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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 문화 캘린더]

    金 2일 서울 은평구는 오전 11시와 오후 3시 은평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무료 상영한다.(02)350-1617. 土 3일 서울 양천구는 오후 2시 신월문화체육센터에서 영화 ‘목포는 항구다’를 무료 상영한다.선착순 입장.(02)2605-4093∼5. 경기도립오케스트라는 ‘가족과 함께하는 토요일 밤의 작은음악회’를 오후 7시30분 경기도 예술의전당 소공연장에서 갖는다.이번 음악회는 다양한 악기들로 구성된 소규모 앙상블팀이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곡가들의 레파토리를 연주,색다른 음악적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 공연이다.(031)230-3270. 日 4일 서울 강북구는 오후 2시 번동 강북문화정보센터에서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를 무료 상영한다.(02)901-2267.˝
  • [주간 문화 캘린더]

    金 2일 서울 은평구는 오전 11시와 오후 3시 은평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무료 상영한다.(02)350-1617. 土 3일 서울 양천구는 오후 2시 신월문화체육센터에서 영화 ‘목포는 항구다’를 무료 상영한다.선착순 입장.(02)2605-4093∼5. 경기도립오케스트라는 ‘가족과 함께하는 토요일 밤의 작은음악회’를 오후 7시30분 경기도 예술의전당 소공연장에서 갖는다.이번 음악회는 다양한 악기들로 구성된 소규모 앙상블팀이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곡가들의 레파토리를 연주,색다른 음악적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 공연이다.(031)230-3270. 日 4일 서울 강북구는 오후 2시 번동 강북문화정보센터에서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를 무료 상영한다.(02)901-2267.
  • 김선일씨 추모곡 ‘제망부가’ 인터넷 확산

    ‘그대의 절규 외면 당하고,그대의 꿈도 짓이겨지고,더러운 힘에 무릎 꿇은 조국이 그대를 버렸다 해도…용서하시라 못난 우리를,그대의 목숨 앗아간 이들까지‘ 고 김선일씨를 추모하는 노래가 인터넷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제망부가(祭亡夫歌)’라는 제목의 추모곡은 지난 25일 민중노래 사이트인 ‘송앤라이프(www.songnlife.com)’에 처음 발표됐다.탄핵반대 촛불집회 당시 널리 불려진 ‘너흰 아니야’등 사회비판적인 노래를 만들어온 민중노래 작곡가 윤민석(40)씨가 노랫말을 만들고 곡을 붙였다.제목은 죽은 누이를 그리워하는 신라시대 승려 월명사의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에서 땄다. ‘그대 살아오시라…한송이 들꽃으로 한줄기 바람으로,새하늘 새땅에 살아오시라’는 노랫말로 끝을 맺는 이 곡은 김씨의 명복을 비는 기도문 형식을 띠고 있다.윤씨는 “노래로라도 고인의 뜻을 기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후렴구 앞부분에는 피랍 직후 “살고 싶다.나의 삶 역시 소중하다.”고 울부짖는 고인의 육성을 그대로 담았다.이 곡은 발표 이틀 만인 27일 현재 조회수 7000회를 넘었으며,네티즌 사이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네티즌 ‘fomink1’은 “고인의 절규하는 육성에 가슴이 미어진다.이 땅의 힘없음을 부디 용서하시라.”는 글과 함께 본인의 블로그에 이 노래를 올렸다.‘97manse’는 “제망부가를 다운받아 촛불집회 때 틀었더니 시민들이 귀를 많이 기울이더라.”면서 “눈물이 나더라도 듣고 또 들으면서 고인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남인수의 ‘서귀포 칠십리’

    서귀포를 노래한 대중가요는 많다.‘서귀포 사랑’,‘서귀포를 아시나요’‘안개낀 서귀포’‘서귀포 나그네’‘서귀포 달밤’‘서귀포 칠십리’등.그러나 많은 서귀포 관련 가요중에서 서귀포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린 노래라면 단연 ‘서귀포 칠십리’다.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진주캐던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휘파람도 그리워라 뱃노래도 그리워/서귀포 칠십리에 별도 외롭네. 노래를 부른 요절가수 남인수의 미성과 가창력은 서귀포 해안 절경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 이 노래는 격동기인 40년대를 풍미하고 금지→개사→해금 등의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아직까지 계속 애창되고 있다. 월북 작곡가인 조명암(趙鳴岩·본명 趙靈出·1913∼1993)이 가사를 만들고 박시춘이 곡을 붙인 이 노래는 그저 나온 게 아니다.충남 아산출신으로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시인이자 연극인인 명암이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동방의 태양’이 당선되자 OK레코드사 이철(李哲)사장이 그의 등단을 축하하면서 이해 6월 함께 제주에 여행왔다.서귀포 해안절경에 매료된 명암이 이틀 밤 내내 고심한 끝에 탄생하게 됐다. 당시 명암이 본 서귀포구는 천혜의 자연 포구였다.동으로 정방폭포·소남머리 단애에서 서쪽으로는 남성동 절벽과 외돌개 기암에 이르기까지 절경 아닌 곳이 없고,그 앞에 범섬·새섬·문섬·섭섬이 미려하게 자리잡은 사이로 통통배와 고깃배가 오가고,여기에 해녀들의 물질하는 모습까지 가미된 해안 풍광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었을 것이다.그래서 천재화가 이중섭도 한국전쟁 중 서귀포에 피란와 바다그림을 그리며 6개월 동안 머물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명암은 광복 이후 미 군정이 진보적 작가들을 탄압한다는 이유로 본명인 조영출,이가실,금운탄,이부풍이라는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다 1948년 자진 월북했으며,‘서귀포 칠십리’도 그의 월북과 함께 ‘구금’에 들어간다. 박시춘은 이 노래가 없어질 것을 걱정한 나머지 작사가인 반야월에게 개작을 의뢰했고 억지 개사된 ‘서귀포 칠십리’는 남인수가 지병중임에도 다시 불러 두번째 탄생했으나 2절 가사 중의 ‘미역따던 아가씨’가 ‘머리빨던 아가씨’로 바뀌는 바람에 “바닷물에 머리를 빠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놀림 아닌 놀림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서귀포 칠십리’도 93년 ‘금지가요 해금’조치로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됐으며 급기야 일본에서 활동중인 이성애가 일본어로 취입,오사카(大阪)등지의 나이 많은 제주출신 재일동포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최고의 노래로 자리잡았다. 서귀포시는 서귀포의 대표적 가요인 ‘서귀포 칠십리’와 작사자인 조명암을 기리기 위해 지난 97년 외돌개 해안 동쪽 구릉에 조각가 이영학이 제작한 무쇠 노래비를 세웠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불어닥친 태풍 ‘매미’로 부서지고 말아 시는 다시 5000만원을 들여 이달 말 천지연폭포 북쪽 절벽위에 김혜숙씨의 작품인 가로 3m,세로 2m 크기의 화강암 노래비를 세울 계획이다.버튼식 음향장치까지 설치해 버튼만 누르면 누구나 ‘서귀포 칠십리’등 서귀포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 서귀포는 ‘서귀포 칠십리’로 더 낯이 익다.그래서 “서귀포 해안 길이가 칠십리(七十里)나 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다. 이에 대해 서귀포시는 1653년 발간된 ‘탐라지’내용을 근거로 과거 정의현청(旌義縣廳)이 자리했던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에서 서귀포항까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칠십리는 제주 사람들에게 단순한 수치나 거리개념이 아니다.면면히 이어져온 향토성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서귀포의 이상향이고 피안이다. 서귀포시가 최근 각종 축제나 스포츠대회 명칭에 ‘서귀포 칠십리’를 붙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서귀포 칠십리 축제’‘서귀포 칠십리 전국 남녀궁도대회’‘서귀포 칠십리 건강달리기대회’‘서귀포 칠십리 70경’등이 그것이다.심지어 ‘서귀포 칠십리 건축대상’‘서귀포 칠십리 감귤’이라는 브랜드도 나왔다. 조명암이 다녀간 지 어언 70년.그가 거닐었던 서귀포구는 이제 형형색색의 유람선과 관광잠수함이 드나드는 관광항구로 변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프로젝트의 하나로 ‘서귀포 관광미항 개발계획’까지 마련돼 호주 시드니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같은 국제적인 관광 미항으로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남인수의 ‘서귀포 칠십리’

    남인수의 ‘서귀포 칠십리’

    서귀포를 노래한 대중가요는 많다.‘서귀포 사랑’,‘서귀포를 아시나요’‘안개낀 서귀포’‘서귀포 나그네’‘서귀포 달밤’‘서귀포 칠십리’등.그러나 많은 서귀포 관련 가요중에서 서귀포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린 노래라면 단연 ‘서귀포 칠십리’다.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진주캐던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휘파람도 그리워라 뱃노래도 그리워/서귀포 칠십리에 별도 외롭네. 노래를 부른 요절가수 남인수의 미성과 가창력은 서귀포 해안 절경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 이 노래는 격동기인 40년대를 풍미하고 금지→개사→해금 등의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아직까지 계속 애창되고 있다. 월북 작곡가인 조명암(趙鳴岩·본명 趙靈出·1913∼1993)이 가사를 만들고 박시춘이 곡을 붙인 이 노래는 그저 나온 게 아니다.충남 아산출신으로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시인이자 연극인인 명암이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동방의 태양’이 당선되자 OK레코드사 이철(李哲)사장이 그의 등단을 축하하면서 이해 6월 함께 제주에 여행왔다.서귀포 해안절경에 매료된 명암이 이틀 밤 내내 고심한 끝에 탄생하게 됐다. 당시 명암이 본 서귀포구는 천혜의 자연 포구였다.동으로 정방폭포·소남머리 단애에서 서쪽으로는 남성동 절벽과 외돌개 기암에 이르기까지 절경 아닌 곳이 없고,그 앞에 범섬·새섬·문섬·섭섬이 미려하게 자리잡은 사이로 통통배와 고깃배가 오가고,여기에 해녀들의 물질하는 모습까지 가미된 해안 풍광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었을 것이다.그래서 천재화가 이중섭도 한국전쟁 중 서귀포에 피란와 바다그림을 그리며 6개월 동안 머물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명암은 광복 이후 미 군정이 진보적 작가들을 탄압한다는 이유로 본명인 조영출,이가실,금운탄,이부풍이라는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다 1948년 자진 월북했으며,‘서귀포 칠십리’도 그의 월북과 함께 ‘구금’에 들어간다. 박시춘은 이 노래가 없어질 것을 걱정한 나머지 작사가인 반야월에게 개작을 의뢰했고 억지 개사된 ‘서귀포 칠십리’는 남인수가 지병중임에도 다시 불러 두번째 탄생했으나 2절 가사 중의 ‘미역따던 아가씨’가 ‘머리빨던 아가씨’로 바뀌는 바람에 “바닷물에 머리를 빠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놀림 아닌 놀림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서귀포 칠십리’도 93년 ‘금지가요 해금’조치로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됐으며 급기야 일본에서 활동중인 이성애가 일본어로 취입,오사카(大阪)등지의 나이 많은 제주출신 재일동포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최고의 노래로 자리잡았다. 서귀포시는 서귀포의 대표적 가요인 ‘서귀포 칠십리’와 작사자인 조명암을 기리기 위해 지난 97년 외돌개 해안 동쪽 구릉에 조각가 이영학이 제작한 무쇠 노래비를 세웠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불어닥친 태풍 ‘매미’로 부서지고 말아 시는 다시 5000만원을 들여 이달 말 천지연폭포 북쪽 절벽위에 김혜숙씨의 작품인 가로 3m,세로 2m 크기의 화강암 노래비를 세울 계획이다.버튼식 음향장치까지 설치해 버튼만 누르면 누구나 ‘서귀포 칠십리’등 서귀포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 서귀포는 ‘서귀포 칠십리’로 더 낯이 익다.그래서 “서귀포 해안 길이가 칠십리(七十里)나 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다. 이에 대해 서귀포시는 1653년 발간된 ‘탐라지’내용을 근거로 과거 정의현청(旌義縣廳)이 자리했던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에서 서귀포항까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칠십리는 제주 사람들에게 단순한 수치나 거리개념이 아니다.면면히 이어져온 향토성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서귀포의 이상향이고 피안이다. 서귀포시가 최근 각종 축제나 스포츠대회 명칭에 ‘서귀포 칠십리’를 붙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서귀포 칠십리 축제’‘서귀포 칠십리 전국 남녀궁도대회’‘서귀포 칠십리 건강달리기대회’‘서귀포 칠십리 70경’등이 그것이다.심지어 ‘서귀포 칠십리 건축대상’‘서귀포 칠십리 감귤’이라는 브랜드도 나왔다. 조명암이 다녀간 지 어언 70년.그가 거닐었던 서귀포구는 이제 형형색색의 유람선과 관광잠수함이 드나드는 관광항구로 변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프로젝트의 하나로 ‘서귀포 관광미항 개발계획’까지 마련돼 호주 시드니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같은 국제적인 관광 미항으로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어, 보아다! 소녀에서 여자로…

    어, 보아다! 소녀에서 여자로…

    2000년 8월 ‘ID:Peace B’로 데뷔했으니 벌써 가수 5년차다.하지만 보아에게 그 흔한 스캔들 한 번 난 적이 없다.왜일까.“남자친구를 만날 시간이 없어요.그럴 시간이 있으면 잠을 자요.” 내친김에 잠 자는 것 말고 쉴 때는 무엇을 하며 지내느냐고 물었다.주로 영화를 본다는 보아.“극장에서요?”라고 물으니 “음악을 CD로 들어야 하듯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죠.”라고 대답한다.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까.“모자를 푹 눌러쓰고 가요.알아봐도 ‘어!보아다.’하고 그냥 지나가시더라고요.” 1주일에 한번 정도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함께 DVD를 보는 것도 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다. 공포영화 빼고 모든 영화장르를 두루 섭렵한다는 그녀는 연기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하지만 액션물과 중국 무예영화 쪽만 캐스팅 제의가 들어온단다.“멜로 할 얼굴은 아닌가봐요.”라며 시무룩해지는 그녀.그래도 이젠 외모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키 크는 건 포기했어요.아담한 것도 나름대로 좋다고요.살만 안 쪘으면 좋겠어요.” 말투가 워낙 차분하고 조용해 원래 성격이냐고 묻자 “일하면서 말수가 없어졌다.”고 말했다.“개인시간까지 말하고 싶진 않거든요.” 그녀의 얼굴에 묻어난 피곤만 봐도 얼마나 바쁜 스케줄에 묻혀 사는지 잘 알겠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소녀에서 여자로 성장기 소녀들에게 시간이란 금세 눈에 띄는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보아(18)역시 더이상 깜찍하고 통통 튀는 10대 소녀가 아니었다.우리 나이로 열 아홉.“마지막으로 10대의 멋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보아는 이제 알에서 깨어나 스스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지난 11일 4집 ‘My Name’의 발매와 동시에 국내 활동을 재개한 보아.언뜻 보아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신비스러운 여인으로 탈바꿈한 앨범 표지의 사진처럼 음악도 많이 달라졌다.그녀의 실제 모습도 예상과 달랐다.긴 웨이브 머리와 까맣게 태운 피부로 여성미를 강조한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차분하게 말하는 몸매무새에서 더이상 젖비린내를 느낄 수 없었다.“귀엽고 파워풀하게 춤추는 어린 소녀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려고 했어요.이번 앨범으로 변신에 성공했고 음악이 성숙해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앨범의 타이틀곡인 ‘My Name’은 베이비 페이스,재닛 잭슨 등이 주도해온 어번 댄스 장르를 시도했다.빠른 리듬의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해 클럽 뮤직의 화려함으로 발전해가는 이 곡은,밝고 경쾌한 이전의 곡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나머지 곡들도 발라드,록,R&B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렀다. 창법에도 변화를 줬다.예전엔 시원하게 내질렀다면 이번엔 “절제하면서도 힘을 실었고,가성을 섞어 몽환적인 느낌을 줬고,솔의 창법을 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팬들의 반응은 어떨까.“어린 친구들은 어렵다고도 하는데,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의 팬들은 적절한 타이밍에 변신을 잘한 거 같다고 하세요.가장 중요한 건 제가 맘에 들어요.” 사실 보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꼭두각시다.기획사에 의해 철저하게 스타로 키워진 아이.그녀의 생각을 듣고 싶어 “예전에는 어려서 주위에서 하라는 대로 했겠지만 요즘은 어떠냐.”며 슬쩍 에둘러 물었더니,과거를 인정하면서 또박또박 현재의 자신을 표현해내는 모습이 놀랄 정도로 어른스럽다. 타이틀곡은 “이 곡을 무대에서 부르는 모습이 떠올라”스스로 정했고,편곡을 할 때도 여러 버전을 녹음한 뒤 토의 끝에 결정했단다.코러스에도 모두 참여했고,스태프와 작곡가를 만나 항상 의견을 나눴다.그녀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얘기.“제가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서 춤을 추는 건데 어느 누구보다 음악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자기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당차다. 그래도 비판에 어떻게 대응할지 계속 궁금했다.2집앨범부터 한 두곡씩 작곡을 해왔는데 이번 앨범은 켄지,유영진,윤상 등 국내외 유명 작곡가들만 참여했다고 묻자 “곡을 쓰는 것보다 받은 곡을 얼마나 잘 소화하는지가 중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맞는 말이다.‘작곡하는 보아’가 아니라 ‘노래하고 춤추는 보아’니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그것에 충실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모습일 게다. 보아에게 또 익숙한 별칭 하나가 ‘움직이는 중소기업’.지금까지 일본에서만 3개의 앨범과 여러 싱글로 1000억원이 넘는 음반을 팔아치웠다.하지만 그 천문학적인 숫자 앞에서 그녀는 딴청이다.“처음 듣는다.”면서 “저한테 그 돈이 다 들어오면 이러고 있겠어요?”라며 농담을 건넨다. 인기가 없어질 때까지 가수활동을 할지 궁금했다.“글쎄요.공부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고.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아마 그 말이 정답일 것이다.미래까지 계획하기에는 현재가 너무 바쁠 테니.지난 1년간의 활동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묻자 옆의 매니저에게 “내가 1년간 뭐했지?”라고 물었다.너무 많아서 기억을 못하겠다며.하나하나 짚어주자 올해 초 일본 5개도시 투어콘서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단다. 일본에서만 콘서트를 열어온 보아는 이번 가을쯤 국내 콘서트도 추진중이다.“이번 4집은 30∼40대까지 폭넓게 좋아해주시니까 이젠 콘서트를 열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내를 넘어 아시아로 뻗어갔듯,10대의 스타에서 20∼30대를 아우르는 스타로 도약하려는 보아.새로운 갈림길 앞에 선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미 한 발을 내딛고 있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어, 보아다! 소녀에서 여자로…

    2000년 8월 ‘ID:Peace B’로 데뷔했으니 벌써 가수 5년차다.하지만 보아에게 그 흔한 스캔들 한 번 난 적이 없다.왜일까.“남자친구를 만날 시간이 없어요.그럴 시간이 있으면 잠을 자요.” 내친김에 잠 자는 것 말고 쉴 때는 무엇을 하며 지내느냐고 물었다.주로 영화를 본다는 보아.“극장에서요?”라고 물으니 “음악을 CD로 들어야 하듯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죠.”라고 대답한다.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까.“모자를 푹 눌러쓰고 가요.알아봐도 ‘어!보아다.’하고 그냥 지나가시더라고요.” 1주일에 한번 정도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함께 DVD를 보는 것도 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다. 공포영화 빼고 모든 영화장르를 두루 섭렵한다는 그녀는 연기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하지만 액션물과 중국 무예영화 쪽만 캐스팅 제의가 들어온단다.“멜로 할 얼굴은 아닌가봐요.”라며 시무룩해지는 그녀.그래도 이젠 외모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키 크는 건 포기했어요.아담한 것도 나름대로 좋다고요.살만 안 쪘으면 좋겠어요.” 말투가 워낙 차분하고 조용해 원래 성격이냐고 묻자 “일하면서 말수가 없어졌다.”고 말했다.“개인시간까지 말하고 싶진 않거든요.” 그녀의 얼굴에 묻어난 피곤만 봐도 얼마나 바쁜 스케줄에 묻혀 사는지 잘 알겠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소녀에서 여자로 성장기 소녀들에게 시간이란 금세 눈에 띄는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보아(18)역시 더이상 깜찍하고 통통 튀는 10대 소녀가 아니었다.우리 나이로 열 아홉.“마지막으로 10대의 멋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보아는 이제 알에서 깨어나 스스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지난 11일 4집 ‘My Name’의 발매와 동시에 국내 활동을 재개한 보아.언뜻 보아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신비스러운 여인으로 탈바꿈한 앨범 표지의 사진처럼 음악도 많이 달라졌다.그녀의 실제 모습도 예상과 달랐다.긴 웨이브 머리와 까맣게 태운 피부로 여성미를 강조한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차분하게 말하는 몸매무새에서 더이상 젖비린내를 느낄 수 없었다.“귀엽고 파워풀하게 춤추는 어린 소녀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려고 했어요.이번 앨범으로 변신에 성공했고 음악이 성숙해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앨범의 타이틀곡인 ‘My Name’은 베이비 페이스,재닛 잭슨 등이 주도해온 어번 댄스 장르를 시도했다.빠른 리듬의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해 클럽 뮤직의 화려함으로 발전해가는 이 곡은,밝고 경쾌한 이전의 곡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나머지 곡들도 발라드,록,R&B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렀다. 창법에도 변화를 줬다.예전엔 시원하게 내질렀다면 이번엔 “절제하면서도 힘을 실었고,가성을 섞어 몽환적인 느낌을 줬고,솔의 창법을 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팬들의 반응은 어떨까.“어린 친구들은 어렵다고도 하는데,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의 팬들은 적절한 타이밍에 변신을 잘한 거 같다고 하세요.가장 중요한 건 제가 맘에 들어요.” 사실 보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꼭두각시다.기획사에 의해 철저하게 스타로 키워진 아이.그녀의 생각을 듣고 싶어 “예전에는 어려서 주위에서 하라는 대로 했겠지만 요즘은 어떠냐.”며 슬쩍 에둘러 물었더니,과거를 인정하면서 또박또박 현재의 자신을 표현해내는 모습이 놀랄 정도로 어른스럽다. 타이틀곡은 “이 곡을 무대에서 부르는 모습이 떠올라”스스로 정했고,편곡을 할 때도 여러 버전을 녹음한 뒤 토의 끝에 결정했단다.코러스에도 모두 참여했고,스태프와 작곡가를 만나 항상 의견을 나눴다.그녀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얘기.“제가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서 춤을 추는 건데 어느 누구보다 음악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자기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당차다. 그래도 비판에 어떻게 대응할지 계속 궁금했다.2집앨범부터 한 두곡씩 작곡을 해왔는데 이번 앨범은 켄지,유영진,윤상 등 국내외 유명 작곡가들만 참여했다고 묻자 “곡을 쓰는 것보다 받은 곡을 얼마나 잘 소화하는지가 중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맞는 말이다.‘작곡하는 보아’가 아니라 ‘노래하고 춤추는 보아’니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그것에 충실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모습일 게다. 보아에게 또 익숙한 별칭 하나가 ‘움직이는 중소기업’.지금까지 일본에서만 3개의 앨범과 여러 싱글로 1000억원이 넘는 음반을 팔아치웠다.하지만 그 천문학적인 숫자 앞에서 그녀는 딴청이다.“처음 듣는다.”면서 “저한테 그 돈이 다 들어오면 이러고 있겠어요?”라며 농담을 건넨다. 인기가 없어질 때까지 가수활동을 할지 궁금했다.“글쎄요.공부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고.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아마 그 말이 정답일 것이다.미래까지 계획하기에는 현재가 너무 바쁠 테니.지난 1년간의 활동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묻자 옆의 매니저에게 “내가 1년간 뭐했지?”라고 물었다.너무 많아서 기억을 못하겠다며.하나하나 짚어주자 올해 초 일본 5개도시 투어콘서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단다. 일본에서만 콘서트를 열어온 보아는 이번 가을쯤 국내 콘서트도 추진중이다.“이번 4집은 30∼40대까지 폭넓게 좋아해주시니까 이젠 콘서트를 열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내를 넘어 아시아로 뻗어갔듯,10대의 스타에서 20∼30대를 아우르는 스타로 도약하려는 보아.새로운 갈림길 앞에 선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미 한 발을 내딛고 있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윤시내·윤항기·배인순 다시 본다

    귀밑머리가 하얗게 변한 것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그 세월을 돌이키며 70∼80년대를 풍미한 가수들의 주옥같은 명곡을 따라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아마도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는 젊은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지 않을까. KBS 1TV ‘가요무대(연출 서태룡)’는 21일 오후 10시 ‘추억의 국제가요제’ 특집물을 마련했다.70∼80년대는 우리나라에 ‘국제가요제’붐이 일던 시절.1970년 가수 정훈희,작곡가 이봉조 콤비가 일본 야마하 국제가요제에 출전한 것을 기점으로 칠레 그리스 도쿄 서울 등 세계 곳곳에서 국제가요제가 이어졌다. 김상희의 ‘즐거운 아리랑(76년 동경국제가요제 입상)’으로 문을 여는 이날 방송에서는 정훈희 윤시내 윤항기 우순실 김도향 등 당시 해외무대를 누빈 반가운 가수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14년 만에 방송에 출연하는 윤시내는 ‘열애(80년 TBC 세계가요제 은상)’와 ‘공연히(78년 서울국제가요제입상)’를 열창한다.정훈희는 조관우가 리메이크해 인기를 끈 자신의 대표곡 ‘꽃밭에서(78년 칠레국제가요제 입상)’와 ‘안개(70년 야마하국제가요제 입상)’를,박경희는 ‘머무는 곳 그 어딘지 몰라도(78년 동경세계가요제 동상)’를 부른다.목사로 제2의 인생을 사는 윤항기는 동생 윤복희와 듀엣으로 불렀던 ‘여러분(79년 서울국제가요제 대상)’을 열창한다. 최근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과 이혼한 뒤 자서전을 펴 화제가 된 옛 펄시스터즈 멤버 배인순은 ‘사랑의 교실(73년 동경국제가요제 특별상)’을,김도향은 대표곡 ‘바보처럼 살았군요(80년 서울국제가요제 입상)’를 부른다.이영화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81년 서울국제가요제 빌보드상)’로 중년팬들을 향수에 젖게 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춘향, 파리지앵을 사로잡는다

    |파리 함혜리특파원|“한국에도 ‘로미오와 줄리엣’ 못지 않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있고,또 아름다운 선율의 오페라가 있다는 것을 유럽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소개하겠습니다.” 19일과 20일 파리의 모가도 극장에서 오페라 ‘춘향전’ 공연을 갖는 글로리아 오페라단의 양수화(56) 단장은 “문화의 중심지로 꼽히는 파리 무대에 한국 오페라를 올린다는 것이 무모한 도전인 줄은 알지만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린다는 사명감으로 공연을 강행했다.”고 말했다.4막 5장의 오페라 춘향전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 고전이자 판소리인 춘향전을 현대적인 오페라 형식으로 각색한 것으로,작곡가 장일남씨가 작곡해 한국에서는 1966년 초연됐다. 예술총감독을 맡은 양 단장은 “춘향전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와 명창 안숙선씨의 판소리를 통해 프랑스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라며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에 충실하면서도 서양적 오페라 형식을 조화시킨 종합 공연물인 오페라 춘향전이 프랑스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이 열리는 모가도 극장은 파리의 유서깊은 오페라 극장 중 하나로 1750석 규모의 대형 극장이다.장수동씨가 연출을 맡고 있는 이번 공연에 참가할 총인원은 춘향(소프라노 박미혜),이 도령(테너 김영환) 등 주역 배우들 외에 합창단 35명,무용단 25명,오케스트라 31명 등 총 110명에 달한다.사설 오페라단이 감당하기에 준비 과정이나 공연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법하다. “유럽무대 진출을 오래 전부터 꿈꾸어오기는 했지만 공연을 성사시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는 양 단장은 “그래도 한국 오페라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누군가 희생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번 공연은 창단 14년째를 맞는 글로리아 오페라단의 세번째 해외무대다.세번 모두 공연작품은 ‘춘향전’이다.1995년 도쿄에서 광복 50주년과 한·일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한차례 공연했고,1996년에는 애틀랜타 올림픽 문화행사에 참가해 ‘신분을 뛰어넘는 위대한 사랑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양 단장은 “춘향전의 첫 해외공연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흘렀다.”면서 “오페라와 함께 늙어가는 것이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lotus@seoul.co.kr˝
  • [서울 탱고] 하사와 병장 ‘해남 아가씨’

    ‘월출봉 고갯길을 굽이굽이 돌아서.나 여기 찾아 왔네 해남아가씨∼’ 대중가요 ‘해남아가씨’는 70년대 후반 인기가요 차트 ‘베스트 10’에 오를 만큼 히트했다.당시 벽촌이던 전남 해남을 전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게 한 노래이다.해남 사람들에게는 ‘애향가’나 다름없다.향우회나 동창회에서도 분위기가 고조되면 으레 이 노래를 합창한다. ‘구름도 내맘인 양 그님 모습 그리고 우슬재 산마루에 나의 눈길 머무네. 아∼이 내맘 부러울 것 없어라.우물가 해남아씨 물 한모금 주구려∼.’ 한적한 시골 마을.붉은 댕기머리 산골 처녀가 우물가에 수줍은 미소로 나그네의 마른 목을 적셔 줄 듯하다. 당시만 해도 영암∼해남간 국도는 비포장 도로였다.해안에서 나오는 ‘김’과 농촌 들녘의 ‘물감자’‘배추’ 등이 특산품이었다.해남은 광주까지 100㎞ 남짓밖에 안 되지만 차량으로 3시간 이상 걸렸다. 영암 월출산을 오른쪽에 끼고 꼬불꼬불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 보면 강진과 해남의 경계에 ‘우슬재’가 나타난다.사람들은 이곳을 힘겹게 올라 와 한숨 돌리며 해풍(海風)에 땀을 식혔을 것이다.지금도 우슬재를 넘어 해남땅에 도달하면 맘씨 좋은 해남 아가씨가 사뿐히 걸어 나와 반겨줄 듯하다. ‘해남 아가씨’를 히트시킨 가수는 남성 듀엣 ‘하사와 병장’. 이들 가수가 지금은 활발한 활동을 않기 때문에 40대 이하에게는 생소할지 모른다.이 노래가 만들어진 사연도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사 이경우(53)와 병장 이동근(54)은 논산훈련소에서 ‘운명적으로’ 만난다.1973년 하사교육 훈련을 마친 이경우는 이등병이던 이동근과 같은 부대에 배치된다.노래에 소질이 남다른 두 사람은 군부대 노래 경연대회 때마다 1등을 차지했다.둘은 제대 후 사회에서 다시 만나기로 결의했다. 이 하사는 3개월 늦게 제대한 이 병장과 만나 듀엣을 만들고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는다.무명시절에는 대구,부산의 레스토랑 등지에서 통기타를 치며 포크송을 주로 불렀다.둘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 가면서 노래를 위해 젊음을 불살랐다.3∼4년 동안 언더그라운드를 누비던 그들에게 한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대구 기독교방송의 어느 PD가 ‘목화밭’의 작곡가 진남성을 소개해 주었다.‘목화밭’은 단순하고 느릿한 컨트리 풍의 곡이었다.‘하사와 병장’은 통기타를 치며 라이브 무대에서 ‘목화밭’을 열창했다. 반응이 제법 좋았다. 이들은 인기가 올라가자 무대를 서울 명동으로 옮겼다.79년 킹레코드의 사장 ‘킹박’(별명)으로부터 음반 취입 제의를 받았다.당시엔 ‘가요 정화 사건’ 이후 포크와 록이 통제 받던 시기로 최헌,최병걸,조경수,윤수일 등 로커들이 대거 트로트 가수로 전향했다. 이들은 ‘목화밭’ 이름값으로 목포MBC가 해남에서 개최한 행사에 초대됐다.해남으로 가는 도중 이 병장이 트로트 곡 ‘해남 아가씨’를 만든 것. 이 병장은 “운무에 싸인 월출산 자락을 따라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 주변 경관이 한폭의 동양화 같았다.”며 “‘해남아가씨’의 영감을 얻었다.”고 털어놨다. 이 음반은 5만장 이상 나가고 가요차트 ‘베스트10’에 오르는 대박이 터졌다.한꺼번에 여러 방송사에서 출연을 제의해올 만큼 반응은 좋았다.이 하사는 “통기타 가수로서 활동하던 때라 트로트인 ‘해남아가씨’를 부를까 말까 망설였다.”고 회고했다.이렇게 탄생한 ‘해남아가씨’는 김준규·주현미의 ‘쌍쌍파티’에 올려지면서 인기를 더했다. ‘하사와 병장’은 이 노래 이후 이렇다할 히트곡을 내지 못해 지난 83년 듀엣을 해체하고 각자의 길을 걷는다.이 하사는 현재 경기도 일산에서 ‘음치 클리닉’을 운영하고,이 병장은 서울서 ‘음악기획사’를 꾸려가고 있다. 이 노래의 현장인 해남은 요즘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두륜산,대흥사,달마산,미황사,땅끝마을 등 유명 관광지와 해수욕장이 올 여름 피서객 맞을 준비에 바쁘다.우슬재도 이미 터널로 뚫리고 왕복 4차로로 포장됐다. ‘해남 아가씨’는 보이지 않더라도 그때보다 편리해진 도로 따라 땅끝 해변을 누벼보는 것은 어떨까. 글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 [서울 탱고] 하사와 병장 ‘해남 아가씨’

    [서울 탱고] 하사와 병장 ‘해남 아가씨’

    ‘월출봉 고갯길을 굽이굽이 돌아서.나 여기 찾아 왔네 해남아가씨∼’ 대중가요 ‘해남아가씨’는 70년대 후반 인기가요 차트 ‘베스트 10’에 오를 만큼 히트했다.당시 벽촌이던 전남 해남을 전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게 한 노래이다.해남 사람들에게는 ‘애향가’나 다름없다.향우회나 동창회에서도 분위기가 고조되면 으레 이 노래를 합창한다. ‘구름도 내맘인 양 그님 모습 그리고 우슬재 산마루에 나의 눈길 머무네. 아∼이 내맘 부러울 것 없어라.우물가 해남아씨 물 한모금 주구려∼.’ 한적한 시골 마을.붉은 댕기머리 산골 처녀가 우물가에 수줍은 미소로 나그네의 마른 목을 적셔 줄 듯하다. 당시만 해도 영암∼해남간 국도는 비포장 도로였다.해안에서 나오는 ‘김’과 농촌 들녘의 ‘물감자’‘배추’ 등이 특산품이었다.해남은 광주까지 100㎞ 남짓밖에 안 되지만 차량으로 3시간 이상 걸렸다. 영암 월출산을 오른쪽에 끼고 꼬불꼬불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 보면 강진과 해남의 경계에 ‘우슬재’가 나타난다.사람들은 이곳을 힘겹게 올라 와 한숨 돌리며 해풍(海風)에 땀을 식혔을 것이다.지금도 우슬재를 넘어 해남땅에 도달하면 맘씨 좋은 해남 아가씨가 사뿐히 걸어 나와 반겨줄 듯하다. ‘해남 아가씨’를 히트시킨 가수는 남성 듀엣 ‘하사와 병장’. 이들 가수가 지금은 활발한 활동을 않기 때문에 40대 이하에게는 생소할지 모른다.이 노래가 만들어진 사연도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사 이경우(53)와 병장 이동근(54)은 논산훈련소에서 ‘운명적으로’ 만난다.1973년 하사교육 훈련을 마친 이경우는 이등병이던 이동근과 같은 부대에 배치된다.노래에 소질이 남다른 두 사람은 군부대 노래 경연대회 때마다 1등을 차지했다.둘은 제대 후 사회에서 다시 만나기로 결의했다. 이 하사는 3개월 늦게 제대한 이 병장과 만나 듀엣을 만들고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는다.무명시절에는 대구,부산의 레스토랑 등지에서 통기타를 치며 포크송을 주로 불렀다.둘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 가면서 노래를 위해 젊음을 불살랐다.3∼4년 동안 언더그라운드를 누비던 그들에게 한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대구 기독교방송의 어느 PD가 ‘목화밭’의 작곡가 진남성을 소개해 주었다.‘목화밭’은 단순하고 느릿한 컨트리 풍의 곡이었다.‘하사와 병장’은 통기타를 치며 라이브 무대에서 ‘목화밭’을 열창했다. 반응이 제법 좋았다. 이들은 인기가 올라가자 무대를 서울 명동으로 옮겼다.79년 킹레코드의 사장 ‘킹박’(별명)으로부터 음반 취입 제의를 받았다.당시엔 ‘가요 정화 사건’ 이후 포크와 록이 통제 받던 시기로 최헌,최병걸,조경수,윤수일 등 로커들이 대거 트로트 가수로 전향했다. 이들은 ‘목화밭’ 이름값으로 목포MBC가 해남에서 개최한 행사에 초대됐다.해남으로 가는 도중 이 병장이 트로트 곡 ‘해남 아가씨’를 만든 것. 이 병장은 “운무에 싸인 월출산 자락을 따라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 주변 경관이 한폭의 동양화 같았다.”며 “‘해남아가씨’의 영감을 얻었다.”고 털어놨다. 이 음반은 5만장 이상 나가고 가요차트 ‘베스트10’에 오르는 대박이 터졌다.한꺼번에 여러 방송사에서 출연을 제의해올 만큼 반응은 좋았다.이 하사는 “통기타 가수로서 활동하던 때라 트로트인 ‘해남아가씨’를 부를까 말까 망설였다.”고 회고했다.이렇게 탄생한 ‘해남아가씨’는 김준규·주현미의 ‘쌍쌍파티’에 올려지면서 인기를 더했다. ‘하사와 병장’은 이 노래 이후 이렇다할 히트곡을 내지 못해 지난 83년 듀엣을 해체하고 각자의 길을 걷는다.이 하사는 현재 경기도 일산에서 ‘음치 클리닉’을 운영하고,이 병장은 서울서 ‘음악기획사’를 꾸려가고 있다. 이 노래의 현장인 해남은 요즘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두륜산,대흥사,달마산,미황사,땅끝마을 등 유명 관광지와 해수욕장이 올 여름 피서객 맞을 준비에 바쁘다.우슬재도 이미 터널로 뚫리고 왕복 4차로로 포장됐다. ‘해남 아가씨’는 보이지 않더라도 그때보다 편리해진 도로 따라 땅끝 해변을 누벼보는 것은 어떨까. 글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재즈로 다진 ‘실력파’ 가요앨범 나란히

    재즈에 기반을 둔 탄탄한 가요 데뷔앨범이 잇따라 선보여 발라드와 댄스 일색인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먼저 국내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12인조 대형밴드 커먼 그라운드가 폭발적인 리듬과 각양각색의 브라스 화음으로 채색한 첫 앨범 ‘Players’를 선보였다.앨범 발매 전부터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만 서기로 유명한 ‘블루노트 서울’의 무대에 초청돼 화제를 모은 밴드이다. 이들이 내세운 장르는 애시드 솔.펑크(Funk)와 솔에 애시드 재즈를 수용한 음악이지만,실제로 앨범은 특정 장르에 한정되지 않는다.재즈,펑크,솔,R&B,발라드 등을 넘나들며 때로는 흥겹고 때로는 부드럽게 청각을 감싸안는다.타이틀곡 ‘Soulitude’는 허스키한 목소리와 쭉쭉 뻗어가는 힘찬 브라스 연주의 조화가 매력적인 애시드 재즈이지만,‘Without U’‘소금사탕’은 재즈 문외한이라도 푹 젖어들 만한 감미로운 발라드다. 무엇보다 트럼펫2,트롬본1,색소폰2로 구성된 브라스 섹션이 뿜어내는 강렬한 리듬감은 이들의 주무기.멤버들은 박효신,장나라,조PD,박화요비 등 대중가수들의 음반에 세션과 작곡가로 참여해 온 숨은 실력파들이다.특히 리더인 김종우는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펑키·솔·R&B 프로젝트 듀오 얼바노의 멤버이기도 하다. 음반도 좋지만 대형밴드의 음악은 무대에서 더 빛을 발한다.19·20일 오후 7시30분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여는 첫 단독콘서트는 아마도 국내 재즈 공연사상 가장 스펙터클한 공연이 될 듯 싶다.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와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이 특별 출연하는 등 20명의 뮤지션이 함께한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주제가 ‘사랑합니다’에서 신나는 라틴 리듬을 타고 매혹적인 허스키 목소리를 들려줬던 가수 남예지도 데뷔 음반 ‘Am I Blue?’를 발표했다.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보컬과정을 이수한 남예지는 우리 가요를 스탠더드 재즈로 편곡한 음반 ‘누보 송’에서 ‘춘천가는 기차’를 들려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이번 앨범에서도 다시 그 곡을 리메이크했다.이은하의 곡으로 유명한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보사노바로 편곡해 상큼함을 선사하고,‘Misty Eyes’의 걸쭉한 목소리는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재능을 엿보게 한다. 81년생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고 깊은 목소리의 맛을 느끼게 하는 그녀의 앨범에는 기타리스트 샘 리,베이시스트 전성식,색소포니스트 손성제 등이 세션으로 참여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기네스 코너]

    ●5억 2560만 달러 빼앗은 노상강도 영국 런던에서 한 개인 금융 집달관은 1990년 5월2일 영국 재무부 채권과 양도성 정기예금 증서를 강탈당했는데 그 금액은 5억 2560만 달러나 되었다. ●길이 40㎝ 가장 큰 달팽이 가장 큰 유지 복지류는 ‘아프리카 마오 달팽이’이다.기록상 가장 큰 달팽이는 코에서 꼬리까지 39.3㎝,무게가 정확히 900g으로 잉글랜드 이스트서식스주 허브 지방의 크리스토퍼 허드슨이 길렀다. ●동성애자 30만명 최대규모 행진 1993년 4월25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동성애자 및 양성애자들의 평등과 해방을 위한 워싱턴 행진에 약 30만명이 참가했다.이 행사는 군대내에서의 동성연애 금지법 철폐 등 미국 사회의 동성애자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입법을 촉구하기 위해 계획한 것이었다. ●한 마을 복권 최다 당첨금 1999년 12월22일 스페인의 ‘엘체’라는 남동부 마을 주민들은 1450장의 국민복권 엘 고르도를 구입했는데 이들에게 돌아간 당첨금은 모두 2억 6200만달러였다. ●1700편의 곡을 쓴 작곡가 기록에 의하면 바로크 시대 말의 독일 작곡가인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이 가장 많은 작품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칸타타,가톨릭 미사곡,종교합창곡의 일종인 ‘모테트’성가를 1000곡 넘게 썼으며 예수 수난곡 46편,오페라 40편,서곡 600편,협주곡 50편 그밖에 여러 악기의 협연이 가능한 모음곡,4중주곡,소나타 등을 작곡했다. ●‘지하철 표’ 크기 만한 신문 브라질의 주간지 보사 센호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크기가 작은 신문이다.1935년에 창간되었으며 크기는 고작 3.5×2.5㎝(가로,세로)에 불과하지만 16페이지 지면에 사진 삽화 광고 등이 실려 있다. ●오염원 찾는 ‘로봇 물고기’ 일본의 미쓰비시 중공업은 4년에 걸쳐 백만 달러가 소요된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 물고기와 거의 흡사한 로봇 물고기들을 개발했다.미쓰비시 중공업이 만든 첫 모델은 무게 2.5㎏,길이 50㎝의 ‘돔’이었다.이 회사는 가상 수족관에서 사용하기 위해 이미 멸종한 물고기를 로봇으로 만드는 데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미래의 로봇 물고기는 수질 오염원을 찾거나 해양 지도를 만드는데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리터당 연비 3485㎞ 프랑스 툴루즈 출신의 ‘마이크줄’팀이 설계한 자동차는 1999년 7월15일 영국 노샘프턴셔주의 실버스톤에서 열린 셸 에코마라톤에서 리터당 3485㎞의 연비를 기록했다.이 차를 운전한 주인공들은 14살 난 줄리앙 레브리강과 10살 난 티보 맬드뤼였다.˝
  • 주병선의 ‘칠갑산’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주병선이 부른 노래 ‘칠갑산’이 히트를 치면서 칠갑산은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애정이 있으면 자연히 지식도 늘어나는 법.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충남 청양군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충남의 ‘알프스’ 충남 사람들은 칠갑산을 이렇게 부른다.물 맑고,공기 좋은 산세를 유럽의 명산 알프스에 빗대 자부심을 드러낸다.아직도 청정무구의 상태지만 이 말은 그만큼 오지라는 뜻도 함유한다. 칠갑산 아래 대치면 대치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고규칠(70)씨는 “지금이야 버스를 타고 청양읍내 5일장에 가지만 어릴 땐 칠갑산을 넘어 정산장까지 걸어갔다.”며 “공주 금강교가 신설됐을 때는 어른들이 구경하러 새벽에 떠나 밤늦게 돌아왔다.”고 회상했다. 차령산맥 끝줄기에 있는 칠갑산은 산세가 험해 일제시대 호랑이가 출몰했다고 한다.산밑 마을에서는 호랑이 피해를 막기 위해 호랑이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산신제를 지냈고 요즘도 정월 보름 많은 마을에서 산신제가 열린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주민은 나무를 하거나 숯을 구워 장에 내다 팔았다.아직도 골짜기 곳곳에는 숯을 굽던 가마터가 남아 있다.깊은 산골짜기에 사는 주민들이 짓는 농사라야 화전일 뿐이었다.고씨는 “지금은 비닐하우스도 하고 농사가 다양하지만 당시에는 콩농사를 많이 지었다.”고 말했다. ●완행버스,그 속에 묻어난 서민들의 고단한 삶 1977년 추석 직후 충남 공주 버스터미널.서울행 완행버스에 몸을 실은 칠갑산의 작사·작곡가 조운파(61)씨는 비 내리는 차창 밖으로 아낙네들을 유심히 쳐다본다.고향 부여군 은산면에서 탄 이 버스는 공주 터미널에서 잠시 정차해 손님들을 태우던 중이었다.당시 완행버스는 서울까지 7시간이 족히 걸렸다. 터미널 차양밑에서 비를 피하며 청양행 버스를 기다리던 이웃인 듯한 아낙네들은 “대장간에서 호미를 갈라고 나왔어.”“콩은 잘 자라고” 등 소박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고향이 칠갑산과 가까워 평소 칠갑산 주변 마을주민의 정서를 잘 알고 있던 조씨는 차를 타고 서울로 오면서 시를 짓는다. 조씨는 “아낙네들 얘기를 들으니 노래말이 절로 떠올랐다.”면서 “작곡가를 찾았으나 내 생각과 달라 직접 작곡도 했다.”고 말했다.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당시 칠갑산 주민들의 정서를,어린 딸을 부잣집 민며느리로 보낸 뒤 복받치는 서러움을 콩밭으로 달려가 달래는 어머니의 마음에 빗대 노래말에 담았다고 한다. 딸은 딸대로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울어 주던 산새 소리만 텅빈 가슴속을 태웠소’라고 애닯게 속울음을 울며 한을 달랜다. 처음 윤상일이란 가수가 불렀으나 반응이 없었고 88년 대학가요제 수상자인 주병선에게 주어 리바이벌했으나 역시 신통치 않았다.하지만 모 방송사 주부가요대회에서 출연자가 이 노래를 불러 주목을 받은 뒤 주병선의 원곡으로 관심이 쏠리면서 공전의 히트를 친다. ●칠갑산에 살리라 교통이 좋아지고 칠갑산 위로 대전 등지로 빠지는 대치터널이 생기면서 가난한 주민들의 아들·딸이 대치로 떠나 70년대까지 12만명이 넘던 청양군 인구가 4만이 채 안되게 줄었다.공무원 사회에서는 요즘도 대치로 올 때 ‘달랑 고무신만 신고온 깡촌×’이란 의미로 청양출신 동료를 ‘꺼먹 고무신’이라고 놀려댄다.고씨는 “자식들이 도시에서 출세를 하고 살림도 예전보다 나아지면서 인심이 더 좋아졌다.”고 전했다. ‘산천은 의구하되‘라는 시조의 구절처럼 옛 모습 그대로인 칠갑산이 좋아 이북출신 조각가 박칠성(79)씨는 터널 부근에 집을 짓고 33년째 살고 있다.“칠갑산에 살다보니 세속의 시름을 잊게 된다.”는 박씨는 집 앞에 ‘콩밭매는 아낙네상’도 세워놓았다. 조씨는 “요즘도 가끔 칠갑산을 찾는다.”면서 “칠갑산 노래를 다시 만든다면 한이 배지 않은 신나고 흥겨운 가락이 나올 것같다.”고 말했다. 청양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초여름밤 ‘재즈’ 속으로

    초여름밤 감미롭고 흥겨운 재즈의 리듬에 온 몸을 맡겨보자.케니 가렛,론 카터,게리 버튼에 이어 재즈팬들에겐 이름만 들어도 반가울 뮤지션들이 잇따라 국내 무대를 찾는다. ●테렌스 블랜차드 ‘빠라 빠라 빰∼’.영화 ‘모 베터 블루스’를 여는 트럼펫 연주는 영화보다 더 유명하다.수많은 카페에서 연인들의 무드를 잡아주기 위해 기꺼이 희생(?)했던 바로 그 음악의 연주자 테렌스 블랜차드.그가 실제 무대 위 연주로 관객들을 매혹시킬 채비를 갖췄다. 오는 20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국내 첫 무대를 여는 그는 재즈 영화음악 작곡가이자 트럼펫 연주자로 명성이 높다.특히 미국의 흑인감독 스파이크 리와 명콤비로 잘 알려져 있다.‘모 베터 블루스’ ‘말콤X’ ‘서머 오브 샘’ ‘정글 피버’에서 영화음악을 맡았고,‘25시’로 지난해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재즈사에 자취를 남기기 시작한 건 1982년 아트 블래키 앤드 재즈 메신저스에 윈튼 마살리스 후임으로 들어가면서부터.86년 본격적으로 솔로로 데뷔,재즈와 영화음악계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이번 공연은 스윙,하드 밥,라틴 등 다양한 재즈의 장르를 펼쳐보일 예정이다.3만∼7만원.(02)543-3482.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 스윙 재즈붐을 일으킨 주인공이자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기억되는 카운트 베이시.이미 그는 고인이 됐지만 그가 창단한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가 24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에서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베니 굿맨,듀크 엘링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윙 재즈의 대부인 카운트 베이시가 1936년 창단한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는 1930∼40년대 스윙 재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70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지금까지 모두 17차례나 그래미상을 받은 놀라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스윙 재즈는 탄력있는 리듬감이 주무기로,크게 들으면 들을수록 흥겨워지는 음악.특히 빅밴드의 무대가 거의 없는 국내에서 19인조 밴드가 펼칠 무대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가 될 듯싶다.이번 공연은 생전의 카운트 베이시와 함께 연주했던 1940∼50년대 히트곡인 ‘April in Paris’부터 그를 기억하며 연주하는 최신곡까지 선보인다.3만∼7만원.(02)2005-0114.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2일 TV 하이라이트]

    ●토크쇼 임성훈과 함께(오전 9시45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고깃집에 일일 종업원으로 변장을 하고 나타난 이명박 시장.시민들의 불만을 직접 들어보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또 1940년에 완공된 시장 공관을 전격 공개한다.이명박 시장의 바쁜 일상을 따라가 본다. ●사이언스+(오전 8시30분)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도래를 앞당기기 위해 선정된 9대 IT 신성장 동력을 알아본다.9대 IT 신성장 동력이 포함된 ‘IT 8-3-9 전략’도 올해 정통부에서 시행하는 IT 관련 주요 정책이다.또한 올 상반기 제주도의 텔레매틱스 시범 도시 운영까지 앞두고 있다. ●예술의 광장(밤 12시) 서울발레시어터의 여러 작품 중에서 명작 두 편을 감상한다.첫 번째 작품은 사계(四季).각 장마다 서로 다른 유명 작곡가들의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두 번째 작품은 길이 만나는 곳(Chemins de Recontres).스토리보다는 무용수의 개성과 역동적인 표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인생극장 오 마이 갓(오후 10시50분) 어느 날 우연히 한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부유한 중년의 신사.그녀에게는 이미 남편과 아이가 있다.그러나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사랑이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다.그러던 어느 날 그녀 남편의 부도 소식을 듣는 그는 그녀의 남편을 만나 엄청난 제안을 하는데…. ●소풍가는 여자(오후 8시50분) 조 여사는 며느리를 달래보지만 혜숙은 용서가 안된다고 말한다.풍길을 찾아온 조 여사는 혜숙 덕에 윤호가 성공을 했다고 며느리를 칭찬한다.고모는 공치사를 하는 사부인을 이상하게 생각한다.고모는 찬미로부터 엄마 아빠가 매일 싸우기만 한다는 말을 듣고 걱정을 한다. ●4월의 키스(오후 10시) 재섭은 채원을 위해 정우를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기억을 찾아주기로 결심한다.도철은 재동에게 순영 앞으로 들어 놓은 생명보험 증서를 들이대며 이혼해 줄 수 없다고 버틴다.그러나 순영은 포기하지 않고 매일 재동의 집으로 가 온갖 일을 거들고 운봉은 그런 순영에 할 말이 없어진다. ●환경스페셜(오후 10시) 암컷 멧돼지는 수컷을 유혹하기 위해 꼬리를 치켜올리고,냄새를 풍긴다.약 4개월 후 암컷 멧돼지는 출산을 위해 무리를 이탈해 홀로 출산을 감행한다.베일에 가려져 있던 멧돼지의 출산준비과정과 출산,양육에서 진흙목욕,죽순 먹는 모습까지 멧돼지 생태의 모든것을 공개한다. ˝
  • 국제 문화 전문가 ‘서울 총집합’

    제3차 국제문화전문가단체(CCD) 총회(조직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강신길ㆍ지금종)가 1일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개회식을 갖고 나흘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1998년 결성된 CCD는 문화예술을 자유무역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을 막고 문화의 다양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국제연대기구.현재 전세계 90개국에 걸쳐 600여개의 문화단체가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올해 총회에는 한국을 포함한 57개국에서 외국인 120여명을 포함해 400여명이 참석해 각국의 문화상황과 문제점들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영화배우 문소리씨가 사회를 맡아 열린 개회식에서는 김정헌 문화연대 상임공동대표ㆍ김용태 민예총 부회장ㆍ로베르 필롱 CCD 국제운영위 대표의 환영사와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의 격려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시인 고은ㆍ중국의 작곡가 가오 얼디ㆍ캐나다 안무가 에듀아드 락ㆍ멕시코의 영화배우 릴리아 아라곤이 축사를 낭독했으며 퍼포먼스 그룹 ‘야단법석’과 어린이 예술단 ‘아름나라’의 축하 공연도 열렸다. 참가자들은 총회 기간중 ▲통상과 문화 관계 논쟁의 현주소 ▲문화 다양성과 통상 ▲최근의 통상 협정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 ▲유네스코 문화협약과 문화전문가 단체의 역할 ▲문화협약 체결을 위한 국제연대 강화를 위한 모색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총회는 4일 ‘서울 선언문’ 발표와 함께 막을 내린다.
  • 영화 ‘피아노’ 작곡자 마이클 니만 내한공연

    호주 여성감독 제인 캠피온의 영화 ‘피아노’(1992년)에서 말못하는 여주인공의 심리를 때론 물처럼,때론 불처럼 섬세하게 전달하던 피아노 선율을 기억하는가.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던 이 영화음악의 작곡가 마이클 니만(60)이 자신이 이끄는 밴드와 함께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8·9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02)2005-0114. 마이클 니만은 존 케이지,필립 글라스와 더불어 미니멀리즘 음악을 대표하는 현대 음악가이자,영국 거장 감독 피터 그리너웨이와 함께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요리사,도둑,그의 아내,그리고 그녀의 정부’등 11편의 음악을 작곡한 영화음악가로 유명하다.이번 무대에서는 1부에서 마이클 니만이 ‘피아노’ 등 히트 영화음악을 직접 연주하고,2부에서는 러시아 영화감독 치가 베르토프의 흑백 무성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의 영상에 맞춰 10인조 밴드가 라이브로 음악을 들려준다.지난 주말 서울에 온 마이클 니만을 31일 오전 코리아나호텔에서 만났다. 한국에 온 소감은. -지난 토요일 저녁 싱가포르에서 서울에 왔다.새로운 곳에 오는 것은 늘 용기를 필요로 한다.주말에 동대문 심야시장을 구경했는데 사람들이 물건을 거래하는 모습과 거리공연 등이 인상적이었다.이곳에 머무는 동안 한국 문화를 많이 접하고 싶다. 영화음악과 정통 클래식음악을 병행하고 있는데,두 장르간의 차이는. -진정한 작곡가는 창조성을 기반으로 개인의 특성을 음악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아침에 일어나서 항상 새로운 음악을 생각한다.영화음악과 다른 여타 음악은 내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차별성이지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영상과 음악의 결합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택한 이유는. -예전에 ‘Enemy zero’라는 일본 컴퓨터게임용 음악을 작곡한 적이 있는데 그때 영상 없이도 음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카메라를 든 사나이’의 사운드트랙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작업은 그 한 예이다.DVD영화로 보고,강렬한 에너지에 깊은 인상을 받아 택했다.지난 2002년 런던 로열페스티벌홀에서 초연했는데 라이브 실황연주는 음악과 영상의 템포를 맞추는 것이 매우 어렵다.그래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동시에 가슴 떨리는 작업이기도 한다. 피터 그리너웨이와 오랫동안 작업한 것으로 유명한데. -1976년 그와 만나면서 작곡가로서의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보통 감독과 작곡가로 만나면 음악적 표현에 한계가 있게 마련인데 그는 영화안에서 내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 자신의 음악을 정의한다면. -글쎄,음악을 언어로 정의한다는 것이 가능할까.60년대 이후 팝음악,아방가르드,비틀즈 등 다양한 음악들이 터져나왔다.모든 음악적 경향들을 하나로 수용해 개인적인 성향으로 재구성한 것이 나의 음악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이는 작곡자로서의 관점이고,관객들이 내 음악을 어떻게 듣고,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선 ‘피아노’가 대표작으로 소개되는데 외국에선 어떤가.또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외국에서도 ‘피아노’의 작곡자로 소개된다.(웃음)팝음악만 히트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음악도 히트해서 무척 좋았다.하지만 ‘피아노’는 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작곡자로서의 개성이 충분히 발휘된 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나도 이 곡을 좋아하지만 때때로 내 음악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개인적으로는 ‘Facing Goya’(2000년)같은 오페라 음악을 선호한다.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최근 칸영화제에서 ‘올드보이’를 봤다.기회가 된다면 한국 영화와 작업해보고 싶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미샤 마이스키, 요요마 6월 내한

    지난해 11월 하루 차이로 나란히 내한공연을 가졌던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와 미샤 마이스키가 올해에도 약속이나 한듯 차례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요요마는 새달 24일오후7시30분,미샤 마이스키는 26일 오후7시30분. 2002년 한·중수교 10주년을 기념해 상하이 방송교향악단의 협연자로,지난해는 개인독주회로 한국 팬과 만났던 요요마는 이번엔 자신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실크로드 앙상블’과 함께 내한무대를 갖는다. 실크로드 앙상블은 동서양 문화교류를 위해 요요마가 1998년 음악학자 시어도어 레빈과 손잡고 야심차게 발족시킨 프로젝트 그룹.극동아시아에서부터 유럽에 이르는 고대무역로 ‘실크로드’를 문화예술적 비전으로 다시 잇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이에 걸맞게 8개국 민속음악가들로 구성된 실크로드 앙상블 공연에는 동서양의 악기가 함께 사용되거나 서양 악기로 아시아의 전통악기 음색을 구현하려는 실험적인 시도들이 등장한다. 이번 공연에는 한국 작곡가 김지영의 작품 ‘밀회’가 가야금,첼로,오보에로 연주된다.‘밀회’는 2002년 실크로드 앙상블의 카네기홀 공연에서 갈채를 받았던 작품이다.이밖에 김지현의 가야금 병창,중국 악기 ‘솅’연주 등이 선보인다.(02)720-6633. 첼로 거장 미샤 마이스키는 국내 최정상의 피아니스트 백혜선과 듀오 공연을 갖는다. 장한나의 데뷔 초기 후원자를 자청했던 마이스키는 한국 가곡 연주를 즐기고,한복 차림으로 음반 표지사진을 찍는 등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감성적인 기교 못지않게 인간적인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녹아나는 연주 스타일의 미샤 마이스키와,치밀한 계산과 집중력으로 폭발적인 파워를 자랑하는 백혜선.두 걸출한 아티스트가 만나 어떻게 호흡을 맞출지 기대를 모으는 무대이다. 연주곡은 슈만에서 브람스,드뷔시,그리고 베베른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등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곡들이 주류를 이룬다.서울 공연에 앞서 지방 순회공연도 마련된다.새달 20일 통영 시민문화회관,21일 청주 예술의전당,22일 울산 현대예술관,24일 대구 시민회관,25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27일 천안 충남학생회관.(02)518-7343. 이순녀기자˝
  • [새 음반]

    ●D12 ‘D12World’ 에미넴이 15세 때 클럽에서 함께 활동했던 흑인 5명과 결성한 힙합밴드의 두번째 앨범.어셔의 빌보드차트 연속 5주 1위 행진을 무너뜨린 화제의 앨범이다.첫 싱글 ‘My Band’는 에미넴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을 꼬집은 곡으로 ‘Without Me’를 떠올리게 하는 곡.에미넴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듯.비속어가 많아 국내에는 클린버전으로 출시됐지만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았다. ●양방언 ‘에코우즈’ 재일동포 2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프로듀서인 양방언의 5집 앨범.국악·몽골음악 등 아시아의 음악,아일랜드의 켈틱음악,록,재즈,클래식 등이 어우러졌다.양방언은 홍콩 스타TV 드라마 ‘정무문’과 영화 ‘썬더볼트’의 음악을 담당했고,MBC 드라마 ‘상도’의 메인테마를 작곡하기도 했다. ●오욱철 ‘첫사랑’ MBC 드라마 ‘종합병원’에서 의사 독사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중견탤런트 오욱철의 새 앨범.최근 음반을 출시한 배인순의 ‘늦어서 미안해요’의 노랫말을 만들기도 한 오욱철은 11곡의 수록곡 가운데 10곡을 직접 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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