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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티베트에서의 7년’ /구본영 논설위원

    최근 티베트에서 유혈사태가 번지면서 맨 먼저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브래드 피트 주연에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연출한 ‘티베트에서의 7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히말라야 원정을 떠난 오스트리아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가 수용소에 갇혔다가 탈출, 티베트의 라싸에서 겪는 실화를 다룬 영화다. 고대 서양문명의 중심이었던 그리스에선 희랍인이 아닌 다른 민족을 ‘바르바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대 영어의 야만인(Barbarian)의 어원이 됐다. 동양을 배경으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대개 이런 시각에서 동양 문화를 한 수 아래로 그리기 일쑤다. 그러나 ‘티베트에서의 7년’은 동양 문화를 편견없이 다뤘다. 주인공이 어린 소년이었던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서 인간의 삶에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대목이 그랬다. 중국 시짱(西藏) 자치구가 티베트인들의 분리독립 시위로 준내전 상태란다. 시짱 자치구는 티베트인들의 오랜 생활터전이었다. 당송 시절 토번(吐蕃)이란 강성한 통일국가를 이루기도 했다. 중국 고대사는 한족의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주변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고 기록했다. 한족의 시각에선 티베트인들도 이런 ‘오랑캐 민족’중 하나일 뿐이다. 중화주의적 편견을 버리고 보면 고대 때부터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민족인 셈이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 보면 영토의 4분의1에 이르는 시짱 자치구를 포기하기는 어렵다. 광물과 목재 등 자원의 보고여서만이 아니다. 티베트가 분리되면 다른 55개 소수민족들의 연쇄 반응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칭짱철도로 한족들을 대거 이주시키는 흡수 정책과 서부대개발이란 당근 정책을 함께 구사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20년래 최악이라는 이번 유혈사태는 57년에 걸친 ‘중국 우월적’ 동화정책이 뿌리내리지 못했음을 웅변한다.20여년간 티베트 고유의 불교문화를 억제해 왔지만, 라싸 거리의 주민들은 여전히 염주를 쥐고 다닌다지 않는가. 중국 정부가 티베트인의 문화적·종교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쪽으로 자치권을 확대하는 것이 사태 해결을 위한 차선의 대안은 될 듯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사설] 中 티베트 사태 무력사용 자제해야

    중국의 시짱(西藏) 자치구 수도 라싸에서 계속되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분리독립 요구 시위가 최악의 반문명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엊그제 중국측 군경이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20년래 최악의 유혈 사태를 빚었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이미 확인된 사망자 수만 해도 수십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더 큰 참상으로 번지지 않도록 중국 측은 무력사용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정부의 무력 사용이 여하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역사적 연원을 보더라도 티베트는 오랜 기간 고유한 문화를 가진 독립국가였다.1950년 티베트를 무력 점령한 중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동화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앞세운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티베트에 관한 한 성공적이지 못했다. 티베트인들의 분리독립 요구도 불교 등 그들의 문화적·종교적 다양성을 중국정부가 포용하지 못한 결과 아닌가. 티베트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탄압하는 중국의 처사에 강력히 반발해온 게 그 방증이다. 중국정부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무력 진압에 나서는 것이야말로 패권주의적 발상이다. 중국은 대화로 사태를 풀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경고를 귀담아듣기 바란다. 특히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는, 온건파 티베트 지도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위 주도 승려를 처벌하는 식의 강경 대응은 세계평화의 대제전인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중국의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행위임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 티베트 고난의 57년사

    중국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티베트를 침공하였다. 달라이 라마는 유엔과 영국 등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듬해 5월 중국과 티베트는 중국의 지배권과 티베트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17개항의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또한 중국은 티베트 수도 라싸에 민간 주재기관과 군사사령부를 설치하고 시캉성 창두 지구를 편입받았다. 그후 중국인들이 대거 티베트로 몰려들어옴에 따른 자원 부담과 양쯔강 상류의 동부지역에 살고 있는 티베트인에 대한 박해 때문에 1959년 3월10일 라싸에서 대규모 독립시위가 발생했다. 달라이 라마를 지도자로 내세운 이 시위는 1만 5000여명의 희생자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시위를 주도한 달라이 라마와 그의 추종자들은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인도 다람살라에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존재하고 있다. 이 시위 이후 중국은 티베트에서는 독재를 실시했다. 사유재산을 빼앗고 사회구조도 농민조합을 중심으로 한 집단체제로 바뀌었다. 또한 중국의 꼭두각시를 임시 행정부의 의장으로 앉히고 수많은 불교 사찰을 폐쇄했다. 그 뒤부터 중국은 티베트인의 여행자유 제한, 농업생산의 독려, 강제 노동 등 탄압정책을 지속적으로 펴왔다. 하지만 중국의 탄압정책이 강화되면 될수록 티베트인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열망도 이에 비례해 커졌다.1961년과 1962년의 가뭄을 계기로 게릴라전이 계속됨에 따라 중국은 유화정책을 일부 도입했다.1965년 중국 정부는 티베트를 자치구로 만들어 민족자치를 인정했다. 중국의 정치적인 탄압은 그 후에도 계속됐다. 군과 경찰을 동원해 무력으로 독립 요구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하지만 티베트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1984년과 1987년 독립시위에 이어 1989년 3월5일에도 라싸에서 대규모 독립시위를 벌였다. 비록 중국군의 계엄령 선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그들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난 10일부터 티베트에서 승려가 주도된 독립시위가 들불처럼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이번에 티베트인들이 중국에 의한 고난과 핍박의 57년 역사에 과연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세계인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티베트 고난의 57년

    티베트 고난의 57년

    중국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티베트를 침공하였다. 달라이 라마는 유엔과 영국 등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듬해 5월 중국과 티베트는 중국의 지배권과 티베트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17개항의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또한 중국은 티베트 수도 라싸에 민간 주재기관과 군사사령부를 설치하고 시캉성 창두 지구를 편입받았다. 그후 중국인들이 대거 티베트로 몰려들어옴에 따른 자원 부담과 양쯔강 상류의 동부지역에 살고 있는 티베트인에 대한 박해 때문에 1959년 3월10일 라싸에서 대규모 독립시위가 발생했다. 달라이 라마를 지도자로 내세운 이 시위는 1만 5000여명의 희생자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시위를 주도한 달라이 라마와 그의 추종자들은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인도 다람살라에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존재하고 있다. 이 시위 이후 중국은 티베트에서는 독재를 실시했다. 사유재산을 빼앗고 사회구조도 농민조합을 중심으로 한 집단체제로 바뀌었다. 또한 중국의 꼭두각시를 임시 행정부의 의장으로 앉히고 수많은 불교 사찰을 폐쇄했다. 그 뒤부터 중국은 티베트인의 여행자유 제한, 농업생산의 독려, 강제 노동 등 탄압정책을 지속적으로 펴왔다. 하지만 중국의 탄압정책이 강화되면 될수록 티베트인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열망도 이에 비례해 커졌다.1961년과 1962년의 가뭄을 계기로 게릴라전이 계속됨에 따라 중국은 유화정책을 일부 도입했다.1965년 중국 정부는 티베트를 자치구로 만들어 민족자치를 인정했다. 중국의 정치적인 탄압은 그 후에도 계속됐다. 군과 경찰을 동원해 무력으로 독립 요구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하지만 티베트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1984년과 1987년 독립시위에 이어 1989년 3월5일에도 라싸에서 대규모 독립시위를 벌였다. 비록 중국군의 계엄령 선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그들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난 10일부터 티베트에서 승려가 주도된 독립시위가 들불처럼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이번에 티베트인들이 중국에 의한 고난과 핍박의 57년 역사에 과연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세계인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인종·종교·문화 뒤섞인 민족갈등 표본

    인구 200만명의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자치주로 알바니아계 주민이 절대다수인 90%를 차지한다. 그러나 주민의 5%에 불과한 소수파 세르비아계 정부는 알바니아계 민족말살정책을 폈다.세르비아의 전신인 신유고연방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1989년 코소보 자치권을 빼앗으면서 양측 갈등이 격화됐다. 코소보는 과거 세르비아군이 오스만튀르크 제국을 상대로 싸우다 전멸한 곳으로 세르비아인들에게는 ‘성지’로 여겨져온 지역이다.1998년 양측의 유혈충돌 격화로 1999년 3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세르비아 공습을 시작하면서 2개월여간 코소보 전쟁을 치렀다.이 사태로 1만 3000여명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실종됐다. 현재 유엔코소보행정기구(UNMIK)의 위임 통치 아래 나토주둔군 1만 7000명, 유엔 경찰 1500명이 치안을 맡고 있다.
  • [씨줄날줄] 쿠르드족과 올리브/구본영 논설위원

    “쿠르드족에게는 친구가 없고 산(山)만 있다.” ‘중동의 집시’인 쿠르드족의 오랜 속담이다. 이들은 터키·이라크·이란 등 중동의 험준한 산악지방과 구소련 등 유럽 일원에 흩어져 살고 있다. 속담에는 거주국에서 홀대받고 강대국에도 버림받은 유랑 민족의 자조가 배어 있는 셈이다. 사실 쿠르드족은 여태껏 돌아갈 제 나라가 없는 민족이다. 부평초처럼 한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민족의 대명사는 보헤미안으로도 불리는 집시족이다. 하지만 집시는 많아야 400만명도 안 되지만 쿠르드족은 총인구가 2500만명에 육박하는 최대 유랑 민족이다. 독특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쿠드르족이건만, 역사는 수난사 그 자체다. 지난 1988년 이라크의 후세인 전 대통령이 자행한 쿠르드족 ‘인종 청소’가 대표적 사례다. 이란과의 전쟁을 치른 후세인이 쿠르드족의 독립 움직임이나 이란과의 연대 가능성이란 화근을 제거하기 위해서 신경가스로 공격해 5000명을 몰살한 것이다. 인구의 20%를 점하지만, 자치권 문제로 터키 정부에는 여전히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그런 쿠르드족, 특히 이라크의 쿠르드자치구 주민들에게 서광이 비치고 있다. 쿠르드족 인구가 밀집된 이라크 북부 모술과 키르쿠크 등지에서 유전 개발경쟁이 불붙으면서다. 한국석유공사와 쌍용건설 등이 참여하는 한국 컨소시엄도 그제 쿠르드 자치정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자치구내 4개 유전 개발과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패키지로 추진하는 내용이다. 이는 자원외교에 사활을 걸고 있는 우리와 전후 경제재건과 자치기반 확대가 과제인 쿠르드 자치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일 게다. 물론 쿠르드족의 ‘향후 행보’를 경계하는 이라크 중앙정부의 반발 등 아직 변수는 많다. 하지만 자이툰은 아랍어로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를 뜻한다지 않는가. 논란 많았던 이라크 파병이었지만, 아르빌에서 흘린 자이툰부대의 땀방울이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석유를 확보하고, 오랜 세월 척박한 삶을 일궈온 쿠르드족도 올리브 나무와 같은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윈-윈형 협력이 되기를 빌 뿐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단독]“지자체, 입법과정 참여해야”

    [단독]“지자체, 입법과정 참여해야”

    16개 광역단체장 모임인 전국시도지사협의회(회장 김진선 강원지사)가 지방정부가 국가의 입법 및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양원제(兩院制)’의 도입과 국세의 일부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자주 과세권’의 도입을 새 정부에 건의한다. 또 해양수산청, 환경청 등 지방청들을 시·도에 이관하고 자치경찰·자치교육제를 하루빨리 도입할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17일 전북도에 따르면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단은 이 안을 오는 22일 서울시청에서 있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건의하기로 해 수용 정도에 따라 지방자치제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광역자치단체 관계자는 “이 당선인이 서울시장 출신으로 지방 자치에 대한 경험이 풍부해 지방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진정한 지방자치를 해야 협의회는 양원제 도입과 관련, 현행 헌법상 지방자치는 ‘선언적 보장’에 불과해 지방자치의 본질적 구성 요소에 대한 헌법상의 보장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현행 헌법 제117조와 제118조는 자치권의 내용과 범위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규정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법률유보를 해 미흡하다는 주장이다. 헌법을 개정할 때 ▲중앙과 지방간 입법·행정·재정 권한 배분으로 자치권 확대 ▲국가의 입법과 정책 결정 과정에 지방정부의 참여를 제도화하기 위한 양원제 도입 ▲국가 감사 범위의 명확한 한정 등을 반영할 것을 요구한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 조정 협의회는 또 지방 재정의 자율성 확대를 위해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조정할 것을 제안할 예정이다. 현재 79.5%대20.5%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일단 7대3으로 조정하자는 것이다. 이의 방안으로 ▲부가가치세의 일정 비율 지방소비세로 전환 ▲레저시설 입장료 등 특별소비세를 도세로 전환 ▲법인세 일부 도세로 이양 ▲주세를 도세로 이양하는 안을 제시했다. 국가가 독점하는 과세 입법권도 지방세의 세목, 세율, 과세 객체 등은 조례로 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 행정기관 시·도 이관 협의회는 국토관리청 등 국가의 특별지방행정기관을 시·도로 이관해 줄 것도 건의한다. 관련 특별행정기관은 지방중소기업청, 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지방국토관리청, 지방해양수산청, 지방노동청, 지방환경청, 통계사무소, 지방산림관리청, 지방보훈청 등 9개 기관이다. 협의회는 교육행정 체제를 개편하고 자치경찰제 도입을 건의하기로 했다. 교육감은 시장·도지사가 부단체장으로 임명하거나 러닝 메이트로 입후보하는 방안으로 바꿔 지방자치와 교육의 연계성을 강화하고 부교육감은 국가직을 지방직화해 줄 것을 요구할 방침이다. 또 시·도의회와 이원화돼 있는 교육위원회도 예외적인 의결권 보장 규정을 삭제해 시·도의회 본회의 의결권을 존중하도록 해줄 것을 건의 내용에 담았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열린세상] 교육부 개편론에 앞서/한상희 건국대 헌법학 교수

    [열린세상] 교육부 개편론에 앞서/한상희 건국대 헌법학 교수

    교육이 백년대계라는 말은 너무 진부할 정도다. 교육은 이미 정치 그 자체가 되어 버렸거나 혹은 정치과잉화되어 구호만 난무한다.3불(不)정책에 관한 찬반론이 그러하였고, 특목고의 해체냐 증설이냐의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그러하다. 실체는 간 곳 없이 표피적인 판단과 정략적인 구호만 요란하다. 새 정부가 내세우는 교육인적자원부의 해체론 혹은 개편론도 따지고 보면 그 다른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학교에 관한 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교육부의 관료주의는 혁파대상 1순위다.‘국민교육’을 핑계로 교육 현장의 구석구석까지 규제와 간섭으로 일관해온 권위적 교육행정은 당장이라도 척결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육부 개편론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우리 교육의 본질과 미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오간 데 없고 교육부의 해체나 구조조정이라는 조직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교육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판단이 선행되어야 어떤 교육조직과 체제가 필요한지를 논의할 수 있음에도 지금은 공교육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언급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있다. 개편론의 골자는 교육부의 기능과 권한을 조정하여 초·중등교육은 지역교육청에, 대학교육은 각 대학과 대학교육협의회에 이전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바로 특목고의 증설과 대학입시에서의 대학 자율권 확대로 이어진다. 형식은 자치의 확대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교육 영역에 대한 시장주의와 적자생존식의 경쟁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작 개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공교육’의 의미와 목적은 간과되고 있다. 교육이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인적자원’을 양성하는 국가과제인지, 아니면 인성을 계발하고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배려인지,‘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선언한 헌법의 정신이 경쟁과 도태에 입각한 교육체제를 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능력과 의지에 부합하는 삶의 방법을 교육하겠다는 것인지…. 아쉽게도 교육 그 자체에 관한 고민은 그리 깊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교육 자치와 자율의 확대는 그 자체로도 의미는 있다. 그러나 그 자치가 누구의 자치인가는 별도로 평가되어야 한다. 주민의 무관심에 편승하여 교육관료들이 관내 학교에 군림하는 체제를 유지해온 지방교육청에 자치권을 강화한다든가, 패권적 학벌주의에 종속되어 입시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는 대학에 자율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고 해서 의미있는 자치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자치와 자율의 이름으로 횡행하는 이기적 행태들은 자율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해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목표와 성취를 향해 일직선적인 전진만 추구하는 도구합리주의의 폭력이 우려되는 것이다. 교육행정의 과제는 바로 이런 ‘시장의 실패’를 교정함에 있다. 교육의 문제를 개인이나 집단의 사적인 능력에 일임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수준에서 조정하고 규율하는 공적 권위를 확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교육행정의 본질인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경쟁과 도태의 논법은 결코 교육개편을 위한 지고선이 되지 못한다. 이미 우리 교육은 사교육 시장에 점령당하여 약육강식의 냉혹한 정글논리에 잠식되어 있다. 따라서 교육부 개편론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교육에서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 ‘공적인 것’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국가는 어떠한 역할과 책무를 떠맡아야 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과 공감대가 형성된 다음에야 교육부 개편론은 비로소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헌법학 교수
  •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부결땐 내가, 가결땐 너희가 물러나자”

    ‘우고 차베스의 실패’가 재연되는 상황을 막아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14일(이하 현지시간)까지인 개헌안 마무리 시한을 앞두고 개헌 추진 의지를 거듭 불태우고 있다.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계속 거부해온 야권 소속 주지사들도 응할 수 있음을 내비쳐 막판 대타협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진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6일 모랄레스 대통령이 자신과 주지사들을 대상으로 신임투표 실시를 촉구하는 서한을 의회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초 집권 이래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 혼란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전날 국영TV 연설에서 보수야권이 장악하고 있는 산타크루즈 등 6개 지역 주지사들의 반정부 움직임을 강력 비난했다. 이어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대통령 및 주지사 신임투표와 연계해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이 6개 주는 그동안 폭넓은 자치권을 요구하며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대통령 연임 제한 철폐, 사회주의 개혁이 뼈대인 개헌안의 불법성을 UN 등에 고발하며 맞서왔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볼리비아 최대 지역인 산타 크루스주 루벤 코스타스 주지사는 아직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른 야권 소속 주지사 4명은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나타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에 따라 모랄레스가 국민투표를 앞두고 야권과 극적 타협을 이뤄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모랄레스가 이끄는 사회주의운동당(MAS)은 지난달 24일 남부 추키사카주 수크레시에서 제헌의회를 소집해 야당의원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개헌안을 통과시켰다.MAS는 오는 14일까지 개헌안을 최종 마무리한 뒤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선택2007 D-14] 昌 “강소국 연방제 가자”

    [선택2007 D-14] 昌 “강소국 연방제 가자”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4일 한나라당의 심장부인 PK(부산·경남)지역을 공략하면서 핵심 공약인 ‘강소국 연방제론’을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이 후보는 “지방정부가 실질적 권한과 기능을 갖고 자립적으로 발전을 도모해 세계 속의 지역으로 부상하는 국가 대개조가 필요하다.”며 “대한민국을 싱가포르나 핀란드와 같은 강소국 5∼6개로 구성된 연방국가로 만들고, 지방정부가 독자적인 입법·사법·행정·교육·경찰 등 자치권한을 갖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 후보는 “재정이 부족한 지방정부에는 부유한 지방이 지원할 수 있는 ‘균형발전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강소국 연방제 실현을 위해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고 헌법개정 등의 제도 개혁을 추진해나갈 ‘국가개조위원회’를 만들어 본인이 직접 위원장직을 맡아 철저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행정수도 건설 당시 겪었던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의 반발과 이에 따른 수도권 지역의 표 이탈 문제에 대한 대책이 부족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후보는 최근 심대평 후보와의 단일화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보수대연합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추가로 단일화가 논의되고 있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 후보는 “실명을 거론하는 것은 천기누설”이라고 발을 빼면서도 “보수대연합 세력의 형성은 이번 정권 교체를 계기로 역사를 바꾸는 주도 세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보수쪽 인사들과 활발한 연합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 언급이다. 한편 이 후보는 이날도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구애’를 이어나갔다. 부산 동구 선거연락사무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BBK 수사 결과에 따른 박 전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이 후보는 “박 전 대표와 저의 나라를 위한 마음은 같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BBK의 결과에 관계 없이 언젠간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부산·울산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단독]“이라크 투자 3대 불확실성 내포”

    [단독]“이라크 투자 3대 불확실성 내포”

    이라크 파병 연장에 따른 경제실익 여부가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29일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국내 기업의 섣부른 이라크 재건사업 진출 움직임을 경고하고 나섰다. KIEP가 이라크 분석 보고서를 내놓기는 2004년 파병 이후 처음이다. KIEP는 쿠르드지역 정세 보고서를 통해 ▲분리독립 움직임과 관련된 지정학적 불안 ▲석유개발과 관련된 경제적 위험 ▲키르쿠크 편입을 둘러싼 영토적 긴장을 역내 ‘3대 불확실성’으로 규정하고 “기업의 재건사업 참여도 리스크에 대한 충분한 고려 아래 이뤄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이라크 북부지역이 쿠르드 분리주의자의 근거지이자, 자이툰부대가 주둔한 쿠르드 자치정부 지역마저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 쿠르드 자치정부가 부인하고 있으나 이란 등 주변국들은 이 지역을 터키군과 교전 중인 쿠르드반군(PKK)의 ‘인큐베이터’로 보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판단이다. 무엇보다 이라크 내 아랍인들도 쿠르드인들이 이스라엘과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한다는 점, 이란과 시리아는 자국내 쿠르드족의 동요를 우려해 터키의 군사행동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정학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쿠르드 자치정부가 추진하는 키르쿠크 편입도 영토 긴장을 높이고 있다. 이라크 국민 대부분이 유전지대인 키르쿠크의 쿠르드 편입을 반대하고 있으며 최근 쿠르드 자치정부가 주민투표에 대비해 60만명을 비정상적으로 전입시킨 사실이 드러나 반감이 커지고 있다. 터키군의 잦은 국경침범이 쿠르드내 반(反) 터키정서를 고조시키고 쿠르드 내부 갈등을 부를 수 있다는 전망도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보고서는 “석유법과 키르쿠크 편입 등 핵심쟁점에 대해 명확한 결론이 내려질 시점이 다가오면서 쿠르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미군이 철수하면 미국에 의존해 따낸 자치권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이라크 연방제 구체화

    이라크 연방제 구체화

    이라크도 연방제로 가는가. ‘세계의 화약고’ 이라크를 세 개 지역으로 쪼개 연방제 국가로 만들자는 방안이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 상원은 26일(현지시간) 이런 내용의 결의안을 가결했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의원이 발의했다. 공화당 의원들도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75대23의 압도적 표차로 결의안이 통과됐다. 이라크를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족 등 세 개 지역으로 분할하고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 국가를 도입하자는 게 골자다. 이른바 ‘보스니아식’ 해법이다. 지난 95년 보스니아 내전을 종식시키면서 도입했던 데이튼 협정을 이라크에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데이튼 협정은 이슬람계,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로 나뉘어 8년 가까이 피비린내나는 내전을 치렀던 보스니아를 세 민족의 연방으로 분리시킨 협정이다. 이라크도 종파간, 정파간 분쟁을 끝내기 위해 사실상 내전 상태에 있는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족을 분리한 뒤 충분한 자치권을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이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당장 부시 대통령이 이 결의안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이라크가 단일 통합국가로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변 국가들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셋으로 쪼개져 연방제국가로 탈바꿈한 이라크가 오히려 분쟁을 더 격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터키는 이라크 북부에 쿠르드족 독립 국가가 수립되면 이에 자극받은 자국 내 쿠르드 반군의 활동이 한층 강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도 이라크에 시아파 국가가 생기면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라크의 분할이 새로운 인종청소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때문에 이번 결의안은 이라크내 정치불안을 해소하고 미군을 조기철수 시키려는 의지를 반영했을 뿐 실현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편 2003년 3월 이라크전 개전뒤 미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한 이후 시작된 이라크의 저항활동 과정에 숨진 이라크 저항세력은 모두 1만 9429명이라고 미 국방부가 밝힌 것으로 USA투데이가 27일 보도했다. 미국 국방부가 이라크 저항세력 사망자수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中조선족엔 추석보다 뜻깊은 ‘9·3절’

    일제 강점기, 가난 때문에 고국을 등진 이주민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가 올해로 출범한 지 55주년을 맞았다. 그들은 우리의 추석에 버금가는 자신들만의 특별한 명절을 쇠고 있는데,‘9·3 민속절’이 바로 그것이다. KBS 1TV ‘다큐멘터리 3일’은 이 특별한 명절과 함께하는 ‘연변 조선족 마을의 특별한 명절’을 20일 오후 10시 방송한다. 백두산 가는 길목에는 ‘경상도 마을’이라는 작은 산속 마을이 있다.1930년대 경상도 지역에서 집단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산다는 경상도 마을은 마치 1960∼70년대 우리네 농촌 풍경을 재현한 듯하다.뒤늦게 이주하는 바람에 내륙 깊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 탓에 조국의 광복 소식을 늦게 접해서 상당수가 그대로 눌러앉고 마는 안타까움을 겪었다.이렇게 힘겹게 뿌리내린 개척민 1세대는 조선족이 중국에서 자치권을 가진 날을 기념하고자 9·3절을 만들어냈다.“9·3절은 우리 민족의 긍지를 되새기기 위한 명절입니다. 이 나라의 12억 인구 가운데 우리도 하나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니까요.”이렇게 말하는 김성배(46)씨의 목소리가 떨린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Metro] 강남 등 3개구 공동재산세 헌소

    서울 강남구, 서초구, 중구 등 3개구가 31일 재산세 공동과세(공동재산세)와 관련,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공동 청구했다. 이들 자치구는 “지난 7월20일 공포된 지방세법(재산세 시·구 공동과세)은 헌법정신에 위배되고, 지방자치의 본질을 훼손하기 때문에 헌재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공동재산세 도입으로 세수 감소가 예상되는 이들 자치구는 그동안 “지역주민들의 동의 및 여론수렴절차 등을 생략한 채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한 지방세법 개정은 포퓰리즘의 전형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해왔다. 공동재산세는 현재 자치구가 부과·징수하는 재산세를 자치구와 서울시가 50%씩 공동과세하고, 이 50%를 25개 자치구가 나눠 쓰는 것이다. 이들 자치구는 개정법안의 위헌 여부를 헌법전문가 등에게 자문한 결과, 헌법의 재정자치권, 과잉금지 원칙, 비례원칙, 보충의 원리 등을 위반하거나 침해했다는 해석을 했다고 주장했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제주특별자치도 출범1년 성과와 과제

    제주특별자치도 출범1년 성과와 과제

    7월1일이면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1년을 맞는다. 그동안 정부는 제주자치도를 고도의 자치권을 가진 ‘국제자유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자치권을 확대하고, 핵심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이후 수조원대의 국내외 투자 및 외국인 방문객 유치 증가 등 일부 의미 있는 변화와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인색한 조세특례와 중앙사무 이양, 규제 완화, 투자 유치의 편중 등 적지 않은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1년 동안의 성과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 등을 짚어본다. ●외국인 입국 작년보다 300% 늘어 제주자치도 출범 이후 외국인 무비자 입국이 확대(169개국에서 180개국)되면서 외국인 방문객이 급증했다. 지난해 7월1일부터 올 5월31일까지 무비자 입국자 수는 2만 7069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6895명)에 비해 300% 증가했다. 이에 힘입어 전체 외국인 관광객 수도 2만 2416명에서 4만 2477명으로 90% 늘었다. 김성배 국무조정실 제주특별자치도 지원위원회 사무처장은 “중국에 대해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게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투자사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선 내국인 투자는 대규모 관광개발사업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섭지코지 해양관광지, 묘산봉 관광지구 등 총 8개 사업,2조 2616억원 규모다. 외국인 투자유치사업은 컨벤션앵커호텔(홍콩), 폴로승마장(싱가포르) 등 총 6개 사업,7397억원 규모가 실현됐다. 이달 들어서는 한국에 4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고 있는 카타르 해외투자청이 알 마다르(Al Madar)사의 실무진 등을 파견하는 등 중동 오일달러 유치도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핵심사업 권한이양 여전히 인색 정부는 당초 국방, 외교, 사법 등 국가 존립 사무를 제외한 모든 권한을 제주특별자치도에 주겠다고 했으나 막상 핵심적인 권한 이양과 규제 완화에는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제주에선 항공자유화, 전지역 면세화, 법인세 인하 등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항공자유화만 허용했을 뿐 나머지에 대해선 ‘시기상조’ ‘타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내세우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제주자치도 핵심사업인 교육과 의료산업 육성을 위한 외국인학교, 외국인 의료기관 영리법인 허용 요구도 관철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공교육이 무너진다.’ ‘의료 질 하락’ 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대신 외국인학교의 내국인 입학비율을 높여주고 내국인 면세점 이용한도와 횟수를 확대했지만, 이것만으로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제주도측의 주장이다. 문홍익 제주상공회의소 회장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경쟁하라고 하면서 정부가 제주도의 손발을 묶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성배 사무처장은 “오는 2011년까지 주민 복리증진 등에 필요한 권한을 중심으로 4100여건의 중앙 사무를 단계적으로 제주자치도에 이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또 교육과 의료산업 전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서울 임창용기자 제주 황경근기자 sdragon@seoul.co.kr
  • [홍콩 반환 10년 현장을 가다] (상) 안정과 민주사이의 홍콩인들

    [홍콩 반환 10년 현장을 가다] (상) 안정과 민주사이의 홍콩인들

    오는 7월1일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금융·무역의 허브, 동양의 진주 홍콩의 밤거리는 계속 불야성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코스모폴리탄 홍콩인은 과연 중국의 공민(公民)에 머물고 말 것인가. 사회주의 중국에 맞선 민주의 보루는 어찌 될 것인가.1997년 전반 중국 회귀를 앞두고 쏟아진 이런 질문들에 10년이 지난 오늘 몇 개의 답변은 가능할 듯하다. 현지 탐방을 통해 3회에 걸쳐 홍콩 특집을 싣는다. 2005년 12월 홍콩에서 중대 사건이 발생한다. 막강 홍콩 경찰의 방어벽이 세계무역기구(WTO)체제 반대에 나선 한국의 원정 시위대에 무너졌다. 예고된 시위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을 사전답사까지 했던 홍콩경찰이지만, 시위대의 노련한 작전에 맥없이 1차 저지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시위대의 ‘밀기’에만 신경쓰다가 ‘밀었다, 당겨’는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도의 원리’에 우르르 앞으로 넘어진 홍콩 경찰들 위로 한국인 시위대의 진격 모습이 TV로 생생하게 전달되자 홍콩 사람들은 경악하고 만다.“한국 사람이야 ‘그 정도 갖고 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홍콩인들의 충격은 컸습니다. 그 일 이후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몰라요.” 홍콩 한인회 김구환 부회장의 말은 ‘안정’에 대한 홍콩인들의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홍콩인의 안정에 대한 집착은, 곧 ‘혼돈’에 대한 불안감의 반영이다. 홍콩의 최근 역사는 안정희구 성향을 잘 보여준다.1967년 노동 파업으로 시작돼 반식민지 운동으로 번졌던 반영(反英)폭동 때도 노동자 탄압이나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보다는 결국 시위대만이 혼란의 주범으로 각인된다. 사회 질서가 불안해지고, 자본이 홍콩을 빠져나가자 홍콩인 대다수는 시위대를 원망하게 된다. 이는 홍콩인들이 ‘안정’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실제 안정이 흔들리면 홍콩인들도 크게 흔들렸다. 홍콩 반환이 결정된 1984년 중국과 영국의 연합성명 발표 이후 본격화된 홍콩인의 해외 이주는 1989년 천안문 사건으로 중국이 혼란에 빠져들자 절정을 이루게 된다. 캐나다 서부도시 밴쿠버가 돈 많은 홍콩인들의 집단 이주로 ‘홍쿠버’로 불리게 된 것도 이후의 일이다. 현재는 상황이 변했지만…. 굵직한 사건 때마다 ‘안정’은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홍콩인의 중국 본토 자녀 흡수 문제의 분수령이 됐던 2000년 홍콩 입경처 방화사건을 보자. 심사과정 등에서 심하게 모욕을 당한 일부 ‘대륙인(중국본토 사람)’들이 우발적으로 불을 지르며 난동을 부린다. 그러나 홍콩인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홍콩을 혼란에 빠뜨릴지도 모를 ‘대륙인의 폭력’에 시선을 집중한다. 그 결과 대륙인이 홍콩에서 당한 인권모독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한 해 전만 해도 ‘홍콩인들이 본토에서 낳은 자녀는 홍콩인이 될 수 있다.’는 종심(終審)법원의 판결로 대륙에 남은 홍콩 자녀들의 입경이 허용되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위 난동으로 ‘폭도’,‘홍위병’ 등의 단어가 들먹여지자 여론은 험악해져 갔고, 판결은 허망하게 뒤집힌다. 안정이 기준이었다. 2003년 홍콩에서는 50만명이 모여 시위를 벌인다. 영국 식민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홍콩 정부가 국가전복행위를 금지한 국가안전법을 입법화하려 하자 회귀 기념일인 7월1일 시민들이 반대시위를 통해 이를 무산시킨다. 많은 이들은 여기서 민주주의의 단초를 찾는다. 행정수반 둥젠화의 하야와 직선제 요구가 본격 제기된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4년 국회의원 선거는 예상과 달랐다. 친중파(親中派)의 승리.“시민들이 중국과의 대화를 통한 ‘안정’을 바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언제 홍콩에 자유와 민주가 있었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영국 식민시기의 자유도 결국은 민주주의 없는 ‘시장의 자유’ 또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자유일 뿐인데, 보편적 자유인 양 찬양됐다는 얘기다. 주로 중국쪽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1997년 반환을 앞두고 영국 식민정부에 의해 진행된 정치개혁을 식민통치의 잔재를 남기려는 술책이었다고 비난한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정치전문 대기자 크리스 영은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홍콩의 민주는 중국과 영국이 홍콩문제를 해결한 80년대 중반 무렵에 싹이 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 식민정부는 홍콩 반환이 확정된 1984년부터 반환 직전까지 상당한 자치권과 국제적 자율성을 부여한다. 선거권·피선거권·정치참여권은 중국 반환 결정 이후 부분 도입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명예로운 퇴각을 위한 정치개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홍콩에서 만난 상당수 홍콩인들은 ‘민주화’에 대한 질문 자체에 민망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그들은 대체로 “우리는 안정속의 번영을 원한다.”고 답했다.‘민주’라는 가치에 집착하지 않아 보였다. 진정한 민주와 자유가 없던 영국 식민 시절부터 ‘안정’된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번영을 누려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글 사진 홍콩 이지운특파원 jj@seoul.co.kr ■ ‘一國兩制’ 일거양득 효과 |홍콩 이지운특파원|‘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는 홍콩 반환을 앞두고 홍콩인뿐 아니라 영국 등 서방 세계를 안심시키는 주요 기제로 작용했다. 이는 나아가 대(對) 타이완 통일 원칙으로도 적용되고 있다. 눈엣가시와도 같은 티베트 문제에도 마찬가지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게 귀국을 종용하는 당근,‘고도의 자치’도 일국양제의 변형이다. 왕전민(王振民) 칭화대 법학원 부원장은 “일국양제를 통한 통일 구상은 중국인의 통일관을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게다가 이는 아무도 대가를 치르지 않고 통일 비용을 크게 줄이는 효과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 만큼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의 성공은 중국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이번 1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정치선전이 진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국양제는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것이다. 그는 1978년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사회주의를 핵심으로 하되 경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두 체제를 병행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당초 선전(深) 등 경제특구에서 적용했던 것이다. 일국양제 10년에 대해서는 일단 좋은 평가가 우세하다. 마거릿 베킷 영국 외무장관은 최근 홍콩을 방문,“지난 10년간 정치·경제적으로 약간의 부침이 있었지만 당시의 불길한 예언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도 12년 전 홍콩에 대한 전망 보도가 잘못됐다고 시인하면서 홍콩 반환 10년의 변화상을 전하며 “홍콩은 아직 죽지 않았고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치는 곳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전했다. jj@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벨기에 총선 승리 이끈 이브 레테름 당수

    |파리 이종수특파원|10일(현지시간) 치른 벨기에 총선에서 플레미시(네덜란드어권) 지역정부 총리인 이브 레테름(46)이 이끄는 기독민주당이 승리했다. 80% 이상 개표결과 기독민주당은 30%가 넘는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극우정당 블람스 벨랑이 20% 가까운 득표율로 뒤를 이었다. 이에 따라 레테름은 사실상 차기 총리 자리를 확보하게 됐다. 전통적으로 벨기에 연방 총리는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플레미시 지역에서 승리한 정당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왈롱(불어권)지역 출신 아버지와 플레미시 지역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레테름은 언어를 둘러싼 지역 갈등이 심한 벨기에에서 반통합주의자로 꼽힌다. 평소 플레미시 지역의 자치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불어권 지역의 반감을 샀다. 선거 공약도 플레미시 지역의 자치권을 고용·노동정책, 사법·보건분야로 확대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제시했을 정도다. 지난해 8월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는 “불어권 지역 사람들은 얼핏 보아 네덜란드어를 배울 지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비하하는 발언으로 왈롱 지역 주민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때문에 통합력 발휘가 그의 총리로서의 행동 반경을 결정할 전망이다. 대학에서 정치학·법학을 전공한 뒤 변호사로 일하다 플레미시 지역 의회에서 정치적 경력을 쌓았다. 기독민주당이 40년만에 야당으로 전락한 1999년 연방의회에 첫 입성한 뒤 당수로 선출됐고 2004년 플레미시 정부 총리에 올랐다. vielee@seoul.co.kr
  • 홍콩반환 10주년 엇갈린 평가

    |베이징 이지운특파원|“홍콩 사람들은 영국의 통치 아래 얻은 경험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마거릿 대처) “홍콩 특별행정구가 누리고 있는 고도의 자치권은 홍콩 고유의 것이 아니라 중국이 부여한 것이다.”(우방궈) 홍콩 반환 10주년을 맞아 영국과 중국 본토의 시각은 이처럼 달랐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발언은 지난 5일 런던의 홍콩협회가 주최한 오찬장에서 나왔다.1990년 퇴임 후 홍콩에 대한 첫 언급이다. 그녀는 1984년 영국·중국간 반환 협정 조인 당사자. 대처는 “반환은 성공적이었다. 이는 ‘홍콩 민중’ 덕분”이라면서 “홍콩의 비약적인 발전은 영국과 중국이라는 부모를 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 국가서열 2위인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위원장의 말은 “홍콩의 직선제 및 민주화 요구를 사실상 일축했다.”고 받아들여졌다.7일 홍콩 언론들의 분석이다. 우 위원장은 전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홍콩기본법 제정 10주년 좌담회’에서 “홍콩 정부는 중국이 부여한 만큼만 권한을 갖는다.”며 홍콩 정부가 자율적으로 일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홍콩반환 이후 기본법에 대한 중국 최고지도부의 첫 공식 평가다. jj@seoul.co.kr
  • “외국인은 달러 박스” 내정불안에 납치기승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 나이지리아에서 외국인 납치 사건이 봇물 터지듯 발생하고 있다. 국적, 인종, 남녀를 상관치 않고 마구 끌어가 인질로 삼은 뒤 거액을 요구하는 금품갈취형 납치극이 연일 꼬리를 물고 있다. 이달 들어 5일 만에 28명의 외국인이 납치됐다.8명은 풀려났지만 대우건설 임직원 3명을 포함해 20명은 억류 상태다. 현지 무장단체에 외국인들은 ‘걸어다니는 달러박스’로 여겨질 정도다.“나이지리아가 ‘외국인의 블랙홀’이 됐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필리핀 근로자 몸값 1000만弗 요구설 현지 외교소식통들은 “인질 대상자의 나라에 따라 요구 금액이 다르지만 1인당 수만∼수십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하는 예가 흔하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임직원과 함께 납치된 필리핀 근로자 8명의 경우, 당초 요구액의 10배에 해당하는 1000만달러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P는 남부 산유지 중심 도시 포트하코트 경찰발표를 인용, 벨로루시 여인 1명이 전날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됐다고 6일 전했다. 외국인 납치사건, 특히 산유지 니제르 델타 지역에서 무장괴한들에 의한 납치 사건은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 올 들어 납치된 외국인들만 95명. 한달 평균 16명씩 납치된 셈이다. 선거가 끝난 5월 들어 납치 규모가 더 늘었다. 4월에 실시된 대통령, 국회의원 및 주지사 선거가 끝난 시점과 맞물려 납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이 오는 29일 물러나고 당선자가 취임해 자리를 잡을 과도기 동안 납치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관측했다. 지난해 말부터 납치활동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이유도 대선을 앞둔 권력공백과 선거운동을 둘러싼 후보 진영들간 폭력충돌 등 어수선한 국내 분위기가 한몫했다. 나이지리아는 4월 일련의 선거를 치르면서 선거 폭력으로 2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불안한 내정, 일상화된 폭력 납치 사건이 횡행하게 된 것도 폭력 사태가 일상화된 나이지리아의 불안한 내정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1960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 군부 쿠데타와 부정선거, 부패 확산의 악순환을 겪어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야당은 “부정선거 결과에 승복 못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불안한 정정에 이어 큰 빈부 격차, 석유수입 분배를 둘러싼 골 깊은 갈등도 폭력 확산을 부추긴다. 석유산지인 니제르 델타 지역이 황금알을 낳는 부의 원천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지역주민 대부분은 하루 2∼4달러에도 못 미치는 극빈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석유 자원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독점하는 정치세력과 외국기업에 대한 반감이 높다. 반정부 무장단체인 ‘니제르델타해방운동’(MEND) 등은 산유지역인 델타지역의 분리, 석유수익금 지분 확대, 자치권 강화 등을 주장한다.●느슨한 통합, 불안한 통일 아프리카 최대인구대국 나이지리아는 북부 이슬람권과 남부 기독교권으로 나눠져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긴장 속에 MEND처럼 반정부활동의 자금조달을 위해 외국인 납치를 일삼는 조직들도 적잖다. 차기대통령에 당선된 여당인 인민민주당 우마르 야라두아 카치나주 주지사가 불안정한 내정을 얼마나 안정시킬지가 외국인의 불안해소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건강 이상설 속에 야라두아 당선자가 오바산조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Local] 외국인 제주토지매입 봇물

    고도의 자치권을 가진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제주 국제자유도시 건설계획이 구체화되면서 외국인들의 제주지역 토지취득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제주도는 27일 2월말 현재 936건에 885만 4000㎡의 토지를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는 국토 최남단 섬인 마라도(29만 8000㎡) 면적의 30배에 이르는 규모다. 특히 최근 5년간 외국인들이 취득한 토지면적은 337만 2000㎡로 전체 외국인 소유 토지면적의 38.1%를 차지해 제주 국제자유도시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적별로는 미국이 398만㎡(635건)로 전체 면적의 45%를 차지했고, 일본 356만 1000㎡(111건), 기타 아시아권 55만 4000㎡(81건),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이 47만 6000㎡(51건) 순으로 집계됐다. 토지 취득 용도는 골프장과 호텔 건설 등 관광레저용이 403만 8000㎡(45.6%), 주택용지 21만 9000㎡(2.5%), 상업용지 6만 1000㎡(0.7%) 등이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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