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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명유래:3(서울 6백년 만상:34)

    ◎초동/왕자의 난때 방원­진압군 싸운곳/수송동/정도전이 이름 붙였던 수진방서 유래/고덕동/“두임금 못 섬긴다” 충신 이양중이 은거 조선시대는 선비정신이 최고의 덕목으로 꼽히는 사회였다.뜻을 세우면 목숨을 걸고 그 뜻을 관철시키는 선비정신은 충절이나 명현으로 칭송받기도 했고 때로는 멸문지화를 부르기도 했다. 지금의 수송동은 1914년 수동과 송현동이 합해지면서 수자와 송자를 따서 붙여진 땅이름이다.송현동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고갯마루라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수동은 바로 조선왕조의 실세 정도전이 붙였다고 전해진다.정도전은 지금의 종로구청과 교통센터가 들어선 곳에 집을 짓고 「당대에 집주인은 오래장수할 것이요 백자천손이 번창할 자리」라는 뜻으로 수진방이라고 동네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경복궁의 좌향을 놓고 논쟁끝에 무학대사를 물리칠만큼 풍수지리에도 높은 식견을 가졌던 정도전도 자기 운명앞에서는 삼척동자였다.서울정도 5년만인 태조 7년(1398년) 세자책봉을 놓고 조선왕조는 첫번째 혈전을 벌이게 됐다.충직한 신하였던 정도전은 이태조의 명에 따라 후궁 강씨 소생의 막내아들 방석을 지지하려다 방석등과함께 방원에게 피살당하고 만다. 정도전이 터를 잡고 이름까지 붙였던 「정도전터」는 그가 역적으로 몰리자 수만필의 말을 길러내는 사복시터로 전락하고 만다. 근래 수송국민학교가 들어서 미래의 꿈나무들을 배출하면서 「백자천손이 번창할 자리」라는 정도전의 예언을 이어가는듯 했으나 결국 종로구청과 교통센터가 차지해 버렸으니 그의 예언 역시 별것이 아니었음이 증명된 셈이다. 정도전의 죽음은 또하나의 땅이름을 지었다.방원이 사병을 일으켜 두명의 이복동생과 개국공신 정도전,남은등을 살해하자 태조는 펄쩍펄쩍 뛰었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제 동생을 둘씩이나 죽이고 개국공신을 살해하면서까지 왕위를 노리는 정안군(정안군 방원)를 살려둘 수 없다.당장 잡아들이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왕위를 노렸던 방원이었지만 처음에는 아버지 군대에 차마 맞서 싸우지 못했다.광화문에서부터 뒷걸음질 치다 지금의 스카라극장까지 밀리게 됐다.막다른 골목에 이른 방원은 결국 칼을 빼 부왕의 군대와 첫 싸움을 벌였다.그때부터 이곳은 「처음 싸움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초전골이라고 불렸다.그후 백성들은 초자를 풀초자로 바꿔 불러 지금의 초동에 이르렀다. 똑같은 옹고집도 때를 잘 만나면 두고두고 칭송거리가 된다.역시 이태조와 태종연간의 일이다.방원과 절친한 친구이면서 고려왕조에서 형조참의까지 지낸 이양중이라는 선비가 있었다.이양중은 방원과 그의 아버지 이태조가 조선을 개국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지금의 고덕동의 농촌으로 은거해 버렸다. 왕위에 오른 방원은 옛 우정으로 이양중을 불러 지금의 서울시장인 한성판윤에 임명하려 했다.태종이 친히 고덕동에까지 나가 밤새도록 술잔을 나누며 우정을 받아 줄 것을 간청했지만 불사이군을 고집한 이양중은 태종의 청을 끝내 거절했다. 왕명을 순순히 따르지 않았으니 트집을 잡자면 혼줄이 났으련만 태종은 이양중의 뜻과 덕이 높다고 칭송하고 그의 아들을 불러 높은 벼슬을 제수했다고 한다.이때부터 이양중이 은거했던 일대를 고덕리 혹은 고더기로 불리다가 뒤에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지금의 고덕동이란 이름을 얻었다.
  • 복지부동 용어추방부터(사설)

    『이제 우리 복지불동이라는 말의 추방을 선언하자』 이영덕총리가 제의한 말이다.「복지부동」이란 말이 지닌 구조적 부정요인을 일소하자는 제의만은 아니다.총리가 행정부의 하위직공무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뿜어내듯 근원에서부터 토해진 말이다.이 선언에 우리는 전적인 성원을 보낸다.특히 말없이 맡은 일에 진력하며 국정을 바닥에서 다지는 하위직공무원들의 끓어오르는 울분을 경청한 총리의 선언이므로 숙연한 마음으로 공감한다. 아마도 우리 국민 모두가 사실은 이말을 듣기 싫어했으리라고 생각한다.이말을 들을 때마다 나라의 척추인 공직자들의 비하되는 몰골을 보는 일이 괴로웠고 무엇보다도 여론들이 거의 가학적으로 반복하는 이 용어에 이렇다할 자책감도 없어 보이는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치유불능의 절망을 느꼈다. 그런 시점에 총리와 나눈 국정대화에서 하위직공무원들이 보여준 결연한 의지는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그러면 그렇지.질좋고 성실한 우리 공무원을 믿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하는 안도감이 들 내용들이었다. 특히 19년째된다는 한 6급직공무원의 『명예를 회복시키라』는 요구는 우리의 가슴을 때린다.공무원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아들에 대한 그의 회한에는 모든 공직자의 절규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그의 말처럼 예전보다 더 노력하는 공무원들의 더 많은 노고에 깊이 머리숙인다. 그렇기는 하지만 모든 공직자들이 다 그랬는데 오늘날 언론이나 여론이 공연히 폄하만 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표현이란 다소간의 과장이 있게 마련이고 그 자체에 타성이 붙어 무사려한 결과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처음부터 이런 말이 생길 수 없을 만큼 신뢰를 쌓았더라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생긴 일을 지우기는 생기게 하는 일보다 몇백배 어렵다. 우리가 모두 확인했듯이 지금은 국민 모두가 상위든 하위든 공직자 모두가 마음과 몸의 가짐에 조심해서 나라일을 그르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주 간절하여 그 변화를 목말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경윤높은 총리가 인용했듯 남이 평가하는대로의 사람이 된다는 「피그말리온현상」에대한 경계를 위해 사회가 보여야 할 사려깊음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마땅하고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격려하고 북돋우는 것이 깎아내리고 경멸하는 것보다 훨씬 성과있는 비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대목도 지금의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새겨보는 것이 온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이런 말이 아예 없어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총리의 제의에 온 공직자가 평생직을 걸고 동참하기를 거듭 당부한다.
  • 사회복지도 투자다(사설)

    보사부가 내놓은 21세기대비 사회복지정책개선안은 우리의 빈약한 사회복지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훌륭한 정책내용들을 제시함으로써 주목을 끌었다.사실 21세기엔 선진국대열에 진입하겠다는 의욕을 가진 우리로서는 이제 복지문제에도 보다 큰 관심을 갖고 투자를 늘려나가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행정담당자·관계전문가·현장사업자등의 의견을 듣는 12일의 보사부 주최 토론회에 제시된 내용들을 보면 첫째,사회복지전달체계를 전문화하여 일선시·군·구와 읍·면·동에 사회복지전담사무소를 전문조직으로 둔다든가 둘째,민간쪽도 사회복지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심점을 만들고 구심점 중심으로 공동모금과 자원봉사활동을 체계화하도록 하는 한편 세째,기초생계보장선을 현재 최저생계비의 66%선에서 점차 올려 20 00년에는 1백%수준으로 하자는 것이며 노인복지에 있어서도 노령수당지급대상을 내년부터 65세이상 모든 생활보호대상노인으로 넓히고 지급액도 현행 월 1만5천원인 것을 20 00년까지 월 7만원수준으로 올린다는 것등이다. 21세기복지선진국을 지향하는 의욕적인 내용들이다.적극적인 반영과 실천이 있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뒷받침할 재원의 확보라 생각한다.우선 노인사업과 장애인·여성·어린이복지사업등을 지역화하고 민간화한다고 해도 그러한 계획추진을 위해선 20 00년까지 정부의 사회복지예산을 매년 20%씩 증액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정부 총예산중 사회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9.7%에 불과하다.대만 17.3%,일본 20.3%,미국 25.6%,영국 31.6%,독일 47.9%등인 것과 비교해 우리 사회복지예산수준은 너무 낮다.이래가지고서는 복지선진국은 불가능하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예산확보의 어려움이 가장 큰 난제로 지적되었다.토론회에 나오기로 돼 있던 경제기획원이나 내무부 예산확보관련 행정담당자들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것을 잘 증명해 보여주는 것이었다.이런 의식으로는 21세기대비,사회복지정책개선은 공념불이 될 수밖에 없다.사회복지문제에 대한 예산관계당국자의 인식이 너무 안이하고 구태의연하다는 인상을 받는다.사회복지지출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투자다.복지에는 우선 정부가 투자를 해야 한다.복지비가 경제성장을 지체시킨다는 말은 우리같이 복지의 기초도 안되어 있는 수준에서는 할 소리가 아니다.기본적인 복지생활수준이 갖추어져야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력도 계속 공급되고 경제의 확대재생산도 되는 것이다.앞으로 6월말까지 보완하는 데는 정부의 투자책임이 좀더 분명히 되어야 하겠다.
  • 「트라비의 자존심」과 여금주양(송정숙칼럼)

    『전쟁이 나면 외화상점을 털겠다』­성분좋은 북한 청소년들도 모여앉아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아무리 사상교육이 철저하고 교양이 강화돼도 한계는 있으므로 짐작되던 일이다.탈북한동포들에 의해 내부실상이 소상히 공개되니까 착잡함도 강해진다. 게다가 예멘의 재분단위기까지 함께 볼것같아 더욱 그렇다. 남북예멘이 협상을 통한 통일을 달성했을 때 우리가 느꼈던 자책를 생각하면 여러가지를 느끼게 한다.온갖 요란한 이름의 정책과 협상을 거듭했지만 진전이 없어보이는 우리의 통일현실에 비하면 그들의 통일은 너무 빠르고 놀라웠었다. 더구나 『남과 북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고 형제애를 살리는 일의 중요함을 우리는 살렸다』고 우리에게 충고하던 당시의 예멘지도자들의 말에 부끄럽고 참담했던 우리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한데 알고보니 그통일은 너무 부실했던 것같다. 『북쪽 사람들은 자기한테 이익이 없으면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지식수준도 크게 차이가 나 북쪽사람들이 남쪽 사람들을 따라갈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고 하는 여만철씨딸 금주양의 말을 들으며 문득 동서독이 통일한 이후 동독측에서 만들어진 영화 『트라비에게 갈채를』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트라비」는 통일전 동독에서 만들던 소형승용차다.동구의 자동차들이 대개 그렇듯 품귀사회의 제품이라 재질이 시원찮고 기술도 앞섰다고 할 수 없는데 그나마 이제는 차령이 다되어 거의다 폐차처분이 된 것이다.그 낡은 트라비를 몰고 동독출신의 주인공 가족이 여름 휴가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된다. 괴테전공의 문학교사인 주인공은 괴테의 여행기 한권을 들고 여행을 시작한다.가며가며 괴테가 지나간 자취를 밟고 그의 시를 음미하며 대문호의 문학세계에 취해 뜻깊은 서양사여행을 한다.그러는 동안 트라비와 더불어 가족은 온갖 사단을 겪는다. 속도놀이에 취한 유럽젊은이들이 총알처럼 달리는 유럽대륙의 고속도로에서 시속 60㎞도 못내는 트라비때문에 겪는 망신.게다가 중간에 덜컥덜컥 서버리는 통에 한창 데이트 상대와 놀 궁리에 빠져있는 젊은 딸의 반란등. 그러나 이 영화가 인상적인 것은 그 부분만이 아니다.그들이 서독의 친척집에 들렀을 때 겪는 업신여김 장면이 있다.혹시라도 가난한 동독 친척이 개갤까봐 비정하게 굴고,좋은음식도 모두 감춘다.심지어 그집 아들은 먹던 케이크를 접시째 옷장에 숨겼다가 크림으로 옷을 버리는 일도 생긴다.그러면서도 새로 산 휴가장비따위 「있는것」의 과시에는 바쁘다.그런 모습이 졸부의 천박성 그대로다.비록 가난하지만 괴테를 읊조리며 피렌체까지 찾아가는 주인공가족의 낙천적인 여행모습이 훨씬 인간답고 품위있어 보인다. 특히 털털이 트라비가 마침내 이 가족의 휴가여행을 무사히 끝내주기까지의 노력과 귀여운 고행이 얼마나 신통한지 정말 「갈채」를 함께 보내게 된다.박물관에나 보내질 차 트라비를 보고 신기해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번씩 타보게 하여 돈도 벌고,도저히 구할 수 없는 차의 부속을 폐차장에서 구하기도 한다.옛 동독의 고급 기술자들이 이제는 폐차장인부가 되어 헌부속을 새부속인 것처럼 속여 돈을 벌고 있어서 그들을 통해 유능하고 세련된 동독출신기술자들의 삶도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된다. 80년대에 이미 동독TV들은 심야영화로 할리우드영화 「모감보」같은 것을 동독국민에게 보여주었었고,펑크족머리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캄보밴드가 동독건국기념일 행사의 주종을 이루며 그것을 음악방송이 종일 중계해주는 형편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동독과 북한은 비교가 안되긴 한다. 중국에 사는 동포교수가 북한에서 유학온 학생들이 이상하게 주눅이 들어있어서 재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지적개발도 뒤진 것같아 속이 상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자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에 의해서 해방되는 창조적 능력때문에 소중한 것이다.금주양의 우려는 통일이후 함께 살게 되었을 때에 예상되는 자존심의 상처라고 할 수 있다.그의 증언대로라면 억압의 부작용은 그것대로 고스란히 지녔으면서 그로 인한 가난이 끼치는 정신적 상흔 또한 여간 깊은게 아님을 짐작케한다.날로 진행되는 황폐함의 골을 알수 있게도 한다.그런 일이 진정 걱정스럽다.괴테를 읊조리며 트라비로 휴가여행을 즐기는 동독출신 지식인들의 자존심만한 것이라도 보존되었다면 민족공동체가 함께 살날을 위해 얼마나 좋겠는가.그러나 지금으로 보아서는 그런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우리가 이뤄야 할 통일이 이런 전제조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의 이성적인 대비가 있어야 할텐데,아직은 그래 보이지 않아 마음이 쓰인다.
  • 「성희롱」 피해… “여성에게도 책임이”(박갑천칼럼)

    사기에 걸렸다고 하면 금방 사기꾼을 욕하는 것이 사람마음이다.행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면 운전기사 탓으로 돌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일단은 옳다.하지만 한발짝 더 다가서서 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왜 사기에 걸렸던가.사기에 걸려들수 있는 허욕이 이쪽에 있었던게 아닌가.교통사고의 경우도 그렇다.이쪽에서 음주후 길을 잘못 건너다가 당하는 사례도 없는 것이 아니잖은가. 누가 도둑을 맞았다고 하자.도둑질의 잘못이야『일러 무삼하리요』다.하지만 도둑 맞을수 있게 허점을 보인 피해자 또한 잘했다고 할수는 없다.『도둑놈은 한죄(죄),잃은놈은 열죄』라는 속담이 왜 나왔겠는가.조의제문으로 유명한 점필재 김종직(점필재 김종직)의 시골집 서당에 도둑이 벽을 뚫고 들어가 서책을 훔쳐갔다.이 소식을 들은 그는 시를 지어 자책한다(이기의 「송와잡설」에서). 『평생 사모은것 겨우 천권이니/공택(공택:송나라 장서가)의 산방(산방:책을 두었던곳)에야 감히 비기겠나/자취는 제법 양상군자 같구나/시서는 구중주(구중주:죽은사람 입속에 넣어주던 구슬)도 아니거늘/배워서 몸위한다면 용서라도 하겠다만/팔아서 돈 만들면 어찌 우리 무리이리/담과 문을 조심 않은 연고이거니/집지킨 하인이나 벌주어야겠네』(한문원문 생략).형사학에서 피해자의 문제성을 연구하는 피해자학이 나오게된 까닭이 이런데 있다고 할것이다. 여름에 치한이 날뛰는 것도 맨살을 드러내 놓고 자는등 피해자의 유인제공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일본 경시청이「서머드레스와 치한」에 대해 조사를 한일이 있다.그에 의할때 옷의 색깔도 문제가 되는 모양.웃옷이 하늘색에 스커트가 검정인 경우의 피해가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분홍·노랑·낙타색이 치한을 끌어들이는 순서로 되고 있기도 하다. 한 여론조사에 의할때 최근의 서울대교수「성희롱」사건 손해배상 판결에 대해 10명중 7명 이상이 『잘한일』이라는 의견을 보였다고 한다.주목되는 것은『여성의 야한 옷차림등 여성쪽에도 책임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한 반응이다.41.8%가 『크게 동의』하고 있고 44.4%가『약간 동의』라 응답함으로써 86.2%가 「여성책임론」에찬성을 보인다.더구나 이 점에 대해서는 여성들까지도 81.8%가 동의를 보이고 있어 더욱 주목을 끌게 한다. 모든 세상일에서 잘못된 결과를 두고 남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그러기에 앞서 나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슬기로운 삶의 자세라고 할 것이다.내가 잘못한 일을 가지고도 남만 탓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 퇴임후에 더 빛난 닉슨/이경형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리처드 닉슨 미전대통령의 장례는 오는 27일 거행된다.클린턴미대통령은 닉슨이 지난 22일밤 운명하자 다음날 그의 장례일을 「국가애도일」로 선포했다. 장례일 하룻동안 백악관을 비롯한 전연방기관은 그를 애도하기 위해 휴무하며 휴일인 토요일에도 쉬지 않는 우편배달도 이날만은 휴무키로 했다.그뿐만 아니라 미국내 모든 공공기관은 물론 해외에 있는 미국의 외교공관이나 미군기관도 한달동안 조기를 달도록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장」에 해당되는 최고의 장례의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그의 장례식은 워싱턴이 아닌 캘리포니아의 요바 린다에서 거행된다. 그는 출생지인 그 곳에 이미 건립된 「리처드 닉슨 도서관」의 뒤뜰에 묻힌다. 과거 케네디·아이젠하워·존슨 등 많은 대통령들이 미의사당에서 「국장」의식을 가졌지만 닉슨대통령의 가족들은 그같은 워싱턴에서의 「번거러운」 의전절차를 생략토록 했다.닉슨이 생전에 자신의 장례는 워싱턴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고향에서 간소하게 치러질 것을 희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그의 과거참모들은 닉슨이 그같이 결정한 것은 아마도 「퇴임당시」(74년 워터게이트사건으로 하야)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역사상 스캔들로 임기중에 물러난 첫 대통령으로 기록된 자신의 부끄러움을 자책한 탓일 것이다. 클린턴대통령은 닉슨이 운명하자 중국과 외교관계수립등 재임시 치적을 소개하며 『미국민을 다음 세기까지 안전하게 이끌기위해 그가 발휘한 지혜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흔히들 닉슨을 「워터게이트추문의 장본인」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분명 그는 「외교의 귀재」로 평가되는가 하면 국내적으로도 많은 「정치문화」를 확립한 「능력있는 정치인」으로 꼽힌다.예를 들어 지난 60년 케네디후보와 미국역사상 첫 TV토론을 가진이래 대통령선거전의 TV토론문화를 정착시켰다. 또 60년대 격렬했던 민권운동등 진보주의와 공화당의 극우보수주의가 타협할 수 있도록 정치적 교량역을 발휘하기도 했다. 닉슨은 백악관에서 하야한뒤 20여년동안 개인적인 녕일을 추구하기보다는 미국민의 안전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회고록을 비롯해 6권의 책을 저술했고 수많은 강연을 위해 국내외로 여행했다.어쩌면 대통령을 퇴임한뒤 「닉슨의 진면목」이 더 잘 나타났는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도 「퇴임후의 대통령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 이해방박사/성태경박사/이방홍씨/김명자박사/「’94과학기술상」 수상

    ◎과학상 이해방박사·기술상 성태경박사/기능상 이방홍씨·진흥상 김명자씨 과학기술처는 19일 94년도 대한민국 과학기술상(상금 각 5백만원)수상자 4명을 확정 발표했다. 올해 과학기술상의 과학상은 이해방박사(53·한국화학연구소 선임부장),기술상은 성태경박사(52·한국이동통신 전무이사),기능상은 이방홍주임(50·포항제철압연정비부),진흥상은 김명자박사(50·숙대교수)에게 돌아갔다. 시상식은 2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제27회 과학의 날 기념식에서 있다. ◎과학상 수상/이해방박사/“신약개발에 혼신의 노력 다할터” 과학상 수상자 이해방박사는 세계최초로 당뇨병환자들이 인슐린을 주사로 맞는 대신 피부에 붙일 수 있게 인슐린 패치를 개발,국내는 물론 미국과 캐나다의 특허를 획득하고 제품 개발단계에 들어가 세계 제약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제게 과분한 이 상은 앞으로 한눈 팔지말고 신약개발에 정진하라는 것으로 알고 연구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이박사는 수상소감을 이렇게 밝히면서도 『훌륭한 논문과연구업적을 이룩한 선·후배가 많은데도 제가 받게되어 송구스럽다』고 겸손해했다. 이박사가 개발한 인슐린 패치는 앞으로 조직이 커서 인체흡수가 어려운 단백질 약물에 응용할 수 있으며 경제적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62년 미 유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의 켄프달회사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귀국,84년부터 한국화학연구소에서 의료및 의약제조연구를 해온 이박사는 그동안 학술논문 53편 국내외특허 21건 특허출원 32건 연구보고서 46건을 낸바있는 의욕적인 과학자. 독실한 카톨릭신자인 이박사는 인슐린 패치를 연구하게된 동기는 동양의 전통의술인 침술을 이용해서 주사대신 약물을 인체에 고통없이 안전하게 흡수시키는데 착안,10여년의 연구끝에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인체내의 생리적변화를 스스로 감지해서 약물을 효과적으로 공급하고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안전한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상금을 타면 연구실에 파묻혀 계절도 모른채 연구에 열중해온 연구원들과 봄나들이를 하고 싶다』고 수줍게 웃었다. ◎진흥상 수상/숙대 김명자교수/“과학·대중 사이 좁혀야 과기발전” 『과학과 대중과의 사이가 좁혀져야 합니다.과학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돼야 한국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어요.모두가 아인슈타인이 될 필요는 없는거죠』 올해 대한민국 과학기술상 진흥부문 수상자인 숙명여대 화학과 김명자교수(49).이번 진흥상 외에도 지난 84년 제1회 한국과학저술인협회 저술상,85년 과학기술진흥유공 대통령표창 등을 받은 그는 한국 과학대중화운동의 기수 역할을 해왔다.「엔트로피」,「과학혁명의 구조」,「동서양의 과학전통과 환경운동」,「현대사회와 과학」등 수많은 번역서와 과학학분야의 논문을 낸 바 있는 김교수는 그동안 대학의 「과학학과」 설립을 꾸준히 주장해 얼마전 교육부에서 설립인가를 이끌어내는데 공헌한 주역이기도하다. 『71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뒤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전통사회의 여성의 역할 그리고 교수라는 전문직을 조화시키려는 과정이 결코 평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김교수는 『사회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그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자책을 이기기 위해』 70년대 말부터 과학저술과 번역에 매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10여년 전만해도 과학기술에 관해 논설을 쓰고 심포지엄,워크숍,위원회 등에 참여하는 일은 학자의 전공영역으로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에 특정한 성향을 가진 사람의 외도처럼 받아들여 졌습니다』 그동안 외로운 작업을 계속해 왔던 김교수는 그간의 어려움을 이제서야 털어놓는다.『이번 진흥상 수상으로 그동안 조심스럽게 해오던 일들이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더 활발한 활동을 약속했다. ◎이방홍 공적사항/세계수준 열연코일 생상에 기여 ▲이방홍(포항제철 압연정비부 정비주임)=연산 3백90만t급 최대 다품종 대량생산 열연공장 정비기술을 습득,고장시간을 세계수준으로 단축시키고 사상압연기의 롤체인지방법을 개선,작업능률을 크게 향상시켰다.또 품질설비개선으로 두께오차및 흠이 없도록하여 세계최고 품질의 열연코일 생산에 기여했고 주요 부품의 도면및 제작기술을 습득해 국내업체가 제작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철강산업발전에 기여했다. ◎성태경박사 공적사항/국제전화시스템 기술 기초정립 ▲성태경(한국이동통신전무·공학박사)=국내에서 처음 국제 반자동교환시스템을 개통시키고 한일간 국제 반자동기술 및 집적회로의 키센더를 개발하는 등 국제전화시스템 기술의 기초정립에 기여했다.국내 최초로 자동시외전화방식을 개발했고 교환기의 시스템엔지니어링을 시행,이동전화 시설 및 통화품질을 대폭 향상시켰다.
  • 기독교방송 사목실장 한상용씨(훈훈한 우리가정:11)

    ◎온가족이 클래식음악광… “음악처럼 살지요”/함께 본 음악·연극표 추억담아 수십년 간직/세딸 출생 기념해 담근 포도주가 이젠 가보 정원에 심어진 풀꽃 한송이,작은 돌하나에도 가정의 역사가 담겨 있고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 갈 가족 적금을 붓는 집.서울 강서구 화곡동 한상용씨(56·기독교방송 사목실장) 가정의 모습이다. 『세월과 함께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또 성숙해가는 가족간의 사랑이 집안 구석구석에 모두 남아있지요』이 집의 가훈 「작은 것을 사랑하자」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손이 귀한집 맏며느리로 들어와 딸만 셋을 낳았다는「구 시대성」자책감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워온 안주인 정명자씨(52).『사랑과 정성만큼 버릴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첫딸 수아(27·회사원)가 태어난 68년을 기념,담근 포도주가 고급 와인이 돼 집안의 가보로 자리잡았고 수진(25·대학생)지혜(23·〃)의 탄생 기념주를 비롯,매년 여름 담근 포도주 향기가 집안 지하실에 가득하다. 「딸하나,공주 하나,여식하나」세딸이 각각 자라온 모습을담은 앨범도 각각 5권씩이나 된다.첫회 예방접종용지,유치원 등록증,편지등이 모두 아름다운 사연이 돼 함께 꽂혀있다.집에 카메라가 없었던 68년엔 첫딸 수아의 첫 울음소리를 녹음테이프에 담았을 정도다. 『국민학교때 고아원에서 다니던 학급친구를 위해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두개씩 싸들고 등교하면서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어요.하지만 지금은 「나도 엄마·아빠처럼 살아야 할텐데」라고 생각해요』수아씨의 말이다. 지난 83년 지휘자 카라얀(당시 75세)이 그 다음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해 난방비와 맞먹는 가족들의 입장권을 사기 위해 적금을 부었던 음악광 가족.당시 멋모르고 따라 다녔던 두딸 역시 열렬한 클래식 음악팬이 돼 1년치 공연 계획표를 찾아 함께 관람한다.요즘 집안에 흐르는 음악도 오는 19일 정명훈의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단 공연을 미리 공부하기 위해 틀어놓는 레퍼토리. 33년전 정씨의 서울대 간호학과 재학시절부터 모은 음악 미술 연극 관람표와 프로그램에서부터 온가족이 관람한 연극표등을 하나도 버리지 않은 것은물론이다. 학교와 직장에서 바로 저녁 음악회로 향하는 식구들을 위해 김밥을 핸드백에 담아오고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홍보위원으로,또 이웃과 함께 분리수거운동및 생필품 공동구매운동등 안팎으로 쉴틈 없이 살고 있는 아내를 향해 한상용씨는『달빛 햇빛냄새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힌다. 이들 부부는 「삶의 가치관인 종교(기독교)가 같고 클래식음악을 즐길 수있는 사람」을 세 딸의 남편감으로 꼽는다.사위들은 베이스를 맡아 가족중창단을 만들었으면 한다. 이집 마당엔 부인 정씨의 친정 외할머니로부터 2대에 걸쳐 전해져온 옥잠화가 곱게 자라고 있다. 한상용씨 부부는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의 성장앨범과 바로 이 옥잠화를「챙겨 들고」68년 70년 72년에 담근 포도주를 함께 마시면서 노래를 부를 세사람의 기사가 누굴까가 자꾸만 궁금해진단다.
  • 삼일절 아침에…/백남치 국회의원·민자당(굄돌)

    며칠전 2개의 대조적인 신문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정신대로 끌려가 지금껏 태국에 살고 있는 노수복할머니와 친일인사들의 행적을 연구한 이화여대 박은경씨의 논문에 관한 기사였다. 강제로 끌려가 해방후에도 이국 땅에서 여생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노할머니의 사연은 나라 잃은 민족이 겪는 설움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희생자인 그 할머니가 최근 우리 정부로부터 받은 5백만원의 정착금을 태국의 한인2세 장학사업에 기부했다는 기사 내용이었다.노할머니는 이전에도 태국의 한인학교 설립을 위해 3만바트(약90만원)를 기부한 적이 있다고 한다.50여년동안 이국 땅에 머물게 된 사무치는 한과 동포에 대한 무한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와 대조적인 박은경씨의 논문에 관한 기사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들었다.그에 따르면 구한말의 공직자 3천6백여명 가운데 일제하에서도 계속 관리노릇을 했던 사람이 무려 2천4백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라를 지켜야 할 위치에서 본분을 못했던 그들이 나라가 망한 후에도망국에 대한 자책은 커녕 자신의 명리를 유지하며 노할머니 같은 사람에게 한숨과 눈물을 뿌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해주는 것이다. 역사학자 카(E.H.Carr)는 역사는 이끌어 가는 사람과 이끌려 가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했다.그런데 우리 과거사는 역사를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본분을 못할 때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비탄속에 살 수 밖에 없다는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다. 역사의 뒤편에 있었던 노할머니 같은 이들의 작은 몸짓들이 지금에 와서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그들이 보낸 아픈 인생은 진정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우리앞에 놓여진 역사적 과제앞에 자신있게 설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옷깃을 여미고 자신들을 한번씩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 민자 김대표의 자신감/박대출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민자당의 김종필대표는 17일 임시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과감」이란 말을 다섯번 썼다. 특히 두번은 준비된 원고에도 없던 것들로 즉석에서 곁들인 내용이다.김영삼대통령에게 민자당의 운영권을 넘겨받으면서부터 되찾은 자신감에서 나온 표현으로 여겨진다. 김대표는 이날 연설을 국민에 대한 사과와 다짐으로 시작했다.어려워진 농어민 생활·물가·수돗물·치안등에 대해 반성했다.이어 『한국 정치도 달라져야 한다』면서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정치행태를 스스로 꾸짖었다.모든 책임은 정부보다는 「무실력행」이 절실한 집권 민자당에 있다고 자책했다.이같은 자성의 바탕 위에서 『의지와 소신을 갖고 나설 때는 나서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정부측에 대한 비판이 강도 높게 이어진 것도 눈에 띄는 변모였다.세금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려는 편의주의적인 발상,행정규제 완화의 미흡함,존립가치가 흔들리는 경찰의 개혁촉구등. 이러한 자신감 아래 김영삼대통령이 제시한 국정목표를 한치의 오차없이 뒷받침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정치개혁을이뤄내 고부가가치의 정치를 구현하겠다고 강조했다.경제활성화와 국가경쟁력 강화에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이날 연설내용은 「힘이 넘쳐 흘렀다」는 평가와 「비전없는 화려한 수사의 나열」이란 상반된 측면을 엿보이게 했다.따라서 국정운영 전반의 총체적인 제시가 얼마 만큼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김대표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서 이제부터는 「제몫」을 다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과거처럼 「구렁이 담 넘어가듯」하던 집권당 대표의 연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반면 김대표와 집권당의 역할과 한계를 노출시켰다.김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이나 하루전 이회창총리의 본회의 연설내용과 별로 다를바 없는 연설은 실망을 안겨주었다.대통령이 나서도 해결책이 마땅치않은 판국에 김대표가 뾰족한 수를 내놓을 수 있겠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대표와 민자당은 자신들이 이솝우화에 나오는 「늑대와 소년」의 「소년」이 이미 됐거나,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새해 청사진이 또 한번 공염불에 그친다면결국 스스로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소년」이 되고 만다.그리고 그 늑대는 다른 양민을 잡아먹게 될 것이다.
  • 동양최고의 공예품(백제를 다시본다:2)

    ◎용봉향로는 백제문화의 「집약체」/용무늬는 왕실의 상징… 탄생설화 묘사/도교적요소는 정치적 이상향 나타내/700년 시공 뛰어넘어 한대작품 능가하는 미 창조 충남 부여 능산리고분(사적14호)과 나성(사적58호) 사이의 건물터에서 지난해 연말 출토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는 백제의 찬란한 문화를 축약한 문화사 바로 그것이다. 이 향로는 전체높이 64㎝로 크게는 뚜껑과 몸체 두부분으로 이루어졌다.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뚜껑 꼭대기의 봉황장식,뚜껑,몸체,용모양의 다리부분 등 네부분으로 구성되었다.특히 뚜껑부분은 삼산형의 문양장식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윗단에는 5인의 주악상을 앉혔다.이들 주악상의 인물은 모두 머리 오른쪽의 머리카락을 묶어 내려뜨렸다. 그리고 그 밑에는 다섯개의 산을 들리고 산꼭대기에 앉아 있거나,혹은 날아가고 있는 새모양을 조각해 놓았다.이 향로의 제작연대는 연화문을 비롯한 여러 양식의 수법으로 보아 부여시대(사비시대·서기 538∼660년)의 마지막 6∼7세기 경으로 추정된다.특히 발굴당시 이 향로가 매장된 장소의 정황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는 숨가쁜 순간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뚜껑엔 삼산형문향 이제까지 향로가 실물로서 출현한 예로는 중국의 화북성 만성현 능산의 중산왕류승의 묘(전한·기원전 154년 재위·기원전 113년 사망),평양 서암리9의 219호낙랑고분,신안 해저출토 청동제 박산향로(원대 14세기)등을 들 수있다. 박산로는 중국의 경우 전국시대 말기에 출현하여 한나라때 전성기를 맞는다.그 후 위진남북조를 거쳐 당과 원나라에까지 사용된 것같다.그러나 박산이라는 이름이 지칭하는 뚜렷한 지명은 없고,당시 황실이나 귀족사회에서 유행하던 신선사상이 중심이 된 도교사상에서 유래하는 상상의 지명으로 보인다.그런가 하면 이런 향로에는 불교적 색채도 보인다.향로가 향을 피우는 불구이며 박산이란 이름이 수미산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보아서도 그러하다.또 이번에 발견된 것처럼 향로의 몸체 주위에 돌아가며 앙련복변판련화문이 새겨진 것도 바로 이러한 불교사상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따라서 이 향로의문양만 보더라도 백제사회에 도교와 불교사상이 깊이 침투해 있음을 알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백제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15대 침류왕 원년(서기 384년) 진나라에서 온 호승 마라난타에 의해서이다.불사는 그 이듬해 한산에서 이루어져 그곳에 도승이 10여명 거주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교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최근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매지권(국보163호)의 말미에 쓰여진 불종율령이란 단어가 도교의 주술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옳다면 이는 백제왕실 깊숙히 도교가 들어와 있었음을 입증해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심취했던 도교의 신선사상의 주제는 고구려고분의 벽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그리고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던 백제의 공주 송산리6호와 부여 능산리 2호 고분에서 보이는 사신도,부여 규암면 외리에서 발견된 용봉문전과 산경문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앙련복판화문은 백제 전래품으로 추정되는 일본 나라 법륭사소장의 귤부인념대 아미삼존불 몸체 대좌에서도 보인다. ○5인주악사을 앉혀 사실 삼국가운데 중국의 앞선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여 이를 백제화 시키고,더 나아가서 일본에까지 전파시킨 당시 발빠른 백제의 문화감각으로 볼때 도교는 이미 상류층의 사상과 정치구현의 기조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불교와 도교의 사상이 표현된 이 향로는 일찍이 서왕모가 중국임금인 황제에게 바친 신물이었다는 전설과 함께 태자를 책봉할 때 봉정했던 왕통의 상징일 가능성도 이야기되고 있다.여기에 표현된 용봉의 문양이 왕을 상징한다.또 몸체의 연화문가운데 상투를 하고 태껸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한 어린 소년이 주목된다.이소년이 왕태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도 이러한 배경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이제까지 백제인의 얼굴이나 모습은 별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양서 직공지에 실려있는 백제국사,서산마애삼존불(국보 84호)과 금동삼산관반가사유상(국보 83호)등에서 보이는 얼굴이 고작이다.그러나 이 백제 왕태자로 추정되는 얼굴 옷과 상투는 앞으로 백제인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 향로에는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다.전문가들의 구체적인 견해가 나오겠지만 몸체 아랫부분에 표현된 용의 존재가 그 하나라 할 수 있다.이 용은 바로 왕가의 「탄생설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고구려의 경우 해모수와 하백녀 사이에서 나온 주몽은 난생개국신화를 가지고 탄생한다.그리고 동부여에서 부인 예씨로부터 얻은 아들 류이에게로 이어지는 왕권세습을 통해 건국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소년은 왕태자 추정 그러나 백제 건국자 온조는 주몽 서소노 우대라는 복잡하고도 현실적인 관계에서 출발한다.그러면서 고구려 제2대왕 유리(기원전 19∼기원후 18년)를 피해 남천,하북∼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개국하는 것이다.이러한 사연들 때문에 왕통에 대한 정통성 부여가 필요하게 되었고 따라서 태자책봉으로 이어지는 왕권세습에 꽤나 신경을 썼으리라는 짐작이 간다.그래서 신화보다는 용으로 상징되는 왕계의 탄생설화를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향로는 바로 이 탄생설화를 구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에 표현된 탄생설화도 그 누구를 구체적으로 지목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다만 왕통을 잇는 백제왕실의 상징물이나 신물로서의 역할과 기능이 탄생설화를 담은 향로를 만들게 한 요인으로 풀이할 수 있다.그렇다면 몸체위의 뚜껑에 표현된 도교적인 요소는 백제왕실의 사상이나 정치적 이상향의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능산리에서 새로이 발견된 향로는 기본적인 형태를 서기전 113년 중산왕의 한묘에서 출토된 금으로 상감된 청동제박산로를 법본으로 삼고 있음을 알수 있다.그러나 백제인들은 이것이 제작된지 약 7백년후에 봉·용을 뚜껑과 몸체에 덧붙여 백제화된 향로로 만들어 낸다.이는 예술작품으로도 전례가 없는 걸작품에 속할 뿐만 아니라 기록에 전하지 않은 백제사와 문화의 여백을 상당부분 메워 주는 중요한 고고학 자료가 될 것이다.이것이 바로 이 향로가 주는 값진 의미이다. ◎향로의 유래/서방의 훈향풍습따라 제조/남북조시대 불교적 색채… 활짝 핀 연꽃 장식 향로는 중국의 전국시대말과 한초부터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이 가운데 중앙에 다리 하나를 세우고 몸통의 뚜껑이 산모양을 이룬 것을 박산향로라고 부른다. 이 향로의 산 부위 곳곳에 구멍을 뚫어 향을 피우면 그 연기의 모습이 봉우리 주변으로부터 솟아 올라 마치 생동하는 산의 기운을 보는 것 같다고 한다.당시의 향로는 서방의 훈향풍습이 전해지면서 처음 만들어졌다.그래서 향로는 일반적으로 훈로를 말하고 있다. 박산이 신선사상,즉 도교사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고려도경」에 나온다.이 도경은 한대의 문헌기록을 빌려 접시는 대해를,뚜껑은 봉래산에 비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그러면서 대해속의 거북등에 봉황이 딛고 서서 봉래산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라고 덧붙인다.여기에 향을 피우면 뚜껑으로부터 피어오르는 향연은 신선이 내뿜는 안개와 같다는 향로 예찬론을 펴고있다. 향로에 불교적 색채가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남북조시대.이 시기의 대표적 박산향로는 용문석굴 21호굴의 상자모양 윗덮개와 정광3년(서기 522년) 새김글자가 있는 화상석에서 볼 수 있다.이때 비로소 몸통 아래 부위에 활짝핀 연꽃을 둘러향로를 떠받치게 된다.그리고 인동당초문등 여러 문양을 첨가함으로써 장식적 요소가 늘어난다.화려한 장식문양과 함께 향로도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숫자도 많아진다.자재도 금속 뿐 아니라 도자기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왕통의 계승을 의미하기도 했던 향로는 당·송·원대까지 계승되었다.하지만 신안 앞바다에서 건진 14세기 원대 청동제 향로에서 보듯 일체의 문양이 사라지는 향로 변천과정을 보게 되는 것이다.
  • PC활용 무궁무진/“단편영화도 직접 만들어요”

    ◎동호인 전국 5천4백여명 활동… 시사회 열어/파일에 자료화면 저장… 필요한 장면 편집/음성파일 이용하면 효과음 삽입도 가능 이제 컴퓨터는 단순한 사무기기가 아니라 때로는 오락기 역할도 하고 전자책이나 TV수상기로도 손색이 없다. PC의 다양한 기능이 알려지면서 가정에서 캠코더와 컴퓨터를 이용,움직이는 영상을 편집해 영화를 만드는 등 PC를 멀티미디어로 폭넓게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컴퓨터 영화편집은 아직 일반인에게는 생소하나 PC통신 동호인들 사이에는 최근 가장 매력적인 활용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컴퓨터를 영화편집용 멀티미디어로 활용하는 대표적 동호회는 「하이텔 멀티미디어클럽」.이 모임에는 현재 전국적으로 5천4백여명이 회원으로 가입,지역단위로 매달 한차례씩 만나 개인이 만든 영화 「시사회」를 갖는 등 PC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회원 김상준씨(32·자유기고가)는 『컴퓨터를 이용한 영화제작은 간단한 주변기기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초보자도 쉽게 배울수 있고 스스로 영화나 동영상스토리를 제작해보면 컴퓨터에 대해 더 친밀감을 갖게 될 것』이라며 PC의 활용을 적극 권장했다. 김씨는 국내외 영상보드에서 표준 소프트웨어로 사용될 만큼 영상편집력이 뛰어난 마이크로소프트의 「비디오 폰 윈도우즈(VFW)1.0」만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했다. 컴퓨터로 영화를 만들려면 우선 영상보드가 필요하지만 이를 별도로 구입하려면 40만∼50만원이 든다. VFW는 확장자가 AVI인 파일을 사용하며 컴퓨터환경이 386SX이상 기종에 한글/영문윈도우3.1,사운드카드와 표준VGA카드를 갖춘 상태에서 작동한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VFW를 윈도우즈에 연결하고 구동시켜야 한다.그리고 캠코더(동화상)나 일반사진(정지화상)을 통해 AVI에 자료화면을 저장한다.자료화면(데이터)이 많을 수록 다양한 줄거리를 꾸밀수 있다. 그 다음에 AVI에 있는 화상데이터를 VFW로 불러들이면서 필요한 장면을 선택·편집해 나가면 재미있는 단막극이 만들어진다. 영상편집시에는 화면에 어울리는 음악이나 효과음을 넣을수 있고 음성파일을 사용하면 제작자의 육성녹음 삽입도 가능하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가 현재로선 어려운 편이다.캠코더로 찍은 화면을 압축하지 않고 저장할 경우 10초당 20메가바이트(MB)를 차지하기 때문에 영상데이터를 8백MB까지 저장하는 CD­ROM을 사용해도 내용이 충실하고 줄거리가 될만한 긴 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김씨는 『컴퓨터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PC를 유용하게 활용하자는 측면이고 영상압축기술이 진전되면 더욱 훌륭한 수준의 영상편집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국경없는 경쟁… 세계시민을 키우자/선진화의 길 특별대담

    ◎교육제도 근본 혁신… 창의적 인재 양성/흉내내며 뒤좇지 말고 흐름 선도해야/“모르면 당한다”… 언어·문화장벽 극복 서두를때/김호길 포항공대 학장/이상우 21세기위원장·서강대 교수/ 경제전쟁으로까지 불리고 있는 국제경쟁에서 이기고,다가오는 21세기를 주도하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위해 선진화와 국제화가 국가적인 주요과제가 되고있다.오늘날 우리는 과연 어느 수준에 있으며 선진화·국제화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김호길 포항공대학장과 이상우 21세기위원장(서강대교수)의 대담으로 선진화·국제화의 방향과 과제등을 들어본다. ▲이상우위원장=최근들어 선진화와 국제화가 우리의 주요과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이 시대 우리에게 왜 선진화·국제화가 꼭 필요할까요. ▲김호길학장=교통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한 이웃이 됐고 그 이웃을 무시하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정치적으로는 이념의 장벽이 무너지니까 이웃국가와 더 가까워져서 경쟁이 나라안이 아니라 나라간에 더욱 치열해 졌습니다.이런 상황에서 경쟁에 이기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선진화와 국제화가 필수적입니다. ▲이위원장=옛날에는 같은 우물을 먹는 사람이 이웃이고 같은 냇물로 농사짓는 사람이 고을을 이뤘습니다.그러나 이제는 전세계가 이웃이고 활동무대입니다.한마디로 지구화되고 있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위해 국제화의 필요가 절실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선진화·국제화 일까요. ▲김학장=글쎄요.국제화하는 것이 선진화의 길이며 국제화란 곧 나라나 언어의 장벽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닐까요.전세계를 의식하고 세계를 이용한다는 생각으로 합리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이위원장=국제사회의 보편적인 행위준칙을 따르는 것이 국제화나 개방화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우리의 사고방식을 지금까지의 국가단위에서 인류가 다같이 추구하는 수준으로 넓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태평양의 어느 곳의 해양오염이나 시베리아의 삼림도 우리 문제라는 세계시민의식을 가지는 것이 곧 국제화라는 말입니다. ▲김학장=인도네시아인의 생활도이해하고 미국 흑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도 역지사지로 생각해야 합니다.민족과 국경을 초월해 서로 존경하고 이해하고 협력하는 것이 국제화의 기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위원장=그렇습니다.바깥세상의 행위준칙을 국내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떼어놔서는 안될 것입니다.천안문사태때 중국 고위관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그 관리가 『우리 애들 종아리 좀 때리는데 왜 태평양 저쪽에서 난리냐』고 불평을 하길래 제가 『세계시민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대답해줬습니다. ○제2의 개화를 ▲김학장=19세기말 일본은 서양과 조약을 맺으며 국제조약이 뭔지 몰라 잔뜩 사기를 당했습니다.그뒤 일본은 똑같은 방법으로 구한국과 협약을 했고요.국제 준칙과 관행을 배워야 합니다.최소한 몰라서 당하는 일은 없어야 겠죠. ▲이위원장=19세기말의 국제화는 바로 개화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개화가 늦어지는 바람에 열강에 몰리고 식민지와 분단 및 미군정 등 여러가지 수모와 고통을 겪었지 않습니까.18∼19세기 서세동점 시대에 문닫고 국제화에 신경쓰지 않는 바람에 우리보다 한 50년 먼저 국제화한 일본에 당했습니다.그런데 요즘 국제화는 전세계로 빨리 뛰어나가 공장을 짓고 무역을 하는 등 세계사의 흐름에 직접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과거와는 다른 제2의 국제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아무튼 제2의 국제화에선 결코 뒤지지 않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선진화·국제화 수준은 과연 어느 정도나 될까요. ▲김학장=기업은 비교적 국제화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선진시장에 수출할 생각으로 물건을 만드니 어느정도 국제화의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겠죠.가장 후진적인 분야는 학계·교육계입니다.과학기술분야는 말하기 비참할 정도입니다.1920년대의 일본 정도라고나 해야 할지…기술이란 것은 사람의 능력입니다.남해에 석유가 발견되면 우리나라는 부자가 되겠지만 당장 능력이 늘어나지는 않습니다.기술은 한세대안에 나올 수는 없는 겁니다.2000년대에는 우리도 G­7에 들어간다거나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이는 기술과 교육을 너무 얕보고 역사발전을 너무 쉽게 보는 것입니다. ▲이위원장=전적으로 동감입니다.사회과학 계통을 보면 동경제대에서 교육받은 우리 세대가 21세기 세대에게 강의하고 있는 형편입니다.다행스러운 것은 해방직후 한반도에 대학이 하나 밖에 없었으나 이제 대학이 1백51개나 되고 90%나 되던 문맹률도 거의 제로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것입니다.그러나 대학이 1백51개나 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이것도 대학이냐하는 자괴감이 듭니다.1백년 앞을 내다보는 일이 교육이라고 했습니다.그런데도 교육이 너무 눈앞만 내다보고 있지 않나 염려됩니다. ○눈앞만 봐서야… ▲김학장=교육의 첫째 조건은 교육자가 최선진적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래야 피교육자가 빨리 자랍니다.동경대 초창기에 물리학교수를 영국에서 모셔와 영어로 강의를 했습니다.거기서 길러진 졸업생들을 영국으로 유학보내 교수자격을 갖추게한뒤 다시 데려와 일어로 강의를 하도록 했습니다.이들에게 교육받은 학생들은 급성장을 했죠.이에비해 우리는 그동안 독학하다시피한 교수가 대학을 만들고 다음세대를 가르치는 식이었습니다. ▲이위원장=농부는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듬해 뿌릴 씨는 보관합니다.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나쁜 씨만 남겨놓고 좋은 종자는 다 먹어버리는 대책없는 일을 저질러 왔습니다.그래도 생활양식면에서는 국제화가 많이 된 셈입니다.각종 제도도 그런대로 국제화의 흉내는 내고 있습니다.그러나 제도는 남의 것을 베껴 놓았으나 의식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헌법은 제일 좋은 것을 베껴놓았으나 민주화가 안되는 것은 의식이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눈에 안보이는 우리의 의식을 어떻게 국제화해나가느냐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김학장=기술운영 능력은 한두 세대가 가야,그것도 열심히 노력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결국은 교육밖에 길이 없습니다.교육은 서두르는 것보다 느긋하게 미래를 위한 바탕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국제화에 필요한 교육은 상대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갖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또 국제화에 대비,실용적인 외국어교육을 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구도 큰 자원 ▲이위원장=세계사의 큰 흐름에 따르는 것이진보입니다.예컨대 한자를 없애는 것이 애국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속좁은 소견입니까.일본이 명치시대에 그 많은 서양의 어휘를 한자어로 바꿔 놓았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한자문화권인 한·중·일 3나라만 모국어로 대학 강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당시 일본에서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말한 「리베르테」라는 용어를 10년 동안 여러가지 후보작을 시험하다 오늘날처럼 자유라는 단어로 정착시켰습니다.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의 주요대학 강단에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외국인이 한국에서 교수 노릇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이런 풍토에서 하루가 달라지는 세상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겠습니까.빨리 의식을 국제화하는 국민운동이라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김학장=같은 생각입니다.필요하다면 소련사람이든 유태인이든 흑인이든 과감하게 데려와 배워야합니다.대학입시를 비롯한 교육제도는 개혁이 아니라 근본부터 완전히 혁신해야 합니다. ▲이위원장=물론 의식의 국제화를 우리 것은 버리자는 것으로 오해해선 안됩니다.우리 고유문화를 인류의 보편적인문화와 접목해 국제화·선진화하자는 것입니다.국제화를 위해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김학장=한 노벨상 수상자가 인간자본(HUMAN CAPITAL)이란 말을 썼죠.옛날에는 자원이 많고 인구가 적어야 부국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호주나 남미보다 인구가 많은 일본이 더 부국입니다.결국 교육을 잘시키면 인구도 큰 자원이 됩니다.즉 선진화·국제화된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과제의 핵심입니다. ▲이위원장=그런 측면에서 남북한 겨레와 해외교포 7백만을 포함해 8천만 한민족을 잘만 활용하면 우리도 선진국으로 충분히 발돋움할 수 있을 겁니다.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이 그동안 남의 탓만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소홀한 점을 자성하는 한편 국민을 계몽하는데서 국제화와 선진화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모두가 반성을 ▲김학장=1백년 앞을 생각하면서 현실의 급한 일도 해결해야 합니다.맡은 분야에서 국제수준과 비교해서 반성을 해봐야 합니다.기업은 물건을 세계적 수준으로 만드는가.교수는 국제수준의 논문을 낼 수있느냐.한번씩 돌아보고 보완하고 자책하는 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위원장=좁은 나라 안에서 옆의 동료와만 비교해 질시하는 따위의 자해행위는 그만둬야죠.비교기준과 척도를 국제사회로 삼는 것이 국제화의 첫걸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얼마전까지만 해도 국력을 얘기할 때 군사력이 제일 중요한 요소로 치부되었습니다.10여년전부터는 경제력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습니다만 21세기는 문화수준이 관건입니다. ▲김학장=결론적으로 선진화·국제화를 위해서는 보다 창의적인 인간을 길러야하며 이를 위해 교육이 중요합니다.모방도 철저하게 잘 하는 것이 필요하고요.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병행해서 장기적으로 무엇이 중요한가를 염두에 두고 국제경쟁력을 기르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 잠자던 과학교육 일깨운 “엑스포 충격”(교육 개혁해야 한다:2)

    ◎현장서 진단하는 문제점·개선방향/상상 못했던 최첨단세계에 경탄/“현장학습·실험 중시” 새진로 각성 ▷외우기론 안된다◁ 『야,열차가 뜬다』 『처음보는 것이 너무나 많아요』 요즘 93대전 EXPO 행사장은 초·중·고교생들의 탄성으로 가득하다. 학생들이 「대전」에서 받고있는 「과학의 충격」은 대단하다. 지난 21일 상오10시쯤 엑스포 자기부상열차관에서 미래의 교통수단이라는 최첨단 자기부상열차를 탄 남춘천국민학교 4학년 학생 80여명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전시장 탄성·환호 열차가 레일위를 떠서 달린다는 사실은 어린 학생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한 놀라움이었다. 『열차가 떨어지지는 않나요』부터 『열차가 뜰 수 있는 다른 원리는 없나요』라는 질문까지 아이들은 동승한 자기부상열차 안내요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부었다. 인솔교사 이말숙씨(34)는 『이틀동안 엑스포를 단체관람시켰는데 아이들이 그토록 대단한 호기심을 나타낼 줄은 미처 몰랐다』면서 흐뭇해했다. 어린 국민학생들만이 놀라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일 하오 대전엑스포 전기에너지관안의 미래 주거도시 모형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전시물을 구경하던 조영재군(17·천안북일고 1년)은 넋을 잃은 채 미래의 주거도시모습과 주택시설을 관찰하고 있었다. 조군은 『앞으로 공대를 지원하려고 하지만 솔직히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는 장래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잘 알 수 없었고 이론위주의 공부가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주 들었다』면서 『그러나 이곳에 전시된 태양에너지로 움직이는 첨단미래도시의 모습과 주거모습을 보고 나의 미래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박준민군(대전 대덕고 1년)은 지난 19일 하오 정보통신관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화상통신장치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원리장치를 직접 조작하며 자리를 뜰줄 몰랐다.『정보화산업의 기술이 이렇게 최첨단에까지 도달해 있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는 것이 박군의 말이었다. ○국제화시대 실감 지난 21일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온 이동하군(16·충남 공주중3년)은 엑스포에 전시된 각종 첨단 과학기술이 자신이 평소 학교에서배운 기초 과학지식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연신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평소 실험은 거의 없고 외우기만하는 학교공부에 갑갑함을 느껴왔던 이군이 엑스포를 보고 가슴이 마구 뛴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엑스포는 아이들에게 「국제화시대를 실감할 수 있는 충격」이기도 하다. 지난 21일 하오 4시쯤 국제전시구역의 중국관을 관람하고 나오던 권봉근군(15·경남 함양중 2년)의 표정은 다소 들떠있었으나 『세계 1백7개국을 여행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은 오히려 진지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평범한 곳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19일 재생조형관에서 만난 김양신양(14·수원 영복여중1년)은 백남준씨의 고물 TV을 이용한 대형 거북선 비디오아트 전시물등 각종 재생 예술품들을 보며 『폐자원을 활용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만들어 낸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면 그동안 죽은 교육을 시켜온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곤 합니다』 21일 학생들을 인솔하고온 황성배교감(59·서울 홍익사대부중)의 말이다. ○“미래에 자신감” 『그동안 학교교육은 교과서를 통한 이론공부,그것도 외우기 뿐이었어요.아이들에게 미래의 모습을 보여 준 적도 없고 학생들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현장교육을 너무 등한히 해왔어요』 단체관람학생들의 진지한 관람을 바라보며 최락훈교사(51·전북 전주중앙여중)는 『엑스포를 통해 부족한 현장교육을 보완하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며 우리의 교육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지금까지 대전엑스포를 관람한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은 모두 2백50여만명으로 전체의 45%정도.나머지 학생들도 앞으로 모두 엑스포를 관람하게 된다. 학생들은 생생한 과학교육현장에서 내일에의 꿈을 가꾸고 있다. ◎현미경 관찰법 등 기초부터 착실히/흥미·관심 이끌 노력을/투자 등 혁신책 세워야 ▷어떻게 가르칠까◁ 많은 학생들이 대전EXPO를 보고 놀라고 있다는 사실은 학과시험과 입시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맹점을 가장 단적으로 증명하는 현상이다. 교과서와 이론 위주의 수동적인 주입식·암기식교육이 우리 청소년들을 「과학 지진아」로 만들었다는 심각한 상황을 우리는 너무 늦게 목격하고 있다. 지난해 한 교육전문기관의 조사결과 과학과목의 경우 전체 이해도가 50%미만이라고 응답한 학생이 국민학교때는 2.1%,중학교 22.4%,고등학교는 과목별로 25∼42%로 나타나 충격을 주었다.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학생들이 「과학」에서 이처럼 멀어지고 있다. 오는 21세기는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로하는 시대가 될 것이며 경제성장은 과학기술과 정보력이 기초가 되어야한다. 학교교육은 학생들이 21세기의 첨단과학기술시대에 적응하는 것은 물론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초 소양을 쌓도록 해주는 데 목표를 두어야한다. 특히 과학교육은 이를 위해 학생들의 창조력개발과 자발적 탐구정신의 함양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과학과목의 탐구정신은 현장교육·실험실습등을 통해 개발된다. 탐구활동은 크게 보고 듣고 느끼거나 만지는 3부분으로 이루어지는 데 이제까지 우리교육은 보고 듣는 수준에서 그것도평면적인 교육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과학교육을 위한 예산가운데 초·중·고교생 1인당 1년예산은 5천5백50원,순수 실험재료비는 1인당 1천4백38원에 불과했다. 이러한 투자로 과학교육 운운하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열악한 과학교육비가 결국 「값싼 과학」을 만드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선학교에서 예산부족을 핑계삼아 과학교육을 등한시하는게 아니냐는 점이다. 과학적 탐구방법을 가르치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가령 현미경같은 평범한 실험도구로 조그만 나뭇잎 하나를 치밀하게 관찰하는 것도 얼마든지 탐구정신과 과학적 상상력을 기를 수 있다. 유전공학자가 새로운 유전자법칙을 발견해낼 수 있는 것도 최첨단 전자현미경 덕택이 아니라 현미경을 통한 꾸준한 관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은 고학년이 될수록 꾸준히 탐구정신과 상상력을 통한 과학적 창조력을 배양할 기회가 없어지며 일선교사들도 시험점수 잘따는 학생을 길러내는데 신경 쓸 뿐 이미 과학은 안중에 없는게 현실이다. 엑스포를계기로「과학」에 새로운 흥미와 관심을 갖기 시작한 학생들이 계속 탐구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과학교육 혁신책을 마련하는 일이 우리교육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기본원리 충실」로 이룬 “선진화”/실습캠프 설치… 일선교사 철저한 재교육/미국/초중고 실험기자재비 전액 국가서 지원/영국/「이과 진흥법」 제정,6천5백억 투입 착수/일본 ▷외국의 경우◁ 미국·영국·일본 등 과학선진국들은 학생들의 과학교육을 전부 현장위주 또는 실험·실습위주로 실시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기초과학을 중시하여 기본원리교육에 치중하면서 학생 개개인의 창의력 개발과 흥미유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영국의 과학교육은 현장견학을 강화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 하나만 봐도 우리 교육현실과의 현격한 차이를 실감나게 한다.동물·식물·곤충·지질부등 6개 연구부와 4개 지원분야에 8백60명의 전문인력이 1천3백만 파운드의 예산으로 연구·전시·교육활동을 하고 있으며 6천6백만점의 표본을 보존·관리하고 있다. 영국은 이같은 박물관과 함께 초중고 교사가 실험실습을 위해 기자재와 비용 내역서를 작성,제출하면 국가가 이를 전액 지원하는 제도를 구비해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통해 살아있는 교육을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각급학교에 오버헤드 프로젝트(컴퓨터 영상화면조작기기)·슬라이드·영화필름등과 각종 실험실실습장비를 갖추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는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돼 있다. 여기에다 주별로 다양하게 개발된 프로그램을 수업시간에 실시하고 있다.특히 전국을 일률적으로 포괄하는 시간편제가 없고 각 지역별로 일선 학교가 형편에 맞게 교육을 실시하도록 다양한 모델을 준비해놓고 있다. 학생들의 과학적인 사고배양을 목표로 하는 일본은 실험실습을 반드시 병행해 과학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고등학생들에게 직접 실험실습계획을 작성,실험을 통한 결과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 문부성은 「이과진흥정비법」을 만들어 실습기자재를 확충해왔으며 앞으로 12년간 국민학교엔 4백64억엔,중학교에 4백70억엔의 국비와 지방비를 들여 실험실습기자재를 확충키로 했다. 우리나라의 경쟁국인 싱가포르의 경우 교사들에게 학교자료실을 개방,슬라이드·비디오등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과학교사 협의회는 고급중등학교에서 배우는 각종 과학교재를 개발,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90년 5월 연방과학기술위원회 산하에 교육·인력자원분과위원회를 설치,과학교육을 연방차원에서 조정하고 있는 미국은 92회계연도에 위원회 예산의 65%인 19억달러를 국립과학재단과 초중등 과학·수학교육에 배정해 집행했다. 이는 연간 학생 1인당 과학실습비가 교육부예산의 1%정도에 지나지않는 우리나라의 형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미국은 이와 함께 학생들을 위한 실습을 강화한 과학캠프등을 운영하고 과학교사의 과학적인 배경을 향상시키는 재교육을 실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초·중등교육과정 개편,고졸자에 대한 직업훈련제도 확충,생산현장에서의 기술활용 증대와 함께 초중등 학교와 대학간의 고속정보망을 마련,과학도서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정부간의 정책연계성을 확보,현장실습을 통한 초중고생의 과학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최근 일본이 컴퓨터 등 첨단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실을 중시해 각 대학마다 「연구실」을 설치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 어느 아버지의 가을앓이/김성옥 시인·서림화랑 대표(굄돌)

    딸 셋을 다 시집보낸 이 가을,L소장님은 웬지 쓸쓸하고 허전하다.어쩐지 잘 못 살아온 것 같고,이 세상에 혼자 있는 것처럼 외롭기만 하다.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인생의 가을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필자에게 사실은 출가한 딸의 전화 한통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시댁의 문제로 친정아버지께 의논하던 딸이 아버지의 말씀이 자신의 뜻에 맞지않는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만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는 것이다.L소장님은 갑자기 세상이 막막해졌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아니던가! 해달라던대로 힘이 닿는 한 다 해주었고,그 딸 또한 아빠를 여간 따랐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어떻게 아버지한테 전화를 끊어버릴 수 있는가? 내가 도대체 어떻게 교육시켰길래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가.L소장님은 살았던 인생을 이제 수확하고 마무리하는 단계에 들어선 지금 자식농사를 잘 못 했구나 하는 자책밖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학교에서는 수석만 하던 똑똑한 딸이었고,딸의 공부를 위해서는 온 집안식구가 정성을 다 기울였다는 것이다.TV는 물론 켤 수도 없었고 집에서는 큰 소리조차 낼 수도 없었다.딸아이의 신경을 건드릴까봐 늘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지냈다.그래! L소장님은 생각했다.이건 교육을 시킨 것이 아니라 아이를 버려놓은 게야! 사실은 마음의 양식이 되는 책을 많이 읽히고 싶었고,함께 미술관도 가고 싶었고,좋은 명곡를 들려주고 싶었고,사람이 왜 사는가도 함께 토론하고도 싶었고,이 세상에서 보람있는 일은 무엇인가도 같이 생각하고 싶었지만 대학입시제도가 딸의 「바른 삶」을 희생시켜 버린 게야.딸은 『아빠 미안해』하고 다시 전화를 걸어왔지만 L소장님은 생각이 많으시다.획일적이고 삭막한 주입식의 「비교육적인 교육」이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 꿈을 키울수 있는 교육,자연과 접하고 사고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풍요롭고 보람있는 삶을 위한 「살아있는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고. 분명 감성적인 L소장님의 가을앓이 때문으로 여겨지지만 우리의 교육제도는 보통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 강화도 외규장각/1781년 축조… 조선조 왕들의 친필 등 보관

    외규장각은 1781년 세워졌다. 역대 왕들의 친필·서화·고명등을 관리하는 규장각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강화도에 별고를 지어 보관물의 일부를 옮겼다.강도외각이라고도 한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에는 1천42종,6천1백30책이 보관돼 있었으나 프랑스군이 3백40책은 약탈해 가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워 사라졌다. 현재 프랑스측에서 보관중인 문화재중에는 세자책봉,왕세자의 혼례·제례등 왕실의 의례를 기록한「왕실의궤」를 비롯,당시 조선의 산업현황과 물가,각 지방의 특산물,정치적 변란사실등을 기록한 전적들이 포함돼 있어 19세기 조선의 왕실살림과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더욱이 이들 전적은 국내에는 없는 유일본이거나 희귀본이 대부분이어서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반환받게 되면 학계의 연구에 큰 진전을 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서궐영건도청의궤」는 경희궁의 개축·보수공사에 대한 기록과 그림등을 담고 있어 경희궁 복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어제어필영릉비첩」은정조가 친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이복형이자 자신의 양아버지인 진종(실제 왕위에 오르지는 않고 왕의 아버지로서 추존된 경우)의 왕릉에 직접 짓고,직접 쓴 비문이다.
  • 대화형 CD/국내개발 완료… 이달중 시판

    ◎“음악·화면 골라 즐기고 자료검색도 간단”/가전업계,「ABC나라」등 상품 출시 앞다퉈 국내에서도 가정용 첨단 멀티미디어인 CD­I(대화형 콤팩트디스크)시대가 열리고 있다. CD­I는 텔레비전이나 VCR처럼 미디어가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비자가 리모컨 등을 이용,디스크에 입력된 화면과 음악,도형,문자 등의 자료를 검색·조회하고,보고싶은 장면들을 마음대로 선택해 즐길 수 있는 미디어이다. 최근 국내에서 개발·판매되고 있는 어린이 영어교육용 프로그램 「신나는 ABC나라」의 경우 TV에 CD­I를 연결하면 음악과 함께 시장·동물원·학교·집 등의 모습이 담긴 첫 화면이 나온다.동물원을 보고싶으면 리모컨을 조작해 화살표를 동물원 그림에 맞추고 동물을 하나하나 검색하면 된다.이때 동물의 한글·영어이름과 발음이 나와 학습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CD­I는 12㎝ 크기의 디스켓으로 기존 VCR장치에 꽂아 볼 수 있기 때문에 2만5천∼4만5천원짜리 소프트웨어(타이틀)만 구입하면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CD­I타이틀은 명화,음악,그림책,게임,관광안내,기업카탈로그,도감,박물관소개 등 오락·교육분야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작성하는데 쓰인다.뿐만아니라 컴퓨터그래픽이나 CD­ROM(전자책)등 기존의 멀티미디어를 완벽하게 재생할 수 있는 장점도 지녔다. 또 모든 데이터를 디지탈방식으로 수록할수있어 저장용량이 기존 아날로그방식보다 훨씬 많고 화면과 음이 생생하다. CD­I는 네덜란드 필립스사가 지난 91년10월 세계최초로 미국에서 상품화,세계시장을 휩쓸어왔고 일본 소니사가 개발을 완료,세계시장을 공략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4월 금성사가 하드웨어인 CD­I플레이어를 개발했고 선경 SKC에서 이달중에 소프트웨어인 CD­I타이틀 2편을 판매한다.또 삼성전자와 대우전자도 이미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술심사를 마치고 곧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특히 국산 소프트웨어를 처음 개발한 선경은 올 연말까지 교육용제품 9종을 선보일 예정이어서 국내 시장경쟁도 점차 치열해질 전망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제 보급이 시작된 CD­I플레이어와 타이틀은 오는 96년쯤 시장규모가 5백억원대로 커질 것』이라면서『현재 기능에 녹음기능까지 추가되면 20 00년대에는 VCR와 CD,컴퓨터그래픽 등을 완전히 대체하는 첨단 미디어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과열·혼탁 보선 정치불신만 키웠다

    ◎입으로만 공명… 금품살포·폭력 등 여전/당락따른 소송 등 「타락 상처」 오래갈듯 대구동을및 춘천의 보궐선거는 정치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채 끝났다. 춘천에서는 민자당의 유종수후보가 이겼지만 대구동을에서는 무소속의 서훈후보가 당선됐다. 그러나 선거결과가 어떻든간에 이번 보선은 여야가 공히 개혁을 외면하고 불법·타락한 선거를 치렀다는 점에서 모두 패배했다고 볼수있다. 당초 이번 보선은 개혁정책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대구동을의 경우 박준규전국회의장이 개혁의 사정한파로 인해 중도하차했다는 점에서 여야는 「개혁의 당위성」과 「선별적 사정」을 정치쟁점화시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춘천의 경우도 지난 6·11 명주·양양보선에서 민자당이 패배한 뒤끝이라 강원도지역의 유권자 향배가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주제를 놓고 격돌한 이번 보선에서 여야는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실패했다. 오히려 과거의 구태를 되풀이하는 과열선거를 치름으로서 퇴보한 정치의 현주소를 드러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이번 보선에서 여야가 인적·물적 공세를 펼쳤음에도 대구동을의 경우 무소속후보가 당선된 것은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이를 과열·타락에까지 이르게한 정당들에 대한 반발 때문으로도 이해된다. 이번 보선과정에서 선관위에 적발된 선거법위반 사례는 모두 21건으로 지난 4·23보선의 10건,6·11보선의 12건에 비해 크게 늘어난 타락상을 드러냈다. 불법·과열선거의 행태도 금품살포,납치폭행,청중동원,흑색선전,지역감정 자극등 온갖 구태가 모두 동원되었고 정당간의 고소·고발도 잇따랐다. 이번 보선은 시작부터 이러한 타락상이 예고됐다는 지적도 있다. 선거일자 문제로 민주당이 혹서선거라며 선거보이콧 움직임을 보였고 이어 중앙당의 선거개입을 자제하자는 정당간의 합의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민자당도 중앙당 개입을 자제하겠다고 누차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당직자의 대거 지원활동은 물론 40여명이 넘는 현역의원들이 지역에 상주하며 선거과열을 부추겼다. 그럼에도 선거결과를 두고 민주당은 「민자당이 금권선거를 자행했다」고 비난하고 있고 민자당은 「민주당이 과열을 부추겼다」며 차제에 선거법을 개정하자는등 책임을 서로 미루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보선은 여야가 주장하는 개혁의 실체에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2백99명의 의석중 불과 2개의 의석을 놓고 격돌한 이번 선거결과가 진정한 개혁에 대한 심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여야가 선거과정에서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지역감정을 앞장서 부추긴 득표과정을 볼때 지역유권자들이 개혁에 대한 투표를 했다고 보기 힘들다. 이번 보선은 개혁을 추진하는 정권에게는 소모적 폐해를,정당에게는 패배감을,국민들에게는 정치불신을,지역 유권자에게는 갈등만 남겨 놓는등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선거결과에 따른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이며 정당내부의 자책론도 대두될것으로 예상된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번 보선에 앞서 『정치개혁은 바로 선거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굳이 통치권자의 개혁의지가 아니더라도 공명선거라는정치개혁을 외면한 정당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것이 이번선거를 지켜본 대다수 국민들의 여론일것으로 짐작된다.
  • 다섯분 선열 편히 쉬소서(사설)

    환국하신 다섯분 순국선열들이시여. 오늘 우리는 생전의 님들이 일구월심 꿈에도 그리던 고국땅에 님들을 안장합니다.하늘도 울고 땅도 웁니다.구슬피 울려 한강의 흐름따라 굽이쳐 흘러내리는 저 진혼나팔의 호곡소리를 들으십니까.우리들도 비로소 국민된 도리를 뒤늦게나마 한것같은 자창속에서 자책로운 참회의 고개를 숙입니다.그러면서 새삼스럽게 중원땅 누비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바치신 님들의 행적을 기려봅니다. 님들은 평안한 명목이 못된 영면70년에 이제야 평안히 눈을 감을 안식처를 얻으신 것입니다.이제껏 잠들어 계시던곳은 님들이 영원히 누워계실곳은 아니었습니다.그 짧지않은 세월동안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을 고국땅에 이제 누우시게 되었습니다.조국의 땅을 베개삼으시고 조국의 땅을 이불삼으시어 춘풍추우70년의 객지잠을 청산하시게 되었습니다. 다섯분께서 걸어오신 생애는 일일이 매거할수 없을 정도로 애국·우국으로 일관된 형극의 길이었습니다.나라잃은 분통함을 안고 나라를 되찾으려는 일념으로 분골쇄신하며 동분서주하신 평생이었습니다.조국과 겨레에게 영광을 안기고자 일신을 홍모와 같이 여기신 고귀하고 숭엄한 삶이었습니다.민주사위에 영원히 빛날 족적을 남기신 님들을 안장하는 오늘 우리들은 다시한번 님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기려봅니다. 님들은 이국땅에서 환국하시면서 온국토에 애국혼을 흩뿌려 놓으셨습니다.영현봉안실에 안치되어 계시는 동안 줄을 이은 참배행렬은 님들이 일깨워주신 겨레의 마음이었습니다.님들은 말없이 돌아오셔서도 그렇게 나라와 겨레위하는 마음을 점검해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신 것입니다.나라가 무엇이고 겨레가 무엇이며 이나라의 겨레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어떻게 역사의 키를 잡아나가야 할 것인가 함을 가르쳐주신 환국이었습니다.특히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핏줄의 대화로써 이어준 교훈은 컸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서고 있는 일본을 보고 있습니다.그들이 우리와의 과거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오는가를 보면서 선열들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오늘의 시대장황을 헤쳐나가고자 다짐하는 터입니다.님들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나라로 가꾸어나갈 결의를 새로이합니다.그러는 한편으로 환국하지 못한 순국열사들의 유해와 혼백을 모셔들이기 위해 노력할 것도 아울러 다짐합니다. 다섯분 순국선열들이시여. 이제는 평안히 눈을 감으시옵소서.그럴수 있는 임정의 법통을 이은 땅입니다.그후손들이 이렇게 두손모아 사죄드리면서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평안히 잠드시옵소서.부디 평안히 쉬시옵소서.
  • “「종전아닌 휴전」 잊지 말아야”/「정전협정」증인 유재흥 전 국방

    ◎북 핵대응 소홀해선 안돼 6·25의 산증인으로서 휴전협정체결 주역가운데 한사람이었던 유재흥옹(72·성우회회장·전 국방부장관)은 휴전 40주년을 맞아 『살아생전에 남북한이 통일을 이룩할 것으로 확신한다』면서도 『40년이 지나도록 통일의 그 날을 앞당기지 못한 책임의 일부를 느낀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해방후 반세기 가까이 남북한 대치상태가 끝나지 않은 것은 물론 북한의 핵개발문제로 남북한의 관계가 더욱 골이 깊어가는 것같아 전쟁당시 피흘린 영령들앞에 부끄러울 뿐입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52년1월부터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군사휴전회담 유엔측대표로 참석했던 유옹은 협정체결 40주년을 하루 앞둔 26일 이같이 자책했다. 유옹은 53년7월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될 당시에는 육군소장으로 회담장인 판문점에 있지는 않았으나 52년부터 열린 휴전회담에 막바지까지 계속 참석,휴전협정을 체결하는데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실무회담에 함께 참석했던 인사로는 미국극동사령관 다나조이제독을 수석대표로 공군의 다나장군,육군의 해리슨소장,해군의 리비소장등 유엔측대표 5명과 북한측은 수석대표 남일과 중공군등 5명. 『북한의 남침이후 유엔군의 지원으로 압록강·두만강까지 북진했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는 공방전 속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전쟁을 끝내려면 만주의 군보급기지를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됐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3차대전의 유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높아 결국 휴전이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절충안이 모아졌다』고 유옹은 휴전의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이승만대통령과 학생들은 휴전에 들어갈 경우 남북통일의 절호의 기회를 놓칠 뿐만 아니라 재남침의 우려가 크다며 휴전을 극구 반대했으나 유엔군측의 대세에 밀렸다. 그는 또 53년6월28일 이대통령이 2만6천여명의 반공포로를 독자적으로 석방,유엔군측과 마찰을 빚고 7월13일부터는 중공군의 막바지 공세가 치열해 협정체결이 더욱 늦어졌다고 말했다. 유옹은 『협정체결 이후 남한은 국가재건에 총력을 기울인 반면 북한은 현재까지도 군사력강화에 힘을 쏟고있어 아직도 종전아닌휴전상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최근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대해 『상대당사자인 우리가 너무 등한시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유옹은 『전후세대들이 당시의 참상과 휴전상태에 머물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북한과의 경쟁에서 이겨 평화통일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열쇠는 젊은이들이 갖고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학자와 학생등이 당시의 전쟁발발상황을 교묘히 해석,남침이냐 북침이냐의 논란을 불러일으킬때면 전쟁에 직접 나서 보고 겪은 사람으로서 놀라움과 함께 분노까지 치솟는다』면서 『6·25는 확실한 남침』이라고 못박았다. 유옹은 『북한의 체제는 김일성사후 3∼5년뒤쯤 자연붕괴할 것』이라면서 『통일에 대비해 마음가짐을 더욱 새로이 다져야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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