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인문학은 위기인가/여건종 숙명여대 영문학 교수
인문학의 위기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달 고려대 문과대 교수 전원이 서명한 ‘인문학 선언’이 발표된 후, 전국 80여개 대학의 인문대학장들이 인문학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촉구했고, 학술진흥재단은 인문주간을 선포했다. 그 뒤를 이어 출판인들도 인문학과 인문서적의 위기를 선언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이러한 집단적 표명들은 인문학으로서는 ‘분에 넘치는’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신문은 이례적으로 커다란 사진과 함께 거의 한 면을 다 차지하는 특집 기사들을 내보냈고, 방송은 메인 뉴스의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서 보도해 주었다. 반면에, 이러한 집단적 움직임들을 별로 우호적으로 보지 않는 시각들이 인문학 내부에서도 표출되었다.
기초과학을 포함한, 이른바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모든 인간행위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데 인문학만이 특별히 위기라고 선언하는 것은 별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투정이라는 비판에서부터,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 스스로가 자초했다는 내재적 비판론, 그리고 인문학은 항상 위기였다는 주장,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인문학의 위기가 인문학의 본질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한 반응이었다.
모두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는 이의제기였다. 시장에서 배제되어 방치된 것 중에 인문학보다 더 심각하게 우선적으로 거론되어야 할 것들도 많이 있고, 인문학이 학문적 자폐증에 빠져 구체적인 삶의 현실과 건강한 관계를 상실하고 바깥 세상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는 것도 맞는 말이며, 인문학이 항상 자신의 시대의 지배적인 힘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는 것도 적절한 지적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은 위기에 있으며, 위기에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은 인문학이라는 분과학문의 위기, 인문학 전공자의 위기라기보다는 우리의 일상적 삶으로부터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박탈되고 있는 어떤 인간적 능력과 가치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인문학의 위기라고 느끼는 것의 실체는 스스로의 힘으로 사고하고 반응하고,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인간 능력의 총체적 위기이다. 우리의 진전된 자본주의가 인간의 이 능력에 적대적인 것은 자명하다. 학교에서부터 대중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이 능력을 신장시켜줄 우리 공동체의 사회적, 문화적 자원들은 급격하게 사라지거나 주변화되고 있다.
이 공리주의 시대의 새로운 문명을 주도하는 것은 자본과 과학기술이며, 전자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매체가 우리의 욕망을 끌어가는 힘은 맹목적이고 압도적이다. 정보와 이미지의 과잉 생산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기보다는 인간을 왜소하게 하고 퇴행시키고 있다. 따라서 인문학의 위기는 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특수하고 구체적으로 우리 시대의 것이며,‘내 탓이오.’라고 말할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위협하고 있는 어떤 힘의 작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가 주체적 판단과 비판적 개입의 능력, 공적 인간으로 사유하고 행위할 수 있는 시민적 능력의 위기라면 그것은 더 적극적으로 확인되고, 더 넓게 공유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민주적 공동체의 위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의 인문학 위기에 대한 표명들이 적어도 이러한 인식의 일부라고 본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언어를 찾아내고, 인문적 능력을 대중에게 복원시킬 수 있는 실천적 프로그램을 모색하는 것이다.
학교와 대학, 대중미디어와 출판, 그리고 일상적 삶의 다양한 상징 행위들로 이어지는 지식 생태계의 순환구조에서 대학은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새로운 지식 생산의 조건 속에서 인문적 능력의 복원을 위한 진지하고 실제적인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인문학 위기 담론은 대학 교수라는 안정된 직업의 지적 만족감에 머무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여건종 숙명여대 영문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