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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당시 지휘관 2명 증언

    ◎“자위권 발동 성급/오히려 시위 격화” 5·18사건 당시 공수부대 대대장 등 시위진압현장에 있었던 일선지휘관들은 14일 신군부측의 자위권 보유천명에 대해 『경솔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5·18사건의 첫 증인신문이 시작된 이날 양대인 당시 11공수여단 참모장은 『시위대와 계엄군이 급박하게 대치한 상황에서 나온 계엄사의 성급한 자위권발동결정은 오히려 시위를 격화시켰다』는 견해를 밝혔다.또 시민의 반발을 막기 위해 광주도청앞 등 진압현장에서 조속히 철수할 것을 상부에 건의했지만 철수시기가 늦어져 사상자가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선지휘관들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계엄군의 철수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상부의 결정이라 알 수 없다』고 말해,사태악화를 계엄군 지휘부의 탓으로 돌렸다. 계엄군의 시위진압이 과격했다는 일선지휘관의 「회개의 증언」도 나왔다. 안부웅 11공수 61대대장은 검찰신문에서 공수부대원이 흥분한 상태에서 진압봉으로 시위대를 마구 때리는 등 계엄군의 진압이 과격하게 이뤄졌음을 인정했다.그는 『시위진압교범에 나오는 방식을 따르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특수훈련을 받은)공수부대를 진압작전에 투입한 것도 잘못』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들은 지휘권의 이원화,특전사의 상황실운용,자위권발동지시 등 5·18사건의 핵심쟁점에 대해서는 공소사실을 전면부인,변호인측의 주장을 거들었다. 검찰은 1심에서 정호용·황영시 피고인이 내란목적살인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점을 의식,정피고인 등의 개입여부를 집중추궁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일선지휘관들은 『정피고인이 작전지휘에 개입하지 않았다』,『자위권 보유천명을 발포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박은호 기자〉
  • 「12·12」 「5·18」 항소심 전망

    ◎「5·18」 자위권발동 규명 쟁점/피해자… 작전병 내세워 1심 역공세/최규하씨 증인출두 여전히 불투명 12·12 및 5·18사건의 실체를 둘러싼 법정공방이 2라운드에 들어갔다. 7일 항소심 재판부가 밝힌 재판일정과 검찰·변호인이 신청한 증인의 면면에 비춰볼 때 항소심의 쟁점은 5·18사건에 모아질 전망이다. 재판부는 이날 12·12,5·17,5·18사건 등 발생시간대별로 심리한 1심과는 달리 5·18사건을 먼저 심리하겠다고 밝혔다.1심에서는 피고인들의 구속만료시한에 쫓겨 5·18에 대한 심리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검찰과 변호인단이 5·18사건의 실체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인단은 1심재판부가 5·18사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위권발동 지시 및 지휘권이원화 공소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점을 감안,이를 뒤집는 데 주력한다는 계획이다.정도영 당시 보안사 보안처장과 최예섭 보안사 기획처장,김재명 육본 작전참모부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것은 그같은 전략에 따른 것이다.이들을 상대로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피고인이 자위권발동에 개입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는 방침이다.시위진압이 정상적인 군작전의 일환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공수부대 작전병도 증인으로 신청했다. 검찰도 5·18당시 공수부대 대대장 등 현장지휘관과 피해자·목격자 등을 증인으로 신청,자위권보유천명이 실질적인 발포명령이었음을 입증할 방침이다.이원홍 당시 청와대 민원수석을 상대로는 국보위 설치가 신군부의 사전집권시나리오였음을 밝힐 계획이다. 증인으로 채택된 33명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이는 최규하 전대통령이다.검찰과 변호인은 12·12사건 당시 정승화 총장연행 재가경위와 5·18사건 뒤 하야경위가 두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열쇠라고 생각하고 있다.하지만 출두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항소심재판부가 이날 검찰 공소사실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재판부는 ▲내란모의참여 및 중요임무종사혐의로 기소된 유학성·차규헌·허화평 피고인 등의 5·18당시 광주에서의 행위가 내란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성이있는지 ▲전두환·황영시·정호용 피고인 등의 내란목적살인행위가 법리적으로 내란의 수행과정에서 행해진 것인지 아니면 그것과는 별개의 행위인지 ▲시위진압작전으로 알려진 「충정작전」이 있었다면 언제,어떤 형태로 발전된 것인지 등에 대해 보완설명을 요구했다.검찰로서는 이 부분에 대한 공소사실을 보완해야 하는 등 부담을 안게 됐다. 12·12사건은 ▲육본과 합수부의 병력동원시기와 경위 ▲정승화총장연행의 합법성,5·17사건은 ▲시국수습방안 마련의 목적 ▲비상계엄전국확대의 합법성 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다음 주부터 주2회 공판을 하겠다고 밝혔으나 변호인측은 1심과는 달리 『별불만이 없다』고 밝혀 파행공판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김상연 기자〉 ◎항소심 첫공판 이모저모/전씨 미소 여유… 노씨 병으로 헬쑥/검찰·변호인 증인신청 신경전 7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첫 공판은 피고인에 대한 인정신문과 증인채택 등의 간단한 절차만을 마치고 1시간20여분만에 폐정됐다.그러나 검찰과 변호인단은 14명과 27명의 증인을 신청,1심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공방을 예고했다. ○…공판은 재판부가 개정 예정 시각보다 이른 상오 9시53분쯤 입정한 뒤 『시간이 예정보다 빠르지만 재판 준비가 끝나 일찍 개정한다』는 선언으로 시작.권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을 일일이 호명하지 않고 입정순서가 적힌 쪽지를 법정경위에 전달해 입정토록 하는 등 1심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 ○…권부장판사는 푸른색 수의에 흰색 내의를 받쳐 입은 전두환 피고인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가볍게 목례하자 오른손을 내밀며 권유하는 듯한 태도로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지시. 신장결석을 앓고 있는 노태우 피고인은 1심 때보다 핼쑥한 모습이었으며,재판부와 변호인석,검사석을 향해 일일이 목례한 뒤 착석. ○…이어 전·노피고인을 빼고 14명의 피고인 가운데 1심재판 결과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 차규헌 피고인과 박준병 피고인이 가장 주목을 받으며 입정.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다 법정구속된 거피고인은 수의 차림의 침울한 표정으로 출정한 반면,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난 박피고인은 말쑥한 양복차림에 한결 여유있는 표정. ○…검찰은 이날 5·18 광주진압의 실상을 입증하기 위해 당시 피해자와 목격자 등을 증인으로 신청.변호인단도 군작전에 따른 정당한 진압임을 강조키 위해 시위진압에 참가했던 공수부대 작전병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등 신경전. 한편 검찰은 항소심 주임검사인 서울고검 김각영 부장검사와 김상희 부장검사 등 9명이 참석했으며,변호인측은 전상석·이양우·한영석 변호사 등 17명이 포진.〈박은호 기자〉
  • 새 방위지침으로 미·일 협력 강화를(해외사설)

    일·미 방위협력 지침 개정에 관한 경과보고서가 워싱턴에서 열린 일·미 안보협의위원회에서 승인됐다.양국은 이를 바탕으로 방위협력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협의,내년 가을까지 새로운 방위지침을 만든다. 경과보고에는 자위대와 미군의 공동대처방안을 중심으로 일·미협력의 틀과 협력항목이 포함됐다.특히 현재의 지침에는 없는 일본주변에서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 「주변사태에 대한 협력」에 관한 항목이 처음으로 추가됐다.방위협력지침의 새로운 축으로 각국과의 안보대화와 방위교류의 추진등을 포함한 「평상시의 협력」도 포함됐다. 새로운 지침에서 중시되고 있는 「주변사태에 대한 협력」은 한반도뿐만아니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분쟁도 고려하고 있다.그러한 움직임은 냉전후 이 지역에서는 불안정 요인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으며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이 지역의 안정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감안할때 당연한 대응이다. 「평상시 협력」에서는 합동훈련의 강화와 안보에 관한 정보교환외에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서의 양국 협력등도 상정하고 있다. 새로운 지침에서 중요시되는 이러한 기본방침들은 일·미 안보체제를 아시아·태평양지역과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으로 신뢰받는 안보장치로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경과보고가 당초 실무차원에서 고려된 구체적이고 상세한 협력분야까지 거론하지 않고 기본틀과 방향제시에 머물렀다는 것이다.그 이유중의 하나는 정부의 헌법해석으로는 「행사할 수 없다」는 집단적 자위권과의 관계가 있다.양국은 이문제로 일본연립정부내에서 마찰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 「주변사태」에서의 후방지원 등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언급을 미루었다고 한다.하지만 앞으로의 작업에서는 일·미 안보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 어떤 협력이 필요한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공표해야하지 않을까.그렇게 하여 국회등에서 집단자위권 문제도 포함한 논의가 활발해지면 국민적 합의도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 검찰,「12·12」 항소이유서

    ▷서론◁ 원심이 일부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거나 가벼운 형을 선고한 것은 판단 유찰 또는 채증법칙을 위배,사실을 오인하였거나 형의 양정을 그르친 부당한 판결이다.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박준병 피고인에 대해 검사가 원심법원에 제출한 증거를 종합하면,육본 기동예비임무를 수행하던 20사단 사단장인 박피고인은 79년 12월12일 하오6시30분쯤 전두환 피고인의 제의에 따라 정승화 총장 연행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30경비단에 모였다. 같은 날 하오8시30분쯤 노충현 참모장으로부터 진돗개 하나 비상이 발령되고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이건영 3군사령관 등이 급히 찾고 있다는 것을 전화로 보고받고도 부대로 복귀하지 않았다. 같은 날 하오8시30분쯤 전두환 피고인으로부터 정총장 연행경위를 설명듣고 대통령 재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육본측 병력이 출동할 경우 20사단의 병력을 동원해 주기로 약속했다. 이어 30경비단에 머물면서 10여분 간격으로 20사단의 참모장·연대장·참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부대 장악을 기도함으로써 육본측에서20사단을 합수부측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해·저지했다. 같은날 하오9시30분쯤 전두환 피고인 등이 대통령에게 2차 재가를 받으러 간 뒤 노태우·장세동 피고인과 함께 30경비단장실에 남아 통신 유지와 상황 파악 임무를 수행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사실에 따르면 박피고인은 이 사건에서 반란의 범의를 갖고 반란중요임무종사행위를 한 것이 명백하다. ◇피고인 황영시의 내란목적살인혐의에 대해 황피고인은 자위권 발동을 결정한 80년 5월21일 하오4시35분쯤 국방부 회의에는 불참했지만 수차례에 걸쳐 관련 대책회의에는 참석하는 등 자위권 발동 결정에 깊이 관여했다. 광주 재진압작전 실행 시기를 결정한 5월25일 낮 12시15분쯤 육군회관 오찬회의에 참석한 뒤 광주재진압작적 계획서를 소준렬 전교사령관에게 전달했다. 탱크나 헬기를 동원,희생을 무릅쓰고라고 조속히 시위를 진압하라고 지시하는 등 광주민주화운동의 강경 진압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자위권 발동 또는 광주재진압작전의 실행과정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결과 발생을 용인했다. 전두환·이희성·주영복 피고인과 함께 광주민주화운동의 조속한 진압이 국헌문란 목적의 실행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공동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사실에 따르면 황피고인이 내란목적 살인에 대한 사전모의에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고,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내란목적살인행위 당시에는 내란목적살인행위를 공동으로 한다는 의사를 갖고 있었던 점이 인정된다. ◇피고인 정호용의 내란목적살인혐의에 대해 정피고인은 자위권 발동을 결정한 80년 5월21일 하오4시35분쯤 국방부 회의와 광주재진입작전 실행시기를 결정한 같은달 25일 낮12시15분쯤의 육군회관 오찬회의에 참석했다. 정피고인이 광주재진입작전 대책회의에 수차례 참석하고 그 준비작업을 하는 등 광주재진입 결정과정에도 깊이 관여했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과정에서 특전사 상황실 운영 등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공수부대를 지휘했다. 진압작전을 하고 있던 공수부대에 가발·의류를 지원하는 등 각종 행정 및 군수품을 지원했다. 자위권 발동 또는 광주재진입작전의 실행과정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결과 발생을 용인했다. 전두환·이희성·주영복 피고인 등과 함께 광주민주화운동의 조속한 진압이 국헌문란 목적의 실행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공동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사실에 따르면 정피고인이 내란 목적 살인에 대한 사전모의에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며,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최소한 내란목적살인행위 당시에는 내란목적살인행위를 공동으로 한다는 의사를 갖고 있었던 사실이 인정된다. ▷양형부당◁ 이 사건은 역사상 그 어느 범죄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안이 중하고 범행의 동기와 방법 등에 비추어 볼 때 죄질이 매우 나쁘다. 피고인들이 재판정에서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자신들의 범행을 정당화시키기에 급급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개전의 정이 없으므로 중형선고가 마땅하다. 반국가적·반역사적 범행으로 국민과 역사에 심각한 폐해를 끼친 피고인들을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엄중 처단하여 역사 발전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순리다. 원심이 역사의 순리를 외면하고 피고인들에게 지나치게 가벼운 형을 선고한 것은 부당하다. ▷결론◁ 항소심 재판이 원심 판결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피고인들 모두에게 추상같은 법의 심판을 내려 우리 국민 모두에게 법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 일,한반도 유사시 준전투 참여/자위대 미군지원계획 마련

    ◎군함호위·기뢰소해작전 등 수행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자위대의 통합막료회의(통막)는 한반도 등에서 무력분쟁이 일어났을 경우 참전하는 미군에게 지원이 가능한 1백개 항목을 이미 설정해 놓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15일 보도했다. 통막이 지난 2월 매듭지은 지원항목은 주일미군이 제시한 1천1백개 항목과 방위청이 독자적으로 마련한 사항을 바탕으로 마련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들 항목에는 자위대에 의한 미군 군함 호위와 기뢰 소해 등 전투에 가까운 작전행동도 검토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특히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집단자위권 행사제한도 상당히 융통성있게 해석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통막이 마련한 지원방안은 우선 무력행사를 통한 대미지원은 위헌이라는 정부견해에 바탕해 지원장소로 전쟁터와의 거리에 따라 ▲전투지역 ▲후방지역 ▲공해상 ▲일본국내 등 4개로 분류,전투지역은 분명히 집단적 자위권행사 금지에 저촉하는 범위로 규정했다.
  • 미­일/유사시 공동 군사작전 검토/교도통신 보도

    ◎방위협력지침 극동에도 적용 가능성 【도쿄 교도 연합】 일본과 미국은 극동지역의 군사적 위기상황 발생시 단순한 후방지원이 아닌 일본자위대와 미군의 공동 군사작전을 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교도통신이 13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지난 78년의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검토한 중간 보고서를 인용,그같이 전하고 이 보고서는 일본 주변지역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자위대와 미군을 『모두 사용한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정부 소식통은 미·일 양국이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을 때 뿐만 아니라 주변지역에서 군사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도 공동 군사작전을 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60년 극동지역을 한국과 대만을 포함한 필리핀 이북 지역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이 보고서는 방위협력지침이 헌법의 테두리내에서 개정돼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집단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헌법적 해석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양국간의 공동 군사작전 이외에 무력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해상봉쇄 등의 「위기관리」와 유엔 평화유지군활동 및 분쟁종식 이후의 조치 등에 대한 양국간의 협력과 함께 ▲분쟁지역의 난민 및 비전투요원 소개 ▲미군의 일본 민간공항과 자위대기지 이용 ▲미군에 대한 후방지원 등을 규정하고 있다.
  • 「12·12」­「5·18」 선고/법정 표정

    ◎1996년 8우러 26일 정오의 심판/한특대 권력자가 사형수로/전씨 선고순간 두눈에 경련/노씨는 눈감은채 시종 고개숙여 전두환 피고인은 눈을 내리 감은 채 애써 태연하려 했다.그러나 속마음을 모두 감추지는 못했다. 26일 낮 12시 정각.12·12 및 5·18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 방청석은 물론 양 옆 통로까지 방청객으로 가득 찼지만 침 삼키는 소리도 크게 느껴질 만큼 법정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 앉았다.재판장이 「주문」을 읽어내려갔다. 『피고인 전두환을 사형에,피고인 노태우를 징역 22년6월에,피고인 황영시…』 나머지 피고인에 대한 선고는 방청석의 술렁임 속에 묻혀버렸다.모두의 눈길이 두 전직 대통령에게 쏠렸다. 전피고인은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두 뺨의 근육이 불거질 정도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두 눈은 파르르 떨렸다. 이어 천장을 잠시 응시한 뒤 시선을 떨구는 모습에서 착잡한 심정이 읽혀졌다.평소 습관대로 다리를 떨거나 흰고무신을 신은 발을 꼼지락거렸다. 한 시대를 풍미한 권력자가 일개 사형수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노태우피고인은 눈을 감은 채 시종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공판이 시작된 것은 예정보다 조금 늦은 상오 10시8분쯤. 전피고인은 건강이 많이 호전됐는지 50여일만에 반팔 수의를 입고 나타났다.예의 당당한 자세로 법정에 들어선 그는 판결문이 낭독되는 동안 담담한 표정이다가도 『수많은 광주시민을 살해했고』『집권의 정당성이 없으며』 등 아픈 곳을 찌르는 대목에서는 표정이 굳어지며 입을 꾹 다물었다. 노피고인은 시종 고무신을 벗어 놓고 발을 포갠 채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기만 했다.『자위권 발동은 사실상 발포 명령이었다』는 대목에서 잠시 서너차례 고개를 가로저었을 뿐이었다. 낮 12시6분쯤 2시간에 걸친 상오 공판이 끝나고 재판부가 퇴정하자 또 한차례 소동이 펼쳐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전피고인이 담담한 얼굴로 돌아서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준병피고인에게 악수를 청한 것.이어 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피고인 등 가까이 있던 과거의 「동지」들과 손을 잡으며 담소를 나눴다. 동시에방청석에서는 『살인마 전두환,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절규가 터져나왔다.광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자식을 잃은 「5·18 동지회」 소속 어머니들이었다. 피고인들은 방호원들에 둘러싸여 총총히 법정을 빠져나갔다.그러나 소복 차림의 어머니들은 끝까지 법정을 떠날 줄 몰랐다.
  • 「12·12」­「5·18」 선고/재벌 중형선고 이유

    ◎뇌물엔 “단죄”… 정경유착 고리끊기/고액·구체명목·능동제공땐 실형/액수·획수 적고 초범땐 집행유예 김영일 재판장이 26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 관련 판결문에서 밝힌 재벌총수와 주요 피고인의 양형이유를 간추린다. ▲이건희 피고인=대통령에게 건넨 뇌물액수가 크지만 구체적 청탁과 관련돼 있지않고 국가경제에 기여한 점,체육·문화 등의 진흥에 애쓴 점,반성의 정도,초범인 점 등을 참작한다. ▲김우중 피고인=뇌물 액수가 크고 진해 해군잠수함기지 건설공사 수주와 관련한 금품공여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돼 있고,뇌물공여죄로 처벌받은 전력 등에 비추어 실형을 면하기 어렵다.경제발전의 기여 및 사회봉사활동 노력과 반성의 정도 등을 참작한다. ▲최원석 피고인=뇌물 액수가 많은데다 횟수도 적지 않고 아산만 해군기지 건설공사 수주에 대한 사례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된 점,이현우 피고인에게도 사례 명목으로 많은 뇌물을 공여한 점,1회 처벌 경력 등에서 실형을 면키 어렵다.경제발전 기여,반성 등의 정상을 참작한다. ▲장진호 피고인=뇌물 액수가 크고 지방공단지정과 관련된 행정절차상의 편의를 바라는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됐고 뇌물공여 직후 공단지정 결정이 이루어진 점,먼저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등 공여과정이 능동적이었던 점 등으로 실형을 면키 어렵다.경제 발전에 기여,사회봉사활동,반성,초범인 점 등을 참작한다. ▲이준용·이건 피고인=뇌물액수가 크고 아산만 해군기지공사 수주내정 사례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됐으나 횟수와 총액이 많지 않고 경제발전 기여,반성,범행 자백 등을 참작한다. ▲김준기 피고인=뇌물액수가 적지 않으나 포괄적 선처 외에 구체적인 청탁과 무관한 점,경제발전 기여,사회봉사활동,반성 등을 참작한다. ▲정태수 피고인=뇌물액수가 크고 수서택지개발지구 특혜분양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된 점,실명전환 액수가 큰 점 등에서 실형을 면키 어려우나 국가경제 기여,사회봉사활동,반성 등의 정상을 참작한다. ▲이경훈 피고인=위계에 의한 실명전환 액수가 적지않으나 전문경영인으로 경제발전에 기여한 점,반성,초범인 점 등을 참작한다. ▲이원조 피고인=대통령과 기업인 면담을 주선해 뇌물수수를 방조한 금액이 적지 않고 공여 기업주를 선정,액수를 조정하는 등 범행 모양이 좋지 않아 실형을 면키 어렵다.경제발전 기여,개인 이익을 취하지 않은 점,당뇨 등으로 고생하고 있고 초범인 점 등을 참작한다. ◎일부 무죄선고 파장/모두 「증거부족」이 원인/박준병씨 30단모임 기여안해/정호용씨 「5·18지휘」 인정못해 재판부는 12·12사건과 관련된 박준병 피고인의 반란중요임무종사죄,5·18사건에 연루된 황영시·정호용 피고인의 내란목적 살인죄에 대해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법조주변에서 예견되던 선을 넘어 세 피고인에게 무죄 또는 일부무죄판결이 내려짐으로써 적잖은 파장을 낳고 있다. 한마디로 증거부족이 무죄선고의 이유다. 박피고인의 경우 재판부는 무죄의 이유로 대략 4가지를 들었다. 당초 경복궁모임의 성격을 모르고 참석한 점,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병력출동지시를 받고도 부대에 출동지시를 내리지 않은 점,30경비단에서 뚜렷하게기여한 사실이 없는 점,결과적으로 육본측의 병력출동저지와 일치된 점을 꼽았다. 여기에는 28차례의 재판과정에서 보인 박피고인의 고분고분한 자세와 변호인의 끈길긴 무죄입증노력도 한몫 했다.자민련의 공천을 포기한 점을 정상참작의 사유로 거론하는 정치적 시각도 있다. 황피고인의 일부무죄논거는 자위권발동이나 광주 재진입작전을 결정하는 주요지휘관회의에 참여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핵심이다. 즉 증언과 증거를 종합할 때 80년5월21일 자위권발동이 결정된 국방부장관실 회의와 25일 육군회관에서의 상무충정작전 개시시기결정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또한 황피고인이 광주진압작전을 지휘하는 실권자였다는 김기석 당시 전교사부사령관의 증언이 막연한 생각일 뿐,내란목적살인의 증거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피고인은 재판과정에서 본인이 적극적으로 나서 일부무죄선고를 받았다.재판부는 5·18과 관련,주요쟁점인 「지휘권 이원화」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증거부족이 그 이유이며,예하부대를 파견한 모체부대장으로서 할 일을 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또한 자위권발동회의와 광주 재진입작전 결정회의에 참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거론했다. 특히 재판부는 공판과정에서 황·정피고인과 검찰이 신청한 증인 사이에 과잉진압여부를 놓고 주고받은 2건의 메모공방과 관련,피고인측의 손을 들어줬다.즉 황피고인이 「자동차는 경장갑차로…」 공격하라는 전화지시내용과,정피고인이 「소선배(소준렬 전 교사사령관),너무 기죽이지 마십시오」라는 내용의 전두환씨 친필메모를 소사령관에게 건넸다는 사실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나아가 검찰이 주요증거로 제출한 「5공전사」의 신빙성에도 의문을 나타냈다.항소과정에서 검찰측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7명 법정구속 배경/차규헌씨 「미운털 구속」/실형받고 구속안된 피고인/출국땐 재판부 허락받아야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에서는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 불구속상태로 출정한 유학성·황영시·이학봉·최세창·장세동 피고인 등 5명이 징역 7년∼10년을 선고받고 다시 수감됐다.불구속기소된 피고인가운데 차규헌 피고인도 징역7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전두환 피고인 비자금사건 선고공판에서는 1심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됐던 안현태 피고인도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같은 처지가 됐다.이날 공판에서 법정구속된 피고인은 모두 7명이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항소심재판때까지 불구속상태로 놓아둘지 여부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재벌총수를 포함해 불구속 기소된뒤 실형선고를 받은 11명의 피고인 가운데 유독 차규헌 피고인만 법정구속돼 눈길을 끌었다.이희성·주영복·박종규·신윤희·김우중·최원석·장진호·금진호·이원조·안무혁 피고인 등 나머지 불구속 기소 피고인 10명은 법원의 관용에 따라 여전히 불구속 재판을 받게 돼 희비가 엇갈렸다. 차규헌 피고인은 검찰에 이어 재판부에도 「미운 털」이 박혔다는 인상이 짙다.검찰 수사단계에서 전두환 피고인의 범죄행위를 비난하고,자신의 범행을 시인하는 등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이 고려돼 불구속 기소됐지만 법정에서 진술번복이 잇따랐다.12·12사건때 예하부대에 병력동원을 지시한 사실을 부인하고,5·18사건과 관련해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는 등 검찰을 난처한 입장에 빠트렸다. 비자금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재벌총수 9명가운데 대우그룹 김우중·동아 최원석·진로 장진호·한보 정태수 회장 등 4명의 피고인은 예상을 뒤엎고 각각 징역 2년∼2년6월씩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정구속은 면했다.재판부는 재벌총수로서 각종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면 국가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적극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정구속되지 않은 피고인은 출국할때 재판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피고인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의 판단에 따라 같은 절차를 밟아야 한다. □「12·12,5·18」 수사 재판 일지 ▲95년10월19일=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원 시중은행예치 폭로 ▲10월20일=대검 중앙수사부 수사착수 ▲11월16일=노 전 대통령 구속수감 ▲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제정 발표 ▲11월30일=「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발족 ▲12월2일=전두환 전 대통령 「골목성명」 발표후 경남 합천행 ▲12월3일=전 전 대통령 연행,안양교도소 구속수감 ▲12월4일=조홍 전 수경사헌병단장,노재현 전 국방부장관 등을 시작으로 관련자 본격 소환 ▲12월8일=최규하 전 대통령 출석요구서 전달 ▲12월12일=최 전 대통령 1차 방문조사 무산 ▲12월15일=헌법재판소 5·18헌법소원에 대한 사건종료결정 ▲12월16일=최 전 대통령 2차 방문조사 무산,최 전 대통령 대국민성명 발표 ▲12월18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첫공판 ▲12월21일=단식중이던 전전대통령 안양교도소에서 경찰병원으로 후송,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제정,공포 ▲12월27일=5·18사건 광주현장조사 및 광주지검과 공조 ▲96년1월17일=장세동·최세창·유학성·황영시·이학봉 등 구속영장 청구 ▲1월18일=12·12사건 위헌심판제청(서울지법).장세동·최세창 구속영장 보류 ▲1월23일=전·노 두 전직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이학봉·이희성·주영복·차규헌 등 기소 ▲1월29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의 이건희 피고인 등 재벌총수 14명 구형 ▲1월30일=정호용·허삼수·허화평등 국회의원 3명 구속영장 청구 ▲2월16일=5·18특별법 합헌결정 ▲2월22일=박준병의원 구속영장 청구,최세창·장세동 구속 ▲2월26일=전전대통령 비자금사건 첫공판 ▲2월28일=12·12및 5·18사건 수사종결 ▲3월11일(1차공판)=전·노등 피고인 16명 출정 ▲4월22일(5차공판)=전피고인 직접신문,전상석·이양우 변호사 검찰신문에 항의,퇴정 ▲4월29일=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의 안현태 피고인 등 4명 구형 ▲5월20일(8차공판)=변호인측의 반대신문 시작,변호인측 재판부의 야간재판에 반발해 퇴정 ▲6월13일(13차공판)=변호인단 주2회 재판에 항의,집단퇴정,재판파행 ▲6월24일(16차공판)=재판부 최 전 대통령 등 44명 증인채택 ▲6월27일(17차공판)=윤성민 전 육참차장을 시작으로 증인신문 ▲7월1일(18차공판)=최 전 대통령 증언거부 ▲7월4일(19차공판)=전·노 피고인측의 변호인단 집단불출석,재판부 국선변호인 선임 ▲7월8일(20차공판)=전·노피고인측 이양우 변호사 등 변호인 8명 집단사퇴,전·노 피고인 출정거부 선언 ▲7월11일(21차공판)=전·노 피고인 다시 출석,국선변호인 선임해 공판진행 ▲7월16일=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법원의 구속집행정지결정으로 석방 ▲7월22일(23차공판)=권정달 의원 증인출석 ▲7월25일(24차공판)=재판부 8월5일 결심공판 발표 ▲7월29일(25차공판)=유학성·황영시 피고인측 정영일 변호사 등 변호인 6명 또 집단사퇴 ▲8월1일(26차공판)=이희성 피고인 등 증인 7명 신문 ▲8월5일(27차공판)=김경일 12·12 당시 1공수 1대대장(현역소장) 증인을 끝으로 사실심리 종료,검찰 전·노 피고인 비자금사건과 병행해 구형,8월19일 선고공판 발표 ▲8월14일=재판부 선고공판 26일로 연기 발표 ▲8월26일(28차공판)=12·12및 5·18사건과 전·노 피고인의 비자금사건 피고인 34명에 대한 선고
  • 「12·12」­「5·18」 선고/사건의 실체와 의미

    ◎쿠데타·권력형 부패 중형 단죄/반란·내란 잘못된 역사 법적 심판/“「자위권」이 발포명령” 살인죄 인정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역사적 심판이 26일 내려졌다.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 김영일 재판장은 판결문을 통해 『12·12는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이며 5·17 및 5·18은 폭동을 통해 집권에 이른 내란이다』라고 규정했다. 이로써 12·12 및 5·18의 역사적 의미가 16년만에 구체적인 사실에 기초,바로잡히는 토대가 마련됐다.김재판장의 말대로 「크게 정지됐던」 역사의 흐름이 비로소 민주화라는 제 길로 들어서게 됐다. 5∼6공 정권의 정통성 결여도 사법부와 역사의 이름으로 명백히 밝혀졌다. 군사쿠데타를 통한 정권찬탈과 권력형 부정부패는 더이상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는 「안전판」이 설치된 셈이다. 재판부가 내린 형량은 죄질과 정상을 참작할 때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형량의 가장 큰 특징은 전·노 피고인에 대한 차등선고.전피고인에게는 반란 및 내란수괴이자2천2백여억원의 뇌물을 챙겼고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사형을 선고했다.2인자이자 2천8백여억원의 뇌물을 받았으나 직선대통령인 노피고인에게는 구형량인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22년6월을 선고했다. 나머지 13명의 피고인에게는 구형량인 무기징역∼징역 10년보다 낮은 징역 10∼4년을 각각 선고했다. 특히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황영시·정호용 피고인에게 증거부족을 이유로 내란목적살인죄를 인정하지 않고 나란히 징역 10년을 선고해 주목됐다.박준병 피고인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검찰이 적잖은 상처를 입게 됐다. 그러나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사실과 죄목 10가지를 모두 인정한 것에 검찰은 흡족해 한다. 12·12의 쟁점도 명확히 정리됐다.이른바 ▲12·12의 동기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병력출동 및 저지 등이다. 재판부는 12·12를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가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특히 쟁점의 핵심인 정총장의 연행은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의 사전승인을 거치지 않고,사전구속영장이나 사후영장 없이 무력으로 연행한 불법조치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정총장의 연행재가와 관련,당일 하오7시쯤 최대통령에게 요청한 재가가 거부됐다는 점을 불법의 이유로 적시했다.특히 13일 상오5시10분의 사후재가는 국가권력이 전피고인 등의 행위로 그 권위를 도전받고 위법상태가 발생한 이후에 이뤄진 승낙이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병력출동에 대해서는 같은 해석을 내렸다.신군부가 육본측의 지시에도 불구,당일 하오10시30분에 먼저 병력출동지시를 내리고 국방부·육본·경복궁 등에 병력을 진주시켰다는 것이다.하극상에 의한 명백한 쿠데타임을 적시한 것이다. 80년부터 81년1월24일까지의 5·17 및 5·18사건도 내란및 내란목적 살인 등의 유죄사실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특히 발포명령자를 적극적으로 명시했다. 재판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발포명령이 실질적으로 5월21일 계엄사의 자위권보유 천명으로 이뤄졌다고 지적,실질적인 발포명령자를 전두환·주영복·이희성 피고인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검찰의 주장대로 내란목적 살인죄를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비상계엄의 확대선포가 폭동에 해당되며,선포유지행위가 포괄적으로 내란죄에 해당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계엄군 배치와 국회의원 등원저지,광주 진압,정치인 체포,공직자 숙정,언론인 해직 및 언론통폐합,대법원 판사의 사직요구 등 일련의 과정을 내란행위로 규정했다.특히 대통령의 승인을 거쳤다 하더라도 국회해산과 국보위설치 등은 국헌문란에 해당된다고 판시하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
  • 김상희 부장검사 일문일답

    ◎“12·12 검찰이론 인정돼 다행/양형부당 등 검토 항소 결정” 12·12 및 5·18사건의 주임검사인 서울지검 형사2부 김상희 부장검사는 26일 재판이 끝난뒤 『판결결과에 대체로 만족한다』고 밝혔다. ­12·12사건에 대한 평가는. ▲12·12사건에 대해 검찰이 구성했던 법률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군사반란임을 명쾌히 했다. ­5·18사건에 대해서는. ▲가장 역점을 두었던 비상계엄 전국확대와 유지행위에 대해 법원이 폭동으로 인정했다. ­박준병 피고인은 무죄,정호용·황영시 피고인은 내란목적살인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아쉬움이 있다.정·황 피고인은 자위권 보유천명대책회의와 광주진압작전회의에 참석한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소할 것인가. ▲박준병 피고인에 대한 무죄 등 3건의 무죄부분을 포함,양형이 부당한지를 면밀히 검토해 결정할 계획이다.
  • 불법시위 단호 대처 “경고”/“정규경찰 총기사용” 발언 안팎

    ◎「자위권 발동」 원론적 차원서 강조 19일 저녁 이수성 국무총리의 대국민 발표문과 박일용경찰청장의 기자회견은 한마디로 불법 시위는 더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위기상황으로까지 불리는 공권력의 확립과도 맥을 같이 한다.좁게 보면 묘책이 없는 상태에서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는 한총련 학생들의 연세대 점거·시위를 하루 빨리 끝내기 위한 강·온 양면의 방침을 밝힌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총리는 이날 연세대 폭력시위 가담 학생 가운데 개전의 정이 뚜렷한 학생에 대해 최대한 관용을 베풀겠다고 밝혔다.반면 같은 시간 박경찰청장은 공권력을 확립하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판단될 경우 총기사용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했다.외형적으로는 연세대 폭력시위 사태에 대한 상반된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지만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에 대한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한목소리로 보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박청장의 「총기 사용 불사」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급하다.지난 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보듯 자위권 발동이라는 극약처방은 시위진압 이상의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박경찰청장도 극히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엄격하게 제한하겠다고 강조했다. 전투경찰에게는 지금처럼 총기나 실탄을 지급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다만 경찰관은 복무집행법이 규정한대로 필요한 한도 내에서 총기를 사용토록 하겠다는 것이다.범인이 도주·체포를 방해할 때,경찰관 자신의 생명이나 타인의 신체에 대한 방호,공무집행에 대한 항거 억제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등을 구체적으로 예시했다. 어찌보면 기존의 경찰관 총기 사용 지침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총기 사용에 대한 국민 일반의 거부감을 감안하면 박경찰청장의 발언은 정치권 등에서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 「12·12」 「5·18」 26차 공판/증인신문 지상중계

    ◎“임무 받고 출동때 부대원들에 실탄 지급”·“차량통행 저지해도 계속 다가와 사격”­김광택 증인/“승용차에 대한 총격 어떻게 발생했나”­재판장 12·12 및 5·18사건 제26차 공판이 1일 서울지법 제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지난 6월27일 제17차 공판이래 마지막 공판은 김광택 당시 20사단 61연대 2대대 6중대장에 대한 증인신문으로 시작됐다.채택증인 91명중 40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날로 마무리 됐다. ○김광택 증인 ▲박봉식 검사=증인이 소속됐던 20사단 61연대 2대대 6중대는 80년 5월21일 하오6시 광주와 목포간 도로를 봉쇄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죠. ▲김증인=그렇습니다. ▲박검사=임무를 부여받고 출동할 때 실탄을 수령해 부대원들에게 지급했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 ▲박검사=5월21일 밤 10시10분쯤 효천역 부근에서 도로 차단임무를 수행하던중 목포쪽에서 차량 6대에 탑승한 시위대와 교전한 적이 있습니까. ▲김증인=있습니다. ▲박검사=5월22일 새벽 1시쯤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던중 광주쪽에서 버스 5∼6대를 타고 오는시위대와 교전한 적이 있습니까. ▲김증인=예. ▲박검사=5월22일 상오 8시30분쯤 효천역 부근에서 광주쪽에서 오던 승용차 1대에 총격을 가해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을 사망케한 사실이 있습니까. ▲김증인=먼저 총을 뺐기때문에 총격을 가했습니다. ▲김영일 재판장=5월22일 상오 8시쁨 승용차에 대한 총격은 어떻게 발생했습니까. ▲김증인=사병이 차량통행을 막으려 해도 계속 다가와 사격을 했고 총격이 끝나고 가보니 승용차에 탄 4명이 모두 사망했으며 그중 1명이 총일 갖고 있었습니다. ○최규진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당시 11공수여단 62대대 4지역대장이던 증인은 5월21일 하오 1시 전남도청앞에서 11공수여단 병력이 장갑차와 버스를 타고 돌진해 오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최증인=알고 있습니다. ▲김부장검사=5월24일 하오 2시븜 증인의 부대가 주남마을에서 송정리 비행장으로 철수하던중 효천역 부근에 이르렀을때 매복중이던 보병학교 병력이 증인의 부대에게 90미리 무반동총으로 사격을 가했습니까. ▲최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당시 보병학교병력이 신분확인이나,사전경고를 했습니까. ▲최증인=폭도로 오인해서 사전경고는 없었습니다. ▲김부장검사=증인은 보병학교 병력의 당시 총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최증인=잘못된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익원 변호사=사병들에게 실탄을 분배한 시점은 언제입니까. ▲최증인=구체적으론 기억이 나지 않으나 5월 21일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균 증인 ▲박태식 검사=당시 20사단 62연대 2대대 5중대장이던 증인이 소속돼있던 2대대는 80년 5월21일 하오 광주 서구 화정동소재 광주통합병원 앞돌고개로 출동해 시위대와 대치한 사실이 있지요. ▲이증인=그렇습니다. ▲박검사=다음날인 22일 하오 연대로 부터 광주통합병원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고 통합병원쪽으로 이동하던중 이를 저지하던 무장시위대와 민가지역에서 교전한 사실이 있나요.또 당시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병력들은 응사를 하면서 통합병원으로 이동했나요. ▲이증인=교전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대장의 발포지시가 있었던것이 아니고 상대편에서 발포함에 따라 병사들이 스스로 자위권을 위해 총을 쏜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익원 변호사=5월22일 돌고개 작전 전후에 자위권 발동 지시나 관련지침을 받은 사실이 있나요. ▲이증인=총기 사용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절대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또 출동에 앞서 중대장과 병사들의 작전에 임하는 자세애 대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서변호사=당시 총기를 일체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만 있었고 총기사용 허가는 22일 통합병원으로 이동할 당시 이후의 일이지요. ▲이증인=그렇습니다. ○박종규 증인 ▲이부영 검사=당시 3공수여단 15대대장이던 증인은 3공수여단 병력이 5월22일 새벽 0시40분 광주교도소 앞에서 시위대와 교전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시위대의 서종덕등이 총상으로 사망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박증인=알고 있습니다. ▲서익원 변호사=광주에 있을 동안 정호용 특전사령관이나 상급부대로부터 자위권 발동 지시를 받거나 계엄사령관의 자위권천명 방송을 본적이 있습니까. ▲박증인=지시를 받거나 방송을본적은 없었고 광주교도소로 이동하고난뒤 교도소에 뿌려진 삐라를 보고 알았습니다. ○박준병 증인 ▲이부영 검사=당시 20사단장이던 증인은 5월22일 광주 효천역앞에서 20사단 병력이 승용차에 총격을 가해 민간인 3명을 사살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박증인=알고 있습니다. 시신을 광주 국군 병원에 인계했습니다. ▲이검사=5월26일 광주 재진입 지시는 최종적으로 누가 했습니까. ▲박증인=전교사령관이 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세동 증인 ▲김수연 변호사=달시 특전사 작전참모였던 증인은 광주사태 기간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수행해서 광주에 내려간 사실이 있습니까. ▲장증인=세차례 수행했습니다. 5월21일과 23일,26일 세차례 내려가 각각 다음날 올라왔습니다. ▲이부영 검사=7공수여단장이 전교사에 머문 사실을 알고 있죠. 7공수 33대와 35대대는 31사단에 작전배속돼 여단장에게는 작전 지휘권이 없는데도 7공수여단이 전교사에 상황실을 만든 사실은 틀림없죠. ▲장증인=상황실인지 여단장의 통신축선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상황판과 무전기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 「12·12」 「5·18」 24차 공판­증인신문 지상중계

    ◎“공수부대 지원 요청한 일 없다”·황영시씨 유혈진압 지시 어이없어 거부­정웅 증인/참모총장 승인 받아야 특전사 출동 가능­김재명 □25일 출두 증인­괄호안은 당시 직책 ·정웅(31사단장) ·김재명(육본 작전참모부장) 12·12, 5·18사건 24차 공판이 25일 상오 10시 재판부의 입정으로 시작돼정웅 당시 31사단장 등 증인 4명에 대한 신문이 진행됐다. ○정웅 증인 ▲이부영 검사=5·18당시 공수부대의 지원을 요청한 일이 있습니까. ▲정증인=전혀 없습니다. ▲이검사=공수부대의 작전통제가 실제로 이뤄졌습니까. ▲정증인=5월 20일이후 작전상황에 대한 보고가 완전히 단절됐고 공수여단장들은 정호용 특전사령관에 직보하는 등 계엄하 작전지휘체계가 이원화된 상태였습니다.정상적인 지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이검사=초기 강경진압에 대한 육본측의 지시가 있었습니까. ▲정증인=지시를 받았으나 거부했습니다.특히 황영시 육본차장은 유선으로『무장헬기 등을 동원, 버스를 공격하라』는 등 강경 유혈진압을 지시했는데하도 어이가없어 『그렇게는 못한다』고 거부했습니다. ▲이검사=80년 6월 5일 강제해임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정증인=표면상 초기진압에 실패했고 시민들에게 무기를 빼앗긴 책임 등을 물어 해임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론 신군부측의 작전지시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창렬변호사=사단장의 병력요청없이 육군본부가 공수여단을 투입할 수있지 않습니까. ▲정증인=통상은 현지 지휘관의 의견을 묻습니다. ▲전변호사=증인은 87년 7월 5일 국회본회의에서 『80년 5월 15일 육군본부 회의실에서 정호용 피고인이 김대중씨를 체포하면 광주지역에서 시위가 예상되지만 공수부대 1개 대대병력만 작전을 벌이면 충분히 진압할 수 있다는발언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정증인=예. ▲전변호사=당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국회본회의에서 질의할 수 있습니까. ▲정증인=국회에서 의원들이 검증된 사실만 이야기를 합니까. ▲전변호사=5월20일 정오부터 윤흥정 전교사령관과 정호용 특전사령관으로부터 지휘권을 박탈당했다고 국회본회의에서 말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정증인=20일 하오부터 저의 작전통제권하에 있는 공수여단장을 아무리유.무선으로 호출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휘권을 박탈당했다기 보다는지휘권 행사가 불가능했습니다. ▲전변호사=증인은 국회 광주청문회에서 80년 5월22일 박충훈 국무총리가 광주에 내려와 간담회를 열었을 때 정호용피고인이 『광주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싹쓸이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증언했습니까. ▲정증인=그렇습니다. ▲전변호사=간담회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정호용피고인이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고 말했는데 증인은 무슨 근거에서 그런 말을 합니까. ▲정증인=법정에 있는 정호용피고인에게 물어보십시오. ▲전변호사=증인은 당시 공수부대들이 정호용 특전사령관에게 직보하는 등지휘체계가 이원화돼 있었다고 진술했는데 본인이 직접 확인한 바 있습니까. ▲정증인=직접 확인한 건 아니고 당시 시중에 공공연히 나돌던 소문과 책자 등의 내용 등을 통해 파악한 사항입니다. ▲김영일 재판장=7공수여단 33.35대대를 작전배속받고 전남대와 조선대에 배치했는데 당시 학교에 배치할 만큼 학생들 시위가 심각했습니까. ▲김재판장=정호용 피고인이 여단장이나 대대장 등 예하부대 지휘관들에게 직접 작전명령을 내리는 것을 보거나 들은 일이 있습니까. ▲정증인=보거나 들은 바는 없습니다. ▲서익원 변호사=당시 과격한 시위진압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해봤나요.또 공수여단에 대한 지휘가 어려워졌다고 주장했는데 지휘권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했었나요. ▲정증인=19일 하오 사단 작전명령을 통해 무혈작전을 지시했습니다. 지휘권 정상화를 위해서 여단장들을 계속 호출했으나 그들이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진강 변호사=5월14일 하오 2시 전교사에서 열린 학생가두시위대책 합동회의에 신우식 7공수여단장도 참석했죠. ▲정증인=그렇습니다. ▲이변호사=증인과 윤흥정사령관이 5월21일 전교사를 방문한 2군사령관에게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을 건의했나요. ▲정증인=아닙니다. ▲정호용 피고인=전남대와 조선대등에 공수부대 배치를 직접 지시한 사람은 정웅 사단장 아닙니까. ▲정증인=맞습니다. ▲정피고인=공수여단의 시위진압 작전을 본인이 직접 지휘한 걸 확인했습니까. ▲정증인=직접 확인할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정피고인=강경진압을 지시한 것이 누구입니까. ▲정증인=충정훈련 교리에 나와 있는 얘기입니다. ▲정피고인=본인이 공수부대를 직접 지휘했다고 하는데 누구로부터 확인한 것입니까. ▲정증인=지휘권도 없는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정피고인=공수여단장이 제대로 보고안하면 대대단위에라도 확인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정증인=정상적인 지휘체계가 아닌 상태에서 어떻게 합니까. ○김재명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1·3공수여단과 20사단 광주 증파가 광주지역의 전교 사령관이나 31사단장으로부터 건의를 받고 결정된 것은 아니죠. ▲김증인=직접 요청받은 바는 없으나 요청없이 이뤄지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봅니다. ▲김부장검사=5월25일 상무충정작전 계획을 황영시 피고인과 함께 광주를 방문,소준렬 전교사령관에게 전달했는데 2군사령관을 거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김증인=극히 보안을 필요로 하는데다 시간을 다투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직접 가지고 내려간 것입니다. 좀 늦게 도착했는지는 모르지만 2군사려오간에게는 연락장교를 통해 보냈습니다. ▲전창렬 변호사=육군참모총장 승인없이 예하부대장이 자신의 부대를 출동시킬 수 있습니까. ▲김증인=부대에 따라 다릅니다. 특전사는 참모총장의 직접 지휘를 받기때문에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2군사령부와 전교사가 계엄업무 수행을 위해 병력을 이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육본이 개입하지 않습니다. ▲전변호사=공소장에 따르면 전두환·이희성·황영시·정호용 피고인이 함께 전교사의 보고를 받고 광주시위 상황이 자신의 집권계획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공수부대를 투입해 시위를 강경진압했다는데 이들 피고인이 병력 투입에 간여할 수 있습니까. ▲김증인=안됩니다. 계엄사령관의 문서명령없이 병력출동은 안됩니다.
  • 「12·12」 「5·18」 23차 공판 지상중계

    ◎전씨 시국수습방안 수립 직접 지시·대통령 선출방법 전씨가 간선제 최종결정­권정달씨/“광주 기관장들 시위진압 과격하다” 항의­최웅씨 ▷권정달 전보안사 정보처장 증인신문◁ 김상희 검사=증인은 80년 3월 이상재 준위가 작성한 「K­공작계획」에 대해 전두환피고인에게 결재받았나. 권=그렇다. 송찬엽 검사=80년 5월 초순경 전두환 피고인으로부터 이른바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해보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보안사 참모들과 2,3일간 수시로 만나 논의한끝에 시국수습방안을 마련했나. 권=논의를 거쳐 초안을 작성했다. 송검사=보안사 참모들이 마련한 시국수습방안에 대해 유학성,황영시,차규헌,노태우,정호용 피고인 등 신군부측 장성들과도 만나 논의했나. 권=그렇다. 80년 5월4일 무렵 청와대 근처 궁정동 중앙정보부장 안가에서 논의했다. 송검사=실행시기를 앞당긴 건 전국대학 총학생회장들이 5월22일 이후 전국규모의 시위를 계획하고 있고 국회에서도 계엄해제문제를 논의할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나. 권=그렇게 알고 있다. 송검사=증인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개최되는 5월17일 오전 전두환피고인의 지시로 주영복 국방부장관을 찾아가 시국수습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시국수습방안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의 의제로 상정하여 결의한 다음 대통령에게 건의해 달라고 요청했나. 권=그렇다. 송검사=전두환 피고인은 5월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보도통제지침 결재과정에서 보도지침에 위반하는 경우에는 계엄사보도처에서 폐간조치하라는 취지로 「위반시 보도처 폐간」이라는 문구를 기재한 사실이 있는가. 권=그렇게 알고 있다. 송검사=육사 11기생인 김영균 변호사가 국보위설치령 초안을 작성한 후 5월22일 이원홍 청와대민원수석비서관에게 조문화 작업을 하게 했는가. 권=그렇다. 송검사=국보위 위원중 임명직은 김용휴 총무처장관이 전피고인과 협의해서 결정했나. 권=예. 송검사=분과위원은 보안사에서 존안하고 있던 자료를 중심으로 해 증인과 허화평,허삼수,이학봉 피고인 등이 선정해서 국보위에 통보했나. 권=그렇다. 송검사=증인은 80년 7월전씨에게 국보위 법사위원인 박철언 우병규씨를 보안사로 불러서 개헌작업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나. 권=예. 송검사=증인은 80년 7월 중순 전두환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노태우 피고인과 정도영 보안처장,이종찬 중앙정보부 총무국장,허문도 중앙정보부 비서실장 등이 모인 자리에서 박철언 우병규씨가 만들어 준 개헌안 골격을 보고한 사실이 있나. 권=있다. 송검사=그 자리에서 대통령선출방법에 대해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간선제를 주장하고 허삼수 피고인만 직선제를 주장했으나 전두환 피고인이 최종적으로 간선제로 하기로 결정했다는데 사실인가. 권=예. 송검사=대통령의 임기는 허화평,허삼수 피고인 등이 6년으로 하자고 강력히 주장했으나 전피고인이 우병규,박철언씨에게 7년으로 하도록 지시했다는데. 권=6년이 너무 짧아 7년으로 늘리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송검사=80년 8월 21일 개최된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전피고인을 국가원수로 추대결의할 때 보안사 정보처에서는 주영복 국방부장관이 읽은 「전두환 장군을 차기 국가원수로 추대할것을 전군적 합의로 결의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작성해준 사실이 있는가. 권=그렇다. 송검사=증인은 80년 7월 이상재언론대책반장이 작성해 온 해직언론인 명단을 이광표 문공부 장관에게 건네준 사실이 있는가. 권=그렇다. 송검사=증인은 80년 6월 하순 보안사령관실에서 이종찬,윤석순,이상재씨 등과 함께 전두환 피고인으로부터 신당창당 작업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는가. 권=예. 김헌무 변호사=시국수습방안에 대한 토의가 처음 이뤄진게 5월 4일쯤이라고 진술했는데. 권=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허와평 비서실장이 한 것으로 생각된다. 정영일 변호사=시국수습방안의 초안을 작성하고 브리핑까지 한 증인이 오히려 핵심인물로 보이는데도 검찰의 기소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권=말하기 어려우나 검찰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진강 변호사=5월17일 오전 9시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 앞서 증인은 주영복 국방장관에게 시국수습방안 안건을 전달했는데 이것은 증인이 단독으로 보고한 것이냐 아니면 전 보안사령관의심부름인가. 권=심부름이었다. 허화평 피고인=당시 모든 참모가 바쁠때이고 더구나 비좁고 사람들의 출입이 많은 비서실장실에서 증인과 나를 비롯해 5명의 참모가 2∼3일간 모여서 논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령관의 별도 지시가 있었나. 권=사령관의 지시는 없었지만 당시 사령관에게 보고하기 전과 보고 뒤에 항상 참모들이 의논하고 상의하는 체계였다고 생각한다. 유학성 피고인=육군 대령이 군사령관,참모차장,육사교장,특전사령관을 소집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권=소집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왔으면 좋겠다고 건의한 것이다. 유피고인=궁정동 안가모임의 연락을 담당했다는 허화평 피고인은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는데 어떻게 내가 그 모임에 참석할 수 있겠는가. 권씨=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말한 것 뿐이다. 정호용 피고인=본인은 궁정동 중정안가에서 열렸다는 시국수습방안 논의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당시 시국수습방안이 마련됐다고 가정하고 이는 업무상 필요한 방안이 마련된것이지 집권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잖은가. 권씨=초기에는 없었다. 그러나 나중의 일에 대한 최종판단은 사법부가 할일이라고 생각한다. ▷최웅 전11공수 여단장 증인신문◁ 김검사=5월 18일 시위진압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실을 사후 보고받아 알고 있었는가. 또 19일 광주지역 기관장회의에 참석,시위진압 방식이 과격하다고 항의를 받았던 적이 있는가. 최=그렇다. 김검사=20일 낮12시부터 다음날 오후4시까지 도청앞에서 시위대와 공방이 있었고 21일 오후 1시쯤 시위대에 발포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최=20일 오후부터 시위군중에 포위돼 공방보다는 일방적으로 밀려났으며 21일의 발포사실은 사후 보고받았다. 김검사=21일밤 자위권 발동을 지시받고 실탄을 배급한 사실이 있는가. 최=사전에 윤흥정 전교사령관에게 부대원의 안전을 위해 철수와 동시 자위권발동을 건의,21일 오후 4시에 철수와 자위권 발동,자위권 행사지침을 지시받았다. 당시 이미 시위군중이 무장화돼 있었고 전날밤 경찰관 4명이 사망했던 상태였다. 김검사=20일 오후 정웅 31사단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전교사에서 만나 광주상황을 보고하고 윤흥정,정웅등 광주지역 지휘관들의 우유부단성을 지적,대책마련을 건의한 사실이 있는가. 또 광주에 내려와 있던 정사령관과 상황에 대해 여러차례 논의한 적이 있지 않는가. 최=교체 건의는 아니었고 어려움을 하소연한 사실은 있었다. 정사령관에 대해서는 친정부모 같은 생각에 고충을 토로했던 것이다. 김검사=당시 전교사에 특전사 상황실을 마련해 놓았던 것이 사실인가. 최=그것은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한다.당시 모든 작전이 대대­여단­전교사­육본 체제로 이루어졌고 각종 정보계통을 통해 상황이 보고되고 있었는데 상황실을 따로 둘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김주상 변호사=20일 낮12시부터 11공수여단 일부 병력이 시위군중에 포위되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당시 안부웅 61대대장이 증인에게 병력철수 명령을 내리든지 아니면 자위권 발동을 지시하든지 조속한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증인에게 건의했는가. 최=그렇다. 김변호사=시위가 갈수록 악화되자 증인은 윤흥정 전교사령관에게 부대원의 안전을 위해 병력철수를 지시하거나 자위권 발동지시를 내려줄 것을 건의,21일 오후 4시부로 자위권 발동을 지시받은 사실이 있는가. 최=여단장으로서 부대원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전교사령관에게 그같은 건의를 해 승낙을 받고 실탄을 분배했다. 김변호사=도청 재진입작전은 소준열 사령관의 자체지시에 의한 것 아닌가. 최=소사령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정리=함영훈­조철현 기자〉
  • 「12·12」 「5·18」 22차 공판/증인신문 지상중계

    ◎“황영시씨 전차·무장헬기 동원 진압 지시”­김기석·이귀호 증인/「무리해서라도 조기 진압」 전씨메모 봤다­임헌표 증인/공수단 정보·작전보고 특전사로만 전달­백남이 증인 12·12 및 5·18사건 제22차 공판이 15일 상오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공판에서는 유병현 당시 합참의장등 7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유병현 증인 ▲이부영 검사=80년 5월17일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 앞서 주영복 국방장관에게 회의 소집 이유를 물었더니 주장관이 엄지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외부로부터 요청이 있어 회의를 소집한 것인데 안건이 특이하다』고 말했지요. ▲유증인=그렇습니다. ▲이검사=구체적인 안건을 묻자 주피고인이 약간 당황해하며 계엄강화,국회해산,비상기구 설치 등 3가지 문제라고 대답했고 증인은 국회해산과 비상기구 설치에 반대했나요. ▲유증인=그렇습니다. ▲이검사=5월 21일 국방장관실에서 열린 군 자위권 보유천명 논의 모임에서 증인이 담화문 초안을 수정했나요. ▲유증인=수정한 것은 아니고 초안내용이 강도가 높아 국민들에게 「군자위권」이 무엇인지 알리는 수준이면 광주시민들도 자연히 알게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임헌표 증인 ▲채동욱 검사=80년 5월23일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광주에 내려올 당시 증인이 광주비생장에서 수행을 했죠. ▲임증인=그렇습니다. ▲채검사=전교사로 오던중 헬기안에서 정사령관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친필 서명과 함꼐 「무리를 하더라도 시위를 조기 진압하라」는 내용이 담긴 메모를 읽는 걸 목격했죠. ▲임증인=예. (정호용 피고인이 증인신문을 했다) ▲정피고인=그러면 어떻게 메모를 읽어보게 된 것인가요. ▲임증인=단어나 문장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메모를 봤습니다. ○김기석 증인 ▲이재순검사=광주시민들의 시위가 격화된 이후 전교사에서는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려 했으나 육본측에서 「초전박살」이라는 지휘개념하에 강경진압을 하려 했나요. ▲김증인=예.황육참차장으로부터 당시 광주에 내려와 있던 무장헬기와 기갑학교의 전차를 동원,사태수습을 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이검사=20일에서26일 사이 황영시 피고인과 김재명 육본 작전참모부장은 증인에게 여러차례 『전차와 무장헬기를 동원해 강경한 충정작전을 실시하라』고 질책한 사실이 있나요. ▲김증인=있습니다. ▲정영일 변호사=증인은 검찰조사과정에서 『광주진압 작전을 전면에 나서 총지휘한 사람은 황 참모차장』이었다고 진술했는데 확실히 그렇게 진술했습니까. ▲김증인=제가 알기로는 당시 계엄사 부사령관이었던 황장군이 매사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정변호사=광주사태 진압기간중 증인은 전차나 무장헬기를 동원한 적이 있었습니까. ▲김증인=진압용이 아닌 위력시위용으로 동원했다가 진압과정에서 잘못된 사례가 있었습니다.예컨대 핸들조작을 잘못하는 바람에 인도로 뛰어들었는가 하면 위협사격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는 수가 있었습니다. ▲전창렬 변호사=광주비행장에서 정호용 피고인이 공수여단장들을 만나 작전지휘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김증인=참모들로부터 보고를 받았지만 어느 참모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황영시 피고인=증인은 광주사태 초기진압은 내가 지휘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는데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김증인=당시 제가 느끼기에 참모차장이었던 황피고인의 역할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황피고인=증인은 전차를 동원하라는 내 명령을 거부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는데도 내가 실질적인 지휘자였다고 생각합니까. ▲김증인=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저는 따라야할 명령인지 그렇지 않은 명령인지 구분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정호용 피고인=증인은 5·18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제가 실질적으로 공수여단을 지휘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는데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는 무엇입니까. ▲김증인=당시 정사령관이 전교사에 연락장교도 파견하지 않고 상황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참모들의 보고를 듣고 저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김재판장=구체적인 사례가 있습니까. ▲김증인=5월19일인지 20일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습니다만 최초의 시민희생이 발생했을 때 사령부에서는 몰랐는데 특전사령부에는 보고가 됐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짐작할수 있었습니다. ○이귀호 증인 ▲이재순 검사=80년 5월21일 황영시 피고인이 증인에게 전차 1개대대등 기갑부대를 동원,시위를 강경진압토록 전화로 직접 지시한 사실이 있죠. ▲이증인=예.그렇습니다. ▲이검사=증인은 당시 황피고인의 지시가 지휘계통을 무시한 것이고 현실적으로 무리한 요구이기 때문에 지시에 불응한 것이지요. ▲이증인=예.전교사 사령관을 통해 지시를 내려달라고 얘기했습니다. ▲정영일 변호사=증인은 황육군차장이 5월21일 전화로 전차 1개중대를 동원하라고 지시하면서 전차에 시위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감으라고 지시한 것은 전차운영 교본에도 어긋난다고 진술했는데 황차장은 기갑사단을 창설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같이 교본에도 어긋나는 지시를 할 수 있습니까. ▲이증인=다 늙어가면서 과거 전우로서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오리발을 내밀면 어떡합니까.전화를 받은 사실은 확실합니다. ▲황피고인=증인은 내가 전화를 하면서 『이 자식아,전차포를 쏘며 밀고들어가』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는데 내가 쌍소리를 할 정도로 저질 장군으로 봅니까. ▲이증인=과거 전우이기 때문에 결례를 안하려고 했는데 검찰 대질신문에서도 황장군이 분명히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김준봉 증인 ▲이부영 검사=23일부터 26일까지 매일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소준렬 전교사령관의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던중 26일 하오 10시쯤 계엄사령관이 전교사령관의 도청진압 작전건의에 대해 『이시간 이후 언제든 작전을 실행해도 좋다.단쌍방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었죠. ▲김증인=그렇습니다. ▲김수연 변호사=80년 5월27일 광주재진입작전은 부득이 했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김증인=너무 빨랐거나 너무 늦었을 경우에는 피해가 더 컸을 것입니다. ▲전창렬 변호사=특전사령관이 다른 부대에 배속된 자신의 예하부대에 대한 행정적지원과 배속부대 지휘관을 위한 지휘조언을 위해 현지에 내려와 상황파악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김증인=그렇습니다. ▲전변호사=5·18당시 정웅 31사단장의 지시에 따라 7공수여단 2개 대대가 금남로에 출동해 시위를 진압하면서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는데 정사단장의 지시가 적절했는지 또는 부적절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김증인=상급자의 작전에 대한 평가를 하기는 어렵지만 병력들을 미리 시내 주요지역에 배치했으면 시위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변호사=80년 5월21일 정웅 31사단장이 2군사령관에게 『광주사태는 군 투입으로 인한 해결보다는 정치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건의한 사실을 알고 있나요. ▲김증인=처음 듣는 얘깁니다.그런 건의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전변호사=계엄상황일지와 작전상황일지를 볼 때 2군사령부와 전교사령부가 기록상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김증인=현장에서의 긴박한 상황에서는 실수로 기록을 빠뜨리는 수가 있기 때문에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실수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전변호사=상황일지의 차이를 두고 지휘권 이원화를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백남이 증인 ▲이부영 검사=정호용 특전사령관이 5·18당시 전교사 감찰참모실을 개인 사무실로,기밀실을 특전사 상황실로 이용하고 있었죠. ▲백증인=예.사무실등을 본인이 마련해 줬습니다. ▲이검사=시위및 진압현황에 대한 공수부대의 정보보고가 전교사 상황실에는 거의 전달되지 않고 있었는데 전교사는 어떻게 상황을 파악했습니까. ▲백증인=전교사 참모진과 연구관등 병력 15∼20명을 편성,시위현장등에 직접 투입해 상황정보를 파악해 오도록 했습니다. ▲이검사=작전 상황보고가 특전사 상황실로만 전달됐죠. ▲백증인=예. ▲전변호사=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광주에 내려가 전교사를 방문했었다고 진술했는데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 ▲백증인=광주비행장에 전사령관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상황장교로부터 받았습니다. ▲전변호사=정호용피고인이 전교사에 마련된 상황실에서 공수여단장들과 수시로 작전회의를 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는데 언제 보았습니까. ▲백증인=20일날 회의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12·12」 「5·18」 21차공판/증인신문 지상중계

    ◎“「공수단 기죽이지 마라」 전씨메모 받았다”·정호용씨와 광주 재진입작전 협의­소준렬 증인/공수부대에 실탄배분한 사실 없어­윤흥정 증인 11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21차공판에서는 윤흥정·소준렬 5·18당시 전교사령관 등 증인 6명에 대한 신문을 계속했다. ○윤흥정 증인 ▲이부영 검사=31사단과 공수여단장에게 발포명령을 내리고 실탄을 배분한 사실이 있나요. ▲윤증인=없습니다. ▲이검사=상부에서 자위권 발동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나요.있다면 어디로부터 지시를 받았습니까. ▲윤증인=2군사령부로부터 받았습니다. ▲이검사=일선에서는 자위권발동지시를 발포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윤증인=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검사=전교사사령부내 특전사 상황실 무전기를 통해 정호용 피고인이 보고받고 지휘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윤증인=전교사를 통하지 않고 특전사의 활동상황이 보고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증인에 대한 검찰측 증인신문이 끝나자 국선변호인인 김수연 변호사의 증인신문이 이어졌다. ▲김변호사=당시 자위권발동이 시민들에 대한 발포명령으로 인식된게 사실입니까. ▲윤증인=잘 모르겠지만 자위권은 원래 각 부대에 내려져 있는 것이어서 자위권 발동명령이 시달됐다면 이를 촉구하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정호용 피고인의 요청으로 정 피고인의 변호인인 김주상 변소사가 윤증인에 대한 증인신문을 계속했다.) ▲김주상 변호사=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증인은 계엄확대에 반대했습니까. ▲윤증인=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김변호사=전군 주요지회관 회의에서 계엄확대외에 국회해산의 국보위설치 등이 논의됐습니까. ▲윤증인=논의되지 않았습니다. ▲김변호사=진종채 2군사령관이 두번째 광주에 내려와 시위대의 도시게릴라식 난동에 대비해 과감한 조기분산 타격을 지시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윤증인=진사령관이 지시한대로 정웅31사단장에게 지시했습니다. ▲김변호사=정웅 31사단장은 증인에게 경찰병력만으로도 시위진압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증인이 세차례에 결쳐 병력출동을 독촉해 정사단장이 마지 못해 출동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윤증인=사실입니다. (김영일 재판장이 윤증인을 상대로 직접 신문을 했다.) ▲김재판장=당시 증인은 직접 예하부대장들에게 진압방법을 지시한 적이 있습니까. ▲윤증인=대대장들이 알아서 판단해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어 김재판장이 피고인들에게 신문기회를 주자 허화평 피고인이 일어나 윤증인을 상대로 신문했다.) ▲허피고인=상황일지는 부대상황을 그때그때 시간대별로 기록하는 것으로 특히 고급지휘관들의 통화내용의 경우 특별한 지시가 없으면 기재가 되질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증인은 통화내용을 상황일지에 기재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나요. ▲윤증인=그렇습니다. ▲정피고인=당시 보안사령관이 31사단이나 특전사에 작전지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윤증인=없습니다. ○소준렬 증인 ▲이부영검사=5월20일 황영시 피고인으로부터 전두환 피고인과 협의하여 증인을 전교사령관에 임명키로 했고 9월 중장으로 진급시킨다는 전화통보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소증인=있습니다. ▲이검사=증인은 5월22일전교사령관에 취임한 이후 광주시민 수습대책위원회와의 간담회도중 군의 과잉진압 사실을 인정했습니까. ▲소증인=그렇습니다. ▲이검사=정호용 피고인이 광주 전교사 감찰참모실에서 무전기를 통해 공수여단장들과 진압대책을 논의한 사실을 알았습니까. ▲소증인=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검사=5월23일 광주로 내려온 정호용 피고인으로부터 「소선배 희생이 따르더라도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고 공수부대원의 사기를 죽이지 마십시오」라는 내용과 전두환피고인의 친필 메모를 전달받은 적이 있습니까. ▲소증인=메모지는 전달받았지만 공수부대원들의 사기를 죽이지 말라는 내용만 기억나고 나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검찰조사과정에서 알게 됐습니다. ▲이검사=증인은 5월24일 15시경 전교사령관 사무실에서 정호용피고인과 광주 재진입작전에 대하여 협의하던중 정피고인이 증인에게 「도청에는 3공수여단을,사직공원에는 7공수여단을,전일빌딩에는 11공수여단을 투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사실이 있습니까. ▲소증인=있습니다. ▲이검사=황영시 피고인이 5월25일 오후 김재명 작전참모부장과 함께 광주에 내려와 증인에게 광주 재진입작전을 전달했습니까. ▲소증인=그렇습니다. ▲전창렬 변호사=검찰조사에 따르면 정호용 피고인이 광주에 있는 동안 증인의 지휘권에 자주 간섭하고 광주비행장에서 3공수여단을 직접 지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돼있는데 사실인가요. ▲소증인=통제나 간섭을 한 것은 아닙니다.효율적인 작전을 위해 간접적인 도움을 받았고 적어도 내가 부임한 이후에는 「지휘권 이원화」란 얘기는 맞지 않습니다. ▲김재판장=전두환 피고인이 정호용 피고인을 통해 메모를 전달한 것은 증인의 지휘권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던 것 같습니까. ▲소증인=공수부대원들 사기 죽이지 말라는 내용에 감정이 약간 상했지만 지휘권에 영향을 주려고 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정호용 피고인=제가 5월23일 상오 서울에 있다가 하오에 내려와서 선배님께 공수부대를 철수시켜야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언제 메모지를 건네줬습니까. ▲소증인=메모지는 확실히 받았습니다.
  • 피고인들도 증인신문… 유리한 답변 유도/21차 공판 이모저모

    ◎전·노씨 여느때와 달리 굳은 표정 입정/국선변호인 전씨 접견… 신문사항 논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판 불출석선언으로 파행이 우려됐던 21차 공판은 두 피고인의 출석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특히 5·18 사건의 핵심 쟁점인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과 지휘체계 이원화 문제에 대한 증인의 신문과정에서 변호인은 물론 피고인들까지 증인신문에 나서는 등 검찰과 변호인·피고인·증인 4자간의 신경전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날 상오 10시 김영일 재판장이 입정한 뒤 『피고인 전두환』을 호명하자,법정의 모든 시선이 피고인 출입문으로 쏠리는 등 한순간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 그러나 전피고인은 20여초 후 다소 굳은 표정으로 법정으로 들어섰으며 노피고인도 뒤따라 입정. 전·노피고인의 재판 참석은 재판부와 국선변호인,법무부 교정당국자들의 설득과 물밑 노력에 힘입은 것이며 본인들도 강제인치에 따른 여론의 부담을 우려해 마지못해 출석하게 됐다는 후문. ○…전·노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인 김수연 변호사는 지난 8일 선임된 이래처음으로 전 전투병과교육사령관 윤흥정 증인을 상대로 증인신문을 벌였으나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는 데다 이 사건의 복잡한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듯 신문내용이 그리 깊지 못했다는 평. ○…윤씨는 80년 5월22일자로 전교사 사령관직을 소준렬장군에게 넘겨준 소감을 물은 검찰의 신문에 『장수는 물을 건널 때에는 말을 바꾸지 말라는 격언이 있는데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고 자리를 뜬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하고 유감스러웠다』고 불만을 표출. 윤씨는 체신부장관으로 옮긴 것이 영전이 아니냐는 질문에 『6·25때부터 군생활을 한 사람이 군을 떠나는데 무슨 영광이고 영전이냐』고 흥분. ○…정호용 피고인측 변호인들은 윤씨에게 『무슨 근거로 검찰에서 지휘권이 이원화됐었다고 진술했느냐』고 집중적으로 따져 윤씨가 『전교사 상황일지 보다 계엄사 일지가 더 자세한 것을 보고 독자적으로 판단,그렇게 진술했다』고 하자 흐뭇해 하는 모습. ○…소준렬 당시 전교사령관은 『사령관으로 부임한 22일부터 도청 재진입작전을 벌인 27일까지 모든책임은 내게 있다』,『정호용 특전사령관이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지휘권에 개입한 적은 없었다』는 등 책임소재를 명확히하는 발언으로 일관. 특히 전보안사령관의 메모와 관련,『분명히 메모를 받았지만 지휘권에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메모 역시 지휘권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해 5·18피해자들의 야유를 받기도. ○…정피고인은 하오 재판에서도 직접 신문에 나서 소씨에게 『당시 지휘권 이원화는 없었으며 전교사령관의 지휘에 따라 작전이 수행됐다고 결론을 내려도 되겠느냐』고 질문,『예』라는 답변을 이끌어내자 『껄껄』 웃으며 여유를 과시.〈박홍기 기자〉
  • 극동 전투지역 보급활동/일 자민당,합헌화 추진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자민당은 한반도등 극동 유사사태를 상정한 자위대의 미군 후방지원과 관련,전투지역 근처에서의 보급 등을 합헌으로 해석하는 방향으로 당내 조정에 착수했다고 야마사키 다쿠(산기척) 일본 자민당 정조회장이 밝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일 보도했다. 야마사키 정조회장은 오는 9일 발매예정인 「THIS IS 독매」 8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을 둘러싸고 위헌이냐 합헌이냐의 논란이 일고있는 이른바 회색지대로 ▲미함정·항공기 호위 ▲ 전투지역근처에서의 보급·정비·수송 ▲전투지역에서의 의료활동 ▲탄약보급 및 보관 ▲정보제공 등을 열거한 뒤 이들 문제는 집단적 자위권행사에 저촉되지 않는 합헌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시국수습안 보고때 전씨도 배석”/12·12 18차 공판

    ◎신현확씨 “정 총장 연행때 질책” 12·12 및 5·18 사건 18차 공판이 1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려 12·12와 관련,신현확 당시 국무총리 등 5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최광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우국일 보안사 참모장,구정길 대통령 특별경호대장,백동림 합수부 수사1국장 등도 증인으로 출석했으나 백씨에 대한 신문은 다음 기일로 미뤄졌다. 증인신문에 앞서 5·18과 관련,이희성·주영복 피고인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있었다. 신 전총리는 『개인적으로 12·12는 하극상이지만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내란으로는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신씨는 검찰신문에서 『12·12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측 장성들이 정승화 육참총장 연행에 대한 사후재가를 요구하자 재가 없이 연행한 것은 위법이라고 질책했고 노여운 표정으로 책임자를 데려오라며 재가를 거부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신씨는 변호인 신문에서 『재가 요청 당시 신군부측 장성들의 강압과협박은 없었고 대통령의 거부는 재가 보류였다고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5·17에 대한 검찰측 신문에서 신씨는 『비상계엄 전국확대,비상기구 설치,국회해산 등 시국수습방안을 최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전두환 보안사령관도 배석했으며 최대통령은 비상기구 설치와 국회해산에 대해서는 사실상 재가를 거부했다』고 진술했다.전피고인은 배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 최광수씨는 『신군부가 최대통령이 비상기구 설치를 완강히 반대하는 바람에 대통령 자문보좌기구 형태로 국보위를 설치했다』고 진술했다. 신·최씨는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이 최대통령의 하야를 권유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이·주피고인은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광주지역 작전은 관할 전교사령관의 지휘하에 이루어졌고 실탄 분배를 지시하거나 허가 요청을 받은 일이 없고 자위권발동을 지시하지도 않았다』며 5·18에 대한 직접 개입을 부인했다. 변호인단은 이 날 『주 2회 재판으로는 변호인단이 재판에 참여하는 의미가 없다』며 주1회 재판을 요구하는 공판기일 변경신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박상렬 기자〉
  • 「12·12」 「5·18」 공판 중간 결산

    ◎신군부 정권장악과정 소상히 밝혀/참고인 5백여명… 수사기록 13만7천쪽/변호인 사실관계보다 명분 집착 지적도 역사적인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의 사실심리가 24일 마무리됐다. 지난 3월11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군사반란 및 내란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이후 1백여일 만이다. 국내외의 지대한 관심을 모은 이 재판은 그동안 7차례에 걸친 검찰의 직접신문과 9차례의 변호인 반대신문으로 숨가쁘게 진행돼 왔다. 이 날 16차 공판을 통해 전·노피고인을 비롯,16명의 피고인에 대한 사실심리가 끝나므로 사실상 이번 재판의 승패도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가름됐다. 법조계에서는 전체적으로 반란 및 내란혐의가 공판과정에서 낱낱이 드러나 피고인들이 법정 최고형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토대로 신군부측의 군권찬탈과 정권장악의 의도 및 과정을 집요하게 추궁,상당한 성과를 얻었다고 자평한다.그동안 5백여명에 이른 참고인 조사를 통해 13만7천쪽의 방대한 수사자료를작성,공소유지에 전력투구해 왔다. 변호인측은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10·26사건 연루와 80년초의 혼란한 시국상황 등 상황논리 전개에 주력하므로 사실관계보다는 명분에 집착했다는 지적이다.공소사실 불특정을 이유로 5·18 부분에 대한 공소기각을 요청하는 등 공세를 폈는가 하면,주 2회 재판을 문제 삼아 법정퇴장 등의 지연전술을 펴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조속한 단죄를 희망하는 여론에 힘입어 재판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했으나 3차례에 걸친 파행으로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번 재판이 사실심리를 마치므로 앞으로 증인신문과 검찰의 구형,1심 선고를 남겨두고 있다. 그동안의 공판 과정에서 양측은 쟁점을 두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섰다. 12·12사건의 경우,▲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성격 ▲정참모총장 연행과정 및 재가의 합법성 여부 ▲병력출동의 불법성 여부가 쟁점이었다. 5·17사건에서는 ▲시국수습방안의 실체 및 성격 ▲비상계엄 확대를 결의한 국무회의장 무력봉쇄 ▲국회해산과 정치인 숙정 ▲국보위 설치및 성격 ▲최규하 대통령 하야 ▲언론통폐합 등을 놓고 설전을 주고받았다. 5·18사건은 ▲광주 병력출동 경위 ▲「자위권 발동」 경위 ▲양민학살 과정 ▲지휘권 이원화 여부 등이 핵심이었다. 재판부는 이러한 공방에 대한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다음 달 중순쯤 내릴 예정이다.〈박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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