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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지모토, 김정은 옹호하다 ‘뭇매’

    후지모토, 김정은 옹호하다 ‘뭇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가명)가 기자회견 중 북한 체제를 적극 옹호하다가 서방 언론인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소동이 빚어졌다. 후지모토는 6일 일본 도쿄 외국인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반대한다.” “북한의 미사일은 억지력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등의 주장을 폈다. 이날 기자회견은 그가 최근 발간한 ‘찢어진 약속’을 계기로 마련됐다. 그는 “이렇게 작은 나라(북한)의 미사일에 전 세계 국가들이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는가.”라고 물은 뒤 “북한은 핵 미사일을 만들더라도 발사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억지력이다.”라고 주장했다. 후지모토는 또 “김 제1위원장은 미사일 발사 자체를 반대한다.”면서 “하지만 김 위원장의 기일인 오는 17일에 축포를 올려야 한다는 군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후지모토의 김정은 찬양과 북한 체제 선전이 계속되자 서방 특파원들이 잇따라 문제를 제기했다. 한 독일 언론 특파원은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찾으러 다니는 등 일반 주민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는데 당신이 김정은과 비싼 요리를 먹었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후지모토는 “어느 나라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면서 “빈국이라고 해서 맛없는 음식을 먹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후지모토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 때문에 김정은 체제의 홍보맨으로 이용당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나와 가족은 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내는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며 이를 부인했다. 후지모토는 1982년 방북한 뒤 1989∼2001년 김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로 일했다. 이후 일본 경찰과의 접촉 사실이 발각돼 북한에서 결혼한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2001년 탈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 사진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베트남 엄마의 자살은 예고된 참사였다

    23일 오전 11시 20분쯤 부산 북구의 한 아파트 18층 베란다에서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 여성 A(27)씨가 딸(7), 아들(3)과 함께 뛰어내려 모두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A씨는 딸과 아들을 데리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남편 B(47)씨가 뒤늦게 문을 열었지만 A씨가 베란다로 두 자식을 안고 뛰어내리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A씨는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사는 의미가 없다. 함께 죽어야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다.”는 글을 남겨 이혼소송을 통해 자녀 양육권을 빼앗길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투신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시집 온 베트남 이주 여성의 참사는 다문화 가정의 소통 부재와 배려 미흡이 빚은 ‘예고된 참사’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외국인 체류자 150만명 시대에 국제결혼 다문화 가정은 10쌍 중 1쌍 이상일 정도로 급증했다. 특히 농촌의 경우 외국인과의 결혼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 중 8만~10만여명이 학교에 다니고 있고, 미취학 아동은 이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이 같은 사고는 연이어 발생한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다문화 가정을 이루는 절차와 방식에 대한 허점이 태생적이라는 점이다. 얼굴 한번 보고 돌아와서 결혼하는 일종의 ‘매매혼’ 성격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의 성품도 취향도 문화도 모른 채 결혼 형식만 갖춰 팔려 오다시피 하고 있다. 더구나 국제결혼을 선택하는 다문화 가정의 경우 남성들이 가난하거나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다문화 가정의 53.7%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극빈층이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 이혼 가정의 10%가 다문화 가정일 정도로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 지구촌사랑나눔 김해성 이사장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결혼 과정에 개입해 매매혼으로 이어지는 브로커 개입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주결혼 여성을 상대로 한국의 문화와 풍습,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국의 남성 역시 배우자 나라의 언어·풍습을 사전에 익히도록 해야 한다. 울산발전연구원 박혜영 여성가족 정책센터장은 “결혼 이주 여성은 일반인들이 겪는 결혼 문제에다 사회적 문화 차이, 가족 문화 차이, 연령 차이, 언어 문제 등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이 같은 불행은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김 이사장은 “한국인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연기인생 50년 연극 ‘보물’로 감동 준 배우 전무송

    [김문이 만난사람] 연기인생 50년 연극 ‘보물’로 감동 준 배우 전무송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떠올려 본다. 63살의 세일즈맨은 오늘도 장거리 출장을 갔다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밤늦게 귀가한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아들과 만나지만 계속 사소한 언쟁을 벌인다. 힘겨운 하루를 마감한 그 다음 날 세일즈맨은 평소 꿈이었던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아 죽음의 길을 택한다. 24시간의 일을 포착해 다룬 이 연극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20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아버지의 역할, 가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의미를 담아내 언제 봐도 진한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세일즈맨의 죽음’ 하면 생각나는 연기자가 있다. 전무송(71)씨. 1983년 이 연극에 처음 출연한 이후 지금까지 수십 차례 출연했다.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지난 4월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이 ‘세일즈맨의 죽음’을 한국식으로 각색한 ‘아버지’와 지난달 대구시립극단에서 올린 원작 무대 등 올해에도 여러 차례 출연했다. 23일에는 ‘아버지’로 속초 무대에 선다. 이처럼 ‘세일즈맨의 죽음’은 전씨의 대표작이나 다름없다. 이외에도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해럴드 핀터의 ‘생일파티’ 등도 전무송과 함께 걸어온 작품들이다. 연극에서는 고뇌하는 캐릭터를,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아버지 같은 인자한 역할을 자주 맡았다. 전씨는 최근 연기 인생 50년을 맞아 자녀들이 헌정한 무대 ‘보물’(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또 한번 명품연기를 펼쳐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딸 전현아가 극본을 쓰고 사위 김진만이 연출했으며 아들 전진우는 아버지와 함께 배우로 무대에 올라 훈훈한 화제를 만들어냈다. 연기 인생 50주년에 이보다 더 뜻깊고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인생에서 새로운 ‘보물’을 얻은 전씨를 지난 19일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연극 ‘보물’을 마치고 난 하루 뒤여서 자연스럽게 뒤풀이 얘기가 나왔다. 예술의전당 인근 식당에서 삼겹살로 ‘쫑파티’를 했는데 동료 배우와 소설가, 불교계 인사 등 여러 사람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 줘 기분이 좋았다며 웃는다. 특히 외국에서 소식을 들은 팬들까지 찾아와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공연 기간 내내 좌석을 채워주신 관객들에게 더없이 감사하죠. 딸과 사위, 아들에게 50년 기념이다 뭐다 하지 말고 그냥 차분하게 해 나가자고 했지요.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희로애락이 담겨 있잖아요. 객석과 함께 웃고, 울고, 호흡하며 인생의 소중함,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도록 해주는 울림이 있는 시간을 갖자고 했지요. 그런데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고 관객들로부터 예상밖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주변에서 그동안의 대표작들로 50주년 무대를 꾸미라고 했지만 내놓을 만한 뭐가 없어 안 하려고 했는데 자녀가 후배 입장에서 만들어 준다고 해서 할 수 없이 기념공연을 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오랜만에 동료인 오영수씨와 함께 호흡을 맞춘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앞으로 자신의 연극인생에서 ‘보물’처럼 뜻깊은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언론과 많은 인터뷰를 한 터여서 전씨에게 되도록 같은 질문을 안 하려고 했다. 그랬더니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고민이 됐다. 문득 신문배달원 때의 일을 꺼냈다.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시절, 그는 인천에 있는 서울신문 보급소에서 1년 남짓 근무했던 적이 있다. 그 생각이 나서 반갑게 “서울신문 전직 사우가 되는 셈이네요.”라고 했다. 전씨는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웃으면서 말한다. “당시 보급소 사장님이 시조작가이자 인천시 역사를 연구하는 분이셨죠. 제가 결혼할 때 주례까지 봐 주시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그 사장님이 남산 드라마센터의 개관작인 연극 ‘햄릿’ 티켓을 주셨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배우라는 직업 자체를 동경했고 ‘햄릿’을 꼭 보고 싶어 했거든요.” ‘햄릿’ 출연진은 장민호, 김동원, 황정순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어서 더욱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리스 시대의 원형극장을 축소한 것 같은 무대를 보며 놀라고 사람들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연기를 펼치는 광경에 감탄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나서 팸플릿을 몇 번 들여다봤다. 이때 뒷면에 쓰여 있는 공고가 눈에 번쩍 들어왔다.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서울예술대학 전신)에서 학생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원서를 내고 오디션을 본 다음 아카데미 1기생으로 입학했다. 당시 희곡작가 동랑 유치진은 연중무휴 공연하는 극장을 목표로 드라마센터를 세웠고 배우를 제때 구하기 어렵자 배우 양성소로 연극 아카데미를 만들었던 것. 이때가 1962년으로 신구, 반효정, 이호재, 민지환씨 등이 동기생이었다. 극작·연출로는 윤대성, 오태석, 노경식씨 등 많은 인물이 1기생으로 출발했다. 전씨의 연기인생도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 유치진 선생님의 가르침을 많이 받았지요. 아마 처음에는 겉멋으로 연극을 하려 했던 것 같았나 봐요. 유치진 선생님이 ‘좋은 배우가 되려면 먼저 훌륭한 인간이 돼라’고 하셨지요. 배우는 무대에서 말하는 데 10년, 연기하는 데 10년 걸린다고 하셨지요. 저에게는 큰 숙제였고 그 숙제를 풀려고 하다 보니 벌써 50년이 됐습니다. (잠시 생각하고 나서)선생님은 지금도 어려운 연중무휴 공연을 내걸 만큼 연극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1964년 동랑 레퍼토리 극단에 입단해 유치진의 ‘춘향전’에서 이몽룡역을 맡아 프로 무대에 데뷔, 지금까지 배우의 길을 걸어오게 된다. 그동안 후회는 없었을까. 몇 번 고비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연극인이라고 하면 춥고 배고픈 직업으로 인식됐다. 딸을 낳았을 때 우윳값도 없어 연극을 때려치우고 풀빵 장수나 하겠다고 하자 부인이 “연극배우 전무송과 결혼했지 풀빵 장수랑 결혼했느냐.”고 하면서 적극 말렸다. 또한 부인이 이 장사 저 장사를 하면서 전씨가 연극할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왔다. 그의 아들과 딸이 연극계에 뛰어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부인이 일을 나가면 어린아이를 집에 혼자 놔둘 수 없어 연습실에 자주 데리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경찰도 되는 사람, 의사도 되는 사람으로 비쳤다. 전씨는 그런 고마운 가족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어떤 것일까. 1977년 뉴욕 라마마 극장에서 햄릿을 번안해 무대에 올린 ‘하멸태자’를 떠올린다. 연극 역사상 첫 해외 나들이로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는 물론 ‘브라보’를 외쳤다. 언론에 ‘뉴욕 하늘에 샛별이 떴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가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여권이나 비자 받기도 어려운 시절에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순회공연까지 했다. ‘하멸태자’는 지난해 똑같은 극장에서 다시 한번 공연돼 언론과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아마 오늘날의 한국 연극 발전에 작은 씨앗이 됐을 것”이라고 술회한다. 그가 간직한 ‘연기자의 끼’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외가 쪽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릴 때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란 충남 서산에서 자주 놀았다고 추억한다. 인천에서 통통배를 타고 7시간 만에 도착하면 외삼촌이 늘 반겼다. 함께 논두렁에서 물을 푸기도 하고 저녁이면 외삼촌한테 옛날이야기와 구전민요를 들었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그려진단다. “삼촌은 이야기꾼처럼 재미있게 잘 풀어나갔고 소리 또한 아주 잘했다.”고 회고한다.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우리 사우끼리 만났으니 소주 딱 한 잔 어떤가.”라며 정겹게 웃는다. 그의 법명은 다정(茶亭)이다. 영화 ‘만다라’와 TV드라마 ‘원효대사’등에 출연하면서 지관스님과 인연을 맺어 법명을 받았다. 비록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일지라도 올곧게 연기자로서 반백 년 살아온 인생. 다정처럼 여유가 담긴 행복한 미소에서 그동안 연극과 가족이라는 큰 ‘보물’을 얻었다는 것을 문득 느낄 수 있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전무송은 남산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1기·1964년 ‘춘향전’ 데뷔 1941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황해도 해주, 어머니는 충남 서산 출신이다. 인천중과 인천공고를 나왔다. 중학교 때는 야구부, 고등학교 때는 밴드부 등에서 활동했다. 1962년 남산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현 서울예술대) 1기생으로 입학해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프로 무대 데뷔작은 1964년 유치진의 ‘춘향전’이다. 이후 ‘하멸태자’ ‘세일즈맨의 죽음’ ‘고도를 기다리며’ ‘생일파티’ 등의 연극, ‘만다라’ ‘길소뜸’ ‘아부지’, ‘원효대사’, ‘왕과 비’ 등 수십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1977년 연극 사상 첫 해외공연인 뉴욕 라마마 극장을 시작으로 유럽 순회공연을 가졌다. 주요 수상으로는 제1회 연극비평가상 연기상(1978), 백상예술대상 연기상(1986년), 이해랑 연극상(2005), 동아연극상 연기상(2006) 등이 있다. 딸과 아들, 사위가 모두 연극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스탈린 외동딸 美망명 결심 소련이 남편치료 소홀한 탓”

    “스탈린 외동딸 美망명 결심 소련이 남편치료 소홀한 탓”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의 외동딸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가 1967년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미 연방수사국(FBI)이 그녀의 망명이 국제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FBI는 19일(현지시간) 1970년 결혼 후 이름을 라나 피터스로 바꾼 그녀가 지난해 위스콘신주의 한 양로원에서 사망하자 그녀의 미국 망명 배경과 동기, 조사 내용 등이 담긴 문서를 기밀대상에서 해제했다. 233쪽 분량의 이 문서에 따르면 피터스는 연인이자 사실상 남편인 인도 공산당의 저명 인사 브리제시 싱이 소련에서 병에 걸렸을 당시 소련 당국이 제대로 치료를 해주지 않아 망명을 결심했다. 1967년 4월 기록된 한 메모는 소련이 피터스의 미 망명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불안해질 수 있다고 여기고 크게 우려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서에 인용된 한 정보원은 “(피터스의 망명이)소련 탈출을 기도하고 있는 이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당시 소련 당국은 그녀의 망명으로 인해 스탈린과 집안이 더욱 곤경에 빠질 것이라는 판단하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내용의 메모도 확인됐다. 1926년 스탈린과 나데즈다 알릴루예바 사이에서 태어난 피터스는 어린 시절 스탈린에게 ‘작은 참새’라고 불리며 지극한 사랑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85세의 나이로 사망한 피터스는 자서전 ‘친구에게 보내는 스무 통의 편지’를 통해 소련 체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안갑성 “테너도 바리톤도 아니라구요? 둘 다 가능한 매력적인 ‘박쥐’죠”

    안갑성 “테너도 바리톤도 아니라구요? 둘 다 가능한 매력적인 ‘박쥐’죠”

    오페레타는 대사와 춤이 더해진 작은 오페라를 뜻한다. TV 연속극처럼 예습 없이 봐도 이해하기 쉽다. 유럽 큰 극장들의 인기 송년 레퍼토리 ‘박쥐’가 대표적이다. 1920년대 경제 공황기 오스트리아 빈 상류사회의 위선과 허영, 속물 근성을 풍자한 코미디다.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신나는 왈츠와 폴카가 곁들여져 연말 분위기에는 딱이다. 국립오페라단이 ‘박쥐’를 전막 공연하기로 한 건 꽤 오래전. 문제는 주인공 아이젠슈타인의 캐스팅이었다. ‘박쥐’는 언어유희가 도드라진 작품이다. 독일어 대사를 속사포 랩처럼 뱉어내는 성악가가 필요하다. 테너가 하기엔 낮고, 바리톤이 부르기엔 높은 음역이란 점도 걸림돌이다. 바그너 가극 전문 베테랑 테너 리처드 버클리 스틸이 먼저 낙점됐다. 하지만 4회 공연 중 나머지 2회를 책임질 한국가수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지난 2월 독일 베를린에 출장을 간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들은 오디션을 보러 온 바리톤 안갑성(31)을 만나고 깜짝 놀랐다. 20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뒤 유학을 떠난 터라 국내에서 인지도가 없는 것이 위험요인. 하지만 바리톤 중 가장 높은 음역을 소화하는 하이 바리톤인 데다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5년을 공부한 덕에 독일어가 입에 붙었다. 그와 일했던 슈타츠오퍼 극장 관계자도 추천했다. 신예 바리톤 안갑성이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박쥐’ 주인공으로 한국무대에 전격 데뷔하는 사연이다. 안갑성은 “아이젠슈타인은 테너가 부르기엔 낮고 바리톤이 부르기엔 높아 경계에 걸친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끼리 ‘테리톤’(테너+바리톤)이라고 부른다. 국립오페라단이 무명인 날 믿어준 덕에 까마득한 미래에 설 것으로 생각했던 예당(예술의전당)에서 데뷔를 하게 됐다. 떨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라며 웃었다. 이어 “‘박쥐’는 ‘무한도전’ 같다. 볼거리가 많고, 캐릭터 사이의 해프닝이 꼬리를 문다. 관객이 출연자와 같이 노는 느낌이다. 대학 때 처음 출연한 작품이 ‘박쥐’(당시는 조역 프랑크 역)였으니 각별한 인연”이라고 덧붙였다. 테너 버클리 스틸-소프라노 파멜라 암스트롱(로잘린데 역) 캐스팅과 비교할 때 안갑성-박은주(부산대 교수) 조합의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알프레드와 블린트란 테너 배역이 두 개가 더 있다. 소프라노와 삼중창을 할 때에도 테너가 아닌 바리톤이 아이젠슈타인을 맡아야 앙상블의 매력이 살아난다.”고 설명했다. 또 “아내로 나오는 박은주 선생님이 연상이다. 딴에는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의 고현정-천정명 커플이 결혼한 뒤 벌어진 해프닝이란 설정으로 접근했다.”면서 “팀워크가 워낙 끈끈하다. 내가 아이디어를 늘어놓으면 박 선생님이 ‘나이 어린 남자랑 몬 살겠다’고 농담한다. 그럼 나는 ‘샤치’(schatzi·자기야)라고 부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이답지 않은 입담, 성악가답지 않은 끼와 유머감각은 남다른 이력에서 비롯됐다. 성악을 시작한 건 인천 광성고 2학년 때다. 고1 때부터 중창단 활동을 하면서 노래를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다. 10개월 동안 벼락치기 레슨을 받았다. 입시곡 두 개를 달달 외웠다. 한예종에 덜컥 합격했다. 그때는 베이스였다. 하지만 대학에 적응하지 못 했다. “예고 출신이랑 게임이 안 됐다. 한 학기 동안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지내다가 해병대에 입대했다.”고 말했다. 보통 성악가들이 군악대에서 복무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선택. 하지만 그는 “공기 좋은 백령도에서 성대가 건강해져 돌아왔다.”며 웃었다. 복학 이후 바리톤으로 전향했다. 그동안 억지로 성대를 눌러서 저음을 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권투선수로 치면 체급을 올린 것과 마찬가지다. 처음엔 괴로웠다. 바리톤으로 옮기면서부터 유명 성악가의 목소리를 흉내낼 게 아니라 나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올인했다.”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 대신 독일로 유학을 간 까닭은 뭘까. 간단했다. “학비가 공짜”라고 했다. 이어 “독일만큼 졸업 후 극장에서 일할 기회가 많은 나라도 없다. 이탈리아에선 졸업생 100명 중 1~2명쯤 기회가 있다면, 독일은 50~60명은 기회가 있다.”고 덧붙였다. 베를린 국립음대 성악과 최고연주자 과정을 수석졸업한 그는 2010년 엠머리히 즈몰라상 수상 등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고 있다. 아직 유명극장 전속가수는 아니다. 하이 바리톤 배역이 드문 탓에 한 시즌 십수 편을 무대에 올리는 대형극장들이 그를 전속가수로 둘 이유는 없다. 그래도 그는 낙관적이다. 그는 “쉽게 말하면 비정규직”이라면서도 “내 목소리가 가진 장점을 어떤 분들은 (테너와 바리톤의 중간 의미로) 박쥐라고도 한다. 테너로 올릴 수도 바리톤으로 내릴 수도 있지만, 나만의 장점을 살리고 싶다.”며 웃었다. ‘박쥐’는 28일부터 새달 1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개그맨 김병만이 술취한 교도관 프로쉬 역할로 깜짝 출연한다. 1만~15만원.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전화 한통하면 아이들이 달라져요… 우리가 뽀느님”

    “전화 한통하면 아이들이 달라져요… 우리가 뽀느님”

    “이른 아침, 에디와 친구들이 뽀로로와 크롱을 찾아 도시를 헤매고 있어요.”(구자형·내레이션) “대체 어디 있는 거야.”(함수정·에디) “저기 과일이 잔뜩 있어!”(김환진·포비) 지난 14일 서울 논현동의 한 녹음실. 30~60대 중년 남녀가 한데 어울려 부르르 떠는 시늉까지 해보이며 쉼 없이 목청을 돋웠다. 때론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때론 진짜로 뛰어다니며 소리를 덧입히는 작업에 열중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녹음실에서 웃음이 터져 나았다. “나미 엄마 어디 있어요?” 잠시 뒤편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여성 성우가 ‘치고 나갈’ 시기를 놓친 채 겸연쩍게 웃어 보였다. 김래경 EBS 프로듀서(PD)가 눈길을 잠시 왼쪽 모니터로 돌리더니 이내 “선배님들, 호흡 끊기는 데부터 다시 갈게요.”라고 외쳤다. 다시 잠잠해진 녹음실 분위기…. ●브랜드가치 4000억원… ‘시즌4’도 인기 성우들은 5분짜리 단편 하나를 녹음하는 데 1시간 넘는 시간을 할애했다. 초겨울 날씨를 무색케할 정도로 녹음실 안은 푹푹 쪘고 성우들은 연거푸 물을 들이켰다. ‘뽀로로’의 제작사인 ㈜아이코닉스 관계자는 “오늘 녹음은 해외에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한 번외편 제작”이라며 “뽀로로는 이미 세계 110여 개국에 수출됐다.”고 설명했다. 2003년 11월 처음 방영한 풀 3D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가 내년 데뷔 10주년을 맞는다. ‘뽀통령’ ‘뽀느님’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이 프로그램은 올 2월, ‘시즌 4’로 옷을 갈아입고 변함없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만 4000억원, 서너 살 이상 아이를 둔 부모에겐 이미 대통령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뽀로로, 크롱, 에디, 루피, 패티, 포비, 해리….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사람이란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작은 숲 속 마을을 배경으로 아이들을 사로잡은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KBS와 EBS 등 지상파 방송의 공채 성우 출신인 이들은, 경력 20년 안팎으로 대한민국 대표 목소리를 품고 산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하이디, 아기공룡 둘리의 ‘둘리’ 등 ‘아! 이 목소리’ 하면 딱 알게 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뽀로로’ 속 캐릭터처럼 ‘꽃중년’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올해 환갑을 맞은 백곰 포비 역의 김환진(60)은 36년차인 극 중 최고참 성우이다. 굵직한 목소리가 돋보여 외화에선 조지 클루니나 짐 캐리의 목소리 단골 대역이다. 그런 그도 포비 목소리가 잘 안 나올 때면, 녹음실을 나와 담배 한 대 맛나게 피우고 돌아오곤 한다. 김환진은 “2003년 EBS에서 수개월간 비밀리에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첫 방영을 앞두고 파일럿 프로그램 녹음까지 마친 ‘뽀로로’ 출연 성우들이 모두 바뀌었다. 앞서 교체된 성우들과의 의리 때문에 출연을 망설이다 수락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우연하게’ 이곳에서 만난 베테랑 성우들은 9년째 한 식구처럼 살갑게 지내고 있다. 그는 “30대 중반의 두 아들이 어서 장가들어 손자 앞에서 포비 목소리로 연기해 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뽀로로 역의 이선(40)은 스스로 ‘성우테이너’라 부를 만큼 화제의 주인공. 지난해 KBS ‘탑밴드’에서 성우밴드의 보컬로 얼굴을 내밀었고, 연극무대를 오가며 배우로도 활약 중이다. 외화에선 앤절리나 졸리나 캐머런 디아즈의 목소리를 도맡는다. 그는 ‘유기농’ 성우로도 알려져 있다. 1992년 스무 살 나이에 KBS 성우로 출발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성대 결절을 겪은 뒤 그때부터 아침저녁 소금 가글에 술·담배 안 하고 맵고 짠 음식 안 먹고 탄산음료 안 마시고 한여름에도 미지근한 물만 먹기 때문이란다. 그는 “뽀로로 목소리를 내려면 성대를 최대한 좁혀서 소리가 삐져나오도록 쥐어짜야 한다.”면서 “실제로 뒤뚱뒤뚱 펭귄 발걸음을 옮기며 목소리를 연구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결혼 5년차를 맞은 이선의 집과 차에는 단 한 개의 뽀로로 인형이나 스티커도 없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인형 같은 걸 두고 보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유아 팬들이 선물로 인형을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웃음) 녹음실 안에선 뽀로로로 완벽하게 ‘빙의’되지만 현실에선 펭귄처럼 살 수 없다고도 했다. 반면 여우 에디 역의 함수정(50)은 아예 ‘뽀로로’로 외아들을 키웠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지난 9년간 엄마가 출연한 ‘뽀로로’를 일일이 모니터링해 주며 컸다.”면서 “밥 잘 안 먹는 친구 아이들이 전화로 제 에디 목소리를 들으면 밥 먹는 속도부터 달라진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의 음색은 ‘아기공룡 둘리’의 둘리, ‘구름빵’의 엄마 목소리로도 귀에 익숙하다. 비버 루피 역의 홍소영(41)은 녹음실 안팎의 모습이 그대로다. 루피 얼굴을 보는 순간 너무 행복하고, 대본만 봐도 벌써 손가락을 세 개로 오므려 완벽하게 변신한다는 것이다. 그는 “놀이동산에 가서 루피가 새겨진 큰 풍선 뒤에 숨어 ‘이모가 루피야.’하면 아이들이 자지러진다.”면서 “뽀로로 첫 방영 뒤 6~7개월이 지나 유모차와 놀이공원에 내걸린 뽀로로 인형을 보면서 ‘빵 터졌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벌새인 해리 역의 김서영(35)도 “발성할 때 입모양까지 해리에 맞춰 ‘개굴개굴개구리~’ 노래를 부른다.”면서 “조카들이 자랑스러워할 때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밥 안먹는 아이, 목소리 듣고 달라져 보람” 니콜 키드먼과 샌드라 블럭의 목소리로 알려진 정미숙(50)은 털털한 성격의 펭귄 소녀 패티 역. “5분짜리 한편 녹음하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리는 등 초창기에는 반쯤 정신 나간 상태로 살았다.”면서 “주변 아이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사건·사고 등으로 동질감에 호소하는 게 인기 비결”이라고 말했다. 맏딸인 이선영(24)도 영화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 목소리 연기로 알려졌다. 아기공룡 크롱과 로봇인 로디의 목소리를 동시에 내는 이미자(54)는 “다른 애니메이션은 보는 사람만 보지만 ‘뽀로로’는 아이부터 부모, 할아버지·할머니까지 가리지 않고 보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내레이션을 맡은 구자형(47)은 “이제 그만~”으로 유명한 텔레토비의 내레이션부터 다양한 다큐멘터리 해설까지 도맡아 온 전문가다. 그는 “군더더기 없이 에피소드에 집중하게 만드는 게 뽀로로의 힘”이라면서도 “뽀로로의 성공신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 애니메이션 관련 산업의 고용창출과 근무여건 등이 그리 좋아진 것 같지 않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일까. “수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한 여배우의 다섯 살배기 딸과 한 달간 하루 20분씩 친구가 돼 통화한 적이 있어요. 너무 큰 슬픔에 빠진 아이에게 마치 제가 뽀로로인 양 얘기해 줬는데, 20일쯤 지나자 아이가 물었어요. ‘뽀로로야, 그런데 넌 엄마가 있어?’라고…. 울컥했지만, 마음을 터준 아이에게 너무 고마웠어요.”(이선)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폐암 연구 써달라” 투병 中교포 1억 기부

    “폐암 연구 써달라” 투병 中교포 1억 기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원장 황태곤)은 이 병원에서 폐암으로 투병 중인 중국 교포 사업가 박예화(44·여)씨가 폐암 연구기금으로 써 달라며 1억원을 기부했다고 15일 밝혔다. 박씨는 중국 산둥(山東)성의 웨이하이(威海)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지난 9월 관광차 입국했다가 심한 감기 증세를 보여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선암종 폐암’ 진단을 받았다. 박씨는 현재 1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2차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박씨는 옌볜에서 태어나 1990년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를 졸업했으나 당시 천안문사태 등으로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탓에 취업이 되지 않자 1996년 같은 중국 동포인 이용국(46)씨와 결혼한 뒤 웨이하이에서 작은 봉제공장을 인수했다.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직원 1000여명을 둔 견실한 업체로 키웠으며 2007년에는 국내에 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박씨는 “병원 의료진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가족과 회사 직원들을 생각해서라도 폐암을 반드시 이겨내야겠다는 다짐으로 기부를 결심했다.”면서 “가톨릭 정신으로 주어지는 의료서비스에 감명받아 원목팀에서 영세를 위한 교리 공부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치의인 강진형 폐암센터 교수는 “환자의 치료 의지가 강하고 표준항암치료에 대한 순응도가 좋을 뿐 아니라 최신 표적항암치료에도 적합한 유전자를 가져 좋은 치료 결과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스크린 ‘신 스틸러’의 도발 “이제 무대까지 훔칠 거예요”

    스크린 ‘신 스틸러’의 도발 “이제 무대까지 훔칠 거예요”

    주연보다 더 매력적인 조연, ‘신 스틸러’로 불린 배우 고창석(42)이 이제는 무대까지 훔칠 준비를 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 고창석’이라…. 조금은 어색하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도 “뮤지컬을 해요?”라고 되묻는다. 사실 그가 연기가 아닌, 탈춤과 노래로 먼저 대중 앞에 섰다는 것을 아는 이가 많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다. 일단 많이 알려진 얘기부터 꺼내 보자. 지난해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의 ‘명품 조연 특집’에 출연했을 때다. “왜 연기를 시작했나?”라는 질문에 그는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엄청 마시고 기절했는데, 선배들이 데리고 가서 눕힌 곳이 연극반이었다.”고 대답했다. 좀 더 정확하게 부산외대 일본어과 89학번 신입생 고창석이 만취해 잠든 곳은 풍물패 동아리방이었다. 그렇게 탈춤을 배우고 민요를 부르면서 마당극에 참여했다. 장구가 좋고 탈춤이 재미있던 그는 술 한 잔 기울이고 학생운동도 하는 학창 생활을 이어 갔다. 그런데 끝도 없는 데모에 지쳐갔다. 대학생활이 힘겨워지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민중가요를 부르는 노래패 ‘희망새’에 들어갔다. 1년 정도 노래를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한 생활이 4년이 넘었다. 그 사이 함께 노래패 활동을 하던 아내 이정은(39·연극배우)을 만났고 인생 방향이 확 틀어졌다. 다양한 경험을 재산으로, 1998년 서울예대 연극과에 다시 입학했다. 영화에 얼굴을 드러내면서 ‘영화배우’ 수식어를 붙였다. “12년 전 서울에 와서 뮤지컬을 두어 개 했죠. 현대극장에서 올린 ‘장보고’와 ‘이순신’이었는데, 주연은 아니고 코러스고요. 이후에도 연극에 출연했었고요. 그러고 보니 4년 전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올린 신체극 ‘보이첵’이 최근작이네요. 이래 봬도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대표 배우인데….” 지난 7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고창석은 익숙한 그 표정으로 껄껄 웃으며 인터뷰를 이어 갔다. “20대에는 탈춤이 좋고, 20대 후반에는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았는데, 30대가 되니 안정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연기를 시작한 이유다. 2001년 아내를 따라 단편영화 ‘여름, 슈퍼맨’ 촬영장에 갔다가 현장에서 덜컥 캐스팅됐다. 그의 설명으로는 “뚱뚱한 슈퍼맨이라는 설정에 완벽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상업영화 데뷔작은 ‘마지막 늑대’(2004)이지만, 얼굴을 알린 작품은 ‘친절한 금자씨’(2004)다. 이후 웬만한 흥행 영화에는 그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캐스팅이 이어졌다. 이젠 액션·코미디 영화에서는 그가 나올까 은근히 기대할 정도다. 그런데 덜컥 뮤지컬을 선택했다. 오는 27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올리는 프랑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벽뚫남)다. 마르셀 에메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셸부르의 우산’, ‘007 시리즈’ 등 명곡을 만든 영화음악가 미셸 르그랑이 곡을 붙인 작품이다. 1996년 11월 파리에서 초연하고 이듬해 몰리에르상 최우수 뮤지컬상과 최우수 연출상을 수상했다. 벽을 뚫는 능력을 갖게 된 주인공 두티율은 임창정과 이종혁이 맡았고, 고창석은 임형준과 함께 의사 듀블과 변호사, 경찰 역할을 한다. “지금 이 순간이 살면서 가장 바쁜 시기”라면서도 지친 기색 대신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오랜만에 오르는 무대가 내게는 힐링의 공간인가 봅니다. 12년 동안 노래한 적이 없으니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이건 기분 좋은 긴장감이에요.” 감미로운 노래를 불러야 하거나, 높은 음을 지속적으로 내는 역할이 아닌 것도 다행이다. “게다가 역할이 정상적인 인물도 아니다.”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무대마저 탈환할 계획인가. 그는 내년 2월 말에 아내와 2인극 ‘타이피스트’를 올릴 계획도 세웠다. 6년 전 결혼기념일 선물로 ‘타이피스트’ 대본을 건네면서, 함께 작품을 만들자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물론 ‘벽뚫남’에서 고창석의 매력에 빠지는 게 먼저다. “드라마가 강하면서 음악도 좋고, 프랑스 특유의 움직임과 연극적인 몸짓이 내 스타일과 딱 맞는다.”라니, 스크린을 걷어낸 그가 얼마나 배꼽 빼줄지 기대감 상승이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오바마 집권 2기] 서민·노인·여성 집중 공략… ‘마이너파워’로 경합주 싹쓸이

    올해 미국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만 해도 경기침체 탓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대공황 이후 실업률이 7.2%를 넘는 상황에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는 사실도 오바마의 재선 가도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그렇다면 오바마는 어떤 전략으로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 재선에 성공하게 됐을까. 오바마의 선거운동 과정과 투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전면전을 펼치기보다는 특정 계층과 지역을 타깃으로 삼아 ‘정밀타격’(surgical strike)하는 전술이 적중한 것으로 분석된다. 내세울 경제 실적이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는 국민 전체를 상대로 경제 얘기를 떠들어봤자 설득력이 적을 것으로 판단, 캐스팅보트를 쥔 특정 계층의 이익을 확실히 보장해주는 식으로 표를 모았다고 볼 수 있다. 바둑으로 치면 대마(大馬)를 잡기보다는 작은 집을 차곡차곡 챙기는 전술을 사용한 셈이다. 오바마가 공략한 대표적 표적이 히스패닉계다. 지난 6월 오바마는 불법 이민 청소년 80만명에 대한 사면을 전격 단행했다. 이는 백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결국 히스패닉의 지지로 연결됐다. 개표 결과 히스패닉의 69%는 오바마에게, 29%는 밋 롬니에게 표를 던졌다. 4년 전 36% 포인트에서 올해 40% 포인트로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대부분 부동층주(스윙 스테이트)에서 히스패닉 인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스윙 스테이트 ‘싹쓸이’ 결과로 나타났다. 여성을 겨냥한 전략도 적중했다. 오바마는 기독교계가 반발할 수도 있는 낙태 권리 옹호 발언을 불사했는데, 이는 공화당 인사들의 성차별 발언과 대비되면서 오바마에게 이득을 가져왔다. 개표 결과 오바마는 미혼여성 지지율에서 롬니에 38% 포인트나 앞섰다. 오바마는 또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동성결혼 찬성 입장을 밝힘으로써 동성애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끌어냈다. 건강보험개혁(오바마케어)을 통해 서민과 노인층의 지지를 견인하고, ‘부유층 대 중산층’ 구도의 ‘계급전쟁’을 불사한 것도 득이 됐다. 지역적으로 오바마는 미 자동차 3사의 구제금융 조치를 실시, 최대 승부처인 오하이오의 표심을 붙들었다. 오하이오 개표 결과 자동차 연관산업이 많은 북부의 클리블랜드 지역에서 오바마에게 몰표가 나왔다. 오바마는 TV토론에서 청정에너지 개발을 거듭 강조했는데, 이는 스윙 스테이트인 콜로라도의 청정에너지 산업을 교묘하게 겨냥한 것이라고 CNN은 분석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우울증 50대’ 대안을 제시했더라면…/심영섭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강사

    [옴부즈맨 칼럼] ‘우울증 50대’ 대안을 제시했더라면…/심영섭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강사

    주말이면 신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커버스토리’라는 읽을거리 때문이다. ‘우울한 축제공화국’(10월 20일 자)처럼 잘못된 정책을 질타하기도 하고, 때로는 ‘영암 F1 코리아그랑프리’(10월 6일 자)나 ‘싸이의 힘’(9월 22일 자)처럼 성공스토리를 알려주기도 한다. 10월 27일에 게재된 ‘50대 남자 소리 없이 울고 있다’를 읽다 문득 떠오른 것은 조세희의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중년 가장인 난쟁이 김불이에게 정부의 도심재개발 정책과 무한성장으로 치닫는 사회가 준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난쟁이는 운명이 버거워 벽돌공장 굴뚝 위에서 천국을 향해 날아간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는 말은 무기력해진 중년 가장의 우울한 자기 고백이다. 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로 지칭한 50대 가장의 모습은 소설 속 난쟁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695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부머는 평균 고졸(44.7%) 학력에 결혼을 한 가장(83.5%)이고, 2.04명씩의 자녀를 두고 있다. 또 절반 이상(58.8%)은 임금 근로자로 주로 아파트(52.3%) 등 자기 집(59.6%)을 소유하고 있고, 평균자산은 부동산 소유로 인해 3억 300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국민연금(47.2%)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노후대책이 없는 세대다. 더욱이 주어진 인생의 또 다른 기회가 일주일에 2~3일 꼬박 일해도 매월 20만~30만원 받는 공공부문 근로가 전부라면 우울할 수밖에 없다. 자영업도 기사 속 58년 개띠 박씨처럼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인지 기사에서 지적하듯 ▲직장 내 고립과 실직에서 오는 사회적 자존감 하락 ▲경제적 궁핍과 노후 고민 ▲성장한 자녀와 소원한 아내 등 가족들의 관심 부족 ▲남성성과 힘의 쇠약에서 느끼는 좌절감 등으로 운명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50대 가장들의 모습은 슬프고 외로웠다. 50대는 우울증에도 쉽게 노출된다고 한다. 2007년에 2만 7000여명이던 50대 우울증 남성은 2011년 3만 2000명으로 급증했다. 이렇다 보니 난쟁이 김불이와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사망원인 통계에서 인구 10만명당 남성 자살자는 43.4명으로 여성(20.1명)의 두배다. 좋은 커버스토리였다. 현실을 감추기에 급급한 정치보다 더 현실감이 있어 좋았다. 패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 차라리 울어버리고 가족과 함께 소통하라고 제안한 것도 좋았다. 울지 못하는 중년들에게 용기가 필요하다. 허무함에 취해 마음이 가난해진 중년의 가장들에게 필요한 한 걸음일 것이다. 그러나 울고 나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연금과 퇴직의 불균형, 커져만 가는 사회적 불평등은 여전한데 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솔직해지는 것이 50대의 심리적 불안을 치유하는 방편의 하나일 수는 있겠지만 사회구조적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은 좀 아쉬웠다. 고령화사회에서 50대 가장의 실직은 본인과 가족에게 큰 불행이다. 사회적으로도 일할 수 있는 숙련 노동자의 조기 방출이다. 이들은 분명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노동력이다. 그런데 대선 출마자들도 청년실업은 고민하면서 조기은퇴의 문제점에 대한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별다른 관심조차 없는 듯싶다. 50대는 고정표인가? 아니다. 아마도 울고 나면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주말판 커버스토리를 읽다 보면 2%가량 부족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심층취재 부족과 대안 제시 부재 탓이다. 좀 더 기대되는 커버스토리를 위해 2%를 채워주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달면, “대우받고 살다가 갑자기 몸을 낮추려니 배알이 꼴렸다.(3면 기사 중)”라는 표현은 “배알이 뒤틀렸다.”“라고 순화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현실에 분노할지라도 기사는 냉정해야 한다. 신문은 한글을 아름답게 순화하고 품격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관가 포커스] ‘공직자 직장예절’ 책 화제

    김깍듯 사무관은 ○○부 최초의 여성국장인 이깐깐 국장과 함께 일하고 있다. 매너 좋기로 소문난 김 사무관이지만 이 국장을 모실 때는 늘 진땀을 흘린다. 이날도 된통 혼쭐이 났다. 김 사무관의 표현 및 행동 중 어떤 것이 잘못됐을까. ① “이 국장님, 장관님실에서 급히 찾으십니다.” ② 엘리베이터 탈 때 이 국장을 내리기 편한 출입문 옆쪽으로 안내했다. ③ 택시 뒷좌석에 함께 타면서 이 국장에 앞서 김 사무관이 먼저 올라탔다. ④ 회식장소인 2층 식당 계단을 오르며 이 국장을 앞장서게 하며 김 사무관은 두세 걸음 뒤따랐다. 행정안전부가 김 사무관과 100만 공무원을 위해 직장 내 예절의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으로 나섰다. 행안부는 28일 ‘공직자가 꼭 알아야 할 직장예절’이라는 작은 책자를 펴냈다. 사무실 안에서 상사, 동료와 함께 일할 때, 회의와 행사 의전을 챙겨야 할 때, 자동차나 승강기 등을 함께 탈 때 등 업무에 필요한 예절은 물론 결혼이나 문병, 조문 등 경조사 때 맞닥뜨릴 수 있는 애매한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또 외국 출장이나 외국 손님을 맞이할 때 문화권별로 서로 다른 인사법까지 망라돼 있다. 애초 행안부 선진화담당관실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파일을 행안부 내부 게시판에 올렸는데, 직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자 아예 전문가의 자문과 꼼꼼한 토론을 거친 뒤 책자 형태로 제작하게 된 것이다. 정종제 행안부 행정선진화기획관은 “작은 배려와 상호 존중이 넘치는 행복한 공직 문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공직자로서 상하·동료 관계는 물론 대외관계에서도 원활하고 매끄럽게 소통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직장예절’은 200여개의 행정기관과 연계하는 정부지식행정시스템(GKMC) 정보지식마당에도 올려 전체 공무원들이 함께 공유하게 될 예정이다. 맨처음 문제의 정답은 ①, ②, ④다. 이 국장은 김 사무관의 ③번 행동에서만 희미하게 웃음 지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①번은 사람이 아닌, 사무실을 존대하는 우스꽝스러운 표현이 됐다. “전화 오셨습니다.”와 마찬가지 잘못이다. ②번 엘리베이터에서는 들어가서 돌아섰을 때 오른쪽 구석이 상석이다. 또 ④번처럼 계단을 오를 때는 남성이 먼저 앞서야 한다. 상사와 부하를 떠나 여성의 뒷모습을 보며 올라가는 남성의 모습은 민망한 상황이다. 내려갈 때는 반대로 여성이 앞서는 것이 맞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고교토론 판2(OBS 일요일 오전 9시 55분) 청소년 토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고교토론 판’이 김현욱 아나운서와 함께 시즌2로 돌아왔다. 이번 시즌에는 한국 사회현안 가운데 고등학생들의 삶, 그들이 꿈꾸는 세상과 관련이 있으면서 동시에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첫 회로는 ‘대한민국은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주제로 치열한 토론전쟁을 벌인다. ●내 딸 서영이(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응급실에서 깨어난 삼재는 도망치듯 병원을 떠난다. 사라진 은인의 행방을 추적하던 우재는 어렵게 삼재의 동네를 찾아간다. 호정은 상우에게서 여자친구가 있다는 얘길 듣고 좌절한다. 한편 우재는 삼재의 생일 날, 우연히 서영의 핸드폰에 기록된 아버지라는 일정을 보게 된다. ●아들 녀석들(MBC 토요일 밤 8시 40분) 인옥은 현기와 미묘한 감정들을 정리하려 하고, 현기 또한 자신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병국과 정숙은 인옥과 현기의 모습에 서로 마음이 복잡하고, 정숙은 세라와 결혼을 추진한다. 민기는 신영을 향한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작업을 핑계로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서 민기 소설의 팬인 유리를 만난다. ●지구 4만㎞의 소원(OBS 토요일 밤 9시 15분) 인도양에 놓인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는 세계 최대의 차 생산지로 일 년 내내 재배가 가능한 푸른 차밭이 펼쳐져있다. 그곳에는 차밭을 맨발로 누비고 다니는 12살 소녀 다르시니가 산다. 다르시니는 차밭에서 혼자 일하며 고생하는 엄마를 돕기 위해 마을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는데…. ●나눔0700(EBS 토요일 오후 3시 50분) 전남 영암의 한 시골 마을에 이미경씨는 오늘도 아픈 몸을 이끌고 소일거리를 시작한다. 한편 올해 열아홉 살의 민선군은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 미경씨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프로그램에서는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KBS 스페셜(KBS1 일요일 밤 8시) 미국 미주리주 케이시빌시에 살고 있는 제리 블레이락은 하루 종일 산소호흡기를 코에 달고 산다. 폐의 기능이 80%가량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합성 버터밀크향(디아세틸) 때문이다. 그는 향료회사에서 버터밀크향을 팝콘에 배합하는 일을 하다가 그 향의 독성으로 폐가 망가져 버렸다. ●TV 동물농장(SBS 일요일 오전 9시 25분) 강원도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 만난 이봉숙 할머니는 반려견 흰둥이를 다시 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 가족들은 한번도 흰둥이를 병원에 데리고 오지 않았던 걸까. 사연인 즉, 입양 간 흰둥이가 할머니를 잊지 못하고 그곳을 뛰쳐나와 할머니 집 주변을 맴도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는 것인데….
  • [지금&여기] 도서관만 있다고 교양이 쌓이나요/강병철 사회2부 기자

    [지금&여기] 도서관만 있다고 교양이 쌓이나요/강병철 사회2부 기자

    몸이 무거워졌다. 사서 아내와 만난 덕에 자연스럽게 독서 시간이 늘고, 결혼 전 조금씩 하던 운동도 싹 끊어 버렸기 때문이다. 휴일에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내가 일하는 동네 도서관으로 간다. 그 매서운 시선을 느끼면서 열람실에 앉아 있자면 졸 겨를도 없이 활자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 학구열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도서관을 찾는 건 기꺼이 장려할 일이지만, 이 녀석들은 정말 매너가 꽝이다. 아이들은 발걸음도 힘차서 열람실 밖에서부터 등장을 예고하고, 열람실 안에서도 당당하게 휴대전화를 받는다. 그러면 아내를 비롯한 사서들은 “전화는 나가서 하세요.”, “학생들 조용히 해야죠.”라며 일일이 아이들을 타이르곤 한다. 결혼 전 다니던 도서관에서는 ‘빈자리 확보’가 사서들의 주요 업무였다. 달랑 연습장 한 권만 올려두고는 사라진 학생들 탓에 빈자리가 없으니, 시간마다 좌석을 점검하고 영역표시용 물품들을 걷으러 다니는 것이었다. 도서관에 자주 오는 어른들이라고 딱히 교양이 넘치는 건 아니다. 책 찢어먹고 오리발 내밀기, 하이힐 또각거리며 존재감 알리기, 열람실에 앉아서 노트북 두드리기 등 다양한 ‘진상 이용자’들은 어른들 사이에도 수두룩하다. 도서관 인프라는 계속 넓어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30년까지 도서관 504곳을 확충해 총 1372곳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자치구 단위에서도 작은 도서관 활성화 사업을 벌이고,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이색 도서관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도서관 수준’이 아니라 ‘도서관 이용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장기적으로 우리 도서관 인프라에 걸맞은 이용자 수준을 확보하는 방법 중 하나는 사서교사 확충이다. 아이들은 체계적인 도서관·독서 교육을 통해 도서관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도 함께 있다는 걸 배워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임용된 사서교사는 딱 1명이다. 한 사서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을 여기 인용할 만하다. “달랑 1명이라니. 대통령 뽑냐.” bckang@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대한민국 술박사 1호 정헌배 중앙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대한민국 술박사 1호 정헌배 중앙대 교수

    폴 발레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그대가 생각한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곧 그대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얼핏 들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 아닐까 싶다. 생각을 프랑스 ‘코냑’으로 옮겨본다. 프랑스의 코냐크 지방의 주민은 불과 1만 9000여 명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작은 읍 규모이다. 그런데 여기에 코냑 회사가 3000여 개가 있고 세계 200여개국에 수출한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잘사는 고장으로 소문나 있다. 그럴 것이, 국제공항이 있고 매년 영화제도 열릴 만큼 문화적으로도 풍요롭다. 왜? 단지 ‘코냑’이라는 술이 세계인들의 가슴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술꾼이든 아니든 코냐크 지방은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코냐크 지방의 사람들은 ‘코냑’을 안 마신다. 대신 주변 지역에서 생산하는 값이 싼 포도주를 마신다. ‘코냑’이 세계적인 명품주가 됐기 때문이다. 좀 더 외국인들에게 많이 마시도록 하는 수출전략과 배려의 차원이기도 하다. 코냐크 지방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 대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코냑을 몇 년, 몇십 년씩 오랜 세월 숙성시켜 세계인들에게 그 ‘가치’를 선물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코냑이나, 스카치 위스키, 포도주처럼 오랜 세월 숙성된 ‘빈티지’를 가진 우리의 전통술이 있을까. 결론은 ‘없다’라는 게 대체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없다’를 ‘있다’로 바꾸는 사람이 있다. 국내 유일이자 대한민국 술박사 1호로 알려진 정헌배(57) 중앙대 교수가 그 일에 매진하고 있다. 때마침 2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를 맞아 정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이 축제에서 자문역할을 하며 우리술을 세계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가을비가 쏟아지는 지난 22일 오후 경기도 안성에 있는 ‘정헌배 전통주 연구소’에서 정 교수를 만났다. 연구소 안에는 누룩이 익어 술이 발효되는 냄새로 가득했다. ●“名酒는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자부심” “여기는 술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술을 만들어내는 방앗간입니다. 술을 숙성시키는 것을 연구하고 분석해내는 곳이지요. 술을 좋아하고 또 특정한 날을 기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빈티지가 있는 스토리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곳이지요. 술은 살아 숨 쉬는 옹기나 오크(참나무)통 속에서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알코올 도수가 낮아지며 맛과 색상, 향기와 성분 등도 변합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숙성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알코올을 ‘천사의 몫’이라고 찬양을 합니다. 까닭에 숙성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의 술도 이제는 ‘빈티지’로 가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술 가운데 예를 들어 막걸리는 대개 10여 일 안팎의 숙성과정을 거쳐 시중에 나오지만 코냑이나 위스키는 17년, 21년, 30년 그리고 심지어는 100년 등 오랫동안의 숙성을 거치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그만큼 ‘명품주’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고 정 교수는 설명한다. “술은 오래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저장성도 뛰어나 금방 팔리지 않아도 큰 걱정이 없다.”라면서 “농산물을 주원료로 하기 때문에 지역특성을 반영하기에도 좋은 제품이다.”라고 강조한다. 특히 고부가가치의 상품성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확실히 검증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이젠 우리의 전통술도 숙성연한을 길게 해 세계인들에게 인기를 끄는 명품주로 만들어야 할 때가 됐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그런 명품주 생산과 함께 아름다운 음주문화를 갖자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명주(名酒)라는 것은 전통적 가치를 대물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대표적인 명주를 갖고 있고 후손들에게 물려줍니다. 프랑스의 코냑이 좋은 예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내로라할 만한 주종이 없어요. 이제는 우리도 100년 묵은 술과 아름다운 술 문화를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이런 생각에 4년 전부터 우리의 전통 특산물인 인삼과 안성 지방의 쌀을 원료로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문을 듣고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부부가 결혼식 30주년을 4~5년 앞두고 미리 주문하는 술, 자식이 부모 회갑 기념식 때 선물로 준비하는 술, 결혼 후 첫 자식을 낳은 부부가 나중에 자녀의 결혼식 때 줄 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에 맞춰 ‘노사모’에서 주문한 술, 대학입학을 기념하기 위한 술 등 제각기 사연이 많다. 얼마 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60주년 때 사용하고자 위스키 60병을 미리 만들어놓는 일도 이와 같은 것이다. 주문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인삼주 술도가에서 직접 술을 담그는 행사를 하는 때도 있다. 담근 술은 지하 숙성고에서 최소 3년 이상 숙성과정을 거쳐야 찾아갈 수 있다. 요즘 들어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외국 관광객들도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담근 ‘빈티지 인삼주’(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는 인삼주는 소주에다 인삼을 담는 것이지만 이곳 인삼주는 인삼을 쪄서 홍삼화한 다음 누룩과 함께 위스키나 코냑처럼 오랜 시간 숙성시킨다.) 술독은 모두 2000여 통. 지하숙성고에 내려가 봤더니 이 술독들은 대금과 가야금 등 우리의 전통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숙성되고 있었다. 술독마다 각 사연을 담은 내용과 술 주인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방송인 주병진씨 등 알 만한 인사들의 이름도 꽤 많이 눈에 띄었다. 대학교수인 그가 어떻게 이 일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어릴 적 그의 꿈은 음악가가 되는 것이었다. 대구 경상중학교와 고교 시절만 해도 트럼펫을 불며 그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집안 형편상 음악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영남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장차 멋진 군인의 길을 걷고자 학군단(ROTC)에서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한 달만에 시력미달로 중도에 하차했고 바로 민방위에 편입됐다. 이 무렵 그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장학금을 받게 됐다. 국가의 고마움을 느끼게 된 그는 수출 보국에 도움되는 일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중 술 전문가가 되기로 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것이 수출이며 농산물 가공품은 시간이 갈수록 좋아진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때 명주는 그 나라의 사회, 문화적 자부심이며 술은 전통적 가치와 사랑의 대물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술문화는 국적과 민족성이 뚜렷해 나라마다 특색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대학 3,4학년 때 프랑스어 공부를 했으며 졸업 후 1년 동안 직장 다니며 유학자금을 마련한 뒤 ‘생각했던 대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남부 프랑스 몽펠리에 있는 폴 발레리 대학에서 6개월간 프랑스어 공부를 할 때 폴 발레리의 명언을 접하면서 감동을 받았다. 이후 파리 9대학 박사과정(술 마케팅)에 들어갔다. 그는 이때 ‘프랑스 포도주 시장 제도 및 유통연구서’ ‘맥주의 중장기 소비예측’ 등 발효주 중심의 연구에서 세계적인 소비량을 자랑하는 럼, 보드카, 위스키, 코냑 등 증류 숙성주 연구로 점차 확대시켜나갔다. 아울러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 지역을 다니면서 논문 자료를 수집했다. 결국 ‘세계 주류시장의 국제 마케팅 전략과 전망’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상이 빚은 名酒는 후손들과 뜨겁게 이어주죠” “프랑스에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알고 지내던 친구가 저를 집으로 초대하더군요. 식사를 마치더니 친구가 ‘파라다이스에 갈래?’라고 제의하더군요. 처음에는 무슨 룸살롱 같은 술집인가 했어요. 그런데 지하의 술 저장고에 데려갔습니다. 술통이 많이 있더군요. 친구는 한 통을 가리키면서 ‘우리 아버지가 내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서 담그신거야.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어 마시라고 하셨지’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며 술을 한 모금 마셨더니 그 친구의 조상과 잠시 연결되는 느낌이 오더라구요.” 정 교수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우리가 제사를 지낼 때 음복하는 이유도 조상과 만나는 일이며 특히 조상이 빚은 명주는 후손들과 또 한 번 뜨겁게 연결되는 일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의 꿈은 ‘우리 술의 세계화’이며 ‘아름다운 음주문화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인삼주 숙성 등과 관련해 특허 4개를 갖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또 대학에서 아름다운 음주문화와 술은 인류가 아닌 동물이 먼저 마셨다, 소주는 아랍의 향수 제조법에서 유래했다는 등의 술과 관련된 오해와 진실 등도 강의한다. 또 ‘술나라 헌법’과 ‘술나라의 십불출(十不出)’ 등의 흥미로운 내용도 가끔 설파한다. 술 안 마시고 안주만 먹는 사람, 남의 술로 제 생색을 내는 사람, 술잔 잡고 잔소리하는 사람, 술 먹다가 딴 곳에 가는 사람, 술 먹고 따를 줄 모르는 사람, 남의 술만 먹고 제 술을 안 내는 사람, 술자리에서 축사를 오래한 사람 등이 십불출에 포함된다며 웃는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정헌배 교수는… 1955년 구미에서 태어났다. 경상중과 경북사대부고를 나온 뒤 영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1979년 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폴 발레리 대학에서 어학공부를 마치고 파리9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1984년 이 대학에서 ‘술 마케팅’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3월부터 현재까지 중앙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재무부 세제발전심의위원, 농림부 전통주심사위원 등을 거쳐 공정거래위원회, 규제개혁위원회, 청소년보호위원 자문교수로 활약하면서 우리나라 주류산업 정책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왔다. 이를 통해 새롭고 다양한 술이 제조, 판매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많은 역할을 해왔다. 청소년 대학생의 음주문화 개선을 위해 중앙대에 교양과목으로 ‘명주와 주도’라는 과목을 개설해 직접 강의하면서 음주문화시민연대를 운영하기도 했다. 우리술 세계화를 위해 2003년 ‘정헌배 인삼주가’를 설립,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아울러 경기도 안성에 ‘세계명주마을’을 포함한 우리 술 테마파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류제조 특허4개와 옹기독 실용신안 등 다수의 지적 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술나라 이야기’(2011) 등이 있다.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3) 대전 부용로·사득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3) 대전 부용로·사득로

    대전 중구 부사동(芙沙同)에는 지명과 관련한 두 가지 설이 전해내려온다. 보문산 동편 자락에 산비탈을 깎아 형성된 마을 형태가 연꽃이 물에 떠있는 명당을 일컫는 ‘연화부수형’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백제시대 부용과 사득의 설화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일제시대까지 부사리와 보문정 등으로 불리다 1946년 보문정에서 부사동으로 이름이 바뀐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구가 오랫동안 대전의 중심지였지만 부사동은 화려했던 과거를 찾아볼 수 없는 낙후 동네여서 격세감이 든다. 부용로와 사득로는 주요 거점을 연결하는 간선도로가 아니라 부용과 사득이 살던 윗말(상부사리)과 아랫말(하부사리)를 잇는 작은 길이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보문산 동편 자락 깎아 만든 마을 ‘부사동’ 부용로는 보운초등학교 앞에서 청란여고 후문까지 1.09㎞, 사득로는 부사네거리에서 남대전등기소를 잇는 길로 전체 길이가 876m다. 백제시대 윗말에는 부용 처녀가, 아랫말에는 사득이라는 총각이 살았는데 두 마을은 공동으로 우물(바가지샘)을 사용했다. 고전평(지형이 높은 땅)에 위치, 가뭄이 들면 샘물이 부족해져 주민들은 1㎞나 떨어진 황새샘(현 한밭운동장)까지 내려와 물을 길어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물을 먼저 사용하기 위한 주민들의 경쟁이 벌어지면서 사이는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물을 길러 다니면서 사득과 부용은 정이 들었고 결혼까지 약속했다. 그러나 사득이 신라와 전쟁에 나가 전사하고, 사득을 잊지못한 부용마저 매일 마을 뒷산 선바위에 올라 치성을 드리다 실족해 죽었다. 그 후 마을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샘이 말라버렸다. 마을 주민들은 기우제를 지내며 정성을 다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어느 날 아랫마을의 가장 나이가 많은 좌상(座上) 노인의 꿈에 부용이가 나타나 ‘칠석날’ 영혼 결혼식을 올려주고 합궁을 시켜달라고 말했다. 윗마을 노인에게도 사득이가 꿈 속에서 똑같은 부탁을 했다. 두 마을에서는 칠월칠석날 영혼혼례를 치르기로 의견을 모아 샘을 깨끗이 치우고 백설기와 음식을 차려 고사를 지냈다. 또 짚으로 부용이와 사득이 모습을 만들어 영혼 결혼식 올린 뒤 합궁을 시키자 샘물이 펑펑 쏟아졌다. 이후 두 마을은 화합했고 주민들은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마을샘을 부사샘, 동네이름을 부사리로 정했다. 배성희 대전 중구 새주소담당은 “부용로와 사득로는 지역의 설화를 새 주소로 활용했지만 선바위를 제외하고 관련 유물이나 유적이 없어 아쉽다.”면서도 “지역 주민들이 잘 아는 내용이다보니 새 주소에 대한 애정이나 인식은 훨씬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사동은 6·25 전쟁 당시 내려온 피란민들이 보문산 자락에 정착하고, 금산에서 인삼 농사를 통해 돈을 번 이들이 대전으로 이사한 곳이다. 동민 7500명 가운데 토박이는 20%에 불과하다. 부사동에 직행버스 터미널이 생기고, 인삼 구매지가 조성된 것에는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2010년 주거환경개선사업(무지개프로젝트)이 마무리돼 도로가 정비되고 주택 개량이 이뤄져 옛 모습이 사라졌지만 2000년대 초기만 해도 차 한 대가 겨우 통행할 수 있는, 판자촌이 남아 있던 대전의 대표적 낙후지역 중 한 곳이다. 지금도 겨울철 눈이 내리면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다. 달동네인 부용로는 시작부터 오르막길이라 굳이 생활해보지 않았더라도 팍팍한 정주 환경이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좋은 기운이 서린 지역’이어서 그런지 주변에 7개 학교가 들어섰고, 사찰과 점집이 몰려 있는 것도 특징이다. 부용이 살았다는 집은 현재의 청란여중·고 부근, 사득이가 살았다는 하부사리는 청란여고 정문 앞과 남대전고등학교 정문 앞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하부사리는 ‘차라리’(뗏집거리)라고도 불렸는데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떼로 집을 지어 살았다고 전한다. 두 길의 중간지점에 대전보문종합사회복지관(부용로 41번길 55)이 조성됐다. 복지관에서 선바위로 올라가는 길에는 지자체가 조성한 부사샘과 부용·사득이 탑이 만들어졌다. 부용이 떨어져 죽었다는 선바위는 부용바우, 아들바우로도 불린다. 선바위는 사람이 선 모습과 비슷하다고 붙여졌고, 아들바우는 아들을 못 낳는 사람이 칠월칠석날 아들 낳기를 기원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사득로에서 부용로로 가는 길에는 장애인들이 모여 생활하는 ‘쉴만한 물가’(부용로 72)가 있다. 최근 기업들의 지원이 줄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전경이 장애우들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기를 기원한다. 부용로를 따라 가면 대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한솔아파트(부용로 55)가 있다. 고층 아파트가 아니지만 위용만큼은 어느 아파트에 뒤지지 않는다. 박종철 부사동장은 “좁은 길과 판자촌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무지개프로젝트를 통해 길이 넓어지고 공원 및 벽화 조성 등을 통해 환경이 많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칼국수·자동차특화거리 조성 부사동 일대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담고 있다. 중구는 160개의 칼국수집이 있을 정도로 칼국수가 대표 음식이다. 그중에서도 대전중학교 정문 앞은 대전을 대표하는 칼국수거리로, 매운 칼국수의 ‘메카’와 같은 곳이다. 현재 재개발이 진행돼 유명 칼국수집 일부가 인근으로 옮겨갔지만 옛 추억을 잊지 못하는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시간을 내 일부러 찾아가는 명소다. 한밭운동장 주변은 전국 최초의 자동차 특화거리가 조성돼 있다. 차량등록사업소가 한밭운동장으로 이전하면서 자동차 관련 업소가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80여곳이 포진했다. 자동차 정비에서 오디오와 시트커버, 폐차대행 등 자동차에 관한 모든 업종이 들어서 자동차에 관련된 민원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자동차 전공 학생들에게 실습과 견문을 높이는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취업으로 연계되기도 한다. 글 사진 대전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24회는 경북 고령의 우륵로와 정정골길을 소개합니다.
  • [23일 TV 하이라이트]

    ●즐거운 책 읽기(KBS1 밤 12시 40분) 한 제목의 소설을 두 사람의 작가가 함께 쓴 장편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일본의 에쿠니 가오리와 쓰지 히토나리가 2년여에 걸쳐 실제로 연애하듯이 써내려간 러브 스토리다. 프로그램에서는 10년 뒤 재회의 약속을 가슴에 묻어 둔 채 서로 다른 삶을 사는 헤어진 연인들의 인생을 그리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1 대 100(KBS2 밤 8시 50분) 배우 이훈, 한의사 김오곤이 각각 1인에 도전한다. 1인에 맞서는 막강한 100인 군단으로는 ‘연예인퀴즈군단’, ‘예금보호공사’, ‘하이원 리조트 선수단’, 연세대 치과보존과 레지던트 ‘골든티쓰’, 전국 대학생 홍보대사 연합 ‘ASA-K’, 주부 모델들의 모임 ‘미모회’, 그리고 69인의 예심 통과자들이 출연해 불꽃 튀는 승부가 펼쳐진다. ●엄마가 뭐길래(MBC 밤 7시 45분) 미선은 정학을 통해 승수가 화장실에서 앉아서 소변을 보도록 종용하고, 소심한 정학은 이를 승수에게 말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결국 서형과 승수, 미선과 정학은 남자가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에 대해 갑론을박하기 시작한다. 한편 새론은 명수 앞에서어른스럽게 옷을 입고 행동하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좋은 아침(SBS 오전 9시 10분) 계단을 기어오르는 그녀의 충격적인 실태가 공개되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193㎏ 초고도 비만녀 이복순씨. 더 줄지 않는 몸무게로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위 밴드 조절 수술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복순 씨의 생애 마지막 다이어트로 수술 후 100일.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으로 건강한 다이어트를 하는 그녀를 만나 본다. ●장수가족 건강의 비밀(EBS 밤 10시 45분) 노랗게 벼가 익어 가고 있는 전남 장성의 작은 마을에 98세 할아버지와 두 살 증손녀 등 4대가 함께 부대끼며 살고 있다. 1대 김정호 할아버지는 고령의 나이에도 여전히 정정한 모습으로 멋과 풍류를 즐긴다. 집안의 중심으로 가족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다. 마음씨도 넉넉하고 느긋한 할아버지의 일상을 엿본다. ●가족(OBS 밤 11시 5분) 지리산 자락 아래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털보 아재 김문금씨와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의 아내 이환숙씨가 산다. 두 부부는 결혼 후 무작정 산골 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다음 날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그 아래 텐트를 치고,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그렇게 무작정 시작한 25년 산골 생활은 부부를 참 많이 변화시켰다는데….
  • [Weekly Health Issue] 환자 사례로 보는 고령임신 궁금증

    대학 졸업 후 줄곧 직장생활을 한 김은미(40)씨는 서른여섯 나던 2008년에 결혼해 이듬해 임신을 했다. 하지만 까닭 모를 자연유산으로 첫 아이를 잃은 뒤 서른여덟에야 어렵게 임신에 성공했다. 한번 유산을 경험한 김씨는 아예 회사를 그만 두고 임신 관리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늦은 임신이 불안했던 그는 임신 16주 차에 기형아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다운증후군 수치가 1:141로, 정상치인 1:270보다 높았다. 의사는 “정확한 검사가 필요하다.”며 양수검사를 권했지만 김씨는 망설였다. “양수검사를 하려면 배에 주사바늘을 꽂아 양수를 뽑아야 하는데, 이게 태아에게 안 좋다.”고 주변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나서다. 그러나 다운증후군이 의심되는 터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출산할 때까지 걱정을 안고 사느니 검사를 통해 빨리 결과를 아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겨 바로 양수검사를 시행했다. 다행히 다운증후군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등 임신관리에 정성을 다했다. 덕분에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아기를 출산한 김씨는 “처음 임신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많은 관심을 못 가졌지만 나이도 있고, 특히 한번 유산을 겪은 터라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건강한 아기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면서 “정기적으로 산전 진찰을 받은 것은 물론 몸의 작은 변화까지 주치의와 상의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제왕절개 대신 정상 분만으로 얻은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미혜 교수는 “고령임신은 정상 임신보다 훨씬 신중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고령임신부 대부분이 바른 정보와 관리를 못 받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고령임신이 느는 추세를 감안해 이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령임신일수록 임신부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철저하게 산전검사와 관리를 받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가든파이브 웨딩컨벤션, 체플웨딩홀로 거듭나

    가든파이브 웨딩컨벤션, 체플웨딩홀로 거듭나

    가을 결혼성수기를 앞두고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가든파이브 웨딩컨벤션이 인테리어 리모델링 공사를 완공했다. 지난 7월16일부터 8월15일까지 진행된 리뉴얼 공사는 웨딩홀 내부, 로비 및 신부대기실 등 전면적으로 실시됐다. 심플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기존의 분위기에서 모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스타일로 변모해 웨딩홀의 품격을 높였다. 체플웨딩 컨셉으로 진행된 이번 리모델링은 웨딩홀의 경우 화이트 버진로드로 예식의 깊이와 깔끔함 및 고급스러움을 더했고 캔들 장식으로 따뜻함과 화사함을 불어넣었다. 벽면과 하객 의자 등도 브라운톤으로 포인트를 줘 격조높은 웨딩홀을 탄생시켰다. 아울러 신부대기실은 유럽 여왕의 방을 연상케 하듯 깨끗한 하얀 배경에 크고 작은 눈꽃패턴으로 포인트를 줬으며 은은한 색상에 금색 테두리를 두른 신부용 의자를 둬 럭셔리한 느낌을 살렸다. 로비 및 복도는 밝은색과 어두운 색의 조화로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넓고 쾌적한 공간으로 이뤄져 다수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가든파이브 웨딩컨벤션 최용섭 대표는 “가을 결혼 성수기에 맞춰 웨딩홀 리모델링 공사를 마무리했으며 예식의 품격을 높여주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웨딩홀 추천을 받은 고객들의 문의가 높은 상황”이라면서 “예식장뿐 아니라 연회장 및 다양한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어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든파이브 웨딩컨벤션은 스카이뷰가 보이는 넓은 연회장이 있어 피로연 이외에도 각종 세미나 및 단체행사의 장소로도 추천되는 곳이다. 피로연 메뉴는 한식, 중식, 양식과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제공되며 특급호텔 출신의 주방장이 직접 요리를 만들어 한층 높은 맛과 품질을 보장한다. 가든파이브 웨딩컨벤션은 지하철 8호선 장지역에서 도보 7분 거리인 서울 송파구 문정동 292 동남권 유통단지 가든파이브 TOOL 10층에 위치해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가든파이브 웨딩컨벤션 홈페이지(www.garden5wedding.co.kr)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인터넷뉴스팀
  • 창녀엄마·패륜아 다룬 변태감독? 내 꿈은 멜로감독!

    창녀엄마·패륜아 다룬 변태감독? 내 꿈은 멜로감독!

    영화 ‘아버지는 개다’(2010)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두들겨 팬다. ‘엄마는 창녀다’(2011)에서 아들은 포주로 엄마를 부린다. 제목과 줄거리만 들어도 역하다. 그런데 전 세계 영화제 프로그래머와 관객들은 펄떡거리는 그의 영화 세계에 반했다. 끔찍한 삶 속에 허우적거리는 가족 이야기,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풀어가는 그만의 방식에 주목한 것. 제목부터 파격이다 보니 투자자가 붙을 리 없다. 영어 보모, 번역, 결혼식·CF 촬영 등 아르바이트로 몇백만 원이 모이면 영화를 찍었다. 기성 배우들은 출연을 꺼릴 뿐더러 제작비도 아낄 겸 웬만한 작품에선 아예 주연을 했다. 이상우(41) 감독 얘기다. 그가 10번째 장편 ‘바비’(작은 25일 개봉)로 돌아왔다. 사채를 끌어 500만원 안팎으로 찍었던 이전 영화들과 달리 아리랑TV 등에서 1억원에 가까운 돈을 댔다. 한국 상업영화 평균제작비가 4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한없이 미약한 수준이다. 그래도 이천희와 김새론·아론 자매가 노개런티로 참여하면서 ‘상업영화’ 모양새를 갖췄다. ‘바비’는 정신박약 아버지·망나니 삼촌과 함께 포항 민박집에서 사는 어린 자매의 잔혹한 삶을 그렸다. 망나니 삼촌(이천희)은 미국에 큰 조카 순영(김새론·아래)을 입양 보내려 한다.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는 순영은 아버지와 동생 때문에 거부한다. 반면 ‘아메리칸 드림’에 젖어 있는 동생 순자(김아론·위)는 가지 못해 안달이 났다. 하지만, 이미 딸 둘을 둔 미국인이 한국 소녀를 입양하려는 데는 꿍꿍이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슬픈 결말로 치닫는다. 입양을 가장한 장기매매는 22년 전 실제 있었다. 한 감독이 영화로 만들려고 했지만,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우려한 정부 압력으로 중단됐다는 게 이 감독의 설명이다. 당시 조감독과 알고 지낸 이 감독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영화는 의외의 만남으로 급물살을 탔다. ‘아버지는 개다’로 2년 전 홍콩영화제에 참가한 이 감독은 ‘바비’에서 미국인 딸로 나온 캣 테보의 친아버지를 만났다. 딸이 출연할 영화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열혈 아버지는 이 감독에 반했다. ‘바비’의 얘기를 듣더니 딸의 출연은 물론, 투자까지 거들겠다고 나섰다. 마침 아리랑TV가 투자자로 나섰다. 이 감독으로선 남의 돈으로 처음 영화를 찍게 됐다. “워낙 극악무도한 영화들을 찍었기 때문에”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아역배우는 꿈도 꾸지 않았다. ‘아저씨’로 유명세를 탄 김새론의 어머니에게 시나리오가 들어간 건 행운. “(전작 이미지 탓에) 내가 잔뜩 겁을 먹고 새론이 어머니를 만났다. 그런데 선뜻 승낙했다. 새론이는 천재다. 시나리오를 한번 훑더니 맥락을 다 파악하더라.” 이어 “새론이는 NG가 많아야 한번이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눈물을 흘린다. 동생 아론이에게는 ‘언니는 저렇게 잘 하지 않니’란 식으로 시샘을 돋웠다. 새론이야 검증된 연기파이지만, 아론이도 대사 톤이나 눈빛이 아주 좋았다. 해외에서는 외려 아론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위기도 있었다. 민박집 손님으로 출연한 이 감독이 3000원을 건네며 순영을 더듬는 장면에서 사달이 났다. 시나리오에는 뭉뚱그렸던 장면인데 이 감독이 애드립으로 변태 흉내를 냈다. 김새론이 눈물을 펑펑 쏟아 촬영은 중단됐다. “한동안 새론이와 서먹서먹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바비’는 이 감독 영화로는 처음 30개 안팎의 스크린에 걸린다. ‘영화관 키드’였던 그에게 꿈같은 일. 초등학교 때부터 극장에서 살았다. 수업시간표는 몰라도 대한극장·단성사 등의 상영시간은 줄줄이 뀄다. 고교 때는 이장호 감독의 판 영화사 사무실을 기웃거리며 연출부를 시켜달라고 졸랐다. 정작 첫 단추는 배우로 풀렸다. 고3 때 황규덕 감독의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1990) 오디션에서 400대1의 경쟁을 뚫었다. 당시 뽑힌 15명 가운데 영화판에 남은 건 이 감독과 배우 정재영뿐. 점수가 나올 턱이 없었다. 4수를 했지만, 대학 연극영화과 입시에 줄줄이 떨어졌다. 방위병 시절 쓴 시나리오로 1994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공모전 장려상을 타기도 했다(당시 1등은 훗날 이 감독이 모신 김기덕 감독). 하지만 막둥이 아들이 대학생 되는 게 소원이던 어머니를 위해 미국행을 택했다. “죽기 살기로 했다. 처음 시애틀의 아트스쿨을 다녔지만, 그만뒀다.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알 만한 대학에 가고 싶었다. 기적적으로 UC버클리에 붙었다. 등록금이 700만~800만원이라 졸업할 때까지 식당에서 일했다.” 미국 생활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공중전화 박스에 설치된 사제폭탄이 터져 한쪽 눈을 실명했다. “석 달을 병원에 있었다. 실명을 하면 영화를 못 찍게 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다.”고 떠올렸다. 8년 만에 귀국했지만, 미국 학벌은 별 도움이 안됐다. 김기덕 감독 밑에서 ‘숨’ ‘시간’의 연출부에서 일하고, 6년 동안 시나리오만 썼다. “4년 동안 가장 큰 돈을 만진 게 50만원이다. 이러다가 영화를 못 찍고 끝나겠구나 싶더라. 아버지 일을 도와 300만원을 만들어 필리핀으로 떠났다. 현지에서 사기꾼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배우와 스태프까지 다 구했다. 국내로 들어와 사채를 끌어 완성한 게 ‘트로피칼 마닐라’다.” 당시 쓴 사채는 4000만원쯤 된다. 훗날 이자까지 8000만원으로 불어난 빚을 갚을 때까지 사채업자에게 시달렸다. 이 감독은 “다시는 안 쓴다. 신체포기각서를 썼었다. 그나마 ‘엄마는 창녀다’가 화제를 모으면서 유예를 해줬다. 그거 아니었으면 지금쯤….”이라며 진저리를 쳤다. 그에게는 ‘변태감독’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파격적인 소재와 제목 탓. 기분 나쁠 법도 하지만 그는 “‘변태감독’으로 기억돼도 나쁠 건 없다. 연줄도, 돈도 없는 내가 살아남으려고, 영화제 초청을 받으려고 전략적으로 세게 갔을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조선 최초 성형외과 의사를 소재로 한 사극을 준비 중이다. 이번엔 수십 억원 짜리다. 하하. 궁극적으로는 판타지 멜로를 찍고 싶다. 입봉작으로 준비했던 ‘심연’은 상어가 인간의 몸을 빌려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다. 나랑 너무 안 어울린다고? 하하하.”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대낮 강남서 치정 칼부림

    서울 강남의 주택가에서 삼각관계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살인 사건이 발생해 2명이 숨졌다. 16일 낮 12시쯤 강남구 역삼동의 한 빌라에서 오모(29)씨가 내연관계인 최모(31·여)씨와 그의 동거남 박모(33)씨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오씨는 택배기사로 가장해 초인종을 누른 뒤 문을 연 애인 최씨의 등을 준비해 간 흉기로 두 차례 찔렀고 이를 말리는 박씨의 얼굴, 배, 가슴 등을 향해 열 차례 이상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서는 오씨가 준비해 간 것으로 보이는 흉기와 최씨가 집에서 꺼내 든 것으로 보이는 식칼 등 두 개의 흉기가 발견됐다. 경찰은 “상처 부위와 깊이, 혈흔 위치 등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두 남자가 격렬하게 싸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현관, 안방, 부엌 등 18평 빌라 전체에 유혈이 낭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작은 방에 숨어 있던 최씨의 지인 장모(30·여)씨는 “최씨와 박씨는 결혼을 전제로 동거해 왔는데 몇 달 전부터 오씨 문제로 자주 다퉜다.”면서 “오씨와 최씨가 가까워져 삼각관계가 된 것 같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날 오전에도 최씨가 “앞으로 전화하지 말라.”고 하자 오씨가 협박하며 크게 싸운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방안에 숨어 있다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세 명을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오씨는 낮 12시 35분쯤, 최씨는 오후 2시 30분쯤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 중인 박씨도 피를 많이 흘려 목숨이 위태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치정에 의한 범행인 것으로 보고 목격자 장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와 경위를 수사할 예정이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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