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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디어갤러리로 길거리 예술이 된 가로수길

    미디어갤러리로 길거리 예술이 된 가로수길

    서울 강남구는 가로수길을 관광 명소로 활성화하기 위해 신사동·압구정동에 미디어를 활용한 공공조형물을 설치했다고 6일 밝혔다. 신사역 7번 출구 앞엔 가로 9m, 세로 3.75m의 미디어아트월 ‘다이내믹 그리드’를 설치했다. 뒷면엔 이끼류·사철식물로 꾸민 녹화벽면(그린월)을 조성했다. 구 관계자는 “앞면에선 미디어파사드가 야간 시간대 볼거리를 제공하고, 뒷면 그린월은 공기를 정화한다”고 설명했다. 청담 한류스타거리엔 ‘미디어스트리트’를 마련했다. 12개의 미디어폴을 통해 한류스타 영상이 송출되고, 사람 움직임에 반응하는 쌍방향 예술 영상과 모나리자·고흐 등 세계 명화를 한류와 접목시킨 자화상도 소개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별이 된 박완서 길이 되다

    별이 된 박완서 길이 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5차 서울의 문학5-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편이 지난 21일 서대문구 현저동과 종로구 무악동·사직동·필운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독립문역 4번 출구를 출발, 현저동 가파른 언덕배기에 올랐다. 박완서 작가가 어린 시절 놀던 길과 매동보통학교(매동초등학교) 등굣길을 연상하는 코스였다. 독립문~옥살이 골목~무악현대아파트~인왕산 순성길~종로도서관~매동초등학교로 이어진 코스는 단출했지만 명작의 힘은 위대했다. 꼬불꼬불한 골목 귀퉁이마다 작가의 숨결이 느껴졌다. 한 참가자는 “작품 속 등굣길이 궁금했고, 그대로 따라 걸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꿈이 이뤄졌다”는 감동적인 소감을 남겼다. 올해 최종회인 이날 코스에서 서울미래유산은 영천시장이 유일했다. 해설을 맡은 심흥식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서울문학의 현장을 차분하고 깊이 있게 전달했다.박완서(1931~2011)는 서울과 서울사람을 탐구한 대표적 작가이지만 서울 토박이와는 거리가 멀다. 경기 개풍군 박적골에서 태어나 조부모 슬하에서 자라다 8살 때 극성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온 이주민이다. 사대문 밖 대표적 빈촌지대 현저동 46-418번지는 ‘제2의 고향’이었다. 숙명여고를 다니다 개성 호수돈여고로 전학 갈 때까지 6년간의 성장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광복 후 몇 차례 행정동 개편을 통해 의주로 남서쪽은 서대문구 현저동으로 남고, 북동쪽은 종로구 무악동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의 무악동 아이파크아파트가 있는 산 중턱이 옛 집터쯤으로 추정된다. 현저동을 벗어나서는 잠시 신혼살림을 차린 종로구 충신동과 성북구 돈암동 신흥주택 개발지구에서 살았다. 강남개발 이후 주저하지 않고 잠실 장미아파트로 이주, 강남문학을 선보인 이유도 서울의 사대문 안과 사대문 밖을 구분 짓는 앙상레짐이 싫었기 때문이다. 40세 늦깎이 데뷔작 ‘나목’((1970년)에서 거주지를 북촌 계동으로 설정한 것도 현저동 달동네를 벗어나고픈 의도였다.현저동은 박완서의 문학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장소다. 현저동이라는 사대문 밖에 둥지를 틀었지만 언젠가는 사대문 안에 입성하기를 갈망했다. 사대문 안과 밖이라는 분리주의는 남북 분단과정에서 빚어진 오빠의 죽음이라는 가족의 비극과 닮았다. 50~51세에 발표한 ‘엄마의 말뚝1~2’는 분리와 분단의 세계에 세운 작가의 깃발이다. ‘박완서 산문집6: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수(문학동네 2015)’에서 “그러나 막상 내가 도달한 어머니의 서울 살림은 형편없이 궁색한 것이었다. 평지의 반듯반듯한 기와집 동네를 다 그냥 지나쳐 꼬불꼬불한 돌사닥다리 길을 한없이 기어올라가 깎아지른 듯한 축대 끝에 제비집처럼 매달린 초가집의 우중충한 문간방이 어머니 서울 살림집이었다. …서울에서의 첫날밤…나는 이불 속에서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는 구절은 8살 박완서가 서울살이를 시작한 현저동 달동네 어느 문간방의 1938년 풍경이다.세월이 흘러 현저동 산기슭엔 아파트단지가 빼곡하다. 소설에서 “골목은 깎아지른 듯한 층층다리로 변했다, 집들도 층층다리처럼 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곧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이상한 동네였다”고 묘사된 곳이라곤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미끈하게 변했다. 현저동은 물이 좋아서 악박골(약박골)이라고 불렸다. 이광수의 ‘흙’에 “…소화불량이 심하기나 해야 악박골 약물에나, 그것도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이른 새벽에 다녀올까…”라는 대목이 나오고, 심훈의 ‘상록수’에서 주인공 영신과 동혁이가 나누는 대화에서도 “그럼 목두 마른데 악박골루 가서 약물이나 마실까요?”하고 독립문 편짝을 향해서 앞장을 선다. “참, 악박골이 영천이라구도 하는 덴가요?”라고 나온다. 약수로 유명한 이 동네의 진면목과 다양함은 박완서의 작품에 의해 사실화되고 구체화된다. 박완서의 연작 자전소설은 장장 15년 만에 마무리된다. 50세에 쓴 ‘엄마의 말뚝’에 나타난 자전적인 서사를 62세 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다듬었다. 이 작품에는 ‘소설로 그린 자화상’이라는 부제까지 붙어 있다. 65세 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드디어 3부작을 완성했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저서 ‘서울문학기행’에서 “이들 자전적 연작소설을 보면 박완서 가족에게 서울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부역과 전향에 얽힌 가족사 때문에 전쟁 속의 서울이 작품의 주무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풀이했다.작가가 경험한 서울은 전쟁의 도시인 동시에 사랑의 도시였다. 해방과 전쟁, 피란살이가 중첩된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살았다. 현저동 ‘괴불마당집’은 서울에 입성한 작가에게 ‘지상의 방 한칸’이었다. 서울사람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이자 작가의 길을 마련해준 이야기보따리였다. “우리 세 식구가 처음으로 서울에 장만한 내 집인 현저동 꼭대기 괴불마당집에서의 첫 겨울은 가혹했다. 추위도 예년에 없이 혹독했지만 여름철 장마처럼 눈이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몇 날 며칠 계속됐다. …물보다는 불 걱정이 훨씬 더 심각했다”고 ‘엄마의 말뚝’에서 현저동 시절을 추억했다. ‘엄마의 말뚝’이란 소설 제목은 현저동에 입성했을 때 “드디어 서울에 말뚝을 박았구나”고 안도하는 어머니의 말에서 따왔다. 엄마의 말뚝은 서울의 말뚝이었다. ‘서울탄생기’의 저자 송은영은 “이 말뚝은 드디어 서울에 정착했음을 알게 해주는 장소이다. 말뚝은 지식과 주체성을 갖춘 새로운 여성상에 대한 지향과 그것을 딸에게 투사한 어머니의 욕망을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어린 박완서는 등굣길 인왕산 산록에서 싱아를 애타게 찾아다녔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 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박완서의 작품에서 현저동은 ‘바닥 상것들’이 사는 ‘쌈박질이 그치지 않는 동네’로 묘사되고 있다. 현저동의 삶은 ‘서울살이의 법도라기보다는 셋방살이의 법도’부터 익혀야 하는 궁핍한 삶이었다. “오줌과 밥풀과 우거지가 한데 썩은 시궁창 물”이 흐르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박완서는 현저동에서 작가의 길을 찾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고 썼다. 현저동은 박완서 문학을 잉태한 산실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0과 1이 두려운 아날로그 시인, ‘키워드’를 던지다

    0과 1이 두려운 아날로그 시인, ‘키워드’를 던지다

    0과 1, 디지털로 모든 현상을 표현하는 시대. 아날로그의 문법을 따르는 시집이 출간됐다. 2007년 ‘월간문학’, 201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은묵(52) 시인의 ‘키워드’(문학수첩)이다.2014년 첫 시집 ‘괜찮아’(푸른사상)를 내기도 전에 수주문학상, 천강문학상, 시산맥작품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던 시인의 시집은 아날로그의 온기를 전하는 데 특화됐다. 태생이 ‘모노타입’이라고 밝힌 시인은 “점심을 굶고 구입한 건전지 두 개로는 뇌를 작동할 수 없어” 수시로 “태엽을 감”는다. “0과 1이 두려워서”라고 고백했지만 실상은 체온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디지털은 눈물이 없다/눈물은 아날로그의 오류//좌표를 지운 섬에서 살았다/0과 1이 두려워 세상의 모든 질문에 아날로그로 대답했다’(92쪽, ‘아날로그의 뇌’ 일부) 첫 시집에서부터 누워야만 목소리가 들리는 바닥의 존재들에 관심을 가져온 시인은 이번에도 바닥 너머로 시선이 향한다. ‘개미굴의 아침은 등 굽은 수드라처럼 쉬 펴지지 않지 직립보행을 꿈꾸던 일개미들이 기지개를 켜네’(118쪽, ‘황금배열 몬스터’ 일부)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개미굴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 서둘러 집을 나서는 일개미들의 자화상이다. 이들을 구원할 출구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시인은 암담한 현실에 맞서 희망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늘을 화장으로 덧씌우지 않아도 좋은 당신의 계절을 향해/계단이 새로 돋고 있었다’(135쪽, ‘다행이다’ 일부)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극예술학회 올해 작품상 ‘기생충’ 선정

    극예술학회 올해 작품상 ‘기생충’ 선정

    한국극예술학회가 영화 ‘기생충’, TV 드라마 ‘눈이 부시게’, 연극 부문 ‘낙타상자’와 ‘철가방 추적작전’을 올해의 작품상으로 뽑았다고 20일 밝혔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발표한 연극, 영화, TV 드라마를 대상으로 해 학회 회원 투표를 통해 선정했다. ‘기생충’은 한국 사회 현실을 지배하는 생존 욕망을 은유적으로 형상화, 변화하는 한국 사회의 계급 문제를 오늘날의 감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눈이 부시게’는 시간과 기억의 왜곡을 통해 인생의 아름다움을 역설했다. 이 과정에서 세대 간 갈등을 공감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그려낸 점을 높게 평가했다.‘낙타상자’는 1930년대 중국 현실을 그린 원작소설을 창조적으로 해석해 지금 한국 청년들의 자화상을 뛰어난 연출로 무대화했다. ‘철가방 추적작전’은 김윤영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아파트가 생산해낸 계급과 차별, 그 무너지지 않는 사회적 민 낯을 배우들의 호연과 감각적 무대 연출로 극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인물화, 시대를 담다

    인물화, 시대를 담다

    갤러리현대 개관 50주년 기념 특별전 첫 서양화 기법의 누드화 ‘해질녘’ 등 시대정신 구현한 작가 51명 작품 담아 근현대미술 100년 작가·사회 변화 표현평양 능라도를 배경으로 나신의 두 여인이 등을 돌리고 선 채 목욕을 하고 있다. 저 멀리 대동강 위로 불그스름한 노을빛이 어른거린다. 목욕하는 여인을 주제로 한 유럽 후기 인상주의의 전형적인 누드화를 닮은 이 그림은 1916년 도쿄미술대학 유학생 김관호(1890~1959)가 졸업작품으로 제작해 그해 ‘제10회 문부성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한 ‘해질녘’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서양화 기법으로 그린 최초의 누드화를 당시 조선인들은 볼 수 없었다. 김관호의 특선 소식을 대서특필한 ‘매일신보’는 ‘여인의 벌거벗은 그림인고로 게재치 못한다’며 사진을 싣지 않았다. 내년 개관 50주년을 맞는 갤러리현대가 191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미술 100년을 인물화로 돌아보는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 전시의 첫 작품으로 ‘해질녘’을 선정한 취지도 이 그림을 통해 근대미술 태동기에 화가의 달라진 인식과 사회적 맥락을 동시에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관호를 비롯해 도쿄미술대학 졸업생인 고희동, 이종우, 오지호, 김용준의 1920~30년대 자화상이 나란히 소개된 점도 의미가 있다. ‘해질녘’과 자화상 5점은 현재 도쿄예술대학(도쿄미술대학 후신) 소장품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다. 미술평론가 유홍준·최열, 미술사학자 목수현·조은정,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전시에는 파란만장한 근현대사 흐름 속에서 당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화면에 담아낸 화가 51명의 작품 71점이 선보인다. 미술사적으로 귀중할 뿐 아니라 평소 만나기 어려운 희귀한 고전 명작들이다. 본관에서 열리는 1부 전시는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제작된 근대미술의 대표적 인물화가 장식한다. 1930년대에는 조선의 향토색이 드러나는 인물화가 많이 그려졌다. 조선미술전람회를 관장하는 일본 심사위원들이 식민지로서 조선의 특색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오지호의 ‘아내의 상’(1936),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1934) 등이 인물의 형태와 의상, 배경 등에서 향토색이 두드러진 작품들이다. 1940년대에는 이쾌대의 ‘군상 Ⅲ’(1948)에서 보듯 해방의 기쁨과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도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신관으로 이어지는 2부 전시에선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해방 이후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건너온 한국인의 내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인물화가 선보인다. 전쟁의 폐허에서 아이를 업은 단발머리 소녀를 그린 박수근의 ‘길가에서’(1954)와 소달구지에 가족을 싣고 남쪽 나라로 향하는 가장의 모습을 담은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1954)은 생사를 오가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삶을 이어 가는 인간의 본성을 옹골차게 담아냈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 화가의 자화상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담배를 피우는 여성의 옆모습을 그린 천경자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 폐교에서 발견한 칠판에 김치를 담그는 여성을 그린 김명희의 ‘김치 담그는 날’(2000) 등은 화가의 내밀한 감정을 투사한 자화상이자 시대의 초상으로 읽힌다.전시 마지막은 1980년대 이후 민중미술이 주목한 새로운 유형의 인물화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종구 ‘활목할머니’, 오윤 ‘비천’, 박생광 ‘여인과 민속’, 임옥상 ‘보리밭’, 신학철 ‘지게꾼’ 등을 통해 불의와 억압에 저항하는 능동적이고 강인한 인물상과 격변의 시대를 묵묵히 통과해 온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자문위원인 유홍준 평론가는 “근현대 미술의 성장과 발자취를 이처럼 요약적으로 보여 주는 전시는 없었다”면서 “이번 인물화전이 근현대사를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시는 18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열린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조각가 김원근, ‘2019 올해의 창작상’ 수상자로 선정

    조각가 김원근, ‘2019 올해의 창작상’ 수상자로 선정

    조각가 김원근이 ‘2019년 올해의 창작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금보성아트센터는 매년 국가, 종교, 나이, 지역, 학력, 장르에 관계없이 예술성을 평가해 올해의 창작상을 수여하고 있다. 독창적, 재료적, 실험적, 휴먼적인 작품을 선정 기준으로 대한민국 문화예술을 위해 노력한 예술가에게 상을 수여한다. 조각부분에 김원근 작가 외 공예부분에 김로이 작가와 류명숙 작가를 선정했다.‘2019년 올해의 창작상’을 수상한 김원근 작가는 2017년 금보성아트센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독특한 캐릭터를 작품으로 표현한 바 있다. 작가가 선보이는 인간의 외면보다 내면의 순수를 더 중요시한 작품은 김원근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한편, 금보성아트센터의 올해의 창작상은 3500만원의 상금과 초대전을 지원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나는 간첩이 아니다”…남영동 고문피해자들이 직접 기록한 사진전

    “나는 간첩이 아니다”…남영동 고문피해자들이 직접 기록한 사진전

    박정희·전두환 군부정권 당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잔혹한 고문 끝에 간첩으로 몰렸던 피해자들이 사진전을 연다. 이들은 저마다 국가 권력이 파괴한 자신의 삶을 치유하는 과정을 직접 사진에 담아냈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오는 31일부터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5층 옛 조사실에서 간첩조작사건 고문 피해자들이 찍은 사진 200여점으로 구성된 자기회복 사진 치유전 ‘나는 간첩이 아니다-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그들의 이야기’를 개최한다. 197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 1979년 삼청 고정간첩단 사건, 1982년과 1986년 재일교포 간첩 사건 피해자 5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모두 간첩으로 몰려 5년~10년 이상을 교도소에 수형됐다 풀려났고, 각각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됐다. 사진전 참여자들은 지난 3년간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 고문 현장을 대면하면서 사진 촬영 등을 통해 과거 잔인했던 국가 권력의 민낯을 기록하고, 자신의 감정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거쳤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측은 “이번 전시는 하나의 사진작품을 소개하는 아니라, 고문 피해 당사자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스스로 극복하며 어떻게 자기치유 행위를 이뤄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했다”고 설명했다.전시는 민주인권기념관 5층 16개 조사실 중 13개 방을 전시장으로 삼아 총 4개 섹션으로 구성했다. 1, 2 섹션 별 방의 문마다 피해자들 자화상이 전시된다. 이는 아픈 역사의 재확인이 아니라 존엄한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에서 고문 피해자들을 위한 전시를 열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어두운 과거의 공간을 현재의 자기극복 과정을 담는 공간으로 바꾸어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개최 소감을 밝혔다. 전시는 다음 달 17일까지 무료로 진행되며, 11월 2일 오후 4시에는 전시에 참여한 고문 피해자들이 직접 관람객과 만나는 시간도 가진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윤동주의 ‘하늘·바람·별·시’ 흐르는 홍제천

    윤동주의 ‘하늘·바람·별·시’ 흐르는 홍제천

    가을을 맞아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 일대가 서정시의 운율을 따라 걷는 산책로로 거듭난다. 구는 홍제천 폭포마당에서 홍연2교에 이르는 약 670m 구간과 불광천 야외무대에 윤동주 시인을 주제로 한 꽃길을 조성했다고 21일 밝혔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본떠 각각 하늘, 바람, 별, 시를 주제로 4개 구간을 꾸몄다는 설명이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강점기 지역에 있는 연희전문(현 연세대)에 재학하면서 나라를 잃은 슬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한국문학사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구는 하늘 구간에는 가을 하늘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키가 큰 초화류를, 바람 구간에는 바람개비와 잠자리 소품을 각각 마련했다. 별 구간에는 별과 달 모양의 조형물로 꾸민 화분들 사이에 의자를 설치했으며 홍제천 폭포마당에 조성된 시 구간에는 ‘서시’, ‘쉽게 쓰여진 시’, ‘참회록’,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5편을 국화, 포인세티아 등 가을꽃 사이로 전시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주민들이 홍제천 꽃길을 산책하면서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고 윤동주 시인이 남긴 아름다운 시어를 음미하는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In&Out] 위험의 외주화, 자본에 의한 사회적 살인/김철홍 교수노조 국공립대 위원장

    [In&Out] 위험의 외주화, 자본에 의한 사회적 살인/김철홍 교수노조 국공립대 위원장

    성장주의와 양극화에 가려져 일 년에 2000명 이상, 하루 평균 6~7명이 일하다가 사망. 매년 10만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일 때문에 산업재해의 고통을 당하는 산재공화국 대한민국의 아픈 자화상이다. 2017년 기준 산재 사망자의 81.8%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일용직·비정규직의 산재 발생률이 정규직의 1.5~6.4배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에서 보듯 대부분의 산재 사망자가 외주·하청·비정규직 등 이른바 소외 노동자다. 삶의 차별을 넘어 죽음조차 차별받는 이 땅의 실상이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라는 자본에 의한 사회적 살인 행위가 경영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무차별 진행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이며 어떤 경우에도 타협과 계약, 매매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노동시장 기본원리가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음은 물론 살인적 노동강도의 열악하고 위험한 작업은 대부분 하청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담당하고 있다. 신분이 불안정하고, 임금도 적으니 위험하고 힘든 일은 너희들이 하라는 카스트제도를 떠올리게 하는 현실이 세계 10위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이다. 산재 사망자가 발생해도 불과 몇 백만원의 과태료만 부과되는 등 기업에는 더없이 관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재 예방을 위한 투자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산재 예방에는 제도적, 기술적, 교육적인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산재 발생에 따른 손실과 처벌보다 산재 예방을 위한 투자가 더 이익이 된다는 사실이 명확하도록 엄격한 법의 개정과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돈을 좇는 기업은 투자와 처벌, 어느 쪽이 더 이익인지 기막히게 판단할 것이다. 산재 사망은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안전을 도외시한 기업이 저지른 살인이라는 인식은 선진 산업국가의 보편적인 상식이자 글로벌 스탠더드다. 노동자와 안전보건 전문가가 노동자 생명 보장을 위해 머리를 맞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경영계의 우려와 고충 해소라는 명분으로 누더기가 됐다. 이로도 모자라 정부는 화학물질관리법 등의 추가 개악을 추진 중이다. 산업현장은 분노를 넘어 절망을 느낀다. 정부가 초심으로 돌아가 산재 예방에 근본적으로 접근하고 예방 주체인 노동자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하는 산안법 전면 재개정에 나서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살인기업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화학물질 취급 노동자와 공장 주변 주민 등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산재 예방 감시를 위해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고 의견을 폭넓게 반영하는 법이 마련돼야 한다. “정부의 최우선 가치는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대통령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촛불의 힘으로 탄생한 정권에서조차 노동자 삶의 보장은 물론 생명의 보장이 외면받는다면 절망감은 분노로 바뀔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는 자본에 의한 사회적 살인이다.
  • [법인의 활발발] 거짓말을 믿고자 하는 자의 슬픔

    [법인의 활발발] 거짓말을 믿고자 하는 자의 슬픔

    차담하는 자리에서 지인이 한숨을 쉬며 하소연했다. 친정어머님께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부터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나가시더니, 옆에서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사고와 언행이 변했다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가짜뉴스’를 사실로 믿고 있었다. 딸이 합리적 대화를 위해 보수매체에서도 그건 가짜뉴스라고 말했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마침내 대화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평생 교사였던 나의 어머니가 왜 저렇게 편견과 편집에 사로잡히셨나 하는 생각에 딸은 가슴이 답답하다.그 어머니의 판단과 신념은 유튜브에 근거하고 있다. 내 주위의 적지 않은 사람들도 종합편성 채널과 유튜브의 뉴스에 의존해 정보를 얻고 판단을 하고 있음을 최근에 알았다. “제가 알기로 그건 사실이 전혀 아닌데요. 잘못 알려진 이야기입니다”라고 지적을 하면 이들은 곧장 반격한다. “그거 방송에 나온 이야기예요.” 처음에는 그렇게 알려졌지만 언론의 ‘팩트체크’에서 거짓으로 밝혀졌다고 하면 화를 낸다. 그 언론이 거짓말을 한단다. 본인들이 즐겨 보는 유튜브 어느 방송의 말이 가장 정확한 진실만을 알리고 있다고 항변한다. 안타까운 확증편향이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사실이 나중에 가짜뉴스임을 알아도 내심에 묻어 두고 밖으로는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허물을 고백하지 않는 닫힌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거짓말, 비난하는 말, 모욕하는 말, 거친 욕설, 분열을 노리는 말들 속에서, 말의 오염과 말의 비틀거림을 본다. 말은 한 시대의 자화상이다. 더구나 지금은 신기에 가까울 만큼의 묘기를 부리는 매체를 타고 말들은 무진한 기세로 사람들의 뇌를 파고든다. 말은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마비시킨다. 전해들은 말은 기억이 된다. 저장된 기억은 신념이 된다. 말은 단순히 전달의 수단이 아니다. 말은 구체적인 삶의 그림이다. 말은 곧 개별자의 삶이고 인간사회의 모습이다. 말의 모습을 보면 한 시대의 얼굴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선지자는 말의 모습을 보고 시대의 위기를 감지하고 예언했다. 우리를 품격 없고 초라하게 만드는 풍경은 거짓말에 있지 않을까. 물론 어느 시대나 거짓말은 있었다. 석가모니 재세시에도 부처님을 음해하고자 이교도들이 가짜뉴스를 생산해 냈다. 석가모니가 어느 여성과 정을 통하여 임신시켰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소문이 난 몇 달 후 여인은 자신의 배 주위를 천으로 두껍게 감싼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임신을 의심케 했다. 가짜 연출인 셈이었다. 인간의 서글픈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거짓말의 뿌리는 깊고 이유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대체로 어떤 의도를 이루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것이다. 돈을 벌고자, 선거에 승리하려고, 사랑과 명성을 독차지하려고 치밀하게 거짓말을 하고 연출한다. 이런 거짓말은 나중에 드러나면 도덕적 지탄과 법적 처벌을 받는다. 다소의 시차는 있을지언정 뿌리고 거두는 인과의 법칙은 엄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거짓말과 달리 매우 안타까운 거짓말의 또 다른 모습이 있다. 그것은 거짓말을 열성적으로 ‘믿는’ 자의 모습이다. 또 거짓말을 애써 ‘믿고자’ 하는 모습이다. 불순한 의도로 거짓말을 생산해 내는 사람들에게는 분노가 일어나지만 거짓말을 믿고, 믿으려 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가슴에 연민의 감정이 일어난다. 왜 그럴까. 가시적인 어떤 이득을 얻으려 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거짓을 의도적으로 생산해 내는 매체의 채널에 빠져 거짓말을 그저 믿어 버리는 것일까. 마치 사이비 교주의 말씀을 의심 없이, 무조건, 절대적으로 믿어 버리는 신자들의 연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살아온 환경과 경험, 거기에서 비롯한 불안, 결핍, 소외감의 발로일까.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덫에 걸린 사람들의 깊은 속마음에는 무엇이 질기게 자리를 잡고 있을까. 또 주장하는 말들이 거짓이고 과장이고 왜곡인 줄 알면서도 짐짓 외로움과 소외감 때문에 그들의 모둠에서 용기 있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오늘도 거짓말을 믿고자 하는 자의 슬픔이 우리 곁에 있다.
  • “지코가 장르” 지코, 데뷔 8년 만에 첫 정규앨범 발매

    “지코가 장르” 지코, 데뷔 8년 만에 첫 정규앨범 발매

    프로듀서 겸 아티스트 지코(ZICO)가 돌아온다. 지코는 오늘(30일) 데뷔 8년 만에 첫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2018년 7월 아이유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디지털 싱글 ‘소울메이트(SoulMate)’ 이후 1년 2개월 만에 컴백한다. 첫 정규앨범 ‘THINKING’ Part.1은 그 동안 느끼고 경험한 것, 자신을 마주한 솔직한 이야기를 토대로 담아낸 청춘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고민과 고뇌를 거쳐 탄생한 첫 정규앨범 ‘THINKING’인 만큼 한층 더 성숙해졌을 지코의 음악에 쏠리는 기대가 크다. “지코가 장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첫 정규앨범 ‘THINKING’ Part.1의 컴백 포인트를 짚어보자. # 8년 만의 첫 정규앨범 지코는 데뷔 8년 만에 첫 솔로 정규앨범을 발표한다. ‘THINKING’ Part.1은 지코의 생각으로 바라본 청춘의 자화상을 담은 앨범으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떠오른 것들을 총 5개의 트랙에 담아 한 권의 책처럼 엮어냈다. 또, 홀로서기 이후 처음 발표하는 앨범이기도 한 만큼 지코는 음악 콘셉트부터 프로듀싱은 물론 스토리텔러 및 연출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남다른 열정을 불태웠다.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모두 쏟아내며 솔로 아티스트의 진가를 입증한다는 목표이다. # 지코의 생각 앨범명 ‘THINKING’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앨범은 지코의 솔직한 이야기로 꽉 채워졌다. 20대의 끝자락에서 외로움을 맞닥뜨린 인간 우지호부터 올해 초 회사를 설립하며 대표가 된 지코까지 장르나 소재를 뛰어넘는 지코만의 한계없는 음악적 스펙트럼을 드러낸다. 특히, 지코는 그간 좋은 음악을 위해 늘 고뇌하며 노력을 거듭해왔다. 이번 앨범은 기존의 거칠고 화려했던 지코의 모습과는 다른 상반된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 차트이터의 귀환 지코는 매 앨범마다 트렌디하면서도 감각적인 노래들을 발표하며 비교 대상 없는 절대 음원강자로 군림, ‘차트이터’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아가 지코는 본연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녹여낸 첫 정규앨범 ‘THINKING’으로 올가을 발라드 강세인 음원차트에 또 한번 지각변동을 일으킬 전망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포크듀오 ‘에보니스’ 최기원 별세

    1970년대 포크듀오 에보니스의 최기원씨가 폐쇄성 폐질환으로 투병하다가 별세했다. 74세. 1945년 함흥에서 태어난 최씨는 1968년 ‘다 함께 노래 부르기’ 운동의 선구자 전석환씨가 진행한 공개방송 ‘삼천만의 합창’을 통해 데뷔했다. 이후 윤영민씨와 에보니스를 결성하고, 1970년 첫 음반 ‘영원히 사랑하리’를 시작으로 ‘잘 가라고’, ‘진실’, ‘추억(가랑잎)’, ‘헤어지는 사람들’ 등을 꾸준히 내며 활동했다. 윤씨의 솔로 독립 후에는 송철이씨와 함께 ‘벗들’을 꾸려 ‘반길 수 없네’를 냈고, 1990년대 마지막 음반 ‘에보니스/행복한 기억밖에’를 발표했다. 2011년 5월 이호상씨가 합류해 ‘에보니스 40주년 기념 공연’을 열었다. 6년 전까지 홍익대 인근에서 라이브 카페 에보니스를 운영하다가 건강 이상으로 서울 생활을 접고 부산에서 지냈다. 별세 소식을 전한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씨는 “‘영원히 사랑하리’와 ‘가랑잎’은 1970년대에 빼놓을 수 없는 포크 명곡”이라며 “아르페지오 주법의 통기타 연주에 애수의 하모니가 돋보인 에보니스 음악은 1970년대 젊은이들의 슬픈 자화상을 그렸다”고 평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안이자씨와 아들 둘이 있다. 빈소는 부산 영도구 구민장례식장 202호실이며, 발인은 16일 오전 8시 30분이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책방·갤러리 변신… 금천 ‘빈집프로젝트’ 하반기 스타트

    동네 곳곳에 지역주민이 동참할 수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마련하는 서울 금천구의 ‘빈집프로젝트’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금천문화재단은 이번 달부터 ‘빈집프로젝트’ 하반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4일 밝혔다. 프로젝트 거점공간인 ‘빈집1家(가)’에서는 매달 다양한 주제로 책을 읽고 좋은 글귀와 사진을 공유하는 ‘독산책방-독서왕 선발대회’와 함께 상반기에 좋은 반응을 얻은 ‘독산사진관-릴레이사진’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워크숍 참여자들의 창작 결과물은 12월에 따로 전시될 예정이다. ‘빈집2家’는 친환경을 주제로 한 각종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과 색칠 프로그램, 갤러리 운영 등 주민들의 배움 공간으로 활용하고, ‘빈집3家’에서는 ‘발견과 기록’을 주제로 책을 만들어보는 ‘출판프로젝트’와 일러스트, 자화상, 섬유공예를 활용한 예술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프로그램별 참가비는 별도이며, 금천문화재단 홈페이지나 ‘빈집1家’에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올해로 3년째 진행되는 빈집프로젝트는 문화예술을 매개로 하는 도시재생을 목적으로 독산동 일대 낡은 주택이나 빈 상업공간을 임차해 예술가들과 함께 문화예술공간을 만들어 도시에 문화를 입히는 사업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첫 영화 주연 정해인 “지금 내게 절실한 것은 흥행”

    첫 영화 주연 정해인 “지금 내게 절실한 것은 흥행”

    “지금까지 매 작품마다 치열하고 절실하게 연기했어요.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영화의 흥행이죠.(웃음)” 배우 정해인이 멜로 영화 첫 주연에 도전한다. 그는 영화 ‘유열의 음악 앨범’(28일 개봉)에서 주인공 현우 역을 맡아 흔들리는 청춘의 자화상을 연기한다.지난해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부드럽고 신선한 마스크와 친근한 이미지로 ‘국민 연하남’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올해 드라마 ‘봄밤’에서는 미혼부 유지호 역을 맡아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이 영화는 ‘밥 누나’가 종영된 직후인 지난해 9월 크랭크인했다. 정해인은 “‘밥누나’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보완해서 빨리 연기하고 싶었다”면서 “작품을 하면서 인간 정해인으로서도 많이 배우고 성장하기 때문에 연기를 쉬고 싶지 않았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 작품이 끝날 때마다 1회부터 다시보며 무의식 중에 했던 몸짓이나 표정 등을 파악하고 아쉬운 점을 보완한다고. 영화는 KBS 라디오 프로그램 ‘유열의 음악앨범’이 방송된 1994년부터 2005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기적처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90년대 아날로그 감성을 바탕으로 때로는 현실적이고 때로는 판타지에 가까운 아련한 첫 사랑을 이야기한다. 극중 현우는 정해인이 연기한 전작 캐릭터들의 연장 선상에 있으면서도 결이 다소 다른 인물. 그는 “이번 영화는 남녀 사이의 자존감에 관한 영화”라고 귀띔했다. 올해 데뷔 6년차인 그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제 연기를 봐주는 분들이 많아질 수록 책임감도 커진다”면서 “특히 극장에서 무대 인사를 통해 제 영화를 본 관객들을 직접 만날 때가 가장 떨린다”면서 웃었다. 더 자세한 배우 정해인의 인터뷰 및 영화 시사 후기를 서울신문 유튜브 채널 ‘은기자의 왜떴을까TV’(https://www.youtube.com/channel/UCYC3ZZMiYLptqJeDoCTtRbg)에서 지금 만나보세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해남 물결 따라가니 남도 묵객 붓끝이네…화맥 길러낸 몽유진도

    해남 물결 따라가니 남도 묵객 붓끝이네…화맥 길러낸 몽유진도

    남도는 예부터 유배의 땅이었습니다. 수많은 정객들이 유배돼 시인 묵객으로서의 삶을 살았지요. 반도의 끝이라 할 전남 해남, 진도 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재능은 고스란히 지역의 후예들에게 이어졌습니다. 밭고랑에서 풀 뽑는 아낙조차 즉석에서 절창(絶唱)을 뽑아낸다던가요. 진도에 들면 시, 서, 화는 물론 소리 자랑 말라는 말이 전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해남 역시 녹우당을 중심으로 ‘남도 문화르네상스’를 꿈꾸고 있지요. 그렇게 해남으로, 진도로, 예술이 꽃 피는 해안선을 따라 ‘남도 예술기행’을 다녀왔습니다.외지인들이 해남과 진도를 묶어 돌아볼 경우 해남을 거쳐 진도로 가는 게 순서다. 그래야 좀더 효율적으로 두 지역을 돌아볼 수 있다. 해남에선 ‘예술이 꽃피는 해안선-예술가와 함께하는 남도 수묵 기행’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1박2일(2박3일) 동안 예술가, 큐레이터 등과 동행하며 예술을 체험하고 답사하는 프로그램이다. 대흥사 수묵화 체험, 템플스테이, 해창 막걸리 체험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고산의 녹우당… 윤두서 자화상 압권 녹우당으로 먼저 간다. 해남 윤씨의 종택이다. 무엇보다 당호가 독특이다. 푸를 녹(綠) 자에 비 우(雨) 자를 쓴다. 말 그대로 ‘초록비’라는 뜻이다. 바람 불면 집 뒤 비자나무에서 우수수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지금은 녹우당이 고택 전체를 뜻하는 말이 됐지만 원래는 이 집의 사랑채를 가리키는 당호였다. 녹우당은 조선의 17대 왕 효종이 고산 윤선도에게 하사한 집이다. 82세 되던 해 낙향을 결심한 고산이 당시 수원에 있던 집을 뜯은 뒤 배로 싣고 와 해남에 다시 지었다. 차양 역할을 하는 사랑채 앞쪽의 겹처마, 높낮이로 아버지와 아들의 기거 공간을 구분한 공간 배치, 회랑 형태의 나무 기둥 등이 인상적이다. 지금도 고산의 14대 손이 거주하고 있다. 집 뒤 풍경도 웅숭깊다. 300년 묵은 늙은 소나무와 고풍스런 돌담길이 멋지게 어우러져 있다. 녹우당 아래는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이다. 해남 윤씨 관련 유물을 전시,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전시관은 단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2층 건물이다. 1층은 로비 등 손님맞이 공간이고, 대부분의 작품은 지하층에 전시돼 있다. 도드러지거나 위압적인 느낌을 주지 않고 주변 풍경과 차분하게 어우러지려는 건축 의도가 읽힌다. 이곳에 국내 최고의 초상화로 꼽히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240호)이 있다. 강렬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 극사실주의 작품을 보듯 한올 한올 섬세하게 묘사된 수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작품 하나만 보더라도 ‘본전’은 뽑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깊은 울림을 안긴다. 아울러 윤선도가 실제 사용한 나침반,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한 ‘오우가’ ‘어부사시사’, 고려시대 유일한 노비문서인 ‘지정14년 노비문서’(보물 제483호), 윤두서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릴 때 보던 옛 거울과 동국진체의 서예 작품 등 흥미로운 유물들을 진품으로 만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흥사서 차 한잔 대흥사는 해남을 대표하는 대가람이다. 지난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절집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흥사에서는 사찰음식 체험, 템플스테이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수묵화 체험도 재밌다. 쥘부채에 삐뚤빼뚤 자신만의 수묵화를 그려 넣는 프로그램이다. 체험장은 대흥사 무량수전이다. 추사 김정희가 편액 글씨를 남긴 곳. 오래된 건물의 그늘에 들어 저만의 부채를 만들다 보면 더위는 저만큼 물러나고 없다. 대흥사에서는 차와 관련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다반사(茶飯事)다. 차 시음 행사는 저 유명한 일지암에서 열린다. 대흥사에서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발품을 팔아야 닿을 수 있다.일지암은 우리나라 차의 중흥조 초의(1786~1866) 선사가 차와 더불어 선(禪)을 수행하던 곳이다. 일지암(一枝庵)이란 이름은 “뱁새는 나무 끝 한 가지(一枝)에 살아도 편안하다”는 중국 당나라 시승 한산의 시구절에서 따왔다. 뱁새는 흔히 황새 쫓다 가랑이 찢어지는 동물로 인식되지만 불가에서는 다소 다른 모양이다. 불가피하게 오지랖을 넓혀야 하는 재능 많은 새가 황새라면 뱁새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평범한 새다. 스스로가 뱁새여서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행복한지 일지암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풍경도 빼어나다. 두륜산과 멀리 남해 바다가 네모 창틀 안에 다 담긴다. 이 정도면 뱁새의 호사라 할 만하다.●왜구 물리친 울둘목에 서린 이순신 정기 예향을 찾아가는 여정이지만 울돌목에 서면 느낌이 다르다. 일본에 난데없이 한 방 맞은 요즘엔 더욱 그렇다. ‘바다가 울면 물이 돈다’는 울돌목(명량·鳴梁)은 해남과 진도 사이를 흐르는 해협이다.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을 대파한 명량대첩(1597)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시속 20∼30㎞의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조류를 이용해 왜선을 수장시킨 것으로 전한다. 진도의 대표적인 민속놀이 중 하나인 ‘강강술래’(국가 무형문화재 8호)도 바로 이곳에서 비롯됐다. 해남 쪽에 우수영관광지, 진도 쪽에 녹진관광지가 각각 조성돼 있다. 실경산수화 같은 울돌목 풍경을 보려면 녹진전망대를 찾는 게 좋다. 진도대교와 주변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울돌목 인근의 우수영문화마을도 둘러볼 만하다. 명량대첩과 해남사람들의 이야기를 벽화 등 조형미술 작품에 담아 조성한 마을이다. 약 2㎞ 안에 갤러리, 카페 등이 밀집해 있다.우수영관광지에서 진도대교를 건너면 진도 땅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진도아리랑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이쯤에서 진도 민초들의 노래 한 자락 들어보자. ‘진도사랑 시 공모전 수상시집’에 실린 시 ‘운림산방으로 오시어요’(서지은 지음)의 한 구절이다. “노오란 울금을 곱게 빻아//(…) 첨찰산 병풍에 첩첩이 발라놓고//(…) 귀하디귀한 새빨간 보석알 닮은, 홍주(紅酒)를/ 그대 오시는 쌍계사 언덕 어귀에//(…) 비단치마 폭처럼 넓게 펼쳐 올리겠나이다//(…) 가만히 가만히/ 그대, 어서 오시어요” 이런 은근한 초대를 받고도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사람도 아니다. ●시·서·화·창 뛰어난 진도… 첫 민속문화예술특구 진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속문화예술특구다. 시·서·화·창,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진도에 전해 오는 민속음악들은 대개 섬사람의 삶과 애환을 꿰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시름을 슬픔으로 끝내지 않고, 한을 눈물로 맺지 않는다. 고된 삶을 노래하면서도 결국엔 내일의 희망을 그린다. 군립민속예술단의 김오현 단장은 “다른 지역 씻김굿과 달리 진도의 씻김굿은 음악적 요소가 강하다”고 했다. 진도의 씻김굿은 경쾌하다. 장단조차 슬픔의 절정에서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슬퍼도 비통에 빠지지 말라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를 여기서 본다. 진도에서는 ‘토요민속여행’ 등 상설 공연 4개를 비롯해 예능보유자와 함께 하는 ‘진도 전통 문화공연’ 7개 등 모두 13개의 민속공연과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민속공연 부자’다. 이 가운데 진도씻김굿(국가무형문화재 72호) 진도다시래기(국가무형문화재 81호) 진도만가(도 무형문화재 19호) 등에 대해 ‘진도 상·장례문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보배섬’ 진도(珍島)의 옛 이름은 ‘옥주’다. ‘비옥할 옥’(沃) 자를 쓴다는 게 정설이지만, 어차피 그마저 불확실한 것이라면 ‘구슬 옥’(玉) 자로 바꿔 쓴다고 해서 그리 틀리지는 않을 터다. 구슬은 곧 보배다. 물론 잘 뀄을 때라야 그렇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야 보배라고 했으니 말이다. 지금 진도가 예향으로 이름을 날리는 건 역사 속 수많은 ‘구슬들’의 예기가 잘 드러나도록 섬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북돋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 첫자리가 운림산방이다.●조선 대가의 화실 ‘운림산방 ’ 서지은 시인이 “겹이어 몇 대를 붓을 들던 그 옛날 조선의 대가의 화실”이라 표현했듯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소치 허련(1808~1893)에 이어 5대에 걸쳐 직계 화맥(畵脈)이 이어지고 있는 남종화의 산실이다. 오각형 모양의 연못 운림지와 소박한 정자 사이로 소치가 손수 심었다는 배롱나무가 절정의 붉은 빛을 토해 내고 있다. 정자 뒤로는 진도의 진산 첨찰산이 운림산방을 감싸고 있다. 진도 사람 몇몇은 이 같은 안온한 풍경을 두고 ‘몽유진도’(夢遊珍島)라 부른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빗댄 표현으로, 진도의 실경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운림산방 옆은 소치기념관이다. 소치 허련의 작품은 물론 미산 허형과 남농 허건, 임전 허문 등 후손들의 수묵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수묵화의 특징 중 하나는 여백이다. 여백은 단순히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공간이 아니다. 전시 작품들을 꼼꼼하게 살피다 보면 여백이란 것이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림이 그려지는 매우 독특한 공간이란 걸 알게 된다. 글 사진 해남·진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 번호 061) →진도의 4개 상설 공연 가운데 ‘토요민속여행’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전국 15개 ‘상설문화관광 프로그램’ 중 하나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3년째 이어져 오고 있어 진도의 ‘프랜차이즈 공연’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한국관광의 별’에도 선정됐다. 진도 아리랑과 강강술래, 씻김굿 등 무형문화재 공연이 한 시간 남짓 펼쳐진다. 공연 뒤에는 관객과 출연진이 어우러지는 흥겨운 춤판이 벌어진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군립민속예술단 주관으로 열린다. 공연은 무료다. 544-8978. ‘금요국악공감’은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열린다. 역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수요일엔 진도군 보유 무형문화재 중심의 ‘진수(水)성찬’(1만원)이 오후 7시 30분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일요일엔 ‘일요상설공연’(5000원)이 오후 2시 해창민속전수관에서 각각 관객을 만난다. 이 밖에 ‘진도아리랑 오거리’ 등 버스킹 공연을 수시로 진행한다. →해남의 ‘예술가와 함께하는 남도 수묵기행’은 오는 11월까지 진행된다. 참가 신청은 행촌문화재단(533-3663)에서 받는다. →해남 읍내 천일식당(536-4001)은 80년을 이어온 떡갈비로, 진일관(532-9932)은 한정식으로 각각 소문난 집이다. 진도 신호등회관(544-4449)은 전복비빔밥을 잘한다. 전복의 암수 내장을 함께 쓰는 게 독특하다. 양념장이 강해 다소 맵게 느껴질 수 있다.
  • [특별기고] 동아시아 근대화 150년, 국제정의를 위한 한국의 역할/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특별기고] 동아시아 근대화 150년, 국제정의를 위한 한국의 역할/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서양 열강들이 중국, 일본, 한국의 문을 두드린 지 한 세기 반 이상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동아시아 역사는 말 그대로 파란만장이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등 큰 규모의 전쟁이 잇따랐다. 1920년대 공산주의 등장으로 좌우 세력 간 갈등도 심했다. 공산주의는 발생지에서 이미 사라졌는데, 여기서는 체제로 엄존하고 있다. 이 시기 역사의 큰 흐름은 농업 일변도 경제가 서양의 기계문명 수용으로 상공업 중심으로 산업화한 사실이다. 3국이 이 대전환의 역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끈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 이래 국가주의와 군국주의 틀 아래서, 중국과 한국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 상충 속에서 그 역사를 썼다. 서로 다른 체험은 각기의 국체와 영토적 현실로 남아 있다. 중국의 양안(兩岸) 체제, 한국의 분단 체제가 각각 숙제로 남아 있는 한편 일본은 ‘천황제 국가주의’가 우경화의 강세로 이어지고 있다. 누가 봐도 자랑스러운 자화상은 아니다. 농업경제 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북한, 공산당 체제를 자본주의 경제와 병존시키고 있는 중국(본토), 자본주의 경제 최우등생을 자부하면서 제국주의 시대의 ‘영광’ 부활을 공공연히 내세우는 일본, 모두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한국이 자본주의 경제 우등 반열에 들었으면서도 때아닌 좌우 논쟁 속에 경제 실적을 까먹고 있는 모습도 정상이 아니다. 오늘은 과거에서 비롯한다. 난항을 타개하려면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한 세기 반을 메우다시피 한 전쟁 가운데 한국전쟁 하나를 뺀 넷은 모두 일본이 일으킨 것이다. 근현대 동아시아를 일본이 쥐고 흔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뿌리로서 요시다 쇼인(1830~1859)을 알아야 한다. 그는 메이지 왕정복고를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이른바 조슈 세력의 스승으로, 막부 타도를 외치다 29세에 처형됐다. 그가 옥중에서 쓴 ‘유수록’(幽囚錄)은 제자들의 교범이 돼 일본제국을 침략전쟁 나라로 만들었다. 현 아베 신조 총리가 2013년 8월 13일 신임 총리로서 야스쿠니 신사 대신 하기에 있는 그의 묘소를 참배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요시다 쇼인의 특급 숭배자다. ‘유수록’ 요지는 다음과 같다. 섬나라 일본의 사면 바다는 범선 시대에는 성벽 구실을 했지만, 증기선 시대에는 사방이 터진 형세가 됐다. 일본의 생존은 서양의 우수한 기술을 속히 배워 열강에 앞서 주변 나라들을 차지하는 것이라 하고, 점령의 대상을 나열한 뒤 중국 점령을 발판으로 호주와 캘리포니아 진출까지 내세웠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주장을 순서대로 실천에 옮겼다는 사실이다. 정권 초기 홋카이도, 류큐를 차지하고 청일전쟁 결과로 대만을 손에 넣었다. 러일전쟁 승리로 한국 병합을 강제하고 만주 진출 교두보를 확보했다. 이어 쇼와시대에는 만주사변, 중일전쟁을 순서대로 일으키고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대한제국은 자력 근대화 성과를 바탕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중립국을 승인받는 전략을 추진했지만,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로 국권을 강제로 빼앗기고 말았다. 대한제국을 승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에서 줄기차게 항일투쟁의 역사를 썼다. 일제 침략주의는 국제사회의 응징을 받았다. 1920년 탄생한 국제연맹은 1932년 만주사변의 불법성을 규탄하고, 1935년에는 ‘조약에 관한 법’에서 1905년의 보호조약(을사늑약)을 역사상 불법 조약 셋 중의 하나로 들었다. 국제연맹은 국제법을 공법의 지위에 올리고 이 성과를 1946년 후신 기구인 국제연합(유엔)에 인계했다. 유엔 국제법위원회는 1963년 위 불법 조약 셋에 나치의 체코슬로바키아 강제 분할 조약 하나를 더 보태 총회 결의로 채택했다. 이에 따르면 1965년 ‘한일 협정’에서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는 당연히 ‘불법’으로 처리했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를 몰랐고, 일본이 이를 외면해 논외가 됐다. 일본의 외면은 1951년 9월의 ‘샌프란시스코 대일 평화조약’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태평양전쟁 종전 처리에서 일본 파시즘에 대한 엄벌주의를 택했지만, 중국 본토가 공산화하자 일본을 반공 전선의 발판으로 삼고자 관용주의로 바꾸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회의는 그 결과였다. 미국은 본래 한국 임시정부의 중국 국민당 정부군과의 공동항일전 실적을 교전국 자격 요건으로 인정하고 조약 체결국 및 비준국에 넣었다. 1951년 3월에 제시된 덜레스 안의 내용이 그렇다. 이에 대해 영국 정부가 반대하자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강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한국 참여를 반대했다는 것은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했다. 한국 배제는 일본의 불법 식민지배 책임을 증발시켰다. 영일은 동서의 대표적 식민주의 국가들이었다. 이들에 의한 이 회의의 미봉적 처사가 현 일본 역주행의 원인이 되고 있다면 이에 대한 시정이 있어야 한다. 중국의 자본주의 경제와 공산당 체제 공유는 한시적이어야 한다. 공산당 체제 강화를 겸하는 자본주의 경제력 강화는 우경화 일본을 더 자극할 것이다. 이 논리는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침략주의 역사의 가장 큰 피해국인 한국이 갈 길은 대국 흉내보다는 동아시아 국제정의 실현의 중심 역할이 바람직하다. 안중근은 “한국은 너무 순하여(仁弱) 남을 침략하지 않는 나라이지만, 일본은 도가 없는(無道) 무력의 나라로 반드시 망한다”고 했다. 지난 역사로 보아 동아시아에서 국제정의 실현을 내세울 자격은 한국밖에 없다. 한국마저 그 역할을 외면한다면 동아시아는 다시 난투극의 무대가 되고 말 것이다. 국력을 더 키워 국제정의 실현에 힘쓴다면 더 빛나는 역사가 되지 않겠는가. 도를 지키는 것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때다.
  • 미당의 첫 시집 ‘화사집’ 초판본 한정판 1억에 팔려

    미당의 첫 시집 ‘화사집’ 초판본 한정판 1억에 팔려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1941) 초판본 한정판이 경매에서 1억원에 팔렸다. 21일 화봉문고에 따르면 전날 서울 종로구 인사고전문화중심 갤러리에서 열린 제56회 화봉현장경매에 ‘화사집’ 한정판 100부 중 13번째 책이 나왔다. ‘자화상’ 등 시 24편이 수록된 이 책은 겉표지를 삼베로 꾸미고 책등 서명을 붉은 자수로 처리했다. 속표지에는 김영준이 그린 그림이 있다. 책은 경매 시작가 1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화봉문고 측은 “유사한 책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있고, 동일 판본을 소장한 개인이 한두 명 있다는데 정확하지는 않다”며 “문학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서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매에선 김소월(1902∼1934) 시집 ‘진달래꽃’ 초판본이 시작가 7000만원으로 나왔지만 유찰됐다. 1925년 12월 매문사가 출간한 ‘진달래꽃’ 초판본은 총판매소가 중앙서림과 한성도서주식회사 두 곳이다. 경매에 나온 책은 중앙서림 총판본으로, 표지를 현대에 수리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모나리자, 특별한 ‘진짜’ 이유… “복제품과 광고 덕분”

    모나리자, 특별한 ‘진짜’ 이유… “복제품과 광고 덕분”

    매일 전세계에서 온 수천명이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의 베이지색 방에 들어가 유일하게 전시된 그 작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봅니다. 모나리자를 관람하려고 그들은 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걸작을 그냥 지나쳐 갑니다. 왜 모나리자는 이렇게까지 특별하게 보일까요. 이에 대해 CNN이 15일(현지시간)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대학교의 역사학과 수전 브룸홀 교수와 멜버른 대학교의 현대예술학과 찰스 그린 교수의 분석으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첫 전기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조르조 바사리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이 유화 초상화는 비단·양모 상인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이런 이유로 이탈리아 말로 ‘라 지오콘다’로 알려졌습니다)의 두번째 부인 리자 게라르디니를 그린 것입니다. 레오나르도는 1500년대 초기 플로렌스에 있을 동안 작품을 시작했었던 것같습니다. 그는 아마도 ‘앙기아리의 전투’라는 커다란 벽화를 맡아 커미션을 받고자하면서 작품을 시작했던 것같습니다. 도시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고 정치적 시민 가운데 한 명에게서 초상화 커미션을 받음으로서 레오나르도에겐 기회에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외교관이자 작가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한 때 측근이었던 아고스티노 베스푸치에 의한 여백 메모가 최근에 발견되었습니다. 이 메모에 의하면 레오나르도는 1503년 ‘리자 델 지오콘도’의 그림을 작업하고 있었습니다.레오나르도의 숭배자인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은 1505~1506년 전후에 이 작품처럼 보이는 스케치를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레오나르도가 1516년 프랑스로 이사했을 때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여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술 전문가들은 루브르에 있는 그 그림의 스타일과 테크닉은 1510년부터 계속되는 레오나르도의 후기 작품과 훨씬 더 잘 맞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정말로 바사리의 ‘리자’인지에 대해 점점 의심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1517년 레오나르도 집을 찾은 한 방문자는 “어떤 피렌체 여인, 생전”과 “고 줄리아노 데 메디치 각하의 요구” 만들다는 초상화를 그곳에서 보았다고 기록했습니다. 메디치는 1513년부터 1516년까지 로마에 있던 레오나르도의 후원자였습니다. 우리의 방문자는 바사리와 리자라고 적은 여백에 메모를 남긴 사람과 같은 그림을 보았을까요, 아니면 나중에 커미션을 받기로 한 다른 여성의 다른 그림일까요? 무엇보다다 우리가 루브르에서 보는 바로 그 사람은 이 작품의 많은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발가 벗겨진 초상화훌륭한 많은 현대 그림들과 비교하면 이 그림에서 앉아 있는 사람이 왕가의 유산일 것이라는 높은 지위나 상징적 암시이라는 일반적인 함정을 없애줍니다. 모든 관심은 그녀의 얼굴에 집중됐으며, 그것은 수수께기같은 표정입니다. 18세기 이전 그림에서 감정은 얼굴보다는 손과 몸의 제스처를 통해 훨씬 더 자주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개인을 묘사할 때 오늘날 우리가 초상화 사진에서 보는 것같은 같은 종류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기쁨이나 행복 보다는 용기와 겸손을 생각해보세요. 게다가 엘리트 계층의 특징은 좋은 규칙 아래에서 자신의 열정을 유지하는 능력이있습니다. 치과위생 기준과는 관계없이 예술작품에서 함박웃음은 레오나르도 자신의 ‘기묘한 5개의 두상 연구’에서 보듯 통상적으로 잘못 자랐거나 조롱을 암시합니다. 감정에 관한 우리의 현대 관념들 때문에 모나리자가 무엇을 느꼈을지 또는 생각했을지에 관해, 초기 현대 관람객들이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우리에게 궁금증을 남기고 있습니다. #20세기 현상 사실, 20세기 이전의 누구든지 ‘모나리자’에 관해서 많은 생각을 했는지에 관해서는 진짜 의문이 듭니다. 사학자 도널드 새순은 현대에서 세계적 아이콘 지위에 있는 많은 그림은 넓게 펴진 복제품에 의존하며, 온갖 광고를 이용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악평은 1911년 전 루브르 직원 빈센조 페루기아에 의한 절도 사건으로 도움을 받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박물관이 문을 닫은 어느날 저녁 그의 코트에 그림을 둘둘 말아서 박물관을 걸어 나옵니다. 그는 숙소에 숨긴채 이 그림과 함께 2년을 보냈습니다.그림이 반환된 직후에 다다이스트인 마르셀 뒤샹이 1919년 그의 레디메이드 작품 ‘LHOOQ’의 바탕으로서 ‘모나리자’ 우편엽서를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살바도르 달리의 ‘자화상으로서 모나리자’(1954년작)과 더불어 ‘모나리자’ 패러디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례들 가운데 아마 하나일 것입니다. #문화적 가구 뒤샹과 달리에서 우리는 점점 더 비유로 쓰인 ‘모나리자’를 많이 보게 됩니다. 호주 눈가르족 유산의 원주민 예술가 다이앤 존스는 이 작품을 2005년 잉크젯 프린터로 초상사진을 재조명했습니다. 사진들은 백색 유럽인 작품에서 덜 지적되었지만 모나리자의 꿈과 같은 풍부한 감각을 더 빛나게 했습니다. 그림은 최근 비욘세와 제이 지가 의한 뮤직 비디오 ‘Apes**t’(2019년)에서 문화적 가구로 나타납니다. 무직 비디오에서 그들은 옷을 거의 입지 않은 댄서들이 유명한 작품 앞에서 레이디 해밀턴과 같은 포즈를 취하면서 뒤따르며 루브르를 뛰어다닙니다. ‘Apes**t’는 모나리자를 포함한 세 친구들이 만나서 루브르를 뛰어다니는 프랑스의 뉴웨이브 영화 감독 장-뤽 고다르의 ‘국외자들’(1964년)은 아니지만 그 자체는 현대 고급문화의 초기 작품들은 거의 모방합니다. 반면에 1976년 독일 행위 예술가 울레이에 의해 작품의 유명한 절도 사건이 1911년 ‘모나리자’의 절도를 반복합니다. 많은 현대 예술가들은 ‘모나리자’와 같은 가보고싶어 하는 예술작품에 대한 경외심을 혹평하고 있습니다. 최근 벨기에 예술가 빔 델보예는 루브르 중앙 유리 피라미드 입구에 거대한 강철 코르크 스크류인 ‘서포’(2012년) 설치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나리자’를 보려는 방문객들에게 박물관에서 가장 처음 보게 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나리자에 대한 미스터리는 우리를 앞으로 수년동안 매료시킬 것입니다. 그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정확하면서 가능하면 폭넓고 깊은 해석일 겁니다. ‘모나리자’는 우리가 원하는 누구이든지, 그녀가 궁극적인 여성 판타지 인물이 되지 않을까요?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광복군 대원 이병돈은 홀대…친일 밀정 송세호는 유공자 둔갑

    광복군 대원 이병돈은 홀대…친일 밀정 송세호는 유공자 둔갑

    경기 김포에 사는 이예숙(57)씨는 독립운동가 아버지에 대한 서훈을 거부하던 과거 보훈 당국의 태도에 지금도 화가 난다. 부친 이병돈(1914~2005)은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나 선진 영농기술을 배우려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1942년 1월 산시성 시안에서 광복군 제2지대 뤄양지구 초모공작(광복군 모집) 담당자를 만나 곧바로 광복군에 입대했다. 군에서 안중근(1879~1910)의 5촌 조카인 안춘생(1912~2011) 등과 함께 축구대회에도 출전해 중국군관학교 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당시 광복군은 미군과 함께 한반도 진공 작전을 추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1942~1945)과 손잡고 한반도와 일본 본토에 침투해 지하공작에 나서려고 했다. OSS 특수훈련을 받은 광복군 대원을 국내에 잠입시켜 교란작전 등을 펼칠 계획이었는데, 이를 ‘독수리 작전’이라고 불렀다. 영화 ‘군함도’(2017)에서 독립운동 인사를 구하고자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섬(군함도)에 잠입한 박무영(송중기 분)이 광복군 소속 OSS 요원이다. 이병돈은 1945년 4월 OSS 훈련반에 들어가 특수무기반을 수료했다. 국내정진군 사령관 이범석(1900~1972) 휘하에서 한반도 진격 명령을 기다리다가 작전 개시 일주일을 앞두고 광복을 맞았다. 예숙씨에 따르면 부친은 1946년 6월 귀국해 충북 청주에 정착했다. 정부가 독립유공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곤궁하게 살았다고 한다. 1985년 9월 광복군 제2지대 직속상관이던 안춘생 당시 독립기념관 건립 추진위원장이 TV에 출연한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연락했다. 안 위원장은 부친의 서훈을 돕고자 직접 인우보증(다른 사람 행적의 사실 여부를 보증하는 것)을 서 줬다. 광복군 출신 인권변호사 태윤기(1918~2012)가 쓴 독립운동 수기 ‘회상의 황하’(1975)에도 부친의 이름이 광복군으로 소개돼 있어 유공자 지정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친을 탈락시켰다. “객관적 사료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 구체적인 사유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처음 서훈을 신청한 지 6년이 지난 1992년에야 어렵사리 건국훈장 애국장(4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 부친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예숙씨는 “내가 아는 어떤 유공자의 후손은 ‘부친이 일본경찰을 위협하려고 삽을 휘둘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서훈을 받았다. 그런데 보훈 당국은 광복군에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부친의 서훈 여부에 대해서는 늘 고압적 자세로 일관하며 제대로 된 설명 한 번 해 주지 않았다”면서 “정부의 무성의한 행정에 서운함이 크다. 지금이라도 사과를 원한다”고 전했다. ●친일파로 드러난 독립유공자 송세호·서춘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청산하지 못한 가짜 독립유공자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우리 정부의 부실한 검증이 빚어 낸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보훈 당국이 서훈을 잘못 승인하거나 거부한 사례가 적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18일 학계에 따르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독립유공자 송세호(1893~1970)의 친일 의혹 규명 논란이 거세다. 그는 경상북도 선산에서 태어나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뒤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임정에서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고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상하이지부장에도 선출됐다. 1931년에는 상하이에서 연초공장을 운영하며 임정에 군자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4등급)을 추서받았다. 그러나 최근 그가 1930년대부터 친일파로 돌아섰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1939년 7월 상하이에 근거한 독립의열단체 ‘남화한인청년연맹’ 관계자가 체포됐는데, 이때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보고된 ‘남화한인청년연맹 관계자 검거의 건’에는 송세호가 ‘일찍부터 일본의 밀정 행위에 종사한 친일 조선인’으로 기재돼 있다. 특히 그는 상하이에서 일본군 위안소로 추정되는 ‘극동 댄스홀’을 경영했다. 당시 일본은 신원이 검증된 민간인에게만 위안소 운영을 허가했다. 이들 자료가 사실이라면 우리 정부는 위안부 동원에 가담한 친일 밀정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한 것이 된다. 가짜 독립유공자 송세호가 득세하고 진짜 독립운동가 이병돈이 홀대받던 현실을 우연으로 볼 수 있을까. 가짜 유공자가 생겨난 것이 단순 행정 착오나 일부 유공자 후손의 일탈로만 치부할 사안일까. 전문가들은 친일파가 자신의 과오를 씻고 독립유공자로 포장되는 데 저간의 사정이 있다고 설명한다.●“유공자 심사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지금의 독립유공자 포상제도는 박정희(1917~1979)가 정권을 잡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이끌던 1962년 시작됐다. 대한민국 독립에 기여한 이들을 찾아내 부족한 정치적 정당성을 만회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군에 배치돼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하던 친일 행적자다. 그가 최고회의 의장이 돼 독립유공자 서훈에 나서다 보니 자연스레 친일파 출신 학자·전문가도 유공자 선정 과정에 일부 참여했다. 유공자 심사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고 볼 수 있다. 친일문제 전문가인 정운현 국무총리비서실장이 1990년 월간 ‘말’에 기고한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들’이란 글에는 당시의 실태가 자세히 묘사돼 있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첫 정부 포상이 실시된 1962년 문교부 독립유공자 공적조사위원회 위원 7명(위원장 포함) 중에는 (친일파) 신석호와 이병도가 들어 있었다. 이듬해인 1963년에는 내각사무처 독립운동유공자 상훈심의회가 심사에 나섰는데 심사위원 22명 가운데 고재욱과 신석호, 유광렬, 이갑성 등 4명이 친일 인사였다. 1968년에는 총무처 독립유공자 상훈심의회가 심사를 맡았는데 위원 21명 가운데 고재욱과 백낙준, 신석호, 유광렬, 이병도, 이선근, 홍종인 등 친일 인사가 7명이나 됐다. 1977년에는 원호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가 심사를 했는데 위원 11명 가운데 유광렬·이은상 등 2명이 친일파 출신이었다.” 우리 사회 전반에 친일청산 분위기가 퍼지면 자신을 지키기 힘든 친일파들이 독립유공자를 제대로 평가하려고 노력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병돈의 사례처럼 이들이 진짜 독립운동가를 심사할 때는 더 까다롭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탈락을 유도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된다.●친일파끼리 과오 덮고 유공자 포장 의혹도 또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받은 서춘(1894~1944)은 1919년 2·8 독립선언에 참여했지만 훗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주필 등을 지내며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했다. 당시 그에 대한 서훈을 심사한 독립운동유공자 상훈심의회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심의회는 서춘의 친일 행적을 외면하고 그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했다. 이는 지금도 친일파가 같은 친일파를 챙겨 주고자 서훈 제도를 악용한 것으로 의심받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가짜 유공자들이 누리던 온갖 영예와 혜택을 걷어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한국 여성 평균 초혼 30.4세…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41.5%

    한국 여성 평균 초혼 30.4세…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41.5%

    73.8%가 대학 진학… 男보다 7.9%P 높아 291만명 1인가구 중 70세 이상이 29.9% 작년 경단녀 184만명… 1만 6000명 증가작가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은 이 시대를 ‘버티며’ 살아가는 여성의 자화상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김지영은 소설을 ‘내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여성가족부가 1일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여성의 현실이 담겼다. 소설의 주인공을 불러내 여성의 한평생을 재구성했다. 김지영씨는 우리 나이로 38세다. 8년 전 결혼해 딸을 낳았다. 남편 정대현씨는 지영씨보다 한 살 어리다. 지난해 초혼 부부 혼인 건수 20만건 중 여성이 연상인 부부는 17.2%다.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30.4세로 2017년보다 0.2세 늘었다. 2015년 30대에 진입한 이후 계속 올라가고 있다. 혼인 전 지영씨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여성’이었다. 2005년부터 대학에 간 여성의 비율이 남성을 앞지르기 시작해 2018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73.8%로 남성보다 7.9% 포인트 높다. 지영씨는 관리자급으로 승진해 멋있게 사는 삶을 꿈꿨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관리자급 여성 선배는 회사에 2명뿐이었다. ●결혼해야 한다는 여성 43.5%… 男은 52.8% 2018년 여성 관리자 비율은 20.6%로 10년 전보다 8.1% 포인트 늘었으나, 관리자급 10명 중 8명은 여전히 남성이다. 지난해 국가직 여성 공무원의 비율은 50.6%였으나, 4급 이상 여성 공무원은 14.7%에 불과하다. 비슷한 업무를 하는데도 지영씨의 월급은 늘 남자 동기들보다 적었다. 지난해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에 다니는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244만 9000원으로, 남성 임금의 68.8% 수준이다. 남성 대비 여성 월급은 10년 전보다 2.3% 포인트 올랐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을 조사해 발표하는 ‘유리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7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해 여성이 일하기 어려운 나라로 꼽혔다. 지영씨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으나 남자 동료와의 연봉 차이를 알고 나서 허탈해했다. 열정은 시간이 갈수록 흐려졌다. 세상은 혼자 사는 미혼 여성에게 더 적대적이었다. 야근 후 퇴근할 때마다 늘 불안했다. 2017년 성폭력 피해 여성은 2만 9272명이다. 10년 전인 2007년(1만 2718명)보다 2.3배 늘었다. 2018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전반적인 사회안전에 대해 여성 응답자의 35.4%가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또래 여성들처럼 지영씨도 비혼으로 살고 싶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 결과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의 비율은 절반 이하인 43.5%로, 남성(52.8%)보다 낮고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여성 1인 가구는 291만 4000가구로 전체 1인 가구의 49.3%다. 70세 이상이 29.9%로 가장 높다. ●고용률 20대 후반 70.9%… 30대 중반 59.2%로 그래도 결혼 후 지영씨의 삶은 순탄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진 말이다. 육아에 드는 비용(150만원)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베이비시터’ 비용으로 한 달에 150만원이 나갔다. 양가 부모님은 그럴 바엔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라고 했다. ‘경력단절여성’이 된 후 설렘은 잦아들고 무기력이 찾아왔다. 지난해 여성 고용률은 20대 후반(25~29세)이 70.9%로 가장 높다. 30대 중반 결혼·임신·출산·육아 등의 경력단절로 59.2%까지 줄었다가 재취업해 40대 후반에 68.7%로 다시 증가하는 전형적인 ‘M’자형 모양을 그린다. 경력단절여성은 지난해 184만 7000명으로, 2017년보다 1만 6000명(0.8%) 증가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지영씨는 재취업을 결심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괜찮은 직장에 정규직 자리를 얻기는 어려웠다. 지난해 임금 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여성(41.5%)이 남성(26.3%)보다 많다. 연령대별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60세 이상이 24.3%로 가장 높고, 50~59세(22.3%), 40~49세(19.9%) 순이다. 남편과도 사사건건 부딪쳤다. 통계청의 지난해 사회조사를 보면 배우자와의 관계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여성(63.0%)이 남성(75.9%)보다 낮았다. 가사·육아 부담이 주로 여성에게 쏠리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지영씨는 사회가 규정한 ‘여성’이란 정체성에서 벗어나 온전한 ‘내’가 되는 삶을 꿈꾼다. 여성의 기대수명은 85.7년, 앞으로 50여년 남은 생을 보내며 지영씨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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