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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평양 리포트] 북한 여군의 세계…고사포·폭격기 조종 척척 17세 입대 7년 의무 복무

    [서울&평양 리포트] 북한 여군의 세계…고사포·폭격기 조종 척척 17세 입대 7년 의무 복무

    지난 10일 민간단체가 경기 연천 접경지역에서 대북 전단 풍선을 날리자 북한군이 대공무기의 일종인 14.5㎜ 고사총 사격을 했다. 남북 화해 분위기를 일순간 얼어붙게 만든 도발의 당사자들이 의외로 꽃다운 나이의 여군 고사총 중대원들이라는 설(說)이 탈북자들을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지난 3월 노동신문이 공개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인민군 2620군부대의 시찰 사진은 의미심장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김 제1위원장의 모습과 그의 양팔을 부여잡은 여군 조종사들이 마치 남성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오빠 부대’를 연상시키듯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문은 김 제1위원장이 “여성 조종사들이 불리한 기상 조건 속에서도 전투 동작들을 훌륭히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여군은 대부분 지상 100m 이내의 저고도를 날아 특수부대를 실어 나르는 침투용 비행기 AN2기 조종사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 여성들이 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 준다. 우리 군 당국이 올해부터 여군에게도 포병·방공 병과 진입을 허용하고 2002년부터 여성 공군 조종사를 배출해 왔지만 북한 여군보다는 늦어도 한참 늦다는 평가다. 오늘날 북한 여군은 군관(장교)과 부사관, 병사 등을 합해 18만여명으로 북한군 전체 병력의 15%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장교와 부사관으로만 구성된 한국군 여군 9228명(올해 6월 기준)에 비해 20배 가까이 많은 수치로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으로 불릴 만하다. ●대북전단 풍선 사격 여군 고사총 중대원說 전통적으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수령 3대는 여군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북한은 항일무장 투쟁 시기인 1936년 4월 중국 두만강 부근에서 조직한 여군 중대가 북한 여군의 효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1947년 10월 평양학원 제1기 졸업생 800명 가운데 여성 중대 300명이 여군 간부로 배출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 군인 대체 인력으로서의 역할이 강했던 여군이 전투병으로 본격 활약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북한은 1962년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라는 4대 군사노선을 주창한 뒤 최고사령관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평양시 대공방어를 위해 여군만으로 편성된 최초의 여군고사총 여단을 창설했다. 1964년부터는 여군 간호사를 양성해 각 군단 병원에 배치했고, 1971년 이후 전투부대까지 여군을 확대하면서 지상군 사단과 연대의 고사총 중대를 대부분 여군으로 교체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군 사랑은 각별했다. 김 위원장이 사망하기 몇 년 전 방문했던 군 부대 중 최소 3분의1이 여군부대라는 증언도 있다. 그는 방문했던 여군부대에 선물과 함께 ‘감나무 중대’, ‘들꽃중대’라는 칭호를 부여해 사기를 진작시키고자 했다. 1995년 1월 1일에 평양 고사포사령부 예하 부대인 다박솔 중대를 찾은 김정일 위원장과 부인 고영희(2004년 사망)의 일화는 지금도 여군부대의 선전용으로 쓰이고 있다. 고영희가 여군들의 터진 손등을 보고 자기가 가져 갔던 크림을 선물하자 이를 본 김 위원장이 전체 여군에게 핸드 크림을 포함한 화장품을 선물했다는 내용이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여군에 대한 현지지도를 부각시키는 이유는 여군들이 군내 대체 인력이 아닌 정규군으로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는 모습을 과시하고 사회적으로 만연한 군 복무 기피 현상을 타개하겠다는 목적이 강하다. 이 밖에 인민들에 대한 사랑과 긍휼, 자기 희생을 표현해 최고지도자의 자애롭고 보듬어 주는 이미지를 형상화하려는 목적도 있다는 분석이다. ●예전엔 선망… 복무 길어 지금은 ‘군대 바보’ 북한에서는 여성 병사도 남성과 똑같이 고등중학교 졸업 시기인 만 17세에 입대한다. 지원제로 운영하나 실제 운영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반강제적으로 입대하게 된다. 북한은 2003년 3월 여군의 의무복무 기간을 7년으로 법제화했다. 모집 연령이 만 17세임에 따라 23세에 만기 전역하고 군관으로 선발되면 19세에 군관교육을 받고 25세 이상까지 복무할 수 있다. 이 복무 기간은 최근 김 제1위원장의 복무 기간 연장 지시에 따라 1년 이상 늘어난 것으로 관측된다. 여군은 대체로 통신, 대공포, 해안포 부대, 군의소 등에 배치되는데 소수의 여군에 한해 일부 특수부대에 배치되기도 한다. 여군들은 첨단 전투기를 조종하지는 않지만 AN2 항공기, YAK18 항공기 조종사와 항공탐지수 등은 대부분 여군들이 맡고 있다. 이 밖에 저공 폭격기인 러시아제 일류신(IL)28 항공기 조종사의 경우 전원이 여군이라는 증언도 있다. ●복무 중 남녀교제 금지… 발각 땐 ‘불명예제대’ 황해도의 북한군 4군단 통신부대에서 10년간 복무했던 이소연(41·여)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는 “1990년대만 해도 월급은 적었지만 ‘군에 가면 굶어 죽지는 않겠지’라는 생각과 6년 정도 복무하면 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여군 입대에 대해 선망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 2010년까지 평안남도에서 3군단 병사로 복무했던 김모(29·여)씨는 “먹고살기 어려워지자 군인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며 “시집을 가려면 장사를 할 수 있는 등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군에만 있다 보니 무능하다고 해서 요즘에는 여군들을 ‘군대 바보’로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군들은 대체로 자대에서 남성 군인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고 여군들끼리 제대를 편성해 생활한다. 대공 방어 임무를 맡은 14.5㎜ 고사총 중대는 90~100명 규모로 5~6명이 한 개 조로 고사총 한 대를 맡는다. 규모가 큰 포병무기에 비해 고사총은 체구가 작은 여성들도 옮길 수 있고 다루기 쉽다. 하지만 탈북자들에 따르면 간부집 딸이나 예쁘고 똑똑한 여자들은 사단 참모중대, 사단 군의소나 연대 군의소에 배치되고, 여성 고사총 중대에 배치된 여군들은 일종의 막노동 비슷한 일을 하게 된다. 이 대표는 “북한에서는 여군들도 7년 이상 복무하기 때문에 21개월의 짧은 군 생활을 하는 남한의 남자 병사들보다 숙련도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군부도 여군의 숫자가 많아 골머리를 앓을 때가 많다. 남자는 30세, 여자는 26세까지 장기간 군복무를 해야 하는 폐쇄된 사회에서 장병들의 성(性)군기 문란을 방지하기가 쉽지 않다. 드물기는 하지만 여군과 남군이 눈이 맞아 제대할 때 결혼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군 복무 중 남녀 간 공식적인 교제는 금지되고 몰래 관계를 갖다 발각되면 생활제대(불명예제대) 조치를 당한다. 여군의 결혼은 하전사(부사관) 이하는 금지하고, 군관의 경우 만 26세 이상은 허용하고 있다. ●장성급 4~5명… ‘유리천장’ 여전히 높아 우리 군 병영에서 여군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부각된 가운데 북한 내 병영 성폭력 문제도 관심거리다. 탈북자들은 북한군 내 여군 인권이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여군의 숫자가 많아도 장령(장성)급 장교는 전체 1100~1200명 가운데 4~5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돼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은 여전히 높다. 한 여군 출신 탈북자는 “부대원이 중대 정치지도원(정치장교)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면 그 간부는 구두 경고하는 선에서만 그치고 피해자는 다른 부대로 전출시킨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1999년에는 통신부대 남성 중대장이 당시 중대원인 여군 120명 가운데 30명을 매일 밤 불러 성폭행한 사건으로 떠들썩했다”면서 “이처럼 큰 사건이 아니면 대부분 가해자인 남성 간부들은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100년전 ‘14세 군인’이 미래 아내에게 보낸 편지 감동

    100년전 ‘14세 군인’이 미래 아내에게 보낸 편지 감동

    불과 14세에 불과한 청소년 군인이 사망 직전 전쟁터에서 작성한 100년 전 편지가 공개돼 네티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영국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 주둔했던 프랑스·영국 연합군 병사들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아내, 여자친구, 가족을 그리며 작성했던 애틋한 편지들을 20일(현지시간) 소개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 두 명에게 저격당한 후 2개월 뒤인 8월, 유럽 전역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의 비극 속으로 빠져들었다. 당시 프랑스 동북부와 벨기에 국경은 프랑스·영국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의 치열한 교전이 지속된 지역이었는데 이를 오늘 날 ‘서부전선(Western Front)’이라 부른다. 해당 시기 서부전선에 투입됐던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 군인들 대부분은 18~34세 사이 젊은 청년들이었는데 그들 중 일부는 14~15세에 불과한 청소년들이었다. 그중 영국군 호레이스 헨리 쿡 이병이 작성한 편지는 특히 큰 울림을 준다. 당시 런던 웨스트 햄에 살고 있던 여자 친구 베아트리체 브라운에게 보낸 해당 편지에서 쿡 이병은 “그녀는 이미 내 아내와 같다”며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 안타깝게도 쿡 이병은 브라운과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루지 못한 채 1914년 9월 1일, 제1차 이프르 전투(battle of Ypres)에서 사망했다. 이프르는 벨기에 서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해당 전투에서 연합군 28만 명이 사망했다. 또 한명의 군인이 작성한 편지도 공개됐다. 어머니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해당 편지 내용을 정리하면 “전쟁이 생각보다 힘들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한 달 내로 끝날 것 같다고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3년 간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늘 오후 전투에서 저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만에 하나 제가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 때는 어머니께서 대신 제 아들을 키워주시게 되겠죠”, “만일 제가 전사한 후, 국가에서 운 좋게 훈장이 나온다면 이를 꼭 수령해 아들이 크면 그 목에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아마 아이는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를 통해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와 같다. 편지 외에도 여러 가지 그날그날의 감정, 메모를 담은 일기장 형식의 군용수첩도 함께 공개됐다. 1916년 7월 전투에서 사망한 연합군 필립 울렛의 군용수첩은 군데군데 탄환이 뚫고 나간 흔적이 남아있어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생생히 재현해준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나를 찾아줘’ ‘인터스텔라’, 할리우드 명장들이 온다..하반기 강타 예고

    ‘나를 찾아줘’ ‘인터스텔라’, 할리우드 명장들이 온다..하반기 강타 예고

    올 하반기 전세계를 긴장시킬 할리우드 거장 감독의 영화 두 편이 대기 중이다. ‘나를 찾아줘’와 ‘인터스텔라’가 그 주인공. 자신만의 스타일로 전세계 영화 팬들을 양산한 데이빗 핀처 감독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은 대한민국 관객들에게도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매 작품마다 언론과 평단, 관객들까지 모두를 만족시키며 마니아층을 양산하는 감독이 있다. 바로 할리우드의 명장 데이빗 핀처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다. 두 감독 모두 독보적인 스타일을 겸비한 연출과 탄탄한 스토리를 통해 내놓는 작품마다 전대미문의 만듦새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최근엔 두 감독이 나란히 10월, 11월에 연달아 신작을 내놓아 영화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는 결혼 5주년을 앞두고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가 갑자기 사라지고, 그녀를 찾아나선 남편 닉(벤 애플렉)이 전 국민이 의심하는 용의자로 몰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추적스릴러. ‘나를 찾아줘’는 전세계 베스트셀러 원작 소설에 뉴욕영화제 개막작 등 호평 분위기를 타고 미국에서 10월 3일 개봉했다. 개봉 이후 전미박스오피스 1위 데뷔, 전세계 박스오피스 1위 등 스릴러로서는 달성하기 힘든 경이로운 기록을 차근히 수립해 나가며 폭발적 입소문을 내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동진 평론가, 표창원 소장, ‘숨바꼭질’ 허정 감독, ‘내가 살인범이다’ 정병길 감독, ‘용의자X’ 방은진 감독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나를 찾아줘’를 추천하며 사전 입소문을 형성해왔다. 더불어 관객시사회가 시작되자 폭발적인 입소문을 양산해 현재 포털 사이트에서는 ‘나를 찾아줘’가 동시기 개봉작 중 평점 1위, SNS 인기 검색어에 오르는 등 개봉주 입소문을 실감하고 있다. 한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킵 손이 발표한 웜홀을 통한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희망을 찾아 우주로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블록버스터. 전작 ‘다크나이트’ 시리즈, ‘인셉션’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이 스크린에 얼만큼 재현될 수 있는지 실현해왔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번에는 우주를 배경으로 시공을 초월한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 벌써부터 할리우드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그의 작품 중 최고작이라는 평이 회자되고 있어 국내 개봉 후에도 흥행이 예상된다. 스타일, 스토리, 배우들의 연기력, 테크닉 등 영화의 전반적인 방면에서 완벽을 기하며 젊은 거장으로 떠오른 할리우드의 두 대표 감독 데이빗 핀처와 크리스토퍼 놀란. 2주를 사이에 두고 개봉하는 두 편의 영화가 하반기 극장가를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미래 아내에게…” 100년 전 ‘14세 군인’의 편지 뭉클

    “미래 아내에게…” 100년 전 ‘14세 군인’의 편지 뭉클

    불과 14세에 불과한 청소년 군인이 사망 직전 전쟁터에서 작성한 100년 전 편지가 공개돼 네티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영국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 주둔했던 프랑스·영국 연합군 병사들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아내, 여자친구, 가족을 그리며 작성했던 애틋한 편지들을 20일(현지시간) 소개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 두 명에게 저격당한 후 2개월 뒤인 8월, 유럽 전역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의 비극 속으로 빠져들었다. 당시 프랑스 동북부와 벨기에 국경은 프랑스·영국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의 치열한 교전이 지속된 지역이었는데 이를 오늘 날 ‘서부전선(Western Front)’이라 부른다. 해당 시기 서부전선에 투입됐던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 군인들 대부분은 18~34세 사이 젊은 청년들이었는데 그들 중 일부는 14~15세에 불과한 청소년들이었다. 그중 영국군 호레이스 헨리 쿡 이병이 작성한 편지는 특히 큰 울림을 준다. 당시 런던 웨스트 햄에 살고 있던 여자 친구 베아트리체 브라운에게 보낸 해당 편지에서 쿡 이병은 “그녀는 이미 내 아내와 같다”며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 안타깝게도 쿡 이병은 브라운과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루지 못한 채 1914년 9월 1일, 제1차 이프르 전투(battle of Ypres)에서 사망했다. 이프르는 벨기에 서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해당 전투에서 연합군 28만 명이 사망했다. 또 한명의 군인이 작성한 편지도 공개됐다. 어머니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해당 편지 내용을 정리하면 “전쟁이 생각보다 힘들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한 달 내로 끝날 것 같다고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3년 간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늘 오후 전투에서 저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만에 하나 제가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 때는 어머니께서 대신 제 아들을 키워주시게 되겠죠”, “만일 제가 전사한 후, 국가에서 운 좋게 훈장이 나온다면 이를 꼭 수령해 아들이 크면 그 목에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아마 아이는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를 통해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와 같다. 편지 외에도 여러 가지 그날그날의 감정, 메모를 담은 일기장 형식의 군용수첩도 함께 공개됐다. 1916년 7월 전투에서 사망한 연합군 필립 울렛의 군용수첩은 군데군데 탄환이 뚫고 나간 흔적이 남아있어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생생히 재현해준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비비안수 결혼, 상대는 누구? ‘106척 화물선 보유+억만장자’ 역시..

    비비안수 결혼, 상대는 누구? ‘106척 화물선 보유+억만장자’ 역시..

    ‘비비안수 결혼’ 대만의 대표 스타 비비안 수(서약선)의 결혼상대가 두 딸이 있는 ‘돌싱남’으로 밝혀졌다. 지난 7월 중화권 언론에 따르면 이미 지난 2월 혼인신고를 해 부부가 된 비비안 수와 리윈펑은 29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고 전했다. 비비안 수와 리윈펑은 가족과 지인 등 100명 정도의 하객만 초대해 비공개로 조용한 결혼식을 올렸다. 비비안 수는 싱가포르에서 거주하고 있는 남편의 가족과 지인들을 배려해 가까운 거리의 발리를 결혼식 장소로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남편 리윈펑은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6억 뉴타이완 달러(약 216억 원)의 시장 가치를 지닌 싱가포르 해운기업 마르코폴로마린의 경영자다. 그의 기업은 106척의 화물선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져 이목을 집중시켰다. 리원펑은 지난 2008년 이혼한 후 두 딸을 기르고 있던 중 비비안 수와 지난해 6월 처음 만나 약 9개월 만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특히 비비안수는 지난 3월 생일을 맞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편, 스태프들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2014년에 나는 새 가족이 생겼다. 남편과 두 사랑스러운 작은 천사”라는 글을 남겨 새 가족을 만난 행복한 심경을 전한 바 있다. 사진 = 비비안 수 웨이보 (비비안수 결혼)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해외여행 | Vietnam Dalat 달랏, 그 달달함에 대하여

    해외여행 | Vietnam Dalat 달랏, 그 달달함에 대하여

    Vietnam Dalat ‘달랏은 다르네’. 함께 여행했던 소설가 백영옥씨의 농담 같은 말이 계속 맴돈다. 선선한 공기, 언덕 위의 유럽풍 저택들, 울창한 소나무 숲과 푸른 호수. 이 모든 소소한 ‘풍경의 합’이 달랏이고, 그것은 베트남의 다른 어떤 곳과도 달랐다. 하지만 기자란 종족이 문제다. 덧셈 대신 소수분해를 하며 자꾸만 물었다. 달랏을 뭐라고 소개해야 하냐고. 역시 농담 같은 내 대답은 이렇다. 달랏은 달다고. 공기도 달고, 물고 달고. 낮도 밤도 달다고. 달랏 베트남의 람동Lam Dong성의 성도로 람 비엔Lam Vien고원의 해발 1,500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휴양지, 신혼 여행지로 ‘영원한 봄의 도시’, ‘작은 파리’, ‘꽃의 도시’ 등으로 불린다. 면적은 393.29km2, 인구는 2014년 기준, 약 30만명이다. 호치민 시내에서 약 300km 거리에 있으며 최근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이동 시간이 4~5시간으로 단축됐다. 영원한 봄의 도시를 발견하다 달랏으로 가는 길은 육지여야 한다고 했었다. 호치민에서 300km 정도니 먼 거리는 아니지만 포장도로가 없는 탓에 장장 6시간이 걸리는 오프로드 주행이라고. 특히 1,500m 고지로 올라가는 여정에서 커피를 볶는 고산부족도 만날 수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여정을 45분으로 줄여 주는 비행기를 선택한 탓에 ‘로드 무비’의 낭만은 날아갔다. 비행시간은 불과 50분.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공항에서의 첫 호흡은 푸른 빛이었다. 차갑고 맑았다. 1,500m 고지의 연중 평균 기온은 건기11~5월에 15℃, 우기6~10월에 22℃ 정도다. 후덥지근한 날씨로 악명 높은 베트남에서 에어컨 같은 도시다. 그래서 ‘영원한 봄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달랏 도심으로 가는 도로의 양쪽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솔숲이었다. 달랏은 남부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소나무가 자랄 수 있는 땅이다. 잔가지가 없어서 키가 더 커 보이는 달랏의 소나무들은 대충 봐도 20m가 훌쩍 넘을 것 같았다. 달랏의 특별함에 먼저 주목한 것은 1858년부터 1954년까지 96년 동안 베트남을 침략했던 프랑스인들이었다. 베트남을 구성하는 54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랏Lat족과 마Ma족이 살고 있었던 달랏은 솔숲뿐 아니라 청정한 고원호수까지 품고 있는 살기 좋은 땅이다. 그 가치를 맨 처음 알아본 이는 루이 파스퇴르Pasteur의 제자이자 베트남 사람들이 존경하는 박테리아 학자였던 알렉산드르 예르신Alexandre Yersin이었다.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 식민지 총통의 명령으로 달랏은 휴양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07년 첫 번째 호텔이 지어지고 별장도 꾸준히 늘어나 1920년대에는 2,000여 채의 유럽풍 별장이 있었으며 인구도 크게 늘어났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달랏은 앞장서서 외국인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투엔람 호수Tuyen Lam Lake 둘레로 리조트 단지가 조성되어 현재 37개의 리조트가 건설 중이다. 방문했던 에덴시 리조트는 일찍 공사를 마치고 운영 중인 3개의 리조트 중 하나였는데, 유럽 스타일의 가구, 명화 복제품들로 가득 차 있어서 마치 유럽의 전원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반전은 이 호화 리조트들의 숙박료가 생각보다 저렴하다는 사실. 100달러 안팎이면 레이크뷰 객실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 꽃을 키우고, 수놓는 마음 유럽인들의 별장촌이 리조트로 바뀌는 동안 농가의 풍경도 바뀌고 있다. 원래 달랏은 유명한 커피 생산지 중 하나였다. 프랑스인들이 겨우 찾아낸, 호치민에서 가장 가까운 커피와 포도 생산지가 달랏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커피농사를 지으며 작은 카페까지 운영하는 소수부족의 농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전 폭우로 도로가 무너져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사향고양이가 만들어내는 누왁커피의 인기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사향족제비, 다람쥐 커피까지 등장했다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달랏의 커피농장 수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작물은 수익률이 더 높은 고랭지 채소와 화초다. 달랏의 서늘한 기온은 아열대 화초들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기 때문. 그래서 달랏은 ‘꽃의 도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달랏이 속한 람동성은 2005년부터 매년 12월10~18일 사이에 ‘달랏-꽃의 도시’라는 테마로 꽃 축제를 열고 있는데 이때 몰리는 인파가 10만여 명이나 된다고 했다. 도심의 인공호수인 ‘쓰언흐엉Xuan Huong·春香湖’의 주변을 밝히는 가로등의 디자인마저 꽃모양이다. 이 현상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1986년에 오픈한 달랏 꽃공원Dalat Flower Gardens이다. 고양꽃박람회를 연상케 하는 이 공원에는 장미, 베트남 토종 야생화, 네덜란드의 튤립, 일본 벚꽃 나무, 카멜리아 등 300여 종의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어서 평소에도 베트남 여행자, 특히 신혼여객들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베트남 전통 자수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꽃이다. 달랏에서 자수 갤러리 겸 교육센터를 운영하는 XQ 빌리지XQ Historical Village에 가보면 자수로 그린 꽃들이 사진처럼 생생하다.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장신의 바느질로 완성된 인물, 풍경, 정물들은 볼수록 신기하다. 갤러리 곳곳에 테이블을 놓고 자수 시연을 하는 여인들이 있는데, 자꾸만 그 손끝을 쳐다보게 된다. XQ 빌리지는 베트남 전통 자수공예 교육센터를 운영하던 부부아내 Hoang Le Xuan와 남편 Vo Van Quan가 각자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1996년 달랏에 문을 열었다. 규모가 큰 전통 가옥 내부는 전시 공간과 휴식 공간 그리고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교육센터로 나뉘어 있었다. 작품 전시뿐 아니라 최고급 실크와 아오자이만을 골라서 판매하고, 전통음악 공연도 보여 주기 때문에 베트남의 전통과 문화를 한결 고급스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오래전 기억의 얼룩들 랑비안Lang Biang산을 향해 가는 길에 눈을 의심했던 사건이 일어났다. ‘어’ 하고 외치는 한 일행의 손가락 끝이 가르치는 방향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리니 차창 밖으로 얼룩말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곳에 얼룩말이라니! 당황하여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가이드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칠한 거예요!’ 말하자면 보디페이팅이라는 것이다. 듣고도 잘 믿기지 않았던 가짜 얼룩말들을 무리로 다시 만난 것은 랑비앙산 입구에서였다. 산비탈에 세워진 랑비안 글자판 주변엔 얼룩무늬의 조랑말들과 카우보이로 분장한 마주들이 사진 모델을 자처하고 있었다. 랑비안은 유럽인들이 즐겨 찼던 사냥터였다는데 그들이 이 가짜 얼룩말을 보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혼자 피식 웃음이 났다. 좌석으로 개조한 지프차의 짐칸에 앉아 덜컹거리며 라다 정상Dinh Rada까지 올라가는 동안 반갑지 않은 안개가 마중을 나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숲이 짙어질수록, 안개도 그러했다. 그러하여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발아래 달랏은 사라지고 없었다. 끄랑K’Lang과 흐비앙Ho Bian으로 불린다는 2개의 봉우리는 물론이고 해발 2,167m 정상부의 봉우리(총 5개) 중 어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서로를 간절하게 갈구하는 끄랑과 흐비앙의 조각상 주변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둘은 전설의 주인공이다. 랏족 출신의 청년 끄랑과 찔족 출신의 처녀 흐비앙의 사랑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적이다. 그들의 희생으로 두 부족이 화해하여 끄호족K’ho으로 합쳐졌다는 화해의 결말도 비슷하다. 고산부족의 아낙들이 노점에 베틀을 놓고 직접 만들어 파는 가방, 지갑, 머플러 등을 구경하다가 홀리듯 스카프 하나를 14만동VND 에 구입했다. 완성하는 데 3일이 걸렸고, 재료비만 10만동이란다. 어느 부분에 과장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우리 돈으로 1만원도 안 되니 흥정 자체가 겸연쩍다. 그 베틀 하나로 3명의 자녀를 다 키웠다는 그녀는 모계사회의 가장이었다. 여자가 먼저 청혼을 하는데, 결혼 당시 그녀는 물소 2~3마리 가격에 해당했던 3,000만동(한화로 약 145만원)을 주고 남편을 데려왔다고 했다. 형제 여럿이 한 명의 아내와 살기도 하고, 상속권은 막내딸에게 돌아가는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끝이 없지만 영업을 방해할까 조심스러워 곧 물러났다. 건축은 이야기를 전한다 얼룩말만큼이나 기이한 달랏의 또 다른 명물은 크레이지하우스Crazy House다(행야 게스트하우스Hang Nga Guesthouse로도 불린다).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도 울고 갈 것 같은 크레이지하우스는 무정형, 무규칙의 별난 주택이다. 촛농이 녹아내린 듯한 외관과 동굴 같은 내부의 건물들은 공중다리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안인가 싶으면 바깥이고, 1층인가 싶으면 2층이 되는 ‘크레이지’ 그 자체다. 이 집을 설계한 사람은 호치민 시절 최후의 수상을 역임했던 쩡찐Truong Chinh의 딸, 당 비엣 야Dang Viet Nga로 모스크바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그녀의 ‘잉여로운’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바로 크레이지하우스다. 1990년에 시작된 공사는 아직 진행 중인데, 자금 조달을 위해 일반에게 개방을 시작했다. 2010년부터는 게스트하우스로도 운영하고 있으니 하룻밤을 청해 보시라. 톡톡 뛰는 아이디어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크레이지하우스가 건축적 명소라면 바오 다이 여름별장Bao Dai Summer Palace은 역사적 명소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Nga Yen의 마지막 왕인 바오 다이는 달랏에 3개의 별장을 갖고 있었는데 그중 유일하게 일반에게 공개된 곳이 이 별장이다. 25개의 방이 달린 럭셔리한 별장은 행복한 삶의 무대가 아니었다. 바오 다이는 1945년 8월30일에 ‘식민지의 왕보다는 독립국가의 시민이 낫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속세의 권력이 다 무슨 소용이랴. 300여 명의 승려들이 생활하는 티엔비엔쭉람Thien Vien Truc Lam·竹林禪院은 풍황산에 포근히 안겨 있었다. 1994년 완공된 젊은 절이지만 호치민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방문하게 되는 곳이다. 호치민의 대통령궁을 설계한 건축가 응오빗투Ngo Viet Thu의 또 다른 건축물로 유명하다. 케이블카가 절 입구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곳인데, 이념적 동맹국인 러시아의 관광객들이 특히 많았다. 사실 이 사원의 이미지는 시각이 아니라 청각에 더 각인되어 있다. 잠시 소나기를 피해 법당 마당에 서 있는 동안 어디선가 들려오던 맑은 울림. 그것은 여러 개의 소리통으로 만들어진 풍경이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풍경소리보다 아름다웠다. 달랏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프랑스인들에게는 작은 파리였고, 베트남인들에게는 가장 가고 싶은 휴양지였다면 내게는 끝이 없는 솔숲과 그 솔향을 품고 있는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이 연주하는 청아한 풍경소리로 기억되는 참 참신한 베트남이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베트남항공 www.vietnamairlines.com Dalat Flower Park 2 Phu Dong Thien Vuong St., Dalat, Lam Dong, Vietnam 7:30~16:00 +84 63 382 2151 XQ Historical Village 258 Mai Anh Dao, Dalat, Lam Dong, Vietnam +84 063 383 5265 www.xqhandembroidery.com Lang Biang 달랏 시내에서 12km 입장료 1만동VND, 지프차 1대 30만동VND 정상까지의 트레킹은 3~4시간이 소요된다. Hang Nga Guesthouse 3 Huynh Thuc Khang St., Ward 3, Dalat, Lam Dong, Vietnam 입장료 2만동VND 숙박료 싱글룸 34~47US$, 더블룸 47~84US$ Bao Dai Summer Palace Trieu Viet Boung St., Dalat, Lam Dong, Vietnam 7:00~11:00, 13:30~16:00 미화 1달러 입장시 신발에 봉지를 덧씌워야 한다. ▶travel info Airline 베트남으로 가는 빠른 길 베트남항공 달랏까지는 직항편이 없기에 호치민을 경유해야 한다. 베트남항공은 매일 인천과 부산에서 하노이 직항편을 띄우고 있다. 당일에 달랏으로 이동한다면 오후편(17:50)을 이용해야 하는데 호치민 공항에서 4시간 이상 대기해야 하므로 시내로 나가서 마사지나 식사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낫다. 달랏까지 비행기로 50분, 자동차로는 4~5시간이 소요된다. 스카이팀의 10번째 회원사인 베트남항공은 현재 스톱오버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하노이나 호치민 여행을 함께 계획해도 좋다. 02-757-8920 www.vietnamairlines.com shopping 달랏 나이트 바자 달랏 마켓은 밤에 피는 꽃이다. 낮에 운영하던 상점들이 문을 닫고 나면 노점들이 장을 펼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축제가 벌어진 듯 풍선 아줌마, 솜사탕 아저씨들까지 등장하고 매캐한 연기를 피워내는 포장마차와 간식 노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서늘한 기온 때문에 달랏에서는 니트 의류를 많이 판매하는데 인형들도 모두 니트원피스를 입고 있다. 랑팜L’ang Farm 달랏의 지역특산물을 이용한 식료품을 파는 체인점이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달랏 커피. 생산량이 많지 않아서 달랏 외부 지역에서는 구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달랏 와인이나 주스, 또 다른 지역특산품인 달랏 딸기로 만든 쨈도 있고 유기농으로 재배한 고구마, 바나나 등을 먹기 좋게 건조시킨 간식거리도 최고다. www.langfarmdalat.com Golf 시원하게 나이스샷 달랏 팰리스 골프 클럽Dalat Palace Golf Club 프랑스 식민치하였던 1923년 달랏의 중심부에 오픈한 골프장으로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 중 하나다. 정치적인 요인으로 이후 개장과 폐장을 반복했던 골프장은 1995년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낡은 시설을 개보수한 뒤 베트남 최고의 골프장으로 다시 등극했다. 장기 골프 여행을 오는 한국인들도 많은데, 달랏은 연평균 기온이 섭씨 21도이니 베트남에서 골프를 치기 좋은 곳 중 하나다. 18홀 기준으로 그린피는 주중 220만동VND, 주말 250만동VND www.vietnamgolfresorts.com restaurants 보랏빛 만찬 탄투이 레스토랑Thanh Thuy Restaurant 쓰언흐엉 호숫가에 위치하여 풍경이, 특히 야경이 멋진 레스토랑. 보랏빛으로 통일한 실내 분위기는 모던한 느낌이다. 저녁에는 실내석보다 야외 테라스의 인기가 높으며 특히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다. 현지 맥주를 곁들여 다양한 해산물 요리를 주문하면 된다. 02 Nguyen Thai Hoc St., Dalat, Lam Dong, Vietnam 063-353-1668 바람 부는 호숫가 물랑루즈 레스토랑Moulin Rouge Restaurant 쓰언흐엉 호숫가에서 눈에 띄는 풍차 건물을 찾으면 된다. 바로 옆에 있는 사이공달랏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주말이면 단체 손님만으로도 300석이 가득 차 버린다. 결혼식 피로연장으로도 사용되는데 가라오케, 당구장 등의 시설도 갖추고 있다. 02 Hoang Van Thu Street, Dalat, Lam Dong, Vietnam 6:00~22:00 +84 063 3556789 Hotel & Resort 호젓한 호수가의 유럽풍 별장 달랏 에덴시 레이크 리조트Dalat Edensee Lake Resort & Spa ‘베트남의 검은 숲’이라고 불리는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투엔람 호수Tuyen Lam Lake가에 넓은 부지로 자리 잡고 있는 유럽풍 리조트다. 총 113개의 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10개의 미모사 빌라(총 40실), 12개의 자스민 빌라(총 48실), 6개의 카멜리아 빌라(총 24실), VIP 빌라로 구분되는데 모두 독립 빌라 형태다. 호젓한 휴식에도 좋지만 크고 작은 미팅룸과 극장까지 갖추고 있어 기업 연수에도 적당하다. Tuyen Lam Lake Zone VII.2 Dalat, Lam Dong, Vietnam +84 63 383 1515 www.dalatedensee.com 앤티크가 주는 편안함 아나 만다라 빌라 달랏 리조트Ana Mandara Villas Dalat Resort 달랏의 어느 언덕에 남아 있던 프랑스인들의 별장 17채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리며 개조한 5성급 리조트다. 건물이 지어진 1920~1930년대에 구입한 가구들은 이제 모두 100년을 바라보는 앤티크가 됐고 벽난로도 여전히 작동한다. 방마다 크기도 구조도 다르므로 객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내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지만 마치 휴양림 안으로 들어온 듯 숲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분위기다. 야외 수영장과 스파도 있다. Le Lai Street, Ward 5, Dalat, Lam Dong, Vietnam +84 63 3555 888 www.anamandara-resort.com 달랏 최고의 럭셔리 호텔 달랏 팰리스 럭셔리 호텔Dalat Palace Luxury Hotel 1922년 달랏의 인공호수 쓰언흐엉 옆에 세워진 호텔로 당시에는 ‘호텔 드 랑 비엔Hotel Du Lang Bian’, 혹은 ‘랑비엔 팰리스 호텔Lang Bian Palace Hotel’이라고 불렸었다. 개보수를 거쳐 1995년 재오픈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고풍스러운 빅토리아 스타일의 건축물은 100년이 지나도록 달랏 최고 호텔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총 43개의 딜럭스와 스위트룸으로 이뤄져 있으며 딜럭스를 기준으로 1박에 250달러 정도다. 12 Tran Phu St. Dalat, Lam Dong, Vietnam +84 63 3825 444 www.dalatresorts.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국내여행 | 제주-세상에서 가장 이른 여행

    국내여행 | 제주-세상에서 가장 이른 여행

    빨래를 걷으려고 손을 위로 뻗는 순간, 찌릿! 배가 뭉치는 모양이다. 임신 8개월. 이제 하루하루 몸은 더 무거워질 텐데 그 전에 가야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반갑지 않은 태풍을 만났지만 제주는 제법 괜찮은 힐링을 선사했다. 태교여행, 괜찮을까? 파란 물감을 타 놓은 바다색. 그 유혹적인 색을 따라 이끌리듯 한참을 걸어 들어갔는데도 허벅지 깊이를 넘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같이 놀기 딱 좋은 곳이다. ‘언제 낳아 키워 같이 물놀이하지?’ 남편이 묻는다. 금방이야. 8개월도 순식간이더라고. 아기를 품고 200여 일. 임신 8개월 정도가 되면 어떤 옷을 입어도 배를 가릴 수 없을 만큼 임산부 티가 나는데, 경미한 우울증이 오는 때도 딱 이 시기이다. 임신 전의 나란 사람은 여름에는 래프팅을, 겨울에는 스키를, 봄과 가을로는 낚시와 등산을 즐기고 걷기를 좋아하는 액티브한 타입이었다. 하지만 아기가 생기고 절대 몸을 조심히 해야 하는 초기 12주, 입덧이 지속됐던 16주가 지나자 근육은 조금씩 탄력을 잃기 시작하고 지긋지긋하던 입덧이 끝나자 먹지 못했던 음식에 대한 욕심이 생겼으며 자연스레 몸무게도 늘어갔다. ‘그래도 나는 괜찮아! 사람 하나를 만들어내는 위대한 몸이니까.’ 아무리 긍정적인 나라도 부쩍 눈에 띄는 기미와 칙칙한 피부, 이제는 종아리에서부터 불편한 스키니진에 혼자서 버둥거리며 일어나야 하는 힘든 아침에 급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임신으로 인해 변해 버린 생활이나 몸매, 아기에 대한 궁금증과 불안 등으로 임산부는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좋다. 가벼운 여행은 정서안정에 효과적이라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기분전환에도 도움이 된다. 요즘에는 ‘태교여행’으로 힐링, 테라피, 휴양을 중심으로 한 임산부들의 여행이 트렌드가 되었다. 4시간이 넘지 않는 비행시간을 고려하여 많은 임산부들이 동남아를 선호하고 있는 편이다. 나 역시도 유아용품을 비교적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동남아를 생각하다가 뱃속의 ‘바다(태명)’를 생각해서 만약의 사태에 의료진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국내를 고려하게 됐다. 국내지만 비행기도 타고 이국적인 느낌까지 받을 수 있는 제주도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청마의 해이니, 말들이 뛰어노는 제주도는 그야말로 완벽한 장소였다. 남들이 스튜디오에서 찍는 만삭사진도 제주도의 자연에서 셀프로 해결할 계획이었다. 고작 한 시간 남짓의 비행임에도 심장을 간질이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한창 애교가 늘어가는 조카를 만나러 가는 느낌이랄까. 너의 본질은 그대로지만 만날 때마다 너는 조금씩 변해 있고 나날이 깊이를 더해 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아이를 품은 여인의 시선이란 작은 것에도 색을 입혀 더 아름다워 보이고 조그마한 디테일에도 쉽게 감동을 받아 버리는 스위치가 작동하기 때문에 낯선 여행지보다는 친숙한 곳에서의 새로운 발견이 더욱 기대된다.  생명기원의 장소 산방산 아침이 되자 비는 그치고 바람이 거셌다. 태풍의 영향인지 세제를 풀어놓은 듯한 풍성한 바다거품이 해안을 덮었다. 화순항에는 궂은 날씨에도 낚시꾼들이 꽤 모여 있는데,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돌돔새끼들이 약 올리듯 돌아다닌다. 손가락만한 녀석들을 잡아 올리는데 먹을 수나 있는 크기인지는 모르겠다. 파도가 높아 용머리해안은 진입이 통제됐고 겨우 산방산을 오를 수 있었다. 제주올레 10코스에 자리 잡은 산방산은 한라산 백록담에 있던 봉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라는 전설의 산으로 80만년 전 점성이 높은 조면암질 용암이 화구로부터 서서히 흘러나와 멀리 흘러가지 못한 채 굳어 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산방산의 전설이란 이렇다. 아주 먼 옛날에 사냥꾼이 한라산에 올라가 사슴 한 마리를 발견하고 화살을 쏘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화살이 안타깝게도 사슴 대신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향하고 말았다. 깜짝 놀라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졌고, 그게 산방산이 됐다는 얘기다. 신기한 건 백록담을 두르고 있는 동능 둘레와 산방산 밑둥 둘레길이가 비슷하다는 점. 그래서 제주 사람들이 산방산을 ‘한라산의 뚜껑’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산 중턱에는 예부터 불상을 모셔 놓은 산방굴사가 있는데, 산방산의 여신 ‘산방덕’이 인간세상의 시달림을 받고 바위가 되어 흘리는 눈물이라 전해지는 석간수가 적은 양이지만 쉬지 않고 떨어진다. 빗물이 바위를 통과하여 떨어져서 그런지 약간은 비릿한 냄새가 난다. 인간이 된 산방덕의 미모를 탐한 이가 그녀를 괴롭히고 흘리게 만든 눈물이라 하니 슬픔의 맛일까? 또한 이곳은 산방덕이 인간으로 환생하여 자식을 얻기 위해 매일 기도를 올리던 노부부를 만난 곳으로, 자식을 바라는 부부들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생명기원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미 뱃속에 품고 있지만 경제적 여유만 된다면 자녀는 많을수록 좋다고 항상 생각해 왔기 때문에 조심스레 첫째의 건강과 함께 마음고생 하지 않고 둘째가 생기길 바라 본다. 첫째가 딸이니 둘째는 아들이었으면. 자식욕심이 많다 할까 봐 석간수와 함께 혼자서 삼켰다. 사려니숲길에서의 만삭촬영 삼림욕이 좋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사려니숲길은 전형적인 온대산림이라 숲 특유의 서늘함이 없고, 천연림과 인공림이 잘 어우러져 에코 힐링을 체험할 수 있는 ‘치유의 숲’이다.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숲은 태풍 속에서도 차분했다. 하지만 곧 비가 다시 쏟아질 것 같다. 결국 초입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만삭촬영은 대개 32주 전후에 많이 한다. 아기배가 적당히 예쁘게 나오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 웨딩 리허설 촬영을 하듯 임산부들은 아기와의 시간을 기념하며 만삭촬영을 한다. 병원에서 연계된 스튜디오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만의 사진을 원한다면 부부가 공유하는 추억이 있는 곳에서의 촬영도 추천한다. 앞으로 아이가 걸어갈 인생의 길이 이 숲이 주는 편안함과 같기를 기원하며 우리는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준비한 아기양말. 길을 지나다가 그 앙증맞음에 반해 사두었던 것이다. 실제로 양말을 본 친정어머니는 이런 양말은 잘 안 신게 된다며 뭣 하러 샀냐고 타박하셨지만 촬영을 위한 훌륭한 소품이 되었다.  태풍이 선물한 엉또폭포 힐링을 위해 제주까지 왔건만 일정 내내 비가 내린다. 안개가 자욱한 도로에 강한 비바람까지. 우리를 숙소에 가둬 놓을 셈인가 보다. 볼록 나온 배 위에 리모컨을 얹어 두고 있으니 뱃속 ‘바다’가 ‘엄마, 괜찮아요. 나랑 같이 놀아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리 꿈틀, 저리 꿈틀 평소보다 태동이 강하다. 그러다 문득 비가 와야만 볼 수 있다는 ‘엉또폭포’가 떠올랐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초입부터 많은 인파가 바글거렸다. 글쎄, 세계 4대 폭포라는 무인카페 엉또산장의 안내판에는 동의하기 힘들었지만 이날 엉또폭포는 실로 엄청난 수량을 자랑했다. 남편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난다. 틈틈이 제주 여행을 위해 세운 계획이 다 무산되었어도, 전혀 계획에 없던 엉또폭포 앞에 서 있는 이 순간이 ‘바다’가 우리에게 오던 그날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이 비에 급하게 우비까지 구해 제주에 왔으니 비가 온대도 뭐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이 의지처럼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야속하게도 드디어 해가 난다. 공항 근처 용두암에 들렀다. 행운을 상징하는 흑룡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나도 그 틈에 살짝 끼어 소원을 빌어 본다. 첫 번째는 11월에 태어날 아이의 건강. 두 번째는 우리 가족의 행복. 세 번째는 다음에 제주를 찾을 땐 화창한 날이길.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트래비스트 윤희진 ▶travel info산방식당 밀면으로 유명한 집인데, 내게는 밀면보다는 수육이 입에 착착 감겼다. 야들야들하면서도 임산부의 예민한 후각에도 잡내가 전혀 나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고소하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음 하모리 864-3 064-794-2165 레이지박스 용머리해안 조망의 카페다. 제주당근주스에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임신 중기 철분 섭취로 인한 변비로 고생하는 내게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당근 케이크도 달지 않아서 좋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177-5 064-792-1254 산방산 탄산온천 임산부는 양수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뜨거운 목욕이나 온천은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산방산 탄산온천은 탕의 온도가 차다고 느껴질 정도여서 임산부도 즐길 수 있다. 다만 탄산원탕은 ‘약물’이므로 너무 오래 앉아 있지 않도록 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981 064-792-8300 항공사별 임산부 탑승 규정 임신 기간 및 임신 형태(단태아 또는 쌍둥이)에 따라 항공여행 가능 여부가 달라진다. 특히 쌍둥이의 경우 국제항공운송협회의 임산부 탑승 가이드라인에 의거하여 탑승 기준이 구별되기도 한다. 임신성 고혈압, 임신성 당뇨 등의 임신 합병증이 있는 고위험 산모의 경우는 별도의 기준이 적용된다. 대부분의 항공사에서는 32주 미만의 산모는 일반인과 동일하게 제한사항이 없으며, 32~36주의 임산부(쌍둥이 32주)는 진단서를 요구한다. 임신 초 3개월과 37주 이상(쌍둥이 33주)의 산모는 탑승이 제한되거나 주의를 요한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는 36주 이상의 임산부는 탑승일 기준 3일 내에 작성된 진단서나 소견서를 제출, 사전 승인을 얻으면 탑승이 가능하나 국제선의 경우는 입국할 때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김균미의 빅! 아이디어] 안선주와 이미림이 대견한 이유

    [김균미의 빅! 아이디어] 안선주와 이미림이 대견한 이유

    안선주와 이미림, 그리고 박인비. 미국과 일본 여자프로골프계를 주름잡고 있는 한국의 여성 프로골퍼들이다. 골프를 치지 않더라도 골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10억 소녀’ 김효주 다음으로 최근 가장 이름을 많이 들어본 선수들일 것이다. 운동선수로는 작은 키(160㎝)에 당당한 체구의 안선주(27)는 지난 12일 끝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스탠리 레이디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시즌 4승, JLPGA 투어 개인 통산 17승을 달성했다. 안선주는 현재 JLPGA 시즌 상금 랭킹 1위로 2010년, 2011년에 이어 세 번째 상금왕 자리를 노리고 있다. 이미림(24). 지난 5일 중국 베이징에서 끝난 레인우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클래식에서 세계 랭킹 1위 스테이시 루이스를 꺾고 시즌 2승을 거뒀다. TV로 생중계되는 동안 172㎝의 이미림은 큰 키에 시종 편안한 표정으로 정말 골프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2012년 국내 KLPGA 투어에서 뛸 때 10여㎏을 감량했던 이미림의 모습을 떠올리던 사람들은 ‘몸이 불었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경기가 끝나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2013년 LPGA 투어에 데뷔하면서 체중을 6~7㎏ 불렸다고 한다. 여기에다 지난 13일 결혼식을 올린 박인비. 지금은 KB금융그룹이라는 든든한 후원사가 있지만 2013년 첫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등 3승을 올리며 세계 랭킹 1위로 올라설 때까지 스폰서가 없었다. 굳이 세 선수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비주얼보다는 실력으로 최고에 오른 골퍼들이다. 특히 안선주 얘기를 꺼낼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성형을 권하는 기업에 상처받아 한국을 떠났다는 일화다. 안선주는 지난 7월 한 인터뷰에서 “한국 골프계에선 성적보다 외모가 훨씬 더 중요했고, 스폰서를 받으려면 일단 얼굴이 예뻐야 후보군에 올랐다. 성형을 강요한 기업도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에선 날씬하고 예쁘지 않아도 실력만으로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고, 현재 일본 6개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단다. 이미림도 지난 8월 첫 승을 거둔 뒤 언론 인터뷰에서 “외모를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다이어트와 외모를 가꾸는 데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내 운동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밝혀 그동안 외모 때문에 속을 끓였음을 인정했다. 국내 여자프로골프가 인기를 끌면서 선수층이 두꺼워지고 경기 수도 늘어나고 있다. 실력 못지않게 미모를 갖춘 선수들도 많다. 패션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선수들도 있다. 선수들의 개성이니 문제가 될 건 없다. LPGA에도 외모에 신경 쓰는 선수들은 있지만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문제는 실력보다 외모를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는 국내 후원사들, 골프계 주변의 풍토다. 지난 9월 은퇴한 한희원이 인터뷰에서 작심하고 한 쓴소리가 생각난다. “한국 투어에 오면 성형수술하는 선수들, 풀메이크업을 하고 골프장에 나오는 선수들도 눈에 띄었다. 예쁘게 치장하는 건 좋지만 골프장인지, 외모 경연장인지 모를 정도다. 갤러리에 대한 팬서비스라고 이해하려 해도 정도가 지나치다.” 외모지상주의, 성형을 권하는 행태가 어디 골프계뿐이랴. 그러나 이 같은 ‘비뚤어진’ 외모지상주의는 일부 선수들이 독기를 품고 해외로 눈을 돌려 실력을 인정받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상당수 선수들을 국내에 안주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KLPGA투어가 커져 올해에만 26개 대회 총상금 약 155억원이다. 일본 JLPGA 2014년 투어는 37개 대회 총상금 약 32억 9000만엔(약 3300만 미 달러), LPGA는 32개 대회 총상금 5630만 달러다. 미국, 일본 투어에 비해 규모는 아직 작지만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다. 하지만 실력 있는 선수들이 경쟁이 치열한 해외로 눈을 돌리기보다 국내만 쳐다보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는 비단 골프계만의 얘기가 아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안선주와 이미림이 그래서 더 대견해 보인다. 편집국 부국장
  • 박애리 팝핀현준 부부 집 공개…피규어, 오락기, 당구대 등등에 박애리 반응은?

    박애리 팝핀현준 부부 집 공개…피규어, 오락기, 당구대 등등에 박애리 반응은?

    팝핀현준과 박애리 부부는 최근 방송된 MBC ‘사람이 좋다’에서 ‘비보이와 국악인의 만남’ 특집에 출연해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했다. 특히 팝핀현준과 박애리 부부의 집에는 가족 맞춤메뉴 자판기부터 오락기, 당구대, 피규어 등 이색적인 아이템이 가득했다. 박애리 팝핀현준 부부의 집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자 팝핀현준의 놀거리가 가득한 모습이 크게 화제가 됐다. 이와 관련 박애리는 최근 자신의 SNS에 “어쩌다 한 번씩 기분전환으로 작은 피규어를 모으고 생각이 많고 마음이 복잡한 어느날 집중해서 건담을 조립하고”라면서 “집에 돌아오면 바깥일은 잊은 채 아이와 함께 꼬마 자동차를 타며 경주를 하고, 가족과 함께 이런저런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며 당구를 치는 내 남편”이라고 가정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또 박애리는 “팝핀현준은 절대 철없지 않다.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순수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그대의 모습을, 예술을 사랑합니다”고 덧붙였다. 앞서 팝핀현준 역시 자신의 SNS에 “아내 박애리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마음고생하는 줄 알 것 같다. 그저 내 취미생활일 뿐인데. 방송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렇게 철없지 않다”고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팝핀현준과 박애리는 2011년 2월 결혼해 슬하에 딸을 두고 있다. 박애리 팝핀현준 부부 모습에 네티즌들은 “박애리 팝핀현준, 부부애가 남다르다”, “박애리 팝핀현준, 집이 부럽다”, “박애리 팝핀현준, 행복해보인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애리 팝핀현준 부부 집 피규어, 오락기, 당구대까지…아내 박애리 반응이

    박애리 팝핀현준 부부 집 피규어, 오락기, 당구대까지…아내 박애리 반응이

    팝핀현준과 박애리 부부는 최근 방송된 MBC ‘사람이 좋다’에서 ‘비보이와 국악인의 만남’ 특집에 출연해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했다. 특히 팝핀현준과 박애리 부부의 집에는 가족 맞춤메뉴 자판기부터 오락기, 당구대, 피규어 등 이색적인 아이템이 가득했다. 박애리 팝핀현준 부부의 집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자 팝핀현준의 놀거리가 가득한 모습이 크게 화제가 됐다. 이와 관련 박애리는 최근 자신의 SNS에 “어쩌다 한 번씩 기분전환으로 작은 피규어를 모으고 생각이 많고 마음이 복잡한 어느날 집중해서 건담을 조립하고”라면서 “집에 돌아오면 바깥일은 잊은 채 아이와 함께 꼬마 자동차를 타며 경주를 하고, 가족과 함께 이런저런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며 당구를 치는 내 남편”이라고 가정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또 박애리는 “팝핀현준은 절대 철없지 않다.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순수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그대의 모습을, 예술을 사랑합니다”고 덧붙였다. 앞서 팝핀현준 역시 자신의 SNS에 “아내 박애리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마음고생하는 줄 알 것 같다. 그저 내 취미생활일 뿐인데. 방송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렇게 철없지 않다”고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팝핀현준과 박애리는 2011년 2월 결혼해 슬하에 딸을 두고 있다. 박애리 팝핀현준 부부 모습에 네티즌들은 “박애리 팝핀현준, 속 깊은 아내가 집보다 더 부럽다”, “박애리 팝핀현준, 집 꾸며놓은 것 대박”, “박애리 팝핀현준, 정말 오붓해보인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차승원 부인 이수진 에세이 거짓 논란에 “아들 위한 거짓말 죄송”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차승원 부인 이수진 에세이 거짓 논란에 “아들 위한 거짓말 죄송”

    ‘차승원’ ‘이수진’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아들 차노아 친부가 차승원 이수진 부부를 상대로 냈던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했다. 한편 소송의 발단이 되었던 차승원 부인 이수진씨가 과거 출간한 에세이에 대해 차승원이 해명을 했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던 조모씨는 이번 소송 배경에 대해 “차승원 부부의 거짓말에 화가 났다”며 아내 이수진씨가 1999년 출간한 에세이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에 담긴 내용을 언급했다. 이어 그는 “차노아가 차승원과의 사이에 낳은 친자인 것처럼 묘사돼 본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고등학생 차승원을 처음 만나 지난 1989년에 결혼식을 올렸고 아들 노아를 낳았다”는 에세이 내용에 조씨는 “차승원 부인 이수진과 오랜 교제 끝에 지난 1988년 3월 결혼했다가, 같은 해 5월 차노아를 낳은 후 1992년 5월 협의 이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조모씨는 7일 대리인을 통해 소 취하서를 제출했다. 차승원 부인 이수진씨는 PC통신을 통해 차승원과의 첫 만남부터 차노아 육아 등의 글을 올리며 유명해졌으며 지난 1999년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러나 한동안 방송 출연이나 사진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아 루머에 시달리자 SBS ‘좋은아침’을 통해 루머를 해명하고 나서기도 했다. 해당 책에는 이수진이 18살 고등학생 차승원을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차승원이 20살이 되던 1989년 결혼식을 올렸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차승원과 1992년 결혼식을 올렸으며 차노아는 차승원이 아닌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임이 밝혀졌다. 이에 지난 7일 차승원은 한 매체를 통해 “나나 아내 모두 노아를 위해서 작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모든 분께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어 차승원은 “당시에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친부 소송 논란에 휩싸인 차승원은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를 통해 “22년 전에 결혼을 했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살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됐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애리 팝핀현준 부부 집 공개…피규어, 오락기, 당구대 등등에 박애리 반응 보니 애정이

    박애리 팝핀현준 부부 집 공개…피규어, 오락기, 당구대 등등에 박애리 반응 보니 애정이

    팝핀현준과 박애리 부부는 최근 방송된 MBC ‘사람이 좋다’에서 ‘비보이와 국악인의 만남’ 특집에 출연해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했다. 특히 팝핀현준과 박애리 부부의 집에는 가족 맞춤메뉴 자판기부터 오락기, 당구대, 피규어 등 이색적인 아이템이 가득했다. 박애리 팝핀현준 부부의 집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자 팝핀현준의 놀거리가 가득한 모습이 크게 화제가 됐다. 이와 관련 박애리는 최근 자신의 SNS에 “어쩌다 한 번씩 기분전환으로 작은 피규어를 모으고 생각이 많고 마음이 복잡한 어느날 집중해서 건담을 조립하고”라면서 “집에 돌아오면 바깥일은 잊은 채 아이와 함께 꼬마 자동차를 타며 경주를 하고, 가족과 함께 이런저런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며 당구를 치는 내 남편”이라고 가정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또 박애리는 “팝핀현준은 절대 철없지 않다.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순수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그대의 모습을, 예술을 사랑합니다”고 덧붙였다. 앞서 팝핀현준 역시 자신의 SNS에 “아내 박애리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마음고생하는 줄 알 것 같다. 그저 내 취미생활일 뿐인데. 방송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렇게 철없지 않다”고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팝핀현준과 박애리는 2011년 2월 결혼해 슬하에 딸을 두고 있다. 박애리 팝핀현준 부부 모습에 네티즌들은 “박애리 팝핀현준, 애정이 남다르다”, “박애리 팝핀현준, 남편 이해하는 마음이 최고”, “박애리 팝핀현준, 정말 잘 어울리는 부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차승원 부인 이수진 에세이 논란에 “아들 위한 작은 거짓말 죄송”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차승원 부인 이수진 에세이 논란에 “아들 위한 작은 거짓말 죄송”

    ‘차승원’ ‘이수진’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아들 차노아 친부가 차승원 이수진 부부를 상대로 냈던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했다. 한편 차승원 부인 이수진씨가 과거 출간한 에세이에 대해 차승원이 해명을 하기도 했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던 조모씨는 이번 소송 배경에 대해 “차승원 부부의 거짓말에 화가 났다”며 아내 이수진씨가 1999년 출간한 에세이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에 담긴 내용을 언급했다. 이어 그는 “차노아가 차승원과의 사이에 낳은 친자인 것처럼 묘사돼 본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고등학생 차승원을 처음 만나 지난 1989년에 결혼식을 올렸고 아들 노아를 낳았다”는 에세이 내용에 조씨는 “차승원 부인 이수진과 오랜 교제 끝에 지난 1988년 3월 결혼했다가, 같은 해 5월 차노아를 낳은 후 1992년 5월 협의 이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조모씨는 7일 대리인을 통해 소 취하서를 제출했다. 차승원 부인 이수진씨는 PC통신을 통해 차승원과의 첫 만남부터 차노아 육아 등의 글을 올리며 유명해졌으며 지난 1999년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러나 한동안 방송 출연이나 사진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아 루머에 시달리자 SBS ‘좋은아침’을 통해 루머를 해명하고 나서기도 했다. 해당 책에는 이수진이 18살 고등학생 차승원을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차승원이 20살이 되던 1989년 결혼식을 올렸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차승원과 1992년 결혼식을 올렸으며 차노아는 차승원이 아닌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임이 밝혀졌다. 이에 지난 7일 차승원은 한 매체를 통해 “나나 아내 모두 노아를 위해서 작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모든 분께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어 차승원은 “당시에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친부 소송 논란에 휩싸인 차승원은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를 통해 “22년 전에 결혼을 했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살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됐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차승원 부인 이수진 에세이 거짓말 지적에 “아들 위한 작은 거짓말 죄송”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차승원 부인 이수진 에세이 거짓말 지적에 “아들 위한 작은 거짓말 죄송”

    ‘차승원’ ‘이수진’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아들 차노아 친부가 차승원 이수진 부부를 상대로 냈던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했다. 한편 차승원 부인 이수진씨가 과거 출간한 에세이에 대해 차승원이 해명을 하기도 했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던 조모씨는 이번 소송 배경에 대해 “차승원 부부의 거짓말에 화가 났다”며 아내 이수진씨가 1999년 출간한 에세이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에 담긴 내용을 언급했다. 이어 그는 “차노아가 차승원과의 사이에 낳은 친자인 것처럼 묘사돼 본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고등학생 차승원을 처음 만나 지난 1989년에 결혼식을 올렸고 아들 노아를 낳았다”는 에세이 내용에 조씨는 “차승원 부인 이수진과 오랜 교제 끝에 지난 1988년 3월 결혼했다가, 같은 해 5월 차노아를 낳은 후 1992년 5월 협의 이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조모씨는 7일 대리인을 통해 소 취하서를 제출했다. 차승원 부인 이수진씨는 PC통신을 통해 차승원과의 첫 만남부터 차노아 육아 등의 글을 올리며 유명해졌으며 지난 1999년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러나 한동안 방송 출연이나 사진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아 루머에 시달리자 SBS ‘좋은아침’을 통해 루머를 해명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에 지난 7일 차승원은 한 매체를 통해 “나나 아내 모두 노아를 위해서 작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모든 분께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어 차승원은 “당시에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친부 소송 논란에 휩싸인 차승원은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를 통해 “22년 전에 결혼을 했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살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됐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승원 부인 이수진, “불행한시절이 해피엔딩으로..”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는 왜?

    차승원 부인 이수진, “불행한시절이 해피엔딩으로..”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는 왜?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차승원 부인 이수진’ 배우 차승원이 친부소송에 공식입장을 밝힌 가운데, 차승원 부인 이수진씨의 에세이 거짓 논란이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7일 차승원은 한 매체를 통해 “나나 아내 모두 노아를 위해서 작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모든 분께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어 차승원은 “당시에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차승원 부인 이수진은 PC통신을 통해 차승원과의 첫만남부터 차노아 육아 등의 글을 올리며 유명해졌으며, 지난 1999년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해당 책에는 이수진이 18살 고등학생 차승원을 무도회장에서 만나 차승원이 20살이 되던 1989년 결혼식을 올렸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차승원과 1992년 결혼식을 올렸으며 차노아는 차승원이 아닌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임이 밝혀졌다. 또 이 에세이에서 이수진은 차승원과의 만남에 대해서 “남편이 저한테 반한 이유는 어떤 면에서건 자신만만한 제 배짱이 좋았고 유난히 똑똑해 보이는 제가 예뻤다고 합니다”고 전했다. 이어 그녀는 “이화여대 2학년때 차승원을 만나 불행한 학창시절을 해피엔딩으로 마감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친부소송을 냈던 조모씨는 법무법인을 통해 8일 차승원과 이수진 씨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5일 한 매체는 “한 남성이 차승원 아들 차노아가 자신의 친아들이라며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에 차승원 부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6일 차승원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차승원 씨는 22년 전에 결혼을 하였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 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 살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에 네티즌들은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노아 위해서 그런 것 같은데..”,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잘 해결됐네”, “차승원 부인 이수진, 그냥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차승원 부인 이수진, 차승원 만날 때 이미 차노아 있었구나”,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노아 아들로 받아준 차승원 정말 멋있다”,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서울신문DB(‘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차승원 부인 이수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수진 차승원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이수진 에세이 거짓 논란에 “아들 위한 거짓말 죄송”

    이수진 차승원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이수진 에세이 거짓 논란에 “아들 위한 거짓말 죄송”

    ‘차승원’ ‘이수진’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아들 차노아 친부가 차승원 이수진 부부를 상대로 냈던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했다. 한편 소송의 발단이 되었던 차승원 부인 이수진씨가 과거 출간한 에세이에 대해 차승원이 해명을 했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던 조모씨는 이번 소송 배경에 대해 “차승원 부부의 거짓말에 화가 났다”며 아내 이수진씨가 1999년 출간한 에세이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에 담긴 내용을 언급했다. 이어 그는 “차노아가 차승원과의 사이에 낳은 친자인 것처럼 묘사돼 본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고등학생 차승원을 처음 만나 지난 1989년에 결혼식을 올렸고 아들 노아를 낳았다”는 에세이 내용에 조씨는 “차승원 부인 이수진과 오랜 교제 끝에 지난 1988년 3월 결혼했다가, 같은 해 5월 차노아를 낳은 후 1992년 5월 협의 이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조모씨는 7일 대리인을 통해 소 취하서를 제출했다. 차승원 부인 이수진씨는 PC통신을 통해 차승원과의 첫 만남부터 차노아 육아 등의 글을 올리며 유명해졌으며 지난 1999년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러나 한동안 방송 출연이나 사진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아 루머에 시달리자 SBS ‘좋은아침’을 통해 루머를 해명하고 나서기도 했다. 해당 책에는 이수진이 18살 고등학생 차승원을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차승원이 20살이 되던 1989년 결혼식을 올렸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차승원과 1992년 결혼식을 올렸으며 차노아는 차승원이 아닌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임이 밝혀졌다. 이에 지난 7일 차승원은 한 매체를 통해 “나나 아내 모두 노아를 위해서 작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모든 분께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어 차승원은 “당시에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갑자기 착해진 이유? ‘차승원 부인 이수진은?’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갑자기 착해진 이유? ‘차승원 부인 이수진은?’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부인 이수진’ 배우 차승원의 아들 차노아의 친부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던 남성이 소를 취하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차승원과 부인 이수진 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조 모씨는 전날 대리인을 통해 소 취하서를 제출했다. 앞서 조씨는 자신이 차노아의 친아버지인데 차승원이 친부처럼 행세해 본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이수진 씨와 1988년 3월 결혼했고, 그해 5월 차노아를 낳은 후, 1992년 5월 이혼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차승원은 지난 6일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를 통해 “22년 전에 결혼을 했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 살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됐다”며 “노아를 마음으로 낳은 아들이라 굳게 믿고 있다. 지금도 그때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차승원은 아내 이수진 씨가 과거 출간한 자서전의 거짓 논란에 대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나 아내 모두 노아를 위해서 작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모든 분께 죄송하다”면서 “당시에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생각해주셨으면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부인 이수진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갑자기 이유가 뭐지”,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부인 이수진..잘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가족 힘내세요”,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부인 이수진..막장이네”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부인 이수진) 연예팀 chkim@seoul.co.kr
  • 이수진 차승원 차노아 소송, 친부 소 취하…이수진 에세이 거짓 논란에 “아들 위한 거짓말 죄송”

    이수진 차승원 차노아 소송, 친부 소 취하…이수진 에세이 거짓 논란에 “아들 위한 거짓말 죄송”

    ‘차승원’ ‘이수진’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아들 차노아를 놓고 차승원 이수진 부부에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던 차노아 친부가 소송을 취하했다. 한편 소송의 발단이 되었던 차승원 부인 이수진씨가 과거 출간한 에세이에 대해 차승원이 해명을 했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던 조모씨는 이번 소송 배경에 대해 “차승원 부부의 거짓말에 화가 났다”며 아내 이수진씨가 1999년 출간한 에세이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에 담긴 내용을 언급했다. 이어 그는 “차노아가 차승원과의 사이에 낳은 친자인 것처럼 묘사돼 본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고등학생 차승원을 처음 만나 지난 1989년에 결혼식을 올렸고 아들 노아를 낳았다”는 에세이 내용에 조씨는 “차승원 부인 이수진과 오랜 교제 끝에 지난 1988년 3월 결혼했다가, 같은 해 5월 차노아를 낳은 후 1992년 5월 협의 이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조모씨는 7일 대리인을 통해 소 취하서를 제출했다. 차승원 부인 이수진씨는 PC통신을 통해 차승원과의 첫 만남부터 차노아 육아 등의 글을 올리며 유명해졌으며 지난 1999년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해당 책에는 이수진이 18살 고등학생 차승원을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차승원이 20살이 되던 1989년 결혼식을 올렸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차승원과 1992년 결혼식을 올렸으며 차노아는 차승원이 아닌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임이 밝혀졌다. 이에 지난 7일 차승원은 한 매체를 통해 “나나 아내 모두 노아를 위해서 작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모든 분께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어 차승원은 “당시에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수진 차승원 차노아 소송, 친부 끝내 취하…이수진 에세이 거짓 논란에 “아들 위한 거짓말 죄송”

    이수진 차승원 차노아 소송, 친부 끝내 취하…이수진 에세이 거짓 논란에 “아들 위한 거짓말 죄송”

    ‘차승원’ ‘이수진’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아들 차노아를 놓고 차승원 이수진 부부에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던 차노아 친부가 소송을 취하했다. 한편 소송의 발단이 되었던 차승원 부인 이수진씨가 과거 출간한 에세이에 대해 차승원이 해명을 했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던 조모씨는 이번 소송 배경에 대해 “차승원 부부의 거짓말에 화가 났다”며 아내 이수진씨가 1999년 출간한 에세이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에 담긴 내용을 언급했다. 이어 그는 “차노아가 차승원과의 사이에 낳은 친자인 것처럼 묘사돼 본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고등학생 차승원을 처음 만나 지난 1989년에 결혼식을 올렸고 아들 노아를 낳았다”는 에세이 내용에 조씨는 “차승원 부인 이수진과 오랜 교제 끝에 지난 1988년 3월 결혼했다가, 같은 해 5월 차노아를 낳은 후 1992년 5월 협의 이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조모씨는 7일 대리인을 통해 소 취하서를 제출했다. 차승원 부인 이수진씨는 PC통신을 통해 차승원과의 첫 만남부터 차노아 육아 등의 글을 올리며 유명해졌으며 지난 1999년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해당 책에는 이수진이 18살 고등학생 차승원을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차승원이 20살이 되던 1989년 결혼식을 올렸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차승원과 1992년 결혼식을 올렸으며 차노아는 차승원이 아닌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임이 밝혀졌다. 또 이 에세이에서 이수진은 차승원과의 만남에 대해서 “남편이 저한테 반한 이유는 어떤 면에서건 자신만만한 제 배짱이 좋았고 유난히 똑똑해 보이는 제가 예뻤다고 합니다”고 전했다. 이에 지난 7일 차승원은 한 매체를 통해 “나나 아내 모두 노아를 위해서 작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모든 분께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어 차승원은 “당시에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이수진 에세이 거짓 부분 사과…소송 취하 이유는 불명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승원 이수진 에세이 거짓 부분 사과…소송 취하 이유는 불명

    ‘차승원’ ‘이수진’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차노아 친부 소송 취하 소식이 전해졌다. 차승원·이수진 부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던 아들 차노아의 친부가 1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끝내 취하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차승원과 부인 이수진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1억 1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조모씨가 7일 대리인을 통해 소 취하서를 제출했다. 앞서 차노아의 친부라고 밝힌 조씨는 “차승원이 차노아의 친부처럼 행세해 본인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에 차승원 부부를 상대로 1억여 원의 손해배상을 요청했다. 조씨는 이번 소송 배경에 대해 “차승원 부부의 거짓말에 화가 났다”며 아내 이수진씨가 1999년 출간한 에세이 ‘연하남자 데리고 아옹다옹 살아가기’에 담긴 내용을 언급했다. 이어 그는 “차노아가 차승원과의 사이에 낳은 친자인 것처럼 묘사돼 본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고등학생 차승원을 처음 만나 지난 1989년에 결혼식을 올렸고 아들 노아를 낳았다”는 에세이 내용에 조씨는 “차승원 부인 이수진과 오랜 교제 끝에 지난 1988년 3월 결혼했다가, 같은 해 5월 차노아를 낳은 후 1992년 5월 협의 이혼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친부 소송 논란에 휩싸인 차승원은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를 통해 “22년 전에 결혼을 했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 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살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됐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지난 7일 차승원도 한 매체를 통해 “나나 아내 모두 노아를 위해서 작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고 모든 분께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어 차승원은 “당시에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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