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 칼럼] 8·15, 마지막 우상이 무너진다
8·15해방은 이땅에서 우상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일왕을정점으로 조선총독과 총독체제는 거대한 우상이었다. 실제로 조선총독부는 패전과 함께 전국 1,141개의 이른바 신궁·신사를 소위 ‘승신식(昇神式)’이란 것을 지낸 다음 불태웠다.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조선인을 핍박했던 신궁과신사를 저들 스스로 소각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이성의 태양이 비치지 못한 동굴에는 늘 새로운 우상이 들어서기 마련이다. 해방군 또는 점령군 이름의 하지휘하 미군정에 이어,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백색·청색독재는 총독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신성불가침의 우상이었다.
다행히 6월항쟁을 계기로 정치권력의 우상은 무너졌다. 민간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치적 우상 대신 보편적 민주질서가확립되었다. 대통령은 야당과 언론의 원색적인 비판을 받고있다.
정치권력의 우상이 사라진 동굴에 언론권력이 자리잡았다.
‘천황’과 총독을 숭상하고 군사독재와 유착하면서 엄청난재력과 영향력을 키워온 족벌언론사가 무소불위, 오만불손,무오류성으로 우상의 반열에 올라섰다. 우상이 도사린 신전, 그 추악한 장막속에는 탈세와 변칙상속 등 타락한 장사치의 범죄문서가 널려있다. 우상은 추종자가 존재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그 추종자들은 우상의 허상이 드러날 때까지 맹신을 거두려 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들이 대동아공영권, 반공, 근대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기수인 양 처신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인간지성의 도리에 접근을 방해하는 편견으로서 4종의 이돌라(idola:우상)를 지적했다. ①종족의우상 ②동굴의 우상 ③시장의 우상 ④극장의 우상이다. ①은 종족에 대한 보편적인 선입관이고 ②는 개인적 편견으로서 마치 동굴속에 있듯이 자연의 빛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비유한 것이며 ③은 언어의 부적당한 사용에 기인하는 것으로 시장에서 있지도 않은 풍설이 나도는 것과 같은 것이며④는 논증의 잘못된 규칙이나 철학의 그릇된 학설과 체계에의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마치 무대위에서 상연되는 가공의이야기에 비유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4가지 이돌라중에 족벌언론이 안고 있는 두번째 ‘동굴의우상’이 문제다. 이들은 동굴 밖에 비치는 이성의 태양을바라보지 못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개혁과 남북화해를좌경으로 치부한다. 일제시대 이래 주류세력으로 안락을 누리고 사대근성과 냉전논리에 젖어 민족의 아픔을 외면한다.
동굴 밖의, ‘우상을 무너뜨리라’는 이성의 외침을 듣지못한다. 들불처럼 타오르는 ‘안티’의 불길을 홍위병·악령으로 몰아친다. 글 안쓰기, 구독거부, 입사거부운동까지번지는데도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언론탄압’이란 공염불만 되뇐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믿는 바가 있다. 일제가 있었고독재자가 있었고 수구세력이 있다. 또 정치권력은 유한한데언론우상은 무한하다는 맹신이 있다. 항상 기회주의 속성으로 강자편에 서는 세칭 사회원로, 사이비 지식인·문인들의추종세력이 있다. 두둑한 월급봉투가 있고 촌지도 따른다.
비록 음습한 동굴이지만 밖에 나갔다가는 햇볕에 실명할지모른다는 우려, ‘자유언론’을 외치며 동굴을 뛰쳐나간 선배들의 처절한 모습도 두렵다.
한비자(韓非子)에 ‘세유삼망(世有三亡)’의 가르침이 있다. 세상에는 ‘삼망’즉 멸망에 이르는 길이 세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정쟁을 일삼는 나라가 정치가 잘되고 있는 나라를 공격하면 망하고, 사특한 생각을 가진 자가 올바른 사람을 공격하면 망하고, 도리에 어긋난 자가 정도를 걷는 자를 비판하면 망한다는 뜻이다.
족벌언론의 너울이, 그 추악한 우상의 가면이 벗겨지고 있다. “일제가 200년 갈 것 같아서”친일시를 썼다던 서정주의 비극은 ‘우상’을 바로보지 못한 데서 출발한다. 여전히 ‘족벌의 동굴’에서 남북협력을 ‘퍼주기’, 서민복지를 ‘사회주의’, 언론개혁을 ‘언론탄압’이라 외치는 사람들도 이제 이성을 찾을 때가 됐다. 광복절을 전후하여 ‘마지막 우상’이 무너지는 것은 국가의 축복인가, 너무 늦었는가.
김삼웅 주필 kim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