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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마초 가수 이승철/집행유예로 풀려나

    서울형사지법 곽태철판사는 26일 대마초를 피워온 혐의로 구속기소된 가수 이승철(25)피고인에게 대마관리법 위반죄를 적용,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악사 김준배(34),작곡가겸 가수 박광현(26),작곡가 유정연(26)피고인 등 3명에게는 징역 1년∼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 진념 기획원차관/신임 장차관급 10명의 프로필

    ◎차분한 논리의 정통 「EPB맨」 빈틈없는 논리를 차분한 대화로 풀어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하며 일솜씨도 매끄럽다. 해운항만청장 이전까지 26년 동안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EPB맨」으로 이번에 금의환향한 셈. 작은 체구에도 일을 당차게 추진진하고 총명해 똘똘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성신여대 교수인 작곡가 서인정씨와의 사이에 2남. ▲전북 부안(51세) ▲서울대 상대 졸업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 공정거래실장·차관보 ▲재무부차관 ▲항만청장
  • 원로작곡가 이호섭씨

    원로작곡가 이호섭씨가 18일 상오 청량리 성바오로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이씨는 중앙대 작곡과 교수를 지냈으며 생전에 「국화옆에서」 「옛날은 가고 없어도」 등 서정성 높은 가곡작품들을 남겼다. 발인은 20일 상오10시 세종로 천주교회 연락처 969­2780.
  • 총리회담 북 대표단 「서울행보」 이모저모

    ◎“초부득삼이니 3차회담 성공할 것”/연총리,이번엔 깍듯이 “강총리” 호칭/“사임설 진짜냐”에 “회담 안돼 나온 말”/「우리의 소원」 작곡가 안병원씨,특별공연서 직접 지휘 ▷총리 주최 만찬◁ ○…강영훈 총리가 11일 하오 쉐라톤워커힐호텔 컨벤션센터에서 북측 대표단을 위해 마련한 만찬은 연형묵 총리를 비롯한 북측 대표단 일행과 우리측 정부각료·학계·언론계·전·현직 남북대화관계자 등 2백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일관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2시간 여 동안 진행. 이날 만찬은 북측 대표단의 공연관람일정으로 예정보다 30분 늦은 하오 7시30분쯤 시작됐으며 강·연 두 총리는 만찬장 입구에 나란히 서서 참석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했는데 연 총리는 줄곧 『반갑습니다』라고 인사. 남북 총리는 이날 만찬사를 통해 12일 전체회의에 앞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기본틀」과 불가침선언 채택의 당위성을 각각 강조. ○참석인사와 악수 강 총리는 만찬사에서 『3번째 열리는 남북고위급회담은 이제 한두 번의 차원을 넘어서 여러번의 역사성을 지니게 됐다』며 총리회담의 의미를 평가하고 『황무지에 길을 내며 초행했던 그 길을 따라 두 번째 서울을 오신 북측 대표단 여러 분을 맞고보니 새삼 반가운 마음 그지 없다』고 북측 대표단 일행을 환영. 강 총리는 또 『초부득삼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번 만남에서 좋은 진전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총리회담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건배를 제의,만찬장 분위기는 고조. 이날 헤드테이블에는 강·연 총리를 비롯,민관식 민주평통 부의장·채문식 전 국회의장·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최호중 외무부 장관·김상협 대한적십자사 총재·이홍구 대통령정치담당특보·유창순 전경련 회장·남덕우 전 부총리·홍성철 통일원 장관 등이 자리를 같이해 환담. ○평양음악단 만나 ○…연 총리는 만찬이 끝난 뒤 하오 9시50분쯤 만찬장 옆에 마련된 「상봉장」에서 이날 일정을 막 끝내고 돌아온 성동춘 단장을 비롯한 평양민족음악단 일행을 20여 분간 면담. 이날 북측은 상봉장에서 북측 인사들을 제외한 우리측 안내요원과 기자는 물론 호텔 봉사요원들까지도 나가줄 것을 거듭 요구하는 등 유별나게 예민한 반응. 특히 북측 기자들은 취재열기를 전혀 보이지 않았던 평소 태도와는 달리 이 자리에서는 『자리를 정돈해 달라』는 북측 통제요원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응하는 등 열성을 보여 눈길. 연 총리는 이날 친동생을 극적 상봉한 김진명옹에게 『건강이 어떠냐』고 인사말을 건네고 가족상봉을 의식한 듯 『평양시민들이 진명선생을 제일 걱정한다』고 언급. ▷공연관람◁ ○…호텔신라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3박4일간의 공식일정에 들어간 북측 대표단은 이날 하오 4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1시간30여 분 동안 창극,판소리 등을 중심으로 한 특별공연 「소리여,천년의 소리여」를 관람. 이날 연 총리의 입장을 알리는 장내 방송과 함께 무대 뒤편의 대형 스크린에 남북 양총리가 손을 흔들며 입장하는 모습이 비쳐지자 장내를 가득 메운 2천여 명의 청중은 일제히 박수로 이들을 환영. 남북 총리를 비롯한 쌍방 회담대표는 2층 로열석에,북한측 수행원 및 기자단은 그 주위에 자연스럽게착석. 공연은 국립무용단의 「북의 대합주」로 시작,판소리 흥부가,창극 아리랑과 국립국악원,국립창극단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는데 특히 마지막 순서에서는 남북대표단과 일반관람객이 함께 「우리의 소원」을 작곡가인 안병원씨(64·캐나다 온타리오주 월로데일시 거주)의 직접 지휘로 합창하는 감격적인 모습. ○…관람에 앞서 예술의 전당 2층 서예관에 들른 남북대표단과 북측 기자들은 조경희 예술의 전당 이사장의 안내로 전시중인 각종 서예작품들을 감상. 연 총리는 서예관 입구에 마련된 방명록에 「조국통일을 바라면서」라고,강 총리는 「예술의 전당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라고 각각 휘호. 연 총리는 이날 전시실을 둘러보는 가운데 안내원의 설명에 별다른 질문이나 반응없이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는데 관람도중 강 총리의 팔을 잡아끌며 『사진하나 찍읍시다』고 제의,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해주는 여유를 보이기도. ○“TV 보고 놀랐다” ▷호텔신라 도착◁ ○…연 총리를 비롯한 북측 대표단은 이날 상오 11시48분쯤 숙소인 호텔신라에 도착,호텔입구에서 강영훈 총리의 영접을 받고 인사말을 교환. 강 총리가 『어서 오십시오』라며 반갑게 악수를 건네자 연 총리는 『오랜만입니다』라고 인사말을 나눈 뒤 곧바로 2층에 마련된 상봉장으로 자리를 옮겨 8분여 동안 환담. 연 총리가 『남측 TV에서 강 총리가 곧 사임할 것이라는 보도를 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을 꺼내자 강 총리는 『남북회담을 잘못한다고 언론이 물러가라고 하는 것』이라며 『연 총리가 잘 도와줘야 내가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지 않느냐』고 응수. 연 총리는 『지난번 1차회담 때 서울시장 주최 만찬에서 남측 인사들이 강 총리가 잘한다고 이야기하더라』 『사임설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서 안심했다』고 언급. 연 총리가 이어 회담 전망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질문은 나보다도 강 총리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라며 남쪽의 책임을 떠넘기자 강 총리는 『나는 항상 낙관적인데 연 총리께서 가끔 비관적이신 것 같다』고 부드럽게 응수. 강 총리는 또 『우리 말에 「삼세번」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이번이 세 번째 회담이고 이미 친구가 됐으니 잘 되지 않겠느냐』며 거듭 회담성과에 기대감을 나타내며 『남북 양측의 송년통일전통음악회도 화기애애한 가운데 잘 열리고 있다』고 부연. 연 총리는 호텔신라에 대해 『언제 지은 건물이냐』고 관심을 표명했고 강 총리는 『우리가 평양서 좋은 집에 묵었는데 서울서 좋은 장소를 고르다 보니 여기가 괜찮고 교통도 편리해서 정했다』고 설명. ▷총리 호칭◁ ○…지난 1·2차 회담 때 강 총리를 공식석상에서는 「수석대표선생」,사석에서는 「총리선생」으로 구분해 부르던 연 총리가 이날 열린 만찬에서 강 총리를 「총리선생」으로 호칭해 주목. 우리측 관계자들은 이날 만찬이 이번 3차회담기간 동안 갖게 되는 여러 공식행사 중 첫 번째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북측 태도가 관심거리라고 평가. 연 총리는 「북남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단장의 첫 연회연설」이란 제목의 만찬답사 첫 머리에 『강영훈 총리선생!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남측 대표들과 각계 인사 여러분』이라고 언급. 연 총리는 이날 상오 판문점 통과 당시 홍성철 통일원 장관과의 대화도중에서도 『강 총리는 훌륭한 분』이라는 등 계속해서 강 총리를 「총리」라고 호칭. ○개성엔 눈내렸다. ▷판문점 통과◁ ○…이에 앞서 연 총리 등 북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상오 10시 판문점을 통과해 서울로 진입. 판문점 평화의 집에 도착 직후 1층 영접실에 들어온 연 총리 등 북측 대표 일행은 홍성철 통일원 장관 등 우리측 대표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날씨 등을 화제로 10여 분간 환담. 우리측 홍 장관이 먼저 『아침까지만 해도 눈이 내렸는데 북측 대표단이 도착하니 날씨가 완전히 갰다』며 첫 마디를 꺼내자 연 총리는 『북쪽에도 평양에는 눈이 오지 않았지만 개성에는 눈이 내렸다』고 북쪽 날씨를 소개. 이어 북측의 백남준 대표가 최근 통일원의 격상이 생각난 듯 홍 장관에게 『홍 선생,소문에 듣자 하니 부총리가 된다는 데 사실이냐』고 묻자 홍 장관은 『왜 못마땅하세요』라고 받아넘겼고 이에 백 대표가 『쌍수를 들어 환영하려고 그럽니다』라고 말해 장내에 폭소가 터지기도.
  • 서울서 열창한 「평양 민족음악단 공훈배우」/백영희씨

    ◎“이번 공연은 통일의 서곡이야요”/“전국 방방곡곡에서 마음놓고 노래하고파” 평양 민족음악단의 공훈배우 백영희씨(35)는 북한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성의 한사람. 이들 음악단 일행이 지난 8일 상오 판문각을 지나 중립국 감시원 초소로 들어설 때 환송 나온 개성시민과 개성시 예술단들은 누구보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기 백영희동무래 있다. 백영희동무 잘 갔다 오시라요』 취재하던 기자는 그녀를 보려고 달려들던 개성인민들 틈새에 끼여 혼이 난 기억이 생생하다. 그토록 인기를 끌던 그녀를 공교롭게도 9일 하오6시 첫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예술의 전당 무대뒤 북측 분장실 앞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전후세대야요. 기래서 남조선은 말로만 들었디요. 막상 와 보니 감회가 깊구만요. 하디만 이렇게 교류만할게 아니라 빨리 통일이 돼서 경상도 전라도 전국 방방곡곡 어느 땅에 가든 마음놓고 공연해야되지 않갔시요』 판문점에서 만났던 기억을 되살려 주자 매우 반가워 했다. 『우리 이번 공연은 온세계에 통일의지를 알리는 서곡이야요. 북녘 예술인들이 보내는 노래속에는 민족통일 염원의 소망이 절절히 담겨 있디요』 기자의 손을 잡으며 통일의 염원을 강조하던 그녀는 불쑥 『기자선생,우리는 같은 민족이지요? 선생은 우리가 남쪽으로 들어올 때 어떤 느낌을 받았습네까』라고 묻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북측에서 공훈배우는 주로 고령의 예술인들에게 주어지는 인민배우에 다음가는 예술인. 최고의 대우를 받는 인물들에게 붙여주는 칭호이다. 어떻게 그런 공훈배우가 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그저 모든 인민들이 도와준 덕』이라고 했다. 1m60㎝ 정도의 키에 다소 통통한 느낌의 백씨는 화사한 미모를 갖춘 30대 중반의 여인. 이미 결혼해 인민학교 1학년에 다니는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데 남편은 역시 같은 음악인인 작곡가 리명환씨(37)라고 일러주었다. 『떠나오기 직전에 그 사람이 제가 남쪽에 온다는 걸 알았디요. 무엇보다 노래를 많이 열심히 불러 우리의 간절한 통일의지를 남녘 인민들에게 전하고 오라고 했디요. 우리 아들애도 엄마 노래 잘 부르라고 했디요』 전형적인 북한식 발성법에 꾀꼬리 같은 고음을 구사하는 백씨는 이번 공연에서 맨처음 여성 5중창으로 무대에 나와 서울아리랑 첫대목을 낭랑한 고음으로 불러 2부 공연을 리드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중간쯤에 혼자 나서 세련된 몸짓과 손짓으로 「평북녕변가」와 「바다의 노래」 「해당화」 등 세곡을 연창하는 등 최고 배우임을 과시했다.
  • 남북공동작곡 「통일의 길」 큰인기/평양민족음악단 1차공연 이모저모

    ◎남은 합진,북은 독진·독창 돋보여/북 단장,“통일대하 누구도 막지 못할것”/양쪽 출연진 대합창으로 절정에 ○…서울 방문 이틀째를 맞은 평양민족음악단(단장 성동춘) 일행 29명은 9일 상오 10시쯤 창덕궁에 도착,약 1시간20분 동안 인정전·대조전·비원 등을 관람. 이우용 관리소장 및 안내원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은 이들은 달력·기념배지·엽서·도자기 등 준비해온 선물을 안내원과 보도진들에게 나눠주며 말을 거는 등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부용정 휴게소에서 다과 등을 들며 20여 분 간 환담을 나눈 성 단장은 『우리 선조들이 만든 귀중한 문화재들이 임진왜란 때 소실돼 가슴아프다』면서 다시는 이런 재난을 당하지 말아야겠다고 말하기도. 이날 창덕궁은 일반인들의 관람도 허용,북측 일행은 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궁내를 오갔으며 인정전 앞뜰과 비원에서 두 차례 기념촬영을 한 뒤 예정시간보다 30여 분 늦은 상오 11시30분쯤 창덕궁을 출발. ○맵시있는 옷차림 ○…한편 이날 창덕궁을 찾은 평양민족음악단 일행의 옷차림은비교적 세련된 모습들. 엷은 줄무늬 회색 싱글차림의 성 단장 등 남자 일행들은 대부분이 양복차림이었고 제1차 공연에서 능수버들 양산도 등을 부른 독창가수 배윤희 등 여성 출연자들은 감청색의 꽃무늬가 수놓인 한복에 흰색 목도리를 두르거나 투피스에 바바리코트를 걸친 맵시있는 차림들. ○…성동춘 평양민족음악단 단장은 이날 하오 서울체류 후 처음 가진 기자회견에서 통일염원차원에서 이번 축제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 성 단장은 『통일을 위한 민족대음악축제에 중앙일보 보도 등 유감스런 문제가 아쉽긴 하지만 통일기운이 거세차게 흐르는 대하』라면서 『그 가운데 자질구레한 거품이 있을 수도 있으나 결코 그 대하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역설. 그는 또 북에 민간예술단체가 있느냐는 질문에 『민간단체는 북에 얼마든지 있고 노동자 농민들이 일주일에 한 번 콩쿠르에 출연할 만큼 문화예술을 즐기고 있을 뿐 아니라 북한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는 것이 배우와 같은 문화예술인들』이라면서 『이들이 주축이돼 정치·군사 등 첨예한 문제에 앞서 문화통일을 이뤄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문보도에 불쾌 ○…2부인 평양민족음악단의 첫 공연 곡목 중 78세의 인민배우 김진명옹의 독창인 「배따라기」가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야위고 연로한 김옹의 목소리가 의외로 찌렁찌렁 울려나오자 노익장에 모두 감탄하는 눈치. 또한 하이라이트는 김옹과 69세의 공훈 여배우 김관보씨의 혼성민요 제창. 이들은 「박연폭포」 「정방산성가」 「자진난봉가」 등 3곡을 불렀는데 70∼80대에 이른 원로들의 진지한 가창모습에 모두 넋을 빼앗긴 듯했다. 이어서 북한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공훈배우 백영희씨(35)의 「평북영변가」와 「바다의 노래」도 관심이 집중되었다. ○…평양민족음악단의 해금 연주자 유덕재씨(42)는 전통음악의 개량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열심히 설명했다. ○북 최고 인기배우 『우리는 전통음악 계승에 많은 신경을 쓰면서 민요를 기악곡으로 편곡,인민들의 구미에 맞도록 개량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현재 민족악기와 양악기를 합한 배합관현악의 연주도 활발하다』고 소개. 특히 배합관현악은 음색이 독특하고 웅장해서 인민들이 모두 좋아한다는 자랑까지 곁들였다. ○…북한측 공연이 독주·독창·병창 등 제한된 인원내에서 돋보이는 개인기량을 한껏 발휘한 데 반해 우리측 공연은 많은 출연진과 우렁찬 합주,화려한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 9일 첫 공연에서 먼저 무대를 장식한 우리측은 60명이 출연한 가야금 합주 「침향무」와 입체장 「심청가」 중 부녀상봉 대목에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 후 국립무용단과 88무용단 등 80명이 출연한 「북의 합주」에서 힘찬 타악의 리듬과 힘나는 국무로 피날레를 장식,큰 박수를 받았다. 후반부에 등장한 북한측 공연단은 프로그램 선곡을 경쾌한 음악으로 골랐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 민요가락에서 일반 성악곡까지 모든 리듬이 흥겹게 구성됐으며 지난 8월 평양에서 성동춘 단장과 황병기 위원장이 함께 작곡했다는 노래,「통일의 길」 역시 밝고 부담없는 곡조로 저음가수 송영희의 열창으로 열광적인 박수를 이끌어냈다. ○북의옥류금 첫선 ○…이날 북측이 8번째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독주악기 옥류금은 북한이 내놓은 최고의 전통악기로써 남쪽에서 이 악기가 실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자에 앉아서 켜게 돼 있는 이 옥류금은 삼국시대에 있던 하프형태의 재래악기 「공후」와 가야금의 원리를 조화시킨 새로운 악기로서 그 음향이나 용도가 전통음악에 쓰이는 그야말로 북한의 독자적인 전통악기이다. 소리가 옥같이 맑다고 해서 옥류금이라 이름붙인 이 악기는 하프에서 피아노·실로폰 등 각종 악기의 음색을 다채롭게 구현해내 객석의 환호를 받았다. 황병기 집행위원장은 『북한에 갔을 때 이 악기를 사오려고 했는데 저들이 무슨 이유인지 주문생산만 받고 재고가 없다고 해서 못 구해왔는데 매우 훌륭한 악기임엔 틀림없다』고 촌평. ○…평양민족음악단의 총 연출자 최상근씨는 이번 공연과 관련,민족 색깔이 짙은 고전민요를 위주로 연주곡목을 선정했다며 옥류금·장쇄납 등 북한의 악기개량작업에 대해서도 설명. 그는 또 북한에서는 「악기연구소」라는 전문 연구단체에서 전통민족악기를 시대와 민족요구에 맞게 개량하는 연구를 꾸준히해 오고 있다고 전하면서 「범민족통일음악회」에서 황병기씨가 연주한 거현금에 대해 개량악기는 아니라고 본다며 북한에서는 9현이나 6현으로 개량한 가야금도 쓰인다고 말했다. ○「우리의 소원」 합창 최상근씨는 「피바다」 「꽃파는 처녀」 「밀림아 이야기하라」 등 여러 가극의 곡을 만든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 ○…첫날 공연에 앞서 평양민족음악단은 이날 하오 3시 공연장인 예술의 전당으로 옮겨 본격적인 리허설에 돌입. 이들은 처음에는 무대시설을 낯설어 했으나 연습이 진행되면서 쉽게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날씨가 포근한 데다 스팀까지 들어와 땀까지 흘린 북측 단원들은 『남북관계가 이런 겨울날씨 같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한마디씩. ○…이날 북한측의 공연에 이어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의 피날레는 남북 출연진이 모두 출연하여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온 객석을 감동과 감흥의 한순간으로 이끌었다. 우리측 공연단 2백23명과 북측 공연단 24명이 한데 어우러져 손에 손을 잡고 이 노래를 부르자 객석의 모든 관객들도 함께 일어나 합창,가슴벅찬 통일의 열망으로 막을 내렸다. 이날 심봉사역으로 나왔던 남측의 조상현씨가 북측의 인민배우 김진명의 손을 잡고 나와 함께 노래했으며 조씨가 김씨를 덥석 업어 무대위를 빙빙돌자 장내는 박수와 환호로 뒤범벅. ○…북측에선 이번 공연을 위해 포스터 5백장을 특별제작해왔으나 남측에서 이를 붙여주지 않는다고 기자단에게 불만을 토로. 이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자 공연 직전 콘서트 홀 주위에 우리측 포스터가 붙은 곳 옆에다 북측 포스터를 황급히 붙이는 촌극을 연출.
  • “「우리의 소원…」 흘러간 노래 됐으면”

    ◎「송년음악회」 참석하러 귀국/작곡자 안병원옹/“40년간 애창… 통일 안된 현실 안타까워/이산가족도 많은데 특혜같아 방북 초청 거절” 노래의 제목 「우리의 소원」의 작곡자 안병원씨(63)가 서울 무대에서 지휘봉을 잡기위해 지난 5일밤 일시 귀국했다. 오는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서울시립 소년소녀합창단 송년 공연무대에서 이날의 피날레가 될 「우리의 소원」합창을 지휘할 안씨는 공연에 앞서 세종문화회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잠시 기자들과 만났다. 그가 만든 이 한 곡의 노래 「우리의 소원」이 40년을 한결같이 애창돼 오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운 한편,그래도 예술가로선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 안씨의 첫마디다. 『가사를 잘 써주신 선친 덕에 제가 이제와서 덕을 보고 귀한 열매를 맺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람이 있다면 이 노래가 곧 「흘러간 노래」가 돼 버리도록 하루 빨리 통일이 됐으면 하는 겁니다』 지난해 7월 임수경양의 입북사건 이후 그의 노래가 북한에서 급격히 퍼져 나갔고 북쪽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안씨를 방북하도록 초청했으나 북한 방문을 단호히 거절했던 안씨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 고향은 서울입니다. 그곳에 연고가 전혀 없는 내가 아직 수많은 이산가족도 상봉 못하는 현실에서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제가 서울음대 1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47년 아버님께서 당시 서울 중앙방송국의 3·1독립운동기념 어린이 노래극 노랫말을 쓰시고 제게 곡을 붙이라 하셨죠. 믿음이 깊었던 전 가사를 뇌며 많은 기도를 했는데 어느날 불현듯 악상이 떠올랐어요. 1시간만에 곡을 완성했습니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가 1948년 자주 국가로 독립이 되는 대신 남과 북이 갈라진 현실속에서 「독립」이 「통일」로 바뀌는 운명을 맞게 됐다. 지난 48년부터 이 노래는 국민학교 교과서에 실리게 됐는데 이 때 작사자인 고 안석주씨(안씨의 부친)와 작곡가 안씨의 동의를 얻어 노랫말이 「우리의 소원은 독립」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바뀌어 책에 실린 것이다. 캐나다 이민후 이번까지 세번째 고국을 찾은 안씨는 이번 일시귀국이 어느 때보다 감개무량하고 뜻깊다고 밝혔다.
  • 제1회「서울 가요대상」시상/최고 인기가수에 변진섭/스포츠서울 주최

    ◎7대가수/김지애 나미 민해경 주현미 변진섭 태진아 현철 서울신문 자매지 스포츠서울이 주최한 제1회 서울 가요대상 시상식에서 영예의 대상인 7개 가수상은 김지애ㆍ나미ㆍ민해경ㆍ주현미ㆍ변진섭ㆍ태진아ㆍ현철에게 돌아갔다. 1일 하오2시 서울 능동 리틀엔젤스회관에서 2천여명의 관중이 초청된 가운데 화려하게 개막된 이날 시상식에서 7명의 대상수상자는 상금 3백만원씩과 1백만원 상당의 오선트로피를 서울신문 신우식 사장으로부터 받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또 부상 2백만원과 50만원 상당의 트로피가 주어지는 신인상은 김민우와 신해철이 차지하는 등 6개부문 총 13명의 최고 부문별 수상자가 탄생,가요계의 톱스타로 영예를 누렸다. 가요기획상은 김광수씨,작사가상은 노영심씨,작곡가상은 하광훈씨가,그리고 특별상부문인 최고 인기가수상은 변진섭이 각각 차지했다.
  • 10대의 우상과 마약(사설)

    12일 저녁의 일이다. 7시 TV뉴스에서 가수 이승철이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된 사실이 보도되었다. 그러고 나서 30분도 채 안된 시간의 같은 TV에서는 코미디프로를 통해 한 개그맨이 「이승철의 인기」을 빗대어 우스개를 펼쳤다. 그러자 10대로 가득찬 방청석에서는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단지 그 이름만 들먹여도 만당한 10대들이 기성을 질러가며 열광하는 가수가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로 마약사범의 혐의로 구속이 된 것이다. TV프로의 녹화시간과 속보시간의 시간차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마약사범으로 잡혀간 가수를 10대가 열광적으로 따르고 있는 현상을 TV가 긍정적으로 비친 것 같은 결과를 보인 것은 안방에 있는 시청자들을 당황시켰다. 문제는 이렇게 환호하며 따르는 10대의 우상이 환각제에 취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잖아도 10대 팬들은 저희들의 우상이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흉내내고 싶어한다. 흉이나 흠까지도 좋아보이고 모든 행동이 흠모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가 환각제를 사용한다면 그것까지 미화시켜 생각할 적지 않은 10대 팬들이 있을 것이다. 12일 구속된 13명의 마약상습자 중에는 이승철 말고도 가수와 작곡가가 더 있다. 택시운전사ㆍ부동산업자ㆍ식당의 여자종업원까지 있다. 마약인구가 얼마나 보편화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인적 구성이다. 마약은 그것에 빠진 개인을 멸망시키고야 만다. 그리고 그가 속한 가정과 가족을 멸망지경에까지 끌고가고,그 고통 때문에 시련을 당하게 한다. 그것이 번져 사회를 되살릴 수 없이 썩어가게 만든다. 어제 오늘 우리를 환멸과 좌절의 늪으로 끌어들이듯 충격을 주었던 일가족 생매장사건의 범인들도 환각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그들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강력범ㆍ폭행범들이 예외없이 횐각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범죄의 필수불가결한 소도구가 되고 있는 환각제가 이렇게 무차별 확산되는 일이 걱정스러운데,그것들이 청소년들에게 선망과 환상의 형태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흔히 연예인들에게는 마약같은 정신촉진제가 부득이하게 필요하기도 한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환각에 의존하는 삶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파멸로 끝나는 인생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런 유혹이 상존하는 분야의 사람들일수록 그 유혹을 극복해야 마침내 승리할 수 있다. 연예계가 합심하여 방호벽을 쌓고 감시와 견제로 풍토를 개선하고 지켜야만 다함께 파멸하지 않는다. 이승철의 경우 보석으로 풀려난 지 몇 달도 안되어 청소년 팬들 앞에서 버젓이 무대에 서게 하고 재범으로 구속이 되는 과정을 10대 팬들이 보는 앞에서 재연하게 한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10대에게 준 악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반성해보아야 한다. 범죄에 대한 불감증현상 때문에 환각범죄는 오히려 무관심 속에서 더욱 창궐해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모든 범죄의 죄질을 더욱 죄깊은 쪽으로 몰고가는 것이 환각범죄다. 지속적으로 뿌리뽑는 노력이 없이는 좀처럼 줄이기도 어려운 것이 이 범죄다. 사회 전체가 공조체제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 「대마초 연예인」등 13명 구속

    ◎가수 이승철ㆍ박광현,작곡가 유정연 포함/요리사ㆍ택시운전사ㆍ전 검경신문 간부도 서울지검 강력부(강신욱 부장검사,추호경ㆍ채동욱 검사)는 12일 가수 이승철군(24ㆍ마포구 도화2동 우성아파트 12동1101호)과 가수겸 작곡가 박광현군(25ㆍS대 음대 국악과3년) 및 작곡가 유정연씨(25ㆍS대 음대 기악과 졸업) 등 4명을 대바관리법 위반 혐의로,조효진씨(33ㆍ택시운전사ㆍ성동구 구의동 590) 등 9명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이혜숙씨(23ㆍ음식점 종업원ㆍ충남 예산군 삽교읍 신가1리 256)를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는 한편 최자봉씨(36ㆍ송파구 잠실동 주공아파트 79동103호)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검찰은 이들로부터 히로뽕 22g과 1회용 주사기 1대,증류수 앰플 10개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구속된 가수 이군은 지난 7월27일 강원도 춘천시 춘천광광호텔에서 함께 구속된 박군과 함께 대마초를 피우는 등 지난해 9월말부터 모두 5차례에 걸쳐 대마초를 피운 혐의를 받고 있다. 이군은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마지막 콘서트」 등의 노래를 부른 인기가수로 지난해 10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뒤 벌금 1백만원을 선고받는 등 이미 2차례의 처벌을 받고도 이번에 다시 적발되었다. 「한송이 저 들국화처럼」 「비의 이별」 등을 작곡하고 노래도 부른 가수겸 작곡가 박군은 지난해 말부터 이군 등과 함께 3차례에 걸쳐 대마초를 피웠다는 것이다. 조씨는 지난 4월중순 하오11시쯤 강남구 논현동 A관광호텔 건너편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히로뽕을 투약하는 등 모두 5차례에 걸쳐 히로뽕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수사결과 가수 이군은 함께 구속된 김준배씨(33ㆍ악사ㆍ강원도 춘천시 중앙동 2가42)가 춘천부근의 야산에서 채취한 야생 대마초를 얻어 피워온 것을 밝혀졌다. 이번에 구속된 사람들 가운데는 이들 가수ㆍ작곡가ㆍ악사ㆍ택시운전사 이외에도 요리사ㆍ부동산중개업자ㆍ전검경신문 서울 송파구지사장 권오준씨 등도 포함돼 있다. 검찰은 히로뽕사범이 지난해보다 20%쯤 줄었으나 대마초사범은 오히려 48%늘어나는 등 최근 들어 히로뽕 사범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마약사범들이 대마초로 복용대상을 바꾸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근 대마초를 피운 뒤 환각상태에서 저지르는 강력범죄가 잇따르고 있음에 따라 앞으로 대마초 공급자와 흡연자를 집중적으로 단속할 계획이다.
  • 방북예술단,북한 문화인 만나

    범민족통일음악제에 참가하기 위해 북한에 체류중인 서울전통예술단은 14일 하오 평양 옥류관 만찬에서 북한의 대표적 문화예술인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15일 국토통일원에 따르면 이날 만찬에 참석한 3백명의 북한 문화예술인들 가운데는 문학예술총연맹 백인준 위원장을 비롯,원로배우 문예봉,시인 조명암,윤이상음악연구소 정봉석 소장,지휘자 김병화,김일진(만수대 예술단장),바이올리니스트 백고산(평양무용음악대 교수),작곡가 이건우 씨 등이 포함되었다.
  • 평양 범민족음악회/초청인사 방북 불허

    정부는 오는 10월18일부터 24일까지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범민족통일음악회(준비위원장 윤이상ㆍ재독음악가)에 작곡가 황병기씨(이대교수)등 국내 음악가 14명이 초청받은 것과 관련,윤씨 명의의 초청장을 방북초청장으로 인정치 않고 북한당국 또는 기관의 신변안전보장이나 별도의 초청장이 있어야 이들의 방북을 허용키로 했다.
  • 환상적 선율에 갈채/피아노의 시인 아프로즈 초청공연

    ◎세계대회 참가시인 3백명도 참석/서울신문사 주최 유럽에서 역량을 떨치고 있는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노빈 아프로즈여사(49)의 내한공연이 27일 하오7시30분 호암아트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1천석이나 되는 관람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노련하고 기품있는 연주력으로 이탈리아 작곡가 시마로자의 소나타,쇼팽의 그랜드 폴로네이즈 작품22 등을 선보이자 감미롭고 환상적인 선율에 매료됐다. 세계적인 시인이기도한 노빈 아프로즈여사는 지난25일 폐막한 제12차 세계시인대회에 이탈리아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는데 이날 연주회에는 시인대회에 참석했던 각국시인 3백여명이 대거참석,이채를 띠었다. 노빈 아프로즈여사는 이날 공연에 앞서 주최측인 서울신문사로 신우식사장을 예방,환담했다.
  • 예술원상 수상자 확정

    ◎문학 고박양균씨/미술 고남관씨/음악 정회갑씨/연극 김수용씨 예술원은 18일 제35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수상자는 문학부문 고 박양균씨(90년작고ㆍ시인),미술부문 고 남관(90년작고ㆍ서양화가),음악부문 정회갑(67ㆍ작곡가),연극부문 김수용씨(61ㆍ영화감독) 등 4명이다. 고 박시인은 시를 통해 일상성을 초월한 정신의 탁월성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했고 고 남화백은 인간의 희로애락과 생명의 영원성을 세련된 색채로 표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 정씨는 40여년동안 작곡과 후진양성을 통해 음악발전에 기여했으며 김씨는 아동영화와 문화영화를 통해 영화의 사회성과 교육성을 높인 공적이다. 시상식은 오는 10월중에 있을 예정이며 상금은 각 1천만원씩이다.
  • 북한 고위관리 지낸 재소동포의 「6ㆍ25증언」

    ◎“김일성,6ㆍ25새벽 내각 소집… 남침비준 강요”/4월초 군관학교간부 전선에 미리 배치/전쟁 한달전 강동학원서 통치요원 육성/폐쇄적인 북한체제는 「수용소적 사회주의」로 불러야 한때 북한의 권력 핵심에서 활약하다가 소련으로 망명했던 재소교포 18명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조국을 찾아왔다. 이들의 대부분은 6ㆍ25전쟁 전후 북한의 고위직에 있었으나 50년대말부터 60년대초까지 김일성 1인지배체제에 반발,소련으로 망명했던 「역사의 증인」들이다. 대부분이 70을 넘긴 고령인 이들은 22일 MBC시사토론에 참석,북한정권의 성립과 6ㆍ25전쟁의 발발 그리고 김일성 1인통치체제의 구축과정 등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날 토론에 나온 사람은 강상호(80ㆍ전 북한 내무성차관) 장학봉(71ㆍ전 북한 군관학교부교장) 박병률(82ㆍ전 북한 강동정치학원원장) 송진파(76ㆍ전 북한 문화성국장) 정상진(73ㆍ전 북한 문화성차관)등 5명이다. ­6ㆍ25당시 그리고 소련으로 망명하기전까지 북한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박병률=47년 12월부터 50년 6월25일까지 남로당원 양성기관이었던 강동정치학원 원장으로 일했다. 당시 훈련시킨 제자는 3천명에 이르는데 지리산 빨치산대장이었던 이현상과 제주도 폭동주역인 김달삼도 포함돼 있다. ▲강상호=김일성과 마찬가지로 해방후 소련에서 북한으로 돌아왔다. 6ㆍ25당시 내무성 차관이었는데 북한의 내무성은 경찰권 탐정권등의 권한을 행사했다. 나는 여러명의 차관중 당정치교양사업ㆍ문화사업을 맡았으며 김일성을 도와 북한정권수립에 참여했다. 당시 내무성장관은 현사법상인 방학세였다. ○「김정권」수립에 참여 ▲정상진=6ㆍ25직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강의했다. 해방전에는 소련에 있었으며 45년 3월에서 8월까지 소련해병대원으로 5개월간 훈련을 받고 소련의 대일전쟁에도 참여했다. ▲장학봉=군관학교부교장으로 군장교양성교육사업을 맡았으며 6ㆍ25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상좌(우리의 준장)계급장을 달고 전투에 참가했다. 1988년까지 남한의 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는데 포항제철,울산자동차공장 등을 둘러보니,경제ㆍ문화적으로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조국임을 실감,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콘크리트장벽 없어 ▲송진파=북한의 문화성국장,잡지 「새조선」의 주필을 맡았고 망명후에는 소련에서 발행되고 있는 한글신문 「레닌기치」의 주필을 맡았으며 현재는 은퇴했다. ­휴전선도 돌아보았을텐데 콘크리트장벽을 보았는가. ▲정상진=북한에서 선전하는 콘크리트장벽은 만리장성을 연상시키는데 대전차장벽은 있었으나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러나 콘크리트장벽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베를린장벽과 같은 물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심리적 장벽」이 문제이다. 몇년전만해도 한국에 대해 잘 몰랐으나 고르바초프등장이후 소련언론이 진실을 보도하기 시작해 정세를 바로 알게됐다. ­올해는 6ㆍ25발발 40주년이 된다. 6ㆍ25에 대한 연구도 많고 주장도 엇갈리는데 당시 내각에 참여한 사람으로 진상을 말해 달라. ▲강상호=그때 나는 병으로 평양중앙병원에 입원해있었으며 6월25일은 퇴원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중앙당비서가 그날 새벽전화를 걸어와 퇴원즉시 내각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있었다. 내각회의에는 국가보위상인 최용건만 빠지고 전원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김일성은 『지금부터 2∼3시간전 38선 전역에서 남조선괴뢰군이 북침을 해왔다. 나는 최고사령관으로 즉시 반격을 명했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사항은 내각의 비준이 있어야 하니 이를 비준해 달라』고 말했다. 김일성의 이 제안은 토론없이 1백%찬성으로 통과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지금 곧 원산행차에 올라 강원도당회의를 열고 전쟁에 대비한 과업을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서울이 해방됐다는 소식과 함께 3ㆍ8선이 남의 강원도를 책임지라는 지시가 있어 춘천으로 출발했다. 이때 나는 북침이 아닌 남침이라는 생각을 처음 갖게 됐다. 그 이유는 첫째 3ㆍ8선을 넘어 산굽이를 돌면서 국군포대를 관찰해보니 국군의 포와 포탄이 흩어져 있었는데 탄피는 몇개 없었다. 북침을 했다면 숱한 사격의 흔적이,공격의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둘째 전선지대의 이북 농촌에는 파괴된 집도 없었으며 농민들은 들판에서 김을 매고 부녀자들은 길거리를 오가고 있었는데 국군의 포격이 있었다면 그럴수 있겠는가. 셋째 미국무장관 덜레스가 이승만에게 북침을 명령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미국이 왜 하나의 사단도 남겨놓지 않고 군대를 철수했으며 딘소장이 포로가 될 정도로 전쟁초반에 패퇴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박병률=김일성이 도발한 것이라는 구체적 자료를 갖고 있지 못했지만 감지할 수는 있었다. 남한에서 월북한 사람들이 전쟁발발 1개월전부터 강동학원장인 내게 보내져 집중 훈련을 받았다. 또 전쟁이 발발하기 몇시간전에 서울 함락후 서울시 인민위원회위원장을 맡았던 이승엽이 『자기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면서 강동학원을 떠났다. ○스탈린이 전쟁 묵인 ▲장학봉=당시 군관학교에는 인민군지도자 25명의 그룹반이 있었는데 50년 4월에 이미 이 그룹반이 해산돼 소속원들 모두가 전선으로 배치됐다. 50년 8월까지 북한의 신문 라디오 등 모든 선전기관은 남조선이 북침을 했고,북한이 이에 반격을 가했다는 선전을 거듭했고 나 또한 전선에 나가지않아 이를 그대로 믿었었다. 8월초 전선에 투입됐을 때는 정의의 전쟁에 참가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흐루시초프의 회고록이 나오면서 진실이 밝혀지게 됐다. 이 회고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50년이전에 스탈린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남조선해방과 전조선의 자유를 위해 남침을 호소했으나 스탈린은 남조선침입의 대가로 미국이 참전하면 다음은 소련이 이에 대응해야 하는데 준비가 안됐다며 이를 반대했다. 그후 6ㆍ25발발 5∼6일을 앞두고 김일성은 이 문제를 다시 스탈린에게 제기,스탈린은 「좋다 나쁘다」는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으며 묵인했다. 이와 관련,흐루시초프는 내가 스탈린의 입장이었더라도 작은 나라가 통일을 하겠다는데 대해 어떠한 승인도 지시도 않았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전쟁이틀후 열린 유엔안보이사회에서 소련대표가 유엔군의 참전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퇴장한 것은 내막을 뻔히 아는 스탈린의 고육지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정권 수립때의 실정은 어떠했는가. ▲강상호=김일성일파가 만주에서 유격활동중 일본군의 토벌강화로 상황이 어려워지자 중국공산당이 소련측에 이들의 보호를 제의했다. 김일성부대는 소련정찰여단으로 편입돼 아무르강유역의 비밀지역에 있었고 해방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원산으로 귀국했다. 나는 소련 제25군 정치부 지도원이어서 김일성을 해방전에는 본 적 없었는데 해방후 소련군 상위(대위)로 귀국한 김일성을 본적이 있다. ­이 자리에는 김일성 1인독재체제를 구축하는데 도움을 주신분들이 많은데(일동 웃음) 지금 북한 체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상진=김일성은 북한에 들어오면서부터 정권에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개인숭배주의자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1956년 소련 공산당 20차전당대회에서 스탈린격하운동이 벌어졌다. 이 대회에 북한 노동당대표로 참석한 최용건이 돌아와 귀국보고를 했을 때 김일성은 우리 당에는 과거 박헌영이란 개인숭배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개인숭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뒤 연안파 윤공흠 이필규 등이 반김일성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들은 곧 숙청됐다. 이후 김일성은 「이단」숙청을 결심,대대적인숙청작업에 나섰고 1인지배체제를 구축했다. 6ㆍ25당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군고위간부ㆍ당간부 등이 모두 숙청당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도 반당분자로 몰렸고 이것이 우리가 소련으로 망명하게 된 이유다. ▲박병률=김일성은 북한체제를 「주체주의적 사회주의」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북한체제를 「수용소적 사회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남측서 통일 주도를 ­북한에 있을때 남로당출신들을 많이 만났을텐데…. ▲정상진=당시 나는 문화성차관 및 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이어서 홍명희 이태준 김남천 임화 최승희 등 많은 남쪽예술인들과 알고 지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비참한 운명을 맞았다. 작곡가 김순남선생은 전쟁전 박헌영외상 취임 축하파티에서 피아노를 쳤는데 이것이 죄가 됐다. 김순남선생이 궁지에 몰렸을 때 나를 찾아와서 「이제 어떻게 해야되느냐」라고 탄식하면서 춘향전을 가극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었고 그 분은 모든 창작활동이 금지된 채 숙청되고 말았다. ­마직막으로 남북통일을 위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겠는가. ▲장학봉=화해의 물결은 그 누구도 억제할 수 없다. ▲강상호=오늘날에는 무력으로 누구를 굴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이 세계적 여론을 일으켜 북한측에 평화통일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 남북통일을 하루라도 지연시키는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죄악이며 우리도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 본토망명 7년만에 돌아온 대만가수/후덕건 전격 귀환… 속사정은

    ◎「6ㆍ4사태」이후 사회주의에 염증/천안문서 투쟁 주도… 한때 구속 지난 83년 6월 중국대륙으로 망명했던 대만의 가수겸 작곡가 후덕건(34)이 7년이 지난 20일 자의반 타의반에 의해 대만으로 송환돼 화제가 되고 있다. 후는 10년전 중화민족의 얼과 통일염원을 담은 「용의 후계자」란 노래로 크게 유명해진 뒤 당시 대만이 계엄령 아래 있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인 억압이 심하다는 이유로 홍콩을 거쳐 대륙으로 건너 갔던 것. 후는 중국대륙의 개방ㆍ개혁바람이 민주화를 촉진시키고 그의 예술창작활동도 크게 뒷받침해 줄 것으로 믿었으나 사회주의 제도에 점차 실망을 느끼다가 지난해 6ㆍ4사건때 천안문 광장에서 단식투쟁을 하던 중 체포,구속됐다. 그는 올해초 석방됐으나 지난 5월30일 동료 2명과 함께 북경주재 외신기자들과 회견을 갖고 그동안의 구금생활실태를 폭로할 계획을 세웠다가 다시 중국공안당국에 의해 지하조직과 연루돼 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당초 7년전에 후가 대만에서 망명해 왔을때 중국당국은 두손을 들어 환영해 마지 않았지만 이제는 골치거리 뿐인 그를 더이상 국내에 두고 싶지 않아서인지 『당신이 원하면 대만에 돌려 보내 주겠다』고 제의했으며 후도 이를 흔쾌히 받아 들였다는 것. 그는 대만해협에서 중국 선박으로부터 한 대만어선에 옮겨 실린뒤 이틀 후인 20일 하오 되돌아와 대북당국에 자수했으며 『왜 다시 돌아왔느냐』는 질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은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는 한마디 뿐』이라고만 대답했다. 한편 홍콩과 대만 언론들은 후의 행동이 대륙 대만 양안의 정국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논평하기도.
  • 「우리의 소원」작곡자 안병원씨 일시 귀국(조약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작곡가 안병원씨(63·캐나다토론토시거주·제과점경영)가 부인 노선영씨(54)와 함께 23일 하오4시50분 대한항공 071편으로 일시 귀국했다. 안씨는 이날 공항에서 『극작가이며 이 노래의 노랫말을 지어준 아버지(안석주씨·50년작고)가 남긴 시나리오원고등 각종 유고를 정리하기 위해 잡시 귀국했다』고 밝혔다. 이 노래는 지난 47년 중앙방송국의 3·1절 특집드라마 주제가였던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란 가사에 안씨가 곡을 붙인 것으로 북한에서도 불리는 곡으로 알려지고있다. 안씨는 경기여고 등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지난47년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했으며 여동생인 피아니스트 희숙씨가 연세대 교수로,소프라노 희복씨가 중앙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음악가족이다.
  • 빈틈없는 논리… 설득력 탁월/진념 재무차관(얼굴)

    해운항만청장 이전까지 26년간을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경제관료. 항만청장 발령시부터 언젠가는 경제부처 요직으로 복귀할 재목으로 예견됐었다. 빈틈없는 논리를 차분한 대화로 풀어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하며 일솜씨도 깔끔하다. 모나지 않은 성격에 누구하고도 잘 어울린다. 총명해 보이는 인상대로 똘똘이라는 별명도 지녔다. 성신여대 교수인 작곡가 서인정여사와의 사이에 2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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