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자위대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667
  • 일,「르완다PKO」 파병 결정/의료·보급병력 2백명선

    ◎C130수송기 6대 투입방침/자위권차원 경무장 허용할듯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은 17일 르완다 난민을 지원하기 위해 자이르등 르완다 주변국에 다음달중으로 자위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연립여당의 자민·사회당과 신당 사키가케등 3당은 이날 이같이 결정하고 방위의무관으로 구성되는 의료단과 물보급,식료품배급,변소설치등을 담당할 보급부대의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 자위대의 르완다주변국 파견은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의 「인도적 국제원조」규정에 따른 최초의 자위대 해외파견이 된다.일본은 1백∼2백명의 자위대를 파견할 방침이다.자위대는 분쟁방지및 전후복구를 위해 캄보디아,모잠비크등에 파견된바 있다. PKO협력법에 반대했던 사회당은 당초 자위대파견에 신중한 자세를 보였으나 「인도상 심각한 난민문제를 방치할수 없다」며 의료·보급활동에 한정한다는 조건으로 자위대 파견에 동의했다. 【도쿄 연합】 일본정부는 르완다 난민 구원을 위해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에 따라 자위대 후방지원부대를 파견할 경우항공 자위대 소속 C130수송기 6대 정도를 물자 수송 등에 함께 투입할 방침이라고 일본의 마이니치(매일)신문이 1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방위청 소식통을 인용,이같이 전하고 항공 자위대는 파견에 대비해 현재 르완다 주변국의 공항 상황,비행 루트 등에 관한 필요한 정보 수집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일본 항공 자위대 소속 C130 수송기가 파견될 경우 이는 캄보디아,모잠비크에 이은 3번째의 해외 파견이 된다. 【도쿄 교도 연합】 일본이 유엔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르완다 인접국들에 자위대를 파견할 경우 파견병사들은 자위권 차원에서 경무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정부소식통이 17일 밝혔다.
  • 일 자위대 르완다파병/빠르면 새달

    【도쿄 교도 연합】 일본자위대는 빠르면 다음달 초순 유엔평화유지활동에 참여키 위해 아프리카 르완다의 인접국들에 병력을 파견할 가능성이 크다고 일본 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이 16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그러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의 사회당이 자위대원의 아프리카 내전지역파견에 반대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자위대 PKF참여 반대”/무라야마총리

    ◎“일헌법 범위내서 유엔공헌”/자문기구,관계법정비 촉구 【도쿄 AFP 연합】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 총리는 12일 자위대가 유엔평화유지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건의한 방위문제 간담회의 보고서 내용을 지지하지 않았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평화유지 활동에 대한 일본의 기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데 있어 무력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일본헌법의 범위를 벗어나지않는 방식으로 이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일본이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고 외교노력을벌이고 있는 점을 언급하면서 『일본은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 된다고 해도 헌법을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방위문제간담회가 건의한 내용을 앞으로 방위정책을 논의하는데 「참고자료」로 사용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일본정부가 이 건의서 내용에 구애되지는 않겠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보다 앞서 무라야마 총리와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상,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대장상은 11일 밤 일본이 유엔에 군사적 기여를 하지않는다는 점을 분명히할 필요가 있다는 데 합의했다. 한편 고노 외상은 12일 방위문제간담회의 보고서를 『단순한 건의』로만 밝혔다. 고노 외상은 다음달 유엔 총회에서 연설을 통해 이같은 일본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힐 계획이다.
  • 르완다난민 지원/일,“자위대 파견”

    【도쿄 연합】 일본정부는 르완다난민 구호를 위해 유엔 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에 의거,자이르 등의 주변국에 일본으로부터의 의료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자위대 후방지원부대의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정부소식통을 인용,이같이 전하고 일본정부는 PKO 협력법의 「인도적인 국제원호활동」의 규정을 처음으로 적용해 대형 텐트를 비롯,의료품 등의 물자협력과 의료팀을 파견할 방침을 굳혔다고 말했다. 정부소식통이 일본정부가 의료지원 등을 위해 자위대의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처음있는 일로 일본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실효성이 있는 PKO의 협력을 위해서는 자위대가 불가결하다는 인식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 일 사회당 안보법 제정 추진/핵 포기·파병금지 골자

    【도쿄 연합】 일본 사회당은 자위대합헌으로 정책을 크게 전환한데 따라 필요최소한 방위력의 범위를 규정하고 자위권행사를 영토와 영해로 한정하는 것 등을 주요골자로 한 안전보장기본법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8일 정계소식통들에 따르면 이 안보기본법을 군축프로그램으로 설정해 해외파병을 금지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부정하는 등 지금까지 확립해온 원칙들을 법제화하기로 했다. 안보법은 「일본의 안전확보와 세계평화 실현」을 목적으로 ▲최소한 필요 방위력의 범위 ▲한정방위개념 ▲핵무장 포기 ▲해외파병 금지 ▲문민통제 철저 ▲무기수출 금지 등을 담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당은 이같은 한정방위 구상을 통해 자민당정권아래 전수방위 개념에 따라 자위대가 점차 팽창했던 점을 반성하고 자위대 재편 및 축소 등에 의해 군축을 추진하기 위한 원칙으로 제창키로 했다.
  • 일 방위비 부족으로 전차포격 훈련중단

    【도쿄 연합】 일본 육상자위대는 95년도 방위비예산증가율이 올해보다 0.9%밖에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내년에 처음으로 장거리포를 비롯한 전차연대차원의 포격훈련을 중지하는 등 훈련예산을 대폭 감축할 방침을 굳혔다고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5일 보도했다. 이들 훈련을 그만두면 육상자위대의 연간훈련비 약1백40억엔(94년기준)의 약3%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일,핵전술 연구”/전해상자위대 막료장

    ◎69∼72년 재임때 핵탄보유검토/구소위협 대비 미핵잠함 도입 추진/방위청 “개인적 의사” 해명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외무성이 지난 69년 핵무기제조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극비 내부방침을 마련했음이 밝혀진데 이어 지난 69년부터 72년까지 해상자위대 막료장을 지낸 우치다(내전일신·79)씨가 재임당시 핵무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연구를 진행시켜왔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일 『일본정부가 표면적으로는 「비핵3원칙」을 표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핵무기에 대해 자위대 현역 최고지휘관이 핵전술을 검토해왔음이 밝혀졌다』면서 우치다씨는 『당시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는 소련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핵무기가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이같은 검토를 진행시켰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또 당시 미군으로부터 일본에 핵잠수함을 공여할 수 있다는 정보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핵전술을 연구한 우치다씨는 핵무기의 보유뿐만 아니라 전술핵의 선제사용도 고려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전했다. 즉 미군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적의 항구를 핵어뢰로 공격하는 전술이 검토됐다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우치다씨가 이 연구를 개인적으로 진행시켰다고 밝히고 있지만 당시 핵무기 탑재 잠수함의 필요성이 정치권과 관료사회에서 논의됐으며 미군으로부터 핵잠수함 공여의 정보까지 있던 것 등으로 미뤄 개인적 의사를 넘어서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에 대해 일본방위청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방위청과 자위대는 비핵3원칙을 엄격히 준수하고 있으며 핵무기의 사용을 공식적으로 생각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 “일,군사대국화 추구 않겠다”/무라야마 총리 회견

    ◎「위안부」 돈으로 해결될 문제 아니다/북한핵 해결돼야 경수로 지원 검토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총리는 1일 일본은 전후50주년을 맞아 과거사에 대한 반성위에 군축을 지향하며 군사대국화의 길은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북한에 대한 경수로지원은 핵문제 해결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라야마총리는 이날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전후보상문제와 관련,『개인보상은 여러가지 어려운 점들이 있다』고 말해 개인보상에 부정적인 자세를 나타냈다. 회견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국방문 성과와 사회당의 대한정책은. ▲김영삼대통령과 신뢰관계가 이루어진 것이 중요한 성과였다.사회당의 대한정책에 대해서도 일·한관계 중시와 일본외교의 계속성을 밝혔다. ­전후보상·개인보상에 대한 생각은. ▲일본의 침략행위가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준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 반성위에 반전결의를 굳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개인보상은 많은 어려운 점들도 있어 간단히 말할 수 없으나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의입장에서 적극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무라야마는 그러나 회견 막바지 비서관의 메모용지를 받아본 후 『개인보상에 관해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다는 쪽으로 이해하고 있으면 정정해주기 바란다.일본이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업으로서 무엇인가를 계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종군위안부문제는 일본이 반성하고 두번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물건이나 돈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북한과의 국교정상화회담에 대한 기본구상은. ▲국교정상화는 한반도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추진하겠다.경제원조보다는 국교정상화회담의 재개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북한핵문제는. ▲대화를 통한 해결 방향으로 관계국이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그러나 대화가 결렬되어 유엔이 제재결의를 할 경우 평화헌법 범위내에서 유엔결의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후청산은. ▲불전의 결의를 확실히 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이를 위해 역사에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역사연구를 포함,다음세대를 담당할 청소년교류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전후 50주년을 맞아 국회에서의 불전결의를 기대하고 있으며 정부도 보상문제 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회당의 정책전환은. ▲전후 냉전구조아래서 사회당은 비무장·중립정책과 평화헌법의 이념에 따라 군비확대정책을 반대해 왔다.그러나 냉전구조가 붕괴되고 자위를 위한 최소 방위력은 인정받는 상황속에 국민들의 상식을 바탕으로 자위대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그러나 일본이 군사대국이 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한투자촉진과 무역불균형 시정책은. ▲한·일간의 산업협력과 기술이전 등의 추진을 위해 10월에 투자조사단을 한국에 파견한다. ­대북경제및 경수로 지원은. ▲경수로문제는 미·북 회담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지금 언급할 단계는 아니다.다만 경수로지원은 핵개발의혹 문제 해결이 전제되어야 하며 일본정부도 그러한 태도를 취하고자 한다.경제원조도 국교가 없는 현상황에선 할생각이 없다.
  • 일 사회당/미·일안보조약 격하 시사

    ◎“군력 커져 군사동맹 필요 줄어/일부조항 희석­무효화/구보 서기장 【미사와(삼택) 교도 연합】 구보 와타루(구보선)일본 사회당서기장은 25일 일본사회당이 일종의 군사동맹인 미·일 안보조약의 성격을 희석시킬 태세가 돼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이날 미공군기지가 위치한 미사와에서 열린 일본 교원노조의 한 세미나에 참석,『이제 일본이 힘을 갖게 됐기 때문에 일종의 군사동맹인 미·일안보조약의 일부 성격을 희석시키거나 무효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당이 자위대의 합헌성을 인정한 것을 시발점으로 한걸음씩 군축을 촉진함으로써 군축의 최종적인 목표인 비무장 일본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일 사회당 정강초안 확정/「자위대합헌」등 현실노선 대폭 수용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사회당은 자위대의 합헌을 비롯한 안보정책의 대전환 등 오는 9월3일 열리는 임시당대회에 제시할 새로운 기본정책의 골격을 결정했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26일 보도했다. 새로운 기본정책의 주요내용은 ▲자위대를 헌법으로 인정하고 ▲비무장중립을 궁극적 이념으로 하며 ▲원자력발전의 가동은 인정하되 장래는 「원자력 없는 사회」를 지향하고 ▲국가와 국기가 정착되고 있는 현상을 인정하되 교육현장에서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등이다. 사회당의 이러한 움직임은 정권참여와 냉전구조의 붕괴 등 국제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노선으로의 정책전환이라 할수 있다.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사회당위원장)는 최근 국회답변에서 사회당이 그동안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해온 자위대는 헌법에 의해 인정된다는 등의 안보정책의 대전환을 밝혔다.
  • 일 방위계획 수정착수/김일성사후 인민군 망명 등 대비

    【도쿄 연합】 일본정부는 북한 김일성주석의 사망으로 북한정세가 유동적이라고 판단,올해 방위정비계획 수정작업에 착수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25일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금년도 방위계획은 지난 4월 세워졌으나 김일성의 사망으로 북한정세가 크게 변화함에 따라 육·해·공 자위대가 각각 이 계획을 수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방위청간부에 따르면 북한의 경우 가장 경계가 필요한 부문은 군사경계선 주변의 분쟁상태보다는 군내부의 대립과 반란으로 그 결과 다수의 북한인민군이 일본에 망명해 올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 원전 노선 선회/기존정책 수용/일 사회당

    【도쿄 연합】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의 탄생으로 자위대 위헌 등 당의 기본정책을 대폭수정해 온 일본사회당은 그동안 핵무기확산을 우려해 반대해 왔던 원자력발전정책도 수용할 방침인 것으로 25일 전해졌다. 정계소식통들에 따르면 사회당은 지금까지 원자력정책과 관련해 「현실을 직시해 대처한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일관해 왔으나 현실적으로 원자력발전 의존율이 높은 점을 감안해 신설을 가능한한 억제하는 조건으로 수용할 방침이다.
  • 일총리 “신사참배 위헌 아니다”/“나카소네노선 고수”… 파문일듯

    ◎참의원서 답변 【도쿄 연합】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가 자위대가 합헌이라고 인정하고 사회당의 비무장원칙을 포기한데 이어 22일 공중조기경보기(AWACS)의 도입과 1천해리 해상교통로방위도 헌법상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무라야마총리는 이날 참의원 본회의 답변을 통해 미국과 한국등이 공동으로 실시하는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림팩)에 일본자위대가 참여하는 것도 전수방어의 범위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해 이를 중단시킬 뜻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야스쿠니(정국)신사를 각료들이 공식적으로 참배하는 것이 위헌이 아니라는 앞서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내각의 정부견해를 앞으로도 고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무라야마총리는 주일미군의 체류경비를 일본정부가 상당부분 부담하고 있는데 대해 『미국과 각동맹국간 협력관계는 다양하기 때문에 단순히 (일본과)비교할 수 없다』면서 앞으로도 주둔경비를 지원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 일 사회당 「비무장 원칙」 포기/“냉전붕괴로 정책적 역할 끝나”

    ◎무라야마총리 【도쿄 연합】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는 21일 사회당의 기본정책인 「비무장 중립정책」은 냉전종식으로 인해 그 역할이 끝났다고 말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날 참의원 국회답변을 통해 자위대가 헌법상 인정된다고 20일에 이어 되풀이 강조한뒤 『사회당의 비무장 중립정책은 평화헌법 이념을 정형화한 것으로 냉전하에서 문민통제등 원칙을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나 냉전이 붕괴된 지금 그 정책적 역할은 끝났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일장기(히노마루)와 기미가요 등이 일본의 국기와 국가로서 존종되어야 한다고 기존 사회당의 방침을 전면 부정한뒤 학교 교육현장에서도 계속적으로 일장기와 기미가요를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회당이 자위대 합헌,미일 안보체제 인정 등 방위 안보정책의 전환을 위한 새로운 선언을 당 공식기구에서 의논해 결론내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사회당내 일각에서는 여전히 「정부견해와 당의 방침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어 구체적인 정강정책의 개정을 둘러싸고 좌우파간에 적지않은 대립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일 사회당의 보수화 변신/이창순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냉전의 마지막 유물로 남아 있던 「김일성지배」가 역사의 무대뒤로 사라지던 20일 일본국회에서는 사회당의 냉전시대안보정책이 대전환하는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졌다. 사회당위원장인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는 이날 중의원 답변에서 『방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위대는 헌법으로 인정된다』며 자위대의 합헌을 밝혔다.무라야마 발언은 그동안 자위대를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해온 사회당 안보정책의 전면적인 전환을 알리는 역사적 선언이었다.그 순간 의사당은 박수와 환호로 가득찼다. 무라야마총리의 자위대 합헌론은 단기적으로 볼 때 정권유지를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자민·사회당·신당사키가케의 연립정권에서 총리가 자위대 위헌론을 견지할 경우 자민당의 합헌론과 정면대립되기 때문에 야당의 공격으로 연립정권이 위기를 맞을 우려가 있다.무라야마총리는 더욱이 현실적으로 자위대의 최고지휘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사의 흐름에 대응하는 일본의 변화다.사회당은 미·소대립의 냉전시대에서는 미국의 대소전략의일환으로 자위대의 증강을 꾀하는 자민당측 안보정책에 결사적으로 반대해왔다.그러나 냉전구조가 무너지고 또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하게 되면서 사회당은 이데올로기정당의 색채를 탈피,현실정치노선을 추구하게 됐다. 무라야마총리는 자위대의 합헌론에 이어 21일 참의원 답변에서 『사회당의 「비무장·중립론」의 정책적 역할은 끝났다』고 말했다.그동안 반대해온 일·미안보조약도 일본의 안정보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사회당의 비무장·평화주의적 이념이 퇴색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당의 이러한 정책전환은 일본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냉전구조속에서 경제대국이 된 일본은 냉전이 끝나자 국제적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일본의 보수세력들은 끊임없이 대국주의를 지향해왔다.그러한 움직임을 제어해온 세력이 사회당이었다.그러나 그 사회당이 국제환경변화와 정권참여 등을 통해 「보수화」하고 있는 것이다.역사적 전환기를 맞은 일본의 보수화물결은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하다.
  • 무라야마 총리 “자위대 합헌”/일 사회당 정책전환 시사

    ◎“북핵해결 한·미·중과 공조”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사회당위원장)는 20일 국회답변에서 『자위대는 전수방위에 필요한 최소한의 실력조직으로 헌법에 의해 인정된다』고 말해 자위대는 합헌임을 선언했다. 무라야마총리의 이러한 헌법해석은 그동안 자위대는 헌법위반이라고 지적해온 사회당의 중대한 정책전환을 의미한다.사회당내에는 물론 여전히 자위대의 위헌론을 주장하는 세력이 적지 않지만 사회당은 오는 9월 3일의 임시 당대회에서 자위대에 대한 헌법해석을 합헌으로 바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사회당출신 총리의 등장과 함께 사회당의 안보·외교정책이 크게 바뀌고 있다. 무라야마총리는 또 북한의 핵문제해결를 위해서는 한국·미국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긴밀한 연대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 일 사회당 「자위대 합헌」 검토/요미우리 보도

    ◎집권으로 「위헌」 견지 무리/좌파 반발로 논란일듯 【도쿄 연합】 일본 사회당은 무라야마 연립정권의 발족을 계기로 사회당의 기본정책인 「현재의 자위대는 위헌상태」라는 견해를 변경하는 방향으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고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이 5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사회당은 당수인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가 육·해·공 3군자위대의 최고지휘자가 됨으로써 지금까지의 「자위대 위헌론」 견해를 그대로 견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수정을 검토하게 됐다. 사회당은 오는 9월3일로 예정돼 있는 임시 당대회의 활동방침안 등에서 「군축과정에 있는 자위대의 현상은 합헌」이라는 적극적인 내용을 담아 새로운 견해로 밝히는 것 등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당내 좌파일부를 비롯한 지방조직은 이같은 방침을 「사회당 기본정책의 대전환」으로 간주하고 있어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데다 일부에서는 「연립정권 아래서는 당고유의 정책과 정부의 정책이 부득이 다를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북핵·미사일 개발 “최우선 경계”/일 94방위백서 공개

    ◎냉전 붕괴로 지역분쟁 증가 위험 지적/PKO·아시아 안보에 새 역할론 주창 일본방위청이 15일 발표한 94년판 방위백서는 핵개발 의혹의 북한이 동아시아안보의 최대 불안요소이며 국제정세에는 끊임없는 지역분쟁등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상황이 상존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방위백서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긴장고조와 지역분쟁 등은 냉전으로 억제되어 왔던 지역대립의 분출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여러지역에서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은 국제정세가 이같이 불안정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및 미사일개발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이전에는 가상적이었던 구소련(러시아)을 가장 먼저 언급해 왔으나 94년판은 처음으로 한반도정세를 앞세워 북한에 대한 일본의 경계감의 강도를 잘 나타내고 있다. 방위백서는 북한은 「노동1호」미사일의 개발을 거의 완료한데 이어 그보다 사정거리가 더 긴 미사일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핵개발의혹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더욱 높이고 있다고 지적한다.방위백서는 특히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개발이 연결될 경우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방위백서는 또 러시아의 군축은 계속되고 있으나 장래는 불투명하다고 지적한다.그중에서도 극동지역에는 여전히 대규모 군대가 배치되고 있으며 다른 지역보다 장비의 현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등 극동러시아군의 장래는 불확실한 불안요소가 있다고 강조한다.중국도 남사군도를 중심으로 활발한 해군활동을 강화하고 그 활동범위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방위청은 이같이 국제정세의 불안요소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이는 냉전의 종결과 함께 국제적 군사정세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던 지난해의 평가와 크게 대조적이다.일본의 이러한 방향전환은 냉전후 세계적 군축분위기속에서 방위에 대한 낙관론을 견제함과 동시에 정부내에서 추진되는 방위정책 재검토 과정에서의 방위비 삭감을 막기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방위백서는 「자위대­변화에의 대응」이라는 새로운 장을 만들어 국제정세의 격변과 기술혁신으로 방위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군사력의 기능은 여전히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며 적절한 방위력의 유지를 강조하고 있다. 방위백서는 특히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사회당위원장의 총리취임을 의식,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자위대외에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당정책에 정면으로 반론하고 있다.자위대가 방위업무 뿐만아니라 국제공헌에도 적극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방위백서는 국제정세 변화가 현저할 경우 미·일 양국은 지금이상의 협조와 신뢰관계 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한다. 방위백서는 결국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응 종래의 안보체제를 유지하며 PKO와 아시아지역 안보에서 새로운 역할를 맡아야한다는 방위청의 전략을 대변하고 있다.
  • 자위대 감축 대비/「향군제도」 추진/일 방위청

    【도쿄 연합】 일본정부는 냉전종식에 따른 자위대 병력감축및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 예비역 자위관제도(ROTC 및 향토예비군제도와 유사)를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12일 밝혀졌다. 일방위청은 이를 위해 최근 총리의 자문기관인 「방위문제간담회」에 예비자위관제를 제시하고 정책검토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정부소식통이 밝혔다.
  • 83년 이후 「서열 2위」… 당·정·군 장악

    ◎73년 김영주축출… 공적활동 전면등장/반대세력 반발불구 통치권확보 성공/성격 독선적·일부선 “통 크다”… 영화·연극에 큰 관심,직접 제작도 김정일이 사망한 북한주석 김일성에 대한 장례위원 가운데 서열 1위로 발표됨으로써 차기 권력승계작업이 일단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공산정권의 전례로 비추어 볼 때 숨진 최고지도자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인사가 예외 없이 차기 통치권을 맡아 왔기 때문이다. 이날 그에 대해 북한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혁명의 계승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김정일은 20여년동안 끈질기게 권력승계 작업을 해온 결과 지난 83년 공식서열 2위에 오른 뒤부터 김일성 사망 직전까지 김일성에 이어 2인자의 위치를 굳혀왔다.군최고 사령관,원수,국방위원장,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중앙군사위원등 그의 맡아온 직책이 이를 입증한다.이복동생 김평일과의 불화설등 반대세력과의 권력투쟁설이 끊임없이 나돌기도 했지만 통치권 장악에 거의 성공한 것으로 관측돼 왔다. ○92년부터 승계완료그는 당·정·군등 북한내 3대 기본권력구조 가운데 형식적인 통수권은 국방위원장직으로 군에 대해서만 갖고 있다.그러나 김일성이 국가주석으로 정을,당 총비서로 당을 이끌어 오면서 형식적인 통수권자였지만 김정일은 사실상 이들 기관도 통치해 왔다는 것이 북한전문가의 대체적인 의견이다.이들 전문가들은 이미 권력승계작업은 지난 92년 김일성의 80회 생일부터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완료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영남외교부장은 같은해 9월 제47차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에 들렀다가 우리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김정일이 사실상 북한의 통치자라고 밝혔었다.앞서 같은해 4월1일 김일성생일행사의 하나로 개최됐던 주체사상토론회에서 김정일이 「당·국가·군대의 수위」로 지칭되고,김부자의 생일을 전후해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이종옥부주석,연형묵정무원총리등 당시의 당·정·군 간부들이 김정일에 대한 대를 이은 충성을 다짐하기도 했다.이때부터 김일성은 점차 일선에서 물러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김정일은 지난 92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원수와 8명의 차솔진급자에게 계급장을 달아 줘 군통수권에 대한 첫 공식행사를 가짐으로써 이를 대내외에 천명했다.이어 지난해 4월에는 군 최고통수권자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됐으며 3개월뒤 장성 99명에 대한 승진인사를 단행,혁명1세대를 퇴진시킴으로써 군을 완전 장악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부각된 것은 지난 73년.사상·기술·문화 3대혁명소조운동과 3대혁명 붉은기쟁취운동의 실무지도자로 공적활동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같은해 9월 삼촌 김영주를 밀어내고 조직·사상담당 비서로,74년 2월 노동당 정치국 정치위원으로 추대됐다.그는 74년 2월 노동당 제5기 8차 전원대회에서 후계자로 결정됐으나 70년대까지만 해도 「당중앙」으로 모호하게 불려졌다.그러나 80년대부터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표현되기 시작했다.83년 4월이후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을 제치고 당서열 제2위로 부상하면서 명실상부한 후계자의 위치를 굳혔다. 85년 4월에는 「당·국가수위」로 지칭됐다.85년 7월 북한언론으로부터 「김정일시대」라는 용어가 등장하고,91년에는 인민경제대학총장 김국훈이 김정일을 「미래의 위대한 수령」으로 후계구도를 공식적으로 가시화했다.이어 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뒤 92년 4월20일 원수칭호,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9기5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됨으로써 군을 장악한 명실상부한 실권자로 등장했다. ○원래 이름은 「정일」 김정일은 김일성과 그의 첫부인인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난 2남1녀중 장남으로 지난 41년 2월16일생이고,원래 이름도 정일이라고 한다.그러나 뒤늦게 그를 우상화하는 편법으로 정일로 바꿨고 2년뒤 그의 출생연도도 1년 낮췄다는 설도 있다.82년은 이른바 「조선의 어머니」인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출생 90돌이자 김일성의 70돌이며,김일성이 창건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의 50돌이었는데 그의 이름도 이에 맞춰 변조했다는 것이다.그의 이복동생 평일,성일에서 보듯 원래 항렬이 일자였다는 것이다. 어릴때 이름이 「슈라」인 것으로 미루어 출생지는 옛 소련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구체적인 지명은 사마르칸트,오케얀 스카야,하바로프스크등으로 엇갈린다.그러나 그를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백두미령」에서 출생해 『혁명의 준엄한 시련을 체험하면서 성장했다』고 미화됐다.북한은 이를 위해 김일성이 빨치산 활동을 할 때 백두산의 한 귀틀집에서 『백두산의 정기를 한몸에 받고 태어났다』는 이른바 「백두산정기설」을 뒷받침하는 각종 흔적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백두산의 「정일봉」,김정일의 탄생을 칭송하는 이른바 「구호나무」등이 그 흔적이다. ○3세대 평양 들어와 김정일은 세살때 광복과 함께 부모를 따라 소련함정을 타고 평양에 처음 들어왔다.43년 소련에서 태어난 남동생 「유라」(소련명)가 있었으나 2년뒤 김일성 관저 연못에 빠져 죽었다.7살때인 49년 9월 생모 김정숙이 출산중 사망하면서 여동생 김경희(46년생)와 함께 김일성의 외6촌동생 강연실에 의해 키워졌다.그의 성격은 생모와 사별후 난폭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성격은 괄괄하고 과격하며 독선적이나 통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김일성앞에서도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그는 아버지가 너무 바빠 홀로 어린시절을 보내온 것을 자주 불평했다고 한다.66년 홍일천과 연애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 69년 이혼한 뒤 73년 김혜숙과 재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은 평양의 남산유치원을 나와 49년 간부 자녀들이 다니던 남산 제 4인민학교를 다녔으며 57년 8월 평양제1중학교,60년 8월 평양 제1고급중학교,64년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과를 각각 졸업한뒤 노동당에 입당했다.70년 당 문화예술부장,71년 선전선동부 부장으로 진출하면서 영화촬영및 연극공연작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것으로 전해진다.「피바다」「한 자위대원의 운명」「꽃파는 처녀」등 주요 영화와 가극을 직접 제작하는등 일년에 1백50∼2백편의 영화를 만들어 올만큼 북한영화계의 최고권위자로 꼽힌다.이같은 영화에 대한 애정때문에 신상옥씨 부부를 납치한 것이 깊숙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정체가 상세히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연표◁ △1941.2.16 소련 사마르칸트 출생(북한측,백두산 출생주장) △1953.2 만경대혁명학원(인민반)수학 △1960.8 남산고급중학교 졸업 △1964.3 김일성대학교 졸업(정치경제학과) △1964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 △1971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1973.11 노동당 정치위원회 후보위원 △1974.2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 △1974.2 「후계자」로 결정(노동당 제5기 8차전원회의) △1980.10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6차 당대회) △1980.10 노동당 비서국 비서 △1980.10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90.5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12.24 인민군 최고사령관(노동당 제6기 19차 전원 회의) △1992.4.20 원솔 칭호 △1993.4 국방위원회 위원장(최고인민회의 9기 5차회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