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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행정] 은평구청 리모델링 한창

    [현장 행정] 은평구청 리모델링 한창

    ‘삭막한 구청 앞을 푸른 주민 광장으로’ 은평구가 구청 앞을 환경과 문화가 살아 숨쉬는 주민 편의 공간으로 조성한다. 지난 7월부터 총 10억 1000만원을 들여 구청 광장의 리모델링 작업에 한창이다. 딱딱한 콘크리트 주차장이었던 이 공간을 실개천이 흐르는 녹색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개청 30주년 맞춰 새달 7일 완공 구청 개청 3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10월7일에 맞춰 선보이게 되는 구청 광장(조감도)은 인간 중심의 생태공간 조성에 초점이 맞춰진다. 광장 총 면적(980㎡)의 3분의1에 해당하는 공간을 녹지대와 주민 쉼터로 꾸민다. 녹지대는 붓꽃, 패랭이, 철쭉 등 초화류와 소나무, 주목 등 늘푸른나무가 어우러지는 녹색정원으로 만들고 녹지대 옆 목재 데크는 공연장과 쉼터, 바닥길 등으로 조성한다. 녹지대 사이엔 실개천이 흐르도록 했다. 실개천은 저장된 지하수를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물을 흘리고, 일부 구간에는 분수공원과 벽천을 만든다. 분수는 소규모의 바닥분수로 만들어 주변 경관을 살리고, 통로, 공연장, 앉음벽 등은 모두 자연석이나 목재를 사용해 편안함을 강조했다. 은평구는 이 공사가 완료되면 주민의 녹색쉼터는 물론 그동안 점심시간 때 음악애호가들이 모여 연주했던 뜨락음악회도 주민과 함께하는 연주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청앞 150m는 으뜸 거리로 조성 또 구청광장은 과거·현재·미래를 생각하는 공간으로 꾸며진다. 현재 구청 정문에 있는 구민헌장비를 광장 녹지대로 이전 설치하고, 헌정비 옆에는 타임캡슐을 매설한다. 타임캡슐은 개청 3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로 은평의 과거와 오늘을 기록한 문서나 생활용품 등 400여점을 선정해 캡슐에 담았다. 10월7일 구청 광장에 매설한 뒤 은평구 100주년 기념행사 때 개봉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구청 앞 도로를 ‘으뜸거리’로 조성하고 있다. 대상 도로는 구청 진입로부터 보건소 건물이 위치한 곳까지 150m에 해당하는 곳이다. 총 4억원을 투입해 ▲쉬고 즐기는 휴식의 거리 ▲문화와 철학이 있는 거리 ▲인간 중심의 거리 ▲활력이 넘치는 젊음의 거리로 조성한다. 은평구는 우선 으뜸거리의 16동 건물에 있는 70여개 업소의 간판을 모두 디자인 간판으로 정비하기로 했다. 또 차도를 줄이고 보도는 늘려 사람 중심으로 조정하고, 차로중앙분리대 녹지공간 및 원형녹지대를 설치했다. 아울러 가로등도 디자인 지주 및 고효율 메탈램프를 설치해 에너지 절약 및 환경친화적 효과를 노렸다. 노재동 구청장은 “30년 전 기능 위주로 기획된 청사는 급변하는 시대를 더 이상 담을 수 없어 청사 건물부터 광장, 진입로까지 색다른 디자인을 입혀 작업하고 있다.”면서 “21세기 변화된 행정역량을 기반으로 녹색 문화공간을 창출함으로써 구민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고이잠든 작가(作家)앞에 다시선 아씨 김희준(金喜俊)

    고이잠든 작가(作家)앞에 다시선 아씨 김희준(金喜俊)

    『아씨』의 작가 임희재(任熙宰)씨 무덤에 아담한 묘비가 세워졌다. 고인의 옛 동료들(방송작가협회)이 세운 것이다. 그 묘비의 제막식에 『아씨』의 「히로인」김희준양이 새 가정의 『아씨』가 된지 6개월만에 나와 하염없이 눈물짓고 있었다. 고인의 옛동료들이 모여 19개월만에 묘비 세우고 『한 인생이/그가 쓰는 작품에/만천하가 보내는 박수소리를 들으며 쓰러졌다/쓴다는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된 것이다/비바람은 언젠가 이 비문(碑文)을 지우리라/그러나/우리는 무(無)의 철리(哲理)를 알기 때문에/슬퍼하지 않는다/산에서 사는 새들아/이곳에 와 노래하라』 자연석을 깎아서 다듬은 조그만 묘비. 그 묘비에 새겨진 묘비명이다. 10월 18일 하오 3시,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기독교인 공원묘원. 임희재씨가 간 지 19개월만이다. 이 자리엔 미망인 조옥순(趙玉順)씨를 비롯한 가족과 『아씨』에 출연했던 김희준, 김세윤(金世潤)등 「탤런트」, 그리고 생전에 고인을 아끼던 동료작가, 연출가들 60여명이 단촐하게 모였다. 구름 한점 없이 맑게 갠 하늘에선 늦가을의 햇살이 포근히 내려쬐고 있었다. 작가 김교식(金敎植)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개식을 알리자 고인의 마지막 작품인 『아씨』의 주제곡이 녹음「테이프」를 통해 은은히 울려나왔다. 그 순간 장내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묘비명은 고인의 오랜 친구 한운사(韓雲史)씨가 지었고 글씨도 손수 썼다. 이어 추모작품 낭독. 『아씨』의 「히로인」김희준이 「마이크」앞에 섰다. 「아씨」의 주제가가 흐르면서부터 울음을 삼키고 있던 김희준은 고개를 돌리고 손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추모가(追慕歌)는 『아씨』의 주제곡… 복혜숙(卜惠淑)도 합창하며 울어 추모작품은 고인의 마지막 작품인 『아씨』의 마지막 회분의 「내레이션」부분이다. 작년 1월7일 2백56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아씨』의 해설이었다. 김희준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를 낭독해 나갔다. 『아씨는 공연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친정 부모님이 살아계실 리 만무하지만 변모한 집꼴하며 홀로 계신 오라버니를 뵈오니 가슴이 아파 마주 대할 수가 없었다… 달은 교교하고 밤은 깊어가는데 좀처럼 잠은 오지 않는다. 좀전에 김수만 이란 노신사를 만난 탓일까?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타다 남은 불씨라도 있단 말인가?… 사람들이 아씨를 가리켜 무던하고 좋은 사람이라느니, 혹자는 천치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한평생을 살 수는 없다느니, 또한 그를 통해서 한국적인 여인상을 재인식하며 인종의 미덕을 높이 승화하기까지 하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다. 아씨는 곧 우리들의 어머니며 할머니며 또한 그분들은 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온 것 뿐이다』 「아씨」김희준은 흐느끼다 읽고 읽으면서 흐느꼈다. 몇번이나 낭독을 중단해야 했다. 추모작품이 낭독되는 동안 미망인을 비롯한 가족들쪽에서 조용한 흐느낌 소기라 들려왔다. 그 자리에 나온 원로 여배우 복혜숙여사의 주름진 얼굴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인 임씨는 위암이란 진단을 받고 자리에 눕는 바람에 『아씨』의 마지막 탈고를 손수 못했다. 2백회를 갓 넘기고부터 병이 나서 더 이상 작품을 쓰지 못하게 되자 극작가 이철향(李哲鄕)씨가「바통」을 이어받아 작품을 마무리 했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임씨는 작품에 대한 집념을 끝내 버릴 수 없었던지 마지막회의 해설만은 자신이 썼다. 연출가 고성원(高聖源)씨가 병석에 찾아가 임씨가 부르는 대로 받아써서 고인의 뜻대로 마지막 회의「내레이션」으로 집어 넣었었다. 그래서 고인의 많은 다른 작품을 제쳐 놓고 이것을 추모작품으로 결정하여 다시 한번 고인에게 들려 주게 되었다고. 추모가도 『아씨』의 주제가로 했다. 『아씨』에 출연했던 김희준, 복혜숙, 김세윤, 여운계(呂運計), 선우용녀(鮮于龍女),등 5명의 「탤런트」가 나와 『아씨』를 합창했다. “친아버지처럼 자상하게 대해 주셨는데…” 젖은 목소리로 합창이 계속되는 동안 김희준은 시종 우느라고 단 한마디도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제막식이 끝나고 일행이 산을 내려와도 그녀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제겐 작가선생님이 아니었어요. 친부모님 같이 느껴지던 분이었어요. 그렇게 말이 없으시고 그토록 착하시던 분이 돌아가시다니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 군요』 김희준이 임희재씨의 묘소를 찾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탤런트」생활을 청산하고 평범한 아내로 돌아간 그녀는 옛 동료들과 함께 존경하던 분의 무덤 앞에 나선 순간부터 짙은 애수를 느낀것 같다. 『사실 「아씨」는 제 생활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노력을 했던 작품이고 또 제일 맘에 들었던 작품이었죠. 그분은 제게는 퍽 자상하셨어요. 연기를 잘 해 보기위해 저는 시간만 있으면 댁으로 찾아가 말씀을 들었고 그분도 제 얘길 많이 작품에 반영시켜 주셨어요. 어느 딸과 아버지가 그보다 더 친할 수 있을까요…』 『대본을 좀더 일찍 써 주면 연습을 많이해서 보다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재촉을 하며 응석을 부린 일이 지금 와서는 후회가 돼요…』 사실상『아씨』가 2백회를 넘겼을 무렵 임희재씨는 건강이 아주 나빠 있었다. 위암이라는 결정적인 진단이 내렸었는데 병자 자신은 그걸 모르고 있었다고. 김희준은 임씨의 병상을 방문했을 때 『이젠 병이 다 나은 것 같다. 좋은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데…』라면서 김양의 손목을 꼭 잡더라고. 그것이 김양이 임씨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김희준은 『아씨』때문에 누구보다도 화려한「탤런트」생활을 누렸다. TV「드라머」로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이『아씨』는 그때까지 그늘에 묻혔던 김희준을 「톱·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상의 인기를 배경으로 결혼, 은퇴해 버린 김희준. 『「탤런트」생활을 다시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 김희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 4월21일 신경과 의사 하영수(河榮秀)씨와 결혼한 그녀는 한 사람의 아내로서 충분히 행복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보다 임희재씨와의 추억이 담긴 『아씨』로서 그녀의 연기생활을 조용히 마무리짓는 편이 그녀다운 일이라고나 할까. <오(五)> [선데이서울 72년 10월 29일호 제5권 44호 통권 제 212호]
  • “아프면 찾는 된장국… 뿌리 다 벗어버릴 순 없죠”

    “아프면 찾는 된장국… 뿌리 다 벗어버릴 순 없죠”

    “철광석에서 철판을 뽑아내는 것이니 돌과 철판은 형제나 부자지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돌은 자연을 상징하고 철판은 산업사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물체 간의 대화와 소통, 짝지어 주기가 이번 전시회의 주제이지요.” 경남 함안 출신으로 1958년 서울대 미대에서 일본 도쿄의 일본대학 철학과에 편입한 뒤 일본에서 거주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우환(73)씨. 27일 서울 사간동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만난 이 작가는 6년 만에 여는 국내 개인전을 이렇게 설명했다. ●“작품 감상은 철저하게 혼자서 하세요” 이 작가의 작품들은 그것이 회화든, 조각이든 ‘창조’나 ‘생산’과 같은 작가적 행위보다 자연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은 무의식적으로 명상적인 상태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혼자서 감상해야 좋다. 자연석과 대형 철판, 대형 철사들로 이뤄진 조각들도 마찬가지다. 단단하고 힘있게 생긴 둥근 돌 앞에 놓인 철판은 돌의 물리적 힘이 작용한 듯 맞은편 끝이 살짝 튀어나왔다. 두 개의 철판을 잇대 놓고 양 옆에 자연석을 놓은 작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석의 힘이 철판에 물리적인 힘을 가한 듯 틈새가 살짝 타원형으로 벌어져 있다. 그는 이런 작업에 대해 “일종의 작가적 트릭인데, 관객들에게 알 듯 말 듯한 시각적 느낌을 전달해 작가의 의식이나 인식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현대미술에서 실체성이 부정되는 현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만든다는 것, 창조한다는 것은 진짜 무엇이냐는 물음을 던졌다.”고 말했다. ●“나는 이우환이라는 작가일 뿐” 2007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일본국가관 작가로 나섰던 이 작가에 대해서는 늘 ‘일본 작가냐, 한국 작가이냐’는 논란도 따라다닌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똑같은 질문이 나오자 그는 “나는 이우환이라는 작가다.”라고 말했다. 일본이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아니라 작가 이우환이란 정체성을 표현한다는 의미다. 이에 덧붙여 그는 “20년 한국에서 살았고, 또 20년은 일본, 30년간은 유럽에서 살았다. ”면서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식의 철저한 양식성을 받아들였지만, 경상도 억양을 쓰고 몸이 아프거나 피곤하면 찾는 된장국 등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결국에는 다 벗어버릴 수 없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일본 현대미술의 한 계열인 ‘모노하’의 이론가이기도 한 이 작가는 제7회 파리비엔날레에 일본 작가들과 참여해 ‘모노하’를 유럽에 소개했고, 1994년 뉴욕 구겐하임 소호에서 열린 ‘전후 일본 전위미술’전을 통해 미국에 작품세계를 알리기도 했다. 1990년에는 한국문화훈장을 받았다. 이번 국내 전시는 국제갤러리에서 10월9일까지 열린다. (02)733-8449.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10일 정오 盧 전대통령 안장식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유골이 오는 10일 49재를 지낸 뒤 낮 12시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인근 장지에서 국민장 마지막 의식인 안장식을 갖고 안장된다. 국민장의위원회는 유족들과 협의를 거쳐 이같은 형식과 일정을 최종 확정했다고 2일 밝혔다. 안장식은 10일 정오쯤부터 장지인 봉하마을 봉화산 사자바위 서쪽 기슭아래에서 엄수된다. 앞서 오전 9시 봉화산 정토원에서 유족 중심으로 49재가 거행된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국군 의장대의 도열·호위 아래 안장식장으로 봉송되면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 등 4대 종단의 종교의식과 유족 및 각계 대표의 헌화와 분향, 안장, 허토, 조총발사, 묵념 등의 순서로 1시간30분 간 안장식이 진행된다. 장의위는 헌화 및 분향에는 유족 및 각계 대표에 이어 노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일반시민들도 참가한다고 소개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쌍둥이 자녀의 돌반지를 희망돼지 저금통에 냈던 부부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참석했던 장애인음악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네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씨 등 15~16명을 분향에 참가할 시민으로 선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장식이 끝난 뒤에는 내빈들과 일반 추모객들이 노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할 수 있다. 김경수 비서관은 “봉분 겸 ‘작은 비석’으로 쓰일 자연석만 제외한 나머지 묘역시설은 안장식 전날까지 모두 완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국민장으로 치른 노 전 대통령의 묘역에 대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묘지 표지석 등에 관한 제한을 받지 않는 ‘국가보존묘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신청절차를 밝고 있다.”고 밝혔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노 前대통령 ‘작은 비석’ 자연석으로

    노 前대통령 ‘작은 비석’ 자연석으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지에 세워질 ‘아주 작은 비석’은 높이 40㎝, 가로·세로 각 2m 크기의 평평한 너럭바위 모양의 자연석으로 건립된다. 노 전 대통령의 아주 작은 비석 건립위원회(위원장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는 29일 화장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을 지하에 석곽을 만들어 안장한 뒤 그 위에 강판으로 된 받침대를 설치하고 받침대 위에 널따랗고 평평한 자연석을 얹어 봉분 겸 비석으로 삼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녹슨 것처럼 보이는 옅은 붉은색 강판으로 된 받침대는 가로 2.5m, 세로 4m, 두께 9㎜ 크기다. 받침대 중앙에 가로 1.5m, 세로 1.2m 크기의 사각 구멍을 뚫어 비석 아래 지하에 석곽을 설치하고 유골을 안장할 수 있도록 한다. 비석 건립위 측은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안장되는 석곽은 권양숙 여사 사후에 합장도 감안해 설치된다고 덧붙였다. 비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글씨를 쓴 ‘대통령 노무현’ 6자를 새긴다. 또 비석 받침대 앞쪽에는 노 전 대통령의 어록 가운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문장을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글씨를 써 새기기로 했다. 비석 건립위는 비문으로 새기는 문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까지 포기하지 않은 믿음 가운데 하나이며 민주주의를 언급할 때 자주 강조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비석 주변 사방에는 박석(얇은 돌)을 깔아 관광객 등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한다. 건립위는 비석으로 알맞은 자연석을 구하기 위해 전국 20여곳 채석장에 주문을 해 놓았다고 밝혔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사무기능직 5000명 일반직 된다 10·11월 상장 ‘알짜’ 공기업 3곳은? 내년 공무원 임금격차 더 커진다 한국은행 속여 85억 챙긴 간 큰 조폐공사 1초에 17음절 ‘아웃사이더’ 미 주지사와 불륜 아르헨 여인 “누군가 이메일 해킹” 입 연 미네르바 “올 하반기도 불황 지속”
  • “동호독서당 다시 글소리 난다”

    “동호독서당 다시 글소리 난다”

    성동구가 우리 선조들의 향학열을 느낄 수 있는 ‘동호독서당 터’를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지난 12일 20년째 방치됐던 동호독서당 터의 표지석을 깨끗하게 정비한 것은 물론 내·외국인을 위한 안내판, 꽃과 나무, 잔디 등을 심는 ‘동호독서당 터 살리기 사업’을 마무리했다. 이번 사업은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옛 독서당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이뤄졌다. 이호조 구청장은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사가독서제의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동호독서당은 성동의 역사를 알려주는 자랑”이라면서 “앞으로 ‘독서당계회도’처럼 다시 독서당이 세워지고 그곳에서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문학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시를 낭송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1515년에 독서공간으로 건립 17일 성동구에 따르면 동호독서당은 사가독서(賜暇讀書)제를 위해 만들어졌다. 조선 세종 8년인 1426년 총명한 젊은 인재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하는 인재양성책의 하나가 사가독서제이다. 지금의 안식년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집과 산사를 오가며 자유롭게 학문을 연구하는 인재들이 점차 산사에서 독서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중종10년인 1515년 동호 월송암 서쪽 기슭에 독서당을 지어 완공했고 이를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이라 했다. 따라서 성동구의 독서당 살리기 사업은 그동안 잊혀지고 묻혀졌던 우리 선조들의 정신을 되살린 것이다. 구는 지난 5월18일부터 6월12일까지 옥수동 428 옥수극동아파트 내에 가로 27.3m 세로 32.7m 공간을 마련했다. 그곳에 동호독서당의 기념표지석을 설치했다. 주변에 잔디와 소나무 등을 심어 옛 정취가 느껴지도록 꾸몄다. 또 울타리를 회향목과 사철나무 맥문동 등으로 대신했다. 주민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자연석 계단도 새로 만들었다. 안내 표지판은 외국인들을 위해 한글과 영어로 만들었다. 구는 독서당 터가 옛 선조들의 정신을 알리는 새로운 교육의 장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학습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디자인 거리와 연계, 새 지역 명소로 성동구는 ‘독서당 길,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 사업과 동호독서당 터를 연계, ‘독서당 벨트’를 만들기로 했다. 이 벨트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알려주는 ‘이야기 정거장’이 들어선다. 응봉동에서 금호동4가에 이르는 650m의 독서당길 디자인 거리, 독서를 주제로 한 가칭 독서당공원(응봉동·오는 8월 개장 예정), 무쇠 대장간이 있었던 무쇠막터(금호동4거리), 독서당터(옥수동) 등을 만들어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할 방침이다. 특히 독서당길은 동호독서당 터와 함께 응봉산과 8150㎡ 크기의 독서당공원을 연결할 뿐 아니라 금호지구 재개발 공사가 마무리되면 전통과 현대,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서울 대표 거리로 탈바꿈하게 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지자체 너도나도 하천 복원사업 문제점 및 대책은

    지자체 너도나도 하천 복원사업 문제점 및 대책은

    지방자치단체마다 도심 물길 살리기 사업이 붐을 이룬다. 친환경 생태하천을 조성하겠다며 예산신청을 하거나 앞다퉈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돌덩이와 콘크리트로 겉치레만 화려하게 꾸며 “무늬만 생태하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도 없이 경쟁적으로 하천복원 작업이 진행돼 예산을 낭비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들린다. 하천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복원으로 되레 하천기능을 악화시키는 사례도 속출한다. 전국적으로 추진되는 생태하천 복원사업 현황과 문제점, 정부대책 등을 취재했다. 서울대 입구에서 시작돼 안양천까지 흐르는 도림천의 물길 살리기 작업이 한창이다. 도림천 복원 사업은 올해 초부터 관악구와 동작, 구로, 영등포 등 4개 구가 함께 추진하고 있다. 도림천 물길살리기는 내년 5월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구로와 영등포구 구간은 연말까지 공사가 끝난다. ●올해 생태하천 조성 2744억원 투입 31일 도림천 복원사업 현장을 찾았다. 서울대 입구에서부터 안양천 합류 지점까지는 14.02㎞. 하천을 따라 걸으며 현장을 살펴보았다. 이미 개천의 물흐름을 유도하는 둑은 돌이나 풀 등을 심어 마무리된 곳도 있다. 지금은 진입로와 생태 탐방로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 진행중이다. 관악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을 안양천까지 내려보내고 주변에는 생태 탐방로 등을 조성한다는 복안이다. 부족한 물은 인근 지하철역사나 빗물저류시설에서 물을 퍼올려 흘려보낸다는 계획이다. 도림천은 서울대 입구부터 지하철 2호선 신림역과 구로디지털단지역, 그리고 7호선이 만나는 대림역, 신도림역을 경유해 안양천으로 흘러든다. 하구쪽 구로구와 영등포구가 맡은 구간에는 자연형 생태하천 조성이란 큼지막한 팻말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작업과정을 보면 생태하천과는 거리가 멀다. 하천으로 흘러드는 폐수관이나 물길은 손도 못대고 하천 양쪽 둑에 돌덩이를 쌓고, 인도와 자전거도로 등 편의시설 조성에 공을 들인다. 석축 사이사이엔 버드나무가 꽂혀 있는게 고작이다. 공사 현장에서 책임자를 만나 하천바닥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하상(하천바닥) 작업은 계획상 잡혀 있질 않고 현재 자전거도로와 보행자 도로를 만들고 있다.”고 답변했다. 인근에서 흘러드는 하수관 정비는 엄두를 못낸다고 덧붙였다. 해당 구청 담당자 역시 “예산부족으로 하천바닥은 신경을 못 쓰고 시에서 추가예산이 책정돼야 검토할 문제”라고 말했다. 엄청난 돌덩이로 강둑을 쌓고 사람 다니기 편하게 만드는 게 생태하천 복원인 셈이다. 안양천과 만나는 지점, 오염된 물에서 왜가리 한 마리가 열심히 먹잇감을 찾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생태하천 조성으로 생태기능이 악화된 사례도 있다. 전북 전주시는 2006년 말 전주천 복원사업을 마무리했다. 130억원을 들여 하천 중간의 콘크리트 보를 철거했다. 대신 물고기길(어도)을 설치하고 버드나무 등 다양한 물풀도 심었다. 하지만 사람 중심의 하천복원이 이뤄지면서 정작 하천 생태계는 심하게 망가지는 우를 범했다. 하천과 가까운 20여곳에 조경시설과 체육시설이 난립, 생태하천이란 말이 무색하다. ●先 둑 조성·後 폐수관 수질관리 등 문제 전남 광주천도 마찬가지다. 광주천은 무등산 용추계곡에서 발원, 도심을 거쳐 영산강으로 흘러든다. 광주시는 1999년부터 광주천 복원사업에 착수, 아직도 진행중이다. 2009년 말까지 700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일부 구간에는 생태하천 이미지와 맞지 않게 나무로 만든 차단벽을 설치한 상태다. 충북 청주시 역시 2002년부터 13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무심천을 복원했다. 이 과정에서 홍수 예방과 조경을 이유로 하천 기슭에 자연석 수천 개를 계단처럼 설치했다. 광주천의 나무 차단벽과 무심천변의 자연석은 아름답게 보인다. 하지만 본래 취지인 생태하천과는 거리가 멀다. 하천의 자연스러운 멋은 없애고 볼거리만 살리면서 동식물 서식지는 물론 침식과 퇴적 같은 하천의 고유기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자체 단독으로 추진되는 하천복원사업은 연간 100여건이나 진행된다. 이처럼 국비 지원없이 지자체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제대로 관리조차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환경부는 올해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2744억원을 투입, 전국 90곳의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생태하천 복원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이 가시화되면서 본류와 지류·실개천까지 연계 사업으로 확대 추진되고 있다. 복원규모도 커지고 사업비도 지난해에 비해 112%나 증가했다. 1970∼1980년대 개발 붐을 타고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던 도심 하천의 물길을 되살리는 작업도 올해부터 추진된다. 환경부는 ‘청계천+2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해 안으로 전국 20곳을 선정,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이미 상반기에 10곳이 선정됐고 하반기에 추가로 10곳을 선정한다. 1차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곳은 대구 범어천, 대전 대사천, 의왕 오전천, 의정부 백석천, 춘천 약사천, 제천 용두천, 충주 충주천, 아산 온천천, 마산 교방천, 통영 정량천이다. 이들 하천 개보수에 국비 2982억원과 지방비 1464억원 등 4446억원이 투입되며 3∼6년에 걸쳐 복구작업이 이뤄진다. 2단계 착수지역 10곳은 올해 하반기에 선정돼 2011년부터 공사에 들어간다. 생태계 복원뿐만 아니라 도심 온도저감, 녹색 생활공간 확보, 일자리 창출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 붐 타고 실개천 복원사업 봇물 서울시도 올해 안으로 도심 5곳에 인공 실개천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일부 관련사업 공사를 발주한 상태다. 시 관계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인공수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도심속 실개천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프라이부르크의 경우 도시 전체에 뻗어 있는 인공수로 폭이 50㎝에 전체 길이가 15㎞로 생활용수와 관광상품으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종로구 대학로의 실개천은 혜화동 로터리로부터 이화 사거리까지 1030m 구간에 폭 2m 규모로 조성된다. 성동구 뚝섬역 부근에는 길이 280m, 폭 1~2m의 실개천이 만들어진다. 성북구 국민대 앞에도 길이 150m 폭 0.7m, 구로구 가로공원에는 길이 360m 폭 2m인 실개천이 생긴다. 또 송파구 지하철 5호선 방이역 부근 남부순환로변에 길이 1500m 폭 1.2m의 실개천이 조성된다. 실개천은 인근 지하철 역이나 한강물을 끌어들여 인근 하천으로 흘려 보내게 된다. 인공 실개천 주변에는 분수와 조경시설이 설치돼 도심 속 작은 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내년에 6곳 2011년에 5곳을 추가로 선정해 실개천을 조성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최지용 선임연구위원은 “하천 복원사업이 생태복원과 거리가 먼 환경정비 작업에 그치고 있다.”면서 “하천의 규모와 이용실태를 면밀히 검토한 다음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생태적 평가 등을 토대로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17) 서대문 안산 벚꽃길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17) 서대문 안산 벚꽃길

    “어디 호젓한 벚꽃길 없을까?” 여의도 윤중로에서 벚꽃 구경하다 사람들에게 치여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봤을 생각이다. 서울에서 벚꽃 좋은 곳은 윤중로뿐만 아니라 남산, 서울대공원, 중랑천, 석촌호수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벚꽃 명소 역시 넘쳐나는 사람들로 번잡함을 피할 수 없다. 부드러운 산길을 걸으며 호젓하게 벚꽃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서대문구의 안산(鞍山·295.9m)을 추천하고 싶다. 안산의 왕벚나무들은 4월10일쯤이면 서대문구청 뒤쪽의 벚꽃 광장과 산 중턱에서 일제히 꽃을 피워 산을 화사하게 물들인다. 벚꽃 광장을 들머리로 부드럽고 순한 안산을 한 바퀴 돌면서 찬란한 봄날의 행복을 만끽해 보자. ●무악주산론 대 북악주산론 서울 서대문구에 자리 잡은 안산은 무악재를 사이에 두고 인왕산과 마주 보는 산으로 예전 이름은 무악이다. 서울의 명산인 북한산, 관악산, 인왕산 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지만, 조선왕조의 한양 천도 과정에서는 무악주산론(毋岳主山論)이 강력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하륜이 제시한 무악주산론은 무악을 주산으로 하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지금의 연희동과 신촌 일대가 궁궐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경복궁은 정도전이 주장한 북악주산론(北岳主山論)에 따라 지금의 자리에 건설된다. 그리고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따라 도성을 쌓으며 안산은 사대문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안산으로 오르는 길은 북아현동, 홍제동, 홍은동, 연희동, 현저동 등을 들머리로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많다. 하지만 벚꽃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곳은 서대문구청 뒤편이므로 이곳을 들머리로 전망 좋은 봉수대까지 올랐다가 원점 회귀하는 코스가 좋겠다. 서대문구청 왼쪽 도로를 따라 5분쯤 올라가면 왼쪽으로 벚꽃 광장을 만난다. ‘서울에 이렇게 좋은 벚꽃길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무들도 굵고, 꽃들이 풍성하다. 게다가 주로 찾는 사람들이 동네 주민들이라 어느 벚꽃 축제보다 호젓하게 꽃구경을 할 수 있다. 천천히 벚꽃 터널을 따르면 은은한 꽃향기가 가득하고 고개를 들면 잉잉거리는 왕벌들의 날갯짓이 분주하다. 지나는 사람들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피었고, 꽃그늘 아래 가족이 둘러앉아 김밥을 나누어 먹는 모습이 정겹다. 그 풍경 속을 걷다 보면 살아 있다는 행복감에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 ●호젓한 벚꽃 명소…가족 나들이에 제격 벚꽃길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되지만, 곧 도로를 만난다. 이 도로는 안산을 한 바퀴 도는 순환도로인데, 차량 통행을 금지해 시민들의 산책길로 이용되고 있다. 도로를 벗어나 산길을 따르면 개나리가 지천으로 핀 계단이 나오고 곧 연흥약수터에 닿는다. 안산의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약수다. 산 곳곳에 무려 22곳의 약수터가 있다. 이곳에서 산길은 크게 두 가지. 봉수대가 가까운 능선길과 산비탈을 부드럽게 타고 도는 산허리길인데, 능선길 따라 봉수대에 올랐다가 산허리길로 내려오는 것이 정석이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하늘을 찌르는 능선을 15분쯤 오르면 봉수대에 닿는다. 마치 거대한 포탄을 세워 놓은 듯한 이곳 봉수대의 본래 이름은 무악 동봉수대지(毋岳東烽燧臺址)다. 조선시대 봉수체제가 확립되었던 세종 24년(1438)에 무악산 동·서에 만든 봉수대 가운데 동쪽 봉수대터다. 평안북도 강계에서 출발해 황해도와 경기도 내륙을 따라 고양 해포나루를 거쳐온 봉수를 남산에 최종적으로 연락하는 곳이었다. 그동안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4년에 자연석을 사용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서울 시내와 한강 전망이 좋은 봉수대 지금의 봉수대는 봉화를 올리지 못하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기가 막히다. 북동쪽으로 인왕산이 우뚝하고 그 너머로 북한산 비봉능선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서쪽으로는 한강이 휘어져 서해로 흘러가는 모습이 시원하고, 서울 시내가 손금 들여다보듯 훤하다. 봉수대에서 내려오면 큰 정자가 세워진 무악정이 나온다. 무악정에서 산허리를 둘러 내려오는 길을 따르면 곧 옥천약수가 나오고, 이어 벚나무들이 늘어선 꽃길을 지난다. 한적한 산길에 늘어선 벚꽃 터널은 사람을 그냥 지나치도록 두지 않고 그 아래 벤치에서 숨을 고르게 만든다. 여기서 300m쯤 가면 올라오면서 보았던 메타세쿼이아 숲을 만나게 된다. 하산은 벚꽃 광장에서 마무리된다. 서대문구청~봉수대~무악정~서대문구청 원점회귀 코스는 약 2시간쯤 걸린다. 서대문구청에서는 4월12일 오전 7시 안산 벚꽃길 걷기대회를 연다. <여행전문작가> ●가는 길과 맛집 홍제역 3번 출구로 나와 7738, 7739 버스를 타면 산행 들머리인 서대문구청으로 간다. 서대문구청과 보건소 사이 골목으로 100m쯤 들어가면 나오는 일화성(02-333-2011)이 맛집이다. 화교가 운영하는 곳으로 짬뽕과 탕수육, 해물누룽지탕을 잘한다.
  • 제주관광 ‘웰컴센터’로 오세요

    제주의 관광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웰컴센터가 18일 문을 열었다. 제주시 연동 옛 제주도농업기술원터 6000여㎡에 지어진 제주웰컴센터는 지하 1층, 지상 4층 건축 연면적 5525㎡ 규모다. 144억원이 투입됐다. 제주관광공사가 위탁, 24시간 운영체제를 갖춘다. 지상 1층은 관광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원스톱 관광안내시설과 영상체험시설이 갖춰졌다. 2층은 관광홍보관과 투자유치관·관광종사자 상담센터 등이 들어섰고, 3~4층에는 제주관광공사와 제주도관광협회 사무실이 마련됐다. 지하는 농·수·축산물 판매장으로 꾸며진다. 건물은 벽면유리를 도내 처음으로 신·재생 에너지인 태양광시설로 설치했고, 건물 외부는 제주의 자연석으로 마감했다. 도 관계자는 “웰컴센터가 관광객에 필요한 각종 관광정보를 생생하게 제공해 제주관광의 중심센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새해맞이 여행지] 참을 수 없는 스파의 즐거움

    [새해맞이 여행지] 참을 수 없는 스파의 즐거움

    두한족열 (頭寒足熱)의 건강법과 함께 할 수 있는 온천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겨울철만의 묘미.때마침 눈이라도 내려준다면 이보다 더 포근한 풍경은 없겠다.경기도 이천 테르메덴(가운데),충남 아산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왼쪽) 등 대규모 스파마다 다양한 시설과 할인 프로그램으로 연말연시 여행객들을 유혹하고 있다.사진 오른쪽은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매직 아이스링크.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한해의 피로가 켜켜이 쌓여 있는 연말연시,스파를 찾아 웅크렸던 몸을 활짝 펴보는 건 어떨까.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탕에서 묵은 때를 말끔히 씻으며 새해설계를 하는 것도 좋겠다.물놀이 시설까지 갖춘 대형 스파들이 늘어나면서 3대(代)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겨울 여행지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테르메덴 수도권 온천 가운데 ‘가격대비 성능’이 탁월한 것으로 소문난 곳이다.온천탕은 물론,삼림욕을 할 수 있는 자연공원과 스포츠 시설,오락관,문화관 등 각종 부대시설을 고루 갖췄다.어른 주 중 2만 6000원(주말 3만원),어린이 1만 8000원(2만 2000원).입장권과 닥터피시탕 입욕권,영화예매권 등을 묶은 커플패키지(5만 9900원)가 인기.경기 이천.(031)645-2000. 스파 그린랜드 1000t의 자연석과 조경수로 꾸며진 폭포 노천탕과 정종탕 등 다양한 테마탕이 인기를 끌고 있는 곳.온가족이 부담 없이 족탕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풋스파 시설을 갖추고 있고,놀이시설도 다양하다.주 중 어른 2만 6000원(주말 3만원),어린이 1만 8000원(주말 2만 2000원).제휴신용카드는 20%,SKT 멤버십카드는 40% 할인된다.경기 퇴촌.(031)760-5700.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 동양 4대 온천수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좋은 수질이 자랑이다.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겨 찾던 장소로도 유명하다.올 여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테마 스파시설로 탈바꿈했다.주 중 어른 2만 8000원(주말 3만원),어린이 2만원(2만 2000원).충남 아산.(041)537-7100. 덕산 스파캐슬 43가지 성분이 포함된 49℃ 온천수가 자랑이다. 유수풀과 키디풀,워터 슬라이드가 모여 있는 써니레이 등 다양한 어린이 놀이시설을 즐길 수 있다.사우나+노천탕 어른 4만 8000원,어린이 3만원.오후 5시 이후 어른 2만 8800원,어린이 1만 8000원.충남 예산.(041)330-8000. 오션캐슬 선셋 스파 바다를 바라보며 노천욕을 즐길 수 있는 곳.오션뷰 스파에서 기포욕으로 피로를 풀고,해넘이 풍경에 눈을 씻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어른 1만 8000원, 소인 1만 3000원.충남 안면도.(041)671-7000. 설악 워터피아 설악산의 수려한 경관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10여가지 노천 테마탕이 일품이다.워터피아의 암반은 이웃한 척산온천과 같은 단층대에 속해 있어 온천수질도 좋다.요금은 조조,당일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8000원~3만 9000원.한화콘도 투숙객은 할인된다.(033) 635-7711. 솔비치 아쿠아월드 노천 스파 바로 앞에 동해의 망망대해가 펼쳐진다.천연 온천수가 공급되는 아쿠아월드 야외 레저존이 오산해수욕장과 이어진 것.야외 레저존에서는 겨울철에도 워터 슬라이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설이 가동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스파와 수영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어른 2만 2000원,어린이 1만 7000원.강원 양양.1588-4888.
  • 이번엔 일해공원 표지석 논란

    이번엔 일해공원 표지석 논란

    경남 합천군이 합천읍 황강변 공원에 전두환 전 대통령 친필의 ‘일해공원’ 글씨를 새긴 표지석 설치를 강행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앞서 합천군은 지난 2006년 시민단체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원 이름을 일해공원으로 명명,거센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합천군은 29일 합천읍 황강변 공원안 3·1운동기념탑 옆에 6000여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필 표지석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합천군은 이 표지석 앞면에 전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일해공원’ 글씨를 새겼다.뒷면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출생하신 자랑스러운 고장임을 후세에 영원히 기념하고자 대통령의 아호를 따서 일해공원으로 명명하여 표지석을 세운다.’라는 문구를 새겼다.건립 날짜는 2008년 12월31일로 돼 있다. 표지석은 황강에서 캔 가로 3.5m,높이 1.8~2.2m 크기의 자연석으로 골재채취 허가를 받아 채취했다고 군 관계자는 밝혔다.군 관계자는 “지난해 일해공원으로 명칭이 바뀐 뒤 표지석이 없어 세우게 된 것이며 제막식을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해공원 표지석 건립과 관련해 생명의 숲 지키기 합천군민운동본부는 ‘합천군의 일해공원 무한 도전에 언제까지 군민은 외면당해야 하는가.’라는 성명서를 내고 “합천군이 표지석을 세우면 공원에서 표지석 반대와 일해공원 명칭 철회 집회를 계속 갖겠다.”고 밝혔다. 합천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내 유일 돌다리 연구가 손광섭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내 유일 돌다리 연구가 손광섭

    개울가에 돌 하나만 툭 던져놓아도 징검다리가 된다.그리곤 개울을 건너,가지 않았던 인생길을 걷는다.태초의 어떤 만남도 그렇게 시작됐을 터.너와 나의 만남,남녀간의 사랑도 말이다.헤어짐도 당연지사였겠지.올해초 2008년이라는 개울 앞에 하나 둘 돌을 놓기 시작했다.벌써 해가 저문다.지금까지 어떻게 건너왔는지 잠시 되돌아본다.아마 세가지로 분류되지 않을까. 돌다리를 두들겨보지도 않고 천방지축 손오공처럼 건넜을 테다.삼장법사처럼 신중하게 두들겨보고 건너기도 한 것 같다.또 바둑의 이창호 9단처럼 두들겨보고도 건너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겠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석두론(石頭論)을 좋아했다.개혁·개방을 설계하면서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摸着石頭過河)’고 주창했다.또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내세웠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를 폈다.덩샤오핑은 이 두 가지로 중국대륙을 호령했다. 이래저래 돌다리는 인생철학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그런데 오랜 세월,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돌다리들이 우리 주변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사라져 가고 있다.여기서 잠깐! #문제1: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징검다리는? 전남 신안군 암태도에 있으며 수곡리와 추포리를 연결한다.길이 2.5㎞,돌덩이가 무려 3만 6000여개에 이른다.말 그대로 한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300여년 전인 조선시대 추포도에 사는 문씨와 장씨 성을 가진 주민들이 하나 둘 돌을 던지며 연결했다.옛날에는 이 징검다리로 새색시들이 가마 타고 시집갔다.이때 가마꾼들 사이에 불려진 노래가 지금도 전해진다.‘띄었냐? 띄었다! 뒤쪽의 가마꾼이 띄었냐? 앞쪽의 가마꾼이 띄었다!’ #문제2:현존하는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이다.통일신라 때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청운교는 높이 3.82m,너비 5.11m이다.백운교는 높이 3.15m,너비 5.09m,길이 6.3m이다.이름 그대로 푸른 구름과 흰구름 다리를 뜻한다. 다리 위는 천상의 세계요,다리 아래는 속세를 표현한다.하여,이 다리를 건너면 부처의 나라로 들어간다.하지만 기원전 37년에 만들어진 청주 남석교가 가장 오래됐다.애석하게도 이 다리는 일제 때 땅속에 묻혀 여전히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아울러 기록으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교량공사는 신라 실성왕 12년(413년)에 완성된 평양주대교(平壤州大橋)로 위치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발굴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문제3:현존하는 돌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뭐니뭐니 해도 진천의 ‘농()다리’를 꼽는다.고려시대 몽골 침략 때 세워졌으며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돌다리 중 동양에서 가장 오래됐다. 길이 93.6m,폭 3.6m인 이 다리는 거대한 지네가 물을 슬쩍 퉁기며 물을 건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다리답게 사연도 많다.안질을 앓던 세종대왕이 초정리로 가다가 물을 마셨다는 소습천(어수천·御水川), 많은 장수들과 말발굽의 흔적 등이 남아 있다. 이렇게 돌다리만 고집스럽게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손광섭(66) 청주건설박물관장.15년째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숨어 있는 돌다리를 찾아내 거기에 담긴 천년의 세월을 끄집어내고 있다.다리품을 모아 7년 전 청주에 다리박물관인 ‘건설박물관’을 세웠다.또 2004년 단행본 ‘천년후,다시 다리를 건너다’를 발간했다.책에서 송광사 삼청교,강경 미내다리,함평 고막천 석교,광한루 오작교,논산 원목다리 등 전국 30여개의 돌다리를 소개했다.최근에는 돌다리 연구 완결편인 ‘천년후,다시 다리를 건너다Ⅱ’를 펴냈다.목릉 금천교를 시작으로 제주의 명월교에 이르기까지 전국 27개의 돌다리를 새로 추가했다.특히 보길도 굴뚝다리,봉화 돌다리 등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거나 훼손돼 위험에 처한 다리까지 실었다.그가 국내 유일의 ‘돌다리 전문가’로 불리는 까닭이다. 청주건설박물관에서 손 관장을 만났다.박물관 안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진다.전국을 찾아다니며 직접 찍은 돌다리 사진이 사방 벽으로 쭉 전시돼 있었다.유리 전시관 안에는 조선시대에 사용됐다는 저승과 이승을 잇는 돌다리,당시 유배지로 떠나던 선비가 사용했던 화장실,조선시대 각종 건설장비 등을 비롯해 발해시대의 석등탑과 삼족우,송나라 때 사용됐던 소뿔먹통,타이타닉 배에서 뽑았다는 못 등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박물관 3개층에 걸쳐 시대별로 진열돼 있었다.예멘의 벽돌,페루 마추픽추의 관련 흔적 등 해외자료까지 합하면 무려 수십만 점은 족히 돼 보였다.이런 소문이 나 외국인들도 이곳을 찾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떻게 해서 돌다리를 연구하게 됐습니까. “원래 아버지로부터 건설회사를 이어받았습니다.자연스럽게 전국을 다니게 됐죠.그때마다 지방 마을에 있는 돌다리를 접하면서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다리의 돌 하나하나에 예술이 있고,선조의 삶과 해학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1993년쯤부터는 아예 주말마다 거의 전국에 흩어진 돌다리를 만나러 도시락 싸들고 떠났지요.” →세월 속에 없어진 돌다리도 많을 텐데 자료찾기는 쉽던가요. “고서점은 물론 국회도서관에 가도 없더군요.결국 그동안 간간이 소개됐던 도지(道誌)와 군지(郡誌) 등을 뒤졌습니다.그걸 바탕으로 시골동네 어르신들에게 찾아가 밥과 술을 사드리면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소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지요.암태도의 징검다리 돌덩이 숫자가 3만 6000여개인 이유도 일년 365일 평안을 기원하는 속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우리나라 돌다리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조상들의 삶과 정신이 깃든 설화와 전설이 얽혀 있습니다.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의 무대가 된 남해의 돌다리,형제가 쌀 천섬을 들여 만든 거창의 쌀다리,17세기 우리 교각의 형태를 볼 수 있는 벌교 도마교 등에도 흥미로운 사연이 많습니다.이런 돌다리에 서서 천년 전,누가 무슨 일로,무슨 생각을 하면서 건넜을까 생각하면 막 흥분이 되고 그럽니다.” 처음에는 옛다리들을 보면서 달리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놈,잠 잘생겼다.예술이다.”라고 중얼거리다 보니 박물관을 만들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술회한다.세계 어느 조각작품에도 뒤지지 않은 순수한 자연미를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서였다.현실적으로 다리를 한 곳에 옮겨다 놓을 수 없기에 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다녔다.또 고려말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피살된 개성의 선죽교 등 북한에 있는 것은 방북했을 때 어렵게 그림을 얻어다가 전시해 놨다.그는 “수십번 찾아가도 항상 말없이 반겨주는 것이 돌다리였다.”면서 남은 생애에 여건이 된다면 북한의 돌다리 연구를 꼭 해보고 싶다며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길 1943년 청주에서 태어났다.청주고와 청주대학을 나와 1968년 아버지로부터 건설회사를 이어받았다.그러던 어느 날부터 돌다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1993년부터 본업보다는 아예 돌다리 연구에 매진했다.고서점이나 국회도서관 등에도 돌다리에 관한 자료가 없어 어려움도 많았다.결국 수소문하면서 도지(道誌)나 군지(郡誌) 등을 뒤져 자료추적을 했고 산골마을에 직접 찾아가 동네 어른들을 만나 돌다리에 얽힌 얘기를 기록했다.2001년 1월 청주에 국내 최초의 돌다리박물관인 ‘청주건설박물관’을 설립했다.이어 2004년 산야에 묻혀 사라져 가거나 훼손된 돌다리들을 찾아내 ‘천년후 다시,다리를 건너다’라는 단행본을 펴냈고 최근 돌다리 연구의 완결편인 ‘천년후 다시,다리를 건너다Ⅱ’를 추가로 발간,언론과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속리산 견훤산성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속리산 견훤산성

    속리산만큼 오묘한 이름을 가진 산이 또 있을까.법주사를 중창하기 위해 보은 땅에 도착한 진표율사를 따라 밭을 갈던 소들과 농민들이 속세를 버리고 불도에 입문한 산이라 하여 속리산이 되었다는 것.여기에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는구나,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구나.(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 俗離山)’ 라는 고운 최치원의 시 한 수가 더해지며 속리산의 이름은 더욱 깊어진다. ●상주 사람들이 섭섭한 까닭 흔히 ‘보은 속리산’이라고 하는데,상주 사람들은 그게 늘 섭섭했다.속리산은 충북 보은뿐만 아니라 경북 상주에도 걸쳐 있고,또 상주 쪽에서 바라보는 속리산의 풍경이 기막히기 때문이다.상주시 화북면은 속리산,청화산,도장산,시루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가히 산국(山國)이라 부를 만하다.이 곳에는 두 개의 보물이 숨어 있다.하나는 풍수지리에서 십승지지(十勝之地)로 알려진 우복동(牛腹洞)이고,다른 하나는 견훤산성이다. 재미있게도 두 개의 보물이 모두 속리산과 관련을 맺고 있다.우복동이 속리산의 강한 화기(火氣)를 피해 꼭꼭 숨어 있다면 견훤산성은 속리산이 잘 보이는 장소에 터를 잡고 있다.견훤산성은 무려 1500년이 넘은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기에 좋은 길이다.속리산의 웅장한 암릉미를 감상하며 견훤(867~936년)에 얽힌 전설과 옛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충북 괴산에서 49번 지방도를 타고 백두대간의 고갯마루인 늘재를 넘으면 상주 화북 땅이다.이곳 장암리에서 속리산으로 가는 널찍한 도로를 따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작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등산객들은 대개 스쳐가기 마련이지만,이곳 장바위산(541m)에 견훤산성이 있다. ‘견훤산성 700m’라 쓰여진 작은 표지판을 따르면 곧 산길이 시작된다.시작부터 제법 경사가 가파르다.풍경은 소나무가 우거진 전형적인 야산의 모습이다.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무렵이면 나뭇가지 사이로 성벽이 눈에 들어오고,이어 동벽에 올라서게 된다.산성은 출입구에 해당하는 동벽이 원형 그대로 복원됐고,나머지는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정상을 중심으로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기에 여기서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게 된다. ●자연석 위에 쌓은 망대는 속리산 전망대 견훤이 쌓았다고 해서 견훤산성이라 부르지만,실제로는 삼국시대인 5~6세기 축성됐다.이 곳뿐만 아니라 상주지역 옛 성들이 견훤과 관계지어지는 것은 ‘삼국사기’의 견훤과 그의 아버지 아자개가 가은 출신이란 기록 때문이다.가은은 지금 문경에 속하지만 당시엔 상주 가은현이었다. 성벽은 직사각형의 작은 화강암을 잘 다듬어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마치 고른 치아처럼 보기 좋다.중간중간 자연석 위에 돌을 쌓은 곳이 나온다.최대한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흔적이다.산의 정상으로 생각되는 지점에는 말굽형의 망대(望臺)가 돌출되어 있다.수풀을 헤치고 망대에 서니 일필휘지로 펼쳐진 속리산의 주릉이 장관이다.보은과 상주 일대의 많은 산을 올라봤지만,속리산이 이렇게 웅장하고 위엄있게 보이는 곳은 없었다.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그 옛날 이 곳을 차지하고 새로운 왕국을 꿈꾸었던 견훤과 그 군사들은 속리산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고장에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견훤은 이 곳에 성을 쌓고 세력이 강성해져 근거지를 전주로 옮겼다고 한다.속리산의 힘과 기상이 그들에게 전해졌던 것은 아닐까. 망대를 지나면 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화북면의 마을들과 청화산,도장산 등이 훤히 보인다.마을 앞을 지나는 49번 지방도는 당시 신라가 북쪽으로 오르내리는 통로였다.이 산성을 손에 넣은 견훤은 북쪽 지방에서 경주로 향하는 공납물을 모두 거두어 들였다고 한다.가파른 길을 내려 오니 다시 동벽 앞이다. 견훤산성 걷기는 장암리 견훤산성 이정표에서 동벽까지 30분,650m의 성벽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30분이 걸린다.좀 더 길게 걷고 싶은 사람은 속리산 문장대로 향한다.화북면 시어동에서 문장대까지는 3.3㎞,2시간가량 걸린다.이 길은 법주사에서 오르는 길보다 짧고 완만해 많은 산꾼들이 이용한다. ●가는 길과 맛집 대중교통은 불편해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작년에 개통한 청원~상주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화서나들목으로 나오면 화북면이 가깝다.견훤산성은 장암교에서 속리산으로 난 길을 따라 2㎞ 정도 오르면 이정표가 보인다. 화북면은 송어회로 유명하다.등산로 입구의 문장대가든(054-533-8935)과 오송가든(054-533-8972)은 산꾼들이 많이 찾는 집이다.우복동 광장마을의 청화산방(054-533-8958)은 직접 담근 메주로 내오는 된장국이 일품이고,모든 반찬은 유기농 채소를 사용한다. 산악전문작가
  • 버려지는 지하수 활용 작은 폭포 설치

    버려지는 지하수 활용 작은 폭포 설치

    중랑천으로 버려지는 지하수를 활용해 작은 폭포를 만들어 우이천의 악취를 제거하기로 했다.작은 구정 아이디어가 주민을 뿌듯하고 흐믓하게 하는 사례다.  24일 성북구에 따르면 내년 초에는 지하철 석관역 근처 우이천 하류의 복개구조물 난간에 폭 45m,높이 1.5m의 폭포(그래픽)가 생긴다.  송수관을 통해 흘러온 지하수가 자연석 옹벽을 타고 우이천으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것이다.복개구조물의 끝부분이라 구조물 아래가 늘 지저분하고 악취를 풍긴다.우이천의 물이 말라 잘 흐르지 않고 고여 있기 때문이다.  폭포수로 바뀌는 지하수는 1㎞쯤 아래쪽 재활용집하장 근처에서 유출된다.별다른 활용 방법이 없어 집하장 청소용수로 쓴 뒤 그냥 중랑천으로 흘려 보내는 물이다.  자연석 폭포까지 길이 490m,지름 10㎝의 송수관을 부설해 이 지하수를 끌어 오기로 한 것이다.나머지 510m에는 이미 송수관이 있기에,큰 공사도 아니다.  송수관 부설공사를 하면서 주변의 낡은 보도를 걷어 내고,친환경 점토블록을 깔기로 했다.송수관은 두산아파트를 지나 석계역까지 ‘ㄱ자형’으로 부설된다.  결국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 버려지는 지하수를 활용하고,흉물 같던 복개 건천에 친수 폭포를 만들어 길을 지나는 주민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주는 1석2조 구정인 셈이다.  성북구 관계자는 “지역의 구의원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담당 과장,계장,직원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효율적인 방안을 짜낸 결과”라고 소개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태백산맥 문학관’ 21일 개관

    1980년대 분단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조정래 작가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태백산맥 문학관’이 21일 작품의 무대인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문을 연다. 소설 완간 20주년을 맞아 이날 오후 2시에 열리는 개관식에는 조정래 작가 부부를 비롯해 소설가 공지영, 구효서 등 200여명의 문인과 박태준 전 총리, 이어령 교수,‘독도는 우리땅’을 부른 가수 정광태씨 등이 참석한다. 또 오후 5시에는 소설 속 배경이 됐던 ‘현부자네 집’과 ‘소화의 집’을 둘러보는 ‘문학무대 탐방’과 가수 장사익씨의 축하무대가 마련된다. 문학관은 벌교읍 회정리 일대 4359㎡ 부지에 지상 3층, 전체 면적 1375㎡ 규모로 세워졌다. 건물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북향으로 지어졌다. 이곳에는 142건,623점에 이르는 작가의 육필 원고(200자 원고지 1만 6000여장)와 취재수첩 등 작가와 작품에 관련된 자료가 전시된다.문학관 옆 옹벽에는 한국화가 이종상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와 조정래씨,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대표가 공동 기획한 자연석 벽화도 세워졌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21일 문연다

    작가 조정래가 ‘태백산맥’에서 주무대로 삼은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태백산맥 문학관’이 지어졌다. 이 대하소설의 완간 20주년을 맞아 21일 문을 여는 문학관에는 작가의 육필 원고와 취재수첩 등 작가와 작품에 관련된 623점의 자료가 전시된다. 제 1전시실에는 소설의 탄생 과정과 출간 이후 언론보도 등이 전시되고, 제 2전시실에는 작가의 방·문학사랑방·작가집필실이 들어서는 등 모두 마당으로 꾸며진다. 개관식에는 프랑스어판 번역자인 조르주 지겔메이어를 비롯해 문학, 건축, 출판, 미술, 언론 등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한다. 태백산맥 문학관은 전북 김제의 ‘아리랑 문학관’에 이어 작가 조씨를 기리는 두 번째 문학관이다.‘태백산맥’이 관통하는 시대정신인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북향으로 지어졌다. 또한 문학관 벽면에는 백두대간·지리산·독도 등 역사의 생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우리 국토를 형상화한, 길이 81m 높이 8m의 국내 최대 규모 자연석 벽화가 제작돼 눈길을 끌게 된다. 1983년 9월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해 1989년 10월 완간된 ‘태백산맥’은 해방 직후 혼란기 속에 남한 단정 수립 직후 발생한 제주도 4·3항쟁, 여순사건으로부터 한국전쟁과 휴전, 빨치산 활동까지 5~6년 사이를 다룬 작품이다. 격동의 역사 속에 얽혀 있는 개개 인물들의 구체성에 눈 돌리지 않는 치열함과 분단의 원인과 배경에 대한 역사적 고찰 등 시대에 대한 긴 호흡이 담겨지며 전후 분단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700만부가 넘게 팔린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홍성에 이응로 화백 기념관

    동베를린 간첩사건에 연루됐던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로(1904∼1989) 화백의 생가와 기념관이 2010년 6월 충남 홍성에 들어선다. 홍성군은 10일 홍북면 중계리 1만 1000여㎡에 이 화백 생가와 기념관을 건립키로 했다고 밝혔다. 생가는 초가에 안채와 헛간채를 ㄱ자 형태로 배치하고 전통 목재 구조물과 회벽, 구들 등을 원형대로 복원한다. 울타리는 탱자나무로 둘러치고 주변에 싸리나무와 대나무숲이 조성된다. 기념관은 985㎡에 1층 규모로 흙벽과 자연석, 목재 등으로 건립된다. 기념관에는 고암의 작품과 유물이 전시되고,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영상실과 북카페도 만들어진다.홍성군은 당초 2004년 고암 생가 및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으나 예산군과 고암의 출생지를 놓고 갈등이 증폭되자 사업을 미뤄왔다. 대전지법 홍성지원은 최근 “고암의 출생지는 홍성”이라고 판결했다.홍성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검은 빛 바다 위를~’ 남해에 ‘밤배’ 노래비

    ‘검은 빛 바다 위를~’ 남해에 ‘밤배’ 노래비

    ‘검은 빛 바다 위를 밤배 저~ 밤~배 무섭지도 않은가 봐~/한 없이 흘러가∼네/’아름다운 노랫말과 감미로운 곡으로 국민들에게 널리 사랑받아온 ‘밤배’의 노래비가 노랫말의 배경이 된 경남 남해군 상주 은모래비치(해수욕장) 야영장에 세워졌다. 남해군은 밤배 노래비 건립과 음향시설 설치 등의 공사가 마무리 돼 오는 14일 노래비 건립 현장에서 제막식을 갖는다고 6일 밝혔다. 제막식에는 ‘밤배’를 부른 남성 듀엣 ‘둘다섯’ 멤버들이 직접 참석해 자신들의 노래비를 건립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할 예정이다. 둘다섯은 제막식에 앞서 13일 오후 7시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실험극장에서 노래비 제막 축하 초청 공연도 한다. 높이 3m로 돛 모양의 자연석으로 된 노래비에는 밤배 악보와 노래비 건립 동기 등을 새겼다. 또 밤배 노래를 비롯해 긴머리 소녀, 얼룩 고무신, 일기, 바다, 눈이 큰 아이 등 둘다섯이 부른 노래 10곡을 원하는 대로 선택해 들을 수 있는 음향시설도 갖추었다. 남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수명 다한 철도차량 인공어초로 부활

    수명 다한 철도차량 인공어초로 부활

    철도차량을 활용해 만든 인공어초에서 각종 동식물이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4일 코레일에 따르면 2006년 12월 경남 거제시 남부해역에 시범 설치한 철도차량을 활용한 인공어초에서 여러 종류의 동식물이 잘 자라나고 있다는 것. 인공어초 및 바다목장 사업 진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코레일이 개발한 철도차량 인공어초는 수명을 다한 지붕이 있는 화차. 인공어초는 길이 13.1m, 폭 6.9m, 높이 3.1m로 내장재를 제거한 후 균형유지를 위해 뼈대를 설치했다. 또 해양생물 서식에 필요한 친밀한 공간 조성을 위해 자연석과 폐레일을 채웠고 구멍을 뚫어 햇볕이 통과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수심 20m에 설치 후 지난달 21일 코레일과 해중 연구조사팀이 관찰한 결과 조피볼락과 감성돔, 놀래기 등 수종의 자연산 어류가 왕성하게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차량과 폐레일 등에서 나오는 철이온이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을 돕는 한편 철도 구조물이 어류의 산란과 서식 공간을 제공하면서 인공어초 주변으로 먹이사슬을 형성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2년간의 의무시험기간이 끝나는 내년부터 본격적인 사업화에 나설 계획”이라며 “폐차량을 재활용해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의 상생개발 등 장점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한편 코레일은 덮개가 있는 화차에 이어 벌크 탱크로리 화차를 후속 모델로 한 인공어초를 개발해 경북 해역에 시험 준비하는 등 각종 폐철도자원을 활용한 녹색성장형 인공어초 개발에 나서고 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문화마당] 작가 이병주에 대한 기억/김종회 문학평론가ㆍ 경희대 교수

    [문화마당] 작가 이병주에 대한 기억/김종회 문학평론가ㆍ 경희대 교수

    경상남도 하동은 지리산과 다도해와 섬진강이 함께 만나는 고장이라 하여, 예로부터 삼포지향(三抱之鄕)이라 불렸다. 그 하동의 섬진강변에 자연석으로 된 문학비 하나가 서 있고, 거기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소설가 나림 이병주 선생의 문학비다. 이 선언적이며 고색창연해 보이는 비문의 수사(修辭)는 이병주 선생의 문학관, 소설관을 매우 잘 반영하고 있다. 이 한 줄의 문장은 널리 알려진 선생의 소설 ‘산하’ 첫 장에 기록된 에피그램이다. 실제적 삶의 집적인 ‘역사’에 비추어 그 배면에 잠복한 숨은 진실을 들추어 보이는 ‘문학’의 존재양식, 그렇게 존재하는 문학의 지위에 대한 인식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요약하고 있다. 선생이 타계하기 수년 전, 그러니까 필자가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던 1980년대 말의 일이다. 어느 오후 선생께서 늘 나와 계시던 K호텔 커피숍에서, 필자는 매우 무모하고 무례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선생님, 역사란 무엇입니까?” 역사가 무엇이냐라니! 도대체 이 따위 대책 없는 선문답류의 질문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문학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특히 역사소설의 그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끌어안고 선생을 만난 필자로서는 꼭 내놓아야 할 질문이었다. 선생의 답변은 의외로 짧았고, 역시 선문답적인 것이었다. “역사란 믿을 수 없는 것일세.” 역사를 믿을 수 없는 것이라니! 당시는 ‘운동개념으로서의 문학’이 한 시대를 풍미하여 민족, 조국, 역사 등등의 언사가 그 이름만으로도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선생의 어조는 단호하고 명쾌했으며, 필자는 거기에다 감히 추가의 질문을 덧붙이지 못했다. 선생이 유명(幽明)을 달리한 해가 1992년이니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그 말씀은 아직 필자의 귓전에 힘 있게 살아있다. 그간의 지속적인 문학 공부를 통해 왜 선생이 그렇게 말했고 그것이 무슨 뜻이었는가를 비로소 깨우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에게 있어 기록된 사실로서의 역사는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실체를 정면에서 파악하는 데 그칠 뿐, 그 정론성의 성긴 그물망으로는 포획할 수 없는 삶의 가치와 진실에 대해서는 무방비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그 답변은 역사의 그물망이 놓치고 지나간 실체적 진실을 소설을 통해 걷어 올린다는, 선생의 문학관을 대변한 요지부동의 언표이기도 했다. 선생에게 문학은 그러므로 ‘월광에 물든 신화’였고, 스스로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고 한 그 ‘골짜기의 기록’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선생의 역사와 문학에 대한 인식은, 역사소설로서 우리 문학사 한 시기의 천정을 때린 작가답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양자를 바라보는 겹친 꼴 눈길과 변증법적 통합, 그것이 곧 역사소설의 운명이기도 하다. 가장 다양하고 깊이 있는 근대사의 체험을 재료로, 선생은 ‘관부연락선’‘산하’‘지리산’‘그해 오월’등 주옥같은 장편소설들을 남겼다. 근대사적 체험의 웅혼하고 활달한 문학적 표현이 선생의 몫이었고, 그 점이 오늘 우리로 하여금 선생의 문학을 기리며 기념하게 하는 까닭이다. 해마다 4월말이면 하동에서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가 열리고 이병주국제문학상 시상이 있으며, 9월말이면 이병주문학 학술세미나가 열린다.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각국의 작가들이 이병주문학관에 모여 문학과 인간에 대한 논의를 펼친다. 이 나라 산하의 아들로서 그 아픈 역사의 심층을 소설의 이야기로 꽃피운 선생의 작품들을 보면, 문학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명약’인지 짐작하게 된다. 김종회 문학평론가ㆍ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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