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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정의의 한계(마이클 샌델 지음, 이양수 옮김, 멜론 펴냄)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로 돌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1982년 저서다. 존 롤스의 자유주의적 정의론을 비판해 자신의 이름과 ‘공동체주의’를 학계에 각인시킨, 말하자면 샌델의 학문적 출세작이다. 한국 학계는 공동체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개인보다 전체를 내세우는 것이 군사독재 이데올로기나 맹목적 애국주의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선욱 숭실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그런 식의 이해와 비판을 두고 전문가들조차 샌델의 진면목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라고 비판한다. 그의 정치철학에 진정 관심있다면 ‘정의란’ 같은 대중적 흥행작이 아니라 ‘정의의 한계’ 같은 본격 정치철학 저술부터 읽으라는 것이다. 2만 8000원.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대웅 옮김, 두레 펴냄) ‘모권(母權)의 세계사적 패배’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엥겔스의 저서다. 1877년 출간된 미국 민속학자 루이스 모건의 ‘고대사회’, 그리고 이를 1880~81년에 걸쳐 따로 정리해둔 칼 마르크스의 글을 참고해 두달 만에 완성한 책이다. 원시 난혼 상태에서 모계제, 그리고 가부장제 사회로 변화하면서 사유재산과 국가권력이 출연했다는 분석을 선보인다. 때문에 사적 유물론을 완성했다는 평가도 받지만 이른바 문명이 불거져나오는 ‘축의 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해명이라는 점에서 아직도 유효한 저서로 평가받는다. 입체적 이해를 위해 3개의 해설 논문을 붙여뒀다. 2만원. ●문자를 향한 열정(레슬리·로이 앳킨스 지음, 배철현 옮김, 민음사 펴냄) 19세기 초 이집트에서 가져온 로제타돌에 새겨진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독해낸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의 일대기를 담았다. 이집트 문명 열풍이 몰아치던 당대에, 영국 학자 토머스 영과의 운명적 해독 대결을 벌이면서 문자해독을 어떻게 성공시켰는지 살펴볼 수 있다. 2만 5000원. ●사기영선(사마천 지음, 정조 엮음, 노만수 옮김, 일빛 펴냄) 영선(英選)이란 뛰어난 작품을 가려뽑는 것이다. 정조가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가운데 뛰어난 글이나 본받을 만한 인물에 대한 내용 35편을 뽑고 정약용과 박제가가 교정을 봐 1795년 내놓은 책이다. 3만 8000원. ●최고의 학교 (남승희 지음, 인카운터 펴냄) 교육부 여성교육정책담당관, 서울시 교육기획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저자가 말 많고 탈 많은 한국 교육 문제의 실태와 해법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놨다. 보수, 진보의 이념적 대립틀을 넘어 실무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내놓는다. 1만 6000원.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 대화 (장 자크 루소 지음, 진인혜 옮김, 책세상 펴냄)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해 계몽주의자들로부터 비판받고, 기독교의 원죄설을 부정해 세간의 비난을 받은 루소의 말년 대작이다. ‘루소’와 ‘프랑스인’이 이처럼 비난받은 ‘JJ’를 불러다놓고 3자간 대화를 나누는 독특한 형식으로 씌어졌다. 이들간 대화를 통해 루소는 온갖 비난에 대한 자신의 대응논리를 펴나간다. 2만 5000원.
  • [유대근기자 현지르포-막 오르는 ‘차르 푸틴’ 3막] 反푸틴 리더 ‘안드레이 피온트코프스키’

    [유대근기자 현지르포-막 오르는 ‘차르 푸틴’ 3막] 反푸틴 리더 ‘안드레이 피온트코프스키’

    “푸틴은 올리가르히(신흥재벌)와 손잡은 사업가일 뿐이다.” 반(反)푸틴 운동의 핵심 세력인 ‘솔리다르노시치 운동’(야권연대조직)의 리더 가운데 한 명이자 정치평론가인 안드레이 피온트코프스키(72)는 “이번 대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당선되겠지만, 분노한 여론 탓에 ‘모스크바의 봄’이 곧 올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일흔이 넘은 고령임에도 푸틴의 과오를 지적할 때는 사자후를 토하듯 언성을 높였고,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재벌의 정경유착 등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능수능란하게 인용하며 자국 정치에 대해 설명했다. 수학자 출신인 그는 왜 반푸틴 운동가가 됐을까. 크렘린(대통령궁)에서 멀지 않은 그의 아파트에서 2일(현지시간) 인터뷰했다. →솔리다르노시치 운동은 왜 조직됐나. -푸틴에 맞서는 자유주의 운동가, 공산주의자, 애국주의자 그룹이 모여 2008년에 만들었다. 야권의 세 그룹은 푸틴 집권기에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이 분열 탓에 푸틴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자유주의자는 민주화와 자유를, 공산주의자는 모든 사람의 평등을, 애국주의자는 위대한 러시아를 강조했기 때문에 갈라졌지만 어느 순간 ‘푸틴 체제하에서는 어느 누구의 가치관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연대했다. →푸틴에 대해 평가한다면. -푸틴은 애국주의자가 아닌 단순한 사업가다. (올리가르히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겐나디 팀첸코 등과 가까운데 특히 (석유 유통업체 ‘군보르’(Gunvor) 소유자인) 팀첸코는 러시아 석유의 60%를 수출한다. 이 3명(푸틴, 아브라모비치, 팀첸코)이 상부상조하며 이득을 챙기는 구조가 돼 있다. 한국에도 재벌이 있기는 하지만 러시아는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한국의 대기업가도 정경유착한 경우가 있지만 자동차나 정보기술(IT) 등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재벌들이) 기술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석유·가스 등 천연자원을 내다 파는 역할만 한다. →푸틴을 반대하는 핵심 계층은 엘리트와 중산층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초기 한두 번의 시위에서는 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집단도 참여했다. 자유주의자 그룹에서는 지식인과 중산층이 중심이지만 공산주의나 애국주의자 집단에서는 블루칼라(생산직 근로자)들도 많이 속해 있다. →푸틴 지지율이 60%를 넘었다. 반푸틴 운동이 국민 다수의 생각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데. -권위주의적인 나라에서 (수치로 표시되는) 지지율은 별 의미가 없다. 푸틴의 인기를 확인하는 데는 지난해 12월 러시아 두마(하원) 선거 결과를 보는 게 낫다.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은 당시 49%의 득표율을 거뒀는데 이 가운데 15%가 부정에 의해 얻은 수치라고 본다.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푸틴의 지지율은 30%를 밑돈다는 판단이다. →야권에 찍을 만한 대선 후보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푸틴이 힘 있는 경쟁자의 출마를 모두 불허하고, 자신이 선택한 (경쟁력 약한) 4명의 야권 후보 출마만 허용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인) 그리고리 야블린스키의 경우 대선 입후보에 필요한 200만명의 서명을 받았지만 오류가 있다며 입후보를 불허했다. 결함을 지적하는 사람(관료)들은 푸틴의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이번 러시아 대선은 ‘복서’(푸틴) 대 ‘복서’(경쟁력 있는 야권 후보)의 대결이 아니라 ‘복서’ 대 ‘소년’의 대결이 됐다. →현 상황에 회의적인데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다고 보나. -이번 대선이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대선 이후 야권의 투쟁 방향은. -대선이 끝나면 푸틴이 며칠 내 야권 인사들을 체포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겠지만 곧 ‘모스크바의 봄’(러시아의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올 것이다. 이번에 반푸틴 시위에 15만명이 나왔는데 이 규모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100만명은 (거리로) 나와야 하는데 언제쯤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푸틴의 다음 대통령 임기 6년 안에는 일어날 것이다. →수학을 전공한 학자인데 어떻게 정치평론을 시작했나. -응용수학 전공자로 군사·전쟁과 관련한 계산 업무를 봤다. 점점 정치·외교에 관심을 뒀고 이 방면의 전문가들도 많이 만나며 정치평론을 시작했다. →푸틴 이전의 지도자인 고르바초프와 옐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고르바초프는 평화적 방법으로 이 나라의 체제를 이양했고, 옐친은 민주주의를 시행했다. 나는 한때 옐친의 지지자였지만 체첸전쟁 등을 두고 의견을 달리했다. 옐친의 가장 큰 실수를 푸틴을 후계자로 삼은 것이다. dynamic@seoul.co.kr
  • [시론] ‘지역주의적 대의정치’의 장벽 넘어서나/김형수 소설가

    [시론] ‘지역주의적 대의정치’의 장벽 넘어서나/김형수 소설가

    세상의 모든 현상에는 진원지가 있다. 강물의 발원지처럼 그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낙동강 육백리의 유장함 속에서 강원도 태백의 작은 연못을 읽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하지만 황지에서 솟는 물이 낙동 대하의 원동력이다. 그 샘이 흐름을 만들고, 그 힘에 떠밀려간 물이 길을 찾는다. 그런 의미에서 지도자란 ‘인기 있는 자’가 아니라 ‘맨 앞에 있는 자’, 즉 길을 찾는 자이다. 인류는 지금 새로운 길 찾기를 하고 있다. 작년에 신세계 질서의 향방을 묻는 세 가지 사태, 재스민 혁명, 후쿠시마 원전사고, 월가 점령 시위를 경험했지만 어디에서도 대안이 제시되지 못했다. 지구의 곳곳에서 수많은 폭동과 시위가 일지만 뚜렷한 주체도, 요구사항도 쉬 파악되지 않는다. 누구도 집단적 신념 체계를 내놓지 못하는, 대안이 고갈된 ‘이후 체제’가 진행 중인 셈이다. 극심한 정치 불신을 겪는 나라가 한두 곳이 아니다. 정당들은 다투어 정책을 세우고 대안을 말하지만 시민들은 믿지 않는다. 이제까지 전대미문의 생산력을 과시해온 신자유주의는 절대 다수를 분배의 자리에서 격리시켰다. 근대정치의 최대 권능을 얻은 국회들은 대의기구와 유권자 사이를 얼마나 멀리 떨어뜨렸는가. 위기와 증상은 있지만 해결책이 없다는 것, 이것이 오늘의 시대정신을 민란으로 몰아가는지 모른다. 다 함께 나서서 어떤 자유를, 어떤 사회를, 어떤 정부를, 어떤 행복을 바랄지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 밖에 답이 있을 것인가? 신기한 것은 물이 흐르는 만큼 세상도 흐른다는 것이다. 진창에서 출현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배제된 자들을 응집시킨다. 최정예 디지털 기기를 장착한 미디어는 놀라운 속도로 고립된 대중을 연결시킨다. 그래서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국가나 파워 엘리트뿐 아니라 똑똑하지 못하거나 바보 같은 군중 에너지도 사회 시스템을 통제, 마비시킨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정치 환경의 본질이다. 한국 정치의 열정은 민간 소통의 가장 낮은 곳에 내려가 민란을 외치던 한 사내의 가슴에서 시작되었다. 한반도의 시골 벌판을 역사의 광야로 삼아 눈보라 속에서 외치던 사람의 처절한 진정성을 생각해 보라. 그 의분에 찬 사내의 발걸음을 따라 산업사회적 간접민주제는 스러져 가고 새로운 형태의 직접민주제가 싹을 틔웠다. 2008년 촛불 때도 보았지만, 온 누리를 뒤덮는 거대한 빛 무더기를 세 갈래, 네 갈래로 쪼개 버린 것이 ‘대의기구’의 참여자들이었다. 한때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민노당 등으로 나뉘었던 정당들은 그 어떤 지류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정치세력인 ‘제5의 당’, 즉 시민대중을 배척한 벌을 톡톡히 받고 있다. 여기서 칠흑 같은 어둠을 깨뜨리며 솟아오르는 달빛처럼 서늘한 민란이 노약한 정당의 손을 잡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 그 민란에 뛰어들지 못해 구체적인 경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신세계의 대중을 움직이게 만든 건 사실이다. 현실정치는 제5세력의 순정이 개입하면서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안철수 신드롬도, 문재인 희망론도, 혁신과 변화의 바람도 모두 그곳에서 현실의 옷을 입었다. 그러나 다들 출구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빛의 범람을 맛본 하늘의 낮달처럼 광휘를 잃은 그것을 편의상 ‘낮달 캠프’라고 부르자. 그 ‘낮달 캠프’가 낙동강을 따라간 것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그동안 합리적 궤도를 벗어난 막무가내의 정견들이 그 강을 따라 전개됐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낙동강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끝에 주목할 만한 대선 후보가 있어서만이 아니다. 모처럼 이 땅에 굽이쳐 온 변화의 열정이 ‘지역주의적 대의정치’라고 하는 낡은 장벽을 넘을지 못 넘을지 판가름하는, 숨가쁜 미래 전망이 거기에 있어서다. 왜 자꾸 잊는가? 지금은 대선 후보에 한눈 팔 때가 아니라 ‘낮달 캠프’의 고투에 주목할 때이다.
  • 적수없는 푸틴 50%대 지지율 회복… ‘차르의 귀환’ 확실시

    적수없는 푸틴 50%대 지지율 회복… ‘차르의 귀환’ 확실시

    글로벌 선거의 해인 2012년의 첫 ‘빅매치’ 러시아 대선(3월 4일)이 6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제사회의 시선이 동토(凍土)에 쏠리고 있다. 민심의 추이를 보면 ‘현대판 차르(황제)’인 블라디미르 푸틴(60) 현 총리의 크렘린(대통령궁) 귀환이 확실시된다. 다만, 완승을 거둬 주단을 밟으며 우아하게 귀환할지 혹은 다른 후보와의 진흙탕 싸움 끝에 먼지만 뒤집어 쓴 채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대선 결과와 분열된 국론의 향후 수습 과정에 따라 러시아의 미래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지난해 연말 불붙은 총선 부정 의혹과 반(反)정부 시위로 40%대로 떨어졌던 지지율을 차근차근 끌어올리고 있다. 현지 여론조사 기관인 브치옴(VTSIOM)이 지난 20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푸틴은 58%의 득표율로 1차 투표 승리가 예상됐다. 2위인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68) 후보는 14.8%를 득표할 것으로 관측돼 큰 격차를 나타냈다. 2000년과 2004년 1차투표에서 대통령 당선을 확정지었던 푸틴이 이번에 결선 투표까지 간다면 권위의 추락이 불가피한데 50%대 지지율을 회복하면서 대선 행보에 ‘파란불’이 켜진 것이다. 푸틴의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적수가 없다. 대선 구도가 ‘올드보이’ 대 ‘올드보이’로 조성됐기 때문이다. 푸틴에 도전장을 낸 후보 중 제1 야당인 공산당 당수 겐나디 주가노프는 이번이 네번째 대선 출사이고,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 당수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66)는 다섯번째 도전이다. 주가노프는 옛소련 때의 향수를 자극하며 “유권자는 푸틴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국가 붕괴로 나아가는 길”이라며 현정권을 비판하지만, 반푸틴 성향 유권자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있다. 유일한 무소속이자 최연소 후보인 미하일 프로호로프(47)도 표심잡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러시아의 3대 재벌인 그는 애초 지식인과 중산층의 폭넓은 지지를 얻어 푸틴을 위협할 듯 보였지만, 한자릿수 지지율에서 답보 중이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프로호르프에 대해 “중산층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푸틴이 내세운 꼭두각시 후보”로 의심하고 있다. 그는 이 같은 주장을 강하게 반박한다. 상대 후보들의 지리멸렬한 대선 행보 덕에 완연한 상승세를 탄 푸틴이지만 방심하지 않고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내며 탄력을 붙이고 있다. 그는 지금껏 언론을 통해 6차례 공약을 발표하면서 ▲교사·의사 등 전문직 소득을 2019년까지 평균 임금의 200% 수준까지 인상 ▲두 자녀 이상 가구에 매달 700루블(약 26만원) 추가 지원 ▲사치세 도입 ▲경찰 급여 대폭 인상 등을 약속했다. 또, 퇴역군인과 청년단체, 노조 등 친푸틴 세력이 반푸틴 시위에 대항해 벌인 맞불시위도 푸틴에게는 큰 힘이 됐다. 인구 70%가 믿는 러시아정교회의 키릴 대주교도 “푸틴이 (대통령과 총리로) 러시아를 이끈 12년은 ‘신의 기적’과 같았다.”며 지원사격했다. 하지만, 푸틴이 당선을 확정지어도 과제가 산적해 있다. 매달 1000달러 이상을 버는 자유주의 성향의 중산층은 푸틴의 ‘독재적 리더십’과 공공분야의 부패, 석유의존적 경제체제 등에 대한 불만이 높다. 대안의 부재 등으로 푸틴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겠지만 여전히 ‘푸틴 없는 러시아’를 꿈꾼다는 얘기다. 푸틴이 이번 대선에서 당선되면 6년 임기를 마친 뒤 2017년 한번 더 출마해 최대 12년 집권할 수 있으나 6년 뒤 연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경제 불평등의 저주 신자유주의 함정에 빠진 美

    경제 불평등의 저주 신자유주의 함정에 빠진 美

    “미국식 신자유주의 반대!” 이 구호, 참 식상하다. 이 구호를 사랑하는 이들은 이만큼 중요한 주제가 어디 있느냐고 항변하겠지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 말을 들은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본산 미국 땅에서 그 때문에 자살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면? 그리고 구체적으로 미국 노동자의 삶이 어떻게 열악해졌는가를 찬찬히 들여다본다면?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에 오를 만한 책 2권이 나왔다. 인권문제에 밝은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에게 추천사를 받았다. “에밀 뒤르켐의 고전 ‘자살론’이 21세기 버전으로 환생했다고나 할까.”라고. 그 말대로다.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 펴냄)는 뒤르켐의 전통에 따라 놀라운 결과를 제시한다.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공식 자살률, 살인율 통계를 봤더니 공화당 대통령 집권기에는 늘어나고, 민주당 대통령 집권기에는 줄어들었다. 공화당이 주장하는 보수정치, 그리고 그 보수정치가 생산해 내는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그 경제적 불평등이 강요하는 수치심이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정신병적·범죄적 성향 때문이 아니다. 저자는 자살과 살인을 ‘폭력치사’(Lethal Violence)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는다. 나 자신이냐, 남이냐 하는 방향만 다를 뿐 극한적 파괴행위라는 점이 똑같아서다. 10만명당 폭력치사율을 나타내는 그래프를 보면 1900년 15.6명으로 시작해 1908년, 1911년이 되면 22.6명으로 늘어난다. 공화당 대통령 집권기다. 민주당 출신 윌슨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이 수치는 1920년 17.4명까지 떨어진다. 그 뒤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줄줄이 나오면서 1929년에는 22.3명으로 늘어난다. 1933년 민주당 출신 F 루스벨트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1941년에는 19명까지 줄어든다. 최근 자료도 매한가지다. 민주당 클린턴 정권은 21.7명이라는 수치를 물려받았으나 2000년에는 16명까지 떨어뜨렸다. 10만명당 기준이라 인구 3억명을 대입하면 통계수치상 1명은 곧 3000명이다. 순누적치를 봤더니 1900~2007년까지 공화당 정부 때가 민주당 정부 때보다 38.2명이 더 많았다. 그러니까 지난 한세기 동안 공화당 대통령 집권기에 민주당 대통령 집권기라면 안 죽었을 수 있는 11만 4600명이 더 죽었다는 얘기다. 예외도 있다. 공화당 출신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민주당 출신 카터 대통령이다. 아이젠하워 때 폭력치사율은 늘지 않았고, 카터 때는 줄지 않았다. 상대당 집권기 사이에 끼어 있어서 추세를 반전시키기 어려웠던 것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이들의 소속 정당은 각각 공화당, 민주당이었지만 실제 정책 방향은 오히려 민주당, 공화당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이 흥미로운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몇가지 문턱을 넘어야 한다. 첫 번째 문턱은 저자다. 광적인 민주당 지지자이냐는 점이다. 저자는 폭력행동의 심리적 메커니즘 연구를 진행한, 하버드대에서 34년간 일했고 이후 뉴욕대로 자리를 옮긴 정신과 의사다. 스스로도 “난 의사지 정치학자나 경제학자가 아니다. 내 관심사와 분야는 삶과 죽음의 문제였지 불황과 선거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힌다. 1977~1992년까지 하버드대 법정신의학연구소장 자격으로 매사추세츠주 내 여러 교도소 수감자들의 폭력치사율을 떨어뜨리는 작업을 실제 진행한 경험도 있다. 이 경험은 책 서술 곳곳에 녹아 있다. 저자는 폭력행위의 원인을 찾다가 20세기 전반에 대한 통계자료 분석에 착수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이렇게 간단할 리 만무하다. 폭행치사 발생률이 단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정치적 꼬리표일 리는 없다.” 그래서 대공황, 2차대전처럼 다른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통계수치를 이리저리 만져 봤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오직 공화당 정부 때만 올라가고, 오직 민주당 정부 때만 내려간다.” 두 번째 문턱은 정당과 폭력치사발생률 간의 관계를 ‘인과’관계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다. 저자는 의학에서 쓰는 ‘복용량-반응 곡선’ 논리를 가져온다. 가령, 담배는 몸에 나쁘고 운동은 몸에 좋다. 꾸준한 운동은 보호요인, 꾸준한 흡연은 위험요인이다. 그러나 꾸준한 운동에도 불구하고 일찍 죽는 사람은 있다. 꾸준한 흡연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잘 사는 사람도 있다. 해서 담배와 건강, 정확히는 폐암과의 인과관계가 법적으로 인정된 적은 없다. 소비자 권리 보호 차원에서 폐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문구를 담배에다 붙이는 게 타협책이다. 다시 말해 의학적 용어를 쓴다면 “공화당 행정부는 폭력치사의 ‘위험요인’으로, 민주당 행정부는 ‘보호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를 통해 정책을 소비하는 유권자 권리 보호 차원에서 말이다. 사회과학적 용어를 쓰자면 “폭력치사율을 올리려면 공화당 대통령이, 내리려면 민주당 대통령이 ‘필요’하지만 공화당 대통령이나 민주당 대통령이 등장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논의에서 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내세워 엄격한 법집행을 통해 범죄율을 낮췄다고 주장하는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이다. 저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줄리아니의 시장 재임기간은 1994~2001년이다. 클린턴 정부 시절 전반적으로 폭력치사율이 하향곡선을 그릴 때다. 미국 전체 평균이 그렇다는 말은, 그 부분집합인 뉴욕의 하락세가 더 크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실제 뉴욕뿐 아니라 다른 곳의 범죄율도 이 시기 동안 급격히 떨어진다. 저자는 범죄를 척결했다는 줄리아니를 두고 “자기가 울면 아침이 온다고 믿는 닭”이라고 부른다. 세 번째 문턱도 있다. 공화당과 보수주의는 늘 법치주의를 내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살인과 자살을 치솟게 할까. 그리고 국민은 안전을 원한다면서 왜 정반대 결과를 낳는 곳에다 표를 줄까. 이 점은 4장 ‘수치심이 사람을 죽인다’와 6장 ‘보수정당 지지자와 진보정당 지지자’를 참고할 법하다. ‘수치심의 윤리’와 ‘죄의식의 윤리’를 각각 정치적 보수, 정치적 진보 성향에 연결시킨다. 이는 이념, 인종 문제와 연결된다. “민주당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국가를 추구한다고 비난하고, 그것은 결국 소련식 공산주의와 빈곤, 전제 정치로 치닫는다고 주장해서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남부전략’(Burbon Strategy)이라는 것이다. 마침내 마지막 문턱에 다다랐다. 미국 이외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을 확인할 수 있을까. 멀리 갈 것 없다. 한국은 자살률이 OECD 1위인 국가다. 가령, 김대중-노무현정권과 이명박 정권하에서 폭력치사율을 비교해 본다면 어떨까. 남부전략을 동서전략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1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어떤 외부적 억압이 있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가져라”

    “어떤 외부적 억압이 있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가져라”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에게는 찬사 못지않게 비판도 많다. 비판의 주된 과녁은 대안이 없다는 것. 푸코는 자유의지와 이성을 가졌다고 뻐기는 근대인들에게 알고 보면 너희들은 부드러운 지배 속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근대사회는 ‘쇠우리’(Iron Cage)와도 같다는 얘기다. 근대인들이 계몽과 해방을 아무리 외쳐봤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대한 규명을 푸코는 지식-권력의 고고학, 혹은 계보학이라 불렀다. 문제는 이 지점이다. 지식-권력의 작동방식을 너무 촘촘히 묘사하다 보니 탈출구까지 막아버린 것이다. ●푸코의 마지막 강의 화두는 ‘파레시아’ 푸코는 정말 탈출구에 대해 얘기한 바가 없는가. 22~23일 이틀간 서울 종로구 화동 정독도서관에서 열리는 푸코 심포지엄 ‘근대 권력의 계보학에서 신자유주의 통치성까지-권력과 저항의 철학자 푸코를 다시 읽는다’는 이 문제를 다룬다. 고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등 프랑스 현대철학에 밝은 8명의 젊은 학자들이 모인다. 이들의 관심은 1970년대 말 이후 푸코의 마지막 행보다. 이 가운데 심세광 성균관대 강사는 ‘미셸 푸코의 마지막 강의 ; 견유주의적 파레시아와 진실한 삶’ 논문을 통해 1983년, 1984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강의에 집중한다. 심 강사에 따르면 푸코는 말년에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화두는 ‘파레시아’(parresia)였다. 파레시아란, 모든 것(Pan)과 말하다(Rein)라는 그리스 단어를 합친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해 다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어떤 외부적 요인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믿는 바를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발언하는 것이다. 좋은 말 같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편치 않다. 자유민에게 주어지는 이 권리는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시민이 자신의 삶 전체를 내기에 거는 위험’이 걸려있기도 하다. 파레시아가 단순히 말하기가 아니라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인 이유다. ●“도발적 스캔들이 탈출구” 푸코는 파레시아라는 단어의 의미가 변하는 지점으로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디오게네스를 꼽는다. 소크라테스는 민회에서 열변을 토하는 대신, 이웃 사람들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얘기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스 시민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배려토록 종용”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스스로가 산파술에 비유한 변증법적 대화기술은 이를 뜻한다. 디오게네스도 기본적으로는 소크라테스와 같다. 연단에서 정치적 열변을 토하는 대신 권력과 기성 질서의 결탁을 비판하면서 군중에게 설교하는 쪽을 택했다. 차이도 있다. 디오게네스는 훨씬 과격하고 거칠며 공격적이었다. 개처럼 살겠다는 견유학파라는 단어처럼 디오게네스는 온 몸으로 ‘한판 생쇼’를 벌였다. 알렉산더 대왕과의 유명한 일화도 거기서 나온다. 푸코가 주목한 것도 이 지점이다. “사회적 가식과 세속적 관습의 이면에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생활의 구체적 진실 속에서 절대적으로 지속되는 것만 찾으려”하는 태도다. 저 멀리 있는 메시아를 기다리거나 완벽한 세상 이데아를 상정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극한으로 이행하는 것’ 그 자체, 이게 디오게네스의 매력 포인트다. 문제있다고 비판하고 논쟁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믿는 그 방식대로 살아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디오게네스의 행위는 하나의 ‘스캔들’이다. 심 강사는 “스캔들, 그것은 담론을 삶으로 대체했을 때 발생하는 것”이라고 요약한다. “도발적인 스캔들을 불러일으키는 개인들로 구축해감으로써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들의 모순에 직면”토록 하라는 것이다. 푸코가 말년에 디오게네스와 파레시아에 집중한 것은 바로 이 스캔들을 탈출구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아무리 쇠우리가 강력해 보여도 여기서 삐져나오는, 스캔들을 감행하는 주체는 있다는 것이다. ●전기 ‘미셸 푸코 1926~1984’도 출간 이에 맞춰 푸코 전기 ‘미셸 푸코 1926~1984’(그린비출판사 펴냄)도 출간됐다. 기자로 푸코와 친분이 깊은 디디에 에리봉이 가족과 주변 친지, 학계인사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푸코를 복원해낸 것인데, 푸코에 대한 디테일한 서술이 눈에 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글로벌 시대] 세계화, 진보의 딜레마인가/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세계화, 진보의 딜레마인가/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백낙청 교수는 1970년대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의미 있는, 그러나 해석에 따라 애매한 명제를 던졌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판치는 글로벌시대에 다시 새겨봄 직한 명제가 아닌가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비준과정 등에서 보여지듯, 보수는 세계화를 특별한 갈등 없이 환영한다. 일반적으로 보수에 속하는 세계적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세계화가 시장의 성장과 부의 증가에 기여했고, 세계화 덕분에 수억명의 인구가 가난에서 벗어났으며, 전 세계적으로 부의 재분배와 기술의 전파가 확산되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세계화를 대하는 진보의 입장은 신중하다 못해 다소 혼란스럽기조차 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진보는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세기 국제적 연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개방과 세계화를 선택하며 역사 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와는 달리 자국의 시장과 경제를 보호해야 한다는 미명 아래 높은 관세와 보호무역을 옹호했던 보수의 입장은 그야말로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세계화에 대해 우호적인 보수의 입장에 비해 진보는 세계화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정체성과 경제, 특히 농업 등 취약한 분야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이런 관점에서 오히려 보수처럼 여겨질 위험에 처해 있다. 세계화가 국가와 민주적 절차를 약화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국제적 분업과 하청으로 노동은 위협받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임금 협상력은 크게 저하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 간 조세 경쟁은 한 국가의 조세 수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자본이 노동에 비해 훨씬 유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금융위기 때마다 많은 국가들은 국제금융제도에 보다 엄격한 규율을 설정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관련 국가들이 모두 동의하지 않는 한 실현이 불가능하다. 세계화의 큰 폐해 중 하나는 양극화 심화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일부 소수에 의한 부의 독식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상위 1%가 국부의 8%를 보유했는데, 현재는 무려 20%에 달하고 있다. 부의 지나친 편중 현상은 당연히 민주주의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그 결과 사회의 불안과 동요를 유발시킬 수밖에 없다. 세계화에 대처하는 진보의 바람직한 입장은 무엇일까? 세계화의 문제점만 지적하며 반대하고 저항하는 걸까? 아니면 세계화를 역사의 한 발전단계로 인식하고, 이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는 걸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전에 국제경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틀 안에서 진보의 진정한 가치와 사회적 약자의 이해관계가 어디에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앤디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와 국가가 부의 지나친 편중을 통제하고, 시장을 민주적 절차 위에 다시 편입하기 위한 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 때까지 세계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급격한 세계화와 국가 간 상호의존도가 날로 높아가는 상황에서 한 국가가 독단적으로 효율적이며 민주적인 정책을 펼치기란 점점 어렵다. 금융시장이 국회보다 한 국가의 경제정책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는 국가 차원에서 세계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지만 다음 두 가지 문제와 맞닥뜨린다. 하나는 세계화가 제공하는 엄청난 잠재성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 운동의 역사에 등을 돌린다는 것이다. 현대의 테크놀로지와 통신수단의 발전으로 경제의 세계화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세계화가 보다 큰 부의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면, 문제는 세계화가 아니라 민주적 원칙과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 시장 질서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비록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라도, 진보가 역사 발전의 방관자가 아니라 선도자가 되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닐까? 이제 가장 세계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를 짚어볼 때가 아닌가 한다.
  • [지금&여기] 버려진 그들의 상처를 감쌀 수 있을까/오상도 산업부 기자

    [지금&여기] 버려진 그들의 상처를 감쌀 수 있을까/오상도 산업부 기자

    회사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할 때면 어김없이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 역사를 지난다. 살을 에는 추위가 한창일 때도 넓게 트인 지하공간에 훈기가 돈다. 중앙 통로를 향해 내뿜는 근처 빵집의 조리기구 열기 덕분이다. 갈 곳 없는 노숙자들에게 이곳은 잠시 몸을 녹이는 쉼터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썰렁해졌다. 중앙 통로에는 카페와 휴게소가 딸린 직사각형 모양의 밀폐공간이 들어섰다. 자정쯤이면 어김없이 셔터가 내려온다. 야박한 서울 인심을 반영하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해진 침낭 밖으로 한 노숙자가 얼굴과 손을 빼꼼히 내밀고 잠이 들었다.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스쳐가며 얼핏 보니 분명 가족사진이다. 한때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음을 말해 주는 증명서나 다름없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우리 삶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했다. 신자유주의와 시장지상주의 풍조가 일상생활과 사고방식마저 바꿔 버렸다는 지적이다. 우리네 현실은 어떠한가. 대기업은 동네상권까지 영역을 넓혀 가며 배를 불리고, 자영업자는 줄줄이 도산하고 있다. 실제 서민생활은 더 팍팍해졌다. 취업난과 살인적인 등록금 문제는 청년들의 절망감만 키우고 있다. 과도한 경쟁은 아이들의 도덕관념마저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우리 사회에 정의와 공정의 바람이 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해법은 없을까. 경제성장의 과실을 일부 계층만 누리는 불평등을 방치하면 사회적 유대는 깨지고 공동체는 해체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 평등과 과도한 복지도 답이 될 순 없다. 번영과 과실을 나누는 인식의 전환은 어떨까. 돈을 푸는 방식이 아니라 소외계층 역시 지역사회의 일원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식이어야 한다. 지난해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사회 깊숙이 박힌 사회병폐를 엿본 것이라고 말했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의 말처럼 지금의 경제위기는 세계화의 위기다. 시공을 초월한 병리현상이 한국 사회라고 예외일 수 없다. ‘88만원세대’와 다문화가구가 늘고 있는 한국도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sdoh@seoul.co.kr
  • “복지정책 남발하면 남미·남유럽처럼 될 수도”

    “복지정책 남발하면 남미·남유럽처럼 될 수도”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지 대책도 없이 복지정책을 남발하면 남미나 남유럽처럼 재정파탄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와 최광 한국외대 교수 등 경제전문가 100명은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권이 퍼주기식 공약 남발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행사는 국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보수적인 우파 경제학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자유기업원이 주관했으며,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최근 정치권이 ‘4·11 총선’과 ‘12·19 대선’을 앞두고 시장경제를 교란하고, 국가재정에 부담이 되는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일단 퍼주고 보자는 식의 공약들이 줄을 잇고 있다.”면서 “특히 저축은행 특별법은 정치적 이해를 위해서라면 경제원칙과 금융질서를 교란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인기영합적 발상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여당과 야당이 내놓은 복지 공약이 대부분 표를 얻기 위한 것일 뿐 구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할 방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뿐만 아니라 인기를 얻기 위해 반기업적 정서를 담은 법안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새누리당의 복지 공약에 대해 “경제 원리를 벗어난 선심성 공약”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고교 의무교육, 초·중·고교생 아침 무료 제공, 0~5세 전면 무상보육,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대표적인 포퓰리즘 공약이라고 꼬집었다.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도 “사병 월급 인상을 주장하면서 사회복귀지원금제를 내세우는 등 구체적인 재원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각종 지원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시론] 나꼼수식 정치, 공공성 확보 시급하다/김용철 부산대 정치학 교수

    [시론] 나꼼수식 정치, 공공성 확보 시급하다/김용철 부산대 정치학 교수

    우리나라도 미디어 정치시대를 실감할 만큼 정치사회와 일반인들 사이에서 뉴미디어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최근 나꼼수 인터넷 방송이 주류 언론들에 버금가는 국민적 관심을 끌게 되면서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비키니 응원 사건 또한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만큼 나꼼수 방송의 국민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터넷 정치의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같은 진보성향의 여성카페 회원들과 여성단체들마저도 연이어 비판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이번 사건은 한 여성 개인의 단순한 정치적 표현이거나 나꼼수 방송 운영자들의 개인적 도덕성과 윤리성의 차원을 넘어서는, 대중매체의 공공성에 대한 심각한 위기를 의미한다. 민주적인 법치국가의 지배원리가 되어야 할 사회적 공공성이 특정 대중매체의 사회동원 수단과 공간으로 왜곡된다면,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정치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공공성과 인간 개별성과의 충돌 문제를, 개인의 과도한 또는 과격한 행위를 기반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어느 한쪽만의 절대적 지지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적 논리는 아니다. 개인의 다양한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기본전제라 하더라도 공공적 가치와 비공공적 가치는 엄연히 구분되고, 사회와 국가는 공공적 가치의 실현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철학자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의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일종의 포퓰리즘적 사회공론화의 과정을 통한 일방적인 의사결정의 진행방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합리적인 논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대중동원식 사회 의사 형성을 또 다른 민주주의의 오류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정치가 기존의 정치 담론의 장을 대폭 확대하고 국민의 정치적 효능감을 상승시켜 정치 참여의 간접적 기회를 부여해 줄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정치적 공공성이 훼손되고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전시정치의 한 형태일 뿐이며 진정한 민주정치 발전에는 도움이 될 수 없다. 이번 사건에 대해 한 개인의 단순한 의사소통행위의 또 다른 표현 방식일 뿐인데 일부 언론들이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인다고 주장만 하고 외부의 합리적 비판에 귀를 막는다면, 사회 공동선의 논의는 출발부터 되지 않는다. 나꼼수 방송은 자신들의 정치적 역량 과시에 신경 쓰기보다 대중매체가 갖는 사회적 공공성이 어떻게 다수 국민과 들어맞을 수 있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현재 이념 간,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양극화되어 가는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다. 사회를 이끌어 가는 소수 엘리트그룹의 잘못은 치유될 수 있고 수정될 수 있지만, 다수의 대중이 그들 자신의 공동체적 가치를 확립하고 지켜내지 않으면 결국 민주주의 이념과도 멀어지고 대중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의 일부 인터넷 정치가 정치권력으로부터 일방적 자유만 강조하고 스스로 자율적 인식의 제재기능을 보유하지 못한다면 올바른 여론 형성의 기능을 수행하기는 어렵다. 이번 비키니 사건은 당사자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것을 정치 이슈로 다루는 방송매체의 냉철한 접근과 인식 수용자세가 필요하다. 기존 정치권력을 견제하고 새로운 사회담화의 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가 있다면 그만큼 더 무거운 사회정치적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대중들이 아는 어떤 정치적 사실이나 내용이 진실이든 아니든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순간 이미 대중에게는 진실로 인식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정치적 공공성은 민감한 정치이슈에 대해 자신들만의 표현형식으로 포장하여 일방적으로 제기할 것이 아니라, 성숙한 시민의식을 토대로 사회구성원 모두의 사회적 합의와 논의를 토대로 확보될 수 있다.
  • [책꽂이]

    ●CIKTMUPS, 패키지디자인의 모든 것 (사사다 후미 지음, 책나무 펴냄) 고객이 쇼핑하면서 제품에 눈길을 주는 시간은 0.2초. 이 찰나적 순간에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서는 제품의 포장이 중요하다. 브랜드 컨설팅 기업인 브라비스 인터내셔널의 사사다 후미 대표는 그래서 제품 포장 디자인을 ‘낚시’라고 말한다. 세계 유수의 제품 패키지를 만든 그가 전하는 디자인 필수요소와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모두 담았다. 1만 2000원. ●건축을 꿈꾸다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안그라픽스 펴냄)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세계 속 도시와 건축, 문화의 연결고리를 전달한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공연히 디자인 놀이로 치닫기보다는 먼저 예전 사람들이 남겨 준 것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라는 심오한 철학을 생생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었다. 1만 8000원. ●멀티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김영사 펴냄)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저자가 다중우주론에 대해 설명했다. 저자는 다중우주가 괜한 헛소리가 아니라 수학적으로 추적한 우주관의 최종 목적지라 주장한다. 덧붙여 이 다중우주의 철학적 의미도 짚는다. 놀랍게도 그것은 인간의 미미함이나 겸손함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긍정이다. 2만 5000원.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 (김병준 지음, 개마고원 펴냄) 노무현정권의 브레인이었던 저자가 썼는데 날카롭다. 분노와 적대감으로 집권해봤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경고다. 이명박정권이 부메랑 때문에 망조가 나듯, 그 이후 들어서는 정권 역시 부메랑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현실정치를 경원시하면서 이상적인 말만 줄줄 늘어놓는 한국 정치 풍토에 대한 경고다. 1만 4000원. ●한무제 평전 (양성민 지음, 심규호 옮김, 민음사 펴냄) 한무제 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시기로 꼽힌다. 동서교역 통로인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북방 흉노를 제압해 안정적인 국가 운영 기틀을 마련했다. 궁형에 처했던 사마천을 중용하는 등 다양한 인재를 등용했다. 책은 ‘사기’, ‘한서’ 등 정사를 비롯해 최근 연구자료까지 아우르며 한무제의 공적과 잘못을 객관적으로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3만 5000원 ●진화와 윤리 (토머스 헉슬리 지음, 이종민 옮김, 산지니 펴냄) 19세기를 빛낸 명문장으로 꼽히는 ‘진화와 윤리’를 최초로 완역했다. 자유주의 과학인의 멘토로 불리는 토머스 헉슬리가 사망 두 해 전인 1983년 옥스퍼포드대 로마니즈 강연에서 연설한 과학과 윤리 문제를 담았다. 19세기 후반 자유방임적 진화를 내세운 자본에서 인간을 보호하고자 제기한 윤리선언인데, 100년이 지난 뒤에도 유효하다. 1만 5000원.
  • “재벌들 일단 세금부터 더 내 쓸 곳도 당신들이 정하면 돼”

    “재벌들 일단 세금부터 더 내 쓸 곳도 당신들이 정하면 돼”

    저자의 제안 가운데 흥미로운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경쟁’ 민주주의 대신 ‘일치’(Concordare) 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경쟁 민주주의란 지금처럼 선거에서 승리한 이들이 정권을 배타적으로 차지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일치 민주주의는 선거 득표율에 따른 권력 분점을 뜻한다. 가령 대선에서 A후보가 60%, B후보가 40%의 지지를 얻었다면 내각의 40%를 B후보 정당에다 떼주는 것이다. 외교·국방은 A후보의 정당에서, 재정·보건은 B후보의 정당에 맡기는 방식 같은 것이다. 이런 제안을 내놓는 이유는 권력을 배타적으로 부여하다보니 정치가 극단적인 말과 이념 쇼를 통해 상대를 매도하는 소모적 공방으로 흐르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진보, 보수할 것 없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비웃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경쟁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다수결 사상은 정당이 지금보다 명확한 세계관과 어느 정도 서로 다른 체제사상으로 차이가 있던 시절에서 기인한 것”인데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차이를 보이는 정당이 있기는 할까 싶은 현 상황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전봇대 뽑고 비즈니스 프렌들리하겠다고 요란을 떨더니 결국 재벌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음미해볼 법하다. 또 하나는 증세에 대한 얘기다. 저자는 부자나 재벌에 대한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단, 증세하되 증가분이 어디에 쓰일지는 그들에게 맡겨두자고 제안한다. 가령 5% 증세를 해서 세수가 10조원 증액된다고 하자. 정부는 이 10조원이 쓰일 곳이 적힌 리스트를 공개한다. 무상급식이나 보육비 지원 사업, 학교폭력 예방 사업, 영어 공교육 지원 사업, 소상공인 보호 사업 하는 식이다. 그러면 A그룹 회장은 자기가 더 내는 세금 가운데 일부는 여기에, 다른 일부는 저기에 사용하도록 지정토록 하고 그에 맞게 집행한다. 이는 이익 분배가 겉으로는 경제논리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논리라는 점에 착안한다면 매우 흥미로운 주장이다. ‘회장님’들은 꼭 검찰청이나 법원을 드나든 뒤 사회공헌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좋다는 사회공헌임에도 대개의 반응은 “일단 세금부터 똑바로 내시지.”라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저자의 제안은 기부금과 세금 사이의 타협이다. 세금이라는 국가 공식 체계를 존중하되, 납세자의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오해는 말길. ‘내 행복에 꼭 타인의 희생이 필요할까’(리하르트 프레히트 지음, 한윤진 옮김, 21세기북스)는 이런 심각한 문제만 다루진 않는다. 2008년 한국에 소개된 ‘나는 누구인가’라는 교양철학서로 인기를 모았던 저자는 경제학이 상정하는 이기적 인간,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반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인간의 본성은 이타적이며, 사회제도는 이 이타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 하는 문제는 복잡하다. ‘죄수의 딜레마’의 게임이론 덕분에 철학, 뇌과학, 신경학, 심리학, 생물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에까지 이 논쟁은 번졌다. 이들 학문들을 연결해 복잡계 연구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나오면서 전방위로 뻗어나가고 있다. 책에도 이는 고스란히 반영됐다. 책은 모두 38장인데, 각 장마다 이런저런 이론과 실험이 최소한 2~3가지씩 등장한다. 저자에게 고마운 점은 독일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글쓰는 철학자답게 이를 매끄럽게 정리해뒀다는 사실이다. 곳곳에 위트도 넘친다. 가령 꼬리말이원숭이 실험결과를 두고 인간 본성에 정의감이 존재하는지를 탐구하다 이렇게 말한다. “아들은 다섯 살이 되면서부터 ‘아빠, 이건 옳지 않아요’라는 말로 나를 공격했다. 그 불공평의 대상은 나다. 아들은 자신이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그때까지 즐거웠던 베개 싸움이 불공평하다고 한다. 대게 네 살에서 다섯 살의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꼬리말이원숭이의 정신이 나타난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이것을 정의감이라 불렀다.” 그래서 책을 덮을 때 떠오르는 인물은 알랭 드 보통이다. 적당한 지적허영에다 이런저런 실험결과를 핵심만 추려 잘 던져주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가 독일 사람이어서인지 알랭 드 보통 특유의 섬세하고 장황한 문장 대신 간결한 문장을 구사한다. 동시에 복잡계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산타페연구소 대신, 영장류에 대한 학제간 연구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가 등장한다. 저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끌어들이지만 본격적 논쟁은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에서 시작한다. 다윈의 오른편에 ‘사회적 다위니즘’을 주장한 토머스 헉슬리를, 왼편에 ‘상호부조론’을 통해 헉슬리를 강하게 비판한 러시아 아나키스트 표트르 크로포트킨을 앉힌다. 보통 아나키스트하면 ‘국가 없이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책 없이 낭만주의적인 공상가’를 떠올린다. 그러나 저자는 동물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각종 실험 결과들이 크로포트킨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는 사실을 지적해나간다. 인간 본성이 이타적이냐, 이기적이냐 하는 문제는 단순한 지적유희가 아니다. 앞서 봤듯 오늘날 한국 사회에 음미할 대목이 많다. 가령 ‘감성 대 이성’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2001년 심리학자 조나단 화이트의 연구결과를 등장시킨다. 그 결과를 보면 ‘나꼼수’ 김어준이 지난해 내놓은 ‘닥치고 정치’(푸른숲 펴냄)에서 ‘무학의 통찰’이라는 이름으로 주장했던, 이성이란 결국 감정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맞닿는다. 인간이 경제에 대해 윤리와 도덕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배후세력의 조종’이나 ‘좌파 관점으로 덧칠된 경제·역사교과서’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으로서의 ‘직관’ 때문이다. 또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찬양하는 바람에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가 미약한 미국에 대해 저자는 “21세기임에도 여전히 19세기적 비스마르크 사회개혁입법조차 하지 못했다.”고 비웃는다. 이는 “미국이 역사가 짧아서 그렇지 결국은 유럽을 따라갈 것”이라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자 재벌개혁론자인 김종인 박사의 판단과 맥을 같이한다. 김종인 박사는 독일 유학파인데, 유학 당시 독일은 질서자유주의(책에서는 ‘신자유주의’라 표기된다)가 대세를 장악했다. 저자는 31장 ‘프라이푸르크로 돌아가는 길’에서 질서자유주의의 본산 프라이푸르크학파를 다룬다. 2만 2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책꽂이]

    ●자본주의적 인간, 중국 남부인(정재용 지음, 리더스 북 펴냄) 중국 성장의 근원을 좇다 중국 남부인들을 만났다. 돈을 신앙처럼 여기다 보니 부와 길운을 뜻하는 숫자에 열광하고 오직 현금만을 받아들이며 풍수를 진지하게 믿는다.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체제 이전에 이들은 이미 자본주의적 인간이었다는 진단이다. 1만 5000원. ●언론이 말해주지 않는 불편한 진실(박종성 지음, 북스코프 펴냄) 미디어 발달에 따라 국제 뉴스는 넘쳐나지만 정작 그 사안의 속살에 대해 조명해 주는 뉴스는 드물다. 익숙지 않은 맥락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단편적으로 던져놓기만 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요원하다. 양극화, 분쟁, 종교, 민족, 환경, 질병 등 6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배경을 설명한다. 1만 5000원. ●유로의 미래를 말하다(조지 소로스 지음, 하창희 옮김, 지식트리 펴냄) 유럽 경제통합은 어정쩡한 수준이다. 경제를 통합하면서 정치 통합은 미루는 방식이어서다. 해서 단일통화경제권을 만들어두긴 했는데 이를 엄격히 관리·감독할 시스템이 없다. 해서 언제든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점은 누누히 지적되어 왔다. 지난 금융위기 때 정확히 드러났다. 헤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는 USA처럼 USE(United States of Europe)를 꿈꾼다면 좀 더 강력한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1만 3000원. ●보수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권력의 탄생, 정치의 몰락(박성민 지음, 강양구 인터뷰, 민음사 펴냄) 정치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면서 수년간 선거를 치러본 저자와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 기자의 대화록이다. 정치에 대한 여러 평이나 말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결론은 투표이고 정당이고 정치인일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1만 4000원.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힘 경제고전(다케나카 헤이조 지음, 김소운 옮김, 북하이브 펴냄) 애덤 스미스에서 케인즈, 슘페터를 거쳐 하이에크와 뷰캐넌에 이르기까지 경제고전에 대한 짧은 평을 달아뒀다. 저자는 고이즈미 내각의 경제개혁을 지휘한 게이오대 경제학과 교수다. 그 개혁으로 말미암아 신자유주의자라 강하게 비판받았다. 해서 경제사상으로 경제현실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분노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1만 5000원. ●만화가 정현웅의 재발견(정현웅 지음, 백정숙·최석태 해설, 정현웅기념사업회 엮음, 현실문화 펴냄) 고등학생 시절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을 비롯해 장정, 삽화, 미술평론 등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펼친 일제강점기 조선의 대표적 예술가 정현웅. 월북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60년 만에 조명한다. 초창기 한국만화를 들여다보고 당시 문화상을 엿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1만 8000원.
  • ‘페북’ 친구들 만난 김총리

    ‘페북’ 친구들 만난 김총리

    김황식 국무총리가 30일 국무총리실 페이스북 친구(페친) 30명과 만나 광화문의 한 김치찌개집에서 저녁을 하며 2시간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15세부터 69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이들 페친들은 김 총리의 대선 출마 의사를 묻는가 하면 학교 폭력, 병역 비리, 양극화 등의 주제를 화제에 올렸다. 김 총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따뜻한 자본주의로 가는 길)을 상기시키면서 자본주의는 겸손해지고 잘못을 계속 고쳐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2004년 광주지법원장 시절 직원들에게 “모순을 계속 수정해 나가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상황이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잘못을 고쳐 가면서 모순을 극복해 온 결과라면서 잘못을 수정해 나가면 희망이 있으니 ‘자본주의 위기’에 불안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총리는 앞서 이날 올린 ‘총리의 연필로 쓴 페이스북’ 글에서 “겸손해야 할 자본주의가 그동안 오만해졌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 총리는 부모님이 양말 공장을 했던 어린 시절을 언급하며 경제적으로 나아졌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행복 만들기 운동을 하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김 총리는 “대선 출마 생각 있으신가.”라는 질문에 “나는 늘 국민들에게 자제해 달라고 부탁하는 처지니 나에게 표를 줄 사람은 없지 않겠냐.”면서 “안 한다.”고 선을 그었다. 김 총리는 최연소 참석자 박모(15)군이 학교 폭력 해결책을 묻자 “여러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며 “2월 6일쯤 관계 장관회의를 해서 총리가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고장난 자본주의’ 글로벌 처방책 서둘러야

    29일 폐막된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는 자본주의가 고장났다는 진단과 함께 ‘거대한 전환-새로운 모델의 형성’이라는 주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포럼은 대안 찾기까지 나가지 못한 채 세계적 경기 침체 상황의 심각성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묘사하는 데 그쳤다. 비관적인 전망일수록 주목받았다. 낙관론자들은 말을 아꼈고 비관론자들은 과거보다 더 강한 어조로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설파했다. 성장과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사회 전체의 만족도를 높이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포럼 참가자들은 뜻을 모았다. 세계 각국이 소득 양극화와 청년 실업 문제에 맞닿아 있음에도 국제적 무역 불균형과 글로벌 재정 위기로 해결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디스토피아’가 10년 이상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이미 세계 인구의 0.5%가 전 세계 부의 38.5%(89조 1000억 달러)를 소유한 상황에 대한 반발은 극에 달했고,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모임인 다보스포럼은 스스로의 리더십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처했다. 결국 올해 다보스포럼은 성장을 위해 새로운 동력을 찾기보다 그동안 불거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췄다. 포럼은 ▲소비와 부채 위주 성장이 아닌 지속 가능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성장 ▲신흥국과 민간 기구 등을 포함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활성화 ▲에너지 등 제한된 자원을 보호하려는 새로운 사고방식 ▲생명과학·인공지능 등 기술 혁신을 통한 삶의 질 제고 등을 전환의 4가지 모델로 제시했다. 당면한 위기인 유로존 재정 위기와 관련해서는 국제 공조의 필요성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유로존 구제기금을 늘리는 게 가장 확실한 방화벽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이 추가 기금 부담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독일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 낼지는 미지수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사설] 다보스 포럼에서 제기된 자본주의 위기

    21세기 들어 지구촌은 정치와 경제 양 측면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여전히 각국을 지배하고 있는 20세기형 정치, 경제 시스템이 21세의 급격한 사회, 문화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징표들은 정치 쪽에서 먼저 나타나기 시작됐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리더십을 잃어가고 있다. 무슬림 지역에서도 ‘재스민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정치 체제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민주주의의 확산이 21세기 정치 시스템 변화의 중요한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변화는 현재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 중인 세계경제포럼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지도자들이 참가하는 다보스 포럼의 올해 첫 토론 주제는 ‘20세기 자본주의는 21세기 사회에서 실패하고 있는가’였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탐욕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 이에 따른 유럽 등의 재정위기, 그리고 각국에서 팽배한 극심한 빈부 격차 등 20세기형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이상 징후들을 국제사회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자본주의에 위기가 왔다고 해서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21세기에 맞는 자본주의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일이다. 다보스 포럼의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신봉자이지만,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한경쟁 체제의 낙오자들을 적절하게 돌보지 못한 데서 위기가 왔다는 진단이다. 따라서 낙오자와 약자를 포용하는 것이 21세기형 자본주의의 중요한 방향이 될 것이다. 그런 체제를 우리 식으로 말하면 바로 복지 정책이다.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복지 논쟁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논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의 선봉에 서 있는 기업들의 인식과 역할이 중요하다. 빵, 커피, 떡볶이 등 골목 상권에까지 진출해 서민경제를 어지럽히는 한국 대기업의 행태가 21세기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 “헤겔철학은 ‘아이티 노예해방’ 영향 받았다”

    “헤겔철학은 ‘아이티 노예해방’ 영향 받았다”

    카리브해 연안의 생도맹그 섬에서 1791년 노예혁명이 일어났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지 2년 뒤였다. 생도맹그 섬은 프랑스의 식민지였을 뿐만 아니라, 설탕 플랜트 산업을 통해 전 세계 식민지 중 가장 부유했던 섬이었다. 아프리카 부족전쟁에서 패배해 노예로 팔려왔던 아프리카 노예 50만여명은 자유를 위해 직접 투쟁에 나섰다. 1794년 생도맹그의 무장 흑인은 프랑스 공화국의 판무관으로 하여금 노예제 철폐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게 했고, 1794~1800년 영국의 침략군에 맞서 싸웠다. 투생 루베르튀르가 이끄는 흑인 군대는 영국군을 물리쳤고, 이것은 이후 세계 최초로 영국이 노예무역을 중단(1807년)하는 데 초석이 됐다. 생도맹그는 이후 나폴레옹군의 침략을 받지만, 1804년 1월 1일 최종적으로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포했고, 노예제와 식민지의 종식을 이뤄냈다. 이로써 프랑스 혁명에서 ‘자유는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한 선포는 프랑스와 유럽을 넘어서, 전세계적으로 완성되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 생도맹그 섬은 현재도 미국 등 강대국의 내정간섭으로부터 신음을 하고 있는 아이티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과 카리브해의 아이티가 무슨 연관이 있다고, 독일 비판철학과 프랑크푸르트 학파 전문가인 미국 철학자 수전 벅모스가 2009년에 ‘헤겔, 아이티, 보편사’(김성호 옮김, 문학동네 펴냄)라는 책을 펴냈을까. 벅모스는 1807년 펴낸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구상의 결정적 동기’가 동시대 지식인들의 말 못할 고민거리였던 생도맹그 섬의 노예해방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흔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노예제를 ‘추상하면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나왔다고 후대 학자들이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지만, 헤겔의 사유와 독서록 등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벅모스의 주장이다. 저자는 유럽 지식인들이 구독하던 월간지이자 발행 부수 3000부였던 ‘미네르바’가 1804~1805년 1년 동안 노예제와 노예혁명에 대한 기사를 무려 100건을 실었는데, 이 책을 정기구독한 헤겔이 생도맹그 섬에서 일어나는 일을 몰랐을 리 없다고 논증한다. 평생을 ‘레날주의자’로 산 헤겔은 레날(1713~1796년) 신부가 쓴 ‘두 인도의 역사’를 통해서도 카리브해 연안의 노예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두 인도란 오늘날 인도를 말하는 동인도와 카리브해 지역의 서인도를 말한다. 헤겔은 이후 1822년에 ‘법철학’에서 “노예로 태어나 주인이 나를 보살피고 기른다 하더라도, 그리고 내 부모와 조상이 모두 노예였다고 하더라도, 내가 자유의 의지를 갖는 순간, 즉 내 자유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에 나는 자유롭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법철학’에서는 노예해방이 ‘인륜적 요구’로 등장하고, ‘주관적 정신의 철학’에서는 아이티가 직접 거론되는 것 등을 볼 때 이미 정신현상학을 쓸 당시 생도맹그 노예해방의 영향을 반영했다고 했다. 벅모스가 헤겔 철학에서 아이티의 영향을 강조하는 것은, ‘자유는 인간의 자연적 상태이자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선포한 바로 그 사상가들이 수백만명에 달하는 식민지 노예 노동자의 착취를 주어진 세계 일부로 받아들였다.’라고 당대의 철학자와 지식인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민족적으로, 인종주의적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일이 자신들이 사는 세계의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하고, 외면했던 유럽 중심의 계몽주의와 서구 중심적 근대화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왜 노예제와 같은 반인륜적인 상황에 대해 침묵했는가. 그것은 상업자본주의에서 초기 산업자본주의로 넘어가는 18세기에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설탕같이 달콤한 이윤에 도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저자가 더 경악하는 것은 당대의 침묵에 대해 헤겔을 연구하던 서양의 학자들도 무려 200년 동안 당대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 제목에 있는 ‘보편사’는 무엇인가. 저자는 서구 중심의 사이비 근대화에서 벗어나서, 보편적인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야 할 탈근대화의 방향은 제3세계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인류 보편의 원리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는 한국에서는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라는 슬로건 대신 ‘지역적 특성을 통해 세계적 행동을 촉진할 것’이라는 제안이 유의미해 보인다. 최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점령하라’와 같은 활동이 일어나는 현상을 볼 때 ‘인간은 자유의 몸으로 태어나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역시 재해석돼야 할지 모르겠다. 신자유주의로부터 벗어날 자유, 자본의 강제로부터 억압된 자유의 해방 말이다. 이 책은 문학동네가 새롭게 기획한 인문총서 ‘엑스쿨투라’(Ex Cultura) 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문화와 세계를 키워드로 다양한 현대 이론가들의 지적 지형도를 펼쳐보여 주겠다는 해외 저작 번역 시리즈다. 1만 8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책꽂이]

    ●계절 밥상 여행 (손현주 지음, 아트북스 펴냄) 여행작가이자 와인 칼럼니스트, 파워블로거인 저자가 전국을 돌며 맛있는 제철 음식과 사람 이야기를 담았다. 봄에는 여수에서 제주까지, 여름에는 전남 증도에서 경북 영주까지, 가을에는 안면도에서 마라도까지, 겨울은 강원도부터 포항까지, 계절별로 맛과 길을 엮어 여행 동선을 그리기에 딱이다. 1만 5000원. ●당신의 목자는 누구십니까? (장석영 지음, 팔복원 펴냄) 서울신문 기자 출신이자 현역 시인인 저자가 신문 사설, 대학 강의를 통해 전하던 신앙 에세이 중 135편을 골랐다. 성경 속에서 깨달은 진리를 통해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1만 3000원. ●나라를 망친 조선의 임금들 (이충래 지음, 청조사 펴냄) 조선은 왜 망했는가. 성리학, 지방관리, 국가권력의 사적 남용…. 다양한 원인 중 저자는 ‘궁방 절수’에 집중한다. 임금이 제 식구에게 면세를 일삼고, 왕실과 그 부속(궁방)에까지 토지를 떼어주는 일(절수)이 파다해지면서 나라가 기울었다는 것이다. 위정자들은 뜨끔할 수도. 1만 2800원. ●마오의 독서생활 (꿍위즈·펑센즈·스증취안 외 지음, 조경희 옮김, 글항아리 펴냄)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뼈대를 만든 마오쩌둥, “사람은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 그는 어떤 책을 읽었을까. 1986년에 출간돼 지금까지 ‘마오 참고서’로 평가받는 이 책은 고전, 문학, 역사, 산문, 영어공부, 혁명기 소련 정치학, 철학서 등 마오의 평생 독서를 한 권에 담았다. 1만 8000원. ●어떻게 살 것인가 (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 정치적·종교적으로 혼돈의 시기였던 16세기 후반, 몽테뉴는 산문집 ‘에세’를 내놓았다. 에고이스트, 회의주의자, 순례자, 자유주의자, 로맨시스트 등 갖가지 수식어를 달고 산 몽테뉴의 생애와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에세’에서 스무 가지 테마를 뽑고, 그 답을 풀어내면서 21세기 현대인에게 삶의 방향을 안내한다. 1만 8000원.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김용진 지음, 개마고원 펴냄) 2010년 11월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위키리크스의 미국 외교전문 25만건 중 한국에 관련된 문서를 심층분석한 종합 보고서. 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아프간 파병, UAE 원전 수주, 론스타와 한·미FTA 등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의 정치·외교라인을 발가벗겼다. 1만 6000원. ●넥스트 컨버전스 (마이클 스펜스 지음, 이현주 옮김, 곽수종 감수, 리더스북 펴냄) 세계 경제를 주도하던 미국와 유럽이 잇따른 위기를 맞으면서 세계 경제 지형도가 바뀌는 결정적인 길목에서 누가 세계경제의 미래를 주도할 것인가. 저자는 중국과 인도, 한국 등을 주목하는 한편 미래 성장과 세계 경제구조 등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등을 심도있게 고찰했다. 2만원.
  • [뉴차이나-시진핑 시대 사람들] (2) ‘공산주의청년단 상속자’ 리커창 상무부총리

    [뉴차이나-시진핑 시대 사람들] (2) ‘공산주의청년단 상속자’ 리커창 상무부총리

    내년 3월 총리에 오를 것이 거의 확실한 중국의 리커창(李克强·57) 상무부총리는 시진핑(習近平·59) 국가부주석과 함께 다가올 ‘시진핑 시대’의 양대 축을 이룰 인물이다. 시 부주석이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 자제그룹)과 상하이방(상하이지역 정치세력 그룹)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리 부총리에게는 ‘퇀파이’(團派·공산주의청년단 출신 그룹)라는 굳건한 버팀목이 있다. 어느 면에서는 시 부주석을 능가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적어도 5년 전까지는 시 부주석을 앞서 있었다. 2006년 12월 뉴스위크는 아시아판을 통해 ‘아시아의 미래 지도자’를 전망하면서 시 부주석 대신 리 부총리를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꼽았다. 제17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대)가 열리기 한 달 전인 2007년 9월까지도 리 부총리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후계자’로 낙점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안후이(安徽)성 동향인 후 주석에 의해 철저하게 ‘준비된 지도자’로 키워져 왔다. 후 주석이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로 일하던 1983년 말 리 부총리는 후보서기로 그와 인연을 맺어 스스럼없이 ‘커창’ ‘진타오’라고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사제 겸 동지 관계를 이어갔다. 리 부총리가 1993년 겨우 38살에 장관급인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에 오른 것도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이던 후 주석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년후 리 부총리는 ‘농업대성’인 허난(河南)성으로 내려가 성장과 당서기를 지냈고, 2004년 12월부터는 ‘동북진흥’의 핵심지역인 랴오닝(遼寧)성의 당무를 주관했다. 이 모든 것은 리 부총리로 하여금 농업대성과 공업대성을 주관한 경험을 갖추게 한 다음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불러 올리려는 후 주석의 배려였다. 리 부총리는 후야오방(胡曜邦)에 의해 착공돼 후 주석이 완공한 공청단 세력의 계승자이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은 그가 ‘시진핑 시대’의 단순한 참여자가 아닌, 과반에 육박하는 지분을 가진 동업자이자 경쟁자가 될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실제 이렇다 할 지지세력이 없었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는 달리 리 부총리는 엄청난 브레인과 힘을 갖추고 있다. 전국 31개 성·시·자치구 가운데 공청단 출신 인사가 당무를 맡고 있는 지역은 18개에 이른다. 리 부총리에 이어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지낸 저우창(周强) 후난(湖南)성 당서기와 후춘화(胡春華)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당서기 등이 떡하니 뒤를 받쳐주고 있다. 리 부총리가 제1서기이던 시절 서기로 호흡을 맞췄던 지빙셴(吉炳軒)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서기, 위안춘칭(袁純淸) 산시(山西)성 당서기, 장다밍(姜大明) 산둥(山東)성장, 류펑(劉鵬) 국가체육총국장 등도 ‘리커창 사단’으로 꼽힌다. 후 주석의 노골적이고도 과감한 발탁에 힘입어 공청단 출신은 당·정의 핵심 포스트를 장악하고 있다. 리 부총리 본인의 출중한 ‘개인 플레이’도 기대된다. 베이징대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모교에서 경제학과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과정 시 제출한 논문 ‘중국 경제의 3원구조를 논함’은 1991년 중국 경제학계 최고상인 ‘쑨예팡(孫冶方)경제과학상’을 수상했다. 저명한 헌법학자 궁샹루이(?祥瑞), 자유주의 경제학자 리이닝((勵以寧) 교수 등의 총애를 받았다. 이처럼 재능이나 학벌·경력, 거기에 후 주석의 ‘후광’까지 모든 면에서 시 부주석을 압도했던 리 부총리가 2007년 전대에서 시 부주석에 밀린 것은 태자당과 상하이방이 시 부주석을 전폭적으로 밀었던 데다, 노골적으로 공청단 세력을 키웠던 후 주석의 ‘부담’이 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리 부총리가 허난성 당·정을 주관하던 시절 에이즈 만연 사건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과 함께 자유주의가 만연한 베이징대 출신이라는 점, 망명한 시민운동가 왕쥔타오(王軍濤), 후핑이(胡平一) 등과 친구라는 점 등도 공산당 원로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리 부총리가 상무부총리 취임 이후 이렇다 할 실적이 없어 왕치산(王岐山) 부총리에게 밀릴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최근 들어 적극적인 행보로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안철수 “정치 결심하고 ‘고민’이라 안해”

    안철수 “정치 결심하고 ‘고민’이라 안해”

    미국을 방문 중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9일(현지시간) 구글의 에릭 슈밋 회장을 만나 한국의 개혁과 변화에 앞장서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안 원장은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구글 본사를 찾아 슈밋 회장과 1시간여 동안 혁신과 상생, 고용, 기부 등을 주제로 환담을 나눴다. 안 원장은 슈밋 회장과의 대화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견해도 풀어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 문제가 대표적이다. 안 원장은 “슈밋 회장에게 물어보니 실리콘밸리에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불공정한 거래를 하는 일은 없다고 하면서 일종의 ‘문화’라고 말했다.”고 소개한 뒤 “정부 규제나 제도보다는 인식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신자유주의 폐단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고용 없는 성장’”이라면서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조금만 관심을 두고 노력한다면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안 원장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기업 생태계와 고용 창출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 것은 정치적 목적에서가 아니냐.’는 질문에 “의도적인 질문이 아니라 기업의 혁신 등을 얘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옮겨 갔을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특히 미국으로 떠나던 날 인천공항에서 “열정을 갖고 계속 어려운 일을 이겨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해 정치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언론의 해석이 나오기도 했는데 안 원장은 이 같은 해석에 당혹감을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안 원장은 “고민을 할 때 고민이라는 단어를 쓴다. 미리 정해놓고 나서 수순을 밟기 위해 고민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게 내 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 원장은 “지금도 고민 중”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안 원장은 9~10일 스탠퍼드대와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서울대 교수 채용을 위한 면접을 하고, 11일에는 시애틀로 이동해 세계 최대 자선재단을 운영 중인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만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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