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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약장수/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지난날 거리의 약장수가 팔았던 건 대개 만병통치약이었다. 신경통·위장병·간장병 등 입에서 나오는 대로 다 특효가 있다고 떠벌렸다. 정력에도 좋다는 걸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다음날 아침 밥상이 달라져.”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약장수들은 무술이나 묘기 등을 보여줄 듯하다 약만 팔고는 자리를 뜬다. 사람들은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들이 다시 찾아오면 자석에 끌리듯 모여들었다. 별다른 오락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약장수가 풀어대는 구수한 입담은 ‘망각’을 유도하는 최면 비슷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의 약장수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요즘 또 다른 방식의 약장수가 출현하고 있다. 한물 간 가수를 동원해 극장에서 무료공연을 펼친 뒤 어수룩한 노인 등을 대상으로 가전제품과 건강식품을 파는 ‘현대판’ 약장수다. 이들에게 홀려 가뜩이나 얄팍한 주머니를 비운 노인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이 약을 팔지 않음에도 약장수 반열로 취급되는 것은 공통적으로 ‘사기성’을 지니고 있다는 연상작용 때문일 것이다. 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kimhj@seoul.co.kr
  • 건축물로 본 문명 건설과 멸망

    역사 속 문명은 어떻게 건설되고 또 사라졌나. 케이블·위성 히스토리채널은 이집트, 마야, 아스텍 등 세계사를 스쳐간 제국과 그 위대한 건축물을 담은 초대형 다큐멘터리 시리즈 ‘제국의 건설(13부작)을 7일부터 매주 1편씩 수요일 오전·오후 10시에 선보인다. 미국 최고의 다큐멘터리 제작사인 A&E는 총 100여 명의 제작진이 팀별로 나눠 3주씩 각 나라에 머물며 유적을 촬영한 뒤 컴퓨터그래픽으로 화면을 완성했다. 허물어진 유적들의 많은 부분이 컴퓨터그래픽으로 재창조됐다. 제국의 건설과 멸망은 우리에게 친숙한 소재.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다큐멘터리 13부작 ‘제국의 건설’은 제국의 역사를 건축의 관점에서 다뤄 눈길을 끈다. 히스토리채널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피터 데종은 “건축과 기술은 매우 대중적인 소재”라며 “세계사를 장식한 거대 제국의 역사를 건축의 관점에서 접근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지난해 5월 파일럿 프로그램 형식으로 미리 선보인 ‘로마, 그 위대한 건축물’은 에미상을 수상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제국의 건설’은 이집트편을 시작으로 마야, 아스텍, 그리스, 카르타고, 페르시아, 그리스 알렉산더 시대, 중국, 비잔틴, 르네상스시대, 대영제국, 러시아, 프랑스 나폴레옹 치세 등의 순서로 방영된다. 7일 이집트편에서는 몇 가지 장비만으로 모래사막에 거대한 피라미드와 요새, 댐, 관개 수로, 사원 등을 건설한 이집트인들의 건축술을 알아본다.3000년간 이집트를 다스린 통치자들의 다양한 성격을 알아보고, 건축물의 특성을 살핀다. 건축 과정에서의 대형 참사도 소개한다. 마야편(14일)은 과테말라, 멕시코, 온두라스 등을 포함한 거대한 영토를 통치한 찬란한 마야문명이 하루 아침에 자취를 감춘 이유를 알아본다. 그 비밀의 열쇠가 담긴 마야의 상형문자 문서를 통해 마야가 신대륙 최고의 문명을 건설하게 된 비결을 밝힌다. 또 티칼의 신전 피라미드와 팔랑케의 유적, 치첸이트사의 천체 관측소까지 마야 문명의 번영과 멸망을 이끈 건축물과 기반 시설들을 둘러본다. 21일 아스텍편은 신비의 전설 속에 숨겨진 아스텍 문명을 소개하고 28일 그리스편에서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리스 유적지들을 찾아간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생생 고시촌] “신림동 이사철…아직까진 방 넉넉”

    [생생 고시촌] “신림동 이사철…아직까진 방 넉넉”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1차 시험을 마친 2월은 신림동에서 가장 분주한 한달이다. 시험을 마치고 떠나는 학생과 시험을 준비하려 신림동으로 입성하는 학생들이 바통터치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3월 중순까지 이사시즌이 계속되는데 아직까지는 빈 방이 넉넉하게 남아 있는 편이다. ●‘다운타운’일수록 비싸 일반적으로 신림동 고시촌이라고 하면 신림 9동,2동,10동 넓게는 6동까지 아우른다. 하지만 같은 고시촌이라고 하더라도 지역과 시설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주요 학원과 독서실 등이 몰려 있는 신림 9동의 방값이 가장 비싼 편이다. 최근엔 베리타스 법학학원이 있는 신림2동도 주택가라 조용하기 때문에 비슷한 가격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원룸의 경우 보증금 100만원에 월 30만∼45만원, 고시원은 이보다 조금 싼 20만∼30만원 선이다. 고시원은 화장실, 샤워시설을 공동 사용해야 하는 점이 원룸과 다를 뿐 내부 시설은 비슷하다. 여기에 원룸은 가스·전기·수도세가 월 2만∼3만원 정도(봄·가을 기준) 나오고, 집주인이 쓰레기 분리수거비용으로 월 5000원을 더 받기도 한다. 신림 9동에서도 ‘다운타운’에서 멀어질수록 더 저렴한 값에 조용한 방을 구할 수 있다. 관악산 기슭 아래 부근은 월 15만원에 하루 3끼 식사를 제공하는 데도 찾는 사람이 없어서 방이 남아돈다. 학원에서 10분 정도 걷는 걸 운동이라 생각하면 싸고 좋은 방을 구할 수 있다. 신림 10동은 재개발 예정지역으로 허름하지만 월 10만∼15만원 정도로 방값이 매우 저렴하다. 주로 형편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이 자취하는 경우가 많다. 신림 6동은 아파트가 많은데 고시생 부부, 결혼 후 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살고 있다. 걸어서 15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통학해야 한다. ●에어컨은 필수, 높은 층이 좋아 살 동네를 정했다면 수험생활을 위해 몇가지 더 눈여겨봐야 할 것들이 있다. 에어컨은 필수, 세탁기는 선택이다. 요즘엔 에어컨 없는 방은 없지만 실외기가 시끄럽지 않아야 한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세탁기도 각 층에 한 대가 있는 게 편하다. 3층 이상의 높은 층이 좋다. 낮은 층은 길거리 소음으로 방해받거나 하루만 창문을 열어놓으면 먼지가 쉽게 앉는다. 복도 끝방은 춥다. 겨울까지 신림동에서 날 생각이라면 끝방은 피하는 게 좋다. 계단쪽 방이라도 겨울엔 몸을 댈 수조차 없을 만큼 찬 기운이 올라온다. 외부인 차단시스템은 기본이고 거주자만 드나들 수 있게 카드인식기를 설치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차단시스템이 있는 편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신림동 이삿짐센터 사장 김현주씨 “한밤중에 이사… 별난 고시생 많아요” 신림동으로 학생들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최고 대목을 맞는 것이 바로 이삿짐센터. 요즘엔 하루에 20∼30건씩 이사짐을 처리하기도 할 정도. 신림동에서만 6년째 이삿짐을 나르고 있는 김현주(31)사장은 “학기 초와 맞물리는 1월 중순∼3월 중순이 1년 중 가장 대목이다. 이때 한몫 잡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했다. ▶얼마나 바쁜가? -3일째 점심도 거르고 일했다. 밤 9시가 넘어서 겨우 숨 고르고 점심 겸 저녁을 먹을 정도다. 너무 바빠서 아르바이트생도 한 명 고용했다. 이때는 용달차가 남아나질 않는다. ▶학생이사 비용은 얼마정도? -차만 이용하면 1만 5000원, 헬프비용이 짐의 양에 따라 5000원∼1만원이 든다.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높은 층에서 높은 층으로 이동하면 추가 비용이 더 붙는다. 포장이사의 경우 장롱, 냉장고, 세탁기, 책, 옷가지, 침대, 컴퓨터를 기준으로 20만원 정도. ▶신림동에서 이삿짐을 오랫동안 나르다보면 별난 학생들도 많이 봤을 텐데? -밤 10∼12시에 이사를 해달라는 학생이 많다. 이사하는 것조차 다른 사람한테 알리기 꺼려하기 때문인 것 같다. 방에 들어가보면 별의별 학생이 많다. 책으로 침대를 만들어 그 위에서 잠을 자질 않나, 방안에 쓰레기까지 그대로 옮겨달라는 학생도 있다. 남들이 쓰던 책상이나 침대는 싫다고 꼭 자기 걸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방이 맘에 안든다고 2∼3일 만에 몇번씩 방을 옮기는 사람도 봤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28일 TV 하이라이트]

    ●클로즈업(YTN 오후 1시30분) 최근의 한국 영화를 가지고 전혀 상반된 시각이 중첩돼 있음을 느낀다.1000만 관객을 돌파한 우리 영화가 잇따르고 있는 축제 분위기가 있는가 하면, 한국 영화를 살려야 한다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치는 영화인들의 시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영화배우 박중훈과 영화 이야기를 나눠본다.   ●다큐 여자(EBS 오후 9시20분) 전북 정읍 산외면에서 버려진 폐지를 줍는 할머니.365일 밤낮도 계절도 가릴 것 없이 거리로 나서 남이 버린 물건을 주우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특기는 ‘버려진 폐지 줍기와 동네 쓰레기 치우기’, 취미는 ‘남들한테 막 퍼주기’. 남다른 할머니의 재미난 인생 속으로 함께 가보자.   ●잘 살아보세(SBS 오후 6시50분) 음식은 무조건 싱싱하게, 한번 먹을 때는 최고급으로.4인 가족 식비만 매달 200만원. 식비가 늘수록 살이 찌는 가족들은 서서히 건강에도 이상이 온다. 지난해 병원비만 100만원 이상, 한달 생활비 400만원. 식비감량과 체중감량에 나선 가족. 과연 몇 kg 감량에 성공했을까?   ●거침없이 하이킥(MBC 오후 8시20분) 해미는 준하가 술집에서 쓴 100만원짜리 카드 청구서를 발견하고 화를 낸다. 화가 난 해미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준하는 민호와 윤호를 집합시킨다. 신지는 위염 때문에 쓰러진 민정에게 안정을 취하게 해주려 한다. 죽을 끓인답시고 쌀을 믹서에 갈다가 온 사방에 튀게 만드는 등 사고만 저지른다.   ●달자의 봄(KBS2 오후 10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양쪽 어머니들의 마음이 풀릴 줄을 모른다. 달자는 일주일의 휴가를 얻어 태봉과 함께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다. 예전에 일하던 로펌 대표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태봉은 달자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함께 파티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달자는 태봉의 옛애인과 마주친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마는 기억력을 도와줘 학습능력을 키워준다. 학생의 건강식으로 호응도가 높고, 숙취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 고급 일식집에서는 음주 전 생즙을 조금씩 마시고, 신장 기능강화에 효과가 있어 요즘은 남자들의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마의 효능과 잘 먹는 방법을 알아본다.
  •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 ‘구국의 혼’ 기리자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 ‘구국의 혼’ 기리자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인 1907년 7월14일 오후7시(현지시간).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고종황제 특사 자격으로 참석한 이준(당시 48세)은 일본의 방해책동과 열국의 무관심에 분개,‘할복’이라는 방법으로 저항했다. 이준 열사의 순국은 대외적으로는 대한 사람들의 독립의지를 강렬하게 심어줬고, 대내적으로도 독립정신과 투쟁정신을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준 열사 순국 100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사업이 펼쳐진다.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이재오·장영달 의원 등)는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출범식을 갖고 활동을 시작한다. 현재까지 학술토론회 등 모두 10여개의 기념사업이 확정됐다. 우선 남북 공동으로 이준 열사와 이상설·이위종 지사 등의 삶과 업적을 재조명하는 학술토론회를 6·15나 8·15 남북 공동행사때 열기로 했다. 또 남쪽과 북쪽이 각각 순국 100주년 기념우표를 발간한다. 이준 열사의 만국평화정신 및 애국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이준 만국평화포럼’이 만들어지고, 서울시와 공동으로 기념관도 건립키로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 상트 상테르부르크를 거쳐 헤이그까지 열사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체험여행’도 계획돼 있다. 추진위는 출범선언문에서 “국내외 정세가 역동하는 혼돈의 시대에 이준의 정신이 민족의 좌표가 되고, 이준의 혼이 후대들에게 이어진다면 우리나라는 열사가 말하는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면서 “구국의 혼을 지닌 애국적 시민운동가 이준을 기려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남편죽인 17세 신부(新婦)와 시동생

    남편죽인 17세 신부(新婦)와 시동생

    너무도 끔찍한 사건이 충남(忠南) 금산(錦山)군의 어떤 외딴집에서 일어났다. 17살짜리 형수와 19살짜리 시동생이 28살의 친형을 죽여놓고 그 시체옆에서 또 한번 불륜의 정을 통했다. 형수아가씨는 결혼1개월도 못되어 시동생과 패륜에 빠지고 넉달만에 남편을 공모살인 한 뒤 보따리를 싸들고 줄행랑을 쳤다가 드디어는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가난한 신혼에 짜증내자 그때마다 시동생이 위로 형수 김정임여인(가명·17)은 전북 정읍(井邑)에서 태어나 어릴때 어머니를 여의고 서모밑에서 자랐다. 3년전부터 전주, 광주 등지에서 식모살이를 해오다가 서모도 세상을 떠나자 식모살이를 그만두고 지난 1월20일쯤 서외삼촌 되는 전복남씨(가명·38·충남 금산군)집에 들른 것이 사연의 실마리였다. 전씨는 2월초순 같은 마을에 사는 박윤직씨(가명·28)와 생질녀 김여인과의 혼담을 진행시켜 『두 집이 가난하니 서로 결혼시켜 알뜰히 살도록 해주자』고 지난 2월24일 약혼식, 이틀 뒤인 26일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신랑 박씨는 입이 딱 벌어지게 좋아했다. 젊은 신부에 마음이 온통 쏠려 3만원의 이잣돈과 장리쌀 2가마를 누이인 박정숙 여인(가명·32)을 통해 얻어다가 동네사람들과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축복을 보내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가난한 살림에 신혼여행을 갈 수 없는 이들 부부는 신랑집인 이 마을 맨끝 산마루집 흙담 2간의 아랫방에 신방을 차리고 첫날밤을 즐겼다. 『내 비록 국민학교 조차도 못다니고 가난하지만 몸뚱이 하나는 튼튼해. 젊은 몸뚱이니까 밥은 안 굶겨. 당신만은 꼭 행복하게 해줄께…』 귀엣말로 속삭이는 남편에게 김여인은 『한번 재미있게 살아보더라고 잉! 이몸도 식모살이 하다가 시집온게 참 재밌구만!』하고 신아나서 좋아했다. 그런데 17살짜리 마누라는 싫증을 너무 빨리 느꼈다. 이유는 남편이 촌스럽다는 것. 재산이라고는 겨우 인삼밭 3간(약50평) 밖에 없고 남의 땅을 소작하고 있는 박씨의 가정에 대해 도시에서 잘 사는 집 식모살이라도 해 본 김여인은 촌스럽게 생긴 남편 박씨와의 시집살림에 며칠이 안가 싫증을 느꼈다. TV도 없고 전화도 없다. 설멋이나마 눈에 찰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혼 10일이 지날 무렵부터는 남편에게 『촌사람 같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게 됐다. 이 때마다 친시동생인 박성직군(가명·19)이 17살짜리 형수를 위로하며 싸움을 말리곤 했다. 패륜은 우연히 시작되고 현장들키자 살해를 공모 결혼한지 만1개월에서 하루가 모자라는 지난 3월25일 아침에도 사소한 일로 김여인과 박씨는 언쟁을 한 뒤 박씨는 집을 나가 마을로 갔고, 홀로 있는 시어머니 홍여인(51)과 13살 된 시누이는 인삼밭에 가고없는 낮 4시쯤. 이날따라 봄 기운은 고사하고 매섭게 추운 날씨였는데 시어머니와 남편 박씨를 비롯한 5식구중 3식구가 집을 나가고 나니 남은 것은 형수인 김여인과 시동생인 박군 둘이만-. 형이 결혼한 뒤부터 박군은 거의 매일 저녁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간 흙담집 얄팍한 장지문을 사이에 두고 형내외의 야릇한 숨소리가 흘러 나올때마다 박군은 못견디게 몸부림쳤었다. 이 날 낮에도 아랫목 이불속에서 간 밤의 야릇한 숨소리에 사로잡혀 있을 무렵, 형수인 김여인이 부엌일을 끝내고 박군이 누워있는 이불속으로 몸을 녹이려 파고든 것이 불륜의 시초. 박군은 참을 수 없는 충동에 형수인 김여인을 부둥켜안았고, 김여인도 그만 순식간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남편에게 불만이 있는데다 시동생 박군이 항상 자기 편에서 두둔을 해주곤 했기에 호감이 가던중 연령으로도 10여살 위인 남편보다 홀가분한 시동생의 품에 손쉽게 파고들고 말았다. 이들의 불륜은 거의 매일같이 계속되었다. 식구들이 일하러 가거나 마을을 간 틈을 타 벼락같이 진행되었다. 이들은 남의 눈을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인삼밭이 띄엄띄엄 있는 뒷산으로까지 장소를 옮겨 가면서 육체의 향락을 즐겼다. 그러던 지난 6월5일 새벽 4시쯤. 논물을 보러 남편이 집을 나간 사이 시동생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가 그만 돌아온 남편에게 2개월10일간이나 비밀리에 지속해 온 부정의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이 날부터 가정불화는 더욱 심해졌고, 겨우 빚까지 얻어 맞아들인 아내를 쫓아버리자니 가난한 살림에 새로 장가를 갈 수도 없는 박씨는 부인과 함께 딴 집으로 이사를 나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서 이사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부정이 남편에게 탄로난 김여인은 그날부터 남편을 죽일 결심을 하고 그 방법을 곰곰 생각하게 됐으며, 시동생인 박군과도 의논이 됐다. 박군을 시켜 금산장날인 6월12일 읍내 모농약점에서 15원을 주고 극약 한알을 샀다. 나흘뒤인 15일 남의 집 모내기를 하고 막걸리 두어잔을 먹고 울적해진 박씨는 같은 마을에 있는 누이 박정숙여인 집을 찾아가 『내일 방을 얻어 이사를 갈테니 독 2개와 잔그릇 몇개만 장만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16일 상오 0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지 약 30분뒤 아내 김여인이 갖다주는 극약이 든 냉수를 아무 의심없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날밤 시어머니 홍여인은 13살된 시누이와 인삼밭을 지키러 나가고 없었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박씨를 동생인 박군이 준비했던 막대기로 이마를 내리쳤다. 머리가 깨진 박씨는 약물중독에 겹쳐 그 자리에 쓰러져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한채 숨지고 말았다. 죽여놓고 자연사를 위장 장례 치르고 도망쳤으나 박윤직씨를 죽이는데 성공한 이들은 자연사를 가장하기 위해 숨진 박씨를 마당으로 굴러뜨려 얼굴에 상처를 입게 하고 다시 방으로 끌어들여 잔인한 살인연극을 끝냈다. 박군은 이 날 새벽4시30분쯤 동이 트자 같은 마을에 살고있는 누이집으로 달려가 『형이 소변보러 간다고 밖에 나가다가 넘어져 죽었다』고 태연히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박여인이 허겁지겁 뛰어 갔으나 이미 빳빳이 굳은 시체. 일단 자연사로 넘겨 날이 밝자 약 5백m 떨어진 마을뒤 밭에다 시체를 매장해버렸다. 이것으로 일단 사건은 끝났으나 매장을 한 다음날인 17일낮 11시쯤 김여인과 박군은 『남편과 형이 죽은 집에서는 살기 싫다』는 구실로 옷가지를 싸들고 중매를 선 전씨집에 들러 『집을 나간다』고 전한 뒤 자취를 감추자 약간의 의심을 품었던 전씨는 박윤직씨의 사인에 부쩍 의심이 짙어졌다. 박씨 어머니 홍여인으로부터 이와같은 사실을 들은 박씨의 6촌형 박모씨는 홍여인과 함께 경찰의 문을 두드려 박씨의 사인이 이상하다고 신고, 금산 경찰은 연고지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하여 김연인과 박군을 긴급수배했다. 박군과 김여인은 금산읍 모하숙에서 이틀동안 단꿈(?)을 즐기다가 돈이 떨어지자 금산군 군북면에 있는 박의 고종사촌 형인 황모씨(45)집에 숨어 있다가 잡혔다. 이들은 경찰앞에서 박씨가 숨지고 난 다음 시체옆에서 『성교를 했다』고 진술하고 『약간 겁은 났지만 마음놓고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금산=김앙섭(金昴燮)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7월 2일호 제3권 27호 통권 제 92호]
  • 이상 고온…농어민 피해 속출

    따뜻한 겨울 날씨로 농수산물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3일 전북도에 따르면 서해안 일대 김 생산량은 책(2m×40m)당 99속으로 지난해 104속에 비해 5속이 줄었다. ●어청도 일대 오징어 어장 자취 감춰 덩달아 품질도 떨어져 가격이 속당 3500원으로 지난해 4000원보다 500원 정도 하락했다. 이처럼 김 작황이 좋지 않은 것은 겨울철 이상고온으로 수온이 오르면서 엽체의 활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서해안 일대 수온은 10도 안팎으로 김 양식에 적합한 6.5도보다 3도 이상 높은 상태다. 군산시 어청도 일대에서 겨울철에 형성되던 오징어 어장도 올해는 수온 상승으로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12월 말 현재 오징어 위판량은 178t으로 2005년 324t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농작물도 병해충 밀도가 높아지고 보리 웃자람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전북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배 농장의 대표적인 월동 해충인 꼬마배나무의 밀도가 배나무 껍질 25㎠당 9마리로 예년보다 1∼2마리가량 많았고 생충률도 90%에 이르렀다. ●빌딩 지하실등서 모기 발견 또 비닐하우스에서는 잎말이나방류와 점박이응애, 콩가루벌레, 가루깍지벌레 등 다른 해충들도 발생량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전주시는 겨울철 이상 난동으로 빌딩 지하실과 웅덩이 등에서 모기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잇따름에 따라 방역을 시작할 방침이다. 도 관계자는 “올 겨울 계속된 이상고온으로 농·수산물 전반에 걸쳐 각종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특히 올해는 농작물 병해충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지방출신 서울대 다니려면 한해 1500만원 든다

    지방출신 서울대 다니려면 한해 1500만원 든다

    지방 학생이 자취를 하며 서울대에 다니려면 한 해 최소 1500만원가량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대 학생처는 최근 재학생들의 1학기(4개월) 평균 생활비를 조사한 결과 서울지역 거주자는 500만원, 기숙사에 사는 지방학생은 583만원, 외부에 거주하는 지방학생은 720만원으로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서울대는 지난 15일 열린 교육환경개선협의회에서 학생대표단과 협의를 거쳐 이 금액을 ‘표준생활비’(표 참조)로 책정했다. 다른 대학을 포함해 재학생 표준생활비를 산정한 것은 서울대가 처음이다. 이정재 학생처장은 “오는 1학기 수시합격자 100명을 대상으로 시범 실시되는 ‘맞춤형 장학금’의 기준으로 삼기 위해 표준생활비를 조사했다.”면서 “서울대가 학생들의 생활비 기준을 공식적으로 조사해 책정한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표준생활비는 등록금을 포함해 서울대 학생 1명의 방학중 생활비를 뺀 순수 학기중 생활비만 산정했다. ●표준생활비 부족비용 학자금 대출 등록금의 경우 단과대별로 차이가 있지만 공대 재학생을 기준(270만원)으로 삼았다. 인문대의 경우 257만원, 의대는 496만원이다. 주거비는 서울대 주변 월세(35만원)를, 학원수강료(10만원)는 서울대 어학연구소 1강좌를 각각 기준으로 삼았다. 또 생활비에는 교재비(30만원)와 사무용품비(월 2만원), 취미여가비(월 13만원), 식비(1일 1만원), 교통비(1일 2000원), 공공요금(월 10만원) 등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집에서 다니는 서울지역 거주자는 주거비를 제외하고 식비와 공공요금을 절반으로 쳐 표준생활비를 500만원으로 정했다. 기숙사에 사는 지방학생의 표준생활비는 교통비를 제외한 1학기 기숙사비 43만원과 공공요금은 절반으로 계산해 자택 거주자보다 약 17% 비싼 583만원으로 책정됐다. 기숙사가 아닌, 외부에 사는 지방 학생은 생활비 전액을 적용해 표준생활비가 720만원으로 1년 생활비는 약 1500만원에 이른다. ●사립대는 연간 2000만원 웃돌듯 표준생활비는 방학중 생활비와 옷값·외식비 등을 뺀 순수 학기중 생활비를 계산한 것이다. 따라서 지방 학생들이 방학중 서울에 머물며 학원 등을 다닐 경우 비용은 400만∼500만원 이상 늘어난다. 또 등록금이 비싼 의학 계열은 훨씬 더 많아진다. 특히 서울지역 사립대 학비가 ‘연간 1000만원 시대’에 접어든 만큼 지방 거주 학생들이 서울지역 사립대에 진학한 경우 최소 비용이 2000만원을 훌쩍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학기 등록금은 고려대 공대 460만원, 연세대 전자전기공학부 527만원, 서강대 인문학부 320만원 등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사립대에 비해 등록금이 싼 서울대가 최소 1500만원으로 계산된 것을 보면 사립대나 등록금이 비싼 의대 등은 훨씬 더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맞춤형 장학제도’의 시범 대상인 수시합격자 100명에게 기숙사, 장학금, 어학연수원 수강료 할인 혜택을 선택적으로 준 다음 표준생활비에서 부족한 비용은 학자금 대출로 지원할 계획이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Book Review] 모건 하우스의 힘

    뉴욕의 J P 모건과 모건 스탠리, 런던의 모건 그렌펠. 그리고 파리의 모건 에 콤파니. 대서양을 넘나들며 금융제국을 건설한 ‘모건 하우스’는 이제 세계 금융시장의 대명사가 됐다.1970년대 시작된 모건 스탠리의 광고 카피는 ‘모건 하우스’의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다.“하나님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모건 스탠리에 의뢰할 것이다.”   미국 100대 기업 가운데 96개 기업이 J P 모건과 거래하고, 그나마 나머지 4개 기업 중 두 곳은 ‘고객으로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J P 모건으로부터 거래를 중단당했다. 경쟁이 치열한 요즘에도 고객이 직접 성지순례하듯이 은행을 찾아오도록 한다. “J P 모건의 역사를 알면 미국 금융과 경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게 국제금융계의 통설이다.하지만 과연 금융뿐일까. 일각에서는 ‘울트라 정치파워’라는 별칭을 J P 모건에 붙였다.J P 모건은 창업주인 존 피어폰트 모건1세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와 그의 아들인 존 피어몬트 모건2세, 그리고 은행을 구분하지 않고 J P 모건으로 불린다.IMF 외환위기 이후 J P 모건은 우리 국민들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됐다.J P 모건은 정부와 국책은행의 채권발행 주간사로 여러차례 선정됐고,1998년 4월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의 ‘파생금융상품 사고’에 연루되기도 했다. ‘모건 하우스’의 역사를 조망하는 책 ‘금융제국 J P 모건’(론 처노 지음, 강남규 옮김, 플래닛 펴냄)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 이 책은 J P 모건이 설립된 1838년부터 1989년까지 모건 하우스의 150년 역사를 조망하고 있다. 모건 하우스의 거대한 성장 속에 숨겨진 추악한 면까지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 론 처노는 1980년대 뉴욕의 명문 싱크탱크인 20세기 펀드에서 금융정책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이 책을 저술했다.일반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월스트리트에 관한 역사책을 구상하면서 모건 가문이 월스트리트의 장구한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프리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저자는 모건 하우스의 역사를 ▲창업에서부터 존 피어폰트 모건 1세가 사망하기까지의 시기인 ‘귀족자본가 시대’(1838∼1913) ▲J P 모건이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국제정치 시대’(1913∼1948) ▲투자은행 업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한 모건 스탠리를 중심으로 치열한 전장으로 변한 현대 금융시장을 그린 ‘카지노 시대’(1948∼1989)로 나눠 조망하고 있다. J P 모건은 1861년 남북전쟁 때 무기상인 듀폰과 손잡고 무기 중개업자로 나서면서 큰 돈을 벌었다. 전쟁 특수로 세계적인 금융기업으로 도약할 토대를 다진 J P 모건은 철도와 통신사업에 뛰어들면서 몸집을 불려나갔다.1913년까지 J P 모건은 사실상 미국의 중앙은행이나 다름없었다. ‘국제정치 시대’에 J P 모건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깊숙이 개입했으며, 모건 하우스의 파트너들은 국제정치의 뒷무대에서 은밀한 작업을 수행했다.‘카지노 시대’에 모건 하우스는 인수합병 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였지만 반대급부로 ‘잔인한 포식자’라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저자는 모건 하우스만큼 강력하고, 신비롭고, 막대한 부를 거머쥔 금융제국은 앞으로 결코 등장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점에서 칭송과 비판을 떠나 ‘모건 하우스’ 인물들의 자취는 더 커보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1권 820쪽 3만 2000원,2권 456쪽 2만원.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Book Review] ‘동성애 문화’ 탄압과 금기의 발자취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는 우리 사회에서도 아주 예민한 주제다.“이런 동물 같은 것들!”이라는 극도의 혐오론에서부터 “그것도 취향 아니겠어….”라는 관념적 용인론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본격 동성애 영화가 상영되는가 하면 동성애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왕의 남자’가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동성애 문화’가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하지만 이만큼이라도 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탄압과 금기가 있었던 것일까. ‘동성애의 역사’(플로랑스 타마뉴 지음, 이상빈 옮김, 이마고 펴냄)는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동성애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한 책이다. 유럽 동성애 연구로 파리정치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프랑스 릴대학 플로랑스 타마뉴 교수는 이 책에서 14세기부터 20세기말에 이르기까지 동성애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문학과 예술작품 속에 등장하는 동성애를 통해 그 탄압과 금기의 역사를 밝혀 준다. 저자에 따르면 동성애의 역사는 침묵과 비난, 금기, 왜곡의 기록들로 점철돼 왔다.‘은폐’와 ‘함구’는 동성애를 지배해온 낱말이었다. 저자는 소돔과 고모라의 공포가 횡행하던 중세부터 현대의 동성애 문화담론까지, 역사적으로 동성애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각 시대의 동성애자들의 초상과 그들의 예술적 상징물들을 통해 되짚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커밍아웃’ 고백이나 종교적 훈시이거나 정치적 견해를 담았던 과거의 동성애 관련서적과는 다르다. 예술작품에서 동성애가 어떻게 표현돼 왔는지 통시적으로 살펴보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재현의 역사’인 셈이다. 동성애 역사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림과 사진, 출판물, 영화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감추어졌던 동성애 ‘표현’의 역사를 추적했다. 오스카 와일드, 버지니아 울프, 바이런, 마르셀 프루스트(문인), 앤디 워홀, 프랜시스 베이컨, 데이비드 호크니(화가), 파솔리니, 알모도바르, 데릭 저먼(영화감독) 등 서양예술사의 수많은 인물들이 때로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통스러운 고백으로, 때로운 억압에 대한 격렬한 저항으로 어떻게 자신의 작품들을 창조해 갔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동성애자들을 ‘자연에 반한 범죄자’로 규정한 중세시대에도 예술의 영역에서 동성애적 욕망은 은유적으로 표현되곤 했다. 도나텔로의 ‘다비드’상은 아찔할 정도로 동성애적 관능미를 보여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세례자 요한’에서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문 중성적 아름다움을 그렸다. 19세기 중반부터는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동성애자가 성도착 환자로 진단받았다. 그러나 예술분야에서 동성애는 크게 유행했다. 아방가르드, 데카당스와 상징주의 예술가들은 다른 것에 대한 이끌림, 기괴한 것에 대한 취향 등의 의도 때문에 동성애에 매혹됐다. 동성애 예술이 크게 유행했지만 제도권과 사회일반의 적대감 또한 팽배했다. 특히 나치는 홀로코스트 당시 수용소에서 동성애자를 유대인보다 낮게 분류해 모두 처형했다. 1960년대 히피문화의 등장으로 동성애자들은 사회의 소수집단으로 자신을 스스로 규정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엘튼 존, 조지 마이클, 보이 조지 등 팝스타들이 잇따라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오랫동안 ‘천형’으로 인식된 동성애를 다양하고 희귀한 비주얼 자료로 읽는 맛도 만만치 않다.264쪽.1만 30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11일 TV 하이라이트]

    ●진실(YTN 오후 11시5분) 이 땅의 민주화를 부르짖다 세상을 떠난 박종철과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가슴 한 구석에 그를 간직하며 살아가는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들의 기억으로 복원된 박종철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친구이자, 시대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투쟁했던 학생이었다. ●스페이스-공감(EBS 오후 10시) 1977년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한 토마스 립은 21세기 어쿠스틱 기타계를 이끌어갈 젊은 연주자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핑거스타일 연주자이다. 천부적인 리듬 감각과 뛰어난 멜로디 감각을 지닌 뮤지션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음악적 요소를 아주 쉽고 편안하게 풀어내는 토마스 립의 무대를 감상해본다. ●연개소문(SBS 오후 8시45분) 연개소문과 김유신의 불꽃 튀는 접전이 펼쳐진다. 고구려와 신라의 장수로 두 사람은 밀고 밀리는 각축을 계속한다. 연개소문이 김유신의 칼을 두 동강 내고 승세를 잡는다. 그 때 김유신 수하가 쏜 화살이 연개소문에게 날아온다. 한편 계속되는 영류제의 친 당나라 외교의 논쟁이 신하들 사이에서 끊임이 이어진다. ●하얀거탑(MBC 오후 9시40분) 법정 복도에서 마주친 순일 처와 장준혁 일행. 장준혁 측 윤 변호사는 원고 측 김훈 변호사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세를 부리고, 순일 처는 불안한 시선으로 준혁 일행을 바라본다. 윤 변호사는 원고 측에서 오경환 교수, 염동일, 최도영 등을 증인으로 내세울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준혁은 고민에 빠진다. ●싱싱 일요일(KBS2 오전 8시) 대장암에서 폐암,1년 만에 흉추로 전이.2년 동안 세번의 암판정을 받았던 전병만씨. 암수술 후 숨 쉬기조차 힘들었던 그가 작년 겨울 암세포정상수치 판정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대파뿌리를 기본으로 해서 만든 탕약 때문이라는데….‘계절의 보석’코너에서 약이 되는 으뜸채소, 대파의 효능을 공개한다. ●역사기행(KBS1 오후 11시)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64km 지점에 위치한 아유타야.400여년(1350∼1767)동안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아유타야는 현재 철저히 파괴된 모습으로 역사를 반증하고 있다. 황금왕국 아유타야는 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을까. 번영과 몰락의 흔적이 숨쉬는 아유타야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 「미스·덕성여대(德成女大)」송윤희(宋潤熙)양-5분데이트(86)

    「미스·덕성여대(德成女大)」송윤희(宋潤熙)양-5분데이트(86)

    깊고 맑은 눈, 후리후리한 몸매의 송주희양은 덕성여대(德成女大) 70연도 「메이·퀸」. 올해 21세로 가정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아가씨이다. 대전(大田) 태생. 아버지 송하용(宋河用)씨(63)의 3남 2녀중 막내동이. 따라서 어릴적부터 부모와 형제들의 사랑을 온통 독차지하고 자랐다는 행복한 아가씨이다. 어머니 김영성(金榮星)씨는 현재 대전 한밭여중(女中)의 교장 선생님. 본집이 대전이기 때문에 송양은 서울에서는 오빠들과 함께 상도(上道)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고. 『엄마가 선생님이긴 하지만 전 교편을 잡을 생각은 없어요. 화학을 좋아하니까 계속 식품영양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두 눈을 반짝이며 또렷또렷 이야기 한다. 대학원(大學院)에 진학해서 영양학을 공부한 다음 장차 미국에서 종합병원을 경영하는 이모곁으로 가서 영양사로 근무할 작정이란다. 취미를 묻자 『취미가 너무 많아요』라고 대답. 꽃꽂이 「볼링」 수영 운전 등 종횡무진이다. 『운전은 오빠의 권유로 작년 7월부터 배웠어요. 이제는 운전면허도 따놓았고 인적이 드문 교외에서는 혼자 운전을 하기도 해요』 의상은 주로 「스포티」한 「T·셔츠」종류를 즐겨 입고. 감명깊게 읽은 책은 『가난한 애인(愛人)들』 . [선데이서울 70년 6월 14일호 제3권 24호 통권 제 89호]
  • 마누라도 참다못한 목사님「프리섹스」

    마누라도 참다못한 목사님「프리섹스」

    『「섹스」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 마음껏 즐겨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처자를 버려두고 놀아나던「카사노바」목사가 아내의 고발로 쇠고랑을 찼다. 광주(光州)시 모 종합병원의 목사 박형주(朴炯柱·31)씨가 성직자(聖職者)에서 성직자(性職者)로 둔갑한 이야기. 결혼하자 남편 소행알고 호소하고 설교도 했으나 62년 충남 대전시 D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모 신학교 3학년에 편입, 성직자로서의 교육을 마친 다음 광주 제중병원 원목으로 근무하던 박형주(朴炯柱)목사는 65년 8월14일 충남 대전시에 있는 어느 외국인 선교사 집에서 현재의 부인 허(許)모여인(29)과 찬물 한그릇을 떠놓고 문자그대로 재건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하기전 넘지 못할 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식을 올려야만 했던 허여인에게 박목사의 달콤한 속삭임은 모두 진실로만 들렸다. 그러나 두사람의 결합은 식을 올리자마자 먹구름이 일기 시작. 결혼을 하고 난 뒤 허여인은 박목사의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아버린것. 그러나 허여인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이제부터 새출발하면되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그러나 박목사의 여자관계는 날이 갈수록 더욱 난잡해지기만 했다. 허여인은 만인의 귀감이 돼야 할 목사로서의 몸가짐을 조심하라고 충고도 하고 성경에 있는 귀절을 들려주며 성직자의 길을 지키기를 애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자와 놀아나는데 맛을 들인 박목사 귀에 아내의 설교가 들어올리 만무. 식모 손대고 홍등가 출입 놀아난 이야기 자랑삼아 법무부 대전소년원 원목으로 2년동안 일하다 67년 11월25일 종합병원의 목사로 직장을 옮기고 나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아내가 친정에 가고 집을 비운새 박목사는 식모 이경순양(당시16·가명)을 자기 방으로 조용히 불러들여 가까이 앉히고는 변태적인 장난을 강요했다. 질겁한 이양은 얼마뒤 그 집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박목사의 추태는 이 사실만이 아니었다. 그는 1주일에 한두번은 홍등가를 드나들어야 직성이 풀릴만큼 정력(?)이 왕성한 사람. 박목사가 의외로 한달 동안 아내에게 접근하지 않기에 수상하게 생각한 허여인은 그 이유를 따졌다. 끔찍한 대답-『성병에 걸렸다』고 고백을 하더라는 것. 허여인은 남편과 같이 약을 먹어가며 속죄의 뜻으로 기도했단다. 그러나 박목사는 구약성서를 아내에게 그릇되게 풀이해 들려주며「섹스」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자기 멋대로의「프리·섹스」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허여인은 남편의 외도를 원망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아내로서의 구실을 다하지 못한것이 아닌가』하고 여러모로 남편시중에 신경을 쓰며 남편이 마음돌릴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박목사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이 놀아난 이야기를 자세한 부분까지 아내에게 고했다. 이럴 때마다 허여인은 회개하라고 타이르며 함께 손을 모았다. 남편의 마음은 점점 믿을수 없이 변해갔다. 남편의 퇴근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마음이 돌아설 기미는 전혀보이지 않았다. 허여인은 마침내 남편에 대한 희망을 단념했다. 마음을 모질게 먹고 남편의 꼬리를 잡기로 결심했다. 병원교회 목사를 기화로 입원한 아가씨 환자하고 마침 3월22일은 박목사의 생일. 준비 해놓은 보람없이 새벽3시가 되도록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이 양반이 이젠 자기 생일도 몰라 볼만큼 여자에 미쳤구나』- 새벽4시가 넘어서야 남편이 돌아왔다.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 날이 새자 다그치는 아내에게 박목사는 근무하는 병원5병동 17호실에 있었다고 고백. 허여인은 부리나케 17호실로 뛰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예감은 들어 맞았다. 얼굴이 예쁘장한 정복숙(鄭福淑·23·광주시 산수동74)이「베드」에 누워있었다. 알고본즉 정양은 3월 10일 결핵으로 이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있는 중. 정양이 입원한 첫주일에 설교에 나선 박목사는 병원부속교회에서 정양과 눈이 맞은것. 이날부터 박목사는 17호실을 자주 드나들게 됐고 서로 친숙해졌다. 자주 만나면 정들게 마련. 허여인은 4월10일 밤 늦게 돌아온 남편의 목에서「키스·마크」를 발견하고 누구와 놀아났는지 따지자「미스」정이라고 고백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빌었다는 것. 그런데 그 날 밤 남자의 목소리를 빌어『정양이 음독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한 인간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에서 허여인은 할수없이 남편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6시쯤 돌아온 박목사는 정양이「세코날」을 먹고 중태에 빠졌더라고 아내에게 능청을 부렸다. 그것도 말짱한 연극이었던 것. 정양에 미쳐버린 박목사는 정양과 함께 병원을 나와 광주시 충효동 무등산 기도원으로 밀회장소를 옮겼다. 서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마음껏 즐겼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전북 정읍군 내장사로 사랑의 보금자리를 바꿨다. 박목사의 머리에서 가족은 이미 사라졌고 오직 정양뿐. 이때부터 그는 퇴근후 거의 집에 돌아온 적이 없었다. 『우리가 처음 일을 저질렀을때 어느쪽에서 먼저 한것도 아니었고, 둘이 서로 진실했기에 진실을 토했을 뿐이에요. 단 한번 뿐이었읍니다. 그걸로 모든게 이뤄졌고 더욱 진실해졌읍니다』정양의 알쏭달쏭한 첫날밤 고백. 『목사의 직을 내놓고 인간으로 살고 싶습니다. 인간이 되기위해 사랑을 찾은 것입니다. 서로 울고 몸부림치며 사랑을 했읍니다』 이것은 박목사의 인간적(?)인 고백. 그들은 모든것을 등지고 무등산장 아래 깊숙한 원효사에 도피하기로 결심. 지난 4월29일 밤 10시쯤 입산하여 5월4일까지 마음껏 단꿈을 꿔오다 허여인의 끈덕진 추격에 덜미를 잡혀 결국 쇠고랑을 찬것. [선데이서울 70년 6월 14일호 제3권 24호 통권 제 89호]
  • 유종호 교수의 ‘시읽기의 방법∥’

    유종호 교수의 ‘시읽기의 방법∥’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글 유종호 문학평론가, 시인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모란은 한자로는 목단(牧丹)으로 표기한다. 만약 이 작품에 나오는 모란을 목단으로 고쳐놓는다면 뜻은 같다 하더라도 소리는 매우 껄끄럽게 들릴 것이다. 모란은 모란이라고 해야 비로소 꽃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갖추게 된다. 이것은 물론 미음과 리을의 연계에서 오는 소리 효과이지만 우리의 발음상의 오랜 관행이 ‘목단’이란 말을 투박하게 만들어 버린 탓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화투를 칠 때 사람들은 ‘유월 목단’이라 하지 ‘유월 모란’이라 하지는 않는다. 화투에서는 이른바 기의(記意)가 중요하지 기표(記表)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시에서는 기의 못지 않게 기표가 중요하다. 시와 산문을 구별하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는 시는 기의보다도 기표가 더 큰 몫을 하는 글의 양식이라는 것이다. 교과서나 사화집에 자주 나오는 이 시가 생소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익숙하다는 것과 넉넉히 이해한다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마음의 미묘한 움직임이나 섬세한 움직임을 다루는 서정시의 경우 그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공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지 않고 작품 속에 나타난 관념이나 산문으로의 부연이 가능한 사색의 흔적을 찾으려 한다면 시의 이해와는 멀어질 개연성이 크다. 섬세한 마음의 결이나 움직임에 민감하면 여성적이라고 호칭되고 때로는 폄하되는 경우가 있다. 씩씩한 기상이나 호방한 언동을 두고 남성적이라 호칭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 통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숙한 어른에게도 철부지 어린이의 잔재가 남아 있듯이 이른바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은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고루 퍼져 있다. 다만 사회적 분업이나 역할 분담이란 오랜 관행 때문에 이런 고정관념이 생긴 것이다. 남성이 무사나 사냥꾼의 역할을 맡고 여성이 육아를 포함한 가정사를 맡게 되면서 이상적 군인상(軍人像)에서 남성적인 것을 추출하고 자상한 어머니상(像)에서 여성적인 것을 추출한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투박한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에서의 분업이나 역할 분담에 따라 거기 어울리는 자질과 심성과 태도를 기대하고 부추김으로써 어느덧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굳어져 사회적 통념이 생겨난 것이다. 문학에서도 억척어멈이나 여장부로 불리는 남성 못지 않게 남성적인 여성들이 얼마든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역(逆)도 진(眞)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화자는 그러나 언뜻 여성처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말씨가 여성의 것이다. ‘있을 테요’, ‘잠길 테요’, ‘우옵네다’에서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여성의 말씨를 느끼게 된다. 남성이라고 해서 이런 심정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나 이러한 사정은 여러 규격화된 사회 통념의 일환이기도 하겠지만 어쨌건 서정시와 여성적인 것의 친연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을 연래의 바람으로 가지고 있는 화자는 모란이 지고 나면 그해의 바람이나 보람이 무너져 다시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며 삼백 예순 날을 섭섭해서 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부연하고 보면 이 시가 가지고 있는 섬세한 아름다움은 어느 사이에 행방이 묘연해지고 만다. 그러니까 서정시에서는 모티프의 결여가 최고의 경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는 얘기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모란꽃 보는 것을 한해살이의 보람으로 여기며 살고 있고 모란이 지고 말면 일년 내내 늘 섭섭해 운다고 하는 것에 이의(異議)를 달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의를 단다는 것은 적어도 서정시의 경우 공감을 하지 못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반대자들은 이런 모란 숭배자가 세상 천지 어디에 있을 것이며 도대체 그는 무얼하며 사는 사람이냐고 대들고 나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작품이 일종의 과장법의 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만큼 모란을 사랑하고 봄을 사랑하고 거기서 보람을 느끼는 화자의 심정에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정시에서 ‘운다’고 하면 문자 그대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소리내어 우는 것이 아니라 서럽거나 섭섭한 것을 관용적으로 그리 쓰는 것이다. 또 서정시는 어는 특권적인 순간을 노래한 것이다. 그것은 일상의 항상적인 시간이 아니라 특수한 순간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모란이 지고 나면 한 해가 다간 듯하다는 심정은 납득이 가는 것이다. 몇해 전 월드컵 축구가 끝났을 때 이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섭섭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와 같은 심정에서 씌어진 시라고 할 때 우리는 이 시의 진정성에 이의를 달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우선 잘 읽힌다. 그리고 몇 번 읽다보면 쉽게 외워진다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음율적이요 군소리도 없다. 20세기 한국시가 낳은 최상의 서정시편의 하나로서 소월의 <진달래꽃>보다 한결 섬세하고 유려하다. 정지용은 그의 애송시로 이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들었는데 단순히 《시문학》동인이라는 인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한 편만 가지고도 김영랑은 뛰어난 20세기 한국시인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터이지만 그가 과작으로 일관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정지용 시집》이 나온 1935년에 《영랑 시집》이 나왔는데 53편이 실려 있고 제목이 붙어 있지 않다. 번호가 달려 있을 뿐인데 사실 옛날 서구 쪽 시편이 그러했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집》은 1609년에 나왔고 154편의 시가 실려 있다. 제목은 없고 숫자가 대신하고 있다. 존 던의 소네트도 그러하다. ‘죽음이여 오만하지 말라’로 시작되는 시편은 소네트 10번이라 하고 굳이 구별할 때는 첫 대목을 인용한다. 영랑시집도 그러한 관행을 따르고 있고 1949년에 나온 《영랑 시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령 《영랑 시집》에서 1번을 차지한 아래 작품이 처음으로 《시문학》에 발표되었을 때는 <동백 잎에 빛나는 마음>이란 표제가 달려 있었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만들어낸 ‘의식의 흐름’은 그 후 심리학에서 하나의 관용구로 굳혀졌다. 사실 우리의 의식은 늘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흐르고 흘러서 새로운 대상을 찾아낸다. 김영랑이 위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늘 섬세하게 움직이는 그 마음의 흐름이요 그 행방이다. 이 강물이야말로 김영랑 서정시의 수맥인 셈이다. 영랑이 표제를 달지 않은 것은 짤막한 4행시에 제목을 붙여 시를 한정시키기가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티프의 결여가 우수한 서정시의 계기가 된다는 것의 한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 허리띠 매는 시악시 마음실 같이 꽃가지에 은은한 그늘이 지면 흰 날의 내 가슴 아지랑이 낀다 흰 날의 내 가슴 아지랑이 낀다. 마음이라 하지 않고 마음실이라 했다. 세세하고 섬세한 것에 대한 지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휘문중학을 다닌 영랑은 한 1년 동안 미결수 생활을 하여 3학년 진급 정도로 중학생활은 그치고 삐삐 마른 채 동경으로 도망쳤다고 1938년에 나온 “영랑과 그의 시”에서 정지용은 적고 있다. 그의 유일한 시인론인데 그야말로 지음(知音)의 애정이 담긴 글이다. 9 28 수복 때 유탄으로 목숨을 잃었으니 그 무렵 두 시인은 동시에 우리 곁을 떠나고만 것이다.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 “경륜을 나눠주마”

    재계의 원로들이 잇달아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담은 책을 펴내고 있다. 이들 서적은 하나같이 경륜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희범(58) 무역협회 회장은 1일 ‘유럽통합론-개정판’을 출간했다. 이 회장은 1997년 11월 통합유럽(EU) 대표부 상무관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초판을 내놓았다. 그 뒤로도 끊임없이 자료들을 모으고 새로운 변화들을 주시해 왔다. 유럽의 통합이 급격히 진행되고 유럽을 둘러싼 세계 경제·정치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2월 산업자원부 장관직을 떠난 직후부터 주말 시간을 쪼개 원고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유럽을 이해하고 경제교류 확대에 기여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밝혔다. 이채욱(61) GE코리아 회장도 5년간의 한국 생활의 경험과 생각을 담은 책을 펴낸다. 그는 GE그룹의 아시아지역 보건의료분야(헬스케어)를 총괄하기 위해 싱가포르로 떠난다. 이 책에서는 그가 한국 사업을 총괄했던 지난 2002년부터 연평균 20%가 넘는 성장률을 보인 경영 노하우와 한국 기업 환경 등을 다룬다. 스스로를 ‘정보기술(IT) 해방둥이’라 부르는 LG데이콤의 정홍식(62) 부회장도 최근 저서 ‘한국IT정책20년’을 펴냈다.5공화국 청와대 시절부터 6공화국의 체신부, 문민정부의 정보통신부까지 20년 가까이 ‘IT 한우물’을 팠던 그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았다. 원로들의 잇단 출간을 두고 재계에서는 “단순히 인생을 되돌아보는 자서전이 아니라 격랑을 극복한 경륜이 담겨 있어 후배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나는 남준의 영혼을 지키고 싶은 사람”

    “한국에 온 것은 그가 꼭 여기 살아있는 것만 같아서입니다.”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고(故) 백남준 타계 1주년을 맞아 서울을 찾은 미망인 구보타 시게코(70) 여사를 27일 만났다.●“탈없는 아티스트 커플로 행복했다” 30년 결혼생활 동안 인생의 반려자이자 예술적 동반자였던 남편이 떠나고 난 뒤 그녀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백남준의 모든 자취가 배어 있는 뉴욕 소호의 아파트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는 구보타는 “슬프고 지루했다.”고 말했다. 남편은 독일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고 언젠가 꼭 돌아올 것만 같단다. 최근에는 수영으로 체중 관리를 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고인의 생전 전위적 미술집단 플럭서스에서 함께 활동했던 구보타는 “우리는 탈없는 아티스트 커플로서 행복했다. 백남준은 나의 예술을 이해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덧붙였다. 1963년 일본에서 처음 만난 뒤 백남준에게 결혼을 강요해 결국 같이 살게 됐지만, 질투가 날 때도 많았다고 한다. 특히 첼리스트 샬럿 무어맨과 섹스를 음악으로 표현한 퍼포먼스를 벌였을 때는 “당신은 바보!”라고 외치기도 했다.●`섹슈얼 힐링´ 영상 추모식서 공개 1996년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는 건장한 남성 대신 젊고 예쁜 여성으로부터 물리치료를 받는 ‘섹슈얼 힐링’을 시도했다.구보타는 병원의 제안으로 이 과정을 비디오에 담았고,29일 그 영상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추모식을 통해 소개된다. “남준은 샤워 훈련을 받을 때 여성 간호사들에게 내 앞은 보지 말고 뒤만 보라고 하긴 했지만 섹슈얼 힐링을 좋아했지요.” 백남준은 도쿄대에 다닐 때 프랑스어 교수로부터 “랭보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마르고 시니컬했다고 구보타는 회상했다. 그의 잘생긴 외모에 반해 좇아다녔고,‘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자유로운 천재’였지만 완벽한 남편이었다고 했다. 가정 주부가 아니라 예술가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갔던 구보타는 “내 가족도 싫어서 일본을 떠났다. 나는 남준과 결혼했지 그의 가족과 결혼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일본에 살았던 백남준의 두 형제는 그가 1984년 도쿄 메트로폴리탄에서 대형 퍼포먼스를 벌일 때도 만나기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백남준이 돈을 요구할 것을 그의 가족들은 가장 두려워했다고 설명했다. 백남준의 조카 켄 백에 대해서는 “켄은 삼촌을 좋아했다.”면서도 “그는 비즈니스맨으로 남준의 예술로 돈을 벌려고 했다. 켄과 만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보타는 특히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는 항상 한국과 엄마 이야기만 했다는 남편의 모국에 와서 밝고 편안해 보였다. 그는 “나는 남준의 영혼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했다.글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아테네-아틀란티스 문명의 비밀은

    케이블 위성TV 히스토리채널이 사라진 문명을 부활시킨다. 23일과 30일에 방영하는 ‘사라진 문명-아테네(사진 위)’와 ‘사라진 문명-아틀란티스(아래)’가 전설이 된 두 문명도시의 감추어진 비밀을 풀어준다. 23일 오전 10시와 오후 8시에 방송되는 ‘사라진 문명-아테테’편은 조사단원들이 최신 연구기법과 장비를 이용해 아테네를 부활시킨다. BC 5세기 무렵, 한 남자가 서양 문명의 기반을 닦은 위대한 도시를 개발한다. 이 도시가 바로 아테네이며, 그 남자는 바로 페리클레스이다. 페리클레스는 왕족은 아니었지만 명문귀족 출신의 지도자였다. 그는 서양문명 사상 가장 많은 비용을 들여 야심찬 건축공사를 진두지휘했으며 사원과 주택, 시장을 비롯해 시민전용의 건물과 고도로 발달한 공중위생 설비를 완성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가 다른 도시국가의 금은보화를 약탈하기 위한 침공을 준비하면서 아테네와 페리클레스는 몰락하기 시작했다.30여년에 걸쳐 공들여 지은 완벽한 건축물들이 계속된 전쟁과 질병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던 아테네. 그 옛 영광을 되살려 본다. 30일 ‘사라진 문명-아틀란티스’편에서는 신비로 가득한 전설의 도시, 아틀란티스의 모습을 재현한다. 지중해의 심장부에 위치한 한 평화로운 섬이 역사상 최대의 화산 폭발로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잿더미로 변하고, 주민들도 사라져 버린다. 그러다 20세기의 여명이 밝을 무렵, 크레타 섬에서 수천t의 화산재 아래서 광대한 궁전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 속에는 고대 아틀란티스 문명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틀란티스의 비밀이 하나둘 벗겨지면서 조사단원들은 아틀란티스 건축물의 특이한 건축공법을 발견한다. 건축공법은 세대를 뛰어넘을 만큼 발전된 것이었으며 플라톤의 묘사처럼 웅장한 크기와 정교한 기술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오늘의 눈] 소방방재청의 ‘119식 응급행정’ /장세훈 공공정책부 기자

    소방방재청이 소방공무원들에 대한 인사 지연 문제로 한바탕 내홍을 겪었다. 그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를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정은 이렇다. 최근 소방방재청 소속 국가직 소방공무원들은 승진 등 인사가 6개월 이상 ‘올스톱’되면서 단체행동에 나설 태세였다. 일선 소방관서에 근무하는 지방직 소방공무원들도 특정 직급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면 승진하는 근속승진제가 올해부터 확대됐지만, 구체적인 추진 일정이 미뤄지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서울신문 1월16일자 6면 참조> 결과는 이렇다. 문원경 청장은 기자가 취재를 시작한 15일 집무실로 직접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문 청장은 기사가 지면을 통해 보도된 직후 업무시간이 지났음에도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긴급회의를 열어 대책도 마련했다. 때문에 기자는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16일 오후 한 통의 ‘감사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 편지에는 소방방재청이 승진심사 등 인사절차에 착수했으며, 각 지방자치단체에는 ‘소방공무원 근속승진 운영지침’을 내려보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소방공무원들로부터는 더 많은 편지와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며칠 전까지 격앙됐던 목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가 감지됐다.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속담처럼 작은 일을 소홀히 다루다 큰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반면 시의적절한 대책은 ‘가뭄 속 단비’처럼 느껴질 수 있다. 흔히 현실은 ‘소걸음’, 행정은 ‘게걸음’에 비유된다. 그만큼 행정이 현실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적어도 소방공무원들의 인사 불만과 관련해 소방방재청이 보여준 ‘119식 응급 행정’은 발빠르게 이뤄졌다고 평가할 만하다. 나아가 민생 현장에서도 이같은 발빠른 행정을 체감적으로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장세훈 공공정책부 기자 shjang@seoul.co.kr
  • 조정래 ‘아리랑’도 100쇄 돌파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그린 소설가 조정래(64)의 대하역사소설 ‘아리랑’(해냄 펴냄ㆍ전12권)이 초판 1쇄가 나온 지 13년만에 100쇄(1권 기준)를 돌파했다. 아리랑은 일제침략부터 해방기까지 일본, 하와이, 만주, 연해주,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민족이동의 발자취를 따라 이름없이 사라져 간 민초들의 끈질긴 생존과 투쟁을 담아낸 작품이다.90년부터 200자 원고지 2만장 분량으로 한국일보에 연재됐다. 해냄측은 17일 “97년 ‘태백산맥’에 이어 ‘아리랑’도 100쇄를 넘어 같은 작가의 소설 두편이 처음으로 100쇄를 돌파했다.”면서 “아리랑의 누적 판매량만 330만부를 넘는다.”고 밝혔다. 출판에서 쇄(刷)는 판매 물량이 더 필요할 때 조판의 변화없이 똑같은 상태로 다시 찍는 것을 말한다.100쇄는 100번을 찍었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100쇄를 넘긴 문학작품을 쓴 작가는 조세희, 최인훈, 이청준, 이문열 등이 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OUR STORY] 얼음·눈꽃 축제로의 초대

    [OUR STORY] 얼음·눈꽃 축제로의 초대

    1월의 강원도는 겨울축제 공화국. 화천 산천어축제와 인제 빙어축제, 태백산 눈꽃축제와 대관령 눈꽃축제 등 1월 한 달 동안 눈과 얼음 관련 축제가 줄지어 열린다. 문화관광부의 ‘문화관광축제’ 선정에서 유망축제로 뽑힌 화천 산천어축제와 인제 빙어축제는 작년에 각각 120여만명,75만여명이 다녀갈 만큼 성공적인 축제로 자리잡았다. 두 행사 모두 얼음구멍을 통해 강물 속을 돌아다니는 산천어와 빙어를 낚는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 각종 부대행사도 풍성하게 마련돼 있어, 겨울방학을 맞은 자녀와 함께 찾을 수 있는 인기만점의 가족단위 여행지다. 태백과 평창에서는 이달 하순부터 눈꽃축제가 열린다. 각각 14,15회를 맞는 관록의 눈축제. 예년과 달리 다양한 체험형 프로그램을 마련해, 보는 축제에서 즐기는 축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한층 흥겨운 축제의 장이 될 듯하다. 춥다고 겨우내 구들장만 끼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천하장사인들 밖으로 나가자는 꼬마들의 성화를 고스란히 받아낼 수 있을까. 독특한 겨울문화가 살아 숨쉬는 강원도로 미끄러지듯 달려가자. 글 사진 화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강원도 화천 산천어축제 “사위가 장모보다 고기를 못잡아?”장모 오덕순(65·경기 이천)씨의 힐난에 뒤통수만 매만지던 사위 김낙선(43)씨는 “녀석들이 어찌나 미끌거리며 잘 빠져 나가는지, 통 손에 잡히질 않네요.”라며 머쓱한 표정이다. 강원도 화천에서 열리고 있는 제5회 산천어 축제(www.ice.narafestival.com·1월6일~28일) 중 산천어 맨손잡기 행사 현장.“아빠, 파이팅!”,“우리 아들 힘내∼”여기저기서 격려와 환호성이 교차하며 따뜻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얼지 않은 인정, 녹지 않는 추억’을 슬로건으로 내건 산천어 축제. 정해년 돼지해를 맞아 ‘화천 산천어는 복(福)돼지’란 주제로 ‘체험돼지’,‘추억돼지’,‘재미돼지’ 등 30여가지의 다양한 이벤트를 선보이고 있다. 화천천 2㎞구간에 펼쳐진 행사장은 그야말로 ‘겨울 해방구’. 다양한 놀이시설과 체험 프로그램들로 가득 차 있다. 축제의 대표선수인 산천어 얼음낚시,‘겨울의 고전’ 썰매타기와 눈썰매 봅슬레이 등 얼음위에서 하는 모든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산천어 낚시와 눈썰매 등 놀이시설 이용료 대부분을 ‘화천사랑 상품권’으로 되돌려 줘, 사실상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한 것도 이 축제의 자랑이다. 이 상품권은 행사장 내에서는 물론, 화천시내 어디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 신나는 산천어 잡기 40㎝가 넘는 두꺼운 얼음 속에서 어린아이 팔뚝만한 산천어가 낚싯줄에 끌려 나온다. 짜르르한 손맛에 과년한 처녀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도 체면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환호성을 터뜨린다. 간혹 산천어보다 몸집이 두배 가까운 송어라도 끌어올렸을 때는 건장한 떠꺼머리 총각도 어찌할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계곡의 여왕’산천어는 1급수 맑은 물에만 서식하는 냉수성 어종.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산천어를 신선들이 먹는 음식이라 했고, 일본에서는 왕실 진상품 등으로 쓰였다. 북한에서는 국방위원장의 보양식이자 국가지정 천연기념물로, 타이완에서는 보물 물고기란 뜻의 국보어(國寶魚)로 불리기도 한다. 행사장에서 산천어를 잡는 방법은 얼음낚시와 루어낚시, 그리고 맨손잡기 등 모두 세가지. 이 가운데 1만개의 얼음구멍이 뚫려 있는 넓은 낚시터에서 펼쳐지는 얼음낚시는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온 김태형(12)군은 “갑자기 낚싯대가 후두둑 하며 몸이 흔들릴 정도로 떨리더군요. 깜짝 놀랐어요.2시간만에 두마리를 잡았는데,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예요.”라며 입술이 귓불에 닿을 만큼 환하게 웃었다. 인조미끼인 루어를 얼음구멍 아래 바닥까지 가라앉힌 다음, 위아래로 들었다놨다 하면서 산천어를 유혹하는 것이 얼음낚시 요령. 산천어의 유영층인 바닥위 10∼50㎝사이를 집중공략해야 한다. 행사장에서 화천낚시를 운영하고 있는 오충교(45)씨는 “루어를 바닥까지 가라앉힌 다음, 견짓대를 한바퀴 돌리면 손뼘 하나 정도 뜨죠. 그 상태에서 위아래로 고패질을 해주는 겁니다. 루어가 낙하할 때 공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손목에 스냅을 줘서 끌어올린 다음, 슬며시 내리면 마치 작은 물고기처럼 살랑거리며 내려가죠.” 시간상으로는 아침 9∼11시와, 오후 3∼5시 사이를 놓쳐서는 안된다. 주최측에서 산천어를 방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류쪽이나 낚시터 펜스주변을 공략하면 많이 낚을 수 있다. # 루어낚시로 잡을까, 맨손으로 잡을까 유연한 자세로 플라이 낚싯대를 휘두르는 최철우(32·강원 철원)씨. 낚싯대 가이드 톱마다 살얼음이 맺혀 있다. 꿰미를 보니 단 한마리의 산천어도 못 잡은 모양. 그래도 표정만은 여유롭다.“제가 어복이 없나 봐요. 깨끗한 자연속에서 맑은 공기 쐬고 가면 그게 좋은 것 아닌가요.” 루어낚시는 앉아서 구멍만 바라보는 얼음낚시와는 또다른 재미가 있다. 루어를 멀리 캐스팅한 다음, 끌어올리기 때문에 산천어가 끌려 나오지 않으려고 앙탈이라도 부리면 ‘찐한’ 손맛을 즐길 수 있다. 조과도 나은 편. 하지만 낚싯대와 릴 등 다소 전문적인 장비가 필요하다. 맨손잡기는 10m짜리 원형 수조속에 풀어 놓은 산천어를 제한시간 5분동안 맨손으로 잡는 행사.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는 주최측에서 제공한다. 참가자들의 편의를 위해 탈의실과 탈수기 등도 준비돼 있다. 세 행사 모두 고등학생 이상 만원, 중학생이하 5000원의 입장료를 받지만,5000원은 농촌사랑나눔권으로 돌려준다. 중학생이하는 사실상 무료인 셈. 이 상품권으로 행사장 주변의 향토웰빙촌에서 농특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 다양한 놀이기구 즐기기 얼음낚시를 하다 아이들이 지루해하면 얼음체험 프로그램을 즐길수 있다. 얼음광장에서 썰매광장에 이르는 거대한 빙판에서 얼음썰매를 지치며 놀 수도 있고, 얼곰이 썰매열차를 타고 얼곰이성과 눈조각품들을 감상할 수도 있다. 눈썰매 봅슬레이는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스릴만점인 놀이기구. 어린이 썰매면허시험장에서는 ‘구절양장’꼬불꼬불한 눈길을 통과하는 어린이에게 ‘썰매면허증’을 발급해 준다. 눈썰매는 만원을 받는데, 반납할 때 현금 5000원과 5000원권 화천사랑상품권을 준다. 얼음썰매는 5000원. # 다양한 문화, 전시 프로그램 예년에 비해 자녀의 체험학습에 도움을 주는 알찬 프로그램들이 많아졌다. 얼음나라관에는 산천어와 수달, 토종물고기 등에 대한 풍성한 정보와 자료가 전시된다. 얼음나라 만화관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 일본과 북한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상영된다. 산천어 소망나무에 새해를 맞는 가족들의 소망을 적은 소망리본을 달아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 이밖에 행사장 제1터널부터 화천읍사무소, 중앙로에 이르는 구간에 조성된 산천어등(燈) 거리, 매주 금, 토요일 유명 연예인들이 벌이는 미니 콘서트 등도 볼 만하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농촌체험 사랑방 마실’도 놓치면 후회할 주요 이벤트. 농촌 가정에서 민박을 하며 장작패기, 가족 윷놀이, 밤하늘 별보기, 얼음낚시, 장작불에 구운 감자와 고구마 야참먹기 등 전통적인 놀거리와 함께 시골마을의 따뜻한 인심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사랑방마실은 ▲동촌리 산속 호수마을 ▲간동면 구만리 어룡동마을 ▲하남면 원천리 하늘빛 호수마을 ▲상서면 신대리 토고미마을 ▲사내면 용담리 곡운구곡마을 등 5개 마을에서 운영중이다. # 가는 길 얼음나라 화천으로 가는 길은 미끄럽기 그지없다. 하루종일 응달진 산자락 아래 도로는 결빙되어 있는 곳이 많으므로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춘천∼화천간 5번국도는 주말이면 행락객들 차량으로 몸살을 앓는다. 가급적 평일, 주말에는 이른 시간대를 이용해야 혼잡을 피할 수 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퇴계원 나들목→퇴계원방향→47번국도→진관나들목→383번 지방도→사능­답내간 신설 46번국도→강촌→5번국도→화천 북부간선도로→구리→남양주→대성리→강촌→화천 북부간선도로→구리→베어스타운→포천 일동/이동→광덕계곡→화천 # 여행정보 화천천의 겨울바람은 동장군도 울고 갈 만큼 매섭다. 모자와 장갑, 두툼한 방한복은 필수. 방한효과가 좋은 스티로폼을 앉기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가져가는 것도 좋다. 견지낚싯대는 행사장 주변 낚시점에서 2000∼4000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릴 낚싯대는 1만∼2만원선. 미끼인 루어는 3000∼5000원. 산천어알 등 생미끼를 사서 쓰는 경우도 있지만, 조과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제10회 인제 빙어축제(www.injefestival.net) 오는 26일 개막해 다음달 4일까지 소양호 300만평 얼음벌판 위에서 열흘간 펼쳐진다. 축제장은 크게 4개 공간으로 나뉜다. ‘깨끗한 자연(Nature Zone)’을 테마로 한 공간에서는 빙어낚시와 눈썰매 등을 즐길 수 있다. ‘신나는 겨울(Leports Zone)’공간에서는 얼음축구대회와 스노 래프팅 등 다양한 레포츠 행사가 열린다. ‘맛있는 겨울(Wellbeing Zone)’ 마당은 빙어회, 빙어튀김 등 각양각색 빙어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이다. ‘행복한 겨울(Family Zone)’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 쉽고 재밌는 빙어낚시 동지(冬至) 무렵에 나타나 입춘(立春)즈음이면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호수의 요정’빙어. 겨우 손가락만한 크기지만, 맛도 좋으려니와 남녀노소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어 ‘국민적인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빙어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빙어낚시. 간단한 장비로 누구나 쉽게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빙어낚시의 가장 큰 매력이다.2000~3000원 정도의 견지낚싯대와 2000원짜리 구더기미끼 한 통이면 온가족이 먹기에 충분한 양의 빙어를 잡을 수 있다. 어린이들도 요령만 가르쳐주면 곧잘 잡아낸다. 소양호 드넓은 얼음벌판 아무 곳이나 구멍 하나 뚫으면 준비끝. 얼음에 구멍을 뚫기 위해서 끌이 필요하지만, 주변에서 손쉽게 빌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뚫어 놓은 구멍을 써도 된다. 축제위원회는 1만원으로 즐기는 ‘빙어낚시 패키지’를 준비했다. 얼음구멍을 만들어 주고 낚시도구, 미끼, 의자 등을 빌려준다. 스노모빌과 얼음썰매까지 즐길 수 있다. 인제군청 문화관광과 (033)460-2082,460-2170. # 많이 잡으려면 첫째, 빙어를 많이 잡아 놓은 사람 옆자리에 자리 잡을 것. 둘째, 채비를 물밑바닥에서 10㎝ 정도 띄운 다음,3∼5초에 한번씩 살짝 챔질을 해줄 것. 셋째, 빙어의 입질이 집중되는 아침시간대, 특히 동틀 무렵부터 오전 10시까지의 시간대를 놓치지 말 것. 미끼로 쓰는 구더기는 한 마리 꿰기가 원칙이다. 바늘끝이 꼬리쪽 껍질에 살짝 걸치도록 꿰는 것이 좋다. 구더기가 든 미끼통의 뚜껑을 연 채 얼음판 위에 놓으면 동사의 우려가 있으므로 주의할 것. 제14회 태백산 눈축제(festival.taebaek.go.kr) 눈과 얼음을 주제로 한 겨울축제로는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축제.‘눈, 사랑, 그리고 환희’란 주제로 오는 26일∼2월4일 10일간 열린다. 정상 부근의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군락지 설경과 백두대간의 웅장한 모습은 태백산만의 자랑. 축제장의 다양한 이벤트와 눈덮인 계곡길을 따라 걷는 눈꽃 트레킹, 태백산에서만 탈 수 있는 오궁썰매 타기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은 행사다. 예전과 다른 점은 각종 체험 프로그램이 늘었다는 것. 단군성전 앞 공터에 웰빙 족욕탕을 마련해 등산객들에게 따뜻한 족욕과 발 마사지를 제공하는 한편,4륜 모터 사이클이 끄는 스노 트레인을 운영하고,3000명이 벌이는 도전 기네스 눈싸움대회도 연다. 금천낚시터에서는 산천어, 송어 낚시체험 행사를 벌이기도 한다. 주행사장은 태백산 도립공원 일대. 하얼빈 눈축제의 조각가를 초청해 태백팔경 눈조각 부조, 주몽과 소서노 등의 눈조각 작품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당골광장에서는 ‘스노 매직쇼’,‘비보이 페스티벌’ 등이 열리고, 등산로 입구에는 ‘얼음터널’이 전시된다. 마장공터에서는 ‘겨울놀이마당’,‘추억의 먹거리 체험’ 등의 체험행사, 마장아래 공터에는 어린이 미니 얼음미끄럼틀 등이 준비되어 있다. 이밖에도 황지연못, 장성, 태백역 등 보조행사장에서도 ‘황금돼지를 잡아라’ 등 각종 행사가 열린다. 태백시청 관광문화과 (033)550-2081,2828, 태백산 도립공원 (033)550-2741,2745. 제15회 대관령 눈꽃축제(www.snowfestival.net) 오는 31일∼2월6일 평창군 횡계리 상지 대관령 고등학교 제2운동장 일대에서 펼쳐진다. # 대관령 눈꽃축제에서만 볼 수 있는 것 첫째,2014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염원을 담은 20m높이의 초대형 눈조각 상징조형물이 선을 보인다. 이를 위해 제설기 5대와 포클레인 10대, 덤프트럭 20대 등의 중장비와 30여명의 조각가들이 투입될 예정이다. 둘째, 개막식날인 31일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는 ‘황태해장국 2014 그릇 나눠먹기´ 행사가 진행된다. 눈꽃축제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대관령 대표 음식인 황태해장국 2014 그릇을 무료로 제공한다. 셋째, 한겨울의 알몸축제, 대관령 알몸마라톤대회가 부활된다. 눈쌓인 산하를 배경으로 웃옷을 벗은 채, 해발 700m의 고원도시 평창을 달리는 색다른 경기.10㎞,5㎞ 구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넷째, 박진감 넘치는 스노 카레이싱대회가 열린다. 눈과 얼음 트랙을 미끄러지며 질주하는 차량들의 경주가 색다른 볼거리가 될 듯.A6(1500㏄ 미만),A7(2000㏄ 이상) 경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하얀 눈속에서 펼쳐지는 레이싱걸들의 응원열기도 볼 만할 듯. 이밖에 대형 얼음무대에서 펼쳐지는 비보이 공연, 전통 눈썰매와 소발구 체험, 그리고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스노래프팅과 스노모빌 체험 등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색다른 행사들이 알차게 준비돼 있다. 평창군 문화관광과 (033)330-2762, 대관령눈꽃축제위원회 (033)336-6112.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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