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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 온난화 연구 2題] 양서류 3분의1 멸종 위기

    양서류는 현재 세계적으로 3분의1 가까이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1980,90년대 남미에 서식하던 중남미 광대개구리 110여종 가운데 3분의2가 자취를 감췄을 때 키트리드 곰팡이가 퍼뜨리는 피부병 때문에 멸종된 것으로 전해졌다. 과학자들은 개구리들의 멸종에는 이들 곰팡이를 번식하게 만든 지구 온난화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그러나 이 곰팡이들이 기온이 높은 곳보다 낮은 곳에서 더 효율적인 ‘양서류 킬러’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나 온난화 가설 입증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코스타리카 몬테베르데 우림 연구소의 앨런 파운즈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선명한 피부 빛을 자랑하는 광대개구리가 살기 좋아하는 코스타리카의 열대 삼림을 조사했다. 그 결과 온난화로 인해 산자락에 만들어지는 구름이 빛을 차단, 낮에는 서늘하게 만들고 밤에는 열기를 보전함으로써 키트리드 곰팡이가 번식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파운즈 박사는 곰팡이가 총알이라면 온난화 확산과 구름의 이동은 방아쇠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트렌트 가너 박사는 “세계 어디서나 이들 곰팡이가 번식하고 있으므로 온난화에 대해 더 진전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DMZ의 사계] 겨울

    [DMZ의 사계] 겨울

    해마다 전방에 내리는 그 많던 눈이 무슨 심술인지 올 겨울엔 자취를 감췄다. 대신 남쪽 지방으로 자리를 옮겨 ‘눈폭탄’으로 변해 농민들에게 큰 시련을 주고 있다. 겨울가뭄이 들었다고 할 정도로 전선지역은 건조하기만 하다. 그러나 올 들어 유난히 맹위를 떨친 추위는 이제껏 내린 많지 않은 눈을 고스란히 쌓아 놓았다. 카메라로 들여다 본 겨울 비무장지대는 여느 때처럼 백색이다. 험악한 산세를 부드럽게 물들이던 단풍의 물결이 철조망을 넘어 능선을 따라 북에서 내려오던 강원도 동부전선 ○○지역. 막혔던 남과 북의 장벽을 열고 통일에 대한 민족의 염원을 담은 도로와 철도가 제한적이지만 전선의 동·서에서 이어지고 있다. 민족의 왕래는 빈번해졌다지만 인간의 손길은 여전히 완벽하게 차단된 이 곳. 땅을 들춰보면 분단의 햇수만큼의 낙엽과 눈이 시루떡 같이 켜켜이 층을 이룬 채 쌓여 있을 것 같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풍요롭게 먹이를 구하던 야생동물들이다. 쌓인 눈에 먹이를 빼앗겨 버리자 위험을 무릅쓰고 산 아래로 내려와 먹이를 찾는다. 언제부터인지 동물구호활동단체들이 뿌려 주는 먹이에도 익숙해진 모습이다. 한여름에는 카메라를 들기도 전에 쏜살같이 숲 속으로 사라져 궁둥이만 겨우 찍게 하며 속을 태웠던 고라니. 지금은 기자를 반기듯 주변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맴돌다 아쉬운 듯 사라진다. 배 고픔에 지친 너구리도 한 참을 쳐다보다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긴다. 긴 겨울밤의 추위와 배 고픔은 동물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시간일 것이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대한민국 군대의 대표 군가를 부르며 위병교대를 하는 병사들을 만났다. 눈 부위만 빼꼼하게 남기고 얼굴까지 방한 장비로 감싸고 경계근무에 나설 참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코끝이 동상에 걸려 주정뱅이코처럼 빨갛게 되어 초봄까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단다. 전선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겨울 추위는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적이다. 칼바람을 뚫고 나서는 병사들의 몸짓에서 전선의 긴장감과 함께 군인의 자부심, 청년의 힘이 느껴진다. 사진 글 강성남 기자 snk@seoul.co.kr
  • 고유가 넘는 외나무다리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 고향 만나면 즐거웁던 외나무 다리…’ 어릴 적 시골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고 최무룡씨의 ‘외나무 다리’노래다.6일 오전 경북 예천군 보문면 신월1리의 내성천. 이곳에 사라졌던 외나무 다리가 10년 만에 다시 놓여졌다. 외나무 다리는 폭이 20㎝, 길이 50m로 한 사람이 지나가기도 힘들어 보인다. 주민 30여명은 이날 차가운 강물 속에 들어가 길이 2∼3m가량인 나무토막 20여개를 연결해 외나무 다리를 만들었다. 마을 50여가구 주민 150명은 올 겨울에 외나무 다리를 오가며 땔감용 나무를 집으로 운반하게 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외나무 다리는 농산물과 땔감 수송통로로 이용됐다. 집집마다 기름보일러가 공급되고 유수량도 줄어들면서 외나무 다리는 자취를 감추었다. 최근 기름값이 오르자 주민들은 다시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단순히 경제적 이유뿐만은 아니다. 주민들은 외나무 다리를 놓으면서 옛 문화를 되살리고 화합을 다지기도 한다. 조선시대 때 이 마을에서는 추수가 끝난 뒤 매년 외나무 다리놓기 행사를 해왔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 우거진 숲이 나오고 참나무, 소나무, 잡목의 죽은 가지 등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이곳에는 조선 선조 때 이순신 장군을 특별사면토록 건의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도록 한 약포 정탁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도정서원’도 자리잡고 있다. 신월1리 권상기(60) 이장은 “외나무 다리를 통해 조상들이 살아가던 모습을 오늘에 다시 본다.”며 “사라져가는 전통을 되살린다는 차원에서 기름값이 하락하더라도 매년 외나무 다리를 설치하겠다.”고 말했다.예천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씨줄날줄] 占과 성형/진경호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 탄핵 움직임으로 정치권이 들끓던 2004년 3월 초. 국회 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불꺼진 사무실에서 황태연 당 국가전략연구소장이 점통을 흔들었다. 정치철학을 전공한 교수이자,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자문역을 맡았던 그는 허리춤에 늘 점통을 차고 다닐 정도로 역술에 능했다. 잠시 뒤 그가 뽑아든 점괘엔 노 대통령이 중도에 자리에서 물러날 운세가 나왔다. 결국 국회의 탄핵이 성공한다는 것이다. 황 소장은 탄핵의 법적, 정치적 당위성과 함께 중도하차로 끝날 노 대통령의 운세를 몇몇 출입기자들에게 귀띔하기도 했다. 이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 추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그는 탄핵소추안을 직접 작성했다. 결국 탄핵안은 소수이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극렬한 저항 속에 3월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새삼 탄핵의 뒷얘기를 꺼내든 것은 야당이 점괘를 믿고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5월14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되기는 했으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법적, 정치적으로 나름의 탄핵 논거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점술이라는 것이 법과 이성이 지배해야 할 국회의 한복판에까지 들어와 있는 것이 우리 정치의 또 다른 현실임은 분명하다 하겠다.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점술과 성형수술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광역단체장에 도전할 한 여당 중진은 “기가 샌다.”는 역술가 말에 회관 사무실 문을 항상 닫아둔다 하고, 야당의 모 의원은 전국의 용하다는 점쟁이를 섭렵했다고 한다.1970∼80년대를 풍미한 자강 이석영, 도계 박재완, 제산 박재현 등 명리학의 빅3가 사라지고,90년대 수십명에 이르렀던 ‘백운학’‘백운산’도 상당수 자취를 감췄다지만 지금도 ‘○○아지매’‘○○거사’ 등등 몇몇 역술인들이 정치인 고객들로 성업 중이라고 한다. 성형수술도 이에 못지않은 모양이다. 쌍꺼풀 수술에 주름제거, 모발이식은 기본이고, 심지어 코나 턱을 손보는 인사들도 있다고 한다. 수험생, 취업지망생 사이에 유행하는 관상성형 붐에 정치인들까지 가세한 것이다. 외모에 자신감이 생기면 인생도 바뀐다니 탓할 일만도 아닐지 모른다. 첨단과학 시대에 정치와 점술, 관상, 성형이 하나로 이어지는 현상이 그저 흥미로울 뿐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황우석교수 연구팀 “월화수목금금금”…연구 계속

    황우석교수 연구팀 “월화수목금금금”…연구 계속

    “함장이 없어도 ‘월화수목금금금’은 계속된다.” 논문조작으로 연구 전반의 진실성을 위협받고 있는 황우석 교수가 퇴임 의사를 밝히고 학교를 떠난 뒤에도 연구실의 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많은 측근들이 등을 돌리는 가운데 함장을 잃은 ‘황우석호’의 좌초를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연구진들은 일단 연구에 매진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보름이 넘도록 두문불출하던 서울대 의대 안규리 교수도 출근해 정상적인 진료활동을 시작했다. 경기도 모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황 교수는 최근 지인을 통해 “연구실에 출입은 하지 않지만, 연구진들이 그대로 있고 전화를 통해 연구진행 상황을 듣고 연구 방향이나 문제점 개선 등을 지시하고 있다.”면서 “줄기세포가 걸리는 것이 있을지 몰라도(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질지 몰라도) 최소한 연구는 계속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이병천 교수와 강성근 교수 역시 매일 출근해 묵묵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황 교수가 학교를 떠날 때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했던 연구원들도 연구실을 지키고 있다. 복제개 ‘스너피’에게 체세포를 준 개 ‘타이’를 운동시키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황 교수는 지난달 16일 기자회견에서 “체세포복제 실험을 통해 단계적으로 결과를 얻었고, 지금도 미발표의 매우 의미있는 중요한 결과를 얻은 상태”라고 언급한 바 있다.2004년,2005년 논문의 진위와 상관없이 중요한 연구가 진행중임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황 교수는 “서울대에 연구팀이 40여명 정도 되는데 행동을 일치하기로 했다. 내가 그만두고 나오면 다 따라나오기로 했다. 우리끼리만은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공동 저자이자 황 교수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는 안 교수도 논문조작 파동으로 자취를 감춘 지 17일만에 처음으로 연건동 병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교적 밝은 모습으로 나타난 안 교수는 “논문제출 시점에 조작 사실을 알지 못했고, 조사위의 발표 하루 전날까지도 줄기세포가 하나라도 있는 것으로 믿고 싶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선종 연구원에게 전달된 돈에 대해서는 “김 연구원과 박종혁 연구원이 1월 말 귀국할 예정이었는데 귀국 및 이사 비용으로 전달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해외연수 계획에 대해 “너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취소했다.”면서 “앞으로 정상적으로 환자를 돌볼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김준석기자 wisepen@seoul.co.kr
  • [길섶에서] 탄천의 세밑 풍경/우득정 논설위원

    한 해의 마지막 햇살이 혹독했던 추위를 몰아낸 오후, 아파트 단지 앞 탄천은 생명의 소리로 가득 찼다. 얼음이 사라진 물목에는 맹추위에 쫓겨 자취를 감췄던 청둥오리 새끼들이 연신 고개를 까딱거리며 물갈퀴질을 하고, 어미 청둥오리는 징검다리 위에 배를 깔고선 나른한 시선을 새끼들에게 보낸다. 까치 몇 마리는 물가 얼음 위를 종종걸음으로 내달으며 모이 쪼기에 바쁘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 주는 후미진 벤치에는 털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머플러로 코까지 감싼 할머니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때 빨간색 오리털 점퍼에 까만 모자를 쓴 꼬마가 장난끼 섞인 걸음걸이를 멈추고 뒤돌아 보며 소리친다.“할아버지 물고기는 모두 어디 갔어.”꼬마는 조그마한 돌멩이를 주워 탄천 가장자리로 던진다. 시커멓게 오염된 물이 속내를 드러낼 뿐이다. 얼굴에 웃음을 한껏 머금은 할아버지는 물 속을 한참 살피다가 “겨울잠 자러 갔단다.”라고 말하며 꼬마를 번쩍 들어 무동을 태운다. 꼬마의 웃음소리가 엷은 햇살을 타고 울려 퍼진다. 할머니는 짓무른 눈을 가까스로 뜨고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듯하더니 다시 몸을 웅크리며 눈을 감는다. 금방 봄이 다가올 것만 같았던 세밑 오후였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되돌아 본 ‘서울in’ 1년

    되돌아 본 ‘서울in’ 1년

    서울인이 또 한해를 접습니다. 비바람이 있어야 순풍의 소중함을 아는 법입니다. 우리네 세상살이처럼 기쁜 소식과 우울한 소식들이 서울인에도 함께 했습니다. 아쉬운 점들도 있지요. 잊지 못할 황당한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면 사정 탓에 기사로 작성하는 것은 무리였지요. 시민들과 부대끼며 서울인을 만든 기자들이 ‘못다한 이야기’들을 한 자리에서 풀어냈습니다. 김기용 한해 동안 서울인을 만들면서 느낀 점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 격이다.’라는 것입니다. 신문지상에 얼굴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던 평범한 시민들이 지면에 등장한 뒤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인간시대’에 실린 금천구립합창단 어머니들은 그전에는 큰 규모의 합창단을 부러워했지만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예술사진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사진과 자신들의 이야기가 넓은 지면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금천구립합창단은 구 안에서는 유명하지만 소규모의 구립이라는 이유로 기성 언론의 외면을 받아왔습니다. 5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이 주축이 된 마포구 자전거연합회 기사도 많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할머니’축에 든 분들이 거침없이 페달을 밟는 모습은 무기력에 빠져 있던 비슷한 연배의 어머니들에게 많은 자극을 준 듯합니다. 기사가 나간 뒤 회원가입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뿌듯하기만 했습니다. 송한수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와 수도권에 사는 국민들의 삶에 얽힌 이야기들은 사실 대한민국 절반의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작은 이야기’라는 이유로 알려지지 않던 우리 이웃들의 사연은 훌륭한 기삿거리가 됩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서울인은 서울이야기를 많이 싣는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격찬하기도 했습니다. 김성곤 의정뉴스가 서울인을 통해 꾸준히 소개되는 것도 하나의 성과입니다.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지 하반기 들어서는 지역정가도 후끈 달아 올랐습니다. 이에 따라 당연히 의정 뉴스에 대한 수요도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특히 자치구의회나 자치단체별로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도 돋보였고, 이들 내용은 서울인을 통해 비교적 상세히 전달됐다고 생각합니다. 의회 홈페이지 개편을 통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강화된 것도 서울인을 통해 지역 의회와 주민들의 간극이 좁아진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금석 올해 서울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청계천 복원일 것입니다. 서울인을 만드는 서울시청 출입 기자들 역시 올 초부터 청계천을 제집 드나들 듯이 뒤집고 다녔지요. 6월 시험통수를 앞두고 청계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지난 4월이었습니다. 김유영 기자와 청계천 전 구간을 직접 걸으며 취재했습니다.5.8㎞ 구간이 그렇게 길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것도 공사장 먼지를 다 마셔가면서 걷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반나절 남짓 취재를 한 뒤 기자실로 돌아왔을 땐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습니다. 특히 목구멍에 낀 먼지를 벗겨내느라고 3∼4일은 저녁 때마다 소주에 삼겹살을 먹어야 했죠. 서재희 서울인에 기사가 아닌 ‘얼굴’로 등장한 게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청계천 특집 때였습니다.‘청계천의 연인들’이 주제였지요. 그러나 하필 마감일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겁니다. 당연히 지나가는 연인은 없고, 편집기자는 독촉하고. 독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함께 기사를 쓴 기자와 연인의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얼굴이 찍히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편집기자에게 최대한 작게 내달라는 특별한 ‘부탁’도 잊지 않았죠. 그러나 신문이 나오자 어안이 벙벙해지더군요. 사진이 한 페이지를 꽉 채워서 나간 겁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한 책자 ‘청계천 풍경’에도 빠지지 않았습니다.‘새로 사귄 애인이냐.’‘이제 시집은 다 갔다.’는 등 기사보다 더 뜨거운 반응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당황스러웠지만 모두 지면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을 하니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계천을 취재하기 위해 열번 넘게 전 구간을 오가며 빠진 살도 하나의 소득입니다. 김유영 ‘거리 탐방 서울연가’는 말 그대로 온갖 사람들을 만나며 서울의 골목길을 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황당한 일도 많았습니다. 지난 10월에 서울 도심의 한 유명한 거리를 소개하는 기사가 나갔습니다.3주 뒤 카페 여주인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기사가 완전히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겁니다. 그러나 카페 여주인의 말처럼 ‘팩트’가 틀렸다면 카페의 이름도 바꿔야 했습니다. 그래서 반문했더니 말을 흐리는 겁니다. 너무 이상해서 ‘팩트’를 만든 작가에게 확인 전화를 했습니다. 머뭇거리다 “여주인이 옛 여자친구인데 헤어진 뒤 내가 잘 되는 꼴을 못 봐서 언론사마다 전화를 하고 있다.”고 털어놓는 겁니다. 어이 없는 일이었죠. 이두걸 신촌을 취재할 때 일입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이대로 넘어가는 길 사이의 음식점과 카페를 다니는데 30대 후반의 건장한 남자가 뒤를 쫓아오는 겁니다. 차림새도 멀쩡했지요. 그래서 공손히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신경쓰지마!”라는 위협적인 말투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당연히 “당신 뭐야.”라고 받아쳤지요. 잠깐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유 없이 나선 그쪽이 ‘말발’이 딸릴 수밖에요. 결국에는 “이런 가게들이 버젓이 영업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라고 말꼬리를 내리면서 슬그머니 가는 겁니다. ‘신촌의 별볼일 없는 어깨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지요. 고금석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도 당연히 서울인의 취재 대상입니다. 최근에 서울의 달동네를 취재할 때입니다.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상계동 노원마을을 찾았습니다.‘사랑의 김치 나누기’ 행사에서 만든 김치를 함께 배달했지요. 보일러 땔 기름이 없어 전기장판에 의지하고 담요를 둘둘 감은 채 누워있는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특히 할머니가 사회복지사들에게 “너희들이 추우면 안되는데….”라면서 연신 손을 잡고, 저를 보면서 “도련님, 김치 갖다줘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잊지 못하시더군요. 눈물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 동네는 철거예정 지역이라 도시가스를 시공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분들이 오히려 난방비로 10만원 이상 쓰는 모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울인이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입니다. 정은주 서울인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도 취재거리를 만납니다. 어느날 지친 몸으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버스 운전사가 “안녕하세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더군요.‘절 아세요.’라는 눈빛을 보냈죠.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까지 두른 아저씨는 그저 미소만 보이셨어요. 뒤에 앉아 지켜봤더니 아저씨가 올라오는 모든 승객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일부 승객들은 낯익은 지 “네, 별일 없으시죠?”라고 되묻곤 했습니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싶어서 버스 번호와 회사 연락처를 적어서 내렸지요.10월7일자 ‘대중교통 환골탈태’는 그렇게 작성됐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취재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왜 나를 취재하느냐.”라고 묻는 거예요.“나는 신문에 나올 만큼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기를 거부하는 거죠. 취재하는 것보다, 왜 기삿거리가 되는지 설명하는 게 더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김기용 서울인의 커버 기사는 특히 각 자치구들의 경쟁을 유도하면서 결과적으로 주민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다룬 자치구의 인터넷 방송 실태는 아직 인터넷 방송을 개국하지 못한 자치구들에 좋은 자극을 줬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인터넷 방송을 운영해야 하는지와 필요한 예산 규모 등에 대한 기초 자료 제공, 인터넷 방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환기 등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이동구 유통면과 의회면을 주로 담당해왔지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한결 여유로왔던 느낌입니다. 예정된 기사나 지면은 어떤 일이 있어도 책임지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두 저마다의 맡은 바를 100% 이상 해준 덕분입니다.‘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용어가 새삼 서울인 제작에 맞아떨어진 한해였습니다. 서재희 내년에 개선해야 할 점도 많은 듯합니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 ‘성공시대’ 코너가 사라져 아쉽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물론 ‘인간시대’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신선함은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네 이웃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자는 서울인의 본래 취지를 되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송한수 만만찮은 작업이지만 어렵게 취재한 결과물들인데 꼼꼼하게 다시 살펴볼 시간이 없어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부족한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금석 시민기자제가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하고 1년여만에 사실상 문을 닫은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일반 시민들과 기존 언론과의 괴리와 격차를 결국 좁히지 못한 듯합니다. 주민과 쌍방향 의사소통을 더욱 활발히 할 수 있는 서울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시도해야 할 제도라고 봅니다. ●‘되돌아본 서울in´ 방담 참여자 김성곤차장·이동구·송한수·이두걸·김유영·정은주·김기용·고금석·서재희(이상 지방자치뉴스부 기자) ■ “아침을 먹읍시다” 현대인의 건강 챙기기 “정말 당첨됐나요?” 서울신문과 CJ㈜가 펼치는 ‘아침을 먹자’ 건강캠페인을 진행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당첨자에게 전화를 걸어 주소를 확인할 때면 대부분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집니다. 누군가에게 깜짝 선물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매주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침도시락을 배달하는 이벤트는 CJ 홍보팀 직원과 점심을 먹다가 갑작스레 기획됐습니다.CJ가 두부시장에 막 진입해서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칠 때였지요. 오피스타운 주변에 아침먹을 곳을 소개하는 연재기사를 준비한다고 했더니, 아침도시락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함께 진행하자고 제안하더군요. 이후 햄스빌, 신선CM, 햇반 등이 추가로 참여했습니다. 아침을 먹자 게시판을 오픈하자마자 도시락을 보내달라는 사연이 쏟아졌습니다. 자신보단 남편과 가족을, 이웃을 걱정하며 아침도시락을 신청했습니다.‘임신으로 몸이 무거워져 아침을 차리지 못합니다.’‘아토피 피부염으로 밤새 뒤척이는 아이를 돌보다 남편을 그냥 보냅니다.’‘출퇴근 시간도 길고, 혼자 자취해 아침밥을 건너뛰기 일쑤예요.’ 객지에서 생활하는 딸, 아이들을 대신 돌보는 시어머니, 홀로 사는 친정어머니, 늦깎이 대학생인 올케 등 바쁘게 살아가는 가족이 아침밥을 챙겨먹기를 기원했습니다. 고맙고 안타까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도 전해졌습니다. 아이를 자식처럼 돌보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위해, 고교입시를 준비하는 딸 친구를 위해, 나라를 지키는 총각 군인을 위해, 정신지체아동과 노숙자를 위해 캠페인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연이 밀려드니 당첨자를 선정하는 일이 더욱 어려웠졌습니다. 사연을 하나하나 읽고, 여러 명이 의논하며 매주 당첨자를 뽑았지만, 늘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은 계속됐습니다. 아침도시락이 배달되는 날, 현장을 찾아가 취재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사진기자가 요청하면 프로처럼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어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경기도 구리시 한 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선생님이 준비한 깜짝 선물로 고3학생들은 어린아이 마냥 기뻐했습니다. 햄스빌 베이컨 도시락이라 더욱 인기가 많았죠. 그러나 도시락 수가 정해있다 보니 저와 사진기자는 남들 먹는 모습만 지켜보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배가 얼마나 고프던지….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백두산 일출을 보다

    백두산 일출을 보다

    낯선 남녀가 서로 만나 100번째 되던 날, 대부분 조촐한 기념식을 하겠지요. 더욱 사랑하자는 뜻에서 말입니다.‘주말매거진 We’가 이번호로 독자와 만난 지 꼭 100번째가 됐습니다. 하여 어떤 좋은 선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문득 눈덮인 백두산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혹 가고 싶어도 여유가 없어서 못가는 독자 여러분에게 간접 체험이나마 선사하려는 뜻에서이지요. 아울러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백두’의 기(氣)를 흠뻑 느껴 보자는 취지이기도 하지요. 정말이지 하얀 눈보라가 휘날리는 겨울 백두산은 똑바로 서서 걷기조차 힘들 정도의 바람과 영하 30∼40도의 차가운 날씨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쉽게 오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간단한 장비만 갖추면 등산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습니다. 백두산 북쪽 천문봉에서 만주벌판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신천지 새벽의 붉은 태양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습니다. 또한 드넓은 얼음평야처럼 꽁꽁 얼어 버린 천지의 장엄함 앞에서는 절로 머리가 숙여지더군요. 자 함께 가보실까요. 백두의 계곡으로 말입니다.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백두산은 정말 춥데.”,“겨울에 백두산은 못간데.”라는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속초에서 배를 타고 출발했다. # 백두로 향하다 백두산에 가는 방법이 몇 가지 있는데 이번에는 속초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 훈춘에서 연길로 해서 가는 방법을 택했다. 속초에서 러시아 자루비노항구까지는 585㎞이며 1만 4000t급 동춘호로 무려 열여섯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배에서 장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동춘항운 김세광 과장은 “말이 열여섯 시간이지 금방 지나갑니다. 오후 3시에 출항해 짐 풀고 저녁 먹고 한잠 자면 러시아에 도착해요. 어쩜 아침에 씻고 짐 챙기느라 바쁩니다.”라고 안심시킨다. 정말이지 막상 타고 보니 배의 위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멀미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을 배정받았다.4인실.2층 침대 2개와 TV, 화장실까지 설치돼 있었다. 추운 동해의 바람을 맞으며 멀어지는 속초를 바라보았다. 김 과장의 말대로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맥주를 한잔 마시고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어느새 아침이 밝아왔다. # 전혀 다른 세상에 갑판에서 사진을 찍었다. 난생 처음 보는 러시아. 낡은 배, 녹슨 공장의 굴뚝, 눈덮인 야산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과 가장 다른 것은 ‘기온’이다. 부는 바람이 차가운 것이 아니라 콕콕 바늘로 찌르는 듯한 동통(冬痛)이 느껴진다.‘우와 추워!’ 정말 1분 이상 갑판에 서 있지 못할 지경이다. 이윽고 배가 접안했다. 자루비노항에서 동춘항운의 셔틀버스로 중국 훈춘의 장영자 세관으로 이동했더니 버스로 약 2시간 걸렸다. 하얀 눈이 덮인 불모의 땅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끝없이 이어진다. 오고 가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마주 오는 차도 거의 없었다. 어느덧 버스 유리창에 서리는 차가운 얼음장으로 변해 버렸다. 밖의 기온은 영하 25도란다. 러시아 군인들이 지키는 크라스키노 세관에서 러시아 출국수속을 마치고 드디어 중국 장영자 세관에 도착했다. 장영자는 ´긴고개 들로 이어진 끝´이란 뜻의 마을 이름이다. 연변 지역은 고구려, 발해시대의 먼 조상들이 말 달리며 지배했던 땅이고 일제시대에는 많은 항일 독립투사들이 조국 독립의 꿈을 키웠던 곳이어서 새삼 감회에 젖어본다. 연길 등을 거쳐 백두산의 관문인 이도백화(조그마한 시골 마을)까지 약 300㎞. 버스로 꼬박 5시간이다. # 민족의 영산을 마주하며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마치고 그 세는 물(水)을 근본으로 하고 나무(木)를 줄기로 한다고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은 말했다. 또한 백두산은 우리 국토의 시작이며 백두대간을 품고 있는 민족의 영산이 아닌가. 또 한민족의 발상지인 단군신화를 잉태한 가장 성스럽고 고결한 산이다. 오는 길이 멀고 힘들다 할지라도 우리 민족의 시작점에 설 수만 있다면 그 정도 수고는 감내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 날씨가 구름 끼고 추운 탓인지 이도백화에서 그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가슴속에 느껴지는 맑고 성스러운 기운이 온몸에 짜릿한 전율로 다가온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호텔을 나섰다. 강원도청 환동해 출장소 직원들과 현지 가이드를 포함해 우리 일행은 모두 16명. 환동해 출장소 직원들은 동해바다의 어업과 해로를 관리하기 위해 강원도청에서 파견됐다. 이들과 함께 백두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 지프에 나누어 타고 어둠 속을 달렸다. # 민족의 아픔을 간직하고 자고로 백두산에서 일출을 본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영하 30도, 체감온도를 측정할 수 없는 그런 겨울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된다. 한겨울에도 백두산 천문봉까지 차가 다닌다. 물론 일반 승용차는 아니고 중국에서 특수하게 불도저를 개조해서 만든 특수 버스인 ‘설령차’를 타면 천문봉 입구까지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다. 새벽 5시, 장백산(張白山)이라고 써 있는 아치형 문을 통과한다. 이제 정말 백두산의 품에 들어왔다. 하지만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 장백산이라니. 이 산에 숨쉬고 자라고 있는 풀 한 포기, 나무 하나 우리 조상의 손길과 정성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건만 어찌하여 이곳을 장백산이라 부르며 내 나라를 거치지 못하고 남의 땅을 밟아야 이곳에 도착할 수 있는가. 반쪽짜리 나라의 아픔이 전해진다. # 찬란하다, 백두여 설령차에 올랐다. 이미 중국인 관광객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어서 닫히지 않는 창문 틈 사이로 무서운 백두산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하다.‘휘잉∼잉 휘∼잉’하며 눈보라가 칠 때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간혹 새벽 달빛 사이로 백두산의 자태가 스친다. 목도리, 마스크, 귀마개, 장갑 등으로 온몸을 칭칭 둘렀건만 손끝과 발끝에는 여전히 한기가 느껴진다. 아침 6시가 넘어서자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조금씩 올라온다. 마음이 조급해진다.‘이렇게 어렵게 올라가는데 혹시 해가 불쑥 나와버리면 어떡하나, 빨리 가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앞선다. 굉음을 내며 설령차는 계속 백두산을 오른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차문이 열리면서 내렸다. 다행히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백두산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거세게 몰아치는 눈보라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기상대가 있는 주차장에서 천문봉까지는 걸어서 10여분. 일행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천문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중학생을 둔 주부 홍복순(46)씨, 겨울산이 난생 처음이라는 정준호(47)씨도 고개를 숙인 채 천문봉을 향해 기어오른다. 만주벌판 저쪽 흐린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든다. 대륙의 저쪽에서 시작된 차고 거친 바람은 백두의 16개 봉우리를 타 넘어 천지에 부딪치고 솟구치며 눈과 함께 얼굴을 강타한다. 그래서 눈썹에는 하얀 고드름이 생기고, 덜덜 떨린다. 어느 누구 하나 바람과 추위를 피해 내려가자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발 아래 천지는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눈보라가 소용돌이치며 우리의 아픈 역사를 뱉어내고 또 뱉어냈다. 모두 천문봉에 손을 잡고 섰다. 갑자기 누군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어느덧 차가운 백두의 머리끝에서 하얀 입김을 뿜어내면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애국가를 불렀다. 장엄하게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첫머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붉은 태양을 기다리며 우리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추위 속에서 그 애틋한 기다림 끝에 먼 구름 사이로 거짓말처럼 붉은 덩어리가 솟는다. 자신의 몸을 열어 고귀한 생명을 품듯 시뻘건 태양이 나타난다. 숨이 멎고 맥이 풀린다.‘와’하는 탄성조차 지를 수 없는 신성함에 고개가 먼저 숙여진다. 이날 백두의 아침은, 아니 한반도의 신새벽은 이렇게 찬란하게 시작했다. 광활한 붉은 바다를 향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내려왔다. 뜨거워진 가슴으로 추위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박욱기(33)씨, 추위의 고통이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날아갔다는 김남순(39)씨, 평생에 잊지 못할 아침을 맞았다는 김용국(45)씨. 함께했던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저마다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백두산 천문봉을 내려왔다. # 하얗게 변한 천상의 호수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천지를 보러 나섰다. 산장 주변에는 일반인들을 위해 옷, 신발, 장갑 등을 빌려준다. 아이젠이 달린 털장화와 털점퍼는 각각 3000원,4000원에 빌려주며 마스크는 1000원, 장갑은 3000원에 판다. 그러니 장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백두산 온천지역에서 장백폭포를 거쳐 천지까지 왕복 3시간이 걸린다. 매표소 입구부터 백두산의 이름이 실감난다. 산 정상 부위가 화산활동으로 인한 부식토로 하얗게 뒤덮여 ‘머리부분이 하얗다’해서 붙여진 이름처럼 순백으로 변한 백두산은 입구부터 아름답다. 10여분을 오르자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매달린 거대한 얼음 사이로 굉음을 내며 물줄기가 떨어진다. 이름하여 장백폭포.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거의 물이 얼지 않고 흐른다. 장백폭포 산장을 지나자 터널이 시작된다. 터널 속 ‘가파른 천 개의 계단’을 올라야 천지를 만날 수 있다. 문을 열고 터널로 들어섰다. 좀 답답하다. 하지만 차디찬 눈보라를 맞지 않고 천지까지 갈 수 있다는 데야 어디 문제인가. 천지로 가는 터널은 관광객을 위해 한국인이 5년여 걸친 공사 끝에 2003년에 완성했다고 한다.35년간을 사용하고 중국측에 기부채납을 한단다.‘참 우리나라 사람은 불가능을 모르는 민족이야. 이렇게 가파른 곳에 터널을 만들 생각을 했으니.’ 가파른 천 개의 계단은 4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지 않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등산을 하는 기분이 든다. 어느덧 터널의 끝쪽 문에서 휴식을 한다. 밖의 기온이 낮아 몸에 난 땀을 식히고 나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문을 열고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친다.‘역시 쉽게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구먼.’ 하지만 난간 옆으로 물이 흐른다. 참 대단하지 않은가. 영하 30도에도 얼지 않고 이렇게 물이 흐르다니. 바로 이 물이 천지에서 흘러 ‘승사하’를 이루고 중국 송화강의 출발점이다. 승사하를 지나자 본격적인 백두의 품이다. 양쪽으로 깎아지르는 용문봉과 천문봉이 우뚝하고 곳곳에 작은 바위들이 시베리아의 벌판을 연상케 한다. 세찬 눈보라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나타나는 잊지 못할 광경에 연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 정상에 이런 거대한 봉우리들과 천지라는 커다란 호수를 품고 있으니 경이롭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거센 눈보라를 맞으며 20여분 걷자 공룡 동상이 나온다.“와∼천지다.”하며 모두가 하얀 얼음판으로 뛰어든다. 맞다. 바로 여기가 백두산 천지, 하늘의 연못이라는 이곳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무려 둘레가 14.4㎞, 최대 너비가 3.6㎞, 최대 깊이가 384m인 연못. 어떻게 이런 산 정상에 커다란 호수가 있다고 누가 상상을 할 수 있겠는가. 모두 천지에 뛰어들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아예 드러누운 장희순(39)씨는 “만세 만세”를 외치며 “여기가 천지예요.”라며 북받쳐 오르는 감격에 말을 잇지 못한다. 바람에 연신 눈을 비비며 “한번이라도 더 봐야지. 내가 평생에 언제 다시 여기를 밟아 볼 수 있겠어요.”라는 유현진(53)씨의 눈에는 이슬이 맺힌다. 친구들과 함께 중국 여행을 한다는 천안 나사렛대 문성진(21)씨는 “남쪽의 산들과 달리 웅장하고 위엄있는 모습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라며 “좀 춥지만 정말 오지 않았으면 너무 후회할 뻔했습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이렇게 다들 백두산의 정기와 천지의 성스러움은 우리를 감동에 빠지게 했다. # 색다른 백두산의 별미 백두산의 또 하나 명물은 온천이다. 온천물의 온도가 섭씨 82도로 아주 뜨거워 계란을 담가 놓으면 자동적으로 삶아진다. 이렇게 삶은 계란은 정말 특이하다. 손으로 계란의 반을 잘라보면 흰자위는 반숙, 노른자위는 완숙이다. 먹기가 부드럽고 좋다. 온천수의 효능 때문이란다.3개에 1000원이다. 아주 맛있다. 주변에는 온천장이 몇 개 있다. 입장료는 1만원. 비싸다고 생각하지 말고 들어가면 정말 색다른 경험이 기다린다. 물이 좋은 것은 기본이고 노천으로 나가보라. 고드름과 흰눈이 쌓인 탕에 몸을 담그고 백두산의 이름 모를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1분도 안 돼 머리카락이 얼어버린다. 그러면 탕에 얼굴을 담가 녹이면 된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하얀 눈가루가 탕을 휘감아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이 정도면 겨울 백두산의 참맛을 만끽했다고 할 것이다. # 민족의 혼이 서려 있는 연변 예전에 만주로 불렸던 연변지역에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다. 곳곳에 항일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으며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이 지역에는 우리 조선족을 위해 간판에 모두 한글과 중국어가 병행 표기돼 있어 외국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한국 돈’이 거의 모든 식당과 상점에서 통용이 될 정도로 한국적인 곳이다. 다만 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나라 70년대를 보는 듯하다. 훈춘 주변에 안중근 의사 유적지는 안중근 의사가 한달 동안을 머무르며 거사를 준비했던 집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마당에 유적비도 있다. 연길 근처인 용정에는 우리 가곡 ‘선구자’의 일송정과 해란강을 만날 수 있다. 연길에서 용정으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보이는 야트막한 산 위에 자리잡은 조그만 정자가 바로 일송정. 전에는 늠름한 자태의 소나무가 서 있었다고 하나 일제에 의해 고사당하고 지금은 작은 소나무 한 그루와 정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한 민족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대성중학교가 있다. 현재 용정 제일중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현지 학생들이 공부를 한다.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구관 앞에는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고 건물 2층에는 사진, 화보, 책자 등 윤동주 시인의 기념전시관이 꾸며져 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남양시와 중국 도문을 연결하는 도문대교, 북한의 나진 선봉과 훈춘을 연결하는 권하대교 등이 있어 멀리서나마 북한땅을 바라볼 수 있다. 지금은 훈춘시청으로 쓰이는 간도 일본총영사부는 ‘토지’드라마에서 길상이가 폭파하려고 했던 건물이다. 밀강 민속마을에 강운학(79) 박옥선(80)씨 노부부의 집은 60년 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함북 흑룡군과 연결된 사만자대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구소련군 폭격으로 끊어진 채로 있었다. 이처럼 백두산을 가는 길에 둘러볼 만한 유적지와 역사적인 흔적이 많아 산 교육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백두산 관광의 선두는 동춘항운은 2000년 4월 28일 우리나라의 속초에서 러시아의 자루비노 항을 경유하여 중국의 훈춘시를 연결하는 최초의 해륙을 연계한 카페리 항로.즉 ‘백두산항로’라는 이름 아래 매년 여객 및 컨테이너 화물 등을 운송한다.또한 2003년 11월 6일부터 러시아 연해주의 수도이자 물류의 중심지인 블라디보스톡항까지 연장 운항을 하고 있다. 동춘항운 부설 준여행 에서는 이 카페리를 이용해 중국 백두산과 러시아 등을 여행하는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겨울철에 중국 연변지역 관광과 백두산을 오를 수 있는 6박7일 상품이 39만9000원,백두산을 서쪽에서 북쪽을 종주하는 5박6일 상품이 68만원,러시아 블라디보스톡과 하바로프스크 등을 열차로 여행하는 6박7일 상품이 79만원 등이다.www.dongchunferry.co.kr ,(02)720-0271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1)끝. 새날의 희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1)끝. 새날의 희망

    ‘정감록’ 연재도 막바지라 맺음말이 없을 수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예언문화를 다각도로 다루려 노력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화제는 조선후기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바로 그 시기에 ‘정감록’이 등장했고, 그것이 한동안 정치 및 종교운동의 모태가 되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엔 이른바 ‘정감록’ 사건이 참 많기도 했다. 그런데 ‘정감록’은 과연 무슨 사상을 담고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때가 많다. 아무리 ‘정감록’을 읽어봐도 어떤 체계라든가 사상성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설사 ‘정감록’에 예고된 정진인(鄭眞人)의 세상이 된다 해도, 그것은 또 하나의 왕조일 뿐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잘 알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 은 예수의 재림이 가져다 줄 인류역사의 완성을 예언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 ‘정감록’은 기껏해야 왕조교체를 논하는 수준이란 평가다.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정감록’이란 텍스트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정감록’을 읽는 나의 방법은 적혀 있는 글자만 읽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문화적인 맥락에 비추어 읽는 방식이다. 텍스트의 안과 바깥을 부지런히 오가며 ‘정감록’을 읽는 것이다. 그러면 수수께끼가 풀린다. ●정감록, 지배이데올로기에 맞선 대항이데올로기 ‘정감록’은 조선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 맞서 평민 지식인들이 준비한 대항 이데올로기였다. 이 점은 19세기 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한 여러 신종교의 가르침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동학·증산교 및 원불교는 하나같이 곧 밝아올 새 세상을 노래했다. 그들이 선포한 새날은 ‘정감록’이 민중에게 약속한 새 나라였다. 그것은 역사상 존재했던 여러 왕조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새 하늘, 새 땅이었다. 새 날의 모습은 성리학자들이 추구해온 목가적 이상세계와는 달랐다. 그것은 ‘정감록’으로 빚은 대항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다. 연재 가운데 이미 검토된 사실이지만 동학과 같은 새 종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17세기 이후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런 운동은 ‘정감록’을 매개로 평민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신종교 운동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나름대로 조직적 경험과 이론을 확립해갔다. 마침내 19세기 후반에는 동학이란 교단으로 화려하게 부활해 민중에게 널리 지지를 받았다. 최제우의 동학은 ‘정감록’운동의 터전 위에서 창립된 것으로,‘정감록’없이는 동학도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옳다. 나중에 동학의 교명을 천도교로 바꾼 손병희 같은 지도자도 ‘정감록’을 무척 중시했다. ●오만년 대운, 전환기의 괴질 동학을 비롯한 여러 신종교에서는 조선왕조가 망하고 나면 새 세상이 열린다고 보았다. 바로 ‘정감록’에 예언된 정진인의 나라다. 그때가 되면 문자 그대로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롭고 복된 사회가 건설된다고 한다. 이를 두고 오만년대운(五萬年大運)이 새로 시작된다고 표현했다. 동학의 경전 ‘용담유사’에는 ‘오만년’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한다.‘용담가’에 “한울님 하신말씀 개벽 후 오만 년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라는 대목이 있다. 세상이 열린 지 오만 년 만에 최제우가 큰 가르침을 열었다는 말이다. 최제우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이상적인 종교를 창립했다며,“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만세일지 장부로서 좋을시고”라고 했다. 불교와 유교는 이미 낡은 것이 되었고, 이제는 인류 최상의 가르침인 동학을 통해 새 세상을 건설할 때라는 것이다. 최제우는 동학의 유행을 천운(天運)이라 했다. 그러면서 보통사람들은 근심걱정 없이 이러한 시운에 따라 최제우가 가르치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했다. 최제우에 앞서 세상이 바뀔 거란 점을 누누이 강조한 것은 ‘정감록’이었다. 그 유행에 힘입어 사람들은 최제우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정감록’엔 새 세상이 밝아올 때 여러 가지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고 예언돼 있다. 전쟁과 질병과 굶주림이 그것이다. 최제우는 ‘정감록’ 예언을 대폭 수용해 과도기의 징후를 ‘몽중노소문답가’에서 이렇게 정리한다.“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는가.” 여기서 말하는 십이제국이란 문자 그대로 열두 나라가 아니라 온 세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온 세상이 정체불명의 질병으로 시달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다른 곳에서 그는 ‘삼년괴질’이니 ‘연년괴질’과 같은 말을 한다. 요컨대 여러 해 동안 인류가 조류독감이나 에이즈와 같은 질병으로 시달린 다음에 “개벽”이 완성된다고 보았다. 이것은 마치 성경에서 말세에 큰 환란을 겪은 뒤 예수가 재림한다는 식이다. 조선 후기엔 천주교가 수용되어 종말론이 널리 전파되었다.‘정감록’에 기록된 환란도 그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최제우의 동학 역시 마찬가지다. 동학은 이름부터 천주교(서학)에 반대한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지만, 그 주장이 꼭 대립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동학을 계승한 증산교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증산교의 창립자 강일순은 한국에 출생하기 전에 로마 교황청 꼭대기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고 했다. 그는 서양신부 마테오리치를 중국으로 파견한 장본인이라고도 했다. 이런 증산교도 전환기에 찾아올 환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강일순의 생각은 동양적이었다. 그는 이른바 괴질의 원인을 과거의 모든 악업(惡業)과 신명들의 원한과 보복이 쌓인 것이라 했다. 악업과 신명을 강조한 점에서 그의 생각은 다분히 불교적이다. 강일순은 괴질의 발생을 사계절과 비교한다. 봄과 여름에는 큰 병이 없다가 봄여름의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가 가을에 접어드는 환절기에 병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말세에는 이런 식으로 큰 병이 세상을 휩쓸게 되는데, 한국에서 최초 발병자가 나오며 병을 치료할 구원의 도(道) 역시 한국에서 일어난다 했다. 괴질은 전라북도 군산과 순창에서 발생해 49일 동안 전국을 휩쓸고는 외국으로 건너가 3년 동안 전 세계를 휩쓴다. 이것이 강일순의 예언이다. 그는 한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간주했는데 이런 사고방식은 ‘정감록’에서도 확인된다. 동학의 최제우 역시 오만년 대운을 열 새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한국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겼다. 19세기 한국은 내우외란이 겹쳐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외래종교인 천주교가 들어와 전통사상이 도전에 직면했다. 이런 판국이라 ‘정감록’을 비롯한 각종 예언은 더욱 인기를 끌었고, 마침내 말세의 환란과 새 세상에 대한 기대가 꽃을 피웠다. 동학과 증산교의 등장이 바로 그 보기다. ●새 세상은 미륵세상 최제우의 글에는 새 세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강일순의 경우는 달라 다가올 세상을 비교적 자세히 예고했다. 언제나 발뒤꿈치를 땅에 붙이고 살기 마련인 사람들도 하늘에 올라갈 수 있게 된다 했다. 새 세상은 밤도 낮처럼 환해지며, 들에는 백가지 곡식이 풍성하고 만 가지 과일이 다 굵고 커, 음식이 풍성하게 된다. 아름다운 옷도 무척 흔해진다. 강일순이 꿈꾼 새날은 의식이 풍족하고 교통이 편리하게 되며 어둠이 사라진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선 거짓이 사라지고 온갖 차별도 없어지며 수명이 늘어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강일순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말한다. 이제 비행기를 타고 얼마든지 하늘을 날게 되었고, 전깃불로 밤을 밝히게 되었다. 또한 대형 할인마트에는 국산과 외국산을 막론하고 음식과 과일 그리고 의복이 넘친다. 헐벗고 굶주리던 옛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인권이 잘 보장되며 평균수명도 많이 늘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강일순이 예고한 새 세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세상이다.‘미륵하생경’에 비슷한 모습이 더욱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새 세상이 되면 거리마다 번화하기 짝이 없고, 밤마다 향수가 가랑비처럼 내린다 했다. 길바닥은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고 평탄하며, 식량이 풍족해 인구도 번창한다. 보배가 무수하고 감미로운 과일나무, 향기로운 풀과 나무도 무성하다. 기후는 늘 온화하고 화창하며, 계절의 변화가 순조롭고 사람들은 착하고 고운 말만 서로 주고받는다. 대소변을 볼 때면 땅이 저절로 열렸다 닫혀 아무런 냄새도 안 난다. 인간의 수명도 늘어나 보통 8만 4000세까지 살게 된다. 이것이 지금 도솔천에서 수행 중인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건설할 새 세상의 모습이다. 물질이 지극히 풍족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답고, 누구나 심신에 고통을 받지 않고 오래 사는 이상향이다. 불교신자라면 누구나 이런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불교는 오랫동안 한국의 국교였다.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까지 늘 그랬다. 상하를 불문하고 모두 불교를 믿었다. 조선시대에야 사정이 달라졌다.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아 불교를 업신여기는 풍조가 유행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불교적 세계관에 익숙했다.19세기에 강일순이 미래의 이상향을 언급하면서 미륵세상을 사실상 그대로 옮긴 것도 우연이 아니다. 미륵세상은 한국사람 누구나가 지향한 이상향이었다. 그 점을 감안하면 조선후기 신종교운동을 펼친 평민지식인들이 이상세계를 구체적으로 논하지 않은 것도 납득이 된다.‘정감록’에 미래사회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 때는 누구나 미륵세상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정감록’이든 또는 동학의 경전이든 이상향에 관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던 시절이다. 조선시대 민중이 궁금했던 것은 이상향의 모습이 아니라 과연 언제 새날이 밝느냐는 문제였다.‘정감록’이 선포한 새 세상은 미륵세상이란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미륵이 얼마나 중시됐는가는 전국각지에 미륵신앙이 퍼져 있다는 사실에 나타난다. 일제시대 함경도 함흥에서 수집된 무가(巫歌)를 보면, 미륵은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로 인식될 정도였다. 바로 그 “미륵님 세월에는 섬(石)으로 말(斗)로 밥을 배불리 많이 먹고 인간 세월이 태평하였다.” 과거 미륵세상이 태평했다는 대목은 앞으로 다가올 미륵세상이 그러리란 기대를 역으로 투사한 것이다. ●정감록은 후천세계로 귀결 다가올 미륵세상을 신종교에서는 후천(後天)이란 용어로 표현한다. 인류의 역사를 양분해 지난 세상은 선천(先天), 다가올 세상은 후천으로 설명한다. 선천은 각종 모순이 쌓여 불합리하고 상극이 되어 충돌하던 어두운 세상, 후천은 상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밝은 세상으로 본다. 원불교 교조 박중빈은 이미 선천과 후천이 교대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후천세계는 평화롭고 평등한 문명 세상이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차별과 대립이 사라진 지상낙원인데, 한국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정감록’이 기약했던 정진인의 나라는 결국 후천세계로 귀결되었다. ■ 정감록과 임진왜란 ‘정감록’이 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임진왜란이었다. 선조25년(1592)에 일어난 왜란의 여파는 무척 컸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돼 전쟁에 관한 예언이 수집되었다. 일종의 사후 약방문인 셈인데, 그것은 뒷날 ‘정감록’에 녹아들었다. ‘조선금석총람’ 하편을 보면 세조5년(1459) 원각(圓覺)이란 승려가 81세를 일기로 입적하며 앞날을 예언했다. 자기가 죽고 130여년이 지난 뒤 고래 같은 도적(왜적)이 쳐들어와 나라가 의지할 곳을 잃게 된다고 했다. 그 때가 되면 산과 냇물에 시체가 쌓이고 피가 천리를 적시는데 서쪽(중국) 병사들이 와서 구원하리라 했다. 임진왜란 발생과 경과를 대강 맞춘 셈.‘산과 냇물에 시체가 쌓인다.’는 식의 표현은 ‘정감록’에도 보인다. 원각은 참혹한 전쟁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늘의 신들이 도와주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그는 향불을 태우며 무릎꿇고 관세음보살의 주문을 외우면 화를 입지 않게 되며 오래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당시 유행한 예언서에 “적은 부산에서 일어나 부산에서 그친다.”라고 돼 있었다 한다. 임진왜란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경상도 부산포에서 시작돼 어찌보면 거리가 매우 먼 평안도 부산에서 끝난다는 이야기였다. 보통은 잘 모르고 있지만 평양 서쪽 30리에 부산 고개라는 곳이 있다. 그 왼쪽 언덕에는 사람 모양의 석상이 있는데 언제 누가 무슨 일로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한다. 임진년(1592년) 봄, 석상이 피를 흘려 이웃한 부산 고개까지 흘러 내렸다. 전쟁이 일어날 징조였다. 전라도 광양에선 돌에 적힌 예언서가 발견되었다. 쇠무덤(鐵叢)이라 알려진 곳에서 출토된 예언서에는 이상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동쪽으로 시오리 되는 곳에 황금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면 만 배 이익이 될 것인데 그리 되면 아들은 능지기가 되고 노비가 능 주인이 되어 상하가 뒤집힌다. 승려가 승려노릇을 그만 두고 선비가 붓과 먹을 버리게 되며, 베 짜는 여인이 베틀을 버리고 농부가 쟁기를 버린다.” 상하의 질서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본업에 충실하지 않는 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예언이었다. 비슷한 표현이 ‘정감록’에도 있다. “임진년에는 나라가 셋으로 갈라졌다가 계사년에 다시 평정되리라. 말해 또는 양해에 다시 태평하여질 것이다. 두류산에 들어가 난을 피하는 것이 제일이다. 호서는 조금 편안하고, 한양에 도읍하면 마땅히 팔백년을 갈 것이다. 당나라 병사가 임진강을 건너면 국운이 2백년은 더 하리라.” 이 대목은 ‘정감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삼국으로 갈라졌다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 말해와 양해가 대길하다고 예언한 것은 모두 ‘정감록’에 수용되었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한 번 나온 예언은 어떤 식으론가 계승되게 마련인 것을 알 수 있다. 선조 때 명신인 이항복에 관한 이야기도 전한다. 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 겨울날이었다. 이항복이 퇴궐해 막 집에 도착하자 청지기가 뛰어 나와 어느 괴상한 남자가 뵙자고 야단이라 하였다. 그 사나이는 헤진 갓에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있었다. 더러운 누더기를 몸에 걸쳤고 좁은 바지 자락은 정강이까지 돌돌 말아 올렸는데 얼굴은 큰 돌 같았고 키가 무척 컸다. 붉은 입을 괴물처럼 열고 한참 동안 무슨 말인가를 늘어놓은 뒤 갑자기 사라졌다. 이웃집에 살던 이덕형이 이를 목격하고 사정을 캐물었다. 이항복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를, 그 사나이는 자칭 백악산의 야차(범어의 yaksa, 두억시니)라고 하는데 장차 내년에 큰 난리가 터질 텐데 아무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어 이렇게 내게 알려주러 왔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야차는 10세기 초 철원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토성 신을 연상케 한다. 그는 고려태조의 등극을 알리는 ‘고경참’을 시장에 내다 판 것으로 돼 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경제플러스] ‘대한전선 50년사’ 발간

    대한전선은 28일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1955년부터 올해까지 50년간의 발자취를 그린 ‘대한전선 50년사’를 발간했다. 사업 초기의 에나멜선부터 최근의 FTTH(광케이블)까지 우리나라 전선제품의 발달사와 함께한 대한전선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담아냈다. 대한전선과 한 가족이 된 옵토매직, 대한벌크터미날, 무주리조트, 쌍방울, 해외 사업장인 M-TEC, 스카이텔의 사업활동을 담은 화보도 실려 있다.
  • 20세기 문화계 불멸의 발자취

    문화·예술계에서도 수많은 별들이 스러져갔다. 보통 사람들의 전형인 윌리 로먼을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통해 창조한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가 8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의 남편으로도 유명하다. 유대계 미국인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 솔 벨로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소설 ‘허조그’‘오기 마치의 모험’등을 통해 현대인들의 불안과 문화적 충돌을 천착했다. 30년간 미 NBC방송의 ‘투나잇쇼’를 진행하며 유머와 신랄한 정치적 풍자로 미국인들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 토크쇼의 황제 자니 카슨은 79세로 타계했다. CBS의 댄 레더,NBC의 톰 브로코와 함께 미국 3대 공중파 방송인 ABC의 간판 앵커로 활동해온 피터 제닝스는 폐암으로 숨졌다. 제닝스의 ‘퇴장’으로 미국 방송 앵커들의 세대 교체가 마무리됐다. 그런가하면 영화 ‘졸업’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미국 여배우 앤 밴크로프트도 73세로 생을 마쳤다. 그녀의 명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이밖에 미국의 전후 냉전 정책을 주도했던 역사학자이자 외교관인 조지 케넌,‘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려왔던 실천하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도 올해 생을 마쳤다.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아미엘 인생일기/이희영 옮김

    아미엘 인생일기/이희영 옮김

    ‘우리 자신을 지키는 두 개의 날개가 있다. 하나는 단순함(simplicity)이고 또 하나는 순수함(purity)이다.’ 프랑스계 스위스 철학자였던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1821∼1881)이 일기에 남긴 말이다. 제네바 대학에서 미학과 철학을 가르쳤던 아미엘은 여러권의 시집과 평론서를 냈음에도 거의 주목받지 못하다가 사후 그의 일기가 출판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그의 일기에 대해 톨스토이는 ‘지상 최고의 일기’, 피천득은 ‘맑고 순수한 영혼과의 대화’라며 극찬한 바 있다. ‘아미엘 일기’ 완역판이 국내에선 처음으로 ‘아미엘 인생일기’(이희영 옮김, 동서문화사 펴냄)란 타이틀로 번역 출간됐다. 아미엘은 프랑스계 스위스인으로서 그의 일생은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 밑에서 자랐으며, 평생을 기관지염으로 고생했다.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이성과 공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특이한 성격때문에 독신으로 살았다. 대신 그는 고독하고 복잡한 내면의 성찰과 명상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18세부터 죽기 직전인 60세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생 모두가 담긴 ‘아미엘 일기’는, 스스로 세상과 담을 쌓을 정도로 소심한 철학가가 자신의 내면을 파헤쳐, 자기 분석의 즐거움과 기쁨을 찾아가는 순수한 영혼의 발자취이다. 그의 일기는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쓴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인간적이다. 그가 가졌던 인생에 대한 물음, 인간에 대한 의문, 그의 사상과 행복, 고독과 비애 등 한 인간으로서의 아미엘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아미엘은 활동적인 생활방식보다는 명상적인 생활방식을 중요시했다. 하지만 그것을 무거운 짐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생활방식의 원인이 현실 생활의 결함, 자기포기의 두려움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은 고독한 생활을 고집했지만, 가족과 친척·친구들의 안위에 관심에 많았으며, 국가 정책이나 사회문제 등에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일기는 수양록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도 자기만의 세계로 몰입되지 않아 읽는 이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아미엘이 남긴 일기 원본은 1만 7000장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또 일기 특성상 일정한 주제나 제목, 내용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인생에 대하여’‘사랑에 대하여’‘남자, 여자에 대하여’ 등 12개 주제로 편집자가 임의로 나누었다. 아미엘은 이 일기를 통해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가치, 인생의 의미, 삶의 고뇌 등에 대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정 산다는 게 무엇인지 곱씹어보게 하는 책이다.2만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대전 향토기업 뿌리째 ‘흔들’

    장류생산업체 ‘해찬들’이 22일 CJ에 매각되는 등 대전지역 향토기업이 잇따라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해찬들은 이 날 “2000년부터 CJ와 절반씩 지분을 갖고 경영해오다 해찬들 지분 모두를 CJ에 750억원에 매각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1973년 삼원식품으로 출발,2000년 현재의 회사명으로 바꾼 이 회사는 고추장·된장 점유율이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향토기업 가운데 하나다. 지난 달에는 화장지 생산업체인 대전모나리자가 법정관리가 끝나면서 서울모나리자로 경영권이 넘어갔다.30년의 향토기업으로서의 생을 마감했다. 대전·충남을 기반으로 하는 소주생산업체 선양은 지난 해 대구에 본사를 두었던 벨소리공급업체 ㈜5425에 매각되는 등 잇따라 대전지역 향토기업들이 사라졌다. 향토기업의 몰락은 1995년 신진건설 부도를 시작으로 2년 후 영진건설이 쓰려지고 그해 말 IMF가 터지면서 더 가속화됐다.충청은행이 하나은행에 합병되고 중앙생명, 중부리스, 한길종금 등이 줄줄이 합병, 퇴출되면서 향토 금융기관은 자취를 감춘 상태다. 대전백화점 부도에 이어 동양백화점도 갤러리아백화점에 넘어갔고 70년대 대전경제를 주도하던 충남방적과 풍한방적은 겨우 명맥만 유지 중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행정도시 건설 등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지만 이를 견인하는 향토기업이 많이 사라져 호기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22)차만들기와 다도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22)차만들기와 다도

    세상이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요란하다. 전쟁터가 따로 있는 것 같지 않다. 모든 정보가 소통되는 우리의 일상자체가 바로 전쟁인 것이다. 하루 하루 터지는 메가톤급 충격들은 사회지도부들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의 삶까지도 황폐하게 하고 있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는 언젠가 ‘동티’가 나게 마련이다. 서로 자기 몫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계층과 계층의 갈등이 우려스러울 만큼 그 진폭이 커지고 있다. 탄탄한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정보화시대라 할지라도 인간의 감성과 이성까지는 통제하기 어렵다. 극단적인 감정의 증폭은 극단적인 일탈행위를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람들, 어린자식들과 함께 자살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조카의 전재산을 가로채고도 모자라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는 삼촌.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다. 참담한 우리 현실의 요체는 바로 잘못된 견해와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결국은 올바른 마음의 결여에서 모든 것들이 비롯된다는 것을 지금 세상의 갈등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차를 한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다. 나와 자연, 나와 객체, 나와 주변인들과 그 맑고 청아한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다. 그 나눔속에는 차가 가진 진실한 삶의 투명성과 그속에 깃든 건강성을 함께 나눈다는 뜻이기도 하다. 초의스님은 청아한 찻자리속에 깃든 삶의 투명성과 건강성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인 가신지 3천년/도는 사라져 세상은 혼돈스럽네. 홀로 한가로운 세월을 보내고자/문닫고 시서에 충실하네. 마음은 오래전부터 천진하고/덕스런 공업 충과 효도 드높였지. 아름다운 소문 한 시대 흔드니/높은 분의 발걸음 누추한 집 문에 멈추네. 굳게 사양하고 스스로 자취를 감추어/세상 사람의 논평 받기를 피했네. 끝내 인간사를 던져 버리고/구름 걸친 숲속으로 시끄러움을 피해왔네. 내가 은둔해 산다는 말을 듣고/구름 헤치고 송헌에 이르렀네. 샘물 길어 뇌소를 끓이고/향을 사르고 청담을 나누었다네. 영특한 자태 학인 양 고고하고/맑은 담론은 이슬이 서린 듯 하네. 저녁별도 장차 저물려 하니/세월이 빨리 달아남을 한탄하네. 마치 숲속의 난초가/장차 그 풍성함을 하직할 듯하네. 장부가 만약 도가 있음을 알았다면/마땅이 ‘조문도’란 말을 되새겨야 하리. 이미 깊고 얕음을 알 수 있다면/모름지기 참과 거짓을 구별해야 하리. 사라지고 자라는 이치를 자세히 탐구하여/죽음과 삶의 뿌리를 뚜렷이 밝혀야지. 미세하고 오밀함을 자세히 연구하면/곧 양생의 이치를 깨닫게 되겠지. 청정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면/남의 도움을 무엇하러 바라겠나. 부귀는 하늘이 준 복이 아니고/꾸밈도 본래의 향기는 아니라네. 영대가 원래 튼튼한 터전이니/슬기로운 몸은 원래 청정한 근원일세. 마음은 백옥경에 노닐고/이름은 자미원에 빛났네. 이로움을 찾던데서 고개 돌려 보면/하늘과 땅이 곧 하나의 울타리인 것을” 조선시대 고절한 선비 중 한분이었던 김인항과 차담을 노래한 초의스님의 시다. 뛰어난 선비였던 김인항은 인간사를 내던져버리고 은인자중하며 시서에 충실하며 국가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심을 가꾸며 살고 있었다. 초의스님은 그런 김인항의 삶과 죽음에 대해,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속세의 갈등에 대해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청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일지암 찻자리에서 갈파하고 있다. 고절한 삶을 살아가는 두사람이 아름답게 가꾸는 찻자리에서 진정한 차인들의 나눔은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다.‘행다’즉 차를 하는 행위의 핵심은 바로 삶의 투명성과 건강성을 함께 나누며 공유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찻자리는 그런 점에서 근원적으로 마음의 가라앉힘이며 쉼이다. 차를 끓이는 방법인 행다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잎차를 우리는 팽다법(烹茶法), 말차에 푹익은 물을 부어 휘젓는 점다법(點茶法), 차를 물에 넣어 끓이는 자다법(煮茶法)이 있다. 우리는 흔히 팽다 점다 자다 모두를 뜻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전다(煎茶)라는 말을 써왔다. 행다란 한발짝 더 나아가 차를 끓여서 대접하고 마시는 일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다는 기교나 멋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다는 차를 잘 우려마시는 질서를 갖추는 것을 의미하지만 근원적으로는 마음과 정성을 담은 행위로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행다는 차의 품성에 맞춰 차 고유의 맛을 내는 데 정성을 들이며,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분수에 맞는 넉넉함이 있으며, 물과 불 차와 다구 손님과 주인 등이 모두 하나가 되어 함께 즐기는 것이다. 행다는 우선 찻 자리에 있는 그 누구 한사람이라도 불편함이 없이 편안해야 한다. 풍요롭고 행복한 기운이 나는 가운데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모든 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흐르는 동선이 간결하고 과장됨이 없어야 한다. 차의 예절법이 풍요롭고 행복한 느낌이 드는 쉼터 같은 것이 될 때 진정한 행다가 되는 것이다. 행다와 함께 중요한 것이 바로 투다법이다. 투다(投茶)란 차를 내는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다. 다관의 물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서 차의 맛과 향 그리고 색은 크게 달라진다. 또한 차를 먼저 넣느냐, 나중에 넣느냐에 따라, 또는 계절에 따라 마시는 방법을 나눈 분류법이다. 먼저 상투법(上投法)이다. 상투법은 다관에 먼저 일정량의 물을 붓고 어느정도 식힌 다음에 차를 넣는다. 차를 물위에 떨어뜨린다고 해서 상투법이라고 한다. 햇차가 나오기 전인 봄과 초여름에 많이 이용하는 상투법으로 우려낸 차는 찻잎의 밑부분만 우러나기 때문에 담백하고 은은한 차향이 난다. 중투법(中投法)은 다관에 먼저 우려낼 물을 반쯤 붓고 그 다음에 찻잎을 넣고 다시 남은 반은 물을 붓는 방법으로 차를 우려내는 것을 말한다. 중투법은 중정의 묘를 상징한다는 다소 철학적인 발상까지 깃든 투다법 중 하나로 흔히 가을에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중투법은 차를 잘 우려내기 위한 기교적인 측면이 강하다. 중투법은 여러 가지로 번거로운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많이 쓰이지 않는다. 먼저 다관에 물을 붓고 차를 넣어 우려내는 하투법(下投法)은 우리가 현재 일상에서 흔히 쓰고 있는 방법이다. 하투법은 계절을 가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차의 빛깔과 향 그리고 맛의 작용을 가장 활발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적절한 차의 음용법이라고 본다. 상투법은 다관에 물을 부어 차를 우려낼 수 있는 알맞은 온도로 낮춘 다음 차를 넣어 우려낸다. 이같은 방식은 차가 물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상투법이나 중투법에 비해 우려내는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은 행다를 위한 기본적인 다구와 다례 절차다. 행다를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최소한의 다구는 다음과 같다. 찻주전자인 다관, 찻잔과 찻 잔받침, 퇴수기, 물식힘 그릇인 숙우, 찻물 그리고 차다. 일상생활에서 다도는 간편성이다. 언제 어디서나 마실 수 있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를 마시는 데 최소한의 다구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본다구가 갖추어진 다음에는 다구를 배치하고, 다구를 청정하게 하고 예열한다. 그리고 차 넣기, 차 우리기, 차 따르기, 차 마시기, 다과먹기, 재탕, 우리기, 마무리 등 순서에 따라 다례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모든 절차가 생략된 일상생활다례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약다법과 점다법은 바쁜 현대인들이 사무실에서 차를 마셔야만 되는 직장인들에게 알맞은 방법 중 하나다. 먼저 약다법이다. 물을 끓인후 다관과 찻잔을 헹군다. 탕수를 식힌 후 차를 넣는다. 탕수를 붓고 찻잔을 비우고 숙우에 따른다. 그리고 첫차를 마신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하며 대화를 나누며 재탕 삼탕을 함께 마시는 것이다. 다음은 말차를 마실 수 있는 기본점다법이다. 먼저 물을 끓인다. 그리고 찻솔을 적신다. 유발과 다완을 행군 후 유발에 말차를 떠넣는다. 탕수를 조금 부은후 휘저어서 진한 죽다를 만든 후 탕수를 다시 붓는다. 그리고 재빨리 휘저어 유다를 만든 후 다완에 따른다. 차를 마신 후 유발을 씻고 닦은 후 탕수를 나누어 마신다. 우리의 전통적인 의식다도는 28가지에 이르는 많은 종류의 다구를 사용해 30여가지 절차로 진행됐다. 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에 시도 읊었을 뿐만 아니라 춤과 음악을 듣고 보는 다악공연도 함께 펼쳤다. 그같은 의식다도는 현대인들의 삶과는 너무도 큰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일상생활에서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차를 고르고, 물은 잠재운 수돗물이나 생수를 이용해 정돈된 마음의 질서를 유지하며 차를 마시는 행위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일상다례인 것이다. 번거로운 절차를 피해, 간략하면서도 격식을 유지하며 차를 마시고 그 차를 통해 몸과 정신이 건강해질 수 있는 계기를 끊임없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상 차인의 길이다. 일지암 암주 ■ 다구와 용어들 우리가 차생활을 하면서 접하는 차용어들은 매우 소수다. 그러나 다관에서부터 물의 종류 그리고 차의 종류와 관련해 무수히 많은 차의 용어들이 있다. 대부분 과거의 말로 이루어진 차의 용어들은 많은 부분 수정되거나 개편되어야 한다. 이 중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설명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다구다. 다구를 살펴보면 기본다구와 보조다구로 나눌 수 있다. 기본다구로는 찻잔 다관 탕관 찻술 차통 찻솔이며 보조다구로는 유발 퇴수기 잔받침 다상 다반 다상보 다건 다포 다과그릇 등이 있다. 다관은 끓인물에 잎차를 넣어 차를 우려내는 주전자 모양의 차우림 그릇이다. 다관은 형태에 따라 손잡이가 옆으로 꼭지와 직각을 이룬 상태로 붙어있는 것을 다병(茶甁), 손잡이를 꼭지의 뒤쪽 반대방향에 상하로 접착시킨 것을 다호(茶壺), 손잡이를 대나무 뿌리 등을 사용해 따로 꼭지와 뒤편에 연결해서 부착시킨 것을 다관이라고 한다. 물식힘 그릇인 숙우 또는 유발은 귀때사발 귀때그릇 귀탕기 차귀뎅이 귀대차사발 등으로 부르며 사발의 한쪽에 귀가 달려 있다. 물식힘 그릇을 흔히들 수구로 알고 있으나 정확하게는 숙우이다. 숙우란 말은 당나라의 육우가 (다경)에서 끓인 물을 담아두는 그릇으로 지칭하고 있다. 찻잔이란 차를 마실 때 쓰는 그릇인 잔(盞)의 총칭으로 은 동 나무등의 재료로 만든다. 찻잔의 종류는 매우 많다. 그런 점에서 찻잔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과 빛깔의 찻잔을 사용하고 있다. 찻잔으로는 찻종, 다완, 찻종지, 찻사발, 뚜껑찻잔, 용수찻잔 등이 흔히 쓰인다. 차를 담아 보관하는 그릇을 차통이라고 한다. 차의 맛과 향을 유지하기위해 차를 덜어서 사용하는 그릇이며 차 나눔 그릇, 흑은 차호로 부르기도 한다. 다탁(茶托)은 찻잔을 받치는 데 쓰이는 다구로 찻잔받침이라고도 한다. 뜨거운 찻잔을 맨손으로 가져가기 곤란하여 받침그릇에 잔을 얹어가는 가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찻물을 끓이는 용기가 바로 탕관이다. 탕관은 돌솥이 으뜸이며 다음으로 자기와 옹기가 좋다. 탕관은 물끓이는 소리가 맑은 것일수록 좋다. 차 솥은 찻물을 끓이거나 차를 덖는 솥으로 생김새에 따라 다정(茶晶·다리가 달린 솥), 다리가 없는 솥인 다부, 주전자와 같이 생긴 솥인 철병 등이 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전기포트나 주전자를 대용해 쓰고 있다. 다음은 찻솔로 불리는 다선이 있다. 다선은 말차용 다구로 다완에 찻가루를 넣고 탕수를 부은 다음에 찻가루와 물이 잘 섞이도록 휘젓기 위해 대통을 가늘게 잘라 만든 것으로 차전이라고도 한다. 차전은 대개 80본 100본 120본 세종류가 있다. 다음은 차를 뜰 때 쓰는 숟갈인 차시, 또는 차측, 물버림 그릇인 퇴수기, 숯불을 피워 차솥이나 탕관을 올려놓고 찻물을 끓이는 다구인 다로, 찻잔등 다구의 물기를 닦는 마른행주 다건, 다판에 까는 무명 또는 삼베 등 천으로 만든 다포, 차를 다룰 때 쓰는 상인 찻상 등이 있다. 이밖에도 우리가 흔히 쓰는 차용어로는 중국의 다구인 여러 가지 다호들, 그리고 중국의 명차·우리나라 차의 이름들이 있다.
  • ‘여성시대’ 서른 잔칫상 풍성

    ‘여성시대’ 서른 잔칫상 풍성

    라디오 ‘국민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MBC ‘여성시대’(표준FM 95.9㎒)가 서른 돌을 기념해 큰 잔치를 연다. 14일부터 5일 동안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서른 살의 여성시대’라는 이름으로 청취자들과 함께 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한 것. 매일 현장 오픈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을 하며, 과거 음악다방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추억의 음악다방’도 열릴 예정이다.‘여성시대’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각종 전시회도 곁들여 진다. 청취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여성 팔씨름 대회(15일), 사랑의 김장 행사(16일), 가족퀴즈(17일)와 노부부 30쌍의 앙코르 결혼식(18일) 등도 마련됐다. 특히 17일 오후 8시에는 각각 한국 포크와 트로트를 대표하는 양희은과 심수봉이 함께 무대에 서는 ‘양심콘서트’가 열릴 계획이어서 관심을 끈다. 30년이 넘도록 전파를 타 청취자들이 대를 이어가며 들어온 라디오 프로그램은 흔치 않다.KBS ‘밤을 잊은 그대에게’(1964),MBC ‘별이 빛나는 밤에’(1969), ‘싱글벙글쇼´(1973) 정도가 우선 떠오른다. ‘여성시대´는 1975년 4월 첫 방송된 임국희 아나운서의 ‘11시의 희망음악’이 그 출발점. 같은 해 10월 ‘임국희의 음악살롱’으로 간판을 바꿨으며,88년 이종환이 마이크를 잡으며 지금의 ‘여성시대’가 정착됐다. 그동안 최장수 진행자였던 임국희(75∼88)를 포함해 이종환 봉두완 이효춘 이덕화 손숙 변웅전 정한용 김승현 전유성 등이 청취자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진행 전후로 정·관계에 몸담은 인사가 많은 점이 이채롭다. 현재는 가수 양희은이 7년째 진행을 하고 있으며, 지난 3월부터 송승환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주부층이라는 한정된 청취계층을 겨냥했던 ‘여성시대’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보통 사람’인 서민들의 사연을 전하며, 고달픈 일상에 따뜻한 벗이 됐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 우리 일상의 진솔한 이야기로 기쁨과 안타까움, 꿈과 희망, 감동을 전달하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98년 IMF 시절, 회사 부도와 아내의 가출로 인해 아기와 함께 삶을 끝내려던 젊은 가장의 목숨을 구했는가 하면 청취자의 제보로 모녀 사기단도 붙잡았고, 한 가족은 생계를 꾸리던 화물차를 도둑맞았다가 ‘여성시대’에 사연이 소개되고 난 뒤 청취자들의 제보로 이를 되찾기도 했다. 그동안 ‘서울특별시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400호 여성시대’ 앞으로 찾아온 사연만 줄잡아 270여만 통. 하루에 약 250통이 들어온 셈이다. 사연 하나가 편지지 4장 정도(1m)로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과 부산을 3.5회 왕복하고 에베레스트(8848m)를 339번,63빌딩(264m) 1만1363개를 쌓을 수 있는 분량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유럽 카페 산책/이광주 지음

    1944년 8월25일 파리가 독일 점령군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함성을 올리며 거리로 쏟아져나온 사람들은 성당을, 혹은 개선문 무명용사의 묘를 찾았다. 그리고 이어서 그들이 찾은 곳은 카페였다. 피점령하에서 단골들이 기약도 없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면서 빈집처럼 생기를 잃었던 카페가 활짝 되살아났다. 커피와 차 문화가 낳은 카페 문화는 그야말로 유럽적 토포스다. 커피나 차가 유럽에 전래된 것은 17세기이며 카페가 생겨난 것은 그 얼마 뒤인 17세기 중엽. 유럽에서 카페를 들여다보면 그 거리, 그 도시의 표정이, 그곳 사람들의 심상 풍경이 엿보인다.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해 연구해온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가 유럽의 명문 카페 순례기 ‘유럽 카페 산책’(열대림 펴냄)을 냈다. 카페의 기원인 아스탄불의 카페를 시작으로 파리, 베네치아, 로마, 런던, 빈, 프라하, 부다페스트까지 유럽 주요 도시에 있는 카페를 통해 유럽 문화를 들여다 본다. 괴테, 반 고흐, 나폴레옹, 루소, 사르트르와 보봐르, 카프카 등은 하나같이 카페에서 많은 나날을 보냈고, 카페에서 작품을 완성했다. 이들 명사의 면면과 함께 그들이 즐겨 찾던 카페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들도 소개한다.1만 6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 문제아 잡는 ‘모기’

    영국 웨일스에 사는 발명가 하워드 스테이플턴이 재잘대기 좋아하고 극성스러운 아이들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을 개발했다고 최근 밝혔다. ‘모스키토(모기)’란 이름의 이 장치는 어린이나 10대들만 들을 수 있고 30대 이상 어른들은 못 듣는 ‘유쾌하지 않은’ 초음파를 발생함으로써 떠들썩하고 거친 아이들을 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테이플턴은 웨일스 지방 배리 마을의 한 식료품점과 자신의 고향 머터 타이드필의 가게에서 실험을 거쳐 이 발명품의 효과를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실험 결과 가게 안에서 담배를 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거친 말을 쏟아내던 아이들이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이 장치는 고주파 음을 들을 수 있는 인간 청력이 나이를 먹으면서 퇴화하는 원리를 이용해 개발됐다. 스테이플턴은 “내가 듣는 것은 온통 격려의 말”이라며 “(사람들로부터) 아직 벽돌이 날아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장치 개발로 일약 유명인사가 된 스테이플턴은 영국 TV와 라디오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 호주, 캐나다 언론으로부터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웨일스 로이터 연합뉴스
  • [아름다운 모교사랑 3제] 세상 뜬 동생 모교에 장학금

    군대에서 간암 판정을 받고 제대한지 20일만에 사망한 동생을 잊지못해 동생의 모교에 장학금을 내놓은 ‘아름다운 형’이 있다. 국내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안상현(36)씨는 6일 한국외대를 찾아 2005학번 노모 학생에게 장학금 400만원을 기탁했다. 안씨는 앞으로 20년 동안 해마다 400만원씩 외대에 장학금을 내놓기로 약속했다. 평범한 샐러리맨인 안씨가 해마다 목돈을 외대에 기부하기로 한 이유는 바로 사망한 동생 혁씨 때문. 혁씨는 외대 경제학과 95학번으로 학창 시절 국제관계연구회의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1995년 고향 전주를 떠나 홀로 서울에서 공부하는 동생이 안쓰러워 동생의 자취방을 찾았던 안씨는 그때의 쓸쓸한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안씨는 “동생이 반지하 단칸방에서 제대로 밥도 못지어 먹으면서 생활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팠는데 지금도 그 모습을 못 잊겠다.”며 씁쓸해 했다. 그런 동생이 입대한지 1년 5개월만에 제대했다. 의가사 제대 후 동생은 전북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제대 20일만에 결국 숨졌다. 병명은 간암이었다.95년 12월 입대한 동생은 경북 안동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했다.안씨는 동생이 잦은 고열로 군의관을 찾았지만 그때마다 소화제나 감기약만 주었다고 전해들었다. 동생은 1999년 국가유공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아들과 생이별을 했던 어머니마저 지난해 암으로 사망했다. 안씨는 “장학금은 적지만 동생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Leisure+α] 낙조 … 마술… 경품 풍성

    [Leisure+α] 낙조 … 마술… 경품 풍성

    □ 호텔 ●밀레니엄 힐튼, 윈터패키지 밀레니엄 서울힐튼은 남산의 상쾌한 공기와 함께하는 5종류의 겨울 패키지를 내년 2월 말까지 선보인다. 디럭스 패키지 17만 9000원, 프리미어 스위트 29만 9000원, 비스타 스위트 49만 9000원 등. 비발디파크 부대시설 할인권 세트, 아레노·팜코트 음료 쿠폰, 수영장·피트니스 센터 이용권 등을 함께 제공한다.(02)317-3000. ●하얏트 인천, 크리스마스 뷔페 하얏트리젠시 인천의 레스토랑 ‘8(eight)’은 24일과 25일 특선 뷔페를 준비한다.24일에는 쿠치나, 그릴, 스시, 야키토리, 누들스, 디저트 등 6곳의 오픈키친에서 신선하고 맛깔스런 음식을 즐길 수 있다.5만 8000원.25일엔 구운 칠면조, 다양한 크리스마스 디저트 등을 점심·저녁 뷔페에서 즐길 수 있다. 점심 4만 5000원, 저녁 5만원. 모두 세금 별도 (032)745-1234. ●워커힐, 인터넷면세점 오픈 워커힐 호텔은 12일 인터넷 면세점 ‘SK듀티프리닷컴(skdutyfree.com)’을 오픈한다.140여개 브랜드의 시즌별 신상품을 비롯해 허니문·골프·남성 고객을 위한 테마별 추천 상품 등 원하는 상품을 보다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내년 1월16일까지 오픈 기념 이벤트를 진행하고,W서울 워커힐 호텔 숙박권,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레스토랑 이용권 등 다양한 경품을 줄 계획. (02)450-6350. ●메이필드, 크리스마스 파티 메이필드호텔은 24일 오후 6시,25일 낮 12시 두 차례에 걸쳐 ‘크리스마스 퍼니 파티’를 연다. 퍼니밴드 콘서트와 난타 퍼포먼스, 스마일 쿠키, 과자로 만든 탈, 칠면조 요리 뷔페 등으로 구성했다. 어른 7만원, 어린이 5만원(세금·봉사료 포함). (02)6090-5500. ●요트에서 사랑고백을 하얏트 리젠시 제주는 푸른 바다 위에서 생애 최고의 사랑 고백을 할 수 있는 이벤트,‘프러포즈’를 선보이고 있다. 호텔에서 준비한 와인과 카나페를 즐기며, 낚시는 물론 시간대에 따라 일출과 일몰까지 즐길 수 있다. 멋진 요트에서 낭만적인 프러포즈를 할 수 있는 이벤트는 와인과 카나페가 포함되어 2인 기준 15만원.(064)733-1234. ●정성모 매직 디너쇼 임피리얼팰리스호텔은 24일 6시 컨벤션센터 ‘두베’에서 ‘정성모 매직 디너쇼’를 펼친다.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공중부양 마술, 관객 토크 마술 등 흥미진진한 공연과 훈제연어, 등심 스테이크 등 5가지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어른 12만원, 초등학생 이하 8만원(세금·봉사료 포함). (02)3440-8100∼3. □ 국내여행 ●서울 한옥마을 나들이 답사전문 여행사인 ‘구름에 달가듯이’는 600년 서울의 역사와 삶이 새겨져 있는 서울 한옥마을과 북촌을 돌아보는 상품을 마련했다. 매주 토요일(10일·17일·24일) 오후 2시30분부터 5시까지 지하철 3호선 2번출구 앞에서 출발한다. 회비는 1만원.(02)763-0440. ●무료 사진촬영 여행 여행사진 전문 ‘투어앨범’(touralbum.com)은 오픈 기념으로 2005년의 낙조 촬영 여행을 무료로 진행한다. 강화도 낙조마을과 풍물시장, 용두돈대 등을 돌아보는 당일 일정.24일 토요일 오전 10시에 신촌 강화직행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선착순 30명 무표, 동반자(1명)의 회비는 1만원이다.(050)2172-8282. ●한화 휘닉스파크 회원모집 최근 완공된 ‘한화 휘닉스파크’(clubphoenixpark.co.kr)는 강원도 평창 휘닉스 파크 단지내에 건설된 지상 20층 규모의 핑크와 지상 14층 규모의 레드 등 2개동을 인수,440실 객실에 대한 회원 모집에 들어갔다.38평형 317실,48평형 23실,54평형 62실,59평형 38실 등 대평 평형으로 구성돼 있으며, 평형 및 계좌수에 따라 3200만∼9800만원이다. 회원은 휘닉스파크 스키장 리프트와 보광 퍼블릭 CC를 30∼50% 할인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02)729-5300. □ 관광청소식 ●방콕 재즈 패스티벌 2005 태국관광청(tatsel.or.kr)은 오는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방콕에서 ‘2005 재즈 페스티벌’을 개최한다.2003년 처음 시작하여 올해 3회를 맞는 페스티벌에는 재즈계의 거장들이 대거 참여, 흥겨운 재즈의 향연을 보여줄 예정이다. 라마 5세 기념비 맞은편에 있는 ‘싸남 쓰아빠’에서 매일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쇼가 계속된다.1일권은 900바트,,3일권은 3000바트에 판매하고 있다. ●모차르트 탄생, 생일파티 오스트리아관광청(austria-tourism.co.kr)은 세계적인 음악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탄생 250년을 주년 맞아 그의 탄생일인 2006년 1월27일부터 사망일인 12월5일까지 일년 동안 ‘모차르트 2006년 행사’를 개최한다.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잘츠부르크와 왕성한 연주활동을 한 비엔나에서는 그의 발자취를 찾는 프로그램과 행사들이 이어진다. 문의 mozart2006.net ●터키가 몰려온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는 터키가 내년부터 한국관광객 유치를 위한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에 들어간다. 터키 공화국 문화관광부 일한 오우즈 동아시아지역 국장은 지난 6일 한국-터키간 관광 활성화 방안을 설명하면서 “한국어 관광지 홍보 DVD타이틀 및 17종의 관광브로셔를 대량으로 제작하는 등 한국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터키는 비잔틴과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로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산, 신화의 무대인 트로이 등이 있다. 한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5만 6000명에서 올해 10월말까지 8만여명으로 급증했다. 문의 나스커뮤니케이션 (02)776-2062. □ 해외여행 ●유레일 패스 겨울 이벤트 세계적인 유럽 철도상품 공급회사인 레일유럽은 한국총판인 서울항공(seoultravel.co.kr), 리얼타임 트래블 솔루션(rts.co.kr) 등과 함께 이달 말까지 유럽 철도 패스 구입 고객 대상 빅 이벤트 ‘유럽 철도 패스 2005, 겨울 온라인 이벤트’를 실시한다. 응모방법은 이벤트 참여 여행사의 홈페이지에 연결된 ‘유럽 철도 패스 이벤트 사이트’에 접속해 각종 유럽 철도 패스 구입시 함께 받은 이벤트 응모권의 행운 번호를 입력하면 경품 당첨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행사에는 파리 바토파리지앵 센강 유람선 승선권(50명), 파리 비지트 패스 1∼3 지역 2일 교통권(20명), 여행용 응급가방(300명), 독일산 고급 5단 우산(300명), 여행용 타월(1000명) 등 다양한 경품들이 제공된다. ●치산 인 에카사호텔 새단장 일본 내 39개의 호텔을 보유하고 있는 솔라레 호텔 & 리조트(solarehotels.co.kr)의 일본 오사카 ‘치산 인 에사카’가 최근 객실 보수작업을 완료했다.‘치산 인 에사카’는 오사카의 주요 터미널을 경유하는 에사카 역에서 도보로 7분, 신칸센을 탈 수 있는 오사카 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오사카 시내는 물론 교토나 고베로 이동하기에 편리하다. 여행으로 피곤한 투숙객들을 위해 사우나와 안마시설을 갖춘 전망 대욕탕을 준비해 놓았다. 객실 내부에 상하 전동식 베드를 설치해 최소의 공간에서 최대의 공간 활용을 할 수 있도록 했다.(02)777-8178. □ 패션 ●e아이닥 스키 고글용 안경테 e아이닥은 스키·보드 고글용 안경테 ‘스통’을 출시했다. 안경 양 끝에 달린 흡착판을 고글 렌즈 안쪽에 붙여 안경을 쓴 상태에서 고글을 착용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보완했다. 폴리폴렉스 재질의 프레임으로 부드럽고 충격에 강하다.2만원.(02)754-0110. ●르 플뤼, 스타우리노 선보여 이탈리아 하이엔드 주얼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스타우리노 프라텔리’가 국내에 소개된다. 획기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과 기술로 전 세계 주얼리 마니아를 매료시킨 브랜드로 모나코 왕국의 공식 보석 부티크로서 명성을 가지고 있다. 자연을 모티브로 한 부드러운 느낌의 ‘네이쳐 컬렉션’과 화려하면서 관능적인 ‘르네상스 컬렉션’은 주얼리 편집매장 ‘르 플뤼’(Le Plus)에서 만날 수 있다.
  • [‘줄기세포 논란’ 진정국면] 황교수 이번주중 복귀 가능성

    황우석 교수가 이르면 이번주 중반쯤 연구실에 복귀할 것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배아줄기세포 ‘진위 논란’의 최대 피해자인 황 교수는 MBC측의 사과문 발표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지 않고 있다.주변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공식 기자회견 이후 열흘 넘게 자취를 감춘 황 교수는 현재 경기도 모처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황 교수가 연구팀에 전화를 걸어 연구진행 상황 등을 확인할 만큼 연구 재개 의지가 뚜렷한 데다 어떤 식으로든 입장 표명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주 중 연구실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그 시기는 오는 8일 수원에서 열리는 ‘황우석 바이오장기연구센터’ 기공식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연구센터는 무균돼지를 이용, 인간의 조직 및 장기를 복원·재생·대체하기 위한 연구를 맡을 예정이다. 황 교수가 복귀하더라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줄기세포를 다시 만들거나, 특정 기관에 DNA검사를 의뢰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동안 차질을 빚어온 연구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황 교수팀 관계자는 “미국에서 어렵게 공부를 하고 있는 연구원들의 마음 고생이 심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면서 “악의에 찬 제보자가 어려운 과학적 용어를 쓰면서 나쁜 정보를 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황 교수가 바이오장기연구센터 기공식을 계기로 복귀할지 여부에 대해 “희망은 크지만 아직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과학기술부는 줄기세포 연구성과와 관련한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황 교수가 조속히 연구실에 복귀해 희귀·난치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 연구에 전념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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