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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재 화가 고흐의 ‘청년시절 사진’ 첫 발견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등 주옥같은 명작을 남긴 네덜란드 출신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로 추정되는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지난 3일(현지시간) 영국 인디펜던트 등 외신은 고흐의 청년 시절 모습으로 보이는 사진이 언론에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1888년 프랑스 파리의 미술학교인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촬영된 이 사진은 총 34명 남자들의 모습을 담고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미술사가인 안토니오 드 로베르티스가 발견한 이 사진에서 고흐(동그라미 속 인물)는 무심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로베르티스가 사진 속 인물이 고흐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사진 촬영 시기 고흐가 파리에 머물고 있었다는 점, 사진 속 인물이 고흐의 자화상과 너무나 닮았다는 점, 옆에 서 있는 인물이 고흐의 절친이자 친동생 테오의 처남인 안드리스 봉거라는 사실 때문이다. 로베르티스의 주장처럼 실제 사진 속 고흐 추정 인물과 자화상의 얼굴은 너무나 닮아있다. 그러나 극도로 카메라 앞에 서기 싫어해 10대 시절 외에는 남아있는 사진이 없는 고흐의 진짜 모습인지는 확실히 밝혀내기 힘들다. 로베르티스는 "이들이 모두 미술가인지, 서로 아는 사이인지, 왜 함께 사진을 찍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 "사진 속 인물들은 국적별로 서로 모여있어 네덜란드 출신인 고흐와 봉거가 함께 서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의 고흐 사진은 13세 때, 19세 때 촬영된 사진이 전부"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표적인 후기 인상파 화가인 고흐는 비극적인 권총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자화상, 초상화, 풍경화 등 총 2000여점의 작품을 남기며 미술계에는 불멸의 족적을 남겼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해고 위기 4인방이 헤비메탈 배운 사정은…

    해고 위기 4인방이 헤비메탈 배운 사정은…

    연극 ‘헤비메탈 걸스’(오른쪽)가 김수로 프로젝트 16탄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한층 더 강력한 웃음과 탄탄한 이야기로 관객들을 찾아온다. 회사의 정리해고 대상에 오른 30·40대 여직원 4명의 좌충우돌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다. 해고 위기에 직면한 이들 여직원은 한 달 뒤 새로 부임하는 사장이 헤비메탈 ‘광팬’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워크숍 장기자랑 때 신임 사장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작정 헤비메탈 학원을 찾아간다. 전직 헤비메탈 밴드 출신의 괴팍한 두 남자에게 헤비메탈을 한 달 단기속성으로 배우게 되면서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된다. 김수로 프로듀서는 “연극이 주는 따뜻한 메시지에 반했다”면서 “김수로 프로젝트 시리즈로 무대에 올리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고 말했다. 김수로는 작품에도 직접 출연한다. 배우 박준규·채동현과 함께 헤비메탈 학원을 운영하면서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사는 전직 헤비메탈 밴드의 드러머 ‘승범’ (왼쪽)역을 열연한다. 극작가 겸 연출가 최원종은 “자유로움의 상징인 헤비메탈 음악과 정형화된 틀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회사원들의 일상이 대비되면서 발생하는 강렬한 코믹 요소와 포복절도할 상황들은 이 시대의 동시대적인 웃음인 동시에 현대인들의 자화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2013·2014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 우수작품으로 선정됐다. 2013년 초연 당시 현대 소시민들이 직장 생활에서 겪는 애환을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헤비메탈 음악을 통해 직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다음달 15일부터 6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쁘띠첼씨어터, 4만 4000~5만 5000원. 1588-1555.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화성행궁 갔다가 박물관 투어하고 오지요

    [명인·명물을 찾아서] 화성행궁 갔다가 박물관 투어하고 오지요

    수원 화성 축성 과정 직접 볼 수 있어 서예박물관에 영·정조가 쓴 어필첩도새달부터 박물관 3곳 야간 관람 가능 경기 수원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 등 볼거리와 먹거리가 즐비한 곳이다. 팔달산을 중심으로 5.7㎞에 걸쳐 있는 화성은 성문, 누대 등 건축양식이 동양 성곽의 웅대함과 서양 성곽의 아름다움, 실용성을 모두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융릉을 참배할 때 머물던 임시 처소로, 우리나라 행궁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수원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이 늘고 있다. 그런데 수원을 찾는 쏠쏠한 재미가 더 생겼다. 바로 수원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 수원광교박물관 등 수원시 박물관 3형제와 최근 문을 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덕분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박물관의 불모지였던 곳에 볼거리로 가득 찬 박물관과 미술관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수원이 역사·문화·체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화성에 관한 모든 것… 수원화성박물관 화성행궁 인근에 있는 수원화성박물관에서는 화성의 축성과 정조에 얽힌 역사적 사실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문을 연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에 화성축성실, 화성문화실, 기획전시실 등 3개 전시실과 야외 전시장을 갖췄다. 보물 1477호 번암 채제공(1720~1799) 초상화를 포함해 252건 740점(기증 147점, 구입 593점)의 다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화성축성실은 화성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 준다. 정조가 화성행차 때 입었던 황금갑옷, 축성 보고서 ‘화성성역의궤’ 영인본, 정조가 화성 유수 조심태에게 보낸 어찰, 규장각과 화성박물관만 소장하고 있는 정조문집 ‘홍재전서’ 완질본, 국내 2점뿐인 사도세자의 대리청정 유훈교서 등도 전시하고 있다. 화성문화실에서는 1795년 윤2월 정조의 8일간 화성행차를 팔폭 병풍에 그린 ‘화성능행도병’ 모사도, 화성유수 채제공의 영정과 정조가 채제공에게 보낸 어찰, 필사본 번암선생집, 정조의 정예 친위부대 장용영의 복식과 무기 등을 볼 수 있다. ●수원의 과거~미래 한눈에 수원박물관 2008년에 개관한 수원박물관은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다양하게 보여 주는 ‘수원역사박물관’과 한국서예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한국서예박물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수원역사박물관은 ‘수원의 자연환경’, ‘선사·역사시대의 변천사’, ‘수원로의 개설’, ‘60년대 수원 만나기’, ‘근대 수원의 문화’ 등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과거·현재·미래의 시점과 주제별로 보여 준다. 또 지방자치단체에서 최초로 건립한 한국서예박물관은 6000여점에 달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예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서예의 이해’, ‘서예의 감상’, ‘문방사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중요 작품으로는 영조와 정조가 친히 쓴 어필첩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야외전시장에는 수원에서 관리를 지낸 인물들의 업적을 나타내는 선정비, 의장석물, 묘제석물, 생활 유물 등을 곳곳에 배치했으며 ‘어린이체험실’에서 다양한 역사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고 소개했다. ●‘어린이체험실’ 갖춘 수원광교박물관 2014년 3월 개관한 수원광교박물관은 수원시의 세 번째 공립박물관으로 영통구 광교역사공원에 들어서 있다. 1층 광교 역사문화실에서는 광교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 등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의 유물을 볼 수 있다. 개발 전 광교 골짜기 마을에 대한 민속, 문화, 생태, 생활사 자료도 한데 모아 옛 정취를 보존했다. 수원 출신 역사학자 사운 이종학(1927~2002) 선생과 학창 시절을 수원에서 보낸 소강 민관식(1918~2006) 선생이 기증한 유물도 별도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사운 이종학실에서는 2004년 유족이 기증한 충무공 이순신과 독도 포함 영토 관련 사료, 일제 침략사 등 2만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소강 민관식실에 전시한 3만여점은 민관식 선생이 국회의원, 문교부 장관, 국회의장 직무대리 등을 하며 평생 수집한 것으로 2010년 기증받았다. 어린이들이 역사와 문화를 놀면서 접할 수 있는 ‘어린이체험실’도 갖춰져 있다. 시는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아 다음달부터 수원박물관과 수원화성박물관, 수원광교박물관 등 지역 내 박물관 3곳에서 야간 관람을 실시한다. 관람시간을 오후 6시에서 9시로 연장하며 휴관일인 매달 첫째주 월요일과 토요일, 공휴일은 제외된다. ●4개월 만에 관람객 5만명 돌파 아이파크미술관 화성행궁광장 옆에 들어선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개관 4개월 만인 지난달 말 현재 누적 관람객 5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수원 최초의 시립미술관으로 연면적 9661㎡에 5개의 전시실, 예술전문 도서관, 교육실, 카페테리아 등 관람객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통과 현재가 소통하는 곳’이란 주제로 건립된 이 미술관은 화성의 전통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변 경관과 어울리면서도 기하학적인 현대미를 최대한 살린 게 특징이다. 미술관 전면에는 확 트인 투명창을 설치해 관객들이 전시품을 관람하면서 동시에 화성행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했다. 미술관 안에는 ‘포니정홀’도 마련했다.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인 ‘포니’를 개발한 현대자동차 초대 사장인 정세영 명예회장을 기리는 공간이다. 미술관은 지난해 11월 나혜석(1896~1948)의 유족으로부터 ‘자화상’, ‘김우영초상’ 등 나혜석의 미공개 유작 2점을 기증받았다. 한국 최초의 여성 유화가인 나혜석의 두 작품은 한국 근대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미술관 측은 밝혔다. 미술관은 오는 4월 나혜석 탄생 120주년을 맞아 나혜석 기념 전시를 개최한다. 염태영 시장은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와 수원화성 완공 220주년을 맞아 특색 있는 전시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한편 수원화성과 수원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수원화성박물관, 전통시장 등 기존의 자원과 함께 관광 인프라를 확대해 연계성을 높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나를 잊으셨나요” 눈물 맺힌 서울시청 외벽 글귀

    “나를 잊으셨나요” 눈물 맺힌 서울시청 외벽 글귀

    ‘나를 잊으셨나요” 눈물 맺힌 서울시청 외벽 글귀  “나를 잊으셨나요?”  28일 서울광장 옆에 있는 서울도서관 정면에 ‘평화의 소녀상’ 이미지와 “나를 잊으셨나요?”란 메시지가 담긴 꿈새김판이 걸렸다. “나를 잊으셨나요?”란 메시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89)가 직접 쓴 문구를 필체 그대로 옮긴 것이다.   서울시는 평화의 소녀상과 역사의 산 증인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메시지로 일제강점기 고난의 자화상을 표현하고, 그 시대 아픔을 현 세대와 공유·공감하고자 이번 꿈새김판 기획했다고 전했다.  꿈새김판은 서울도서관 정면 외벽의 대형 글판(19m×8.5m)으로, 시민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지난 2013년 6월부터 시민들의 순수 창작 글귀가 게시되고 있다. 이번 꿈새김판은 다음달 20일까지 게시된다.  시는 또 3·1절을 맞아 신청사 정문 상단 외벽에는 ‘대한독립만세’라는 문구와 함께 어린이가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있는 퍼포먼스 랩핑 게시물을 설치하고, 서측 외벽에 설치돼 있는 LED ‘시민게시판’에는 시민들이 서울시 카카오톡에 보내는 나라 사랑의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띄운다.   시민청에서는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공연과 작품 전시, 손도장으로 대형 태극기 만들기, 태극기 바르게 그리기 등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시는 다음달 1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30분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제97주년 3·1절 기념식과 보신각 타종행사 현장도 라이브서울, 유튜브, 유스트림 등을 통해 생중계할 예정이다. 김영환 서울시 시민소통담당관은 “서울시가 다양하게 마련한 제97주년 3·1절 기념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시민 모두가 그 시대의 아픔과 대한독립을 염원했던 간절한 마음을 되돌아보고 3·1절의 역사적 의미를 함께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광장] 물갈이쇼는 답이 아니다/진경호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물갈이쇼는 답이 아니다/진경호 편집국 부국장

    물갈이, 가슴 뛰게 하는 말이다. 선거의 계절이 닥치면 어김없이 ‘혁신’과 ‘개혁’을 앞세운 이 ‘물갈이’가 여의도를 달군다. ‘피바람’과 ‘학살’이란 말이 짬 없이 따라붙건만 그런 피비린내의 기억까지 되짚어 가며 기분을 잡칠 까닭이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겐 없다. 하는 것 없는, 아니 차라리 없어야 좋을 국회의원 X들 하나라도 더 갈아치워야 지난 4년의 울분이 조금이라도 풀릴 처지가 유권자들이다. 넉 달 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7%가 자기 지역 국회의원 교체를 원했다. 29%는 바뀌든 말든 관심을 끊었다. 정당 집단의 생존 본능이 이런 표심을 지나칠 리 없다. 새누리당에선 ‘대표도 공천받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말까지 나왔고, 더불어민주당은 현역 의원 11명을 이미 탈락시켰다. 3선 이상은 절반까지도 날릴 태세다. 뭐 놀랄 일도 아니다. 늘 그래 왔다. 4년 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현역 의원 10명 중 4명꼴로 공천장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국회 의석을 절반 넘게 가져갔다. 두 달 전만 해도 야당의 독자 개헌을 막게 120석만이라도 달라고 했던 당이다. 16대(2000년) 31.0%에서부터 17대 36.4%, 18대 38.5%, 19대 41.7%…. 4년마다 매번 물갈이율, 현역 탈락률이 늘었다. 지금의 더민주는 같은 기간 5명 중 1명 이상 현역들을 날렸다. 새누리당에 못 미쳤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몰아친 17대 총선을 빼곤 매번 졌다. 총선에서의 승산은 정당의 ‘새피’ 수혈량과 비례한다는 수식이 가능할 듯도 싶은 물갈이사(史)다. 한데 의문은 여기서 생긴다. 바로 “그래서 뭐?”냐는 물음이다. 그래서 정치가 나아졌느냐, 살림살이가 나아졌느냐, 대체 누구를 위한 물갈이고 누구를 위한 승리냐는 것이다. 16대(40.7%), 17대(62.5%), 18대(44.5%), 19대(49.3%)에 매번 절반 가까이 또는 절반 넘게 새 인물을 갖다 넣었지만 국회는, 헌 정치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매번 뒤로 내달려 4년마다 ‘최악의 국회’를 갈아치웠다. 결론은 자명해진다. 물갈이의 진폭이 크면 정당의 승산은 올라간다. 그러나 정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국회도 바뀌지 않는다. 정치인 물갈이는 결코 정치 물갈이가 아니다. 국민을 위한 것이라지만 그저 정당 집단, 더 좁게는 그 안의 계파, 더 좁게는 그 계파 안의 수장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공천 방식을 둘러싼 새누리당의 갈등은 삼척동자가 다 알다시피 4월 총선을 넘어 내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유리한 당내 지형을 구축하려는 친박계와 비박계의 세 싸움이다. 영입한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를 앞세운 더민주의 공천 작업은 친노 수장 문재인 전 대표의 차도지계(借刀之計)일 따름이다. 대표직을 내놓고 임시휴업에 들어간 그로서는 공천 과정에서 손에 피를 안 묻혀 좋고, 계파 갈등과 야권 분열로 어느 때보다 전망이 어두운 총선 결과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상황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물갈이쇼의 2막을 맡게 될 영입 인사, ‘새피’들은 또 어떤가. 정치의 ‘정’ 자도 생각해 보지 않다가 당 대표의 황감한 요청에 감복해 총선판에 뛰어든 ‘어쩌다 정치인’이거나, 금배지를 못 달아 방송과 SNS를 누비며 이름 팔기에 여념이 없었던 정치 엔터테이너의 처지로 대체 무슨 정치를, 누구를 위해 하겠다는 것인가. 그들에게 묻는다.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가, 정치인이 되겠다는 것인가. 장황한 정치 입문의 변을 늘어놓고는 결국 충성스런 계파원으로 전락한 무릇 ‘선배’들과는 뭐가 다르다 말할 텐가. 당 지도부나 유력 실세와 이런저런 연을 갖고 있지 않은 인사가 있다면, 계파정치에 기꺼이 참여할 준비를 마친 인사가 아니라면 기자에게 연락주기 바란다. 공개적으로 지지하겠다. 자격 없는 금배지는 걸러 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 나라 정치를 복원할 전부일 수는 없다. 꼬리를 자르고 도망쳐 목숨을 부지하는 도마뱀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면 오히려 정치 복원의 독일 뿐이다. 잘라 낸 꼬리 앞에서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는 데 그친다면 이제껏 그랬듯 그 손으로 앞으로 4년 내내 여의도를 향해 손가락질만 하고 말 것이다. 필리버스터 기록 경신으로 정치 부재의 현실을 거듭 증명하는 국회의 모습은 결국 우리 유권자 모두의 자화상이다. 차라리 눈을 감자. 그리고 지난 4년의 기억을 붙들고 투표하자. 그래야 지금의 반짝세일에 현혹되지 않는다. jade@seoul.co.kr
  • 김태호, 김무성·이한구에 “막가파+볼썽 사나워” 격한 비판…무슨 일?

    김태호, 김무성·이한구에 “막가파+볼썽 사나워” 격한 비판…무슨 일?

    김태호, 김무성·이한구에 “막가파+볼썽 사나워” 격한 비판…무슨 일? 김태호, 김무성 이한구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18일 공천 룰 관련 갈등을 빚은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에 대해 ‘막가파’ 등의 표현을 쓰며 격하게 비난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나갈 각오를 해야 한다’, ‘지더라도 선거 못 하겠다’ 등 당의 가장 중심에서 책임 있는 분이 ‘막가파식 공중전’을 통해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고 말했다.김 최고위원은 또 “국민이 생존에 위협을 받고 불안해 하는데 국민을 안심시키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를 갖도록 해야 할 집권 여당 최고 지도부에서 ‘나만 살겠다’고, ‘우리 이익만 지키겠다’고 하는 모습을 비치는 우리의 자화상, 정말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면서 “야당을 설득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우리 스스로 반국민적인, 국민의 뜻과는 너무나 다른, ‘국민 배신’의 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김 최고위원은 “야당이 분열돼 있으니 우리가 이렇게 해도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함은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라며 “국민은 새누리당을 ‘따로국밥 정당’으로 볼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이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국민 여러분 죄송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고개를 숙였다.김무성 대표는 회의에 참석했지만 이례적으로 발언을 하지 않았고, 김태호 최고위원이 발언하는 동안에는 입을 꽉 다문 채 정면 또는 책상을 바라봤다.한편 김 최고위원은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바보’가 남기고 간 숙제 “여러분도 사랑하세요”

    ‘바보’가 남기고 간 숙제 “여러분도 사랑하세요”

    일기·강론·편지 등 모아 자취 좇아 불평등한 현 사회가 가야할 길 제시 아, 김수환 추기경 1·2/이충렬 지음/김영사/1권 568쪽, 2권 564쪽/각 권 1만 6500원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의 병세는 폐렴 증세로 급격히 악화됐다. 문병 온 정진석 추기경과 염수정 주교, 명동성당 주임신부 박신언 몬시뇰 등에게 “나는 너무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랑하세요”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오후 6시 12분, 명동성당 종탑에서는 열 번의 조종이 울렸다. 그의 나이 87세였다. 세례명은 스테파노. 다음날, 두 명의 시각장애인이 각막이식수술을 받고 눈에서 붕대를 풀었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빛이 보였다.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사랑’이었다. (2권 529~530쪽) 오는 16일은 김 추기경의 선종 7주기다. 기일에 맞춰 세상에 나온 전기 ‘아, 김수환 추기경’은 1권 ‘신을 향하여’와 2권 ‘인간을 향하여’로 나눠 초고 원고만 8000여장, 전권 1132쪽의 장서로 김 추기경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렸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공인한 첫 전기이기도 하다. ‘간송 전형필’ 등의 전기 작가로 유명한 저자는 김 추기경의 개인 일기와 미사 강론, 강연, 언론 인터뷰, 편지,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선후배 신부들과 남다른 인연을 가졌던 이들까지 모두 찾아내 김 추기경의 자취와 삶을 좇았다. 특히 수록된 360여장의 사진 중에서 100여장이 처음 공개될 정도로 김 추기경의 삶의 궤적을 묵직하고도 새롭게 재조명했다. 김 추기경은 30세에 대구 계산동에서 사제로 서품됐고, 1969년 전 세계 추기경 134명 중 최연소인 47세에 추기경이 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친구이자 한국 민주화 운동의 버팀목이었다. 그러한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몇 장면을 소개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성탄 미사 생중계 중지 명령 1970년대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였다. 김 추기경은 1971년 성탄 자정미사 강론을 통해 “우리나라는 독재 아니면 폭력 혁명이라는 양자택일의 기막힌 운명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며 박정희 정권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사전 배포된 원고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청와대에서 생중계되던 성탄 미사를 지켜보던 박 대통령은 즉각 방송 중단을 지시했다. ●“하느님이 두렵지 않느냐”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하자 김 추기경은 같은 달 26일 추모 미사 강론에서 “이 정권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고 묻고 싶다”며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고 꾸짖었다. 앞서 1980년 12·12 사태 후 예방한 전두환 장군에게 김 추기경은 “전 소장 쪽이 총을 뽑았기 때문에 군대의 실권을 잡은 것 아니오”라고 일갈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릴 권력자의 표정이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스테파노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김 추기경은 평생을 주님께 나아갈 때 부끄럽지 않은 영혼이 되고 싶다고 기도하고 갈구했다. 감당할 수 있는 육체의 고통을 달라고도 했다. 김 추기경은 자화상 ‘바보야’ 전시회에서 “안다고 나대고 어딜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다”고 고백하는 등 늘 스스로를 낮췄다. 왜 김 추기경에 대한 전기를 이 시점에서 세상에 선보이는 것일까. 저자는 머리글에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의 불균형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김 추기경이 생전에 보여준 삶과 정신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가치관에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과 방법 하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자화상보다 뚜렷한 고흐의 민낯을 보다

    자화상보다 뚜렷한 고흐의 민낯을 보다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스티븐 네이페·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 지음/최준영 옮김/민음사/972쪽/4만 5000원 ‘선명한 색채와 정서적인 감화로 20세기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후기 인상주의 작가’. 네덜란드 태생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에 얹히는 도식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고흐를 향한 일반의 관심과 인기는 그 단편적 평가를 훨씬 뛰어넘는다. 동서양을 막론해 가장 선호되고 자주 회자되는 천재 화가이지만, 고흐는 정작 당대의 사람들에겐 철저히 외면받았던 비운의 인물이다. 대중들과 많은 비평가들은 그를 광인 취급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어떤 신문의 부고 기사는 그의 작품을 ‘병든 정신의 표현’으로 악평했다. 당대와 후대에 극적으로 엇갈리는 빈센트 반 고흐,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1991년 ‘잭슨 폴락-미국의 전설’로 퓰리처상을 공동 수상한 두 전기전문 작가가 펴낸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는 그의 삶과 작품을 다시 바라보자는 고흐의 재구성이다. 그 핵심은 인간 고흐의 민낯 들춰내기로 압축된다. 책 제목에서 판 호흐라는 네덜란드식 이름을 쓴 건 선입관을 걷어낸, 있는 그대로의 실체 규명이란 암시로 다가온다. 대대로 예술가와 성직자를 배출해낸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고집스럽고 별난 행동으로 부모와 반목을 일삼았던 가정의 외톨이, 강한 종교적 열망에도 불구하고 설교자로 수용되지 못했던 이단아, 갈망했던 여성들에게 번번이 거절당한 사랑의 실패자, 화가의 삶을 살면서도 이웃의 조롱을 받았고 동료들에게 외면받기 일쑤였던 이방인…. 판 호흐가 남긴 2000통의 편지며 900점의 유화 등 방대한 자료를 조직검사하듯 촘촘하게 분석한 책의 중요한 부분은 역시 화가 판 호흐를 지탱하고 존재하게 한 으뜸 요소였던 예술관 다시 보기이다. 생전 늘상 ‘나는 나의 그림과 같다’고 외쳤던 판 호흐는 여러 서간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을 그리고 싶다. 그리고 내가 그리는 것을 느끼고 싶다.” 작품은 바로 작가 자신이었음을 대변하는 말이다. 실제로 판 호흐 자신이 ‘내가 그린 것들중 가장 탁월한 작품’이라 언급했던 말년 작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밀밭’(1889년)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불길처럼 흔들리는 들, 타오르는 나무, 소용돌이치는 하늘은 격정의 삶을 대변하면서도 색상들의 독특한 율동과 오묘한 조화로써 섬세한 감수성과 평온을 엿보게 한다는 게 공통의 평가다. 그가 남긴 숱한 자화상 역시 ‘나는 나의 그림과 같다’는 신념의 일관된 표출이다. 짧게 깎은 머리칼과 날카로운 시선, 차가운 무채색 배경의 ‘자화상, 고갱에게 헌정’(1888년) 속 판 호흐의 얼굴엔 동료를 간절히 소망하는 고독한 화가의 날선 긴장이 역력하다. 그런가 하면 아를의 노란 집에서 고갱을 기다리던 시절 그린 ‘해바라기’에는 일방향적 애정과 강렬한 꿈이, 프로방스 생레미에서 요양하던 시절의 ‘사이프러스나무’(1889년) 속 구불거리는 녹색 곡선엔 번민과 희망이 뒤얽힌 혼란한 심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말년 작 ‘오베르 교회’(1890년)의 청색과 백색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암시하듯 창백하다. 유독 여러 번 그렸던 주제인 ‘씨 뿌리는 사람’은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처럼 기독교 정신의 영향이 배어 있다. “사람들이 내게 바다로 나가는 게 위험하다고 말할 때면 심사가 뒤틀린다. 위험의 한가운데에 안전이 있는 법이야.” 늘상 배려해 준 평생의 파트너인 동생 테오에게 전했다는 유명한 말. 1000쪽에 가까운 거창한 평전인 이 책은 ‘습작은 파종과 같다’며 늘상 노력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판 호흐의 왜곡상과 환상 걷어내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은 듯하다. 그 치밀한 다시 보기를 통해 두 저자가 매듭짓는 평은 이렇다. “지칠 대로 지친 생으로부터 계속 뿜어져 나온 이미지 속에서 핀센트(빈센트)의 격렬하고 도전적인 기질은 가장 화려하게 드러났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사설] 소외계층 보살펴 분노형 범죄 막아야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반사회적 범죄가 잊힐 새도 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화장실에 폭발물 의심 물체를 설치해 검거된 용의자는 사회에 불만을 가진 30대 남성이었다. 음대 대학원을 졸업했고 어린아이까지 두고 있는 엘리트 가장이어서 더 충격적이다. 번번이 취직에 실패해 생활고에 시달리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범행의 동기가 고작 “짜증이 나서”였다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번 사건은 가짜 폭발물 소동으로 일단락됐다. 실제 폭발물을 설치했거나, 애초 우려처럼 이슬람국가(IS)와 연계한 테러였더라면 어떤 참극이 빚어졌을지 상상만 해도 오싹하다. 이는 전형적인 분노형 범죄다. 취업난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품어 불특정 다수를 향해 공격 의지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다. 범행 대상을 무작위로 정하는 묻지마 범죄들이 최근 꼬리를 물고 있다는 대목에서 심각성은 더하다. 몇 달 전 충남 아산 대형마트에서 발생한 3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이나 중학생이 교실에서 부탄가스를 폭발시킨 사건 등이 모두 그런 맥락의 범죄들이다. 자신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피해 강박증을 무차별 증오범죄로 해소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잘못돼도 뭔가 한참 잘못돼 가는 일그러진 사회의 자화상이다. 묻지마 범죄는 개인의 비뚤어진 증오심과 비이성적 판단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개인에게 내재된 불만을 불특정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해소하려는 범죄 행태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이어지는 경제 불황에 취업난이 가중되면 사회적 불만은 앞으로도 더 커질 수 있다. 그 과정에서의 피해 심리와 적개심을 공동체에 대한 폭력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는 화약고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 인권 강화 교육이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해지고 있다. 가정과 사회 공동체의 책임도 크다. 이번 사건을 분노조절에 실패한 개인의 일탈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분노범죄와 사회의 건강 지표는 따로 떼어 놓고 볼 수 없는 사안이다. 현실에서의 좌절과 소외감, 상대적 박탈감 등이 자포자기식 범죄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가 책임을 돌아봐야 한다.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 인프라 구축, 정신보건 정책 등이 꾸준히 뒷받침돼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 “미생 속 타인의 삶에서 자기 모습도 봤으면”

    “미생 속 타인의 삶에서 자기 모습도 봤으면”

    “‘이끼’가 작가로서 잊혀졌던 이름을 되찾아 준 작품이라면, ‘미생’은 바위에다가 이름을 새기게 한 작품이에요. 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줬죠. 저뿐만이 아니라 ‘미생’을 위해 함께 애쓰는 많은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작품입니다.” 지난해 말 장그래가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대기업은 아니다. 중소기업의 말단 직원이다. 웹툰으로, 드라마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가 앞으로 어떤 삶을 펼쳐 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장그래 아빠’ 윤태호(47) 작가가 2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미생’ 시즌2 관련 인터뷰를 고사하다가 첫 단행본 출간을 맞아 자리를 마련했다. 윤 작가는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중소기업’이라는 터전이 알면 알수록 너무 처절하다고 말했다. 또 “스스로 수치심이나 자격지심은 땅에 내려놓고 옷을 벗은 채 전투장으로 나가야 하는 게 중소기업 샐러리맨”이라며 시즌2의 핵심 캐릭터는 중소기업의 생존 그 자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중·장년층 이야기도 비중 있게 그려진다고. 물론 장그래 등 청춘들이 실존적으로 직면한 결혼 문제 등도 다뤄질 예정이다. 시즌2는 3년가량 3부로 나뉘어 연재된다. 시즌1은 비정규직의 설움, 우리 시대 자화상을 담아내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웹툰과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물론, 단행본도 잔뜩 움츠러든 국내 출판 시장에서 230만부나 팔려 나갔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저는 땅에서 떨어진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땅바닥에 발을 딛고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죠. 상황이 황당하다면 언어로 현실감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독자들이 매력을 느꼈다면 그런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장그래가 정규직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독자들이 많다. 하지만 윤 작가는 시즌2에서도 위안이나 위로를 줄 생각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생’을 통해 본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독자 몫이라는 것이다. “정규직이 과연 ‘완생’인지 잘 모르겠어요. 해피엔딩일지 아닐지는 그려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미생’이 불행과 행복이 아니라 풍경을 다루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타인의 삶을 목격하게 만들고, 그 안에 내 모습도 있었구나 느끼게 하고 싶어요.” 드라마 속 장그래는 막바지에 원작 캐릭터와 조금 달라졌다. 시즌2에 영향은 없을까 싶은데 윤 작가는 드라마와 시즌2는 별개라고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드라마에선 장그래가 크게 성장하지만 원작은 그렇지 않죠. 시즌2 첫 회에 장그래가 김칫국물을 닦으며 초라해 못 견디겠다고 독백하는 장면이 있어요. 드라마와는 결별하고 시즌1을 잇겠다는 의지를 담은 장면입니다.” ‘미생’은 게임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윤 작가는 ‘미생’과는 별도로 100권짜리 교양 만화도 준비 중이다. 올 가을부터는 몇 년 전 다녀온 남극 세종기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 작품을 시작할 계획이다. 애니메이션, 드라마, 음반, 뮤지컬까지 동시에 구상하고 있다. 열기구와 관련한 작품도 준비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린란드에서 한 달간 살아보고 만화로 그리는 게 꿈이라고도 했다. “한 작품이 어디까지 사이즈를 넓힐 수 있을지, 만화 이외의 영역은 어떠한지 구경하고 싶어요. 제안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역으로 기획안을 만들어 제안할 생각도 있지요.” 해외 진출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미생’이 중국, 일본, 대만에 진출한 상황이지만 아직 뚜렷한 결과물은 나오지는 않은 상태라고. “온라인 만화의 장점은 국경이 없다는 거예요. 저의 경우 국내 현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많은 데 해외에서도 읽힐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을 큰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사설] 바닥권 못 벗어난 청렴도, 정치인들 각성해야

    우리나라 국가청렴도가 7년째 제자리다. 그제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지난해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6점을 받았다. 조사대상 168개국 중 체코 등과 함께 공동 37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공동 27위로 바닥권이다. 2014년 43위에서 6계단 올라갔다고 하나 우리보다 앞 순위였던 바하마 등 5개국이 조사 대상에서 빠져 국가청렴도가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사회가 더 투명해지고 국민들의 부패 척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후퇴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절대부패에서 벗어난 정도’의 한심한 상황인 것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지난해 나라를 뒤흔든 ‘성완종 리스트 파문’ 등이 악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인식 조사를 하면 ‘부패한 직업’으로 늘 정치인이 1위로 꼽힌다. 정권마다 부패 척결을 외쳤건만 정치인들의 부패와 비리는 고질병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다. 한 나라의 총리를 지낸 한명숙 전 의원과 이완구 의원이 기업인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교도소에 갔거나 재판을 받는 처지가 된 게 오늘의 현실이다. 도정에 전념해야 할 홍준표 경남지사가 최근 휴가를 내고 재판정에 나타난 것도 성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어서다.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 역시 포스코에 영향력을 행사해 지인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로 국회에 체포동의안까지 넘어가 있다.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의 비리 백태 중 하나로 보좌관을 상대로 하는 급여 상납과 같은 ‘갑질’도 빼놓을 수 없다. 새누리당 박대동, 더불어민주당 이목희 의원의 갑질이 도마에 오르더니 최근 새누리당 최구식 전 의원 역시 보좌관으로부터 급여 1억 6000여만원 중 일부인 6500여만원을 상납받은 의혹이 불거졌다. 최 전 의원은 “보좌관이 사무실 운영경비 충당을 위해 자발적으로 한 행동”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시시비비를 떠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정치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우리 사회의 부패 유발자인 정치권의 부패 사슬이 끊어지지 않으면 국가청렴도가 높아질 리 만무다. 하지만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부패 근절을 위해 9월부터 시행될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에 정작 국회의원은 빠졌다. 위기의 한국 경제를 구하려면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정치권의 부패도 반드시 개혁해야 할 대상이다.
  • [영화 多樂房] 캐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1950년에 발간한 그의 저서에서 겉으론 사교적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고립감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묘사한 바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고독한 군중’(Lonely Crowd)은 집단 윤리와 기업 논리 아래 개인의 성취 혹은 행복을 추구하지 못한 채 살아가던 당시 미국 소시민들을 적확하게 표현한 단어다. 순종적인 성품과 안정적인 생활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는 1950년대를 관통하며 가속화된다. 영화 ‘캐롤’에서 이처럼 보수적인 사회가 용납하지 못하는 사랑에 빠져든 테레즈(루니 마라)는 캐롤(케이트 블란쳇)에게 말한다. “난 언제나 혼자 새해를 보냈어요. 군중 속에서요. 올해는 혼자가 아니에요”라고. 동성 간 사랑을 다룬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성적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포함하게 마련이지만, 금기된 사랑의 표본이라는 측면이 보다 강조된 작품도 많다. ‘브로크백 마운틴’(2005)이 그랬던 것처럼 ‘캐롤’은 사랑의 두 주체가 동성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인물들의 정서적 교감에 집중한다. 자신의 인생에 무엇인가가 결핍돼 있음을 감지하며 살고 있던 테레즈와 캐롤은 여느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강한 자성을 느낀다. 애인이 있는 젊은 백화점 직원과 이혼소송 중인 중산층 부인 사이에 극복해야 할 점이 많다는 사실은 동성애라는 특수성과 함께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의 보편성까지 포괄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오프닝 신에서 50년대 영화처럼 정지된 이미지를 배경으로 출연진과 스태프의 이름이 커다란 글씨로 지나가게 하면서 아예 관객들을 그 시절의 영화관으로 옮겨 놓는다. 획일화된 문화와 가치관을 거부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두 여인의 여정에 관객들이 온전히 동참하게 되는 것은 이처럼 용의주도한 연출 때문이다. 영화의 모든 요소가 나무랄 데 없이 합을 맞춘 수작이지만, 자칫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우아한 멜로 드라마로 완성시키는 데 훌륭하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미술과 의상이다. 이미 ‘파 프롬 헤븐’(2002)에서 50년대 미국을 재현한 바 있는 헤인즈 감독은 이후 십여 년의 세월을 반영하듯 훨씬 원숙하게 그 시절과 그 시절의 사람들을 묘사한다. 특히 리얼리티를 살리면서도 드라마의 감성을 듬뿍 담아 놓은 공간 연출은 주목해 볼 만하다. 너무 평화로워 보여서 오히려 긴장감이 느껴지는 크리스마스 시즌 뉴욕의 거리와 레스토랑,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음에도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백화점, 계급 차의 대비와 정서적 공감대가 함께 느껴지는 두 사람의 집 등 캐롤과 테레즈가 함께 있는 공간들은 매 장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의 격정과 ‘브로크백 마운틴’의 고적함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작품이다. 2월 4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World 특파원 블로그] 절망만 말하는 ‘자학’ 선거전 암울한 대만 사회의 자화상

    [World 특파원 블로그] 절망만 말하는 ‘자학’ 선거전 암울한 대만 사회의 자화상

    12일 중국과 대만 언론에는 특이한 유세 사진이 실렸다. 오는 16일 실시되는 총통 및 입법위원(국회의원) 동시선거에 출마한 국민당 소속 입법위원 후보 왕진스(王進士)가 먹물을 얼굴에 들이붓는 모습이었다. 왕 후보는 “나는 얼굴에 먹칠하는 게 두렵지 않다”고 외쳤다. 그의 퍼포먼스 사진은 ‘자학’(自虐)으로 치닫는 이번 선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까지 집권당인 국민당과 야당인 민진당은 “우리가 집권하면 무엇을 하겠다”는 공약 대신 “상대 당이 집권하면 대만은 망한다”며 국민을 협박했다. 지난 주말 대규모 유세에서 국민당 총통 후보 주리룬(朱立倫)은 “민진당은 중국과 싸우려는 위험한 세력”이라면서 “민진당의 집권은 대만 젊은이를 전쟁으로 내몰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는 “국민당 집권 8년 만에 대만은 중국에 예속됐다”면서 “국민당의 집권 연장은 대만의 종말을 재촉할 것”이라고 맞섰다. ‘절망’만 말하는 대만 선거는 쇠퇴하는 대만을 비추는 거울이다. 2010년까지만 해도 10%가 넘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분기 -1.1%를 기록했다. 지난해 1~9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2%로 디플레이션 상태를 연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현재 수출은 9개월 연속 마이너스, 수입은 11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임금은 20년째 제자리인데, 부동산 가격은 그새 40배나 올랐다. 많은 유권자는 이 모든 책임이 중국과 국민당에 있다고 믿고 있다. 대만의 대중국 수출의존도가 40%에 이르고 대만 수출기업의 47%가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대만협회(AIT·대사관 격) 회장을 지낸 리처드 부시는 “8년 전 민진당이 집권했더라면 대만 경제는 더 악화됐을 것”이라고 밝힐 만큼 중국 없는 대만의 생존은 더 불투명한 상황이다. 심각한 것은 젊은 층의 절망이다. ‘22K’(초봉 2만 2000대만달러·약 79만원) 달성이 지상 과제일 정도로 젊은이들은 실업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 BBC가 최근 중국 본토 출신의 후손과 대만 현지인의 후손 10명을 심층 인터뷰했는데 전원이 “국민당이 싫어 민진당을 찍겠지만, 정권이 바뀐다고 희망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청년들은 “통일이냐 독립이냐만을 선택할 것을 강요한 양대 정당의 20년 싸움에 숨이 막힌다”고 호소하지만, 새로운 정치세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씨줄날줄] 올해의 신조어/임창용 논설위원

    올해를 빛낸 인물은? 지난 1년을 잘 나타낸 사자성어는? 연말이 가까워 오니 한 해를 정리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달이 차고 계절이 바뀌면 한 해가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지만, 해를 넘기기 전에 무언가 정리하고픈 인간의 욕구 때문인 듯싶다. 그중 눈에 들어온 게 ‘올해의 신조어’다. 대부분 표준어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고 재미를 느낀 단어들이다. 상당수는 젊은 층의 생각과 사회 변화의 흐름을 보여 준다. 톡톡 튀는 감각이 웃음을 주기도 한다. 네티즌들이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찾아본 신조어는 ‘덕력’(德力)이다. 덕력은 ‘덕후의 공력’이라는 뜻의 신조어다. 덕후는 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말 ‘오타쿠’의 줄임말이다. 덕력을 갖춘 사람은 한 분야의 고수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만화 캐릭터 도라에몽 덕후라는 사실을 밝힌 연예인 심형탁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자주 검색됐다. 덕력이란 신조어가 유행하면서 자신이 한 분야에서 덕력의 소유자인지를 스스로 체크해 보는 덕력 테스트도 인기를 끌었다. 덕력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단어는 ‘뇌섹남’이다. ‘뇌가 섹시한 남자’를 줄인 말이다. 지적이면서 말솜씨가 뛰어나고 유머가 있는 남자를 말한다. 국내외 명문대를 나온 훈남 연예인들이 방송에 많이 출연하면서 생성된 말로 추정된다. 3위는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사랑해’의 줄임말 ‘예지앞사’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술자리에서 유행처럼 읊어 대는 건배사와 비슷하다. 4위는 반격을 허용하지 않고 적을 쓰러트린다는 뜻의 ‘와리가리’다. 게임 파이널 파이터의 공격기술 이름인데, 올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밴드 혁오가 노래 제목으로 쓰면서 부각됐다. 이 밖에 인기가 있음에도 계속 하위권에 처져 있는 프로야구팀 LG, 롯데, 기아의 앞글자를 딴 ‘엘롯기’가 5위에 올랐다. 대학생들이 뽑은 신조어들도 있다. 홍보연합동아리 ‘생존경쟁’이 전국 대학생 2015명을 대상으로 올해 가장 많이 사용한 신조어를 조사한 결과 ‘금수저’가 1위로 뽑혔다. 금수저는 부유한 부모를 둬 자기 노력 없이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계층을 풍자한 단어다. 올해 적지 않은 ‘금수저 사건’들이 일반 서민들과 취업에 목마른 청년들을 분노케 하고 좌절감을 안겼다. ‘흙수저’ ‘은수저’란 말이 파생돼 나오기도 했다. 2위는 지옥처럼 가혹한 한국 사회를 뜻하는 ‘헬조선’이, 3위는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의미하는 ‘N포세대’가 차지했다. 젊은이들이 뽑은 신조어들은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그만큼 우리 청년들이 힘들고 지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안쓰럽다. 내년 이맘때 뽑힐 신조어들은 넘치는 힘과 희망을 품은 단어이기를 기대해 본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30번 퇴짜 맞고 임시 경비로… 그렇게 한달 또 버틴다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30번 퇴짜 맞고 임시 경비로… 그렇게 한달 또 버틴다

    가장 오랫동안 일하지만 가장 가난한 노인들. 한국 노년층의 서글픈 ‘역설의 자화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실질 은퇴 연령은 72.9세로 가장 늦지만 65세 이상 노인의 평균 소득은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의 3분의1 수준(서울 노인 기준)에 불과하다. 양질의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에다 운 좋게 일을 구해도 1년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 이재갑(70)씨는 이런 대한민국 빈곤 노인의 초상이라고 할 만하다. 하루아침에 해고당했지만 낙담할 시간조차 없었다.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은 이씨와 한달간 함께하며 그의 구직 분투기를 관찰했다. “모레가 이자 내는 날인데, 허 참….” 경비원 모자를 눌러 쓴 노인은 허공에 혼잣말을 뱉었다. 아파트 경비실 벽에 걸린 달력을 올려다 본다. 11월 23일. 취업한 지 고작 20일 만이었다. 이씨는 이틀 전 경비원 채용을 맡고 있는 용역회사 사장에게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왜 잘린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사장한테 그랬어. 무슨 일 때문인지 몰라도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근데 막무가내야. 잘리는 이유라도 말해 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그냥 이곳과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래.”  힘없는 노인을 일터 밖으로 밀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채용 뒤 2개월은 수습 기간이어서 일방적으로 해고해도 된다는 논리였다. 이씨와의 동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업체 바꾼다고, 나이 많다고… 7번 해고] 해고 통보 다음날, 이씨는 이력서를 인쇄했다. 근로 경험만큼 눈에 띄는 건 여러 줄을 차지하고 있는 해고·퇴직 경력이었다. ‘2013년 12월 관리업체 변경으로 강동 ○○아파트에서 퇴직/ 2014년 6월 연령 초과로 송파 XX아파트에서 해직/ 9월 관리업체 변경으로 경기 △△아파트 퇴직….’ 2013년 처음 경비 일을 시작한 뒤 2년 새 7차례나 옷을 벗었다. “왜 그렇게 많이 잘렸나요.”  젊은 기자의 조심성 없는 질문에 이씨가 답했다. “이유야 만들면 다양하지. 용역회사 바뀌면 잘리고, 쏟아지는 졸음 참으려고 신문 보다가 잘리고, 모친이 아프다고 보고까지 했는데도 출근 안 했다고 잘리고… .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같은 경비원들끼리 음해를 하는 경우도 많아.” 그는 해고 사유들을 받아들일 수 없어 4차례 고용노동부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냈고 모두 승소했다. 그러나 합의금 조로 업주로부터 건당 50만~60만원씩 받았을 뿐 복직하진 못했다. “나나 되니까 싸워서 돈이라도 받았지. 그냥 쫓겨나는 노인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사흘간 소개소 20곳 전화…대답 없어] 일자리를 찾으려고 가장 먼저 펴 든 건 생활정보지다. ‘청소 아주머니 급구’ ‘파출부 환영’ ‘노래방 도우미 모십니다’ ‘25~40세 어선 선원 모집’…. 노인을 위한 일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생활정보지조차 70세 노인은 관심 밖이었다. 겨우 ‘경비원 모집’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지만 밑줄 친 글이 이씨를 낙심하게 만든다. ‘67세 이하, 급여는 상담 후 결정.’ 이튿날부터는 민간 직업소개소에 무작정 전화를 돌렸다. “네, 안녕하세요. ‘이제 옵니다’가 아니라 ‘이제 갑니다’ 해서 이재갑이에요.” 60세 때 구청에서 퇴직한 뒤 일자리를 구하며 수백 번은 했을 법한 능숙한 자기소개였다. “사장님과 통화하니 좋은 일이 생길는지 오던 비도 그치네요. 우리 ○○인력 통해 꼭 취직하고 싶어요. 부탁합니다.” 그렇게 사흘간 직업소개소 20여곳에 전화했고, 그중 네 번은 사무실에 직접 찾아갔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의 바람은 단순했다. 직종 불문하고 월급 140만원을 받는 일. 모아 둔 돈 없이 마이너스 통장 이자와 카드 대금으로 월 50만~60만원씩 내야 하는 형편에 아내와 사는 원룸 월세 50만원이라도 안 밀리려면 사실 이 돈으로도 모자랐다. 치매를 앓는 구순 노모의 요양원 비용도 이씨의 몫이었다. 아들이 있지만 이제 막 취업한 아이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이자·생활비 낼 월140만원이면 되는데”] 이씨도 ‘중산층’일 때가 있었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급여가 끊긴 적은 없었다. 허투루 쓰지 않고 모아 서울 송파의 40평(132.2㎡) 아파트도 샀다. 하지만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게 해 주면 매월 150만원씩 주겠다”는 말에 속아 집을 잡혔다가 수익은커녕 그 아파트마저 날렸다. 60세에 정년퇴직한 뒤로는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1960년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40대 때 정당 중앙연수원에서 ‘교수’라는 직함도 가졌다. 50대에는 서울의 모 구청 연구위원 등으로 근무한 이씨지만 노인 구직자에게 ‘스펙’은 별 무기가 못 됐다. 고분고분한 태도와 한살이라도 젊은 나이,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먹고살려니까 늘 투잡(2개의 직장)을 뛰었어. 몇 년 전에는 아파트 2곳에서 동시에 경비 일을 했어. 밤새 일하고 다음날엔 다른 아파트에 출근해 근무하고. 새벽에는 4~5시간 쪽잠 잘 수 있으니 괜찮아.” [“65세 넘으면 일자리 없고 급여도 깎여”] 해고 20일째. 노인은 기자의 권유로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인일자리센터를 찾았다. 일자리 주선 때 첫 월급의 10%를 떼어 가는 민간 직업소개소와 달리 공공 일자리센터는 수수료가 없다. 20대 후반쯤 된 여성 상담사는 경비나 청소 일을 원한다는 말에 사업장 1~2곳을 추천했다. 하지만 매일 9시간씩 주 6일을 일하고 나오는 돈이 110만원이라는 말에 이번에는 이씨 쪽에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충 살 만한데 소일거리 찾는 거라면 50만~60만원 벌어도 좋아. 근데 나는 지금 그 돈 벌어서는 방세도 못 내고 밥도 못 먹어. 그래도 올해는 최저임금이 올라서 140만원짜리 경비 일자리가 있잖아. 나 잠 안 자도 되니까 더 일하고 더 받는 자리 좀 구해 줘.” 상담사는 난감해했다. 그는 “업체들이 60세부터 65세 사이에서만 뽑으려 하고 65세 넘어가면 급여 조건이 확 나빠진다”고 전했다. 30일 동안 이씨는 모두 30여곳의 직업소개소를 돌았다. 하지만 칠순 노인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아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나마 한 민간 직업소개소가 임시로 아파트 경비직을 주선해 줘 한달은 더 버티며 일자리를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절망적일 만했지만 이씨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 해 준다는데 뭐. 아프지만 않으면 버틸 수 있어. 아프지만 않으면….” 특별기획팀 tamsa@seoul.co.kr ■ 특별기획팀 유영규 팀장 whoami@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윤길중 전 국회부의장과 임은정 검사/문소영 사회2부장

    [데스크 시각] 윤길중 전 국회부의장과 임은정 검사/문소영 사회2부장

    ‘마당에 꽃 떨어지니 가련하여 못 쓸겠고, 창밖에 달빛 밝으니 너무 좋아 잠 못 이룬다.’ ‘화락정전련불소 월명창외애무면(花落庭前憐不掃, 月明窓外愛無眠’)이란 한시가 적힌 글씨 한 폭을 선물받은 것은 1997년 겨울이었다. 낙화에 마음이 애달프고, 달빛에 취해 잠 못 이룰 정도이니 사춘기의 여학생 같지만, 이 한시를 쓴 주인공은 그해 81세인 ‘노회한 정치인’ 윤길중 전 국회부의장이었다. 1916년 함경남도 북청 출생으로 2001년 유명을 달리한 윤 전 국회부의장의 행적을 돌아보면 오욕의 역사에 적응한 지식인의 서글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이른바 ‘정치 철새’나 ‘진보 인사의 변절’도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윤 전 국회부의장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수재였다. 경성대 법대와 일본대 법과 재학 중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 각각 합격해 강진군수·무안군수로 재직했고, 조선총독부 사무관으로도 일했다. 해방 후 국민대 교수로 옮기고서 그는 제헌국회의 법제조사국 국장 등을 한다. 1950년대 무소속으로 제2대 민의원(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956년 조봉암의 진보정당 창당에 참여해 간사장 등을 맡았다. 1958년 1월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됐지만 1년 뒤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4·19 민주혁명으로 1960년 사회대중당을 결성해 그해 7월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됐다. 그 1년 뒤에 5·16 군사쿠데타로 그는 혁신계 정치인과 함께 감옥에 가 1968년 4월까지 7년간 복역했다. 박정희 정권의 삼선 개헌 반대를 한 그는 1971년 야당 신민당 소속의 제8대 국회의원이 됐다. 야당 의원에서 여당으로의 전환은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이 계기다. 1980년 12월엔 민주정의당 발기인이 돼 11대, 12대, 13대에 내리 민정당 3선 의원을 지냈다. 그 덕에 11대 국회 하반기에 국회부의장이 됐고, 3당 합당으로 민자당 상임고문도 했다. 국회를 ‘행정부의 거수기’라고 비웃던 시절 탓인지 국회부의장을 지낸 그를 ‘붓글씨를 잘 쓰는 정치인’이라고 야박하게 평가했다. 까맣게 잊었던 ’윤길중’을 최근 ‘임은정 검사의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 사건’ 덕분에 떠올렸다. 임 검사는 2012년 12월 윤길중 진보당 간사의 재심 사건에 대해 ‘무죄 구형’을 했다. 임 검사는 앞서 같은 해 9월 ‘박형규 목사의 민청학련 재심 사건’에서도 ‘무죄 구형’을 했다. 검찰 수뇌부는 ‘윤길중 재심 사건’에서 임 검사에게 ‘백지 구형’을 요구했다. 백지 구형은 법원의 판사가 법과 원칙대로 선고하라는 의미이고, 무죄 구형은 검사가 소신껏 죄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니, 아주 다른 선고를 가져올 수도 있다. 검찰은 이것을 문제 삼아 임 검사에게 정직 4개월 처분을 했다. 임 검사는 취소 소송을 내 1·2심에서 모두 이겼다. 3년 전의 ‘괘씸죄’는 여기서 끝나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법무부가 임 검사를 검사적격심사 대상 7명 중 하나에 포함해 놓아 여론을 집중시키고 있다. 임 검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느낌이다. 의연하게 대응하겠다. 저는 권력이 아니라 법을 수호하는 대한민국 검사”라고 했다. ‘공안 검찰의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온통 붉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임 검사가 ‘무죄 구형’을 한 윤길중이란 인물은 ‘종북 빨갱이’가 아니라 현재 여당인 새누리당·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민자당 국회의원이자 민정당 몫으로 국회부의장을 지낸 인물이다. 다스 베이더의 “내가 네 아비다”라는 확인이 필요한 시절인가. symun@seoul.co.kr
  • 정의화 “예산, 법안 처리 수단 안 돼”

    정의화 국회의장은 3일 새해 예산안과 쟁점 법안에 대한 여야의 연계 처리와 관련, “국회의원은 거수기가 되고 국회 상임위원회는 겉도는 부분이 많다. 대신 여야 지도부에 의한 주고받기식 거래 정치는 일상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의장은 이날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법정시한(2일 밤 12시)을 넘겨 예산안이 통과된 직후 “이것이 현재 우리 의회 민주주의의 현실이고 자화상”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저를 포함한 모두가 자성하고 그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 의장은 “국회는 상임위 중심으로 예산과 법안을 논의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예산안과 법안을 의결해야 한다”며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서 법안을 충실히 심의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신성한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을 법안 통과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법률에 명시된 법제사법위원회 숙려 기간도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정 의장은 예산안과 법안에 대한 여야의 연계 처리 방침에 반대하며 예산안은 2일, 법안은 8일 별도 처리하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12년 만에 처음으로 예산안을 법정시한 내에 처리했던 국회는 결국 1년 만에 또다시 헌법을 어기는 오점을 남겼다. 정 의장은 “지금 국회는 국회의원과 상임위가 보이지 않고 여야 정당 지도부만 보이는 형국”이라고 지적한 뒤 “법률에 명시된 대로 예산을 통과시키는 전통이 뿌리내리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누구나 시인… 살면서 뭔가 남기려는 사람들 담아”

    “누구나 시인… 살면서 뭔가 남기려는 사람들 담아”

    시인 함명춘(49)이 확 달라졌다. 등단 초기의 관념적인 시 세계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삶과 이야기를 담은 시집을 내놨다. 첫 시집 이후 17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문학동네)이다. 내면의 생각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생동감 있게 그려 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더 따뜻해졌다. 시인도 “이번 시집엔 삶에 대한 애착, 잊히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시인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1998년 첫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를 냈다. “첫 시집을 낼 때 자연을 배경으로 상상을 넓혀 가는 시를 썼으면 좋았을 텐데 언어에 대한 탐구 관점에서 시를 써 언어의 부정적 측면에 매몰되고 말았어요. 언어가 무서워졌고 부정적 언어로 시를 쓰는 게 죄악처럼 느껴져 ‘문학적 실어증’에 빠졌습니다. 1993년 호구지책으로 출판업에 뛰어들었는데 그 무렵 먹고사는 문제도 심각해져 시와 멀어지게 됐죠.” 2005년 고 최인호 작가와의 만남으로 시를 쓸 동력을 얻게 됐다. “최 선생님의 책을 내기 위해 찾아뵌 게 인연의 시작이었어요. 이후 선생님께서 몸이 안 좋아지시면서 제게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셔서 선생님 출판사로 옮겼어요. 아픈데도 쉬지 않고 글쓰기에 매진하시는 모습이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글은 행동하는 것, 상황에 관계없이 쓰는 행위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사람들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언어의 긍정적인 면도 깨달았다. 2010년 조금씩 상상력이 열리면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던 세월을 견뎌 낸 안타까움은 표제작 ‘무명시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에 없었던/난 그가 연필을 내려놓는 것을 본 적이 없다/(중략) 난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기야/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 들이 그의 유일한 독자였으니/세상을 위해 쓴 게 아니라 세상을 버리기 위해 쓴 시처럼/난 그가 집 밖을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잠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먹는 것도 본 적이 없다/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자꾸 적어 넣었다’(무명시인) “사실상 저의 자화상이에요. 2011년에 두 시간 만에 쓴 걸로 기억돼요. 글을 놓았어도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글을 쓰고자 하는 행위를 많이 했어요. 단 한 편의 시도 완성하지 못했지만 쓰기 위해 고심을 많이 했죠. 저의 자화상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면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어요. 누구나 무명시인이에요. 작품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살면서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자연의 힘을 노래한 시들이 돋보인다. 건조하고 힘든 도시의 삶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살고 싶은 직장인들의 절실한 마음을 담은 ‘분천역에서’, 인간의 힘든 상황을 정화해 주기 위해 좋은 공기와 환경을 만들어 내는 숲과 자연을 노래한 ‘자작나무숲에서’ 등이 대표적이다. 시인은 시집 들머리 시인의 말을 최 작가와의 대화로 갈음했다. ‘작가 최인호가 물었다. “명춘아, 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 줄 아니?” 내가 말했다. “음, 사랑이요 아니 믿음이요.”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아니다 죽는 거다.” 우린 말없이 걸었다.’ “시인의 말은 당초 ‘최인호’라는 제목으로 쓴 시였어요. 본문에 시를 넣으려다 시인의 말로 쓰는 게 더 좋을 듯했어요. 최 선생님의 말씀은 ‘열심히 살아라. 삶을 직시하라. 에돌아 생각하지 말고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화두처럼 들렸어요. 제 가슴속에 깊이 새겨 놓은 말입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함명춘 시인 17년만에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 출간

    함명춘 시인 17년만에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 출간

    시인 함명춘(49)이 확 달라졌다. 등단 초기의 관념적인 시 세계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삶과 이야기를 담은 시집을 내놨다. 첫 시집 이후 17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문학동네)이다. 내면의 생각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생동감 있게 그려 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더 따뜻해졌다. 시인도 “이번 시집엔 삶에 대한 애착, 잊히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시인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1998년 첫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를 냈다. “첫 시집을 낼 때 자연을 배경으로 상상을 넓혀 가는 시를 썼으면 좋았을 텐데 언어에 대한 탐구 관점에서 시를 써 언어의 부정적 측면에 매몰되고 말았어요. 언어가 무서워졌고 부정적 언어로 시를 쓰는 게 죄악처럼 느껴져 ‘문학적 실어증’에 빠졌습니다. 1993년 호구지책으로 출판업에 뛰어들었는데 그 무렵 먹고사는 문제도 심각해져 시와 멀어지게 됐죠.”  2005년 고 최인호 작가와의 만남으로 시를 쓸 동력을 얻게 됐다. “최 선생님의 책을 내기 위해 찾아뵌 게 인연의 시작이었어요. 이후 선생님께서 몸이 안 좋아지시면서 제게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셔서 선생님 출판사로 옮겼어요. 아픈데도 쉬지 않고 글쓰기에 매진하시는 모습이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글은 행동하는 것, 상황에 관계없이 쓰는 행위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사람들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언어의 긍정적인 면도 깨달았다. 2010년 조금씩 상상력이 열리면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던 세월을 견뎌 낸 안타까움은 표제작 ‘무명시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에 없었던/난 그가 연필을 내려놓는 것을 본 적이 없다/(중략) 난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기야/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 들이 그의 유일한 독자였으니/세상을 위해 쓴 게 아니라 세상을 버리기 위해 쓴 시처럼/난 그가 집 밖을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잠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먹는 것도 본 적이 없다/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자꾸 적어 넣었다’(무명시인)  “사실상 저의 자화상이에요. 2011년에 두 시간 만에 쓴 걸로 기억돼요. 글을 놓았어도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글을 쓰고자 하는 행위를 많이 했어요. 단 한 편의 시도 완성하지 못했지만 쓰기 위해 고심을 많이 했죠. 저의 자화상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면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어요. 누구나 무명시인이에요. 작품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살면서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자연의 힘을 노래한 시들이 돋보인다. 건조하고 힘든 도시의 삶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살고 싶은 직장인들의 절실한 마음을 담은 ‘분천역에서’, 인간의 힘든 상황을 정화해 주기 위해 좋은 공기와 환경을 만들어 내는 숲과 자연을 노래한 ‘자작나무숲에서’ 등이 대표적이다. 시인은 시집 들머리 시인의 말을 최 작가와의 대화로 갈음했다. ‘작가 최인호가 물었다. “명춘아, 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 줄 아니?” 내가 말했다. “음, 사랑이요 아니 믿음이요.”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아니다 죽는 거다.” 우린 말없이 걸었다.’  “시인의 말은 당초 ‘최인호’라는 제목으로 쓴 시였어요. 본문에 시를 넣으려다 시인의 말로 쓰는 게 더 좋을 듯했어요. 최 선생님의 말씀은 ‘열심히 살아라. 삶을 직시하라. 에돌아 생각하지 말고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화두처럼 들렸어요. 제 가슴속에 깊이 새겨 놓은 말입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N포 세대, 포기할 수 없는 이 노래

    N포 세대, 포기할 수 없는 이 노래

    음악만 하고 싶은데 먹고 살기가 녹록지 않았다. 밴드를 접을 생각도 했다. 기왕 접을 거라면 오디션 프로그램에 한번 도전이나 해 보려 했다. 처음엔 톱밴드에 나가려 했다. 그런데 올해는 열리지 않을 것 같다는 잘못된(?) 정보를 입수했다. 낙심하려던 차에 마침 슈퍼스타K 예선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는 덜컥 지원서를 냈다. “TV에 한번 정도 나오면 공연 때 한두 명이라도 더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사실 나가면서도 우리 밥상이 아닌 느낌이었죠. 멤버 모두 서른이 넘어 얼굴에 철판 깐 셈 치자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호응에 얼떨떨하네요.” 최근 ‘N포 세대’의 대변자로 떠오른 ‘중식이 밴드’의 이야기다. 요즘 세상에 스펙도 없는데 아이를 갖고 싶다니 제정신이냐고(‘아기를 낳고 싶다니’), 무너진 건물 당신 발 밑에 아직 살아 있으니 살려 달라고(‘여기 사람 있어요’), 힘없는 노동자인 아버지가 빚까지 내서 대학에 보내 줬는데 졸업해도 취직 못 하고 있다고(‘Sunday Seoul’) 노래하며 톱 5까지 올라갔다. 거기까지였지만 어딘지 헐렁해 보이고 개구져 보이고 결코 잘나 보이지 않는 이들이 들려주는 구슬픈 내용의 록은 연일 화제를 몰고 다녔다. 우리 시대 힘겨운 청춘들의 자화상을 음악으로 비틀었다고나 할까. “살아가면서 부당하다고 느꼈던 것, 서럽다고 느꼈던 것을 대신 말해 주고 있어 반응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노래가 알려져서 좋기도 하지만 안 좋은 점도 있어요. ‘아기를 낳고 싶다니’가 방송을 타자 그 노래 때문에 부부 싸움을 했다는 항의를 받기도 했죠. 하하하.” 노래를 창작하는 것은 보컬 정중식의 몫. 고등학교 때부터 펑크음악에 관심이 많았으나 본격적으로 인디신에 뛰어든 것은 제대 이후인 20대 중반부터다. 처음엔 기타도 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을 음악으로 풀어내고 싶어 2008년쯤 일단 밴드부터 만들고 봤다. ‘텅빈 브라자’다. 이후 ‘전파 나무’를 거쳤고 멤버들이 돌고 돌아 지난해 초 중식이 밴드가 꾸려졌다. 누군가는 새로운 저항 음악, 운동권 가요라고 분석하지만 자신들은 그저 서민 노래가 아닐까 한단다. “거창한 마음으로 가사를 쓰는 것은 아니에요. 일상에서 느꼈던 것을 일기 쓰듯 그냥 풀어낸 것뿐이죠. 애써 아닌 척하는 우리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들려주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게 맞는 건지 생각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에요. 해결 방법은 저도 잘 몰라요. 노래로 찾아 가는 중이죠.” 방송을 통해 화제 몰이를 했으나 이따금 사람들이 알아보거나 친구들의 전화가 잦아진 정도를 제외하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음원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 횟수가 늘고 있는 것 같지만 노래 한 곡을 1000명이 스트리밍으로 듣더라도 뮤지션에겐 3600원이 떨어지는 세상이라 큰 기대는 없다. 지금껏 디지털 싱글 위주로 드문드문 노래를 발표해 왔는데 돈을 모아 정규 앨범을 내는 게 당장의 목표다. 멤버 모두 각자 창작에, 드럼에, 기타에, 베이스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왔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중식이는 동대문에서 지게도 져 보고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도 해 봤다. 지금은 참치를 배달하고 있다. 박진용(베이스)은 기계장비 업체에 다닌다. 김민호(기타)와 장범근(드럼)은 음악학원 강사로 뛴다. 세상이 살 만해지면, 그래서 불만이 없어지면 중식이 밴드의 노래도 멈추게 될까. 아무 불만도 없는 것처럼 침묵하고 노래도 내지 않는다면 세상에 정말 크게 데었거나 지쳤거나 ‘먹튀’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불만을 조금이라도 해결할 위치에 올라갔기 때문일 거라는 게 중식이의 상상이다. “그런데 설마 그렇게 되겠어요? 오디션 두 달 합숙하고 나오니 세상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던데요. 하하하. 어떤 점이 그렇냐구요? 그건 일단 노코멘트. 나중에 노래로 들려 드릴게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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