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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만 부부, 박 전 대통령 만나 “취임식 이후 처음”...현충원 방문

    박지만 부부, 박 전 대통령 만나 “취임식 이후 처음”...현충원 방문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 실질심사)이 예정된 30일 오전 박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과 부인 서향희씨가 삼성동을 찾았다. 취임이후 동생 근령, 지만씨 등과 소원한 관계였던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2월25일 제18대 대통령 취임식 이후 처음으로 동생 지만씨를 만났다. 박지만씨는 영장 실질심사를 1시간 정도 앞둔 오전 9시35분 부인 서향희씨와 함께 자택을 방문, 2층에 올라가 박 전 대통령은 10여분간 만났다. 측근인 윤상현 의원도 동행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집을 나설 때 “박지만 씨 부부는 눈시울이 붉었고, 박 전 대통령도 눈가가 젖어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남동생 내외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지 못 한다고 했다. 윤상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담담하게 얘기를 했는데 ‘마음에 준비를 하고 계신 것 같았다’”고 말했다고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박지만씨는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자택을 나와 현충원을 방문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를 참배했다. 박 전 대통령과 박지만 회장의 재회가 주목받는 것은 두 사람의 남다른 관계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자서전 등에서 함께 자란 동생 지만씨와 조카(12)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설 때 신상명세서에 ‘보물 1호’로 조카를 꼽았다. 이날 삼성동 자택 앞에서는 여성 지지자 4명은 박 전 대통령 자택을 찾은 동생 지만씨의 팔을 붙잡고 흐느꼈다. 그러나 박지만씨와 다른 정치인들은 박 전 대통령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에 대한 현장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지지자 일부는 박지만씨에게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우리 대통령님 가족 건드리지 말라”고 소리치며 옷과 가방을 잡아뜯는 등 공격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피붙이인 박 회장과도 왕래가 거의 없었다. 박 회장은 선고 전부터 “누나의 안전이 가장 걱정”이라며 탄핵 후 청와대에서 언제 나와야 하는지, 누가 살림을 도울지 등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해 답답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탄핵 후에는 지인을 통해 “누나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꼭 연락 달라”는 뜻을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작은누나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이사장이 “그래도 함께 찾아가보자”고 박 회장을 설득하기도 했으나 “우리가 문전박대를 당하면 큰누나가 비판을 받을 수 있으니 기다렸다가 먼저 연락이 오면 언제든 가자”고 만류했다고 여성조선 최근호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자서전 ‘거래의 기술’로 되치기당한 ‘트럼프케어’

    트럼프 압박에 수 읽고 전략 역공 ‘크게 생각하라’(think big), ‘너무 갈망해서 협상을 끝내는 실수를 하지 마라.’(never seem too eager to cut a deal) 1987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쓴 베스트셀러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의 핵심 키워드다. 이 책에는 부동산 재벌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협상에서 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노하우와 전략이 담겨 있다. “나는 돈 때문에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며 그는 스스로 ‘협상의 대가’를 자처했다. 대통령 취임 후 2개월여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여러 협상에서 많은 실익을 취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1호 법안’인 트럼프케어(AHCA·미국건강보험법)를 좌초시킨 것도 바로 ‘거래의 기술’이다. 27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트럼프케어 표결을 일주일 앞두고 공화당 내 보수 강경파인 ‘프리덤 코커스’ 소속 하원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 랜드 폴(공화·켄터키) 상원의원은 ‘거래의 기술’ 여러 권을 가져와 동료 의원들에게 돌렸다. 그의 등 뒤에는 ‘지렛대를 활용하라’(Use your leverage)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여기서 트럼프케어 협상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전략을 세웠다. ‘거래를 성사시키려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것이 최악의 협상 기술이다. 상대방은 피 냄새를 맡게 되고, 당신은 죽게 된다’는 ‘거래의 기술’이 제시한 전략을 역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표결 전날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을 의회로 보내 ‘트럼프케어 협상은 끝났다’고 압박했지만 프리덤 코커스가 크게 동요하지 않은 것도 책에 나온 전략 덕분이었다. ‘이제 끝났다고 협박하는 사람은 절대로 끝내지 않는다’는 책의 글귀처럼 트럼프의 ‘최후통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폴 의원의 수석보좌관 더그 스태포드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너무 갈망해서 협상을 끝내는 실수를 하지 마라’는 전략 또한 스스로 어긴 셈이 됐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오바마 ‘말런 브랜도섬’ 머물며 회고록 쓴다

    판권 수천만弗… 책 100만권 기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에 있는 프랑스령 테티아로아섬에 머물며 회고록을 집필할 계획이라고 워싱턴포스트 등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오바바 전 대통령은 부인인 미셸과 함께 이달 중순 할리우드 스타가 자주 찾는 테티아로아섬 호화 리조트에 입주했으며 이곳에서 회고록을 집필할 예정이다. 이 섬은 영화배우 말런 브랜도가 1960년대에 촬영을 하러 왔다가 섬 전체를 사들여 별장을 꾸몄고, 이후 ‘말런 브랜도섬’으로도 불린다. 브랜도 사망 후에는 그의 자녀가 섬 전체를 리조트로 개발했다. 오바마 부부는 지난달 경매로 출판사를 정했다. 펭귄 랜덤 하우스는 오바마 부부가 각각 집필하는 회고록 두 권의 전 세계 판권을 손에 넣었다.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판권료가 수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일부 언론은 오바마 부부 자서전 판권이 역대 미 대통령 중 가장 높은 6000만 달러(약 668억원)가 넘는 가격에 팔릴 것으로 예상했다. 출판사는 책 100만권을 오바마 가족 이름으로 비영리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다. 오바마 부부도 선인세의 일부를 오바마재단 등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서동욱의 파피루스] 학자와 정치

    [서동욱의 파피루스] 학자와 정치

    폴리페서의 계절이 돌아왔다. 교수들은 길게, 길게 줄을 선다. 폴리페서라는 말은 자유당 시절부터 자신의 학문을 걸레처럼 들고 부정한 권력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오물을 닦아 주며 권력에 정당성을 마련해 주기 위해 바빴던 자들, 권력자의 부정에 끼어들어 신세 망치는 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는 정치 현장의 경험을 통해 더욱 숙련되기보다는 더욱 텅 빈 머리가 된 채 학교로 돌아와 자기 자랑과 변명으로 수업을 채우며 학생들을 분통 터지게 만드는 자들을 떠올리게 한다.학자가 정치에 뛰어드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학문이 널리 이로운 것이 돼야 한다면 학문은 공부벌레의 책 속에 자신의 무덤을 짓지 말고 세상으로 나와 만인의 고통에 답하며 빛나야 한다. 가령 인간의 가장 오래된 지적 활동 가운데 하나인 철학의 역사는 곧 정치에 대한 사색과 실천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적으로 스피노자의 유명한 책 ‘신학정치론’과 ‘정치론’은 조국의 위협받는 공화정을 옹호하려는 매우 절박한 현실적 필요에 따라 쓰인 책이다. 또한 제자백가에서 실학에 이르는 동양의 사색은 순수 학문 같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현실 정치를 위한 학문만이 있을 뿐이라고까지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정치에 뛰어드는 학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역사 속의 기념비들 가운데 플라톤의 삶이 하나의 답으로 눈에 들어온다. 플라톤은 자신의 사상을 전하기 위해 쓴 저작들에선 뼈와 살을 지닌 자기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플라톤의 또 다른 글들, 바로 편지들이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작품에서 아주 내밀한 영혼의 고백을 장대하게 토해 내는데, 플라톤의 편지 역시 이와 동일한 느낌을 주면서 ‘바로 그 사람 플라톤’의 영혼의 생김새를 전해 준다. 특히 일곱째 편지는 젊은 시절부터 정치에 환멸을 느껴 왔으면서도 정치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한 정치철학자의 고뇌를 고스란히 담은 영혼의 자서전이라 할 만하다. 너무도 유명한 플라톤의 대표작 ‘국가’는 그의 정치 이론에 공감하는 사람만이 옹호할 수 있는 책일지도 모른다. 반면 일곱째 편지는 정치에 뛰어드는 자라면 자신의 이론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며, 그런 의미에서 정치판에 들어선 모든 이들의 필독서다. 플라톤은 정치가 또는 정치 조언자를 양성하기 위해 아카데미아를 설립하고 가르친 것만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시라쿠사의 왕궁으로 세 번이나 고된 여행을 하며, 시라쿠사의 현실 정치를 몸소 올바르게 꾸려 보고자 했다. 플라톤의 편지들은 많은 경우 바로 이 시라쿠사에서의 쓰디쓴 정치적 경험에 관한 것으로, 그의 패기만만한 이상주의란 실은 현실 정치의 폐수 위를 애처롭게 둥둥 떠다니던 한 병의 외로운 사이다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군주에게 갖가지 방법으로 조언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플라톤을 시라쿠사로 초빙한, 군주의 현명한 친척은 살해당하며, 철학자는 정치가의 무지와 사악함과 탐욕이 어느 정도인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시라쿠사의 이 실패한 정객에게서 뭐 얻을 게 있겠냐고? 장기판의 궁처럼 제자들의 술자리 중앙에 앉아 “이거하고 저거, 알고 보면 내 업적이야” 하고 자랑을 늘어놓는 폴리페서의 위용을 염두에 둔다면, 플라톤이 현실 정치에서 쫓겨나듯 달아나며 던진 다음 말들은 너무 보잘것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비극 시인들이 군주를 등장시켰을 때) 비참하구나, 친구들 없이, 나는 죽어 가노라라고 탄식하여 말하게 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싶습니다. 어느 시인도 참주를 황금이 부족해서 죽는 이로 묘사하지 않았습니다.”(첫째 편지, 강철웅, 김주일, 이정호 옮김) 또 말한다. “당신이 우리에게서 얼마나 빗나갔는지를 알아 두세요. 다른 사람에게는 더 잘 대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비판 속에서 군주는 순식간에 진리의 자리에서 내동댕이쳐진다. 정치철학자는 군주에 의해 쫓겨나 불우하게 되지만, 정치가는 정치철학자에 의해 진리로부터 쫓겨나 가장 비참한 이름으로 역사에 남는다. 학자는 날마다 정치가의 머리 손질을 해 주는 자가 아니다. 정치가가 장차 처하게 될 비참함에 두려움을 느끼도록 해 주는 자다.
  • 이순자 “5·18 발포 명령, 전두환과 무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씨가 24일 자서전을 내고 전 전 대통령과 5·18 발포 명령은 무관하다면서 12·12쿠데타 이후 권력을 잡은 것도 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서전에는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전 전 대통령 내외의 관점에서 전하는 내용이 다수 담겨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이씨는 약 720쪽 분량인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12·12, 5·17, 5·18에 대한 편집증적인 오해와 정략적인 역사 왜곡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전율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5·18 당시 수사책임자인 동시에 정보책임자였던 그분은 결코 발포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쿠데타에 대해서는 “최 대통령이 광주사태의 뒷수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1980년 7월 말 그분을 불러 광주사태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남편에게 자신의 후임이 되어 줄 것을 권유했다”면서 “(최 전 대통령이)우리나라가 놓여 있던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갈 지도력을 갖춘 사람은 ‘전 사령관뿐’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초기 ‘전두환 일가 추징금 환수 프로젝트’가 고강도로 진행되자 ‘생을 포기할 뻔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전 전 대통령 역시 다음달 초 회고록을 출간한다. 회고록은 모두 2000쪽에 달하며 대통령 취임 과정, 재임 시절, 성장 과정 및 퇴임 후 등 3권으로 구성된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전두환 부인 이순자 자서전 통해 “우리도 5·18 희생자”

    전두환 부인 이순자 자서전 통해 “우리도 5·18 희생자”

    전두환(86)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78)씨가 24일 ‘당신은 외롭지 않다’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관점에서 현대사를 서술해 눈길을 끈다. 책은 720쪽 분량이다. 이순자씨는 신군부 강압에 의한 최규하 전 대통령의 퇴진 논란에 대해서 “오히려 최 전 대통령이 남편에게 후임이 돼 줄 것을 권유했다”라고 서술했다, 또 1996년 재판 당시 5·18 희생자의 영가천도 기도를 올려달라고 하면서 한 스님에게 “저희 때문에 희생된 분들은 아니지만, 아니 우리 내외도 사실 5·18사태의 억울한 희생자이지만” 등 일반 국민 인식과는 괴리가 있는 대목이 다수 포함됐다. 이씨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자서전에는 1982년 ‘장영자 사건’ 때 혼자 청와대를 떠나 살려고 생각했고, 지난 2013년 수십 년 째 살던 집을 압류당할 때는 극단적 선택까지 고심했으나 홀로 남게 될 남편 생각에 마음을 바꿨다고 술회했다”는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다음달 초 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일기와 개인 기록,대통령 재임 중 작성된 각종 기록물, 퇴임 후 5·18특별법에 따른 검찰 수사기록과 재판기록 등을 토대로 2000쪽 분량으로 작성됐다. △10·26사태 이후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담은 1권 ‘혼돈의 시대’ △대통령 재임 중 국정수행 내용을 서술한 2권 ‘청와대 시절’ △성장 과정과 군인 시절·대통령 퇴임 후 일들을 담은 3권 ‘황야에 서다’ 등 총 세 권으로 구성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작사.작곡가 김동찬 가요인생 50년 기념공연’ ...22일 KBS홀서

    ‘작사.작곡가 김동찬 가요인생 50년 기념공연’ ...22일 KBS홀서

    ‘기똥찬 사나이’ 김동찬 가요인생 50년 기념공연이 오는 22일 저녁 7시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펼쳐진다. 1968년 가요계 데뷔 이래 네박자, 봉선화 연정, 둥지, 사랑의 이름표, 신토불이 등 인생을 노래하는 주옥같은 히트곡으로 국민들의 애환을 노랫말과 음율로 담아냈던 그가 어느덧 데뷔 50년을 맞는다. 그동안 KBS공모 밝은 노랫말상, 한국노랫말 대상, KBS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음향효과상, 농림부장관표창, 한국전통가요대상 수상 등 독특한 수상 경력과 ‘KBS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 D’Live 청춘노래자랑 심사위원, 연세대 노래지도자 학과 명예교수 활동 및 에세이자서전 ‘네박자, 둥지 그리고 봉선화 연정’출판 ‘KBS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프로그램에 현재 활동 중인 전통가요 작사가로 유일하게 초청되는 등 가요계 발전을 위한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국민 사회자 송해 선생이 진행을 맡으며 그동안 그의 작품으로 인연을 맺었던 우리나라 가요계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대거 출연한다. 대한민국 대표가수 남진, 현철, 김국환, 배일호, 김혜연, 유지나, 오은주, 김정연, 김경남, 현당과 탤런트 출신 가수 이동준 외에 한국 성인가요계의 차세대 주자로 각광 받고 있는 정수빈, 하태웅, 신수아, 김수찬, 김주연, 석훈, 유민지 등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날 공연의 반주는 KBS전국노래자랑 전속 악단인 신재동오케스트라가 담당한다. 특별히 이번 공연은 그가 지난 50년간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전체 공연 제작비를 자비로 충당하며 일반 팬들을 무료로 초청한다. 뿐만 아니라 이날 참여하는 모든 팬들에게 그동안의 히트곡을 모아 본인이 직접 노래한 2-CD 옴니버스 기념음반과 공연소개 팸플릿을 다큐파일 형식으로 제작하여 무료로 배포한다. 그리고 공연 당일 모금함 운영을 통해서 모금된 금액은 팬들의 이름으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된다. 그동안 발표한 그의 작품은 서민의 애환과 사람의 향기가 있다. 인생사에 바탕을 두고 추억과 사랑을 담백하게 표현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항상 가슴 깊은 곳의 그리움을 끄집어낸다. 그의 노래는 트로트 양식에 기초하지만 발라드한 분위기와 클래시컬한 선율로 독특한 소재의 가사와 함께 우리나라 전통가요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번 공연은 그의 반세기 개인 가요사를 스토리로 조명하는 단 한번뿐인 명품공연이 될 것이다. 그는 지금도 꿈을 꾼다. 노래는 세상을 밝게하고 인생을 치유하고 사랑을 꿈꾸게 한다고...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대통령의 딸 → 첫 탄핵대통령… 몰락한 20년 정치인생

    대통령의 딸 → 첫 탄핵대통령… 몰락한 20년 정치인생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 대통령’이라는 오명의 주인공이 됐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에서 ‘대통령’까지 올랐던 화려한 정치 인생을 마감하고 쓸쓸하게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게 된다.박 전 대통령은 1952년 2월 2일 경북 대구 삼덕동의 한 셋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맏딸로 태어났다. 당시 35세였던 아버지 박정희는 육군본부 정보국 제1정보과장이었고, 27세의 어머니 육영수는 중등학교 교사 출신이었다. 그녀의 평범한 삶은 10세가 되던 1961년 5월 16일 완전히 달라졌다. 아버지 박정희가 군사정변을 일으키면서 제5대 대통령이 됐고,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 영애(令愛)가 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은 1974년 또 한 번 뒤바뀌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그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육 여사가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해 저격당해 서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비극의 첫 시작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영문도 모른 채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박 전 대통령은 자서전 등을 통해 “온몸에 수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쇼크를 받았다. 날카로운 칼이 심장 깊숙이 꽂힌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고 당시 심정을 회상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발단이 된 최태민씨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였다. 최태민은 당시 ‘구국여성봉사단’ 활동에 주력하던 박 전 대통령에게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근혜양을 도와주라고 했다”는 편지를 쓰며 접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9년 10월 26일, 이른바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그녀는 또다시 비극을 맞았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피 묻은 아버지의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직접 빨면서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 재임 당시 측근들이 하루아침에 자신과 동생들에게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적은 일기들에는 특히 사람들의 배신에 대한 언급이 많다.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든다. 아예 처음부터 마음을 달리 먹고 배신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진정으로 충성을 맹세했지만 어차피 약한 인간이기에 차츰 권세와 명예와 돈을 따라 마음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1981년 8월)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에 대해 ‘절대 배신하지 않을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에 40년 가까이 자신의 곁에 두고 의지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대통령님이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굉장히 강한 분이었기 때문에 제게 많이 의지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대국민 담화에서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로 순식간에 ‘야인’이 된 박 전 대통령은 18년간 은둔 생활을 했다. 이후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를 계기로 정치에 입문한다. 1998년 4월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여의도로 입성했으며 19대 때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2009∼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 때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원안을 고수해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키면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다. 박 전 대통령은 2년 3개월 동안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며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했다. 또 대표 시절 치른 거의 모든 선거에서 승리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 직전 서울 신촌에서 유세를 하던 중 습격을 당한 박 전 대통령이 의식을 회복한 직후 꺼낸 “대전은요?” 발언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로 우뚝 선 박 전 대통령은 16대 대선과 17대 대선에서 두 차례 대권에 도전했지만 매번 당내 경선에서 패배하며 본선에는 오르지 못했다. 2007년 당내 경선 과정에서 ‘최태민 스캔들’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18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2월 25일 야심 차게 임기의 첫발을 뗐다. 하지만 임기 내내 끊임없는 대내외 악재에 시달리며 국정운영에 수차례 위기를 겪었다. 취임 첫해에는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장차관급 고위공직자 후보들이 사퇴하거나 낙마하면서 ‘인사 난맥’을 겪었다. 같은 해 5월 미국 순방 도중 벌어진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문 사태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는 정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번 탄핵 사유에도 포함된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비롯해 정부의 무능한 대처는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해 11월에는 최씨의 전남편인 정윤회씨의 비선 실세 의혹이 터진 데 이어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 논란이 불거졌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를 ‘찌라시’ 수준으로 규정했지만 파장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2015년 온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은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위기대응능력 부재로 질타를 받았다. 또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가 형성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도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를 방문해 ‘개헌 카드’까지 꺼내며 국면 전환을 노렸지만, 비선 실세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총 세 차례 대국민 담화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저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 왔다”면서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씨로부터 도움받게 됐고 왕래하게 됐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풍문으로 나돌던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가 최씨의 태블릿PC 등으로 드러나는 등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면서 국민적 퇴진 요구에 직면했다. 야 3당은 지난해 12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국회 본회의에서 234표로 가결됐다. 박 전 대통령은 관저 칩거 생활 속에서 명예 회복을 위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특별검사 수사에 총력 대응했다. 탄핵 소추 의결 이후 92일 만에 열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에서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 파면’ 판결을 받았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총 5년의 임기 중 1년에 조금 못 미치는 351일을 남겨두고 대통령의 자리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됐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전쟁고아 아버지’ 헤스 美대령 기념비 건립

    ‘전쟁고아 아버지’ 헤스 美대령 기념비 건립

    1950년 12월 20일, 서울은 또다시 풍전등화의 위기에 휩싸였다. 압록강까지 치고 올라갔던 국군과 유엔군은 그해 10월 참전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해 서울 부근까지 밀려 내려왔다. 부모를 잃은 수많은 전쟁고아는 적의 포탄 세례에 그대로 노출될 위기에 직면했다.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고(故) 딘 헤스 미 공군 중령(대령 예편)은 군목 러셀 블레이즈델과 함께 서울의 전쟁고아 1000명을 C54 수송기 15대에 나눠 태워 제주도로 피신시켰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제주도에 전쟁고아들의 보금자리인 보육원도 지었다. 휴전 후에도 수시로 한국을 찾아 고아들을 지원했고, 20년 넘게 전쟁고아를 위한 모금 활동을 했다. 헤스 예비역 대령에게 ‘전쟁고아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붙은 이유다. 제주도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 9일 그의 공적기념비가 세워졌다. 이로써 자서전 ‘전송가’에 적었던 그의 소망도 현실이 됐다. 자서전에서 그는 전쟁고아들의 고통과 희생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 ‘우리가 구조할 수 없었던 생명들을 추모하며’라는 글귀를 새겨 주길 소망했다. 헤스 예비역 대령은 한국 공군의 토대를 만들어 준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6·25전쟁 당시 미 공군이 한국 공군 조종사 양성 등을 위해 창설한 ‘바우트1’ 부대를 맡아 공군 전투력 강화에 힘을 쏟았다. 1년간 무려 250여회 출격하며 적 지상군 격퇴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F51 전투기에 ‘신념(信念)의 조인(鳥人)!’이라는 우리말 글귀를 큼지막하게 적어 놓았고, 이는 한·미 공군 간 우의의 상징이 됐다. 이날 기념비 제막식에는 정경두 공군참모총장, 김방훈 제주 정무부지사,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 등이 참석했다. 그의 아들 래리 헤스(75)는 “어떤 이가 아버지에게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기억되고 싶다고 하셨다”고 감격스럽게 말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새 영화] ‘내 이름은 꾸제트’

    [새 영화] ‘내 이름은 꾸제트’

    정감 넘치는 佛 스톱모션 애니새로운 형태의 가족형성도 흥미퀭하니 다크서클이 낀 듯한 큰 눈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들이 처음에는 우울하게 다가오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이 느껴진다. 어딘지 모르게 차가워 보이는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넘쳐나는 요즘, 정감이 듬뿍 넘쳐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한 편 찾아온다. ‘내 이름은 꾸제트’다. 그래도 삶은 살아갈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를 역설하는 작품이다. 프랑스의 한 보육원이 무대다. 죽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연을 날리는 꾸제트는 술주정뱅이 엄마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세상을 뜨는 바람에 보육원에 온다. 보육원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는 아이들이 한가득이다. 대장 노릇을 하는 시몽은 부모의 무관심에 방치된 신세다. 까미유는 아빠의 가정폭력에 엄마가 집을 나가버렸다. 아랍계 꼬마 아메드는 아빠가 운동화를 사 주겠다며 주유소를 털었다가 감옥에 갔다. 알리스는 아빠에게 몹쓸 짓을 당해 세상을 두려워하고, 흑인 소녀 베아트리스는 학교 간 사이에 엄마가 아프리카로 추방당했다. 먹보인 주주베는 강박증을 앓고 있다. 이런 환경이면 비뚤어지기도 쉬우련만, 어느 하나 나쁜 마음의 아이들은 없다. 때로는 어른들의 편견과 맞닥뜨리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뭉클함을 준다. 어떤 면에서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어른스럽고, 또 어른들은 이러한 아이들을 보며 자신들도 성장해 간다.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이 무너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 아이들과 보육원 선생님, 아이들을 돕는 경찰 아저씨 등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형성해 나가는 모습도 흥미롭다. 전체 관람가도 충분하다고 보는데, 캔맥주 장면, 아이들 시각에서 본 성행위 묘사, 지원금을 노려 아이를 데려가려는 친척 등 일부 내용을 이유로 12세 관람가 등급이 매겨졌다. 질 파리의 소설 ‘꾸제트의 자서전’이 원작이다. 프랑스의 주목받는 여성 영화 감독 셀린 시아마가 각색에 참여한 점이 눈길을 끈다. 캐릭터들이 어딘지 모르게 팀 버튼 감독의 ‘프랑켄위니’(2012)와 닮은 구석이 있다. 양 쪽 작품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던 한국계 애니메이터인 킴 쿠클레르가 연결 고리다. 수준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던 끌로드 바라스 감독은 장편 데뷔작에서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최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주토피아’에 밀려 장편 애니메이션 수상이 불발됐지만 앞서 지난해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됐고,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그랑프리와 관객상, 유러피안필름어워즈 최우수 애니메이션상, 새틀라이트 어워즈 애니메이션 및 복합 미디어 영화상 등을 휩쓸었다. 9일 개봉.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오바마 부부 자서전 6000만弗 출판 계약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펭귄랜덤하우스 출판사와 자서전 출판 계약을 맺었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계약 조건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으나 출판업계는 판권료가 수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오바마 부부 자서전 판권료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높은 6000만 달러(약 678억원)가 넘는 가격에 팔릴 것으로 예상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자서전 판권료는 퇴임 직후인 2004년 1500만 달러,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1000만 달러로 알려졌다. 펭귄랜덤하우스는 오바마 전 대통령과 부인 미셸 여사가 각각 집필하는 자서전 두 권의 전 세계 판권을 획득했다. 랜덤하우스는 책 100만 권을 오바마 가족 이름으로 비영리 재단 ‘퍼스트 북’과 ‘오픈 이북스’에 기부할 방침이다. 오바마 부부도 계약 선금의 일부를 오바마재단 등 자선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자서전 판권료 역대 대통령중 최고 오바마 부부 판권만 678억원

    자서전 판권료 역대 대통령중 최고 오바마 부부 판권만 678억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가 지난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회고하는 새 자서전의 판권이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28일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과 부인 미셸 여사가 각각 집필하는 두 권의 자서전의 판권이 6000만 달러(678억 원)가 넘는 가격에 팔릴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판권이 엄청난 만큼 단순한 회고록이 수준을 넘어 민감한 정치 현안과 국제 관계에 대한 뒷이야기와 배경 설명 등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부부는 경매 방식으로 출판사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책은 두 사람이 따로 쓰지만, 판권은 공동 소유할 계획이다. 자서전 판권에 가장 눈독을 들이는 출판사는 ‘펭귄 랜덤 하우스’라고 사안을 잘 아는 출판계 관계자들이 전했다. 과거 출판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자서전인 내 아버리로부터의 꿈, 담대한 희망 등도 모두 이 출판사에서 나왔다. 오바마의 자서전은 엄청난 판매부수를 세워 베스트셀러로 기록됐다.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하퍼콜린스’도 의향을 보였으며 ‘시몬 앤드 슈스터’, ‘맥밀런’ 출판사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판권은 이번 예상가보다 훨씬 적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자서전 판권료는 퇴임 직후인 2004년 1500만 달러, 조지 W.부시 전 대통령의 경우는 1000만 달러였던 것으로 각각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장모 별세… 정세균 국회의장 등 잇단 조문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장모 별세… 정세균 국회의장 등 잇단 조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의 모친 박덕남씨가 24일 오전 7시 18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96세.박씨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부터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권 여사와 함께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권 여사와 결혼하게 된 계기를 언급하면서 “아내는 청와대에 있을 때나 퇴임한 후에나 친정어머니를 오랜 세월 함께 모시고 살았다. 장모님은 연세에 비하면 지금도 비교적 건강하시다”고 썼다. 이날 빈소에는 애도의 발길이 이어졌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등은 25일 오후 조문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권 여사를 포함해 창좌·진애·기문씨 등 2남2녀가 있다. 상주는 권 여사 남동생인 기문씨가 맡는다. 빈소는 김해 진영전문장례식장이며, 발인은 26일 오전 7시, 장지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선영이다. 전전면은 권양숙 여사 가족이 봉하마을로 이사를 오기 전 살았던 곳이다. 선영에는 권 여사 부친인 권오석씨의 묘가 있다. 봉하재단 사무실(055-344-1004).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모친상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의 모친 박덕남(96)씨가 24일 오전 7시 18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박씨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무렵부터 봉하마을에서 권 여사와 함께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 후 발간된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권 여사와 결혼하게 된 계기를 언급하면서 “아내는 청와대에 있을 때나 퇴임한 후에나 친정어머니를 오랜 세월 함께 모시고 살았다. 장모님은 연세에 비하면 지금도 비교적 건강하시다”라고 썼다. 박씨는 슬하에 권기문, 권창좌, 권양숙, 권진애씨 등 2남 2녀를 뒀다. 상주는 권 여사 남동생인 기문씨가 맡는다. 빈소는 김해 진영전문장례식장(055-345-9444) 201호. 발인은 26일 오전 7시, 장지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선영이다. 전전면은 권양숙 여사 가족이 봉하마을로 이사를 오기 전 어릴 때 살던 곳이다. 선영에는 권 여사 부친인 권오석 씨 묘가 있다. 유족은 최대한 조용히 장례를 치르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봉하재단 사무실(055-344-1004).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라디오스타 ‘공부의 神’ 심소영-서경석-김정훈-강성태 “예능두뇌 풀 가동”

    라디오스타 ‘공부의 神’ 심소영-서경석-김정훈-강성태 “예능두뇌 풀 가동”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연예계 대표 ‘공부의 신’ 서경석-김정훈-강성태-심소영이 토크 두뇌를 풀 가동 시켜 웃음포텐을 터트렸다. 이들은 독특한 취향부터 덕질까지 반전 매력이 가득한 모습을 공개하며 수다파티를 벌여 시청자들을 매료시킨 것. 서경석은 MC규현에 대한 애정 공세를 펼치는가 하면 과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자신의 경험담을 풀었고, 강성태는 김구라를 향한 무한한 칭송을 공개했으며 유익한 수능공부비법을 공개함과 동시에 수험생에 대한 무한한 애정까지 뿜어냈다. 이에 질세라 김정훈과 심소영은 각각 숫자를 신격화하는 독특한 모습과 남다른 이상형의 조건을 밝히며 4차원 면모를 마음껏 뽐내 시선을 강탈했다. 지난 22일 방송된 고품격 토크쇼 MBC ‘라디오스타’(기획 강영선, 연출 박창훈)는 ‘공부의 신’ 특집으로 서경석-김정훈-강성태-심소영이 출연했다. 23일 시청률 조사회사 TNMS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라디오스타’는 수도권 기준 9.3%의 시청률 상승과 동시에 동 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먼저 ‘원조 수재’ 서경석은 ‘라스’에 출연한 이유가 ‘규현과 말 한번 섞고 싶어서’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규현은 정말 진주 같은 친구다. 5년 전부터 팬이었다. 아직도 저평가 받는 것 같다”고 규현에 대한 애정 공세를 했다. 이에 김구라는 “5년 동안 그 평가 그대로면, 그게 실체다”라고 말했고, 윤종신은 “사후에 재 평가 받을 스타일이다”라고 반발해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육군사관학교 50기 수석 합격자 서경석의 본격 입담이 시작됐다. 그는 “코미디언이 된 후에도 1년 정도 더 과외를 했다. 이전에 과외를 받던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요청이 왔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자신만의 과외 노하우를 밝히며 “제가 괜히 인기 선생이었겠냐”고 너스레를 떨었고, 윤종신이 “제자들이 합격률이 높았냐”고 묻자 “인생을 가르쳤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어 서경석은 자체검증한 자신만의 암기법을 공개했다. 그는 “나는 단순 암기의 시대인 학력고사 세대다. 그래서 자신만의 연상 암기법을 만들었다. 1592년 임진왜란은 ‘이러고 있으면 안된다’해서 ‘일오구이’다”고 설명했고, 4MC가 감탄을 자아내자 어깨를 으쓱했다. 이외에도 그는 그간 쌓였던 김성주와의 꼬인 족보에 대한 오해를 풀며 큰 웃음을 보태기도 했다. 강성태의 ‘구라사랑’은 서경석의 ‘규현사랑’ 이상이었다. 김구라와 SBS ‘본격연예 한밤’에 출연 중인 강성태는 “’한밤’에서 김구라가 왕이고 황제다. 우리에게 태양 같은 존재다”고 말해 웃음을 샀다. 계속해서 그는 “이 분이 왜 한밤에 앉아 계시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앉아 계실 분이 아니다. 김구라의 책은 내 바이블이다”고 칭송을 이어갔고, 김구라는 “강성태가 나를 쪄 죽이고 있다”며 질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공부의 신’ 답게 전매특허 공부법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수능 컨디션을 조절하는게 중요하다. 수능 10일전부터 수능일처럼 공부했다”며 전매특허 공부법을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책에 줄을 많이 친다. 모든 범위에서 중요한 게 정해져 있다. 김구라 자서전에도 줄이 많이 많다”고 ‘기승전구라’로 웃음을 자아냈다. 또 강성태는 가수 제시가 나오는 방송을 안 본다고 말해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이 시험에 ‘재시’할까 봐 가수 제시를 안 본다고 설명했고, 자기주도 학습이 중요해 자주색 팬티를 입는다고 덧붙여 깨알 웃음을 더했다. 이에 질세라 김정훈과 심소영이 4차원 면모를 뿜어냈다. 우선 김정훈은 “1과 자기로만 나눠지는 수인 ‘소수’를 집착한다. 8은 연약해 보인다. TV볼륨도 소수로만 조정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에 윤종신은 “’선생님이 몇 대 맞을래?’라고 물으면 소수로 대답하냐”고 물었고, 김정훈은 “자주 맞지를 않았다”고 팩트로 대답해 MC들의 말문을 막기도 했다. 김정훈의 숫자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수치화 한다는 게 기분이 나쁘다. 숫자에 대한 버릇 없는 짓이다”며 숫자를 신격화 하는 모습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아재 개그를 좋아한다는 그는 언어유희를 이용한 유머감각을 뽐내며 반전 매력을 더했다. 심소영은 놀라운 기억력을 드러냈다. 그는 “2살 때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에서 아버지 어깨에 토를 한 것을 기억한다. 그게 조금 충격적이어서 기억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MC들은 “구체적으로 기억하는게 신기하다”며 놀라워했고, 김구라는 “허언증이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심소영은 남다른 이상형을 밝히기도. 그는 “팔짱을 낄 때 팔꿈치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팔꿈치가 두꺼운 사람이 이상형이다”며 팔꿈치가 두꺼운 사람을 감별하기에 나섰다. 이때 반전이 일어났다. 김구라가 의외로 심소영의 기준에서 탈락했고, 의외로 말라보이는 김국진이 가장 심소영의 수준에 부합한다고 밝혀졌다. 이에 김국진은 어깨에 뽕을 넣은 것처럼 으쓱댔다. 공부의 신들의 가족들도 남달랐다. 심소영의 어머니는 대학교 교수였고, 아버지는 서울대 출신이자 국내 유명 초콜릿 과자의 슬로건인 ‘정’ 콘셉트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밝혀진 것. 심소영은 진정한 ‘금수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과시하지 않는 겸손한 면모를 보였다. 강성태는 동생이 인터넷에서 ‘친구가 없어서 공부했다가 서울대 간’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연예계 대표 ‘뇌섹남녀’ 서경석-김정훈-강성태-심소영은 뛰어난 두뇌보다 더 매력있고 독특한 이력, 성격, 취향, 취미 등을 공개하며 신선한 웃음을 선사했다. 한편, ‘라디오스타’는 김국진-윤종신-김구라-규현 4MC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게스트들을 무장해제 시켜 진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독보적 토크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MBC ‘라디오스타’ 화면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부고] ‘재즈+록’ 퓨전 재즈 대부 코옐 별세

    [부고] ‘재즈+록’ 퓨전 재즈 대부 코옐 별세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해 오던 ‘퓨전 재즈’의 대부 래리 코옐이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호텔에서 별세했다. 73세. 그의 홍보대행사는 코옐이 숨지기 전 이틀 동안 뉴욕에 있는 클럽에서 연주했으며 자연사했다고 밝혔다. 재즈에 록을 도입한 1세대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는 코옐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는 앨범 ‘스페이시즈’(1970)로 유명하다. 이 앨범에는 명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과 명 건반 주자 칙 코리아 등이 참여했다. 텍사스에서 태어난 코옐은 1965년 뉴욕에서 데뷔해 플로리다를 거쳐 유럽, 일본에서도 활동하며 지난해까지 60여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올해에도 앨범 발매와 다수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불교 신자였던 그는 앨범 ‘몽고메리’(2011)를 통해 미국 민권운동에 대해 탐구하는 등 사회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2012년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을 통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 ‘즉흥 연주: 나의 음악인생’에서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음악을 통해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의 ‘창조 선언’을 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일류 학교’ 중구 마을

    “마을도 일류학교가 돼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습니다.” 뮤지컬 배우에게 노래와 연기를 지도받은 중학생들이 무대 군무를 선보이고 주민센터에서 기타를 배운 초등생들이 연주 실력을 겨루는 마을. 서울 중구가 올해 꿈꾸는 혁신교육지구 사업의 모습이다. 중구는 올해 서울시·서울시교육청이 지정하는 혁신교육지구로 지정돼 학교와 지역사회, 공공기관, 구청이 맞물린 19개 세부사업을 펼친다고 15일 밝혔다. 사업의 핵심은 마을과 학교의 융합이다. 마을해설사와 역사문화 자원을 알아보는 ‘마을탐방’,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만드는 동네 지도 교과서 ‘중구기행’,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는 ‘청년활동가 마을 방과후 활동’, 마을의 노인들을 인터뷰해 생애를 책으로 엮는 ‘어르신 자서전’ 등 다채롭다. 특히 전문 뮤지컬 공연장인 충무아트센터와 연계해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워 주는 ‘청소년 브로드웨이’, 중구 15개 동과 동아리를 매칭시켜 마을의 모든 것을 조사, 탐방하는 ‘동동채널 15번’ 등은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다. 구는 오는 7월 지역의 모든 초등학생이 참가할 수 있는 ‘한강 건너기 대회’를 기획하고 있다. 구는 지난 13일 구청에서 지역 초·중·고교 교감,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이런 내용을 담은 혁신교육지구 운영 계획을 안내했다. 교육 프로그램을 뒷받침하기 위해 마을자원 인력풀을 구축하고 지역주민을 마을강사로 양성할 방침이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우리가 사는 도시 마을도 훌륭한 배움터이자 스승이 될 수 있다”며 “교육적 가치가 있는 지역자원은 무엇이든 접목해 아이들이 다재다능한 인재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일자리 챙기는 文… 보수 껴안은 安… 자서전 펴낸 李

    일자리 챙기는 文… 보수 껴안은 安… 자서전 펴낸 李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8일 일자리 현장, 안희정 충남지사는 보수단체 강연,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서전 출판 기념 간담회 일정을 각각 소화하며 지지율 확보에 나섰다.문 전 대표는 이 시장의 ‘안방’인 경기 성남의 ‘아이에스씨’를 방문했다. 경력단절여성 채용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진 기업이다. 그는 지난달 18일 일자리 정책을 발표한 이후 병원, 노량진 학원가 등을 잇달아 찾으며 일자리 정책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방문 후 기자들에게 “우리 캠프나 선대위에 다양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함께할 수 있는데 그러나 후보는 접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이날 문 전 대표 경선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임명된 송영길 의원이 문 전 대표가 공약한 81만개 공공일자리에 대해 “메시지가 잘못 나갔다”고 지적한 데 대해 선을 그은 것이다. 문 전 대표는 또 탄핵 정국과 관련, “근래에 와서는 탄핵에 대해 낙관할 수만은 없게 된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최근 지지율이 급상승 중인 안 지사는 중도·보수층을 겨냥했다. 안 지사는 보수단체인 한반도미래재단 초청특별대담에 참석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는 이미 군사동맹이 합의된 것이기 때문에 얼른 뒤집기 힘들어서 (그 합의를) 존중한다고 했던 것”이라고 말해 행사장을 가득 메운 보수 성향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움직임에 대해선 “우리나라도 국제사회 평화를 위해 분담할 용의는 얼마든지 있다”고 했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주장하기도 했다. 안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문 전 대표와 안 지사 가운데 누구를 지지했을 것 같으냐’는 돌발 질문에 “‘골 아프다’고 하셨을 것이고, 만날 때마다 열심히 잘하라고 하시지 않았을까”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큰아들이든 둘째든 각각 정치인으로서 원칙 있게 어떻게 경선할 것이며 정치 지도자로서 성공할지 조언하셨을 것”이라면서도 “문 닫고 들어가면 아마 제 편을 들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자서전 출판 기념 간담회를 열고 지지율 반등을 꾀했다. 그는 자신의 뒤틀린 팔을 들어 보이며 “불공정한 굽어 버린 세상 때문에 제 팔이 굽어 버리고 말았지만 저에겐 꿈이 있다. 굽어 버린 세상을 바르게 펴고 싶다”고 했다. 이 시장은 중학교 진학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프레스에 왼쪽 손목이 끼어 평생 왼팔이 구부러지는 장애를 입었다. 이 시장은 사법시험 폐지 의견을 밝힌 문 전 대표를 향해 “우리 사회에 계층 이동 기회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사시 등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 시장 경선 캠프에 유승희, 김병욱 의원이 합류했다. 이 시장은 9일 오전 여의도 비앤비타워에 마련된 캠프 사무실에서 후원회 출범식을 연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이재명 “文, 사시 존치로 입장 전환해야... 토론 좀 하자”

    이재명 “文, 사시 존치로 입장 전환해야... 토론 좀 하자”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야권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 “정말 토론 좀 했으면 좋겠다”며 공개 토론을 촉구했다. 이 시장은 8일 서울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자서전 ‘이재명의 굽은 팔’ 출판 간담회에서 “명망과 대세에 의존해 선택이 이뤄진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그야말로 체감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국민에게 선택권을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회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의 비전과 정치철학, 실천력, 용기, 일관성, 책임성 등을 표현하는, 그래서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문 전 대표가 오는 12일 광주에서 열릴 예정이던 대선후보 초청토론회에 불참하기로 한 것에 대해 비판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은 또 문 전 대표가 ‘사법시활 부활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데 대해 “과거의 기억을 버리고 국민이 원하는 바대로 젊은이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사법시험 존치로 입장을 전환하길 요청 드린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계층 이동의 새로운 기회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사법시험, 행정고시, 그리고 이미 사라진 외무고시 같은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문 전 대표는 지난 6일 노량진의 한 공무원 시험학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로스쿨을 만들었던 참여정부 사람으로서 이제 와서 다시 국가정책을 뒤집어 사법시험으로 되돌아가자고 하기 어려운 입장”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시장은 “참여정부 때 추진한 로스쿨 도입 때문에 곤란한 점도 있긴 하지만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사법시험 존치와 로스쿨과의 병존·병행을 요구하고 있다”며 “우수한 인재를 발탁하는 제도는 인류 시작 이래 계속 있어온 제도로 그게 무너진 시대는 사실 흥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특별한 사회인지 몰라도 그런 인재를 발탁하는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고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며 “이 사회의 마지막 정의를 담보하는 검사 임용절차가 지금처럼 누가 왜 임용됐는지도 모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시장은 자신을 ‘촛불민심의 대변자’로 지칭하며 “저 이재명은 개인이 아니라 이 나라의 무수저들 그분들의 열망을 대변한다”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의 영원한 스승으로 열심히 따라가려고 노력하되 거기에 갇히진 않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치열한 물음에 대한 도전

    ‘인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치열한 물음에 대한 도전

    “세계를 해석하는 일보다 세계를 변혁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믿었던 20대 청년은 50대 중반에 삶의 방향을 틀었다. 소장도서 6000여권이 넘는 자신의 서재에서 5년 동안 칩거하며 망치 대용으로도 쓸 법한 1200여쪽의 ‘벽돌책’ 한 권을 써냈다. 1980년대 운동권 이론가였던 홍일립(61·필명) 박사가 최근 펴낸 ‘인간 본성의 역사’(에피파니)다. 스스로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에는 상당한 인내가 요구될 것”이라고 말하는 책이다.책은 지난 2500년간 동서양이 탐구해 온 인간에 대한 사유가 거의 망라돼 있다. 수많은 이론들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기 다른 시대의 정치와 사회, 문화, 과학적 사유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한 주제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유를 담아낸 인문학 서적 상당수가 번역본인 국내 출판 현실에 비춰볼 때 보기 드문 도전적 저작이다. 공자, 맹자, 순자, 한비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동서양의 고대 사상가부터 마키아벨리, 데카르트, 홉스, 로크, 흄, 루소 등 서양 근대 초기의 철학자들을 거쳐 마르크스와 뒤르켐, 프로이트, 스키너 등 근현대 사회과학자, 찰스 다윈, 에드워드 윌슨, 스티븐 핑커,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제이 굴드 등 현대 생물과학 연구자들의 사유들이 첩첩이 포개져 있다.책은 포성이 울리는 전장(戰場)에서 쓴 양 치열한 ‘지적 난타전’의 흔적이 적지 않다. 1859년 ‘종의 기원’ 출간 이전의 인간에 대한 탐구들은 모두 가치를 상실했다고 단언한 생물학자 조지 심슨부터 핑커, 윌슨, 도킨스 등 ‘인간 본성의 과학’ 대열에 선 이들에 대한 저자의 전면적 반론이 흥미롭다. 그가 아우른 이론가만 459명. 참고문헌과 색인 분량은 100쪽을 넘는다. 지난 3일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 서재에서 만난 홍 박사는 “젊은 시절부터 늘 품고 있던 의문이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며 “간단한 논평이라도 쓸 생각으로 2011년부터 시작한 작업이 5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76학번인 그는 모교에서 예술사회학 박사를 했다. 스스로 교수나 직업적 학자의 삶을 추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적 열정으로 인간 본성(의 관념)에 대한 온갖 난해한 이론들을 고찰하고 풀어내고 싶었다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실존적 삶이 인간 본성에 대한 의문을 가중시킨 건 아닐까. 학생운동가→용접공→기업가→정치인을 거쳐 저술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다채로운 이력에 비춰보면 학술서로 위장한 일종의 자서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본명은 홍석기. 대학 졸업 후 마르크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겠다며 노동 현장에 투신했다. 20~30대의 7년을 경기도의 한 공단에서 용접공으로 살았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절망시킨다는 마르크스에 전적으로 동의했어요. 학생 운동이 도덕적 권위를 가진 시대였고, 노동자가 봉기하면 혁명도 가능하다고 믿었죠. 용접공으로 공장들을 전전하며 노동자들을 의식화하겠다는 생각에 푹 빠졌어요. 그런데 의식화 대상인 노동자들은 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면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라고 생각을 하더군요. 결국 계급 의식을 고양해 인간 본성을 바꿀 수 있다는 건 환상이고, 오만이라고 깨달았어요.” 그 시기의 생각은 책 4부에서 다룬 ‘마르크스의 휴머니즘’, ‘뒤르켐의 사회실재론’, ‘파레토의 비논리적 행위 이론’, ‘스키너의 행동주의’에 오롯이 담겼다. 정치 경험 역시 인간 본성에 한발 더 나가게 하지 않았을까. 김대중 정부 때 선거 전략가로 총선을 치렀고, 2002년 대선에도 깊이 관여했다. 노무현 대선 후보의 이론적 근거가 된 ‘영남 후보론’도 그의 작품이다. 노무현 후보 선대위 기획실장으로,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실무책임을 맡았다. 노 대통령 당선 후 정치권과 결별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1년간 연구 활동을 했다. “정치판에서 인간의 탐욕을 봤어요. 공인의 책무나 책임 윤리에 대한 성찰 없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치가 전도된 우리 사회의 실상을 느꼈어요. 학벌, 인맥, 지연으로 촘촘히 얽힌 고대 부족주의적인 정치·관료 문화를 보면서 우리의 공공 영역이 결코 정의롭지 않으며, 진보할 수 있을까 하는 좌절감이 컸습니다.” 정치 경험은 책 1부의 맹자와 순자의 성선·성악설부터 2부와 3부의 한비자와 마키아벨리, 홉스 등을 관통하는 인간 본성과 국가의 통제 담론, 루소의 ‘고상한 야만인’ 개념까지 두루 녹아 있다. 그가 30대 후반인 1993년 설립한 작은 회사는 현재 연 매출 2000억원의 상장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2010년 스스로 경영에서 물러나 저술가의 삶으로 뛰어든 홍 박사는 “읽어야 할 책과 자료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내가 쓴 글에 불만족스러워하면서 꾸준히 글쓰기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윈을 인용해 “우리의 신체에는 ‘비천한 기원의 흔적’에서부터 가장 고상한 높은 덕성까지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 있다”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확증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글을 썼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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