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자유의지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부자 사망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소비 촉진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방문 진료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美 부담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25
  • “한국 애니 안 된다는 편견 확 깰 겁니다”

    “한국 애니 안 된다는 편견 확 깰 겁니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의 가정집을 개조한 명필름 사무실. 곳곳에 ‘D-8’이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개봉(27일)이 임박한 탓인지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2005년 황선미 작가의 베스트셀러 ‘마당을 나온 암탉’의 판권을 산 지 꼬박 6년. 난산 끝에 ‘옥동자’를 낳았다. 하지만 관객의 평가를 받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제작사인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와 공동제작 및 연출을 맡은 오성윤 감독에게 치열했던 지난 6년을 들어봤다.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1963년생 동갑내기는 대화를 나눌수록 묘하게 어울렸다. ‘짝패’란 꼭 닮아야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1986년 서울극장 기획실에 몸담은 이후 충무로에서만 25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제작자 심 대표는 “명필름이 제작한 꼭 30번째 영화다. 그런데도 기자 대상 시사회 전날 잠이 안 오더라.”고 털어놨다. 어릴 때부터 그림이 너무 좋아 미대(서울대 서양화과)에 입학했지만, 연극에 더 끌렸다. 대학을 졸업한 뒤 애니메이션 기획과 프로듀서로 활동하다가 20여년 만에 ‘입봉’한 오 감독은 “데뷔작이지만 마음은 심 대표와 똑같다.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요즘 설사를 많이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마당’을 먼저 발견한 건 오 감독이다. 심 대표는 “가족영화 소재를 찾던 터에 원작을 읽었다. 출판사에 확인해 보니 오 감독이 구두계약을 맺고 영화 기획에 돌입한 상태였다. 마침 남편(이은 명필름 대표)과 오 감독이 아는 사이인 데다 애니메이션 전문제작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손을 내밀었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실사영화 경험이 많고 배급을 뚫을 수 있는 영화사가 필요했다. 0순위로 명필름을 올려놨는데, 외려 제안이 들어왔으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프로덕션(실사영화 촬영 단계)에 돌입하기 전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심 대표는 “시나리오 작업만 3년이 걸렸다. 한번도 제작일정이나 개봉 시기가 계획과 어긋난 적이 없는데 ‘마당’은 1년이 늦어졌다. 긴 시간을 버티다 보니 자금을 동원하는 파이낸싱 작업도 힘들었다. 작품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메이저 투자배급사가 나서야 했는데 다행히 올 초 롯데(롯데엔터테인먼트)와 얘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마당’의 장점은 수십명의 애니메이터들이 2년여 동안 ‘엉덩이로 그린’(업계에서 ‘애니메이션은 손이 아닌 엉덩이로 그린다’는 말이 있다) 12만장의 밑그림에서 얻은 아름다운 화면이 전부는 아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자유의지와 타인에 대한 배려·희생, 모성애 같은 묵직한 주제의식을 ‘잎싹’과 ‘초록’ 등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녹여냈다. 가르치듯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도록 한다는 게 영화의 또 다른 미덕이다. 심 대표는 “암탉(잎싹)이란 미물이지만, 평범한 인간은 상상도 못할 존재다. (문)소리씨한테 ‘한국 영화 사상 가장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규칙과 질서에 의구심을 갖고 왕따를 불사하면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잎싹의 삶은 미국 할리우드 만화에서 꿈을 이뤄가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고도 했다. 오 감독 역시 “사자(디즈니의 ‘라이온킹’)쯤 돼야 영웅의 면모가 나올 텐데 하찮은 암탉이 정체성을 찾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설정이야말로 평범한 우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다. 선악 구도가 분명한 디즈니나 픽사,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우리만의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마당’의 순제작비는 31억원, 마케팅비용을 더하면 50억원에 육박한다. 150만명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에 이른다. 더군다나 올여름은 ‘트랜스포머3’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 ‘퀵’ ‘고지전’ 등 국내외 블록버스터들까지 맞붙는 상황. 일단 첫번째 목표는 한국 애니메이션 최다관객 기록을 보유한 ‘로보트 태권V’(2007·72만명)를 넘어서는 데 있다. 심 대표는 “100만명만 넘어도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를 새로 쓰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겨야 한다. 그래야 ‘한국 애니메이션은 안 된다’라는 선입견을 없앨 수 있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이어 “부모가 아이의 손을 잡고 가서 보여줄 수 있는 영화라고 자부한다. 물론 ‘애들 영화’가 아니라는 입소문이 나서 젊은 층도 많이 봤으면 한다. 그래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며 웃었다. 오 감독도 “20여년 만에 입봉한 작품인데 손익분기점만으로는 어림없다. 한을 풀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6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으니 또 뭉칠 법도 하다. 심 대표는 “하고 싶다고 되는 건 아니다. 투자자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마당’이 잘 되면 적극적으로 애니메이션을 고민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오 감독은 “몇 작품이 될지 모르지만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이 장르로 자리잡기 전에는 영화사와의 공동작업이 필수다. 명필름과 계속하면 좋을 것 같은데…”라며 심 대표를 슬쩍 쳐다봤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마당을 나온 암탉 2000년 5월 초판 발행 이후 100만부가 넘게 팔린 황선미 작가의 동화를 애니메이션화했다. 알을 얻으려고 길러진 난용종 암탉 ‘잎싹’(목소리 연기 문소리)의 꿈은 한 번만이라도 알을 품어보는 것. 양계장을 탈출하던 날, 잎싹은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족제비를 만나 죽을 뻔 한다. 다행히 청둥오리 ‘나그네’(최민식)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잎싹은 우연히 청둥오리 알을 품어 ‘초록’(유승호)을 아들로 얻는다. 하지만 초록이 클수록 엄마와는 다른 종(種)이라는 데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 여성 107명과 결혼한 ‘나이지리아 87세 남성’

    107명과 결혼해서 자녀 185명을 둔 나이지리아 80대 남성이 미국 일간 LA타임스에 소개됐다. 부인 4명까지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이슬람 율법보다도 훨씬 더 많은 부인을 가진 이유에 대해 남성은 ‘신의 계시’라고 말했다. 나이지리아 비다에 사는 이슬람 주술치료사 벨로 마사바(87)는 침실 89개의 거대한 저택에 살고 있지만 늘 공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현재 마사바는 부인 86명과 자녀 133명 등으로 이뤄진 거대한 가족을 꾸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사바는 107명 부인 가운데 12명과 이혼했고 9명과는 사별했다. 현재 64세의 최고령 부인과 19세의 최연소 부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지난달 태어난 185번째 막내아들도 그의 집에서 자라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많은 인원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지만 싸우는 일이 거의 없이 화목하게 지낸다.”고 마사바는 전했다. 1970년 대 어느 날 ‘영적인 경험’을 통해서 많은 부인을 맞기로 했다는 마사바는 “처음부터 많은 부인을 두려고 작심했던 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신의 계시로 이처럼 많은 여성들과 결혼을 했고,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됐다며 은퇴의 뜻을 밝혔다. 2008년 9월 마사바는 ‘너무 많은 아내를 둔 죄‘로 샤리아법률에 따라서 체포돼 옥고를 치른 적도 있다. 감옥 앞에서 50 여명의 부인들이 남편을 풀어달라고 시위를 벌이고 “자유의지로 결혼을 했다.”는 부인들의 일관된 주장에 결국 당국은 그를 풀어줘야 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에서는 이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마사바가 영적인 치료능력을 맹신해 아픈 자녀들을 병원치료를 받게 하지 않고 있으며 그간 아이들 50여 명이 성장하던 중 사망한 것을 두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편 LA타임스에서 마사바는 “신은 나에게 수많은 여성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줬다.”면서 “내가 그들의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그들이 내 곁에 남아 있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 10일 개최 사실상 불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주민 31명에 대한 남북 적십자회담 실무접촉이 개최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8일 대한적십자사(한적)는 북측에 전화 통지문을 보내 “귀순 의사를 밝힌 4명을 제외하고 27명을 북측에 조속히 송환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27명 송환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재차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는 전날 북한이 “31명 전원 송환”을 요구하면서 “귀순 희망자 4명의 자유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4명과 그들의 가족을 회담장에서 대면하도록 하자.”는 주장에 대한 우리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우리 측은 가족과 대면하는 방식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남북이 주민 4명의 귀순 의지를 확인하는 방법에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함에 따라 10일 열자고 했던 남북적십자회담 실무접촉은 사실상 열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무접촉 장소에 대해서도 북측은 중립국감독위원회에서, 남측은 평화의 집에서 열 것을 주장하고 있다. 남측은 또 통지문에서 4명의 귀순의사를 밝히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 측 지역에서 그들의 자유 의사를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확인시켜 줄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통일부 관계자는 “판문점 자유의 집 등 제3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귀순자 4명을 대면하게 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그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13가지”...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그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13가지”...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경제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를 기록중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저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상식’에 거침없는 메스를 들이댔다.  장 교수는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금융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며,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편다면 성장여력도 충분하다.”면서 “한·미 FTA가 오히려 성장동력을 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90년부터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장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국가의 역할>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을 통해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파헤친 ‘상식의 오류’를 주제별로 질문·답변 형식으로 구성했다.    ●고도성장은 옛날 얘기일 뿐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에서 보듯 현재 한국 경제는 지표와 체감이 괴리되는 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제는 과거 같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주장도 많다. 일각에서는 ‘통큰치킨’ 논란에서 보듯 과거 과감한 설비 투자로 경제 성장에 이바지했던 재벌기업이 이제는 중소 자영업 영역까지 진출하는 것도 한국경제가 성장여력을 없어지면서 나타나는 제 살 깎아먹기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부에선 끊임없이 ‘성장동력이 없어진다, 먹을 게 안보인다’ 하는 비관론을 펴면서 ‘제조업 시대는 끝났으니 금융과 서비스업으로 가야 한다’라고 얘기한다. 근거가 아주 없진 않겠지만, 단순하게 말한다면 성장동력을 찾기 귀찮으니까 자꾸 그런 얘길 하는 것이다. 국가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률 자체는 낮아지는게 맞다. 만약 경제 수준이 높아져서 자연스럽게 성장이 둔화되는 것이라면 그 추세가 완만해야 하는데 한국은 외환위기 이전까지 6% 정도였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히 떨어졌다. 이건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라면서 추진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개혁’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증거다.  ‘중국이 쫓아온다’는 샌드위치론도 말도 안되는 궤변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와 제일 못하는 나라를 빼고는 세상 모든 나라가 언제나 샌드위치 신세다. 중국이 어려운 경쟁 상대라는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가령 태국은 1990년대까지 노동집약을 무기로 한국을 추적했지만 크게 걱정할 게 없다. 임금이 낮은 대신 기술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상대적인 임금 수준도 낮고 기술력도 일정 수준 이상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고 게임 끝났다고 볼 게 아니다. 왜 쫒아오는 국가만 걱정하고 도망가는 국가는 무서워하지 않는지 반문하고 싶다.  중국 추적 때문에 이제는 금융업과 서비스업으로 가자는 얘기가 많지만 그 분야는 이미 선진국들이 단단히 똬리 틀고 앉아 있다. 금융업이 겉보기엔 좋아보여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금융혁신이란 사실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로비를 통해 규제를 완화한 덕분에 생겨난 허상에 불과하다. 그런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더구나 정부가 정말 심각하게 금융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우겠다면 과거 고도성장기처럼 수십년짜리 목표를 세우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 금융허브라는게 지금처럼 적당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부나 재계가 ‘금융업 해서 쉽게 먹고 살 수 있는데 우리가 왜 이 고생하나’ 하는 생각하니까 자꾸 제조업 끝났다는 담론을 확산시킨다. 결국 설비투자하고 기술개발하고 노동자들을 훈련시키는게 힘들고 귀찮으니까 성장동력 없어진다는 얘기가 자꾸 나온다. 언제는 경제여건이 쉬워서 경제발전했나? 언제는 선진국들이 낮잠 자는 틈에 경제성장했나? 충분히 할 수 있다. 불과 수십년 전에 우리는 전쟁으로 모든 게 잿더미가 된 속에서도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1960년대 포항제철 건설할 때를 생각해보자. 전세계가 다 미쳤다고 비웃었지만 결국 해냈다.        ●경제성장을 위해 한미 FTA를 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EU FTA 등 적극적인 FTA 정책을 추진하면서 FTA가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경제규모가 비슷한 나라끼리 FTA를 체결하는 것까지 비판할 생각은 없다. 서로 시장도 커지고 경쟁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규모와 수준에서 차이가 큰 나라와 FTA를 하게 되면 문제가 다르다. 한국은 현재 국민소득도 그렇고 많은 분야에서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생산성이 절반 수준밖에 안된다. 한마디로 시기상조다. 한국이 미국이나 EU와 FTA를 한다면 자동차나 전자 등 일부 분야는 이득을 좀 볼지 모르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이나 농업 등에선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부품소재를 비롯해 한국이 GDP 4만불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산업들의 성장 잠재력을 꺾어 버릴 것으로 본다. 한국이 언제는 FTA 덕분에 고도성장했나. 남들이 미쳤다고 비웃어도 기를 쓰고 기술개발해서 성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미FTA가 갖는 장밋빛 미래를 홍보하는 글을 읽어봐도 한미FTA가 경제성장에 미미한 도움밖에 안되는 것으로 나온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국책연구기관에서 한미FTA 타결시 1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2% 증가라고 했다가 그것밖에 안되느냐는 비판이 나오니까 나중에는 6%로 전망치를 바꾼 전례가 있다. 경제학 예측에서는 변수를 어떻게 가정하고 어떤 모델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그조차도 한미FTA 명분으로 삼기엔 한참 부족하다.        ●기업자금조달 위해 주식시장 활성화해야 한다?    ▶돈줄이 막혔다고 하소연하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주식시장에서 기업 자금조달이 이뤄지지 않고 과거 개발 독재 당시처럼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적극적으로 해주는 간접금융방식도 없어진 지금 어떤 방식이 필요할까.  -외환위기 이전 방식은 은행중심 경제 시스템인 반면 지금은 주식시장 중심 시스템이다 (@@@) ‘기왕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되돌리느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좋은 게 있으면 되살려야 한다. 주식시장을 활성화할 필요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외환위기 이전 은행중심 경제시스템을 되살려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은행은 기업대출을 기피하고 주식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구실을 전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을 떠올려보자. 우리나라 은행은 기업대출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제일은행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에는 총대출금 중 80% 정도가 기업대출이었는데 외환위기 이후 몇 년만에 가계대출이 85% 정도가 돼 버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게 뭘까. 지금 은행들은 엄청나게 손쉽게 돈을 벌고 있다. 소비자한테 주택을 담보로 잡고 대출해준 뒤 문제가 발생하면 차압하는 방식으로 은행이 쉽게 돈벌게 해줘선 안된다.  주식시장도 개편해야 한다. 1972년부터 1991년 사이에 한국의 투자자본 조달에서 주식발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13.4%로 영국(7.0%)이나 미국(-4.9%)보다도 훨씬 높았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은 기업에서 돈을 빼가는 장치가 돼 버렸다. 거기다 인수합병(M&A)을 자유화하면서 세계에서 M&A가 가장 쉬운 나라가 돼 버렸다. 이제는 대기업조차 과거처럼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외국자본이 단기간에 몰려왔다 나가는 과정에서 거시경제까지 불안해진다. 이제는 M&A를 좀 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포이즌필이나 스웨덴·벨기에처럼 차등의결권을 도입할 수도 있다. 독일식으로 노조 대표가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을 골고루 참고하면 된다. 구체적인 방법은 더 논의해야 겠지만 기존 선진국 장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산업정책은 관치경제다?    ▶과거처럼 정부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방식은 쉽지도 않을 뿐더러 사회적 동의를 얻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 정부는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유치산업을 ‘선별’하고 집중 지원했다. 이에 대해 ‘관치경제’라는 비판이 많았다. 선별적 정책이 나쁘다는 얘길 많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기업도 항상 선별을 한다. 모든 계열사에 똑같이 지원하는 기업이 어디 있느냐. 정부가 선별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적절하게 선택과 집중을 하느냐이다. 경제발전 단계와 정책목표에 따라 지원방식이나 지원방향은 달라지게 돼 있다. 개입 방식도 은행을 통할수도 있고 연구개발 지원을 통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규모의 경제를 이용한 대규모 조립가공산업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대기업에게 은행대출을 집중해줬다. 지금 단계에선 부품소재산업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중소기업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물론 초기자본이 많이 필요한 에너지 같은 분야는 대기업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중소기업이 ‘상생’해야 한다?    ▶현재 대기업이나 수출 기업은 엄청난 성장세를 이어가는 반면 중소기업이나 내수 기업은 갈수록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소기업을 보기도 어려워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제도적 대안이 절실해 보인다.  -1966년 상위 10대 재벌 중 세 곳만이 1974년 상위 10위 안에 남았다. 1974년 상위 10위 기업 중에서 1980년에도 상위 10위 안에 들었던 기업은 5곳에 불과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그런 구조변동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문제는 몇 가지 차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첫째, 대기업들이 불공정 경쟁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쟁 상대가 될 만한 기업이 성장하는 걸 막는다거나, 하청기업이 기술 개발하면 납품단가를 깎아서 싹을 잘라 버리는 행태가 존재한다. 규제를 통해 그걸 막아야 한다. 단순히 ‘상생하자’고 말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이 잘 이뤄지는데 마음씨가 착해서 그런게 아니다. 정부가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에 규제를 강화해서 대기업 행태에 제동을 건 덕분이다.  그 다음에는 중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제일 취약한게 부품소재 산업이다. 우리나라 무역적자 가운데 일본과 무역하면서 발생하는 적자가 제일 많은데 그 대부분이 부품소재산업에서 경쟁력이 없어서 발생한다. 더구나 이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진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부품소재 수입의존도가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최근 다시 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은 어림없다. 문제는 부품소재산업은 고도로 특화되고 전문화된 영역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보거나 중소기업들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나서서 고급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 필요한 부분에서 꼭 개발해야 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서 기술개발하도록 보조금을 주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세번째, 정치적 차원을 봐야 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에 침투하는 현상은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지만 한국은 양상이 더 심각하다. 거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과거 사회통합과 평등을 유지하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복지제도에 제약이 많을 때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편으로 편 정책이 바로 특정 영역에서 대기업에게 진입 규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에 식당이나 치킨집이 그렇게 많은 것도 과거 그런 방식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계 유지를 도모해준 덕분이었다. 이게 나름대로 사회안전망 구실을 해왔는데 그 모델이 무너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예전 방식으로 되돌아가서 재벌들이 특정 업종에 진입하지 못하게 막아버리거나 그게 아니라면 진입을 허용하는 대신 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고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다.  서비스업이 생산성이 낮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데 재벌이 진출하면 생산성은 높아질지 모르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처럼 복지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선 경쟁에서 탈락하면 끝장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죽기살기로 저항하고 결국 생산성도 못 높이고 갈등만 첨예해지는 것이다. 내 주장은 차라리 대기업에게 진입을 허용하는 대신 대기업과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 그 재원으로 기본생활권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식으로 일괄타결하자는 것이다. 지금 대기업들은 세금도 내기 싫고 옛날처럼 사업규제를 받기도 싫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박정희식 경제정책은 척결대상이다?    ▶민주화 이후 박정희 정부의 산업정책과 개발계획은 독재시대의 유산으로 취급받으면서 ‘개방과 자유화’가 대세가 됐다. 이를 꾸준히 비판해온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박정희 독재시대를 옹호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그럼 박정희가 잘했단 말이냐’ 하는 식으로 질문하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가 아직도 군부독재의 망령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런건 잘했지만 이런건 못했다는 걸 용납을 못하는 자세, 그런 이분법이야말로 박정희와 그 이후 군사독재가 남긴 가장 해로운 유산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그건 마치 북한에 대해 한 가지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친북 낙인을 찍는 식이다. 그것부터 벗어나야 한다. 박정희식 경제정책의 ‘성공’을 말하는 건 독재를 찬양하는게 결코 아니다. 사실 민감한 문제라는 건 잘 안다. 당시 투옥되는 등 피해를 본 분드링 많다. 선뜻 용납하기 힘든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이분법을 극복할 때만이 군부독재 유산이 청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경제민주화 위해 주주중심 경영해야한다?    ▶재벌을 비판하는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가 ‘극히 일부 주식만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꾸준히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며 참여연대 등이 벌인 소액주주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최근 ‘회사 돈 빼돌리는 총수를 고발하는 시민단체 활동이 뭐가 잘못됐다는 말일까’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재벌 총수의 횡령을 막자는 걸 비판한 적이 한번도 없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강조하는 건 소액주주운동은 국제적 맥락에서 봤을 때 주식으로 돈을 버는 펀드매니저들이 ‘우리도 끼워달라’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국에서 1980년대부터 주주자본주의와 소액주주운동이 강화됐는데 그 이후 기업이 주주들에게 배당하는 비율이 계속 높아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처음에는 전문경영인들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 소액주주운동의 명분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문경영인들의 연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 미국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선 참여연대가 소액주주운동을 사회운동으로 승화시키면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주주자본주의 시대에 주주자본주의 논리를 써서 재벌을 비판하니까 특히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주주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인식시키는 역효과를 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주주자본주의는 문제가 많기 때문에 그걸 조심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비판을 한 건데, 박정희 문제 못지않게 재벌문제도 민감하니까 재벌옹호론자로 오해를 산다. 내 입장은 참여연대가 좋은 일을 했지만 장기적으로 한국 뿐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 해로운 논리를 정의로운 논리로 잘못 인식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걸 비판하는 것이다.        ●사회적대타협은 물넌거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을 통해 국가·자본·노동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를 달성하자는 주장을 펴왔다. 그 제안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보는지.  -현실적 조건을 바탕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 얘길 처음 했던 때는 외국 투기자본이 한국 경제를 잠식하고 재벌조차도 경영권에 위협을 느끼던 때였다. 지금은 그 조건이 많이 달라졌다. 재벌들 자체도 금융자본화 경향이 가속화됐고 정부도 그런 흐름에 동조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6년 전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복지국가를 목표로 제시했을 때 개혁·진보진영에서도 많은 이들이 현실성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어떤가. 복지국가는 기본 전제로 깔고 방법론을 갖고 논쟁하고 있다. 그걸 지렛대로 정치적 타협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 당시 구상했던 사회적 대타협은 힘들겠지만 정신 자체는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본다. 물론 구체적인 방식은 계속 바뀌는 조건 속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재벌들 예뻐서 이러는게 아니다. 지금같은 식으로 그냥 놔두면 재벌들이 제조업은 버려둔 채 금융자본으로 변신하거나 외국 금융자본에게 다 먹히게 된다.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 자본의 출처가 러시아 마피아인지 이탈리아 마피아인지도 불분명한 투자자본이 국내에 들어올 것이다. 그때는 누구와 싸워야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것보다는 정씨 재벌 이씨 재벌처럼 눈에 보이는 대상과 싸우는게 낫다. 자본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재벌들과 타협하는게 낫다. 재벌들 미우니까 재벌 해체하고 외국자본 들여와 견제하도록 하겠다는 발상은 다같이 죽자는 것밖에 안된다.        ●복지제도가 경제성장 가로막는다?    ▶‘더 나은 자본주의’로서 ‘복지국가’를 강조하기만 그 길로 가기 위한 ‘동력’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복지국가의 주체 혹은 동력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그 문제를 지적하시는 분들은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시나리오를 얘기해주길 바라시겠지만 내가 보기에 동력은 말 그대로 모든 국민이라고밖에 얘길 못하겠다. 현실적 조건을 봐야 한다.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복지국가 담론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건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정치세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이 스웨덴처럼 노조 조직률이 80%를 웃도는 나라도 아닌 상황에서 노동 중심으로 복지국가 하자고 해서는 얘기가 먹히질 않는다. 특정집단이 논의 끌어갈 상황이 아니고, 둘째로 논의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서도 우리가 주체다 하는 식으로 얘길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입지가 좁아진다. 중요한 건 국민들이 마음만 바꾸면 안 될 일도 된다는 점이다. 그게 민주국가가 위대한 점 아니겠는가.        ●복지정책은 빈곤층만 대상으로 해야 한다?    ▶무상복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3+1 복지정책을 발표했고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포퓰리즘과 세금폭탄 프레임으로 맞서고 있다.  -일단 ‘무상’이라는 용어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낸다. 반면 의무급식에 대해 ‘부자복지’라고 비난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부자들이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내니까 부자들도 엄연히 복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부자복지’를 문제삼으려면 왜 의무교육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는지 묻고 싶다.  용어 문제를 빼고 민주당이 내세우는 3+1 복지정책은 좋은 방향이라고 본다. 나는 보편적 복지확대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 정부와 여당은 빈곤층을 대상으로한 복지정책만 얘기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결국 부자한테 돈을 뺏어서 빈곤층에게 나눠주는 식이 되기 때문에 미국처럼 복지에 대한 거부감과 조세저항만 높아지게 된다.  복지국가를 위해서는 복지를 잘해야 개인도 더 잘 살 수 있다는 걸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가령 복지가 안 돼서 미래가 불안하니까 우수한 인재들이 안정성 높은 직업을 갖기 위해 의대와 법대로 몰리면서 이공대 기초학문 분야가 어려움에 빠졌다. 복지제도가 없으면 장기적으로 국가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복지가 안되니까 저출산문제가 가중되고, 복지가 안되니까 자녀들에게 엄청난 사교육을 시키려는 과열 경쟁이 벌어진다. 복지가 안되니까 모두가 손해를 보고 있다.        ●대처 총리가 영국병 고쳤다?    ▶영국은 석유산업과 금융업, 프리미어리그를 빼고는 제조업 기반이 무너졌다. 특히 대처 총리의 감세와 복지지출 삭감 등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논거로 자주 거론된다. 제조업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영국 사례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으로 꼽을 수 있는 점은.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시장근본주의,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분들이 ‘대처리즘’을 많이 얘기한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영국병’이란 것은 영국병이란 건 그들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영국병은 실체도 없고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당장 경제성장률을 보자.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영국 경제성장률이 1인당 2% 안팎이다. 대처 총리 등장 이후인 1990년대 평균 경제 성장률이 2.2%이다. 변화가 없다.  대처가 과감하게 복지 삭감했다거나 세금을 엄청나게 깎았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대처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봐도 복지지출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최고소득세율을 엄청나게 깎은 건 맞지만 그건 극히 일부 고소득자에게만 해당될 뿐이고 또 간접세 비중이 늘어나면서 전체적인 세수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 특별히 더 작은 정부가 된 것도 아니다.  대처가 노조를 꺾고 세금은 깎고 금융업 키운 것을 두고 영국을 살렸다고 하지만 따지고보면 대처야말로 영국병의 원인이다. 공기업 민영화의 폐해는 유럽에서 가장 뒤진 철도시설과 설비투자 기피로 나타나고 있다. 빈부격차도 대단히 악화됐다. 영국의 소득분포 최상위 1%가 차지하는 소득 비율이 1975년에 5.37%였는데 1998년에는 9.57%가 됐다. 대처 총리 정책으로 제조업은 다 무너지고 금융 분야만 강해졌지만 그마저도 미국발 금융위기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영국은 지금 앞으로 뭐 먹고 사나 걱정하는 신세다. 물론 대처 이전에 영국 노조에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순 없다. 가령 산업별 노조가 아니라 직능별 노조가 많다보니 한 직장에 노조가 대여섯 개씩 있는 경우도 있었다. 경영진이 노조들과 협상을 마무리해도 노조 하나만 거부해도 파업이 터지는 식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에서 말했듯이 노조가 강했을 때와 노조가 약해진 이후 경제성장률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 대처가 노조를 희생양삼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제와서 어떻게 하느냐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책 속표지에 쓴 “200년 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메모가 화제다. 이 메모에서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라고 썼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것 두세 가지를 꼽아달라.  -먼저 우리나라에 우선 한정시켜 보자면, 우리나라가 부끄러운 세계 1위 (최소한 OECD 1위)를 하고 있는 남녀 임금격차, 주당 노동 시간, 복지 지출(OECD 꼴찌에서 2위, 꼴찌는 국민소득이 우리의 반도 안 되는 멕시코) 등 분야에서도 앞으로 변화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변화가 자동으로 오는 것은 아니고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지만, 10년 전만 해도 정말 깨질 것 같지 않던 한국의 남아선호 현상이 깨진 것을 보면 앞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꼭 있을 것으로 믿는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전에 <사다리 걷어차기>나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이야기했듯이 선진국이 후진국을 압박하는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지금 세계 경제 구조의 변화 속에서 선진국들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그런 속에서 후진국 지위를 방금 벗어나 아직도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두 세계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우리나라가 이 문제에 있어 좀 더 적극적으로 중재자의 역할을 떠맡는다면 이 문제에 있어서 좀 더 빠른 진전이 있을 것이다. 분발을 촉구하고 싶다.        ●경제학은 계량분석만 잘하면 된다?    ▶한국 사회과학계는 미국식 영향으로 계량분석에만 치중하면서 현실 현실 설명력을 잃고 대중들과 괴리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그런 고민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온다. 너무 수학이나 통계 쪽으로만 발전하니까 방향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배우긴 하는데 왜 배우는지 잊어버린 셈이다. 영미 경제학계에서도 교육방법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논의가 있다. 왜 배우는지도 모르면서 계량분석만 배워서는 나중에 길을 잃어버린다. 뭘 배울지 목표를 정하고 큰 그림을 배우고 시작을 해야 하는데 테크닉만 배우니까 그것에 빠져 버리는거다.    ▶그동안 제도경제학에 입각해 한국과 세계 경제를 분석하는데 천착해 왔다. 한국에선 낯선 분야인 제도경제학을 소개해달라.  -쉽게 말해 ‘덜 추상화한다’는게 가장 큰 특징이다. 주류경제학은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추상적인 논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제도경제학은 현실을 좀 더 복합적인 제도의 망과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본다. 기업을 놓고 보면 국가별 차이와 역사적 맥락에 따라 조직형태나 사회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고 접근한다. 역사적 비교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현실을 봐야지 이론만 보면 상상력을 제약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많이 드는 예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자유무역을 중시하면서도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고 대부분 주택을 국가가 공급하고 GDP에서 공공부문 비중도 엄청나게 크다. 어떤 단일한 경제이론으로도 싱가포르를 설명하지 못한다. 현실을 보지 않으면 특정 이론에만 빠지게 되고 그런 눈으로 싱가포르 보면 제대로 설명을 못하게 된다.  사실 제도경제학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제도가 무엇인가를 두고 논쟁할 정도로 대단히 범위가 넓다. 일반적인 흐름은 제도가 경제에 어떤 영향 미치는지,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이다. 나는 거기에 더해 제도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 미치는가를 많이 보려고 한다. 개인은 물론 자유의지가 있고 개인 선택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선택에 영향 미치는 건 어떤 제도적 환경에서 살아가는지에 따라 굉장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스웨덴과 한국에서 똑같이 정부 역할 축소를 말하더라도 그 실상은 전혀 다르다. 같은 환경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관념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이상철 LG U+ 부회장, 신입사원 환영사 ‘사고의 전환’ 역설

    이상철 LG U+ 부회장, 신입사원 환영사 ‘사고의 전환’ 역설

    [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지난 1일 신입사원 환영행사에서 ‘탈통신 세계 일등 기업’으로서의 포부와 신입사원들에게 ‘사고의 전환’을 강조했다.LG유플러스 2011년 탈통신을 위한 새로운 도약의 기반이 될 신입사원을 최종 선발했다.이 부회장은 자신을 LG유플러스에서 9개월 된 선배라고 말하며 “탈통신 세계 일등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LG유플러스와 인연을 맺었다.”고 환영사 운을 뗐다.이 부회장은 이어 “통신회사의 탈을 쓰고는 앞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앞서 나갈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마인드셋(mind-set)을 바꿔야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갇혀 있지 말고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또 “사고의 전환에서 첫 번째가 버림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버리면 그 너머에 있는 큰 것이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이상철 부회장은 특히 “탈통신의 요체는 고객”이라면서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Wants’를 꿰뚫어볼 수 있는 인사이트(insight)를 피력했다.이 부회장은 끝으로 “LG유플러스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과 단단한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LG유플러스가 탈통신 세계 일등 기업으로 도약하는데 일조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이상철 부회장은 이날 신입사원들에게 CEO 집무실을 공개하고 손수 안내하는 시간도 가졌다.한편 신입사원 입문과정은 오는 9일까지 서울 남대문로 본사와 대전 교육장을 오가며 진행될 계획이다.입문교육 핵심과정은 ‘아이디어 페어(Idea Fair)’로 신입사원들은 ‘20~30대 고객층을 위한 라이프 스타일별 U컨버전스 서비스 제안’이라는 주제로 팀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17)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고전 톡톡 다시 읽기] (17)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콜롬비아 출신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장편소설 ‘백년의 고독’은 가상의 도시 ‘마콘도’에 사는 ‘부엔디아’ 가(家)의 백년사를 그리고 있다. 전염되어 퍼져 나가는 불면증이 몰고 온 망각 증상, 어머니에게 자기 죽음을 알리기 위해 먼 길을 돌고 돌아 흐르는 아들의 붉은 핏줄기, 어느 날 빨래를 널다 말고 침대 시트를 타고 승천해 버리는 미녀 등 이 소설은 부엔디아 가문의 21명이 겪는 흥미진진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옛 이야기처럼 재미난 이런 이야기를 두고 왜 작가는 ‘고독’이란 제목을 가져다 붙였던 것일까. 대체 부엔디아 가문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부엔디아가(家)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부엔디아 가문의 선조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진취적이고 성실한 사람이었으나, 집시 무리와 함께 마콘도에 찾아온 ‘멜키아데스’가 내놓은 각종 발명품들에 매료돼 연금술에 빠져든다.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 소리들을 지껄이다 폭주해 버린 그는 아들에 의해 집 뒤 밤나무 기둥에 묶이는 신세가 되고 마는데, 그의 피를 이어받은 탓에 후손들 역시 크고 작은 광기(狂氣)를 보이게 된다. 소설이 본격적으로 광기와 더불어 찾아온 고독을 그리는 것은 이제부터다. 아들 ‘아우렐리아노’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허구한 날 금물고기만 만들다 죽고, 딸 ‘아마란타’는 어느 날 사신(死神)의 방문을 받은 이후부터 자기 수의를 짓다 풀길 반복하고…. 저 같은 행동을 우리는 어떤 식으로 이해하면 좋을까. 고독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본능적 감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떨어져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있어 그것은 늘 함께하는 공기와도 같다. 사람들은 인간은 자유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한다고 곧잘 말하지만, 그러나 그 선택의 순간이 가장 고독할 수 있으리란 사실은 외면한다. 이렇게 볼 때 고독은 치유하거나 타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물론, 원한다고 치유되고 제거되는 것도 아니다.-오히려 함께 생을 살아갈 동료로 불러야 한다. 그런 면에서 광기는 고독과 관계 맺는 독특한 방식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광인은 분명 고독한 존재다. 그들은 물과 어울릴 수 없는 기름, 타자의 시선에 의해 늘 나무 기둥에 비끄러매이는 존재다. 그러나 그들은 고독이 두려워 자신의 욕망을 감추거나 누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고독은 생의 허무로 떨어지는 길이 아니라, 용광로 같은 생 안에서 언제나 함께하는 동반자다. 광인의 선택이, ‘광인 되기’의 결단이 얼마나 고독할 수 있는지는 ‘호세 아르카디오 2세’가 잘 보여준다. 그는 마콘도에 들어온 미국 회사 ‘바나나 공장’의 노동자 파업을 주도하지만, 이 파업은 군대에 의해 처참한 실패로 종결되고 만다. 군대는 노동자를 비롯해 3000여명의 주민들을 광장에 모아놓고 사살한 뒤 기차에 싣고 가 시체들을 전부 바다에 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생존자 호세 아르카디오 2세가 아무리 그 사실을 이야기해도 어느 누구 하나, 심지어 가족조차 그 말을 곧이듣지 않는다. 마치 1980년 5월 당시 광주 지역을 제외한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믿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증인으로 내세우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 한다. 3000명이 넘게 죽었다, 역 앞에 있던 사람이 다 죽었다…. 낮이면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밤만 되면 다시 수상한 자들을 색출해 잡아가는 군부를 피해 그는 멜키아데스의 방에 들어가 숨는다. 아마 이날부터였을 것이다, 그가 광인이 되어 지저분한 몰골로 혼잣말을 하고 웃기 시작한 것은. 그는 죽은 멜키아데스가 생전에 연구실로 쓰던 방에서 4년 11개월 이틀간 바깥 출입 한 번 없이 지낸다. 그가 몰두하기 시작한 건, 멜키아데스가 남긴 어느 양피지의 해독이다.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자들 멜키아데스의 양피지는 부엔디아 가문의 호기심 많은 자손들이 두고두고 손을 대지만 끝내 해독할 수 없었던 비밀의 문서다. 이에 대해 멜키아데스의 혼령은 “백년의 세월이 흐르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 내용을 알아선 안 되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할 뿐이다. 양피지의 내용은 책의 종장에 가서야 밝혀진다. 이제 독자 앞에 서 있는 인물의 이름은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다. 자신의 이모와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기가 지금 막 흰개미 떼들에 실려 개미소굴로 들어가는 현장을 목격한 그는 무언가 깨달은 듯 황급히 멜키아데스의 방으로 달려가 양피지를 편다. ‘이 집안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이고 마지막 인간은 개미에게 먹히리라.’ 멜키아데스가 남긴 양피지에 적힌 것은 부엔디아 가문의 생멸에 대한 예언이었던 것! 그렇다면 양피지에 달려들었으나 끝내 비밀을 캐내지 못한 채 죽은 호세 아르카디오 2세의 모든 시도들은 그저 어리석고 무용한 것에 불과했던 것인가. ●알려지지 않은 예언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될 것은, 멜키아데스의 양피지가 알려지지 않은 예언이었다는 점이다. 이 예언은 부엔디아 가의 마지막 생존자 아우렐리아노 이외의 누구에게도 공개된 적 없으며 앞으로도 공개될 가능성은 없다. 바나나 공장의 파업을 주도하고, 죽기 직전까지 3000여명의 학살을 되뇌던 호세 아르카디오 2세의 선택들을 떠올려보자. 그는 알려지지 않은 예언에 복속된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의 예언을 쓰는 하나의 주체다. 바로 지금 그의 구체적인 행위들 속에 이미 미래의 고독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누군가가 과거에 이미 예언한 미래를 따르는 자라기보단 오히려 지금을 살아냄으로써 양피지에 스스로의 미래를 쓰는 자다. 이렇게 볼 때 부엔디아 가문은 정해진 운명 탓에 고독했던 게 아니다. 그들의 고독은 존재조차 몰랐던 양피지 속 예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순간순간 했던 행위에 의해 조형된 것이다. 그러므로 멜키아데스가 예언한 것은 양피지에 의한 부엔디아 가문의 고독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선택들이 빚어낸 갖가지 고독의 형태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택하느냐다.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이 했던 갖가지 능동적인 시도들과 구체적인 선택들, 그것이야말로 그들 자신의 운명을 만들고 실현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러니 고독한 우리들, 고독을 두려워 말고 그와 더불어 한판 제대로 운명을 만들어보는 게 보다 멋지지 않겠는가! 안명희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한·일 지식인 병합무효 논란 종지부

    한·일 지식인 병합무효 논란 종지부

    │도쿄 이종락특파원·서울 정현용기자│한국과 일본 지식인들은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1910년 체결된 “한일병합 조약은 무효”란 내용의 성명을 동시에 발표했다.<서울신문 5월8일자 2면> 한국의 대표 지식인 109명은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일병합이 원천무효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 지식인 105명도 도쿄 일본교육회관에서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한국 측에서는 백낙청·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영호 유한대 총장,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고은·김지하 시인, 박원순 변호사 등이 서명에 참여했다. 일본에서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 나마무라 마사노리 히도쓰바시대 명예교수 등이 참여했다. 한·일 지식인은 A4 용지 4장 분량의 성명서에서 “한국병합은 대한제국의 황제에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격렬한 항의를 군대의 힘으로 짓누르고 실현한 제국주의 행위이며 불의부정(不義不正)한 행위”라고 선언했다. 또 “조약의 전문(前文)도 거짓이고 본문도 거짓이다. 조약 체결의 절차와 형식에도 중대한 결점과 결함이 보이고 있다. 한국병합에 이른 과정이 불의부당하듯이 한국병합조약도 불의부당하다.”란 내용도 담았다. 성명서는 이런 점을 들어 한일병합 조약을 애초부터 불법 무효로 해석한 한국 정부의 해석이 맞으며, 한국의 독립운동 역시 불법운동이 아니라는 취지의 내용도 발표했다. 두 나라 지식인은 이번 성명을 계기로 양국 정부의 공동성명이나 일본 총리의 담화 발표 등을 촉구했다. 양국 정부는 그동안 1965년 체결된 양국 관계의 ‘기본에 관한 조약’ 가운데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이미 원천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고 선언한 제2조를 둘러싸고 다른 해석을 내놨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한일병합 조약이 과거 일본의 침략주의 소산으로 불의부당한 조약은 애초부터 불법 무효”라고 해석했지만, 일본 정부는 “대등한 입장에서 자유의지로 맺어졌던 것”이라고 주장해 마찰을 빚었다. 양측의 공동성명 작업은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돼 약 5개월간 토론과 논의 과정을 거쳤으며, 우리나라와 일본 측은 5차례 절충 끝에 합의안이 나왔다. 양국간에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junghy77@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푸른수염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푸른수염

    아이들은 동화 속의 이야기를, 선악의 기준에 맞춰 자연스레 벌어지는 일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동화를 끔찍하고 괴상한 무엇으로 여기지 않는다. 동화의 잔혹성에 치를 떨게 되는 건 나이를 먹으면서부터다. 동화가 살벌한 현실의 은유이며, 자신들이 현실을 괴물로 바꾸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서양 전래동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샤를 페로의 글에도 무시무시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죽음과 피가 도처에 널려 있고, 부모는 비정하며, 문 밖의 세상에는 찬바람이 분다. 동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대부분 어린이용인 가운데, 일부 작가들은 동화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내 성인용 영화를 선보이곤 했다. 카트린 브레야의 ‘푸른 수염’도 그런 작품 중 한 편이다. 글의 말미마다 ‘교훈’을 곁들여 삶의 지침서가 되길 바랐던 페로의 의도와 달리, 페로 동화의 고리타분한 성격에 반대 의사를 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푸른 수염’을 호기심의 매력과 위험성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이는 게 보편적인 태도겠지만, 남성의 손에 운명과 구원을 맡기는 여성의 소극성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사이에서 브레야는 ‘푸른 수염’의 기저에 깔린 다양하고 풍부한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기본 이야기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차례 아내를 들이곤 모조리 죽여 버린 거대한 풍모의 남자와, 그와 갓 결혼한 아름다운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얼마 후 남편의 명령을 어긴 부인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브레야는 어쩌다 한국에서 충격적인 표현수위로 알려진 감독이다. 극중 신체의 과감한 노출, 적나라한 섹스 행위로 인해 그녀의 영화는 개봉될 때마다 작은 소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렇지만 그녀의 영화를 무조건 선정적인 작품으로 폄하하거나, 그녀를 도발적인 인물로 단정 짓는 건 부당하다. 브레야의 영화가 도전하고자 하는 건, 남성 권력의 지배 아래 착취 당한 여성의 신체와 이미지, 그리고 여성의 정체성이다. 얼핏 그녀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푸른 수염’의 주제도 다르지 않다. 브레야는, 모두 무서워하는 ‘푸른 수염’ 옆으로 연약한 소녀를 배치한다. 그리고 중세의 극 바깥으로 ‘푸른 수염 이야기’를 읽어주는 현대의 소녀와 언니의 삽화를 병치, 관객이 이야기에 적극 참여하도록 이끈다. ‘푸른 수염’은 여자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시험하는 존재다. 그런데 혹시 여성의 힘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이 그의 이상 행동을 초래한 건 아닐까. ‘푸른 수염’의 연쇄살인은 폭력성과 억압성의 분출이 아닌, 내적 불안으로 인한 제거의 욕망을 뜻할 가능성도 있다는 거다. 그럴 경우, 소녀의 연약함은 쉬 빠지게 유도하는 함정으로 오히려 기능하며, 야수는 상대를 얕본 탓에 역으로 죽음을 당한다. 마침내 소녀는 여성이 느끼는 공포를 남성에게 고스란히 되돌려 주지만, 복수와 반격의 과정에서 남자들이 그랬던 것과 반대로 괴물화를 거부한다. 또한 여주인공이 목숨을 구하는 결말이 원작과 동일한 것과 별개로, 현대의 자매를 빌려 생존의 자격에 따로 제한을 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죽은 남자의 목과 전경을 묵묵히 응시하는 소녀의 초월적인 숏으로 채운 ‘푸른 수염’의 엔딩은 3부작으로 계획된 ‘브레야의 동화 연작’을 계속 기대하게 만든다. 새달 1일 개봉. 영화평론가
  • [씨줄날줄] 아너 소사이어티/함혜리 논설위원

    프랑스의 정치 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은 교도소 실태 조사를 위해 1831년 미국을 방문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시민혁명을 통해 전제정치를 타파하고 자유와 평등을 어렵사리 쟁취한 프랑스와 달리 사회적으로 평등하고 자발적인 참여로 민주정치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크빌은 1835년 발간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인들의 공익을 위한 헌신과 선행을 위한 자발적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미국공동모금회(United Way America)는 선행(善行)을 위한 자유의지의 힘이 미국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는 토크빌의 믿음을 일깨우기 위해 1984년 ‘토크빌 소사이어티’라는 고액기부자클럽을 만들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셈이다. 20명의 회원으로 시작된 토크빌 소사이어티는 367개 지역사회에서 빌 게이츠를 비롯한 2만명의 거부들이 가입해 전세계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거액기부자 모임으로 성장했다. 평균 1000달러 이상의 기부를 한 사람에게 가입자격이 주어지는데 5년간 100만달러를 기부하는 백만달러 원탁회의, 10만달러 이상을 기부하는 전국협회, 여성기부 네트워크, 젊은 리더모임 등 여러 형태의 멤버십을 운영한다. 멤버들은 다양한 사회봉사활동과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사회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로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토크빌 소사이어티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것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다. 2007년 12월 출범한 아너 소사이어티는 개인의 경우 1억원 이상, 법인은 연간 30억원 이상을 베풀어야 멤버가 될 수 있다. 개인 공동회원은 총 23명(비공개 3명 포함)이고, 14개 법인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토크빌소사이어티에 비하면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지만 기부문화가 이제 막 우리사회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 고액기부가 뿌리내리려면 반(反) 부자정서부터 사라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어려서부터 나눔문화에 익숙지 않은 데다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가진 자들을 백안시하는 풍조가 심한 게 사실이다. 소액기부도 중요하지만 고액기부의 파급력에 비교할 바 아니다. 단순히 부를 소유한 것에 머물지 않고 부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다. 거액 기부자가 많아지고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기부자도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CEO 칼럼] 패셔니스타 영부인을 기다리며/이경순 누브티스 대표

    [CEO 칼럼] 패셔니스타 영부인을 기다리며/이경순 누브티스 대표

    미셸 오바마의 패션은 전통적인 영부인의 그것을 넘어섰다. 유쾌하고 스릴이 넘친다. 그래서 미셸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만큼이나 관심을 받는다. 그녀의 당당한 패션은 나이와 시대를 넘나든다. 1950년대에나 볼 수 있는 큰 리본에서 타이트한 청바지, 하늘색의 언밸런스한 카디건, 펑키한 블랙벨트, 코믹한 나팔소매 재킷, 민소매 원피스, 스니커 비닐 운동화, 페이크 진주 목걸이, 일본 ‘사쿠라’ 원피스까지 다양하다. 스패니시룩에서 차이니스룩, 유러피언룩, 컨트리룩까지 5대양 6대주를 넘나드는 미셸의 패션은 튼실한 미국·다양성이 존중받는 미국·자유로운 미국을 대변한다. 파격적이면서도 친근한 그녀의 패션 덕에 미셸은 때로는 여신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때로는 농염한 매력을 발산한다. 재기 발랄한 소녀가 되는 등 변신은 무한하다. 그래서 오바마는 “그녀는 나보다 똑똑하고, 나보다 강하고, 확실히 나보다 근사하다.”고 말한다. 그녀의 캐시미어 코트에 기대어 비행기 안에서 잠든 오바마 부부 사진을 보면 그녀만 있으면 오바마가 담요도 필요 없이 만사형통할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든다. 안락함과 평화로움에 기대 미국 시민의 행복을 꿈꾸는 대통령 부부의 모습이 그들의 패션코드에 담겨 있다. 미셸 덕분에 미국의 디자이너들도 행복할 것 같다. 자신이 구상한 노란색 러플 재킷에 어울리는 초록색 장갑과 초록색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코디를 부탁하는 미셸을 그려보면 미국 디자이너들이 부럽다. 게다가 현재 미셸이 만나서 의뢰하고 대화하는 미국의 디자이너들은 모두 다른 국적을 갖고 있다. 이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달려온 그녀의 내면 이야기와 맞아떨어진다. 흑인이자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차별에 좌절하지 않고, 희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온 그녀이기에 이미 유명한 브랜드는 식상하다. 자신의 생각을 들어주고 함께 의논하고 변죽을 맞추는 상상력이 풍부한 디자이너가 미셸에게 어울린다. 1950년대 재클린 케네디는 당대의 패셔니스타로 유명했다. 재클린이 애용한 구치 핸드백은 아예 재키백으로 불리고, 루돌프 발렌티노와 랠프 로런 등 유명 디자이너들도 재클린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셸은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지도 않고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시카고의 디자이너 마리오 핀토에게 5년 동안 도움을 받았고, 지금도 멋진 색상과 원단의 도움을 얻어 디자이너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다. 워싱턴의 패션 에디터인 로빈 지브한은 미셸을 “멋을 알고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진정한 패셔니스타”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 우리나라 역대 영부인의 옷에서 자유의지나 재미, 스릴을 찾기는 좀처럼 힘들다. 한복을 입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철갑을 두른 듯 지루하거나 답답한 감도 있었다. 이제 김윤옥 여사가 당당하게 꽃무늬 블라우스로 대중을 들뜨게 하고, 가죽 재킷을 카리스마 있게 걸치면 어떨까. 점자원단(브레이얼) 블라우스로 따뜻함을 표현하고 자라나는 디자이너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어떨까. 동대문의 하얀 레이스 원피스를 손수 쇼핑한 영부인 덕에 한국 아줌마들이 하얀 레이스 드레스를 따라 입는 해프닝을 기대해 본다. 후대에 패션 아이콘이 되고, 많은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린 영부인으로 기억된다면 한류를 만드는 것은 물론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것이다. 이경순 누브티스 대표
  • ‘루저발언’ 여대생 “대본대로 했을뿐…괴롭다”

    ‘루저발언’ 여대생 “대본대로 했을뿐…괴롭다”

    “‘루저’ 발언, 경황없어 대본대로 따른 것” KBS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의 지난 9일 방송분 중 ‘루저(loser) 발언’이 네티즌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는 가운데, 당사자인 이모씨가 재학 중인 홍익대학교 커뮤니티에 사과글을 올렸다. 이씨는 12일 새벽에 올린 ‘홍익대학교 모든 분께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경솔하고 신중치 못했던 행동 때문에 너무나 많은 피해를 입고 분노를 느끼신 분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미수다 방송 이후 네티즌들은 홍익대학교를 ‘루저대학교’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을 ‘루저입구’로 패러디 하는 등 이씨 외에 재학 중인 학교에도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왔다. 이글에서 그는 논란이 된 발언이 대본에 적힌 대로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0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해명한 것과 같은 내용이다. 이씨는 “미수다 작가들에게 받은 앙케이트에 OX형식으로 짧은 답을 했고, 그것을 참고해 만든 대본으로 녹화를 했다.”면서 “낯선 상황에서 대본에만 충실했다.”고 발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물론 22살의 자유의지가 있고 사리판단 능력이 있는 대학생이 사리분별 못하고 대본을 그대로 따른 것은 전적으로 제 잘못”이라며 책임을 인정했다. 이씨는 방송이 나간 후 자신과 주변인들이 겪은 어려움도 털어놨다. 그는 인터넷 상 루머와 악플들과 관련해 “저 때문에 아무 죄 없는 가족들과 친구들도 함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자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썼다. 끝으로 이씨는 “학교와 학과명이 나가는 상황에서 행동과 발언들은 너무 신중치 못했다.”고 거듭 사과하며 글을 맺었다. 한편 여성 아이돌 그룹 포미닛의 현아는 논란이 된 미수다 방송보다 앞선 지난 7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키가 작아야 한다. 173cm를 넘으면 안된다.”고 답한 것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에 올랐다. 사진=이씨 사과문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에라스뮈스 프로그램/함혜리 논설위원

    유럽을 휩쓸었던 종교개혁의 와중에서 철저하게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던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1466∼1536). 네덜란드 로테르담 태생의 로마 가톨릭 사제였던 그는 로마 교황청의 부정부패와 성직자들의 권한 남용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해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관념을 지지했다. 에라스뮈스는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학문을 연마한 선구자적인 ‘유럽인’이었다. 1495년에는 프랑스 교회 개혁의 중심지였던 파리대학의 몬테귀콜레주에 유학했고 1499년에는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존 콜렛의 성서연구법에 심취하며 그리스어를 익혔다. 1506년부터 4년간 이탈리아에서 보내며 토리노대학을 졸업하고, 베네치아에서 일하며 자연철학자들과 교류했다. 이후 벨기에 루벤대학을 거쳐 스위스 바젤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럽연합(EU)은 1987년 국경과 종교, 언어를 초월해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학문을 연마했던 에라스뮈스의 이름을 딴 ‘에라스뮈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EU회원국 대학생들은 재학기간 중 1∼2학기를 다른 유럽 국가의 대학에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다. EU회원국이 아닌 나라까지 포함해 31개국 4000개 대학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장학금도 지급하고, 공부하러 갈 회원국의 언어교육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매년 18만명의 학생들이 혜택을 누리는 이 프로그램은 EU의 실질적인 통합에 가장 기여한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언어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젊은이들이 모여 수개월 동안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개별국가의 국민이 아니라 ‘유럽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젊은이들은 ‘에라스뮈스 세대’라고 불린다. 통합유럽의 주인공들이다. 한·중·일 세 나라가 아시아판 에라스뮈스 프로그램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학문의 서양 종속화, 미국으로 집중된 유학 수요를 흡수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세 나라 젊은이들의 상호교류를 통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아니라 ‘동북아인’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공동체를 이끌어갈 동북아 세대의 등장이 기대된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게이머 눈으로 영화 ‘게이머’ 봤더니

    게이머 눈으로 영화 ‘게이머’ 봤더니

    영화 ‘게이머’의 제작진은 꽤 영리하다. 그간 게임을 소재로한 영화가 게임 마니아들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한 한계점을 독창적인 이야기로 풀어내 호기심을 달궜으니 말이다. 가까운 미래, 전세계인이 열광하는 차세대 온라인 총싸움게임 ‘슬레이어즈’ 속에서 사람이 사람을 조종해 게임을 진행한다는 이 영화의 설정은 제법 구미를 당긴다. 미래 이야기를 그렸지만 실제 온라인게임 속에서 있을 법한 다양한 애피소드를 소개해 미래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도 최소화했다.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 왕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제라드 버틀러가 시종일관 현란한 총싸움 솜씨를 뽐내는 이 영화는 상영 내내 관객들로 하여금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 영화는 30판 완승을 전제로 주인공 케이블 역의 제라드 버틀러를 사형수간 피도 눈물도 없는 사선으로 내몬다. 실제 게임과 맞닿은 영화 속 전투 장면은 1인칭 시점의 총싸움게임(FPS) 방식을 다뤘다는 일반 정보와 달리 대부분 3인칭 시점의 총싸움게임(TPS) 방식으로 소화했다. 주인공이 사투를 벌이는 과정 속에 데이터 저장지점을 뜻하는 세이브 포인트가 엿보이고 영화 종료 후 게임 오버 문구가 등장해 게임 마니아 입장에서 반가운 볼거리도 제공한다. 하지만 게임이란 소재에 집착한 나머지 영화로서 가져야 할 이야기 구조는 미약하다. 주변 인물들의 도움으로 자유의지를 허락 받은 주인공이 게임을 벗어나 실제 공간에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고군분투하지만 그의 총구를 따라가면 이야기의 끈을 놓이기 일쑤다. 주인공이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그토록 바라던 아내와 딸을 되찾는다는 결말도 초중반 내용 전개에 비해 급속히 이뤄져 이야기의 동력을 잃는다. 여기에 핏빛 서린 거친 액션과 성인 취향의 볼거리에 함몰된 주변 인물들의 개성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 미국 TV드라마 ‘덱스터’로 이름을 떨친 마이클C.홀이 영화 속 악역으로 분했지만 뚜렷한 색을 갖지 못한 채 일반적인 악당의 수준에 머물고 만 것은 대표적인 예다.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게이머’는 디지털 시대, 게임 마니아와 신세대 관객의 이목을 위한 영화다. 새로운 소재 접근과 영화적인 완성도 측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거듭하고 있지만 게임과 영화의 또 다른 공존법을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사진 = 영화 ‘게이머’ 스틸 이미지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돈에 예속되는 자유 그 안에서 병들어가는 현대인

    돈에 예속되는 자유 그 안에서 병들어가는 현대인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은 누구 편에서 읽느냐에 따라 이야기 서사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야기의 얼개는 착한 노총각 나무꾼이 어느날 사냥꾼에 쫓기던 사슴 한 마리를 구해주고, 그 대가로 예쁜 선녀가 목욕하고 있는 옥녀탕에 대한 따끈따끈한 정보를 받는다. 사슴은 그 중 한 선녀의 날개옷을 숨기면 선녀가 하늘로 올라갈 수 없으니 나무꾼과 결혼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슴은 또한 둘 사이에 아이가 셋이 될 때까지는 나무꾼이 파놓은 함정에 대해 고백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나무꾼은 아이 둘을 낳고 나자 마음이 풀어졌는지, 또는 양심의 가책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과거를 고백한다. 다음날 아침 개운한 마음에 일어난 나무꾼은 날개옷을 입고 아이 둘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아내를 발견하고 목을 놓아 운다. ●소비욕구=자기파멸적인 욕망의 충족 이 전래동화의 교훈으로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든지,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를 손꼽는다면 나무꾼의 입장에서 서사구조를 지켜본 것이다. 선녀 입장으로 돌아가면 그 결혼은 원천 무효다. 양쪽이 자유의지를 가진 대등한 관계에서 결정된 결혼이 아니라 선녀의 날개옷을 나무꾼이 불법점유하고, 거짓과 속임수로 완성된 결혼이기 때문이다. 특히 선녀의 날개옷은 평범한 의상이 아니다. 날개옷이 타인이 침해할 수 없고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선녀의 자유의지를 표상하는 것이라면, 자유를 되찾은 선녀는 나무꾼과 같이 살 이유가 없다. 나무꾼과 사슴의 관계도 되돌아봐야 한다. 나무꾼이 진정 착한 나무꾼이었다면, 착한 일을 한 뒤 사슴이 제공하는 은밀한 정보를 듣고, 불같이 화를 냈어야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한 착한 일에 대해 왜 너는 불법적인 일을 하라고 제안하느냐.”고 말이다. 사실 이같은 은밀한 거래는 뇌물과 같은 것이라, 슬쩍슬쩍 넘어가 이익을 취하다 보면 부패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선녀와 나무꾼’을 통해 ‘상처받지 않을 권리’(프로네시스 펴냄)의 저자 강신주씨는 ‘산업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현대인이 처하고 있는 상황이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와 비슷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날개옷(자유)를 잃어버리고, 자신이 자유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세속적인 삶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하에서 자유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노동을 팔 수 있는 자유와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소비할 수 있는 자유, 소비로 탕진해 다시 노동을 팔아야 하는 자유로, 돈에 예속되고 복종하는 자유라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생존 비결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노동을 팔게 하기 위해 화려한 도시의 윈도와 불빛, 멋진 점원 등을 활용해 돈을 쓰도록 유혹하고 욕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자본주의 안에서의 소비욕구는 자기파멸적인 욕망의 충족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암세포처럼 번식하는 욕망은 우리의 소비 욕망이 치열해질수록 자본의 힘을 강화시킬 것이고, 그 안에 사는 우리의 삶은 점차 병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물신주의에 푹 빠진 인류는 내세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신(神)을 현세의 행복을 약속하는 돈으로 대체하고, 교회를 은행으로 바꾸고, 간절한 기도 대신 저축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자유를 꿈꾸면서 자본에 묶인 현대인들은, 또한 산업자본주의가 낳은 대도시에 살면서 다른 한편으로 지독한 고독과 권태를 경험한다. 인격과 인격을 교환하는 방식이 아니라, 돈과 물건을 교환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란 비인격적·비개성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어쩌다 들른 편의점의 늙수그레한 점원이 젊고 버릇없는 고객에게 단 한마디라도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이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진 젊은 고객을 충고하는 점원을 피해 다른 가게로 옮겨가게 할 뿐이다. 이런 대도시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누리기 위해서 사람들은 상호무관심과 속내 감추기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조건이 우글거리는 군중 속에서 쓸쓸함과 권태를 느끼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현대인들이 가정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도 간명하다. 대도시의 익명성에 익숙한 개인들이 가정이라는 간섭과 충고가 가능한 세계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삶에 대한 철학적 분석·진단 선녀와 나무꾼과 같이 익숙한 동화를 통해 자유의 문제를 돌아보는 저자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 거리두기를 통해 현대인들의 좌표를 확인해보고자 했다. 우리 내면을 탐색하고 성찰함으로써 현재 자본주의적인 삶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성찰의 방식은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모던보이인 시인 보들레르, 20세기 경성의 모던보이인 소설가 이상의 감수성을 철학자 벤야민과 지멜을 통해 분석했다. 인간의 허영과 욕망을 노래한 시인 유하와 투르니에의 사유를 철학자 부르디외와 보들리야르를 통해 진단했다. 보들리야르의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실제의 물건이 아니라 ‘기호소비’”라는 진단은 유효하다. 저자는 노동자가 소비자로 환치되는 사회가 아니라, 노동자가 자본가로도 환치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한다.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지역교환거래제도)의 도입 등을 짧게 다뤘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2009 ‘우수 저작 및 출판 지원 사업’ 교양부문 선정작이다. 1만 7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문명사적으로 살펴본 기독교 탄생 과정

    서구사회의 체계나 의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기독교. 오늘날 전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은 신약성서로 불리는 똑같은 기독교 경전을 읽는다. 대부분 공통의 교리를 공유한다. 또한 비슷한 의식을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예수가 등장한 뒤 1~2세기에 걸쳐 기독교인들은 다양한 집단 속에서 다양한 전통을 이뤘다. 또 창세기나 예수, 그가 남긴 메시지를 서로 다르게 이해했다. 미국의 종교사학자인 일레인 페이걸스 프린스턴대 종교학과 교수는 1988년 출간한 ‘아담, 이브, 뱀-기독교 탄생의 비밀’(아우라 펴냄)을 통해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초창기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해석했고, 소수의 종파로 숱한 박해를 받던 기독교가 ‘밀라노 칙령’으로 공인되고 헤게모니를 잡은 뒤 어떻게 바뀌게 되는지 등을 조망한다. 1945년 발견된 나그하마디 문서의 해석으로 유명세를 치른 지은이는 이 책 외에도 ‘사탄의 기원’(1995년), ‘도마복음의 비밀’(2003년) 등을 내놓으며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 지은이에 따르면 예수는 당대의 급진주의자였다. 결혼이나 성, 동성애, 남성이나 여성의 매춘, 이혼, 낙태, 피임, 원치 않은 유아의 유기를 용인하던 사회를 뒤흔든다. 예를 들어 유대 교사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관련해 자손을 퍼뜨려 번성하는 것을 결혼의 목적으로 봤다. 때문에 불임으로 인한 이혼이나 일부다처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예수는 그러나, 자식을 낳아야 하는 의무를 무시했고 이혼에 반대했으며 일부일처제를 은근히 옹호했다. 특히 공동체에서 신성시하던 가족에 대한 의무도 던져버리라고 설파했다. 지은이는 “기독교는 원죄에서 벗어나려는 남녀에게 독신 생활을 권장하고,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위해 일상의 가족생활을 포기하라고 독려해 전통질서를 붕괴시켰다.”고 말한다. 그런데 급진적이고 금욕주의적인 예수와 바울을 열렬하게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이 기독교 대중화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해 훨씬 온건한 예수와 더 보수적인 바울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경쟁하게 된다. 극단적인 어법을 완화하고 새 어구를 과감히 덧대 예수를 급진적 설교자에서 가정 생활을 후원하는 부드러운 성자의 모습으로 둔갑시킨 쪽이 결과적으로 승리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자유의지를 가진다는 믿음을 퍼뜨려 억눌린 자들에게 호응을 얻었고, 박해자에 맞섰던 기독교는 4세기 들어 대전환기를 맞게 되자 또 다른 변신을 한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개종하고, 기독교가 합법화되는 등 기독교가 지배자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자 인간의 자유보다는 통제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과거의 이해와 방식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의 죄가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왔고 인간은 도덕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가질 수 없게 했다는 ‘원죄’를 강조하며 인간에 대한 국가와 종교의 통제를 인정한다.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또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며 논쟁을 벌인 사람들은 이단으로 몰려 사라진다. 1만 4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길섶에서] 자유여! /이춘규 국제부 선임기자

    대다수의 한국 남성들은 두발 자유에 대한 추억이 한두 가지는 있다. 초등학교까지는 부모님의 의지에 따라 두발 형태가 좌우된다. 중·고교 시절은 대부분 학교 의지가 우선이다. 어기면 처분받기 일쑤다. 이어 취직하거나 대학생이 되면 자유다. 군에 입대하면 국가의 의지에 따라 짧아진다. 장발단속 시절도 있었지만 이후는 거의 자유다. 개인의 자유의지가 최우선이라 두발 자유의 소중함은 자연 망각하게 된다. 하지만 직업군인들의 세계는 달랐다. 35년여 국가의지로 머리가 짧았던 군 시절 상사분이 최근 군문을 떠나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50대 중반에 생애 처음으로 자유의지에 따라 단행했다. 초급장교 시절엔 장발단속에 걸린 또래들이 부러웠을 정도란다. 단골 이발사에게 단계적으로 멋진 긴 머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놨다고 했다. 군 시절 부대에서 연극제를 열어줄 정도로 예술 애호가다. 예술가 같은 멋쟁이 머리 모양으로 다시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 사소한 자유라도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이춘규 국제부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셰익스피어에 빠진 소년의 고민

     열 네 살은 늘 괴롭다.어린이도 아닌,어른도 아닌,청소년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어른들 세계를 기웃거려도 보지만 집과 학교에서 부모와 선생의 간섭은 여전하다.하지만 어느새 훌쩍 커져 있는 마음의 키높이를 볼 수 있게 된다.  ‘수요일의 전쟁’(게리 슈미트 지음,김영선 옮김,주니어랜덤 펴냄)은 1967년 가을과 1968년 여름 미국을 배경으로 그 무렵 아이들이 겪는 성장통과 갈등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펼쳐낸다.미국 최고 청소년문학상으로 꼽히는 ‘뉴베리 아너상’,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우수도서 등을 휩쓴 ‘수요일의 전쟁’은 카밀로 중학교 7학년(우리의 중학교 2학년) ‘홀링 후드후드’의 얘기다.본의 아니게,수요일 오후마다 다른 친구들이 종교수업을 들으러 간 사이 선생님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다가 ‘곰팡이와 먼지 냄새가 나는 셰익스피어’를 소개받는다.그리고,셰익스피어에 푹 빠지게 된다.  “장래를 내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다.…잔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햄릿에 나오는 구절)을 뚫고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볼 기회가 아예 없을까봐 두려워요.”  셰익스피어를 읽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주시하며 끊임없이 고민했던 후드후드는 이미 ‘주체적 자유의지’의 정수를 꿰뚫어버렸다.의젓하게 성장한 열 네 살이다. 중·고등학생은 물론,독서 지도가 곁들여진다면 초등학생도 유익하게 볼 수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남녀상열지畵’ 통해 위선적 사회 조롱

    ‘남녀상열지畵’ 통해 위선적 사회 조롱

    신윤복 作 ‘월하정인´  ‘신윤복(申潤福·1758~?)자 입부(笠父),호 혜원(蕙園),본관 고령(高靈),첨사 신한평의 아들.벼슬은 첨사다.풍속화를 잘 그렸다.’  한국 역대 서화를 감정하고 고증하는 데 있어 권위를 인정받는 서예가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의 한 대목이다.조선 후기의 대표적 풍속화가인 신윤복이 역사와 접점을 이뤘던,단 두 줄의 짧은 기록이다.그리고 200년 남짓 흐른 지금 신윤복을 둘러싼 광활한 여백은 후세의 숱한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가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TV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영화 ‘미인도’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바람의 화원 1,2’(이정명 지음)도 베스트셀러 목록의 윗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소설 신윤복’은 그 와중에 출간됐다.작가는 1990년대 초반 ‘십우도’,‘탄트라’ 등 불교소설을 쓰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가 한동안 뜸했던 백금남이다.  그는 최근 2년 동안 그림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소설 신윤복’은 조선후기 회화사 3부작 시리즈의 2부에 해당한다.1부는 이미 출간된 ‘샤라쿠 김홍도의 비밀’(한강수 펴냄).  작가는 “마치 시류에 편승하려는 듯 비쳐지는 것 같아 당혹스럽지만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품의 하나”라면서 “운보 김기창까지 이어지는 근대회화사가 3부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소설 속에는 문근영(드라마)이나 김민선(영화)과 같은 예쁘고 섹시한 신윤복은 없다.소설 속의 신윤복은 남자다.그것도 여느 남자는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의 기개와 호기로움을 자랑하는 사내다.대스승 표암 강세황(1712~1791)이나 단원 김홍도(1745~1810전후) 앞에서도 버럭 화를 내며 자신의 예술관과 속내를 뱉어낼 정도로 거침없는 성정을 갖고 있는가 하면,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기생을 곁에 두고 술을 마시거나 투전판을 전전하며 싸움질을 일삼는 비루한 밑바닥 삶을,자학하듯 즐기는 인물로 그려졌다.똑같은 인물을 다뤘지만 출발이 이렇게 다르니 영화,드라마와 ‘신윤복’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안 곳곳에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신윤복이 김홍도에게 그림을 배운다는 설정은 마찬가지다.당시 풍속화에서 금기시됐던 남녀상열지사를 다루며 조정과 도화서 동료들의 미움을 받고 시중에 떠도는 춘화를 그린 장본인으로 지목되며 도화서에서 쫓겨나는 것도 역사와 소설,영화 등에서 동일하게 겹치는 내용이다.  소설과 영화가 엇갈리는 대목은 바로 ‘거지 화가’ 최북의 등장.신윤복의 그림 세계를 정립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떠돌이 최북은 술 몇 잔을 위해 어디서든 그림을 그려주지만,강압적으로 그림을 요구하는 고을 사또 앞에서는 붓으로 자신의 오른쪽 눈을 찔러댈 정도로 그림에 대한 자존심과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소설 속에서 신윤복은 김홍도의 강권에 의해 최북을 따라다니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지와 그 열정을 배우게 된다.그리고 도화서에서 쫓겨난 뒤 술집과 투전판을 옮겨다녔고,어릴 적 첫사랑인 기생 ‘송이’를 만나 불후의 작품 ‘미인도’를 그린다.영화,드라마와 달리 신윤복을 남자 그대로 인정하게 되면 인간의 본성과 위선적인 사회에 대한 조롱이 담긴 그의 작품 세계와 맞닥뜨릴 수 있다.  작가는 “기존의 소설,드라마,영화 등은 아무리 작가적 상상력을 더했다 하더라도 ‘남장여자설’은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 관계조차 지키지 못한 심각한 오류”라고 말했다.  어차피 역사의 빈약함은 신윤복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신윤복을 말해주고,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그림뿐이다.‘소설 신윤복’은 그림에 서사를 부여해 풀어간 작품이다.‘신윤복은 남장여자’라는 설정이 실존인물을 상상의 극한으로 몰고갔다면,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에 상당히 충실하다는 점에서 영화나 드라마의 ‘보완재’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단독]‘軍 의문의 자살’ 심리적 원인까지 밝힌다

    [단독]‘軍 의문의 자살’ 심리적 원인까지 밝힌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가 1월 말 정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심리부검소위원회’(가칭)를 구성해 가동한다. 군의문사위는 31일 “현재 5명의 전문가로 심리부검소위원회를 구성중이고,1월20일 전후해 첫 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리부검’이란 사망자의 생물학적·정신의학적 정보와 이를 둘러싼 환경적 요인들을 종합·분석해 죽음의 실체적 원인을 밝히는 작업이다. 군대 내 자살자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심리부검소위의 활동은 군의문사위에 접수된 ‘의문의 자살’이 ‘자유의지에 의한 자살’인지를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구타 등 가혹행위에 따른 ‘불가피한 자살’로 밝혀질 경우 자살은 ‘사회적 타살’의 차원으로 옷을 바꿔 입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심리학자 등 5명으로 구성 모두 5명으로 구성되는 소위는 군 사정을 잘 아는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가 3대2 혹은 2대3의 비율로 참여한다. 조은경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고, 이영문 아주대 정신의학과 교수 등이 합류한다. 조 교수는 “심리부검은 국내에선 생소한 개념으로 범죄학이나 법의학 차원에서도 체계적으로 시도되지 못했다.”면서 “군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발생한 자살인 만큼 정말 자유로운 의지에 의한 자살인지를 밝히려면 신체부검뿐 아니라 심리적 요인을 찾아내는 조사가 필수적이란 판단에 따라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군 내부의 자살 처리방식을 바라보는 군의문사위의 비판적 시각도 크게 작용했다. 현재 군의문사위에 접수된 진정사건 가운데 60%가 자살 사건으로, 특히 1980년 이후 의문사 중 자살 사건은 80%를 넘는다. 국방부훈령 제392조는 군복무 도중 발생한 죽음을 ‘전사·전상’ ‘순직·공상’ ‘일반사망·비전공상’ ‘변사’ ‘자살’ 등 5가지 형태로 분류하고, 앞의 두 경우에만 국가유공자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4조 5항도 자살을 ‘자해행위’로 규정해 국가유공자 적용대상에서 제외한다. 군의문사위는 “자살로 처리된 죽음에는 약소한 조위금이 지급될 뿐 유족보상금도 지급되지 않는다.”면서 “여기엔 자살 책임을 전적으로 본인에게 돌리는 한편 자살자를 ‘업무수행에 어려움을 초래한 자’로 보는 군의 부정적 평가가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구타·가혹행위 드러나면 ‘순직´으로 재심의 김호철 군의문사위 상임위원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징병돼 복무하고 있는데도 자살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가가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법제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대법원의 협소한 법해석에 문제제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김 위원은 “군에서의 자살을 자유의지 유무로만 판단한다면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수류탄에 몸을 던진 고 강재구 소령의 죽음도 자살이고, 국가유공자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자살자가 발생했을 때 주변인 진술 등 정황조사로만 자살 결론을 내리는 군 조사방식과 달리, 심리부검소위는 사망자의 학교 생활기록부, 면담보고서, 군병원 진료기록 등을 총동원해 자살 원인을 밝혀낼 계획이다. 조사 결과 구타나 가혹행위 등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드러날 경우, 소위는 국방부장관에게 사망구분을 ‘순직’으로 전환하도록 재심의 요청하게 된다. 조 교수는 “소위를 통해 심리부검 사례들을 축적해 가다 보면 법원이 ‘불가피한 자살 사유’라고 인정할 수 있는 가혹행위의 종류와 횟수, 방식 등의 기준을 정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아직은 실험적 시도에 불과하지만 향후 우리나라 자살 사건 조사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카다레의 ‘아가멤논의 딸’

    ‘1980년 5월 광주에서 스러져간 넋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잔혹한 공산 독재정권이 ‘국가’라는 이름 아래 인권을 어떻게 짓밟는지를 리얼하게 그려낸, 알바니아 출신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장편 ‘아가멤논의 딸’(우종길 옮김, 문학동네 펴냄)이 나왔다. 1936년 알바니아 남부 가이로카스터르에서 태어난 카다레는 1963년 첫 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펴내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알바니아 공산 독재정권에 맞서는 문제작들을 줄곧 발표해오다 유배와 판금 등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1990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아가멤논의 딸’은 1985년 알바니아에서 씌어졌지만 2003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됐다.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신랄한 비판의 소리를 쏟아낸 탓에 조국에서조차 빛을 보지 못하다가 원고를 몇장씩 비밀리에 파리로 빼돌리는 산고를 겪은 끝에 출간됐다. 소설은 정부로부터 국경일 행사에 참가할 수 있는 1급 초대장를 받은 ‘나’에 관한 이야기다. 행사장 가는 길에서 ‘나’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권력이 창출·유지되는 생리와 인간의 비틀어진 모습을 고발한 이 소설은 권력의 공포 앞에서 인간이 더이상 자유의지로 선택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비극적으로 그린다. 공산 독재정권이 만들어내는 비인간성이 ‘아가멤논’이라는 신화적 메타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9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