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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술대’에 오른 재벌 빅딜/구조조정 지연으로 정부개입 자초

    ◎“자율 추진 기회 상실” 자책/자기몫 챙기기 급급 지적도 지지부진한 ‘자율’이 끝내 ‘타율’을 불렀다. 정부가 지난 12일 반도체와 발전설비를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하고 채권금융기관을 통한 구조조정에 본격 착수키로 함에 따라 구조조정의 방향타는 이제 재벌에서 정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재계는 보다 개혁적인 구조조정을 촉구하는 청와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의 ‘십자포화’ 속에 놓이게 됐다. 재계는 “끝내 올 것이 오고 말았다”고 당혹스러워하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특히 지금까지 수차례 계속된 정부의 ‘엄포’와 달리 이번에는 단순히 말로만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기는 분위기다.반도체와 발전설비가 모두 걸려 있는 현대그룹의 관계자는 “현재 정부의 분위기를 볼 때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지난 1월 처음 ‘빅딜’을 언급한 이후 여러차례에 걸쳐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가며 신속한 구조조정을 재계에 요구해 왔다.빅딜이 지지부진하자지난 8월5일 10개 과잉중복투자 업종을 손수 재계에 들이대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수시로 은행권을 통한 여신압박을 시사해 왔다. 하지만 연기에 연기를 거듭한 끝에 지난 7일 발표된 재계의 자율합의는 알맹이없는 미봉책으로 끝나고 말았다. 때문에 재계 안에서 조차 일부 업체의 무리한 자기몫 챙기기가 재계 최초의 자율구조조정 기회를 날려버렸다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우그룹 고위 관계자는 “사상 최초의 재계 자율합의에 의한 구조조정의 기회를 놓침으로써 정부에 ‘재계는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 놓았다”면서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재계 자율에 맡겼더니 결국 이렇게 되더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합의에 전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나 채권은행단이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지금이라도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재계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 금강산 관광 왜 늦어지나

    ◎현대의 속앓이/반대주장 논쟁비화에 당혹/비용·신변안전·구호체계 등 타협안돼 현대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금강산관광사업이 자꾸 지연되는 탓이다. 지난달 25일 첫 유람선을 띄우기로 한 대(對)국민 약속이 무산된 뒤 다시 10월 중순 출항 예정이라고 발표했으나 이마저 불투명한 상태다. 현대는 외형적으로 지연 사유가 북한 관계 기관간의 이견 때문이라고 애써 자위한다. 그러나 그룹 안팎 분위기가 점점 나빠지면서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현대의 속앓이는 크게 세 가지다. 금강산관광에 반대하는 여론이 날로 높아지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금강산관광 계획 발표 당시의 환호와 기대감이 100일 만에 보수·진보세력간의 논쟁으로 비화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사회단체들이 새삼 당위성을 놓고 벌이는 세(勢) 싸움을 지켜보며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통일의 역사적 행보’라는 거창한 구호대신 ‘사업적 차원’을 강조한다. 현대가 북한의 ‘페이스’에 말린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않다. 구체적인 협상이나 북한의 진의를 확인하지 않은 채 덜컥 9월25일 금강산관광에 나선다고 발표한 게 결국 북한에 발목을 잡혔다는 지적이다. 북한 입국료가 정말 300달러인지조차 확실치 않으며 장전항 공사에 따른 비용문제,관광객 신변안전,구호체계 등에 대한 타협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룹 내부의 틈새도 부담스럽다. 관광사업 실무준비가 소홀했다는 자책이다. 유람선을 2척 들여왔지만 아직 운항면허조차 신청하지 않았다. ◎북한측 속사정/北 군부,軍시설 노출 거부감/인적교류확대 체제동요 촉발 우려도 현대측의 금강산 유람선관광사업이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다. 군부 입김 등 북한 내부의 이견이라는 암초를 만난 것이다. 지난달 25일 첫 출항 계획은 이미 물건너갔다. 현재로선 10월 중순에 첫 배를 띄우려는 목표의 성사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이처럼 사업이 순항하지 못하고 있는 주원인이 북한의 ‘속사정’ 때문임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당국자들도 “북한 태도가 석연치 않다”(통일부 黃河守 교류협력국장)며 이를부인하지 않고 있다. 한 정보소식통은 “북한 군부 입장에선 금강산은 천혜의 요새”라고 귀띔했다. 북한 군부가 장전항의 해군기지를 비롯해 각종 군사시설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관측도 곁들였다. 물론 북한 군부도 한때 적극성을 보인 적도 있었다. 군 인력을 동원,장전항 도로공사를 벌인 사실이 그 증거다. 그러나 예견됐던 군사시설 이전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북한 군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는 분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보면 우리측 내부 보수세력들의 반대론 등은 부차적 문제일 뿐이다. 한 당국자는 30일 사업성사 의지를 재확인했다. “금강산사업은 비즈니스이기 전에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한 대북 포용정책의 일환”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 내 강경세력의 반발이 군시설 노출에 대한 거부감 이상이라는 데 있다. 그 밑바닥엔 인적교류 확대가 체제 동요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는 얘기다.
  • 을사조약 國恥(秘錄 南柯夢:23)

    ◎열사 잇단 자결 애태운 고종 “살아서 나를 돕는 것이 충성”/“乙巳年 망국” 예언 적중/日 남산에 대포설치 위협/고종,끝내 조약날인 거부/맨 먼저 민영환 ‘자결순국’ 조병세·송병선 등 뒤따라/의병들 방방곡곡서 궐기 그들이 있었기에 광복이… 1905년 1월17일 덕수궁에서 ‘을사오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었다. 일본군이 남산에 대포를 설치해놓고 위협하는 가운데 체결된 이 조약에 고종은 끝내 국새찍기를 거절했다. 따라서 이 조약은 지금도 원천적으로 무효인 셈이다. 을사오조약이 체결되었다. 일찍이 나는 광무 6년 임인년(任寅年 1902)에 말씀 올리기를 광무 9년 을사년(乙巳年 1905) 11월 갑자일이 주역(周易)으로 따져 건괘(乾卦)의 초구(初九) 효(爻)가 발동하는 날이라 반드시 한시대가 끝난다고 예언했는데 염려했던대로 망국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정의 수구파 원로대신들은 모두 두문사객(杜門謝客)하였고 시정의 상민(商民)도 또한 철시해 가게문을 닫았다. 을사오조약을 강요한 원흉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다. 이 자는 스스로 한국의통감(統監)이 돼 고종을 농간했는데 뻔뻔하고 교활한 언행은 지금도 한국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때 이토가 돈덕전(敦德殿)에 와서 상감께 아뢰기를 “동양 3국이 연합해 동맹국가가 되어야 서양의 돌연한 기습을 막을 수 있습니다”라고 구구하게 설명했으며 또한 말하기를 “한일 두 나라가 더욱 사이좋게 지내 소의 두뿔이 적을 막듯 형세를 이루어야 합니다. 시기하시거나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고 하였다. 이토는 또 고종황제에게 “일본은 이미 영국과 동맹을 맺어 서로 가까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서양의 다른 나라들이 일본을 얕잡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차제에 폐하께서는 한번 일본을 유람하시기 바랍니다. 관광할 것이 많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상감께서는 “나 또한 그런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하면 가히 선진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명이 아름답고 화려하다고 듣고 있어 한번 가보기를 소원한지 오랬습니다. 그러나 귀국의 명치황제가 유신한지 40년이 됐으나 아직 한번도 서양을 유람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토는 “옳은 말씀입니다” 하면서 대한제국 각료들에게 “광무황제는 총명하시고 영특하신데 좌우에서 보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총명을 가리고 있습니다. 손바닥도 한 쪽만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지금도 일본의 정치지도자,특히 이토의 후예들인 자민당그룹은 공공연히 아시아의 공생 운운하며 허튼 소리를 하고 있는데 모름지기 우리는 여기에 속아서는 않될 것이다. 고종황제가 속지 않고 일본관광을 거절한 것을 보면 그리 호락호락 이토에게 속을 사람이 아니었던 것을 알 수있다. 동양삼국 평화 운운한 이토는 바로 그가 죽음을 당한 뒤 우리 안중근의사에게 진정한 의미의 동양삼국 평화론이 무엇인지 저승에서 듣게 된다. 아무튼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수많은 우국충신들이 목숨을 끓었다. 맨 먼저 민충정공이 순국하였는데 그의 선혈이 대나무로 되살아났다. 전 의정대신 민영환(閔泳煥)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을 보고 자기 목숨을 끊었으니 5백년 조국의 종사가 왜놈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단도로 자신의 몸을 찔러 죽었는데 피가 마루틈으로 흘러 들어가 한 그루의 대나무가 솟아 올랐다. 일본인과 서양인들이 문상차 들러보고 살펴보아도 과연 자생한 대나무이지 사람이 조작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마다 차탄(嗟歎)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또 민영환의 처는 재취한 분인데 나이 30이 못된 여인이었고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도 남편을 따라 자결했다. 이때 또한 조병세(趙秉世)가 독약을 먹고 죽었으며 송병선도 따랐다. 병정 하사(下士) 김봉학(金鳳學),용인의 전참판 모씨도 따라 죽었다. 용인의 전 참판 모씨란 홍영식의 형인 홍만식(洪萬植)이었다. 동생 홍영식이 갑신정변의 주모자로 나라에 큰 죄를 지은 것을 자책하여 늘 미사신(未死臣)이라 자처하던 홍만식이 끝내 자결한 것이다. 송병선에 대해서는 정환덕이 직접 입대를 주선한 일이 있어 자초지종을 따로 소상하게 쓰고 있다. 송산장(宋山丈:山林=송병선)이 경기도 가평에서 상경하였는데 그의 문인 정석채(鄭奭采)가 내게 와서 말하기를 “송산장이 상경해 황제를 알현하고 싶어 하시는데 어떤 절차로 입대(入對)할 수 있을까요?” 하고 상의하였다. 그래서 즉시 입궐하여 상감께 말씀드렸더니 상감께서는 “이같이 창황한 때 절차를 따질 여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사례(私禮)로 들어와보는 것도 가하다”고 하시었다. 이에 송병선이 입궐하여 상감을 뵈었으나 퇴궐한 뒤 가만히 생각하니 나라의 형세가 기울어지고 있는 이 때에 차라리 한번 죽어서 나라에 보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문인 제자들을 불러 뒷일을 부탁한 뒤 자결하였다. 선생의 뜻은 바다같이 넓고 산과 같이 높다 하겠다. 상감 부자께서 이 비보를 들으시고 가슴 아파하며 감탄하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심상훈의 경우는 좀 달랐다. 자결 직전 고종의 부르심을 받고 마음을 고쳐 먹었기 때문이다. 이때 전판서 심상훈(沈相熏)도 역시 칼을 빼 목을 찌르려고 했는데 갑자기 상감의 부르심을 받게 돼 입궐했다.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어서 국가에 보답하는 것이 살아서 국가에 보답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셔서 죽기를 중단하였다. 그러나 심상훈은 이듬해 을사오적 암살사건에 연루돼 경무청에 구금됐다. 살아서 애국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고 충신들이 목숨을 끊으니 고종으로서는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었다. 고종은 정환덕에게 그 심정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내가 함녕전뒤 섬돌복도인 북쪽 반침(半寢) 위에 시립(侍立)하고 있었는데 상감께서는 근심을 잊으시기 위하여 자수(自手)로 난로의 재를 닦아내고 계셨다. 그러다 나를 돌아보시고 말씀하기를 “네가 늘 을사년 11월 갑자일이 어떠하다 하더니 말대로 되었구나. 운명은 모면하기 어려운 것인가. 민영환이 절의로 죽은 뒤에 원로대신들까지 차례로 따라 죽으니 마음이 괴롭구나”라고 하시었다. 이에 엎드려 아뢰기를 “이런 때를 당해 한 사람도 절사(節死)하는 사람이 없다면 도리어 상감께서 수치스러운 일이신데 어찌하여 괴롭다고 하십니까”라고 위로말씀을 드렸다.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이야 그렇다하겠으나 나의 심신이 편안하지 않고 심정을 정돈하기가 어렵구나. 속담에도 ‘충신은 나라가 망할 때 많이 나오고 공신은 나라가 흥할 때 많이 나온다’(忠臣多出其國亡 功臣多出其國興)고 했는데,어찌하여 충신만 많이 나오는가. 이것도 운명인가” 하시었다. 엎드려 말씀드리기를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충신이 되기는 쉬우나 공신이 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저로 말하면 살아도 국가에 유익하지 않고 죽어서도 공로가 없을 것이니 차라리 죽어 한번이라도 보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고 하였다. 을사조약은 사실상의 망국이었다. 그래서 많은 순국열사가 목숨을 끊었다. 고종이 이들 충신에게 감사하였으나 그보다 더 감사해야 할 신하는 의병들이었다. 무기를 들고 일제에 항거했던 의병이야말로 바로 공신(功臣)이었고 이들이 있었기에 8·15광복과 건국이 있었던 것이다.
  • 범죄자 된 노숙 탈북자의 눈물/趙炫奭 기자·사회팀(현장)

    “그동안의 남한 생활은 기억조차 하기 싫습니다” 13일 상오 서울 남대문경찰서 형사계. 지난 96년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 金正勇씨(28·경기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가 초췌한 모습으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서울역 앞에서 노숙 생활을 하던 金씨는 崔모씨(20·공무원)를 흉기로 찌른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날 새벽 육교에서 잠을 자다가 “날씨가 추우니 지하도에 가서 자라”고 권유하던 崔씨를 깡패로 오인해 순간적으로 저지른 범죄였다. 감시와 눈총속에서 살아왔지만 죄를 지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고개를 떨군 채 조사를 받는 金씨는 노숙자에서 범죄자로 전락한 것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겨우 얻은 자유를 스스로의 잘못으로 놓친 데 대한 자책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면서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는 힘들었던 지난 2년간의 남한 생활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金씨는 북한의 요양소 노동자였다. 자유가 그리워 탈출하기로 마음먹고 두차례의 탈출 시도 끝에 96년 1월 가까스로 자유의 땅을 밟았다. 1,700만원의 정착금과 철도청 정비직을 얻을 때만 해도 장밋빛 꿈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의 따돌림과 곱지않은 시선이 그를 괴롭혔다.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었고 외로움만 밀려왔다. 결국 무작정 직장을 뛰쳐나와 막노동판을 전전하기에 이르렀다. 신용카드빚은 늘어갔고 정착금조차도 술과 경마에 탕진했다. 마지막으로 탈북자 金모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오래 견디지 못했다. 지난달 그는 노숙자라는 최후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날 구속영장이 신청된 金씨는 “잘 살고 있는 탈북자들도 많은데 내가 못난 탓”이라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 韓勝憲 감사원장,서울신문 특별회견

    ◎“소외층 ‘복지그늘’ 없게 집중 감사”/경제난 극복 지원·부정 사전예방 온힘/일부 공직사회 개혁대상… 정화 불가피 韓勝憲 감사원장은 2일 하오 서울신문 安秉峻 정치부장과 특별회견을 가졌다. 韓원장은 회견을 통해 올해말까지의 감사 방향을 설명하는 한편,퇴임후의 거취 등 본인의 신상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밝혔다. ­우선 감사원 개원 50주년을 축하합니다. ▲반세기 동안 감사원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반성도 하게 됩니다. 기왕의 업적을 발전시켜 보다 나은 감사원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새로 구성한 부정방지대책위원회에 개혁적인 인사를 대거 인선했습니다. 특별한 임무를 부여할 생각입니까. ▲개혁지향적인 목소리를 수렴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2,제3의 감사원이 감사원 속에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연말까지 감사의 중점을 어디에 두실 생각입니까. ▲경제난 극복을 지원하는 감사에 주력할 것입니다. 또 사후적발 보다는 사전예방 차원의 감사가 될 것입니다. ­감사가 경제난 극복을 지원할 수 있습니까.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하면 민간 경제활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 공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면 민간기업에도 영향이 미칩니다. 큰 공기업에 매달린 협력업체만 해도 수없이 많습니다. ○공직기강 검찰은 경고성 ­공직기강 감찰은 더 없습니까. ▲모든 감사가 공직기강과 관계된 것이겠죠. 공직기강이란 이름을 내걸고 하는 감사는 경고성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직자를 개혁의 주체라고 보십니까,대상이라고 보십니까. ▲그런 식으로 일도양단할 수는 없겠죠. 공직사회는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큰 조직입니다. 다만 아직 일부는 개혁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국민의 수임자라는 입장을 망각하고 소홀히 하는 공직자도 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도록 정화시키고 정리해야 합니다. ­국방부의 방위력 개선 사업에 대한 감사결과가 마무리 단계인데 군수비리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납니까. ▲방위력 개선사업은 국방예산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군사기밀이어서 비밀로 차단돼 왔지만 제한적으로라도 투명성이 제고되어야 합니다. 군 당국의 개선노력도 보입니다만 감사원의 눈으로 볼 때 시정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비리가 적발된 군 고위 관계자가 있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효율성과 경제성,투명성에 초점을 뒀지 개인비리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닙니다. ○포철 표적감사설에 개탄 ­포철 등 민영화 대상인 공기업을 감사하는 이유는 뭡니까. ▲오히려 민영화가 예정된 공기업일수록 감사가 필요합니다. 민영화를 앞두고 직원들이 ‘민영화되면 나는 어찌될 지 모르니 대충 지내자’고 해이해질 수 있습니다. 경영상태를 건전하게 만들어서 민영화해야 제 값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민영화라는 것이 길거리에서 과일 파는 것과 달라 1년이 걸릴 수도 있고 2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포철내에서는 표적 감사가 아닌가라는 의혹도 나옵니다. ▲포철은 지난 95년이후 한번도 감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3년 동안이나 감사를 하지 않고 넘어간데 대해 질책을 해야지요. 특정인과 연결시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소외계층 지원실태를 감사하겠다고 밝혔는데,특별한 연유가 있습니까. ▲그동안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정책을 소홀히 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늘이 있다면 감사력을 집중해 어려움을 알아내고 개선책을 찾아야죠. ­지난 여름 휴가 때 소록도를 방문했다는데,관련이 있습니까. ▲그동안 한번도 찾아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수행원 없이 혼자 가본 겁니다. 소록도를 둘러보기는 했지만 그 곳 주민들의 삶을 깊이 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정부 업무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전문화되어 갑니다. 현재 감사원의 전문성을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십니까. ▲감사원은 정부보다 한발짝 앞설만큼 전문성을 높여야 합니다. 감사요원 650명 가운데 석사이상 학위 소지자가 160명에 달합니다. 또 변호사,공인회계사,세무사,감정평가사,기술사 등 다양한 분야의 자격소지자도 129명이나 됩니다. 특별히 전문성이 강조되는 분야에는 외부 전문가를 계약직으로 채용하거나 자문을 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문성의 결여로 판단을 그르친 적은 없다고 자부합니다. ­외환위기 특감의 결과에 대해서도 만족하십니까. ▲감사,수사,재판에서 만족이라는 말을 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감사였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정치적 의도도 없었습니다. ­감사원의 정보화,전산화 수준은 어느 정도로 평가합니까. ▲국가회계업무 전산화 시스템을 개발해뒀습니다. 3,600개 감사대상기관으로부터 계산서와 지출내역을 매달 전산디스켓으로 제출받아 한국은행 지출자료와 대조하고 있습니다. 또 국가감사활동정보시스템(NAIS)을 구축해 특정기관에 대한 감사의 중복,편중을 시정하고 있습니다. 99년9월을 목표로 감사종합정보화사업도 추진중입니다. ○외부전문가 계약직 채용 ­韓원장 본인의 컴퓨터 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아직 서툽니다. DOS 시절부터 배우기는 했는데…. 지난번 외국인투자 저해 요인을 감사하는 과정에서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몇년전 통계를 게재하는 등 자료관리를 소홀히 한 점을 발견하기는 했죠. ­공직자나 국민들과의 직접 대화를 위해 E­mail 주소를 공개할 용의는 없습니까. ▲글쎄…,gsw190@nownuri.net로 보내면 됩니다. ­공직자의 예금계좌 추적권과 재산등록 심사권을 갖기 위한 감사원법 개정은 어느 정도 진척이 있습니까.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는 순리적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정기국회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요. ­이번 정기국회에서 감사원법 개정을 목표로 하십니까. ▲그런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원장의 정년문제도 걸려 있는데요. ▲대법관,헌법재판관보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5년 더 깁니다. 감사원의 경우도 같이 봐야겠죠. 감사위원의 정년은 65세를 유지하되 장(長)은 경험이 풍부한 분을 앉히기 위해 정년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韓원장께서는 정년이 연장되어도 65세가 되는 내년에 그만 두시겠다고 밝혔는데,임명권자가 계속 감사원을 맡도록 요청하면 어떡할 것인지요. ▲가상적인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도 할 일이 좀 남아서 나가야겠습니다. ­할 일이란 무엇입니까. ▲저술을 좀 하려 합니다. 지난 30년간의 법조인 경력을 통해 얻은 경험을 정리하려 합니다.‘정치재판실록’이나 ‘정치재판사’가 되겠죠. 자료를 중심으로 객관적으로 엮어서 당대나 후학들이 공부하는 데 필요가 됐으면 합니다. 그것이 저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퇴임후 정치재판사 저술 ­유머가 풍부하신데 웃음에 대한 책을 낼 생각은 없으십니까. ▲저는 가난하게 자라서 유모(乳母)가 없는데도 자꾸 유모(유머)가 있다고 하는군요. 제가 살아온 시대가 평탄치 못했습니다. 우스개라도 즐기면서 각박한 시대를 이겨나가야 했습니다. 주스 한 잔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하듯이 말입니다. 경망스럽지 않은 범위 내에서 웃음을 즐기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엄숙일변도의 삶은 여백이 없는 그림이나 쉼표가 없는 음악과 같습니다. ­감사 활동의 몇 %나 공개하고 있습니까.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사건은 모두 발표하고 있습니다. 양이 많아 일일이 공개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감출 의도는 없습니다. 또 국가 기밀 등으로 발표할 수 없는 사안도 있게 마련입니다. ­金大中 대통령과 韓원장의 각별한 관계 때문에 감사원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金대통령과의 관계는 과대포장된 감이 있습니다. 당신께서 쓰셨으니까 힘을 실어주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절친한 사이니까 독립성을 해친다는 것은 틀린 얘깁니다. 친해서 곤란하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쓰겠습니까. 아니면 야당인사를 쓰겠습니까. ­서울신문의 행정뉴스면을 어떻게 보십니까. ▲획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 뿐만 아니라 행정에 의해서 이익을 보는 국민에게도 서비스가 되는 것 아닌가요. 사실 우리 언론이 사건위주로 보도하는 듯한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행정분야의 뉴스를 통해 국민들이 규범에 익숙해지고,제도와 시책도 숙지하는 것이 복지주의 사회의 요구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공직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입니다. 자신에 대해 부끄럽지 않게 직무를 수행하기 바랍니다. 감독과 적발이 두려워서가 아니라,공직자로서 자책감을 느끼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책무를 다하시기 바랍니다. ◎韓 감사원장 회견 소감/치밀한 준비·적확한 표현서 참법조인 모습이… 韓勝憲 감사원장은 스스로의 말과 글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韓원장은 서울신문과의 단독회견을 통해 내년 정년퇴임 이후의 거취를 처음으로 밝혔다. 감사원법이 개정돼 65세인 정년이 연장되더라도 “이미 퇴임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韓원장은 정치재판사의 기록을 자신에게 부여된 숙제라고 말했다. 공직자보다는 법조인을 천직으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 감사원에 대한 장악력과 운영 방향에 대해서도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회견에 대비해 각 실·국에서 준비해온 두툼한 자료가 놓여 있었지만 韓원장은 좀처럼 활용하지 않았다. 감사원의 전산화 계획과 관련한 수치를 인용하는 정도였다. 韓원장은 감사원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나 의혹에 대해서도 일일이 반론을 제기했다. 의례적인 차원의 ‘겸허한 수용’같은 것은 따라붙지 않았다. 韓원장은 2일 하오 2시30분부터 4시까지 진행된회견시간 내내 보다 적확하면서도 쉬운 용어와 표현을 사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따금씩 곁들여진 韓원장 특유의 유머는 감사라는 주제 때문에 딱딱해질 수 있는 회견을 한결 부드럽게 만들어줬다. 감사원측은 인터뷰 기사에 韓원장이 사용한 용어와 표현이 그대로 반영되기를 희망했다.
  • 외로움에 시달리는 귀순자(탈북 그 이후:3)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어요/초등학생 자녀 따돌림 심해 기죽어/냉대·소외감 못견뎌 술로 허송세월/“결혼은 귀순보다 큰 모험” 하소연도 96년 중풍에 걸린 남편 金慶鎬씨(63)와 만삭인 막내딸 명순씨(28)등 일가족 16명을 이끌고 북한을 탈출,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崔현실씨(59·여). 일요일인 지난 9일 서울의 한 교회에 간증차 나온 崔씨에게서는 ‘북한 출신’의 티가 거의 나지 않았다. 약간 남아 있는 북쪽 특유의 억양만이 崔씨가 1년9개월전 사선을 넘어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가족이 다 와서 그런지 탈북자들이 흔히 느끼는 외로움이나 죄책감은 덜한 편입니다. 이웃 주민들과도 허물 없이 지내지요. 시장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야채를 더 얹어주거나 옷을 그냥 가져가라고 해 오히려 난처할 때가 많아요” 누구보다 빠르게 남한생활에 적응한 崔씨이지만 한동안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들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다. 평소에는 잘 어울려 놀던 같은 반 아이들이 싸움이 벌어지면 ‘북한에서 온 주제에…’라면서 따돌리는 바람에 손자들이기가 죽어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는 것. 崔씨는 “딸과 함께 선생님을 찾아뵙고,몇차례 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난 이후에는 그런 일이 많이 줄었다”면서 “철모르는 아이들끼리의 일이지만 섭섭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700여명이 넘는 탈북자 가운데 崔씨처럼 일가족이 함께 내려와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드물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부모 형제를 등지고 혈혈단신 귀순한 탓에 극심한 죄책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지낸다. 탈북자 후원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의 尹玄 대표는 “가족을 버렸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결혼을 적극 권유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 출신이라는데 대한 거부감과 선입견이 심한데다 일부는 정착금을 노려 계획적으로 접근하기도 해 자칫 돈 잃고 마음만 상하기 쉽다는 것이다. 성공한 탈북자로 알려진 金勇씨(38·연예인)도 “열렬한 연애가 아닌 바에야 귀순자에게 결혼은 귀순보다 더 큰 모험”이라고 토로했다. 주변의 냉대와 소외감을 견디다 못해 술로 허송세월하거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탈북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지난해 5월 6개월된 딸과 함께 자살한 탈북자 아내 崔율리아씨(당시 26세)가 그런 예. 러시아교포 3세인 그녀는 러시아 벌목공으로 일하다 94년 5월 귀순한 남편 崔모씨(40)를 따라 이듬해 한국에 왔으나 주위와 어울리지 못한데 따른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러시아 벌목공 출신인 K씨는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에 대해 판에 박힌 시각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은 귀순자들을 저개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뿐 동족으로서의 애정은 없다”고 비판했다. 남한사회에 대한 좌절과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면서 찾아온 남한 땅에서 자신이 할 일이 막노동밖에 없다는 현실이 자포자기상태로 몰아가는 것이다. 탈북동기나 경로는 서로 다르지만 탈북자들의 목표는 똑같다.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부모가 먼저 TV를 끄세요/방학중 어린이중독증 치료 요령

    ◎몰입땐 사회성 부족·무력감·우울증/아이와 대화 늘리고 직접 어울려야 방학중에는 아이들이 학교·학원의 굴레에서 벗어나 맘껏 뛰어놀게 마련이다. 아이들이 모처럼 자유롭게 뛰노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부모로서 눈여겨 봐야할 부분이 있다. TV나 비디오·컴퓨터게임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것,곧 ‘텔레비전·컴퓨터 중독증’이다. 평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와도 잘 어울리는 아이가 방학이라는 한정된 기간에 TV시청에 몰두한다고 염려할 일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소아정신과 의사들은 ‘일주일이상 나가놀 생각을 안하고 TV·비디오를 보거나 컴퓨터게임만 한다면’정신건강에 큰 훼손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아이 스스로가 ‘TV에나 빠져 있는’자신을 한심하게 여겨 자책감을 느끼거나 후회하게 된다는 것. 이런 감정이 진전되면 꼼짝도 하기 싫은 무력감에 젖는다든지 우울증이라는 병적인 상태에 들기도 한다. 이 정도가 아니라도 ‘텔레비전·컴퓨터 중독증’은 아이들에게 △사회성 부족 △무분별한 모방심리 자극 △운동부족·시력장애·전신 피로감 유발 등 신체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TV·컴퓨터에 매달리는 아이를 어떻게 말려야 하나. 강동성심병원 소아청소년 클리닉 신지용 교수는 “아이를 TV·컴퓨터에서 떼어놓으려면 부모가 먼저 TV·컴퓨터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막연하게 “TV는 끄고 친구들과 놀아라” “이제 공부도 하고 책도 좀 읽어라”라고 요구하기 전에 ‘내가 아이를 즐겁게 해주겠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부모 자신이 TV 보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보지만 너희는 보면 안된다’는 태도라면 아이라도 납득하지 못한다. 신교수는 “미국에서 최근 ‘TV 안보는 날’을 정해 시행했는데 그 결과 부모·자식 사이에 대화가 크게 늘어났다”면서 아이와의 직접적인 어울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브람스 ‘첼로 소나타 1,2번’(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6)

    ◎요하네스 브람스/다시 그후,겸손함의 기적/혼탁한 마음 다한듯 길게 무겁게 낮게/‘巨人 베토벤’ 실감/처절한 열등감·자책/단련의 美學 포옹/巨匠의 피아노 반주/겸손함의 驚異 잉태 1.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일주 전에 들었다.그 후로도 첼로 음(音)이 내 귀를 놓아 주지 않는다. 내가 흔들리는 정신인 까닭이다.명료하고 확고한 마음에는 오히려 바이올린이 어울리는 법.바이올린은 황홀하게 반 란하고 도약하며 뒤틀린다.첼로는 길게 낮게 무겁게 이어진다.혼탁한 마음이 다할 때까지. 바흐의 동시대인(同時代人) 헨델은 이재(理財)에 밝았고 그래서 ‘독주악기 첼로’의 예술적 가능성을 볼 수 없었다.바흐 이래 하이든은 첼로 음색(音色)에 너그럽고 명징한 노년(老年)을 입혔다.‘말짱한’ 모차르트는 그런 하이든을 ‘파파’로 모셨지만 그 자신은 첼로를 좋아하지 않았다.베토벤에게 첼로 소나타 다섯 곡은 침묵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놓았던 고통연습의 징검다리였다. 모차르트 못지않게 음악이 말짱했던 멘델스존은 역시 이렇다 할첼로 음악을 남겨 놓지 않았다.그러나 정신병에 시달렸던 슈만에게 첼로는 드문드문 내면에 비치는 아주 달콤한 햇볕이었다.그것은 ‘대중적’이고 눈물 겨운 안식처였다. 그리고 슈만에 이어,아니 슈만과 병행하여 브람스의 첼로 음악이 전개된다.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는 모두 두 곡.1번은 1862∼5년 간,2번은 그후 30년도 더 지난 1886년에 쓰여졌다. 2. 브람스의 꿈은 베토벤 교향곡 세계의 계승­발전.이것은 너무도 원대한 꿈이었다.왜냐하면 그에게 베토벤 교향곡 9곡은 음악의 모든 가능성을 탕진하면서 이룩된 음악의 세계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가는 누구나 불가능한 것을 지향한다.그리고 예술적인 열등감으로 스스로를 단련시킨다.그는 역사상 어느 예술가보다도 고통스럽고 치열한 작곡 생애를 살았다.그의 실내악들은 하나 같이 걸작이지만 교향곡 작곡을 위한 필생의,피말리는 연습곡들이기도 하다.그러나 누군들,특히 베토벤이 또한 안 그랬겠는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들의 벽에 부딪쳐 두 곡에 그쳤다.피아노독주곡,바이올린 독주-협주곡 등 거의 모든 실내악 장르에서 브람스는 ‘베토벤의 숫자’를 넘지 못했다.교향곡은 4번에서,끝난다. 베토벤 콤플렉스에 물들지 않은 것은 장년(壯年)의 첫 걸작 ‘독일 레퀴엠’과 생애 내내 산발적으로 분출한 민요풍 성악곡들 정도.첼로 소나타 또한 그 숫자에서 베토벤의 절반에 못미친다.그러나,경우가 다르다. 브람스 첼로 소나타 1번은 거인적(巨人的) 열등감의 노력이 감행되던 무렵,‘독일 레퀴엠’ 직전의 작품이다.그리고 2번은 그 노력이,교향곡 4곡까지 포함하여,모두 마감된 이후 시기의 작품이다. 무슨 뜻인가? 2번은 심화된 좌절감을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좌절의 브람스 30년 음악 생애를 너그럽게 ,그리고 역전(逆轉)의 미학으로 포옹한다.놀라운 일이다.겨우 첼로 소나타 한 곡이…그 30년은 브람스 자신에게 뼈를 깍는 훈련과 자책의 기간이었지만 바로 그렇게 음악사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한 페이지 아닌가. 3. 오늘 소개하는 음반은 1952년,제네바 빅토리아 홀 연주회 실황을 담고 있다.작품이 창조되고 64년후.첼로는 피에르 푸르니에,피아노는 빌헬름 박하우스.푸르니에가 첼로를 맡은 것이야 하등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거장 박하우스가 피아노 ‘반주’라니.그는 평소에 대학원생처럼 겸손하지만 일단 피아노 앞에 앉으면 포효하는 ‘건반의 사자’ 아닌가.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박하우스의 피아노가 분위기를 압도하기 시작한다.과연,아니나 다를까…그러나 이 우려는,틀렸다.여기서 박하우스는 제 힘을 주체 못하고 ‘반주의 경계’를 뛰어 넘는 것이 아니다.박하우스의 ‘튀는’ 반주야 말로 브람스의,무의식의 본심(本心)을 꿰뚫는다. 브람스는 첼로와 피아노의 역할을 역전­중첩시키면서 그 관계를 심화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음악 생애를 응축­정리하고 있는 것이다.그렇게 1번 1악장에서 첼로가 주저 주저하고 피아노는 ‘열등감을 벗고’ 매우 명랑하게 채근 대더니 2번 1악장에 이르면 첼로는 여전히 투명한 겸손함을 유지하면서 아연 교향곡 수준의 고통의 무게를 머금는다. 그리고 교향곡 너머로 나아간다.그렇게,겸손함의 기적이 재현된다.1번의 3악장 구조는 2번에서 4악장 구조로 발전했다.3악장 구조는 공간적 열림의 춤과,4악장 구조는 시간적 발전과 연관이 있다.그러나 교향곡의 4악장 구조는 모든 악기를 동원하면서 동시에 총체화하려는 욕망 때문에 기승전결(起承轉結)로 열리지 않고 오히려 닫히는 성향이 있다. 1955.녹음 DECCA 425973­2 첼로:피에르 푸르니에 피아노:빌헬름 박하우스
  • ‘수익성보다 안전성’ 우선/빅뱅시대 어떤 금융기관 택할까

    ◎생존 가능성여부 선택기준으로 삼아야 BIS기준 충족 ROA 높은 기관 무난한편/신종적립신탁 등 실적배당형 상품 조심/금융자산 가족명으로 분산예치 바람직/최대 피해자는 주주… 주식투자 신중히 ‘6.29 1차 금융빅뱅’이 던진 교훈은 뭘까.바로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神話)를 더 이상 믿지 말라는 점이다.철석같이 믿었던 연인이 하루 아침에 등돌리는 것처럼 은행도 예외일 수 없다.중소기업이 도산하고 가계가 파산하듯 은행도 망자(亡者)의 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렇다면 불확실성의 금융구조조정 시대에 대처하는 방법은.급류에 휘말려 피해를 보지 않도록 자구책을 찾는 도리밖에 없다. ■1차 금융빅뱅,피해규모는=동남 대동 동화 경기 충청 등 5개 은행에 5% 미만의 지분을 갖고 있는 소수주주는 모두 82만7,000여명.이들 소수주주는 은행간판이 내려지는 바람에 780억여원(시가)의 생돈을 졸지에 떼였다.웬만한 대도시 인구 전체가 한꺼번에 파산선고를 맞은 셈이다.비록 퇴출되지는 않았지만 충북 강원 은행의 소수주주3만6,000여명도 이들 은행과 오십보 백보다.100% 감자명령으로 주식이 한낱 휴지조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은행을 잘못 고른 데 대해 자책만 할뿐 어디가서 하소연할 길이 없다.정부가 천명한 금융 구조조정의 대원칙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손실부담의 원칙이기 때문이다.이 원칙에 따라 이번 퇴출은행 선정으로 최대의 피해자는 주주가 됐다.그만큼 주식투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설마하다가는 당한다=앞으로 부실은행의 퇴출은 수시로 이뤄진다.조건부 승인을 받은 7개 은행에 대해 정부는 경영개선 노력이 미흡하면 추가로 퇴출시킬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나머지 은행들도 경영이 부실화하면 언제든 퇴출명부에 오른다.온통 지뢰밭이다.은행에 돈을 묻은 채 ‘설마 망하랴’는 생각으로 넋을 놓았다가는 한푼도 건질 수 없는 시절이 왔다. ■은행 선택,기준이 뭔가=시대별로 거래은행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정부가 금리를 규제해 수익측면에서 은행간 변별력이 없었던 80년대는 친절한 은행,가까운 은행이 인기를 끌었다.90년대 초반은 금리자유화가 단계적으로 실시돼 ‘수익성’으로 기준이 달라졌다.당시에도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 이자를 많이 붙여주는 은행을 찾았던 것.하지만 IMF시대,금융구조조정의 시대에서는 무엇보다 ‘생존 가능성’ 여부가 최대의 선택기준이 돼야 한다.이자 등 수익성보다 안전성이 우선시돼야 한다. ■망하지 않는 은행,어떻게 가리나=우량은행과 부실은행을 가리는 감별법을 찾아야 한다.포인트는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 비율이다.은행 건전성을 측정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자료로,8%가 마지노선이다.이 밑으로 떨어지면 주저없이 발길을 돌리는 게 낫다.다만 외자유치 가능성이나 우량은행과의 합병 등 다른 여건도 꼼꼼이 따져봐야 한다.총자산을 기준으로 한해동안 벌어들인 이익이 얼마인지를 나타내는 ‘총자산 이익률(ROA)’과 은행이 빌려준 돈 가운데 수익을 올릴 수 없는 부분을 나타내는 ‘총여신 대비 무수익 여신’비율도 기준이 된다.ROA는 높을 수록,무수익여신 비율은 낮을수록 좋다. ■금융상품 선택,신중해야한다=무조건 고수익만 좇아서는 금물이다.‘위험이 크면 수익도 크다(High Risk,High Return)’지만 요즘에는 안통한다.이 자는 커녕 원금마저 떼일 위험이 크다.따라서 한동안 수익성은 눈을 딱감고 포기하는 것도 한 방편이다. 신종적립신탁 특정금전신탁 근로자우대신탁 비과세가계신탁 적립식목적신탁 등 실적배당형 상품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은행이 내건 수익률은 어디까지나 목표 수익률이지 만기때 보장하는 확정금리가 아니다.더욱이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원금도 제대로 건지지 못하는 수 가 있다.따라서 은행 창구직원이 지나치게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면 일단 의심하는 게 좋다.신용도가 낮을수록 고금리로 유인하기 마련이다. 가족명의로 금융자산을 쪼개면 유리하다.예금자보호법 시행령 개정으로 8월1일부터 2,000만원 이상의 예금은 원금만 보장되지만 그 미만으로 나눠서 예금하면 각각 원리금을 2,000만원까지 보장받기 때문이다.증여세가 걸림돌이라면 현행 세법상 만 20세 이상은 5년동안 3,000만원,미성년자는 1,500만원까지 증여해도 세금을 물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된다.
  • 현대 鄭夢憲 회장 뜬다/금강산개발 성사로 그룹경영 전면에

    ◎訪北 경협 실무 지휘… 후계구도 주목 鄭夢憲 현대건설 회장이 뜬다. 금강산 관광개발 사업의 성사를 계기로 그룹경영의 전면에 나섰다. 鄭夢憲 회장은 지난 1월13일 현대그룹 공동회장으로 취임,형인 鄭夢九 현대정공 회장과 함께 그룹의 ‘투톱체제’를 구성했다. 그러나 지금은 鄭夢憲 회장의 ‘원톱’체제로 급격히 선회하는 느낌이다. 따라서 鄭周永 명예회장의 후계구도가 마침내 가시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마저 일고 있다. 鄭夢憲 회장의 부상은 대북사업을 계기로 두드러진다. 鄭회장은 지난 2월 북경에 날아가 全今哲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은밀히 만나 鄭명예회장의 방북을 타진했다. 이번 방북 기간 중에는 鄭명예회장을 대신해 북한과의 경제협력 실무협의를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향 통천을 방문했을 때는 여러 곳을 둘러보느라 불과 3시간 동안만 머물렀을 뿐이다. 그는 귀환 후 가진 23일의 기자회견에서는 鄭명예회장과 鄭夢九 회장 등을 대신해 경협 결과를 발표하고 기자들의 까다로운 질문을 여유있게 받아 넘겼다. 25일에는금강산 유람선의 첫 운항일자를 ‘방북 101일 째’를 기념해 오는 9월25일로 결정,전격 발표했다. 7월2일에는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다. 뉴스 메이커로서 그 ‘상품가치’를 언론인들로부터 검증받는 것이다. 鄭회장의 이같은 저돌적인 ‘금강산 대시’는 한때 ‘빅딜’을 거부한데 따른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위한 고차원적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재계에서는 鄭회장이 대북 사업의 주도권을 쥔 채 그룹 내 위상을 굳힘에 따라 ‘세자책봉’이 임박했다고 보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 궁중의 숙청(秘錄 南柯夢:16)

    ◎“궁궐안 정씨 모두 해직” 어명/황제총애 받는 시종자리 이권·인사청탁 쇄도/오적 이지용 상중에도 여인보내 벼슬 부탁/“모든 정씨 국가에 유해” 상소에 “나가 기다려라”/시종 정환덕 궁내사건 예언시 적중하자 복직 1899년 8월에 선포된 대한국제(大韓國制)는 대한제국의 헌법이었다.이 법에 따르면 황제는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전권을 장악한 전제군주였다.말하자면 서양의 절대왕권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한 셈인데 고종을 루이 14세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누구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당시의 세계 대세로 보아도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체제였다고 할 수 있다. ○시종원 막강권부 부상 이처럼 모든 권력이 고종황제에게 집중되었으니 덕수궁 중화전(中和殿)이 권력의 핵심부가 될 수밖에 없었고 고종의 최측근인 시종원 시종들이 막강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의 역대 청와대 비서실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았다. 정환덕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모든 이권과 인사청탁이 그를 통해 이루어지게 마련이었다.지방 군수나 관찰사는 물론 중앙의 대신 자리까지도 일개 시종에 지나지 않는 정환덕을 거쳐야만 성사되었다.군부대신 이지용(李址鎔)의 경우가 그 좋은 사례였다. 전 군부대신 이지용은 평양의 명기 죽향(竹香)을 소실로 삼고 있었는데 광무 6년8월 생부가 죽어 상중에 있을 때 죽향을 우리(정환덕)집으로 보냈다.내외를 하느라 나는 발을 치고 죽향을 만나 보았는데 용건은 다름 아니라 “영감께서는 우리 대감(이지용)을 모르십니까? 대감께서는 방금 거상(居喪)중이시라 한번만 문상을 와주시면 천만번 다행이라 하옵니다”는 것이었다.이에 대답하기를 “이 몸이 국사(國事)에 바빠 밤낮없이 함녕전 대청에서 폐하를 모시고 있는 처지라 여가를 낼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예까지 부인을 보냈으니 한번 짬을 내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옛부터 부모의 상중에는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 자식의 도리요 바깥 출입까지 삼가하여야 했는데,감투욕에 불탄 이지용은 정한덕에게 미인계를 써서 기어이 기복(起復=상중에 벼슬을 하는 것)하려 했던것이다. 이지용은 이층 양옥집에 살고 있었다. 문상을 마치고 이지용에게 인사말을 건네기를 예전에 대감이 군부대신으로 계실 때 한번 찾아 뵌 일이 있었는데 그 때는 손님이 집에 가득하고 마당에는 수레와 말이 벌려 있었습니다.그런데 지금은 문정(門庭)이 적막하고 포저(예물)가 뚝 끊기어 있으니 보기에 민망스럽습니다”하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감투란 것은 쓰고 있을 때 즐거울 뿐 벗고나면 허전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것이다.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줄 알면서도 한자리 하려고 버둥거리고 그것이 역사의 강물이 되어 도도히 흐르게 마련이다.이지용은 이름난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요 탐관오리였다.부모가 돌아가셨는데도 미인계를 써서 벼슬을 하여 집안의 불효자가 되었고 나라를 팔아 매국노가 되었다. 물론 정환덕은 이지용이 그런 인물이 될 줄은 모르고 그를 임금께 천거했던 것이지만 어느 해 추상같은 상소가 올라와 궁중 숙청이 단행되었다.전 동부승지(同副承旨) 홍병섭(洪丙燮)의 소장(疏章)이었는데 거기에는 무서운 말이 들어 있었다. 상감께서 물으시기를 “소장의 내용은 무엇이냐” 하시었다. 아뢰기를 “궁궐안을 숙청하라는 내용입니다”하였다.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런 상소는 금후 궁내부에서 받아 물리쳐 버리고 짐에게는 보이지 말라”고 하시었다. 이때 문득 생각하기를 상감의 총애가 날로 융성하고 흡족해지고 있는데 나라일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어 보필하는 신하로서 한자 한치의 공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탓이라 여겼다. 이야말로 시위소찬(尸位素餐:하는 일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하는 것이라 자책하였다.그래서 대궐문 밖으로 나가 사모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고 상감께 사죄하니 상감께서는 “네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하시면서 만류하시었다. “소신은 본래 초야에 있어야 할 몸이온데 이처럼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아 밤낮으로 대전을 모시다가 이렇게 탄핵을 받게 되었으니 마땅히 소신에게 과실이 있사옵니다.그러하오니 소신을 초야에 돌아가 살게 하옵소서”하고 간청하였다.그러나 상감께서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는 본래 국가를 배반하지 않았고 임금에게숨긴 일이 없었다.너는 또 재주를 부려 남을 헐뜯거나 어진이를 투기하여 중상모략한 일도 없었다.너는 아래 사람에게 통통촉촉(洞洞燭燭)하였고 윗사람에게 주야로 성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너는 참으로 충신이라 할 것이다”하시면서 도리어 정삼품직을 하사하셨다. ○“초야로 돌아가겠다” 주청 그러나 시종원 시종 자리란 그렇게 늘 쉽사리 지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그 뒤 얼마나 지났을까.난데없이 궁안에서 종사하는 모든 정씨(鄭氏)는 남녀를 가릴 것 없이 해직시킨다는 어명이 떨어졌다.청천병력과 같은 일이었다.아무 죄도 없이 정씨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궁궐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니 어처구니 없는 처사였다.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어느날 궁중에 “鄭씨 姓을 가진 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국가에 유해하니 모조리 해직하여 쫑아내야 합니다”라는 상소가 올라왔다.내사해 본 결과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은 상궁(尙宮)이 여섯 명이고 내시(內侍)가 열명이고 무감(武監)이 세명,주사(主事)가 세명이었는데 거기다 노비 28명을 합하면 궁중에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63명이나 되었다.이 사람들을 모두 해직시켜 일시에 궁안에서 내쫑아 버린다는 것인데 나(鄭煥悳) 역시 거기에 끼여 있었다. 상감 부자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너는 잠시 너의 본집에 가서 머물러 있다가 처분을 기다리라.너무 바깥 출입을 하지 말도록 하라”고 하시었다.그리고 “혹시 내가 너에게 문의할 일이 있으면 봉서(封書=임금의 私信)로 통지할 터이니 어느 놈이 우리 군신 사이를 이간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었다.이에 나는 “예식관 이용태(李容泰)를 통해 하명하시면 즉시 올라와 뵈옵도록 하겠습니다”하면서 절하고 물러났다. ○“군신 이간질 가당찮다” 상감 부자께서는 서운해 하실 뿐만 아니라 상궁과 시녀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말없이 물러나는 나를 지켜 보았다.나도 또한 여러 해 동안 밤낮으로 가까이 모시고 있다가 까닭없이 사퇴하게 되니 옛날 당나라 시인 두공부(杜工部)가 지은 시 “성상께서 늘 사랑하심이 있는데 조정을 물러나니 의지할곳이 없네”는 귀절이 가슴을 쳤다. 어떤 자리를 막론하고 한번 앉았던 자리를 물러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물러나 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이요 인생의 비애이기도 하다.하물며 무상의 권부를 물러나는 정환덕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대궐을 물러나 집으로 돌아와 보니 무엇을 잃은 것처럼 허전하기만 하였다.이에 글 한줄 지었으니 “내일 모레 사이 서늘한 밤 자정 달이 서산에 숨을 때 동쪽 정원에 꽃 한송이 떨어질 것입니다(明再明間 凉夜三更 月隱西山之時 花落東園中). 이 글을 봉투에 넣어 이용태에게 주어 상감께 드리도록 했다.아니나 다를까 궁중에 사건이 일어났는데 야밤중에 김상궁이 측간(厠間=변소)에 빠져 죽은 것이다.정환덕은 이 예언 때문에 다시 궁안에 들어와 복직되었다. 상감께서는 “과연 수(數)를 맞히기는 정환덕만한 사람이 없도다“하시면서 나를 칭찬하셨고 궁녀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내 한번 수(數)보기를 바랐으나 상감이 엄히 금지하셨다.
  • 연극 ‘엄마,안녕‘의 두 주인공 손숙·정경순씨

    ◎갈수록 꼬이는 한 모녀의 애증/자살 결심한 딸이 엄마와 나누는 마지막 대화/자식사랑이 딸의 속만 긁고… “저 오늘 자살해요”하는 딸에게 소맷부리 부여잡는 것 말곤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는 엄마.유교적 효(孝)관념이 승한 우리같은 사회에서 잘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다. 그런데 홍대앞 누추한 지하 거실에서 요즘 한 모녀가 저녁마다 이런 승강이를 벌인다.중견배우 손숙과 영화 ‘태백산맥’의 죽산댁 정경순.이들 둘이 모녀로 출연하는 산울림소극장(334­5915)의 연극 ‘엄마,안녕…’은 자살 결심을 완전히 굳힌 딸이 죽기 전 한시간 반가량 엄마와 나누는 마지막 대화를 담았다. “간질병에 걸려 남편에게 버림받지,사랑하는 아버지는 진작 돌아가셨지,하나 있는 아들은 집나간 소매치기지….아무하고도 못 사귀는 비사교성으로 집안에 틀어박혀 말도 안 통하는 엄마 시중이나 드는 ‘제씨’는 살아오면서 하나하나씩 모든 것을 버린 여자예요.” 자신이 맡은 딸 역할을 이렇게 설명하는 정경순은 사실 너무도 탱탱하고 활기가 넘친다.소녀같이 주책맞은 구석이 필요한 엄마 역할의 손숙이 마른나뭇잎처럼 금새 부스러질듯 보일 지경.마샤 노먼의 83년 퓰리처상 수상작이 원작인 이 객석은 모처럼 주부 관객들로 만원이다.이들중 딸 가진 엄마가 얼마나 될지 통계 내볼 수는 없겠지만 다들 딸자식 처지인 것만은 확실해 극중 모녀관계를 상당히 공감하는 눈치들. 엄마는 딸이 준 마지막 90여분간,지난 삶의 맺혔던 순간들을 끄집어내 풀어보이며 어떻게든 딸의 마음을 돌리려 버둥댄다.하지만 잘해보려는 뜻과는 달리 한마디 할 때마다 딸의 속을 긁으며 어긋나기만 한다.지금껏 그런 식으로 밖엔 말할 줄 몰랐으니까.엄마의 비난도,자책도,위협도,달램도 이미 속이다 타버린 딸에겐 너무 늦었다. “이런 엄마 주위에 많잖아요.겁많고 의지박약에 뜨개질이나 TV보기 따위에 행복해 하며 살아가는… 딸의 가슴에 비수 꽂히는 것도 모르고 감정대로 말도 아무렇게나 퍼부어버리기 일쑤죠.딸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닌데 옳게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거예요.” 자기 엄마도 비슷했다고,그래서 애증의 대상인 그런 엄마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었노라고 덧붙이는 손숙.어쨌거나 엄마와의 안 풀리는 관계를 원인(遠因)으로 자살도 하고,그러면서도 그 마지막 자리에 초대할 사람이 또 엄마뿐인,이 지긋지긋한 모녀관계의 애증이란,아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진폭으로 대부분 모녀들의 가슴을 흔드는 화두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자연인 손숙,정경순이 극중 딸,엄마에게 당부 한마디씩. “딸아,그것도 다 나름의 자식사랑이란다.” “엄마,속상할수록,어려운 일 많을수록 더욱 터놓고 진실을 말해 줘야죠.”
  • ‘용의 눈물’과 핵무기/朴星來 외국어대 교수·과학사(서울광장)

    TV드라마 ‘용의 눈물’은,내 나름의 연구가 있고,의견도 있는 시기여서 마지막 4회를 시청했다.그리고 예상대로 실망했다.이방원(태종)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는 것이 불쾌했다.또 그런 설명이 가치관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걱정되었다. ○칼·창 동원 한달여 전쟁 오히려 나는 태종 때의 싸움에서 엉뚱한 연상을 하게 되었다.그 시대는 600년 전이다.몇 차례 싸움에서 이방원이 동원한 에너지 총량은 과연 얼마나 될까? 생사를 건 싸움에 기껏 수천 명의 군사와 수백 마리의 말,그리고 그에 따른 무기와 식량 등의 장비를 갖출 수 있었을 뿐이다.그 정도로는 아무리 못된 짓을 한 달쯤 벌이고 다닌대도,수천명 죽이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같은 시기 서양도 형세는 비슷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 에너지 동원 규모가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가? 5월말 인도와 파키스탄은 드디어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고 나섰다.그들이 핵탄두를 몇 개씩이나 가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그들의 핵무기는 한 개만으로도 이웃 나라 수도를 없애 버리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그런 핵무기가 세상에 이미 몇 천 개가 깔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런 힘의 동원 주체가 지금은 아주 모호하다는 사실이다.태종 때에는 규모도 작은 힘이었지만,동원의 주체는 태종 한 사람 뿐이었다.그가 명령하지 않으면 그 파괴력은 발동되지 않았다.오늘날 핵무기의 막대한 파괴력을 격발할 단추를 누를 수 있는 손은 아주 여럿이다. ○한순간 대량살상 파괴력 게다가 인류의 멸망을 위협하는 것은 핵무기만이 아니다.최근의 잘 알려진 사건만해도,일본 동경 지하철에서 무차별로 독을 뿌려 인명을 해친 일이 있는 ‘옴 진리교’ 또는 미국의 우편 테러범 유나보머(Unabomber)도 그런 파괴력 동원을 촉발할 가능성을 보여 준다. 특히 걱정스런 사실은 태종에게는 강력한 도덕적 견제장치가 있었으나 오늘의 인류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는 점이다.600년 전의 제동장치는 다름아닌 자연현상(災異)이었다.자연현상에 이상이 있으면,정치가 잘못된 까닭으로 여겨 당시 사람들은 끊임없이 반성했다.그런 예를 우리는테종이 죽을 때 비가 내렸다는 ‘太宗雨’의 전설에서 느낄 수 있다.태종은 1422년 5월 10일 죽었는데,가뭄 때문에 노심초사하던 그가 죽으면서 자기가 죽으면 하늘에 고하여 비를 오게 해 보겠다 했고,그 말대로 그후 해마다 5월 10일이면 비가 온다는 것이 ‘태종우’의 전설이다. ○도덕적 규제장치 실종 내 연구로는 그날 비는 오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고,그런 전설은 임진란 이후의 문헌에 처음 보인다.뒷날 만들어진 전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하지만 태종이 가뭄을 자신의 부도덕한 짓 때문이라면서 자책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옴 진리교나 유나보머,또는 핵무기 단추를 누를 수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도덕적 규제장치란 전혀 없다.한 나라를 핵무기로 이끌어주는 힘이란 민족주의(民族主義) 또는 국익 정도일 따름인데,이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충동을 밑에 깔고 있을 뿐이다.대단히 위험한 세상으로 변하고 있음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인간의 도덕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절실해지고 있다.
  • 뮤추얼 펀드 7월 도입/투신업법 새달 개정

    ◎차입·보증·담보 금지 부실화 막아/“회사·주주간 환매 제한” 폐쇄형만 허용 오는 7월부터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는 뮤추얼 펀드(MutualFund)’제도가 도입된다. 재정경제부와 한국증권연구원은 18일 증권거래소에서 ‘회사형 투자신탁제도 도입 방안’공청회를 갖고 투자신탁업법 개정안을 다음 달 임시국회에 제출,7월부터 시행키로 했다.뮤추얼 펀드를 운영하는 회사의 이름은 ‘증권투자회사(가칭)’로 정했다. 증권투자회사는 기존의 투자신탁처럼 법인세와 배당소득세가 면제되며,투자금의 운용대상도 유가증권과 외화증권,콜론(Call Loan),금융기관 예치 등으로 같지만 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설립목적으로 할 경우 자금출처 조사를 면제받는다.펀드의 부실화를 막기 위해 외부 차입과 채무보증·담보제공 금지 등의 규정을 두고,특정기업이 발행하는 주식 총수의 20%를 넘거나 자산의 10%를 초과해서 동일종목의 유가증권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했다.다만 사모(私募)방식으로 세워지는 증권투자회사는 투자한도와 차입 채무보증 제한이 없는 대신 법인세가 부과된다.정부는 ‘회사와 주주사이의 환매를 제한하는’폐쇄형만 일단 허용한 뒤 환매가 자유로운 개방형은 차츰 도입하기로 했다. ■뮤추얼 펀드란=외국에서는 일반화된 투자회사.일반 투자자들이 돈을 모아 하나의 회사(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펀드매니저를 선정,투자를 맡기는 것으로 철저하게 운용실적대로 배당이 이뤄진다.투자손익에 대한 책임도 물론 투자자들이 진다.투자대상은 주식과 채권,기업어음(CP) 등 유가증권이 주다. 기존 투자신탁회사들이 취급하고 있는 상품은 고객들로부터 자금을 끌어들일 때 만기나 중도해지 수수료 등 투자에 관련된 사안에 대해 일일이 계약을 하는 계약형 상품이 대부분이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고객들이 투신사에 돈을 맡길 때 수익성이 높은 금융기관에 예금을 맡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실적배당이나 투자책임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또 투자자들도 확정금리를 보장받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따라서 뮤추얼 펀드는 확정부금리가 아니며,투자실적에 따라 수익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기존 투신사의 펀드들과 다르다.
  • 되풀이 되는 우리 역사의 비극/연극 ‘천년의 囚人’

    ◎안두희·비전향 장기수·광주진압군 정신병원 병동서 한자리에…/“결국 모두가 피해자” 함축적 고발 반복되는 비극의 우리 역사를 역설과 해학으로 풍자한 연극 ‘천년의 수인(囚人)’이 8일부터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무대에 오른다. 동숭아트센터가 심판되지 않은 우리 역사를 소재로 지난해부터 기획해 온 현대사 재조명 시리즈의 제2탄.지난해의 화제작 ‘나,김수임’이 여간첩 김수임의 삶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민족적 비극을 다루었다면 ‘천년의 수인’은 이같은 민족적 비극이 역사적으로 수없이 되풀이됨을 테러리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고발한다. 언제나 역사에 시선을 두고 지난 30년의 한국 현대사를 연극으로 재조명해온 오태석씨(58)가 희곡을 쓰고 연출도 맡았다.94년 쓴 ‘백마강 달밤에’이후 5년만의 신작.오씨는 이 작품에서 테러리즘과 비극적 역사를 상징하는 주인공으로 백범 김구의 암살범 안두희를 내세웠다.그리고 역사의 되풀이를 강조하기 위해 안두희에 앞서 백범 암살 임무를 띠고 북에서 남파됐다가 체포된비전향 장기수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으로 투입돼 소녀를 사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신질환 청년을 한 자리에 세웠다.오씨의 상상력을 통해 이들 3인이 함께 만나는 공간은 애꿎게도 정신병원이다. 이곳에서 안두희와 비전향 장기수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확신범의 모습이다.이에 반해 청년은 자책감을 견디지 못한다.둘은 “역사에 책임을 지겠다”며 청년을 구제해 달라는 탄원서를 남기고 스스로 죽기로 한다.하지만 정작 죽는 자는 청년이다.둘이 탄원서 내용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사이 옆 침대의 청년이 안두희로 오해를 받아 칼을 맞는다.반복되는 역사에 담긴 비극의 한 예시다. 책임지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되며 그 되풀이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이 연극은 역사의 교훈으로 강조한다.제목의 ‘수인(囚人)’은 이같은 메시지를 함축한다.테두리(감옥)에 갇힌 사람(囚)과 테두리 밖의 사람(人),어느 쪽에 서 있든 결국은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재수없게 코를 꿰인 피해자가 될수 있다는 메시지다.그래서 지난해 봄 ‘불순한 문제위식’이라는 이유로 국립극장측의 공연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수인이란 단어가 뜻하듯 감옥이든 세상이든 갇힌 민족의 숙명적 비극이라는 무거운 주제의식을 담고 있지만 역설과 익살이 풍부한 대사,굿과 악극,인형극 등 다양한 연극적 형식을 통해 부담없이 메시지를 전달한다.연출가 오씨와 안두희역의 이호재,장기수역의 전무송 등 3인이 79년 ‘물보라’이후 20년만에 함께 호흡을 맞추며 조상건·정진각·김남숙·정원중·한명구 등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이 가세한다.6월14일까지.화∼목 하오 7시30분,금 4시30분·7시30분,토·일 3시·6시.3673­4466.
  • 이태원 대학생 살해사건/재미교포 유죄 원심 파기

    ◎大法 “미국인 동료 의심” 지난 해 4월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학생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항소심에서 징역 20년이 선고된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 피고인(19)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李容勳 대법관)는 28일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에드워드 리 피고인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행현장에 있던 피고인과 동료사이인 아더 패터슨군(19·미국인)의 당시 정황에 대한 설명이 궁색한 반면 피고인의 진술에는 모순되는 점이 없다”면서 “특히 사후 행적에서도 패터슨군이 범행을 자책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칼이나 혈흔이 묻은 옷 등 증거물을 인멸하려 했다는 점에서 피고인의 단독범행을 주장한 패터슨군 진술의 신빙성이 크게 의심된다”고 밝혔다.
  • ‘잉그마르 베르이만의 창작노트’ 출간

    ◎거장 잉그마르 베르이만 감독 나의 인생… 나의 영화… 【金鍾冕 기자】 “이 영화는 구제불능의 멜로드라마다.영화는 석유난로에서 불길하게 불길이 치솟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때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뻔뻔스럽게 사용된다.나는 멜로드라마와 소프 오페라에서 사용되는 기법들을 잘 알고 있다.멜로드라마에서는 온갖 정서를 자유롭게 펼쳐놓을 수 있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수용할 수 있는 감정과 우스꽝스러울 뿐인 감정사이에 선을 그을 줄 아는 것이다” 스웨덴 출신의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이만은 자신의 영화 ‘환희를 위하여(To Joy)’가 어떠한 ‘산고(産苦)’를 거쳐 태어나게 되었는가를 이렇게 밝혔다.베르이만 감독의 인간적 진실과 예술관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잉그마르 베르이만의 창작노트’(오세필·강정애 옮김,시공사)가 최근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책은 82년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를 만든 뒤 영화계 은퇴를 선언한 베르이만이 자신의 옛 영화 30여편을 1년동안 모조리 다시 보는 “살인적이고 고통스러운 작업”을 통해 완성됐다.그의 영화들은 이 책에서 각각 특징적인 항목으로 묶인다.‘산딸기’‘늑대의 시간’‘페르소나’‘얼굴을 맞대고’‘외침과 속삭임’‘침묵’이 꿈의 영화에 속한다면 ‘얼굴’‘제식’‘벌거벗은 밤’‘뱀의 알’‘꼭두각시들의 삶으로부터’‘리허설 뒤’는 어릿광대 영화로 분류된다.또 ‘제7의 봉인’‘어두운 유리를 통하여’‘겨울빛’은 신앙과 이단의 영화로,‘여름밤의 미소’‘요술 피리’‘화니와 알렉산더’는 웃음과 기쁨의 영화로 구분된다. 베르이만은 영화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나 내면 세계를 탐구한다.그가 자신의 내적 세계를 탐구과제로 삼은 것은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권위적이고 종교적인 훈육을 받으며 자란 성장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베르이만은 훗날 이러한 배경이 자신의 사고와 도덕관념의 발달에 크나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진정한 인간적 교류를 체험하지 못한 채 책과 연극,영화 등을 통해 자기 세계에만 몰입한 베르이만에게 있어 꿈이나 환상,공상 등은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이었다.그러한 삶으로부터 그는 심층적인 무의식의 이미지들 혹은 광기의 늪에 빠진 에술가의 그림 같은 것들을 건져 올렸다.베르이만은 성공한 영화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던 시기에도 자신을 실패자라고 불렀다.부모와 아내,그리고 자식과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 때문이었다.이 책은 얼마간은 신화의 베일 속에 싸여 있는 거장 베르이만의 인간적인 면모를 바싹 다가서서 보게 한다.
  • 국민회의 제3정책조정위장 李錫玄 의원(초점인물)

    ◎“고용증진 위해 태스크포스 구성”/“생생한 국민여론 전달… 행정 경직화 막겠다” 국민회의 李錫玄 의원은 요즘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제3정책조정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현안파악과 실업대책 마련을 위해 각계각층으로부터 의견수렴이 한창이다.지난해 8월 ‘남조선 명함파동’에 휘말려 계룡산에 ‘칩거’해야 했던 상황과는 너무나 판이하다. 李위원장은 8일 명함파동이 색깔공세를 위한 안기부 작품임이 드러났다면서 “역사에 비밀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홀가분한 표정이 역력했다.하지만 한동안 당과 총재에 누를 끼쳤다는 ‘자책감’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고 ‘가슴앓이’를 털어놓았다. 시련을 딛고 일어선 만큼 열정도 대단하다.李위원장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가교론(架橋論)’으로 답한다.“살아 움직이는 여론을 정부에 전달, 행정의 경직화를 막겠다”는 소신이다.또 “고용증진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를 중심으로 태스크 포스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너도 밤나무 아래서 쓴 나도 밤나무이야기’라는 에세이를 펴내,호평을 받는 등 숨은 문재(文才)를 선보이기도 했다.‘정치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당에 복귀했다는 李위원장.47세의 나이로 아직도 미혼인 그가 영원히 정치와 ‘결혼’할까봐 주위에선 가슴을 졸이고 있다.
  • 新種 스트레스/李世基 社賓 논설위원(외언내언)

    ‘전전긍긍(戰戰兢兢)’이라는 말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소민(小旻)’이라는 시의 마지막 일절이다.‘깊은 못을 마주보고 있는 양,엷은 얼음장을 발로 밟는 양’ 두려워서 오돌오돌 떠는 모양을 형용한 말이다.직장마다 정리해고와 감원바람이 불면서 실직을 한 사람이나 실직을 당하지않은 사람 모두가 전전긍긍의 분위기다. 실직한 사람은 자신은 ‘실패자요 버림받은 존재’라는 자책감때문에,실직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은 다음 감원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때문에 서로서로가 강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자존심이 강한 완벽주의자일수록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한 체 하지만 근심을 속으로 삭이는 바람에 ‘가면(假面) 우울증’에 걸리게되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은 점점 더 사람만나기를 꺼려하여 ‘감정언어표현 불능증’에 걸린다는 것이다. IMF가 탄생시킨 신종스트레스다. 전에는 주로 직장의 상사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직장인들은 퇴근후 술한잔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으나 이제는 생존이 걸린 긴박한 상황에서 싫은 일도 해야하고 업무가 넘쳐나도 불평을 토로할 수 없게 됐다.그러다보니 점점 더스트레스가 쌓여 두통이나 소화불량증에 걸리기도 한다.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스트레스로 인한 사회변화 트렌드’라는 연구보고서를 보면 향후 10년후 사회전반에 새로운 ‘스트레스 신드롬’이 나타나면서 ‘잘 생긴 얼굴보다는 유머감각이 뛰어난 웃는 얼굴,TV드라마도 멜로물보다는 코믹터치를 즐기고 보고서도 함축적으로 이해할수 있는 그림’이 인기를 끌게된다고 했다. 대량실업시대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인자(因子)가 복병처럼 도사린 것이 현대사회다.그러나 과연 스트레스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는가.한 정신과의사는 가슴속에 적신호를 켜두고 스트레스가 근접할수 없게 쫓아버리라고 조언한다.‘전전긍긍(兢兢)’이란 말도 역시 ‘극(克)’을 겹친 글자로 어려움을 극복해서 이기라는 의미다.‘깊은 연못(深淵)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곳에 빠져버리고야 말듯 스트레스에 집착하면 병이 될뿐이다.그래서 가볍고 낙관적인 생활습관도 지금의 상황에선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 ‘21세기 거대 중국’ 체제 완성/제9기 전인대 결산

    ◎강택민측근 당정군 장악… 개혁 가속화 될듯/호금도 부주석 발탁… 5년후 후계구도 가시화 【베이징=정종석 특파원】 중국 장쩌민(강택민)주석의 친정(친정) 및 후계체제가 최종 마무리 됐다. 중국은 18일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1차회의 6차전체대회를 열고 주룽지(주용기)총리 임명에 따른 후속 국무원 인선을 단행,당·정·군의 고위급 인사개편을 모두 끝냈다. 이날 국무원 인사개편에서는 리란칭(이람청) 부총리가 새 상무부총리로 승진하고 10년간 중국의 외교사령탑을 맡아온 첸지천(전기침)과 상하이방(상해방)의 대표주자인 우방궈(오방국)부총리의 유임,원자바오(온가보)당정치국원의 새 부총리발탁 등 4명의 부총리단을 선임했다.부장급은 첸지천 외교부장후임에 장주석과 같은 장수(강소)성 출신인 탕자쉬엔(당가선)부부장을 승진기용하고,군부 실력자인 츠하오톈(지호전)국방부장은 유임시켰다. 국가안전부장에는 쉬용웨(허영약)가 발탁돼 눈길을 끝었는데 아는 국가안전문제에 대한 장주석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공산당 개편에 이어 이번 전인대의 국회와 행정부직 개편에도 장주석 친위세력들이 대거 포진했다.당초 장쩌민­리펑(이붕)­주룽지의 3두체제에 50대의 차세대 기수인 후진타오(호금도)가 새 국가부주석에 임명됨으로써 장주석을 중심으로 이들 네사람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5년동안 중국을 이끌어가게 됐다.특히 후의 부상은 5년후 21세기초를 위한 ‘세자책봉’ 의미가 강해 어느 시점에는 장-후 양두체제로 권력구도가 압축될 공산이 커졌다. 보름동안의 회기를 마치고 19일 폐막하는 이번 전인대에서는 정부기구축소 등 각종 개혁조치를 인준했다.국가지도부는 장주석이 지명한 리펑 상무위원장 전인대 표결때 사실상 부표(반대·기권 326표)가 전체의 11%나 나오는 등 표심(표심)의 배경을 예의 주목한다.중국은 현재 대량실업과 치안불안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만약 경제·행정개혁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장주석과 주총리 등 개혁파에 대한 보수파의 반발이 어느 때보다도 크게 우려되고 있다. ◎떠오르는 제4세대 지도자/‘천안문’때 조자양측근으로 실권/신임 부총리 온가보 【베이징=정종석 특파원】 이번 9기 전인대를 통해 유일하게 새 국무원부총리로 발탁된 원자바오(온가보)당중앙정치국위원 겸 서기처서기는 국가부주석으로 선출된 후진타오(호금도)와 함께 혁명후 제4세대 최고지도자의 한사람으로꼽힌다.지금까지 주로 당의 업무에 주력했던 이들은 새로이 국무·정부부문의 고위직에 오름으로써 장쩌민(강택민)­주룽지(주용기)체제 이후의 후계그룹으로 각광받고 있다.42년 천진태생인 원은 89년 6월 천안문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조자양)이총서기로 있을 때 그의 비서실장 격인 중공중앙판공실주임을 지냈고 이 여파로 물러나 실권 없는 자리를 전전했다.그러나 당시 자오의 계파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고 ‘예리하고 온화,신중하며 열심히 일하고 사람들을 쉽게 사귀는’ 장점 때문에 지난해 제15기 당대회(15전대)에서 정치국원으로 승진한데이어 부총리에 기용됐다.베이징지질학원 광산학과에서 지질측량과 광산탐사를 전공했으며 깐수(감숙)성 지질국에서 일하던 82년 지질광산부장 순따광(손대광)에게 논리정연한브리핑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줘 중앙으로 발탁되는 행운을 잡았다. ◎정통외교관 출신의 지일파/아주담당부 부장 지내 남북관계 정통/새 외교부장 당가선 18일 선출된 탕자쉬안(당가선) 신임 중국 외교부장(60)은 지난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한 실무 책임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바로 전 남북한·일본 등 아주담당 부부장(차관)으로당시 첸치천(전기침) 외교부장을 보필해 왔다.베이징(북경)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탕 신임 외교부장은 73년 외교부에 첫발을 내디딘지 25년만에 최고 사령탑에 올랐다.주일 중국대사관 2등 및 1등서기관을 거쳐 공사를 역임하는 등 일본에서만 6년동안 근무한 일본통이다.그는 외교부 아주사 부사장과 외교부장 조리(비서관)을 거친뒤 아주담당 부부장으로 재직,남북한 사정에도 밝다. 한·중수교 이후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93년부터 아주담당 부부장을 맡아 뛰어난 국제정세 분석력과 협상력으로 대남북한 외교업무를 무리없이 수행,일찌감치 차기외교부장으로 ‘낙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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