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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한수원 직원이 태연히 근무하는 이유/전휘수 한국수력원자력 고리 제2발전소 운영실장

    [기고] 한수원 직원이 태연히 근무하는 이유/전휘수 한국수력원자력 고리 제2발전소 운영실장

    “전력계통 운전원, 비상 디젤발전기 알파 기동해 주세요.”, “예. 비상 디젤발전기 알파 기동하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비상 디젤발전기 알파 기동해 주세요.” 원자력발전소 구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운전원 간의 대화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의사소통 실패에 의한 잘못된 기기 조작을 방지하고자 이른바 3방향 의사소통(3-Way Communication)이라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과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거나 “좀 지나치다.”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인적오류 예방 기법의 하나일 뿐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나면서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정지는 거의 모든 언론매체에 ‘불안한 사건’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원자력발전소 직원들은 어떤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을까. 원자력발전소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를 설계기준사고로 정한 후 각종 안전설비를 설계하고 전산모델을 이용해 사고를 해석함으로써 안전성을 확인하고 있다. 이 사고 해석의 가정은 충분히 보수적일뿐더러 발전소의 실제 운전은 그 가정보다도 훨씬 엄격한 조건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안전설비는 주기적인 점검을 통해 항상 운전 가능한 상태로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설계된 설비를 운영하려고 도입한 기본 프로그램으로 품질보증제도가 있다. 품질보증은 목표치 이내의 불량률을 허용하는 품질관리와는 달리 항공우주산업이나 군수산업과 같이 실패를 허용할 수 없는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제도이다. 조직구성 요건부터 품질보증 감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18개 품질보증 기준으로 구성된 품질보증계획서를 수립한 후 기준별로 품질보증절차서를 작성하고 이행함으로써 품질의 보증을 도모하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해 세계 원자력산업계는 미국의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와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교훈을 발판으로 강력한 안전문화를 제창하고 다른 산업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운영개선 프로그램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오고 있다. 첫머리에서 소개한 인적오류 예방 기법 사례는 바로 그러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기존의 설계로는 대처할 수 없는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 후쿠시마와 같은 초대형 해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지만 국내 원자력발전소에서는 그럴 때도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안방벽 증축, 안전설비 건물 침수방지와 이동형 비상발전기 확보 등 추가적인 안전성 제고 대책을 수립해 이행하고 있다. 우리는 항공기 사고가 위험한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위험도는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여객기에 탄다. 마찬가지로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설계의 안전성에 대한 확신과 함께 다른 산업계에서는 찾기 어려운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는 자신들의 행위를 통해 설비의 안전성이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원자로와 불과 수십m밖에 안 떨어진 각자의 사무실에서도 태연히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정몽주와 권근

    [선택! 역사를 갈랐다] 정몽주와 권근

    신돈의 실각과 공민왕이 추진하던 개혁의 실패 이후 고려는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이하였다. 공민왕이 측근에 의해 예기치 못한 죽음을 당하고 뒤를 이어 즉위한 우왕은 11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였다. 그 결과 고려의 국정은 우왕을 옹립한 권신들에 의해 좌우되었고, 국왕의 권위는 크게 추락하였다. 사회·경제적으로는 권세가들의 탈법적인 토지 겸병과 농장 운영으로 인해 자영농민들이 토지를 잃고 소작농이나 노비로 전락하는 등 민생이 크게 피폐해졌다. 여기에 빈번한 자연재해의 발생, 홍건적과 왜구의 잦은 침입 등은 고려의 정치와 민생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처럼 14세기 후반의 고려는 국정의 난맥상과 사회 혼란이 극에 달한,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었다. 이에 정권을 장악한 소수의 권신들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였다. 특히 성리학 이념으로 무장한 신진 유학자들의 개혁에 대한 열망은 매우 컸다. 1388년 1월, 이인임 세력의 실각은 고려 사회의 개혁 가능성에 한 줄기 희망을 비춰주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요동정벌을 위해 출정했던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면서 개혁에 장애가 되었던 세력들이 모두 제거됐다. 요동정벌을 반대하고 안정적인 대명(對明) 관계를 추구했던 신진 유학자들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지지했으며, 그와 손잡고 정치·사회의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문제는 개혁을 어느 수준까지 추진할 것인가였다. 개혁의 필요성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무엇이 적절한 개혁인가에 대해서는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고려의 정치와 제도에 대한 ‘전면적 개혁’을 요구했던 세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고려 구례의 제도를 유지하는 가운데 권문세족들의 전횡으로 초래된 폐단들을 ‘개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개혁을 둘러싼 노선 분열은 많은 학자들에게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은 이색이나 정도전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바뀌기도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정몽주와 권근의 선택이다. ●정몽주의 선택:전면 개혁서 반혁명으로 일반적으로 정몽주는 마지막까지 고려를 지키다가 목숨을 바친, 충절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몽주가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고려의 전면적 개혁을 추구했고, 이를 위해 이성계·정도전 등과 정치적 입장을 같이했던 사실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정몽주는 청년 시절부터 정도전, 이성계와 절친한 사이였다. 정몽주는 1360년에 정도전을 처음 만난 이후 학문적 동지로서 깊이 교유했으며, 1375년에는 이인임 등의 대원(對元) 외교 재개에 반대하는 상소를 함께 올리는 등 정치적 입장도 같이했다. 또 이성계와는 1364년 2월 여진과의 전쟁에 종군했을 때 처음 만나 교유를 시작했고, 특히 1380년과 1383년에도 이성계 부대에 조전원수(助戰元帥)로 종군하면서 전우로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정몽주와 이성계, 정도전 등의 인간적 유대 관계는 우왕대 중반 이후 정치적 동지 관계로 발전했다. 이인임 등 권문세족의 전횡으로 정치·사회적 혼란과 민생의 피폐가 극에 달하자 세 사람은 이를 개혁하는 데 함께하기로 의기투합했던 것이다. 즉, 정몽주의 처음 선택은 고려의 정치·사회에 대한, 과감하고 전면적인 개혁이었다. 정몽주가 이성계, 정도전과 함께 개혁에 동참한 것은 1388년 5월 위화도 회군 이후 그의 행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같은 해 8월 정몽주는 문하평리(門下評理)에 임명되었고, 이후 예문관 대제학(藝文館 大提學),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등 정부 요직을 계속 담당하였다. 정몽주가 창왕 폐위와 공양왕 옹립을 주도했던 것도 그가 개혁 세력의 핵심 인물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 창왕이 개혁 추진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1389년 11월에 이성계 등은 우왕과 창왕이 공민왕의 자손인 아니라 신돈의 자손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새 왕으로 추대했다. 이때 공양왕 추대를 주도한 9명이 공신으로 책봉되었는데, 그 9명 중 한 사람이 바로 정몽주였다.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왕을 폐위하는 데 앞장설 만큼 정몽주는 고려의 개혁을 열렬히 염원하였다. 하지만 정몽주와 이성계, 정도전 등이 생각했던 개혁의 최종 목표는 서로 달랐다. 정몽주가 개혁을 추진한 궁극적인 목표는 고려를 백성들이 살기 좋은, 건강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다. 즉, 고려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였다. 반면 이성계와 정도전 등은 고려가 유지되는 한 완전한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따라서 새로운 나라를 건립하는 역성혁명 추진을 본격화하였다. 개혁에는 동의했지만 왕조 교체는 용납할 수 없었던 정몽주는 이제 새로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성계 세력과 결별하고 그들이 추진하는 역성혁명을 막아냄으로써 고려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정몽주는 개혁 세력에서 이탈하여 반혁명 세력의 선봉으로 변신하였다. 이후 정몽주는 고려의 명운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 정도전 등 혁명 세력과 치열하게 대립하였고, 끝내는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의해 피살당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권근의 선택:저항에서 참여로 권근은 조선 초기 국가의 학술 정책을 총괄하면서 교육과 인재 선발의 각종 제도를 마련했으며, 또 성리학과 경학(經學)에 대한 여러 저술들을 남김으로써 고려 말~조선 초의 학문적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킨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만 보면 새 왕조 건설에 참여하는 것이 고려 말 권근의 선택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고려 말에 권근이 처음 선택했던 길은 참여가 아니라 역성혁명에 대한 저항이었다. 권근이 저항의 길을 선택한 데에는 스승 이색의 영향이 컸다. 이색은 고려 말 유명무실했던 성균관을 실질적인 교육 기관으로 재정비함으로써 학자 양성과 성리학 진흥에 힘썼던, 신진 유학자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런 이색이 이성계, 정도전 등이 주도한 개혁 조치에 대해 선왕대의 법을 경솔히 고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고려의 체제 유지에 앞장서자 많은 학자들이 그의 노선을 따랐다. 권근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권근은 조준이 주도한 사전개혁 논의에서 이색의 입장에 동조하여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또 1389년에는 명나라 사행(使行) 과정에서 명나라의 외교 문서에 우왕을 신돈의 아들로 인정하여 창왕의 정통성을 부정한 내용이 있음을 미리 알아내고는 이를 우왕의 측근들에게 먼저 알려서 대책을 세우도록 했다. 그리고 온건 개혁을 주장했던 동지이자 절친한 친구인 이숭인이 이성계 세력으로부터 탄핵을 받자 상소를 올려 그를 옹호하였다. 이상과 같은 일련의 행적으로 인해 권근은 혁명파의 탄핵 표적이 되었다. 결국 1389년 10월 유배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1년여의 유배 생활이 끝난 후에도 권근은 정계에 복귀하지 못한 채 충주의 양촌에서 은거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은거 기간 중에 권근이 지키려 했던 고려의 역사는 막을 내렸고 새 나라 조선이 건국되었다. 조선의 건국은 권근에게 새로운 선택을 요구했다. 고려의 멸망을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서 권근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끝까지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 왕조에 출사하여 자신의 학문과 경륜을 펼침으로써 나라와 백성들의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권근은 후자를 선택했다. 출사 이후 그는 자신의 학문적 능력을 발휘하여 왕권의 안정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으며, 명나라 사행을 통해 위기에 봉착했던 조명(朝明) 관계를 정상화시켰다. 또 국학 교육과 인재 양성을 위한 각종 정책과 제도들을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몽주를 비롯하여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옛 동지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도 앞장서서 추진하였다. 이와 같은 권근의 노력은 성리학 이념이 조선에 정착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선택의 결과 고려 말의 개혁 과정에서 정반대의 선택을 했던 정몽주와 권근. 두 사람의 선택은 왕조의 교체라는 역사의 흐름을 막지는 못했지만, 새나라 조선이 성리학 국가로 정착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새 왕조 건설에 반대하면서 고려를 지키려 하다가 목숨을 잃은 정몽주는 이후 ‘절의(節義)의 상징’으로 추앙받으며 조선 성리학자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또 권근이 조선에 출사한 이후 이룬 업적들은 조선 초기 성리학이 제도적으로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처럼 두 사람의 선택은 고려말의 정치 현실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그 영향력은 조선 건국 후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강문식(규장각 학예연구사)
  • 재해 위험지구마다 전담공무원 지정 ‘제2 우면산 사태’ 막는다

    정부가 올해부터 집중호우 때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모든 지역에 전담 공무원을 배치한다. 27일 소방방재청은 이 같은 내용의 ‘1공무원 1위험지구 책임관리제’ 실시계획 등 여름철 자연재해 대책을 내놨다. 현재 재해 담당자 한 명이 여러 위험지구를 맡고 있어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는 일선 기초자치단체 재해 담당자들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방재청 관계자는 “일선 공무원들의 업무부담을 현실적으로 조정, 재난재해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라면서 “제도 시행에 부족한 인원은 타부서 직원들을 활용해 보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방재청은 다음 달 15일까지 재해 우려지역을 전수조사해 인명피해 우려지역을 추가 지정키로 했다. 현재 지정된 인명피해 우려지역은 2095곳이다. ●인명피해 우려지역 사전대피 추가지정의 기준은 ▲하천구역내 급류에 의한 돌발성 피해 ▲하천범람 ▲산사태 ▲급경사지 붕괴 ▲저수지 제방 붕괴 ▲풍랑·폭풍·해일 발생이 우려되는 해안지역 등이다. 우려지역에 대해서는 매달 정기점검을 실시하고, 기상악화 때는 수시점검을 실시해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지역 주민을 사전에 대피시킬 계획이다. 이와 함께 홍수가 발생하면 잠수교·세월교·하천내 도로·징검다리 등에서 공무원뿐만 아니라 지역자율방재단 대원을 주민통제요원으로 임명해 현장에 배치하기로 했다. 지역자율방재단은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라 각 시·군·구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재해 예방·대응·복구활동 민간단체다. 산간계곡 등에는 예·경보시설 456개를 추가 설치한다. 방재청은 올해 자동우량 경보시설 15개, 자동음성통보시설 307개, 재해문자전광판 6개 등을 추가 설치해 피서객 등의 안전을 강화하기로 했다. ●예·경보시설 456개 추가 설치 정부의 방재대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즉각 대응 매뉴얼 개발과 숙지, 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반영운 충북대 위기관리연구소 도시방재안전센터장은 “자기 업무와 무관한 공무원은 실제 상황발생 때 일 처리가 외려 늦어질 수 있다.”면서 “방재대책 태스크포스 구성부터 계획 수립, 매뉴얼 공유나 현장점검까지 지정된 전담 공무원을 참여시켜야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열린세상] 원전 안전은 절대적이어야 한다/김관기 김&박 법률사무소 변호사

    [열린세상] 원전 안전은 절대적이어야 한다/김관기 김&박 법률사무소 변호사

    비록 이견이 있었지만 원자력발전이 안전하다는 인식, 저렴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 증가하는 전력수요에 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은 널리 통용되어 왔다. 물론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수납하고 수명 다한 원전을 해체하는 비용을 가산하고 원전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감안하면 생산비가 적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가 자원의 희소성을 반영하는 수준까지 전기료 인상을 수용할 태세가 없다면 당장의 현금 지출이 적은 원자력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 후세의 부담이야 그들의 문제이다. 원전이 안전하다는 가정은 작년 3월의 후쿠시마 원전 붕괴와 방사능 유출로도 결정적인 손상을 입지 않았다. 지진이 유발한 쓰나미가 원전을 덮친 자연재해가 원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난 2월 9일 점검을 위하여 멈춘 고리 원전에 전원을 공급할 비상발전기가 12분 동안 가동되지 않는 비상상태가 발생했던 일이 한달 이상 은폐되었다는 소식에 답답해졌다. 피해는 없었지만 그 원인을 후쿠시마 사고처럼 자연재해로 돌릴 수 없는 것이라면 원전과 방사성물질은 근본적으로 위험한 것이고 모든 기계와 설비는 고장으로 인해 재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에 직면한 것이다. 가동한 지 수십년된 원전에서 이번처럼 들키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 버린 고장이 과거에는 없었겠는가. 본사에 보고하지 않고 넘어간 고장이었다면 그것을 수선하고 교체할 계획도 없었으리라. 고장 난 상태의 비상발전기를 그대로 두면 비상상황이 됐을 때 어쩌려고 했는가. 아무리 안전하게 설계한들 이를 다루는 인간이 실수에 취약하기에 규정과 매뉴얼을 만들었을 것이다. 규정 하나를 지키지 않았다면 다른 규정도 지키고 있으리라고 안심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완벽함은 없다. 원전에도 사소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보통은 복잡한 시스템에 의해 이중 삼중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사소한 사고에 불운이 가세하면 대량살상의 참극이 될 수 있다. 영화로 널리 알려진 타이타닉호는 결코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100년 전 4월의 첫 항해에서 선체가 작은 유빙을 스친 것이 원인이 되어 1513명의 인명과 함께 수장되었다. 유빙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밤에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운행한 과실에 전방감시 소홀의 규정위반이 있었고, 역할을 하지 못할 격벽부터 침수가 진행되는 불운이 겹치고, 조립에 쓰인 리벳의 불량 때문에 선체가 쉽게 두 동강 나 버렸다고 한다. 물론 규정대로의 운전은 막대한 비용을 추가시킬 것이다. 사람을 더 써 상호 원조 또는 감시를 하게 하고,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부품을 자주 교체하여야 할 것이다. 전문적인 진단도 더 자주 받아야 할 것이며 철저한 정비는 장기간 가동을 중단할 각오를 해야 하니 산출을 현저히 저하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안전을 위하여는 생산의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원전을 폐쇄하자는 주장까지 할 확신은 없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이 원전으로 인하여 위협받는 것은 교통사고처럼 허용된 위험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결코 경제성과 타협할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다.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회상해 보자. 백화점은 오랜 기간 적자를 누적하다가 그 무렵 영업흑자로 돌아섰단다. 업주는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인지하였으나 보수를 위한 영업중단으로 다시 적자로 돌아갈 것을 우려했단다. 실제로 대량살상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리라고 인식하지는 못했겠지만 그 가능성에 관하여 양심이 긴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문명의 이기는 위험을 내포하지만 안전을 지키는 것은 우리 행동의 기초이다. 내일도 오늘처럼 해가 떠오르리라는 생각이 없으면 우리는 장래를 설계하고 사랑하는 후손을 위하여 열심히 일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싸다는 전기료 때문에 에너지 과소비형 기업이 폭리를 취하고 전기를 많이 쓰는 외국 기업조차 우리나라로 들어오려고 한단다. 원전의 가동을 줄이고 안전에 힘쓸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증명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원전의 안전에 관한 신화가 회복되기야 어렵겠지만 불안은 없애야 할 것 아닌가.
  • 나주 농작물 재해보험 효과 ‘톡톡’

    전남 나주 지역 농업인들이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해 5배 이상의 보험 혜택을 받아 싱글벙글하고 있다. 지난해 27억원의 보험료를 낸 대신 167억원의 보상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특히 재해보험 가입 건수와 보상액도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태풍, 우박 등의 자연재해로 인한 농가들의 경영 불안도 크게 해소되고 있다. 14일 나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한 건수는 8777건에 농가 부담 보험료는 27억원이었는데 보험금 수령액은 1만 6000건에 167억원으로 집계됐다. 농작물 재해보험 가입 건수도 2008년 2964건에 농가 부담 2억 3700만원에서 2009년 5266건에 12억원, 2010년 6619건에 16억 4000만원에 이어 지난해 8777건에 27억원으로 매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주시는 이에 따라 올해도 27억 90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해 농작물 재해보험 가입을 적극 권장키로 하고 배, 단감, 떫은 감, 벼, 가을 양파 등 21개 작물과 함께 올해는 농업용 시설물을 시범 사업으로 추진키로 했다. 재해보험 가입 대상은 배, 떫은 감 등의 과수를 포함한 일반 작물은 1000㎡, 감자, 양파 등의 밭작물은 1500㎡ 이상(콩 4500㎡ 이상) 경작하는 농가다. 농작물 재해보험은 보험료의 80%를 국·도비와 시비로 지원하며 농가는 20%만 부담하면 된다. 위귀계 시 농업기술센터 소장은 “지난해 태풍 무이파의 영향 등으로 지역 특산품인 배를 재배하는 농가들이 낙과 피해를 입어 어려움이 있었으나 보험금 수령으로 경영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며 “이상기후 현상에 대비, 농작물 재해보험 가입을 적극 권장해 농가들이 재해 걱정 없이 농업을 경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나주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치타 로봇’ 개발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치타 로봇’ 개발

    미국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지난 5일(현지시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치타 로봇’(Robo-Cheetah)를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미 국방부 조사·개발 기구인 미국방위고등연구기획국(DARPA)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치타 로봇은 런닝머신 위에서 무려 시속 29km로 달려 과거 최고기록인 21km를 훌쩍 뛰어넘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치타 로봇은 실제 치타의 달리는 움직임을 참고해 개발됐다.   마이 레이버트 보스턴 다이나믹스 대표는 “치타 로봇은 향후 시속 64km까지 달릴 수 있을 것” 이라며 “자연재해 등 극한의 환경에서 인간을 구조하는데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지 언론들은 국방부 산하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점을 들어 폭발물 운반, 적 추격 등 군사용으로 쓰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로봇 치타는 올해 내에 연구소가 아닌 실제 외부환경에서 테스트될 예정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북 핵개발 중단 선언] 민주 “2013년부터 남북정상회담 정례화”

    민주통합당은 1일 천안함 사건 이후 취해진 5·24 대북제재조치를 철회하고 2013년부터 남북정상회담을 정례화하는 내용의 대북정책 3대 전략과 10대 과제를 4·11 총선 공약으로 내놓았다. 한명숙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잃어버린 평화, 남북대화 실종, 북핵문제 방치, 안보 무능, 북한의 중국 의존도 심화 초래가 이명박 정부의 5대 대북정책 실패”라고 평가한 뒤 “정부의 대북정책을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두려움을 느낀다.”며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민주당 3대 대북전략은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과 남북한 4강 교차승인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남북경제공동체를 기반으로 중국·러시아·유럽을 연결하는 북방경제시대 개막 ▲동북아 협력 외교 강화다. 민주당은 6·15 정상회담의 합의사항 총괄이행기구로 총리회담을 가동하고 남북 국회회담 추진을 위해 국회 안에 남북국회회담추진특위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6자 회담 재개를 통한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와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 군사관리기구 구성을 통한 우발적 충돌 방지 방안도 제시했다. 아울러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즉시 가동하고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도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또 제2·제3 개성공단 확충과 대륙철도 연결, 남·북·러 가스관 연결, 아시안 하이웨이(고속도로) 연결 등 3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19대 국회에서 남북관계 발전법, 남북교류협력법을 개정해 지방자치단체의 대북교류협력을 허용하기로 했다. 또 식량·비료·보건의료 등 인도적 지원 재개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한반도에 자연재해 등이 발생할 경우 인적, 물적 상호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장래 발생 가능한 백두산 폭발 등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정부·민간 합동재해조사단 구성 문제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 묘청과 김부식

    [선택! 역사를 갈랐다] (2) 묘청과 김부식

    1135년(고려 인종 13년) 정월 묘청이 서경(지금의 평양)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대위라고 선포했다. 또 천개라는 연호를 쓰고 ‘하늘이 보낸 충의로운 군대’라고 표방했다. 개경 정부는 김부식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토벌군을 파견해 14개월 만에 진압했다. 이 내전은 그보다 9년 전에 일어난 이자겸의 정변과 함께 고려 중기 정치 격변을 대표하고, 이후 무인정변(1170년)으로 이어지는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 등 의미가 적지 않다. ●흔들리는 고려사회 고려왕조는 12세기에 접어들 무렵 번영의 고조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동안 대외적으로도 평화기였다. 그렇지만 점차 사회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하여, 부가 편중된 가운데 가난에 몰린 농민들이 저항했다. 지배층 내에서는 문벌과 신진관료들 사이에 이해다툼이 일어나고 국정 운영방안을 놓고도 분열이 생겼다. 그 결과 이자의의 난, 이자겸의 난 등 변란사건들이 이어졌다. 더구나 그 시기에 여진족이 흥기하여 국제질서가 재편되고 있었다. 본래 여진족은 고려의 영향권 안에 있으면서 부모의 나라로 인식했다. 그러다가 세력이 강성해져서 1115년에 금을 세우고 황제를 칭했다. 금은 거란과 송을 공격하는 한편 고려에 군신관계를 강요했다. 당시 집권했던 이자겸 세력은 굴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대외교가 불가피함을 들어 그 요구에 따랐다. 서경의 승려였던 묘청은 이자겸 세력을 숙청한 직후 정계에 등장했다. 실추된 왕권을 강화하려는 국왕과 측근관료, 비상한 수단을 써서라도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보거나 대외적 자존심을 고양하려고 하던 인물들이 묘청을 지지했다. 묘청은 왕조 중흥의 혁신적 비전을 제시했다. 풍수도참설에 따라 서경으로 천도하면 국력이 강해지고 주변국들이 복속할 것이라고 했다. 수도 이전이라는 비상한 방법을 통해 국가를 혁신하자는 주장이었다. 또 황제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해 국격을 높이며, 금을 정벌하여 국치를 해소하자고 주장했다. 그때는 이자겸의 난 과정에서 개경의 궁궐이 소실되고 왕의 권위가 추락했으며 여진에 대한 사대로 대외적 자존심까지 손상된 상황이라서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더구나 풍수도참설이 국초부터 유행하면서 태조 왕건이 서경은 우리나라 지맥의 근본이고 대업을 길이 이끌어갈 땅이라고 유훈을 남겼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었다. 묘청은 백두산 호국신 등을 모시는 팔성당을 설치하고 제사를 올린다든지, 비밀리에 기름떡을 대동강 물속에 가라앉혀 두고 기름이 조금씩 새어 나와 오색 빛깔로 물 위에 떠오르게 한 다음 신룡이 침을 토해 대동강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렸다고 주장하면서 서경천도론을 선전하였다. 그러나 김부식 등은 묘청세력의 주장이 위험하다고 여겼다. 수도 이전은 그 추진세력에게 정치 주도권이 넘어가고 기득권 세력에게는 타격이 될 것이었다. 그런 이해관계를 배제하더라도, 김부식은 유교 관료정치와 사회윤리 구현에 애쓴 인물이었다. 그는 사회가 혼란할수록 종교에 의지한 기복적이고 비상한 정치행위보다 합리적인 유교이념에 바탕을 두어 지배질서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보았다. 대외적으로는 막강한 군사대국 금에 대적하여 모험하기보다 사대외교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현실적으로 볼 때 종교에 의탁한 기복적 전시성 행사는 효과가 의심스럽고 그런 식으로는 사회문제가 해결될 리 없기 때문에, 추진세력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묘청이 민심을 끌려고 조작했던 술수들이 마침내 탄로 나고 자연재해까지 자주 발생하면서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상실했다. 이는 묘청 일파가 정치적으로 실세(失勢)한다는 것을 뜻했고, 이에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의 제일대사건”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역사가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반란을 우리 역사상 의미가 가장 큰 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자주 독립이 그의 역사의식에서 최대의 화두였다. 나라를 잃은 것은 일제의 침략 때문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사대주의가 만연해 자주성을 상실한 탓이 크고 그 사대주의는 고유의 자주적 사상을 짓누른 유교문화에 기인했다고 파악했다. 그는 서경반란을 고유의 낭가사상 대 유교사상, 바꾸어 말해 자주적·진취적 사상 대 보수적·사대적 사상의 대결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 대결에서 전자가 패하고 후자가 승리했기 때문에 우리 역사가 독립적·진취적 방면으로 진전되지 못했으니, 그 내전이야말로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오늘날은 시대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런데 천하관의 관점에서는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중화문명국이나 강국에 대한 화이론적 또는 형세론적인 사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천하관과 고려가 해동천하의 중심으로서 황제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할 수 있다고 보는 다원적 천하관 등이 국초부터 공존해 왔다. 그런 가운데 사대외교를 하더라도 고려 국내에서는 황제국의 위상을 갖추고 팔관회의 국가의례에서 여진, 일본, 심지어 송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조하를 받았다. 묘청이나 김부식의 주장이 갑자기 튀어나와 대립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12세기에 여진족이 성장해 고려에 군신관계를 요구하면서 고려가 해동천하의 중심이라는 인식이 크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대응방안의 차이가 내전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그리고 그때 금국정벌론이 타격 받은 뒤 몽골의 간섭으로 이어지는 동안 고려의 자존적인 천하관이 위축되고 말았다. ●정치개혁의 두 가지 길, 혁신과 보수 묘청이 일으킨 내전은 근본적으로 지배층 내의 국정인식 차이에서 연유했다. 고려 중기에 사회모순이 드러나고 국운이 쇠퇴한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그에 대한 대응책, 특히 정치개혁에 대한 인식 차이가 내전으로 번졌다고 보는 것이다. 이자겸 세력을 숙청한 직후 1127년(인종 5년)에 이른바 ‘유신(維新) 조서’를 발표했다. 이 조서는 정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서 민생 안정, 관리 기강 확립, 관직 구조 조정 등을 개혁안으로 제시했다. 당시 정계에는 국왕 측근 세력과 김부식 세력이 있었고, 발표 직전에 국왕이 서경에 행차해 묘청을 만나고 있었다. 조서의 내용은 그 세력들이 합의한 것으로서 유교적 왕도정치에서 강조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유신’이라는 새로운 개혁정치를 표방한 것은 당시 정치권에서 위기상황이라고 공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후 정파 간에 국정인식의 차이가 벌어져 갔다. 묘청과 정지상 등의 신진관료들은 국왕 측근 세력과 어울려 기왕의 체제로는 개혁에 한계가 있으니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황제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자는 주장은 국왕권을 강화한다는 의미가 있고, 금국정벌론은 부국강병책을 통해 대외적 위신을 회복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서경으로 수도를 이전하자는 주장은 풍수도참설과 전통적인 서경 중시 사상에 의탁해 혁신적 의제를 제시하고 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위의 두 주장을 현실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당시 윤언이처럼 칭제건원론에는 찬동하지만 서경천도와 금국정벌론에는 비판적인 인물도 있었으나, 보통 이 세 주장은 한 세트라고 여겨졌다. 그런 주장에 반대한 김부식 세력은 반개혁론자였을 뿐인가? 그는 수도 이전이나 부국강병책 등은 민생의 곤란과 사회혼란만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그런 혁신적 제도 개혁보다는 인격 수양에 바탕을 둔 도덕적 지도력의 확보가 우선이라고 보았다. 정치담당자가 소양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제도를 개혁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으며 오히려 백성들의 부담만 늘리고 정치가 왜곡될 뿐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변동기의 사회상황에 대응하려면 유교이념과 윤리 교육에 힘쓰고 그에 기반해서 정치·사회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운영에서 국왕의 전제력 강화나 측근 세력이 권력을 농단하는 것을 경계하고 재상 중심의 관료정치를 중시했다. 그리고 평화를 위해서라면 강대국에 사대하는 것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내전의 결과 우리는 묘청과 김부식에게서 사회 변동에 대응한 위기 극복의 두 가지 방안을 볼 수 있다. 묘청은 수도 이전과 같은 비상한 조치를 통해 국왕의 전제력을 강화하고 부국강병책을 기획했다. 그렇지만 술수를 부려 이벤트성 행사를 자주 하고 서경에 궁궐을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를 벌이는 바람에 백성들의 부담을 늘리고 정치적 입지가 사상적·지역적으로 좁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 비합리성과 함께 정권 장악에 조급한 나머지 실패하고 끝내 내전을 일으켜 고통을 안겼다. 반란 직후 묘청은 내분으로 살해되고, 이후 정부의 강경자세를 확인한 서경 지역민들이 생존을 위해 싸우는 항쟁으로 바뀌었다. 김부식은 유교적 합리주의에 충실하고 도덕적 지도력의 확보가 통치의 근간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되면 현실상황도 개선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내전 진압에서 중심역할을 맡았다. 그의 주도하에 정국이 안정되고 금과도 우호를 유지했다. 그러나 혁신 개혁을 저지하고 지배질서의 안정을 우선시한 나머지 실효성 있는 개혁방안 마련에 미흡했고, 그 결과 수구적으로 비추어졌다. 뒤이어 의종 때에는 보수적 개혁방안도 이어지지 못했다. 국왕 측근 세력 중심으로 기복적 종교행사와 관념적으로만 태평성대라고 선전하는 데 치중했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파행을 빚어 결국 무인정변이 일어나고 농민, 천민의 항쟁이 폭발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채웅석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 서울신문·푸른역사 아카데미 공동기획
  • 日 자민당 헌법 개정안 ‘우향우’

    최근 일본에서 보수 우경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제1야당인 자민당이 단순한 ‘국가상징’인 일왕을 실질적인 국가원수로,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바꾸는 헌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자민당은 헌법 개정안에서 일왕을 국가의 ‘원수’로 명기하고 일왕이 내각에 조언과 승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1889년에 공포된 옛 제국헌법은 일왕을 국가의 원수로 규정했다. 하지만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인 1946년 11월 3일 공포된 현행 헌법은 일왕의 지위와 관련,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어서, 이 지위는 주권을 갖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따른다.’고 규정했다. 상징적 존재로만 남은 일왕을 실질적인 국가원수로 다시 바꾸자는 게 자민당의 주장이다. 자민당은 또 현행 헌법 9조의 전쟁포기 조항은 유지하면서도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바꿔 군대의 지위를 명확하게 부여했다. 이와 관련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이나 대규모 자연재해를 ‘긴급 사태’로 규정해 총리의 판단으로 재정을 동원한 뒤 국회의 사후 승인을 받도록 하는 한편 국민의 사적 권리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총리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긴급사태 조항’도 추가했다. 집단적 자위권은 동맹국 등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외국이 무력 공격을 받으면 실력행사를 통해 이를 저지할 수 있는 권리여서 주변국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크다. 자민당은 또 헌법에 규정되지 않았던 국기와 국가(國歌), 연호(年號)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국가와 국기에 국가의 ‘표상’이라는 위치를 부여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정책기획] “생태계 보전된 건강한 산림… 도시숲 관리에 달렸다”

    [정책기획] “생태계 보전된 건강한 산림… 도시숲 관리에 달렸다”

    지난 30년간 계속된 산림녹화 사업으로 우리 산림은 양적으로 눈에 띄게 풍성해졌다. 산림정책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녹화 대상이 도시로 확산되고 웰빙 바람을 타고 산림 수요도 다양해졌다. 산림정책의 패러다임이 ‘나무를 심는 것’에서 ‘제대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다양한 산림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산림에서 행복’이라는 기치를 내건 생애주기 산림복지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시대적 요구에 부합한 정책으로 평가되는 반면 산림훼손에 대한 우려도 공존한다. 지난해 우면산 산사태는 산림정책에 크나큰 오점을 남겼다.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산림정책, 생활 속에서 친근한 숲을 만들기 위한 정책의 재점검 및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산림정책의 미래를 대비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서울신문은 지난 22일 국립산림과학원 대회의실에서 ‘기후변화 대응 및 숲이 미래 희망이 되는 나라’를 주제로 산림정책 좌담회를 개최했다. 좌담회에는 이규태 산림청 기획조정관과 윤여창(산림과학부 글로벌환경경영학과) 서울대 교수, 김영숙(삼림과학대 임산생명공학과) 국민대 교수가 참석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저탄소 녹색성장이 화두가 되면서 산림청의 역할이 커졌다. MB 정부 4년간의 산림정책과 산림청의 역할을 평가한다면. -이 기획조정관 현 정부 4년간 산림 분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산림자원 육성을 위한 경제림 6만㏊를 조성했고, 100만㏊에 대한 숲가꾸기를 실시해 우량목재 생산기반을 마련했다. 도시숲 1573곳, 학교숲 342곳, 가로수 4861㎞를 조성해 녹색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연간 4만 3000여명에게 녹색일자리를 제공했다. 해외조림 25만 4000㏊ 중 44%(11만 2000㏊)가 지난 4년동안 이뤄졌다. 산림을 기후변화 대응의 수단으로 삼은 ‘탄소흡수원 유지 및 증진에 관한 법률’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제정돼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윤 교수 녹색성장이라는 국가전략은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한다. 산림청이 녹색성장에서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고 산림정책에 탄력이 붙는 계기도 됐다. 녹색성장은 국가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의미한다. 지금은 산림이 건강하고 풍성한 자원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과제다. 산림청이 청 단위 기관이다 보니 국가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김 교수 산림청의 대응은 매우 민첩했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온실가스 감축과 동시에 탄소 흡수원 증대에 있음을 인식하고 역할을 정확히 진단해 신속·적절한 정책을 수립, 시행했다. 일부 정책에 지나친 계량적 목표 달성을 위해 단기 정책을 시행하는 등 산림경영, 관리라는 기본 업무가 간과된 것 같다. 산림정책은 지속 가능한 이용이 이뤄지도록 장기·거시적 안목을 갖고 시행해야 한다. →치유의 숲과 숲길, 도시숲 등 다양한 산림복지 정책이 추진되면서 관리 부재 및 무분별한 조성에 따른 훼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윤 생태계서비스도 복지의 한 축이다. 산림복지정책 추진 시 국민이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조사연구가 필요하다. 산림생태계 서비스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다. 도시숲 관리가 체계적이지 못한 것은 생태계 관리가 아닌 도시 및 국토 공간관리 차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도시숲 제정 등 법·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훼손 문제는 이용집중에 따른 문제로 다양한 사업을 통해 분산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 -김 산림복지는 국민적 호감을 살 수 있는 정책이나 산림청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지자체와 국민의 협력이 필요하다. 산림 생태계 보존 및 건강한 산림을 위해 산림이나 공원의 휴식년제 도입 및 산림관리에 국민의 자원봉사 또는 비용 부담 형태 등으로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 기존 휴양 중심인 산림문화가 교육과 치유, 산림복지 등으로 확대됐다. 치유의 숲이 생겨났고, 지리산 숲길은 국민적 수요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숲해설가도 전문직으로 정착됐다. 지자체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갖추는 노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이슈 속에서 1970년대 이후 침체됐던 목재산업이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 목재산업이 연착륙하기 위한 전략은. -김 목재산업의 중요 발전 인자는 원자재 확보이다. 벌채·수집·운반의 고비용 구조도 탈피해야 한다. 산림자원의 자원 순환형 산업구조 구축이 필요하다. 조림·목재생산·산물수집·이용·폐기가 한 곳에서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목재산업은 많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산업이다. -윤 목재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쪽에 맞춰져야 한다. 국산목을 연료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은 환경친화적이나 산림탄소저장 능력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 친환경 자재 등과 원료 경쟁을 초래함으로써 가격 상승을 불러 결국 정책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 목재는 재생 가능한 자원이다. 우리 산림에 40년생 나무가 전체 40%를 차지해 적절히 활용해야 할 시기다. 목재와 부산물 활용은 분리해 추진하고 있다. 산에서의 생산과 수집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임도 확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2010년 세계산림과학자대회(IUFRO), 지난해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총회 등 굵직한 산림 분야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다. 국제산림협력의 방향 및 실효성 제고 대책은. -윤 굵직한 국제행사 유치는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해외 유학생 증가는 그 변화를 체감케 한다. ‘친한파’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이나 지원이 부족해 아쉬움이 크다. 목재의 85%를 수입하는 나라에서 임무관이 151개 해외 공관 중 1곳이라는 점도 이해가 안 된다. 자원확보 등 국제협력은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임무관과 국제협력 전문가를 많이 해외로 내보내야 하고 관련 공무원 양성도 시급하다. -김 산림 분야의 국제 협력은 필요하고 더욱 확대될 것이다. 북한 산림복구를 비롯해 동아시아 지역에서 조림사업 및 산림기술 개발 연구비 투자 등을 강화해야 한다. 탄소배출권 확보 효과뿐 아니라 국제적 산림정책 결정 및 환경보존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반이다. →지난해 우면산 산사태로 인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면서 국민 불안이 높아졌다. -김 무분별한 산지개발과 향유는 자연 재앙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도심 주변에서의 산지이용 시 전문적 판단 기준과 의사결정 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윤 자연재해는 위험성을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면산 사고는 산사태의 위험과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예방과 수종 갱신 등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원인도 있다. 산림관리는 기술자가 아닌 산과 숲을 잘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대 전제는 결국 숲 관리라고 생각한다. 급경사지 전용기준을 강화하고 피해지 예측과 위험 전달 시스템도 정비하고 있다. 효과가 입증됐음에도 설치가 미흡했던 사방댐과 계류시설을 확대할 계획이다. →산림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산림정책의 발전 방향 및 과제가 있다면. -윤 현행 산지관리는 품목관리 형태로 돼 있다. 숲의 건전성 유지 측면에서 야생 동식물과 미생물까지 통합관리하는 행정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국가 재정 및 인력관리 효율화와 전문성 제고를 위해 전문조직이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확립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산림 관련 지식 창출과 보전을 위해 박사급 전문인력 채용 및 학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 설치를 제안한다. -김 임도가 낙후된 산림부국은 없다. 임도는 생태계 보전 및 경제림 육성 등 산림경영에서도 필수적이고 건강한 산림 조성에도 필요하다. 경제림 수종에 대한 고민과 원자재로서의 가치가 전제돼야 한다. 경제성을 갖추려면 일정 규모의 단지가 조성되고 동일 수종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때마다 수종을 교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래 에너지에 대한 관심과 투자도 요구된다. -이 산림 관련 연구·개발을 적극 검토하겠다. 기능에 따른 숲 관리로 방향을 전환하고 도심주변 산림에 대한 재해예방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임업인을 위한 다양한 정책도 마련, 추진할 계획이다. 진행·정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다시 태어나도 가수 패티김 되고 싶어”

    “다시 태어나도 가수 패티김 되고 싶어”

    “노래 잘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한국 가요계의 대모 패티김(74)은 은퇴하는 모습도 당당했다. 깃털 달린 갈색 중절모와 검정 벨벳 재킷, 새빨간 앵클부츠를 신고 1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그는 여전히 건강하고 자신감 넘쳤다. 하지만 은퇴 기자회견을 앞둔 소감을 묻자 “설레고 흥분되는 한편 밥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다. 막이 오르기 직전 무대 뒤에 서서 기다리는 기분”이라며 아쉬운 심정을 내비쳤다. 이날 많은 이들의 관심은 돌연 그가 은퇴를 선언한 배경에 쏠렸다. ●내년 노래인생 55주년… “10년 전부터 은퇴 생각” “건강하고 노래 잘하는,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한 모습으로 남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상에 오르기는 어렵지만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이기 전에 정상에서 떠나려는 것이죠. 태양이 떠오를 때 참 밝고 희망이 넘치죠. 노을빛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일 때도 참으로 화려합니다. 그 기억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1958년 8월 미 8군 무대에서 노래를 시작한 패티김은 유려한 창법, 카리스마와 세련된 무대 매너를 무기로 ‘서울의 찬가’ ‘가시나무새’ ‘못잊어’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해방 이후 일본 정부가 공식 초청한 최초의 한국 가수’(1960년), ‘대중 가수 최초로 리사이틀 표현 사용’(1962년) 등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또한 1978년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고 세계적인 공연장인 미국 뉴욕 카네기홀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무대에도 올랐다. 내년에 노래 인생 55주년을 맞는 패티김은 “사실 10여년 전부터 은퇴를 생각했고, 50주년 기념공연에서 은퇴 선언을 고려했었다. 하지만 막상 기념공연을 하면서 노래가 굉장히 잘되고 성량이 풍부하게 느껴지면서 조금 더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30대로 꼽은 그는 “30대에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점점 노래가 무섭고 무대가 긴장됐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전주가 흘러나오면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면서 “공연을 찾은 관객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공연을 못할 정도만이라도 지진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묻자 패티김은 벌떡 일어서며 “제가 건강해 보이지 않나요?”라고 되묻는 여유도 보였다.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정신연령과 신체연령은 40대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수영을 하고 4~5㎞를 걷는다.”고 답했다.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 냈던 때는 50대” 그는 “가수로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냈던 때는 50대이고, 지금도 만족스러운 상태”라고 말했다. 패티김은 오는 6월 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시작으로 미주, 호주 등을 도는 월드투어 ‘이별’을 개최한다. 그는 은퇴를 재고할 생각이 있는지 묻자 “번복은 없다.”면서 “단순한 자선공연이 아닌 큰 자연재해와 같은 엄청난 일을 겪었을 때, 모든 가수들이 동참해 아픔을 위로하는 무대가 있다면 설 것”이라고 말했다. 패티김이 꿈꾸는 은퇴 이후의 삶은 뭘까. “꼬마들, 딸과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할머니이자, 인간 김혜자로 살겁니다. 만약 노래부르고 싶을 때가 생기면 거울을 보면서 부르겠죠. 만일 제가 20대로 돌아간다면 음악 공부를 하고 30대가 되면 노래를 시작할 겁니다. 다시 태어나도 ‘가수 패티김’이 되고 싶어요.” 최여경·이은주기자 kid@seoul.co.kr
  • [기고] 농촌사회봉사명령제 지속 보완돼야/김진국 농협중앙회 농촌자원개발부장

    [기고] 농촌사회봉사명령제 지속 보완돼야/김진국 농협중앙회 농촌자원개발부장

    지난해 농가인구는 296만명으로 전년에 비해 3.4%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36.2%로 3.7% 늘어나는 등 고령화 속 인구 감소 추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가구 소득의 65.0%로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농촌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는 도농 간 소득격차 확대, 젊은이를 고용할 수 있는 기업의 대도시 편중, 낮은 문화복지와 교육여건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가구당 경지 면적은 인구 감소 탓에 1985년 1.11㏊에서 2010년에는 1.45㏊로 증가세를 보이며 농번기의 심각한 일손 부족을 가중시키고 있다. 일손 부족의 피해는 농산물 제값 받기의 실패로 나타난다. 수확 노동력이 부족한 농가는 중간상인들에게 농산물을 밭떼기로 헐값에 넘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력이 덜 드는 작목으로 재배를 집중시켜 쌀값 등은 떨어지고, 손길이 많이 가는 마늘이나 수박 같은 품목은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우리나라 농산물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일손 부족은 농번기 임금 급등으로 이어져 고령화된 농업인들의 허리를 휘게 하고 농가부채 증대의 원인이 되고 있다. 법무부와 농협은 만성적 일손 부족과 자연재해 등으로 위기에 처한 농촌을 지원하고자 ‘사회봉사대상자 농촌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2010년 5월 11일부터 시행된 이 사업은 가벼운 범법자를 잡아 가두는 대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정시간 무보수로 농촌지역 봉사활동을 하도록 함으로써 잠재된 책임감과 이타적 봉사정신을 일깨우는 제도이다. 전국 농촌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 사업은 고령농가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농가를 우선 지원한다. 그동안 20만여명의 인력을 농촌지역 일손돕기에 투입, 약 133억원의 농가인건비 지원 효과를 창출하여 많은 농민과 농민단체들로부터 호평과 환영을 받고 있다. 2010년 농업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92.8%가 사업 취지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82.4%가 사업 이용에 만족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사회봉사대상자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100명 중 10명가량은 사회봉사명령 종료 후에도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던 범죄자들에게 사회봉사명령은 가장 효과적인 교정 방법이 되고 있다. 일류국가를 지향하고 국격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이다. 배려 없는 사회는 후진사회이다. ‘테레사 효과’(Teresa Effect)라는 말이 있다.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돕다 떠난 테레사 수녀에 관한 책을 읽은 사람에게는 면역 물질이 50% 이상 증가한다는 미국 하버드 의대 실험결과에서 나온 말이다. 봉사에 참여하거나 선행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고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역시 농민들의 소득보장을 위해 농업 및 농촌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사회봉사대상자들이 농촌 봉사 활동에 대해 더욱 보람을 느끼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작업 중 재해 시 적정한 치료와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보험제도의 강화가 필요하다. 근무 태도가 불성실한 사회봉사대상자에 대한 제재방안을 마련하는 등 보완장치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 [관타나모수용소 10년] 관타나모 미군기지 역사

    [관타나모수용소 10년] 관타나모 미군기지 역사

    면적 120㎢의 관타나모 미군 기지는 엄밀히 말해 쿠바 영토이지만, 미국이 이 땅을 영구 임차했다는 이유로 자기 땅처럼 사용하고 있다. 미국은 1898년 쿠바를 식민 지배하던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쿠바를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군정을 실시한 것을 계기로 관타나모에 주둔하게 됐다. 이후 미국·쿠바 간 체결된 영구 임대 계약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 정권이 공산혁명으로 집권한 이후 쿠바 정권은 계약 무효를 주장하며 기지 반환을 요구해 왔지만 미국은 어림없다며 거부하고 있다. 미군과 쿠바군은 각각 국경에서 1.6~2.4㎞ 떨어진 곳에 철책을 설치해 놓고 경비를 서고 있다. 미군은 정예 해병대 병력이, 쿠바도 최정예 국경수비여단이 전방 수비를 맡는다. 양국 군은 수년 전부터 한 달에 한 차례씩 양쪽 국경지대를 오가며 회담을 갖고 우발적 충돌 예방과 자연재해 발생시 공조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비무장지대(DMZ)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의 남북 대치와 판문점 군사회담을 연상시킨다. 쿠바혁명 이전까지 수천명의 쿠바인은 관타나모로 출퇴근하며 생업에 종사해 왔으나 공산정권 출범 이후엔 관타나모 출입이 차단됐다. 다만 쿠바 정부가 상징적으로 국경통행을 허용한 노인 2명만 매일 관타나모를 오가며 일을 하고 있다. 현재 관타나모에는 공산혁명 이후 관타나모에 잔류한 쿠바인과 1994~1995년 어선을 타고 쿠바를 탈출한 주민 등 30여명이 모여 사는 쿠바판 ‘실향민촌’이 형성돼 있다. 이역만리 관타나모에서 한민족의 운명을 떠올리게 된 건 의외였다.
  • 100년 후 미래 예측해보니…“한글 사라진다”

    100년 뒤에는 한글이 사라진다? 미래학자들에 따르면 100년 뒤에는 현재와는 확연하게 다른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으로 보이며, 특히 이들은 100년 뒤 한글이 거의 사라질 것으로 예측해 눈길이 쏠리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앞으로의 100년을 예측하고 이를 대비하자는 의미에서 미래학자인 이안 피어슨, 패트릭 터커의 조언을 받아 2112년 내에 일어날 20가지 일을 공개했다. 가장 주목받는 사항으로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불사(不死)의 꿈’이다. 현재보다 발달할 DNA연구와 로봇 기술의 발달로, 적은 비용으로 생명연장이 가능하다는 것. 영화에 등장하는 초능력자처럼 ‘날씨를 임의대로 조절’하는 기술도 등장한다. 이 기술이 현실화 될 경우 지진이나 토네이도 등 엄청난 자연재해로 국가적인 손실과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또 이미 유럽 등 국가에서 쓰이는 지역화폐와 유사한 세계 단일통화도 실현된다. 미래학자들은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가치교환 수단이 등장할 것이며, 전자화폐와 비슷한 세계 단일통화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또 글로벌화가 더욱 심화돼 영어와 스페인어, 중국어를 제외한 나머지 언어들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전 세계 동성커플 80%, 우주로 가는 엘리베이터,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세계전쟁, 핵융학기술 완성 등이 100년 후 나타날 현상으로 꼽혔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세계 5번째 최장수 3,500년 된 나무 ‘화르르~’

    세계 5번째 최장수 3,500년 된 나무 ‘화르르~’

    무려 3,500년 동안 생명을 이어온 나무가 화마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지난 16일 새벽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3,500년 된 38m 높이의 싸이프레스 나무에 불이 붙었다. 현지 소방대가 출동해 불길을 잡기위해 안간힘을 쏟았으나 결국 나무는 불에 탄 흔적만 남긴채 사실상 길고 긴 생명을 다했다. 세계에서 다섯번 째로 오랜 산 나무로 알려져 관광객들의 사랑을 독차지 해 온 이 나무는 그간 허리케인, 가뭄 등 가혹한 자연재해 등을 굳세게 견뎌왔다. 현지 소방대는 “산속에 나무가 있어 호스를 들고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면서 “채 3시간도 되지 않아 불에 타버렸다.”고 밝혔다. 삼림국 등 정부관계자들은 발화 원인을 조사중이나 일단 방화의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있다. 삼림국 관계자는 “자세한 발화 원인을 조사중이며 방화의 가능성은 적다.” 며 “낙뢰에 의한 사고가 아닌가 추측된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안전 강북’ 10대 사업 뜬다

    강북구가 ‘안전 강북’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이천 저류조 설치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안전도시 공인 추진, 강북소방서 건립을 구체적 목표로 제시한 ‘2012년 10대 역점 시책’을 10일 발표했다. 우이동 교통광장 일대에 설치할 예정인 우이천 저류조 설치 사업은 국지성 집중호우와 홍수유출량 증가에 따른 하도(河道)의 과도한 부담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 관계자는 “1998년 집중호우 때 우이천 범람으로 하천 일대 수유2, 3동 지역이 침수되어 하천제방에 홍수방어벽을 설치했지만 지금도 교량구간의 범람에 대한 대책은 없는 실정”이라면서 “저류조 설치를 통해 집중호우 시 홍수 피해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북소방서는 오는 4월 준공할 예정이다. 강북구는 지난 연말에는 국제안전도시 공인 준비도시 등재를 위한 의향서를 국제안전도시 공인센터(아주대 지역사회안전증진연구소)에 제출했다. 안전도시는 모든 연령, 성별, 환경에 대해 국제적으로 인정된 안전증진과 손상예방, 폭력예방, 자연재해예방 사업 등을 수행하는 지역사회를 말한다. 의향서를 제출하면 국제안전도시 준비도시로 등재되며 이후 공인 신청과 서면·현지 실사평가를 거쳐 공인이 확정된다. 강북구는 올해 공인신청서 제출, 2013년 공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경기 수원시를 비롯해 5개 도시가 공인을 받았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日人, 한국 ‘환경이주’

    日人, 한국 ‘환경이주’

    일본 도치기현에서 주류 업체를 운영하는 가토(46·가명)는 가족을 이주시키고, 회사 일부를 한국으로 이전하기 위해 최근 한국 지인에게 부동산 알선을 요청했다. 잇따라 발생하는 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일본 거주가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도치기현은 지난해 3월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현과 접하고 있다. 원전 사고 지점과는 200㎞ 떨어져 있지만 원전 사고 간접 영향권에 해당하는 13개 현 가운데 한 곳이다. 가토는 기자와의 국제통화에서 “한국이나 동남아로 가족의 거주지나 회사 일부를 이전하려는 일본 기업인들이 주위에 여럿 더 있다.”고 말했다. 일본술 수입업체인 ㈜젠니혼주류 서정훈 대표도 “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심정적으로 불안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일본인들이 많다.”면서 “남해안 일대로 회사 일부나 전부를 옮기려는 중소기업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밝혔다. 일본인과 일본 중소기업들이 지진 등 자연재해를 피해 한국으로 집단 이주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시장 여건보다 환경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이른바 ‘환경이주’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일본인 집단 주거지 조성에 대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9일 부동산중개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5월쯤부터 일본인들이 국내 한 대리인을 통해 김포공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대규모 정착촌 부지를 찾고 있다. 이들은 약 500억원대 자금을 정착비로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부동산중개업소에서 C건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분양받은 파주 탄현 통일동산 내 약 17만㎡ 규모의 부지를 소개했으나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파주 적성의 약 7만㎡도 계약 목전까지 갔으나 김포공항에서 너무 멀다는 최종 결정권자의 지적에 따라 막판에 불발됐다. 경기 고양시 가좌동 자이공인중개사무소 이창한 대표는 “매수 예정자는 자연재해를 피해 한국에 일본인 전용 주거단지(정착촌)를 조성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6월엔 일본 D대학 교수가 일본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는 D업체 대표와 공동으로 경기 광주시의 중형 고급빌라 한 동(6가구)을 매입했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듯 경기도에서 일본인들이 취득한 부동산은 최근 증가 추세다. 2009년 47건에서 2010년 95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도 9월 말 현재 95건이나 된다. 일본인들의 한국 이주 본격화를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은 일본인과 일본 중소기업들의 한국 이주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이상림(38) 국제이주기구(IOM)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일본에서 높은 수준의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어 향후 출산 과정에서 사회적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될 경우 젊고 소득이 높으며 한국과 생활반경이 겹치는 계층의 한국 이주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상봉기자 hsb@seoul.co.kr
  • “日 환경이주 정부차원 준비 필요”

    “日 환경이주 정부차원 준비 필요”

    지구온난화로 인한 식량 부족과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한 ‘환경이주’가 잇따르고 있다. 환경이주는 지진·홍수·화산폭발 등과 같이 자연재난이나 환경오염 등을 피해 거주지를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이주기구(IOM) 이민정책연구원 이상림(38·인구학) 박사는 9일 “세계적으로 환경 문제와 관련한 국제 이주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일본에서 최근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개인 및 중소기업 차원의 해외 이주도 ‘환경이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환경이주는 개인이 아닌 집단 형태로 나타나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다.”면서 “일본인 및 기업들의 한국 이주를 대비하고 지원할 수 있는 범정부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환경이주는 자연재난 발생에 따라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일반적인 경우와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한 환경 및 기후의 점진적 변화에 따른 이주 등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2010년에 발생한 아이티 대지진을 들 수 있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 인구는 아이티 전체 인구의 30%가 넘는 300만명에 달했다. 이같이 피해 지역이 대규모이거나 국경 인접 지역일 때는 외국 임시 이주가 이뤄진다. 당시 미국이 아동 구호를 위한 입국을 허용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 1986년 체르노빌의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대규모 강제 이주와 1987년 인도 보팔시 유니언카바이드의 화학물질 누출로 인한 대규모 사망 사건 및 질병 발생에 따른 대규모 이동 등도 인간이 만들어낸 급작스러운 환경이주로 기록되고 있다. 점진적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이주로는 파푸아뉴기니 부카 지역 섬 주민들의 이주를 들 수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해수면이 상승해 영토가 소실되자 미국 등지로 옮겼다. 이 박사는 “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피해 일본인들이 한국으로 이주하는 경향 증가와 국내 부동산 구입은 환경 이주의 점진적 경우로 분류할 수 있다.”면서 “일본의 경우는 가시적 피해가 아닌 방사능 노출에 대한 잠재적 두려움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진단했다. 한상봉기자 hsb@seoul.co.kr
  • 용산 ‘자율방재단’ 정부 포상

    재난·재해는 미리 살피고 막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공무원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용산구에서는 이런 재난·재해 예방 활동에 주민들이 ‘지역자율방재단’을 만들어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이 시스템에 힘입어 용산구는 최근 2011 여름철 민간분야 현장활동 수범사례 정부 포상자로 선정돼 소방방재청장 포상을 받았다. 28일 용산구에 따르면 지역자율방재단은 지난해 11월 정식 출범한 민간 단체다. 잦은 기상 이변과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민간 방재 역량을 강화하자는 취지를 담았다. 통·반장을 비롯한 일반단원 228명과 관련 분야 전문가 90명이 활동하고 있다. 올해 장마철에는 26회에 걸쳐 연인원 289명의 단원이 시설물 순찰 및 협잡물 제거, 정비 활동 등에 참여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기고] 독도에 당산숲을 조성하자/최재웅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사

    [기고] 독도에 당산숲을 조성하자/최재웅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사

    예부터 우리 선조는 터를 잡고 살 곳을 정하면, 가장 먼저 그 지역의 자연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믿고, 신성한 장소를 택해 당산나무를 심고 당산 숲을 조성해 왔다. 주로 마을 뒷산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동안 많이 소실되어 사라지고, 교육이 잘못되어 많은 도시민은 이러한 소중한 숲이 우리 농어촌마을에 남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당산 숲에서 마을주민들은 주로 정월 대보름 밤에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수백년간 지내오고 있다. 또 자연재해 방지용으로 하천변 등에 비보 숲을 만들어 마을을 보호해 왔다. 일본은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를 꿈꾸며 독도 침탈의 기회를 계속 노리고 있고, 그런 구실을 찾을 방법을 획책하고 있다. 독도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의 승패는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국가 홍보전에서 어느 나라 국가브랜드가 높은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의 의도대로 독도가 국제사법재판소 재판대에 올려진다면 국제적 인지도가 높은 일본에 유리한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동해 대신 일본해를 지지하는 미국, 영국이 그 예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일본은 독도와 관련하여 지난 수십년간 국제사회에 여론전을 펼치고 국제여론을 바꾸고자 세계 각국의 교과서 출판사, 국가기관, 세계지도 보급사, 관광 가이드북, 언론사 등을 대상으로 집요하게 로비를 펴 왔다. 독도가 세계지도에서 한국 영토로 인정받고, 일본이 독도 침탈의 꿈을 꾸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은 우리 선조가 이제껏 해 왔던 것을 독도에 실행하는 것이다. 즉, 독도에 전통마을 숲인 당산 숲·비보 숲을 조성하고 매년 당산제를 거행하는 것이다. 독도는 작은 섬이기 때문에 당산 숲이 어렵다면 당산나무 한 그루만 심어도 되며, 비보 숲을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서 제주도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사탑(防邪塔)을 조성하면 된다. 당산제를 지내는 소식이 국내에만 보도된다면 의미가 없다. 전 세계인을 상대로 한 당산제 관련 정보가 전달되어야 한다. 제주, 제관 등 당산제를 지내는 당사자는 독도 주민, 울릉도 주민 등 민간이 주도하고 지원은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것이다. 당산제가 끝나면 보통 풍물을 앞세운 지신밟기·달집태우기 등을 하는데, 이 시간에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소녀시대 등 K팝 가수들의 노래를 듣게 한다면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 즉, 당산제와 뒤풀이 과정은 CNN·BBC·CCTV 등 세계 유명 방송사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교과서 출판사, 세계지도 보급사, 관광 가이드북, 언론사 등의 관계자를 독도로 직접 초청해서 보여주고, 그 이외의 세계사람들에게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중계하는 것이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때 상대국 여성들에게 천인공노할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추악한 국가로 주변국을 위협하는 믿지 못할 나라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한편, 독도에서 행하는 당산제와 뒤풀이, 곧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문화가 세계인이 즐기고 공유하는 국제적인 축제로서 올해부터 계속된다면 한국의 이미지와 국가브랜드는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며, 국제사회는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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