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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의주 특구/ 양빈 탈세 中 조사說

    양빈(楊斌·39) 어우야(歐亞)그룹 회장은 중국 랴오닝성 주변에서는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 기념궁전 근처 농지에 대한 꽃과 과일 경작권을 갖고 있는 ‘네덜란드의 화훼업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가용 전세기를 이용해 평양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북한 거주 외국인이 전했다.24일자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에 따르면 양 회장은 지난주 평양의 한 호텔 지하에 있는 카지노에서 거액의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 목격됐다고 보도했다.앞서 지난 4월 북한 인민군 창군기념행사에서는 외국 대사및 초청인사들과 나란히 사열대에 서 있었을 정도로 북한 최고위층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양 회장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치고는 이미지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AWSJ에 따르면 양 회장은 지난 7월 탈세 혐의로 중국 당국으로부터 조사받은 사실을 시인했다. 하지만 그는 탈세한 적이 없다며 혐의 내용을 강력 부인했으며 어떤 범죄 사실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양 회장의 해외 도피설과 회장 사임설이 나돌면서 양 회장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탈세 혐의와 관련된 각종 루머로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유로아시아농업지주회사의 주가는 현재 연초 대비 66%나 폭락했다. 홍콩 증시감독당국은 지난주 급기야 회사측이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며 이례적으로 주식 거래를 중지시켰다. 양 회장은 “당장 어우야그룹 회장직을 사임하지는 않겠지만 정치인으로서 회장직을 계속 유지할 수 없으며 언제인가는 사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균미기자
  • 슈뢰더 ‘녹색돌풍’ 타고 재집권

    우파바람이 유럽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실시된 22일 독일 총선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집권 좌파 연정이 승리함으로써 재집권에 성공했다.사민당과 녹색당의 좌파연합은 전체 의석 603석 가운데 306석을 확보했다.반면 보수파인 기독연합(기독민주·기독사회당)과 자민당의 의석은 295석에 머물렀다. ◆슈뢰더의 기사회생-이번 선거는 독일 선거 사상 가장 치열한 박빙의 승부로 기록될 만하다.7월 말만 하더라도 400만명에 이르는 실업자 문제 등으로 사민당은 여론조사에서 기독연합에 9%포인트가량 뒤져 있었다.슈뢰더의 재임은 물건너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8월 발생한 100년 만의 대홍수는 슈뢰더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줬다.슈뢰더는 이를 통해 국가재난을 극복하는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시켰다.곧이어 이슈화된 미국의 이라크 공격 논란을 슈뢰더는 결정적 호재로 활용했다.슈뢰더는 ‘독일만의 길’을 천명하며 이라크전쟁에 반대입장을 분명히함으로써 국민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주목되는 녹색당의 선전-녹색당은 이번선거에서 창당 이래 최고의 지지율을 올리고 최초로 지역구 당선자도 내면서 3위 정당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했다.슈뢰더의 재집권에 결정적 힘을 보탠 셈이다.이에 따라,다른 나라에서도 ‘녹색바람’을 부르는 기폭제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대홍수가 인간이 만든 기상재난이라는 학자들의 주장이 쏟아져 나오고,이라크전 참여 반대 여론이 70∼80%인 상황은 환경과 반전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녹색당에는 지지율을 높이기에 너무 좋은 여건이었다. ◆만만찮은 가시밭길-슈뢰더는 총리직 연임에는 성공했으나,전체적으로 그가 이끄는 사민당 지지율은 98년 총선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슈뢰더로서는 상처를 크게 입은 셈이며,따라서 앞으로 힘 있는 정책추진도 그만큼 어려워지게 됐다.이 때문에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벌써부터 경제개혁의 불투명을 예상하며 주가 하락과 유로화 가치 하락을 예고하고 나섰다.무엇보다 슈뢰더 차기 정부의 선결 과제는 400만명을 넘어선 실업자 문제다. 상황이 이럼에도,독일 정부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쓰기도 쉽지 않은 여건이다.경기침체로 법인세와 소득세 등 세금 수입이 크게 줄어든 반면 복지예산 증가로 지출은 늘어 연방정부와 주정부 재정엔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슈뢰더 총리는/ 위기대처 뛰어난 승부사 과감한 정치적 변신 능력과 승부사 기질이 돋보이는 정치인이다.경기침체와 400만명이 넘는 실업자 문제로 고전하다 금년 여름 100년 만의 대홍수라는 국가적 재난을 맞아 위기대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또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세워 당의 지지율을 급속히 끌어올렸다. 이러한 과감한 승부 기질은 어려운 성장기를 거치며 자수성가하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1944년 태어나자마자 나치 병사였던 아버지를 잃은 슈뢰더는 세탁부였던 어머니 밑에서 4명의 형제와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백화점 점원 등으로 일하며 야간학교에 다녔고 명문 괴팅겐대학 법대를 나와 76년 변호사 자격증을 따냈다. 63년에 사민당에 입당,정치생활을 시작했고 78년 정열적인 활동과 화술로 사민당 청년조직 의장이 됐다. 98년 총선에서 16년간이나 총리를 지낸 헬무트 콜 의원을 물리치고 정권교체를 이뤄냈다.한때 급진 좌파를 자처하고 적군파를 옹호하기도 했지만 집권후 정통 사회민주주의 노선에서 탈피,친기업적 색채가 강한 정책을 펴 우파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 ■녹색당 피셔 외무는 - 스타기질로 인기몰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아슬아슬한 승리 뒤에는 녹색당의 간판 스타인 요시카 피셔(54) 독일 외무장관이 버티고 있었다. 독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인 피셔 장관을 앞세운 녹색당은 의회 진출 마지노선인 5% 득표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사상 최고인 8.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코미디영화의 주인공 ‘미스터 빈’을 연상시키는 외모에 유머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실리주의자라는 평을 듣고 있다.피셔의 강력한 지도력은 한때 반전·환경운동이나 벌이던 녹색당을 98년 총선에서 일약 제3당으로 약진하며 연립정부의 파트너로 급성장시켰다. 피셔는 반전이라는 녹색당의 기본 이념에 맞서 지난 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유고 공습에 독일군 참전을 적극 옹호했고,지난해 마케도니아와 아프가니스탄 파병에도 주도적 역할을 해 당 내부로부터 비판을 받았다.하지만 중동평화 중재에 적극 나서는 등 독일 외교의 국제적 영향력을 증대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푸줏간집 아들로 태어나 고교를 중퇴한 뒤 가출해 택시기사와 공장 노동자,서적 외판원 등을 전전하다 1981년 녹색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김균미기자
  • 토요영화/ 레트로액티브 등

    ▲레트로액티브(MBC 오후11시10분)= 영화로 보는 게임.선택에 따라 내용은 바뀌지만 경로는 늘상 같은 게임처럼,20분전 과거의 상황으로 여러번 돌아가 참극을 막아보려는 범죄심리학자 이야기가 스릴있게 펼쳐진다.인질극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카렌은 텍사스로 떠나던 중 차가 고장나 지나가던 프랭크와 레이엔 부부의 차에 동승한다.우연히 레이엔의 부정을 알게 된 프랭크는 아내를 총으로 쏜다.가까스로 탈출한 카렌은 ‘가속화 연구소’로 도망치고,갑자기 시간역행 장치가 가동해 살인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게 되는데….97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소개돼 인기를 끈 미국의 인디영화. ▲늑대의 후예들(KBS2 오후10시50분)= 시대극의 옷을 입은 프랑스형 블록버스터.1765년 프랑스 남부 산악지대 제보당에 정체불명의 야수가 출현해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루이 15세는 긴급히 밀사를 파견한다.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프롱삭 역은 사무엘 르비앙이 맡았으며 모호크족 전사 마니로 나오는 마크 다카스코스의 액션연기가 돋보인다.프랑스에서는 7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크리스토퍼 강스 감독의 2001년작.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EBS 오후10시)= 자수성가한 보스톤의 백만장자 토마스 크라운(스티브 맥퀸)은 생활에 염증을 느껴 완전범죄를 저지르고 리오로 떠나려 한다.스위스 은행에 300만 달러를 예치한 뒤,서로에 대해 모르는 다섯 사람을 고용해 은행을 턴다.일탈을 통해 자유를 꿈꾸지만,보험수사관과 뜻하지 않은 사랑에 빠진다.산업자본주의에 대한 환멸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담아낸 68년 노만 주이슨 작품.99년 존 맥티어넌 감독이 피어스 브로스넌,르네 루소를 주연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김소연기자 purple@
  • KT·KTF 엔지니어출신 CEO짝꿍 글로벌 공룡통신그룹 뜨나

    KT가 유선사업 중심의 ‘공룡 통신’을 이끄는 ‘큰 집’이라면,KTF는 알짜배기 무선사업을 떠받치는 ‘작은 집’이다. KT 사장에는 엔지니어 출신인 이용경 전 KTF사장이 내정됐고,KTF는 이경준(李敬俊) 전 KT기획실장이 자리를 옮겼다.이 내정자는 KTF에서,이 사장은 KT에서 이동한 것이다. 두 회사는 앞으로 전략적 차원에서 모기업과 자회사간의 사이를 좁혀나갈 것으로 보인다.홍보 및 해외진출사업 등은 공동 보조를 맞춰 시너지 효과를 내기로 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최근 이뤄진 KT-KTF간의 인사에서도 감지됐다.KTF의 홍원표(洪元杓) 전무가 KT의 글로벌사업단장으로 자리를 옮겼고,김기열(金基烈)기획조정실장(상무)이 KT의 인재개발원장으로 임명되는 등 그룹 상무급 인사를 섞어 놓았다. 그러나 두 CEO의 이력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 내정자는 경기고,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미국 버클리대에서 전자공학박사 학위를 받는 등 정통 엔지니어 코스를 밟았다.성격도 치밀해 안정 지향적인 스타일로 평가받는다.따라서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으로지금까지의 틀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IT인맥과 시장·기술 흐름 파악할 글로벌 경영감각도 지닌 인물로 꼽힌다. 그러나 민영 KT를 ‘뛰는 공룡'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마스트 플랜을 짜야돼 향후 경영 구상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KTF 이 사장은 방송통신대학을 나온 특이한 학력을 갖고 있다.말단 9급 우체국 공무원으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다.CEO로 신분이 상승하는 과정에서 그는 학벌이나 출신지역 등 배경보다는 모든 것을 자신의 노력으로 일궈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이후 기술고시도 패스했다. 공통점은 이 내정자와 이 사장이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것이다.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급박하게 돌아가는 통신시장 환경에서 CEO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빠른 상황 판단이 필요하다.다행이 두 사람은 이러한 덕목을 갖추고 있다.따라서 시장과 기술의 변화에 따른 대응에는 보폭을 같이 할 것으로 보인다. ■KT그룹과 계열사 현황/ 자산 23조 자회사 11개 자산 규모 23조원의 KT그룹은 모두 11개의 자회사를 갖고 있다.국내 통신관련 회사 8개에 해외 통신사업을 관장하는 3개사가 더 있다. 명실상부한 ‘통신 그룹’이다.따라서 민영화가 마무리된 이후엔 민간그룹처럼 자회사에 대한 영향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주요 자회사로 KTF(무선통신사업),KT솔루션스(통신시설공사),KT링커스(공중전화 유지·보수 등),KTH(소프트 개발) 등이다.해외 사업체로는 KTKI(북미지역 글로벌통신사업),KTJC(동남아지역 글로벌통신사업) 등이 있다. KTF는 KT그룹의 무선사업을 이끌고 있는 중요한 축이다.1000만명의 가입자를 둔 국내 제2의 무선통신사업자다.한해 매출액은 6조원대다. IMT-2000(차세대 이동통신)사업을 추진중인 KT아이컴은 KTF와의 합병을 추진 중이다.주가만 오르면 합병은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정기홍기자
  • 어린이 환자돕기 40대 식당주인 3년째 선행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자수성가한 40대 식당 주인이 3년째불우한 어린이 환자들을 돕고 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배정철(裵正哲·41)씨는 8일 “언청이 등 불우 어린이 환자들을치료하는데 써달라.”며 5300만원을 서울대병원에 선뜻 내놓았다. 배씨는 지난 99년과 지난해에도 이 병원에 각각 3000만원과 4200만원을 기탁했다. 배씨는 지난 90년부터 동네 노인정과 뇌성마비 어린이 재활원 등에도 꾸준히 음식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배씨가 기탁한 5300만원은 지난 한해동안 식당을 찾은 손님들의 음식값에서 1000원씩 떼내 모은 돈이다.병원측은 “얼굴 기형 어린이 50여명을 치료할 수 있는 돈”이라고 밝혔다. 배씨는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하게 살아 꼭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과 나눠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겼을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전남 장성 출신인 배씨는 초등학교 졸업 직후 상경,식당등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지난 92년 80평 규모에 종업원이 20여명인 일식집을차려 운영해왔다. 이영표기자 tomcat@
  • [사라지는 것을 찾아] 야식 행상

    “메밀묵 사려,찹쌀떠∼억…” 매서운 삭풍이 귀를 에이고 눈보라가 흩날리는 한겨울 밤,인적 끊긴 적막한 골목길 어귀로부터 들려오는 야식 행상의 외침이 정겹게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에 비하면 너나없이 모두가 가난하던 그때,야식 행상의 등짐 속에 든 메밀묵·찹쌀떡·찐빵·당고와 밤엿은 긴 겨울밤 간식으로 구미를 당겼지만 누구나 사먹을 수는 없었다. 생활 수준이 나아져 주택가 슈퍼마다 간식거리가 넘쳐나고 닭발에서 빈대떡·순대까지 온갖 메뉴를 24시간 ‘총알 배달’하는 야식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90년대 들어서면서 야식 행상은 사라져갔고 이젠 거의 자취를 감췄다. 야식 행상을 한 이들중엔 간혹 어른들도 있었지만 주로가난한 집안의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하려는 10대 중·고교생이 대부분이었다.그래서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도 파출소 순경들과 방범대원은 이들이 새벽 1∼2시까지 동네와여인숙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 눈감아 주곤 했다. “흥정이 필요없고 값만 물어보고 안사는 경우도 없는 장사였어요.‘밤(夜)엿에 왜 밤(栗)이 없냐’며 실망하면서도 그냥 돌려보내는 경우는 없었어요” 지금은 자수성가해 통신케이블 설비회사를 세운 김윤형씨(가명·50·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는 지난 70년대초아버지가 갑자기 작고하고 홀어머니와 3형제의 생계가 막연해지자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며 4년동안 야식행상을 했다. “의정부 제일시장에서 찹쌀떡과 찐빵을 10원에 3개씩 사서 한개당 5원에 팔았습니다.많이 파는 날은 몇백원씩 벌기도 했지요” 요즘 찹쌀떡 1개에 300∼400원씩인 것을 감안하고 당시의 소득수준을 생각하면 꽤 짭짤한 수입이었던 셈이다.당시의정부 시내에만 야식 행상이 20∼25명 정도나 됐었다. 이들은 야식이 든 라면상자를 흰색종이로 바르고 끈을 달아 어깨에 매단 채 두툼한 장갑과 귀마개로 추위를 견디며 골목골목을 누볐다. 김씨는 “추운데 고생한다”며 거스름돈을 받지 않거나,“나머지 찹쌀떡 다 사줄테니 그만 집에 들어가 쉬어라”는 어른들의 인정에 혹한의 추위도 배고픔도 잊었었다고회상한다. “외동딸이 원하면 무엇이던 해준다”는 김씨는 “요즘 10대들중 누가 자청해서 칼바람을 견디며 야식을 팔러 밤거리를 헤매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훈훈한 인정이 살아있었던 시절의 야식 행상이 힘들었지만 대견스런 기억으로 남아 자신의 인생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한만교기자 mghann@
  • MBC·KBS “미니시리즈 새해엔 정상 탈환”

    KBS 월·화 미니시리즈,MBC 수·목 미니시리즈가 6개월이 넘도록 각각의 시간대 시청률에서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2001년 드라마국 왕좌를 차지한 SBS의 ‘여인천하’와 ‘피아노’ ‘아름다운 시절’ 등에게 번번이 고배를 마신 상태.이에 두 방송국이 최고의 배우와 최고의 PD를 앞세운 트렌디드라마로 승부수를 띄웠다. MBC는 지난 6개월동안 ‘반달곰 내사랑’‘가을에 만난 남자’ 등 따듯하고 감각있는 미니시리즈를 선보였지만 꼴찌의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에 ‘출생의 비밀’‘신데렐라 컴플렉스’‘자수성가 스토리’를 범벅한 젊은 취향의 드라마를 내놓고 시청자들의반응을 기대하고 있다.1월2일 첫방송되는 미니시리즈 ‘그햇살이 나에게’(수·목 9시 55분)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형 주인공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트렌디 드라마.2002년에 첫방송될 미니시리즈인만큼 건강하고 희망에 찬내용이다. 파닥파닥 갓 잡아올린 망둥어처럼 싱싱한 주인공 연우(김소연)가 수협 중개인으로 출발해 쇼핑전문채널의 쇼 호스트로성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원도 속초의 어시장에서 일하는 연우는 비극적인 ‘출생’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삶을 개척하는 악바리.비록 고졸 출신이지만 야간대학을 진학해 전문경영인이 되는 꿈을안고 있다. 다혈질 변호사 동석(류시원)은 음으로 양으로 연우를 돕는 왕자님 역할이다. 촬영장에서 만난 김소연은 아주 신이 나 있었다.데뷔이후처음 맡는 주연일뿐만 아니라 역할도 아주 마음에 든단다. 그는 “밝고 명랑한 역할을 하고 싶었다”면서 “‘이브의모든 것’에서 시청자들에게 강하게 새겨진 악녀 이미지를벗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MBC 주말 드라마인 ‘엄마야 누나야’ 이후 여러편의 드라마 섭외가 있었지만 강하고 못된 이미지 변신을 위해 9개월정도 푹 쉬었다.쉬는 동안에는 운전면허를 따고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여행 도중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5㎏쯤 빠졌단다.‘그 햇살이 나에게’의 김사현 PD는 “쇼 호스트는판매실적에 따라 명암이 갈리는 드라마적 요소가 있는 직업”이라면서 “따라서 다른 전문직보다 ‘스타탄생’이 나타나기 쉽다”고 설명했다. 처음으로 이성을 느끼고 괜히 괴롭혔던 초등학교 때 짝꿍.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편지를 쓰게 만들었던 하얀 얼굴의이웃 고등학생.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가져다준 대학교때의 연인. 이 중에 첫사랑을 고르라면 사람들은 누구를 선택할까?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가을정취를 흠뻑 녹인 아름다운 화면으로 극찬을 받았던 ‘가을동화’의 윤석호PD가 첫사랑이라는 영원한 주제를 들고KBS 미니시리즈 ‘겨울연가’(월·화 오후 9시50분)로 돌아온다.저주같은 처절한 첫사랑을 주제로 눈부신 남이섬의 정취를 담을 예정이다. 배용준,최지우,박용하,박솔미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우선 시청자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첫 방영일은 1월 7일.고등학생인 유진(최지우)과 준상(배용준)은 서로 풋풋한 사랑을 키워나가는 사이이다.그러나 준상이 사고로 죽게 되고 유진은 그를 서서히 잊는다.10년 뒤.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상혁(박용하)과 공연기획사를만들어 일하던 유진의 앞에 준상과 외모가 흡사한 민형(배용준)이 나타난다.죽은 준상의 이복동생인 민형의 등장으로 서로 물고물리는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최지우는 “유진은 착하기만 한 역할이 아니라 생기발랄한면모가 있다”면서 “그동안 연기한 역할 중에서 가장 실제내 성격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현재 KBS 월·화 미니시리즈는 1년 넘게 부끄러울 정도로낮은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어 윤PD에 거는 기대가 크다 촬영지를 관광명소로 만들고 원빈과 송혜교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가을동화’의 힘이 ‘겨울연가’에서 재현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윤석호PD는 “한국의 은빛 겨울을 동화처럼 깨끗하게 표현할 것”이라면서 “첫사랑이 행복한 결말은 아니지만 모든사람에게 소중하게 기억되는 것처럼 조금은 우울하고 그래서더욱 아름다운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송하기자 songha@
  • 日 이색 TV프로 ‘눈길’

    일본에서 말만 잘하면 돈을 타가는 프로그램이 인기다.퀴즈를 풀고 최고 1,000만엔(1억원)을 타는 인기 퀴즈 프로그램은 있지만 출연자의 말 솜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프로그램은 처음이다. 니혼(日本)TV가 지난 10월 초순부터 토요일 심야시간대(새벽 0시50분)에 1시간 가량 방송하는 ‘돈의 호랑이’라는프로그램은 창업계획을 잘 설명하는 출연자에게 사업자금을대준다. 설명을 잘했는가의 여부는 자수성가한 사업가 5명이 평가한다. 소자본 사업계획을 가진 출연자들의 평균 희망액수는 1,000만엔 안팎이다. 지난 8일에는 동성애자라고 주장하는 20대 청년이 사업자금 1,000만엔을 타갔다. 그의 사업계획은 인터넷을 이용한동성애자 만남사이트를 주식회사 형태로 세우는 것이었다. 반면 지난 1일에는 사전 로비가 발각돼 돈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20대 남성인 출연자는 인터넷 회사 합병사업을하겠다며 사업자금을 신청했다.그러나 녹화 전날 패널들에게 ‘잘 봐달라’고 전화청탁을 한 사실을 드러나 한푼도받지 못했다. 전경하기자 lark3@
  • “이국땅에 있어도 마음만은 고향에”

    “몸은 비록 먼 이국땅에 있어도 마음만은 언제나 고국의고향발전을 염원했습니다.” 경북 군위 출신으로 재일 기업가로 자수성가한 최태해(崔泰海·78·소보면)씨가 지난 30여년간 자신의 고향발전을 위해 기금 30억여원을 전달해온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최씨는 이같은 공로로 12일 열린 군위군민체육대회에서 자랑스런 군민상을 받았다. 최씨의 고향사랑 출발은 지난 72년 군위경찰서 소보지서 신축을 위한 부지 매입 및 공사비로 현금 2,800만원을 내놓은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이 돈은 논 45마지기를 살 수있는 거액이었다. 73년과 74년에는 소보면사무소 및 지역 송원초등학교 건물신축비로 1억7,000만원과 2억7,000만원을 내놓았다.이어 90년 군위군청사 신축 부지 매입비 1억 4,000만원,93년 소보면사무소 증축 공사비 1억3,000만원을 쾌척하는 등 지금까지모두 30억원의 거액을 지역발전에 보탰다. 최씨는 “오늘 내 생애에서 가장 영광스런 상을 받았다”며 “앞으로도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최씨는 15세때인 37년 일본으로 건너가 탄광과 막노동판을전전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으며 55년 대형 전기공사 전문업체인 다카야마(高山)건설㈜를 세워 지금은 종업원 200여명에 연간매출액 순위 1,100번째 안에 드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최씨는 이런 공로로 고국으로부터 83년 내무부장관상을 받았으며 이어 84년과 92년 대통령표창,89년 국민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
  • 고향 제주에 희망 심은 재일교포

    한 재일동포가 제주도에 쾌척한 사재 4억원이 심장병과만성신부전증 환자 6,000여명에게 희망과 용기의 씨앗이되고 있다. 22일 도 관계자들에 따르면 남제주군 대정읍 출신인 고재천(55·일본 오사카 거주)씨는 지난 89·90년 고향을 방문,“제주를 심장병과 신부전증 환자가 없는 곳으로 만들고싶다”며 4억원의 성금을 제주도에 기탁했다. 도는 이 돈을 은행에 예치,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어린이의 경우 시장·군수의 추천을 받아 검사비와 수술비 중 본인 부담액 전체와 교통비 20만원,만성신부전증 환자의 경우 혈액및 복막 투석자중 의료보호 1종환자에게 매월 5만원씩 지원했다. 그 결과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심장병환자 168명에게 2억 4,800만원,만성신부전증환자 5,919명에게 2억5,400만원등 모두 6,087명에게 5억 200만원을 지원해 환자와 가족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줬다. 김씨가 기탁한 성금은 이자수입으로 아직 1억4,754만원이남아있다. 제주에서 3살때 어머니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김씨는온갖 고생을 하다 자수성가해 제조업체인 생도(生島)산업㈜을 경영하고 있으며,지난 86년부터 ▲학생장학금 8억8,000만원 ▲제주도 역사만화 제작비 1억5,000만원 등 모두 16억원의 각종 성금을고향발전을 위해 쾌척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2)삼천리사와 최정희

    ‘삼천리’사 김동환에게 찾아갔을 무렵의 최정희는 매우어려운 처지였다.“저쪽에서 인적 사항에 대해서 물어올 때어떻게 대답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리 생활이 어렵더라도 처녀 행세를 하면서까지 직업을 구하고 싶지는 않았다. 법률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이미 남의 아내로서 임신까지 하고 있는 사실을,남을 속이기 위해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서영은,‘생의 태풍 속을 무구한 노(櫓)로’)는 표현 그대로의 심경이었다.연보마다 틀리기에 바로잡기가 쉽지 않은최정희의 젊은 시절은 중앙보육학교 졸업 후 경남 함안유치원에 잠시 근무,곧 도일(1929),도쿄에서 유치원(三河)에 근무하면서 유치진·김동원이 주축이었던 ‘학생극예술좌’에참여,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김유영과의 사랑과 결혼으로 점철된다. 1907년 선산에서 태어난 김유영은 대구고교(현 경북고)에서 서울 보성고교로 전학,졸업(1925) 후 ‘조선영화예술협회’ 조직에 참여하여 활동 중 영화촬영소와 기술 견학을위해 1929년 도일,귀국하여 최정희와 결혼한 것은 1930년 3월 5일이었다.부부관계와 경제적 여건이 다 나빴던 최정희는 1931년 9월부터 ‘삼천리’사에 근무하면서 한국문단의귀염둥이로 부상했지만 그 운명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당장 아들 익조(益祚,1932.3.5∼1974.9.27)를 낳고자 근무 6개월만에 퇴사,출산 석 달 뒤 재입사,또 퇴사를 거듭하면서카프 제 2차 검거로 전주형무소 투옥(1934),조선일보 출판부를 비롯한 잡지사를 전전하다가 1938년에 ‘삼천리’에재입사했다. 최정희는 이 무렵의 참담했던 생활 속에서도 낙천성으로많은 문인들과 문학지의 기자라는 신분으로 폭넓은 교우관계를 가졌는데,역시 그 중심에는 파인 김동환이 위치한다. 아명이 삼룡(三龍)이었던 김동환은 ‘삼국지’의 패장(覇將) 유비(劉備)가 파촉(巴蜀)에서 대망을 이뤘다는 고사에서“인세(人世)의 고행이란 고행의 맨 밑바닥 길을 순교자와같은 걸음으로 묵묵히 파 들어가 보자”(‘독자 제현에 보내는 편지’)는 취의를 가진 ‘파인’을 아호로 삼았다.그는 고행자처럼 독학으로 자수성가,문화분야 뿐이 아니라 사회부의 명기자로 나도향·김팔봉과함께 이름을 떨치며 언론자유를 위한 철필(鐵筆)구락부,노동운동 현장 취재 등에투신했다.1929년 9월 12일∼10월 31일간 경복궁에서 ‘조선박람회’를 개최할 때 총독부는 공개적으로 기자들에게 2천5백원(당시 쌀 한가마에 13원이었다)이란 촌지(寸志)가 아닌 거지(巨志)를 분배했는데, 여기에다 도쿄 관광에 안 간대신 현금으로 챙긴 돈으로 파인은 ‘삼천리’를 창간했다. 아호 ‘파인’에 걸맞게 고행의 인생행로를 선택했던 그가홀연히 “파촉 정신은 이제는 싫어졌습니다”면서 “내 몸에 정열이 있으니,이 정열이 끄는 대로 자꾸자꾸 먼 곳으로훨훨 날고 싶습니다”(위와 같은 글)는 구실을 달아 ‘취공(鷲公)’으로 호를 바꾼 게 1937년,즉 중일전쟁이 나던 해정초였다. 이어 1939년 11월 10일 총독부령 제19호 민사령(民事令) 개정으로 촉발된 ‘창씨개명’ 때 김동환은 강릉김씨 문중이 결정한 가나에(金江)란 성 대신, 시로야마(白山靑樹, 태백·소백의 푸른나무란 뜻)로 정했는데 그 속내는 이해됨직하다.‘삼천리’는 사세가 어려워져 ‘삼천리문학’(1938년에 2집 발간)은 아예 정간했고,사업 확장을 위해 주식회사로의 전환을 시도(1940)했으나 성사시키지 못했다(정진석 ‘언론인 파인 김동환’).그런 와중에도 최정희에게 위로차 휴가를 줬을 테고,그녀는 내키지 않지만 석왕사(釋王寺)로 떠나,여관에서 파인에게 편지를 보낸 건 1939년인 것 같다.“피서라고 하오나 제 마음은 도무지 한가하지 못합니다.…종종 좋은 자연조차 잊어버리고 멍하니 앉아서 비오는 밖을 내다보는 일이 있습니다”는 구절은 최정희의 착잡한 심경이 표상된다.인정 후한 파인은 우선 최정희에게 두둑한 여비도 못 줘서 보내 놓고는 곧 돈을 마련해부치마고 약속했는데,“이렇게 비가 와서는 오래 못 있을것” 같기에 “부쳐 주신다던 것은 조금도 염려 말아 주십시오”,“금강산이랑 부전고원(赴戰高原)이랑 죄다 보기로했는데 틀린 것 같습니다”는 언급이 저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문맥으로 보면 예사롭지 않은 낌새는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둘 사이가 밀착한 것 같지는 않는데,이런 미묘한 감정적인 교류는 1940년 12월 진주에서 파인이 최정희에게 보낸엽서에도 그대로 드러난다.“촉석루도 서장대도 논개사(論介祀)도 일순(一巡)하고 부윤(府尹·현 시장)의 안내로 지금 여사(旅舍)에 앉은 자리외다.옛 고적이 어떻게도 많고,또 마음을 흔드는지요”란 구절에 담고 싶었던 속마음은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오른쪽에 남강을 끼고 왼쪽 촉석루가바라보이는 풍경은 비록 대일본제국이 만든 2전짜리 엽서일망정 망국의 한을 품기에 모자람이 없다. 더구나 파인의 발길은 단순한 소일이 아니었다.1939년 10월 29일 오전 10시40분 부민관(府民館·현 서울시의회 청사) 중강당에서 결성된 ‘조선문인협회’는 이듬해 12월 ‘총후(銃後)사상운동을 위한 전선(全鮮)순회강연회’를 열기로 했다.제1반(경부선)은 파인·유진오 등이 참가,부산(12월 8일),마산(9일),진주(10일),대구(11일),청주(12일),공주(13일)를 순회했고,제2반(호남선)은 정인섭·이헌구 등,제3반(경의선)은 백철·최재서 등,제4반(함경선)은 이효석·함대훈 등이 참여했다(임종국 ‘친일문학론’). 김동환의 시국강연은 여러 정황으로 볼때 선동적이기보다는 인정미에 초점을 맞춘 대중위무(慰撫) 형식이었다는 게정평이었지만,‘삼천리’를 ‘대동아(大東亞)’로 개제(1942년 3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하는 등 잡지와 단체의 역할때문에 개인적인 미덕이 평가절하 당했다.이 무렵 파인은안서 김억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울에 빈 객사가 많으니 1인의 괴테,1인의 소크라테스가 나와서 우리 젊은이 갈길 가르쳐 좋을 때 아니리까.”(‘삼천리’ 1938.10)라는 내면적인 갈등을 담아내고 있는데,문학인의 내면적인 고뇌가 일상성으로부터의 일탈을 유도하는 예는 허다한지라 최정희와의관계도 이런 시대적인 분위기의 점강법을 탄 것으로 보인다.이에 비하면 최정희는 매우 낙관적이다. 그녀는 처음 ‘삼천리’에 입사(1931)했을 때 사무실엔 전화기가 없어서 원고 청탁은 직접 방문이나 편지로 이뤄졌다고 회고하면서 몇몇 재미있는 사건을 기록으로 남겼다(‘조광·삼천리 시절’). 바로 이 말을 뒷받침 주는 글들이 박태원, 이태준의편지이다.둘 다 정동 ‘중앙방송국 최정희 선생’으로 보낸것인데, 1940년 5월부터 그녀는 방송국 제2방송부에서 일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삼천리’원고청탁인가 하고 의아할 것이지만,여전히 파인의 일을 함께 했던 것으로보인다. 회고록에서 최정희는 이태준과의 관계를 맨 먼저꺼낸다. 최정희는 입사(1931) 직후 이태준에게 소설을 청탁(단편‘불우 선생’이 ‘삼천리’ 1932.4월호에 게재)한 이후 여러차례 편지 왕래가 있었음이 드러난다.이태준은 그녀에게 성북동 248번지(지금의 상허문학관.1933년 이곳으로 이사,1943년 철원 안협으로 낙향했다가 8·15후 상경하여 이듬해 여름 월북할 때까지 거주)에서 최정희에게 편지를 썼는데, “언문소설 꾸준히 쓰셔야 합니다”란 끝구절이 인상적이다. 최정희와 이태준의 친밀성을 알려주는 임옥인의 편지를 이대목에서 함께 읽는 게 좋을 듯하다. 그녀가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는 주소가 세 가지로 나뉜다.‘신당동 304의 152’와,삼천리사,그리고 ‘동숭동 5-1’인데,맨 뒤의 것은 1949년 1월 20일∼1957년의 최정희 거주지이기에 해방 후 편지들이다.문제는 앞의 두 주소인데,여러 정황으로 볼 때 최정희가 방송국과 삼천리사 일을 동시에 추진했음을 알 수 있다.또 “언젠가 원산여관(바로 파인에게 편지를 썼던)에서만나 뵈온 후 글이라곤 처음으로 올리게”되었다는 구절로봐서 이 편지가 1940년 4월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임옥인은 함북 길주 출신으로 나라여고사(奈良女高師,여자사범대학) 시절부터 습작을 하면서 ‘문장’지로 등단하고싶다고 보챘는데,최정희는 흔연히 이태준에게 소개해 줄 정도로 가까웠으며,그 효험도 있었던 것으로 편지에 드러난다.물론 이태준은 작품선정이 까다로워 고쳐 쓰게 했는데,특이한 것은 3회나 추천을 거치도록 등단 관문이 까다로웠다는 점이다.박태원과 최정희의 옥상 노래자랑 일화는 너무유명하다.하도 노래 잘 한다고 뽐내기에 내기를 먼저 신청한 쪽은 최정희였다.출근 시간에 맞춰 나타난 박태원과 옥상에 올라가 서로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하기를 몇 시간,드디어 남자 쪽이 패배를 자인하여 다과점에서 푸딩을 샀다는회상기를 연상하면서 그의 편지를 읽으면 더 운치가 있을것이다. 박태원은 교북동에 살다가 바로 1940년 ‘돈암동 487-22’에다 대지를 사 집을 지어 이사했기에 미처 원고를 쓸 겨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6·25때 월북,학창시절의 친구 정인택의 미망인과 재혼(1955),중풍으로 전신불수와 실명 사태(1977)에서 대작 ‘갑오농민전쟁’을 남긴 그는 한국의밀턴이란 칭송을 받을만 하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美 이민 100년사 다큐 만든다

    오는 2003년은 한국인들이 미국에 이민을 시작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 지난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필요한 노무자로 미국땅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이제 미국내 빠지지 않는 민족으로 올라선 한국인들은 이민 100주년을 맞아 지난 과거를돌아보고 현재 한국인들의 모습을 바로보자는 취지에서 대규모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념사업은 한인들이 가장 먼저 발을 밟았던 역사를 지닌하와이 한인들이 주축이 돼 이뤄지고 있다. 김창원 전 하와이 주립대 이사장(72)이 지휘하는미주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지난 93년 90주년 기념행사 진행을 경험으로 오는 2003년 1월 미국 전역에서행해질 기념사업을 위해 이미 올 1월부터 갖가지 행사준비와 모금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다.김 이사장 역시 미국이민뒤 평사원에서 RM토월사 대표이사까지 오른 자수성가교포. 기념사업 종류만 39가지인 내용 가운데에는 이민 100주년기념비, 무명애국지사 기념비 건립 등 사적 사업에서부터이민사 제작, 이민 다큐멘터리 영화제작,각종 축제행사 및공연,세미나,워크숍,체육행사 등 다양한 행사가 예정돼있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는 미 공영방송인 PBS가 미 전역에 방송을 예정한 상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과 미국간 놓인 차이로 인해 한국인들이 겪는 아픔을 덜고자 움직이겠다는 미주한인 재단설립이다. 총 예산 600만달러 가운데 260만달러를 할애할이 재단은 한국인들이 미국 정치·경제 등 심층부를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이해시키는데 앞장선다는 운영계획을 잡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역시 예산문제.하와이 주정부가 전례없이 25만달러를 주예산에서 기부했지만 정작 한국정부는 아직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반면 초기 이민생활고난 속에서도 1달러 임금의 3분의 1을 독립자금으로 내던뜻을 기려 미 전역 교포들 사이에서는 3달러 내기 운동이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 3·26 개각/ 장관(급)·청와대수석 14명 프로필

    ■신건 국정원장. 164㎝의 단신이지만 강한 추진력과 칼같은 기질이 있어수사를 맡으면 끝을 보는 특수부 검사 출신.외모와 달리소탈해 부하직원을 편하게 해주는 장점도 갖고 있다.‘이철희·장영자 사기사건’을 담당했다.97년 DJ진영에 합류,98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을 지냈고 개각 때마다 법무장관 후보에 올랐다.김영삼(金泳三) 정권 초기 법무차관까지올랐으나 슬롯머신 대부인 정덕진씨와의 친분 시비로 중도하차했다.부인 한수희(韓受熹·59)씨와 1남3녀. ■임동원 통일. 치밀하고 깔끔한 업무처리 능력 때문에 육군소장을 지낸군인출신의 체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을 듣는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통일부 장관,국가정보원장 등 외교·안보·통일분야의 3박자를 두루 갖췄다. 95년 아태평화재단에 합류,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 및 3단계 통일론 등을 구체화했고 대북 포괄접근구상을 기획·집행했다. 국민의 정부 첫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부인 양창균(梁昌均·62)씨와 3남. ■한승수 외교통상. 치밀하면서도 원만한 성품의 국제경제통.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국제경제를 강의한 3선 의원이기도 하다.공사가 분명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외모에 비해 시원시원하고 통이 커 ‘작은 거인’이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주미 대사,청와대비서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현 미 공화당 행정부 인맥을 잘 아는 ‘미국통’으로평가받고 있다.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처조카사위이며 부인 홍소자(洪昭子·61)씨와 1남1녀. ■김동신 국방. 잔정이 없어 친화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아이디어가 풍부한 군내의 대표적인 작전 및 전략통.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해 대미 관계에 밝으며 부시 미 행정부 고위직에기용된 군출신 인사들과도 교분이 두텁다. 지난 96년 강릉 무장간첩 침투 당시 작전을 지휘하면서능력을 인정받았다.호남 출신 첫 육군참모총장을 기록했으나 96년 ‘북풍 사건’ 연루설 및 군 인사잡음이 화근이돼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부인 이혜정(李惠貞·57)씨와 1남1녀. ■이근식 행정자치. 조용하고 깔끔하며,다정다감한 성격의 정통 행정관료 출신이다.경남고와 서울법대를 나와 행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한 뒤 내무부와 총리실,청와대 등주요 부처를 두루 거쳐 행정경험이 풍부하다.꼼꼼한 스타일로 업무공백이 거의 없으며,원만한 대인관계를 바탕으로조직운영도 매끄러운 편. 부드러운 언행으로 실무를 이끄는 능력은 탁월하지만,소신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있다.부인 허위순(許渭順·53)씨와 3녀. ■김영환 과학기술. 노동운동가에서 치과의사, 시인, 국회의원,장관….곱상한외모와 달리 다양한 삶의 굴곡을 헤쳐 온 인물이다.94년펴낸 시집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는 70∼80년대학생운동권을 조망하는 내용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민주당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이 이끌던 재야단체 ‘통일시대국민회의’에서 활동하다 95년 6·27 지방선거 때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했다.기획력과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부인 전은주(全銀珠·42)씨와 1남2녀. ■장재식 산업자원. 지난 1월 민주당에서 자민련으로 이적한 여권내 대표적인경제통. 미 하버드대 국제 조세과정을 수료하고 국세청에서 근무한 경력이 말해주듯 특히 조세정책에 밝다.14대 총선 때 등원에 성공한 뒤 의정활동을 하면서 서울대와 한양대 등에서 세법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바둑실력(아마 7단)이 국회의원 가운데 최고수급에 속한다.소탈하지만 고집이세다는 평을 듣는다.부인 최우숙(崔又淑·64)씨와 2남1녀. ■양승택 정보통신. 지난 96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시절 CDMA(코드분할다중접속)이동통신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주역이다.TDX(전전자 교환기) 개발단장으로 전화 현대화의새 지평을 열기도 했다. 부드럽고 소탈한 성격의 테크노크라트라는 점에서 조직장악력은 미지수.박지원(朴智元) 신임 청와대정책기획수석과 가까운 게 발탁의 또다른 배경으로 대두된다.부인 황영자(黃英子·61)씨와 1녀. ■오장섭 건설교통. 건설사업가 출신의 3선 의원으로 14대 때 민자당 의원으로 등원했다.15대 총선때 신한국당 후보로 나섰다가 자민련 후보였던 조종석(趙鍾奭) 전 의원에게 패했으나 재선거에서 조 전 의원을 꺾은 뒤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겼다.원내총무,사무총장을 맡으면서 당의 안정에 크게 기여한 공로가 인정됐다.외유내강형으로 추진력과 협상력이 뛰어나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의 신임이 두텁다.부인 인계선(印桂善·51)씨와 2남1녀. ■정우택 해양수산.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자민련을 대표하는 경제통. 단정한외모에 논리적인 언변을 갖춰 TV 토론에 자주 얼굴을 내비쳤다.지난 2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미국 방문때 수행,입각이 점쳐졌다.14대 총선 때 통일국민당 후보로 출마,낙선한 뒤 15대에서 자민련 당적으로 국회에 입성했다.지난 79년 김영삼(金泳三) 신민당 총재가 직무정지 가처분을받았을 때 총재직무대행을 맡았던 5선의 정운갑(鄭雲甲)씨가 부친이다.부인 이옥배(李玉培·44)씨와 2남. ■김덕배 中企특위위원장. 활달하면서도 보스 기질을 지닌 의리파이다. 자수성가형사업가 출신으로 한국청년회의소(JC) 회장과 민주당 외곽조직인 ‘연청’의 회장직을 맡아 왔다.경기도 정무부지사재직때 구속된 임창열(林昌烈) 지사의 공백을 메워 실무능력과 의리를 인정받았다.현직만 14개에이를 만큼 활동반경이 넓다.연청회장으로 뛰어난 조직관리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김홍일(金弘一) 의원 및 동교동계 의원들과도가깝다.부인 유인숙(兪仁淑·42)씨와 2녀. ■나승포 국무조정실장. 행시 10회 합격후 전남 함평군수와 여수시장,목포시장,전남 행정부지사 등을 역임한 ‘지방 행정통’.원만한 성품에 시의성 있고 정확한 정책결정과 강력한 추진력이 장점으로 꼽히나 중앙무대에서의 지명도는 낮은 편이다.호탕한성격 덕에 직원들 사이에서는 ‘나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지난 95년 7월부터 3년10개월동안 전남 행정부지사를맡아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최장수 기록을 세우기도.부인 송순자(宋順子·58)씨와 3남. ■박지원 정책기획수석. ‘김심(金心)’을 누구보다 잘 헤아린다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핵심측근 가운데 한명이다.발군의 부지런함과치밀함,뛰어난 화술로 야당시절부터 ‘명대변인’이라는평을 얻었다.한빛은행 불법대출 의혹사건때 야당의 집중공세로 문화관광부장관에서 물러났으나 그 뒤에도 여론 수집및 전달의 역할을 해왔다. 이번 청와대 재입성으로 여전히김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보여줬다. 부인 이선자(李善子·58)씨와 2녀. ■이태복 복지노동수석. 시장 지게꾼에서 노동운동가,신문사 발행인에서 청와대수석으로 탈바꿈했다.국민대 2학년 때 반유신 독재투쟁으로제적된 뒤 서울 용산시장에서 지게꾼 생활을 하다 노동운동에 투신했다.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인‘노동의 역사’등 20여권의 노동저서를 펴냈다.‘불의에는 비타협적이나 소박한 노동자’라는 게 동료들의 평.88년 특별사면된 뒤 노동일보를 창간했고 뒤늦게 심복자(沈福子·44)씨와 결혼했으나 자녀는 없다.
  • [기고] 미국의 책임 있는 富

    미국에는 한국의 상속세에 해당하는 유산세(estate tax)가있다.세율 높기로 악명이 높아서 부자들은 유산세를 피하고자,그리고 아예 유산세를 폐지하려고 갖은 노력을 해왔다.그러나 제정된 지 85년이 된 지금까지 존속하면서 미국의 소득재분배에 기여하고 있다.연방대법관을 지낸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유산세를 옹호해 “우리는 민주적인 사회를 갖든가 아니면 소수의 손에 집중된 커다란 부를 갖든가 할 수 있다.이양자를 다 가질 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미국은 유럽의 세습적 귀족주의를 피해온 사람들이 설립한나라다.그래서 어떤 유의 것이든 귀족주의와 세습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미국의 면면한 정신이다.이런 정신은 자수성가한 부자들 자신에게도 이어진다.예컨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부에다가 투자가로 유명한 워린 버펫은 “유산세가없다면 사실상 부의 귀족주의를 갖게 되는데,이는 능력이 아니라 세습에 의해 국가자원을 지휘하는 자격을 전수하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유산세 폐지를 막는 운동을 주도하는 빌 게이츠 1세(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비슷한 뜻을 이렇게 표현했다.“몇 명의 경주자가 이미 100야드 앞에 나가 있는 그런 경주가 아니라 모든 경주가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는사회를 우리는 추구해야 한다.” 미국의 유산세는 재산가 사망으로 소유권이 바뀔 때 유산의액수에 따라 매기는 연방정부의 세금이다. 일명 사망세(death tax)라고도 부르는 이 세금은 일정한 액수 이상에 누진적으로 적용된다.현재 세금을 부과하는 하한선은 67만5,000달러인데 법에 따라 2006년에는 그 하한선을 100만달러로 인상하게 되어 있다. 유산세로 거두어들이는 액수는 연간 300억달러 정도다.미국연간 사망자의 약 2%인 4만8,000명만이 그 대상이 된다. 더욱이 이 가운데 500만달러 이상의 유산을 남기는 약 4,000명이 총액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부담한다고 한다.즉유산세 징수대상은 그 수가 아주 적을 뿐만 아니라 대상 가운데 극히 일부가 대부분의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유산세를 2009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최근 제안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수혜자가 될 부자들이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부시 행정부로서는 당혹스런 일이다.그렇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부자들,스스로 계속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바로 록펠러 일가,빌 게이츠 1세,워린 버펫,조지 소로스,폴 뉴먼 등 미국에서도 내로라하는 굵직굵직한 억만장자나 돈 많은 유명인사들이다. 이들은 ‘책임 있는 부’(Responsible Wealth)라는 단체의회원들이다.이들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상위 5%에 속하는사람들이다.이 단체는 ①공정한 세금 ②생활급 ③기업의 사회책임 ④부의 확대를 추구한다.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이 단체가 벌이는 가장 주요한 활동은 유산세 폐지정책 반대운동이다.유산세가 폐지되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약자의 복지가 더 취약해지고,부자의 사회헌금이 줄어들고,미국이 민주국가가 아니라 부자들의 귀족국가로 전락한다고 생각한다.제 이익보다는 사회·국가의 이익을 위한 부자들의 책임있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우리 부자들도 이런 모습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효성 성균관대 교수 현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교수
  • 김홍섭 인천중구청장 선행 화제

    김홍섭(金洪燮) 인천 중구청장은 지난해 9월부터 봉급을 단 한푼도가져가지 않고 있다. 4개월간 봉급 1,200여만원을 사회복지법인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인천지회에 지정기탁해서다.이 단체는 성금을 영세민가정,소년소녀가장,결식아동 등 100여가구의 특별생계비로 지원하고 있다. 판공비 또한 대체로 주민과 관련된 일에 쓰는데다 일일이 공개하고있어 김 구청장이 공직에 있는 동안 돈을 집에 가져갈 일은 없을 것같다. 김 구청장은 부하직원들에게 이러한 일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지시,최근에야 수혜자들을 통해 선행이 알려지게 됐다.김 구청장이 이같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하게 된 것은 지난해 6월 보궐선거당시 ‘월급 모두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주민들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김 구청장은 취임 후에도 소외계층 복지향상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다.김 구청장의 이같은 처신에 대해 주변사람들은 어려운 환경을거쳐 자수성가한 것이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49년 중구 영종도에서 태어난 김 구청장은 넉넉치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만을 졸업한 후 가마니공장 운영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8년전부터 월미도에서 ‘마이랜드’란 놀이기구를 운영,상당한 재산을 모았다.지난해 방송통신고 3학년에 편입한 데 이어 올해 경기대경영학과에 합격한 만학도이기도 하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탁신 당수 누구

    부패혐의에도 불구하고 차기 태국 총리로 결정된 타이 락 타이당(TRT)의 탁신 시나왓(51) 당수는 자수성가한 태국 최대의 통신재벌.카리스마적 이미지와 개혁의지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80년대 중반 경찰간부로 출발,소규모 자본으로 ‘신 컴퓨터통신회사’를 창업했다.경찰 재직시절 인맥을 이용해 회사를 ‘신그룹’으로발전시켰다.신그룹은 그의 뛰어난 수완으로 이동전화,컴퓨터 등 정보통신업계의 주력기업으로 성장했다. 94년 잠롱 스리무앙 전 방콕시장의 팔랑탐당에 가담하면서 정계에진출했다.외무장관·부총리 등을 지냈으나 97년 금융위기 한파로 현연정정권이 들어서면서 물러났다. 98년 정치개혁을 표방하는 TRT를 창당,최근 총리후보 사임 압력에도“물러나기 전 태국의 부패·마약·가난을 향해 방아쇠를 먼저 당길것”이라는 단호한 결의를 보였다. 그러나 농가당 부채 100만바트(3,000만원) 지원 등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내걸었다는 지적도 받는다. 지난해 연말 부총리 취임 재산신고 때 고의로 재산을 누락시킨 판정을 받아 헌법재판소가다음 달 최종 판결을 내리면 5년간 공직 취임이 금지된다. 이진아기자 jlee@
  • 泰총선 野TRT당 승리

    [방콕 연합] 6일 치러진 태국 하원총선에서 야당인 타이 락타이 당(TRT)이 최다 의석을 차지,차기 연정구성에 나서게 됐다.방송국과 여론조사기관들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정보통신재벌인 탁신 시나왓 당수가 이끄는 TRT가 전체 500 의석 가운데 209∼241석을 차지한 반면 집권 민주당은 107∼118석을 얻는 데 그칠 것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군소 정당들은 신열망당이 40석으로 3위를 차지하고 찻 타이당,찻 파타나당 순으로 나타났다.탁신 당수는 여론조사 결과 이후 “임무완수를 위해 혼신을 바칠 것”이라고 다짐한 뒤 안정다수인 320석 확보를 위해 신열망당 등과 연정구성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안 릭파이 총리의 민주당은 “야당이 될 준비가 돼 있다”고 총선패배를 시인했다. 타이 락 타이당의 이번 승리는 새로운 돌파구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청렴과 정직으로 이름난 추안 총리가 경제회복에 실패했다는 이유로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 반면 자수성가로 재벌이 된 탁신 당수는 비교적 참신한 이미지와 함께 개혁을 표방,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불법선거 운동으로 많게는 100개 선거구에서 당선무효 판정이 예상돼 사태는 아직 유동적이다.태국선거위원회는 7일 “여러 선거구에서 개표부정 주장이 제기된데다 부적절한 투표용지가 발견돼 공식 개표결과를 언제 발표할지 알 수 없다”고 당초 7일 오전으로 예상됐던 개표결과 발표를 무기한 연기했다. 탁신 당수는 국가부패방지위원회(NCCC)로부터 재산신고 누락판정을받아 헌법재판소에서 확정판결이 나면 태국 헌법에 따라 5년간 공직취임이 금지된다.이 경우 그는 차기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할 처지다.
  • 포커스 투데이/ 레바논 새 총리 하리리

    [베이루트 AFP DPA 연합] 레바논의 거부(巨富)이자 3차례 총리를 역임한 라피그 하리리가 지난 8,9월 총선 압승의 여세를 몰아 또다시총리직에 오르게 됐다. 128명 정원의 레바논 국회의원들은 23일 신임 총리 지명을 위한 에밀레 라후드 대통령과의 협의에서 107명이 하리리 전 총리를 신임 총리로 지목했다.헤즈볼라 소속 의원들을 비롯한 19명의 의원들은 지지자를 밝히지 않았으며 2명은 건강상의 이유로 이날 협의에 참석하지않았다. 관리들은 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라후드 대통령이 이날 중 나비베리 하원의장과 만나 의원들과의 협의 결과를 발표한 후 하리리 전총리를 신임 총리로 공식임명한다고 밝혔다. 자수성가한 기업인 출신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하리리총리 내정자는 지난 92년 이후 3차례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내전으로 피폐해진 국가경제의 재건을 주도해왔다.지난 98년 시리아의 지지를 받는 군 총사령관 출신의 라후드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다수의 측근들이 부패사건에 연루돼 투옥되면서 총리직을 사임해야했다.하리리 총리 내정자는 지난 8월 28일과 9월 3일 치러진 총선에서 자신이 이끄는 야당연합이 압승을 거두면서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 [아셈 정상들] (5)슈뢰더 독일총리

    게하르트 슈뢰더 총리(56)가 1998년 9월 독일 사민당(SPD) 후보로나서 거물 헬무트 콜 총리(기민당)를 눌렀을 때 언론들은 “지구촌에신좌파 젊은 지도자 삼총사가 탄생했다”고 했다.슈뢰더 총리,그리고 새로운 중도로 ‘제3의 길’을 표방한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빌클린턴 미국대통령 세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나는 등산가다”라고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는 야망을 위해 매진해온 전형적인 자수성가형.1944년 나치 병사였던 아버지가 루마니아에서 전사하기 ^^주 전 태어났다.17살때부터 도매상점의 견습점원으로 일했고 야간학교에서 대학자격시험에 합격,명문 괴팅겐대학 법과에 입학,변호사 자격증을 따냈다. 1963년 사민당에 입당해 전통적 좌파이념에 심취했으며 정열적인 활동력과 정연한 논리,탁월한 언변을 바탕으로 78년 사민당 청년조직인 ‘젊은 사회주의자’ 의장에 선출됐다.당시 “나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공공연히 외칠 정도로 급진 좌파성향을 지녔으나 90년 니더작센주 총리를 거치면서 이념적 편향에서 벗어나 사민당내 온건파 지도자로 성장했다. 그는 현대 정치인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인물로 꼽힌다.준수한 외모,뛰어난 화술로 아무리 적대적인 사람이라도 그를 만난 뒤엔 우호적인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슈피겔지는 빌리 브란트 총리 이후 최고의 카리스마를 지닌 정치인이라는 평을했다.정치역정 못지않게 애정편력도 심한 편.지난 97년 53세때 세번째 부인 힐트루트와 13년 결혼생활을 청산,20세 연하 언론인 출신 도리스 쾨프와 결혼했다.자신의 말대로 12년 만에 한번씩 결혼상대를바꾼 셈이다. 콜 총리의 통일위업에 이어 통일후유증 봉합의 중책을 맡은 그는 그러나 친 기업적 세제개혁 조치 등으로 만만찮은 국내 반발에 직면해있다.당내 권력장악력이 약하다는 비판속에 지난해 주의회 선거에서잇따라 패배,지지도 급락 등 쓴 경험을 맛보기도 했다. ■ 프로필. ▲1944년 4월7일 니더작센주 모센부르크 출생 ▲59∼61년 소매점 견습점원 ▲62∼66년 대입검정 야간학교 ▲63년 사민당 입당 ▲66∼71년 괴팅겐대 법과 ▲78∼80 사민당 청년당원 전국대표▲80∼86년 연방 하원의원 ▲86∼90년 니더작센주 의회 사민당 원내총무 ▲90∼98년 니더작센주 총리 ▲98년 10월 연방 총리김수정기자 crystal@
  • 빌 게이츠 美 갑부 1위 고수

    [워싱턴 연합]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 회장(44)이 지난해 주가폭락으로 220억달러의 손실을 입고도 630억달러(약 72조4,500억원)의 재산을 지녀 미국 갑부 1위 자리를 지켰다.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10월 9일자에서 밝힌 ‘미국 갑부 400명’에따르면 MS의 경쟁사인 오러클의 창업주 래리 엘리슨 회장이 580억달러의 재산으로 2위에 올라섰다.지난해 12위였던 엘리슨은 주가상승으로 한해에만 450억달러를 벌었다. 지난해 2위였던 MS의 공동 창업자 폴 앨런(47)이 360억달러로 3위,투자업계의 거물 워렌 버핏(70)이 280억달러로 4위,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71)가 260억달러로 5위를 차지했다. 400위에 오르려면 재산이 7억2,400만달러가 넘어야 하며 400명 중 263명이 자수성가 형이다.미디어 분야가 61명,기술 및 소프트웨어 분야가 60명,금융 분야가 49명이다. 이들의 총재산은 지난해보다 20% 증가한 1조2,000억달러로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에 버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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