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자취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 문인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 파악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736
  • 광화문광장 7년 노란 물결로 채운 ‘세월호 기억공간’ 해체

    광화문광장 7년 노란 물결로 채운 ‘세월호 기억공간’ 해체

    오랜 시간 참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되새기게 했던 ‘세월호 기억·안전 전시공간’(이하 세월호 기억공간)이 5일 해체 작업을 마치고 광화문광장을 떠났다. 철거 논의 뒤 골조만 남아있던 세월호 기억공간은 이날 오후 4시쯤 해체 작업을 마무리하고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은 “지난달 29일부터 세월호 기억공간 해체 작업을 시작해 오늘 작업을 마쳤다”며 “철거한 세월호 기억공간은 안산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해체 작업은 세월호 기억공간을 직접 시공했던 업체가 맡았다. 해체 뒤 구조물을 활용하는 방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전 문제를 두고 서울시와 갈등을 빚어오던 중 지난달 27일 이전 계획이 급히 세워지면서 해체식도 따로 진행하지 않았다.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기억공간은 건축사·시공사·시민들의 정성을 모아 함께 만든 건물이고 작품이어서 무단으로 부수고 폐기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구조물을 없애는 ‘철거’가 아닌 ‘해체’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위해 지난달 5일 유족 측에 세월호 기억공간에 대한 철거를 진행하도록 통보했다. 유족들은 시한인 지난달 26일까지 철거에 반대하며 대치하다가 서울시의회에 마련된 임시공간으로 이전하는 중재안에 합의했다. 유족 측은 지난달 27일 기억공간 내 전시물과 기록물을 직접 정리해 서울시의회 1층에 마련된 임시 공간으로 옮겼다. 이로써 세월호 기억공간은 세월호 참사 이후 모습을 바꿔가며 광화문 광장 한켠을 지켜오다 만 7년 만에 광장을 떠났다.
  • 조선시대 객사 ‘벽제관‘ 원형 흔적 발견

    조선시대 객사 ‘벽제관‘ 원형 흔적 발견

    국가 사적인 경기 고양시 ‘벽제관지(碧蹄館址)’ 정밀발굴 현장에서 벽제관의 원형을 가늠할 수 있는 담장과 부속 건물 등의 흔적을 발견했다. 고양 벽제관지는 조선시대 대표적 객사인 벽제관이 위치했던 장소이며, 벽제관은 중국과 조선을 잇는 의주길에 위치한 객사(여관)다. 5일 고양시에 따르면 덕양구 고양동 55의 1 일대에 위치한 벽제관은 1625년 건축됐으나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그 원형이 훼손돼 관광지로 전락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유일하게 남아 있던 정문인 삼문(三門)마저 불에 타 현재는 빈터만 남아있다. 고양시는 지난 4월부터 벽제관지에서 정밀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사는 고양 벽제관의 문화재구역(4150㎡) 가운데 1998년 발굴조사를 통해 이미 조사된 벽제관의 주 건물지(정청 및 삼문)를 제외한 미조사 지역 2426㎡를 중심으로, 벽제관의 담장 유구(遺構·건물의 자취) 확인 등 향후 원형 정비·복원을 위한 고고학적 기초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추진돼 왔다.조사 결과 그동안 파악되지 않았던 다양한 유구의 흔적이 확인됐다. 특히 벽제관을 기준으로 북서쪽에서 1∼2단의 기단이 잔존하는 폭 1m, 길이 11m 규모의 담장 유구가 발견됐다. 또 동쪽에서 원형과 방형의 건물 기둥 자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건물 흔적이 드러났다. 고양시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원형이 훼손됐으나, 이번 조사를 통해 벽제관의 담장 및 부속 건물의 존재가 새롭게 발견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재준 고양시장은 “발굴조사에서 새롭게 확인된 벽제관의 담장과 부속 건물 유구 등은 벽제관의 잃어버린 원형을 회복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며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벽제관의 원형 복원을 비롯해 고양동의 잃어버린 역사성도 동시에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래디컬 페미니즘을 묻는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 포럼 마련

    “래디컬 페미니즘을 묻는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 포럼 마련

    오는 26일부터 열리는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래디컬 페미니즘의 역사를 좇는 포럼을 마련한다. 영화제는 중요한 페미니즘 의제를 제시하는 섹션 ‘쟁점들’의 올해 주제로 ‘페미니즘 역사와 기억: 래디컬을 다시 질문한다’를 선정했다. 레디컬 페미니즘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관한 8편의 영화 상영과 포럼을 진행한다. ‘쟁점들’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미국, 독일, 일본, 대만, 한국의 근현대 페미니즘 운동에서 가장 논쟁적인 시기였던 제2물결 페미니즘과 근대 초기 급진 운동 안에서의 여성 운동의 기억과 역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8편이다. ‘어떤 미국 페미니스트들’, ‘1972년 미대통령 후보, 흑인여성 치솜’, ‘여성들이 갱 조직을 만든다-로테 초라의 흔적을 찾아서’, ‘30년의 자매애-1970년대 일본 우먼리브 운동의 여성들’, ‘되돌아본 길-여성 정치참여의 발자취’는 각각 1970년대 미국, 독일, 일본, 대만의 여성운동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해 그시절 여성운동의 쟁점들과 유산을 돌아보게 한다. ‘소녀들의 혁명-우리들은 급진군주다’와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은 각각 동시대 미국과 한국 페미니즘 운동을 보여준다. ‘여자들의 증언-노동운동 속에서 선구적인 여성들’은 문예영화의 틀에서 급진적 여성영화를 만들어 온 하네다 스미코 감독의 영화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하는 와중에도 그 안에서 성별 분업과 차별을 강요당했던 여성 활동가들이 수십 년 후 카메라 앞에 털어놓은 이야기들이 담겼다. 30일 오후 1시부터 서울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포럼은 페미니즘의 역사성 속에서 동시대 페미니즘에 의해 제기된 질문들을 다룬다. 1부에는 김보명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루인 트랜스/젠더/연구소 연구원, 전의령 전북대 인류학과 교수가 발표를 맡고,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과 오혜진 문학평론가가 토론한다. 2부는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엄혜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김주희 덕성여대 차미리사 교양대학 교수가 발표하고, 불꽃페미액션의 이가현과 황미요조 영화제 프로그래머가가 토론을 맡았다.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좌장 권김 소장의 사회로 6명의 발표자들이 토론한다. 포럼은 영화제 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권김 소장이 기획하고 서강대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가 공동주최했다. 영화제 측은 “래디컬과 관련된 논쟁은 여성의 억압과 종속의 원인을 단일 쟁점화시키고, 여성 범주를 누가 어떻게 확정할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포럼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페미니즘 역사에서 누락된 기억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고 논의의 맥락을 구성하기 위해 역사와 기억의 문제로 이동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영화제는 오는 26일부터 새달 1일까지 총 일주일간 서울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과 문화비축기지에서 개최된다.
  • ‘한국판 산티아고‘ 용인 청년김대건길 걸어보세요

    ‘한국판 산티아고‘ 용인 청년김대건길 걸어보세요

    경기 용인시는 여행자들이 더욱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청년 김대건길’ 정비를 완료했다고 5일 밝혔다. 청년 김대건길은 용인 처인구 원삼면 은이성지에서 안성시 미리내성지로 이어지는 순례길로, 한국 최초의 신부인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사목활동로이다. 천주교 신자들이 주로 이용하던 이 길은 지난해 6월 용인시가 은이성지에서 안성 미리내 성지에 이르는 총연장 10.3km의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한국판 산티아고’로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시는 올해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지난 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김대건길에 대한 정비사업과 관광콘텐츠 개발을 완료했다. 이용자들이 김대건길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인도와 주요 도로변에 이정표와 안내판,표지석을 설치하고 처인구 이동읍 묵리 일부 구간에는 단절된 인도를 연결했다. 여행자들이 중간에 쉬어갈 수 있도록 등산로 중간에 벤치와 전망데크 등 편의시설을 설치했으며,이동읍 묵리 장촌1교차로 진입로 입구에는 이달 중으로 공중화장실도 설치된다. 김대건길 시작점인 은이성지에는 여행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포토존을 만들었고,김대건길 완주자 선착순 200명에게 기념품을 증정하는 특별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 지난달 1일부터는 용인농촌테마파크·법륜사·와우정사·석포숲공원·용인대장금테마파크 등 용인의 명소와 연계해 여행할 수 있는 ‘명소를 품은 힐링의 길’ 스탬프 투어도 시작했다. 백군기 시장은 “새 단장을 마친 청년 김대건길에서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느끼고 자연 속에서 지친 일상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 히말라야에 잠든 김홍빈 분향소에 애도 물결

    히말라야에 잠든 김홍빈 분향소에 애도 물결

    “당신의 도전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장애인 최초로 세계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김홍빈(57) 대장을 기리는 장례 절차가 4일 시작됐다. 이날 오전 김홍빈 대장 분향소가 마련된 광주 서구 염주체육관 1층 현관에는 지역 산악인과 시민 등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정부도 김 대장에게 체육훈장 ‘청룡장’(1등급) 을 추서했다. 이날 빈소를 찾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고인의 영정을 모신 제단에 청룡장을 안치했다. 황 장관은 “김 대장이 살아오신 치열한 삶과 끝없는 도전정신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대한민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망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유가족을 위로했다. 푸른 신록을 배경으로 환한 미소를 머금은 영정 속 김 대장은 추모객이 기억하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다. 국화가 놓인 제단 주변에는 김 대장이 평소 사용한 등산 장비가 유품을 대신해 안치됐다. 열 손가락이 없는 김 대장을 위해 제작된 얼음벽 등반 장비,혹한을 견디게 해준 방한 장화 등이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고인의 발자취를 보여줬다. 한 추모객은 “김 대장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했다”며 “개인의 목표 달성을 넘어 세상에 뜻깊은 선물을 남긴 그는 영웅이다”고 말했다. 김 대장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절차인 영결식은 오는 8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유가족,원정대원,동료 산악인 등이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배웅할 예정이다. 김 대장의 영정은 무등산 문빈정사 납골당에 유품인 등산 장비와 함께 안치된다. 김 대장은 지난달 18일 오후 4시 58분(현지 시각)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브로드피크(8074m) 정상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도중 해발 7900m 부근에서 조난 사고를 당했다. 김 대장은 조난 상태에서 다음날 19일 오전 러시아 구조팀에 의해 발견된 후 주마(등강기)를 이용해 올라가다가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굴의 산악인으로 불리는 김 대장은 대학 2학년 때 광주·전남 암벽대회에 출전해 2위에 올랐고, 1989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이어 이듬해 낭가파르바트 원정에 참여할 정도의 산악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를 단독 등반하다가 조난돼 열 손가락을 모두 잃고 손목까지 절단하며 좌절의 시간을 겪었다. 산이 전부였던 그는 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고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는 의지를 다잡아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한반도의 모든 산을 올랐다. 재기에 성공한 그는 장애인 최초로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고 히말라야 13좌를 차례로 정복했다. 히말라야 14좌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겨둔 브로드피크(8047m) 등정은 지난달 18일 성공했으나 불과 하루 만에 하산 과정에서 실종됐다. 유족은 생전에 김 대장이 사고가 발생하면 수색 활동으로 인한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부한 뜻을 받들어 수색 중단을 요구했다. 김 대장 장례 절차는 염주체육관 분향소에서 오는 8일까지 닷새 동안 산악인장으로 엄수된다.
  • [길섶에서] 정동길/박홍환 논설위원

    작곡가 이영훈과 가수 이문세가 ‘언덕 밑 정동길에 남아 있는 조그만 교회당’을 노래에 담은 것은 1980년대의 끝무렵, 서울올림픽이 끝난 직후였다. 세월 따라 많은 것이 흔적도 없이 변했지만 덕수궁 돌담길을 다정하게 걸어가는 연인들과 언덕 밑 정동길의 눈덮인 작은 교회당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노래한 지 33년, 여전히 연인들은 돌담길을 걷고 교회당도 그 자리 그대로다. 어디 그뿐인가. 옛 대법원 청사, 옛 배재학당 등 고색창연한 문화재급 건물들이 즐비하다. 옛 건물을 스치며 추억을 회상하기도 제격인 데다 한여름 태양빛을 모두 가릴 정도로 가로수가 울창해 점심 후 자주 찾아 거니는 곳이다. 정동길의 또 다른 근대문화재 가운데 옛 신아일보 별관이 있다. 국내 민간 건축물 중 처음으로 철근 콘크리트 공법이 사용된 건물로 1965년 국내 최초의 상업언론사를 표방하며 창간한 옛 신아일보의 정판부, 윤전부 등이 있던 곳이다. 창업주인 고(故) 장기봉 선생은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역대 최연소로 서울신문의 제5대 사장을 지내 더욱 남 같지 않다. 얼마 전까지 동료 기자였던 장 선생의 아들이 최근 선친의 유지, 옛 신아일보의 발자취 등을 담아 이곳을 새롭게 단장했다. 정동길 산책의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 ‘함석헌의 발자취’ 그리다…용산, 근현대 역사 기리다

    ‘함석헌의 발자취’ 그리다…용산, 근현대 역사 기리다

    가로쉼터 정비해 연혁 동판·문장비 세워 “용산서 28년 생활… 민주·인권운동 헌신함 선생 탄생 120주년, 업적 되새김 첫 발”유관순 추모비·이봉창 역사울림관까지탐방 코스로 이어 역사문화 도시로 도약“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인 고 함석헌(1901~1989) 선생은 서울 용산에서 28년간 생활하셨습니다. ‘사상계’를 집필하고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는 등 다양한 일을 진행하셨는데 이런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깝습니다.”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이 지난달 30일 용산구 산천동 30-3번지에 있는 가로쉼터를 찾았다. 이달 완공 예정인 ‘함석헌 기념공원’의 마무리 공사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성 구청장은 “올해가 함석헌 선생이 탄생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이 기념공원을 시작으로 앞으로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함석헌 선생은 1956년 용산구 원효로4가 70번지 자신의 집에서 ‘사상계’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1983년 도봉구 쌍문동으로 거처를 옮긴 뒤 1989년 사망할 때까지 민주·인권 운동에 헌신했다. 서울 용산구는 함석헌 선생의 일대기를 재조명하기 위해 산천동 가로쉼터를 정비해 기념공원으로 만들었다. 공원 전체 면적은 482㎡로 크게 함석헌 기념 공간과 어린이 놀이공간으로 구분했다. 어린이 놀이공간에는 기차 모양 놀이대, 흔들놀이말, 체력 단련 기구 등을 설치한다. 성 구청장은 “기념공원 바로 앞에 함 선생 옛 집터와 국공립어린이집이 있다”면서 “아이들과 학부모, 지역 주민들이 공원을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함 선생의 정신을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통 기와담장으로 두른 기념공원은 함석헌 선생의 사진과 연혁, 활동 내역 등을 담은 동판 등 기념 시설물이 마련돼 있다. 선생이 쓴 ‘너 자신을 혁명하라’ 글귀가 적힌 문장비를 세우고, 기존에 있었던 정자 시설을 활용해 ‘씨알의 소리’ 현판도 설치한다. 평소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 구청장은 용산이 서울의 대표 ‘역사문화도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그간 관련 인프라를 꾸준히 구축해왔다. 2015년 유관순 열사 추모비를 건립한 데 이어 2019년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명소 100곳을 선정해 안내판을 세웠다. 작년에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을 개관했고, 올해는 함석헌 선생의 기념 공간을 마련했다. 올해 하반기 중에는 함석헌 선생의 옛 집터 인근에 명예 도로명도 부여할 계획이다. 성 구청장은 “지역의 역사적 공간을 잇는 탐방 코스를 개발할 예정”이라며 “내년 초 용산역사박물관이 완성되면 함석헌 선생을 비롯해 주요 역사 인물들을 기획전 형태로 주민들에게 소개해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여기는 중국] 인터넷서 사라지는 ‘강간 혐의’ 크리스…SNS·음원·드라마 삭제

    [여기는 중국] 인터넷서 사라지는 ‘강간 혐의’ 크리스…SNS·음원·드라마 삭제

    잘 나가던 아이돌 스타의 몰락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전 멤버 크리스우(중국명 우이판·吳亦凡)에 대한 성추문이 이어지면서 2일 오전 그와 관련한 인터넷 기록이 모두 삭제됐다. 중국계 캐나다인인 크리스는 지난 2014년 한국 기획사 SM을 상대로 한 전속계약 무효소송 후 중국에서 개별적으로 활동을 이어왔다. 중국 유력언론 중국칭롄바오 등 다수의 미디어는 이날 크리스 우의 공식 웨이보 계정을 포함해 모든 주요 SNS에서 그의 계정을 앞다퉈 삭제 조치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달 31일 베이징시 관할 공안국이 강간혐의로 크리스 우를 형사 구류, 여죄 여부를 추가 수사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문을 공개한 이후 벌어진 일이다. 특히 현지 언론들은 캐나다 국적자인 크리스가 형사 구류된 직후 현지 언론들은 그가 중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즈는 외국 국적자의 경우에도 중국 현지에서 벌어진 사건과 관련이 입증될 경우 현지법 적용을 받는다는 점에서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중국 현지법상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가 입증될 경우 최대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특히 크리스는 외국 국적자라는 점에서 유죄 판결이 선고될 경우 형 면제 대상자에 포함되지않아 국외 추방 등의 추가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보도된 다수 매체 내용에 따르면, 가장 먼저 인터넷 상에서 그의 기록이 사라진 사이트는 성추문 사건 이후에도 줄곧 크리스를 지지했던 현지 팬클럽 ‘우이판차오화’다. 이후 크리스 본인이 운영하는 우이판 스튜디오 계정과 바이두 팬클럽인 우이판티에빠, 바이두바이쟈하오, 앙스잉인, 파오파오취엔 등 다수의 관련 계정이 자취를 감췄다. 또, 가장 최근 그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드라마 ‘칭잔싱’(青簪行)은 크리스의 출연 분량을 모두 삭제 후 방영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특히 그가 지금껏 발매, 참여했던 음원들도 점차 삭제 조치되는 양상이다. 이날 QQ뮤직, 쿠고우뮤직, 왕이윈뮤직 등 대형 음원 사이트에 게재됐던 크리스 관련 음원이 모두 사라진 것이 확인됐다. 또, 앞서 크리스를 주연으로 발탁해 촬영했던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 등도 점차 삭제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편, 중국 유력 언론들은 이번 사건이 유명인이 대중을 기만한 사건을 규정, 법 앞의 평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양상이다. 이날 법치일보는 사건 보도와 동시에 논설을 통해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는 반드시 평등하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인민일보 역시 ‘유명인들 역시 법 앞에서 어떠한 면책 특권도 없다’면서 ‘법을 어긴 사람이라면 그가 유명인이라도 반드시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해야 솟아라… 어둠 살라 불타는 삶 쏟아낸 시인의 기도

    해야 솟아라… 어둠 살라 불타는 삶 쏟아낸 시인의 기도

    청룡산 너머의 햇빛· 사갑들의 거센바람안성 고장치기 마을서 문학적 정서 키워 ‘청록파’ 시인으로 초기 자연 세계관 넘어일제강점기, 전쟁 거쳐 4·19 민주화까지정치·이념 떠나 윤리적·실존적 저항 보여 “시 쓰기는 신나는 일”… 1000여편 남겨2018년 세운 문학관에 발자취 고스란히누구보다 ‘현실적인’ 문학세계 집중조명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중략)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박두진 시인의 ‘해’, 1946)박두진 시인은 1916년 3월 10일 경기 안성군 안성읍 봉남리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보개면 동신리로 이사한 뒤 열여덟 살에 서울로 떠날 때까지 안성에서 살았다. 그가 살던 ‘고장치기’ 마을은 청룡산을 바라보며 ‘사갑들’이라 부르는 벌판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고장치기에서 보낸 유년을 박두진 시인은 온 생에 걸쳐 시에 투영한다. 안성에서 살던 10여년은 문학적 상상력과 정서를 길러 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룡산을 넘는 강렬한 햇빛과 짙푸른 하늘, 사갑들의 거센 바람으로 기억된 안성의 자연은 훗날 박두진 시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고향 안성의 햇덩어리와 별밭’이라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그리운 것이 고향이겠지만, 나는 좀 유별났다. 아무 때나 무뚝무뚝 생각나고, 어릴 때의 고향 모습을 지금도 나는 꿈속에서 자주 본다.(중략) 가장 고향다운 고향은 안성의 한 촌락인 ‘고장치기’라는 곳이다.” 그러면서 “가장 여리고 순수하던 인생 중의 알고갱이 시절을 여기서 살았으니 고장치기야말로 나의 고향 중의 고향인 셈”이라고 했다.‘시인과 농부’라는 글에서는 또 이렇게 회상하기도 한다. “내가 자란 모향(母鄕)은 먼지와 매연과 기름때에 찌들은 도회 구석이 아니다. 하늘이 많고, 바람이 많고, 별이 많고, 나무가 많고, 물이 많고, 새들이 많고, 꽃이 많고, 풀벌레가 많은, 저 넓고 푸른 시골이었던 것이다. 숲이요, 벌판이요, 산골짜기요, 풀밭이었던 것이다.” 가히 청록파 시인다운 고향의 자연 예찬이다. 박두진은 시인 정지용의 추천으로 시 ‘향현’과 ‘묘지송’이 잡지 ‘문장’(1939년 6월호)에 실리면서 시인이 됐다. 그해 9월호 같은 잡지에 ‘낙엽송’이, 1940년 1월호에 ‘의’, ‘들국화’가 추천되며 정식으로 등단 절차를 마치게 됐다. 그와 함께 ‘청록파’로 불리는 박목월과 조지훈 역시 정지용에 의해 ‘문장’에 시가 추천되어 시단에 등장했다. 박두진은 훗날 1989년 제1회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정지용과의 인연을 되새긴다. ‘시인의 고향’에서 박두진은 자신의 시 세계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일찍이 나는 내 인생의 시작 단계로서 초기에는 ‘자연’, 다음에 ‘인간’, 다음에 ‘사회’와 ‘인류’ 그다음으로 혹 노년기란 것이 내게 허락된다면 그때에 가서 ‘신’에 대한 것을 쓰리라고 작정한 바 있다.” 앞서 밝혔듯이 박두진의 시집 ‘청록집’, ‘해’에 담긴 초기 시들은 자연을 통한 긍정의 세계와 민족적 소망, 종교적 이상주의를 표현했다는 점이 특징적으로 손꼽힌다. 유년 시절에 보았던 청룡산의 강렬한 햇빛, 짙푸른 하늘, 사갑들의 거센 바람으로 기억된 고장치기가 그의 시 전반을 아우르는 배경이 된 것이다. 그가 추구한 자연은 그의 정신과 이상을 구현하는 관념의 매개이자 그가 그리는 신앙적 이데아의 세계까지 포괄한다.박두진을 정의하는 ‘청록파’는 1946년 6월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한 3인 공동시집 ‘청록집’에서 유래된 말이다.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을 통칭해 부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청록파 시인들은 미학적 특징이나 시를 통한 현실 대응의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청록집’을 통해 자연을 노래한 서정시를 발표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박두진 초기 시의 자연에 대한 상징은 시인의 시적 저항이자 현실 참여의 한 방편이었으며, 자연의 객관화와 순수한 감각의 표현을 통해 시적 가치와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를 보여 주는 통로이기도 했다. 시집 ‘해’에는 어둠, 달밤 등으로 표현된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민족적 현실을 빛의 속성을 지닌 해를 통해 극복해 보려는 의지를 보인다. 또 광복 직후 새 시대에 대한 희망과 창조적 의지를 형상화한 ‘해의 품으로’, ‘도봉’, ‘향현’, ‘묘지송’, ‘바다’ 등 자연을 배경으로 쓴 시편들이 주를 이루지만 그 이면에는 철저한 현실 인식이 자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박두진은 4·19혁명 이후 대학에서 해직됐고, 한일 국교정상화 조치 때는 이에 반대한 서명 문인 1호가 됐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쳐 4·19까지 겪은 시인의 저항의식의 발로인 셈이다. 그의 발자취는 자연에서 현실로의 이행이 아닌, 지극한 현실 속에서 나타난 자연적 세계관이다.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것들을 떠나 윤리적이고 실존적인 것으로서의 자연과 시, 그리고 그의 자리에서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던 시인의 삶이 바로 그것을 말해 준다. 박두진의 후기에는 근원적인 존재론적 물음과 신의 의지와 자연의 섭리를 노래하며 수석 모으기를 또 다른 취미로 삼아 수석을 통한 구체적인 시적 이미지를 그려 내기도 했다. 박두진은 보통 새벽 4시에 기상해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에는 명상을 하며 글쓰기의 주제를 떠올렸으며, 학교 강의가 없는 날에는 독서와 원고 쓰기에 몰두했다. 시상이 떠오르지 않거나 마음이 답답해지면 수석 채집을 다녔다. 또 단소 불기를 취미로 삼았는데, 이는 유년 시절에 안성 장터에서 맹인이 퉁소를 연주하는 것을 아주 인상 깊게 본 뒤부터 생긴 관악기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었다. 또 학교 강의를 마치고 고서점이나 골동품 가게를 찾아 고가구나 도자기들을 수집하며 옛 선비들의 이상과 예술정신을 본받고자 했다. 구해 온 도자기에 직접 먹글씨를 쓰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을 즐겼다. 박두진은 시를 쓰는 일을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를 쓰는 일은 어렵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즐겁고 신이 나며 쓰고 싶은 주제가 너무 많기에 이런 두려움이야말로 바로 시인, 작가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하는 뜻이다. 등단 이후 60여년간 1000편의 시를 쓰면서 17권의 시집과 여러 수필집을 출간한 작가다운 포부였다. 그는 마감일을 엄수하기로도 유명했는데, 원고 마감 하루 전날을 마감일로 표시해두어 원고가 늦지 않도록 했다. 시와 서예, 도자기와 수석, 단소 등으로 시와 삶을 꾸리던 시인이 세상을 떠난 해인 1998년 10월 안성의 보개도서관 앞뜰에 시 ‘고향’ 전문이 새겨진 시비가 세워졌고, 그 후로 20년 후에 그의 ‘고장치기’의 지척에 ‘박두진문학관’이 건립됐다. 2001년부터는 박두진 문학제가 열렸고, 2007년에는 박두진 문학상이 제정됐다. 박두진문학관은 2012년부터 박두진 유품 및 유족 보관 자료 조사를 거쳐 2016년 4월에 기본 설계를 착수했다. 2년간 건물을 지었고, 전시 준비 과정을 거친 뒤에 2018년 11월에 정식으로 개관했다. 박두진의 묘가 있는 기좌리와 비봉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에 문학관이 세워진 것이다. 문학관에서는 옥상을 상시 개방해 박두진 시의 근원이 된 안성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게끔 했다.문학관 내부의 상설 전시관은 1부 ‘박두진의 시를 읽다’, 2부 ‘박두진의 일상을 보다’, 3부 ‘박두진의 예술세계와 만나다’로 나뉘어져 있다. 박두진의 문학 세계와 안성의 자연이 합쳐진 ‘자연친화적인 문화공간’인 셈이다.한 시인이 대표작을 갖는다는 것은 시인으로서는 매우 영광이고, 시간을 이겨 내는 힘을 얻는 일이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대표작만 남아 시인의 다른 시와 삶은 지워지기 일쑤다. 우리는 혹시 박두진을 ‘해’로만, ‘현실을 벗어나 자연을 노래한’ 시인으로만 여기지는 않았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이것이 바로 교과서에 실린 시에 대한 또 다른 결과가 아닐까. 그리하여 한 번쯤은 안성에 들러 시인의 삶과 예술 세계를, 험난한 현실 속에서도 ‘해’를 노래할 수밖에 없던 지극한 사정을 이해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자연을 노래하려면 ‘현실’에서 벗어나거나 가장 ‘현실’에 발을 디뎌야 자연이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연에 지극한 현실을 투영했던 시인, 박두진의 자리 ‘안성’이다. 소설가 이은선
  • ‘번쩍’ 별안간 터키 하늘 가른 초록색 거대 섬광의 정체 (영상)

    ‘번쩍’ 별안간 터키 하늘 가른 초록색 거대 섬광의 정체 (영상)

    터키 하늘에 별안간 초록색 거대 섬광이 번쩍였다. RT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새벽 초록색 불덩어리가 터키 서부 이즈미르 하늘을 가로질렀다. SNS에는 빛이 번쩍하면서 폭발음과 같은 굉음이 뒤따랐다는 목격담과 기록 영상이 줄을 잇고 있다. 관련 영상에는 31일 새벽 1시 45분쯤 커다란 불덩어리가 컴컴한 밤하늘을 밝히며 떨어지는 모습이 담겨 있다. 불덩어리의 초록색 섬광이 구름 사이로 넓게 퍼지면서 초자연적 분위기도 연출됐다. 불덩어리는 약 4초 만에 저 산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불덩어리가 실제 지면에 닿았는지 아니면 추락 직전 완전히 분해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이후 현지에서는 ‘로켓 잔해 아니냐’, ‘우주를 떠도는 위성 쓰레기가 떨어진 거다’라는 온갖 추측이 나왔다. 이에 대해 그리스에게안대학 천문대 부소장인 하산 알리 달 박사는 유성우(별똥별)라는 설명을 내놨다. 달 박사는 “지난주부터 지구로 떨어지기 시작한 유성우의 일부”라면서 “유성우는 8월 말까지 계속 비처럼 쏟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박사는 “7월 24일부터 관측되기 시작한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는 8월 24일까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유성우는 혜성이나 소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티끌 등이 지구 중력에 이끌려 대기 안으로 들어오면서 마찰해 불타는 현상을 일컫는다.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는 1월 사분의자리 유성우, 12월 쌍둥이자리 유성우와 함께 3대 유성우로 꼽힌다. 모(母)혜성인 스위프트-터틀(Swift-Tuttle)의 잔해가 지구로 낙하, 대기권과 충돌해 불타면서 관측되는 현상으로 매년 8월 볼 수 있다. 올해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의 극대기는 8월 13일 새벽이다. 극대기는 맨눈으로 가장 많은 유성우를 볼 수 있는 시간대다. 아주 어둡고 맑은 밤 유성우의 중심점인 복사점이 천정에 있을 경우, 1시간 동안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유성우 수는 대략 100여 개다. 그러나 극대기가 아니어도 13일 전후로 약 일주일간은 새벽 무렵에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한편 터키 이즈미르에 떨어진 유성우가 초록색을 띠는 이유는 유성우에 다량으로 함유된 니켈 때문이다. 지구 대기권에서 마찰 에너지를 받아 이온화된 니켈이 빛나는 초록색을 내는 것이다. 참고로 칼슘을 포함한 유성우는 보라색, 마그네슘으로 이루어진 유성우는 청록색을 낸다.
  • RM 인증샷 효과? 대구 이건희 특별전 한 달 만에 2만명 다녀갔다

    RM 인증샷 효과? 대구 이건희 특별전 한 달 만에 2만명 다녀갔다

    대구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웰컴 홈: 향연’ 개막 한 달 만에 2만여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웰컴 홈: 향연’은 이건희 컬렉션 중 대구에 기증된 21점을 소개하는 특별전으로 지난 6월 29일 공개했다. 첫날부터 매진된 특별전은 여름방학 및 휴가철에도 연일 매진돼 전시 종료일인 오는 29일까지 약 4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주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RM 인증샷’이 화제를 모아 대구미술관 특별전에 대한 온·오프라인 열기가 한층 뜨거워졌다. 대구미술관 인스타그램의 관련 포스팅에는 ‘가야할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네’, ‘헐...이게 머선일인강?’, ‘서울아니고여?? 대박’, ‘방탄이 우리랑 같은 작품을 보고 간건가!’, ‘나의 전시욕구를 일의켜주는 주니님 대구까지 어떻게 가지’, ‘If I happen to visit Korea, I will directly visit here.(한국을 방문한다면, 여길 직접 가봐야지)‘와 같이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외국어 댓글이 하룻밤 사이 250여 개 올라왔다. 대구미술관 SNS에서 RM 방문 소식을 확인한 관람객들은 버킷햇 등 RM과 비슷한 의상과 포즈로 동일한 장소에서 인증샷을 남기기도 하고, 사진 속 작품인 유영국 ‘산’(1970’s) 시리즈를 더욱 관심 있게 관람하기도 했다. 전시 관람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된 ‘RM 오마주’는 전시 종료까지 진풍경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구시는 지역을 방문한 외지 관객들에게 대구시 출신 한류스타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한류 관광코스’, 우리 지역에서 촬영한 영화촬영지를 돌아보는 ‘시네마천국 대구 코스’ 등 대구관광 정보를 제공해 도심관광으로 이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RM 방문 소식이 올라간 다음 날부터 버킷햇을 쓰고 사진 찍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그 자체로도 남녀노소 관심을 가졌지만, RM 방문 이후 전시를 흥미롭게 감상하고, 즐기는 분들이 더욱 많아졌다”고 말했다.
  • ‘복날’에 입양된 보호소 개들의 행방은 [김유민의 노견일기]

    ‘복날’에 입양된 보호소 개들의 행방은 [김유민의 노견일기]

    충남 천안의 한 동물보호소에 있던 유기견들이 복날을 앞두고 사라졌다. 입양률이 저조한 대형견 여러 마리가 복날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진 점을 수상하게 여긴 보호소 봉사자들의 제보를 토대로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보호소에서 대형견 16마리를 입양한 동물단체는 초복을 닷새 앞둔 6일 10마리, 중복 하루 전인 20일에 6마리 등 모두 16마리를 입양해 갔다. 그러나 천안시가 지난 27일 현장점검할 당시 입양한 16마리 중 생사가 확인된 것은 4마리 뿐이었다. 그마저도 개를 키우기에 매우 열악한 장소였고, 시는 남은 4마리의 입양을 취소하고 보호소로 다시 데려왔다. 그리고 해당 단체를 시 지정 동물보호단체에서 제외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문제가 된 단체는 나머지 12마리에 대해 ‘잃어버렸다’거나 ‘도망갔다’고 주장하는 상황. 동물친화도시 연구모임 대표 복아영 시의원은 “동물의 생명과 권리를 위해 힘써야 할 유기동물보호소가 대형견을 다시 유기시킨 상황이 일어났다. 정확한 경위에 대해 철저히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대형견에 품종견까지 발견되는 개농장 한편 아직도 수많은 식용견 농장이 있다. 개식용 산업은 국내에서 합법도, 불법도 아닌 회색지대에 속해있다. 잔인한 방법으로 도축하거나 공공장소 혹은 같은 종의 동물 앞에서 도축하는 것은 동물보호법에 위반됨에도 대부분의 개들은 다른 개들이 보는 앞에서 도살되고, 도축 방법 역시 잔인하다. 아시아에서는 주로 한국과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에서 매년 약 3000만 마리의 개들이 잔인하게 도살되고, 식용으로 쓰이고 있다. 반면 홍콩, 필리핀, 대만, 태국, 싱가포르 등에서는 개고기를 금지하고 있다. 매년 약250만 마리 이상의 개들이 한국 전역의 수천 개의 개고기 농장에서 사육되고, 아시아 전역에서 매년 약 3000만 마리의 개들이 식용 목적으로 도축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동물 학대가 발생한다. 구조된 개들 중에는 흔히 ‘식용견’으로 불리는 도사견과 누렁이 등 외에, 한국에서 반려견으로 널리 알려진 푸들, 코카스파니엘, 비글, 골든리트리버, 말라뮤트 등 종이 있는 개들도 다수 발견된다.한국에서는 해마다 1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여러분에게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동물의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 조선시대는 원래 남녀 평등했다고?

    조선시대는 원래 남녀 평등했다고?

    남녘의 한 섬에서 엄청난 규모의 구들장논을 본 적이 있다. 규모도 대단했지만 더 놀라웠던 건 비탈에 층층이 돌을 쌓고 흙을 얹어 논을 만든 이들이 여자들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남자들은 뭘 했던 걸까. 이 이야기를 전해 준 할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똥지게를 지고도 한시(漢詩)만 읊조리는 남정네가 일은 무슨 일?”일반적으로 조선의 남정네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대략 이와 비슷할 것이다. 배 곯는 식솔들은 외면한 채 책만 읽거나, 곧 죽어도 선비연할 줄만 아는 남자들 말이다. 그렇다면 유학의 나라 조선에서 이런 정서는 광범위하고 일관된 것이었을까.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은 이런 의문에 단호히 ‘노’라고 답하고 있다. 책은 조선의 사회상을 거울 삼아 현재의 성 역할론을 되짚어 본 사회비평서다. 당시 일기와 서간, 실록 등을 광범위하게 분석했다. 뜻밖에도 조선은 알려진 것과 다른 점이 많은 왕조인 듯하다. 최소한 16세기까지는 그랬다. 남녀가 평등했고 여권을 존중했다. 정원을 가꾸거나 살림을 돌보고 외조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요리하는 사대부들의 이야기는 이미 책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백종원 같은 ‘셀럽’들이 취미 삼아 했던 일로 여겼지, 살림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예가 있다. “전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잘 받아서 아침저녁 반찬으로 먹고 있니? 왜 한 번도 좋은지 나쁜지 말이 없니? 무심하다, 무심해.” 표현만으로는 어머니가 자취하는 자식에게 보낸 편지인 듯하지만, 실은 연암 박지원이 1796년에 지방 관리로 일하며 한양의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그의 편지 전문을 보면 당시 요리하는 남자들이 보편적인 사회상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그럼 남녀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뤄진 건 언제부터일까. 저자는 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두 차례 큰 전란 이후 여자에 대한 불평등과 규제가 강화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여기에 성리학이 정착되며 남녀의 공존의식을 파괴했고, 남녀의 역할과 지위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내외법(內外法)도 강화됐다. 성별 역할 구분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건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부터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강제로 근대화를 겪으며 집보다 사회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다. 공사가 구분되며 집안은 철저히 사적 영역으로 치부됐다. 동시에 사회는 남자의 영역, 집안은 여자의 영역으로 구분됐다. 조선시대만 해도 집안 자체가 공이면서 사였는데, 이 시기부터는 남녀의 역할 구분만큼이나 집안과 사회의 구분도 뚜렷해졌다. 일제의 식민지 여자 교육의 목표 중 하나는 ‘현모양처’ 양성이었다. 현모양처는 우리 고유의 유교 관념이 아닌 일제에 의해 이식된 왜곡된 여성상이다. 조선시대에 ‘양처’는 ‘양민 신분의 처’라는 신분적 개념이었는데 일제는 이를 가사 노동 전담자로 만들었다. ‘현모’ 역시 어진 어머니 정도의 뜻이었는데 일제는 이를 여자의 역할로 바꿨다. 이후 현모양처는 한국 여성의 삶을 규정짓는 주요 이데올로기가 됐다. 저자는 “여전히 많은 남자들이 근대에 형성된 왜곡된 가부장적 관념에 묶여 있다”며 “이제 남녀 모두가 자유롭고 공평하게 사회 활동과 집안 살림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도쿄올림픽 ‘얼굴’ 오사카 나오미 탈락에 일본 열도 ‘충격’

    도쿄올림픽 ‘얼굴’ 오사카 나오미 탈락에 일본 열도 ‘충격’

    도쿄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이 가장 기대했던 여자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가 27일 여자 단식 16강에서 탈락해 일본 열도가 충격에 빠졌다. 세계랭킹 2위인 오사카는 이날 일본 도쿄 아리아케 테니스 파크에서 열린 테니스 여자 단식 3회전에서 체코의 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세계랭킹 42위)에 0-2로 지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앞서 오사카 외에도 세계랭킹 1위 애슐리 바티(호주)가 1회전에서 패하는 등 이번 도쿄올림픽 테니스 여자 단식에서 상위권 선수들이 줄줄이 탈락했다. 일본 언론은 오사카의 탈락을 일제히 속보로 띄우며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사카는 지난 23일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 최종 점화주자로 나서는 등 금메달을 딸 것으로 기대를 모은 선수였기 때문이다. 메이저 대회에서 4승을 기록하며 가장 영향력 있는 선수로 꼽히는 오사카는 지난 5월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밝히며 두 달간 투어 생활을 중단한 바 있다. 그는 도쿄올림픽을 복귀 무대로 삼으며 출전 의사를 밝혔고 일장기처럼 빨갛게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등 금메달을 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지난 1·2회전은 순항했지만 결국 3회전에서 본드로우쇼바에게 발목을 잡혔다. NHK는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던 선수 중 한 명이 자취를 감췄다”고 아쉬워했다.
  • 상반기 영화관 10위권 내 한국영화 2편뿐…점유율도 19% 불과

    상반기 영화관 10위권 내 한국영화 2편뿐…점유율도 19% 불과

    코로나19 장기화 탓에 올해 상반기 극장을 찾은 관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가까이 급감했다. 개봉 영화 가운데 10위권 안에 든 한국 영화는 ‘발신제한’(9위)과 ‘미션 파서블’(10위) 단 2편에 불과했다. 23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6월 전체 관객 수는 2002만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8.2%(1239만명) 감소했다. 이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가동을 시작한 2004년 이후 상반기 전체 관객 수로 역대 최저치였다. 상반기 전체 매출액 역시 전년 대비 32% 줄어든 1863억원으로 2005년 이후 가장 적었다.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기대작들이 개봉을 꺼린 영향을 받아 바닥을 쳤다. 상반기 한국영화 관객 수는 382만명, 매출액은 345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보다 80.9%, 79.8% 줄었다. 점유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6%포인트 감소한 19.1%였는데, 이는 2004년 이후 한국영화 상반기 관객 점유율로는 가장 낮은 수치였다. 반대로 외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80.9%로 2004년 이후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다.‘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과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등 외화 대작들의 흥행으로 특수상영 매출액은 증가했다. 특수상영 매출액이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1%였고, 특수상영 관객 수가 전체 관객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였다. 상반기 전체 흥행 1위는 228만 관객을 동원한 액션 블록버스터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차지했다. 빈 디젤 주연의 이 영화는 부처님 오신 날이자 개봉 첫날인 5월 19일 40만 관객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고 오프닝 기록을 경신한 바 있다. 일본 역대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215만명으로 뒤를 이었다. 국산 대작이 자취를 감추며 상반기 흥행작 상위 10위권에 오른 한국영화는 2편에 그쳤다. 47만 관객을 동원한 조우진 배우 주연의 ‘발신제한’이 43억원의 매출로 상반기 전체 흥행 순위 9위를 기록한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김영광·이선빈 주연의 ‘미션 파서블’은 45만 관객(매출 41억원)으로 10위를 기록했다. 전체 영화 배급사 관객 점유율 순위 1위는 ‘소울’을 시작으로 ‘크루엘라’,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등 6편을 쏟아낸 디즈니로 관객 수 425만명, 관객 점유율 21.2%를 기록했다. 이 밖에 독립·예술영화 개봉 편수는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상반기 전체 독립·예술영화 개봉 편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편 증가한 193편이었데, 이 중 한국 독립·예술영화 개봉 편수는 전년 동기 대비 21편 증가한 63편이었다. 윤여정 배우에게 한국 최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안긴 미나리는 관객 수 113만명, 매출액 102억원을 기록해 독립·예술영화 1위에 올랐다.
  • [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스포츠의 역사에 담긴 인류의 발자취

    [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스포츠의 역사에 담긴 인류의 발자취

    스포츠의 탄생/볼프강 베링거 지음/강영옥 옮김/까치/528쪽/2만 5000원 코로나19 팬데믹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멈춤’을 강요한다. 확진자가 급증하자 무토 도시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조차 “중도에 취소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도 급기야 멈출 태세다. 스포츠 상업화의 ‘끝판왕’이 된 지 오래지만, 전 세계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점에서 올림픽의 효용은 여전하기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독일 역사학자 볼프강 베링거의 ‘스포츠의 탄생’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올림픽은 물론 다양한 스포츠의 변천사를 보여 준다. 저자는 스포츠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라고 말한다. 가장 단순한 운동인 달리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인류의 정치와 사회, 예술과 종교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근대 들어 올림픽은 네 번 취소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제6회 독일 베를린하계올림픽이 열리지 않았다. 1940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제12회 도쿄하계올림픽도 건너뛰었다. 그해 삿포로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동계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13회 하계올림픽도 개막하지 못했다. 근대 올림픽은 이처럼 전쟁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 기원이 되는 고대 올림피아 제전과 범그리스 제전 등은 모든 도시국가들이 전쟁을 멈추고 신에게 경의를, 더불어 육체의 강인함을 겨루는 아름다운 장이었다. 당연히 반칙이나 승부 조작, 뇌물 등은 삿된 것으로 간주됐다. 그럼에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부에서 이겨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게 벌금이나 채찍질, 심지어 사형에 처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중세에 이르러는 기사의 출현과 함께 마상시합이 인기를 얻었고, 궁술 등 군사훈련이 스포츠의 한 방편으로 사용되곤 했다. 근대 올림픽은 사실상 제도와 규칙의 제정을 의미한다. 과거라고 제도나 규칙이 없었을까만, 근대에 이르러 부상 방지와 공정한 경기 등을 목적으로 엄격한 경기룰이 하나둘 제정됐다. 현대에 이르러 거의 모든 스포츠는 제도화, 전문화, 상업화의 길을 가고 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겨루던 진짜 스포츠 정신은 사라지고, 무엇이든 돈과 연관 지을 수밖에 없는 현대에서 어떻게든 이 정신의 복원이 필요하다. 도쿄올림픽에서는 ‘미망’(迷妄)일 수밖에 없으니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는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 이 와중에… 대기업 노조 “올핸 양보 못 해” 임금인상 드라이브

    이 와중에… 대기업 노조 “올핸 양보 못 해” 임금인상 드라이브

    재계 곳곳에서 ‘임금인상’ 행렬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유행처럼 번졌던 ‘코로나19에 따른 임금동결’은 자취를 감췄다. 각 기업 노조가 “올해는 양보할 수 없다”며 일제히 강경한 태도로 전환한 까닭이다. 수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내년도 최저임금 5.1% 인상으로 실의에 빠졌고 코로나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한쪽에선 ‘임금인상 파티’가 벌어진 것이다.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임금인상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18일 재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 16일 2019년과 지난해 2년치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2년 2개월 만에 마무리했다. 그간 노사 합의안이 두 차례 부결되는 등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2019년도 합의안은 기본급 4만 6000원 인상, 성과금 218%, 격려금 100%+150만원, 30만원 상당 복지포인트 지급, 2020년도 합의안은 기본급 5만 1000원 인상, 성과금 131%, 격려금 430만원, 지역경제 상품권 30만원 지급 등이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5971억원 적자를 냈지만 이번 타결로 조합원 1인당 평균 1800만원의 임금을 더 받게 됐다. 노조는 8월 이후 올해 임단협 협상을 시작하며 한 차례 더 임금인상에 나선다. 파업을 결의한 현대자동차 노조는 임금 인상분을 한층 높인 회사 측 2차 제시안마저 거부했다. 사측은 기본급 5만 9000원 인상, 성과금 125%+350만원, 품질향상격려금 200만원, 주식 5주 등을 제안했다. 1차 제시안보다 기본급은 9000원, 성과금은 25% 포인트, 50만원이 더 올랐다. 임금 상승분은 1인 평균 1400만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노조는 여전히 “납득할 만한 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며 결렬을 선언했다. 노조는 정년 연장(60→65세)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회사가 추가 제시안을 마련하면 교섭을 이어갈 예정이다. 3차 제시안 협상 결과에 따라 총파업 여부가 결정된다. 3년 만에 파업에 나선 금호타이어 노조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노조는 1000만원 상당의 우리사주 출연, 반납한 정기상여금 200% 환원을 요구하고 있다. 10년가량 경영난에 허덕이다 최근 분기마다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 중인 HMM은 임금인상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임금인상률에 대한 접점은 찾지 못한 상태다. 노조는 “육상직은 8년간, 선원직은 6년간 임금을 동결해왔다”며 임금 10% 이상 인상을 요구하는 반면, 채권단측은 2~3% 인상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4차 대유행 속 진행되는 노조의 ‘임금인상 드라이브’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임금을 올려도 생산력은 낮다. 강성 노조에 대한 노동개혁만 이뤄져도 청년 일자리가 수천개는 늘어날 것”이라며 “청년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귀족 강성노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반면 노조 측 관계자는 “임금이 높아질수록 지역 사회에 돈이 풀려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고 반박했다.
  • 코로나 대유행에 자영업자 죽어나는데… 재계는 ‘임금인상’ 파티 중

    코로나 대유행에 자영업자 죽어나는데… 재계는 ‘임금인상’ 파티 중

    재계 곳곳에서 ‘임금인상’ 행렬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유행처럼 번졌던 ‘코로나19에 따른 임금동결’은 자취를 감췄다. 각 기업 노조가 “올해는 양보할 수 없다”며 일제히 강경한 태도로 전환한 까닭이다. 수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내년도 최저임금 5.1% 인상으로 실의에 빠졌고 코로나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한쪽에선 ‘임금인상 파티’가 벌어진 것이다.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임금인상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18일 재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 16일 2019년과 지난해 2년치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2년 2개월 만에 마무리했다. 그간 노사 합의안이 두 차례 부결되는 등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2019년도 합의안은 기본급 4만 6000원 인상, 성과금 218%, 격려금 100%+150만원, 30만원 상당 복지포인트 지급, 2020년도 합의안은 기본급 5만 1000원 인상, 성과금 131%, 격려금 430만원, 지역경제 상품권 30만원 지급 등이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5971억원 적자를 냈지만 이번 타결로 조합원 1인당 평균 1800만원의 임금을 더 받게 됐다. 노조는 8월 이후 올해 임단협 협상을 시작하며 한 차례 더 임금인상에 나선다. 파업을 결의한 현대자동차 노조는 임금 인상분을 한층 높인 회사 측 2차 제시안마저 거부했다. 사측은 기본급 5만 9000원 인상, 성과금 125%+350만원, 품질향상격려금 200만원, 주식 5주 등을 제안했다. 1차 제시안보다 기본급은 9000원, 성과금은 25% 포인트, 50만원이 더 올랐다. 임금 상승분은 1인 평균 1400만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노조는 여전히 “납득할 만한 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며 결렬을 선언했다. 노조는 정년 연장(60→65세)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회사가 추가 제시안을 마련하면 교섭을 이어갈 예정이다. 3차 제시안 협상 결과에 따라 총파업 여부가 결정된다. 3년 만에 파업에 나선 금호타이어 노조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노조는 1000만원 상당의 우리사주 출연, 반납한 정기상여금 200% 환원을 요구하고 있다. 10년가량 경영난에 허덕이다 최근 분기마다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 중인 HMM은 임금인상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임금인상률에 대한 접점은 찾지 못한 상태다. 노조는 “육상직은 8년간, 선원직은 6년간 임금을 동결해왔다”며 임금 10% 이상 인상을 요구하는 반면, 채권단은 2~3% 인상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4차 대유행 속 진행되는 노조의 ‘임금인상 드라이브’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임금을 올려도 생산력은 낮다. 강성 노조에 대한 노동개혁만 이뤄져도 청년 일자리가 수천개는 늘어날 것”이라며 “청년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귀족 강성노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반면 노조 측 관계자는 “임금이 높아질수록 지역 사회에 돈이 풀려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고 반박했다.
  • 제자와 茶맹세 아직도 그윽… 민초의 한 머금은 길따라 뚜벅뚜벅

    제자와 茶맹세 아직도 그윽… 민초의 한 머금은 길따라 뚜벅뚜벅

    올봄 영화 ‘자산어보’가 개봉하면서,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형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극중 ‘강진 선생’으로 불리는 다산(류승룡 분)의 학자적, 철학자적 모습이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당대 세상을 호령하던 고관대작(형조참의) 자리에 있다가, 머나먼 전남 강진 땅에 유배를 와 묵묵히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 정약용의 인품은 주인공 정약전(설경구 분)의 극중 비중에 견주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대선을 앞둔 최근엔 소설 ‘대통령 정약용’이 눈길을 끌고 있다. 타임슬립을 통해 현대로 온 다산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간다는 유쾌한 상상을 담았다. 대통령 다산이 추진한다는 ‘실학21’의 바탕이 된 1표2서(‘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를 저술한 땅, 강진을 다시 돌아보니 그동안 보고 알았던 것보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역사상 한반도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다산은 그야말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그는 유학자이면서 실학을 주도적으로 연구했으며 행정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법학과 법의학을 두루 전공한 법률가였다. 또한 의학과 지리학, 건축학에 통달한 과학자요, 발명가였다. 게다가 언어학자, 아동 교육자, 걸출한 시인에다 차 전문가, 동서양사를 넘나드는 역사 철학 이론가이기도 했다. 18세기 말 조선은 만사‘다’통이었다. 다산을 거치면 안 될 게 없었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다빈치처럼. 아, 공교롭게도 다산과 다빈치, 둘 다 이름 첫 자에 ‘다’자가 들어간다. 마침 다빈치도 유배는 아니지만 1516년 고향을 떠나 프랑스 루아르 강가의 앙부아즈 궁에서 살며 ‘모나리자’ 등 역작을 남겼다. 그런 다산이 강진에 내려왔다. 조용한 강진에 유배를 오는 바람에 그의 눈부신 업적이 꽃을 피웠다고 하는 것도 맞겠다.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저서와 서간, 일화, 대한민국 차문화가 탄생했다. 당시 조선의 유형(流刑)은 명나라의 대명률을 따랐다. 죄의 경중에 맞춰 2000리, 2500리, 3000리 등으로 올려가며 유배를 보내는 거다. 1리가 400m쯤이니 1000리면 한양에서 직선거리로 전남 완도까지도 갈 수 있다. 조선에선 이런 거리가 나올 수 없는 터라 일부러 여러 지역을 거치며 행로를 늘렸다. 세종이 ‘실정에 맞게’ 600, 750, 900리로 조정하기 전까지 1년 가까이 돌고도는 유배길을 떠났다. 유배는 많은 것을 남겼다. 깡시골인 유배지로 한양의 높은 지식과 문화 산업이 수혈됐다. 당쟁이 치열했던 조선 때 이름난 관직자는 대부분 유배를 다녀왔을 만큼 유배는 ‘일상’이었다. 정조는 창덕궁 부용정에 인공 섬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신하들과 시 짓기 내기를 하다가 ‘잠시 쉬는’ 벌칙으로 인공 섬에 유형을 보내기도 했다. 블루마블 게임에서 ‘무인도’ 같은 의미다. 그만큼 유형은 고급 관리를 대상으로 했다는 뜻이다. 시에 능한 다산이 ‘인공 섬’에 유배를 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다산을 친애하던 정조가 승하한 후, 정말 강진 땅으로 기나긴 유형을 떠나게 됐다. 그나마 강진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축에 속했다. 예나 지금이나 유형을 가기도, 여행하기도 딱 적당한 거리다. 프로야구의 옛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는 2군 구장을 강진에 뒀는데 당시 1군 선수가 2군에 내려가면 “유배간다”고 자조했다. 당시 몇몇 선수들은 강진에서 2군 생활을 경험하며 다산의 후예가 됐다.다산이 처음 도착한 곳이 강진읍의 사의재다. 다산의 인품을 알아본 주막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 주모의 호의로 여기서 4년간 생활했다. 다산은 이 주막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생각과 외모, 말, 움직임을 네(四) 가지 덕목으로 삼아 마땅히(宜) 바로잡는 집이란 뜻이다. 다산의 일기에 따르면 1803년 겨울의 일이다. 초가 주막이던 본래 사의재 건물은 사라졌지만 2007년 강진군청은 이를 복원해 한옥체험 숙소, 식당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남도 강진 음식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사의재는 아욱국이 맛있기로 소문났다. 다행히 유배지 주위에 가시나무를 심어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는 ‘위리안치’는 아니었다. ‘강진 선생’ 다산은 고성사 보은산방, 제자 이청의 집 등을 전전하다 47세이던 1808년 봄에 귤동리 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의 외가 쪽 집안인 해남 윤씨 윤단과 윤규로의 선처 덕분이었다.(해남 윤씨 윤선도는 무려 25년을 유배지에서 생을 보낸 ‘유배의 왕’이다.) 다산은 산정 초당을 고쳐 다산초당이라 이름 짓고 그곳에서 윤규로의 네 아들과 조카 둘을 가르쳤다. 다산은 18년 유배 기간 중 다산초당에서 약 11년을 머물며 다양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했다. 저서는 ‘목민심서’, ‘경세유표’를 비롯한 500여권에 달한다. 이를 총정리한 ‘여유당전서’는 철학, 법제, 종교, 악경, 의술, 천문, 측량, 건축 등 모든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을 총망라하고 있다. 애초의 초당은 무너지고 1958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가 현재 초당을 다시 지었다. 다만 원래 초당 건물이 아니라 목조 기와건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쓴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초당 뒤 바위에는 다산이 직접 깎은 글자 ‘丁石’(정석)이 새겨져 있으며 앞뜰에는 차를 달였다는 ‘청석’이 있고 한켠에는 ‘약천’이라는 약수터가 있다. 초당 왼쪽에는 작은 연지가 있다. 초당에 관어재(觀魚齋)란 현판이 따로 있는 것으로 봐, 연지에 잉어를 키웠을 것으로 유추된다.초당 뒤 가파른 길은 만덕산 백련사로 이어진다. 꿀럭꿀럭한 산길을 15분 정도 걸으면 동백숲으로 유명한 고찰 백련사로 갈 수 있다. 이 길이 ‘사색의 길’이다. 다산과 백련사 혜장선사의 만남이 이뤄진 길이다. 다산은 차와 바다를 찾아 백련사로 향했고 혜장은 스승과 책을 찾아 초당을 오갔다. 유배 와 제자를 가르치며 산중칩거하던 다산이 다른 철학(불교)을 통해 학식과 견문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당대의 학승 혜장 덕분일 수도 있다. 산중 차향은 그렇게 피어나 학문으로 승화됐다.다산은 강진의 아름다운 산(만덕산, 월출산)과 강(탐진강), 바다(강진만) 등 자연을 사랑했다. 특히 월출산 옥판봉을 바라보는 백운동 원림과 그 인근에서 생산되는 야생차를 각별히 좋아했다. 월출산의 남쪽 월남(베트남이 아니다) 마을에 이르면 다산의 차를 재배했던 다원이 나온다. 전남 최대 가람이었던 월남사지 앞에 차를 재배하며 제다(製茶)해온 다부 이한영 가문의 생가 다향산방과 다원, 전통차문화원이자 시음장이 함께 있다. 이한영의 선조는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이다. 1830년 해배 후 광주(현 경기 남양주)로 올라간 다산은 제자 중 막내인 이시헌에게 편지를 보낸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잘 받았다. 고맙다. 내 몸이 좋지 않아 오직 떡차(餠茶)만 의지하고 있는데 다시 곡우가 되었으니 차를 또 보내 달라”고 했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거칠었다. 반드시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곱게 빻아야 한다. 알아들었느냐?”며 나무라기도 했다.‘목민심서’를 집필한 ‘강직한 공직자’ 다산이었지만 제자에게는 단호하게 차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제자와 맺은 다신계(茶信契) 때문이다. 다산이 강진을 떠나더라도, 제자들은 매년 공부한 글과 차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이시헌은 이 약속을 평생 지켰다. 약속은 100년 이상 대를 이어 전해졌고 마지막으로 이를 지킨 사람이 이한영이다. 평생 차를 위해 살아온 그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에서 난 차가 일본 차로 바뀌어 유통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우리 고유 상표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로, ‘백운동 옥판봉에서 딴 차’라는 뜻이다. 그는 하마터면 끊어질 뻔한 한국 전통차의 맥을 이었고, 백운옥판차와 금릉월산차는 다시 100여년의 세월을 지나 현 이현정 전통차문화원장에 이르고 있다. 다산이 즐기던 차가 바로 백운옥판차다. 사제 간의 다신계가 정녕 200여년 지속된 셈이다.생가 옆에는 백운동 원림(園林)이 있다. 국내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전통 원림이다. 이곳에도 다산의 흔적이 있다. 다산은 평소에도 백운동 원림을 찾았고 1812년에는 초의선사와 함께 백운동 12경을 방문한 후 각각 그림 같은 풍경에 대한 시(백운동 12승사)를 남겼다. 여기에 초의선사가 그린 그림(백운동도)을 묶은 것이 바로 백운첩이다. 옥판봉, 산다경, 백매오, 홍옥폭, 유상곡수, 창하벽, 정유강, 모란체, 취미선방, 정선대, 운당원 등 백운동 12경이 널리 알려지게 된 일화다.람사르 협약 생태습지로 유명한 남포 습지에도 다산과 관련된 사연이 있다. 강진만과 탐진강 물길이 만나는 남포마을은 제주, 완도 등 섬과 육지의 교역 중심지로 예부터 번성했는데 다산초당 만덕산에서 내려오면 닿는 곳이라 다산의 행차도 잦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포마을의 옛 이름은 갈대밭이란 뜻의 갈밭마을. “강진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그 포구를 바라볼 수 있었고, 강진만의 색다른 정취는 그 포구에서 우러나오고 있었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 등장하는 문구다. 다산은 이곳에서 탐관오리들이 민초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세리들은 세금을 징세하기 위해 죽은 이와 갓난아이까지 군적(軍籍)에 올리는 백골징포, 황구첨정 등의 횡포를 부렸다. 도저히 군포를 감당할 수 없어 이에 항의하던 한 백성은 “아이를 낳은 내 잘못”이라며 스스로 거세하기에 이르렀다. 다산은 이 안타까운 사연을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로 남겼다.‘시아버지는 상복 벗은 지 오래고, 갓난아이는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모두 실렸네/ 억울한 사연 호소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정은 크게 포효하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네/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간 방에 피가 흥건하고/ 남편은 스스로 아이 낳은 죄를 한탄하네’ ‘애절양’ 시구는 강진만 생태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남포호 전망대에 선명히 적혀 있다. 강진만 생태공원은 3282만㎡(813만평)에 이른다. 자전거와 도보를 이용한 에코 투어 코스가 마련돼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고급 정보와 신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덕인지, 강진에는 특이한 맥주 소비 트렌드가 있다. 인구 3만 5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지만 신기하게도 술집마다 미국 맥주 브랜드인 ‘버드와이저’를 팔고 있다. 서울 등 다른 도시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심지어 생맥주 체인점에서도 버드와이저를 주문하면 따로 내올 정도다. 20여년 전 강진에는 주류를 공급하는 회사가 하나밖에 없었다. 당시 이 회사가 상대적으로 고급제품이었던 버드와이저 마케팅을 펼쳤는데, 뜻밖에 이게 먹혀들어 누구나 버드와이저를 즐겨찾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강진은 전남에서도 주류소비량이 높은 편이라 주류회사들의 주요 마케팅 대상지였다. 이런 시장 상황이 지속되며 버드와이저가 국산 맥주보다 좋다는 이미지를 남겼고 마침내 ‘군민 맥주’로 인정받게 됐다. 싱가포르에서 ‘싱가폴 슬링’을 찾아 마시듯 무더운 여름날 강진에 간다면 시원한 버드와이저 한 잔 마셔 보는 것도 여행의 작은 즐거움이 될 듯하다. 다산이 18년이나 살며 많은 흔적을 남긴 강진 땅. 농가체험숙박 ‘푸소 프로그램’과 역사문화 체험, 청정 생태 여행 1번지로 변모한 이 청잣빛 푸른 땅에 스스로 ‘아름다운 유배’를 떠나보는 것도 역병으로 우울한 이 여름, 참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강진 여행 체크리스트 무엇을 볼까 이한영전통차문화원은 이현정 원장의 재미있는 해설을 들으며 백운옥판차 등 다양한 전통차 시음과 차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월남사지 잔디밭에 앉아 다식을 들며 차 소풍을 즐길 수도 있다. 민화박물관에선 민중의 삶을 그대로 녹인 민화를 통해 조상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2층에선 성문화를 표현한 한중일 3국의 춘화를 만날 수 있다.뭘 먹을까 은행나무는 한정식 미향(味鄕) 강진에서도 이름난 한정식집이다. 반찬 그릇 위에 또 그릇이 올라가는 ‘강진한정식이층탑’ 별칭이 있을 정도다. 해물과 고기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음식의 면면이 훌륭해 어느 하나 손이 안 가는 것이 없다. 토종닭과 전복, 문어를 넣고 끓인 회춘탕(해천탕)도 여름철 복달임으로 좋다. 설성식당은 한 상 가득 돼지불고기 백반상을 받는 집이다. 조선 중후기 육군 사령부가 있던 병영면에 돼지불고기 거리가 형성돼 있다. 불맛 가득한 양념 돼지고기는 물론 각종 곁들임 찬만 해도 12가지가 넘는다. 1인 1만원꼴로 값도 저렴하다.
  • 목축이던 주막선 군민맥주 캬~ 다산 걷던 동백숲서 시름 털털

    목축이던 주막선 군민맥주 캬~ 다산 걷던 동백숲서 시름 털털

    올봄 영화 ‘자산어보’가 개봉하면서,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형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극중 ‘강진 선생’으로 불리는 다산(류승룡 분)의 학자적, 철학자적 모습이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당대 세상을 호령하던 고관대작(형조참의) 자리에 있다가, 머나먼 전남 강진 땅에 유배를 와 묵묵히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 정약용의 인품은 주인공 정약전(설경구 분)의 극중 비중에 견주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대선을 앞둔 최근엔 소설 ‘대통령 정약용’이 눈길을 끌고 있다. 타임슬립을 통해 현대로 온 다산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간다는 유쾌한 상상을 담았다. 대통령 다산이 추진한다는 ‘실학21’의 바탕이 된 1표2서(‘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를 저술한 땅, 강진을 다시 돌아보니 그동안 보고 알았던 것보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역사상 한반도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다산은 그야말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그는 유학자이면서 실학을 주도적으로 연구했으며 행정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법학과 법의학을 두루 전공한 법률가였다. 또한 의학과 지리학, 건축학에 통달한 과학자요, 발명가였다. 게다가 언어학자, 아동 교육자, 걸출한 시인에다 차 전문가, 동서양사를 넘나드는 역사 철학 이론가이기도 했다. 18세기 말 조선은 만사‘다’통이었다. 다산을 거치면 안 될 게 없었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다빈치처럼. 아, 공교롭게도 다산과 다빈치, 둘 다 이름 첫 자에 ‘다’자가 들어간다. 마침 다빈치도 유배는 아니지만 1516년 고향을 떠나 프랑스 루아르 강가의 앙부아즈 궁에서 살며 ‘모나리자’ 등 역작을 남겼다. 그런 다산이 강진에 내려왔다. 조용한 강진에 유배를 오는 바람에 그의 눈부신 업적이 꽃을 피웠다고 하는 것도 맞겠다.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저서와 서간, 일화, 대한민국 차문화가 탄생했다. 당시 조선의 유형(流刑)은 명나라의 대명률을 따랐다. 죄의 경중에 맞춰 2000리, 2500리, 3000리 등으로 올려가며 유배를 보내는 거다. 1리가 400m쯤이니 1000리면 한양에서 직선거리로 전남 완도까지도 갈 수 있다. 조선에선 이런 거리가 나올 수 없는 터라 일부러 여러 지역을 거치며 행로를 늘렸다. 세종이 ‘실정에 맞게’ 600, 750, 900리로 조정하기 전까지 1년 가까이 돌고도는 유배길을 떠났다. 유배는 많은 것을 남겼다. 깡시골인 유배지로 한양의 높은 지식과 문화 산업이 수혈됐다. 당쟁이 치열했던 조선 때 이름난 관직자는 대부분 유배를 다녀왔을 만큼 유배는 ‘일상’이었다. 정조는 창덕궁 부용정에 인공 섬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신하들과 시 짓기 내기를 하다가 ‘잠시 쉬는’ 벌칙으로 인공 섬에 유형을 보내기도 했다. 블루마블 게임에서 ‘무인도’ 같은 의미다. 그만큼 유형은 고급 관리를 대상으로 했다는 뜻이다. 시에 능한 다산이 ‘인공 섬’에 유배를 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다산을 친애하던 정조가 승하한 후, 정말 강진 땅으로 기나긴 유형을 떠나게 됐다. 그나마 강진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축에 속했다. 예나 지금이나 유형을 가기도, 여행하기도 딱 적당한 거리다. 프로야구의 옛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는 2군 구장을 강진에 뒀는데 당시 1군 선수가 2군에 내려가면 “유배간다”고 자조했다. 당시 몇몇 선수들은 강진에서 2군 생활을 경험하며 다산의 후예가 됐다.다산이 처음 도착한 곳이 강진읍의 사의재다. 다산의 인품을 알아본 주막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 주모의 호의로 여기서 4년간 생활했다. 다산은 이 주막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생각과 외모, 말, 움직임을 네(四) 가지 덕목으로 삼아 마땅히(宜) 바로잡는 집이란 뜻이다. 다산의 일기에 따르면 1803년 겨울의 일이다. 초가 주막이던 본래 사의재 건물은 사라졌지만 2007년 강진군청은 이를 복원해 한옥체험 숙소, 식당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남도 강진 음식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사의재는 아욱국이 맛있기로 소문났다. 다행히 유배지 주위에 가시나무를 심어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는 ‘위리안치’는 아니었다. ‘강진 선생’ 다산은 고성사 보은산방, 제자 이청의 집 등을 전전하다 47세이던 1808년 봄에 귤동리 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의 외가 쪽 집안인 해남 윤씨 윤단과 윤규로의 선처 덕분이었다.(해남 윤씨 윤선도는 무려 25년을 유배지에서 생을 보낸 ‘유배의 왕’이다.) 다산은 산정 초당을 고쳐 다산초당이라 이름 짓고 그곳에서 윤규로의 네 아들과 조카 둘을 가르쳤다. 다산은 18년 유배 기간 중 다산초당에서 약 11년을 머물며 다양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했다. 저서는 ‘목민심서’, ‘경세유표’를 비롯한 500여권에 달한다. 이를 총정리한 ‘여유당전서’는 철학, 법제, 종교, 악경, 의술, 천문, 측량, 건축 등 모든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을 총망라하고 있다. 애초의 초당은 무너지고 1958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가 현재 초당을 다시 지었다. 다만 원래 초당 건물이 아니라 목조 기와건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쓴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초당 뒤 바위에는 다산이 직접 깎은 글자 ‘丁石’(정석)이 새겨져 있으며 앞뜰에는 차를 달였다는 ‘청석’이 있고 한켠에는 ‘약천’이라는 약수터가 있다. 초당 왼쪽에는 작은 연지가 있다. 초당에 관어재(觀魚齋)란 현판이 따로 있는 것으로 봐, 연지에 잉어를 키웠을 것으로 유추된다.초당 뒤 가파른 길은 만덕산 백련사로 이어진다. 꿀럭꿀럭한 산길을 15분 정도 걸으면 동백숲으로 유명한 고찰 백련사로 갈 수 있다. 이 길이 ‘사색의 길’이다. 다산과 백련사 혜장선사의 만남이 이뤄진 길이다. 다산은 차와 바다를 찾아 백련사로 향했고 혜장은 스승과 책을 찾아 초당을 오갔다. 유배 와 제자를 가르치며 산중칩거하던 다산이 다른 철학(불교)을 통해 학식과 견문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당대의 학승 혜장 덕분일 수도 있다. 산중 차향은 그렇게 피어나 학문으로 승화됐다.다산은 강진의 아름다운 산(만덕산, 월출산)과 강(탐진강), 바다(강진만) 등 자연을 사랑했다. 특히 월출산 옥판봉을 바라보는 백운동 원림과 그 인근에서 생산되는 야생차를 각별히 좋아했다. 월출산의 남쪽 월남(베트남이 아니다) 마을에 이르면 다산의 차를 재배했던 다원이 나온다. 전남 최대 가람이었던 월남사지 앞에 차를 재배하며 제다(製茶)해온 다부 이한영 가문의 생가 다향산방과 다원, 전통차문화원이자 시음장이 함께 있다. 이한영의 선조는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이다. 1830년 해배 후 광주(현 경기 남양주)로 올라간 다산은 제자 중 막내인 이시헌에게 편지를 보낸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잘 받았다. 고맙다. 내 몸이 좋지 않아 오직 떡차(餠茶)만 의지하고 있는데 다시 곡우가 되었으니 차를 또 보내 달라”고 했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거칠었다. 반드시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곱게 빻아야 한다. 알아들었느냐?”며 나무라기도 했다.‘목민심서’를 집필한 ‘강직한 공직자’ 다산이었지만 제자에게는 단호하게 차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제자와 맺은 다신계(茶信契) 때문이다. 다산이 강진을 떠나더라도, 제자들은 매년 공부한 글과 차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이시헌은 이 약속을 평생 지켰다. 약속은 100년 이상 대를 이어 전해졌고 마지막으로 이를 지킨 사람이 이한영이다. 평생 차를 위해 살아온 그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에서 난 차가 일본 차로 바뀌어 유통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우리 고유 상표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로, ‘백운동 옥판봉에서 딴 차’라는 뜻이다. 그는 하마터면 끊어질 뻔한 한국 전통차의 맥을 이었고, 백운옥판차와 금릉월산차는 다시 100여년의 세월을 지나 현 이현정 전통차문화원장에 이르고 있다. 다산이 즐기던 차가 바로 백운옥판차다. 사제 간의 다신계가 정녕 200여년 지속된 셈이다.생가 옆에는 백운동 원림(園林)이 있다. 국내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전통 원림이다. 이곳에도 다산의 흔적이 있다. 다산은 평소에도 백운동 원림을 찾았고 1812년에는 초의선사와 함께 백운동 12경을 방문한 후 각각 그림 같은 풍경에 대한 시(백운동 12승사)를 남겼다. 여기에 초의선사가 그린 그림(백운동도)을 묶은 것이 바로 백운첩이다. 옥판봉, 산다경, 백매오, 홍옥폭, 유상곡수, 창하벽, 정유강, 모란체, 취미선방, 정선대, 운당원 등 백운동 12경이 널리 알려지게 된 일화다.람사르 협약 생태습지로 유명한 남포 습지에도 다산과 관련된 사연이 있다. 강진만과 탐진강 물길이 만나는 남포마을은 제주, 완도 등 섬과 육지의 교역 중심지로 예부터 번성했는데 다산초당 만덕산에서 내려오면 닿는 곳이라 다산의 행차도 잦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포마을의 옛 이름은 갈대밭이란 뜻의 갈밭마을. “강진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그 포구를 바라볼 수 있었고, 강진만의 색다른 정취는 그 포구에서 우러나오고 있었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 등장하는 문구다. 다산은 이곳에서 탐관오리들이 민초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세리들은 세금을 징세하기 위해 죽은 이와 갓난아이까지 군적(軍籍)에 올리는 백골징포, 황구첨정 등의 횡포를 부렸다. 도저히 군포를 감당할 수 없어 이에 항의하던 한 백성은 “아이를 낳은 내 잘못”이라며 스스로 거세하기에 이르렀다. 다산은 이 안타까운 사연을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로 남겼다.‘시아버지는 상복 벗은 지 오래고, 갓난아이는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모두 실렸네/ 억울한 사연 호소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정은 크게 포효하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네/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간 방에 피가 흥건하고/ 남편은 스스로 아이 낳은 죄를 한탄하네’ ‘애절양’ 시구는 강진만 생태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남포호 전망대에 선명히 적혀 있다. 강진만 생태공원은 3282만㎡(813만평)에 이른다. 자전거와 도보를 이용한 에코 투어 코스가 마련돼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고급 정보와 신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덕인지, 강진에는 특이한 맥주 소비 트렌드가 있다. 인구 3만 5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지만 신기하게도 술집마다 미국 맥주 브랜드인 ‘버드와이저’를 팔고 있다. 서울 등 다른 도시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심지어 생맥주 체인점에서도 버드와이저를 주문하면 따로 내올 정도다. 20여년 전 강진에는 주류를 공급하는 회사가 하나밖에 없었다. 당시 이 회사가 상대적으로 고급제품이었던 버드와이저 마케팅을 펼쳤는데, 뜻밖에 이게 먹혀들어 누구나 버드와이저를 즐겨찾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강진은 전남에서도 주류소비량이 높은 편이라 주류회사들의 주요 마케팅 대상지였다. 이런 시장 상황이 지속되며 버드와이저가 국산 맥주보다 좋다는 이미지를 남겼고 마침내 ‘군민 맥주’로 인정받게 됐다. 싱가포르에서 ‘싱가폴 슬링’을 찾아 마시듯 무더운 여름날 강진에 간다면 시원한 버드와이저 한 잔 마셔 보는 것도 여행의 작은 즐거움이 될 듯하다. 다산이 18년이나 살며 많은 흔적을 남긴 강진 땅. 농가체험숙박 ‘푸소 프로그램’과 역사문화 체험, 청정 생태 여행 1번지로 변모한 이 청잣빛 푸른 땅에 스스로 ‘아름다운 유배’를 떠나보는 것도 역병으로 우울한 이 여름, 참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강진 여행 체크리스트 무엇을 볼까 이한영전통차문화원은 이현정 원장의 재미있는 해설을 들으며 백운옥판차 등 다양한 전통차 시음과 차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월남사지 잔디밭에 앉아 다식을 들며 차 소풍을 즐길 수도 있다. 민화박물관에선 민중의 삶을 그대로 녹인 민화를 통해 조상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2층에선 성문화를 표현한 한중일 3국의 춘화를 만날 수 있다.뭘 먹을까 은행나무는 한정식 미향(味鄕) 강진에서도 이름난 한정식집이다. 반찬 그릇 위에 또 그릇이 올라가는 ‘강진한정식이층탑’ 별칭이 있을 정도다. 해물과 고기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음식의 면면이 훌륭해 어느 하나 손이 안 가는 것이 없다. 토종닭과 전복, 문어를 넣고 끓인 회춘탕(해천탕)도 여름철 복달임으로 좋다. 설성식당은 한 상 가득 돼지불고기 백반상을 받는 집이다. 조선 중후기 육군 사령부가 있던 병영면에 돼지불고기 거리가 형성돼 있다. 불맛 가득한 양념 돼지고기는 물론 각종 곁들임 찬만 해도 12가지가 넘는다. 1인 1만원꼴로 값도 저렴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