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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uppy Love’…팝스타 폴 앵카 내한공연

    ‘Puppy Love’…팝스타 폴 앵카 내한공연

    ‘Diana’,‘Lonely Boy’,‘You are My Destiny’,‘Puppy love’…. 전 세계적으로 8초마다 한 번씩 노래가 방송된다는 뮤지션. 프랭크 시나트라와 팝계 양대 산맥을 이뤘다는 캐나다 출신의 전설적인 팝스타 폴 앵카(65)가 온다. 1957년 16세의 나이에 ‘Diana’를 발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며 세상을 놀라게 한 이후 약 반세기 만에 처음 내한한다.21일 오후 6시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 무대에 선다.1950∼60년대에는 아이돌 스타로,90년대엔 성공적인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125개 앨범,900여개 작품을 통해 3개의 빌보드 차트 1위곡과 22개의 톱 20곡을 쏟아냈다. 전 세계에 팔아치운 앨범만 약 1500만장. 나이로 미뤄 전성기가 지났다거나 올드 팝 팬들의 가슴만 설레게 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도 좋을 듯. 이번 무대에서 폴 앵카는 자신의 히트곡 메들리 외에 지난해 발표한 앨범 ‘Rock Swings’에 담았던 트랙을 부르게 된다. 그런데 노래 면면이 흥미롭다.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rit’, 본 조비의 ‘It´s My Life’, 반 핼렌의 ‘Jump’, 오아시스의 ‘Wonderwall’,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 마이클 잭슨의 ‘The Way You Make Me Feel’ 등이다. 이 노래들을 재즈 스윙으로, 자신만의 음색으로 재해석, 세대 공감을 끌어내게 된다.(02)783-0114.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보이지 않는 소리의 마술사’ 손인호[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보이지 않는 소리의 마술사’ 손인호[2]

    ‘얼굴 없는 가수’의 50년만의 외출 손인호씨는 대중들 앞에 일절 나서지 않았던 것은 물론 이미 톱 가수 반열에 오른 1955년 결혼 당시 부인조차 그가 가수였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현재 손인호씨의 가족은 부인 이선자 여사를 비롯해 3남1녀, 그의 음악적 인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장남 손동준씨가 뒤늦게 대를 이어 ‘사랑은 OX’라는 곡으로 데뷔,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어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네 아버지가 가수인 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지요. 때문에 어릴 때 집에서 아버지 노래를 부르면 야단을 맞곤 했는데 밖에서만큼은 늘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비단 어머니뿐 아니라 당시엔 연예인들을 ‘딴따라’라고 비하하기도 했고 유독 가수활동을 말렸던 어머니가 뒤늦게 제 가수 활동만큼은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하시는 걸 보면 전 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수로 50년 후배인 손동준씨의 말이다. 취입된 노래만으로도 전성기를 구가하던 가수 손인호씨는 정작 그 시각에 피 말리는 영화녹음현장에 매달려 있었다. 손인호씨는 우리나라 영화녹음 발전사의 산증인인 처남 이경순씨와 ‘한양녹음실’을 설립, 운영해왔다. 이곳에서 녹음한 영화는 무려 3500편 정도.50년대에서 90년대까지,40년간 제작된 한국영화의 70∼80%를 도맡았다. 물자 부족과 낙후시설로 인해 녹음 환경이 매우 열악했던 시기, 특히 필름은 ‘핏방울’이나 다름없이 귀했다. 당시는 ‘후시녹음’시절이라 이미 촬영된 생필름에 직접 녹음을 해야 하는 ‘피 말리는 작업’에 따르는 긴장감과 압박감은 엄청났다. 한 ‘씬’마다 음악과 음향효과, 그리고 연기자와 성우의 호흡과 감정을 맞추는데 몰입해야 했다. 게다가 이미 개봉날짜가 정해진 영화를 마무리하는 작업이기에 밤샘 작업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노래 취입 자체가 사실상 버거웠다. 결과적으로는 레코드사 전속가수로 한달에 몇 곡 이상은 반드시 녹음해야 하는 계약조건 때문에 그나마 여러 곡들을 취입, 남길 수 있었던 셈이다. 일화도 많다. 지금처럼 다양한 특수음향효과음을 모아놓은 ‘sound effect(음향효과)모음집’이 없던 시절이라 효과음향들을 일일이 직접 녹음해 만들어내야 했다. 재래식의 무거운 장비를 들고 기적소리가 울리는 현장, 즉 안양 밖 수원 못 미친 지점을 찾아내 철도 밑에서 밤새 기다렸다가 비로소 시나리오에 적혀진 대로 ‘차가운 새벽을 가르는 적막한 기차소리와 서글픈 기적소리’를 녹음기에 담아, 스크린을 통해 재현해야 했다. 임시 방편으로 철판을 흔들거나 두들겨 산들바람부터 비바람을 동반한 천둥소리까지 만들어내야 했고 ‘백치 아다다’의 경우 화면 배경의 매미소리를 내기 위해 임시 방편으로 두셋이 셀로판지를 입에 물고 매미소리를 직접 흉내내야 했던 웃지 못할 일화도 부지기수이던 시절. 신상옥 감독의 ‘젊은 그들’에서 주인공 최무룡과 개들이 싸우는 장면에서는 고민 끝에 실제로 개 네 마리를 직접 녹음실로 데려와 마이크를 목에 매달고 두 마리씩 편을 갈라 싸움을 붙이는, 말하자면 성우 대신 성견(聲犬)까지 동원했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전투장면. 우리 측 무기와 상대 전투기소리는 물론 M1과 카빈소총, 그리고 따발총소리 역시 제각각 달라야 했다. 영화편집용 기기인 ‘무비올라(moviola)’가 없던 시절이라 영사기 렌즈로 한 프레임씩 필름을 검색해 그림에 맞춰 한방 한방씩 녹음, 일일이 소리맞추기를 해야 했다. 특히 그에게 대종상 녹음상의 영광을 안겨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경우는 등장인물도 많았고 또 소리의 원근감까지 정확히 묘사했던 작품으로 보름 이상 소요되었다. 워낙 철두철미한 성격에 ‘보통사람과 다른 귀’를 가지고 있어 작곡가 이봉조씨가 그에게 지어준 별명이 ‘손형사’.‘소리의 달인’ 손인호씨가 가수로서 노래를 취입할 때마다 마이크 앞에서 갖는 중압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짜깁기’가 불가능했던 시절 ‘마그네틱 녹음테이프’ 또한 혈관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던 때인지라 취입 도중 반주나 노래가 틀리기라도 하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미 오랫동안 ‘긴장감’에 숙련된 그였지만 녹음에 들어가기 전 아예 독한 술을 미리 마시고 노래를 취입하기도 했던 일화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가 브라운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2001년,75세 때 가요무대 특집방송 ‘얼굴 없는 가수 손인호 편’에서다.2003년 뒤늦게 가수분과에 입회,77세 되어서야 비로소 가수에 적을 둔 셈이고 재작년에는 40여년만의 신곡 ‘휴전선아 말해다오’를 발표했다. 이 노래가 결국 우리나라 최고령 가수의 취입곡이 되는 셈이다. 손인호 선생이 지난 4월12일 필자와 함께 부산 해운대를 찾았다. 그의 대표곡이자 동시에 해운대를 대표하는 노래 ‘해운대 엘레지’의 주인공이 노래 발표 50년 만에 첫 방문한 것으로 장남인 가수 손동준씨도 함께 동행했다. 지난 2000년에 세워진 ‘해운대 엘레지 노래비’ 앞에서 그는 사뭇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sachilo@empal.com
  • “난 개고기 좋은데 한번 먹어보세요”

    덴마크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의 남편 헨리크(사진 오른쪽) 공이 개고기를 좋아한다고 고백해 구설수에 올랐다고 영국 더 타임스 신문이 3일 보도했다. 프랑스 출신인 올해 72세의 헨리크 공은 덴마크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일찍이 베트남에서 성장하고, 공부할 때에 개고기에 맛을 들였다며 “개고기는 토끼 맛이 난다. 아마도 말린 아기 염소나 송아지 고기 같다.”고 밝혔다. 헨리크 공은 “나는 개고기 먹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다.”며 “내가 먹은 개는 닭처럼 식용으로 길러진 것”이라고 덴마크인들에게 직접 한번 개고기를 먹어보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닥스훈트종 개 몇 마리를 키우고 있고, 덴마크 닥스훈트 클럽의 명예회장인 헨리크 공의 이같은 고백에 유럽의 극성스런 동물애호가들은 분통을 참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1990년대 왕실에서 키우던 닥스훈트 한 마리가 실종됐던 사건을 환기하며 “아마 부엌에서 (헨리크 공에 의해)실종된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헨리크 공은 워낙 괴짜로 알려져 있다. 그는 뛰어난 실력의 피아노 연주자에 작곡가이며, 두 권의 시집을 냈고, 그림도 그린다.런던 연합뉴스
  • 절망에서 피어난 희망의 노래

    병마와 싸우면서도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한 시각장애인의 주옥같은 동시가 동요로 만들어져 시민들에게 선보인다. 서울 강남구(구청장 권한대행 김상돈)는 오는 12일 오후 7시 강남구민회관에서 24살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고 김효진씨의 동시를 동요로 만들어 선보이는 ‘추모음악회’를 연다고 2일 밝혔다. 지난 3월18일 합병증으로 숨진 김씨는 짧은 삶을 살면서도 ‘꽃씨’ 등 100여편의 주옥같은 동시를 남겨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대부분 병마에 시달리던 어린 시절에 지은 것들이다. 김씨는 극심한 저시력을 가지고 태어나 9살때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뿐만아니라 당뇨와 신부전증, 뇌경색, 피부병 등 합병증으로 고생하면서도 아픈 몸을 이끌고 맹인학교를 다니는 등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 사실은 송파구 방산초등학교 교사이자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려 있는 ‘봄’의 작곡가인 이성복씨를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허미경, 정윤환 등 국내 저명한 작곡가들이 김양의 동시를 곡으로 만들었다. 이어 평화의집(목사 조성재)이 주관하고 강남구 공무원 봉사동아리인 ‘동요동’에서 후원하는 음악회가 마련됐다. 음악회에서는 ‘꽃씨’ 등 김씨가 쓴 동시 33편에 허미경·정윤환 등 국내 저명한 작곡가들이 곡을 붙인 노래가 발표된다. 노래는 복지시설 등을 방문해 동요를 함께 부르며 봉사활동을 해온 동요동 회원 등이 부를 예정이다. 음악회에서는 음반도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씨

    “남편의 이름이 너무 커 나는 그 뒤에 숨어 가정 살림이나 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윤이상 선생님에 대한 명예회복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언제든지 남한에 갈 수 있어요. 선생의 고향 통영 바다에 가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간 남편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습니다.” 1967년 이른바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평생 조국을 등지고 살다가 이국땅에서 숨을 거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79)씨가 28일 밤 금강산 온정리 금강산호텔에서 남한 기자들과 처음으로 공식적인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독일 베를린 자택과 북한 정부로부터 받은 평양 근교의 자택을 오가며 살고 있는 이씨는 29일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열린 윤이상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지난 1월 윤이상 선생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이 확대됐다고 발표, 윤이상 선생에 대한 명예회복의 첫 단추는 이미 끼워진 상태. 그러나 이씨는 “정부 차원에서 명시적으로 사과를 해야만 명예회복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동백림 사건과 관련, 간첩죄가 적용된 남편 등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과거 정권에서 간첩 수괴로 몰아간 만큼 아직까지도 많은 국민들의 가슴엔 그렇게 각인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명예회복도 시켜주지 않으면서 윤이상 선생의 작품들을 국내에서 또 외국에 들고다니며 연주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처사”라고 말했다. 북받치는 감정을 정리할 수 없어서인 듯, 이씨는 잠시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려가기도 했다. 이씨는 회견 내내 조국에 대한 사무친 한과 미련, 그리고 애정을 간간이 드러냈다. “10년전 남편이 베를린에서 서거했다는 소식를 듣고 남쪽 보도진들이 집 앞에 몰려와 이야기를 들으려 했지만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현관 앞에 누가 갖다놨는지 꽃다발이 하나 놓여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선생님을 사랑하는 남한 정부의 꽃다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씨는 동백림 사건을 계기로 윤이상 선생의 사고와 사상, 음악 등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동백림 사건 이후 윤이상 선생은 특히 민족의 고뇌가 담긴 곡들을 많이 썼다. 그래서 음악이 무척 무거워졌다.“선생님은 예술말고 더 직접적으로 민족을 위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그쪽으로 달려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분단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고, 통일은 지상 과제였습니다.” 이씨는 “외국에 오래 있다보면 자기 조국도 객관시하게 된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덧붙였다. 윤이상 선생은 예민한 성격으로 하루 7시간씩 작품을 썼다고 소개한 이씨는 “그 분은 참으로 슬프고 외롭고 아픈 삶을 살다가셨다.”는 말로 다시 한번 선생에 대한 명예회복을 촉구했다. 금강산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보이지 않는 소리의 마술사’ 손인호[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보이지 않는 소리의 마술사’ 손인호[1]

    미남(美男), 미성(美聲)의 가수 손인호씨는 ‘얼굴 없는 가수’였다.‘비 내리는 호남선’ ‘울어라 기타줄’ ‘해운대 엘레지’ ‘하룻밤 풋사랑’ ‘한 많은 대동강’ 같은 우리의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숱한 노래들을 히트시키며 10여년 간 정상에 서 있는 동안에도 방송 무대에 전혀 서지 않았다. 심지어 일반 무대에서조차 거의 볼 수 없었다. 당시 일반 대중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의 본 직업은 영화 녹음기사였다. 그는 가수로서 150여곡의 노래들을 발표했지만 영화 녹음기사로는 무려 2000여편 이상을 작업했다.‘돌아오지 않는 해병’ 그리고 ‘로맨스 빠빠’ ‘빨간 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등이 모두 그가 녹음작업을 한 영화들. 이로 인해 대종상 녹음상을 무려 일곱 차례나 수상했을 만큼 영화녹음작업에 있어 독보적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 손인호씨가 가수로서 받은 상은 단 한차례도 없다. 보릿고개 시절, 라디오와 영화가 국민들에게 최고의 오락수단이었던 때, 그 두 무대를 동시에 장악한 인물로 ‘소리의 마술사’라고까지 불리던 손인호씨는 속칭 ‘38 따라지’다. 본명 손효찬(孫孝燦).1927년 평북 창성에서 출생해 창성보통학교 6학년 때, 수풍댐 건설로 인해 마을 일대가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가족 모두 만주 창춘(長春)으로 이주해 생활했다. 광복 후 신의주로 옮긴 손인호씨는 평양에서 열렸던 이북 도민 전체 노래자랑대회인 ‘관서콩쿠르대회’에 참가,‘집 없는 천사’를 불러 1등을 차지한다. 이때 심사위원장으로부터 ‘가수가 되려면 이남으로 가야 소질을 살릴 수 있다.’는 권유를 받고 이남 행을 결심, 광복 이듬해인 46년 12월 여섯 살 터울의 형과 단둘이 서울로 내려온다.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시내 곳곳에 걸려 있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그들 몸에 뿌려진 것은 DDT, 즉 살충제였다. 나이가 어려 곧바로 수용소에서 생활을 시작해야 했던 그는 당시 서울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사람은 1주일 동안 굶어도 물만 먹으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고 회고할 정도다. 그는 당시 작곡가 김해송씨가 이끌던 KPK악단에서 실시한 가수모집에 응모, 참가자 300명 중 1등을 차지해 악단생활을 시작했고 이어 윤부길씨가 이끌던 ‘부길부길쇼단’에서 가수로 활동했다. 곧이어 한국전쟁이 터지자 그는 군예대에 들어가 ‘군번 없는 용사’로 전쟁터를 누볐다. 제대 후 공보처 녹음실에 입사한 그는 ‘대한뉘우∼스(뉴스)’ 녹음을 담당하며 아울러 영화 녹음기사로도 활동을 시작한다. 그 무렵 많은 음악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작곡가 박시춘씨. 이 인연으로 그는 노래 두 곡을 받아 취입하게 되는데 그 노래가 바로 ‘나는 울었네’와 ‘숨쉬는 거리’다. 휴전 이듬해인 54년도의 일이다. 그의 노래 중 56년에 발표한 ‘비 나리는 호남선’과 관련, 유명한 일화가 있다. 자유당 시절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야당 대통령후보로 출마한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이 유세 도중 호남선 열차 내에서 심장마비로 급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두고 발생했기에 충격에 빠진 국민들은 마치 추도곡처럼 ‘비 나리는 호남선’을 애창했다. 때를 같이 해 온갖 유언비어가 꼬리를 물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신익희 선생의 미망인이 직접 이 노래를 작사해 만든 노래라는 것.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진 이 소문으로 인해 노래를 부른 주인공 손인호씨를 비롯해 작사가 손로원, 작곡가 박춘석씨도 줄줄이 당국에 의해 조사를 받아야 하는 수모를 겪는다. “담당 수사관이 대뜸 ‘이 노래를 취입할 때 어떤 감정으로 불렀느냐.’고 묻더군. 그래서 ‘가수는 감정을 가지고 노래를 해야지, 감정 없이 노래 부르면 그건 가수가 아니죠.’라고 대답했지. 그러자 수사관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거야.” 손인호씨의 회고다. 사실 이 곡은 바빠서 일년 이상 차일피일 취입을 미뤄왔던 곡으로 취입 도중 반주가 틀렸음에도 별로 히트되지 않을 곡이라고 판단,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긴 곡이었다. 노래 역시 단 한번 만에 OK사인이 났다.(계속) sachilo@empal.com
  • 29일 금강산 윤이상음악회 남북 인사 270여명 참석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을 기리는 음악회가 29일 금강산에서 열린다. 남북 음악인들이 함께 하는 이 행사를 주최하는 윤이상평화재단(이사장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은 26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음악회에 대한 개요와 프로그램 등을 소개했다. 29일 오후 6시30분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음악회는 남북 음악인들이 함께 꾸미는 무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리측에서는 통영국제음악제 상주악단인 TIMF앙상블과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이 출연해 파헬벨의 ‘캐논’과 윤이상 가곡 ‘편지’‘추천’, 백대웅 작곡 ‘남도아리랑’ 등을 연주한다. 또 북측 대표로 평양 윤이상관현악단이 윤이상 작곡의 실내악곡을, 국립민족예술단 공훈배우인 강영필이 민요 ‘금강산 타령’‘토장의 노래’, 여성 성악가 김기옥이 윤이상의 가곡 ‘고풍의상’‘달무리’ 등을 들려준다.북측에서는 연주단 20여 명을 포함해 모두 40여 명의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며, 우리측에서는 연주단과 함께 이종석 통일부 장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230명의 인원이 참석한다.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모차르트에서 가야금까지 ‘어린이 음악 백과’

    영어동요 음반의 스테디셀러 ‘해피 ABC’와 KBS ‘어린이를 위한 클래식’ 등을 발매한 바 있는 소니비엠지가 또 하나의 어린이 음반 모음을 출시했다.동요에서 클래식, 구연동화까지 미취학 어린이들의 정서 함양과 지능 발달을 위해 ‘어린이 음악 백과’를 내놓은 것.먼저 8장의 CD에 애창동요 창작동요 영어동요와, 또 바로크 음악과 모차르트 음악, 들어봄직한 작곡가 30인의 작품 등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꽉꽉 눌러 담았다.바이올린 피아노 플루트 거문고 가야금 등 30개 악기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트랙까지 250여곡의 레퍼토리가 가득하다.나머지 2장의 CD에는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이솝이야기, 안데르센 동화, 전래동화 등 14편 이야기를 직접 읽어주는 구연동화를 보너스로 담았다.
  • [22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 n 조이(YTN 오전 8시30분)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허브 아일랜드와 직접 만들어 보는 허브 빵가게, 닥종이로 만든 인형들을 전시하고 있는 닥종이 갤러리까지 아기자기하고 예쁜 봄을 맞고 있는 경기도 포천을 찾아가 본다. 이와 함께 포천의 40년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쫄깃쫄깃한 이동갈비도 맛본다.   ●희망풍경(EBS 오전 7시10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열리는 개성마당 행사가 이젠 장애인들만의 축제가 아닌 서울 시민 문화 축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개성마당 행사를 주최하고 있는 장애인 단체 총연맹의 김동범 사무총장과 변경희 교수, 중증 장애인 독립 생활연대 윤두선 회장을 초대해 행사의 의의와 다채로운 행사내용들을 들어본다.   ●세월따라 70년 노래따라 60년 작곡가 김희갑(SBS 오전 11시) 인생 70년에 음악인생 50년이 지난 작곡가 김희갑. 지난 4월1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한평생 대중음악을 만들며 살아온 작곡가 김희갑을 위해 후배 음악인들이 마련했다고 하는데, 주옥 같은 노래들로만 선정한 뜻깊은 시간을 마련했다.   ●신돈(MBC 오후 9시40분) 신돈은 무예를 겨뤄 이기는 사람의 뜻대로 하자는 공민왕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둘은 칼을 쥐고 결투를 시작한다. 공민왕은 영전공사를 강행해야 한다고 계속 설득하지만 신돈은 반대하고, 공민왕은 신돈의 권력을 거둬들일 것이라고 소리친다. 한편 원현은 공민왕을 처치하고 반역을 꾀할 준비에 한창인데….   ●위기탈출 넘버원(KBS2 오후 10시5분) 몸보신이라면 뱀, 개구리 등 뭐든지 먹는 한국인의 보신 행각. 정력이 세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을뿐더러 기생충에 감염돼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보신음식으로 인해 기생충에 감염되었을 때 증상은 무엇인지, 그리고 보신음식보다 건강에 좋은 음식은 무엇인지 소개한다.   ●서울1945(KBS1 오후 9시30분) 석경은 이인평의 집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며, 동우가 원한다면 혼인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인평과 조영은은 석경의 당돌함에 놀라지만, 조영은은 자신에게 맡겨두면 석경이 제 발로 걸어나가게 하겠다며 이인평을 안심시킨다. 조영은은 부안댁을 시켜 석경과 윤정자를 하인방으로 내쫓는다.
  • [공연단신]

    ●다시 동트는 새벽 ‘그날이 오면’,‘저 평등의 땅에’,‘벗이여 해방이 온다’,‘선언’…. 노래는 불후의 명곡으로 남아있지만 그 선율을 싹 틔웠던 모임은 흩어졌다.1984년 결성돼 93년 해체에 이르기까지 민중음악계에서 한 획을 그었던 노래운동 모임 새벽 이야기다. 안치환, 고 김광석, 문승현, 문대현 등 쟁쟁한 창작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이제 어느덧 40대로 각자 길을 가고 있는 새벽의 옛 멤버들이 다시 모였다.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열리는 콘서트 ‘혹시 내가 들리나요?-사랑, 노래15’를 위해서다. 윤선애(가수), 임정현(성악가), 류형수(작곡가), 황난주(작곡가) 등 10여명이 옛 노래 외에 신곡도 발표하며 마흔 잔치를 벌인다.(02)559-1333.●숨은 진주와 함께 하는 좋은 하루 실력파 인디 뮤지션 4팀이 함께 하는 옴니버스 콘서트 ‘좋은 하루’가 30일 문화일보홀에서 열린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시상식에서 ‘올해의 신인’을 거머쥔 2인조 모던록 밴드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지난 2월 라틴 보사노바를 바탕으로 한 첫 솔로 앨범을 내놓으며 ‘한국의 리사 오노’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소히, 싱어송 라이터 주현철의 솔로 프로젝트로 지난해 대중음악평론 웹진 이즘에서 10대 가요앨범으로 선정됐던 슬로우 쥰, 서정적인 포크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결합한 소다의 원맨 밴드 올드피쉬 등 대중적으로는 인지도가 낮지만 음악성에 있어서는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팀들이 뭉쳤다.(02)470-6171.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2)

    1964년‘동백아가씨’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트로트 시대를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이미자씨. 그러나 이후 3대 히트곡인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에 이어 ‘기러기 아빠’까지 왜색, 비탄조 등의 사유로 금지되면서 한때 가수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이 노래들의 금지 배경에는 아직도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몇 가지 설이 나돈다. 그 중 하나는 정치적 희생양 설. 당시 한·일국교를 맺을 즈음 치닫던 반일감정을 ‘왜색 근절’이라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민심 달래기용’으로 이용되었다는 설과 아울러 당시 정책구호였던 ‘재건’에 대한 ‘의욕 저하 설’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다른 하나는 주위 음반사의 작용설. 정작 당사자인 이미자씨는 후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는 99년에 발간한 자전 에세이 ‘인생 나의 40년(황금가지刊)’에서 본인의 심경을 이렇게 적고 있다. ‘65년 한·일국교 정상화에 따른 주체성 확립 차원에서 본보기로 규제한 시대적 희생물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지만 정작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만찬이 있을 때마다 나를 불러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며 정말로 ‘동백아가씨’가 왜색이어서 정부가 금지시켰다면 일본에 대해 강경자세를 취했던 박 대통령이 그 노래를 내게 부르게 했을 리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권력층에서는 정작 이 노래의 금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오히려 연속되는 빅히트로 상대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타 음반사가 극에 달한 ‘반일감정’에 편승, 심의실과 결탁해 여론몰이를 통한 ‘마녀사냥’에 나선 것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해적판’까지 기승을 부리게 만든 ‘동백아가씨’ 신드롬은 우리 가요계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미8군 출신가수들이 주축을 이루던 가요계가 트로트 붐으로 급선회했고 아울러 한국 최고의 메이저 음반사로 꼽히던 지구레코드사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피란 시절, 이북 출신 일곱명의 ‘38 따라지’들이 고물을 주워 모아가며 부산에서 설립한 미도파레코드사는 9·28수복 후 서울로 본거지를 옮긴다. 임정수·김능억 공동사장으로 운영되던 미도파는 동백아가씨가 ‘대박’을 터뜨리자 이듬해인 65년 1월부로 결별, 각각 독립한다. “두 공동사장이 분가할 때 그동안 미도파 라벨로 출시된 음원들도 똑같이 분배했지요. 그런데 정작 분가의 불씨를 제공한 선택 1호 ‘동백아가씨’ 만큼은 임정수 사장의 ‘지구’ 몫이었습니다. 미도파 전속 후 별다른 히트곡이 없던 작곡가 백영호씨의 그동안 밀린 월급을 임사장이 개인적으로 주어왔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지구’는 출발부터 돈방석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도파레코드사에 근무하던 현 한국가요작가협회 김병환(68) 이사장의 증언이다. 결국 임 사장은 지구를, 김 사장은 그랜드를 각각 설립, 결별한 이후에도 미도파 당시에 출시한 동백아가씨 판매수익 지분을 놓고 법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지구의 출발과 함께 ‘이미자 시대’는 본격적으로 막을 연다. 게다가 천재 작곡가 박춘석씨가 자신의 곡을 이미자씨에게 취입키 위해 자청, 지구에 전속된다. 작풍도 ‘이미자풍(風)’에 맞춰 트로트로 선회, 스스로 ‘제2의 전환기’를 맞는다. 이렇게 해서 60년대 빅 히트 3대요소인 ‘지구+박춘석+이미자’라는 진용을 갖추고 ‘섬마을 선생님’ ‘그리움은 가슴마다’ ‘흑산도 아가씨’ ‘기러기 아빠’ ‘황혼의 블루스’ ‘한번 준 마음인데’ 등을 잇달아 발표한다. 동시에 이미자씨는 백영호 곡인 ‘여자의 일생’ ‘아씨’ ‘서울이여 안녕’ ‘여로’, 그리고 손석우 곡인 ‘사랑했는데’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거침없는 질주를 계속했다. 쉴 새 없는 공연과 취입으로 그녀의 목은 늘 잠겨 있었다. 따로 연습할 시간조차 없어 ‘녹음이 곧 연습’이었다. 그럼에도 ‘타고난 목소리’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성대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의 한 연구기관이 그녀의 성대를 사들였다는 소문까지 전국에 파다하게 나돌기도 했다. 물론 낭설이었지만 이미자씨 역시 이 소문을 접했을 때 그리 나쁜 기분만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상의 목소리’ 그리고 ‘촌스러움’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던 이미자씨 노래는 89년 10월,30주년 기념공연을 기해 세종문화회관무대에 오른다. 처음 이 공연은 ‘공연장의 품위와 관객의 질적 수준 저하’라는 이유로 세종문화회관 운영자문위원회의 결사반대에 부딪혔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격이 낮다’는 노골적인 멸시를 받으며 막이 오른 이 공연은 정작 시작 첫날부터 세종문화회관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당시 민정당 박태준 대표, 평민당 김대중 총재, 민주당 김영삼 총재, 공화당 김종필 총재, 즉 당시 4당 총재부부가 나란히 관객석에 자리한 것이다. 한국인만의 정서를 대변하고 달래주었던 이미자 노래, 그 실타래 같은 노래 한가닥 한가닥은 서민의 밑바닥 정서부터 한국을 움직이는 최고 수뇌부까지 모두 하나로 묶는 소중한 ‘끈’이었던 것이다. (sachilo@empal.com)
  • [어린이책꽃이]

    |유아·아동|●위대한 뭉치(고경숙 글·그림, 재미마주 펴냄) 2006년 볼로냐 아동도서박람회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한 그림책 작가의 새 그림동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는 놀라아줌마에게 명약을 구해주려고 일곱개의 고개를 넘는 개구쟁이 꼬마의 팬터지 모험담.4∼7세.9500원.●못 말리는 과학시간(존 셰스카 글, 레인 스미스 그림, 조세현 옮김, 비룡소 펴냄) ‘양성자는 벼룩의 간/전자는 모기 눈물/중성자는 좁쌀 할멈’(‘원자에 관한 농담’중에서) 21편의 동시를 통해 물의 순환, 진화론, 먹이사슬, 빅뱅이론 등 상식을 귀띔하는 동시 과학그림책.6세 이상.1만 1000원.|초등·청소년|●웅진 클래식 음악동화(웅진씽크빅 펴냄) 초·중·고 교과서에 실린 음악 100곡을 창작동화로 엮어 음악CD 등을 덧붙인 음악동화 전집. 별책 ‘클래식 음악사전’에는 서양음악 역사와 주요 작곡가들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다. 음악동화 20권, 음악사전 1권, 비디오 10권, 비디오 해설서 10권 등.3∼13세.49만 8000원.●우리 역사를 바꾼 12가지 씨앗 이야기(배수원 글, 문종성 그림, 어린이작가정신 펴냄) 벼 밀 콩 인삼 목화 옥수수 고추 담배…. 우리민족의 생활환경에 큰 영향을 끼친 씨앗 12가지에 얽힌 이야기들을 귀띔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역사를 이해하게 한다. 초등생.8900원.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1)

    절세 가인(歌人),‘이미자’라는 이름은 어느덧 우리 가요사에 있어 고유명사가 아니라 대명사 격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음반과 노래를 취입한 가수로 이미 1990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그때까지 발표한 음반은 총 560장, 발표곡 수 2069곡. ‘가늘면서도 비단결같이 고운, 한 세기에 나올까말까 한 미성,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한풀이이며 마음의 정화요, 깊은 교감’이라는 평가를 받는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씨의 음성. 그는 그 많은 노래를 ‘악보 그대로’ 부르는 ‘원곡주의자’이기도 하다.1958년, 그녀의 나이 18세 때 ‘도라지 부루스(손로원 작사, 김성근 작곡)’,‘무명초’ 등을 취입하며 정식으로 가수에 데뷔해서 오늘날까지 그녀의 노래는 50년 가까이 한국인들과 함께했다. 그녀는 2002년 남북한 동시에 생중계로 방영된 평양공연에 이어 2004년 45주년 기념 콘서트까지, 한국인이 자랑할 만한 많은 무대에 섰다. 마침 어렵사리 그녀와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 바로 이 공연이 열리기 불과 며칠 전. 소박한 외모만큼이나 ‘친근한 이웃’ 같은 그녀는 정작 국민가수라기보다 한국의 전형적인 평범한 주부에 가깝게 느껴졌다. 실제로 그녀는 요즘 음반가격은 잘 모르지만 쌀값, 콩나물 값 등은 줄줄 꿰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집에는 일반가정에도 흔한 오디오시설조차 없다고 했다. 있는 것은 고작 카세트 정도.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평생을 살아온 그녀의 위상을 떠올리면 쉽게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그만큼 집에서는 가수로서가 아니라 철저히 살림주부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인터뷰 자리에서 그녀가 서울 문성여고 3학년 때인 58년,HLKZ TV 신인가수선발 프로그램인 ‘예능 로타리’에서 1등을 차지한 뒤 곧바로 작곡가 김성근씨에게 픽업되어 그 해 유니버샬 레코드사를 통해 김성근 작곡의 노래 네 곡을 취입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번 무대는 ‘이미자 노래 45년’이 아니라 ‘46년’이 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대한민국을 움직여 온 100인(1985년 한국일보)’,‘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1998년 조선일보)’ 그리고 ‘한국을 움직이는 100인의 여성’,‘한국인이 좋아하는 인물 베스트 10’에도 이미 선정된 한국 근대사의 주요인물, 가수 이미자씨가 설령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대중문화사에서의 정확한 기록은 나름대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10월,KBS TV에서 ‘대한민국 가치의 대발견’이라는 프로그램이 기획되어 방송된 적이 있다. 이를테면 2002 월드컵 전사들의 몸값, 양평 용문산 은행나무의 가격 등 유무형의 가치를 가격으로 환산해 그 가치를 따져보는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인물로 가수 이미자씨가 선정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평가단으로 필자도 섭외되었는데 처음엔 다소 난감해 거절했었다. 거절 이유는 간단하다. 가수 이미자씨를 우리의 소중한 문화로 접근해야지 어떻게 돈의 수치로 가치를 매길 수 있겠느냐는 것. 그러나 제작진은 바로 그 ‘무형의 가치’를 평가하는 작업이기에 선정했다며 집요하게 설득해와 결국 이 프로그램에 참여, 그간 추정된 수치를 함께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KBS 측은 이미자씨가 데뷔 이후 기네스북에 오르는 시점인 90년도까지의 음반 총 판매량을 추산해 음반수입을 1662억 1898만 7000원으로 추정해놓고 있었고 지금까지의 공연 횟수와 수익을 이미자씨 전속인 김춘광 악단장과 함께 추정, 총 3320회 공연에 현재 출연료를 대입해 그간 공연 총 수익이 498억원이라고 1차 산출해놓고 있었다. 갈수록 국민가수 이미자씨의 문화적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가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난감했던 나는 이러한 숫자의 공포에 눌려 그 수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실체가 더더욱 가늠되지 않았다. 더구나 대중문화에 끼친 ‘무형의 가치’를 어떻게 내 능력으로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결국 나는 우리가 잘 아는 영국속담 중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인도 전체와 바꿀 수 없다.’는 말을 예로 들었다. 그만큼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이겠는데, 나 역시 한국인으로서 갖고 있는 이미자씨에 대한 자부심은 그에 못지않기에 이미자씨에 대한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라면 나는 그냥 우리 식으로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하겠다며 얼버무렸다. 물론 프로그램 기획의도와 맞지 않다면 이 부분은 잘라도 좋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실제로 방송에서 한 말 중 이 멘트 부분은 편집되어 잘렸다.(계속) (sachilo@empal.com)
  • [10일 TV 하이라이트]

    ●사이언스+(YTN 오후 1시35분) 불가리아 중부지역에 해마다 3월이면 집시 처녀들이 모여든다. 결혼 적령기의 집시 처녀들을 놓고 흥정을 벌이는 신부 경매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예쁘고 처녀이면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지만 대략 300만∼600만원 정도다. 딸을 잃은 데 대한 보상도 되지만 새 가족을 잘 보살펴 줄 것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5분) 재봉틀과 천 한 장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다. 멋진 창가를 만드는 커튼과 안락한 쿠션, 입맛이 돌게 만드는 식탁보는 물론 낡고 오래된 가구 수선까지 모두 ‘천’을 이용하는 호경자 주부의 홈패션 인테리어 노하우를 공개한다.‘주부생활백서’에서는 자투리 천을 활용한 생활소품을 만들어 본다.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8시55분) SBS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부부는 아니지만 과거에 낳은 딸의 친아버지에게 딸이 죽었다고 거짓말 한 경우 여자에게 죄가 있는지 알아본다. 강제추행 당한 피해자의 부모가 가해자와 합의금을 받고 합의를 끝냈지만 피해 당사자가 가해자를 고소할 경우 가해자는 강제추행죄로 처벌 받는지 확인해 본다.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MBC 오후 8시20분) 은민아빠는 태경과 은민의 신혼집을 찾아가 결혼 선물이라며 아이 배냇저고리와 장난감을 건네고, 태경은 결국 임신이 거짓임을 밝힌다. 은민아빠는 은주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은민엄마를 걱정한다. 희정은 몰래 딸기를 사다가 희수에게 주고 맛있게 먹던 두 자매는 태경모에게 들키고 만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55분)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탁재훈의 인기비결과 무명시절 이야기가 공개된다. 두번째 손님은 주옥같은 히트곡을 내며 한국 대중가요사에 큰 획을 그은 작곡가 김희갑, 작사가 양인자 부부. 아름다운 부부의 금슬로 짠 노래로 수많은 명곡을 남긴 부부가 들려주는 대중음악사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여자들이 화장품을 사기 위해 쓰는 돈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생활 속 간단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색다른 화장품으로 바꿔 쓸 수 있다고 한다. 재치만점 주부들에게 직접 들어보는 화장품들의 깜짝 변신, 그 노하우와 서랍 속에 있던 화장품을 꺼내 직접 만들어 보는 재활용 화장품, 그 비법이 공개된다.
  • [토요영화]

    [토요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MBC무비스 오전 8시) 지난달 24일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보컬리스트이자 작곡가인 피오 레이바가 89세를 일기로 숨졌다. 앞서 기타리스트 콤파이 세군도와 피아니스트 루벤 곤살레스가 2003년 각각 95세와 84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이브라힘 페레도 지난해 78세를 세상을 떠났다.1990년대 후반, 세계를 쿠바 음악으로 흥겹게 달궜던 노장 재즈 뮤지션 밴드 멤버들은 이렇게 하나둘 세상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어 아쉬움이 쌓여간다. 1999년 공개된 음악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은 바로 이들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소 쿠바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미국 재즈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가 잊혀졌거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쿠바의 노장 재즈 뮤지션들과 1950년대식 낡은 스튜디오 녹음실에서 벌인 즉흥 연주회를 녹음,1986년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라는 앨범을 냈고, 멋진 하모니와 즉흥 연주를 담았던 이 앨범은, 전세계적으로 600만장 이상 팔렸고, 쿠바 음악이 레게와 라틴 음악을 뛰어넘으며 세계로 알려졌다. 다큐멘터리는 이들이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재녹음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공연 실황과 인터뷰 장면이 교차되며 노장 뮤지션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인생 역정을 드러내고 있다.1999년작.105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문스트럭(MGM 오후 2시15분) 뉴욕의 한 이탈리아계 집안을 무대로 약혼자의 동생을 사랑하게 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이다. 셰어는 이 영화로 1988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원래 가수이지만 연기력이 빼어나다. 앞서 1983년엔 ‘실크우드’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1985년에는 ‘마스크’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노만 주이슨 감독이 연출했다. 결혼한지 2년 만에 사고로 남편을 잃은 30대 후반의 과부 로레타(셰어)는 노총각 조니(대니 앨로)로부터 청혼받고는 이를 허락한다. 조니는 시실리로 떠나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생 로니(니컬러스 케이지)를 결혼식에 초대해달라고 부탁한다. 로레타는 오히려 로니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갈등 끝에 이별을 통보하지만 로니는 마지막 만남이라며 로레타와 함께 간 오페라 극장에서 사랑을 고백하는데….1987년작.102분.
  • ‘王의 힘’

    올해로 즉위 60주년을 맞은 푸미폰 아둔야뎃(78) 태국 국왕은 태국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으며 막후의 해결사로 통한다.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권좌에 있는 푸미폰 국왕은 태국 정치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총리를 해임할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다. 그래서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국왕의 역할이 결정적이다.1992년 민중 봉기 때도 총리를 궁궐로 부른 뒤 TV를 통해 유혈 군사정부의 하야를 요구했다. 당시 총리였던 수친다 장군은 민중의 요구와 국왕의 명령에 결국 사임했다.1973년 방콕대학교에서 시위가 발생했을 때도 국왕은 총리와 총리 측근을 불러 나라를 떠날 것을 요구했고, 그들은 복종했다.재임 중 15번의 정권 개혁과 20명의 총리, 수많은 쿠데타를 거치면서 국왕은 정치적으로 엄격한 중립을 유지, 위상을 높였다. 이번 반 탁신 시위대들도 국왕에게 정치 혼란 해결을 위한 ‘간여’를 애걸했을 정도로 그의 의견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푸미폰 국왕은 재즈 색소폰 연주가, 작곡가, 사진가, 요트 조종자로도 뛰어난 실력을 과시하는 현대적 국왕이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요리조리 명사와 함께] 리디아 데를라트카 주한 폴란드 대사 부인

    [요리조리 명사와 함께] 리디아 데를라트카 주한 폴란드 대사 부인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주한 폴란드 대사관저에는 요즘 행복한 웃음이 가득하다. 안제이 데를라트카 대사부부의 3살된 늦둥이 아들 빅토르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장난놀이를 재미있게 한다. 또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폴란드 과학연구원에서 현역으로 일하는 대사의 장모 엘쥐비에타 스타십스카가 4주간의 휴가를 얻어 서울 생활에 합류했다. 이들은 재래시장에 쇼핑도 가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다니는 등 한국의 멋과 맛을 한껏 즐기고 있다. 저 멀리 동유럽에 있는 폴란드가 무척 가깝게 다가왔다. 유쾌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의 안제이 데를라트카(52) 폴란드 대사부부를 만나 폴란드 음식과 문화 등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번 여름 휴가는 폴란드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서울 성북구 한성대 입구역에서 북악스카이웨이길로 접어드는 성북동에 자리잡은 폴란드 대사관저를 찾았다. 뒤로 산이 있고, 정원 앞 연못에는 오리가 헤엄치고…. 풍수지리학적으로 지어졌다는 이 집을 안주인 리디아 데를라트카(43)는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때 이사온 이 집은 조용한데다 집 구조 등이 이들 부부의 폴란드 집과 비슷해 더욱 좋단다.1층에 자리잡은 접견 방은 한국식 고가구들로 꾸며져 있고,2층은 유럽 스타일이다. # 3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요리솜씨 이 관저에는 대사 부부를 비롯, 딸 나탈리아(18)와 아들 빅토르(3)가 함께 살고 있다. 마침 대사의 장모 엘쥐비에타 스타십스카(65)가 4주간 휴가차 한국에 와 있어 집안 분위기가 한결 따뜻하다. 폴란드 과학연구원에서 근무한다는 친정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대사 부인 리디아는 맹렬 커리어 우먼이다.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금융공학을 전공한 그녀는 폴란드 경제부, 국제통화기금 본부(IMF) 등을 거쳐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가장 큰 부동산 회사의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늦둥이 아들을 낳으면서 현재 2년간 육아휴직중이다. 한달 뒤면 폴란드 회사로 다시 복직할 예정이란다. 식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보니 리디아가 혼자 발휘한 솜씨는 아닌 듯.“어머니랑 며칠간 어떤 폴란드 요리를 소개할까 고민했어요, 폴란드의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지만 마침 부활절이 다가와서 하얀 소시지와 계란을 넣은 전통 수프와 케이크 마주렉 등 부활절 음식을 준비했어요.” 직장 생활로 자주 요리를 하지 못하지만 어머니 솜씨를 물려 받아 자신도 요리를 잘한단다. 자신의 딸인 나탈리아도 만찬 준비를 할 때 음식 장식을 맡을 정도로 벌써부터 요리 실력을 발휘하고 있어 요리 솜씨는 3대째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 보드카의 원조는 폴란드 안제이 대사가 직접 폴란드의 술 보드카를 잔에 따라 주며 점심 식탁의 흥을 돋우었다. 놀라운 사실은 보드카의 원조가 러시아가 아니고 폴란드라고 한다. 그는 “러시아 대사도 보드카의 원조가 러시아가 아니고 폴란드임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이름을 갖고 있는 유명한 보드카 벨베도르도 사실은 폴란드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폴란드에서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다. 이날도 돼지고기에 말린 자두를 곁들인 요리를 선보였는데 고기와 과일의 만남이 독특한 맛을 냈다. 고기를 먹을 때 튀긴 메밀과 마른 버섯이 들어간 양배추도 나왔다. 이 절인 양배추는 우리의 김치처럼 폴란드의 식탁에 늘 오르는 메뉴다. 구운 자두를 폴란드산 베이컨에 돌돌 말아낸 요리도 무척 맛있다. 폴란드 돼지고기는 우리나라로 수출되기도 한다. 우리가 즐겨 먹는 삽겹살도 폴란드 산이 많다. 또 생선은 청어를 주로 먹는데 구이보다는 날로 먹는다고 했다. 폴란드의 EU 가입이후 요즘 유럽에서는 폴란드산 육류, 과일, 유제품 등이 인기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대사는 “최고의 자연 환경에서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소 먹이도 화학사료 대신 건초나 밭에 나는 풀을 먹여 키우다 보니 건강에는 정말 좋은 제품들”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리디아도 ‘건강 식단’에 신경쓰기는 마찬가지.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그녀는 폴란드에 있을 때 꼭 농부가 직접 돼지 등을 키우는 농가에 가서 고기를 사온다고 했다. # 한국음식은 예술이에요 리디아는 폴란드의 오랜 역사를 시작으로 아름다운 문화 유산, 쇼핑센터 등 폴란드를 소개하는데 너무나 적극적이다. 폴란드에서 나오는 과일만 해도 100여 종류가 넘고,200년 유서깊은 초콜릿 공장 등 폴란드의 자랑이 한없이 이어진다. 입고 있는 옷과 호박으로 만든 목걸이 세트도 폴란드 제품인데 무척 아름답다. 말린 자두가 들어간 초콜릿을 먹어봤는데 달콤 쌉싸름한 맛이 일품. 어머니가 자신과 손자를 위해 직접 폴란드에서 가져온 귀한 초콜릿이란다. 아버지를 똑 닮은 귀염둥이 아들은 자동차를 무척 좋아해 자동차가 많은 서울을 좋아 한단다. 지난해 8월 한국에 부임한 대사 가족은 벌써 설악산에만 세번 다녀올 정도로 한국 생활을 즐기고 있다. 다음 주는 안동 하회마을에 다녀올 계획이다. 시골의 논밭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는 엘쥐비에타는 “한국 음식은 예술”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 음식에도 홀딱 반했다.“동대문에서 가방을 3개나 샀다.”며 “동대문 시장은 쇼핑하기 정말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대사의 한국 부임 전부터 폴란드의 한국 식당에서 김치를 사 먹었다는 이들 가족은 시간 나면 비빔밥, 불고기, 만두 등 한국 음식을 먹으러 다닌다. 리디아는 폴란드 자신의 집에 큰 삼성전자 냉장고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앞으로 본국으로 돌아가면 “한국과 관계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대사부인이 엄선한 폴란드요리 6선 베이컨으로 말린 자두 재료:말린 자두, 베이컨 만드는 법:튀긴 베이컨으로 자두를 말고 이쑤시개로 꽂는다. 하얀 소시지와 계란넣은 전통 수프 재료:호밀가루 20g, 마늘 3조각, 빵 껍질, 설탕, 소금, 우유 0,5ℓ, 계란 만드는 법: (1)물 1ℓ물 끓인 후 식을 때까지 둔다. 캐서롤(돌솥밥과 비슷한 폴란드 냄비)에 호밀가루를 놓고 준비했던 물을 붓는다. (2)여기에 빻은 마늘, 소금, 설탕, 빵의 껍질을 넣고 천으로 덮어서 며칠 동안 따뜻한 곳에 보관한다. 며칠 후 여기에 물 2잔을 넣고 끓인 후 하얀 소시지와 계란을 함께 내놓는다. 양파와 사과를 넣은 청어 재료:청어 3마리, 필레 살 3개, 사과 2개, 양파 1개, 레몬, 신 크림, 설탕, 하얀 후추 만드는 법:(1)강판으로 사과를 간 후 간 사과 위에 레몬을 뿌린다.(2)사과를 그릇에 놓고 얇게 썬 양파를 넣는다. 신맛이 나는 크림을 첨가한 후, 설탕과 하얀 후추로 간을 맞춘다.(3)마지막으로 청어 필레 살(미리 물에 적시고)을 네모로 썰어 그릇에 넣어서 섞는다. 자두를 넣은 돼지고기 재료:돼지고기(등뼈부위)1kg, 말린 자두 150g, 여러 가지 양념(후추, 소금, 고추 등), 올리브유, 마늘 만드는 법: (1)돼지고기를 씻어서 가운데 칼집을 낸 후 그 안에 말린 자두를 넣는다.(2)돼지고기 위에 마늘과 양념을 뿌린다.(3)올리브유를 겉에 바른 후 알루미늄 포일로 싸서 냉장고에 12시간 정도 보관한다.(4)오븐의 온도가 180℃가 되면 준비했던 돼지고기를 넣고 1시간 반 정도 굽는다. 마른 버섯이 들어가는 절인 양배추 재료:양배추, 소금, 버섯 만드는 법: (1)절인 양배추를 냄비에 넣고 양배추가 잠길 정도로 물을 넣은 후 약한 불에 끓인다.(2)다른 냄비에서는 말린 버섯을 삶는다.(3)버섯이 부드러워지면 썰어서 양배추가 담긴 냄비에 넣고 계속 약한 불에 부글부글 끓인다.(4)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썬 양파를 볶은 후 밀가루를 넣고 볶는다.(5)(4)를 양배추가 담긴 냄비에 넣고 양념으로 간을 맞춘 후 몇 분 동안 부글부글 끓인다. 초콜릿소스를 넣은 케이크 반죽 재료:밀가루 250g, 버터 180g, 가루 백설탕 100g, 노른자 2 개, 소금 소스 재료:계란 4 개, 설탕 250g, 초콜릿 250g, 밀가루 120g, 호두, 아몬드, 건포도 만드는 법: (1)밀가루, 가루 백설탕, 소금, 버터를 같이 잘게 썬 후 노른자를 넣고 반죽을 만든 후 약 2 시간 동안 냉장고에 보관한다.(2)차가워진 반죽을 버터를 바른 오븐용 프라이팬에 편 후 오븐에서 반죽의 색깔이 노랗게 될 때까지 잠깐 굽는다.(3)계란 흰자와 설탕을 함께 넣은 후 거품이 날 때까지 빠르게 저어서 만든 소스 안에 미리 녹인 초콜릿을 넣은 후 계속 비비면서 밀가루를 넣는다.(4)다음에 잘 빻은 소스에 건포도, 빻은 아몬드를 넣고 비빈다. 이 소스를 약간 구운 반죽에 바르고 오븐에서 약 20분 정도 다시 굽는다.(5)식은 후 호두, 아몬드로 장식한다. ■ 폴란드는 동유럽국가중 소련의 스탈린에게 반기를 처음으로 든 나라다. 사회주의 국가시절에도 종교적으로 가톨릭교를 확고히 믿고 발전시켜 나갈 정도로 자존심 강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인 이후 경제적 발전을 꾀하고 있으며,EU 가입으로 다시 한번 경제적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토면적은 31만 2677㎢로 한반도 총면적의 약 1.5배에 달하고 인구는 3860만명으로 동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상당한 양의 광물자원과 농업자원도 보유하고 있다. 폴란드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인 수도 바르샤바는 ‘동유럽의 파리’로 불려질 정도로 동유럽에서 제일 가는 도시이다.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폴란드 출신 유명인사으로 세계적인 작곡가인 쇼팽,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라듐을 발명한 퀴리부인등이 있다. 노벨상을 받은 헨리 시엔키에비츠, 레이몬트, 체스와프 미와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폴란드 출신이다.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여자 학사가수 1호’ 김상희(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여자 학사가수 1호’ 김상희(2)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빨간 선인장’ 같은 서정적인 노래들과 더불어 김상희씨는 지극히 보편적인 소시민의 시각을 담은 경쾌한 노래들로 뭇 선남선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의 ‘3대 걸작 서민가요’를 보면 60년대 당시 청춘남녀의 이상향과는 사뭇 거리가 먼 캐릭터조차 따듯하게 감싸 안는다. 텁수룩한 얼굴이 나이보다 7∼8세 위로 보이지만 그래도 내겐 단 한 사람뿐이라는 ‘경상도 청년’, 단벌옷에 넥타이 두 개뿐인 서른한 살 노총각으로 주머니가 텅텅 비어 영화구경 한번 제대로 못할지언정 그래도 듬직하다고 치켜세우는 ‘단벌신사’, 행여나 장가간 게 아닐까 궁금할 정도로 나이 들어 뵈지만 그래도 내일 또 만나질까 기다려진다는 ‘대머리 총각’. 이렇듯 그의 노래는 당시 이상향의 주류에서 한참 비껴난, 일종의 ‘괄호 밖의 남자’들에 대한 따듯한 포용이 물씬 배겨 있다. 이뿐인가. 서울에는 어여쁜 아가씨가 많고 많지만 그래도 순박한 ‘울산 큰애기’가 제일 좋더라 하는 식의 삼돌이의 편지 내용은 또 어떤가. 이렇듯 단순명쾌하고 자신만만한 그녀의 메시지는 ‘만인의 연인’이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러한 범국민적인 지지로 그녀는 68년 ‘연예인 납세실적 1위’라는 전성기를 누린다. 가수 김상희에 대해 특히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70년을 전후해 여러 장르의 노래들을 시도했다는 점.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에서 타이틀 롤인 2대(代) ‘아랑’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고,‘성불사의 밤’ ‘그대에게 내 말 전해주’ 등을 담은 가곡음반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또한 작곡가 신중현씨와 손잡고 ‘어떻게 해’를 비롯,‘나만이 걸었네’ ‘파도소리’ 등을 담은 ‘사이키델릭 음반’을 취입하는 등 여러 장르의 노래들을 시도,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을 한껏 펼쳐보였다는 점이다. 이 즈음 그녀는 또한 ‘월드스타’로 도약한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각각 음반을 발표하게 된 것.70년, 일본에서 ‘EXPO 70’이 열릴 때 그녀는 우리 문화의 기수로 가수 패티김과 함께 파견, 도쿄에서 한 달간 ‘아리랑 페스티벌’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일본 측으로부터 음반 취입을 제의받는다. 이 여세로 세계적인 트럼펫 주자인 히노데루 마사와의 합동 리사이틀을 갖기도 했고 홍콩, 태국 등 해외공연과 더불어 미국 MGM과도 계약,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한국 대형가수의 세계무대로의 진출은, 오히려 국내에서 ‘한국가수의 월드스타 출현’이라는 기대와 맞물려 국내에서도 팝송만을 불러 취입, 수출용 음반을 출시하기도 했다. 김상희씨는 현재까지도 가수활동과 더불어 방송 진행자로도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녀 스스로도 가수 활동보다 ‘방송국 월급쟁이’로 지낸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할 정도. 어느덧 그녀는 ‘방송 진행은 옷 입는 것같이, 노래는 밥 먹는 것같이’한다고 토로한다.40년 가까이 하다 보니 그만큼 자연스러워졌다는 얘기다. 그녀가 방송 진행자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7년 KBS TV ‘당신의 멜로디’라는 쇼 프로그램. 당시로서는 여성 진행자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담당 PD가 방송이 잘 안되면 사표를 쓰겠다며 방송국 간부들을 설득했다. 그 PD가 바로 지금의 남편인 유훈근씨다. 유PD와는 이듬해인 68년에 결혼했다.4선 의원을 지낸 그녀의 시아버지 유청(柳靑)씨는 광복 후 한민당 전라도당 위원장을 지낸 유직양씨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인기 가수와 종갓집 7대손 장남이 결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남편 유훈근씨는 KBS PD로 일하다가 MBC에서 뉴스 앵커를 지냈다.79년 MBC 보도부 차장으로 근무할 때 정치와 인연을 맺게 된다.10·26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면복권 되면서 공보비서로 들어가게 된 것. 이 여파일까, 김상희씨는 5공화국 들어서면서 무대에 설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때문에 이화여대 옆에서 반평짜리 공간을 얻어 샌드위치 장사를 하기도 했다. 김상희씨는 연예인 봉사단체 ‘한마음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벌써 30여 년째다. 그래서 전국 각지의 노인 복지시설을 열댓 번쯤은 찾았다고 한다. 주로 남들이 잘 찾지 않는 무허가 시설 같은 데를 주로 가기 때문에 보통 방이 비좁아 악기도 겨우 전자오르간 하나만으로 노래를 해야 할 경우도 다반사. 그래도 돌아올 때는 다들 눈물을 흘리곤 한다. 가수 겸 방송인 김상희씨는 2004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당시 조선극장을 운영하는 상당한 재력가의 딸로, 그리고 4선 의원을 지낸 종갓집 7대손의 맏며느리로 결코 쉽지 않은 가수활동과 방송활동을 병행하면서도 늘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는 김상희씨, 그녀는 여전히 ‘만인의 연인’이자 ‘서민들의 변함없는 친구’다. sachilo@empal.com
  • 명문여고 옛언니·동생 관계

    명문여고 옛언니·동생 관계

    자가용 한대를 은퇴한 옛 교장에게 선사했다. 불난 모교 교사(校舍)신축기금을 수십만원씩 기부했다. 모교의 생활관 건립기금으로 4백만원짜리 적금을 붓고 있다. 어느 남자동창회들 얘기가 아니다. 근래에 여고(女高)동창생들이 끼리끼리 모여 만든 화제들. 다음은 그래서 수소문해 본 명문여고출신(名門女高出身) 아무개와 아무개 부인들. 꾸준하게 모이기는 배화(培花) 육(陸)여사는 언니와도 동기(同期) 여자들의 경우 출신(出身)과 동창(同窓)을 대학에서보다 여고(女高)에서 꼽는 것이 상례(常例). 「언니」,「그애」의 친밀한 대명사를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 못버리는 사이가 여고(女高)동창들이다. 「뭔지 모르게 서로 통하는게 있어서」통성명하고 출신을 캐 보니까 동창이더라고 여자들은 곧잘 무릎을 치면서 감탄한다. 아무리 그처럼「얘,쟤」하면서 모이는 사이라도『여자 셋만 모이면 시끄럽다』는 심술궂은 익살은 저리 가라고 엄청난 일을 척척 해 내고 있다면 통 큰 신사들도 조금은 놀랄 것이다. 은퇴한 교장 이세정 (李世禎)씨에게 진명여고(進明女高)동창생들이 자가용「코로나」1대를 선사한 것이 금년봄, 몇해전 경기여고(京畿女高) 구교사가 불탄뒤 경운회(慶雲會)(동창회)가 동창모금을 해서 교사신축을 도운 것이 2백여만원. 역시 금년봄 숙명여고(淑明女高) 동창회인 숙녀회(淑女會)의「올드·타이머」들이 돈을 모아 해방전의 친한국(親韓國) 일인(日人) 교장 야촌성지조(野村盛之助)씨를 초빙했었는가 하면 배화여고(培花女高) 동창회는 모교돕기 4백만원 적금을 붓고 있다는 소문. 여자들의 눈칫돈으로는 꽤 큰 액수. 모두 명문이니까 시집들을 잘 가서 그렇지 뭐냐고 한다. 배화동창(培花同窓)=우선 팔자지수(指數) 최고로는 작년 10월 70년 창립기념을 가진 배화(培花)를 들 수 있다. 해방전후만 하더라도 김윤경(金允經)씨를 비롯한 애국자들이 은둔생활 겸 교편을 잡던 여학교였기 때문에「미션·스쿨」다운「프라이드」가 있었다. 게다가 아내 최고의 좌(座)인「퍼스트·레이디」육영수(陸英修)여사를 배출한 학교. 육영수여사의 언니 혜수(蕙修)여사도 한살 차이의 동기동창생. 명부에도 나란히 적힌 자매(姉妹)였기 때문에도 유명하다. 1942년 16회인 이 동기들은 전부터도 꽤 열심히 모이는 열성동창들이었다. 알뜰히 기금(基金)을 마련해서 벽촌에 책보내기 운동도 22세부터 25년간 체신부에서 일하면서 공무국장(工務局長), 전기통신시험(電氣通信試驗)소장을 지낸 안동렬(安東烈)씨(며칠전 퇴임)의 부인 김영연(金英蓮), 보광(保光)「알미·사슈」사장 서정호씨 부인 남정길씨. 변호사 고병국(高炳國)씨 부인 김함득(金咸得)씨. 이들을 중심으로 한달에 한번씩 모이는 16회 동창들은 조그만 기금을 마련해서『어깨동무』등 아동잡지를 벽촌국민학교에 보내는 등 복지사업을 소규모 해 왔다. 『공직생활이 시작된 뒤로는 오히려 만날 틈이 없는「퍼스트·레이디」지만 동기생(同期生)의「프라이드」가 그런 보람 있는 일을 찾게 한다』는 한 동창의 얘기. 「올드·타이머」로서 15년전 동창(同窓)교장추대의 움직임까지 있었던 장화순(張和順)씨는 쌍용양회회장(雙龍洋灰會長) 조병준(趙炳俊)씨 부인. 김성곤(金成坤)씨 장녀(長女)와 임송본(林松本)씨 3녀(女)를 며느리로 맞는 다복한 노부부(老夫婦)로 알려져 있다. 김상돈(金相敦)씨 부인 김자혜씨가 장화순씨와는 비슷한 또래의 노장파「엘리트」들. 이호(李澔)법무장관 부인 성낙은(成樂恩)씨 외국어대학(外國語大學)이사장 김여배(金與培)씨 부인 이옥경(李玉慶)씨. 작곡가(作曲家) 김순애(金順愛)씨. 정경화등 음악자녀를 키운 어머니 이원숙(李元淑)씨. 한국민예사(韓國民藝社)여주인 견덕균씨. 의학박사 장재섬(張在暹)씨. 황진주씨. 동창회장 박종옥(朴鐘玉)씨는 낙사회(樂師會)부녀부장. 중앙여중교장 김두원(金斗媛)씨 이들 모두가 쟁쟁한 배화50대(代)다. 문단(文壇)주변에서 배화는 드문 명문으로 꼽히는데 여류(女流)의 중진 장덕조(張德祚)씨가 배화출신인 것을 큰 자랑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명문다운 모습은 문예(文藝)쪽에도 뚜렷하다. 7월초 주부「클럽」의 초대 신사임당상을 받은 서예가(書藝家) 이철경(李喆卿)씨와 그 동생이며 역시 서예가인 이미경씨가 배화출신이다. 한전(韓電)부사장 진의종(陳懿鍾)씨 부인 이학(李鶴)씨도 자신의 서도(書道)로 이름이 알려졌다. 여담이지만 신사임당 본상(本賞)뿐만 아니라 장기(長技)백일장의 수필 서도부문 수상자들까지 배화출신이었다. 수상식(受賞式) 다음날 청와대 초청「파티」에서 육여사는 그것을 무척 흐뭇해 했단다. 외환은행장(外換銀行長) 홍승희(洪升熹)씨 부인 서귀숙(徐貴淑)씨. 상은(商銀)이사 강정한씨 부인 이설자(李雪子)씨. 장경순(張坰淳)국회부의장인 문순자(文順子)씨. 논산훈련소장 박남표(朴南杓)소장 부인 이송자(李松子)씨도 배화출신. 경기(京畿)출신엔 학자가 많아 박사 백여명중 30여명이 경기동창(京畿同窓)=똑똑하고「프라이드」높은 것이 자타공인(自他共認) 사실도 돼 있는 경기출신.『딸은 자랑하고 싶어서 경기 보내지만 며느리는 콧대가 높아서 경기를 피한다』는 속설(俗說)이 예비 시어머니들간에 떠돌 정도다. KS라는 별명으로 서울대학과 붙어 다니는 이름이 경기니까 그런 말들은 본인들의 자존심을 충족시킬지언정 조금도 상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짭짤한 여류학자들을 꼽아보면 거의가 우리 동창 아냐!』라고 자랑한 한 경기출신 여교수의 학계(學界)「리스트」부터 추려보면 배정현(裵廷鉉)씨의 부인이고 숙대가정대학장 농학박사 김삼순(金三淳)씨. 일본체류중인 수학박사 홍임식씨. 최근에 귀국한 농학박사 이미순(李美淳)씨. 부부박사로 3년전 재국당시「매스·콤」의「탤런트」가 되다 시피했던 정치학박사 이범준(李範俊)씨. 윤일선(尹日善)씨의 따님인 사회학박사 윤은구(尹恩球)씨. 아무튼 알려진 여자박사 1백명중 3분지 1인 30여명이 경기여고 출신이라는 숫자가 동창회 명부에 올려져 있다. 이대의 이춘란(李春蘭)씨. 이남덕(李男德)씨. 안인희(安仁姬)씨. 나영균(羅英均)씨. 김세영(金世永)씨등의 실력파교수들. 서강대(西江大)의 김인자(金仁子)씨. 서울대에서는 농대(農大)의 김번옥씨. 사대(師大)의 현기순(玄己順)씨. 중앙대(中央大)의 윤서석(尹瑞石)씨. 서울여대학장이고 대한어머니회 회장인 고황경(高凰京)씨. 성신여사대 부학장 조기흥씨. 창덕(昌德)여고교장 현병진씨. 서울여중교장 최정현씨. 동대분여중교장 김영옥씨. 서울시 장학사 김정애씨. 전 보사부 부녀국장 주정일(朱貞一)씨. 미모의 여류작가 강신재(康信哉)씨. 예능(藝能)과 미모로 이름난 오위영(吳緯泳)씨의 딸 자매들 정주(貞珠) 덕주(悳珠) 현주(賢珠) 제씨가 나란히 경기출신. 실력파「디자이너」「노라·노」씨는 경기라는 딱지가 금상첨화 격의 위광(威光)이며 그가 키워 낸 후배 「디자이너」박충정(朴充貞)씨는 여고후배이기도 하다. 방향을 남편쪽으로 돌리면 체신부장관 김태동(金泰東)씨 부인 이재원(李宰遠)씨. 재무부차관 정소영(鄭韶永)씨 부인 박재옥씨. 외무부차관보 황호을(黃鎬乙)씨 부인이며「피아니스트」인 정영자씨. 차일석(車一錫) 서울시부시장 부인 백영자(白英子)씨. 지금은「카메라」의 초점에서 빗나간 왕년의 인물중에는 송요찬(宋堯讚)씨 부인 권영각(權寧珏)씨가 있고 김유택(金裕澤)씨 부인 박흥덕(朴興德)씨. 전상공부(前商工部)장관 이병호(李丙虎)씨 부인 한경선씨. 전재무부장관 천병규(千炳圭)씨 부인 박용주씨. 前문교부장관 현 고대교수 김상래(金相淶)씨 부인 김인숙씨. 이재학(李在鶴)씨 부인 이정수씨. 장도영(張都暎)씨 부인 백정숙(白亭淑)씨가 있다. [ 선데이서울 69년 8/10 제2권 32호 통권 제46호 ]
  • “詩의 대중화를 위한 마지막 봉사”

    시인 오세영(64·서울대 국문과 교수)은 스스로를 “문단에서 외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얼핏 자조적으로 들리는 고백의 밑바닥에는 그러나 이념이든, 시적 경향이든 지금껏 어떤 시대 조류에도 휩쓸리지 않고 홀로 제 갈 길을 걸어왔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다. 최근 내놓은 열다섯번째 시집 ‘문 열어라 하늘아’(서정시학)의 맨앞에 실린 ‘서시-자화상’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전신이 검은 까마귀,/까마귀는 까치와 다르다./…/그대 차라리 눈발을 뒤지다 굶어죽을지언정/결코 까치처럼/인가(人家)의 안마당을 넘보진 않는다./…/나는/빈 가지끝에 홀로 앉아/말없이/먼 지평선을 응시하는 한 마리/검은 까마귀가 되리라’ 그런 그가 지난 25일 제35대 한국시인협회장에 취임했다. 시협은 1957년 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신석초 등이 문학의 자립성과 순수성을 위해 결성한 단체로 현재 1000여명의 회원이 있다.“대학교수로 35년 재직하면서 보직 한번 맡지 않을 정도로 감투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그가 선선히 이 자리를 떠맡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1968년 당시 시협 회장이었던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고,86년 김춘수 시인이 회장었을 때 사무국장을 맡아 ‘시의 날’(11월1일) 제정을 주도하는 등 시협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 “인덕도 모자라고, 능력도 부족하지만 마지막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시협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2년 임기 동안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국토순례 시낭송회, 애향시 창작운동을 비롯해 전임 회장이 추진하던 시비(詩碑)공원 조성 등 시의 대중화에 중점을 둘 방침이다. 또 내년 시협 창립 50주년을 전후로 대대적인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그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순수 민간단체이다 보니 지금부터 기업협찬을 받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녀야 할 판”이라며 웃었다. 196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시간의 쪽배’ 등을 통해 ‘동양사상과 모더니즘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시세계를 추구해온 그는 최근 국토사랑을 담은 시에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재작년 체코 프라하에 머물 때 작곡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가 작품을 통해 국토사랑을 드러낸 것에 새삼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최근 시 전문지 ‘현대시’에 우리 산과 강, 문화유적의 아름다움을 담은 시를 연재하기 시작한 그는 “그동안 국토사랑을 표현한 시는 행사용 작품이나 어용시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제 예술시로서 국토사랑을 드러내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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