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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일어나 위를 보고 걷자(사설)

    우리는 요즘 경제적 위기,정치적 불신,사회적 불안,도덕적 타락을 개탄하며 오늘의 현실에 울분을 토하는 많은 「우국적」인 사람들을 도처에서 만나게 된다.그러나 어느 누구도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거나 자신의 불찰,스스로의 나태,무능을 자책하며 반성하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모두들 자기만은 「예외자」인 것이 오늘을 사는 한국인의 모습이다. 모두들 충족될 수 없는 자기몫만 요구하고 집단이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으며 오로지 자기 중심의 억지논리만 장황하게 늘어놓는다.우리에게서 성숙한 시민의식과 공동체인식을 찾기란 대단히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우리는 정말 자유민주주의를 향유할 능력과 자격이 있는가를 부끄럽지만 자문해 봐야 할 시점에 이른것 같다. ○남의 탓만 할건가 우루과이라운드로 상징되는 오늘의 국제관계는 무력아닌 경제전쟁의 시대에 접어 들었다.이 가파른 전쟁을 이겨내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정체 아닌 뒷걸음질 치는 경제,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좌절의 늪에 빠져 자칫 경제사회가 가라앉을 소지마저 보이는 상황에 우리는 서 있다.생산보다는 소비가,수출보다는 수입이 늘고,근로자는 땀흘려 일하기 보다는 쉽고 편한것만을 찾고 선진국의 환상속에서 선진국에 이르는 고난과 인내의 과정은 생략한채 서둘러 과소비에 물드는 세태를 우리는 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나라마다 경제발전의 역사를 보면 순탄할때가 있는가 하면 험난한 고통과 좌절의 터널을 빠져나온 흔적을 여러 측면에서 목격할 수 있다.그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어제 오늘에 생긴것들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파생되며 잠재해 왔던 것들이 민주화 과정에서 사회 결집력이 약화되고 경제생활에 굴곡이 생기면서 지면에 표출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정치는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받지 못한지 오래고,경제는 나침판을 잃은듯 휘청거리고 사회는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의심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형국이나 어느 누구도 책임을 통감하고 나서는 사람이나 집단,계층은 없다. ○내 몫만을 찾는 사람 우리는 이렇게 내려앉은 듯한 상황속에 언제까지나 주춤거리고 불안해 하며 냉소적인자세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우리는 서둘러 뜻을 세우고 일어나야 한다.이 정도의 시련에 우왕좌왕 한다면 우리는 정말 보잘것 없는 민족이 되고 만다.얼마나 많은 전화속의 시련,가난과 울분을 삼키며 이룩해 놓은 오늘인가를 자각한다면 우리는 결코 이 상태로 중심과 균형을 잃고 흔들릴수는 없는 일이다. ○중도에서 쉬면… 우리가 처한 오늘의 상황에 대해 안팎에서 냉소적인 시각으로 보는면이 적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그러나 소련 중국을 비롯,많은 나라들이 아직 우리의 성장 잠재력과 우리가 성취해낸 경제발전 모델,한국인의 그 폭발적인 놀라운 에너지의 근원을 연구 적용하기에 여념이 없음을 우리는 또한 보고 있다.우리는 지금 도약과 낙후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3년여동안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국력의 소모를 경험했으나 또한 많은 것을 터득했으며 그 지혜를 새로운 도약의 기틀로 삼을때 우리의 미래는 열린다. 우리사회 안정의 기틀은 우선 법과 질서의 엄정한 집행에서 비롯돼야 한다.이것은 정부가 해야할 가장 원초적이고 중요한 책무이다.공권력은 절대로 집단 욕구에 밀리고 데모에 흔들려서는 안되며 정치권이 제몫을 다하지 못하면 경제력의 복원이 어렵고 사회안정이 흔들리며 남북관계는 물론 나라가 퇴영하는 정황에 이를 수도 있음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국민의 길잡이가 되고 국민을 안심시키고 나라의 힘을 결집시켜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사회의 갈등을 심화시키는데 한 몫을 한 것이 아닌가를 자성해야 한다. 산업계는 언제까지나 예외적 대우를 받으며 계속 자신의 부를 쌓는데만 몰두해서는 안되며 그런일이 용납될 수도 없다.스스로 자제하며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근로자들의 수범이 되고 과소비를 부추기고 앞장 서 사회의 결집력을 약화시키는 역작용을 해서는 곤란하다. ○남들은 뛰고 있는데 끝으로 오늘의 지구사회는 점차 국경없는 넓은 공간에서 지구가족이 서로 오가며 기업을 하고 과학을 하며 생을 영위하는 시대로 접근해 가고 있다.이것이 어찌보면 21세기에 우리가 마주하게될 세계다.우리는 나라가,정부가 들어오는 것을 규제해 주고 가려주고 권유하는 선에서 생을 영위하던 시대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소비하고 스스로의 지혜로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사회로 이전돼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지난 천년의 역사를 되새겨 볼 수는 있으나 2,3년 앞을 전망하는 일조차 그리 쉽지 않은 것이 오늘의 세상사다.그러나 최소한의 예측은 가능하고 이에 대비는 있어야 한다.현재가 과거의 그림자라면 미래는 현재의 투영일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법과 질서는 엄정해야 서울신문은 오늘로 창간 46주년을 맞는다.광복되던해 새나라 세우기에 모든 국민들이 여념이 없고 모든 것이 서툴고 경험과 지혜가 부족한 때에 나라의 이익을 앞세우고 그 길잡이를 자처하며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 냈다. 우리는 지난날의 우리의 자화상에 결코 만족할 수는 없으며 앞으로 확고한 신념하에 나라를 바른길로 인도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일 것임을 다짐하고자한다. 이제 우리 모두 좌절감에서 분연히 일어나 세계를 놀라게 했던 지난날의 그 패기와 기상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우렁찬 행군으로 동서남북으로 뻗어가야 할 것이다.
  • 외언내언

    『내무부장관 아저씨.텔레비전에서 아저씨가 장관님이 되셨다는 뉴스를 보고 굉장히 기뻤어요.왜냐하면 경관 출신인 아저씨가 누구보다 저희 아버지의 고충을 잘 아실 것 같았거든요』◆지난해 봄 새로 취임한 안응모 내무장관에게 국민학교 3학년짜리 형사의 딸이 띄운 편지의 시작이다.이 어린이는 아버지가 대공원 가자고 한 약속을 다섯번이나 어겼다고 썼다.수사비로 박봉의 절반 이상을 써버려서 아빠와 엄마가 다투더라는 얘기도.그러면서 『사명감으로 사는 우리 아빠가 왜 존경아닌 푸대접을 받아야 하나요』하고 묻는다.이게 어찌 홍경사 집안에 한정된 얘기이겠는가.◆아빠 노릇,남편 노릇 제대로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찰 신세다.지위가 낮으면 낮은 대로 높으면 높은 대로.인천 중부서장 박총경의 경우도 그것.바쁜 일에 쫓기다보니 서울의 집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사이 고혈압의 아내는 혼자 숨졌다.숨진지 이틀만에야 주검과 대면하게 된 현직 경찰서장.단장의 비애란 이런 경우를 두고 생긴 표현이었으리라.자책와 자채에 얼마나 괴로운 것일까.◆범죄는 컴퓨터화하는데 경찰의 현황은 비유컨대 주판.장비하며 수사비·인원 등등에서 그렇다.하지만 내막까지 이해하려 들지 않는 국민들은 경찰의 「무능」만을 탓한다.어쩌다 불미스런 사건이라도 생기면 「지팡이」가 「몽둥이」로 되었다고 호통을 친다.사기가 떨어진 그들에게 강력범들은 곧잘 흉기도 휘두르고.얼마전 수사경관 1천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4%가 그 직업에 후회한 것으로 나타난 것도 우연이 아니다.◆박총경이 그 부인을 땅에 묻는 날 경찰서장을 포함한 총경급 41명에게 경고장이 떨어졌다.수배자 검거부진에 대한 문책.그렇게 하면 과연 성과가 있다는 것인지.「무리」를 낳을 것 같다는 노파심도 인다.
  • 이항녕박사 “젊은날의 친일행적 사죄”/하동서 강연통해(조약돌)

    ◎군수 재직때 공출·부역강요 참회 ○…우리나라 법철학계의 원로이며 학술원회원인 이항녕박사(77)가 10일 상오 11시 경남 하동국교에서 자신이 일제말 하동군수로 재직하면서 저지른 죄과를 뉘우치는 연설을 해 눈길. 이날 이 박사는 바르게 살기운동 하동군협의회의 초청으로 「도덕성 회복의 길」이란 주제의 강연을 하면서 『일제말 27세의 젊은 나이에 하동군수로 재직하면서 출세와 보신에 눈이 어두워 일제의 앞잡이가 돼 공출미를 탈취했고 일제에 협력하라고 강조했던 부도덕한 살람』이라고 자책했다. 이 박사는 연설벽두에 『이 자리에 선것은 강연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받기 위해서』라며 공개적으로 사죄했다. 지난 40년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한 이 박사는 이듬해인 41년 6월 하동군수로 부임했다가 43년말 공출실적이 나빠 창녕군수로 전보돼 그곳에서 해방을 맞았다는 것. 이날 강연장에는 이 박사의 군수시절부터 알고 있던 노인 20여명과 당시 군서기로 근무했던 김윤조씨(76·전 하동군 농촌지도소장)등 5백여명의 청중이 눈시울을 붉히며 1시간30분동안 계속된 강연을 경청했다.
  • 정치인과 돈/구본영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신민당 이찬구의원(성남을)이 6일 상오 김대중총재의 동교동자택으로 찾아가 의원직 사퇴의사를 표명해 정가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의원은 『지구당운영으로 수천만원의 빚을 졌고 금품선거로 얼룩진 광역의회선거 행태로 미루어 앞으로는 돈없이는 선거를 치를 수 없게됐다』면서 『임기를 채워야 하는 자책감은 크지만 지난 3년동안 이권에 개입한 적이 없는 국회의원으로서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유권자와 국민에 대한 더 큰 도리』라며 사퇴결심 이유를 밝혔다. 물론 이의원의 사퇴결심은 김총재가 『국고보조금·기탁금·후원회문제 등 정치자금법 전반에 대한 여야협상의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4∼5일만 기다려달라』고 만류,용두사미격으로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왜냐하면 국회의장에게 사퇴서를 제출하더라도 이를 수리할 가능성이 없는데다 국회 회기중 의원직사퇴는 본회의의 표결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굳이 이의원의 경우가 아니라도 6백만원이 채 안되는 세비로는 당조직관리비등 지구당경상운영비와 지역구민 접대비및 경조사에보내는 축의금의 절반도 감당하지 못한다는게 여야의원들의 공통된 푸념이다. 그래서 여야의원들,특히 야당측은 국고보조금 확대,지정기탁금폐지와 익명기탁금제 실시로 정치자금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정치자금 공급의 여야불균형도 시정돼야겠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검은돈」주고받기가 없어지지 않는한 정치자금의 수요는 더 늘어갈 수 밖에 없다. 지난번 광역선거때 민자당 유모의원이 지구당사 구입비명목으로 정치자금을 받고 구속되었던 사건이나 금융실명제 실시를 외치는 신민당이 가명통장으로 「특별당비」를 챙겨 물의를 빚은 일도 이같은 잘못된 정치풍토의 한 단면이 표출된 것이다. 돈에 오염된 정치풍토가 개선되지 않는 한 정치의 민주화도 요원하다는 사실을 정치인과 유권자가 다 함께 명심해야될 시점이다.
  • 외언내언

    세상사 가운데는 쉽게 잊히는 일도 있고 좀체로 잊히지 않는 일도 있다. 잊어도 될 일이 있는가 하면 잊어선 안 될 일도 있고. 국가의 경우나 개인의 경우나 다를 게 없다. ◆잊어선 안 될 일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을 때는 자책과 분발의 계기가 된다. 그런데 그것이 남에게 있을 때는 복수심으로 되기도. 서부활극에서 아비 죽인 원수를 찾아헤매는 경우나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 따위가 그것이다. 하지만 원인이 남에게 있는 경우도 곰곰 생각해보자면 내쪽에 또한 일반의 책임은 있는 법. 하건만 사람들은 내쪽의 책임은 눈감은 경향이다. ◆을사오조약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하여 5년 후 합병조약으로 국권을 뺏는 일제의 침략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잊어선 안 될 일이기도 하다.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동족상잔의 불집을 일으킨 북녘땅 지배자들의 죄업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잊어선 안 될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그렇게 된 책임이 내쪽에도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잊지 않아야 하고 잊어선 안 된다는 뜻을 오히려 거기서 찾는 것이 현명한 것 아닐까.◆지난 일에 얽매여 역사의 진운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에 동족상잔을 부추기고 도운 나라들과도 길을 트고 있다. 북녘과도 공존공영에의 길을 모색하면서 통일에의 터전을 닦고 있고. 그날의 원혐이 가셔서가 아니다.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지만 용서할 줄을 알아야 하기 때문. 바람직스러운 새 관계의 적자는 거기서 태어난다 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6·25 41주년. 문득 한 달 전 별세한 베티고지의 영웅 김만술씨의 장례식에 「민주열사」의 장례식이 오버랩되어온다. 그 현격한 차이. 잊어선 안 될 일을 잊어가는 것만 같다.
  • 「캠퍼스 폭력」을 자책하며…/윤혁민 방송극작가(특별기고)

    ◎「뿌리」 못가르친 애비를 용서하라 애비는 요즘 밤과 낮을 거꾸로 살고 있다. 밀린 원고 때문에 밤을 새우다보니 아침이면 으레 당연한 듯이 잠자리에 들게 되고 언제부턴가 그것이 하나의 습성으로 굳어져버렸다. 시차가 다르다보니 TV를 안 보게 되고 최루탄 냄새,생살 타는 냄새가 끔찍해서 신문조차 외면을 해왔는데 어쩌자구 그날은 내손으로 그 신문을 들고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주먹만한 활자도 충격적이었지만 어떤 개그맨이 억지로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서 분장을 한 것 같은 그 사진을 보았을 때 애비는 정말 기가 막혀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신문을 안 보던 애비가 너무 열심히 신문을 보고 있는 게 이상했든지 옆에서 일을 하고 있는 K군과 S군이 다가왔다. 너도 알다시피 K군은 너와 동갑내기이고 S군은 네 후배가 아니더냐. 애비가 두 번째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그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아니 총리가 호위도 없이 거긴 왜 들어가요. 나는 총리가 되었어도 지하철을 타고 운동권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는 대학에 들어가 마지막 강의를하고 온 사람이다. 그걸 내세우려구요』 『이런 때 선생님하구 저하구 세대차이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전 제목을 보는 순간에 통쾌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애비는 그 순간 불현듯 너희들 남매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니 이건 K군과 S군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너희들 남매의 환청인 것 같아서 아찔하는 현기증마저 느껴야만 했다. 왜 이렇게 시각이 다르고 감각들이 다른가. 어느날 술자리에서 애비의 친구인 너희 학교 P교수님이 이런 귀띔을 해준 일이 있었다. 『××과 학생들이 데모를 한다기에 슬그머니 가봤지. 한 녀석이 앞에 나와 주먹을 흔들면서 열심히 외치다가 말이 막히면 자꾸 한쪽을 쳐다보는 거야. 거기 누가 있기에 그러나 해서 살펴봤더니 아 바로 그 놈이 구석줄 맨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 그 놈이 거기 앉아 고개를 끄덕이고 눈짓을 보내고 이젠 아주 거물급이더라구』 네 누이동생은 어떠했느냐. 그때도 새벽에 나오면 밤중에 들어가는 애비였기 때문에 한 달에 두세 번 얼굴 마주치기가 힘들었지. 어느 날 밤에 너희 어머니가사색이 되어 들어와 벌벌 떨며 귀엣말을 하더구나. 『저애 큰일났어요. 밤엔 야학인지 뭔지 한다구 공장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는 모양인데 말하는 걸 들으면 빨갱이가 다된 것 같아요. 어떡허죠』 애비라고 왜 이 땅의 현실을 모르고 너희들의 순수성을 모르겠느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너희들의 열정과 정의감으로 해서 한 사회의 썩은 물고가 트여지고 자칫 궤도를 이탈하려던 역사의 방향이 올바르게 바로잡혀지는 것을 애비도 목격을 했고 그런 젊은이들과 의식을 같이하는 아들 딸이 있다는 것을 내심으로 대견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비는 너희들과 대화를 해보면서 처음엔 당황했고 마침내는 허탈해졌다. 너는 나름대로 애비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갇혀 있는 아버지와는 근본적으로 대화가 안 된다』는 식으로 대화 자체를 기피하는 모습은 네 동생과 다를 바가 없었고 결국 애비와 자식간의 시각차이는 기성세대와 젊은이들 사이의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확인해주는 것으로 흐지부지 끝이 났다. 할아버지의 영혼이 계시다면 얼마나 이 못난 애비를 질타하시랴. 당신은 다섯 살난 아들을 끼니 때마다 밥상머리에 꿇어 앉혀놓고 혼자 식사를 하시면서 그 아들이 주발 뚜껑 열어드리고 닫아드리고 숭늉 떠다 바치는 것부터 가르쳐주셨다. 중학에 다닐 땐 저녁에 이부자리 봐드리고 아침에 방 앞에 기다렸다가 일어나시는 기척이 나면 들어가서 자리 정돈해드리고 「명심보감」 한 페이지를 완전히 외어야만 해방을 시켜주셨다. 그러면서도 애비는 사흘이 멀다 하고 매를 맞았어야 했다. 대부분은 애비 잘못이 아니라 네 삼촌들,고모들 잘못 때문이었고 『큰놈이 다스리지 못해 그렇다』며 동생들 앞에서 매를 때리실 때마다 애비는 이 무서운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셨으며 좋겠다고 마음 속으로 빌었으니 그 불효막심,아직도 이 애비의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다. 애비는 평생에 그 할아버지의 손을 두 번밖에 잡아보질 못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집에 오니 뜻밖에도 약주를 하셔서 거나해진 할아버지께서 먼저 손을 내미시며 『고생 많았다』 하시더구나. 때가 겨울철이고 약주를하신 손이었으니 그 체온이 따뜻하게 전해오는 건 당연한 게 아니겠느냐. 그런데도 애비는 『아버지가 무서운 분이 아니었구나. 아버지 손두 이렇게 따뜻한 손이었구나』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스물다섯 해 동안 쌓여온 애비 나름의 그 큰 벽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줄을 어찌 알았겠느냐. 그리고 두 번째 마지막으로 만져본 그 손은 그로부터 7년 후 부산 출장중 여관에서 연탄가스로 이미 유명을 달리하신 너희 할아버지의 그 차디찬 손이었다. 자식에게 고통을 주고싶은 아버지가 세상이 어디 있느냐. 제대로 못 먹이고 못 입히고 못 가르친 자식. 그 자식이 자라 험난한 세상 살아가는 데 딛고 올라설 토대 하나만이라도 내손으로 만들어 주자,그래서 할아버지는 자식들을 필요 이상으로 엄하게 키우고 단련시켰는데 그걸 모르고 야속해 하는 자식들의 눈초리에 접할 때마다 얼마나 괴롭고 외로우셨겠느냐.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버지는 자식한테 완전한 지도자가 되는 아버지이고 그보다 더 좋은 아버지는 자식한테정직한 친구노릇을 하는 아버지라는데 이 애비는 「완전한 지도자」도 「정직한 친구」 노릇도 못 해온 어정쩡한 애비가 되고 말았다. 지도자도 못 되고 친구도 못 되는 애비한테 무슨 권위가 있겠느냐. 살림은 아내에게 맡기고 자식교육은 선생님께 맡기면 그만인 줄 아는 평준화된 어정쩡한 애비들이 어찌 이 애비 하나뿐이겠느냐. 간혹 뜻있는 선생님이 계셔서 그 어정쩡한 애비 대신 내가 이놈 토대를 만들어주겠다고 회초리라도 들면 폭력이니 뭐니 해서 쫓아내기가 바쁜 세상이 돼 버렸는데 누가 너희들 한테 외풍에 버틸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겠느냐. 서 있는 바탕이 다른데 어찌 시각이 일치하기를 바라겠느냐. 모든 게 애비 탓이 아닌가. 애비의 권위를 스스로 포기한 애비를 용서해라. 회초리를 들 용기가 없어 뿌리없는 너희들을 만들어놓고 구경꾼처럼 서 있는 이 어정쩡한 애비를 용서해라.
  • 현충일을 맞으며(사설)

    진혼나팔 소리 구슬픈 현충일은 해마다 찾아온다. 그리고 이 날을 맞는 우리들 마음은 해마다 무거워진다. 자괴하고 자책해 보게 한다. 영령들의 뜻에 보답하지 못한 채 오히려 욕되게 하는 측면도 없지 않은 현실을 살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1956년 현충일이 제정되어 서른여섯 번째 맞는 오늘의 현충일 또한 그런 심경임을 지우기 어려워진다. 선진국으로 발돋음하는 오늘의 우리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나온 역정에 숱한 피땀이 얼룩져 있고 나라와 겨레 위해 목숨 바친 선열­용사들의 죽음이 그 초석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흘러도 이 땅에 사는 겨레가 잊어서는 안 될 일이 그것이다. 아니,번영하면 할수록 그 영광을 돌리면서 엄숙하게 기려야 할 일이다. 그렇건만 우리는 자칫 그 사실을 망각한다. 특히 전후세대로 젊어질수록 현재를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다. 현재의 풍요로운 과실만을 염두에 두면서 행동반경을 설정하려 든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 넘겨온 세대가 그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엄격한 도덕률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구시대의 넋두리로 치부해버린다. 순국선열을 생각하는 것도 이와 같은 사고의 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고마움의 참다운 뜻을 모른다. 6·25전란이라는 민족의 비극은 물론 우리 겨레의 뜻은 아니었다. 약소민족이었기에 치른 동족상잔이었다. 그러나,그것은 일부 과대망상에 빠진 우리의 한 핏줄이 강대국을 업고 벌인 불장난이었음을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 과대망상 환자들은 지구촌의 조류를 외면한 채 지금도 그 망상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 현충일을 맞으면서 한 번 더 자괴로워지는 것은 그 과대망상 환자들의 깃발과 구호를 흔들고 외치는 과대망상의 아류가 이 땅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민주사회·공개사회라는 이점을 안고 「민주화」를 표방하면서 죽음으로써 지켜낸 이 체제의 와해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극의 그 날로부터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하여 그 날에 과대망상 환자들을 뒷받쳤던 나라,성원했던 나라들과 수교를 하고 인해전술로 우리를 괴롭혔던 나라와의 정식수교도 눈앞에두고 있다. 그것은 비단 우리만이 겪는 일이 아닌 모든 국제관계의 냉엄한 이해성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가 매양 경계해야 할 것은 용서하되 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기좌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자기역량을 배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 번 더 분명히 인식해야 할 일은 북녘의 과대망상은 비극의 그 날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우리는 지하의 영령들을 욕되지 않게 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각자의 위치에서 깊이 생각하는 삶을 영위해 나가야겠다. 피흘려 지킨 우리의 평화와 자유가 아니었던가. 그것을 더욱 값지게 가꾸고 꽃피워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들 영광의 초석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그들로 하여금 편히 잠들 수 있게 하는 길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유형·무형의 상흔을 지금껏 안고 살아가는 상이군경하며 유명·무명용사 유족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달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마음씀으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은 쉬는 날이 아니다. 경건히나라와 겨레 위해 가신 이들을 추모해야 하는 날이다. 조기를 달고 국립묘지로 가는 발길들도 더 많아졌으면 하고 생각한다.
  • 나라를 테러한 이 패륜/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공멸한다(사설)

    어처구니가 없다. 분노가 끓어오른다. 망연자실한다. 「일인지하만인지상」의 밀가루·달걀이 범벅된 얼굴은 오늘의 이 나라 일그러진 모습이다. 이것이 수출 10위권,국제 신인도 19위 나라의 자화상이란 말인가. 국무총리가 폭력을 당한 것이 아니다. 이 나라가 당했다. 어찌하여 나라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싶어 침통해지는 마음을 가누기가 어려워진다. ○못된 버릇 조장한 결과 오냐 오냐 조동으로 키운 손자,할아비 수염을 뽑는다고 했다. 버릇을 제대로 못 가르친 앙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손자」들은 할아비의 수염만 뽑는 것이 아니다. 망건도 망가뜨리고 얼굴도 할퀸다. 그도 모자라 넘어뜨려서 올라탄다. 못되게 구는 버릇을 진작에 바로잡아놓지 못한 결과가 그것이다. 학장·총장실을 점거하고 스승의 머리를 깎고 멱살잡이하며 폭언을 했을 때,그때 단단히 혼을 냈어야 한다. 그렇건만 자기에게 떨어진 불똥이 아니라선지 유야무야 넘기기가 일쑤였다. 그러면서 「일리」가 있는 양 옹호론을 펴는 부류도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만능방패인 「민주화」를 내세우는 일부 몰지각한 어른들은 그 못된 버릇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못된 버릇은 상습화하고 면역을 심어 나왔다. 그 잘못된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잘못된 죽음까지를 잘못된 죽음이라 가르치지 못했다. 입으로만 건성으로 그러지 말라면서 그들의 잘못된 죽음을 영웅시함으로써 오히려 그 길의 선택을 미화하고 나섰다. 그들이 못된 어리광 부리는 「손자」들에게 가르친 것은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흑백논리였다. 도대체 「민주화」라는 것의 정체가 무엇이었던가. 인성이 마모되고 규범과 예절을 어겨도 괜찮은 것이었던가. 그렇게 해서 「쟁취」한 민주화로써 과연 무엇을 기대하려 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어른들은 지금도 「백병원」과 「명동성당」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오늘의 이 시점에서 수염 뽑히는 할아비들은 하나같이 어른 노릇 못한 점에 대해 자책해야 한다. 학생들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양식들은 많았고 그를 부추기는 잘못된 어른들의 행태 또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양심들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들을 다부지게 야단치는 일에만은 선뜻 앞서려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내편 아니면 적으로 치는 흑백논리의 악의에 찬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질타할 줄 아는 어른으로 그런 점에서 최근의 김동길 교수나 김지하 시인,박홍 총장 등의 준절한 타이름과 꾸짖음은 모든 어른들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그들의 질타에 대해 재야나 운동권은 「배신자」로 낙인 찍었지만 그것은 「민주화」를 내세우면서도 얼마나 비민주적인 생리를 지녔는가를 말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이 어떤 현실적 이익에 좌우되어 한 언행은 아니지 않았던가. 그같은 영혼의 소리를 「배신」으로 몰아붙이는 독선에 대한 질타가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바로잡힌다. 그렇게 나무랄 줄 아는 「양식의 용기」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인식도 바로잡혀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권위주의 시대의 잘못된 공권력 행사에 대한 막연한 선입관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당한 행사에까지도 조금만 과격하면 곧장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 그러나 공권력의 위축은 남용되고 오용되는 행사 못지않게 우려해야 할 대목이다. 선진 제국에서의 가혹하고 냉엄한 공권력 행사의 사례를 우리도 알고 있지 아니한가. 잘못된 버릇을 바로잡는 첨병인 공권력에 대해 그것이 신중하고 올바른 행사일 때 국민적인 뒷받침을 해야 마땅하다. 공권력과 대등하게 「대치」할 수 있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안녕 질서를 해치는 존재가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인성회복에 지혜 모을 때 일언이폐지하여 한 나라의 재상이 학원 안에서 학생들에 의해 집단폭행을 당한 일은 창피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정 총리는 총리로서보다도 먼저 교육자적인 양심으로 못 다한 강의를 보충하기 위하여 예전에 하던 대로 대중교통수단으로 학교에 가서 강의를 했다. 이런 스승에게 제자들은 폭행으로 보답한 셈이다. 위아래도 없고 법도 없고 예절도 없고 우악스런 폭력만이 있는 사회라 함을 내외에 과시한 꼴이 되지 않았는가. 참으로 부끄러워진다. 우리가 제아무리 잘 살게 되고,또 그들 과격학생들이 주장하는 「민주화사회」가 된다고 해도 우리의 심성이 이렇게 황폐해지고 우리의 도덕률이 이렇게 와해되어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불행해질 수밖에는 없다. 남의 의견을 수용할 줄 아는 겸손을 잃고 나만 주장하면서 편을 가르고 내 뜻에 거슬리면 행패와 폭력으로 나온다 할 때 이 세상의 선의와 미덕이 어디에 발붙일 수 있다고 하겠는가. 이번의 정 총리에 대한 폭행사건은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몰락하고 말 것이라는 심각한 시각에서 출발하는 대응이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나타난 현실에의 대응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 근원적인 병리가 무엇이며 어디에 연원하는 것인가에 대한 통찰도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이와 유사한 혹은 그보다 더 흉악한 사단도 배제할 수 없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 동안 행복의 기준을 지나치게 물질 쪽으로 설정한 나머지 인성을 잃어온 데 대한 성찰을 하면서 그 회복운동에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배우고 배우지 못하고 또는 가지고 가지지 못하고에 관계없이 오늘의 우리는 자족과 겸허를 잃고 욕망과 오만에 차 있다. 배타와 아집에 차 있다. 정 총리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다시 한 번 그것을 읽는다.
  • “누구를 위한 분신인가”/경원대서 또… 각계서 “자제” 거듭 호소

    ◎사대 총장들도 “불행한 사태 더 없어야”/“인명경시 극한행동은 혼란 부채질”/일부 기성세대 학생 부추기는 행동 말아야 명지대 강경대군의 상해치사사건이 터진 뒤 시위에서의 폭력을 추방하자는 여론이 크게 일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화염병과 최루판,쇠파이프 등을 뿌리뽑고 분신과 같은 극한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국민들은 특히 같은 또래의 젊은 학생들과 전·의경들이 극한적으로 대치하며 서로 화염병과 최루탄 등으로 소모성 공방전을 벌이는 일은 물론 분신 등 인명경시풍조가 더 이상 잇따라서는 곤란하다는데 뜻을 모으고 있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3일 하오 경원대 천세용군이 또다시 분신자살,종교계를 비롯한 각계 각층에서 이같은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한층 높아가고 있다. ◎김 추기경도 당부 김수환 추기경은 이날 『강군의 상해치사사건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로 다시는 이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인간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정치와 경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다같이 반성하면서 재발방지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49)도 이날 『더 이상 학생들의 분신 등 비극적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학생들에게 호소한다』면서 『고귀한 생명을 끊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군 사건과 관련한 「범국민대책회의」측도 『제발 극한행동만은 자제해 달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서울지역 17개대 총장들이 지난 2일 모두의 자제를 호소한데 이어 전국사립대학 총·학장협의회(회장 강석규·호서대 총장) 소속 41개대 총·학장들도 3일 상오 서울 팔레스호텔에 모여 이번 사건에 대한 유감을 표시한 뒤 학생 및 경찰의 극한행동을 자제해 줄 것을 촉구했다. ◎제도적 장치 마련을 사립대 총·학장 등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정부는 대학인들이 정당한 의사표시와 함께 평화적인 집회를 가질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하고 폭력이 맞서는 불행한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줄 것』을 건의하고 『학부형과 사회 각계각층은 위기에 선 대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보다 많은 지도와 협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대한성공회 전국사제단(주교 김성수 신부)도 이날 하오 이 교회 신도인 천군이 분신한 일을 계기로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더 이상 분신과 같은 젊은이들의 희생이 나오지 않도록 정부당국이 노력해 주기를 바라며 학생들도 극한행동을 자제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참여와 자치를 위한 시민연대회의」의 공동대표 이세중 변호사는 『학생들이 분신하는 것은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저버리는 것이며 자칫 잘못하면 민주화 및 사회개혁을 위해 인간의 목숨과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면서 『학생들은 이같은 극한행동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산 동의대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한 변호사는 이날 『동의대사건이나 이번 명지대사건이 가져다 주는 교훈은 폭력의 상승작용은 끝내 참혹한 죽음과 사회적 혼란만 가져다 준다』고 지적하고 『오늘이 바로동의대사태가 터졌던 날』임을 강조,2년 전의 참상을 회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70대의 원로교육자는 특히 일부 교수 등의 농성 등과 관련,『젊은 학생들의 분신 등 죽음이 연이어 터지는데도 교수들이 자책과 반성을 하기보다 대중 속에 끼여서 시위학생들과 꼭같은 모습으로 정치적 구호를 외칠 때는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이들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며 더 이상 무분별한 폭력시위가 계속되지 않기를 역설하는 것이 대학을 지키고 사회의 길잡이가 되어야 할 교수들의 본분』이라고 상기시켰다.
  • 봉명그룹,“성대서 손떼겠다”/이동녕회장,공식발표… 이사 셋 사표

    봉명그룹이 성균관대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 학교법인 성균관대학 이사장인 이동녕 봉명그룹 명예회장은 26일 상오 서울 성북동 엔지니어클럽에서 법인이사회를 열어 이같이 밝히고 『나를 포함,법인이사로 학교운영에 참여해온 두 아들(승무·세무)과 함께 이사직을 사퇴하기로 하고 사표를 제출했다』고 공식발표했다. 이에 따라 법인이사회는 빠른 시일안에 이사회를 다시 열어 사표수리 및 반려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이종림 재단사무국장(53)은 『이사회에서는 이들의 사퇴를 만류하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하고 『학교의 사활이 걸려 있는만큼 앞으로 열릴 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보다 심도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사회에는 법인이사 15명 가운데 14명(3명은 위임)이 참석했으며 이 회장 등 3명은 사표를 내고 회의장을 먼저 떠났다. 이 이사장은 이날 사퇴서에서 『성균관대의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헌신적인 투자요청을 수용하지 못하는 무능의 아픔을 자책하면서 스스로 학교법인의 운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히고 『앞으로 가장 합리적인 방법과 합법적 절차에 따라 학교법인을 인수인계하는 절차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학생들 무리한 투자 요구에 회의/인신공격등 불신의 골 깊어 결심”/이 회장 1문1답 지난 79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성균관대의 운영권을 넘겨받아 12년 동안 학교를 경영해온 봉명그룹 이동녕 명예회장은 26일 법인이사회에서 두 아들과 함께 사표를 제출한 뒤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들과 만나 일문일답식으로 사퇴의 심경을 밝혔다. ­언제 사퇴를 결정했는가. ▲지난 88년 1천억원 이상의 재원확충을 요구하는 대대적인 학내사태가 있었으며 엄청난 유언비어와 인신공격,회사운영 방해 등이 있었다. 육영은 영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념으로 하는 것인데 당시 많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공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어려움을 함께 겪고 있는 여러 사학경영자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인내하며 참아왔다. 재원조달이라는 근원적 방법에 앞서 서로 격려하지 않고 타도와 투쟁의 대상으로 일삼아 학교를 「해방구」로 착각하는 일부교수와 학생들의행동에 심한 갈등을 느꼈다. 투자요청을 받아들인다 해도 불신과 투쟁이 잠식될 아무런 희망을 발견할 수 없어 이같이 결심했다. ­재정지원을 둘러싸고 학생들과 잦은 마찰을 빚어 왔는데 지금까지 학교에 투자한 금액은 얼마나 되는가. ▲79년 1월부터 올 2월까지 법인에 출연한 금액은 모두 1백34억원이다. 이를 건축공사단가로 산정하면 3백55억원이 된다. ­그 동안 학교를 운영해오면서 특히 어려웠던 점은. ▲엄청난 재정요구에 대해 이를 분담할 방도가 없었다. 더욱이 보직교수 및 학생간부가 바뀔 때마다 각각 다른 요구사항과 다른 명목의 재산출연을 요구해와 수용하기 힘들었다. 이와 함께 재단인사에 대한 인신공격은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개인재산을 출연하고 인신공격까지 당한다면 누구인들 육영에의 의지를 계속 지닐 수 있겠는가. ­다음 이사회의 구성절차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교의 건학이념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고 학교의 중장기발전계획에 소요될 재정적인 부담능력이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신망받는 인사에게 법인이사회의 권한을 넘기고 싶은 게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또한 이것이 공인으로서 이사회의 마지막 책무라고 생각한다. 이사회에서도 노력하겠지만 학교당국이나 교수·학생들도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 ­정부당국에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학경영자들이 모두 극심한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학경영자가 함께 짐을 져야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립학교 경영자들이 당하는 시대적 아픔에 대해 가슴아프게 생각한다. ­사퇴의사를 공식선언한 지금의 심정은 어떤가. ▲학교발전을 위해 스스로 물러난만큼 오히려 담담하다. 진실로 학교발전을 기원한다.
  • 「촌지」 이야기/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30년쯤 신문기자 노릇을 했다. 그리고서 느끼는 신문은,꼭 손오공에게 있어서의 부처님 같다. 죽어라고 용을 써보지만 그 손바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한량한 존재. 신문도 꼭 그런 모양으로 존재한다. 무한히 자비로우면서도 섬광처럼 예리하게 가혹하고,절대로 속아주지도 않으며 결코 잊는 일도 없는 그는 반드시 보상하고 어김없이 보복도 한다. 그 신문이라는 정령이 오늘 와서 무엇인가를 짚고 다스리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잇따라 우리를 부끄럽고 무안하고 창피하게 만들고 있다. 자기 허물은 선반에 올려놓고 부처님의 권능을 제마음대로 농한 손오공처럼 가당찮았던 우리는 「자정의 소리」를 신음소리처럼 내고 있지만 이것으로 신문정령의 진노를 풀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정대상의 핵심적인 정례는 지금으로서는 「촌지」인 것 같다. 누군가 중독성 높은 마약으로까지도 비유했지만,그러나 그것이 아편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 그렇게까지 금단증세가 강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수습기간이 갓 끝난 젊은 기자가 취재에서 돌아와 멈칫거리며데스크 앞에 다가올 때가 있다. 처음으로 「촌지」와 만난 난감함을 고백하러 온 것이다. 70년대의 대부분을 「데스크 노릇」으로 보내던 때 이런 젊은 기자는 꽤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그럴 때 해줄 수 있는 말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이 시대에 이 땅에서 신문기자 노릇을 하자면 「촌지 관리능력」도 길러야 한다,그것은 「정의」는 아니므로 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그러나 그걸 「끊는 일」이 기자 노릇의 유능성을 방해하는 경우도 상당히 있을 것이다,관리능력에는 그런 것이 포함된다,데스크는 기사만 가지고 기자와 대화한다. 촌지를 의심하여 「되는 기사」가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깨끗한 기사라도 함량이 미달하면 신문의 몸을 만들지 못한다,촌지문제는 자율적으로 처리하고 기사만을 제출하라…』 이런 정도의 지침이 어느 정도 실천기준이 되어주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 돌아보아도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는다. 촌지의 도덕률은 『그것으로 기사를 흥정하지 않는 것을 품위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 그 무렵의 묵시적인기준이었던 것 같다. 그걸 못 지키면 「신문의 혼」에게서 꾸짖음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지니고 있었다. 5공 청문회가 서슬이 등등하고 그 서슬 푸른 칼 밑에서 비명이 울릴 때,유난히 부릅뜬 눈이 무섭고 사나워 보이던 선량이 있었다. 그로써 청문회 스타가 된 그가 최근에 어떤 독직혐의에 연루되었다. 그런 그를 보며 누군가가 풀이해준 해설의 일단이 인상적이다. 언론에 비친 그 무섭게 생긴 서슬에 기가 질린 나머지 웬만한 기업에서는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특별히 요구하지 않아도 앞날의 화를 모면하려는 기분으로 촌지성 봉투를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그런 기회가 많다보니까 독직에도 쉽게 연루된 것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극명한 인과응보의 질서는 어디에나 있다. 신문의 혼은 유난히 그런 변별을 탁월하게 해낸다. 시중에는 퇴직금 사기 대상자를 찾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인적 정보」를 사고 파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어디에 아무개라는 퇴직자가 얼마의 퇴직금을 손에 쥐고 있다는 정보만을 제공해주면 꽤 높은 값을 쳐 받는다는 것이다. 그 정보를 가지고 접근하여 유령회사 사장 자리 같은 것을 낚시밥으로 하여 사기해내는 것이다. 그 대상으로 비싸게 치이는 사람이 퇴역한 「교장선생님」 「고급 군인」이라고 한다. 「경력 많은 신문기자」도 세 번째쯤에는 들 것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신문동료들의 생각이다. 물정에는 어둡고 희떱기까지 하므로 의외로 잘 속고 사기도 잘 당하는 것이 「신문인」들이다. 그런 품성의 사람들이므로 촌지 같은 것을 영악하게 챙겨 살림에 보탰다는 예는 신문계에 별로 없다. 신문을 만드는 데 종사하는 사람 중에는 「촌지」와는 전혀 무관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지극히 일부의 사람이,또한 어떤 시기에만 「촌지대」를 거쳐갈 뿐이다. 그 지대를 지나고 난 뒤에는 그것의 무상함과 무의미함,단지 좋지 못한 버릇과 공연히 비만해진 간의 크기에 회한만 남길 뿐이어서 그 지대를 벗어난 것에 개운하고 후련함을 맛본다. 그러므로 이른바 「촌지」라는 것이 그렇게 끊지 못할 마약처럼 힘들고 어려운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 하찮은 것에 발목이 묶여 수모를 당하고 우세를 당한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촌지로 오염된 우리의 부패되고 일부 파괴되기도 한 생체조직을 우리가 가볍게 여기고 죄 없다고 강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시절이 끼친 피치 못할 사연 때문에 생겼던 병폐였다고 딴청을 부리려는 것도 아니다. 더러는 가책받고 더러는 갈등하고 더러는 중독되어 일그러진 형상으로 비쳤던 스스로의 맨얼굴이 얼마나 부끄럽고 속상한지를 성찰하려는 것이다. 신문의 정령이 성이 나서 벌을 주려고 벼르는 시기까지 와버린 우리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려는 것이다. 올해의 신문주간 표어가 자정으로 신뢰를,자율로 책임완수를 외치고 있다. 「촌지」 정도와 바꾸기에는,너무 값지고 뜻깊고 매력까지 있는 것이 신문이다. 정령들이 곳곳에서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숨쉬는 신문에게 나는 여전히 외경을 느낀다.
  • 「수서」 언론로비 진상밝혀야/금품수수설 자책·국민에 사과

    ◎신문편집인협 성명 한국신문편집인협회(회장 안병훈)는 1일 수서사건의 대언론 로비문제와 관련,성명을 내고 『사회의 부정부패와 시비들을 척결하는 작업에 앞장서서 감시해야할 언론인들이 돈을 받고 그 직분을 태만히 했거나 사실을 왜곡시켰다면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수서사건과 관련,액수의 다과를 막론하고 금품을 받았다는 소식에 접하면서 심각한 자책과 함께 먼저 국민앞에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편협은 이같은 자성을 바탕으로 ▲각 언론사 단위로 자체조사를 엄밀히 실시해 그 결과에 따른 관련자를 적절히 문책하고 ▲장점도 없지않으나 폐단이 더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기자단의 해체문제를 포함한 취재체제의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편협은 이와함께 사정당국은 혐의사실을 단편적으로 흘리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지금까지 조사,확인된 진상만이라도 조속히 국민앞에 공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변화의 위기는 발전의 기회다(사설)

    우리 정치사회는 지금 중대한 변화의 계기를 맞고 있다. 그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응전하느냐에 따라 우리사회 민주화 발전의 속도와 내용도 달라질 것이다. 변화는 위기를 가져온다. 그러나 위기는 또 다른 사회를 제공한다. 여기서 우리가 선택해야할 가치는 변화의 물줄기를 발전의 계기로 돌려놓는 지혜와 행동이다. 무력감과 좌절감으로 더이상 개탄만하고 있을때가 아닌것이다. 일부 부패한 정치인과 타락한 공직자와 부도덕한 기업의 행태에 분노했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서사건」에 대한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아울러 집권쪽의 당정 쇄신의지도 천명됐다. 이번 일련의 사건들이 아니더라도 이나라 정치 사회전반에 걸친 일대 쇄신이 요청됐던것은 사실이었다. 우리가 오늘의 현실을 변화의 계기로 보고자하는 것은 그러한 측면에서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지금 사건과 관련해서 많은 공인들이 구속됐고 한점 의혹없이 수사결과가 밝혀졌다 하더라도 일련의 사건들에 내재한 부정·비리·부도덕·반윤리의 총체적이고도 구조적인 결착의 내용들을 놓고는 아직도 착잡한 심경을 달래지 못한다. 아픈 마음으로 다시 지적하건대 뇌물외유,입시부정,수서특혜 사건을 잇따라 겪으면서 사회지도층에 대한 국민들의 혐의와 불신감은 절정에 달했다고 할수 있다. 그 상처와 배신감은 인사개편을 통한 쇄신으로서도,또 추상같은 사법처리와 일벌백계로서도 쉽게 치유될수 없을만큼 깊은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것인가. 사건의 당사자와 연루자는 물론 지도층을 포함한 4천2백만 사회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겸허한 자성과 자책감으로 심기일전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변화의 위기를 발전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국민적 합의에 나서자는 것이다. 뇌물외유와 증수뢰,정치자금 수수에서 벗어나있는 지도층들이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만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가 아울러 묻고자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와 산업자본주의 제도에 있어 시민사회의 구성요체는 신뢰와 협동이다. 거기에 시민적 자존심이 추가됨은 물론이다. 최근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은 그 대처방식 여하에따라서는 공동체내의 신뢰와 협동심을 근본적으로 파괴할 수도 있는 가공할 위력을 갖는 것들이었다. 건전하고 일상적인 시민의 자존심과 명예를 훼손시킴은 또 얼마였던가. 그리하여 집권 쪽은 참담한 심정으로 당정개편을 통한 정국쇄신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부도덕한 기업의 검은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드러난 야당의 지도부가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시민적 인식을 외면하면서 사건의 정치적 의도 또는 조작성을 운위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여야는 우선 시덥잖은 정쟁을 거둬야 한다. 당장 국회라도 열어 정치차원의 사태수습에 나서면서 실추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제 모두가 그동안 크게 훼손된 윤리규범과 체제의 정체성을 복원하는 일에 나서야 할 것이다. 드러난 환부는 도려내서 약을 바르면 된다. 그 치부를 앞에놓고 서로 돌을 던져 매도할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다.
  • 당정 쇄신 빠를수록 좋다(사설)

    뇌물외유 사건에 이은 「수서특혜」 사건 등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에 대한 국민들의 심경은 착잡하기 이를데 없다. 곤혹스럽고 안타까우며 끝내는 탄식과 절망감에 이르게도 된다. 염량세태라는 표현으로도 설명될 수 없고 그야말로 온 세상이 다 오염됐다고 해도 크게 틀린말은 아니다. 제도로서의 헌정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뇌물외유 사건으로 3명의 의원이 구속된데 이어 수서사건으로 또 5명이 구속됐다. 공교롭게도 13대 국회에서 13명이 부정과 비리,의원 도덕성의 문제로 구속된 것으로 기록되게 됐다. 아니할 말로 의원들과 관련하여 또 무슨 사건이 터져나올지 걱정부터 앞서는 것도 무리가 아닌듯 싶다. 국회의원들은 선량으로서 회기중 현행범이 아니면 체포되지 않으며 원내발언에 대한 면책특권을 갖는다. 비록 회기중이 아니더라도 며칠사이에 모두 8명의 의원이 구속되는 현실을 바라보느라면 실로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그러니 13대 국회는 복마전인가 하는 탄식도 나오고 아예 해산해야 한다느니 하는 위기감과 자책,무기력감이 바로 그 국회안에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뇌물외유·수뢰의원의 구속은 그들 자신의 불행이며 이나라 의회사의 오점임에 틀림없다. 그들 대부분이 구속직전까지 애서 태연한 표정으로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했고 바로 그런 모습들이 구속 그 자체보다 더 국민의 쓴 인맛을 다시게 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최소한 그들이 범법행위 내지 범법사건에 연루된데 대해 겸허한 자세로 솔직히 해명하고 구속이전에 의원직을 선뜻 내 놨어야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당사자들의 퇴락한 윤리도덕과 몰염치성은 그렇더라도 그들 소속정당의 반응도 국민들에겐 탐탁치 않았다. 여당인 민자당의 입장은 최소한의 축소조정 또는 불끄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평민당역시 뼈아픈 자기반성보다는 이른바 「정치적 의도」쪽으로 몰고가려는 인상이었다. 지금 그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정치적 의도 또는 조작으로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정부쪽도 그러하다. 설혹 외압이나 로비에 의해 관련 공직자가 말려들었다 하더라도 그 공직자와 공직사회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 따라서 부정과 비리,의혹에 관련된 의원들과 공직자 기업관계자에 대한 가차없는 사법처리는 당연한 것이다. 듣건대 정부와 민자당은 사건수사가 일단락 되는대로 대폭적인 당정개편을 단행함으로써 정국쇄신에 나서리라 한다. 국민이 바라는바 당연한 순서이겠으나 그러한 당정의 쇄신과 신기일전의 계기야말로 빠를수록,아니 지금 당장으로도 좋다고 할 수 있다. 지금 국민들의 불안은 적지 않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심화된 것은 물론 어떤 불안감과 위기감마저 가중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의 만연된 부정부패가 제도권의 손상을 가져왔고 헌정의 위기감마저 초래되고 있다면 그것은 될수록 빠르게 극복,치유돼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의 부정척결의지와 위기극복의 슬기 및 결단을 통한 일대 정국쇄신이 기대되는 것이다.
  • 부정·비리 결연한 의지로 척결/“수서·뇌물외유·대입부정 의법조치”

    ◎노 대통령,민자 창당 1주년 기념식서 강조 민자당 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은 9일 수서특혜 의혹사건,뇌물외유,대입부정사건 등과 관련 『정부는 그동안 문제가 되어온 몇가지 사안에 대하여 철저히 조사하고 법대로 처리하여 국민의 의혹이 없도록 할것』이라고 말하고 『나는 민주주의를 이루고 깨끗한 정부를 실현한 대통령이 되도록 결연한 의지로 부정과 비리를 척결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서울 송파구 가락동 민자당 중앙정치교육원에서 있은 창당 1주년 기념식에 참석,치사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깊어진 오늘의 현실에 대해 모두가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면서 우리당은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는 개혁의 선봉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대통령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물의를 빚고 있는 일련의 일들을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의식과 행동이 지난 시대에 머물고 있는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 뒤 『오늘의 정치권과 이 사회지도층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을 스스로 이루지 못한다면 이사회의 권위와 정체성 그 자체가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올들어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부조리로 국민들은 이 사회지도층의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말하며 거침없이 비판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제 어떠한 부정,어떠한 비리도 엄폐되거나 덮어둘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기념사에서 『최근 불미스런 사태들로 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불신이 심화되고 있는데 대해 가슴아프게 생각하며 깊은 자책감을 금할 수 없다』면서 『이번 사태를 뼈를 깎는 자성의 계기로 삼아 정치인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새로운 각오를 다져나가야 하겠다』고 말했다. 민자당은 이날 기념식에서 ▲부정부패척결과 깨끗한 정치풍토 조성에 앞장서고 ▲책임정치를 구현하며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분파주의와 정실주의를 배제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4개항의 「당원 윤리강령 실천선언」을 채택했다.
  • 「기초선거구」 분할 싸고 논란/민자의원 지자제세미나 중계

    ◎“참신한 인물 발굴… 지방선거 깨끗이 치르자”/의원세비 과다인상·추곡가 미흡 등 자책도 민자당은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의원세미나를 갖고 정기국회 활동을 결산하는 한편 내년 봄 지자제선거에 대비한 귀향활동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의원세미나에서는 의원세비의 과다인상 논란,추곡수매량 미흡 등 정기국회 결과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나왔고,기초 지방의회선거구문제에 대해서도 열띤 토론이 전개됐다. ○…이날 세미나에서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어려운 시기에 예산심의와 세법 등 관련입법 통과,추곡수매 동의안 등을 단합해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자평하고 『이제 더욱 단결해 내년 지자제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르자』고 강조. 김대표는 『지방의회선거는 지구당 위원장들이 중심이 돼 치러야 하며 이때 필요한 것은 첫째도 단합,둘째도 단합,셋째도 단합』이라고 거듭 피력한 뒤 『선거가 깨끗이 치러지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 내부에서 부정이 일어난다면 가차없이 법에 의해 처리되도록 하겠다』고 다짐. 이어 정순덕 사무총장은 『지자제선거를 14대 총선에 앞선 예비심판이라고 생각,최선을 다하자』면서 지자제에 대비한 당의 6가지 방침을 천명. 정총장이 밝힌 6가지 방침은 ▲후보추천권을 포함,지구당 위원장의책임과 권한하에 선거진행 ▲전격 및 유능인물 추천 ▲청년·여성 등 참신인물 발굴 ▲지구당에 10인 이상의 후보추천위를 구성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경선제 도입 ▲공명선거 실시 ▲범여권 유력인사 관리 등. 정총장은 이와 함께 당무감사 결과를 토대로 사조직이 공조직과 마찰을 빚고 있는 일부 지구당에 대해서는 당기강확립 차원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강조한 뒤 내년부터 제주도지부를 신설하겠다고 피력. 김윤환 원내총무는 『집권여당의 개혁의지에 따라 민주화 여부가 결정된다』고 전제,『이번 정기국회 결과 지자제가 실시되게 됨으로써 노태우 대통령의 치적이 완성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 ○…당직자보고에 이어 구본호 한국개발연구원장의 내년 경제전망 설명과 강우혁 의원의 지자제선거법 해설이 있은 뒤 토론을 전개. 첫 발언에 나선 김용채 의원(서울 노원 을)은 『가뜩이나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많은데 의원세비를 20∼30% 인상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어려운 시기에 정치인들이 솔선해야 하는 것을 감안할 때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했다』고 당지도부를 질타. 김의원은 또 『최근의 공공요금 인상이 충분한 당정협의를 거쳐 나온 것이냐』고 따지면서 『국회의원과 광역지방의회 선거구가 소선거구인데 기초지방의회 선거구가 중선거구로 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므로 법개정을 하든지 불완전한 법으로나마 소선거구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 김의원은 『서울시의 경우 기초의회선거가 대부분 중선거구로 되어 있는데 선거 2∼3개월 앞두고 분동을 할 수도 없으니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 농촌출신의 박경수 의원(강원 횡성·원성)은 『이제 귀향활동을 가야 하는데 농촌에 가기가 힘들다』고 전제,『추곡수매와 관련,농민들로부터 돌팔매를 맞지 않도록 당지도부에서 충분한 보완책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 박의원은 또 노인복지 문제,농촌후계자 지원문제,국가유공자 지원문제,마사회의 체육부 이전문제 등을 거론하며 당지도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수행을 촉구. 신오철 의원(서울 도봉 갑)은 『기초 지방의회선거에서 조례로 소선거구를 확정하거나 선거직전 법개정을 하면 요령을 피운다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다』면서 『지자제와 관련한 당의 구체적 연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 신의원은 또 『지자제를 앞두고 관료체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공무원의 입지,보수,주택 등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피력. 이에 김총무는 『정치자금법이 통과됐지만 다수 의원들이 후원회도 구성못해 1년에 한번 지역주민에게 편지보내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하고 『이에 따라 실질급여는 10.4%만 인상하고 전화료·우편료·사무실 운영비만 다소 늘린 것이므로 국민이 오해하고 있다면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대답. 김총무는 또 기초 지방의회 선거구획정과 관련,『소선거구제가 원칙이지만 읍·면·동이 행정단위로는 최하여서 더이상 분할하기가 어렵다는 상황 때문에 1∼3인제가 생겨난 것』이라면서『한번 시행해보고 차질이 있으면 고치도록 하자』고 설명.
  • 어디 좀 물어봅시다/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지금 서울ㆍ중부지방은 온통 물난리를 겪고 있다. 불과 이틀동안 1년간 올비의 3분의 1이 쏟아져 야단들인데 1년동안 할일의 반의반도 못한 국회와 선량들은 여전히 한가롭다. 대저 국회란 무엇이고 국회의원은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정치를 해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모름지기 국회의원부터 되고자 한다. 그러니까 국회의원은 정치를 해야하는 사람들인데 오늘날 우리 국회의원들은 정치를 아니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자 아니한다니 묘한 노릇이다. 그러면 그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결코 말장난이 아니다. 사실이 그러하다. 그러니 지금 이 나라 국회의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으며 도대체 어디쯤 서 있는가. 어디 좀 물어봅시다. 정치인들에게 있어 가을은 그야말로 정치의 계절이다. 여름은 그들에게 너무 덥고 지루하고 길다. 정치인들은 그래서 가을을 기다린다. 여름내내 정치인들은 출신지역구를 오르내려야 한다. 이사람 저사람 만나야 하고 적당히 외유도 즐겨야 한다. 가을정국에 대비해 활동비도 조달해야 하고 생계도 꾸려가야 하는 의원들에게 여름은 한가하지 않다. 하한이란 말은 맞지 않는다. 지난 초여름 임시국회의 변칙과 소란은 국회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80명 야당의원 전원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고는 아예 보따리를 싸들고 떠나버렸다. 그런저런 모양들이 국민들에겐 한심스럽게 비춰졌던게 사실이었다. 올 여름 더위는 유난히 화끈했다. 스스로 이러저리 밀리던 정치인들도 올 여름 더위는 지겨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가을이다. 삽상한 가을하늘이 정치와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속상한 눈도 조금 위로해 줄 것이다. 정치인들도 이제 저간의 상심과 투정을 풀고 그들 스스로 황폐화시켰던 정치판을 원상복원 해야 한다. 정기국회가 열렸다. 그에 앞서 야당의원들이 홧김에 내던졌던 사퇴서도 국회의장의 「불가」판정으로 반려됐다. 한여름 더위동안 장외에서만 빙빙돌며 서로 소 닭쳐다 보듯 하던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정기국회 개회에 앞서 마침 국회의장이 남북 총리회담 대표들을 위해 베푼 만찬에 함께참석해서 한 밥상에 앉았었지만 대화하지 않고 신경전만 벌이는 듯 했다. 활짝 열린 국회의사당의 한 복판인 본회의장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정치의 마당인 국회는 여당만으로 개회식만 치러놓고는 장날 아침에 폐장이 되고만 형국이다. 의원 제위는 언젠가의 유행어처럼 『왜 맨날 우리만 갖고 그러느냐』고 되받을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의 안팎정세를 살피건대 그들만 갖고 그럴 수 밖에 없다. 정기국회 개회와 더불어 이제 새로운 정치가 전개돼야 한다. 정치인들은 우선 퇴색할대로 퇴색한 그들의 정치력을 복원시켜야 한다. 야당은 무조건 국회에 복귀하고 여당은 지극히 겸허한 자세로 이들을 맞아야 한다. 여당은 특히 지난 임시국회에서 수의 힘을 빌려 밀어붙임으로써 지나치게 「의욕적」이라는 지탄을 면치 못했던 파행적인 국회운영에 대해 자책하고 사과해야 한다. 민주ㆍ의회정치를 해나가는데 있어 무너져서는 안될 마지막선이 준법정신이다. 반민주적 권위주의 체제에서와 달리 민주주의는 먼저 법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제도이다. 민주주의의 공개된 광장인 의회에서 의안상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일도 안되지만 그것을 빌미로 해서 다수의 힘으로 날치기식 변칙강행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도 준법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초여름 이래의 정치부재는 거기서 비롯됐다. 그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자리는 민주주의의 광장이 될 수 없고 그런 일을 예사로 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 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 정치권이 황폐화돼 있고 민심이 정치를 떠나 있는 것은 결국 정치인들의 자격과 역량미달을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지난날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란 건달들이나 하는 사업으로 치부된 적이 있었다. 자기와 무관한 일에 걸핏 잘 덤벼들고 풍을 치며 휘젓고 다니는 시정잡배를 건달이라 한다. 고전적 의미에서 대개 정의구현을 지상의 과제로 한다는 정치를 그런 건달들이나 하는 짓으로 봤다는 자체가 예삿일이 아니었다. 사실이 그런 적도 있었다. 허황된 꿈과 자기 도취속에서 무위도식 하면서도 온통 민족이요 민중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고 모여 판을 꾸몄다. 그러니까그들이 일궈내는 정치 또는 정치판은 건달들의 놀이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래서도 안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을 가만 놔두고 볼 국민들도 아니다. 국회가 열렸는데도 정치판은 휑덩그러니 찬바람만 불고 있다. 정치과잉도 안좋지만 정치부재는 더욱 큰 일이다. 대화는 커녕 갈등만 깊어간다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혐오감은 또한 얼마나 심각해질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의사당으로 뛰어가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그 정치인들이 아무리 자존과 자재의 원칙아래 개성과 창의를 존중하고 평등과 다양성을 지향한다 해도 가장 소중한 원리 즉 일상성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변칙과 강행,그로인한 무책임한 탈출이 다시 더 있어서는 안된다. 그게 난장판이지 무슨 국회냐고 따져도 할말 없을 것이다. 국정을 꾸려가는 막중한 위치에서는 위세과시나 투정도 적당해야지 지나치면 직무유기가 된다. 여야의 줄다리기가 그러하다. 지금 정치는 부재이고 정국은 위기이다. 사태를 되돌릴 책무를 지닌 정치인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다시 한번 묻고자 하는 것이다.
  • 하루빨리 정치력을 복원하라/정기국회 개회에 즈음하여(사설)

    정치인들에 있어 9월과 더불어 다가온 가을은 그야말로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에 관한한 여름은 너무 길고 지루하다. 그 여름에 밀려 하한정국이 된데다 여야 정치인들은 지난 초여름 임시국회에서 빚어진 변칙과 소란으로 더욱 무더운 여름을 보내야 했다. 80명의 야당의원 전원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고는 보따리를 싸들고 의원회관을 떠나기까지 했다. 그런저런 모습들이 국민들에겐 한심하게 비춰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가을이다. 훨씬 높아진 하늘이 정치와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속상한 눈도 조금 맑게 해 줄 것이고 정치인들도 이제 상심과 투정을 풀고 그들이 스스로 떠났던 정치의 마당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우선 정기국회가 열린다. 그에앞서 야당의원들이 무책임하게 내던졌던 사퇴서도 반려됐다. 또 그보다 앞서서 지난 6일 밤엔 남북 총리회담 대표들을 위해 국회의장이 베푼 만찬에서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모처럼 자리를 함께 한 바도 있었다. 구태여 따지자면 우리 정치인들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가 아니라남북회담의 힘으로 자리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도 된다. 정기국회 개회와 더불어 이제 새로운 정치가 전개돼야 한다. 여야 정치인들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우선 퇴색할 대로 퇴색한 정치력을 복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야당은 무조건 국회에 복귀하고 여당은 겸허한 자세로 이들을 맞아야 한다. 여당은 특히 지난 임시국회에서 수의 힘을 빌려 밀어붙임으로써 지나치게 「의욕적」이라는 지탄을 면치 못했던 파행적인 국회운영에 대해 자책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야당은 이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 본회의장의 제자리로 찾아가야 한다. 여야는 우선 대화부터 해야 한다. 북한과도 대화와 교류를 해 나가는 마당인데,여야간의 대화는 몇달째 단절된 채로 방치된 상태였다. 우리는 대화조차 두절됐던 저간의 정치판을 지켜보면서 과연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여야 정치인들은 국민을 조금이라도 안중에 두고 있는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탈냉전과 긴장완화,군축과 평화라는 새로운 세계정세 속에서도 지금 중동지역 한 곳에서는 벌써 한달 이상이나 급박한 전쟁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남북한 대화 역시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내외정세가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가고 할 일은 태산같은데 정치인들은 무엇을 하는가. 어째서 그들은 당리당략과 사리 앞에서 소모적인 힘겨루기와 지분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는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국회가 열리고 야당의원들 사퇴서가 반려된 시점이니 만큼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민주정치란 국민이 주인이 되고 국민을 위하는 정치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무척 겸손해야 한다.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며 여론을 읽고 이견을 조정하는 과정을 성실하게 걸어야 한다. 민주ㆍ의회정치를 해나가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준법정신이다. 반민주적 권위주의 체제에서와 달리 민주주의는 우선 법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제도이다. 민주주의의 공개된 광장인 의회에서 법안상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도 안되지만 그를 빌미로 이른바 날치기식 변칙통과를 해도 괜찮다고 하는 자세도 준법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여름 이래정치판의 정치부재는 거기서 비롯됐다. 그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자리는 민주주의의 광장이 될 수 없고 그런 일을 예사로 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하한기가 아니었더라도 지금 정치권이 황폐화한 상태가 돼 있고 민심이 정치권을 떠나있는 것은 결국 정치인들의 자격과 역량미달을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기국회가 할 일은 참으로 많다. 새해 예산심의는 물론이거니와 선거법개정이나 지자제실시 논의,각종 문제법안,남북문제 접근 등 정치적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크게는 개헌논의도 부각될 것이다. 과거의 경험과 정치적 현실에 비추어 현안들중 어느 것 하나 여야의 원만한 대화와 타협으로 처리될 것 같지도 않다. 또한 그 정치적 현안들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와 인식이 어떤 것인가를 정치인들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치에 대한 더 이상의 국민적 불신과 지탄을 면하려거든 여야는 하루속히 본연의 자세를 찾아 대화와 타협의 정치력을 복원해야 한다. 민주정치의 묘미는 타협과 양보에 있다. 그런데이 나라 정치인들은 그 묘미와 멋을 모른다.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런 훈련을 쌓지도 못했다. 또한 의회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토론과 함께 대안제시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지난번 국회의 행태와 전말을 살피면 과거 흔히 보아온 단순한 여야 정쟁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정계의 구조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우리정치는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지난 몇달동안 정치인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수수방관해 왔다. 정치가 내팽개쳐졌고 방치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계속되는 정치부재와 위기정국의 실태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특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외압이 무거운 때에 내부가 흩어진다면 그로부터 야기되는 일의 그르침에 대해서는 여야할 것 없이 모든 정치인에게 그 책임이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정치인 개개인이나 정당간의 이해타산으로 국가적 과제를 소홀히 할 때가 아니다.
  • 금의환향의 계절/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그날 우리 애국가는 참 아름다웠다. 흡사 자석처럼 우리를 앉은 자리서 일으켜 세우고 발부리부터 적셔와 가슴에 이르러 눈물이 되게 한 그 감동의 물결에 대한 기억은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머리에 희끗희끗하게 권위가 얹힌 그 도도한 바스티유 오케스트라가 황색 피부의 젊은 한국인 지휘자 정명훈의 은빛 지휘봉을 따라 그토록 아름다운 「애국가」를 연주한다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경이로운 일인지를 우리는 만끽했다. 그래서 관객들은 기립한채 두팔에 쥐가 나도록 박수쳤다. 이 위대한 「금의환향」이 고마워서,박수밖에 해줄 수 없는 일이 미안해서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두들기고 또 두들겼다. 이렇게 빛나는 젊은이를 갖게 된 대한민국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가 어린 나이에 객지에 나가 온갖 역경딛고 성공을 이룩하는 동안 그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던 조국이라지만 그래도 영광을 한아름 조국의 품에 안겨주는 이 효성스런 아들이 고맙고 대견해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을 것이다. 정명훈에게 조국이란 무엇일까. 위대한 예술가로 성장하여 당대에 우뚝선 봉우리들과 키겨루기를 해야 하는 그에게 초라한 극동의 작은나라에 지나지 않는 조국은 부담스럽고,애물이기만 한 것이었을까.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던 같은 무렵,서울 사간동의 갤러리 현대 뒤뜰에서는 백남준의 서울 퍼포먼스가 있었다. 그의 오랜 친구이며 세계적인 행위예술의 대가로 백남준과 비견될 수 있었던 고 조셉 보이스를 위한 「오귀굿」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였다. 이날도 그랬듯이 백남준의 행위예술에서는 「무당굿」이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어린날 그의 집에서 섣달그믐이면 펼쳐지던 재수굿과 그것을 관장하던 「애꾸무당」은 그의 예술혼을 관류해오는 중요한 정서의 서서였다. 전쟁중에 공중추락하여 시베리아의 한 촌락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던 조셉 보이스는 타르타르족의 샤만에 의한 신비한 능력으로 회생했다. 그로부터 거듭난 보이스가 그의 눈빛에 담고 있던 그 귀기서린 안광을 백남준이 알아보았고 그렇게 우정은 출발했다고 그는 피력하고 있다. 백남준도,비디오 아트의 창시자가 되어 세계속에 명성을 굳히기까지 조국은 그를 지원하지도 않았고 알아주지도 못했다. 알아주기는 커녕,행위예술이 지닌 「실험성」을 「해괴한 짓」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농후하다. 그래도 그의 예술정신속을 흐르는 지하수는 무당굿이다. 그 백남준에게서 나라와 관계된 일화 한가지를 들은 적이 있다. 가난한 고학생으로 미국에 있던 때였다. 카네기재단에서 선발하는 음악 장학생에 그가 응모를 한 일이 있었다. 그 선발권을 가진 책임자는 백남준의 대목에 이르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신청자가 일본인이면 불합격이고 한국인이면 합격이다』­. 그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그 책임자는 줄리어드 음대와도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전쟁중에도 한국의 음악유학생이 줄리어드에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전쟁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녀에게 음악공부를 시키는 열성이 그토록 높은 나라』이므로,한국출신의 음악도에게는 특별배려를 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더 거슬러 오르면 이런 일도 있다. 해방이 되고,건국이 되었을때의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너무도 미미한 존재였다. 이 무명한 나라가 국제무대에서 조금이라도 빠르게 좋은 명성을 높이는 첩경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분이 있었다. 「배재」「이화」로 꽃피워 온 사립명문의 선생님이던 S씨다. 그 분은 그 「첩경」이 청소년의 예술적 재능을 집중 발굴하여 세계무대에 내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분을 찾아다니며 서둘러 예술계통의 중고교를 창설했다. 그렇게 설립된 예술학교가 오늘날 예술인력양성에 끼치고 있는 공훈은 그분이 당초에 예상했던 결과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음악한국」을 인정하게 된 원천이 그 학교에 있다는 것을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 해준 것도 없는 조국이라고 자책하지만 그래도 하느라고 해온 노고가 우리나라에도 없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것이 아니라도 조국은 조국이다. 일부러 찾아가서 외국공연을 후원할만한 동포는 아직 못 두었지만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치는,너무 두들기다가 팔에 쥐가 날 지경인 동포관객들 앞에서 아름다운 국가를 연주할 수 있는 조국이라면 예술가에게 훌륭한 조국일 수 있다. 아무리 화려하고 공들인 성공이라도 금의환향할 수 있는 곳이 없으면 그 성공은 빛이 충분히 발휘될 수 없다. 그런 뜻에서 대한민국은 충분히 자격이 있는 조국이다. 어린 시절 분홍빛 이데올로기를 쫓아 먼길을 헤매다가 초로의 명예로운 석학이 된 재소과학자 장학수씨의 귀국도 금의환향이다. 이념과 인생의 방황을 고국청년에게 알리고 싶어 모국어로 자서전을 펴내기 위해 일시 귀국한 그는 『가능하다면 가족을 데리고 영구귀국해서 여생을 조국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에게도 대한민국은 훌륭한 조국이다. 사랑하고 싶고,봉사하고 싶은 조국이 없다면 천재들에게 무엇이 성공을 자극하겠는가. 걸핏하면 자학하고 스스로 업신여기는 우리나라지만,그 나라가 없으면 어떤 「금의환향」도 의미가 없다. 이 나라가 더이상은 자해의 상처를 입지 말았으면 좋겠다.
  • 「유급시한」앞으로 사흘 세종대 사태 어찌되나

    ◎학교ㆍ학생ㆍ문교당국의 입장점검/학교 “「선 수업ㆍ후 협상」 원칙 변함없다”/학생 “전권위임 총장과 선 협상”고수/당국 “수업재개만이 사태해결 열쇠” 세종대의 전원유급 최종시한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학교측은 「선수업 후협상」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수업거부 학생들은 「재단의 전권을 위임받은 총장과의 선협상」만을 계속 고집해 당사자들간의 타결은 불투명한 상태다. 문교부로서도 10일까지 수업이 재개되지 못하면 더이상 구제책을 마련할수 없는데다 학교측에 무조건 학생요구를 받아들이도록 종용할수도 없는 입장이다. ▷학교측◁ 학교ㆍ재단측이 학생들과의 협상대표로 내세우고 있는 이중화총장은 『학생들이 재단이사장과 전 이사진의 위임장을 받아야만 대화에 응하겠다고 고집하고 있어 사태수습의 노력이 계속 허사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최종시한이 얼마남지 않았으니 우선 수업정상화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총장은 『학생들이 불법총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터무니 없는 것으로 학생들은 학교대표인 나와 성실히 협상에 임해 달라』고 촉구하면서 『그러나 학생들 주장가운데 총장선출에 있어서 학생들이 총장후보교수를 사전에 심사하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총장선출은 재단의 고유권한으로 학생들의 이같은 주장은 월권행위이며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총장은 또 학생들이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하더라도 학생전체의 유급을 볼모로 하는 행동은 학생신분으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총장은 『학생들은 하루빨리 전교생 유급상황의 심각성을 인식,우선 우리 학교를 우리가 살려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해 줄 것』을 부탁하고 『문제는 시간을 갖고서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협의를 하면 풀 수 있을 것』이라면서 수업정상화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학생측◁ 이에반해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파행적으로 학원을 운영하는 재단의 전횡을 구조적으로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라면서 그 정당성을 계속 내세우며 수업거부를 주장하고 있다. 위정량군(25ㆍ영문학과4년ㆍ대학발전위원회 학생대표)은 『우리 학생들도 유급과 휴교를 바라지는 않고 있으나 유급이 현실로 다가오면 그 책임은 문교부와 학교측에 있다』고 주장하고 『지난 88년11월 학교측과 합의한 15개항 가운데 총장직선제와 대학발전위원회 인정 등은 양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위군은 『학생측이 대화거부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총장은 단순한 중재자 역할만을 맡아야 하고 협상의 대표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재단이사회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총장직선제는 재단이 총장선출에 관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총장과는 대화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이총장이 대표라면 재단의 위임장이 있어야 된다는 주장이다. ▷문교당국◁ 송봉섭대학행정심의관은 『제시된 유급시한 10일이라는 날짜는 법령과 세종대의 학칙이 허용할 수 있는 최후의 시한이며 더이상의 여지가 없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이를 단순히 정부측의 위협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의 태도는 안타까울 뿐』이라며 수업정상화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송심의관은 『수업정상화가 단순한 미봉책이 아니며 대학과 재단이 사태에 따른 자책감을 느끼고 있으므로 이에따른 후속행동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대학이 수업정상화를 통해 안정의 기틀을 잡는다면 빠른 시일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학생들에게 「선수업」을 당부하고 있다. 송심의관은 정부가 그동안 세종대에 대해 제재조치를 유보해 왔던 것도 같은 맥락이며 자구적 노력에 의한 문제해결에 대한 기대와 선의의 학생들에까지 미칠지 모르는 피해를 극소화 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남기고 있는 여러차례의 경고와 지난달 29일의 수업시간 단축 승인도 이러한 취지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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