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노는 고라니·버드나무 군락… 한강하구 생태계의 寶庫
자유로를 지나 고양시 장항IC 부근에 이르면 가로지른 철책선 너머 강변에 울창한 버드나무 숲이 보인다. 이곳이 장항습지다. 개발붐이 거세게 일고 있는 수도권 한강하구에 위치하면서도 군부대 작전지역으로 묶여 습지보전이 잘돼 있다. 환경부는 2006년 4월 이곳을 한강하구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보호구역은 김포대교 아래에 있는 신곡수중보부터 서해로 나가는 길목인 인천 강화군 숭뢰리까지 60.7㎢(약 1835만평)에 이른다.
지난 15일 장항습지 탐방을 위해 군부대에 협조를 구한 뒤, 철책 안으로 들어갔다. 탐방길에는 한강유역환경청 직원도 동행했다. 장항습지 지역은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사전 군부대 협조를 구해야 출입이 가능하다. 자유로변과 습지쪽 두 곳에는 길게 철책이 쳐져 있다. 철책과 철책 사이 3~5m 공간은 군사용 작전도로다.
내년 4월쯤 고양시 행주대교~일산대교에 이르는 12.9㎞ 구간의 철책은 제거될 것이라고 한다. 철책은 무장공비 침투를 막기 위해 1970년대 설치됐지만 지역 주민들은 생활의 불편을 들어 철거를 강력히 요구해 왔다. 철책과 군부대가 이전하면 장항습지는 온전히 수도권 시민들 품에 돌아오게 되는 셈이다.
장항(獐項)이란 지명은 ‘노루목’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쉽게 고라니를 볼 수 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어김없이 고라니가 나타났다. 습지내에 넓게 펼쳐져 있는 버드나무 군락으로 들어섰다. 마침 물이빠진 터라 버드나무 밑둥까지 훤히 속살을 드러냈다. 자세히 보니 버드나무 뿌리 주변에는 수많은 구멍이 나 있다. 말똥게 한 마리가 낯선 방문객의 출현에 재빨리 구멍 속으로 몸을 숨긴다.
말똥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이름 붙여진 말똥게는 굴을 파고 유기물을 섭취하면서 버드나무 생육에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 대신 버드나무는 새들이 말똥게 사냥을 못 하도록 서식처를 제공함으로써 서로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버드나무 군락은 백로와 황로의 여름철 번식지로 곳곳에서 이들을 관찰할 수 있다.
한강하구는 4대강 중 유일하게 하구둑이 없어 강물과 바닷물이 소통하는 기수(汽水) 지역이다. 따라서 넓은 하구 갯벌과 갈대습지는 재두루미, 저어새, 댕기물떼새를 비롯,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쇠기러기 등 국제적 보호조류를 포함한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가 됐다. 황복, 뱀장어, 참게는 물론 다양한 어종이 발견된다. 무엇보다 넓게 펼쳐진 갈대·버드나무숲과 개펄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은 수도권 시민들의 휴식처로 손색이 없다.
장항습지에는 저어새, 검독수리, 재두루미, 큰기러기 등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총 32종의 보호가치가 높은 희귀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거나 도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장항습지 내에는 총 40명의 어민과 10여명의 농민들이 통행 허가를 받아 어로작업과 농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어민들이 사용하는 어구와 뱀장어를 잡기 위해 곳곳을 파헤쳐 놓은 물골 등은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무분별한 어로행위와 농약사용 제한 등 습지 생태계 보전을 위한 관리강화 필요성이 절실하게 와 닿았다. 집중 호우로 밀려든 쓰레기들도 나뭇가지 곳곳에 걸려 있다.
한강청 윤명현 환경관리국장은 “습지 보호를 위해 기본 철책선을 남겨 두는 것에 대해 이미 해당 지자체와 의견 조율이 됐다.”면서 “다만 군사도로 활용 문제는 의견이 달라 추후 협의를 통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습지생태관과 관망대 추가 설치 문제에 대해서도 계속 방안을 연구 중이며, 늦어도 내년 하반기부터는 프로그램 운영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윤 국장은 “내년 봄 한강하구 철책 철거작업이 완료되면 총 54억원을 투입해 생태관광 조성사업을 본격 추진하게 된다.”면서 “장항IC 부근 철책선 사이 2.2㎞ 군사도로에는 생태 탐방로와 방문자 센터, 전망대 등이 들어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습지 관리·보전을 위해 고양시, 김포시, 파주시, 강화군 등 인접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와 지역주민 등이 참여하는 ‘민관합동보전관리위원회’를 구성해 다양한 의견도 수렴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습지를 빠져나올 즈음 강 한가운데 모래톱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철새 한 쌍이 낙조와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했다.
글 사진 유진상기자 jsr@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