)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많아졌다. 이는 ‘위태로운’ 국제결혼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주여성의 갈등 해소를 도우려면 국내에 갈등의 완충지대인 ‘친정’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이주여성 쉼터’의 규모나 기능 면에서 탈바꿈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개 부부싸움을 하면 하소연할 친구나 가족(친정)이 있지만, 이주여성은 그렇지 못해 작은 갈등도 더 큰 충격이 될 수 있기 때문. 이주여성 긴급지원센터 권미경 상담팀장은 “이주여성들이 아이를 데리고 본국으로 도망갈 수도 있다. 이는 부부싸움을 하면 이주여성들도 자연스럽게 친정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과 같은 심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정 불화를 겪는 이주여성을 위한 쉼터는 턱없이 부족하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쉼터를 합쳐 전국 31개 정원은 400명 남짓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폭력피해를 당했거나 집에서 쫓겨났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현실적으로 쉼터를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순천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한 상담사는 “쉼터가 필요한 이주여성이 생겨도 순천에 쉼터가 없어 여수나 광주까지 가야 하는데다 인원이 제한돼 있으니 못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제주이주여성쉼터의 김선옥 소장도 “이주여성 대부분이 아이들과 함께 오는데 쉼터의 공간이 너무 좁다.”고 지적했다. 김양진·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나와 통일] (9) 현정화 前 탁구국가 대표팀 감독

    [나와 통일] (9) 현정화 前 탁구국가 대표팀 감독

    1991년 4월 29일 남북한 7000만명의 시선이 지름 40㎜짜리 흰색 공 하나에 집중됐다.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 ‘코리아’로 출전한 리분희·유순복(이상 북한), 현정화팀의 여성단체전 결승전. 3시간 40분에 걸친 숨막히는 접전 끝에 우승 금메달을 따낸 이 시합은 아직도 탁구사(史)의 명승부로 꼽힌다. 20년이 지난 2011년 그날의 감동과 선수들의 우정을 영화로 제작한다. 영화 ‘코리아’의 시나리오 작업부터 출연배우들의 연기지도까지 애정을 아끼지 않고 있는 현정화 당시 국가대표 선수를 만났다. 그는 금메달을 땄을 때 “아, 우리가 작은 통일을 이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배우 하지원이 본인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하지원씨는 내가 추천했다. 시크릿 가든이 막 끝날 때쯤이었는데, 하지원씨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었고, 주변에서도 “너랑 닮은 것 같다.”고 했다(웃음). 리분희 역할은 배두나씨다. →영화에서 새로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영화에는 연애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북한 남자선수와 남한 여자선수의 애정전선이 형성되지만, 대회가 끝나면서 남북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벌써 20년 전 일인데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까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당시 영상을 다시 봤다. 경기하던 장면, 리분희 선수와 만났을 때와 헤어지던 모습 등을 다시 보니까 가슴이 울컥했다. 불현듯 리분희 선수도 보고 싶고. →리분희 선수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가. -1993년 국제대회에서 보고 못봤다. 최근에 듣기로는 2010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왔다고 한다. 장애인 스포츠 지도자 활동을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녀가 뇌성마비여서 이쪽으로 더 관심을 가졌다고 들었다. →리분희 선수를 만나면 하고 싶은 얘기는. -세월이 20년이나 흘렀고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각자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낳았고, 지도자를 했다. 다시 만나면 수많은 얘기를 쏟아놓을 것 같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는지 물어보고 도와주고 싶다. →리분희 선수와 원래 친했나. -1986년 국제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워낙 라이벌이었지만 내가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만날 때 카세트테이프나 한국 드라마 테이프를 건네주곤 했다. 한국이 어떻게 사는지, 가요,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다. 돈은 얼마나 버는지도 궁금해 했다. 당시에도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코리아’는 남북 단일팀의 합숙기간 30일, 시합 16일 등 총 46일간의 기록이다. 남북한 선수들은 46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때로는 동료로 때로는 형제, 자매처럼 살가운 시간들을 보냈다. 긴 시간 함께 지내면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사실 여자 선수들은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없었다. 각자 방에 찾아가서 놀고 수다를 많이 떨었다. 이십대 초반의 여자들이다 보니 남자 친구가 공통의 화제가 됐다(웃음). 리분희 선수는 동료선수인 김성희와 사귀고 있는데 결혼할 거라고 했고, 나는 김성만 선수와 결혼할 거라고 했다. 둘만 아는 비밀이었다. 마지막 날에 엄마가 챙겨주신 반지를 줬다. 내 이름이랑 리분희 선수 이름이 쓰여진 한 돈짜리 금반지다. 영화에서는 내가 끼고 있던 반지를 주는 것으로 나온다. →일본에서의 합숙생활은 어땠나. -일본은 매우 미묘한 곳이다. 우리 덕분에 처음으로 민단과 조총련이 만났다고 했다. 우리가 일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합숙을 했는데 지역마다 민단과 조총련이 환영회, 환송회를 열어주었다. 헤어질 때는 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가장 긴장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중국과의 결승전 게임스코어 2대2였다. 경기 전에 유순복 선수한테 가오쥔을 이길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 이젠 졌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유순복 선수가 1세트를 19점으로 이기고 2세트에서도 21대 19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이겼을 때 기분은 어땠나. -이번에 영상을 보니 탁구 테이블 하나에 쏠린 관중석의 눈들이 보이더라. 한꺼번에 환호하고, 이긴 순간 기자들이 확 뛰쳐 나오는 것도 보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땐 너무 많이 울어서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경기하면서 한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그때는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울었나. -내가 경기를 끝냈으면 그렇게 안 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게 있었던 것 같다. 남북한 7000만 동포가 지켜보고 있었고, 기자들이나 단장님, 남북 관계자들이 그런 사실을 많이 주입시켰었다. 특이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냈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시상식 때 아리랑이 나왔는데 기분이 어땠나. -아리랑이 사실은 가락이 매우 슬픈 노래다. 희비가 교차했다. 기쁘다기보다는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끝나면 우리는 헤어질 것이고 단일팀은 연속적으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약간 미묘한 감정이 있었다(당시 남북 합의 하에 국기는 흰 바탕에 파란색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 국가는 ‘아리랑’을 연주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하나된 남북이 세계 정상에 섰다.’고 대서 특필을 했다. -그 시합을 계기로 남북한 스포츠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거라고 기대했다. 정말로 ‘아, 통일이 되는구나.’ 했다. 그러나 남북 청소년 축구 단일팀이 단 한번 이뤄진 후 그 다음부터는 교류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정치적으로 반짝했던 이벤트였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리분희 선수를 다시 남북한 선수로 만났다. 나는 태극기, 그쪽은 인공기를 달았다. 나는 남북 단일팀 당사자였기 때문에 당시에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느꼈었다. 그런데 다시 적으로 맞붙게 되니까 기분이 미묘했다. 나는 남북 분단을 몸으로 느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그런 고통을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인 이벤트를 할 바에야 차라리 단일팀 같은 거 하지 말고 각자 국가를 인정하고 사는 게 낫다는 마음이 굳혀졌다. →아이들한테도 그런 얘기 하나. -우리 딸이 11살인데 이런 얘기는 잘 모른다. 이번에 영화가 나오면 통일에 대한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통일을 잊고 사는 세대 아닌가. 나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세대지만 아이들 세대는 나름의 인생계획이 있고, 그 삶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아 하는 세대다. 누구를 도와주고 끌고 가겠다는 생각이 부족하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건 영화사도 마찬가지다. →영화 제작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1년 전쯤 감독님한테 영화 얘기를 들었다.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감사했다. 전쟁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아픔을 주는 것이고 문화적인 소재는 간접적이지만 더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고, 남북 선수로 나오는 20명에게 매일 3시간씩 탁구를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도 탁구 장면을 찍을 때 디테일한 기술적인 면 등 모든 것들을 가르쳐 줄 예정이다. →통일이 되기를 바라나. -나는 사실 반반이다. 원하는 것도 있고 그냥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준비를 해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빠져서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도와줘야 한다. 정말로 손을 떼어버리는 상태까지 가면 안 되지 않나. →통일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스포츠만큼 (남북 간)물꼬를 트기에 좋은 게 없다. 정치적 배경 없이 순수하게 교류하고, 남북을 오가면서 시합을 하다 보면 종목도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지 않겠나. 스포츠도 이제는 마케팅이다. 관심 있는 기업도 생기고,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길도 생긴다. 북한 친구들은 실력은 있는데 돈이 없어 대회에 못 나온다. 차비가 없어 스무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중국 대회밖에 못 나가고 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돕겠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현정화 “1991년 세계탁구 金 따고 작은 통일 느껴”

    현정화 “1991년 세계탁구 金 따고 작은 통일 느껴”

    1991년 4월 29일 남북한 7000만명의 시선이 지름 40㎜짜리 흰색 공 하나에 집중됐다. 일본 치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 ‘코리아’로 출전한 리분희·유순복(이상 북한), 현정화팀의 여성단체전 결승전. 3시간40분에 걸친 숨막히는 접전 끝에 우승 금메달을 따낸 이 시합은 아직도 탁구사(史)의 명승부로 꼽힌다. 20년이 지난 2011년 그날의 감동과 선수들의 우정을 영화로 제작한다. 영화 ‘코리아’의 시나리오 작업부터 출연배우들의 연기지도까지 애정을 아끼지 않고 있는 현정화 당시 국가대표를 만났다. 그는 금메달을 땄을 때 “아, 우리가 작은 통일을 이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배우 하지원이 본인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하지원씨는 내가 추천했다. 시크릿 가든이 막 끝날 때쯤이었는데, 하지원씨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었고, 주변에서도 “너랑 닮은 것 같다.”고 했다.(웃음) 리분희 역할은 배두나씨다.   이번 영화에서 새로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영화에는 연애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북한 남자선수와 남한 여자선수가 애정전선이 형성되지만, 대회가 끝나면서 남북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벌써 20년전 일인데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까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당시 영상을 다시 보게 됐다. 경기하던 장면, 리분희 선수와 만났을 때, 헤어지던 모습 등을 다시 보니까 가슴이 울컥했다. 불현듯 리분희 선수도 보고싶고.   리분희 선수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가? -1993년 국제대회에서 보고 못봤다. 최근에 듣기로는 2010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왔다고 한다. 장애인 스포츠 지도자 활동을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녀가 뇌성마비여서 이쪽으로 더 관심을 가졌다고 들었다.   리분희 선수를 만나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가? -세월이 20년이나 흘렀고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각자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낳았고, 지도자를 했다. 다시 만나면 수많은 얘기를 쏟아놓을 것 같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는지 물어보고 도와주고 싶다.   리분희 선수와 원래 친했나? -1986년 국제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워낙 라이벌이었지만 내가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만날 때 카세트 테이프나 한국 드라마 테이프를 건네주곤 했다. 한국이 어떻게 사는지, 가요,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다. 돈은 얼마나 버는지도 궁금해 했다. 당시에도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코리아’는 남북 단일팀의 합숙기간 30일, 시합 16일 등 총 46일간의 기록이다. 남북한 선수들은 46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때로는 동료로 때로는 형제, 자매처럼 살가운 시간들을 보냈다. 긴 시간 함께 지내면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사실 여자 선수들은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없었다. 각자 방에 찾아가서 놀고 수다를 많이 떨었다. 이십대 초반의 여자들이다보니 남자 친구가 공통의 화제가 됐다.(웃음) 리분희 선수는 동료선수인 김성희와 사귀고 있는데 결혼할 거라고 했고, 나는 김성만 선수와 결혼할거라고 했다. 둘 만 아는 비밀이었다. 마지막 날에 엄마가 챙겨주신 반지를 줬다. 내 이름이랑 리분희 선수 이름이 쓰여진 한 돈 짜리 금반지다. 영화에서는 내가 끼고 있던 반지를 주는 것으로 나온다.   일본에서 합숙생활은 어땠나? -일본이 매우 미묘한 곳이다. 우리 덕분에 처음으로 민단과 조총련이 만났다고 한다. 우리가 일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합숙을 했는데 지역마다 민단과 조총련이 환영회, 환송회를 열어주었다. 헤어질 때는 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학생들이 한반도기 모양의 수를 놓아서 가져오거나 한반도 모양의 떡을 만들어 가져오면 잘라서 먹고 웃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1991년 2월 12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체육회담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분단 후 46년만에 처음이었다.   당시 탁구 단일팀이 어떻게 구성됐나? -어떻게 구성하게 됐는지 그 배경은 모른다. 통일부에서 주선해서 급하게 진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스포츠 교류를 통해 물꼬를 트려고 했던 것 같다.   가장 긴장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중국과의 결승전 게임스코어 2대2였다. 마지막 게임에서 유순복 선수가 가오준 선수를 이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경기 전에 유순복 선수한테 가오준을 이길 자신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 이젠 졌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유순복 선수가 1세트를 19점으로 이기고 2세트에서도 21대 19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이겼을 때 기분은 어땠나? -이번에 영상을 보니 탁구 테이블 하나에 쏠린 관중석의 눈들이 보이더라. 한꺼번에 환호하고, 이긴 순간 기자들이 확 뛰쳐 나오는 것도 보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 땐 너무 많이 울어서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경기하면서 한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그 때는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울었나? -내가 경기를 끝냈으면 그렇게 안 운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게 있었던 것 같다. 남북한 7000만 동포가 지켜보고 있었고, 기자들이나 단장님, 남북 관계자들이 그런 사실을 많이 주입시켰었다. 특이한 상황이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해냈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시상식 때 아리랑이 나왔는데 기분이 어땠나? -아리랑이 사실은 가락이 매우 슬픈 노래다. 희비가 교차했다. 기쁘다기 보다는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끝나면 우리는 헤어질 것이고 단일팀은 연속적으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약간 미묘한 감정이 있었다. (당시 남북 합의 하에 국기는 흰 바탕에 파란색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 국가는 ‘아리랑’을 연주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하나된 남북이 세계 정상에 섰다.’고 대서 특필을 했다. -그 시합을 계기로 남북한 스포츠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거라고 기대했다. 정말로 “아, 통일이 되는구나.” 했다. 그러나 남북 청소년 축구 단일팀이 단 한번 이뤄진 후 그 다음 부터는 교류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정치적으로 반짝했던 이벤트였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리분희 선수를 다시 남북간 선수로 만났다. 나는 태극기, 그쪽은 인공기를 달았다. 나는 남북 단일팀 했던 당사자였기 때문에 당시에 우리가 하나라는것을 느꼈었다. 그런데 다시 적으로 맞붙게 되니까 기분이 미묘했다. 나는 남북 분단을 몸으로 느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그런 고통을 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인 이벤트를 할 바에야 차라리 단일팀 같은 거 하지 말고 각자 국가를 인정하고 사는 게 낫다고 마음이 굳혀졌다.   아이들한테도 그런얘기 하나? -우리 딸이 11살인데 이런 얘기는 잘 모른다. 이번에 영화가 나오면 통일에 대한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통일을 잊고 사는 세대 아닌가. 나는 통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한 세대지만 아이들 세대는 나름의 인생계획이 있고, 그 삶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아 하는 세대다. 누구를 도와주고 끌고가겠다는 생각이 부족하다. 그런 생각을 가르쳐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건 영화사도 마찬가지다.   영화 제작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1년전쯤 감독님한테 영화 얘기를 들었다.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감사했다. 전쟁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아픔을 주는 것이고 문화적인 소재는 간접적이지만 더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고, 남북한 선수로 나오는 20명에게 매일 3시간씩 탁구를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도 탁구 장면을 찍을 때 디테일한 기술적인 것 모든 것들을 가르쳐 줄 예정이다. 하지원씨가 운동신경이 좋아서 자세도 좋고 잘 따라온다. 당시 촌스러웠던 내 커트머리를 그대로 했다.(웃음)   통일이 되기를 바라나? -나는 사실 반반이다. 원하는 것도 있고 그냥 ‘안했음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준비를 해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빠져서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도와줘야 한다. 정말로 손을 떼어버리는 상태까지 가면 안되지 않나.   스포츠인으로서 통일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스포츠만큼 (남북간)물꼬를 트기에 좋은 게 없다. 정치적 배경없이 순수하게 교류하고, 남북을 오가면서 시합을 하다보면 종목도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지 않겠나. 스포츠도 이제는 마케팅이다. 관심있는 기업도 생기고,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길도 생긴다. 북한 친구들은 실력은 있는데 돈이 없어 대회에 못나온다. 차비가 없어 스무시간 넘게 차를 타고 중국 대회 밖에 못나가고 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돕겠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피플 인 스포츠] 7년 만에 여자핸드볼대표 복귀 장소희

    [피플 인 스포츠] 7년 만에 여자핸드볼대표 복귀 장소희

    잊고 있던 언니가 돌아왔다. 핸드볼로 한 가닥 했던 언니들은 많지만 이 언니도 어마어마했다. 1996년 핸드볼큰잔치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이후 태극마크를 달고 10여년간 부동의 레프트윙으로 군림했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2004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등 ‘우생순’의 굵직한 순간에 늘 함께했다. 큰잔치에서 대구시청을 우승시킨 2006년, 이 언니는 “공부를 하고 싶다.”며 홀연히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 3월,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7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장소희(33·일본 소니)다. ●최고참 부담에 더 열심히 할 것 “태릉 공기는 역시 사람을 쪼이네요.” 태릉선수촌엔 사람을 긴장케 하는 묘한 공기가 있단다. 어느덧 33세. 울고 웃었던 아테네올림픽 멤버도 이제는 우선희(삼척시청), 문경하(경남공사), 최임정(대구시청), 김차연(대한핸드볼협회)만 남았다. 새파랗게 어린 후배들은 “언니 이름은 들어봤어요.”라며 쭈뼛쭈뼛 말을 건다. 격세지감. 아테네올림픽 베스트 7(레프트윙)에 뽑혔던 장소희의 기량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다. 올 3월 장소희는 팀을 창단 26년 만의 첫 일본리그 챔피언에 올려놨다. 한국에서 러브콜이 온 것도 비슷한 시점. “강재원 감독님께 전화가 왔더라고요. 제 포지션 선수들이 어려서 경험이 별로 없으니까 도와 달라고요. 일본 지진 때문에 휴가를 받았는데 태릉으로 쏙 들어왔네요.” 과거에는 멋모르고 열심히 뛰면 되는 후배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최고참이다. 부담감과 미안함에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애들이 체격도 좋아지고 실력도 참 좋아요. 제가 가뜩이나 작은데(162㎝) 더 작아지더라고요. 미래가 밝은 후배들 틈에 괜히 껴서 방해하나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돌아온 이유는 ‘향수’ 때문이다. “옛날에 뛰었던 선수들하고 다시 ‘으쌰으쌰’ 하면서 뛰어보고 싶었어요. 한국이 그리웠고요.” 지금이야 웃으며 회상하지만 2006년 일본 도쿄여자체육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단다. 28세 대학 새내기에게 대우란 건 전혀 없었다. “한국에 전지훈련을 와서 옛 동료들과 평가전을 했어요. 전 1학년이라 경기에 못 뛰고 대신 체력 훈련으로 뺑뺑이를 도는데 참 민망하고 서럽더라고요.” 하지만 그게 ‘인생 경험’이 됐단다.   ●올 일본인 남자친구와 결혼 예정  지난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월드클래스’ 한국이 일본에 진 건 장소희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정말 충격받았어요. 당연히 우리가 우승한다고, 게임도 안 된다고 했는데 일본에 졌잖아요.” 그래서 오는 24일 2011 SK 한·일핸드볼 슈퍼매치(광명체육관)에 나서는 각오가 더 남다르다. 친선 경기지만 10월 런던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앞둔 기선 제압의 의미가 있다. 게다가 일본은 매년 9월 시작하던 리그를 11월로 늦출 만큼 올림픽 티켓에 ‘올인’하고 있다. 장소희는 단호하게 “이것들이 우리를 만만하게 보는 거 같아요. 이번에 확실히 눌러줘야죠.”라고 했다.  대표팀 강재원 감독은 “옛날의 일본이 아니다. 탄탄한 조직력과 미들속공이 위협적이다. 양쪽 날개 장소희-우선희가 득점을 해주면 의외로 쉽게 풀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감독의 말을 전하자 “그럼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7년이에요, 7년! 옛날처럼은 못 하더라도 제 기량 내에서 열심히 할 거예요.”라며 웃었다. 그래도 태극마크 욕심은 숨기지 못했다. “올림픽 예선(10월)에도, 내년 올림픽 때도 불러주시면 뛰고 싶죠. 이번 한·일전을 잘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그럼 선생님들도 절 믿겠죠?”  아, 놀랍게도(?) 장소희는 아직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을 못 봤단다.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다. “안 보고 싶어요. 너무 마음 아프잖아요. 다음에 금메달 따서 제가 주인공인 영화를 찍을래요. 그 영화는 열심히 볼게요.” 야무지다.  지난달 25일부터 태릉밥을 먹었던 장소희는 한·일전을 마친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다. 2년간 교제한 일본인 남자 친구와 올해 결혼할 예정이다. 어느덧 한국말이 어눌해질 만큼 일본 여자가 된 장소희지만 ‘우생순 2’ 주인공을 향한 투지는 뜨거웠다. 글·사진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웃어라 동해야’ 이어 ‘우결’까지 접수한 브라운관 샛별 이장우

    ‘웃어라 동해야’ 이어 ‘우결’까지 접수한 브라운관 샛별 이장우

    183㎝의 훤칠한 키에 작은 얼굴, 살짝 내려간 눈 꼬리, 여심을 녹이는 수줍은 웃음을 지닌 배우 이장우(25).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서 ‘백마탄’ 역할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더니 최근 시청률 40%를 돌파한 KBS 드라마 ‘웃어라 동해야’에서는 호텔 경영 후계자를 꿈꾸는 밉지 않은 악역 ‘도진’을 통해 ‘아줌마 사단’의 아이돌로 부상했다. 지난 9일 MBC ‘우리 결혼했어요’(우결)를 통해 걸 그룹 티아라 멤버 은정과의 가상결혼 생활이 처음으로 전파를 타면서 ‘밀당(밀고 당기기)의 달인’임을 증명, 20대 여심을 훔치는 데도 성공했다. ●우결서 좋은 부인 얻어 기뻐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던 지난 12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서울 여의도에서 드라마 촬영에 한창인 이장우를 만났다. 그의 인기는 길거리에서 피부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사진촬영을 위해 KBS 별관에서 여의도 공원으로 잠시 이동하는 순간에도 지나가던 젊은 여성들이 “앗, 도진이다!”를 연발하며 폴짝폴짝 뛰었다. 아직은 실제 이름보다 극 중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는 사실도 확인시켜 주는 순간이었다. ‘우결’ 촬영에 들어가면서 그는 ‘유부남’이 됐다. 일단, 너무 좋단다. “‘수상한 삼형제’ 때도 그렇고 ‘웃어라 동해야’에서도 극 중 결혼식을 올렸어요. ‘우결’이 세번째 결혼이죠(웃음). 결혼하고 나서 안정감을 찾아 더욱 연기가 늘었다고 말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저도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그 덕분인지 아주 좋은 부인(은정)을 얻어 너무 기뻐요. 하하.” 드라마에서의 결혼생활은 연기이지만 ‘우결’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만큼 진짜 결혼한 것처럼 해볼 생각이라는 이장우는 부인과의 첫 대면에서 ‘밀당’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대본은 없어요. 매니저도 스타일리스트도 촬영장에 들어오지 못해요. 그냥 딱 제 실제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실제 이상형은 어떨까. 규정화된 이상형은 없단다. 그저 느낌이 좋은 사람이면 좋다고. 가상 부인 은정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은정이는 느낌이 참 좋아요.”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사뭇 진지함이 묻어난다. ●‘웃어라 동해야’ 막장 드라마 아니에요 이장우가 배우 길을 걷게 된 데는 그룹 플라이투더스카이(Fly To The Sky) 출신 환희의 영향이 컸다. “환희 형이 이종사촌이에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형이 데뷔했는데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니 부럽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좀 어린 나이에 직업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똑같이 가수를 하면 왠지 형한테 질 것 같아서 연기를 생각하게 됐지요.” 외동아들인 까닭에 어린 시절부터 혼자 소꿉놀이를 하거나 경찰 놀이를 하면서 노는 시간이 많았다. “중학교 때까지 혼자 역할극을 하면서 놀았어요. 어느 순간 ‘아, 이게 바로 연기가 아닐까. 연기를 해 보자’고 결심하게 됐죠.” 그가 출연한 ‘수상한 삼형제’와 ‘웃어라 동해야’는 시청률은 대박 났지만 ‘막장’이라는 비판에도 적잖이 시달렸다. 드라마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달라진다. 목소리도 올라갔다. “막장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안타깝고 속상해요. 두 드라마는 막장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드라마 속 상황들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분명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지는 있잖아요.” ●아무리 바빠도 한달에 한번은 ‘비트’ 꼭 봐 연기 욕심도 많다. 작년부터 한달에 한번은 아무리 바빠도 영화 ‘비트’(1997)를 꼭 챙겨 본다. “(‘비트’ 주인공인) 정우성 선배님이 제 롤 모델이에요. 비트를 찍을 당시 정우성 선배가 24살이었죠. 제가 24살 때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지금 영화를 찍는다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자신이 없더라고요. 힘 있고 깊이 있는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 낸 정우성 선배의 연기를 이기려고 늘 노력 중이에요.” ‘웃어라 동해야’에서 부인 새와(박정아) 때문에 분노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차인표 선배의 연기를 참고했단다. 차인표가 2005년 드라마 ‘홍콩 익스프레스’에서 보여준 ‘분노의 양치질’과 최근 종영한 드라마 ‘대물’에서의 ‘3단 분노 연기’ 등을 모니터링하며 연습한다고. 시청률이 높다 보니 일일 드라마 주된 시청자 층인 40~50대 아주머니 팬도 부쩍 늘었다. 그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어머니다. “예전에는 모임 같은 데 잘 안 나가시더니 요즘은 다 챙겨 나가세요. 아들이 유명해지니 사인 부탁 받는 걸 은근히 즐기시더라고요.” 그는 트렌드물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트렌드 드라마…, 너무 하고 싶어요. 아직은 어리니까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서 자유로운 모습의 연기를 해 보고 싶어요.” 송강호 같은 다양한 색깔을 지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이장우.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배우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결혼이민자 목소리 전달하는 입 될 것”

    “결혼이민자 목소리 전달하는 입 될 것”

    중앙행정기관에 채용된 국내 첫 결혼이민자. 몽골 출신의 결혼이민자 정수림(자담바 르크하마수렌·36)씨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여성가족부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냈을 때는 그저 소박한 바람뿐이었어요. 제2의 고향인 한국 땅에서 중앙행정기관에 몸담고 싶은 작은 희망을 몸짓으로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채용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문화 정책 총괄부서인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결혼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다문화가족 지원 업무 보조원 1명을 공모했다. 당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2년 이상 한국 거주자, 한국어 능력시험 4급 이상 등의 모집요건을 갖춘 결혼이민 여성 12명이 응시했다. 서류전형과 면접 경쟁을 뚫고 중앙부처에 상근하는 첫 주인공이 된 정씨는 “위기 가정으로 내몰린 다문화가족을 돌봐주고 싶었는데, 그 목표에 한발 더 가까이 가게 돼 기쁘고 설렌다.”고 밝혔다. 몽골 출신인 그가 한국인과 결혼해 귀화한 것은 2000년. 대학(울란바토르 칸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낯선 한국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한국어를 원활히 구사해야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독학으로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 매달렸다. 결국 2008년에는 6급 자격증까지 따냈다. 다문화가족 관련 업무를 시작한 것은 2009년 3월 남양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 일을 맡으면서였다. 정씨는 “특히 지방 거주 결혼 이민자들이 정책지원 혜택 등 여러 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늘 안타까웠다.”면서 “더도 덜도 말고 한국 사람처럼 대접받고 사는 게 꿈인 결혼 이민자들의 편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며 웃었다. 18일부터 여가부 다문화가족과에 정식 출근하는 그는 다문화가족 정보제공 사업과 관련한 번역, 외국인 커뮤니티 의견 수렴과 동향 파악 등의 업무를 맡는다. 당장은 정식 공무원이 아닌 기간제 근로자 신분이다. 그러나 여가부는 올 연말까지 업무능력을 평가해 공무원 신분 전환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일본 MK택시 수석졸업...현지인들 감탄시킨 ‘쏘나타 택시’ 정태성씨

    일본 MK택시 수석졸업...현지인들 감탄시킨 ‘쏘나타 택시’ 정태성씨

    ‘세계 최고의 기사’가 되겠다는 포부에 비해 택시 모양새는 영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지난 5일 오전 10시쯤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정태성(47·서울 월계동) 씨의 쏘나타 개인택시에 올랐다.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벚꽃축제 개막 사흘을 앞둔 윤중로를 달렸는데 그랬다. 노량진역 근처에서 첫 손님으로 택시에 오른 김진수(34·회사원)씨는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가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말을 걸어줘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정씨가 손님에게 던진 질문은 “지금 온도 괜찮습니까?” “급한 일 있으시면 좀 빨리 갈까요?” 등이었다. 예약 손님에게 다가갈 때 그의 본색(?)이 드러난다. 차에서 내려 왼손으로 뒷문을 열고, 오른손을 뒷문 윗부분에 갖다대 손님의 머리를 보호한다. ‘뭐 이렇게 황송하게까지?’하며 당황하던 손님들도 마음을 다한 친절에 고개를 끄덕인다. 유하나(28·회사원)씨는 “이런 경험은 처음인데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정말 친절해서 또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택시 안에는 정씨가 직접 만든 33개의 ‘친절 매뉴얼’이 있다. 여러 상황에 맞춘 고객 응대법이 망라돼 있다. 비상약품 키트도 준비돼 있다. 셔츠도 매일 갈아 입고 넥타이와 어울리는지도 꼼꼼히 살핀다. 올해로 15년째 택시 핸들을 잡는 정씨는 여러 모로 남다르다. 1997년부터 법인택시, 2000년부터 개인택시를 했다. 부친은 육사 14기 출신으로 준장까지 지낸 정헌택(2002년 작고) 씨이고 형은 미국 벨연구소를 거쳐 조지아주립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정태철(49)씨다. 이른바 ´좋은 집안´ 출신. 하지만 군부독재 시절, 장군의 아들이란 점을 고민하던 그는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명지고 2학년을 중퇴했다. “작가가 되려면 광부, 농부, 원양어선 선원, 택시기사 등 어렵고 힘든 일을 해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이삿짐센터, 공장, 홀서빙등 50개가 넘는 일들을 경험한 뒤 1993년부터 2년여 운영하던 광고 사업이 부도를 맞고 친인척들을 빚쟁이로 만들었다. 딸까지 참담하게 잃은 그는 잠실대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다. 하지만 난간에서 “아빠”라고 부르는 딸의 환청이 들렸다. 죽을 용기로 세상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장사를 해볼까 했지만 자금이 없었다. 그 즈음 어릴 적 꿈이었던 택시기사가 그의 마음에 들어왔다. 택시일을 하겠다고 하자 부인의 만류가 심했다. 주위 시선도 그렇고, 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보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하지만 정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비좁은 공간이지만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경치도 즐기고 일한 만큼 보상받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2002년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며 “난 세계 최고의 장군이 될 수 없었지만 넌 세계 최고의 택시기사가 될 수 있다.”는 유언을 남긴 것이 큰 힘이 됐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의 스승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택시 1700여대를 보유한 일본 최대 업체 MK에 들어가 일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답답해진 정씨는 청와대, 주한 일본대사관, 서울시, 대기업들에 추천서를 써달라는 편지를 보냈고 대기업 두 군데에서 추천해줘 MK의 문을 다시 두드렸으나 여전히 답이 오지 않았다. “자기네 직원이 아니면 연수를 하지 않는 것이 방침이라고 하더군요.” 포기할 즈음, 국내에도 잘 알려진 유봉식(73) MK그룹 회장의 동생인 유태식(72) 부회장이 우리 국회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그는 무작정 국회 본관으로 달려갔다. 일이 되려고 했는지 유 부회장은 그의 편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 뒤 MK에서 기숙사 비용을 받지 않을 테니 연수에 참가하라는 연락이 왔다. 이제 언어가 걸림돌이었다. 2년여 ‘주운야독’(晝運夜讀)을 이어갔다. 일본인 기사보다 늘 앞장섰다. 이방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일본인들도 그의 열심에 마음을 열었다. 2009년 5월부터 두달의 연수를 끝낸 정씨는 3.0 만점으로 수석 졸업했다. 함께 연수한 일본인 기사 중에 최고 점수가 2.0이었다. MK 최초이자 마지막 외국인 수료생에 축하를 보내던 유 부회장에게 “택시 기사의 친절은 단지 돈 버는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라고 밝히자 유 부회장의 눈가가 붉어졌다. 유 부회장은 김포공항에서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종업원이 컵을 탁~ 하고 성의 없이 내려놓더란 것. 유 부회장의 당부가 이어졌다. “한국의 서비스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서비스 산업 발전을 위해 고국에 돌아가 열심히 일해 달라.” 정씨의 노력은 예서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수동 기어를 고집하는 그는 절약되는 한달 연료비 20만원을 자기계발에 쓰고 있다. 1983년 고졸 검정고시를 거친 그는 일하는 틈틈이 사이버 대학을 다녔고 지난 2월 서울 광운대학 서비스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미지 컨설팅 교육까지 받았는데 그의 멘토 격인 컨설팅 업체 ‘예라고’의 허은아 대표는 “택시 하는 분들이 바쁘기 때문에 결석이 잦을까 걱정했는데 한번도 결석을 안하고 함께 수업을 듣는 이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웃음 치료사, 서비스경영 최고관리자 등의 자격증을 땄고 논술 지도사, 독서 지도사 자격증 등 화려한 스펙을 자랑한다. 2009년 8월부터 서비스 관련 강의를 시작했고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인 솜씨가 소문 나 섭외가 줄을 잇고 있다. 집에 가져가는 돈은 한달에 200만원이 되지 않는다. 강연료를 챙기지만 지방을 오가며 교통비로 거의 다 쓴다. 봉사활동 삼아 많이 하지만 가계에 보탬이 되지 않는 일. 동료들은 업계의 열악한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헛고생을 한다고 비웃는단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대목이 많지만 내가 조금 변하면서 택시 서비스가 조금 올라갔으면 좋겠다.” 정씨는 “항공대학, 철도대학은 있지만 택시대학은 없지 않느냐?”고 되묻고 “10년 뒤에 택시대학이 만들어지면 총장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예술계 고교를 다니는 외아들에게 자기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그는 결혼 19주년 기념일이라며 작은 케이크를 들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남들이 우습게 여기는 택시 일을 위해 9년을 준비하고 3년을 갈고 닦은 그는 이미 ‘세계 최고’다. 글 사진 영상콘텐츠부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15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 방영
  • 택시대학 총장을 꿈꾸는 기사 정태성 씨

    택시대학 총장을 꿈꾸는 기사 정태성 씨

     ’세계 최고의 기사’가 되겠다는 포부에 택시 모양새는 영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지난 5일 오전 10시쯤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정태성(47·서울 월계동) 씨의 쏘나타 개인택시에 올랐다.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벚꽃축제 개막 사흘을 앞둔 윤중로를 달렸는데 그랬다.  노량진역 근처에서 첫 손님으로 택시에 오른 김진수(34·회사원)씨는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가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말을 걸어줘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정씨가 손님에게 던진 질문은 “지금 온도 괜찮습니까?” “급한 일 있으시면 좀 빨리 갈까요?” 등이었다.  예약 손님에게 다가갈 때 그의 본색(?)이 드러난다. 차에서 내려 왼손으로 뒷문을 열고, 오른손을 뒷문 윗부분에 갖다대 손님의 머리를 보호한다. ‘뭐 이렇게 황송하게까지?’ 하며 당황하던 손님들도 진지한 그의 마음을 다한 친절에 고개를 끄덕인다.  유하나(28·회사원)씨는 “이런 경험은 처음인데 대접 받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정말 친절해서 또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택시 안에는 정씨가 직접 만든 33개의 ‘친절 매뉴얼’이 있다. 여러 상황에 맞춘 고객 응대법이 망라돼 있다. 비상약품 키트도 준비돼 있다. 셔츠도 매일 갈아 입고 넥타이와 어울리는지도 꼼꼼히 살핀다.    ●어렵고 힘든 일 해보는 게 꿈이었다  올해로 15년째 택시 핸들을 잡는 정씨는 여러 모로 남다르다. 1997년부터 법인택시, 2000년부터 개인택시를 했다. 부친은 육사 14기 출신으로 준장까지 지낸 정헌택(2002년 작고) 씨이고 형은 미국 벨연구소를 거쳐 조지아주립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정태철(49)씨다. 이른바 ‘좋은 집안’ 출신. 하지만 군부독재 시절, 장군의 아들이란 점을 고민하던 그는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명지고 2학년을 중퇴했다.  “작가가 되려면 광부, 농부, 원양어선 선원, 택시기사 등 어렵고 힘든 일을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이삿짐센터, 공장, 홀서빙등 50개가 넘는 일들을 경험한 뒤 1993년부터 2년여 운영하던 광고 사업이 부도를 맞고 친인척들을 빚쟁이로 만들었다. 딸까지 참담하게 잃은 그는 잠실대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다. 하지만 난간에서 “아빠”라고 부르는 딸의 환청이 들렸다. 죽을 용기로 세상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장사를 해볼까 했지만 자금이 없었다. 그 즈음 어릴 적 꿈이었던 택시기사가 그의 마음에 들어왔다.    ●세계 최고의 택시기사가 되거라  택시일을 하겠다고 하자 부인의 만류가 심했다. 주위 시선도 그렇고, 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보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하지만 정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비좁은 공간이지만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경치도 즐기고 일한 만큼 보상받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2002년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며 “난 세계 최고의 장군이 될 수 없었지만 넌 세계 최고의 택시기사가 될 수 있다.”는 유언을 남긴 것이 큰 힘이 됐다.    ●일본의 그 유명한 MK를 가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의 스승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택시 1700여대를 보유한 일본 최대 업체 MK에 들어가 일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답답해진 정씨는 청와대, 주한 일본대사관, 서울시, 대기업들에 추천서를 써달라는 편지를 보냈고 대기업 두 군데에서 추천해줘 MK의 문을 다시 두드렸으나 여전히 답이 오지 않았다. “자기네 직원이 아니면 연수를 하지 않는 것이 방침이라고 하더군요.”  포기할 즈음, 국내에도 잘 알려진 유봉식(73) MK그룹 회장의 동생인 유태식(72) 부회장이 우리 국회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그는 무작정 국회 본관으로 달려갔다. 일이 되려고 했는지 유 부회장은 그의 편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 뒤 MK에서 기숙사 비용을 받지 않을테니 연수에 참가하라는 연락이 왔다.    ●서비스의 대부를 울리다  이제 언어가 걸림돌이었다. 2년여 ‘주운야독(晝運夜讀)’을 이어갔다. 일본인 기사보다 늘 앞장 섰다. 이방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일본인들도 그의 열심에 마음을 열었다. 2009년 5월부터 두달의 연수를 끝낸 정씨는 3.0 만점으로 수석 졸업했다. 함께 연수한 일본인 기사 중에 최고 점수가 2.0이었다. MK 최초이자 마지막 외국인 수료생에 축하를 보내던 유 부회장에게 “택시 기사의 친절은 단지 돈 버는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라고 밝히자 유 부회장의 눈가가 붉어졌다. 유 부회장은 김포공항에서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종업원이 컵을 탁~ 하고 성의 없이 내려놓더란 것. 유 부회장의 당부가 이어졌다. “한국의 서비스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서비스 산업 발전을 위해 고국에 돌아가 열심히 일해 주세요.”    ●정말 화려한 스펙 쌓기  정씨의 노력은 예서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수동 기어를 고집하는 그는 절약되는 한달 연료비 20만원을 자기계발에 쓰고 있다. 1983년 고졸 검정고시를 거친 그는 일하는 틈틈이 사이버 대학을 다녔고 지난 2월 서울 광운대학 서비스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미지 컨설팅 교육까지 받았는데 그의 멘토 격인 컨설팅 업체 ‘예라고’의 허은아 대표는 “택시 하는 분들이 바쁘기 때문에 결석이 잦을까 걱정했는데 한 번도 결석을 안하고 함께 수업을 듣는 이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웃음 치료사, 서비스경영 최고관리자 등의 자격증을 땄고 논술 지도사, 독서 지도사 자격증 등 화려한 스펙을 자랑한다. 2009년 8월부터 서비스 관련 강의를 시작했고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인 솜씨가 소문 나 섭외가 줄을 잇고 있다.    ●택시대학 총장을 꿈꾸다  집에 가져가는 돈은 한달에 200만원이 되지 않는다. 강연료를 챙기지만 지방을 오가며 교통비로 거의 쓴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것도 가계에 보탬이 되지 않는 일.  동료들은 업계의 열악한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헛고생을 한다고 비웃는단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부족한 대목이 많지만 내가 조금 변하면서 택시 서비스가 조금 올라갔으면 좋겠다.”  정씨는 “항공대학, 철도대학은 있지만 택시대학은 없지 않느냐?”고 되묻고 “10년 뒤에 택시대학이 만들어지면 총장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예술계 고교를 다니는 외아들에게 자기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그는 결혼 19주년 기념일이라며 작은 케이크를 들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남들이 우습게 여기는 택시 일을 위해 9년을 준비하고 3년을 갈고 닦은 그는 이미 ‘세계 최고’다.  글·사진 영상콘텐츠부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15일 오후 7시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의 ‘TV 쏙 서울신문’ 방영  
  • “초등학생 아냐”…편견 맞선 ‘120cm 커플’ 결혼

    “우리 결혼했어요!” 앳된 외모와 작은 신장 탓에 세상의 편견에 맞서야 했던 중국 남녀가 공개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중국 관영신문 차이나 데일리는 “주 지에(23)와 동갑내기 남자친구 칭 쉬에시가 지난 2일(현지시간) 다롄에 있는 테마파크 ‘디스커버리 랜드’(Discovery Land)에서 하객들의 축하 속에 부부가 됐다.”고 보도했다. 성장장애를 앓는 신랑과 신부는 초등학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와 120cm가 간신히 넘는 키를 가졌다. 그동안 호기심 어린 시선에 상처를 받아야 했던 부부는 아예 공개결혼식으로 편견에 정면으로 맞섰다. 테마파크 측에 따르면 이 결혼식은 신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테마파크 관계자는 “신부가 어릴 적부터 동화책에 나오는 아름다운 결혼식을 꿈꿨고, 우리의 취지와도 맞아서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부부는 딱딱한 결혼식 대신 동화 속 주인공처럼 변신해서 호박마차를 타고 요정들로 변신한 배우들과 기념 퍼레이드를 했다. 이 행사에는 가난한 도시노동자 자녀 100명이 하객으로 초대돼 더욱 그 의미를 살렸다. 종을 치고 반지를 나눠 정식 부부로 거듭난 이들에게 하객들은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쳐줬다. 편견에 맞서 공개 결혼식을 한 부부의 용기있는 선택에 하객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 http://twitter.com/newsluv ) 
  • 단신 옷 쇼핑몰로 ‘50억 대박’ CEO 집보니…

    단신 옷 쇼핑몰로 ‘50억 대박’ CEO 집보니…

    사랑하는 아내에게 억대 벤츠를 선물해 이슈를 모았던 이민규가 초호화 신혼집을 공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민규는 168cm라는 자신의 신체조건을 살려 ‘키 작은 남자’라는 인터넷 쇼핑몰로 연매출 50억원을 달성한 이른바 대박 CEO다. 지난해 12월 미모의 심민정씨와 결혼한 이민규는 이번에는 인테리어 비용만 1억원을 들인 30평 규모의신혼집 아파트를 공개했다. 화장실과 벽은 이탈리아 최고급 대리석을 사용했으며 거실의 화이트 소파는 악어가죽으로 2000만 원을 호가한다. 두 사람은 신세대 부부답게 심플한 화이트&블랙을 컨셉트로 집 전체를 꾸몄다. 거기에 레드컬러로 포인트를 줘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들의 신혼집을 접한 네티즌들은 “럭셔리한 호텔 같다.”, “같은 여자가 봐도 부럽다.” 등의 호응을 보였다. 사진=씨쓰리피알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골프복 더 젊어졌다

    골프복 더 젊어졌다

    편안함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도 등산복을 입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기능성 의류를 일상복으로 입는 현상의 시작은 골프복이었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무장한 등산복에 일방적으로 시장을 내주었던 골프복이 올봄에는 젊은 층을 겨냥하고 화사한 색깔로 갈아입었다. 지난 28일 끝난 미국 LPGA투어 KIA 클래식에서 한국의 신지애 선수를 1타 차로 꺾고 우승한 독일의 산드라 갈 선수는 미셸 위와 같은 큰 키에 화려한 패션 감각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여성 골프 선수의 성적인 매력을 강조하는 마케팅에 대해서는 항상 논란이 따를 정도로 골프는 여전히 예절을 강조하는 운동이다. 3월부터 한국시장 공략에서 나선 애시워스는 1987년 선보인 골프복이다. 품격을 강조한다. 특히 올봄에 나온 애시워스의 제품은 운동을 끝내고 공연장에 들르거나 출퇴근복, 결혼식 하객 복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등산복을 입고 회사에 가거나 뮤지컬을 보는 것은 꺼려지지만, 골프복은 멋스러운 디자인에 기능성을 겸비해 활용 범위가 넓다. 애시워스의 남성 골프복은 깃과 소맷단을 편안하게 접고 펼 수 있는 재킷, 다양한 무늬의 피케 셔츠, 아가일(마름모) 또는 체크 무늬의 니트 등으로 구성돼 있다. 땀을 빨리 흡수하고 잘 마르는 하이브리드 면을 사용해 세탁 뒤 수축 현상이 없으며 다림질도 필요 없다는 게 업체 측의 얘기다. 팬텀의 골프복도 ‘도시 캐주얼’을 표방한다. 고급스러운 광택이 나는 데다 잘 늘어나는 소재로 만든 랩 치마는 KIA 클래식에서 우승할 때 산드라 갈 선수가 입었던 것처럼 쫄바지와 함께 착용하면 세련된 느낌을 낼 수 있다. 보그너는 젊은 층을 겨냥해 선명한 주황색, 세련된 초록색, 개나리 같은 노란색 등 뚜렷한 원색의 골프복을 선보였다. 여성용으로 나온 화려한 원색의 스키니 골프 바지는 몸매를 돋보이게 해 준다. 40대 이상의 골퍼들은 달라붙지 않는 바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헐렁한 바지는 오히려 풍만한 복부를 부각시킨다. 바지는 올봄에 유행하는 화려한 색깔의 스키니로 입고 상의는 줄무늬나 물방울무늬의 풍성한 바람막이 점퍼를 입으면 젊은 감각을 살릴 수 있다.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놓고 가을볕에는 딸을 내놓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봄 자외선은 무섭다. 보그너의 피케 셔츠는 칼라 끝에 와이어가 내장돼 있어 깃을 세워도 모양이 유지된다. 때문에 자외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목을 햇볕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하지영 보그너 마케팅실장은 “젊은 감각의 골프복을 원하는 고객층이 늘어나면서 화사한 색깔의 스키니 골프 바지가 특히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女心에 빠진 필름

    女心에 빠진 필름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제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오는 7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주 상영관인 서울 창천동 아트레온은 물론 한국영상자료원, 서울여성플라자, 양천문화회관 등에서 30개국 110편의 장·단편 영화가 소개된다. 배우 겸 감독인 구혜선이 영화제 공식 홍보영상(트레일러)을 제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개막작은 ‘파니핑크’(1994)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독일 도리스 되리 감독의 신작 ‘헤어드레서’(2010)이다. 비대한 몸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설 때조차 특수 제작한 지지물에 의존해야 하는 싱글맘 카티가 자신의 미용실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렸다.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재료로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재주가 탁월한 되리 감독은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을 2008년 독일 최고 흥행작으로 만들기도 했다.제한상영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숏버스’의 여주인공으로 알려진 중국계 캐나다인 이숙인은 대형마켓 안전요원의 색다른 성(性)적 모험을 다룬 ‘새미의 카니보어’를 선보인다. ‘안토니아스 라인’으로 1996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네덜란드 마를렌 고리스 감독의 신작 ‘소용돌이 속에서’, ‘반생연’(1997)으로 유명한 홍콩의 여성 감독 쉬안화(許鞍華)의 소동극 ‘사랑에 대한 모든 것’도 영화광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전망이다. 비혼(非婚) 커플에게 아이가 생기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백하게 다룬 ‘두개의 선’(임신 테스트 기기의 두줄을 의미)도 주목할 만하다. 결혼 제도 바깥에서 연애와 동거를 하고 출산을 한 감독의 경험담을 통해 결혼에 대한 물음과 해답을 풀어낸다. 기획개발 아이템의 발굴 통로로 지난해 첫선을 보인 ‘피치&캐치’에서 다큐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지민 감독의 신작으로 한국 관객에게 가장 먼저 선보인다. 개·폐막식 및 심야상영은 1만 2000원, 일반상영은 5000원이다. 프로그램 확인 및 예매는 홈페이지(www.wffis.or.kr)에서 가능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회사 첫 출근한 날 ‘로또 당첨’ 행운男

    회사 첫 출근한 날 ‘로또 당첨’ 행운男

    미국의 50대 가장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다가 어렵사리 취직에 성공했다. 더욱 놀라운 건 첫 출근한 날 이 남성은 복권에 당첨되는 뜻밖의 행운을 얻었다. 미국 메릴랜드 주에 사는 마이크 하긴스(53)는 올해 초 다니던 건설사가 어려워지면서 직장을 잃었다. 다시 직장을 구하려고 뛰어다녔으나 번번이 미끄러졌고, 좀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좌절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구직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히긴스는 작은 건설사에서 현장매니저로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새 회사에 첫 출근한 지난 22일(현지시간) 기쁜 마음으로 일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인에게 전화를 했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이달 초 샀던 복권이 5만 달러(5500만원)에 당첨됐다는 것. 막막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매주 편의점에서 샀던 복권 중 하나가 3등에 당첨된 사실을 안 히긴스는 기쁨에 눈물이 터졌다. 그는 “아내가 ‘당신이 3등이야.’라고 소리를 질렀을 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몇 번이나 확인한 끝에 진짜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알고 기뻐서 눈물이 흘렀다.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기쁨에 온몸이 떨린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복권에 당첨되면 다니던 회사부터 때려치운다.”고 대답하지만 어렵사리 소중한 직장을 얻은 히긴스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뿐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다. 복권당첨은 기쁘지만 당첨보다 더욱 기쁜 건 다시 일을 하게 된 것이기 때문. 히긴스는 “당첨금으로 팍팍한 형편 탓에 미뤘던 집을 수리하고 빚도 청산할 것”이라고 말한 뒤 “내년이 결혼 25주년이기 때문에 아내와 특별한 여행을 가겠다.”고 계획을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http://twitter.com/newsluv)
  • “中企, 정부와 사랑은 하되 결혼은 말아야죠”

    “中企, 정부와 사랑은 하되 결혼은 말아야죠”

    중소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영업할 때는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사랑은 하되, 결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경만(46·행시 38회)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안전과장은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행위를 단속·시정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경험을 살려 중소기업이 살아남는 전략을 담은 ‘젊은 사장이 꼭 알아야 할 거래의 7가지 함정’(21세기 북스)을 출간했다. 공무원 사회에 대한 지식을 활용, 정부와 거래할 때의 7가지 요령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정부가 중소기업 제품 구매 등을 정책적으로 장려하지만 “가까우면 타 죽고 멀면 얼어 죽는다.”며 “정부 돈을 받는 순간 생존감각이 무뎌지는 만큼 정부 돈은 공짜라도 받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조언은 행시 ‘늦깎이’로 당시 내무부에 지원해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장, 청소행정과장, 시청 계장 등을 거쳐 2003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에 근무한 경험에서 나온 충고다. 이 과장은 중소기업 경영정보 사이트인 ‘지식비타민’(www.1234way.com)을 운영 중이다. ●“사업제안 땐 공무원 업무경력 살펴야” 이 과장은 공공 분야에서 마케팅이 성과를 거두려면 최소한 2~3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이때까지 버틸 자금과 마케팅 여력이 없다면 접근하지 말 것을 충고했다. 중소기업이 낸 좋은 사업 제안으로 예산이 편성돼도 일정 규모가 넘으면 경쟁입찰이 돼 대기업이 가져갈 가능성이 크므로 정부나 지자체를 대상으로 너무 큰 사업을 제안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는 예산 편성과 집행 시기가 다르므로 예산 편성 시기에 사업을 제안하고 집행 시기에 입찰에 필요한 서류 등을 갖추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무자가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받게 되면 실무자에게 미운 털이 박혀 사업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실무 공무원부터 접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승진을 앞둔 공무원에게는 기관장의 칭찬과 인정이 중요하므로 전국 또는 세계 최초 사업이, 위험부담을 느끼는 공무원에게는 다른 자치단체나 중앙정부, 외국 등에서 이미 하고 있는 사업이 매력적이라고 조언했다. 2년가량 해당 업무를 한 공무원은 전보 대상자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해당 업무를 맡은 초기에 집중적으로 마케팅하는 것이 유리하고 사업을 제안할 경우 그 업무를 언제부터 했는지 알아보라고 덧붙였다. 이 과장은 또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빠지는 불공정거래 함정을 7가지로 분류·소개했다. 전속거래, 핵심 기술 유출, 핵심 인재 이탈, 납품가 인하 요구로 인한 실속 없는 매출, 대기업의 구매선 교체, 대기업의 중소기업 영역 진출을 통한 시장 잠식, 입찰 경쟁 등이다. ●“中企, 대기업 전속거래 유혹 피하라” 그는 중소기업 제품이 잘 나가면 대기업 유통회사들이 전속 거래라는 달콤한 유혹을 제안하는데, 이를 가급적 피하라고 조언했다. 전속은 예속으로 전락해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만큼 매출 비중이 한 기업에 60% 이상 쏠리지 않도록 하라고 충고했다. 거래하면서 대기업이 원천 기술 도면 등을 요구하는데, 이에 응했다가는 기술 자체를 통째로 빼앗길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수년간 키운 직원이 대기업으로 옮기는 경우에 대해서는 충분한 보수, 인간적 대우 등 총체적 경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과장은 이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유통모델을 갖출 것 ▲해외 시장에 먼저 진출하는 것을 검토할 것 ▲핵심 기술을 보유할 것 ▲작은 시장이라도 독과점해서 공급할 수 있는 모델을 찾을 것 등을 조언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영원히 잊지 못할 클레오파트라

    ‘영원한 클레오파트라’ 엘리자베스(리즈) 테일러가 세상을 떠났다. 누구보다 화려하고 명실상부한 스타로 살았으며, 미모의 대명사이던 그를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이 그다지 실감나지 않는다. 그는 갔지만 영화는 남아 있고, 그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인가. 돌이켜보면 리즈는 ‘고양이’같은 데가 있었다. 영리하고 암팡지고 도도하며, 관능성과 우아함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고, 신비함과 속물스러움이 공존한다. 이러한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요소는 배우에게 필요한 부분이지만, 리즈의 경우 이러한 분위기가 작품의 캐릭터를 통해서 형성되었다기보다 그의 외관, 즉 얼굴, 몸매, 행동 등을 통해서 더 분명하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약점이 되기도 했다. 리즈를 기억하게 하는 많은 영화들이 그의 연기보다 외모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이다. 물론 그의 분위기를 절묘하게 맞춘 영화들에서 리즈는 빛이 난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리처드 브룩스, 1958)에서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남편(폴 뉴먼)을 바라보는 시선과 손길에 열정적인 사랑과 돈을 향한 집착이 한데 스며든 듯 표현한 리즈의 연기는 매우 강렬했다. ‘작은 아씨들’(머빈 르로이, 1949)에서 집게를 꽂아 코를 높이던 모습의 앙증맞던 소녀는 어느 날 성숙한 여인으로 나타났다. ‘젊은이의 양지’(조지 스티븐스, 1951)에서 조지(몽고메리 클리프트)를 흔들고 욕망하게 하던 안젤라로 말이다. 안젤라는 풍요롭고 윤기 나는 삶을 체화하는 존재로서, 부드럽고 우아하고 따뜻했다. T 드레이저의 소설 ‘아메리카의 비극’이 원작인 이 영화에서 기꺼이 욕망의 불꽃에 자신을 사르는 조지가 비난보다 동정심을 일으켰던 것은 바로 그 대상이 안젤라였기 때문이다. 리즈는 ‘자이언트’(조지 스티븐스, 1956)에서 비슷한 역할을 맡지만 두 남자(록 허드슨과 제임스 딘)에 가려 그다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뜨거운 양철 지붕’에 이어 ‘지난여름 갑자기’(조셉 맨키비츠, 1959)에서는 짧지만 강한 매력을 다시 보여준다. 워낙 캐서린 헵번의 ‘무시무시한’ 연기가 압도적이어서 가려지는 측면이 있지만, 리즈는 정신적 충격에 빠진 여성의 모습을 섬세하고 강렬하게 표현한다. 특히 영화에서 입었던 하얀색 수영복은 리즈의 청순함과 관능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리즈는 당대 최고의 미모와 최고의 스캔들을 몰고 다니는 존재였다. 7번의 이혼과 8번의 결혼은 영화나 삶에 있어서 리즈를 화려함의 정점에 올려놓았다. 특히 리처드 버튼과의 두 번에 걸친 결혼생활은 더욱 그러했다. 버튼과 함께 한 영화들, 그 중에서도 ‘클레오파트라’(조셉 맨키비츠·루벤 마물리안, 1963)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마이크 니콜스, 1966)는 리즈를 세계적인 스타로서뿐 아니라 대배우로서 각인시켜준 작품들이다. ‘클레오파트라’는 리즈를 만인의 ‘여왕으로, ‘누가 버지니아’는 리즈에게 ‘버터필드8’(1960)에 이어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누가 버지니아’는 환상으로 간신히 지탱하는 부부를 통해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고통스럽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환상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가 없었다면 리즈를 기억해내는 지금 이 순간이 쓸쓸했을 것이다. 리즈의 헝클어진 머리와 퀭한 눈동자는 지금도 소름 돋을 만큼 묵직한 아픔을 끌어올린다. 그의 바이올렛빛 신비한 눈동자도 좋지만 생기가 사라진 그의 눈이 진정 배우의 눈임을 확인할 수 있고, 볼 때마다 전율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있어 행복하다. 굿바이, 리즈.
  • [깔깔깔]

    ●신사와 거지 항상 같은 장소에서 구걸하던 거지가 어느 날 지나가던 신사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재작년까지 내게 늘 만원씩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작년부터 5000원으로 줄이더니 올해 또 1000원으로 줄이셨습니다. 대체 이유가 뭡니까?” “전에야 내가 총각이었으니 여유가 있었지요. 하지만 작년에 결혼을 했으니 5000원을 주었고, 이제는 애까지 있으니 1000원밖에 못드립니다.” 그러자 거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럼 내 돈으로 당신 가족을 부양한단 말입니까?“ ●난센스 퀴즈 ‘개가 사람을 가르친다’를 4글자로 줄이면? 개인지도.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는? 눈 깜빡할 새. 개미의 목구멍보다 작은 것은? 개미먹이. 미소의 반댓말은? 당기소
  • 파커 콰르 텟 “멤버 넷 중 셋이 한인 美 클래식계 대세죠”

    파커 콰르 텟 “멤버 넷 중 셋이 한인 美 클래식계 대세죠”

    콰르텟(현악 4중주단)을 결성한 뒤 첫 공식 공연이 열린 어느 날. 멤버 3명의 한국인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 퓨전 일식당에서 ‘쫑파티’를 열었다. 유일한 미국인 제시카는 초밥을 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려다 젓가락질이 서툴러 종지에 빠뜨렸다. 간장 국물이 튀어 테이블은 온통 엉망이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다니엘 정(27·바이올린)과 위스콘신 출신 카렌 김(28·여·바이올린), 서울 출신 김기현(29·첼로), 텍사스 출신 제시카 보드너(28·여·비올라)가 결성한 파커 콰르텟(The Parker Quartet)의 출발은 이처럼 조금은 엇박자였다. 하지만 만 8년을 넘기면서 호흡이 척척 맞고, 손끝에도 관록이 붙을 무렵 ‘대형사고’를 쳤다. 지난 2월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제53회 그래미어워드에서 ‘리게티의 현악 4중주 앨범’으로 최우수 실내악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한 것. 이들은 수상을 짐작조차 못 했단다. 김씨는 플로리다에서 다른 팀과 연주를 하느라고 시상식에 참석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당사자들은 놀랐지만, 실력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이미 2년마다 한 번씩 뽑는 클리블랜드 콰르텟 상도 받았다. 지난해 10월 뉴욕 카네기홀 공연은 전석 매진. 한국계 클래식 연주자로는 처음 그래미를 수상한 파커 콰르텟 멤버들을 이메일을 통해 만났다. 그래미의 위력은 대단했다. 20대 후반의 실내악 연주자를 하루아침에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팀의 리더인 다니엘은 “제시카와 버스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우리 악기를 보더니 ‘당신들을 TV에서 봤다.’면서 승객들에게 우리를 소개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물론 시작은 소박했다. 2002년 여름 제시카와 카렌, 다니엘은 버몬트주 퍼트니에서 열린 옐로 반 뮤직 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났다. 단박에 서로 재능을 알아본 데다, 세명 모두 그해 가을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학교(컨서버토리)에 입학할 예정이란 것을 알고 곧바로 의기투합했다. 공석인 첼리스트는 다니엘이 16세 때부터 알고 지낸 김씨를 추천했다. 팀명은 보스턴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이자 상징 건물인 ‘옴니 파커 하우스’에서 따왔다. 파커 콰르텟의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국내에서는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멤버의 75%가 한국인 유전자(DNA)이기 때문. 그러나 현지에선 인종적 요인으로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제시카와 다니엘은 “전적으로 우연”이라고 입을 모았다. 팀을 만들 때만 해도 의식하지 못했다. 교포 2세인 카렌과 다니엘은 한국말이 서툴러 의사소통도 영어로 했다. 물론 75%가 한국인이다 보니 생기는 일들도 있다. 김씨는 “다니엘과 카렌 역시 한국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사고방식이 비슷하고 이동하는 동안 한식이 당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다니엘은 “가끔 우리끼리 ‘제시카는 명예 한국인’이라고 농담을 한다. 우리만큼이나 한식을 사랑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유독 한국인 비중이 높은 이유는 뭘까. 김씨는 “주요 음악원이나 오케스트라에는 한국인이 상당수일 만큼, 미국 클래식계는 점점 한국인이 장악하고 있다.”면서 “3명이 한국인이란 점도 미국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오는 6월 한국에서 첫 단독콘서트를 갖는다. 2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클래식계의 블루칩 ‘앙상블 디토’와 협연을, 26일에는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단독 공연을 갖는다. 2008년 통영국제음악제에 모습을 비친 적은 있지만 자신들의 이름을 건 공연은 처음인 셈. 유일한 외국인인 제시카에게 이번 방문은 더 특별하다. 그는 “공연 때는 다니엘과 부부가 돼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로 6월 초 결혼할 계획이다. 예비 시어머니에게 가끔 한국요리를 배운다는 제시카는 “그동안 젓가락질이 일취월장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쇠젓가락에 도전할 것”이라며 의욕을 불태웠다. 이어 “한국말도 빨리 배워야 한다.”면서 “‘난 채식주의자예요’를 한국말로 하는 것부터 배워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카렌은 “통영에 갔을 때 관객과 자석에 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6월에는 더 재밌을 것 같다.”고 내한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국에서 중·고교를 다녀 ‘금의환향’하는 셈인 김씨는 “떠날 때는 학생이었지만 이젠 프로페셔널로 연주할 생각을 하니 짜릿하다.”면서 “예원학교·서울예고 은사와 친구들, 사사했던 정명화(첼리스트)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주말 심층취재] 나는 19일밤도 시속 180㎞로 달린다 강원랜드로

    [주말 심층취재] 나는 19일밤도 시속 180㎞로 달린다 강원랜드로

    깔끔한 감색 정장, 단정한 이목구비, 명석해 보이는 눈빛…. 아무리 뜯어봐도 ‘도박’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남자. 캐나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3년 전 대기업에 입사한 명문대 출신의 A(31)씨. 그는 지난 한해 낮과 밤이 다른 이중생활 속에서 지냈다. ●낮엔 대기업 직원… 밤엔 ‘바카라’ 2~3일에 한번꼴로 강원랜드로 ‘출퇴근’하면서 생활은 엉망이 됐다. 전세금을 날렸고, 여자친구는 곁을 떠났다. 어머니에게는 죄인이 됐다. 1년간 9300여만원을 잃고 사생활과 업무까지 전부 뒤엉킨 끝에야 비로소 그는 스스로 강원랜드 출입제한을 신청했다. 매일 오후 6시 퇴근 무렵 회사 앞에 대기했던 단골 ‘나라시’(불법 영업 택시) 운전기사의 전화번호도 삭제했다. 사무실에서 퇴근한 뒤 강원랜드로 출근하고, 밤새 ‘바카라’에 올인한 다음 새벽에 곧바로 회사로 출근했던 일상도 지웠다. 그는 “1시간 반 만에 강원랜드로 가는데 시속 180㎞로 달리는 차 안에서 ‘목숨 걸고 가는구나, 그래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면서 “그 당시에는 사람이 아니었다. 잘나가는 대기업 회사원인 내가 출퇴근하듯 그런 곳을 드나들 줄 몰랐다.”면서 “정말 도박에 미치면 자신과 주변 사람 돈까지 다 탕진해도 못 빠져나온다.”고 돌이켰다. ●여친 떠나고 엄마 피눈물에… 사건의 발단은 평범했다. 지난해 1월 초 친구들과 강원도의 한 스키장에 놀러갔던 것이 화근이 됐다. 카드를 하다 심심풀이 삼아 근처 강원랜드에 발을 들인 것이 족쇄가 됐다. 3시간 만에 25만원을 땄다. 묘하고 짜릿한 흥분. 승리감과 쾌감이 느껴졌다. 숨 막히는 사내 경쟁도, 복잡한 세상살이도 잊을 수 있었다. 그는 1주일 뒤 혼자 강원랜드를 찾았다. 몇 시간 만에 400만원이 들어왔다. 밤을 새웠는데도 힘든 줄 몰랐다. 금요일 밤에만 강원랜드를 찾던 횟수가 점차 평일로 늘어났다. 한달에 한두번이 일주일에 두세번이 됐다. 다섯 번째까지는 비싼 요금 탓에 버스를 이용했지만 나중엔 고급 승용차인 나라시만 고집했다. 큰돈이 오가니 작은 돈은 우스워졌다. 그는 “17만원이라 해 봤자 고작 한번 베팅하는 값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빨리 가야 더 많이 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25만원 쾌감에 넉달 새 5000만원 날려 네 번째 방문부터는 손해가 더 커졌다. 1000만원, 300만원, 500만원…. 끝도 없이 잃었다. 베팅 상한액 때문에 나중에는 나라시 기사에게 칩 두개(20만원)를 따로 주고 ‘병정’(대리 베팅)노릇까지 시켰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서였다. 이렇게 쓴 돈이 4개월간 무려 5000만원. 결혼자금으로 모아 놓았던 돈을 싹 날렸다. 결국 어머니에게까지 손을 벌렸다. 아예 베팅 한도나 방문 제한이 없는 마카오로 원정도 떠났다. 금요일 일을 마치기만을 기다린 뒤 토요일 새벽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악마의 칩’에 사로잡혔다. 월요일 아침 인천공항에 도착해 바로 출근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렇게 또 4000여만원이 공중분해됐다. 피곤한 올빼미 생활과 잦은 거짓말에 삶은 피폐해져 갔다.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는 이별을 통보했다. 환갑이 다 된 어머니는 말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는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어렵게 마련해 주신 돈을 그렇게 내가 날렸다.”면서 “전세방을 빼 작은 방으로 옮기고, 어머니에게 일부 돈을 돌려 드리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고 털어놓았다. 호통 대신 어머니의 말 없는 피울음에 그는 서서히 예전 생활로 돌아갔다. 그는 “중독은 아니다.”라고 자신했다. 악마 같은 유혹에서 벗어난 지 6개월이라고 했다. “한번도 다시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강원랜드는 출입제한 때문에 어차피 못 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한번도 가지 않았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몇주 전 동남아 출장이 있어서 잠깐 들렀다. 딱 50만원만 들고 갔다. 400만원을 땄다.” 백민경기자 white @seoul.co.kr
  • [위기의 한국교회 종교개혁 현장서 길을 묻다] 500년이 지나도 살아 숨쉬는 ‘루터의 정신’

    [위기의 한국교회 종교개혁 현장서 길을 묻다] 500년이 지나도 살아 숨쉬는 ‘루터의 정신’

    마르틴 루터(1483~1546)의 흔적을 더듬는 여정 자체는 그다지 버거울 게 없다. 루터는 1483년 독일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나 광부로 생계를 꾸리려는 아버지를 따라 만스펠트로 옮긴다. 그리고 마그데부르크, 아이제나흐, 에르푸르트 등에서 유년과 청년기를 보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방향과 토대를 착실히 닦는다. 그리고 장성한 뒤 비텐베르크, 보름스, 바르트부르크성 등에 굵직한 발자국을 찍었다. 1521년 로마 교황으로부터 마지막 파문장을 받은 보름스를 제외하면 모두 독일 동북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느 도시에서건 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이면 넉넉히 닿을 수 있는 만큼만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 넓지 않은 곳에서 그가 이뤄낸 업적과 생애를 따라가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종교사, 나아가 인류 역사에 광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인 까닭이다. 몇년 전 독일 정부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인류역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론의 여지 없이 압도적인 1위로 루터가 꼽혔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곽교회 문에 내건 ‘95개조 명제’는 세속 권력에 대한 욕망, 금권에 대한 부패 등으로 얼룩진 중세 교회 대변혁의 신호탄이었다. 지금껏 개신교에서 종교개혁주일로 삼고 있는 이날이 2017년이면 500주년이 된다. ●신앙·믿음·개혁을 낳은 ‘정신 문화재’ 비텐베르크는 아예 ‘루터의 도시’로 통한다. 비텐베르크 교회가 대다수 루터 관광객이 찾는 첫 방문지다. 루터가 처음으로 설교를 맡아 신도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으면서 95개조 명제를 내걸고 로마 교황청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신감을 안겨준 공간이다. 500년 전 루터 생존 당시 벽보의 흔적은 화재로 없어졌다. 대신 1857년 빌헬름 황제가 부분 재건축을 하면서 새로 철문을 만들고 거기에 ‘95개조 명제’를 촘촘하게 새겨 놓았다.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도록 루터의 개혁 정신을 영구히 남겨 놓은 것이다. 교회 안내자로 평생을 바친 베르나르트 그룰(75)은 “비텐베르크 교회는 종교개혁의 시작과 전개과정을 보여주며 신앙과 믿음, 개혁을 낳은 ‘정신적 문화재’”라면서 “이를 통해 오늘날 교회들은 내면적인 변화와 신앙을 향한 개선 등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마침 교회를 찾은 독일 신학자들 또한 그의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교회당 안에 나란히 자리한 루터와, 종교개혁의 동료였던 멜란히톤의 무덤 등을 둘러보고 있었다. 교회에서 천천히 걸어 5분쯤 가면 시청 광장이 있다. 인구 2만의 도시에 찾아오는 연 20만명의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이곳에는 루터와 멜란히톤의 동상이 서 있다. 또다시 도보로 10여분쯤 떨어진 곳 ‘루터의 거리’ 작은 로터리 한구석에는 이른바 ‘루터의 참나무’가 있다. 루터는 1520년 12월 10일 교황의 파문장을 불태우면서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선언한다. 그로서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감행한 곳이다. ●민중들에게 새 길을 보여준 루터 1521년 보름스 제국회의 결과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루터는 비텐베르크로 돌아오던 도중 에르푸르트 근처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피해 기사 행세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숨어 지내며 1521년 12월~1522년 2월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독일어 성경과 성만찬 포도주의 나눔은 신과 민중들의 직접 만남을 가능하게 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종교개혁의 불씨가 활활 타올랐음은 물론이다. 그의 영향을 받은 토마스 뮌처(1490~1525)는 농민전쟁의 지도자로 떠오르고 종교개혁을 뛰어넘어 사회 변혁을 추진하는 세력으로 자리잡는다. 초기에는 이들에게 동정적 입장을 갖던 루터였지만 분위기가 급격히 변해가자 그들과 단호하게 결별하며 제후들의 편에 선다. 심지어 ‘반란을 일으키는 인간보다 더 유독하고 해롭고 악마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자신이 이뤄놓은 결과물의 영향으로 복음서를 자유롭게 읽은 농민들에 대한 폭력 진압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루터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대목이다. 로마 교황청이라는 거대한 세력에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갓 피워낸 종교개혁의 작은 싹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동정론과, 로마 교황에서 제후들로 종교 권력이 바뀌는 ‘제후들의 종교개혁’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루터와 헤어지느니 죽는 게 낫다” 마르크스에게는 레닌이 있었고, 피델 카스트로에게는 체 게바라가 있었다. 마오쩌둥 곁에는 저우언라이가 든든히 서 있었다. 마틴 루터에게는 멜란히톤(1497~1560)이라는 최고의 조력자가 있어 개혁 반발 세력과 급진개혁 세력 사이에서 종교개혁의 깃발을 꼿꼿이 세울 수 있었다. ‘독일의 선생님’이라고 일컬어지는 멜란히톤은 빼어난 라틴어, 히브리어 실력으로 튀빙겐 대학, 비텐베르크 대학 등에서 문학, 신학, 철학, 수사학 등을 강의했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왕자와 공작 등 귀족계급들이 오로지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들어 인기를 실감케 했다. 멜란히톤이 있어 성서의 독일어 번역은 더욱 신속하고 정교해 질 수 있었다. 또한 제후들과의 갈등, 개신교 내부의 숱한 논쟁 등 주요 지점마다 루터가 거칠고 과격하며 전투적인 말과 행동으로 방향을 제시하면, 멜란히톤은 학자적인 부드러운 성격을 앞세워 조정하고 중재하며 종교개혁의 잔가지를 다듬어갔다. 그가 죽음의 공간인 무덤마저 루터와 사이좋게 나누고 있고, 기념비적인 동상 또한 루터 곁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비텐베르크 대학 바로 옆건물인 멜란히톤의 생가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면서 최근 공사에 들어가 직접 둘러볼 수는 없다. ●수녀와 결혼한 애처가 루터 제후와 농민들 사이에서 평가가 엇갈렸던 루터지만 그의 인간적인 면모만큼은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다. 비텐베르크 루터기념관 2층 전시관에는 글 하나가 눈에 띈다. ‘케테는 프랑스나 베네치아를 줘도 바꾸지 않겠다. 1531년’ ‘케테’(Kthe)는 전직 수녀였던 그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1499~1552)의 애칭이다. 루터는 독신의 지옥으로부터 성직자를 해방시키고, 평범한 사람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수녀원의 수녀들을 모두 탈출시켜 결혼까지 시킨다. 그리고 1525년 마지막까지 남은 수녀였던 카타리나 폰 보라와 직접 결혼한다. 루터의 나이 42세, 보라의 나이 26세였다. 루터가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장례식”이라면서 장례복을 입고 나타나 루터를 깜짝 놀라게 한 뒤 “하나님이 돌아가셨기에 당신이 지금 절망하고 있지 않으냐.”고 말할 정도로, 어렸지만 당찬 여성이었기에 루터 역시 끔찍이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글·사진 비텐베르크·에르푸르트·보름스(독일)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11일 TV 하이라이트]

    ●독립영화관(KBS1 밤 1시 10분) 엄마와 살고 있는 사랑스러운 두 자매 진과 빈. 어려워진 형편 때문에 홀로 두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진 엄마는 진과 빈을 지방에 사는 고모에게 맡기고 아빠를 찾으러 간다. 엄마가 떠나던 날, 진과 빈은 돼지 저금통이 차면 돌아온다는 약속에 메뚜기를 구워 팔고, 큰 동전을 작은 동전으로 바꿔가며 조금씩 저금통을 채워 나간다. ●금요기획(KBS2 밤 11시 5분) 하마르족 사회에서는 남자가 성인식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결혼할 자격을 부여받는다. 성인식은 한 남자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그런 가보마을의 15세 소년 목동이 성인식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 전체의 잔치이자 부족을 결속시키는 축제의 현장을 따라가 본다. ●몽땅 내 사랑(MBC 밤 7시 45분) 금지는 자신의 일을 늘 도와주던 두준이 없어지자 리포트와 학원 일로 바빠진다. 힘들어하는 금지를 본 김 원장(김갑수)은 도와주려고 채점을 대신해 주겠다고 말한다. 킹크랩을 얻게 된 영옥은 아르바이트로 몸이 약해진 승아만을 위해 킹크랩을 삶으려고 한다. 하지만 승아는 은희 가족들과 함께 먹자고 한다.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SBS 밤 8시 50분) 65년을 함께한 부부가 있다. 하지만 10여년 전 치매 판정을 받은 할머니의 기억은 조금씩 사라져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단기 기억 장애도 심해져 할머니의 기억력은 고작 하루뿐이라는데…. 자고 나면 어제의 기억을 잃는 아내에게 사랑을 각인시키고픈 한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세계의 아이들(EBS 밤 8시 50분) 남태평양에 위치한 작은 섬 투발루. 파란 바다에 작은 섬들이 길쭉하게 이어져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그런 투발루가 전 세계 환경운동가들에게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유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나라가 잠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런 자연의 재앙 앞에 살아가고 있는 투발루의 아이들을 만나 본다. ●명불허전 신영희편(OBS 밤 10시 5분) 우리나라 최고의 명창이자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판소리 명창 신영희. 아버지이자 대명창인 신치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1살에 판소리를 시작해 16살 소녀가장으로 집안을 돌봐야 했던 어린 시절과 1980년대 인기 개그코너 ‘쓰리랑부부’ 출연 당시 에피소드, 국악계에 대한 질타와 추억담 등을 공개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