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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너를 잊은 지 오래/박찬구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너를 잊은 지 오래/박찬구 정치부 차장

    다시 선거의 중심에 사정(司正) 칼날이 섰다. ‘비리 척결’이라는 명분에야 옳고 그름을 따질 일이 아니다. 반대파를 옥죄려는 ‘선거용 기획 수사’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기우(杞憂)는 현 국면의 엄중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라며 민주주의를 외치던 1980년대의 암울한 단상들이 최근 몇년 사이 우리 주변에서 또 다시 음습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이기면 그뿐’이라며 오로지 1등만 기억하는 성과 지상주의가 권력과 일상의 곳곳에서, 힘겹게 지켜온 절차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퇴행시키고 있다. 공직자 비리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현 여당이 지방자치단체장을 거의 싹쓸이한 뒤, 견제 없는 독주(獨走)의 비리와 부패는 끊임없이 불거졌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지역의 야당 구청장·구의원 예비후보들이 ‘깨끗한 마을에서 살고 싶다.’, ‘지방자치를 올바르게 감시할 깨끗한 후보를 뽑아달라.’고 홍보용 명함에서 호소할 정도다. 비리와의 전쟁 선언이 ‘왜 하필 지금이냐.’라는 의문과 반발에 시선이 가는 까닭이다. 검찰을 비롯해 사정기관의 ‘막가파식’ 충성 경쟁이 무리한 한건주의를 부를 수 있고, 반대파 후보들이 유·무형의 정치적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야권의 정권 중간평가 목소리가 묻힐 수도 있다.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니다.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한나라당의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 경쟁에서 여권 중진 두 사람이 각각 다른 후보를 밀며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친박계가 공천지분 협상에 대비해 자파 성향의 후보 리스트를 전국적으로 작성하고 있다.”, “지난 공정택 교육감 선거에서 권력 핵심의 관심이 높아 모 기관이 청와대에 일일 보고를 올렸다.” 여권의 언저리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천박한 자화상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외침은 헌법이나 촛불에서나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현실의 권력은 여권 중진에게서 나오고, 계파 정치에 좌우되고, 집권 세력의 의도대로 행사되고 있다. 상식과 원칙대로라면, 지방선거의 권력은 지역 주민의 생활에서 나와야 마땅하다. 약자(弱者)의 복지와 환경의 가치, 작은 일자리, 지역 문화를 아우르는 생활공약과 생활정치가 권력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그래도 시·군 단위에서는 예비후보로 나선 정치신인들이 종전 선거 때보다 생활 밀착형 공약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선거 현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한 정치 전문가의 전언(傳言)이다. 권력 놀음에 빠진 중앙 정치권이 풀뿌리 현장의 정치 수요를 채워주기는커녕 오히려 왜곡하고 있는 꼴이다. 정치는 대세(大勢)보다 대의(大義)라 했다. 대의가 최선의 가치다. 대의를 잃고는 아무리 대세라도 명분을 얻을 수 없다. 힘든 싸움에서도 대의를 지켜내면 한순간의 패배는 위대한 승리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 출발점은 선거와 투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게 대수가 아니다. 지더라도 대의를 지키는 게 정책정당의 본질이며, 더 나은 정치로 나서는 첫걸음이다. 수(數)와 세(勢)를 앞세우고 정략과 정치공학에 빠져 풀뿌리 선거를 난도질할 일이 아니다. 부패와 비리를 뿌리뽑겠다면서 무리한 기소를 남발하고 저급한 여론재판을 일삼는 행태를 되풀이한다면, 결국엔 패배보다 더 큰 시련과 심판에 부딪힐 것이다. 명분도, 가치도 상실한 공천 다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정당에는 미래도, 개혁도 기대할 수 없다. 기득권과 지분에 매달려 살아남기에 급급한 정파와 정당은 감동도, 희망도 남기지 못한 채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잊어야 할 건 되살아나고, 지켜야 할 건 잊히는 퇴행과 탁류의 정치 현실이다. ckpark@seoul.co.kr
  • [사설] 외신 한국비하 불쾌하나 자성도 필요하다

    일부 외신 기자들이 한국을 비하하는 행태를 보여 우리 국민들을 불쾌하게 했다. 일국의 경제부처 수장에게 룸살롱을 문제삼는 저질 질문을 하고, 그 중 한 기자는 외신 대변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는 수모에 가까운 봉변이자 우리 국민들에게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모욕적인 행동이다. 이들이 공개적으로 내뱉은 ‘룸살롱’ 질문은 주제와 동떨어져 한국을 깎아내리려는 악의가 다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원인 제공을 한 측면이 한치도 없느냐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에반 람스타드 기자는 한국 여성의 사회 참여가 저조한 원인을 룸살롱으로 돌렸다. 한술 더 떠 룸살롱에서 재정부 직원들이 기업체 접대를 받는다는 말을 확인된 사실처럼 내놓았다. 윤 장관이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반박함으로써 황당 질문을 피해간 것은 다행스럽다. 그 기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욕설까지 했다. 재정부가 그에게 공보 서비스를 중단하고 본사에 항의 서한을 보내기로 한 것 역시 이해되는 조치로 보여진다. 그는 지난번에도 욕설을 했다가 사과 편지를 쓴 전력이 있는 만큼 두 번은 덮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람스타드와 또 다른 기자가 룸살롱 질문을 한 것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생산적인 게 아니다. 그들이 지적한 사안들 가운데 우리가 자성할 대목들이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여성의 사회 참여 문제만 해도 비경제 활동 여성이 1042만명을 넘었다. 룸살롱은 한국식 접대문화의 상징이 돼버렸고, 그래서 치부이자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순기능도 있지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끼치는 해악은 적지 않다. 낮은 보수를 받는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다. 그들이 일터로 가기를 주저케 한다. 외신 기자들이 한국의 역사나 문화, 경제 등에 대해 소상히 알기는 쉽지 않다. 때로는 인종적 편견이나 개인적 오해로 냉소적인 보도를 내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수록 정부는 외신 기자들의 한국 바로알기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대처하면 된다. 아울러 그들이 비웃는 여성 차별 문제를 포함해 접대문화 등도 수준이 격상될 때 선진 국격을 갖출 수 있다. 이번 일을 성찰의 계기로 삼자는 어느 정당의 논평이 와 닿는다.
  • [2010 한국여성 자화상] 女 대학진학률 첫 男 추월…

    [2010 한국여성 자화상] 女 대학진학률 첫 男 추월…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사상 처음으로 남학생을 추월했다. 최근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 진출과 더불어 외무고시 합격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여성 돌풍’이 급기야 대학 진학률에서 성별 역전 현상을 몰고 왔다는 분석이다. 7일 통계청의 ‘2009 한국의 사회지표’에 실린 교육통계에 따르면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지난해에 82.4%로, 남학생의 81.6%보다 0.8%포인트 높았다.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1986년에는 32.6%로 남학생에 7.1%포인트나 떨어지는 등 격차를 보여오다 20년 후인 2006년부터 1.8%포인트, 2007년에는 1.0%포인트, 2008년에는 0.5%포인트 등으로 격차를 좁혀왔다. 한편 1990년 이후 계속 높아지던 고교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처음으로 하락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81.9%로, 2008년의 83.8%에 비해 1.9%포인트 떨어졌다. 일반계와 전문계고를 포함한 초중등학교법상 고교 졸업자 중 전문대학, 4년제 일반대학, 교육대학 등의 진학자 비율인 대학 진학률이 떨어진 것은 1990년 이후 처음이다. 대학 진학률은 높은 교육열로 1994년에 45.3%로 40%대에 올라섰고 1995년에 51.4%, 1997년에 60.1%, 2001년에 70.5%, 2004년에 81.3% 등으로 빠르게 상승해 왔다. 대학 진학률은 1990년과 1991년에 각각 33.2%, 2005년과 2006년에 각각 82.1%로 전년 수준을 유지한 적은 있지만 1990년 이후 떨어진 적은 없었다. 대학 진학률이 갑자기 떨어진 것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시적 현상인지 또는 과도할 정도로 높아진 대학 진학률이 정점을 치고 떨어지는 추세로 돌아선 것인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2009학년도 대입이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제가 갑자기 어려워진 시기에 이뤄졌기 때문에 경제적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뜨거운 교육열을 감안하면 꼭 경제적 요인이라고 못박기도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한국교육개발원 박재민 유초중등통계팀장은 “경제적 이유 등 꼭 어떤 것 하나를 원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면서 “고교별로 진학 학생에 관한 군집 정보를 받기 때문에 진학률 하락 이유를 제대로 알려면 학교 단위의 의견을 들어보거나 더 깊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반계고의 대학 진학률도 2008년의 87.9%에서 지난해에는 84.9%로 3%포인트나 떨어졌다. 반면 전문계고의 진학률은 72.9%에서 73.5%로 오히려 높아졌다. 전문계고의 대학 진학률은 2000년에는 42%로, 당시 일반계고(83.9%)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으나 최근 몇년 사이에 급격히 높아졌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2010 한국여성 자화상] 비경제활동 인구 사상 최대

    [2010 한국여성 자화상] 비경제활동 인구 사상 최대

    지난해 여성 비경제활동인구가 1042만명으로 사상 최다 수준을 기록했다. 여성들이 경기침체로 인한 고용 한파에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또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은 남성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했는데 특히 여성 비임금 근로자가 큰 타격을 입었다. 노동부가 7일 발표한 ‘2009년 여성 고용동향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비경제활동인구는 전년보다 28만 6000명 증가한 1042만명이었다. 이는 1962년 관련 통계가 처음 작성된 이래 최대치다. 남성 비경제활동인구(527만 8000명)보다는 갑절이나 많은 규모다. 비경제활동 사유로는 육아와 가사가 67.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구직 단념자도 전년보다 34% 늘어 6만 3000명에 달했다. 지난해 여성 경제활동참가율(49.2%)은 전년에 견줘 0.8%포인트 하락했고 고용률(47.7%)은 1%포인트 떨어졌다. 같은 기간 남성 경제활동참가율 및 고용률 하락률은 각각 0.4%포인트, 0.8%포인트로 상대적으로 낙폭이 적었다. 여성 취업자 수도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 지난해 여성 취업자는 전년보다 1%(10만 3000명) 감소한 977만 2000명이었다. 반면 남성 취업자수는 3만 1000명 증가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여성 취업자 중 비임금 근로자는 전년보다 19만명 줄었는데 그 중 자영업자가 11만 9000명을 기록해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 근로자는 오히려 8만 7000명 늘었다. 임금근로자 대비 임시·일용직 비중은 여성이 56.1%로 0.9%포인트, 남성(33.3%)은 1.9%포인트 빠졌다. 여성 실업률은 0.4%포인트 상승한 3%로 0.5%포인트 오른 남성(4.1%)보다 낮았다. 이재갑 노동부 노동시장정책관은 “지난해 고용한파가 덮치자 임금근로여성들은 기업들의 일자리 나누기 정책 등을 통해 계속 고용됐으나 비임금근로여성들은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 자영업은 과잉상태로 2006년 이후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지난해 경기침체와 맞물리면서 이 분야의 일자리 사정이 더욱 악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동부는 고용취약계층인 여성들에 대한 일자리 제공을 위해 올해 고용지원센터와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160만명에게 취업 알선 및 직업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또 여성의 경력단절을 줄이기 위해 여성친화적 일자리를 확산시켜 나갈 방침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2010 한국여성 자화상] 서울여성 月임금 210만원… 男의 64%

    서울 여성 2명 중 1명은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경제활동에 참여해도 임금은 남성의 3분의2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서울시가 ‘세계 여성의 날’(8일)을 맞아 발표한 ‘통계로 보는 서울 여성의 오늘’에 따르면 서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8년 기준 51%로 남성의 73.7%보다 크게 낮았다. 경제활동 참가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도 여성의 경우 25~29세로 40~44세인 남성과 대조를 이뤘다. 서울 경제활동 참여자의 월평균 임금은 2007년 상반기 기준 285만 3251원이다. 이 가운데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210만 4158원으로 월평균 325만 3741원을 받는 남성보다 114만 9583원 적었다. 이를 임금비로 환산하면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의 64.7% 수준이다. 또 지난해 기준 서울 여성은 전체 서울 인구의 50.5%를 차지하고 있다. 65세 이상 여성 노령 인구는 68.8%로 남성(47.2%)보다 훨씬 높고, 노령화 속도도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29.3세로 10년 전보다 2.5세 상승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시·소설을 화폭에 담았더니…

    시·소설을 화폭에 담았더니…

    ‘네게 좆이 있다면/ 내겐 젖이 있다/ 그러니 과시하지 마라/ 유치하다면/ 시작은 다 너로부터 비롯함일지니’ 김민정(34) 시인의 시 ‘젖이라는 이름의 좆’은 ‘6’과 ‘9’가 그려진 하트 카드를 드는 변웅필(40) 화가의 자화상으로 재탄생했다. 미술과 문학이 만난 크로스오버 전시회 ‘그림에도 불구하고’ 전이 5일부터 4월1일까지 서울 삼성동 인터알리아에서 열린다. 문학과 미술의 만남은 역사가 깊다. 시인 이상과 화가 구본웅은 초상화를 그려줄 정도로 절친한 친구였고,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와 단순히 영감을 주고받는 관계를 뛰어넘는 사이였다. 가깝게는 소설가 박완서와 화가 고(故) 김점선이 작업실을 함께 쓰며 서로 격려하기도 했다. ●예술관에 대한 열띤 토론도 ‘그림에도’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대부분 30대로 비슷한 나이 또래다. 시인과 소설가에게 화집을 주고 작품으로 쓰고 싶은 작가를 고르라고 한 뒤에 화가는 선택받은 문인의 작품을 읽고 오마주하는 그림을 그렸다. 이들은 서로의 예술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 내용은 ‘그림에도 불구하고’(문학동네)란 제목으로 전시 시작에 앞서 출판됐다. 시인 김민정은 화가 변웅필에 대해 4일 “변을 그리지만 그렇다고 변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10여차례 개인전을 연 변웅필은 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화상만을 그렸다. 얼굴에 테이프를 붙이고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등 다양한 형태의 자화상을 그리는 변웅필이 그 자신을 그리지만 본질이 화가의 얼굴만이 아님을 시인은 단숨에 꿰뚫었다. 변웅필은 “김민정 시집을 화장실에서 두 달 동안 읽었다.”며 “도발적이고 할 말을 다 한다.”고 평했다. 협업을 위해 몇 번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자신의 작품을 보고 쓴 김민정의 시를 읽고 나서 “글쟁이, 민정이, 멋쟁이!”란 문자 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그의 시 세계에 반했다. 시인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인 만큼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인터넷에서 찾아볼 정도로 특별히 유의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적 동지가 된 화가와 작가는 윤종석-이원(시인), 이길우-김태용(소설가), 이상선-신용목(시인), 정재호-백가흠(소설가)이 있다. ●“현대미술 이해 도우려 기획” 전시를 기획한 아트 매니지먼트 ‘유니언’의 박준헌 대표는 “현대미술이 대중에게 넓게 이해되고 쉽게 다가갔으면 하는 생각에서 전시를 기획했다.”며 “모두 글을 읽을 수 있으니까 문학이 시발점이란 생각에서 문학과 미술의 만남을 꾸몄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인과 화가는 서로에게 결핍 같은 것이 있는데 문학과 미술이 산업화하면서 교류가 줄었다.”며 “문인들이 뜻밖에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아 소설과 시에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빌리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시인 이원은 학생들에게 시작법을 가르칠 때 정형화된 시보다는 화가들의 짧은 작업 노트를 주고 수업을 한다고 한다. 모든 예술가는 똑같은 고민을 하는데 하나는 결과물이 글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림일 뿐이란 생각에서다. (02)3479-0114.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세월을 비켜간 詩心이 머무는 곳… 시인의 계절, 靑春

    세월을 비켜간 詩心이 머무는 곳… 시인의 계절, 靑春

    카메라를 지그시 바라보는 청년 김규동과 노시인 김규동(85), 두 시선에는 한치의 다름도 없다. 동그스름한 얼굴로 웃음지을듯 말듯한 입가와 눈매는 앳된 김남조나 지금의 김남조(83)나 고운 그 시절 그대로다. 단지 60년의 세월을 건넜을 뿐이다. 영원한 청춘의 믿음에서인가. 이제 갓 시인의 이름을 얻은 이길상(38·2010 서울신문 신춘문예)이 자신의 70세를 떠올리며 그린 자화상은 주름 한 줄 그리는 데도 인색하다. 강윤미(30·2010 문화일보 신춘문예)의 자화상에도 늙음을 찾기 쉽지 않다. 불과 30~40년 뒤에 닥칠 일인데도 말이다. 최근 발간된 계간 문예지 ‘문학청춘’ 봄호가 등단 50~60년을 훌쩍 넘긴 노시인들과 이제 막 등단해 가슴 한껏 부풀어오른 젊은 시인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부르는 청춘송가(靑春訟歌)를 두툼히 펼쳤다. 여든을 훌쩍 넘긴 노시인들도 그 시절 곱디고운 청춘이었다. 그러나 노시인이 돌이켜보는 청춘은 단순한 회한이나 예찬만은 아니다. 김규동은 ‘…/너는 어디 갔다 지금 오냐/ 옛날은 벌써 온데간데없이 되었다/ 그런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을 것을/’(‘청춘은 번개처럼’ 중)이라면서 대자연의 강물이 흘러가고, 번개가 내리치듯 지나가버린 청춘을 되짚었다. 김남조 또한 ‘…/ 독 묻은 버섯처럼 곱고 슬프게 눈떠 있을/ 네게 못다 준 목숨의 말 한 마디//’(‘남은 말’ 중)라며 지혜의 전승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 김광림(81), 김규태(76), 김종길(84), 문덕수(82), 박희진(81), 성찬경(80), 이생진(81), 조영서(78) 등 원로 시인들이 노래하는 청춘의 시편도 실렸다. 청춘의 복판에 있는 시인들 역시 같은 주제로 시를 썼다. 이길상의 ‘물방울 꽃’이나 강윤미의 ‘올랭피아 여관’, 김성태(24·2010 한국일보 신춘문예)의 ‘우주 저물어 가는 시간’ 등 10명의 젊은 시인들이 돌아보는 청춘은 여전히 불안과 격정, 또 다른 삶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채워져 있다. 늙음과 젊음의 경계는 따로 없다. 이미 겪었거나 아직 가지 못한, 다름만이 있을 뿐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학교체육법안 부결… 野 반발 퇴장

    여야가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까지 무책임과 상호 불신의 자화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2일 본회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경남 창원시 통합 및 지원 특례법 등이 우여곡절 끝에 처리되면서 한때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29번째 안건인 학교체육법안의 부결과 민주당의 퇴장으로 본회의는 의사정족수 미달로 두 시간 남짓 만에 중단됐다. ●민주 “합의 위반”… 한나라 “무책임”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학교체육법안은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학교의 장이 행정적·재정적으로 지원해 학생의 체력을 증진하고 학생선수의 학습권과 인권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법안 내용이 아닌 처리 과정이었다. 안 의원이 제안설명을 마치자마자, 같은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인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이 반대토론에 나섰다. 박 의원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절차상 심각한 하자와 법안 내용상의 문제 및 실효성 미비 등으로 인해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이 법안은 시급하지도 않고, 교과위 법안심사소위와 상임위 심의·의결 과정도 정상적으로 밟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법안이 지난해 말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과 연계되면서 충분한 심의 없이 졸속 처리됐다는 설명이다. 지방자치교육법이 교육의원 직선제를 폐지하고 비례대표제로 전환하는 내용으로 법안소위에서 만장일치로 합의됐다가 민주당의 반발로 ‘일몰제’로 처리된 데 대한 불만을 드러낸 셈이다. 결국 박 의원의 반대토론 뒤 이어진 표결에서 재석의원 159명 가운데 찬성 52명, 반대 74명, 기권 33명으로 학교체육법안은 부결됐다. 그러자 민주당이 “여야 합의 위반”이라며 반발, 본회의장을 나가버렸다. 본회의가 정회되자 여야는 각각 의원총회를 열고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민주당은 “여야 간 의사일정과 의안상정에 대한 신뢰를 깨는 행위”라면서 “더 이상 의사일정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본회의 거부 방침을 정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원내대표들끼리 처리를 합의한 쟁점 법안이 아니라 일반 법안이 의원들의 자유토론을 통해 부결된 것을 두고 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하면서 민생법안을 뒤로 한 채 퇴장한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 가까스로 통과 한나라당은 오후 8시에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민주당을 뺀 다른 야당의 도움을 얻어 본회의 속개를 시도했다. 그러나 90여명만 참석해 30분 만에 의총을 마쳤고, 본회의는 정족수 미달로 자동 유회됐다. 민주당은 야5당의 요구로 소집된 3월 임시국회에서 이날 처리하지 못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의사일정에 응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한편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선거구가 652석으로 확정되고 지방의원의 여성공천이 의무화됐다. 여야가 합의해 놓고도 한 달 가까이 처리하지 못했던 개정안은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 등 34명이 문제가 된 수정안을 철회하면서 가까스로 통과됐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류현경, ‘섹시’ 향단에서 10대 여고생으로

    류현경, ‘섹시’ 향단에서 10대 여고생으로

    배우 류현경(27)이 영화 ‘방자전’의 섹시한 향단이에 이어 ‘개 같은 인생’의 10대 여고생으로 분한다. 류현경은 ‘개 같은 인생’에서 18세 고등학생 김진숙으로 출연해 실제 나이보다 무려 10살 가까이 어린 캐릭터를 연기하게 됐다. 그는 “‘개 같은 인생’은 과격한 영화 제목과는 다르게 한 소년의 관점을 통해 전개되는 한 가족의 이야기”라고 영화를 설명했다. 극중 캐릭터가 원래 나이보다 훨씬 어린 10대 소녀라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는 류현경은 “하지만 시나리오가 마치 소설 책 한 권 같은 탄탄한 구성을 갖고 있는 것에 매료됐다. 꼭 출연하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고 밝혔다. ‘개 같은 인생’은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을 지낸 노홍진 감독의 첫 데뷔작으로, 1980년대 한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본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그린다. 류현경 외에도 연기파 배우 안내상과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한효주의 자폐아 동생을 연기한 아역배우 연준석이 출연한다. 6월 개봉을 목표로 ‘개 같은 인생’의 촬영을 진행하고 있는 류현경은 이에 앞서 올 상반기 개봉 예정인 ‘방자전’에서 춘향 조여정의 라이벌로 재해석된 향단이를 먼저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 = 엠지비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1등 지상주의/노주석 논설위원

    1989년에 개봉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한국영화는 입시에 찌들어 꿈을 잃고 방황하던 당대 학생들의 자화상이었다.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이미연과 김보성이 데뷔한 이 영화는 1등을 놓치지 않던 한 여학생이 한순간의 연애사건으로 성적이 떨어지자 투신자살한다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줄거리였다. 영화제목은 지금도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을 대변하는 관용구로 쓰이고 있다. 요즘 인기 절정의 드라마 ‘공부의 신’은 공부 못하는 꼴찌들에게도 인생역전의 기회를 주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방송국 측은 설명한다. 그러나 공영방송에서 노골적으로 1등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만화가 미타 노리후사의 만화 ‘꼴찌, 도쿄대 가다’를 원작으로 일본 TBS에서 2005년 방영한 작품의 리바이벌이다. 방영 당시 도쿄대 지원자가 12%나 늘어나는 반향을 일으켰다. 1등주의 비판에 대해 원작자는 “합격 여부보다 노력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며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작품을 옹호했다. 실제 드라마를 보는 아이들은 과정보다 결과에만 집착하는 게 현실이지만. 글로벌 1위 자동차기업 도요타의 사상 최대 리콜사태와 관련,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원인은 1인자의 자만심이었다. 도요타식 혁신을 강조하는 CEO로 유명한 김쌍수 한전 사장은 “혁신보다는 자만이 문제였다. 1등이라고 자만할 때 문제가 생긴다.”라고 분석했다. ‘영원한 1위는 없다.’라는 평범한 진리의 재확인이라고나 할까.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나서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앉아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선을 지켜봤다. 우리 선수 중 한 명이 금메달을 딴 건 좋았지만 차마 못 볼 장면을 보고 말았다. 메달 욕심에 자리다툼을 한 우리 선수 2명의 충돌은 예선경기 내내 선수들 칭찬을 아끼지 않던 어른들의 입을 다물게 하였다. 어부지리로 은메달을 목에 건 더티플레이의 대명사 오노가 얄미웠지만 탓할 처지가 아니었다. 급기야 일부에서는 국내 쇼트트랙 파벌의 역사까지 들먹거린다. 인터넷에는 특정 선수의 이름을 지칭하면서 비난하는 글이 떠돌고 있다. 한국체육대학 출신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떻다는 말인가. 어찌 어린 선수들을 탓하랴. 이 모든 것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은메달 따면 고개 숙이고 우는 세상을 만든 우리 어른들의 잘못인 것을.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쓰·레·기 소비사회의 씁쓸한 자화상

    저는 쓰레기입니다. 이태 남짓 전 한 개그맨이 입술을 씰룩거리며 “이런, 슈레기”라며 가리켰던 ‘인간 쓰레기’가 아니라 진짜 쓰레기입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다 보니 많은 것을 봅니다. 길가에 나뒹구는 신문지 한 조각, 빈 포장 박스 줍고서 흐뭇한 웃음 짓는 할머니의 굽은 허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쓰레기통에 처박힌 살 부러진 우산 고쳐 쓰고, 다리 하나가 없어 구박 덩어리로 내버려진 책상에 새 다리를 달아주던 재주많은 손도 또렷이 기억나네요. 옷 기워가면서 계속 물려 입던 의좋은 다섯 형제도 잊을 수가 없네요. 하지만 따스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대형마트 식품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유통기한 지난 야채, 과일 등의 음식물, 위생적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하고 있는 종이컵과 일회용 도시락 등이 저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인간사회에서 ‘효율성과 위생성’이라는 두 단어가 쓰이더군요. 그리고 이 단어들은 현대 사회의 쓰레기 양산에 대해 개개인들이 짊어져야 할 도덕적 부담감을 말끔히 씻어내줬죠. 아무튼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헌데 저의 수고를 대신해 쓰레기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한, 우리 쓰레기 집안의 족보와도 같은 책이 나왔어요. ‘낭비와 욕망’(수전 스트레서 지음, 김승진 옮김, 이후 펴냄)이랍니다. 참 고마운 일이죠. 제목이 너무 묵직하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어요. 부제가 ‘쓰레기의 사회사’인 만큼 재미있는 역사책 읽듯 읽으면 될 거예요. 이 글을 쓴 수전 스트레서 교수는 미국 델라웨어대 사학과 교수이기도 하니까요. ●대량소비사회가 낳은 산물, 쓰레기 생태계 위험을 고발하는 환경 관련 책도 아니고 쓰레기 처리 문제에 대한 공공 정책 등 해법을 제시하는 책도 아니에요. 그저 쓰레기의 사회문화적 역사를 덤덤히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쓰레기에 비춰진 인간 세상과 자본주의의 대량 소비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죠. 사실 아쉬움이 많아요. 쓰레기는 여러분의 삶에서 나오고 다시 돌고 돌아서 온전히 쓰이기도 하건만, 쓰레기가 늘어나면 우리 쓰레기들도 힘들어요. 그저 옛날만 그리워할 수는 없잖아요? 쓰레기의 역사를 통해 대량 소비문화가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현미경 들여다보듯 보고 있네요. 산업화 초기만 해도 제지 업체들은 종이를 만들려 넝마를 모았고, 용광로에서는 고철을 모았죠. 고무 공장도 비료업체도 모두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산업화가 가속화하고 자본주의가 첨예화하면서 대량생산·대량소비, 나아가서 생산을 위해 소비를 부추기는 가치 전도(顚倒) 현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재사용하는 문화에서 버리는 문화로 대체되는 과정과, 대량 소비사회가 어떤 쓰레기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있는지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네요. 우리는 인간 삶의 반사거울인 셈이었군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미국 땅에서 살았던 쓰레기 친구들 얘기지만, 우리나라라고 별 다를 게 없죠. ●쓰레기 양산의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무한 반복 모드’로 끝없이 쏟아지는 쓰레기가 여러분들을 불편하게 하나 봐요. 그러나 쓰레기 앞에서 맞는 도덕적 가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마법 같은 두 가지 가치가 있더군요. 그 하나가 바로 효율성이고, 나머지는 위생·보건이죠. 주부를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킨다는 명분으로 깨끗이 다듬어져서 비닐, 플라스틱 등 포장재에 담겨 판매되는 야채들이며 ‘세균이 득시글거리는’ 수건을 대체하라고 부추기는 ‘크리넥스’와 위생을 위해 종이컵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종이컵 회사 같은 것들이죠. 여기에 스트레서 교수가 애써 강조하지 않은 또 한 가지는 ‘철저한 분리수거’에 대한 자부심의 허망함입니다. 1970년대 이후 재활용과 분리수거는 확산되고 있지만 쓰레기의 확산 속도는 이를 비웃듯 더 빨라지고 있다네요.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하더라도 이런 식의 소비가 계속되는 한 쓰레기 세상에서 벗어나기 힘들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쓰레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두 인류 그래서 우리는 프리건(freegan)과 브리콜뢰르(bricoleur)를 사랑해요. 프리건은 공짜(free)와 채식주의자(vegetarian)의 합성어입니다. 가능한 만큼 소비하지 않는 대신 공짜를 추구하는 삶이죠. 얼핏 거지와 비슷해 보이지만 ‘반 소비주의’에 기초해 구체적인 행동을 펼치는 이들입니다. 물물교환, 옆 식탁 남은 음식 먹기, 야생 채집 등 반소비, 반자본의 행동강령은 불온하기조차 합니다. 프리건이 이렇듯 조금 과격하게 실천하는 운동가들이라면, 브리콜뢰르는 비교적 온건합니다. 온갖 잡동사니를 갖고 물건을 만들어내는 손재주 좋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죠. 과거에는 집집마다 갖춰진 재봉틀, 연장통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는데, 요즘에는 쉬 찾기 어렵죠. 헤진 옷을 깁고, 유행 지난 엄마 옷을 딸에게 고쳐 물려 주고, 길가에 버려진 나무 토막 몇 개를 뚝딱거려 멋진 새집을 만들어 주는 등 다양한데도요. 이제는 예술의 영역에서나 겨우 명맥이 유지되고 있을 뿐이죠. 부디 인간 세상에서 프리건과 브리콜뢰르가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예요. 2만 1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객원칼럼] 관점의 차이냐, 관점의 사회성이냐

    [객원칼럼] 관점의 차이냐, 관점의 사회성이냐

    이번엔 법원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이라면 가르마를 타고, 다툼이라면 자초지종을 따져 잠재워야 할 법원이 소용돌이의 진원지가 되었다. 쟁점마다 삿대질을 주고받던 두 편이 정확하게 그대로 나뉘어, 정확하게 엇갈린 외침들을 토해낸다. 말마디나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한마디라도 뒤질세라 자기만의 독백을 외워댄다. 양쪽의 목청이 날카로워지면서 일련의 판결 논란은 증폭되어 소모적인 사회 분란으로 번질 태세다. 관점의 차이와 논리적 설득력을 혼동한 요즘의 자화상이다. 파문을 낳은 일련의 법원 판결들은 우리의 문제를 새삼스레 되짚어 보는 교과서가 됐다. 법원은 폭력성은 수용하면서도 극도의 흥분에서 비롯된 결과로, 따라서 고의성이 없다거나 정당한 항의표시로 보았다. 전교조 교사의 시국선언도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아 국가에 바라는 사항을 밝힌 것이고, 헌법정신에 충실한 국정 운영을 해달라는 것이라고 보았다. PD수첩 보도는 허위보도로 볼 수 없고, 명예훼손으로도 볼 수 없다고 했다.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하나같이 ‘볼 수 없다.’는 관점을 내세워 마침표를 찍었다. 관점은 개인적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연유한 정신적 영역으로 비난하거나 간섭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개인의 관점이 국가 사회의 제도로서 작동할 때에는 사회성이라는 가치를 그 바탕에 깔아야 한다. 개인의 관점이 공동체적 가치와 합치하지 않는다면 논리적 설득력을 잃게 된다. 인간은 동물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규범이라는 정신적 지주를 통해 사회적 존재로 거듭났다. 규범은 바로 이번 법원의 판결에서 ‘볼 수 없다.’는 근거요, 공동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공동체의 가치다. 공동체의 안정성과 안전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규범은 보편성과 일관성을 지녀야 하고 공동체 여론과 맞닿아야 한다. 만에 하나 법원 판결이 국민 여론을 거슬렀다면 깊은 반성과 성찰이 뒤따라야 하는 까닭이다. 공동체 구성원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법원의 독립성을 내세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형량의 많고 적음과 달리, 책임의 유무는 공동체 규범을 적용하는 작업으로 1심의 판결이라고 해서 경시되어서는 안 된다. 공동체적 가치는 비록 1심 판결이라고 해서 무시되어선 안 될 것이다. 어떤 폭력은 처벌하고, 어떤 폭력은 용납해서 될 일인가. 헌법정신에 충실한 국정운영을 바라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PD수첩의 보도로 실상을 오해했던 실재를 어떻게 아니라고 할 것인가. 자기의 관점 못지않게 공동체 여론을 존중하는 겸허함을 새겨야 한다. 여론은 흔히 민심과 대비시켜 설명된다. 여론은 빨래터나 우물가에서 주고받는 민심과는 그 무게가 사뭇 다르다. 언론학에서는 특정의 상황을 분석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적 배경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실천에 옮기면서 동시에 관철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갖춘 사회 구성원의 공통된 가치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대학 진학률이 무려 83%에 이른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육박하고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국민 여론의 순수성이 존중받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담보하기 위한 법관의 독립성 규정이 법관의 주관적 관점을 관철시키는 장치로 변질되어선 안 될 것이다. 국민 여론이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한다. 국민 여론은 공동체의 마음(心)이요 공동체의 힘이다. 국민 여론은 자극적인 구호로 점철된 포퓰리즘을 거부한다. 소수의 시대착오적인 엘리트주의를 배격하며 집단적 우월적 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소영웅적인 행태에 현혹되지 않고 보편적인 시대 가치를 추구한다. 또한 국민 여론은 구성원의 다양성을 용융시켜 미래지향적 지표를 구체화하는 채널이다. 국민 여론은 소모적인 논쟁도 결국에는 건전한 토론 광장을 만들고 누구나 공감하는 사회적 통합을 일궈낸다. 관점의 차이와 논리적 설득력을 혼동하지 않는다. 국민 여론의 가치와 무게를 헤아릴 줄 아는 최소한의 소양을 추스를 일이다.
  • [21일 TV 하이라이트]

    ●현장르포 동행(KBS1 오후 11시30분) 서울 면목동의 어느 찜질방. 이곳이 십여 년간 일용직으로 일해 온 만용씨와 아들 하석이의 집이다. 집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한 지 벌써 3개월 째. 급한 데로 짐을 푼 곳이 바로 동네 찜질방이었다. 하석이의 소원은 아빠와 둘이 누워 잘 수 있는 따뜻한 방 한 칸.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견딘다.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가수로 데뷔한 하버드 재학생 유범상을 만나 본다. 환경운동가, 마술사, 가수, 하버드생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그에게 여러 분야를 모두 잘하는 비결을 들어 본다. 또한 하버드생이 되기까지의 이야기와 가수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내민 그의 또 다른 꿈 ‘노래’에 대한 진지한 생각도 엿본다. ●지붕뚫고 하이킥(MBC 오후 7시45분) 세경이 질문한 수학문제를 풀지 못해 쩔쩔 매는 준혁. 그런데 지훈이 나타나 그 문제를 척척 풀어낸다. 준혁은 세경의 마음이 지훈을 향해 있음을 알기에 그런 지훈에 비해 자신이 보잘 것 없게만 느껴지는데…. 한편 자옥이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못마땅하기만 한 현경은 자옥을 대하는 태도가 곱지 않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0분) 손으로 쭉 짜서 입으로 꿀꺽, 상처 치료제 연고를 먹는 아줌마. 연고를 먹어야 속이 편안해진다는 아줌마의 기막힌 사연을 들어 본다. 호랑이 걸음을 걷는 아기가 나타났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성큼성큼 별난 걸음을 걷는 원우를 만나 본다. 또 논산의 소문난 효자 중훈씨도 만나본다. ●세계테마기행(EBS 오후 8시50분) 소시에테 제도에서 타히티 섬 다음으로 가장 큰 섬, 라이아테아의 대표적인 산업은 바로 흑진주 양식. 진주조개를 채취한 뒤 작은 핵을 이식해 흑진주를 얻어내는데, 대부분 가족 단위의 가내 수공업 형태의 양식장에서 만들어진다. 그들에게 가장 큰 부가가치산업인 흑진주 양식장을 찾아가 본다. ●강력 1반(OBS 오후 11시) 강력 사건의 수사과정을 통해 현대인의 억눌린 욕망과 비뚤어진 자화상을 되돌아보는 수사 드라마가 펼쳐진다. OB S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정규 드라마 ‘강력1반’은 과거 70~80년 대 안방을 사로잡았던 ‘수사반장’의 옛 추억을 되살리면서 최근 들어 갈수록 험악해지는 범죄의 현주소를 짚어 본다.
  • ‘추노’ 대박의 힘은 3S

    ‘추노’ 대박의 힘은 3S

    새해 벽두 안방극장에 KBS 수·목드라마 ‘추노’의 흥행 바람이 거세다. 지난 6일 첫 전파를 탄 이 드라마는 방송 4회만에 시청률 30%를 돌파했다. 이는 지난해 대박 드라마인 ‘아이리스’(7회), ‘선덕여왕’(14회)의 30% 돌파 시점보다 빠른 속도다. 여기에는 최근 대중문화 트렌드를 반영한 3가지 흥행 코드 ‘3S’가 숨어 있다. ●Stylish-영화 같은 영상미 ‘압권’ ‘추노’는 스타일리시(Stylish) 사극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국내 사극은 2003년 방영돼 인기를 끌었던 ‘다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당시 ‘다모’는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에 현대적인 말투로 ‘다모폐인’을 양산하며 사극을 외면하던 젊은층을 빠르게 유입시켰다. 추노의 가장 큰 흥행 비결 역시 스타일리시한 영상미가 꼽힌다. 퓨전사극 ‘한성별곡’(2007)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은 곽정한 감독은 국내 드라마 최초로 영화용 레드원 카메라로 액션장면 촬영 때 고속과 저속 촬영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조선판 ‘매트릭스’라는 호평을 끌어냈다. 이 카메라는 고화질(HD)용 화면보다 해상도가 4배 뛰어나고, 화면 배경이 어두워도 피사체의 윤곽이 뚜렷하다는 장점이 있다. “영화 같다.”는 찬사가 ‘추노’를 따라다니는 이유다. 최지영 책임 프로듀서(CP)는 “최근 고화질 TV가 대중화되면서 고품질 영상물을 만끽하고 싶은 대중의 욕구가 강하다.”면서 “산업적인 측면에서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인기비결을 자체 분석했다. 3D(3차원) 영상을 앞세운 영화 ‘아바타’의 인기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는 설명이다. ●Sexy-복근 남성미 ‘물씬’ 야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남자 배우들도 드라마 인기에 한몫 하고 있다. 장혁, 오지호, 김지석 등이 탄탄한 복근과 구릿빛 피부로 섹시(Sexy)한 남성미를 발산한 덕에 여성은 물론 남성 시청자들까지 TV 앞으로 끌어당겼다. 제작진은 캐스팅 단계부터 꽃미남 배우들을 제외시키는 대신 남성적 매력의 배우들을 선택한 뒤 촬영 전 탄탄한 근육을 단련할 것을 주문했다. 최 CP는 “지난해 초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히트하면서 이제는 꽃남보다 ‘남자다운 남자’를 선호하는 트렌드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 전략이 주효했다.”면서 “해외 판매를 위해 주연배우로 한류스타를 권유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장혁이 이 드라마를 위해 몇 달 전부터 몸 만들기에 나서는 등 열의를 보여 주저없이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Survival-생존스토리 ‘강렬’ 주인공들의 강인한 생존(Survival) 스토리도 대중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추노는 조선시대 최고 장군에서 노비로 전락한 태하(오지호)와 그를 쫓는 추노꾼 대길(장혁)의 추격전이 핵심 축이다. 양반댁 자제였다가 목숨을 위협받는 추노꾼이 된 대길의 생존 드라마는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불황기에 살아남기 위한 현대인의 자화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추노’의 대길과 태하는 ‘아이리스’의 김현준과 진사우처럼 선악이 뚜렷하지 않고, 시대적인 상황에서 개인이 어쩔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시청자들이 주인공들의 위기 극복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도 언제든지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심리와 다시 제자리를 찾는 데 대한 기대심리가 투영돼 드라마 보는 재미를 높이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책꽂이]

    ●아시아 문예지, ‘빛과 숲’ 창간 시인 김광림의 아들인 김상수 바움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가 아시아권 시인들의 문학적 교류 협력을 지원하는 반연간 문예지 ‘빛과 숲’을 펴냈다. 선배 시인들이 1970~1980년대 한, 중, 일, 몽골 등을 활발하게 오가며 만든 ‘아시아 시인회의’를 후배들이 부활시킬 계획이다. 한국의 시를 중국, 일본에 소개함은 물론, 이들 나라의 시를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일본어와 중국어가 함께 병기돼 있다. 오는 7월경 한국과 몽골의 시인 교류 행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1만 2000원. ●기적의 공부밥상(김수연 지음, 포북 펴냄) 그래서 식구(食口)라고 했을까. 가족이 둘러앉아 얘기 나누며 먹는 밥상이야말로 아이의 조기 교육과 따뜻한 심성을 가꾸는 것에 직결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고등학교 2학년 딸아이가 탁월하게 공부를 잘하는 것은 물론, 음악, 미술 등 취미활동을 하며 높은 삶의 질을 갖게 된 배경으로 엄마의 밥상을 꼽았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조리법을 소개하는 요리책이자 성공한 학부모로서 체험기가 얽혀있다. 1만 4800원. ●나는 가짜다(헤럴드경제 편집국 엮음, 헤럴드미디어) 시인, 소설가들이 자신의 얼굴을 직접 그리고 자신의 문학적 시원(始原) 등 속엣것을 내밀히 고백한다. 김주영, 이근배, 윤후명, 박범신 등 원로 문인부터 시작해 백가흠, 윤이형, 김이설 등 젊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42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헤럴드경제에 연재했던 글을 모았다. 부제는 ‘작가가 그린 자화상’. 1만 5000원. ●거침없는 한국축구(존 듀어든 지음, 조건호 옮김, 산책 펴냄) 그는 한국 축구를 어지간한 한국 사람보다 사랑하는 남자다. 그래서 매서운 비판도, 따뜻한 격려도 거침없이 쏟아낼 수 있는 남자다. 영국인 축구 저널리스트 듀어든은 이 책을 통해 프랑스 리그에 진출한 박주영에 대한 훈훈한 희망을 더하는가하면, K-리그에 대한 쓰디쓴 비판도 오롯이 자기 몫으로 삼는다. 1만 5000원.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시네도키, 뉴욕’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시네도키, 뉴욕’

    코다드는 한적한 교외에 살며 작은 연극무대를 이끌고 있는 중년 남자다. 라디오방송이 가을을 알리던 어느 날,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깨어난다. 이제 인생의 가을에 들어선 그는 자기 삶에서 두려움과 허전함을 느낀다. 곧 그의 불안은 여러 징후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질병과 고통이 하나씩 그의 몸과 마음을 방문하고 시간이 부지불식간에 후다닥 지나가는가하면, 주변의 누군가가 차례차례 죽음을 맞으며 아내와 딸과 친근한 사람들이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다. 그런 그에게 큰 기회가 찾아온다. 맥아더 재단으로부터 거액의 지원을 얻은 그는 일생의 연극을 준비한다. ‘시네도키, 뉴욕’의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찰리 카우프먼은 각본가로 먼저 이름을 날렸다.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이터널 선샤인’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신선한 이야기꾼으로 인정받았다. 마음과 머리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들로 꽉 채운 그의 이야기는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전개와 무관하기 일쑤였다. 그 결과 혹자는 그의 이야기를 지적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반면, 대중은 혼란스럽고 이해하기 힘들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카우프먼식 이야기의 특성을 더욱 깊이 파고든 ‘시네도키, 뉴욕’은 풀리지 않는 실타래 혹은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도입부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숫자들을 유심히 보아야만 ‘시네도키, 뉴욕’의 첫 번째 테스트를 통과하는 게 가능하다. 신문의 날짜는 오늘에서 곧바로 며칠 뒤, 이듬달로 넘어가고, 다음날 주인공은 6개월 뒤의 신문을 읽는다. 헝클어놓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코타드는 중년과 노인, 그리고 청년의 모습 사이로 순식간에 오간다. 시간의 구성보다 더 흥미로운 건 인물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한 인물과 그의 또 다른 현현들이 서로를 연기하고 지시하고 반영하면서 영화의 어지러움은 극에 달한다. 도대체 감독이 의도한 건 무엇일까? ‘시네도키, 뉴욕’은 입체파 화가의 자화상과 같은 작품이다. 카우프먼은 코타드라는 대상을 분해하고 세우고 조립하는 과정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처음 접하면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지만, 부분과 전체를 끼워 맞추고 조목조목 따져볼 때에야 한 존재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창작과 소멸의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코타드는 자기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던 일곱 여성과 다양하게 관계한 끝에 홀로 선 자리에서 삶의 진실과 창작의 비밀을 깨닫는다. 그런 점에서 ‘시네도키, 뉴욕’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에 바친 헌사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저명한 영화평론가인 로저 이버트는 ‘시네도키, 뉴욕’을, 21세기의 첫 10년간 나온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꼽으면서 ‘인간이 삶을 구성하고 현실을 규정하는 방식에 관한 영화’라고 평했다. 주인공이 사는 도시인 ‘스키넥터디’에서 따온 제목 ‘시네도키’는 영화가 은유의 결정체임을 밝힌다. 극중 인생이 무대이고, 허구가 인생이었던 것처럼 ‘시네도키, 뉴욕’의 전체는 인생의 다양한 형태, 본질, 신비를 은유하고 있다. 거기에서 관객이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제몫을 다한 것이다. 영화평론가
  • 리얼리즘으로 승화된 엇갈린 욕망

    리얼리즘으로 승화된 엇갈린 욕망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 안톤 체홉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작인 ‘바냐아저씨’가 연극 무대에 오른다. 새해 1월7일부터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갈매기’ ‘세자매’ ‘벚꽃동산’과 함께 안톤 체홉의 4대 작품으로 꼽힌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체홉의 작품은 러시아 근대 리얼리즘을 완성하며 20세기 현대연극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어렵고 지루하다.’는 대중의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국적과 시대를 뛰어넘어 각국에서 공연될 만큼 보편성을 갖추고 있다. 특히 ‘바냐아저씨’는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나 갈등 관계가 가족에게 상처받고 사랑에 좌절하는 우리네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보다 이해가 용이하다. 주인공 바냐는 누이동생이 죽은 뒤 교수인 매부를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성심껏 대했지만 배신당하고 괴로워한다. 교수는 은퇴한 뒤 독선과 아집이 더욱 세지고, 바냐가 교수의 애인 엘레나에 대한 연정을 품게 되면서 극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갑갑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엘레나, 짝사랑에 괴로워하는 교수의 딸 소냐, 열심히 살지만 마음의 등불이 없어 괴로워하는 의사 등 등장인물 모두가 소외되고 단절된 관계를 상징한다. 특히 이 작품은 비현실적이고 최소화된 무대 공간을 통해 각 장면이 갖는 메시지와 인물들의 감정선을 전달한다. 무대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8개의 자아공간은 스스로에겐 자유롭지만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등장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며, 대화와 소통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은유한다. 마지막에서 8개의 자아공간이 무대 중앙으로 회전하는 장면은 ‘삶은 또 다시 반복되고 계속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심재찬 연출자는 “인간의 심리와 이중성을 꿰뚫는 체홉의 연극을 제대로 구현하고, 무엇보다 바냐라는 인물에 중점을 두고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바냐 역은 연극 ‘햄릿’, ‘파우스트’를 비롯해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천추태후’ 등에 출연했던 연기파 배우 김명수가 맡았다. 김명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기대 속에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인 현대인의 자화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 ‘바냐아저씨’”라며 “그동안 선 굵은 연기를 많이 해왔는데,이번에 인간의 나약함을 밀도 있게 표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책 100권 읽고 5년노숙 탈출

    책 100권 읽고 5년노숙 탈출

    “경제적으로 실패했다고 인생 낙오자는 아니죠. 모자를 눌러쓰고 스스로 패배자인 양 행동하면 안 돼요.” 5년 세월이었다. 차디찬 바닥에 몸을 가눈 채 술과 도박에 빠져 살던 그를 사람들은 ‘노숙자’라 불렀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을 벗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1820여일. 밤마다 엄습해온 한기(寒氣)는 참을 수 있었지만 자신이 ‘버리고’ 또 ‘버림받은’ 가족들 생각에 매일 술에 의지했다. 배 아파 난 아들과 스스로 연을 끊은 어머니, 남이 돼버린 아내를 생각할 때마다 맨 정신으론 견딜 수 없었다. ●요양보호사 1급자격증 획득 배동효(45)씨는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얘기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2004년 겨울 차디찬 길바닥으로 내몰렸다. 부산의 냉동기 제조업체 사장에서 주민등록증조차 가질 수 없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순간이다. 손 벌릴 곳 없던 그는 이듬해 봄 열차를 타고 무작정 서울역으로 올라와 노숙을 택했다. 이후의 삶은 배씨의 표현대로 ‘사회적으로 죽고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던’ 시간이었다. 서울역과 영등포역, 수원역 등을 전전했다. 역전 노숙자들과 주먹다짐을 벌였고, 폐병으로 생사의 경계를 오갔다. 오랜 노숙생활로 만신창이가 된 몸은 ‘게으름’이란 친구를 불러왔다. 배씨는 “수중에 돈이 생기면 술과 도박에 의지하곤 했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는 생각에 노숙자들은 쉽게 도박에 빠진다.”고 전했다. 쪽방생활과 시설입소, 거리노숙을 반복하던 배씨에게 변화가 온 것은 지난 4월. 서울 동자동의 한 노숙자 상담보호센터를 찾으면서부터다. 이곳 사회복지사들은 노숙자들의 머릿수만 채워 정부 보조금을 타려던 이전 시설의 관리인들과 달랐다. 신용불량자인 배씨에게 우선 서울역 주변 노숙인을 씻기는 일을 맡겼고, 이를 통해 고정적 수입을 갖도록 했다. 보호센터의 음악심리치료는 자아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배씨는 “첫 시간에 죽어라 탬버린만 두드리던 내게 울화에 찌든 자화상을 발견했다. 이후 남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노숙인 20여명과 나눔활동 여전히 술과 도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그에게 인문학 강좌는 ‘패자부활’의 마침표였다. 철학과 시 창작을 배우며 존재의 가치를 배웠다. 배씨는 “적어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받는 불결한 노숙자이기 전에 소중한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이후 6개월여 만에 그가 독파한 책은 100여권.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도 획득했다. 그는 “매달 받는 39만원의 월급 중 5000원을 갹출해 자활 노숙인 20여명과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란 봉사단을 꾸리고 있다.”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앞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희망가를 부르겠다.”고 웃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최동호 오솔길 산책] 울지 못하는 아버지들

    [최동호 오솔길 산책] 울지 못하는 아버지들

    겨울바람이 매섭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힘들고 어려운 아버지들이 많아진다. 경제지표가 좋아졌다지만 서민들의 체감지수는 아주 낮다. 서민 경제가 어려울수록 아버지들은 힘들다. 가족의 중심에서 아버지가 설 자리가 없어진 지는 오래다. 육아나 교육은 물론 재산권 행사에서도 아버지는 그 주도적 위치를 상실한 지 오래다. 공휴일 가족나들이의 운전기사로 전락했다고 자조하는 이도 있다. 최근 한 텔레비전 방송에 아버지들이 나왔다. 울고 싶은 사연들로 가득한 아버지들이었다. 한 아버지는 30년 동안 환경미화원을 하면서 자녀들에게 자기 직업을 속이고 살아왔다고 했다. 자녀들이 창피해할까 봐서였다. 30년의 비밀이 열리는 순간 아버지가 울고, 자녀들이 울고, 동료 청소원들도 함께 울었다. 다른 아버지는 반복되는 질문에도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하지 않는 아들을 보면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참다 못한 리포터가 아버지를 사랑하느냐고 묻자 비로소 아들은 ‘네 그래요. 아버지를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한 아버지는 자녀를 두고 집을 나간 아내에게 복수를 맹세하며 18년간 쪽방에서 아이들을 키웠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나타났고, 그 아내의 늙고 쇠약한 모습에 그만 모든 걸 용서하고 함께 살게 됐다고 했다. 한데 바로 다음날 딸이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가게에 나가는 그에게 아내의 잔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 중엔 이보다 더 기막힌 사연을 가진 이들도 많을 터다. 어머니가 없다면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아버지가 없다 해도 역시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존재한다 해도 그 세상은 일그러진 모습이 아닐까 한다. 연말이 되면서 힘든 경제 상황을 돌이켜 보게 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국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문인들을 아버지로 둔 자녀들이 아버지를 회고하며 만든 산문집 ‘아버지, 그리운 당신’이 간행됐다. 황동규, 조정래, 신달자, 박범신, 공지영, 한강, 공선옥, 서하진 등 시인과 작가들이 그려낸 35명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이 산문집에서 우리는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려 볼 수 있다. 한국사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여겨지는 지난 20세기 고난의 시대에 과연 아버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아들과 딸들은 그들의 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이 산문집의 중심 주제다. 아버지란 아들로부터 부정되거나, 극복돼야 할 존재라는 것은 그리스의 고전적 비극인 ‘오이디푸스왕’으로부터 전해오는 영원한 문학적 테제 중의 하나다. 그러나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가 아버지다. 평생을 부정하고 평생을 피해 다니려 해도 운명처럼 어느 한순간에 다가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마는 것이 아버지라는 존재일 것이다. 아버지라는 책무 때문에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아버지들로 가득 찬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자녀들과 찍은 사진 한 장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가는 아버지들…. 아버지가 되어 보지도 못하고 일제의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한 윤동주는 ‘참회록’에서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고 했다. 이처럼 아버지는 밤하늘 어둠 속으로 걸어가면서 그 뒷모습을 우리에게 남기고 가는 운명적인 존재이다.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연말연시에 굳세게 견디려 해도 마음속으로 울고 싶은 아버지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녀들의 진심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사랑의 말 한마디일 것이다. 최동호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 낮은 곳을 향한 따뜻한 자화상

    낮은 곳을 향한 따뜻한 자화상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관람객을 반기는 그림은 루오의 자화상 ‘견습공’이다. 화가에게 자화상은 자신의 예술 철학을 그대로 담아내는 중요한 작품이다. 루오는 54살이던 1925년에 ‘견습공’을 그렸고, 그 해 슈발리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신성한 예술가가 아니라 노동자의 모습으로 자화상을 그릴 만큼 루오는 서민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했고, 또 강조하고 싶어했다.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에서 유리에 자주 손을 베며 일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성공한 화가가 되어 자화상으로 그려낸 것이다. 항상 낮은 곳으로 임했던 예수의 얼굴과 일생, 특히 고통받는 신의 모습은 루오가 평생을 걸쳐 그린 주제다. ‘색채의 연금술사 루오’ 전시회에서는 고난의 십자가 길을 걷는 예수의 모습을 담은 판화 연작집인 ‘미제레레’ 58점이 전시된다. 미제레레는 라틴어로 ‘불쌍히 여기소서’란 뜻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1933년작 ‘그리스도의 얼굴’은 천 위에 나타난 예수의 얼굴을 담고 있다. 이는 피땀을 흘리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예수의 얼굴을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수건으로 닦자 그 얼굴이 그대로 수건에 새겨졌다는 ‘베로니카의 수건’에 대한 신화를 재연한 것이다. 1945년작인 ‘베로니카’도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그림 속 여인은 그의 딸인 이자벨을 많이 닮았다고 한다. 루오는 흔히 종교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로 알려졌지만 서커스단과 도시, 자연 풍경 등도 즐겨 그렸다. 1932년에 완성한 대작 ‘부상당한 광대’는 액자 속 그림의 윤곽을 따라 벽에 거는 장식융단인 태피스트리의 점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루오의 미공개 작품들이 40년 만에 세계 최초로 한국인들과 만날 수 있었던 사연 뒤에는 완벽주의를 추구한 한 화가의 일생이 담겨 있다. 루오는 1917년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파 화가를 대거 발탁했던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와 ‘아틀리에 전체를 구입한다’는 파격적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그러나 1939년 볼라르는 피카소를 만나고 오던 중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만다. 볼라르의 유족들은 작품 소유권을 주장하며 루오의 아틀리에를 잠가버리고 8년여의 지루한 법정싸움 끝에 루오는 700여점의 작품을 돌려받게 된다. 하지만 루오는 이제 나이가 너무 들어 작품을 더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며 315점의 작품을 공증인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 버린다. 이런 자신을 두고 루오 스스로도 “나의 성격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결코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심지어 도록에 실린 작품들도 덧칠해서 다시 그리곤했다. 루오의 손자이자 루오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장 이브 루오(68)는 “1963년 루오의 아틀리에에 남아 있던 작품들을 프랑스 국가에 기증했는데 당시 가족들이 판단할 때 작품들이 그대로 대중에게 보이면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 비공개 조건을 달았다.”며 “이후 퐁피두 센터에서 작가에 대한 이론적 작업이 완성되는 등 연구 성과가 잇따라 이제는 공개할 수 있다고 판단해 (공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서커스 소녀’ ‘십자가의 그리스도’ 등 14점은 루오가 사망했을 때 아틀리에에 있던 작품으로 이번에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됐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삶의 고민을 1㎝가 넘는 두터운 마티에르(질감)와 폭발적 색채로 담아낸 루오의 작품은 내년 3월28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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