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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작가 서바이벌 TV 오디션… “예술 대중화” vs “상업성 심화”

    미술작가 서바이벌 TV 오디션… “예술 대중화” vs “상업성 심화”

    미술작가도 TV 오디션으로 배출된다? 국내 처음으로 ‘현대미술을 이끌어갈 예술가를 가리겠다’는 TV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올 예정이어서 미술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술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이끌어낼 것이란 긍정적인 기대가 있는 반면 한편에서는 프로그램의 기획 자체가 상업성에 치우친 한국미술의 구조적 병폐를 드러낸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프로그램은 CJ E&M계열 케이블채널인 ‘스토리온’이 내년 3월 첫 방영을 목표로 추진하는 ‘아트 스타 코리아’. 제목부터 ‘슈퍼스타 K’를 연상시키는 이 프로그램은 지난달 31일까지 약 한 달간 회화, 조소, 조각, 설치미술, 사진, 비디오아트, 산업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참가자 모집을 마쳤다. 제작진은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게 증가한 것에 착안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면서 “가능성과 개성으로 무장한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고 ‘서바이벌’이란 요소를 추가해 예술의 대중화를 꾀할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은 연령과 성별, 학력, 직업, 장르를 따지지 않는 것으로 참가 문턱을 낮췄다. 홈페이지에서는 아예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제작진이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승자에게는 1억원의 상금과 국내 유수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기회, 국내외 레지던시 입주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프로그램을 둘러싼 상업성 논란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교수, 평론가, 기획자, 큐레이터, 작가 등 전문 위원들의 심사로 희석시킬 복안이다. 현대미술을 소재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이미 영미권에서 ‘워크 오브 아트’(미 브라보TV), ‘스쿨 오브 사치’(BBC) 등이 방영돼 현지에서 큰 논란을 불러온 바 있다.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프로그램이어서 예비 작가들과 미술에 관심이 많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기대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상업 갤러리의 전시와 자본·미디어를 통한 작품 노출 등에 치중하는 미술계의 씁쓸한 자화상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지적이 그것. 미술계 일각에서는 “외국과 창작여건이 여러 모로 다른 환경인 국내에서 미술을 상업적 테두리에 가두는 상업방송이 될 것”이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형 포털사이트에선 “이젠 화가나 조각가도 TV오디션 프로그램이 만드는 시대”라는 글도 많다. 한 중견 큐레이터는 “기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적이 기대치를 밑돌자 미술 등 소재만 바꿔 오디션 열풍을 이어가려는 시도”라며 “예술적 완성도를 어떻게 평가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도 “이 프로그램은 과도하게 상업성에 치우친 국내 미술계 풍토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며 “마치 닭이 달걀을 낳듯 매주 작가들에게 작품 생산을 요구하고 이 작품을 놓고 평가한다면, 오랜 시간 고통을 딛고 작품을 만드는 숭고한 예술의 과정이 무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요 케이블 방송이 앞장서 미술을 경쟁구도에 놓는다는 비판도 있다. 반면 기존 미술계 풍토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젊은 미술가들은 프로그램이 참신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평론가는 “미대생들 사이에선 공모전 등 미술계의 기존 선발 방식이 폐쇄적이라는 의견이 이미 팽배하다”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조차 4명의 작가를 뽑아 일정기간 전시를 통해 우승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방식인데, 방송 프로그램을 탓할 게 있느냐”고 반박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신학 토론 ‘후끈’… 안방 잔치서 겉도는 한국교회

    신학 토론 ‘후끈’… 안방 잔치서 겉도는 한국교회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 개막 이틀째인 31일 오전 8시 30분 부산 벡스코 전시장 1홀. 예배실로 마련된 4000석 규모의 공간에 다양한 복식과 피부색의 총회 참가자들이 가득 찼다. 언어와 교회는 달라도 예배와 기도의 마음가짐과 몸짓들은 하나.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예배실을 가득 메운 얼굴들은 ‘기도하는 총회가 될 것’이라는 총회 한국준비위원회의 선언이 무색하지 않음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한국어와 영어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 등 5개 국어로 30분간 진행된 기도회가 끝난 뒤 조금씩 무리를 지어 뿔뿔이 흩어지는 예배객들. 무심코 한 무리를 따라 작은 방에 들어가니 성경공부의 열기가 뜨겁다. ‘다름 속의 하나’를 지향하는 WCC 회원 교회들이 소그룹별 신학적 토론을 벌이는 곳. 방마다 이어지는 토론의 열띤 목소리들에 WCC 총회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우리 교회의 갈라진 자화상이 부끄럽게 포개진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따로 또 같이’를 외치며 전 세계에서 모여든 교회 대표 2700명과 참관객 4000명이 이날 하루 모이고 흩어지기를 거듭한 행사만도 두 차례의 기도회와 주제회의, 전체회의, 에큐메니칼(일치)대화, 지역별 모임 등 모두 8개. ‘기독교계의 유엔’ 행사를 이틀 치른 WCC총회 한국준비위 측은 일단 대회의 ‘성공 개최’를 조심스럽게 예단한다. 각국에서 몰려든 400명의 내외신 취재진들이 행사 진행을 놓고 간간이 볼멘소리를 쏟아내지만 정작 총회 참가자들은 개의치 않는 눈치. 쉴 틈 없이 이어지는 회의와 기도회 일정을 좇는 눈길과 발걸음이 그저 분주할 뿐이다. ‘성공 개최’를 입에 올리는 총회 한국준비위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은 상황. 오는 8일까지 이어질 총회의 주제, 내용에 개최국 한국 교회의 상황과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흘러나오고 있는 탓이다. 대회 진행을 둘러싼 총회 본부와 한국준비위 간 틈새도 바로 그런 측면에서 간간이 불거지는 불협화음으로 여겨진다. 새벽기도며 통성기도, 수요예배, 마당행사 등 한국 특유의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의 한국 참여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잔치판만 마련해 놓고 변죽만 도는 한국교회’가 될 것이라는 지적들이다. 결국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한국교회와 한국의 얼굴을 보여주고 인정받을 수 있을지가 총회 개최 후의 한국교회 운명을 크게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는 총회 기간 중 선출될 WCC 의장단과 중앙위 의장에 한국 목회자가 발탁될 것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개최국의 이점을 염두에 둔 기대로 보인다. 다행히 총회 참가자들은 앞으로 이어질 한국 교회 순례와 문화 행사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총회 참가자들은 2일과 3일 주말을 이용해 이틀간 서울을 비롯한 부산과 경남, 광주, 제주 등 전국으로 나뉘어 한국을 돌아보게 된다. 총회 사상 처음 마련된 에큐메니칼 순례행사. 참가자들이 일정표를 들여다보며 가장 많이 챙기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각 지역교회로 흩어져 한국교회 신도들과 함께 참여할 주일예배도 한국 교회와 총회 참가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행사다. “부산총회는 한국교회 역사 가운데 큰 족적을 남길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를 계기로 명실공히 세계교회와 연결되고 세계교회는 한국교회와 이어지는 하나님의 큰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난달 30일 총회 개막에 즈음해 한 개신교 목사가 던진 축언. 그 축언의 현실화 여부는 그리 오래지 않아 판가름날 전망이다. 글 사진 부산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울시 신청사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

    “서울시 신청사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

    “건축이라는 운명의 회오리에 빠져 있나 봐요.”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 시티:홀’은 정재은(44) 감독이 계획한 ‘건축 3부작’의 2부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1부에 해당하는 ‘말하는 건축가’가 건축가 정기용의 세계를 담았다면 ‘말하는 건축 시티:홀’은 서울시 신청사의 건립 과정을 들여다본다. 건축 3부작을 시작하기 전 개발하고 있던 SF호러 영화 ‘오피스’도 최첨단 초고층 빌딩이라는 공간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감독은 “어쩌다 이렇게 건축을 소재로 찍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전에 찍었던 ‘고양이를 부탁해’나 ‘태풍태양’에서도 도시는 주인공이었어요. 인천이나 서울 잠실 같은 공간들을 영화의 주인공만큼 애정을 가지고 탐사했었죠. 건축이라는 게 도시와 사람들에 대해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건설과 건축이라는 문화가 일종의 전환기에 접어든 것도 건축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이유 중 하나였어요.” 신청사는 2005년 3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건립안을 채택해 지난해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개청식을 열 때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말하는 건축 시티:홀’이 집중하는 것은 7년에 이르는 지난한 건립 과정 중 마지막 1년이다. 서울시 신청사 콘셉트 디자인의 당선자였던 건축가 유걸이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배제됐다가 ‘총괄 디자이너’라는 직책으로 복귀해 1년여가 흐른 시점이다. 그러나 건축가와 시공사 간의 갈등으로 공사는 여전히 삐걱거린다. “서울시 신청사가 중요한 이유는 건설사의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공사로 끝날 뻔했던 건물에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반영하려 했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건축가에게 집중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찍다 보니 시공과 감리 등 여러 가지 영역이 함께 건축에 대해 고민해야 좋은 건물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죠. 신청사에서 굉장히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하나의 사회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의 방향도 달라졌어요.” 2011년 10월 촬영을 시작한 감독은 서울시의 촬영 금지 통보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약 1년 반 동안 400시간 분량의 영상을 기록했다. 106분으로 압축한 영화에서 감독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 같은 신청사”의 숨겨진 서사다. 감독은 “담당자들의 입을 통해 드러내려 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라면서 “하나는 ‘신청사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가’였고 또 하나는 ‘만들어지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였다”고 설명한다. 영화는 이 두 가지를 면밀히 따라가면서도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들거나 성급한 결론을 통해 무조건적인 비판을 가하지는 않는다. “결론을 정말 못 내리겠더라고요. 제 주장을 담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모든 사람의 결론이 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 안에 파고들어서 속 얘기를 꺼내 놓게 하는 대신 관객들이 그들의 위치와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적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어요. 영화 안에서 턴키 공사를 맡았던 삼우의 설계안도 보여주고, 유걸 건축가와 함께 공모했던 다른 건축가들의 디자인도 보여주잖아요. 만약 지금의 신청사가 마음에 안 든다면 관객은 어떤 건물을 올리고 싶은 건지 상상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감독은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만으로도 신청사는 충분히 뜻깊고 좋은 건축물”이라면서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건축물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건축가가 박대받는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건축가의 의도를 일정 부분 반영했다는 점에서 신청사가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를 품게 만든다”는 것이다. 건축이 공간의 기억과 이야기를 손금처럼 품고 있다면 감독의 영화는 그것을 부지 바깥으로 확장시킨다. 그래서 그가 “지금 가장 바라는 것 중 하나는 신청사의 다목적홀에서 영화를 상영해” 공간에 기억을 더하는 일이다. “3부는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제가 극영화를 찍으면 다큐멘터리 같다고 하고,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극영화 같다고 해서 고민이에요(웃음). 아마 그 사이 어딘가에 제가 추구하는 영화적 현실이 있는 거겠죠. 영화가 장면의 완벽함을 추구한다면 다큐멘터리는 장면의 현실적 제약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다큐멘터리는 그 빈 구멍들을 관객에게 맡기는 장르 아닐까요.”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트러블메이커 ‘내일은 없어’ 뮤비 벌써부터 선정성 논란

    트러블메이커 ‘내일은 없어’ 뮤비 벌써부터 선정성 논란

    트러블메이커 현아와 장현승의 ‘내일은 없어’ 뮤직비디오가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다. ‘내일은 없어’ 뮤비의 과도한 선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8일 큐브엔터테인먼트는 트러블메이커 미니앨범 ‘케미스트리(Chemistry)’ 전곡과 타이틀곡 ‘내일은 없어’ 뮤비를 공개했다. ’내일은 없어’는 트러블메이커 현아와 장현승의 섹시미를 극대화한 곡으로 발매 직후 10대 온라인차트 1위에 올랐다. 현아와 장현승은 ‘내일은 없어’ 뮤비에서 도발적인 베드신과 농염한 키스신을 선보여 네티즌의 관심이 집중됐다. ‘내일은 없어’ 뮤비는 젊은이들의 위태로운 자화상을 감각적인 연출로 그려냈다. 티저 영상은 조회수가 300만건에 도달하는 등 일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내일은 없어’ 뮤비는 19세 미만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아 선정성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내일은 없어’ 뮤비를 접할 가능성이 높아 비판도 나오고 있다. 네티즌들은 “내일은 없어 뮤비, 너무 야하다”, “내일은 없어 뮤비 수위가 정말 높아 걱정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은 “창작물인데 문제될 것 없다”는 반응도 보여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커버스토리-밥그릇이 부른 세대갈등] “대학때 취업난·학점경쟁 심하지 않았으나 대량해고·부동산 거품·사교육비에 휘청”

    [커버스토리-밥그릇이 부른 세대갈등] “대학때 취업난·학점경쟁 심하지 않았으나 대량해고·부동산 거품·사교육비에 휘청”

    “학생 운동을 하다가 바로 정치에 뛰어들어 20년을 한 길만 보고 살아왔는데 내 자식을 위해 무엇을 했나 싶다.”, “국민 눈높이에서 그들의 아픔과 자신을 일치시키려는 노력보다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하는 권력 정치에 익숙해졌다.” 최근 이철호·김영춘 전 의원 등 ‘486(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정치인’의 ‘자아 반성문’이 눈길을 모으고 있다. 1980년대 5공화국 정권의 폭압에 맞서 투쟁하고 사회 변혁의 중추임을 자부했던 이들이 현실 정치에서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자기 반성인 셈이다. ‘486 세대’ 직장인들은 요즘 20대의 고민인 취업난과 치열한 학점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들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대량 해고와 부동산 거품, 자녀 사교육비 지출 등 냉혹한 현실에 부딪혀 결코 세상을 쉽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486 세대는 대학 입시에서 시대운을 타고난 세대로 불린다. 1980년 정부가 도입한 ‘졸업 정원제’ 덕택에 81학번부터는 대학 관문을 비교적 쉽게 통과했기 때문이다. 졸업 정원제는 신입생을 정원보다 30% 더 뽑았다가 졸업 때까지 탈락시키는 제도다. 일례로 1983년 서울대 입학 정원은 6526명으로, 올해 입학 정원(3124명)의 2배를 웃돈다. 도피용 군입대를 하거나 휴학하는 학생들이 많아 1987년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성적 미달로 제적된 학생은 많지 않았다. 486 세대가 대학을 졸업하던 시기는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여파로 대학생 취업난이 심각하지 않았다. 서울대 사회학과 84학번인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11일 “우리 세대가 대학을 다닐 때는 요즘 학생처럼 학점 경쟁에 민감하지 않았다”면서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취업은 힘들지 않아 학생 1명이 취업하면 학과의 경사로 여기는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털어놨다. 83학번인 고위 공무원 A씨는 “대학 시절을 회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최루탄”이라면서 “취업 부담감은 없었지만 이념을 둘러싼 고뇌와 갈등, 교우관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좋은 시절’은 1990년대 고도 성장기가 끝나고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막을 내린다. 84학번인 대기업 임원 B씨는 “입사 8년차에 외환 위기가 터지고 동기들이 대거 구조조정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면서 “입사한지 13년 만에 겨우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자녀들의 진학과 사교육비 문제로 고민하다 보니 어느덧 오십줄에 접어들었다”고 토로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화원, 조선의 민낯을 그리다

    화원, 조선의 민낯을 그리다

    어느 겨울 한 귀인이 휘하를 이끌고 야산에 올랐다. 몸종이 말을 끌고, 군복차림의 ‘일산(양산)’잡이가 멋진 일산을 받쳐 들었다. 중년의 귀인은 도포를 입고 훤칠한 말을 탔다. 말 뒤로는 꾀 많고 눈치 빠른 집사가 갓을 쓴 채 따른다. 술상을 인 건장한 찬비와 안줏감을 지고 가는 동자, 사냥몰이를 하며 짐을 진 하인 외에도 사냥개와 매까지 동원한 성대한 사냥이다. 조선시대 어느 고을의 원님 행차를 묘사한 이 그림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필치로 물 흐르듯 이어진다. 농묵으로 균형을 잡고 여린 중담묵으로 감미롭게 표현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손길 닿는 대로 가볍게 쳐댔지만 빈틈없는 짜임새는 단원 김홍도(1745~1824)의 붓끝임을 말해준다. 1795년 안팎에 그려진 ‘호귀응렵’(호탕한 귀인의 매사냥)은 이 시기 연풍현감으로 재직하던 단원의 자화상에 다름없다. 단원은 당대 최고의 화가이자 ‘화원’(畵員·궁중화가)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화원으로선 드물게 현감까지 올랐지만, 매사냥에 빠져 파직된다. 이후 ‘월하취생’ ‘낭원투도’와 같은 단원의 그림에선 술병과 사발, 벼루와 먹이 나뒹굴고, 신선과 선승이 등장한다. 스승인 표암 강세황(1713~1791)은 “단원의 마음은 스스로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중인(中人) 출신 화가의 울분을 위로했다. 한량처럼 밖으로 나돌던 혜원 신윤복(1758~?)은 또 어떤가. 아버지와 함께 2대째 화원으로 일한 혜원은 어려서부터 사대부 도령들과 어울리며 당시 은밀한 풍속을 그림으로 까발렸다. 조선시대 빨래터를 묘사한 ‘계변가화’에선 맑은 물소리와 방망이질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건장한 한량이 활을 든 채 여인들만의 세상인 빨래터를 지나다 눈길이 머문다. 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추파와 웃통을 벗어젖힌 노파의 밉살스러운 표정까지 불꽃 튀는 연정이 담겨 있다. 단원과 혜원의 풍속화를 비롯해 조선시대 화원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은 오는 13일부터 27일까지 올 하반기 정기 전시를 ‘진경(眞景)시대 화원전‘으로 마련했다. 진경시대는 조선 숙종부터 정조 때까지 120여년간의 문화 르네상스기를 이른다. 이 시기 특징을 잘 버무린 화원 21명의 그림 80여점이 전시회에 나온다.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진경시대는 조선 초기 지배이념인 주자성리학이 퇴계와 율곡의 조선성리학으로 바뀌던 때”라며 “비로소 우리 자연과 풍속, 복식은 물론 내면을 보여주는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시초는 사서삼경에 능했던 사대부 화가인 겸재 정선(1676~1759). 진경산수화는 한 세대 뒤 단원과 이인문 등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궁중화가들에 의해 더욱 발전한다. 하지만 정선의 제자였던 현재 심사정(1707~1769)과 강세황은 진경산수에 반발해 명대의 남종문인화를 수용한다. 그렇게 겸재와 현재의 화풍은 화원인 진재해와 김희겸, 최북과 변상벽 등에 의해 제각기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선 풍속화가로만 알려진 단원의 빼어난 산수화, 사군자 등도 엿볼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 (02)762-0442.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가슴에 ‘노란 리본’… 마음엔 생명 존중

    가슴에 ‘노란 리본’… 마음엔 생명 존중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하루 평균 43명, 33분에 1명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8년째 자살률 1위는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자치구들이 자살률 0%에 도전하는 행사를 펼친다. 구로구는 10~13일 생명 존중·생명 사랑 주간 행사를 연다. 첫날 구청 강당에서 자살 예방의 날 기념식을 갖고 ‘웃으면 건강, 성공, 행복해진다’라는 주제로 행복 강연을 한다.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심포지엄과 영화, 연극 공연도 마련했다. 구 전역에서 생명 사랑 초롱불 걷기, 희망의 노란 리본 달기 등을 통해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 계획이다. 강동구도 9~14일 생명 사랑 관련 행사를 집중적으로 준비했다. 10일에는 천일·신명·강동중학교 학생들이 참여해 학교폭력 자살 예방을 위한 캠페인을 전개한다. 11일에는 천호공원에서 주민 마음 건강 상담을 벌인다. 구청 직원 등은 9월 한달간 생명의 소중함과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근무한다. 도봉구는 지역 자원봉사 캠프와 연계해 생명 존중 주간을 운영한다. 특히 매월 10일을 ‘생명 존중 희망 두드림의 날’로 지정하고 생명 존중 숲길을 조성한다. 또 등산로, 중랑천변 등에 생명 존중 문구나 표어를 설치한다. 노인에게 웰다잉 프로그램 교육을, 청소년을 대상으로 ‘희망 편지 쓰기’도 실시한다. 자치구들은 자살률 감소를 위한 환경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동대문구는 자살 시도자 발생 때 신속한 대응 체계를 갖춰 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도록 10일 동대문경찰서와 자살 예방 협약을 맺는다. 강동구는 지난해 자살 예방 및 생명 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조례를 제정한 뒤 자살 위험 취약 지역 및 계층별 집중 관리 등 자살 예방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노원구도 지난 7월 1개 동에 ‘생명 사랑 나눔센터’를 개설했다. 구 관계자는 “자살 예방의 날을 계기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이 있는지 돌아보고 극단적인 선택을 예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대상을 보며 내면을 그린다, 재현이란 없다

    대상을 보며 내면을 그린다, 재현이란 없다

    작품마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녹아 있고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실험성이 강하며 개인의 관심사에 대한 흥미도 이채롭다. 지금 화랑가에는 이색 소재로 관객을 잡아끄는 묘미로 가득찬 전시들이 눈에 띈다. 여름 내내 폭염에 지친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휴식처가 될 만하다. 진 마이어슨(41)은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미국, 유럽, 홍콩에서는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다. ‘아시아의 앤디 워홀’로 불리는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51)의 ‘절친’이기도 하다. 구상화인 듯하면서도 추상회화의 맥을 잇는 작품들은 런던 사치갤러리, 뉴욕 첼시미술관, 솔로몬 구겐하임미술관 등 세계적 미술관으로부터 초대받았다. 이런 그의 눈에 비친 사물은 온통 왜곡돼 있다. 마치 독특한 렌즈가 달린 듯하다. 잡지, TV, 사진 등에서 빌려 온 이미지를 해체하고 비틀어 기존과 전혀 다르고 생뚱맞은 모습으로 캔버스에 풀어낸다. 서울 중구 황학동 등 도시 풍경을 찌그러뜨리거나 뒤틀고 통째로 이어진 듯 유기적인 모습으로 둔갑시키는 화법이 탁월하다. 웃음을 머금은 채 후드티를 뒤집어쓴 모습을 그린 자화상마저 보는 이들을 우울하게 만들 정도다. 작가는 “눈에 보이는 작품도 그리는 과정에서 왜곡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하다. 내 작품은 특정 장소를 그렸다기보다는 내면의 장소를 풀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작품 세계는 인천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어릴 적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 한국 이름은 박진호. 어린 시절 주변 300㎞ 반경에 동양인이라곤 단 한 명도 없던 시골 마을에서 자란 그는 그저 덩치 작은 동양인 외톨이였다. 늘 혼자 놀며 자연스럽게 그림에 애착을 가졌다. 역사학자인 아버지가 그를 미술가로 키웠다. 미니애폴리스 칼리지와 펜실베이니아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뉴욕과 파리, 서울을 거쳐 현재 홍콩에서 작업 중이다.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하고 단란한 가정도 꾸렸지만 여전히 마음속 상처는 깊다. “한국의 부모님을 만나려 시도했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는 그는 10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끝없는 경계’전을 이어 가고 있다. 2009년에 이어 한국에서 갖는 두 번째 개인전이다. 신작 회화 10점이 나왔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한 안두진(38)은 미술에 물리학을 접목한 ‘이마쿼크’ 이론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마쿼크는 ‘이미지’와 물질의 최소 단위인 ‘쿼크’의 합성어. 2008년 이 조형이론을 들고나온 뒤 자신의 작업을 ‘발생적 회화’라 부르며 캔버스에 깨알 같은 점을 차곡차곡 쌓아 이질적 풍경을 담아낸다. 점, 선, 면을 만드는 붓질을 계량화하는 독특한 기법을 구사한다. 대표작 ‘먹구름이 몰려오는 어느 날’을 보면 먹구름을 잔뜩 머금은 하늘이 폭발할 듯 숲과 마을을 노려본다. 뭔지 모를 엄청난 재앙이 닥칠 듯 불안한 이유는 무수한 꼬임과 붉은 기운이 감도는 형광색 캔버스 탓이다. 작가는 “세상의 모든 물질은 최소 단위인 원소 배열 구조로 이뤄졌고, 그림 또한 최소 단위인 ‘이마쿼크’의 조합으로 이뤄진다고 본다”면서 “(내 그림은) 풍경을 담지만 실존하는 풍경을 재현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2004년 등단한 작가는 그간 홍콩, 베이징 등 해외 전시에서 호평받았다. 다음 달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개인전 ‘오르트 구름’을 통해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10여년 전 인기 캐릭터 ‘동구리’를 세상에 처음 내놓은 권기수(41)는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의 동구리를 만들어 내느라 여전히 바쁘다. 내용이나 기술적인 면에서는 조금씩 변화도 꾀한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작업실에서 마주한 그는 “‘또 동구리네. 아직도 동구리야?’라는 반응이 제일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동구리는 한국화라고 주장한다. “언뜻 아크릴로 그린 팝아트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사군자와 강태공, 죽림칠현이 녹아 있다”고 한다. 동구리가 찌든 세상을 떠나 늘 웃는 모습으로 세상의 시름을 덜어 주는 이유다. 동구리의 최신 버전은 10월 27일까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박여숙화랑에서 열리는 ‘골든 가든’ 전에서 공개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사설] 사회갈등 풀 사회적 협의체 적극 가동해야

    우리 사회의 갈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심각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그제 전경련이 주최한 ‘국민통합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사회갈등 수준이 OECD 27개국 중 종교 분쟁국인 터키 다음”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영국·일본보다 두배나 높은 수준이다. 특히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연간 82조~24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갈수록 깊어지는 갈등의 골이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우리 사회의 이런 일그러진 자화상을 바로잡을 해법을 한시바삐 찾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 갈등의 요인은 한둘이 아니며, 날로 복잡하고 첨예해지고 있다. 4대강 사업과 제주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무상 복지, 층간소음 살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역 간, 노사 간, 이념 간, 정책 간 갈등이 복합된 것이다. 국무조정실이 중점 관리해야 할 갈등 과제가 69개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이슈만 터지면 온라인상에 지역색과 정치색 문구가 난무하는 모습을 우리는 목도한다. 합리적 견해나 대안 없이 자극적이고 자의적인 이분법적 주장이 넘쳐난다. ‘익명의 살인자’로 불릴 만큼 그 정도가 심하다. 최근 온라인에서 만난 뒤 이념 차이로 살인까지 저지른 사건은 이를 잘 말해준다. 세상에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고 한다.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도 마찬가지다. 갈등과 대립은 고착화되면 확대 재생산되게 마련이다. 특히 배려가 부족한 사회는 분위기가 경직되고 많은 사회적 비용 지불을 요구한다. 네덜란드와 독일이 노사 간 대타협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겼지만, 국민 간 갈등으로 경제가 파탄난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보라. 합리적 중간지대가 있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우리 정치권은 갈등을 조율하고 봉합하기는커녕 정쟁의 도구로 삼아 왔다. 정책 당국도 갈등에 방관자적 자세를 가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 갈등이 OECD 국가 중 4위이던 3년 전 정부의 갈등 조정능력은 23위였다. 이 추세라면 조만간 ‘갈등 1위국’을 꿰차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어쩌면 국민 모두가 내 탓이라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인 듯싶다. 사회갈등지수가 10% 낮아지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8∼5.4% 높아진다고 한다. 늦었지만 갈등해소, 혹은 갈등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이를 적극 가동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새 정부에서 발족한 국민대통합위는 이런 점에서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관련 조직들을 흡수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대통령은 대통합위에 전폭적인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휘발성 강한 국정 과제나 사회 갈등을 선제적으로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다. 세계 최악 수준의 갈등구조를 안고 있다는 불명예를 언제까지 짊어지고 갈 텐가.
  • [김균미의 빅! 아이디어] 중산층, 통계와 체감 사이

    [김균미의 빅! 아이디어] 중산층, 통계와 체감 사이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서민입니까? 지난 8일 정부가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이후로 주변에서 가장 많이 주고받은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부가 발표 하루 만에 연봉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린 중산층의 기준을 놓고 갑론을박은 상당히 잦아들었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중산층·서민의 기준과 정부가 제시한 기준선 간의 간극이 완전히 해소된 것 같지는 않다. 국민들이 지난 1주일 내내 귀가 따갑도록 들은 우리나라 중산층 기준을 다시 얘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보다 정부의 기준 상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국민들이 체감하는 중산층 기준과의 거리는 짚어야 할 것 같다. 서울신문이 잡코리아와 함께 지난 12~14일 시민 215명을 대상으로 중산층과 고소득층을 나누는 기준금액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31.2%가 총급여 5500만원이라고 답해 가장 많았다. 하지만 7000만원도 20.9%나 됐고 8000만원이라는 응답자 역시 8.8%였다. 자신의 소득계층을 묻는 질문에는 총급여 6000만원 이하는 ‘서민’이라는 응답과 함께 6000만원 초과자라야 ‘중산층’이라고 답변한 사람이 많았다. 이는 지난해 한 경제연구소가 실시했던 설문조사에서 ‘나는 저소득층이다’라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50.1%를 차지했던 결과와 일맥상통한다. 반면 2011년 기준 전 국민의 67.7%가 중산층이라는 정부의 기준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흔히들 사회의 허리인 중산층이 두꺼워야 사회가 안정되고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떨어진 중산층 비중을 70%로 올리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목표다. 우리나라의 중산층 규모는 1990년 75.4%에서 19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71.7%로 떨어진 뒤 카드대란과 2008년 금융위기를 연속해서 맞으면서 2011년 67.7%로 주저앉았다.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고 개인들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목표 달성이 녹록해 보이지는 않는다. 세계 1위 컨설팅회사 매킨지는 지난 4월 발표한 한국 관련 보고서에서 “한국 중산층의 55%는 적자 인생”이라며 가계부채와 사교육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장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정부 기준으로 중산층 규모가 무엇이든 간에 월급을 탈탈 털어도 마이너스 통장이 없으면 생활하기 쉽지 않은 것이 ‘가난한’ 한국 중산층의 자화상이다. 이런 마당에 아무리 복지정책을 위한 재원대책이라고는 하나 숫자에 대한 정부의 집착은 민심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결과라고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중산층에 대한 소속감과 행복지수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정부의 기준과 국민들의 체감 지수 간의 괴리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온다. 몇 차례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소득격차는 확대됐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지난해 0.30으로 전년보다 다소 개선됐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우리나라의 최상위 10% 가구가 얻은 평균소득이 하위 10% 가구의 10.5배나 됐다. 회원국 평균 9.4배보다 높고, 34개 회원국 중 9번째로 높다. 반면 행복지수는 OECD 34개 회원국 중 24위, 유엔 156개국 중에서는 56위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의 중산층 기준이 너무 금전적인 측면에 집중돼 있다면서 공정사회, 문화적 향유, 봉사활동 등 가치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의 예를 들었다. 당장은 현실성이 없어 보이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저녁과 주말이 ‘사치’가 아닌 ‘일상’이 된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지 싶다. 중산층을 늘리기 위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어려운 중산층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며, 사회 전반의 역동성을 되살리는 종합대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저소득층과 상대적으로 사다리의 아래에 있는 중산층이 체감할 수 있는 문제들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교육비와 가계빚 문제가 있다. 편집국 부국장 kmkim@seoul.co.kr
  • [사설] 패전 68년, 일본은 올바로 일어서야 한다

    광복 68돌을 맞은 어제 바다 건너 일본 열도가 보여준 모습은 한·일 양국 관계의 앞날과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안겨준다. 일본 제국주의 오욕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은 지 68년 된 이날 2차 대전 핵심전범들의 위패를 모아놓은 야스쿠니 신사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참배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이 중엔 직접 참배하거나 대리인을 보낸 일본 중·참의원 190명도 포함돼 있다. 지난 4월 춘계 예대제 때의 168명을 뛰어넘은 역대 최대 규모다. 일본의 각료 15명 가운데 신도 요시타카 총무상 등 3명도 참배했다. 갈수록 우경화하는 일본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나마 아베 신조 총리와 그동안 참배를 공언했던 아소 다로 부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한·일 관계를 넘어 일본 스스로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비록 대리인을 통해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고 하나 아베 총리가 참배의 뜻을 접은 것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뜻으로 여겨진다. 동북아에서의 영토 갈등, 역사 갈등을 우려하는 미국 행정부의 뜻도 크게 작용했다고 할 것이다. 지금 일본은 68년 전 패전국의 멍에를 쓰고 만든 평화헌법을 개정해 이른바 ‘정상국가’로 다시 일어서고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임기 중 개헌을 공언하고 있기까지 하다. 우리는 일본이 훗날 ‘정상국가’로 거듭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엔 대전제가 있다. 100여년 전 침략의 역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있어야 하며,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일본은 스스로 제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침략의 역사를 축소·은폐하고 미화하는 교과서로 후대에게 그릇된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 우기며 국제분쟁화하는 행태는 스스로 정상국가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아닌가. 이런 왜곡된 정상국가화로는 한·일 관계의 정상화를 더욱 요원하게 만들 뿐임을 알아야 한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과거사를 직시하는 용기와 동북아의 공동번영을 위한 일본의 역할을 주문했다. 과거 그 어느 8·15 경축사보다 절제된 한국 정상의 메시지를 일본은 잘 헤아려야 한다. 각 영역에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두 나라가 일본의 그릇된 극우 리더십으로 인해 갈수록 간극을 벌리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한 일본의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한·일 모두에 유익한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 그 이전에 단절되다시피 한 양국 간 외교 행보부터 제 궤도로 돌려놔야 한다. 이는 오롯이 자신들의 몫임을 아베 정부는 십분 헤아리기 바란다.
  • [데스크 시각] 불안과 불편/박상숙 산업부 차장

    [데스크 시각] 불안과 불편/박상숙 산업부 차장

    초등생 아들이 수련회를 다녀왔다. 처음으로 혼자 집을 떠난 2박 3일.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이 왔을 때 고민스러웠다.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기우(杞憂)라고 해도 혹시 모를 사건, 사고가 걱정됐다. 어린이들이 희생된 십수년 전 씨랜드 화재의 악몽도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내가 간 ○○○수련장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데래.” 건강한 얼굴로 씩씩하게 돌아온 아들은 집 떠난 첫 경험을 묻는 말에 자랑이 늘어진다. 아이의 굳은 믿음에 이제 시설과 시스템이 좋아졌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긴 그렇게 많은 인재를 겪었으니 그래야겠지. 방심은 금물이라더니 얼마 안 가 생때같은 고등학생 5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설 해병대 캠프 사건이 터졌다. 이보다 허망한 죽음이 또 있을까. 주민들도 위험하다고 말렸던 바닷가로 아이들은 구명조끼도 없이 내몰렸다. 그즈음,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지하에서 상수도관 공사를 하던 근로자들이 불어난 물에 수장된 변고가 있었고, 방화대교 상판이 무너지면서 귀중한 생명이 희생당하는 비극이 이어졌다. 원인은 이번에도 역시나 ‘안전 불감증’이다. 특정 구호나 단어가 자주 거론되는 데는 그런 표현이 상징하는 내용이 사회에 제대로 구현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역설처럼 우리는 늘 안전 불감증을 말할 뿐 여전히 안전을 ‘불감’하고 있다. 산업현장의 빈번한 안전사고로 경각심이 높아질 만한데도 글로벌 일류를 지향한다는 삼성조차 불산 누출, 물탱크 붕괴 등 인재를 잇달아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몇 년 전 이탈리아에서 만났던 한 지인의 체험적 비교문화론이 생각난다. 흔히 이탈리아도 반도국가라 한국인과 성향이 비슷하다고 한다. 그는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면서 ‘불안과 불편’을 키워드로 끄집어 냈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이탈리아 사람은 불편한 건 참아도 불안한 건 못 참는다. 이와 반대로 대부분의 한국인은 불안한 건 참아도 불편한 건 못 참는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5층, 7층짜리 건물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도 상당하다. 혹시 모를 엘리베이터 고장에 대한 불안을 견디느니 불편해도 두 발로 걸어 올라가는 게 차라리 낫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그 나라에서는 어린 아이를 엘리베이터에 혼자 태우는 것은 불법이다. 안전사고나 납치 등의 범죄를 우려해서다. 자칫하면 부모가 경찰에 불려 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불안과 동거하는 데 익숙하다. 연이어 터진 어이없는 죽음은 불안보다 불편을 먼저 앞세운 탓이다. 먼 바다도 아닌데 구명조끼 없이 들어간다고 무슨 일 나겠어? 공사가 하루가 시급한데 비 좀 내린다고 별일 있겠나? 규칙 좀 어겼다고 무슨 큰일이 터질까? 21세기 정보기술(IT) 강국에 사는 우리는 여전히 ‘설마가 사람을 잡게’ 하고 있다. 얼마 전 6·25 정전 60년 기념식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은 승리자”라고 칭송해 마지 않았다. 초토화된 폐허에서 마천루의 숲으로 바뀐 서울은 성형미인의 ‘비포, 애프터’ 사진보다 더 극적인 변신을 이뤘으니 그럴 만하다. 그러나 예뻐진 외모와 커진 덩치에 걸맞게 인식은 자라지 못했다.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이지만 안전의식은 턱없이 낮은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을 신봉하면서 안전수칙을 불편으로 인식하는 한, 한국사회는 불안을 계속 이고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alex@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경복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경복

    ‘다섯은 너무 많아’라는 독립영화가 있다. 감독이자 교사인 안슬기는 거리의 소년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집을 주기로 한다. 보통의 집과 다르기를 바랐던 그는 “가족의 당위성을 의심하는 새로운 대안가족의 형태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복’ 을 연출한 최시형은 ‘다섯은 너무 많아’에서 16살의 가출소년 동규를 연기했다(배우로 활동할 때의 이름은 유형근이다). 어쩌면 최시형은 데뷔작을 만들면서 배우로서의 시작점을 기억했던 것 같다. ‘경복’의 주인공 형근은 동규의 몇 년 후 모습처럼 보인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형근은 딱히 미래의 계획이라곤 없는 청년이다. 부모가 여행을 떠난 사이 형근은 엄마가 멀리하라고 일러둔 동환을 불러들인다. 형근은 시시때때로 노트에 뭔가를 끄적거리고, 동환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막연히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은 형근과 동환은 첫걸음을 떼기 위해 먼저 집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앞뒤가 맞지 않는 생각이고 뚜렷한 방안도 없지만 두 얼치기는 용케 길을 찾아낸다. 스무 살 두 청년의 겨울은 그렇게 흘러간다. ‘경복’은 이상한 영화다. 분명 스무 살 시절을 되돌아보는 영화인데, 어떤 때는 현재의 시점에서 찍은 것 같은 자화상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그러다 미래 시점의 쇼트를 삽입해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컬러와 흑백 장면을 나눈 기준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알기 힘들다. 무엇보다 형근과 동환의 탈출 계획이 비현실적이기 그지없다. 부동산계약서를 한 번이라도 접해 본 사람은 그들의 행동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 텐데, 그들은 아무 문제없이 실천에 옮긴다. ‘경복’은 집에서 떠나기를 갈망하는 청춘을 그린 판타지일까. 형근과 동환이 세입자로 나선 세 인물과 나누는 대화가 압권이다. 첫 인물은 곧 개봉할 ‘숨바꼭질’의 감독 허정이 연기했고, 두 번째 인물은 배우 한예리가 맡았으며, 세 번째 인물은 ‘전국노래자랑’으로 데뷔한 이종필 감독이 분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실없어 보이지만, 독립영화의 선후배가 풀어놓는 대화는 은근히 언어의 경연처럼 느껴진다. 현실에선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아무도 그들의 상황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진 것이라곤 그것밖에 없기에 그들은 말을 쏟아내고 생각을 나눈다. ‘경복’에는 터널 장면이 반복해서 나온다. 기타를 맨 동환이 혼자 터널을 걷는 쓸쓸한 흑백 장면과 달리, 형근과 동환이 함께 터널을 통과할 때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밝고 화사하다. 독립을 맛본 그들은 이후 한동안 웃으며 지냈을 것이다. ‘경복’은 그들의 현재를 묻지 않는다. 대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함께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웠던 두 청춘의 기억을 담는 데 충실할 뿐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또 다른 스무 살 청춘에게 들려주길 원한다. 큰 복을 뜻하는 경복은 푸른 청춘에게 행운을 기원하는 감독의 사인에 다름 아니다.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 [글로벌 시대] 다문화 사회와 국가품격/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글로벌 시대] 다문화 사회와 국가품격/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한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신뢰와 존경을 받으면서 선진사회로 나아가는 길은 국가의 품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격은 그 나라의 소프트 파워이자 경쟁력 그 자체로 오늘날 세계 각국은 트리플에이(AAA) 국격 등급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국가의 품격을 재단하는 데는 여러 잣대가 있다. 국제사회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글로벌 표준이 국민생활 속에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 하는 점 또한 국격 판정의 중요한 바로미터일 것이다. 이제 문화다양성 수용은 국가의 품격을 가늠하는 시대적 척도가 되었다. 오늘날 국가·지역 간 통합과 상호 의존이 심화되어 감에 따라 인구 이동 또한 더욱 활발해져 국경 개념이 무색해졌다. 어느 나라에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 없이 거주 외국인 150만명의 다인종·다문화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수많은 글로벌 시민들이 ‘기회의 땅’ 한국행 티켓을 차지하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땅을 선택한 이 시민들이 지닌 ‘다름’과 ‘차이’가 더 이상 장애 또는 곤란이 아니라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자 국가발전의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시대임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을 포용하여 문화융성을 향한 동반자의 여정을 함께 가야 한다. 국민 인식 및 법·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합치시키고 동시에 사회적 캠페인을 부단히 전개해 나가야 한다. 유엔은 세계 193개 이질적 회원국 간 화합과 조화를 추구하는 지구촌의 대표적 결집체다. 한국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선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사는 국제사회 흐름의 축소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유네스코는 다문화 현상의 범세계적 확산을 일찍이 내다보고 2001년 채택한 ‘세계문화 다양성 선언’ 제1조에 ‘교류·혁신·창조의 근원으로서 문화다양성은 인류에 필요한 것’이라 명시했다. 우리는 바로 이웃한 아세안이 ‘다양성 속의 조화’라는 기치 아래 모범적인 다문화·다인종사회를 발전시켜 가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5년 공동체 출범을 목표로 지역통합을 가속화하고 있는 아세안은 다양한 민족, 언어, 종교, 정치체제 및 경제발전 차이 등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괄목할 만한 공동체를 건설함으로써 유럽연합(EU)에 이어 가장 성공한 지역협력체의 모범사례로 칭송받고 있다. 한-아세안센터는 최근 ‘다문화 국제워크숍’을 개최하고 한국 다문화사회 발전에 대한 아세안의 기여와 미래 파트너십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아세안 출신 국내 이주민 수의 급속한 증가추세 속에 현재 15만명의 노동 이주민과 7만명의 결혼 이주여성이 동남아 출신이며, 특히 다문화가정 출생 자녀 둘 중 한 명은 동남아 출신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이런 동남아 이주민들이 대한민국의 다양한 문화 얼굴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사회 통합의 상징적 역할을 하고 한국과 동남아를 매끄럽게 연결시켜 주는 끈끈한 고리가 되도록 국민적 관심을 기울이자. 지난 반세기 동안 불굴의 투지와 성취욕으로 무장한 우리 국민들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는 신화를 창조했다. 전세계 개도국들에 오늘의 한국은 자신들이 닮고 싶은 내일의 자화상이라는 꿈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숙한 다문화사회 정착을 통해 지구촌의 행복을 이 땅에서 실현할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품격의 나라가 될 것이다.
  • 유쾌한 척, 행복한 척… 그 뒤엔

    유쾌한 척, 행복한 척… 그 뒤엔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알쏭달쏭한 미소는 무엇을 뜻할까. 얼핏 웃는 것 같기도, 우울한 것 같기도 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현대인의 획일적 웃음을 표현해 온 화가 김지희(29)의 연작 ‘양머리 소녀의 미소’도 마찬가지. 투명하고 맑은 눈과 해맑은 미소를 머금어 금방이라도 만화영화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얼굴을 절반쯤 가린 커다란 선글라스 뒤로 알 수 없는 고독이 느껴진다. 교정기와 ‘오드 아이’(양쪽 눈동자 색깔이 다른 것)를 소재로 삼았다. 마치 두 얼굴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원초적 한계를 콕 집어내는 듯하다. 작가는 “현대인의 획일적인 웃음과 자화상을 경쾌한 미술적 언어로 풀어내고자 했다. 물질문명이 쏟아낸 온갖 욕망과 불안을 소녀의 미소에 담았다”고 말했다. 작가는 4~1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청작화랑에서 초대전을 연다. 군복의 위장 무늬에서 모티브를 얻어 현대사회의 첨예한 경쟁을 조형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실드 스마일’(Sealed smile) 인물 연작에 이어 6년 만에 선보이는 연작 시리즈 ‘버진 하트’(virgin heart)도 나온다. (02)549-3112.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표암 강세황/문소영 논설위원

    푸르스름하고 동글동글한 집채만 한 바위들이 굴러 떨어질 듯이 놓여 있고 나귀를 탄 선비와 딴청을 피우는 동자가 산으로 난 오솔길을 천천히 올라가고 있다. 표암 강세황(1713~1791)이 그린 ‘영통 동구’를 미디어작가 이이남이 재치 있게 표현해 놓은 작품을 보고 낄낄거린 적이 있다. ‘영통 동구’는 강세황이 45살에 개성에 갔다 와 그린 ‘송도기행첩’에 들어 있다. 그는 화제(畵題)에서 ‘영통 동구에 어지러이 놓여 있는 돌들은 집채만큼 웅장하고 크다. 그 돌 밑에 용이 나왔다는데 그 웅장한 모습은 가히 보기 드문 장관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원근법이 나타난 진경산수 화풍인데,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서양화법으로 그렸다고 평가했다. 시·서·화에 모두 능했고 정선, 심사정과 함께 18세기에 삼절(三絶)로 불렸으며, 단원 김홍도의 그림선생이었던 강세황 특별전이 25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탄생 300주년 맞이 기획전이다. 강세황의 일생을 보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강세황은 아버지 강현(1650~1733)이 64살에 얻은 막내아들이었다. 북인인 아버지는 숙종 때 예조참판, 도승지를 거쳐 대제학까지 지냈으니 명문가 출신이다. 그런데 강세황은 32살의 나이에 출세를 포기하고 처가가 있는 안산으로 내려갔다. 큰형이 과거시험에서 부정을 저질러 그 여파가 미쳤고, 무엇보다 당쟁에서 북인이 완전히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안산에서 30년을 시 짓고 글씨 쓰며 역시 ‘끈 떨어진’ 남인들과 교우했다. 송도기행첩도 이른바 ‘백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51살부터 10년 동안 절필도 했다. 영조가 “천한 기술이라고 업신여길 사람이 있을 터이니 다시는 그림 잘 그린다는 이야기를 하지 마라”고 하명했던 탓이다. 그는 61살에 영조의 부름을 받아 여주 영릉참봉으로 첫 관직을 시작했다. 탕평책의 일환이었다는 설도 있고, 영조가 강현의 손자인 강세황의 두 아들이 과거에 합격하자 강현의 아들이 왜 벼슬도 없이 살고 있느냐며 불렀다는 말도 있다. 강세황은 실력이 있었다. 66살에 과거시험에서 당당히 장원급제를 한 것이다. 한성판윤(현재 서울시장)으로 승진했다. 71살에 기로소(耆老所) 에 입소했다. 청나라 건륭제가 칠순맞이 축하연에 70살이 넘은 사신을 보내라고 하자 강세황은 72살에 베이징 연행(1784~1785)을 다녀왔다. 고흐만큼은 아니더라도, 자화상을 강세황도 많이 그렸다. 아쉽지 않은 인생이었다. 늦는다고 늦은 것이 아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소리칠 것이 없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열린세상] 친구여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라/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

    [열린세상] 친구여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라/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

    며칠 전 친구를 만났다. 3년 전에 50세의 나이로 명예퇴직을 한 친구는 퇴직금으로 지방에 조그만 가게를 열고 갖은 고생을 했지만 결국 투자금을 다 날리고 말았다. 열과 성을 다해 회사 일에 매진하다 날벼락처럼 강제 퇴직을 당했을 때, 친구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를 이고 주름살이 깊게 팬 초췌한 모습의 그를 보면서 너무 마음이 쓰렸다. 젊은 시절 최루탄 가스에 눈물·콧물을 흘리면서 돌멩이를 던지고, 대기업 임원으로 지치지 않고 일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친구는 대학을 졸업한 외동아들이 아직 취직을 못 하고 결혼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50대는 군사독재에 맞서 1987년의 6월 항쟁을 주도한 세대이다. 이 세대로 하여금 젊은 시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거리에 나서게 한 고귀한 신념은 무엇일까. 그것은 독재에 맞서 빼앗긴 자유를 되찾는 것이리라. 교정에 무장 군인과 탱크를 진주시키고, 광주를 비롯한 이 땅 곳곳에서 무자비한 탄압과 살육을 자행하는 광포한 독재 정권에 맞서, 그들은 젊은 날의 고귀한 피를 아낌없이 흘렸던 것이다. 김인숙의 ‘바다와 나비’를 보면, 더욱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면서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던 젊은 남녀가 등장한다. 이후 둘은 결혼을 해 부부가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의 길은 갈라진다. 남편은 점점 타락해 가는 자본주의 한국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젊은 날의 순수한 열정과 신념을 지키고자 자신을 외곬으로 몰아간다. 그런 그의 모습은 소금물에 전 날개로 냉혹한 현실의 바다를 힘겹게 건너려는 나비와 같은 존재에 비유된다. 반면 아내는 일상에 안주한 채 ‘글로벌 교육’을 위해 자식을 중국에 유학 보낸다. 50대를 맞이한 6월 항쟁 세대 대부분은 앞선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의 중간자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들 대부분은 취직을 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나가는 평범한 일상인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젊은 시절 피 흘리며 추구했던 숭고한 정신을 늘 가슴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다. 생활인으로서의 고뇌와 민주화 세대라는 자부심이 뒤섞인 채, 가정과 사회를 위해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한국 사회를 이끌어온 세대가 50대이다. 그런 50대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또다시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사회는 물론이고 가정에서조차 버림받은 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아무런 노후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자식도 건사하지 못한 채 직장으로부터 버림받은 친구의 막다른 삶 앞에서 나는 아무런 위로도 해 줄 수 없었다. 그것은 친구 개인의 모습이 아니라, 암울하고 불행한 시대를 살아온 50대 우리 모두의 슬픈 자화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우냐고 울먹이면서 힘없이 고개를 떨구던 친구의 모습을 나는 차마 지켜볼 수가 없었다.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에는 4·19 세대가 혁명 후 18년이 지난 뒤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제시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회비를 만 원씩 걷고/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이 시에서 젊은 날의 뜨거운 사랑의 그림자마저 잊고 속물이 되어 살아가지만, 그런 제 모습을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떨구는 4·19 세대의 자기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친구에게 꼭 이 말은 해주고 싶다. 친구여, 고개를 떨구지 마라. 우리가 고개를 떨굴 일은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옛사랑의 그림자마저 망각한 상황에 대해서일 뿐이다.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더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던 그 정신을 떠올리면서 오늘의 암담한 상황을 헤쳐나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에서 이런 위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격동의 역사를 헤쳐 나온 우리 50대가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친구여,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라.
  • 60년간 오로지 연필로만 그려낸 인고의 나날들

    60년간 오로지 연필로만 그려낸 인고의 나날들

    철권통치로 서슬 퍼렇던 1970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열린 원석연(1922~2003) 화백의 개인전을 찾았다. 박 전 대통령은 큼지막한 종이에 그린 개미 그림을 바라보다가 새마을 운동의 구호인 ‘근면, 자조, 협동’을 떠올리며 격려했다. 원 화백의 입가에는 쓴웃음이 감돌았다. 그에게 개미는 빈곤하고 고달픈 사회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고뇌의 흔적이었다. 그림 속 수백 마리의 개미 떼가 아웅다웅 다투는 주변에는 개미들의 몸통에서 떼어진 다리가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원 화백의 이름이 화단에 각인된 것은 ‘개미’ 연작 덕분이다. 실물 크기로 정밀하게 그려진 수백, 수천 마리의 개미 떼가 탄성을 자아낸다. 개미 그림은 6·25전쟁 피란 시절 비롯됐다. 전쟁의 비인간적인 단상을 탱크의 바퀴 자국이 깊게 파인 길에 누군가 벗어 놓은 고무신 한 짝, 그리고 참혹한 개미 떼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개미 떼뿐만이 아니다. 줄에 엮인 굴비나 마늘 그림은 순수하지만 알 듯 모를 듯 고즈넉한 외로움과 슬픔을 불러온다. 거미줄에 걸린 벌레를 노려보며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은 새 그림에는 ‘외로운 녀석’이란 이름을 붙였고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는 귀여운 강아지의 처량한 모습을 담은 그림은 ‘고독한 녀석’이라 불렀다. “내 모습이 꼭 저렇다”며 자화상이라고 했다. 말년에는 호미, 엿가위, 칼 등의 쇠붙이를 즐겨 그렸다. 영원할 것 같은 쇠붙이도 녹슬고 뭉개져 낡은 모습을 띤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역시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이다. 이중섭과 교류하며 현실 세계의 아픔을 개미, 새, 닭, 개, 생선 등을 통해 주로 표현했다. 60년 가까이 오로지 연필로만 그림을 그린 원 화백의 10주기 추모전이 20일부터 다음 달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린다. ‘이색 작가’ ‘열외적인 작가’로 불린 원 화백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예술인으로 유명하다. 오광수 미술평론가는 “일정한 소속의 화랑도 없고 주변에 사람도 많지 않았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연필과 종이로만 살아온 삶은 인고의 나날로 점철됐다”고 말했다. 원 화백은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으며 15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그림을 배웠다. 22살 때 귀국해 1947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런 그가 박 전 대통령과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주한 미국 공보원에서 근무하다 1963년 도미해 닉슨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렸다. 1960년대 후반에는 정처없이 전국을 누비다가 경북 구미에서 발견한 허름한 초가를 화폭에 옮기려다 건장한 사내들에게 쫓겨 나오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였다. 추모전에는 박 전 대통령 생가 그림도 걸려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도발·충격적인 러시아 현대사진

    도발·충격적인 러시아 현대사진

    지난달 24일부터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러시아 현대 사진전’은 러시아 현대 예술과 조우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러시아 작가들의 현대 사진전이 국내에서 열리기는 처음이다. 러시아 미술평론가인 이리나 츠미레바는 영향력 있는 대표작가 10명의 작품 100점을 엄선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러시아 사진계를 이끌어온 50대 원로 작가부터 1990년대부터 2000년대 들어 작업을 시작한 20~40대 중견·신진 작가까지 다양하다. 50대인 안드레이 체쥔, 니콜라이 쿨레비야킨, 바딤 구쉰의 작품은 다분히 도발적이다. ‘개념 예술가’인 체쥔은 ‘자화상’ 시리즈를 통해 과거 스탈린 시대를 비판한다. 사람의 얼굴을 배지, 핀, 못, 숫자 등을 통해 표현해 충격을 안긴다. “개인은 국가라는 기계의 톱니바퀴일 뿐”이라던 스탈린의 연설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작품이다. 체쥔은 “예술의 주된 구성 요소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구쉰의 작품은 인간의 공감각을 조롱한다. 형형색색 봉투와 책을 통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비현실적인 공간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30, 40대인 그레고리 마이오피스, 이고르 쿨티쉬킨과 20대 유망주 알리사 니쿨리나, 키르 예사도프, 마리아 코자노바, 페트르 라흐노프 등의 작품도 주목받는다. 흑백의 틀에 갇혀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크멜리 수넬리 아트그룹의 ‘전쟁 이후의 풍경’시리즈는 구소련 해체 후 러시아의 혼란기를 연출한다. 땅 위에 어지럽게 널린 동물의 뼈가 아날로그 카메라에 담겼다. 신예 코자노바의 ‘거리두기를 선언하다’는 고도로 조직화된 러시아 사회의 붕괴를 일본식 코스프레를 한 젊은이들의 모습으로 나타냈다. 반면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마이오피스는 침대 위에 앉아 있는 곰(‘정치는 뜻밖의 동료를 만든다’)을 통해 해학을 드러냈다. 관람료는 무료. 10일까지 서울본점, 8월 13일까지 경기 안양점과 전남 광주점의 갤러리에서 전시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길섶에서] 낙서/정기홍 논설위원

    어릴 적 낙서 추억이 두엇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친구와 함께 철로의 목침(木枕)에다 ‘선생님 욕’을 분필로 써 놓아 야단을 호되게 맞은 적이 있다. 100m 거리에 분필 자국을 냈으니 철로가 하얗게 보일 정도였다. 철딱서니 없던 때의 일이다. 중국의 중학생이 3000년 된 이집트 부조 문화재에 ‘나 왔다 간다’는 낙서를 썼대서 중국 네티즌들이 당사자 신상털기에 나서는 등 시끄럽단다. 1960~70년대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낙서에는 역사와 문화가 깃들어 있다. 그런 만큼 그 사회의 의식 수준을 가늠케 한다. 피라미드 등에 써 놓았다는 ‘요즘 애들 버릇 없다’는 낙서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지 않는가. 중국인이 화난 것은 몰지각한 문화재 훼손 때문이겠지만 ‘왔다 간다’는 단수 낮은 문구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낙서 속의 문구도 잘 갈무리하면 한 편의 시가 된다. 얼마 전 어느 휴게소의 화장실에 들렀다가 ‘졸음운전 안 하는 법’이란 글을 보고 온갖 낙서로 가득했던 공간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도 문화사회로 가는 통과의례를 겪는 것이리라.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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