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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화 “예산, 법안 처리 수단 안 돼”

    정의화 국회의장은 3일 새해 예산안과 쟁점 법안에 대한 여야의 연계 처리와 관련, “국회의원은 거수기가 되고 국회 상임위원회는 겉도는 부분이 많다. 대신 여야 지도부에 의한 주고받기식 거래 정치는 일상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의장은 이날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법정시한(2일 밤 12시)을 넘겨 예산안이 통과된 직후 “이것이 현재 우리 의회 민주주의의 현실이고 자화상”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저를 포함한 모두가 자성하고 그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 의장은 “국회는 상임위 중심으로 예산과 법안을 논의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예산안과 법안을 의결해야 한다”며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서 법안을 충실히 심의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신성한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을 법안 통과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법률에 명시된 법제사법위원회 숙려 기간도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정 의장은 예산안과 법안에 대한 여야의 연계 처리 방침에 반대하며 예산안은 2일, 법안은 8일 별도 처리하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12년 만에 처음으로 예산안을 법정시한 내에 처리했던 국회는 결국 1년 만에 또다시 헌법을 어기는 오점을 남겼다. 정 의장은 “지금 국회는 국회의원과 상임위가 보이지 않고 여야 정당 지도부만 보이는 형국”이라고 지적한 뒤 “법률에 명시된 대로 예산을 통과시키는 전통이 뿌리내리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누구나 시인… 살면서 뭔가 남기려는 사람들 담아”

    “누구나 시인… 살면서 뭔가 남기려는 사람들 담아”

    시인 함명춘(49)이 확 달라졌다. 등단 초기의 관념적인 시 세계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삶과 이야기를 담은 시집을 내놨다. 첫 시집 이후 17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문학동네)이다. 내면의 생각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생동감 있게 그려 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더 따뜻해졌다. 시인도 “이번 시집엔 삶에 대한 애착, 잊히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시인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1998년 첫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를 냈다. “첫 시집을 낼 때 자연을 배경으로 상상을 넓혀 가는 시를 썼으면 좋았을 텐데 언어에 대한 탐구 관점에서 시를 써 언어의 부정적 측면에 매몰되고 말았어요. 언어가 무서워졌고 부정적 언어로 시를 쓰는 게 죄악처럼 느껴져 ‘문학적 실어증’에 빠졌습니다. 1993년 호구지책으로 출판업에 뛰어들었는데 그 무렵 먹고사는 문제도 심각해져 시와 멀어지게 됐죠.” 2005년 고 최인호 작가와의 만남으로 시를 쓸 동력을 얻게 됐다. “최 선생님의 책을 내기 위해 찾아뵌 게 인연의 시작이었어요. 이후 선생님께서 몸이 안 좋아지시면서 제게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셔서 선생님 출판사로 옮겼어요. 아픈데도 쉬지 않고 글쓰기에 매진하시는 모습이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글은 행동하는 것, 상황에 관계없이 쓰는 행위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사람들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언어의 긍정적인 면도 깨달았다. 2010년 조금씩 상상력이 열리면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던 세월을 견뎌 낸 안타까움은 표제작 ‘무명시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에 없었던/난 그가 연필을 내려놓는 것을 본 적이 없다/(중략) 난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기야/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 들이 그의 유일한 독자였으니/세상을 위해 쓴 게 아니라 세상을 버리기 위해 쓴 시처럼/난 그가 집 밖을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잠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먹는 것도 본 적이 없다/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자꾸 적어 넣었다’(무명시인) “사실상 저의 자화상이에요. 2011년에 두 시간 만에 쓴 걸로 기억돼요. 글을 놓았어도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글을 쓰고자 하는 행위를 많이 했어요. 단 한 편의 시도 완성하지 못했지만 쓰기 위해 고심을 많이 했죠. 저의 자화상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면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어요. 누구나 무명시인이에요. 작품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살면서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자연의 힘을 노래한 시들이 돋보인다. 건조하고 힘든 도시의 삶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살고 싶은 직장인들의 절실한 마음을 담은 ‘분천역에서’, 인간의 힘든 상황을 정화해 주기 위해 좋은 공기와 환경을 만들어 내는 숲과 자연을 노래한 ‘자작나무숲에서’ 등이 대표적이다. 시인은 시집 들머리 시인의 말을 최 작가와의 대화로 갈음했다. ‘작가 최인호가 물었다. “명춘아, 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 줄 아니?” 내가 말했다. “음, 사랑이요 아니 믿음이요.”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아니다 죽는 거다.” 우린 말없이 걸었다.’ “시인의 말은 당초 ‘최인호’라는 제목으로 쓴 시였어요. 본문에 시를 넣으려다 시인의 말로 쓰는 게 더 좋을 듯했어요. 최 선생님의 말씀은 ‘열심히 살아라. 삶을 직시하라. 에돌아 생각하지 말고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화두처럼 들렸어요. 제 가슴속에 깊이 새겨 놓은 말입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함명춘 시인 17년만에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 출간

    함명춘 시인 17년만에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 출간

    시인 함명춘(49)이 확 달라졌다. 등단 초기의 관념적인 시 세계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삶과 이야기를 담은 시집을 내놨다. 첫 시집 이후 17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문학동네)이다. 내면의 생각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생동감 있게 그려 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더 따뜻해졌다. 시인도 “이번 시집엔 삶에 대한 애착, 잊히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시인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1998년 첫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를 냈다. “첫 시집을 낼 때 자연을 배경으로 상상을 넓혀 가는 시를 썼으면 좋았을 텐데 언어에 대한 탐구 관점에서 시를 써 언어의 부정적 측면에 매몰되고 말았어요. 언어가 무서워졌고 부정적 언어로 시를 쓰는 게 죄악처럼 느껴져 ‘문학적 실어증’에 빠졌습니다. 1993년 호구지책으로 출판업에 뛰어들었는데 그 무렵 먹고사는 문제도 심각해져 시와 멀어지게 됐죠.”  2005년 고 최인호 작가와의 만남으로 시를 쓸 동력을 얻게 됐다. “최 선생님의 책을 내기 위해 찾아뵌 게 인연의 시작이었어요. 이후 선생님께서 몸이 안 좋아지시면서 제게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셔서 선생님 출판사로 옮겼어요. 아픈데도 쉬지 않고 글쓰기에 매진하시는 모습이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글은 행동하는 것, 상황에 관계없이 쓰는 행위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사람들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언어의 긍정적인 면도 깨달았다. 2010년 조금씩 상상력이 열리면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던 세월을 견뎌 낸 안타까움은 표제작 ‘무명시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에 없었던/난 그가 연필을 내려놓는 것을 본 적이 없다/(중략) 난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기야/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 들이 그의 유일한 독자였으니/세상을 위해 쓴 게 아니라 세상을 버리기 위해 쓴 시처럼/난 그가 집 밖을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잠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먹는 것도 본 적이 없다/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자꾸 적어 넣었다’(무명시인)  “사실상 저의 자화상이에요. 2011년에 두 시간 만에 쓴 걸로 기억돼요. 글을 놓았어도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글을 쓰고자 하는 행위를 많이 했어요. 단 한 편의 시도 완성하지 못했지만 쓰기 위해 고심을 많이 했죠. 저의 자화상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면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어요. 누구나 무명시인이에요. 작품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살면서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자연의 힘을 노래한 시들이 돋보인다. 건조하고 힘든 도시의 삶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살고 싶은 직장인들의 절실한 마음을 담은 ‘분천역에서’, 인간의 힘든 상황을 정화해 주기 위해 좋은 공기와 환경을 만들어 내는 숲과 자연을 노래한 ‘자작나무숲에서’ 등이 대표적이다. 시인은 시집 들머리 시인의 말을 최 작가와의 대화로 갈음했다. ‘작가 최인호가 물었다. “명춘아, 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 줄 아니?” 내가 말했다. “음, 사랑이요 아니 믿음이요.”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아니다 죽는 거다.” 우린 말없이 걸었다.’  “시인의 말은 당초 ‘최인호’라는 제목으로 쓴 시였어요. 본문에 시를 넣으려다 시인의 말로 쓰는 게 더 좋을 듯했어요. 최 선생님의 말씀은 ‘열심히 살아라. 삶을 직시하라. 에돌아 생각하지 말고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화두처럼 들렸어요. 제 가슴속에 깊이 새겨 놓은 말입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N포 세대, 포기할 수 없는 이 노래

    N포 세대, 포기할 수 없는 이 노래

    음악만 하고 싶은데 먹고 살기가 녹록지 않았다. 밴드를 접을 생각도 했다. 기왕 접을 거라면 오디션 프로그램에 한번 도전이나 해 보려 했다. 처음엔 톱밴드에 나가려 했다. 그런데 올해는 열리지 않을 것 같다는 잘못된(?) 정보를 입수했다. 낙심하려던 차에 마침 슈퍼스타K 예선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는 덜컥 지원서를 냈다. “TV에 한번 정도 나오면 공연 때 한두 명이라도 더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사실 나가면서도 우리 밥상이 아닌 느낌이었죠. 멤버 모두 서른이 넘어 얼굴에 철판 깐 셈 치자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호응에 얼떨떨하네요.” 최근 ‘N포 세대’의 대변자로 떠오른 ‘중식이 밴드’의 이야기다. 요즘 세상에 스펙도 없는데 아이를 갖고 싶다니 제정신이냐고(‘아기를 낳고 싶다니’), 무너진 건물 당신 발 밑에 아직 살아 있으니 살려 달라고(‘여기 사람 있어요’), 힘없는 노동자인 아버지가 빚까지 내서 대학에 보내 줬는데 졸업해도 취직 못 하고 있다고(‘Sunday Seoul’) 노래하며 톱 5까지 올라갔다. 거기까지였지만 어딘지 헐렁해 보이고 개구져 보이고 결코 잘나 보이지 않는 이들이 들려주는 구슬픈 내용의 록은 연일 화제를 몰고 다녔다. 우리 시대 힘겨운 청춘들의 자화상을 음악으로 비틀었다고나 할까. “살아가면서 부당하다고 느꼈던 것, 서럽다고 느꼈던 것을 대신 말해 주고 있어 반응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노래가 알려져서 좋기도 하지만 안 좋은 점도 있어요. ‘아기를 낳고 싶다니’가 방송을 타자 그 노래 때문에 부부 싸움을 했다는 항의를 받기도 했죠. 하하하.” 노래를 창작하는 것은 보컬 정중식의 몫. 고등학교 때부터 펑크음악에 관심이 많았으나 본격적으로 인디신에 뛰어든 것은 제대 이후인 20대 중반부터다. 처음엔 기타도 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을 음악으로 풀어내고 싶어 2008년쯤 일단 밴드부터 만들고 봤다. ‘텅빈 브라자’다. 이후 ‘전파 나무’를 거쳤고 멤버들이 돌고 돌아 지난해 초 중식이 밴드가 꾸려졌다. 누군가는 새로운 저항 음악, 운동권 가요라고 분석하지만 자신들은 그저 서민 노래가 아닐까 한단다. “거창한 마음으로 가사를 쓰는 것은 아니에요. 일상에서 느꼈던 것을 일기 쓰듯 그냥 풀어낸 것뿐이죠. 애써 아닌 척하는 우리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들려주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게 맞는 건지 생각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에요. 해결 방법은 저도 잘 몰라요. 노래로 찾아 가는 중이죠.” 방송을 통해 화제 몰이를 했으나 이따금 사람들이 알아보거나 친구들의 전화가 잦아진 정도를 제외하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음원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 횟수가 늘고 있는 것 같지만 노래 한 곡을 1000명이 스트리밍으로 듣더라도 뮤지션에겐 3600원이 떨어지는 세상이라 큰 기대는 없다. 지금껏 디지털 싱글 위주로 드문드문 노래를 발표해 왔는데 돈을 모아 정규 앨범을 내는 게 당장의 목표다. 멤버 모두 각자 창작에, 드럼에, 기타에, 베이스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왔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중식이는 동대문에서 지게도 져 보고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도 해 봤다. 지금은 참치를 배달하고 있다. 박진용(베이스)은 기계장비 업체에 다닌다. 김민호(기타)와 장범근(드럼)은 음악학원 강사로 뛴다. 세상이 살 만해지면, 그래서 불만이 없어지면 중식이 밴드의 노래도 멈추게 될까. 아무 불만도 없는 것처럼 침묵하고 노래도 내지 않는다면 세상에 정말 크게 데었거나 지쳤거나 ‘먹튀’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불만을 조금이라도 해결할 위치에 올라갔기 때문일 거라는 게 중식이의 상상이다. “그런데 설마 그렇게 되겠어요? 오디션 두 달 합숙하고 나오니 세상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던데요. 하하하. 어떤 점이 그렇냐구요? 그건 일단 노코멘트. 나중에 노래로 들려 드릴게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원하고 원망해 온 아버지 극복하기

    원하고 원망해 온 아버지 극복하기

    아버지 콤플렉스 벗어나기/오카다 다카시 지음/박정임 옮김/이숲/248쪽/1만 5000원 문학작품 속 아버지는 부재(不在)한 존재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종종 묘사된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서정주의 시 ‘자화상’)나 ‘내겐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여기 없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계속 뛰고 계신다’(김애란의 소설 ‘달려라 아비’)처럼. 영화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가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던진 충격적인 대사는 “내가 너의 아버지다”였다. 부재하다 못해 맞서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버지임은 더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실제로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런 질문 또한 가능하다. 이 책이 글머리에서 던지는 ‘과연 아버지는 필요한가?’라는 도발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물음 말이다. 현실 속 아버지는 불쌍하기 짝이 없는 무기력한 존재다. 농경 사회 문화에서는 한 가족의 지도자이자 교육자이며 경외의 대상인 절대적 존재였다. 그러나 산업화 사회로 접어들며 아버지의 위상은 한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가족공동체의 지도자였던 아버지는 공장과 기업의 노동자로 전락했고, 자식 교육의 주체에서 밀려나 돈을 벌어와 학원비를 대주는 기능적 역할로 바뀌게 됐다. 그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버지의 존재가 너무도 절대적이어서 자식들에게 성장 과정에서 정서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막내딸 안나는 아버지의 조수이자 정신분석학 연구의 후계자였다. 그는 위대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깊은 나머지 다른 남자에게는 평생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절대적인 존재로서 아버지에게 집착한 탓이다. 또한 영국의 전 총리 마거릿 대처(1925~2013)는 ‘나의 모든 것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자신과 아버지를 동일시했다. 아버지의 관심사와 가치관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흡수하며 자란 것 자체가 아버지 콤플렉스의 발현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인 저자는 이를 치유가 필요한 질환으로 규정하고 제대로 치유하지 못할 경우 결국 아무와도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된다고 진단한다. 정서적 유대감과 공감 능력을 담당하는 옥시토신이 더 많이 분비되느냐, 아니면 규율과 지배, 힘 등 남성적 능력을 담당하는 바소프레신이 풍부하냐에 따라 두 가지 양상이 극단적으로 나뉜다는 얘기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 좀 더 합리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자식들도, 아버지들도 모두 읽어 볼 만하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 보통 사람들 ] 시대의 상처·아픔을 품다

    [ 보통 사람들 ] 시대의 상처·아픔을 품다

    “역사는 기득권자, 승리자의 기록이라고 하죠. 그 역사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드러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들도 역사의 주체입니다. 그늘 속에 갇힌 삶의 향기와 애환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고뇌와 상처를 보듬고, 부조리를 강렬하고 노골적인 화풍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화가 안창홍(62). 그의 40여년에 걸친 작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나르지 못하는 새 : 안창홍 1972-2015’전이 11일부터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에서 열린다.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과 신작을 포함해 회화, 조각, 콜라주, 드로잉 등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품 100여점을 선보인다. 개막에 앞서 전시장에서 만난 안창홍은 “회고전은 아니다”라면서 “한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시대를 바라보고, 무엇을 통해 어떻게 발언하고 싶었는지 지나 온 과정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밀양 출신으로 부산 동아고를 졸업한 안창홍은 카뉴국제회화제 특별상(1989)과 제10회 이인성미술상(2009), 제25회 이중섭미술상(2013)을 수상했다. 내년 1월 1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현대인의 상처라는 큰 틀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시대의 초상’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나눠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3개의 벽면에 어린아이부터 청년, 노년까지 다양한 모습의 인물이 담긴 49개의 초상 사진이 일렬로 걸렸다. 사진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눈을 감고 있지만 입술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전령의 상징물인 나비 한 마리가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다. 부산비엔날레와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였던 2004년의 대표작 ‘49인의 명상’이다. 1980년대 한 산동네의 사진관이 폐관하면서 버려진 네거티브 필름에서 무작위로 선택한 사진에 색을 입힌 작품이다. “사진 속 주인공들이 실재했던 시간들을 과거와 현재의 틈 사이에 놓음으로써 존재와 부재의 틈, 삶과 죽음의 틈, 소멸된 시간과 현재의 틈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작가는 “명상하듯이 눈 감은 얼굴들을 보면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탯줄을 그대로 감은 채 죽은 것 같은 아기 인형을 사진으로 찍어 대형 화면에 프린트한 ‘야만의 역사’는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15년 전 의료용 아기 인형에 에폭시로 분비물을 만들어 입체물을 만들어 놓았다가 지난 9월 터키 해변에서 세 살배기 시리아 어린아이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 뉴스를 접하고 평면 작업으로 옮겼다”며 “어른들의 탐욕과 무자비함에 유린당한 어린 생명들을 위로하는 노래”라고 설명했다. 입체에서 평면까지 15년간의 창작적 고뇌가 곰삭은 작품인 셈이다. 4층 전시장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작가의 사고 흐름을 따라가 볼 수 있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20대 작가로서 치열한 연구 과정을 담은 ‘자화상’(1973), ‘달을 보고 놀란 아이들’(1974) 등을 비롯한 미공개 초기작 20여점과 이번 전시 제목이기도 한 ‘나르지 못하는 새’(1991) 등 드로잉 작품들이 한켠을 차지한다. 1970년대 말 작가의 사회적 의식을 보여 주는 대표작 ‘인간 이후’(1979), 어두웠던 시절에 피어난 투쟁 의식과 절망이 반영된 ‘절규’(1986), 1990년대 자본주의 사회의 초상을 보여 주는 ‘우리도 모델처럼’(1991), 작가의 내면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담은 ‘어둠 속에서-인간은 결코 날지 못한다’(1991) 등 재료별·시대별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평범한 사람들의 관능미를 끌어낸 ‘베드 카우치’ 연작과 연필로 그린 ‘사이보그’ 연작은 안창홍의 또 다른 면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양산한 인간의 노골적인 야만성과 시대의 색깔을 담은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나는 밝은 쪽보다 어두운 쪽으로 더듬이가 발달한 사람이에요. 아름다움만 있는 게 우리의 삶이 아니잖아요. 시대의 빛과 아름다움보다는 어두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찢기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가요.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질 것입니다.” 글 사진 천안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포토]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이 그린 본인의 얼굴

    [포토]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이 그린 본인의 얼굴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유족이 ’자화상’과 ’김우영 초상’ 등 미공개 작품 2점을 10일 수원시에 기증했다. 자화상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성을 그린 작품으로 그림 속 여성은 나씨로 알려져 있다. 김우영 초상은 나씨의 남편 김우영 씨를 그린 것으로 작가의 서명이 없는 미완성 작품이다. 사진은 김우영 초상. 2015.11.10. 수원시 제공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 세상과 조용한 이별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 세상과 조용한 이별

    사망설이 꾸준히 제기됐던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91세를 일기로 미국에서 사망했으며 천 화백의 딸 이혜선(70·미국 거주)씨가 유골함을 들고 기증 작품이 전시된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민국예술원은 22일 오후 “예술원 회원인 천 화백이 지난 8월 6일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며 후속 행정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8월 19일 서울시를 통해 미술관에 협조 요청을 하고 이튿날인 20일 천 화백의 그림이 전시된 상설전시실과 수장고를 다녀갔다.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미국 뉴욕으로 떠났던 천 화백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거동을 하지 못해 뉴욕 맨해튼에 있는 큰딸 이씨의 간호를 받아 왔다. 장기간 병석에 있던 천 화백은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이후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으며 지난 8월 6일 새벽 의사가 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천 화백의 시신은 화장했고 뉴욕 성당에서 장례를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딸 이씨는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천 화백이 의식은 있는 상태라고 주장해 왔지만 미술계에선 천 화백이 길게는 10여년 전 이미 사망한 게 아니냐는 등 추측성 소문이 무성했다. 2013년 이씨는 천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됐다며 기증 작품을 모두 반환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예술원이 회원인 천 화백의 근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월 180만원의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하자 이에 반발해 탈퇴서를 제출했다. 한 예술원 회원은 “사망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상태에서 유가족이 천 화백의 사망 사실을 즉각 알리지 않고 감춘 것은 뭔가 꺼림칙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고인의 명예를 생각할 때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 화백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거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때 혼담을 피해 일본 유학을 떠나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인의 한(恨)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의 한국화로 그려 1960~1980년대 국내 화단에서 여류 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의 화풍을 개척했고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폭넓게 활동했던 ‘스타’ 화가였다. 꽃과 여인의 화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미인도’를 둘러싸고 1991년 일어난 위작 시비에 말려 심적 충격 속에 절필을 선언한 바 있다. 그의 작품에는 여인의 고독과 애틋한 사랑,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 이국에 대한 동경, 자신을 지탱하려는 나르시시즘이 복합적으로 묻어 있다는 평이 뒤따른다. 대표작인 ‘길례언니’(1973), ‘고’(孤·1974),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 ‘황금의 비’(1982) 등은 몽환적이고도 섬뜩한 눈빛의 여인이 등장하는 작가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뛰어난 글솜씨를 지녔던 천 화백은 ‘언덕 위의 양옥집’ ‘아프리카 기행 화문집’ 등 수필집과 단행본 10여권을 냈다. 그의 사망 소식에 따라 작품 가격 추이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난 10년간 경매시장에서 천 화백 작품의 호당 평균 가격은 1700만원으로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김환기에 이어 다섯 번째로 높다. 최고가로 낙찰된 작품은 2009년 K옥션을 통해 거래된 ‘초원Ⅱ’(1978, 105.5×130㎝)로 12억원에 팔렸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중구에는 있어요…소중한 한글 지키는 청소년 ‘비속어 근절단’

    지난달 19일 중구 약수동 남산타운청소년수련관에 모인 중·고등학생들에게 물었다. “하루에 비속어를 얼마나 사용하나요?” 아이들 75명 중 30명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10명은 “많이 사용한다”고 했고 9명은 “셀 수 없을 정도”라고 답했다. 이튿날 서울 세종대로에서 만난 청소년 99명에게 “비속어의 뜻을 알고 사용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5명 중 3명은 조금 알거나 전혀 모른다고 대답했다. 언어 파괴, 무분별한 비속어 사용 등은 위대한 문자 ‘한글’을 가진 한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떨치기 위해 중구 청소년들이 뭉쳤다. 중구청소년수련관의 한·중 국제교류동아리인 ‘중심동감’에 소속된 청소년 15명이 언어문화 개선 활동 ‘청순역’을 펼치고 있다. ‘청순역’은 청소년 언어순화 지역의 줄임말이다. 아이들은 또래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사용하는 언어 실태를 조사하고, 순우리말 사전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면서 우리말 사용을 홍보한다. 순우리말 간판 중 최우수 간판을 선정하는 투표도 벌이면서 시민들과 언어문화 개선의 필요성을 나누기도 했다. 이 캠페인에 참여한 엄희정(18·성동글로벌고 3년)양은 6일 “캠페인 활동을 통해 무심코 쓴 말투나 언어를 되짚고 바른말로 바꾸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면서 “친구들에게도 예쁜 우리말을 알려주고 있다”고 뿌듯해했다. 권재웅(15·홍대사대부고 1년)군은 “우리말을 하나둘 배우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언어순화의 필요성을 알리면서 나 자신도 많이 배운다”면서 캠페인의 효과를 소개했다. 중구청소년수련관은 ‘청순역’ 캠페인 활동을 수련관, 도서관, PC방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오는 31일에는 청소년들이 자주 이용하는 이들 시설에 ‘청순역’ 스티커를 붙이고 이 장소를 거점으로 바른말과 고운 말 사용을 독려하는 활동을 진행한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급속한 사회변화와 세대차이, 외래어의 무분별한 사용, 언어 폭력 등으로 올바른 우리말 사용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우리 청소년들의 언어순화 활동이 지역사회에 바르고 고운 말 사용을 전파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길섶에서] 교황의 구두/최광숙 논설위원

    누구나 신는 구두. 하지만 그 구두의 모양은 제각각이다. 마녀의 코처럼 앞부분이 뾰족한 구두가 있는가 하면 젖살이 오른 아기 볼처럼 둥근 구두가 있다. 가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앞사람의 구두를 보며 그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상상할 때가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구두 한 켤레’ 등 구두 작품을 8개나 남겼다. 칙칙한 어둠 속의 낡아 너덜너덜해진 구두는 신발을 끌고 다니며 일한 누군가의 땀이 배어 있는 듯해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진다. 후세에 구두 그림을 놓고 철학자와 미술사학자 간에 논쟁이 벌어졌을 정도로 고흐의 구두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적지 않다. 구두의 주인은 힘들게 노동했던 농부의 아내라는 철학자의 주장보다는 고된 예술가의 삶을 산 고흐의 자화상이라는 미술사학자의 주장이 더 일리 있지 않을까. 어제 쿠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검은 구두 사진이 실린 신문을 봤다. 끈이 달린 아주 소박한 신발이다. 전임 교황은 빨간색 명품 구두를 신었다는데, 이번 교황의 구두는 고향 아르헨티나의 작은 구둣방에서 40년째 맞춰 신는 구두란다. 구두에도 신는 사람의 삶이 오롯이 담기기 마련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사설] 여야 싸움질 4색 당파와 뭐가 다르나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와 비노 간 끝없는 권력투쟁도 국민으로서는 한심한 지경인데 여당인 새누리당마저도 또다시 친박과 비박 사이의 알력을 재연하고 있다. 두 당 내부에서 친노, 비노, 친박, 비박으로 패를 나누어 국민은 안중에 없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으니 공당(公黨)이라 부르기 무색할 정도다. 붕당(朋黨)을 지어 동인, 서인, 북인, 남인으로 나뉘고 이어 대북과 소북, 노론과 소론, 시파와 벽파 등으로 갈라서 사생결단하던 조선시대의 ‘4색 당파’와 다를 게 없다. 서로 상대방의 씨를 말려 가며 당파 싸움에 골몰했던 조선은 결국 붕당들의 싸움 탓에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해 도태된 것 아닌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야의 집안싸움은 내용이나 시기 모두 온당치 않다. 정기국회, 특히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미래의 밥그릇을 놓고 벌이는 권력투쟁은 국민의 정치 염증만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새정치연합은 당 혁신은커녕 친노와 비노의 사생결단 싸움만 보여 주고 있다. 친노 측은 비노를 상대로 “싫으면 떠나라” 하고, 비노 측은 친노에게 “나를 밟고 가라” 한다. 왜 야당의 지지도가 떨어지는지 모르는가. 오죽하면 내부에서조차 “피비린내 나는 당쟁”을 경고하고 나섰을까. 건전하게 단합된 야당의 실종은 정치의 발전을 저해한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 막 임기 반환점을 돌았을 뿐인데 ‘친박 독자 대선 후보론’을 꺼내 들어 친박과 비박 투쟁의 불을 댕겼다. 친박계이자 청와대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이 총대를 메고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이 바람을 불어넣으며 김무성 대표 등 비박계를 몰아치는 양상이다. 노동개혁 입법 등 태산 같은 할 일을 앞에 둔 여당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의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 표심이 권력의 향배를 결정짓는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야 내부의 권력투쟁은 그런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민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 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표를 줄 국민은 정작 무심한데 자기들끼리 김칫국만 마시는 꼴이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정치인을 코털에 비유하는 유머가 회자하고 있다. 뽑을 때 잘 뽑아야 하고, 잘못 뽑으면 후유증이 오래간다는 것이다. 단순한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는 우리 정치의 슬픈 자화상이다. 남은 정기국회 회기 동안만이라도 내부 권력투쟁을 멈추고 진정으로 민생을 위한 정치에 나서 주길 여야 정치권 모두에 촉구한다.
  • 추사의 서예·우성의 조각, 시공 넘은 만남

    19세기 서예의 거장 추사 김정희(1786~1856)와 20세기 조각의 거장 우성 김종영(1915~1982), 이들 두 사람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11일부터 열린다. 추사와 우성의 작품이 한자리에서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다. ‘추사 김정희·우성 김종영: 불계공졸과 불각의 시공’이라는 제목의 전시에 대해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미술관 부장은 “추사와 우성은 모두 본질에 대한 탐구를 통해 얻은 순수함을 기초로 물질과 정신을 잇는 진리 체계를 파악하고자 했다. 미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해 있는 형을 자연에 되돌려주는 것이라는 우성의 불각은 추사의 불계공졸과 맞닿아 있다. 이들을 통해 한국 예술의 연속성을 파악할 수 있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추사는 24세에 중국 주요 문인과 사제 관계를 맺었다. 경남 창원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우성은 한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 1953년 영국 런던 테이트갤러리에서 열린 ‘무명 정치수를 위한 모뉴멘트’ 국제공모전에 출품해 국내에선 처음으로 해외 공모전에 입상한 바 있다. 전시는 자아, 절대추상과 구축미, 불균형과 하모니, 서화일체 등 4개 주제를 갖고 두 사람의 작품 30여점을 함께 배치했다. 추사의 작품은 ‘자신불’(自身佛) ‘우향각’(芋香閣) 등이고 우성의 작품으로는 자화상과 브론즈, 나무, 돌을 재료로 삼은 추상적인 조각이 선보인다. 추사가 생전에 지인과 주고받은 서신, 우성의 드로잉과 서예 등도 함께 선보인다. 전시는 10월 14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렘브란트 그림 속 덧칠된 숨겨진 젊은 남자 찾았다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 작품의 숨은 비밀이 드러났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LA타임스 등 현지언론은 렘브란트의 작품 중 하나인 '군복입은 노인'(An Old Man in Military Costume) 속에 숨겨진 젊은 남자를 찾았다고 보도했다.현재 LA 게티미술관에 전시 중인 이 작품은 1630년 경 그려진 것으로 과거에는 렘브란트 아버지의 초상으로 알려져 있던 걸작이다.   미술사 연구가들은 이미 이 그림 속에 한 인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기술이 부족해 정확한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이번 확인과정은 게티 미술관과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온 첨단 X-레이 기술자들이 렘브란트가 사용한 물감의 화학성분 등을 분석해 그림 속에 덧칠된 인물을 원 인물과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새로 찾아낸 그림 속 인물은 놀랍게도 원 그림의 노인이 아닌 젊은이다. 병색이 짙어보이는 원그림의 노인과 달리 이 인물은 혈색이 좋은 젊은이로 두꺼운 깃을 가진 녹색 망토를 두른 것으로 확인됐다.   게티 연구소 카렌 트렌텐만 박사는 "지난 1968년 이 그림 속에 다른 그림이 있다는 사실은 확인했으나 정확한 이미지로 보이는데는 실패했다" 면서 "기술의 발달로 숨겨진 그림을 명확하게 보여주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렘브란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친구로 추정되는 남자를 그렸다가 지웠다" 면서 "그 그림 위에 깃털 모자를 쓴 용감한 얼굴의 노인을 그렸으나 눈에는 수심이 가득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자화상을 유별나게 많이 그린 렘브란트(1606-1669)는 암스테르담을 주무대로 활동한 화가로 20-30대 귀족들의 초상화로 명성을 얻었으나 말년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슈스케 천단비, 알고보니 “12년째 코러스” 만장일치 합격[슈퍼스타K7]

    슈스케 천단비, 알고보니 “12년째 코러스” 만장일치 합격[슈퍼스타K7]

    3일 방송된 Mnet ‘슈퍼스타K7’에서 천단비가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합격했다. 참가자 천단비는 “19살부터 시작해 12년 째 코러스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들 또한 그를 단번에 알아봤다. 성시경은 “바로 지난주에 내 콘서트에서 코러스를 했다”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심사위원들은 “대한민국 가수 중에 천단비와 작업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슈스케에 나오기로 한 건 큰 결심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단비 역시 “12년간 내 음악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결핍 같은 것이 쭉 있어왔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슈스케 천단비는 자화상의 ‘니가 내리는 날’을 선곡해 열창했고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합격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슈퍼스타K7’ 천단비, 만장일치로 합격…알고보니 이미 가수 ‘대박’

    ‘슈퍼스타K7’ 천단비, 만장일치로 합격…알고보니 이미 가수 ‘대박’

    ‘슈퍼스타K7’ 천단비, 만장일치로 합격…알고보니 이미 가수 ‘대박’ 3일 방송된 Mnet ‘슈퍼스타K7’에서 심사위원으로부터 만장일치 합격 통보를 받은 천단비가 이미 가수 활동경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날 천단비는 “코러스는 19살 때부터 시작해 햇수로 12년 정도 했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천단비는 자화상의 ‘니가 내리는 날’을 선곡해 파워풀한 고음과 청량한 목소리, 섬세한 감정선으로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다. 천단비는 2005년 5월에 데뷔했다. 한양여대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천단비는 2007년 ‘외과의사 봉달희’, 2010년 ‘제중원’ OST에 참여했다. ‘외과의사 봉달희’ OST인 ‘버릇처럼’이 천단비의 대표곡이다. 2010년엔 하울과 함께 미니 앨범 ‘RO맨틱? NO맨틱’을 발표한 바 있다. 천단비는 가수 활동보다는 코러스로 이름을 알렸다. 12년간 빅뱅, 신화, 임정희 등 많은 가수와 함께 작업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슈퍼스타K7’ 천단비, 알고보니 이미 가수…대표곡 살펴보니? ‘대박’

    ‘슈퍼스타K7’ 천단비, 알고보니 이미 가수…대표곡 살펴보니? ‘대박’

    ‘슈퍼스타K7’ 천단비, 알고보니 이미 가수…대표곡 살펴보니? ‘대박’ 3일 방송된 Mnet ‘슈퍼스타K7’에서 심사위원으로부터 만장일치 합격 통보를 받은 천단비가 이미 가수 활동경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날 천단비는 “코러스는 19살 때부터 시작해 햇수로 12년 정도 했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천단비는 자화상의 ‘니가 내리는 날’을 선곡해 파워풀한 고음과 청량한 목소리, 섬세한 감정선으로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다. 천단비는 2005년 5월에 데뷔했다. 한양여대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천단비는 2007년 ‘외과의사 봉달희’, 2010년 ‘제중원’ OST에 참여했다. ‘외과의사 봉달희’ OST인 ‘버릇처럼’이 천단비의 대표곡이다. 2010년엔 하울과 함께 미니 앨범 ‘RO맨틱? NO맨틱’을 발표한 바 있다. 천단비는 가수 활동보다는 코러스로 이름을 알렸다. 12년간 빅뱅, 신화, 임정희 등 많은 가수와 함께 작업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슈퍼스타K7 천단비, 알고보니 12년차 코러스 가수

    슈퍼스타K7 천단비, 알고보니 12년차 코러스 가수

    지난 3일 방송된 Mnet ‘슈퍼스타K7’ 지역예선에는 ‘대한민국 대표 백업 코러스’ 천단비가 오디션에 참가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심사위원 윤종신은 천단비의 등장에 “‘월간 윤종신’에서 코러스를 해줬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성시경 역시 최근 자신의 콘서트에서 코러스를 했다고 밝혀 놀라움을 더했다. 천단비는 “코러스는 19살 때부터 시작해 햇수로 12년 정도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천단비는 자화상의 ′니가 내리는 날′을 선곡해 파워풀한 고음과 청량한 보이스톤, 섬세한 감정선으로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다. 이날 천단비는 심사위원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합격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슈퍼스타K7 천단비, 알고보니 12년 경력 ‘대박’

    슈퍼스타K7 천단비, 알고보니 12년 경력 ‘대박’

    지난 3일 방송된 Mnet ‘슈퍼스타K7’ 지역예선에는 ‘대한민국 대표 백업 코러스’ 천단비가 오디션에 참가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심사위원 윤종신은 천단비의 등장에 “‘월간 윤종신’에서 코러스를 해줬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성시경 역시 최근 자신의 콘서트에서 코러스를 했다고 밝혀 놀라움을 더했다. 천단비는 “코러스는 19살 때부터 시작해 햇수로 12년 정도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천단비는 자화상의 ′니가 내리는 날′을 선곡해 파워풀한 고음과 청량한 보이스톤, 섬세한 감정선으로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슈퍼스타K7’ 천단비, 만장일치로 합격…알고보니 이미 가수 생활 ‘대박’

    ‘슈퍼스타K7’ 천단비, 만장일치로 합격…알고보니 이미 가수 생활 ‘대박’

    ‘슈퍼스타K7’ 천단비, 만장일치로 합격…알고보니 이미 가수 생활 ‘대박’ 3일 방송된 Mnet ‘슈퍼스타K7’에서 심사위원으로부터 만장일치 합격 통보를 받은 천단비가 이미 가수 활동경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날 천단비는 “코러스는 19살 때부터 시작해 햇수로 12년 정도 했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천단비는 자화상의 ‘니가 내리는 날’을 선곡해 파워풀한 고음과 청량한 목소리, 섬세한 감정선으로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다. 천단비는 2005년 5월에 데뷔했다. 한양여대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천단비는 2007년 ‘외과의사 봉달희’, 2010년 ‘제중원’ OST에 참여했다. ‘외과의사 봉달희’ OST인 ‘버릇처럼’이 천단비의 대표곡이다. 2010년엔 하울과 함께 미니 앨범 ‘RO맨틱? NO맨틱’을 발표한 바 있다. 천단비는 가수 활동보다는 코러스로 이름을 알렸다. 12년간 빅뱅, 신화, 임정희 등 많은 가수와 함께 작업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슈퍼스타K7’ 천단비, 알고보니 이미 가수? “과거 경력이 대박”

    ‘슈퍼스타K7’ 천단비, 알고보니 이미 가수? “과거 경력이 대박”

    ‘슈퍼스타K7’ 천단비, 알고보니 이미 가수? “과거 경력이 대박” 3일 방송된 Mnet ‘슈퍼스타K7’에서 심사위원으로부터 만장일치 합격 통보를 받은 천단비가 이미 가수 활동경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날 천단비는 “코러스는 19살 때부터 시작해 햇수로 12년 정도 했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천단비는 자화상의 ‘니가 내리는 날’을 선곡해 파워풀한 고음과 청량한 목소리, 섬세한 감정선으로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다. 천단비는 2005년 5월에 데뷔했다. 한양여대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천단비는 2007년 ‘외과의사 봉달희’, 2010년 ‘제중원’ OST에 참여했다. ‘외과의사 봉달희’ OST인 ‘버릇처럼’이 천단비의 대표곡이다. 2010년엔 하울과 함께 미니 앨범 ‘RO맨틱? NO맨틱’을 발표한 바 있다. 천단비는 가수 활동보다는 코러스로 이름을 알렸다. 12년간 빅뱅, 신화, 임정희 등 많은 가수와 함께 작업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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