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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게, 대개는 참을 수 없기에…눈밭을 달려 너에게로 간다

    대게, 대개는 참을 수 없기에…눈밭을 달려 너에게로 간다

    ‘소는 한 마리를 다 먹어도 흔적이 안 남지만, 대게는 작은 놈 한 마리만 먹어도 숨길 수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향기가 짙고 오래간다는 뜻이다. 이 계절의 대게찜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그 향기, 그 촉감, 짭짤 쌉쌀 달큰 고소한 그 맛. 과연 겨울 식도락의 정수라 할 만하다. 한데 찜 외에 다른 음식은 없을까. 갯마을 사람들의 겨울 먹거리를 책임졌던 고마운 음식 말이다. 대게를 찜으로만 먹지는 않았을 것이고, 오늘날까지 전승되지 못한 토속 음식이 반드시 있을 터다. 경북 울진으로 발걸음을 한 건 바로 그 애수의 음식을 찾기 위해서였다.늦겨울이면 울진 등 경북 북부 지역에 종종 큰눈이 내린다. 나라를 통틀어 눈이 씨가 마른 올해도 동해안 북부 일대로는 여행자의 발을 묶을 만큼 눈이 내렸다. 그래도 이 계절의 대게는 꼭 찾아가 맛봐야 한다. 눈밭을 맨발로 뒹구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대게는 역시 찜이 진리다. 탕도 시원하긴 하지만 대게 속살의 향과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역시 쪄서 먹는 게 최고다. 울진 후포항에 줄지어 들어선 음식점 대부분이 대게찜을 내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찜이나 탕 외에 변변한 대게 요리를 찾아볼 수 없는 건 다소 이상하다. 후포 하면 대게의 본고장이라 할 만큼 대게가 많이 나는 곳인데 말이다. 물론 대게 라면이나 대게 짬뽕 등을 내는 집은 있다. 하지만 전승 음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논외다.●대게로 김치·지짐·장조림? 사실 오래전엔 대게를 활용한 음식들이 있었다. 대게짜박이, 해각포(말린 대게다리), 대게국죽, 장조림, 김치, 지짐 등 하나같이 생소한 음식들이다. 찜이나 탕 같은 대게 중심의 음식도 있지만 장조림이나 지짐처럼 대게 다리를 반찬으로 쓰기도 했다. 이 음식들이 사라진 건 물론 대게 값이 오르면서부터다. 추억의 음식을 맛보겠다고 찾아간 갯마을 사람에게 듣는 답변은 한결같다. “요즘은 그런 거 몬 먹습니데이. 그 귀한 대게를 어데 다른 음식에 쓴다 말인교?” “대게 다리를 말린다꼬요? 하이고마 말릴 기 어데 있습니꺼. 그냥 먹을 것도 모자리는데.”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울진의 대게 인심은 후한 편이었다. 다리가 떨어진 상품성 없는 대게의 경우 쌀자루 하나 가득 담아도 돈 몇 푼 받지 않았다. 대게가 많이 잡힌 날은 그냥 얻어 가기도 했다. 대게보다 값이 쌌던 홍게(붉은대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요즘은 물론 다르다. 대게건 붉은대게건 떨어진 다리까지 모아서 경매를 한다. 다리 떨어진 대게라도 얻을까 싶어 위판장 근처를 기웃대던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하나둘 빈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대게로 만든 음식들 역시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는 수순을 밟게 됐을 것이다. 이들 음식은 대개 ‘파지’를 활용해 만든다. 파지는 다리가 떨어진 게를 일컫는다. 대게를 잡고, 운송하는 과정에서 다리가 떨어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한데 대게 스스로 다리를 떼는 경우도 있다. 대게를 찌기 전에 먼저 미지근한 민물에 담가 죽이는 건 그 귀한 다리를 온전히 보전하기 위한 조치다.●떨어져 나간 게 다리 모아 끓이고 말리고 무치고 해각포는 대게 다리를 쪄서 햇볕에 사나흘 말린 것이다. 대게를 오래 보관해 먹기 위한 주민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음식이다. 말린 대게 다리는 주전부리나 반찬으로 주로 먹었다. 멸치처럼 육수를 낼 때 쓰기도 했다. 술꾼들에게는 안주로 제격이었다. 말린 오징어처럼 짭조름한 맛과 꾸덕한 식감은 소주 한잔과 ‘찰진’ 궁합을 이뤘을 것이다. 대게국죽은 먹거리가 귀했던 겨울에 울진 사람들의 보양식 역할을 했던 고마운 음식이다. 해각포로 낸 육수에 시래기와 쌀을 넣고 푹 끓인 다음 된장으로 간을 해 낸다. 설설 끓는 국죽을 입으로 호호 불어 가며 먹는 맛이 각별하다. 김장을 담글 때나 배추 겉절이를 만들 때 대게 다리를 넣기도 한다. 대게비빔밥도 별미다. 대게 등껍질에 밥과 김, 참기름을 넣고 비벼 낸다. 이런 음식들은 울진 사람들이 겨울 추위를 이기고 고단한 갯일을 이어가는 데 든든한 힘이 됐을 것이다.대게를 식재료로 쓴 음식 대부분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다리를 재활용한 것들이다. 충남 서산의 게국지처럼 이들 음식에서 서민의 애수가 듬뿍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한데 대게를 통째 쓰는 음식이 있다. 바로 게 짜박이다. 대게와 채소를 넣고 물엿, 간장, 된장(또는 고추장) 등을 곁들여 자작하게 끓여 내는 음식이다. 대게를 통째 넣는 건 대게의 장이 들어가야 제맛이 나기 때문이다. 대게 값이 오른 요즘엔 구경조차 힘들다. 몇몇 음식점에서 게 짜박이를 팔고 있지만 옛날 방식은 아니고 퓨전 스타일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이 계절의 별미 몇 개 덧붙이자. 문어는 늦겨울 울진의 또 다른 별미다. 요즘은 깊은 수심에 있던 문어가 슬슬 얕은 곳으로 나오는 시기다. 체내 염분이 줄고 살도 쫀득해진다. 담백한 맛의 줄가자미도 제철 별미다. 워낙 귀해 몸값이 일등급 한우보다 비싸다. 몸통 살보다는 기름지고 울긋불긋한 뱃살을 높게 쳐 준다. 글 사진 울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요즘은 대게와 붉은대게의 가격 차가 없다. ‘홍게’로 불리던 시절과 달리 붉은대게의 품질이 높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오히려 붉은대게의 경매가가 높은 경우도 있다. ‘홍게’ 시절만 생각하고 바가지 썼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전체적으로는 게 값이 많이 오른 편이다. →옛 대게 음식을 맛보는 건 매우 어렵다. 다행히 몇몇 맛집들에서 옛맛을 살리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왕돌회수산’에서 대게국죽을 판다. 아직 정식 메뉴에 오르지는 못 했고, 고객들의 반응에 따라 지속 판매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대게지짐이나 장조림 등은 밑반찬으로 종종 낸다. 후포항 대게활어센터에 있다. 게짜박이는 근남면 ‘이게대게’ 등의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다. →27일부터 3월 1일까지 열릴 예정이던 ‘2020 울진대게와 붉은대게축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때문에 잠정 취소됐다. 다양한 대게 관련 음식을 맛보려던 이들에겐 아쉬운 소식이다.
  • 中 뱃길 전면 중단 인천항 ‘개점휴업’…돼지열병에 코로나까지 파주 ‘울상’

    중국인 절반 찾던 접경지, 폐업 지경 “이제 장사 좀 하나 싶더니 다시 파리만 쫓고 있어요….” 6일 낮 12시 인천항 제1국제여객터미널과 제2국제여객터미널 내부. 매표소 카운터 유리에 ‘운항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만 붙어 있고 인적은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지난달 설 연휴 직전부터 칭다오·톈진·웨이하이 등 중국 항구를 오가는 10개 노선의 여객선 운항이 사실상 전면 중단됐기 때문이다. 1990년 항로 개설 이후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덮쳤을 때도 여객선 운항을 중단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휴항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10개 노선 중 3개 노선은 아예 끊겼고 7개 노선은 화물만 다닌다. 지하 구내식당은 8일부터 아예 문을 닫는다. 이날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국제선 이용자 수는 2011년 104만여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7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60만명으로 급감했다가 지난해 103만명으로 회복 중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다시 위축되고 있다. 터미널 인근 음식점 등 상가들은 개점휴업 상태다. 인근 한 음식점 사장은 “세월호와 사드 여파로 3~5년간 간신히 버텨 왔다”면서 “이제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또 이 난리”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던 경기도 관광지들은 문을 닫을 지경이다. 경기 파주 임진각 일대는 심각하다.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쪽에 야생하는 멧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확산시키는 주범으로 확인되면서 128일째 안보관광이 중단된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신종 코로나까지 번지면서 관광 재개는 난망하다. 제3땅굴의 경우 지난해 1월부터 9월 말까지 관람한 외국인 관광객이 30만명인데, 이 중 절반인 14만 4000여명이 중국인 관광객이었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파주시 관계자는 “돼지열병과 신종 코로나 때문에 민통선 안팎 주민뿐 아니라 탄현 통일동산, 문산 일대 상인들까지 울상”이라면서 “하루빨리 관광 재개가 이뤄지도록 감염병 통제가 실효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한참 뒤로 밀린 노동공약… 아직 ‘제로’ 민주당, 친기업 한국당

    한참 뒤로 밀린 노동공약… 아직 ‘제로’ 민주당, 친기업 한국당

    민주, 현재까지 발표한 5개 공약 중 전무 한국당, 최저임금·주52시간 무력화 공약 정의당만 4번째 공약에 ‘전태일 3법’ 제안 민주·한국 영입 인재 중 ‘노동 인사’ 없어더불어민주당이 민생을 강조하며 총선 공약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공약’은 후순위로 밀린 채 자취를 감췄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 20대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노동존중’을 표방하며 노동공약을 핵심으로 내세웠던 것과 대비된다. 민주당이 5일까지 발표한 5가지 총선 공약은 ‘공공 와이파이 확대’, ‘유니콘 기업 육성’, ‘자영업자 등 민생 활력 제고’, ‘청년신혼부부 주택 확대’, ‘보행 안전’이다. 노동계는 “물론 향후 총선 공약에 노동도 자연스럽게 담길 것”이라면서도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린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되는 이번 총선에서 노동을 강조하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악’에 반대하면서 자유한국당과 선명성 경쟁을 할 수 있고,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컸던 지난 총선 및 대선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노총은 지난 3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게 총선에서 민주당의 노동공약이 사라진 점을 우려하며 공문을 보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선거를 앞두고 노총의 방침을 정해야 하고, 노동공약도 당의 총선 공약에 반영시켜야 한다”면서 “취약해진 민주당의 노동공약 이행 의지를 묻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7일까지 노동 분야 주요 과제에 대한 정부·여당의 이행 노력과 향후 계획 등에 관해 답변해 줄 것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머뭇거리는 사이 한국당은 ‘친기업’을 표방하며 문재인 정부의 대표 노동공약인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제도를 무력화하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최저임금 업종별·규모별 차등 적용과 다양한 근로시간 제도(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재량근로제 등)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 강성노조의 불법 파업 행위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공약도 빠지지 않았다. 다만 정의당은 이날 네 번째 공약으로 ‘전태일3법’을 제안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동’이 후순위로 밀린 현실은 각 당이 총선에서 여론을 집중시키는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는 ‘인재 영입’의 면면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당이 아홉 번째, 민주당이 16호 영입 인재를 발표했지만 ‘노동’과 연결할 수 있는 인재는 없다. 민주당 관계자는 “노동계는 개인이 아닌 조직이 함께 움직이는 측면이 있어 다른 방식의 영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노동은 민생도 아니다? 후순위로 밀린 ‘노동 공약’

    노동은 민생도 아니다? 후순위로 밀린 ‘노동 공약’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과 다른 민주당 행보한국노총 “7일까지 공약이행 계획 답변 달라”인재영입에도 ‘노동’ 관련 인사 없어더불어민주당이 민생을 강조하며 총선 공약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공약’은 후순위로 밀린 채 자취를 감췄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 20대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노동존중’을 표방하며 노동공약을 핵심으로 내세웠던 것과 대비된다. 민주당이 5일까지 발표한 5가지 총선 공약은 ‘공공 와이파이 확대’, ‘유니콘 기업 육성’, ‘자영업자 등 민생활력 제고’, ‘청년신혼부부 주택 확대’, ‘보행 안전’이다. 노동계는 “물론 향후 총선 공약에 노동도 자연스럽게 담길 것”이라면서도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린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되는 이번 총선에서 노동을 강조하는 것이 선거 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에 반대하면서 자유한국당과 선명성 경쟁을 할 수 있고,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컸던 지난 총선 및 대선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이다.이에 한국노총은 지난 3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게 총선에서 민주당의 노동공약이 사라진 점을 우려하며 공문을 보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선거를 앞두고 노총의 방침을 정해야 하고, 노동공약도 당의 총선 공약에 반영시켜야 한다”면서 “취약해진 민주당의 노동공약 이행의지를 묻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오는 7일까지 노동 분야 주요 과제에 대한 정부·여당의 이행 노력과 향후 계획 등의 답변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머뭇거리는 사이 한국당은 ‘친기업’을 표방하며 문재인 정부의 대표 노동공약인 최저임금과 주52시간 제도를 무력화하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최저임금 업종별·규모별 차등적용과 다양한 근로시간 제도(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재량근로제 등)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 강성노조의 불법 파업 행위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공약도 빠지지 않았다. 다만, 정의당은 이날 4번째 공약으로 ‘전태일3법’을 제안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특수고용노동자들도 노동3권을 보장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동’이 후순위로 밀린 현실은 각 당이 총선에서 여론을 집중시키는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는 ‘인재영입’의 면면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당이 9번째, 민주당이 16호 영입 인재를 발표했지만, ‘노동’과 연결할 수 있는 인재는 없다. 민주당 관계자는 “노동계는 개인이 아닌 조직이 함께 움직이는 측면이 있어서 다른 방식의 영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적과의 동침?…코요테와 오소리, 함께 사냥하는 사연

    적과의 동침?…코요테와 오소리, 함께 사냥하는 사연

    코요테와 오소리,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인 두 동물의 수상한(?) 동행이 포착됐다.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 알토의 비영리단체 ‘페닌슐라 오픈 스페이스 트러스트’(POST, 이하 포스트) 측은 산타크루즈 마운틴 인근 고속도로에서 생태통로를 함께 지나는 코요테와 오소리가 관찰됐다고 밝혔다. 공개된 영상에는 뒤따라오는 오소리를 향해 ‘이쪽으로 오라’고 말하듯 껑충껑충 뛰어대는 코요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윽고 등장한 오소리는 꼬리를 흔들며 앞서가는 코요테의 뒤를 따라 생태통로로 들어섰고 느린 걸음으로 자취를 감췄다. 영상은 지난해 11월 23일 새벽 1시경 촬영됐다. 피식자인 오소리가 포식자인 코요테의 뒤를 따라가는, 언뜻 위험해 보이는 이 장면에는 철저한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국(USFWS)에 따르면 사실 코요테와 오소리는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사냥 짝꿍’이다.두 동물의 사냥은 코요테가 땅 위, 오소리가 땅 밑을 도맡는 분업 형태로 이뤄진다. 코요테가 내달려 땅다람쥐를 구석으로 몰면 오소리는 지하로 숨은 먹잇감을 파헤쳐 붙잡는 식이다. 물론 코요테가 새끼 오소리를 잡아먹는 일도 종종 발생하지만, 포식자와 피식자인 두 동물의 공생 관계는 아직 유효하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번성할 수 있는 토지 네트워크를 목표로 하는 포스트 측은 지난 2년간 캘리포니아주 길로이 지역 일대의 로드킬 현황을 조사하다 우연히 코요테와 오소리의 동행을 포착했다. ‘야생동물연계프로그램’ 연구에 참여한 닐 샤르마는 “(코요테와 오소리 한 쌍이 포착된) 산타크루즈 마운틴 인근 고속도로를 포함해 50여 곳에 원격 카메라를 배치하고 지난 2년간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수천 마리의 동물이 생태통로 덕에 로드킬을 면한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설명했다.카메라에는 코요테와 오소리 외에도 너구리와 오소리, 사슴 등 생태통로를 이용하는 다양한 야생동물이 포착됐다. 샤르마는 “우리는 최근 몇 년간 산타크루즈 산맥을 넘어 인근 디아블로산맥 등 야생동물의 핵심 서식지 사이의 연결성에 초점을 두고 활동을 했다”라면서 “생태통로가 서식지 사이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비록 인간을 위해 만든 도로지만, 생태통로의 일종인 터널식 지하배수로 ‘컬버트’만 잘 마련한다면 로드킬 방지 외에도 부수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단체는 퓨마 같은 최상위 포식자가 먹이를 구하지 못해 유전적 고립 상황에 놓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면서, 서식지 사이의 연결성에 기여해 붕괴가 임박한 생태계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너무 늦은 ‘르네상스 맨’ 조지 스타이너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너무 늦은 ‘르네상스 맨’ 조지 스타이너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남았고, 문학평론가 겸 수필가로 명성을 드날린 프란시스 조지 스타이너가 아흔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름에서 비치듯 국경을 넘나들었다. 1929년 프랑스에 머무르던 오스트리아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난 고인이 최근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3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아들 데이비드의 말을 빌어 AP 통신이 전했다. 데이비드는 존스홉킨스 교육정책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유족으로는 1955년 결혼한 아내 Zara Shakow와 데이비드, 컬럼비아 대학 교양학부 학장인 딸 데보라가 있다. 오스트리아 명문가 출신인 부모의 영향으로 그는 어릴 적부터 프랑스어와 독일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자랐고 나중에 이탈리아어까지 배웠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A.S. Byatt 은 ‘늦은 늦은 늦은 르네상스인’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도무지 경계가 없는 것처럼 그는 시, 수필, 엄청 긴 저작, 소설, 예술평론 등 실로 다방면에 걸쳐 저작 활동을 했다. 194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와 시카고 대학을 졸업한 뒤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 1950년대 4년 동안 잡지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원자폭탄 설계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인터뷰한 뒤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를 느꼈다”고 썼고, 나중에 그를 프린스턴 대학 첨단연구소에 근무하게 다리를 놓아준 일로도 유명하다.스타이너는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닐 때 단 둘이었던 유대인 학생 가운데 혼자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다. 여섯 살 때 파리의 아파트 아래 길거리에 모여든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죽여라”고 외치는 것을 봤는데 아버지가 “이런 게 역사란다. 넌 결코 겁 먹으면 안된다”고 말했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어두웠던 유럽 역사가 자신의 저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답을 수필 ‘어떤 종류의 생존자’를 통해 들려줬다. ‘유럽에서 일어난 일에 관한 캄캄한 미스터리는 내 자신의 정체성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하지만 동료 유대인들과의 불화도 상당했다. 먼저 1981년 소설 ‘The Portage of San Cristobal A.H.’를 통해 아마존 정글에서 히틀러 사냥을 묘사했는데 그는 히틀러의 공포가 나치즘을 형성했다고 정당화한 데다 현대 이스라엘이 건국하게 된 것을 연결했다는 의심을 자초했다. 유대인들이 먼저 “선택된 민족”이라고 선언한 것을 히틀러가 그대로 따라 했다는 것이었다. 존 레너드는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을 통해 “유대인들이 최고의 아이디어를 히틀러에게 제공했고, 그 대가로 히틀러는 이스라엘을 선물했다는 논리”라고 적었다. 그는 종교 지도자들을 영웅으로 여기진 않았지만 마르셀 푸르스트, 프란츠 카프카, 칼 마르크스 등을 영웅으로 떠받들었으며 이스라엘을 “대체 불가능한 기적”이라고 묘사해 여러 독자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본인도 예술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고, 그에 대해서도 폭넓은 비평을 남겼지만 그는 예술이 홀로코스트의 공포에 맞서 보호막을 제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967년 발간한 책을 통해 “이제야 깨달았다. 저녁에 괴테와 릴케의 작품을 읽고 바흐와 슈베르트 작품을 연주하던 이가 아침에는 아우슈비츠에 출근하러 갈 수 있다는 것을”이라고 지적했다. 스타이너는 스위스 제네바 대학에 20년을 몸 담는 등 수많은 대학에 방문교수 등을 지냈고 프랑스 레종도뇌르 훈장 등 많은 명예를 누렸다. 문학 평론가 마야 자기는 “폴리글롯(polyglot, 여러 나라 말을 할줄 아는 이)이자 박식한 사람(polymath)”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언어학, 철학, 문학 비평 등 손을 대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2009년 NYT에 기고한 한 문학평론가는 “그의 상큼한 미덕은 피타고라스로 시작해 아리스토텔레스와 단테를 거쳐 니체, 톨스토이에 이르기까지 단 한 문단에 녹여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반대로) 성나게 하는 악덕은 피타고라스로 시작해 아리스토텔레스와 단테를 거쳐 니체, 톨스토이에 이르기까지 단 한 문단에 녹여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알듯 모를 듯하게 지적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시론] 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 추진, 지금도 맞다/김동선 경기대 교육대학원장

    [시론] 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 추진, 지금도 맞다/김동선 경기대 교육대학원장

    새해 들어 정부가 2032년 하계올림픽 서울·평양 공동 유치와 남북 스포츠 교류 강화라는 화두를 던졌다. 남북, 북미 관계에 적대적 긴장감이 돌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착각에 빠져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남북 스포츠 교류는 현재 상황이 좋지 않다고 손을 놓아버리거나 미뤄서는 안 될 문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의 수도인 서울과 평양에서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것은 체제와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한반도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을 실현하고 나아가 세계 평화와 화합을 일구는 큰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분단 체제에서 스포츠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단절된 남북 간 대화채널을 복원시키기도 하고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의 기류를 가져다주는 단초 역할을 해 왔다. 동서 화해 올림픽으로 일컬어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대표적이다. 서울올림픽은 미소 냉전 구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격전지 중 하나인 한국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공산권의 참가 문제가 민감했다. 하지만 소련의 참가 선언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 중 160개국(북한, 쿠바 등 7개국 불참)이 참여하며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앞서 1980년 모스크바,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은 반쪽 대회로 치러졌으나 서울올림픽 이후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올림픽 보이콧은 자취를 감췄다. 특히 한국은 공산권 및 미수교 국가와 경제·문화·스포츠 교류를 활발히 추진해 헝가리, 중국 등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었다. 평화올림픽으로 일컬어지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한반도 전쟁 우려까지 나오는 일촉즉발 상황이었고 각국 선수단의 안전 문제가 제기되며 개최도 불투명했다. 하지만 끊임없는 설득 끝에 결국 북한이 참가했다. 이는 한반도 분단 현실과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의 의지를 세계에 보여 주며 올림픽사에 새 지평을 열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화해 무드는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2032년 올림픽은 서울올림픽, 평창올림픽과는 차이가 있다. 2018년 9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공동 개최에 협력하기로 함에 따라 남북은 지난해 2월 공동유치 의향서를 IOC에 제출했다. 정부는 최근 올림픽 공동 유치 계획안을 의결했지만 지난해부터 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북한은 아직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난관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비핵화와 대미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용인되기 어렵다. 비핵화가 진전돼 대북 제재가 완화돼야만 경기장, 숙박, 교통, 통신 등 각종 인프라 건설 등을 위한 자본과 장비가 북한에 반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막대한 재원 조달도 큰 과제다. 북한의 재원 조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내부의 반발이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비용 부담과 경제적, 비경제적 이익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거쳐 올림픽 공동 개최에 따른 손익을 상세하게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올림픽 공동 유치 추진은 단순히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것 이상의 결과를 우리에게 가져올 것이다. 우선 한반도 평화 정착이 가시화된다. 한반도 평화가 공동 개최의 필수 조건이므로 공동 유치는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남북이 함께 세계를 누비며 준비하고 추진하는 최초의 메가톤급 프로젝트는 남북 관계의 양적, 질적인 발전을 가져올 게 분명하다. 올림픽 인프라를 바탕으로 남북 경협 또한 크게 확대될 것이다. 한반도의 유라시아 물류종착지 사업도 한층 앞당겨질 수 있다. 한반도가 중국횡단철도,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는 북한판 마셜 플랜이 가동되면 국내 기업들도 수혜자가 된다. 북한의 대외 개방과 내수 경제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원산마식령스키장,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삼지연 등으로 세계 곳곳의 관광객들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공동 유치의 성사 여부는 북한이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변화를 결단하느냐에 달려 있다. 공동유치 합의 사항이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남북 정상이 합의한 만큼 북한이 확실한 의지를 보여 준다면 국제사회의 우려가 해소되며 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는 성공하게 될 것이다.
  • 코로나 습격 상하이 증시 7.7% 대폭락 ‘블랙먼데이’

    코로나 습격 상하이 증시 7.7% 대폭락 ‘블랙먼데이’

    중국 증시가 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초대형 악재를 만나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다. 특히 중국 증시의 3700여개 상장 종목 중 절대 다수인 3199개 종목이 가격 제한폭인 10%까지 떨어진 채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이날 상하이종합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무려 229.92포인트(7.72%)나 떨어진 2746.61에 장을 끝냈다. 선전종합지수 역시 147.81포인트(8.41%) 급락한 1609.00에 거래를 마쳤다. 이 같은 낙폭은 2015년 11월 28일 이후 4년여 만에 최대 규모다. 중국 증시는 당초 지난 1일 개장할 예정이었으나 정부가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춘제(설날) 연휴를 연장하면서 3일로 늦춰졌다. 이에 따라 상하이와 선전 증시는 개장하자마자 일제히 걷잡을 수 없이 폭락했다. 이날 증시는 중국 당국의 총력 방어 체계에도 아랑곳없이 급락했다. 금융시장 혼란이 예상되자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위)는 이날 공매도를 금지했다. 인민은행도 1조 2000억 위안(약 204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고 역환매조건부채권(역RP)의 금리도 2.4%로 0.1% 포인트 내리는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아시아 증시 역시 일제히 하락했다. 한국 코스피는 이날 큰폭으로 하락 출발 후 낙폭을 줄여 전 거래일보다 0.13포인트(0.01%) 떨어진 2118.88로 장을 마쳤다. 일본 도쿄 증시 닛케이225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33.24(1.1%) 하락한 2만 2971.94에 마감됐고, 대만 자취안지수도 전 거래일보다 140.18포인트(1.22%) 떨어진 1만 1354.92로 장을 마쳤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조코비치의 코비 추모가 특별한 이유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조코비치의 코비 추모가 특별한 이유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사람들은 매일 죽어나간다. 제 인생에서 가까운 존재로 여겼고 내게 멘토였던 한 사람, 코비 브라이언트가 딸과 함께 저세상으로 떠났다. 우리 모두에게 이전보다 더 많이 어울려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고 말하고 싶다.” 힘겨웠던 4시간의 싸움 끝에 도미니크 팀(오스트리아 세계랭킹 5위)을 3-2로 물리치고 2일 호주오픈 남자단식 우승을 차지한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2위)가 코트 인터뷰를 통해 헬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코비 브라이언트를 추모했는데 조금 색달랐다. 시상식에 나타난 그의 옷차림부터 남달랐다. 오른쪽 가슴에 ‘KB, 8, 24’가 적힌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였다. 전날 그는 경기를 마친 뒤 잘 싸운 팀을 격려하고 대회 주최측에 감사를 표한 뒤 호주 산불에 대한 얘기에 이어 브라이언트 얘기를 꺼냈다. “가족과 함께 지내고, 여러분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과 가까이 지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니란 얘기도 했다. 그는 “물론 프로 선수로서 경쟁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삶에는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의식하고 겸허한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코비치는 “난 1990년대 세르비아에서 전쟁을 겪으며 자랐다”며 “수출입 금지 조처가 내려진 고단한 시기여서 우리는 빵과 우유, 물 등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고 돌아봤다. 옛 유고 연방 시절인 1987년에 태어난 그는 “그런 일들이 날 더 배고프게 만들었고 성공하기 위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끼게 했다”며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노력하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사실 세르비아 내전이 종식된 1999년 이후 20년이 더 흘렀지만 지금도 그의 조국이 완전히 평화로워진 것은 아니다.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학살했다는 이유로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군이 코소보에서 세르비아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11주 동안이나 폭격을 해대 여전히 긴장이 감돌고 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팀이 한창 기세를 올리던 2, 3세트만 해도 패배를 피할 길이 없어 보였으나 막판 짜릿하게 승부를 뒤집은 조코비치는 “내가 필요할 때 정신적으로 강해지고 여러 도전을 이겨낼 수 있는 것에는 그런 배경이 있는 것 같다”고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일부에서는 일부러 팀의 체력을 소진시키려고 2, 3세트를 크게 진 것 아니냐고 추측했는데 조코비치는 “3세트 도중 트레이너로부터 ‘탈수 증세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때는 정말 상태가 안 좋았다”며 “거의 패배 직전까지 몰렸지만 일단 정신적으로 버텨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 17번째 우승을 차지, 로저 페더러(20회)와 라파엘 나달(19회)을 추격 중인 조코비치는 “그랜드슬램 대회는 내가 테니스를 하고, 풀 시즌을 치르는 이유”라고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도 관중석을 내내 지키며 열띤 응원을 보내준 가족과 (죽음으로) 작별하기 전에 충분한 사랑을 나누고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도 테니스를 하는 이유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용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마이클 호어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용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마이클 호어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용병이라면 한낱 돈에 팔려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며 아무에게나 총부리를 겨누는 무뢰한으로 여기기 쉽다. 그런데 그런 허접한 생각을 바꾸게 한 용병이 있었다. 보통 ‘미치광이 마이크’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마이클 호어가 남아공 더반의 요양원에서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아들 크리스의 성명을 영국 BBC가 3일 대신 전했다. 아들은 “마이클 호어는 위험하게 유지되는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내겠다는 철학을 갖고 살아왔다. 그게 100년 넘게 산 것보다 훨씬 돋보이는 대목”이라고 기렸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용병이었던 그는 말년을 남아공에서 지내며 세 권의 회고록 ‘용병’ ‘칼라마타로 가는 길’ ‘세이셸 사건’을 집필했다. 대관절 그가 누구인데, 한다면 로저 무어, 리처드 해리스, 하디 크루거 등과 공연한 1978년 전쟁영화 ‘지옥의 특전대(The Wild Geese)’에 앨런 포크너 대령으로 열연한 리처드 버튼을 떠올리면 된다. 포크너 대령이 바로 호어의 회고록 ‘용병’을 토대로 창조한 캐릭터였다. 2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복무한 뒤 대위 계급까지 달고 전후 회계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나중에 남아공으로 건너가 작은 기업을 운영했다. 1961년 콩고의 정치인 겸 기업인 모아제 촘베와 안면을 텄는데 3년 뒤 콩고 총리에 취임한 촘베가 공산당이 뒤를 봐주는 심바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호어를 고용했다. 임무를 18개월 만에 마치자 호어와 그의 부대원들은 ‘기러기’란 별명으로 국제적 명성을 떨쳤다.공산당이라면 치를 떠는 그의 신념 때문에 여러 나라들에서 좋지 않은 말을 들었다. 사실상 콩고에 억류됐던 유럽인 수천명을 구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부하들과 난 콩고에서 20개월간 반군 5000~1만명을 죽였다”면서도 “그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콩고인 2000만명 중 절반은 한때 반란군이었던 걸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옛 동독 라디오에서는 그를 ‘미친 블러드하운드(냄새로 추적하는 사냥개의 원조 종) 호어’라고 불렀는데 고인은 생전에 이 별명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1960년대 콩고 전쟁에서 명성을 떨쳤으나 그 뒤 쌓은 명성을 모두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1980년대 초 군 경력을 끝내고 은퇴한 듯 보였으나 갑자기 1981년 세이셸 제도의 쿠데타 시도에 몸 담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의 경력은 황당하게 막을 내렸다. 그는 세이셸 제도를 잘 안다고 믿었지만 알베르 르네 대통령 치하의 사회당 정부를 끔찍하게 증오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아공과 케냐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하자 호아는 쿠데타 계획을 짰다. 1981년 10월 그는 숨어 지내던 남아공의 한 방갈로에 무기들을 보내달라고 하고 46명의 남성을 선발해 전직 럭비 선수로 뛰다가 지금은 은퇴해 술이나 마셔대며 기부하는 클럽으로 변장시켜 무기들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마헤 공항 세관을 통과한 뒤 한 부하가 엉뚱한 줄 뒤에 서 있다가 세관원과 말다툼을 벌이는 바람에 가방을 뒤지게 만들었는데 분해한 AK 47 소총 등이 적발됐다. 그 바보 같은 부하는 너무 놀라 밖에는 더 많은 무기들이 있다고 고변했다. 호어는 근처에 계류해 있던 에어 인디아 여객기를 탈취해 남아공까지 달아났다. 공항 도착 후 엿새 동안 구금됐다. 그리고 “패키지 휴가로 벌인 쿠데타”란 각국 언론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일년 뒤 그들은 에어 인디아를 공중 납치하려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그는 20년 징역형에 10년 유예 판결을 받았다가 나중에 33개월만 복역하고 석방된 뒤 남아공으로 건너가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중국 증시 폭락, 상하이 종합지수 8.73%↓ “사스보다 충격 클 것”

    중국 증시 폭락, 상하이 종합지수 8.73%↓ “사스보다 충격 클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중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가운데 중국 증시가 춘제(중국 최대 명절) 연휴가 끝나고 나서 처음 개장한 3일 전례 없는 수준으로 폭락했다. 중국의 대표 지수인 상하이종합지수는 이날 전 거래일인 지난달 23일보다 8.73% 급락한 2,716.70으로 개장했다. 선전성분지수도 전 거래일보다 9.13% 하락한 채 출발했다. 중국 증시가 쉬던 춘제 연휴 기간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우려에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 주요 지역 증시가 이미 크게 내린 터라 이날 중국 증시 주요 지수 역시 큰 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날 낙폭은 시장에서도 충격적인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앞서 중화권인 홍콩 증시와 대만 증시는 각각 춘제 연휴 이후 첫 개장일인 지난달 29일과 30일 각각 2.82%, 5.75% 폭락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은 심각한 소비 침체, 산업 가동률 저하, 실업 증가 등으로 이어져 지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보다 더욱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오전 0시를 기준으로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누적 사망자 수는 361명에 달해 2003년 사스 때를 넘어섰다. 같은 시간대의 홍콩 항셍지수와 대만 자취안 지수는 전장보다 각각 0.58%와 2.32% 떨어졌다. 일본의 닛케이225지수는 1.20% 하락했고 토픽스도 0.93% 내렸다. 한국 코스피 지수(-0.84%)와 코스닥 지수(-0.92%)도 떨어졌다. 앞서 미국 뉴욕증시도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각)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가 2.09% 하락하면서 작년 8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1.77%)와 나스닥(-1.59%)도 1%대의 낙폭을 나타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제임스 매킨토시 칼럼니스트는 2일 “신종 코로나 영향이 미국까지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진단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집안에서 메아리가…” 박세리 대전 집 최초 공개

    “집안에서 메아리가…” 박세리 대전 집 최초 공개

    골프여왕 박세리는 레전드 중 레전드였다. 2일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에서는 골프선수 박세리를 비롯해 김동현, 조준호, 곽윤기, 최병철 등 각 분야 레전드 사부들이 총출동했다. 그중 박세리는 남다른 존재감을 뽐냈다. 자신의 대전 집으로 ‘집사부일체’ 멤버들을 초대한 박세리. 박세리 집을 본 멤버들은 “여태까지 봐왔던 집들중 가장 좋다”는 평을 했다.박세리 집은 현관 입구부터 달랐다. 현관에 들어서자 20년 골프 역사가 담긴 트로피 박물관이 멤버들을 맞이했다. 멀리서 봐야 한눈에 담길 정도였다. 박세리는 “여기 있는 건 미국대회 우승 트로피들뿐이며, 한국 대회 우승 트로피들은 부모님 댁에 전시 중이다”고 소개했다. 박세리는 층고를 시원하게 높여 탁 트인 거실로 안내했다. 박세리는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미국식 구조가 좋다”며 “원래 4.5층 정도인데 층은 6층 정도 된다. 난 오픈돼있는 걸 되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거실 바로 옆엔 침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침실은 박세리 성격답게 심플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부엌으로 바로 연결된 야외 테라스도 멤버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이날 박세리는 “어느 순간 내 꿈이 누군가의 꿈이 된 것에 대한 또 다른 책임감이 생기는 거다. 지금 후배들이 너무 고맙다. 그 꿈을 연결해주면서 이어주고 있다”며 후배들을 향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박세리는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꿈과 바람을 전했다. 이에 김동현은 “운동선수로서 최고인 것 같다”며 감탄했다. 다음 날 박세리는 아쉽게도 ‘집사부 올림픽’ 경기에 참석하지 못했다. 습관성 탈골이 생겼기 때문. 박세리는 “내가 해도 분명 이길 수 있는데 혹시라도 팀들이 힘 빠질까봐, 혹시 내가 다치면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질까봐 걱정이다”며 불참 소식을 알렸다. 박세리를 제외한 레전드 사부들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고, 감독 박세리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줬다. 조준호는 “박세리 키즈로서 박세리 감독님에게 금메달을 목에 달아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환호했고, 박세리는 “솔직히 트로피를 많이 받아봤는데 금메달이라는 걸 처음 타봤다. 레전드 팀 때문에 즐거웠다.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세리는 이제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서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한다.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온 후배들과 이제는 나란히 걷는 꿈을 꾼다. 6개월 남은 도쿄 올림픽에서 감독 박세리의 활약에 관심이 모아진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英 펑크록 밴드 ‘갱 오브 포’ 원년 멤버 앤디 질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英 펑크록 밴드 ‘갱 오브 포’ 원년 멤버 앤디 질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영국의 포스트 펑크록 밴드 ‘갱 오브 포’ 원년 멤버이자 기타리스트인 앤디 질이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의 스크래치 강하고 스타카토 기타 리프 연주는 밴드의 상징과도 같았으며 너바나, 푸가지(Fugazi), 프란츠 퍼디난드 같은 밴드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밴드 멤버들은 1일(현지시간) 성명을 내 “대단한 친구이자 빼어난 지도자가 오늘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고 BBC가 전했다. 밴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아시아 순회공연을 다녀온 뒤 “순환계 질환”과 투병해왔다. 아내 캐서린 메이어는 트위터에 “이 고통은 엄청난 기쁨의 대가다. 30년 가까이 세상 최고의 남성과 함께 지냈다”고 작별을 아쉬워했다. 밴드의 현재 멤버는 토머스 맥니스, 존 스테리, 토비아스 험블인데 “앤디의 마지막 투어는 그가 손을 떼고 싶어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목에 둘러대고 관중의 피드백에 소리를 질러대 앞좌석은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고 적었다. 이어 “가장 좋았던 일 중의 하나는 기타 음악과 창조 과정에 미친 그의 영향력이 그의 주변에서 일하고 그의 음악을 들어준 모든 이들 뿐만아니라 우리에게도 영감을 줬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1976년 리즈 대학 동창생인 질과 보컬리스트 존 킹 등이 어울려 결성해 첫 싱글 ‘Damaged Goods’부터 지난해 스튜디오 앨범 ‘Happy Now’까지 44년 한우물을 팠다. 1979년 ‘At Home He‘s A Tourist’로 톱 60에 들었는데 콘돔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BBC 방송금지가 된 일이 있었다. 같은 해 9월 데뷔 앨범 ‘Entertainment!’를 발매했는데 많은 음악인들에게 영감을 안겼다는 평가와 함께 롤링스톤 잡지의 역대 5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렸다. 잡지의 평가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을 펑크와 디스코에 녹여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 극찬을 했다.고르지 못하고 펑키하며 엄청난 노이즈가 폭발하는 그의 독특한 기타 리프는 지미 헨드릭스, 윌코 존슨, 팔리아먼트-펑카델릭의 에디 해이즐 같은 다양한 범주의 기타리스트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2015년 잡지 더스키니 인터뷰를 통해 “윌코와 닥터 필굿의 연주를 본 것은 형광등이 반짝인 것 같았다”며 “내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그는 관중을 보지도 않고 많은 시간을 들여 자신의 기타를 보지도 않았다. 난 늘 기타를 더 큰 악기, 예를 들어 밴드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왔다. 항상 바람직하지 않게 여기는 것이 기타리스트가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밴드의 나머지를 마치 배경처럼 다루는 일”이라고 밝혔다. 갱 오브 포는 히트 싱글 하나 만들어내지 못했다. 1982년 ‘I Love A Man In Uniform’이 거의 근접했는데 마침 발발한 포클랜드 전쟁 때문에 방송 금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의 초기 세 장의 앨범들은 모두 대체 불가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984년 원년 멤버는 뿔뿔이 흩어져 여러 해 동안 여러 멤버가 들락거리게 됐고, 질 혼자만 44년 가까이 몸담았다. 맨체스터 출신인 그는 존경받는 프로듀서이기도 해 스트랭글러스, 킬링 조크, 레드핫 칠리 페퍼스 같은 밴드들과 작업을 함께 했다. REM의 마이클 스티프는 갱 오브 포의 음악에서 많은 것을 훔쳐 썼다고 털어놓았고 갱 오브 포야말로 “내가 진짜로 연결짓고 싶어하는 첫 록 밴드”라고 말했다. U2의 보노는 “똑똑한 문자 폭탄”이라고 표현했고,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머신의 톰 모렐로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통해 질이 “내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이 가운데 한 명”이라며 “반영웅적인 음향공학과 날카롭고 시적이며 급진적인 지성이 내게 일러준 바가 많았다”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캐서린과 동생 마틴, 그를 끔찍히 그리워할 가족들을 남겼다. 밴드는 나아가 새로운 스튜디오 앨범 작업도 마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용인시에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 조성된다

    용인시에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 조성된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은이성지에서 안성시 미리내성지로 이어지는 순례길이 조성된다. 시는 순례길을 산티아고 순례길과 같은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어 간다는 계획이. 용인시는 30일 천주교 수원교구청 대강당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명품 순례길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시와 수원교구청은 천주교 관련 역사적 명소인 은이성지와 손골·한덕골 성지, 고촌골 공소, 이윤일 요한 묘역 일대에 명품 순례길을 만들어 세계적인 순례 명소로 조성하기로 했다. 용인 양지면에 있는 은이성지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15세 때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이다. 또 김대건 신부가 첫 사목 생활을 했던 곳으로 당시 조선 땅에서 처음으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고, 체포되고 순교하기 전 공식적으로 마지막 미사를 드렸던 곳이기도 하다. 미리내성지는 김대건 신부와 병오박해 때 처형된 순교자 열두 명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용인시는 은이성지~미리내성지 일대에 2.0∼12.5㎞에 이르는 5개 코스의 순례길을 조성해 시민들이 사색하며 힐링할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올해 4억원의 예산으로 은이성지 순례길 조성을 위한 실시설계를 마치고 신덕고개·망덕고개·애덕고개에 쉼터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용인시는 명품 순례길을 주변 관광지와 연계한 관광코스로 개발하고 스탬프투어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국내·외 천주교 신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방문을 유도하기로 했다. 백군기 용인시장은 “은이성지~미리내성지 순례길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용인시의 큰 유산이자 자산이다”라며 “종교를 넘어서 모든 시민이 사색하며 쉴 수 있는 명소가 되도록 명품 순례길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훈 수원교구장은 “우리나라 최초 김대건 신부의 자취가 깃든 이곳에 명품 순례길을 조성하게 돼 뜻깊고 기쁘다”며 “현대인들이 정신적으로 매우 어려운데 이 일대에 조성되는 천혜의 휴식공간이 치유 차원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명품 순례길 5개 코스는 ▲은이성지길 A코스(9.8㎞: 은이성지~신덕고개~곱든고개~문수봉~애덕고개~미리내성지) ▲은이성지길 B코스(12.5㎞: 은이성지~신덕고개~와우정사~망덕고개~애덕고개~고초골 피정의집) ▲피정의길 A코스(3.6㎞: 애덕고개~문수산터널 관리소~고초골 피정의집) ▲피정의길 B코스(10.2km: 망덕고개~애덕고개~성모영보수녀원 피정의집) ▲골배마실길(2.0㎞: 골배마실 성지~칠봉산) 등이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금요칼럼] 허균의 우정/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금요칼럼] 허균의 우정/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허균을 모를 사람이 없다. 허성, 허봉이란 두 형과 누이 난설헌까지 모두가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 가운데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이가 바로 허균이었다. 한번 스친 글도 잊지 않고 모두 외울 정도로 대단한 수재였다.(한치윤의 ‘해동역사’) 그의 기억력이 얼마나 훌륭했던지 실학자 이익도 ‘성호사설’에 기록했다. 어느 날 사람들이 붓을 한 줌 움켜쥐고 붓끝을 허균에게 보였다. 그런 다음 붓을 치우고 몇 개인지 물어보았다. 허균은 잠시 생각하더니 붓의 모양을 일일이 다 기억해 내고는 붓이 몇 개였는지를 헤아리는 것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길은 흡사 사진기와도 같았나 보다. 천하의 수재라서 그랬을까. 허균은 살면서 외로움을 탔다. 그가 쓴 ‘사우재기’(四友齋記)란 글을 읽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성소부부고’, 제6권). 허균은 자신의 거처를 사우재라고 했는데, 그 자신과 세 명의 벗이 함께하는 공간이란 뜻이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중국의 명사들이었다. 진나라 시절의 도사 도원량, 당나라 시인 이태백 그리고 송나라의 문장가 소자첨이었다. “나는 성격이 소탈하고 호탕하여 세상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나를 꾸짖고 무리를 지어 배척하니, 집에 찾아오는 벗이 없고 밖에 나가도 뜻에 맞는 곳이 없다.” 허균이 벗으로 선택한 고인들은 비범했다. 한가하고 고요한 자연을 사랑하며 우주를 집으로 삼아 인간 세상을 가볍게 여긴 현자들이었다. 또 그들은 모두가 탁월한 문장가였다. 허균은 당대의 이름난 화가 이정에게 부탁해 세 벗의 초상을 그리게 했다. 그러고는 그림마다 직접 추모의 글을 지어, 명필 한석봉에게 글씨를 부탁했다. 안타깝게도 이 그림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물론 허균의 생전에는 달랐다. 그는 여행 중에도 그림을 휴대해 머무는 곳 어디서든 방 한쪽에 걸어두었다. 그가 머무는 곳은 항상 네 사람의 선비가 웃으며 담소하는 분위기였다. 허균은 이 그림만 있으면 “내 처지가 외롭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회상했다. 그로서는 세속의 친구는 사귈 필요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허균에게는 정말 친구가 없었을까. 세 군자의 초상을 그려준 화가 이정이야말로 그가 아끼는 벗이 아니었던가. 화가가 별세했을 때 그는 몹시도 슬퍼했다. 애사(哀辭)를 지어 이정의 풍모를 이렇게 묘사하지 않았던가. “그는 술을 즐겼고 마음이 활달하였다. 글씨도 잘 쓰고 시도 잘 알았다. 무슨 일을 하든지 속기(俗氣)가 없고 비범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생활이 곤궁하여 남에게 의지했으나, 의(義)가 아니면 한 번도 취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아무리 권력이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더럽게 여겨 사이를 끊었다.” 허균은 나이고 벼슬이고 그 무엇도 따지지 않고 이정을 깊이 사랑했노라고 고백했다. 알고 보면 그들은 두터운 우정을 키우며 산 것이었다. 이 밖에도 허균에게는 수명의 심우(心友)가 있었다. 조지세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에는 그들의 우정을 말해 주는 글이 적지 않다.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어 얼마나 좋아했던지 마음에 거슬림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서로를 찾았고 잠시도 헤어지지 못했다. 날마다 풍아(風雅)를 비평하고 고금의 문장가를 존숭하며 세월을 보냈다. 세상 풍파와 무관하게 이렇게 지낸 것이 여러 해였다.” 이해관계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이합집산이 되풀이되는 오늘날이다. 얼마 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더없이 친해 보이던 두 사람의 유명 인사가 갑자기 갈라섰고, 그중 한 사람은 옛 친구를 완전히 매장하려는 듯 온갖 비방을 일삼는다. 오늘날 우리에게 우정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소중한 것일까.
  • 황치열X음문석, 친분 인증 투샷 ‘장난기 가득’ [EN스타]

    황치열X음문석, 친분 인증 투샷 ‘장난기 가득’ [EN스타]

    가수 황치열과 배우 음문석의 훈훈한 사진이 공개돼 화제다. 지난 27일 황치열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문석아.. 셀카 찍을 때는 제발 좀... #설 연휴 문석이가 해준 밥 #자취요리 천재 문석”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황치열과 음문석이 함께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이 담겼다.황치열이 이어 공개한 사진에서는 음문석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해 웃음을 자아냈다. 황치열은 음문석이 만들어 준 음식 사진을 공개하며 남다른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26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음문석이 새로 합류해 일상을 공개했다. 이날 음문석과 평소 친분이 있던 황치열이 집을 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안도현의 꽃차례] 흰수마자의 고향 내성천

    [안도현의 꽃차례] 흰수마자의 고향 내성천

    나는 맑은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강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래를 성처럼 쌓았다가 무너뜨리는 일은 내가 세상을 직접 경영하고 통치하는 일이었다. 모래로 몸을 덮고 강변을 달리는 경북선 기차 소리를 들었다. 목이 마르면 손으로 모래를 팠고 그러면 거기에 청아한 물이 고였다. 나는 스스럼없이 그 물을 손으로 떠서 마셨다. 겨울에는 할머니와 사촌 누나들이 허벅지까지 치마를 걷어 올리고 강을 건넜다. 이른 봄, 날이 풀릴 때쯤 깨진 얼음장들이 고평교 교각을 때리던 소리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성천은 백두대간 소백산 남쪽에서 발원해서 봉화, 영주, 예천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은모래 하천이다. 내 상상력의 시원지 내성천은 요 몇 년 사이 처참하게 망가졌다. 나는 망했다. 지율 스님이 맨손으로 막으려고 나섰던 영주댐은 2016년에 거대한 공룡처럼 내성천 상류에 들어섰다. 4대강 사업의 하나였다. 영주댐 건설에 이명박 정부는 1조 1030억원을 쏟아부었다.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낙동강 수질 개선을 명분으로 세워진 영주댐이 내성천 물길을 막자마자 댐에 고인 물에 녹조가 창궐했다. 수질 모니터링 결과 유해남조류 개체수가 최악을 기록했다. 영주댐은 ‘녹조 제조 공장’이 된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댐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부랴부랴 2019년에 1099억원의 수질관리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조류제거물질을 몇 차례 살포했으나 뚜렷하게 효과를 거두지도 못했다. 영주댐이 내성천의 숨통을 조이면서 내성천으로 흘러야 할 물의 유입량이 대폭 줄어들었다. 모래를 공급받지 못한 강의 일부는 자갈밭으로 변해 가고 있고, 내성천 곳곳에 하루가 다르게 진흙 퇴적물이 쌓이고 있다. 여뀌, 억새, 버드나무가 진을 치고 세력을 넓히는 중이다. 명승으로 지정된 예천 회룡포와 선몽대 일대의 백사장은 자치단체에서 풀과 나무를 인위적으로 걷어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국회 이상돈 의원의 정책보고서 ‘내성천 생물 다양성 보전’에 따르면 영주댐 건설 이후 멸종위기 생물들이 급격히 사라졌다고 한다. 매년 겨울 내성천을 찾던 먹황새는 2018년 이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내성천은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흰수마자의 국내 최대 서식지였다. 새끼손가락만 한 흰수마자는 고운 모래톱 사이를 흐르는 물을 좋아하는 물고기다. 영주댐 수몰지 안의 골재채취로 2013년 이후 상류의 흰수마자는 사라졌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흰수마자의 개체수를 늘리겠다는 계획으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회에 걸쳐 1만 마리의 치어를 방류했다. 이 사업으로 인한 개체수 증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서식처 복원에 대한 고려가 없는 땜질 대책이었다. 흰수마자가 사라지면 모래무지, 쉬리, 참마자, 동사리마저 내성천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보고서는 멸종위기종의 ‘절멸’을 우려하면서 마무리된다. 절멸이라는 표현은 무섭다.원래 강둑이란 건 없었다. 인간이 경작지로 강물이 흘러들지 못하게 하려고 둑을 쌓았을 뿐이다. 둑은 강과 사람의 마을을 분리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홍수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홍수는 인간에게는 재난이지만 강의 입장에서는 물길의 자연스러운 흐름의 하나다. 이제는 그것마저도 모자라 댐을 세웠다. 댐은 강의 숨결을 차단함으로써 강에 심각한 동맥경화증을 선물했다. 영주댐은 우리나라 최고의 모래강 내성천에 대한 국가의 폭력이다. 그 분탕질을 이제라도 멈추게 해야 한다. 영주댐을 즉시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댐을 철거하는 데 따르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영주댐 해체는 협의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할 필수사항이다. 환경부는 2019년 9월에 2차 시험담수를 통해 영주댐의 안전성을 평가하고 생태환경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나섰다. 내성천은 이미 죽어가고 있는데 뒤늦게 청진기를 갖다 대는 꼴이다. 내성천, 내 고향의 강이어서 애착을 갖는 게 아니다. 국내에 은모래가 이렇게 아름답게 펼쳐진 강을 본 적이 없다. 지구의 어디에도 이런 모래강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흰수마자의 고향을 살려야 한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2차대전 참전 108세 할머니 앤 롭슨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2차대전 참전 108세 할머니 앤 롭슨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영국군 출신 가운데 가장 오래 생존한 여성으로 여겨지는 앤 롭슨이 10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고인이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한 요양원에서 눈을 감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고 BBC가 23일 보도했다. 다음달 말 추모식이 열리길 희망하고 있다고 유족들은 밝혔다. 2018년 성탄 전야에 덤펌린에 주둔하고 있는 154 왕실 병참 대대에 초대돼 자신의 나이 ‘107’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제식 훈련을 받는 모습을 병사들과 함께 보여줄 정도로 정정했다. 1911년 9월 14일 스코티시 보더스의 던스에서 태어나 글래디스 앤 로건 맥와트로 불리던 그는 원래 물리치료사로 일하다 나중에 교사가 됐다. 1942년 여군 의용대(Auxiliary Territorial Service)에 입대해 체력훈련 조교로 소령까지 진급했다. 그는 2018년 12월 인터뷰를 통해 “전쟁이 시작된 뒤 곧바로 참전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한 몇 년 있다가 했다”며 “군에서도 이제 막 여성들의 체력훈련을 시작하고 있었다. 일등병으로 입대해 물밑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 수 있는 장교가 됐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하지만 그는 재빨리 장교가 됐다. 첫 근무지는 런던 지구였다. 공습이 여전했고 ‘두들버그(doodlebug, 런던 시민들이 독일군의 V1 로켓에 붙인 별명)’가 떨어지는 것을 처음으로 봤다. “그게 뭔지 몰랐지만 창문 밖으로 쳐다봤다. 번쩍하자 갑자기 몸을 던져 엎드렸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2년을 더 복무하다 전역해 런던에 있는 애브리 힐 사범대학에서 일했다. 1953년 결혼해 뉴캐슬로 이사 와 롱벤튼 중등학교 교감을 맡았다. 남편 잭이 1972년 먼저 세상을 떠나자 세인트 앤드루스로 옮겨왔다가 다시 에딘버러 요양원으로 옮겼다. 롭슨의 여조카 캐서린 트로터는 이모가 전쟁 경험을 얘기하며 매우 행복해 했다면서도 “결코 뻐기지 않았다”고 했다. 힘을 북돋는 친척이었다며 오랜 세월 힘들게 살았지만 한 번도 불평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유머 감각도 유지하고 있었고, 내 생각에 그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영국 왕립여군단협회(WRACA)는 생전의 롭슨과 자선 활동을 많이 펼친 것이 아주 자랑스럽다고 애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나홀로 명절’ 안내서 : 에어프라이어 안전하게 사용하려면?

    ‘나홀로 명절’ 안내서 : 에어프라이어 안전하게 사용하려면?

    나흘간 이어지는 설 연휴 기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자취방에서 홀로 명절을 보내는 ‘혼휴족’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는 에어프라이어. 기름 대신 전자파로 음식을 굽거나 튀기는 에어프라이어는 조리부터 세척까지 간편해 인기를 끌고 있다. 누구든 쉽게 스테이크부터 생선구이까지 다양한 음식을 조리할 수 있지만, 주의 깊게 사용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발암물질이 몸속으로 들어오거나 금속에 노출될 수도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제시하는 올바른 사용법에 따라 안전하게 명절을 보내보자.●에어프라이어에서 생성되는 발암물질 ‘아크릴아마이드’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에어프라이어에서 고온으로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을 조리하면 아크릴아마이드가 다량 생산될 수 있다. 아크릴아마이드란 고탄수화물 식품을 120도 이상으로 장시간 가열할 때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유해물질로, 주로 감자튀김이나 감자칩에서 많이 검출된다. 또한 과자류, 커피류, 시리얼에서도 검출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식품 내 아크릴아마이드 잔류 권고기준은 1000㎍/㎏ 이내다. 소비자원이 직접 10개 에어프라이어 제품으로 감자튀김을 조리해본 결과, 각 업체에서 제공하는 사용설명서대로 감자튀김을 조리하면 대부분 아크릴아마이드 생성량이 우려할 수준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원은 감자를 조리할 때 너무 태우지 말고 ‘황금빛 노란색’이 될 때까지만 조리하도록 권고했다. 감자량을 너무 적게 넣어도 금방 색깔이 진해지면서 다량의 아크릴아마이드가 검출되는 만큼 적정한 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고 온도와 시간은 업체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감자 조각으로 ‘웨지감자’ 요리를 만들고자 할 때 180도 온도로 15분간 돌리는 것이 ‘정석’으로 알려져있다. 자세한 기준은 구매시 동봉되는 사용설명서를 참조하자. ●세척은 너무 세지 않게…금속 코팅 드러날 수도 소비자원은 에어프라이어 내부에 있는 바스켓 세척시 금속 코팅이 벗겨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소비자원이 9개 에어프라이어 제품의 내부 바스켓 부위에 부직포 수세미를 반복해서 마찰한 결과 9세 제품 모두 1000회 미만에서 내부 금속 표면이 노출됐다. 코팅이 벗겨져 금속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만일 주2회 같은 강도로 세척을 하면 수명 기한이 6개월인 셈이다. 실제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에어프라이어 관련 상담 중 36%가 코팅 관련 내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코팅이 벗겨진 소비자가 많은 것이다. 이에 소비자원은 바스켓 세척을 너무 세게 하지 말고, 철수세미 사용도 지양하도록 권고했다. 종이호일을 구입해 바닥에 깔고 사용함으로써 세척 주기를 늘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조리시 바짝 붙으면 다가가면 전자파…떨어져서 지켜보자 에어프라이어에서도 전자파는 흘러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생활속 전자파위원회’의 측정에 따르면 에어프라이어는 일반적인 사용법을 준수하면 전자파 발생량이 높지 않지만, 음식을 가열하기 위한 열선이 제품 윗면에 있기 때문에 상단에서 전자파 발생량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품 상단에 너무 몸을 밀착시키거나 가까이 다가가면 전자파에 노출될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자. 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포옹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포옹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이었다. 머리도 식힐 겸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산동네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작은 슈퍼 앞에 앉아 막걸리를 한 병 사서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사람들을 쳐다보며 그들의 인생을 엉터리로 짐작하는 재미가 좋았다. 저 사람은 시골에서 상경해 자취하는 대학생이겠고, 저 사람은 머리를 써서 일하는 직장인, 머리가 헝클어진 저 사람은 실업자…. 그러다가 지나가는 꼬마들에게는 웃으며 무단히 손을 흔들기도 했다. 꼬마들은 곧잘 함께 손을 흔들어주었다. 심지어 유모차 안의 아기도 낯선 사람에게 응답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 또 유모차를 밀던 아주머니도 빙긋이 웃어 주는 동네, 마음이 따스해지는 동네였다. 흔히 ‘이발소 그림’이라고 부르는 어떤 서정적인 그림 속 한가운데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풍경을 바라보다가 내가 그만 풍경이 돼 버린 듯한 착각을 하며 막걸리 한 병을 비웠다. 슈퍼 점원에게 화장실 있는 곳을 물어보았다. 가게를 봐야 할 텐데도 점원은 일부러 나와서 길 건너까지 나를 데리고 가더니 “이쪽으로 쭉 가다가 저쪽으로 가서 저기 왼쪽으로 꺾으면 미장원이 나와요. 거기서 다시 오른쪽으로 가다가 개집 뒤로 돌아가면 돼요”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먼먼 길 미로를 지나 화장실을 찾아가다가 일을 저지를 것 같았지만 미안한 맘이 들 정도의 친절한 안내 덕분에 무사히 다녀왔다. 막걸리를 한 병 더 사려고 계산대 앞에 섰다. 장난을 치다가 들어왔는지 땀을 뻘뻘 흘리는 남학생 둘이 음료수 두 병 값을 계산하고 있었다. 점원이 카드를 긁다가 “잔액이 없는데요”라고 말하자 카드를 내밀었던 학생이 작은 목소리로 옆에 선 학생에게 “너 돈 좀 있냐?”라고 물어보았다. 옆에 선 학생이 머뭇거리며 “없는데…”라고 답했다. 순한 눈망울을 굴리며 곤란해하는 두 학생을 구해 주고 싶었다. 막걸리 값을 계산하라고 점원에게 카드를 내밀며 두 학생의 음료수 값도 함께 계산해 달라고 빠르게 말했다. 음료수를 받아 든 두 학생이 음료수 한 번 나 한 번 번갈아 쳐다보며 수줍어하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는 끝내 하지 않았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에게 음료수 두 병 값은 적지 않은 돈인 모양이었다. 큰돈을 거저 받은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상황이 그들에게 닥친 것이었다. 막걸리 마시는 내 주변에서 우물쭈물하며 한참 머물러 있기에 어쩌나 보려고 일부러 가만히 있었더니 역시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못하고 가버렸다. 넉넉하게 사는 집 아이들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은 음료수 두 병을 받아 들고 깔깔대며 아저씨 고마워요, 아저씨 짱, 어쩌고저쩌고 해대며 막 까불었을 텐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막걸리를 다 비우고 얼큰해 일어서려는데 떠났던 두 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급하게 돌아왔다. “무슨 일이니” 하고 묻자 카드를 냈던 학생이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저어, 아저씨, 가다가 보니까 천 원이 있었어요. 죄송해요.” 술에 취한 나는 나도 모르게 녀석의 손을 덥석 잡고 “야, 인마, 이리와 봐” 끌어당겨 포옹하며 좀 서러워졌다. 그까짓 천 원 그냥 모르는 척하고 가버리지. 천 원을 크게 생각하는 녀석들이 고마웠다. “아저씨는 이 돈 받기 싫다. 음료수 두 병은 선물이야, 아저씨에게 이 돈을 주는 건 아저씨 선물을 거절하는 거야. 그러면 안 돼. 어여 가, 공부하지 말고 놀러 다녀, 안녕!” 천 원짜리를 징그러운 벌레 잡듯 들고 녀석들은 또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자전거 방향을 돌렸다. 큰소리로 “잘 가”라고 했더니 자전거를 타려다 말고 그제야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수줍게 인사를 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잘 가, 사랑한다, 너희들과 너희들 같은 순한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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