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자술서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전북도청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올림픽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머큐리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현대화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1
  • 근대 사법제도 1백돌… 그 영욕의 세월

    ◎“정치권력서 독립” 외로운 투쟁사/조봉암 무죄선고 등 권력맞서 소신의 판결/50년대/민주화투쟁 점철… 제2차 사법파동 진통/80년대/국가배상법 위헌·김시훈 사건·생수시판 허용 등 명판결로 25일은 이 땅에 근대사법제도가 도입된지 꼭 1백주년이 되는 날이다.우리나라 근대사법의 시원은 법률 제1호인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 18 95년 4월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재판소구성법의 시행 이후 그동안 「원님재판」에만 의지해 왔던 봉건적 법률문화의 구각을 벗어나 최초의 판결,최초의 판사,최초의 재판부 등 근대적 의미의 각종 사법제도가 착착 뿌리를 내리게 됐다.그로부터 1백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사법제도의 골격을 바꾸는 법조개혁을 눈앞에 두고 있다.근대사법 1백년을 맞는 우리 사법계의 「영」과 「욕」의 발자취를 주요제도의 변천 및 사건과 판결,그리고 인물을 중심으로 되돌아 본다. ▷영욕의 근대사법 1백년사◁ 근대사법사의 뿌리는 1894년 갑오개혁에 두고 있다.그해 7월 「모든 죄인은 사법관에 의하지 않고는 형벌을 과할수 없다」는 법령의 선언은 재판과 행정의 분리원칙이 처음 이뤄졌다는 의미를 가진다.이어 1895년 4월25일 재판소구성법으로 각급 재판소가 설치되면서 근대사법은 비로소 모습을 갖춘다. ○일제권력 시녀로 전락 일제 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사법제도 또한 일본의 근대적 사법제도를 그대로 이식받아 외형상 발전됐으나 내용적으로는 일제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는 질곡을 겪었다.이때 우리에게 이식된 대부분의 일본식 법률과 제도·관행의 기본틀은 지금까지 잔재로 남아있다. 48년7월17일 대한민국 헌법공포와 함께 사법부도 민주사법으로 재출발한다.이후 자유당 통치시대를 통틀어 정치권력과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려는 외로운 싸움이 계속됐다. ○시위대 법원청사 난입 특히 진보당 조봉암의 국가보안법위반사건에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법원을 비난하는가 하면 정권의 사주를 받은 시위대가 법원청사와 판사집에 난입,2심에서 판결이 번복되는 일이 벌어졌다.그러나 이 시기에도 동백림사건·한일회담반대시위자 영장기각등 「소신판결」이 잇따라 사법부의 독립의지도 돋보인 시기로 평가된다. 5·16과 10월유신,10·26사건으로 이어진 60∼70년대는 사법부의 시련기였다.「대법관」이 「대법원판사」로 격하됐고 법관의 임명권과 인사권까지 대통령이 장악했다.그 와중에서도 71년6월 대법원은 국가배상법 위헌판결로 소신을 보였으나 같은해 7∼8월 2달동안 법관의 구속에 항의한 전국법관들이 일제히 사표로 맞서는 사태가 벌어졌다.이른바 「사법파동」으로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지키기가 시도된 것이다. ○「대법관」 명칭 87년 부활 민주화투쟁으로 상징되는 80년대 초·중반에는 미국 문화원방화사건 법정소란,유태흥 대법원장탄핵소추안 국회발의,김영삼 신민당총재 직무집행가처분신청 인용 등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위협당하는 고난의 시기였다. 87년 25년만에 격하됐던 「대법관」의 명칭이 부활됐으나 88년6월 서울지역 법관 50여명의 개혁요구로 제9대 김용철 대법원장이 조기퇴임하는 「제2차 사법파동」의 진통이 이어졌다. 93년 문민정부출범후 사법부는 진정한 민주사법을 구현하기 위해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지난해 7월 법원조직법 등 사법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했다.사법개혁은 지난 2월 김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제2장을 기다리고 있다. ▷명판결들◁ 최근 법관들을 대상으로 「근대사법사상 가장 의미있는 판결」을 물은 여론조사에서 법관들은 ▲71년 국가배상법 위헌판결 ▲82년 김시훈 사건 무죄판결 ▲94년 생수시판금지 위헌판결 등을 대표적 판결로 꼽았다. ○강압에 의한 진술 방지 국가배상법 위헌판결은 국고손실을 이유로 군인·군속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한 국가배상법 제2조 단서조항은 위헌이라는 대법원전원합의체의 판결로 당시 최고회의의 비상입법에 대한 유일한 위헌판결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했다. 김시훈 사건은 경찰수사단계에서 작성된 자술서를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할 때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강압에 의한 진술을 방지해 피의자의 인권을 지켜준 판결이었다. 생수의 국내시판을 불허한 보사부고시는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와행복추구권 및 환경권을 침해한 위헌이라고 판결한 대법원의 생수시판금지 위헌판결도 오랜 행정편의주의를 법원이 준엄하게 꾸짖은 대표적 사례였다. ○처 능력제한 무효판결 이밖에 처의 능력제한을 규정한 구 민법은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하므로 무효라는 판결(대법원 47·9·2)은 남녀평등 실현에의 「거보」를 내디딘 판결이었으며 검찰에서의 자백에 임의성이 인정되더라도 객관적 상황과 모순되고 객관적 합리성이 없다면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판결(대법원 82·2·1)과 거짓말탐지기의 증거능력을 배제한 판결(대법원 83·9·13)도 명판결사의 대열에 올라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들이 법원을 빛낸 영광의 판결이었던 반면 정치적 격변기에 내려진 일부 판결들은 법원이 「힘의 논리」 앞에 굴복한 사례들로 지적되고 있다. ◎법관들의 영원한 사표/가인 김병로/독재 맞서 사법부 독립 추석 마련/일제시대 항일사건 변호 전담 1백건 넘어/관용차 거부 청렴·대쪽법관… 반독재투쟁 일관 후배 법관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법관으로는김병로 초대 대법원장,김홍섭 전서울고법원장,이회창 전대법관 등이 우선 꼽힌다. 특히 가인 김병로는 법관들의 영원한 「사표」로 불린다. 일제때는 항일운동 관련사건의 변호를 전담하다시피 했고 해방 이후에는 독재에 맞서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을 앞서 실천해 우리나라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다져놓은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가인은 1888년 1월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7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12살때 결혼,홀어머니를 모시고 집안일과 농사일을 돌보면서 「소학」과 「중용」「대학」 등 한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1913년 일본 메이지대학 법과를 졸업한 뒤 15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경성전수학교 조교수를 거쳐 19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 뒤 그가 맡은 독립운동관련 사건만도 안창호와 수양동우회사건,6·10만세운동사건,광주학생운동사건 등 자그마치 1백여건이 넘는다.그러나 만주사변이 일어나 일제의 회유와 탄압이 거세지자 32년 서울 근교 양주군 노해면 창동(지금의 서울 창동)으로 들어가 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농사를 지으며보냈다. 가인의 진면목은 그가 초대 대법원장에 취임한 48년 8월부터 58년 1월 정년퇴임할 때까지 9년 남짓 재임기간 동안 더욱 빛을 낸다.50년 2월 골수염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그였지만 의족과 외지팡이에 기댄채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정면으로 맞서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다. 먼저 사단은 이승만 대통령의 전횡에서 비롯됐다.52년 봄 자유당정부가 부산정치파동을 전후해서 대통령에게 밉보인 사람들을 마구 얽어매자 법원은 그때마다 무죄를 선고했다.이대통령은 법원의 이같은 판결에 크게 진노했지만 가인은 이를 일축했다. 『판사가 내리는 판결은 대법원장인들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없는 일이다.무죄판결이 불만이라면 절차를 밟아 상소하면 되는 것이지…』,『나는 단언하노니 재판이나 사법운영에 있어 나의 소신과 양심에 어그러진 판단을 한 일이 없으며 장래에도 없을 것이다.독립된 사법운영에 추호도 양심의 가책을 받은 일이 없다』 가인은 정년퇴임한 뒤에도 자유당 말기의 반민주적 행태와 부정선거를 규탄했으며 5·16쿠데타 때에도 강력히 반대하는 등 반독재투쟁을 벌이다 64년 1월 77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이와 함께 김 전서울고법원장은 고위직 법관에게 제공되는 관용차마저 마다하고 도시락을 싸들고 걸어서 출퇴근하는 「청렴법관」으로,이 전대법관은 소신을 굽히지 않는 「대쪽판사」로 후배법관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 “북한영공 비행사실 몰랐다”/홀 준위 미TV 회견

    ◎북,영공침범 시인 자술서에 서명 강요 작년말 북한군에 격추돼 억류 13일만에 석방된 미군 헬기 조종사 보비 홀 준위는 5일 CNN 등 미국 주요방송들과 인터뷰를 갖고 사고경위와 북한내 체류생활에 대해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사고순간의 상황은. ▲갑자기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당시 우리는 헬기가 피격된 것인지,기체고장인지 알지 못했다.조종석 앞 유리창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오고 엔진 출력이 급속히 떨어졌다.그때 데이비드 하일먼 준위가 『보비(홀 준위),나 총 맞았어』하고 중얼거린 뒤 말이 없었다. ­북한군은 언제 왔나. ▲헬기 추락 직후 화염에 휩싸였다.나는 헬기 밖으로 뛰쳐 나왔고 하일먼 준위는 추락 직후 헬기 밖으로 튕겨 나왔다.하일먼 준위를 화염으로부터 멀리 끌어내려 했을 때 북한군인들이 다가와 나를 포위했다.이때까지도 내가 북한영공에 들어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내가 하일먼 준위를 가리키자 한 군인이 나를 도와 하일먼 준위를 헬기에서 멀리 끌어내 주었다. ­두 손을 들고 있는 사진은 언제 찍혔나. ▲북한군인들이 나를 다시 한번 사고 현장으로 데려가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아마도 그때 찍힌 것 같다. ­심문은 어디서 받았나. ▲모른다.이동할 때마다 눈가리개를 씌웠다. ­심문 내용은. ▲북한군 조사관들이 심문 도중 군관련 사항도 질문했으나 대부분 개인 신상에 대한 질문이었다.북한영공을 침범한 것이 범죄행위였음을 시인하는 자술서에 서명하라는 강요를 받고 4∼5일간 버텼으나 결국 동의하고 말았다.자술서를 써 준 것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그러나 이 자술서는 하나도 내 말이 아니며 모두 그들이 쓰라고 한 것을 받아 쓴 것에 불과하다. ­조사받지 않은 시간에는 뭘 했나. ▲북한 TV 방송을 보고 김일성과 김정일에 관한 책을 읽도록 했다.
  • 경관폭행 피의자에 합의 강요/부산 망미2파출소

    ◎6백만원 받자 5명이 나눠 【부산=이기철기자】 부산경찰청은 12일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에게 합의를 강요,합의금을 받아 수고비명목으로 동료들과 나눠 가진 연산경찰서 망미2파출소 소장 강태수경위(52)와 류재경경장(42)을 직위해제하고 최모순경(24) 등 3명을 전보발령했다. 최순경은 지난 10월 9일 하오 11시 10분쯤 순찰도중 남구 망미2동 D노래연습장에서 판매금지된 술을 팔고 있는 것을 적발,업주 감상훈씨(30)를 파출소로 연행해왔다는 것이다. 연행된 감씨는 파출소에서 자술서 등을 찢어버리고 최순경의 얼굴 등을 때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혀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다음날인 10일 구속됐다. 동료직원 류경장은 구속된 감씨의 가족들에게 합의를 강요,합의금명목으로 67백만원을 받은뒤 이 파출소 소장 강경위 등 동료직원 4명과 수고비명목으로 나눠가졌다.
  • “수뢰사실 허위 입증 못하면 강압에 의한 자술서도 증거”

    ◎대법서 원심파기 대법원 특별3부(주심 신성택대법관)는 24일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파면당한 전 서울마포세무서직원 오도렬씨(강남구 대치동)가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상대로 낸 파면처분취소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오씨가 금품수수사실을 자인하는 확인서를 작성했고 국세청 감사실 조사관에게도 이같은 사실을 진술한 만큼 파면은 정당하다』며 원고승소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오씨는 강제에 의해 금품수수사실에 대한 확인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내용이 허위임을 입증할 수 없다면 증거로 인정된다』며 『특히 오씨가 기준시가로 따져 7천여만원상당의 양도세를 물어야 하는 땅에 70만원의 세금만 부과한 사실로 미루어 뇌물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 외환은 임직원,2명 사퇴·11명 징계/은감원 특검

    ◎자진인책 감안 형사고발은 유보 외환은행의 한국통신 주식 입찰가 조작사건과 관련,허준 행장에 이어 김연조 전무와 이영우 상무 등 2명이 사표를 제출했고,이장우 전무·노재학 감사 등 임직원 11명에 대해 문책경고 등 징계처분이 내려진다.그러나 형사고발은 유보됐다. 은행감독원은 25일 외환은행에 대한 특별검사 결과를 발표,관련 임직원의 입찰가 전산조작 및 입찰서 조작행위는 업무방해죄에 해당되나 ▲은행장 등 관련 임직원이 책임을 지고 사퇴한 데다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 아닌 「동기」 등을 감안해 형사고발을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은행감독원의 강신경 부원장보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입찰가 책정 및 정보의 외부 유출에 대해서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조사결과 외환은행은 지난 21일 상오 8시30분 낙찰가가 자신들이 응찰한 3만4천8백원으로 결정되자 비난여론을 의식,허행장 주재로 김전무·이상무·우의제 고객업무부장·이승용 자금부장·이동철 신탁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입찰가를 3만4천6백원으로 조작하기로했다.이준상 사무관리부장은 우부장의 부탁으로 손종호과장에게 입찰단가를 조작토록 지시했다. 은행감독원은 임직원에 대한 문책과는 별도로 외환은행에 대해서는 기관경고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한편 홍재형 재무장관은 이날 하오 김영삼대통령에게 이번 사건의 개요와 조치 및 대책 등을 보고했다. ◎외환은 「입찰가조작」 징계 의미/고의성 등 고려 인책범위 확대/금융기관 고질적 병폐 노출… 대책 시급 외환은행의 한국통신 주식 입찰가 조작사건은 허준행장 등 관련 임원 3명이 사표를 제출하고 11명의 임직원이 문책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비록 관련자에 대한 형사고발은 유보됐으나 과거의 대형 금융사고에 비해 인책범위가 광범위하다는 게 금융계의 평가이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음에도 대규모 사표 및 문책으로 귀결된 것은 처리과정의 고의성과 사회적인 파문 등이 고려된 것이다.행장을 정점으로 임직원들이 사건은폐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은행감독원도 밝혔듯 이들 임직원의 행위는 명백하게 형법 제 314조의 업무방해죄에 해당된다.두차례에 걸친 전산조작이나 입찰서의 조작은 공신력을 생명으로 하는 금융기관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고발이 면제된 것은 주요 임원이 자신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자진사퇴를 한 데다,외환은행이 자진 탈락하며 개인투자자들을 구제하려 했다는 동기의 순수성이 감안됐다.입찰보증금이 국고에 귀속될 가능성이 커지는 등 금융기관의 손실과,외환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금융기관이 입을 국제적인 신인도 저하 등의 부정적 파급효과도 고려됐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감독원은 특검에 착수한 지난 22일 전산조작 등에 대한 허행장 등 임직원의 자술서를 확보하고도 신변처리 문제로 고심했다. 이 사건은 금융기관의 고질적 병폐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동기의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전 임직원이 축소·은폐에 가담함으로써 적법성이나 도덕성에 대한 불감증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금융기관의 생명인 공신력에 그만큼 둔감했던 셈이다.파문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된 뒤에도 여전히 투자자들을 위하려다 벌어진우발적인 실수이지,파렴치한 범법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데서도 이같은 의식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은감원의 검사결과 내부정보를 이용했다거나 사전에 외부로 유출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그러나 전산조작 행위는 금융계에 떠도는 기관투자가의 부도덕한 행위를 실증한 셈이 됐다.자율화 시대를 맞아 금융기관들이 벌여온 고객만족 운동에 치명타를 가한 셈이다. ◎강신경 은감원 부원장보 1문1답/“낙찰가 외무유출 가능성 없다”/은행 독자적 행동… 재무부 무관 특감을 마친 은행감독원 강신경 부원장보와의 일문일답이다. ­내부정보로 입찰가를 결정하지 않았다는 근거는. ▲외환은행이 입찰에 응하기 일주일 전 쯤인 지난 11일 은행장 결재로 1차 입찰단가(주당 2만9천∼3만2천원)를 정했고 입찰 하루 전에 3만4천∼3만5천원 선으로 재조정한 뒤 19일 3만4천8백원으로 응찰한 일련의 과정으로 봐 내부정보가 아니라 면밀한 상황분석을 토대로 책정한 것으로 판단된다.또 낙찰이 가능한 단가를 미리 알아내려면 입찰단가가 높은 순서대로 전산자료를 재배열해야 하는데 입찰기간 중 재배열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 ­낙찰 가능 금액을 외부로 유출한 사실은 없는지. ▲낙찰 건수를 보면 법인이 0.2%이고 나머지는 전부 개인이다.내부 정보에 대한 욕구와 능력이 개인보다 기관이 훨씬 크다는 상식을 기준으로 보면 이런 구성비는 내부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없음을 반증한다. 기관 및 거액투자자 중 10만주 이상 응찰한 사람이 47건이지만 낙찰된 것은 6건에 불과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재무부의 지시 또는 협의 여부에 대한 조사는 했는가. ▲재무부 자체가 검사의 대상은 아니지만 일단 사실 여부를 확인했으나 재무부가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허 전행장이 방침을 정하고 고객업무부장의 책임 아래 전산조작이 이루어지는 등 은행의 독자적 행동이었다.
  • 4개월만에 돌아온 교실/한강우 전국부기자(오늘의 눈)

    『솔직히 말해 그동안 학교 있는 쪽은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였습니다.그러나 이제 다시 학교에 나와보니 역시 내 학교라는 옛정이 듬뿍 되살아 나는군요.여느 학생들처럼 고교졸업장을 받을수 있다니 날아 갈 것만 같은 기분이예요』 지난해 11월 상문고 상춘식교장(53)의 비리를 폭로하는 유인물을 돌리다 문제가 돼 학교로부터 제적을 당한 뒤 4개월만에 재입학이 결정돼 29일 다시 등교를 시작한 3학년 이모(18)군등 4명은 스승과 학우들로부터 인사를 받느라 잠시 어리둥절한 모습이었지만 이내 옛모습으로 돌아가 책상을 찾아 앉았다. 한 학생은 『교장을 비방하는 유인물을 돌린게 절대 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그렇다고 열흘만에 전격적으로 제적을 당할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그동안 마음의 상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지난해 11월19일 등교길 학우들에게 상교장의 전횡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돌리다 적발돼 열흘동안 매일 10시간씩 교실에 갇힌채 학교측으로부터 『너희들을 사주한 교사가 누구인지 대라』고 강요 받으며 무려 2백여장이나 되는 자술서를 썼지만 결국 전원 퇴학을 당하고 말았다. 끝내 학교에서 쫓겨난 뒤 다른 학교에 편입하거나 검정고시에 응시하기 위해 제적증명서·생활기록부 등의 발급을 요청했으나 학교측은 이마저 거부,김모군은 다른 학교 편입시험에 합격하고도 입학을 하지 못하는 시련을 겪었다. 『그동안 아들이 학교가 아닌 학원으로 발길을 돌릴 때는 가슴이 메어지는듯 했습니다』. 아들의 등교길을 따라나선 이모군의 아버지 이기억씨(45·금속공예가)는 아들이 이제부터라도 정상적인 고교생활로 되돌아간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제 예전처럼 머리를 다시 짧게 깎을때만해도 복학사실이 믿기지 않았다』는 김모군은 『학급과 50번이라는 번호를 배정 받은뒤 교실로 들어서면서 옛친구들의 박수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상문인으로 돌아왔음을 확인할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4개월전의 악몽을 가슴에 묻은채 한바탕 소용돌이가 지나간 교정에 어느새 익숙해 지고 있었다.
  • 상춘식교장 오늘 구속/검찰/찬조금 등 25억거둬 유용

    상문고 상춘식교장(53)과 이우자재단이사장(51)부부가 보충수업비 8억여원과 찬조금 17억원등 모두 25억원을 조성, 이중 대부분을 빼돌려 빌딩건축비등 개인용도로 쓴 것으로 밝혀졌다. 상문고 비리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특수3부(이정수부장검사)는 이에따라 18일중 이들 부부를 소환,상교장에 대해서는 공금횡령 및 배임등 혐의로 구속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날 재단상임이사 최은오씨(61),장방언교감(51),상교장의 개인비서이자 경리책임자인 김순자씨(41),민모교감등 4명을 소환,찬조금 모금과정과 상교장의 개인비리를 집중조사했다.또 이상희교사(53)등 비리폭로교사 5명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찬조금 징수·내신조작등 비리내용을 확인했다. 검찰조사 결과 상교장은 92∼93년간 학생들로부터 매달 5천7백만원씩을 거둬 이 가운데 1천9백만원만 교사들에게 주고 나머지 8억여원은 개인용도로 유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와함께 상문고측이 86년부터 지금까지 담임교사를 통해 학급당 10∼15명의 재력있는 학부모들로부터 연초에 1억2천만∼3억원씩 모두 17억4천여만원을 찬조금을 거둔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상교장이 이처럼 조성한 비자금을 자신의 명의로 된 동인빌딩 건축비(13억원)로 빼내 쓴 혐의를 포착,정확한 유용액수를 조사중이다. 한편 해외연수를 다녀온 교사 70여명은 이날 하오 검찰청사로 나와 해외여행과 관련된 자술서를 쓴뒤 모두 귀가했다.
  • 1천만원이하 수뢰땐 징역 최고5년/「돈봉투」관련자 어떤 처벌받나

    ◎증뢰·위증혐의 박상무는 징역 1∼10년 국회노동위 「돈봉투사건」과 관련,5일부터 김택기자보사장등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가 본격화되면서 사법처리대상 범위와 함께 어떠한 처벌법규가 적용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뇌물수수및 자보간부등의 국회에서의 위증여부. 우선 뇌물을 주고 받은 사실이 인정될 경우 공여자와 수뢰자 모두 뇌물공여 및 뇌물수수죄로 처벌받게 된다.뇌물죄에는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어 액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처벌내용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 국회에서 위증을 한 사람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등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형사처벌을 받게 돼 있다. 국회의원들의 「목」을 꼭 죄고 있는 것은 뇌물죄.돈을 받았을 경우 해당 정치인은 구속은 물론 정치 생명까지 끊기게 되는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1천만원 이하의 뇌물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선고할 수 있다.뇌물을 전달하거나 의사를 표시한 사람에게도 5년이하의 징역형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뇌물액수가 1천만원을 넘어서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형량은 훨씬 무거워진다.수뢰액이 1천만∼5천만원인때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5천만원 이상인 때에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따라서 수뢰액이 5천만원 이상이면 정상을 참작받더라도 최소 5년이상의 형을 선고받는다.자동차보험의 박장광상무가 민주당 김말용의원에게 전달하려 했던 돈의 액수에 대해 1백만원이라고 미리 쐐기를 박고 나선 것도 우선 특가법은 피하고 보자는 심산인 것 같다는게 수사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또 자보측 주장대로 돈봉투를 전달하려다 돌려받았더라도 뇌물공여 의사는 분명한 만큼 이와 관련된 회사관계자의 처벌은 불가피하다. 국회에서의 위증에 대한 처벌과 관련해서는 위증을 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을 받게 된다.5년이하의 징역형인 법정 위증보다는 훨씬 무거운 처벌내용이다. 지금까지의 수사결과 박상무는 뇌물공여 및 위증혐의로 처벌받을게 확실시되고 있다.박상무는 지난 3일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에서 지난해 11월김의원에게 돈봉투를 전달하려 했던 사실과 지난달 27일 열린 국회노동위에서의 위증사실을 시인했다.
  • “「돈봉투」 관련의원 곧 전환소환 조사”

    ◎자보 압수수색 비자금 추적/박 상무 오늘 소환·구속방침/검찰 국회 노동위 「돈봉투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은 자동차보험관계자및 관련의원들의 예금계좌추적에 수사력을 모으는 한편 이번 주중 고발인등에 대한 조사가 끝나는대로 관련의원들을 소환,조사를 벌일 방침이다.이번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특수1부(정홍원 부장검사·김진태검사)는 3일 자동차보험 박장광상무가 이날 낮 변호사를 통해 검찰에 자수의사와 함께 「민주당 김말용의원에게 현금 1백만원이 든 돈봉투를 건네줬다가 되돌려받은 사실이 있다」는 자술서를 전해왔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따라 빠르면 4일중 박씨를 소환,조사한뒤 김의원이외의 의원들에게도 돈을 줬는지와 정확한 뇌물의 액수 등 여죄를 캔뒤 뇌물공여 및 국회위증죄 등을 적용,구속할 방침이다. ◎검찰 돈봉투 수사 주선회 서울지검3차장은 『이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만큼 철저히 수사해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결정적 증거」가 확보될 경우 국회윤리특위의 조사결과가 나오기전,또는 임시국회 회기중이라도 관련 의원들을 전원 소환,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해 검찰의 전면수사 의지를 밝혔다. 검찰은 또 국회의 고발이 있을 경우 박상무 외에도 국회에서 위증을 한 자보 관련자들을 위증죄로 사법처리하기로 했다. 검찰은 또 자보측이 이번 사건과 관련된 자료 등 증거를 없애거나 서로 정황을 짜맞출 가능성에 대비,조만간 서울 을지로 자보빌딩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동부그룹 경리장부 일체를 수거해 비자금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검찰은 이날 하오 전국보험노련 권세원위원장과 자보 노조위원장 김철호씨를 불러 고발인조사와 함께 노조측의 자료를 넘겨받았다. 또 4일부터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김택기 자보사장,이창식 자보전무,박상무 등 피고발인들을 소환, ▲과일바구니를 전달한 배경 ▲돈봉투가 김의원 외에 다른 의원들에게도 전달됐는지 여부 등을 집중 추궁하기로 했다. 한편 박상무는 검찰에 낸 자술서를 통해 『김의원에게 전달한 돈은 회사돈이 아닌 개인의 돈이었으며 김의원에게 「다른 의원들에게도 돈을 줬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돈봉투 전달” 시인/박 상무 국회 「노동위 돈봉투 사건」의 핵심인물인 박장광한국자동차보험상무는 3일 전재중변호사를 통해 지난달 27일 노동위 전체회의에서 행한 위증에 대한 해명서를 국회 윤리특위와 노동위에 제출했다. 박상무는 해명서에서 『지난해 11월12일 김말용의원의 집을 방문해 1백만원을 전달했다가 이틀후인 14일 되돌려 받았으며 11월24일 청파동 매운탕집에서 김의원등 등산팀 회원들과 단합을 위한 저녁식사 모임을 가진 바 있다』고 돈봉투 전달및 회수 사실을 시인했다.
  • “아버지 스스로 찔렀다”/부친살해 여대생 번복

    【부산=이기철기자】 부산해운대경찰서는 22일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양애리양(20·I대 3년·부산시 해운대구 중2동 1524)이 『아버지가 자신을 스스로 찔렀다』며 당초의 진술을 번복해 재조사에 나섰다. 양양은 사건발생 3일만인 지난 17일 자술서를 통해 『사건당시 아버지가 「왜 늦었냐」며 뺨을 때리는등 폭행을 하다 분을 이기지 못해 부엌에 있던 흉기로 자신의 복부를 찔렀다』고 검찰에서 주장했다.
  • 폭력배 동원 의사 납치/3억갈취 국민당지구위장 사전영장

    서울경찰청 강력과(과장 이동식총경)는 31일 동생의 수련의 채용을 거절한 백병원 백모성형외과과장(50)을 납치,3억원을 갈취한 국민당 서울 중구 지구당위원장 강형렬씨(38·전과8범·강열의원 원장·서울 중구 신당동 현대아파트 8동 104호)의 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하고 약취강도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전영장이 신청된 강씨는 지난 6월초 백씨를 찾아가 자신의 동생을 수련의로 채용해 달라고 청탁했다가 거절당하자 4년전부터 알고지내던 임씨에게『백씨를 납치해 조사하면 비리가 많이 나올테니 약점을 캐 돈을 뜯어내자』고 제의한 뒤 착수금조로 5차례에 걸쳐 5백만원을 건네줬다는 것이다. 임씨는 일당 4명을 동원,지난 7월26일 하오9시쯤 퇴근하는 백씨의 차를 세운 뒤 가짜 경찰관수첩을 보이면서『서초동담당 수사관인데 당신에 대한 투서가 있으니 조사할 게 있다』고 속이고 미리 준비한 승용차로 경기도 평택시 부근 야산 폐가로 끌고갔다. 강씨는 이어 이들과 합류,백씨가 병원비리를 부인하자 각목과 주먹으로 때려자신이 부르는대로 허위자술서를 쓰게 한 뒤 이를 외부에 알려 매장시키겠다고 협박,3억원을 받기로 하고 4일뒤인 30일 상오11시쯤 서울 종로구 경희궁터 정문에서 현금2억원과 수표1억원이 든 골프가방 2개를 넘겨 받았다.
  • 오늘 춘천·대구동을 보선/자정쯤 당락윤곽 판명

    ◎막판 금품·폭행시비 등 혼탁 【대구=한종태·춘천=문호영기자】 대구동을및 춘천보궐선거 투표가 12일 상오7시부터 하오6시까지 두지역에서 일제히 실시된다. 개표는 투표함이 개표장에 도착하는 하오 7시쯤부터 시작되어 이날 자정쯤에는 당락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새정부 출범이후 세번째로 치러지는 이번 보선은 여야가 새정부의 개혁에 대한 국민의 중간평가라고 의미를 부여하는등 과열선거를 부추긴 측면이 없지않아 선거결과가 향후정국뿐 아니라 여야내부의 체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구동을 보궐선거에서 11일하오 전날에 이어 또다시 폭행사건이 발생하고 민자·민주양당후보진영은 서로 피해자라며 검찰에 맞고소,마지막까지 혼탁과열양상이 극에 달했다. 민자당은 이날 하오6시40분쯤 지역구내 안심1동에서 민주당 안택수후보측 여성운동원들이 「민자후보 주택가 금품살포」제하의 불법유인물을 돌리는 것을 제지하던 민자당 노동일후보의 매형인 문길태씨(54)가 인근 안후보 선거연락소로 끌려가 이기택민주당대표가 보는 앞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검찰고소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안후보측도 이과정에서 여성운동원 황정남씨(36)가 문씨로부터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다며 역시 검찰에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민자당은 이에 앞서 민주당측이 대구동을지역의 선거운동을 하던 민자당원을 납치 폭행했다면서 폭행당한 대구동을지구당 신평동협의회 노진환총무명의로 현장에 있었던 홍사덕의원과 민주당원들을 폭력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조용직부대변인은 11일 상오 민자당 고위당직자회의가 끝난후 『노진환총무가 노후보부인과 함께 당원 격려활동을 벌이던중 민주당원들이 노총무를 민주당사로 납치하고 철의자로 때리고 구둣발로 차 피가 낭자할 정도의 폭력을 행사했다』면서 『홍의원과 민주당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는 이날상오 대구동을선거대책본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자당 노동일후보측의 무차별적인 금권선거 획책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면서 『민자당은 금품살포가 명백히 확인된 이상 노후보를 사퇴시키든가 선거자체를 무효화시키든지 국민에게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앞서 민주당 대구동을의 안택수후보측은 10일저녁 8시30분쯤 민자당 신평동협의회 노총무가 노후보부인인 서모씨와 함께 주택가에서 현금봉투를 돌리는 사실을 적발했다면서 자술서와 현금살포내역을 기록한 메모를 첨부해 선관위에 고발했고 선관위는 현금살포가 인정된다며 이를 검찰에 고발했다.
  • 「화성수사팀」의 불협화음/박찬구 사회부기자(현장)

    ◎경기경찰청,서대문서 공조에 시큰둥 『6개월동안 김씨를 수사했다면 수사기록이라도 보여달라』 14일 하오5시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수사지휘를 맡은 수원지청 강력부 송승섭검사실에서는 서울 서대문경찰서 수사팀과 화성수사본부의 간부들 사이에 한바탕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초 김종경씨(41)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달남짓 수사를 벌여온 서대문경찰서 수사팀은 변호사가 입회한 자리에서 김씨의 임의성과 신빙성 있는 자백을 받아낸 터라 검사의 구속수사지휘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자리에 참석한 경기경찰청 화성수사본부의 한 간부는 『사건 당시 6개월동안 조사해 무혐의처리했던 김씨를 뚜렷한 물증없이 어떻게 구속수사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같은 경기경찰청 간부의 주장에 급기야 송검사는 영장청구에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자 서대문경찰서 수사팀 간부는 『화성수사본부가 수사를 했다면 공조수사를 위해 그 기록이라도 보여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으나 화성수사본부의 간부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이었다. 『김씨와 그 부인은 당시 화성수사본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으며 김씨에 대한 화성수사본부의 조사가 진술조서 한번 작성하지 않고 형식적이고 무성의한 탐문수사에 그쳤다는 증거자료까지 갖고 있는데 이렇게 사람을 속일 수 있느냐』. 서대문경찰서 수사팀의 이같은 항변에도 불구하고 지휘검사는 경기경찰청 간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김씨를 귀가조치하고 증거를 보강하도록 지시했다. 지난 13일 김씨의 신병과 자술서등 기록일체를 경기경찰청에 넘겨준뒤 화성에 내려와 형식적인 공조수사를 별여온 서대문경찰서 수사팀은 그동안 경기경찰청의 수사의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었다. 김씨부인이 「남편이 자신에게 범행을 시인했다」고 진술한 조서와 김씨가 변호사와의 단독면담에서 범행을 시인한 내용을 녹취한 테이프등 김씨의 범행자백을 뒷받침하는 기초자료에 대해 서대문서 수사팀은 법원에 증거보전신청을 해주도록 경기경찰청에 요구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서대문경찰서 수사팀의 한 간부는 『물증이없는 상태에서 영장청구를 보류한 검사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범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진술할 수 없는 내용까지 상세히 털어놓은 김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기경찰청이 전혀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아 같은 경찰로서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숨지었다. 허탈한 표정으로 검사실을 빠져나온 그는 『40여분동안 검사앞에서 경찰내부의 「치부」를 내보였다는 생각에 회의감마저 들 정도』라면서도 물증확보를 위해 4·5차 사건현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자백근거 물증찾기 남았다/「화성살인」용의자 수사 안팎

    ◎진술임의성 확보… 증거찾기에 총력/“범행장소서 이상한 행동” 목격자 찾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김종경씨의 신병처리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7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고난뒤 4·5차 사건의 범행을 모두 자백한 김씨는 지금까지 수사선상에 올랐던 그 어떤 용의자들보다도 「확실성」이 높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지만 아직 증거를 찾지 못해 신병처리에 고심하고 있다. 당초 화성수사본부에서 별로 비중있게 취급되지 않았던 김씨를 전면 재수사한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김씨로부터 객관적인 자백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으나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증거없이는 유죄가 인정된 사례가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경찰의 이번 수사는 불리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경찰이 그동안 김씨를 수사하면서도 48시간 임의동행시간을 지키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범행을 자백할 때에도 아내를 대동시키는가 하면 변호사 입회아래 다시 자백을 받는등 임의성과 신빙성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도 수사의 중대성 때문이었다. 또 그로부터 범행내용을 담은 자술서를 받아 그가 언제고 번복할 때에 대비해 두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아내가 보는 자리에서 한차례 자백내용을 부인했다가 자술서를 보여주면서 설득하자 아내앞에서 울면서 범행을 다시 털어놓기도 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경찰은 증거확보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으며 그가 자백한 내용이 실제와 맞아 떨어지는지를 정밀조사하고 있다. 진술을 바탕으로 한 정밀조사에서 경찰은 김씨가 4번째 희생자인 이계숙씨를 살해한뒤 시계와 반지를 파묻고 나중에 이를 없애려고 동네사람들과 함께 낚시를 가장해 현장에 다시가 땅을 파는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같이갔던 사람들로부터 확인해뒀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경찰은 『범인이 아니면 말할 수 없는』상황이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중시,그를 추궁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에대한 신병처리에 있어 난점으로 떠오른 증거부족은 어찌보면 이 사건 자체가 갖는 난점이다. 사건자체가 2∼7년전 일인데다 초동수사소홀 등으로 확보된 증거가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은『진짜 범인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무죄판결이 날 판』이라고 수사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한다. 자백이 유일한 증거로서 특정사건의 일시·장소·범행내용·사체유기·피해자소지품 등에대한 설명만을 근거로 하여 구속영장이 발부된 예는 몇차례 있다. 유서대필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강기훈씨의 경우도 비슷한 최근의 예. 강씨의 경우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범행 일시와 장소가 영장신청서에 기재되지 않았음에도 그의 범행을 설명하는 정황이 법원에 받아들여져 구속돼 신병이 검찰에 확보된 채 구속만기일인 20일동안 조사를 받고 증거가 보강돼 기소됐던 것이다. 이번에도 경찰은 변호사 입회하에 자백,입회 변호사조차『자백내용이 생각보다 상세해 놀랐다』고 할 정도의 구체적 설명과 임의성을 근거로 앞으로 영장을 신청해 일단 신병을 확보한 채 수사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경찰에서의 구속만기일인 10일동안 경찰은 결정적인 증거나 그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정황증거를 찾는데 모든 수사력을쏟을 것으로 보인다.
  • 흉기구입 철물점주인 소재 추적/화성살인

    ◎검·찰,김종경씨 영장청구 협의 【수원=조덕현·박찬구기자】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서대문경찰서와 공조수사를 펴고있는 경기경찰청은 14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김종경씨(41·수원시 권선구 매탄1동)가 진범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자백을 뒷받침할 물증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함께 경찰은 이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수원지검 강력부 송승섭검사와 영장청구여부를 협의중이다. 화성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인 김종호경기경찰청제1차장(경무관)은 『용의자 김씨의 자술서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범인임을 확신한다』면서 『그러나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는 공소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물증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경찰은 김씨가 4차 피해자인 이계숙씨(당시 23세·화성군 정남면 관항리)를 살해한뒤 강도사건으로 은폐하기 위해 이씨의 반지와 시계를 다리밑에 숨겼다는 자백을 바탕으로 이날 낮12시부터 하오2시까지 경찰관 1백여명과 금속탐지기등을 동원,정남면 관항리일대 논과 농수로에서 수색작업을 벌였다. 경찰은 이와함께 김씨가 범행당시 입었던 옷을 찾기위해 수원시 권선구 매탄2동 김씨의 집에 대한 압수수색과 김씨가 5차 범행 당시 사용한 흉기를 샀다는 태안읍 병점리 철물점 주인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 이에앞서 경기도경은 13일 하오 서대문경찰서로부터 김씨의 신병과 변호사입회아래 작성된 자백서등을 인수했다. 한편 수원지검 강력부 송검사는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서류를 검토한 결과 김씨가 수차례 걸쳐 임의성있는 자백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일단 김씨를 귀가시킨뒤 경찰의 수사진척에 따라 영장청구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 「화성살인」 2차례범행 자백/경찰,용의자 김종경씨 자술서 공개

    ◎“오토바이 이용,4·5차 범행” 진술/흉기 등 증거물 찾기 주력/어제 부인입회아래서 재차자백 경기도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12일 유력한 용의자로 조사해온 김종경씨(41·수원시 권선구 매탄1동)로부터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9차례의 사건가운데 네번째와 다섯번째 살해사건의 범인이라는 자백을 받아내고 범행당시 사용했던 흉기와 피해자로부터 뺏은 물품등 증거물을 찾는데 주력하는 한편 다른 사건과의 관련여부도 캐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지난4일부터 김씨를 임의동행형식으로 불러 4차례 조사를 벌인 결과,지난86년 12월14일 이계숙씨(당시23세·여·회사원·화성군 태안읍 정남면 관항리49)살해사건과 87년 1월10일의 홍진영양(당시 18세·학생·태안읍 황계리 77)의 살해사건 범행일체를 자백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와함께 용의자 김씨가 범행일체를 자백한 내용을 담은 친필자습서를 공개했다. 이날 중간수사내용을 발표한 서대문경찰서 김상구형사과장은 『수사대를 화성군 살해사건현지에 급파,김씨의 진술내용을 토대로 증거물을 찾고 있으며 나머지 사건의 관련여부를 캐기 위해 이사건 종합수사를 맡아왔던 경기도경과 공조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경찰이 공개한 용의자 김씨의 자술서에서 김씨는 『지난 86년 12월 중순 밤 10시30분쯤 평소 아내가 운영하던 통닭가게에서 알게된 이씨가 인근 관항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오토바이로 뒤따라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김씨는 오토바이로 이씨를 앞질러 다리밑에서 기다리다 오토바이뒤에 있던 줄로 이씨의 등뒤에서 목을 졸라 실신시킨뒤 농로를 따라 30여m쯤 끌고가 성폭행했다고 진술했다.김씨는 이어 이씨의 핸드백에 있던 스타킹으로 이씨 목을 졸라 숨지게 하고 손목시계와 반지를 빼내 근처 다리밑에 숨긴뒤 달아났다고 자백했다. 김씨는 또 홍양 살해사건 역시 홍양이 매일밤10시쯤 귀가 하는것을 알고 87년10월10일 밤10시쯤 횡계리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다 뒤따라가 철물점에서 미리 구입한 길이 30㎝의 칼을 들이대고 『소리치면 죽인다』고 협박,범행을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김씨는 당시 버스정류장앞 경부선 철길건널목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30여분쯤 홍양을 기다리다 혼자 철길을 건너 걸어오던 홍양을 5백∼6백여m 떨어진 논으로 끌고가 성폭행하려다 홍양이 『살려달라』며 반항하자 미리 준비한 60㎝길이의 나일론 노끈으로 팔을 뒤로 묶고 홍양의 핸드백에 있던 스타킹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범행뒤 볏짚속으로 홍양을 머리 부분부터 집어넣고 범행에 사용한 칼과 밧줄을 사체에서 50㎝쯤 떨어진 볏짚 좌측 상단에 감추고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 안영리 검문소를 피해 용주사방면으로 달아났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또 이날 밤 김씨의 부인 오모씨(40)를 입회시킨 가운데 재조사를 벌여 김씨로부터 범행사실에 대한 자백을 재차 받아냈다며 13일 중으로 변호사 입회하에 진술을 다시 받아 자백의 임의성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전4성장군의 「오리발」/박성원 사회부기자(현장)

    ◎「모른다” 일관에 해군관계자도 민망 『진실은 아니지만 검찰에서 그렇게 진술한 일은 있다』 『그렇다면 왜 거짓자백을 했나』 『해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21일 상오 서울형사지법422호 법정에서 열린 전해군참모총장 김종호피고인(57)의 뇌물수수사건 첫공판에서 김피고인은 검찰측 신문에 대해 혐의사실을 전면 부인하거나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검찰은 김전총장을 구속할 당시 부인 신모씨(54)로부터 수뢰자백을 받아내고 수표추적을 통해 증거를 확보한뒤 그를 불러 사법처리했지만 김피고인은이날 처음부터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나서 기소한 검찰조차 어리둥절케 만들었다. 검사=부인이 검찰조사에서 군인사와 관련해 돈을 받았다고 자백했는데 그렇다면 부인이 거짓말을 한 것인가. 김피고인=모르겠다. 검사=피고인은 왜 자백을 했나. 김피고인=당신들이 나를 조사하면서 『형편없는 사람』 『전쟁나면 함포를 거꾸로 세워놓고 도망칠 비겁자』 운운하며 일생일대의 모욕적 대접을 해 비록 거짓이지만 불러주는 대로 자술서를 썼을 뿐이다. 그는 『전체 해군이 죽어가고 있으니 당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이 파문을 수습해야 한다』고 수사검사가 위압적 자세로 자백을 종용하는 바람에 해군을 지키기 위해 거짓자백했다고 딴전을 피웠다. 김피고인은 진급뇌물로 퇴임후 유럽여행경비 7백만원과 92년 독산동 빌라분양대금 1억3천여만원등에 사용한 수표추적결과를 제시하는 검찰의 추궁에도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명예를 제일로 하는 군인의 기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이같은 4성장군의 「오리발」에 법정에 나왔던 50여명의 예비역 해군장교들도 민망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1시간여에 걸친 첫공판을 마친 담당검사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전직 해군총수가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며 씁쓰레 법정을 빠져나갔다. 그토록 아끼던 해군의 명예를 위해 검찰에서 거짓자백을 했다는 그의 법정진술은 공허하게만 들렸다.
  • 한총련의 어눌한 변명/박찬구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김춘도순경 사망사건에 대한 경찰수사가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17일 하오 연세대 학생회관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기자회견을 자청해 관심을 모았다. 「한총련」은 이날 『김순경의 영전에 애도의 마음을 전하며 국민에게는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한총련」은 그러나 자체입수한 시위참가 학생들의 목격진술과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 송영택군(23)의 자술서,당시 현장부근을 찍은 몇장의 사진을 공개하며 송군의 혐의내용과 학생들의 집단폭행사실을 부인했다. 『당시 현장에서 김순경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쿵」하고 쓰러졌고 1분쯤 뒤에 다른 경찰관이 한 「청년」에게 발로 채였다.송군이 그 「청년」일 수는 있지만 김순경의 사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와함께 「한총련」은 그동안 경찰수사와 언론보도내용은 「심각하게 왜곡된 허위사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한총련」의 이날 주장에는 김순경이 왜 쓰러졌는지와 주민들의 목격진술에서 이미드러난 학생들의 집단구타 사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또 「사고직후」 찍었다며 송군이 연좌농성대열 맨앞줄에 앉아있는 사진을 공개했으나 촬영시간이 나타나 있지 않아 송군의 무죄를 입증하는 자료로는 미흡했다. 어쨌든 「한총련」은 이미 「국민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명」한 것처럼 김순경을 사망케 한 「원인제공자」이며 어떠한 이유이든 학생들의 집단폭행은 국민정서상 용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총련」의 이날 발표를 보면서 지난 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때 경찰이 처음에는 『「탁」하고 책상을 치니까 「억」하고 쓰러졌다』고 발표했던 사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생각나게 했다. 「한총련」은 적어도 이번 사태에 관한한 좀더 겸허해져야 한다. 진실로 송군이 결백하고 학생들의 집단폭행이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송군을 자진출두하도록 설득해 진실을 가려야 한다. 경찰의 공정수사운운은 그다음의 문제이다.
  • 반민특위 재판기록 “햇빛”/친일인사 재판내용 17권으로 출반

    ◎박흥식·김원근 등 64명의 영장·조서 등 수록 친일인사를 단죄하기 위해 제헌국회가 구성했던 반민주특별위원회의 수사 및 재판기록이 44년만에 17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도서출판 다락방이 낸 「반민특위 재판기록」은 반민특위에 의해 기소된 친일인사 2백21명 가운데 64명에 대한 조사기록을 담고 있다.이 책은 19 49년 반민특위가 해체된뒤 흩어진 자료들을 다락원이 반민족문제연구소와 손잡고 조금씩 찾아내 한데 모은 것.피의자별로 반민특위 특별검찰부의 범죄보고서,의견서,구속영장,피의자 심문조서·자술서,증인심문과 재판부의 피의자 심문,변호인 심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또 반민특위의 조사를 받은 사람들을 변호하기 위해 당시의 정치인,미군 관계자 등이 낸 진정서와 탄원서 등도 수록됐다. 이 책에 실린 대표적인 인물은 화신재벌총수 박흥식과 중추원참의를 지낸 김원근과 김화준,도지사를 지낸 손영목,경찰출신으로 군수를 지낸 김창영 등이다.이 자료집은 반민특위 활동에서 밝혀진 친일인사의 구체적인 친일행위 내용과 과정,유형뿐아니라 친일행위자들을 옆에서 부추기고 도와준 사람들의 명단도 알려주고 있다. 반민특위는 지난 48년10월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의해 구성됐으나 친일관료를 중용한 이승만정권과 민간 친일파들의 조직적인 반발에 부딪쳐 활동이 흐지부지된뒤 19 49년9월 해산됐다.특위는 이 기간동안 모두 6백82명을 조사,이 가운데 2백21명을 기소했으나 재판이 종결된 것은 38건에 불과하고 그나마 체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집행유예 5명을 포함해 12명 뿐이다. 반민족문제연구소 김봉우소장은 『이 기록은 일제잔제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되살리는데 꼭 필요한 귀중한 1차자료』라면서 『반민특위에 의해 기소됐으나 이번에 실리지 못한 최남선과 이광수 등 다른 주요인물의 기록을 찾아내는 일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다락방대표 김태문씨는 『앞으로 이번에 누락된 기록을 포함해 2백21명 모두의 기록을 이 책에 담을 계획』이라면서 『이 일을 위해서는 정부기록보존소와 총무처서고 등 정부기관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 검사 4명 자술서 받아

    대검은 27일 슬롯머신업계 대부 정덕진씨를 비호해온 것으로 알려졌던 K차장검사등 4명에 대해 자술서를 받아 비호혐의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그러나 조사결과 K차장검사등 4명의 검사가 정씨를 비호해주고 금품을 받은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이 자술서를 받는 형식으로 조사한 검사는 K차장검사와 K춘천지검 부장검사,K서울고검 검사,L대구지검 검사 등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