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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최성봉 23일째 냉동고 안치…매니저가 장례 치른다

    故최성봉 23일째 냉동고 안치…매니저가 장례 치른다

    시신을 인수할 유족이 나타나지 않아 ‘무연고 사망자’ 처지로 23일째 냉동고에 안치돼 있던 가수 고(故) 최성봉씨의 장례가 뒤늦게 치러질 예정이다. 14일 서울 강남구청 등에 따르면 최성봉의 전 매니저이자 측근인 A씨를 장례 주관자로 지정했다. A씨는 조만간 고인의 시신을 인계받아 사비로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A씨는 15일쯤 빈소를 마련하는 대로 팬들의 조문을 받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예정대로라면 발인은 16일 엄수된다. 고인이 숨진 채 발견된 날로부터 약 26일 만이다. 경찰에 따르면 고 최성봉은 지난달 20일 오전 9시 41분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 상황과 부검 결과 등을 토대로 타살 혐의점은 없다고 판단했다. 고 최성봉은 부검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시신을 인계하려는 유족이 나타나지 않아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됐다. 고인은 지난 2011년 tvN 오디션 프로그램 ‘코리아 갓 탤런트’ 출연해 3살 때 친부모에게 버림받아 보육원에 맡겨졌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생전 고 최성봉과 인연을 맺은 A씨가 직접 사비를 털어 장례를 치르기로 한 것이다.보건복지부는 지난 2020년부터 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전 고인과 가까웠던 친구나 지인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오는 9월 29일부터 시행되는 장사법 개정안 12조 2항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가 사망하기 전 장기적, 지속적 친분 관계를 맺은 사람은 희망하는 경우 장례의식을 주관할 수 있다. A씨는 “무연고자의 경우 시에서 무상으로 공동 장례를 치러주는 걸로 알고 있지만, 따로 팬들이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하루라도 만들어 주고 싶다”며 “외로웠던 아이라 그냥 보내기가 마음이 편치 않다. 잘못도 많이 했고 여론도 좋지 않지만, 그래도 오셔서 추모하고 싶은 분들은 오실 거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의붓딸 이어 친구까지 성폭행한 아빠…엄마는 알고도 ‘묵인’

    의붓딸 이어 친구까지 성폭행한 아빠…엄마는 알고도 ‘묵인’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딸을 보호하지 않은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친모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청주지법 형사2단독 안재훈 부장판사는 13일 친모 A(55)씨에 대해 “피고인은 마땅히 이행할 보호자의 의무를 방기하고 오히려 수사기관의 수사를 방해하는 등 납득이 되지 않는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 등에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12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아동관련 기관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A씨는 2020년 딸 B양이 새 남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뒤 이듬해 자살을 2차례 시도했음에도 딸을 보호하지 않는 등 양육을 소홀히 한 혐의를 받는다.A씨는 친딸이 의붓아버지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실을 알고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고 기본적인 보호와 양육, 치료 등을 소홀히했다. 또 친딸과 함께 조사에 응하라는 경찰의 요구를 회피하거나, 친딸의 경찰 조사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A씨는 재판에서 “남편이 그런 짓을 할 줄 몰랐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새 남편은 의붓딸 B양도 모자라 그 친구까지 성폭행해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한편 B양과 친구는 2021년 5월 12일 오후 5시쯤 청주시 오창읍 창리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 숨졌다. 두 여학생은 숨지기 전 경찰에서 성범죄와 아동학대 피해자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 “자기결정권 줘야” vs “호스피스 병행을”… 국가기관 첫 주도 ‘조력사망’ 열띤 토론

    “자기결정권 줘야” vs “호스피스 병행을”… 국가기관 첫 주도 ‘조력사망’ 열띤 토론

    ‘죽음 선택권 부여법’ 80% 찬성환자에게 선택지 주는 것이 맞아고통 탓인지 자살 욕구인지 모호신약에 조력사망 보류 사례 있어 의사조력사망 합법화에 대한 정부 기관 주도의 토론회가 처음으로 1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최됐다.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관계 기관이 더 적극적으로 공론화에 나서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찬성 측에서는 최근 조력사망에 대한 높은 찬성률을 근거로 관계 기관이 제도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최근 언론에 보도된 의사·국회의원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관계 기관의 찬성률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젠 정부나 의료계, 종교계 등의 태도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서울신문이 한국의료윤리학회·한국정신종양학회·대한노인병학회의 도움을 받아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215명)의 절반(50.2%)이 조력사망 도입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회의원 100명 중 87명, 국민의 81%가 조력사망 법제화에 찬성했다.<서울신문 7월 12일자 1·8·9면> 윤 교수는 “영국과 스웨덴 등에서도 약 50~60%의 의사가 조력사망에 찬성하고 있다”며 “국내 의사들도 조력사망에 대한 생각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협회 등이 자체 조사에 나서 회원들의 정확한 입장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기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조력존엄사법 입법에 참여한 이정효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실 보좌관은 “조력존엄사법은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에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는 법률”이라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80% 수준이 지속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국민이 찬성하고 있다는 증거다. 선택지를 주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조력사망 제도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팽팽히 맞섰다. 김율리 도쿄대 사생학·생명윤리 박사는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한 나라들은 처음에는 제한적으로 허용하다가 점차 청소년과 어린이까지 범위를 확대해 나갔다”며 “지금은 정신적 고통, 고령과 장애 등도 허용하고 있는데 극심한 고통 때문인지, 일종의 자살 욕구 때문에 조력자살을 원하는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은호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은 높은 찬성률을 보인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표면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일반인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추상적인 생각으로 찬성 의견을 표명했을 것”이라며 “신약 개발에 희망을 갖고 조력사망을 보류한 외국 사례도 있어 죽음보다는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력사망이 호스피스·완화의료와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지효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은 “조력자살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선택 가능한 여러 대안 중 하나가 돼야 한다”면서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먼저 완비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는 스스로 삶을 종결하고자 하는 환자의 가치관이나 철학에 완전히 부합하는 제도라고 볼 수 없으므로 조력사망 제도와 병렬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인권위에는 도입을 권고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해 달라는 민원이 모두 접수된 상태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토론회를 시작으로 조력존엄사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라며 “매년 실시하는 인권의식실태조사에 올해부터 ‘조력존엄사’와 ‘적극적 안락사’에 관한 항목을 반영했다. 필요하다면 별도의 실태조사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이재명 “尹 처가 고속도로 게이트 국정조사”… 김기현 “민주 자살골”

    이재명 “尹 처가 고속도로 게이트 국정조사”… 김기현 “민주 자살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서울~양평 고속도로 논란의 본질은 “대통령 처가의 고속도로 게이트”라며 정부·여당에 국정조사를 공식 제안했다. 방미 중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똥볼’을 찬 민주당의 사과가 사업 재개에 선행돼야 한다”고 맞섰고, 윤재옥 원내대표도 곧바로 이 대표의 제안을 일축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속도로 변경은 대통령의 공약이자 주요 국정 사무인 만큼 왜, 누가, 어떤 경위로 종점을 바꿨는지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국정조사에 불응하는 것은 고속도로 종점을 옮기는 것이 부당하고 불법적인 행위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제안에 “국정조사는 조자룡의 헌 칼 쓰듯 마구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전주혜 원내대변인)라고 비판하며 사업 백지화의 책임을 민주당으로 돌리는 데 집중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요구한 것은 정쟁을 확대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출석하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오는 17일에 열린다고 언급하며 “문제를 제기할 것이 있으면 그때 충분히 하고, 소명할 건 소명한다는 게 우리 당 입장”이라고 했다. 원 장관도 페이스북에 “(이 대표가) 국정조사를 악용해 ‘합법적 거짓과 선동의 판’을 총선 전까지 끌고 가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사과가 사업 재개의 전제 조건임도 재확인했다. 김 대표는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들을 만나 “문제를 풀게 어디 있나. 가만 놔둬도 (민주당의) 자살골”이라며 “사고 친 사람이 사과부터 해야 한다. 잘나가던 사업에 왜 찬물을 끼얹느냐”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이철규 사무총장은 “(노선 변경은) 2년 전에 당시 군수가 중앙정부에 건의해 반영시키겠다고 했던 것”이라며 “심지어 당시 군수는 자기 부인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와 선후배 관계라 (노선 변경이) 반영 가능하다고 생색냈던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은 현재 구성된 ‘원안 추진위원회’와 ‘특혜 의혹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를 통합해 ‘대통령 처가 고속도로 게이트 진상규명 특위’를 띄우는 등 대정부 공세 수위를 바짝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설훈 민주당 의원은 원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민주당 경기도당은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원 장관을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조력사망 토론회서 시민들도 찬반 팽팽...“악용 소지” vs “존엄한 죽음”

    국가인권위원회가 12일 개최한 조력존엄사 토론회에서는 30여명의 시민들도 참석해 조력사망 입법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들은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찬성 측은 반대 측이 사용하는‘조력자살’이란 용어가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수원에서 온 유진숙씨는 “‘자살’이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느낌이 크게 든다”며 “내 고통을 가족들이 함께 공감해주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라는 의미가 담긴 존엄사로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조력사망 제도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또 다른 시민은 “한 개인의 죽음에 심사위원, 의사 등 너무 많은 사람이 개입하는 게 과연 우리 사회 건강에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고통스럽게 죽는 사람을 위한 선한 입법을 준비한다고 하지만 법이 누군가의 죽음에 관여할 수 있는 폭을 넓혀 놓으면 악용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은 이번 토론회의 논의가 한정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강원도 춘천에서 온 김모씨는 “인권적으로 어떻게 논의될 지 많은 기대를 하고 왔는데 실망이 크다”면서도 “해외에서는 적극적 안락사와 조력자살이 함께 시행되는 곳이 있다. 무엇이 더 환자를 위한 방법인지도 추가 연구를 부탁드린다”고 제안했다. 일부 시민들은 토론이 끝나고 전문가들에게 다가가 미처 묻지 못한 질문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결국 활발한 논의를 위해선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공론장에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도 “정부는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고 논의를 피하고 국회도 시민사회 눈치를 보느라 나서는 주체가 없다”며 “그런 상황에서 해결주체는 결국 시민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존엄사를 합법화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시민들”이라며 “이번 법안을 디딤돌 삼아 존엄사에 대한 운동을 지속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 인권위 첫 조력사망 토론회…찬반 양론 속 공론화 필요성 한 목소리

    의사조력사망 합법화에 대한 정부 기관 주도의 토론회가 처음으로 1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최됐다.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관계 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공론화에 나서야 한다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찬성 측에서는 최근 조력사망에 대한 높은 찬성률을 근거로 관계 기관이 제도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최근 언론에 보도된 의사와 국회의원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관계 기관의 찬성률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젠 정부나 의료계, 종교 등의 태도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서울신문이 한국의료윤리학회·한국정신종양학회·대한노인병학회의 도움을 받아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215명)의 절반(50.2%)이 조력사망 도입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회의원 100명 중 87명, 국민의 81%가 조력사망 법제화에 찬성했다.<서울신문 7월 12일자 1·8·9면> 윤 교수는 “영국과 스웨덴 등에서도 약 50~60%의 의사가 조력사망에 찬성하고 있다”며 “국내 의사들도 조력사망에 대한 생각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협회 등이 자체 조사에 나서 회원들의 정확한 입장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기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조력존엄사법 입법에 참여한 이정효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실 보좌관은 “조력존엄사법은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법률”이라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80%의 수준이 지속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국민들이 찬성하고 있다는 증거다. 선택지를 주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조력사망 제도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팽팽히 맞섰다. 김율리 도쿄대 사생학·생명윤리 박사는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한 나라들은 처음에는 제한적으로 허용하다가 점차 청소년과 어린이까지 범위를 확대해 나갔다”며 “지금은 정신적 고통, 고령과 장애 등도 허용하고 있는데 극심한 고통 때문인지, 일종의 자살 욕구 때문에 조력자살을 원하는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은호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은 높은 찬성률을 보인 국민 여론조사의 결과를 표면적으로만 봐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일반인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추상적인 생각으로 찬성 의견을 표명했을 것”이라며 “신약 개발에 희망을 갖고 조력사망을 보류한 외국 사례도 있어 죽음보다는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력사망이 호스피스·완화의료와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지효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은 “조력자살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선택 가능한 여러 대안 중 하나가 돼야 한다”면서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먼저 완비되어야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는 스스로 삶을 종결하고자 하는 환자의 가치관이나 철학에 완전히 부합하는 제도라고 볼 수 없으므로 조력사망 제도와 병렬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인권위에는 도입을 권고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해 달라는 민원이 모두 접수된 상태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토론회를 시작으로 조력존엄사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라며 “매년 실시하는 인권의식실태조사에 올해부터 ‘조력존엄사’와 ‘적극적 안락사’에 관한 항목을 반영했다. 필요하다면 별도의 실태조사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김기현 “민주당 자살골” vs 이재명 “尹처가 게이트 국정조사”

    김기현 “민주당 자살골” vs 이재명 “尹처가 게이트 국정조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의 본질은 “대통령 처가의 고속도로 게이트”라며 정부·여당에 국정조사를 공식 제안했다. 방미 중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똥볼’을 찬 민주당의 사과가 사업 재개에 선행돼야 한다”고 맞섰고, 윤재옥 원내대표도 곧바로 이 대표의 제안을 일축했다.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속도로 변경은 대통령의 공약이자 주요 국정 사무인 만큼 왜, 누가, 어떤 경위로 종점을 바꿨는지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국정조사를 불응하는 것은 고속도로 종점을 옮기는 것이 부당하고 불법적인 행위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제안에 “국정조사는 조자룡의 헌 칼 쓰듯 마구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전주혜 원내대변인)고 비판하고 사업 백지화의 책임을 민주당으로 돌리는 데 집중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요구한 것은 정쟁을 확대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어 오는 17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출석하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열린다고 언급하고 “문제를 제기할 것이 있으면 그때 충분히 하고, 소명할 건 소명한다는 게 우리 당 입장”이라고 했다. 원 장관도 페이스북에 “(이 대표가) 국정조사를 악용해 ‘합법적 거짓과 선동의 판’을 총선 전까지 끌고 가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사과가 사업재개의 전제 조건임도 재확인했다. 김 대표는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기자들을 만나 “문제를 풀게 어디 있나. 가만 놔둬도 (민주당의) 자살골”이라며 “사고 친 사람이 사과부터 해야 한다. 잘 나가던 사업에 왜 찬물을 끼얹나”라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이철규 사무총장은 “(노선변경은) 2년 전에 당시 군수가 중앙정부에 건의해 반영시키겠다고 했던 것”이라며 “심지어 당시 군수는 자기 부인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와 선후배 관계라 (노선 변경이) 반영 가능하다고 생색냈던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은 현재 구성된 ‘원안 추진위원회’와 ‘특혜 의혹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를 통합해 ‘대통령 처가 고속도로 게이트 진상규명 특위’를 띄우는 등 대정부 공세 수위를 바짝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이날 설훈 민주당 의원은 원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민주당 경기도당은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원 장관을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이재명 “대통령 처가 고속도로 게이트 점입가경”

    이재명 “대통령 처가 고속도로 게이트 점입가경”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2일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과 관련해 “여당과 정부에 당당하게 공식적으로 요청한다. 국정조사를 시작하자”고 촉구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대통령 처가 고속도로 게이트가 점입가경”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표는 “대통령 처가 고속도로 게이트의 진상을 은폐하려는 윤석열 정권의 거짓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며 “양평군 요청으로 고속도로 종점이 변경됐다는 정부의 해명이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올해 2월까지도 양평군은 종점 변경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변경안은 인수위(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기 국토교통부의 자체 용역을 통해서 마련됐고, 양평군에 제안한 것도 국토부였다고 한다”며 “인수위 1호 과제가 대통령 처가 특혜 몰아주기였느냐”라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예타(예비타당성조사)까지 통과한 고속도로 종점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대통령 처가 땅 근처로 바뀌었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많은 말들 쏟아내고 있지만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하다면 당당하게 그 경과를 밝히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왜 고속도로 위치를, 종점을 바꾸었는지 구체적이고 상세한 경과와 사실을 조사해야 한다”며 “(국정조사 요구에 대한) 대통령의 답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회의 종료 전 마무리 발언에서 “고속도로 종점을 옮긴 것이 문제가 있으면 전문가들이 다 점검하고 인정한 대로 원래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 그런데 왜 백지화를 하느냐”며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 호박에 말뚝 박거나 그런 심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이 대표는 “그야말로 국정을 놀부식 심통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며 “국정은 장난이 아니다. 놀부 심술을 부리듯이, 장난하듯이 이랬다저랬다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서울-양평 고속도로 관련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 감사원의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감사보고서 위법성 논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현안 질의를 위해 오는 14일 국회 운영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이번 논란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자살골”이라며 “‘똥볼’을 찬 민주당의 사과가 사업 재개에 선행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김기현 대표는 11일(현지시각) 양평고속도로 논란 해법에 대한 기자들 질문에 “(우리가) 풀 게 어디 있나. 가만 놔둬도 (민주당의) 자살골”이라며 “사고 친 사람이 사과부터 해야 한다. 잘 나가던 사업에 왜 찬물 끼얹나”라고 답했다. 방미 대표단원인 이철규 사무총장도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게 그들의 목적인데, 자충수를 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똥볼’을 차서 김부겸만 소환시켰다”고 꼬집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정동균 전 양평군수, 유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일가 등이 민주당이 주장하는 고속도로 ‘원안 노선’ 주변의 땅을 매입했다는 언론 보도를 거론한 것이다.
  • 스위스 조력자살 동행한 가족… 방조죄 적용 가능해도 처벌은 어려워[금기된 죽음, 안락사③]

    스위스 조력자살 동행한 가족… 방조죄 적용 가능해도 처벌은 어려워[금기된 죽음, 안락사③]

    <3> 합법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디까지 ‘방조’로 볼까생명권 주체 스스로 임종 선택 동행 ‘방조 가담’ 기소 사례 없어 임종을 앞두고 스위스로 가 조력자살을 하기로 결심한 말기 환자가 마지막까지 망설이는 대목은 동행인이다. 자신의 의지로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하겠다고 내린 결정이지만 행여나 동행한 가족이 자살방조죄(형법 제252조 2항)로 처벌받게 될까 봐 ‘가족 모르게’ 떠나려는 이들도 있다. 11일 현재 스위스에서 조력자살로 숨진 한국인은 1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동행인이 한국으로 돌아와 기소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 조사를 받은 사례는 있으나 검찰 단계에서 기소되진 않았다. 실제 스위스 조력자살에 가족이나 지인이 따라간 경우 자살방조죄로 처벌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전문가 다수는 현행법상 자살방조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순수하게 동행한 가족이나 지인을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고 봤다. 자살방조의 고의성이 있거나 사회 정의를 해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조력자살이 합법화된 나라로 가서 이를 시행한다면 한국인에게 자살방조죄가 적용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은 하다’. 형법이 속지주의뿐 아니라 속인주의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마리화나가 합법인 나라에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한국으로 들어오면 처벌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관건은 어디까지를 ‘방조’로 볼 수 있느냐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방조에는 ‘총·칼 등 자살 도구를 빌려주거나 조언·격려를 하는 등 적극적·소극적·물질적·정신적 방법’이 모두 포함된다.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가족이 조력자살 임종에 동행하는 일조차 자살방조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존엄사를 위해 본인이 스스로 택한 임종 행위를 자살로 간주해 형법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재련 변호사는 “현행법상 동행도 자살방조죄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지만 이를 존엄사에 동행한 가족에게 적용하려는 것은 생명권의 주체인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므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의 적극성을 띠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동행만으로 기소와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연명의료결정제도 마련의 계기가 된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에서 김 할머니 측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신현호 변호사는 “죄가 되려면 고의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입증하기가 어렵고, 설령 자살방조가 된다고 해도 사회 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행위는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해 처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조력자살과 관련해 기소된 사례가 없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족이나 친구가 따라간 것만으로는 이들이 의사의 조력자살 ‘방조 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검찰 역시 이를 자살방조죄로 기소했을 때 국가가 얻을 공공의 선이 과연 무엇인가를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존엄사의 한 방법으로 이뤄지는 조력자살에 대한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살방조죄 적용 문제를 해소하려면 일차적으로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게 중요하다. 남준희 변호사는 “현 상태에서 기소가 되면 오히려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위헌법률 심판을 통해 자살방조죄가 폐지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조력사망을 허용하도록) 현행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조력자살을 금지한 법령에 잇따라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법이 바뀌는 추세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위스에서 조력자살한 외국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독일은 이를 막겠다고 2015년 자살관여죄를 신설했으나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 2020년 이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승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유럽 각국의 헌법재판소에서 자기결정권으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헌법재판소에서 먼저 나서면 좋을 것 같다”면서 “법원이나 헌재의 판단을 통해 사회적 논의가 시작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부 유영규 부장, 신융아·이주원 기자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해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 [단독] 의사들 생각도 변화… “환자가 죽음 원하면 도울 수 있다”[금기된 죽음, 안락사③]

    [단독] 의사들 생각도 변화… “환자가 죽음 원하면 도울 수 있다”[금기된 죽음, 안락사③]

    <3> 합법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사·국민 설문조사 분석 절반의 찬성. 의사조력사망 도입에 대한 의사 찬성률 50%는 국민 찬성률 81%와 비교해 얼핏 낮아 보이는 수치다. 하지만 그동안 의사협회의 반대 성명 등을 통해 존엄사 문제에 관해 의사들이 보여 온 보수적인 태도를 고려하면 매우 전향적인 인식의 변화다.서울신문이 지난 4월 2일부터 한 달간 진행한 의사 대상 설문조사에서 응답자(215명)의 66%는 ‘회생이 어렵고 통증이 심한 환자에게 의사조력사망 또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의사 두 명 중 한 명(50.2%)은 현시점에 우리나라 의사조력사망을 도입하는 데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대한다’는 41.4%였으며 ‘잘 모르겠다’는 답변은 8.4%에 그쳤다. 이번 조사 결과는 이전에 진행된 설문조사와 비교해 의사조력사망 도입에 대한 의사들의 찬반 기류가 크게 달라진 것을 보여 준다. 앞서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가 2008년 국립암센터에 있을 당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암 전문의 303명 중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조력사망)에 동의한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8.3%와 6.3%에 불과했다. 2016년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크게 증가해 의사 928명 중 35.5%와 27.3%가 각각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에 동의한다는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반대 기류가 강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조력사망에 대한 찬성 비율이 20% 포인트 이상 증가하면서 반대 비율보다 높아졌다. 특히 이번 조사에 참여한 의사들의 절반 이상은 제도 도입에 찬성할 뿐만 아니라 환자가 조력사망을 요청하면 자신이 의사로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답했다(50.7%). 환자의 죽음을 돕는 것은 의사의 역할이 아니라고 여기던 의사들의 생각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고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국내 의사들도 조력사망에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한다. 윤 교수는 한국 의사들의 이 같은 응답 결과가 최근 세계적 흐름과도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실제 2020년 영국의사협회가 의사 15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2만 8986명)의 50%가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법 개정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영국 의사들은 또 의사협회가 조력사망 허용을 위한 법 개정을 ‘지지해야 한다’는 데 40%가 찬성했다. ‘반대해야 한다’는 의견은 33%였다.윤 교수는 “조력사망에 반대 입장을 보였던 영국의사협회는 여론 조사 결과를 확인한 뒤 협회의 공식 입장을 반대에서 중립으로 바꿨다”면서 “이번 조사 결과에서 보듯 우리 의사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는데 의사협회가 이를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응답자가 속한 병원의 규모나 말기 환자를 보는 정도에 따라 답변의 차이는 있었다. 이는 같은 의사라 하더라도 말기 환자를 맡아 본 경험에 따라 조력사망 제도를 바라보는 깊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1차 병원 소속과 개원 전문의, 일반의 응답자는 의사조력사망 찬성 비율이 각각 67.2%, 64.7%, 64%로 높게 나타난 데 비해 3차 병원 소속과 대학교원은 반대 비율이 각각 55.6%, 56%로 찬성보다 높았다. 즉 말기 환자를 더 많이 만나 본 의사들이 조력사망 도입에 대해 더 보수적으로 답한 것이다. 한국의료윤리학회 윤리위원장인 조성준 강원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개원의는 임종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 과정에 참여할 일이 거의 없지만 3차 병원과 대학병원 의사들은 말기 돌봄과 의료복지 제도가 여전히 부족하고 연명의료 결정 제도도 제대로 정착하지 않은 현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조력사망 제도가 도입되면 환자가 쉽게 삶을 포기하도록 사회적 압력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의사조력사망 찬성 이유도 주목할 만하다. 의사와 국민은 모두 ‘자기 결정권 보장’(각각 44.4%, 29%)을 찬성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는데, 이는 그만큼 현실에서 환자가 자기 결정권을 갖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예컨대 ‘한국 사회가 죽음을 엄숙하고 존엄하게 맞이할 여건이 갖추어진 사회라는 데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에 의사의 77.2%와 국민 46.9%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두 그룹 모두 같은 비율로 ‘연명의료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다’(32.5%)는 것이었다. ‘각자도사 사회’의 저자 송병기 의료인류학자는 국민 여론조사에서 나이에 따라 조력사망 찬성 이유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점에 주목했다. 비교적 건강한 상태인 만 19세부터 40대까지는 ‘자기 결정권 보장’을 주요하게 꼽았지만 지인이나 가족의 돌봄에 관여하거나 투병을 경험하게 되는 50대부터는 ‘병으로 인한 고통 경감’, ‘편안한 임종’, ‘가족의 정신적·경제적 부담 경감’ 등을 골고루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자기 결정권만으로 말기 돌봄과 죽음을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죽음에 관한 판단은 각자의 연령과 처한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국민에게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도 ‘임종 시기와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35.6%)이라는 답변이 가장 높게 나왔지만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24.8%), ‘가족 등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고 가는 것’(20.5%) 역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70세 이상 응답자는 ‘가족 등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고 가는 것’(34.3%)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조 교수는 환자의 임종 과정에서 자신의 결정 외에 ‘가족 결정권’이 강하게 작용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자기 결정권의 개념이 대중에게 충분히 스며들지 않아 연명의료 결정 제도를 실행하는 것조차 많은 어려움이 있다. 조력존엄사의 전면적 도입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의사조력사망에 반대하는 이유로 국민은 ‘종교적·윤리적 신념에 위배’(41.9%)를 가장 먼저 꼽았다. 반면 의사들은 ‘돌봄 및 의료복지 강화가 우선’(25.8%), ‘오·남용 우려’(24.7%), ‘사회적 논의 부족’(21.3%) 등 사회적 시스템에 관한 우려를 주로 내세웠다. 의사들은 ‘의사조력사망 제도 등 존엄한 죽음에 관한 사회적 논의 확대’(41.9%)가 가장 시급하다고 봤다. 그 밖에 ‘활발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10.0%),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다’(8.9%),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7.8%) 등의 의견도 주관식 문항에 남겼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 80% 찬성률이 나왔다고 해도 젊은 사람들의 경우 죽음에 대한 의식이나 이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청소년기부터 죽음에 대한 교육을 시작하고 현재의 연명의료 결정 제도를 더 발전시켜 나가면서 조력 죽음까지 논의를 점차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해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 “존엄사, 국민생사 결정할 민생법안… 아시아 선도해야 할 때”[금기된 죽음, 안락사③]

    “존엄사, 국민생사 결정할 민생법안… 아시아 선도해야 할 때”[금기된 죽음, 안락사③]

    <3> 합법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첫 조력존엄사법 발의한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이 멀리 있다고들 생각하는데,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요. 선진국들은 이미 인권의 관점에서 조력자살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시아권에선 우리가 존엄사를 선도할 때가 됐어요.” ●어머니 임종 지켜보며 필요성 느껴 한국에서 처음으로 의사조력사망을 허용하자는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한 안규백(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일 “이 법이야말로 국민의 생사를 결정짓는 민생 법안”이라며 국회의원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서울신문 설문조사에서 국회의원 응답자의 87%가 조력존엄사 입법화에 찬성 의견을 밝힌 것에 대해 안 의원은 “국민과 국회의원의 인식이 다르지 않다”면서 “실은 찬성 비율이 더 나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의료계·종교계의 반대 여론을 의식해 참여하지 않은 의원이 많다는 얘기다. 안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로 발의한 조력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보면 ▲말기 환자이면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으며 ▲자신의 의사로 조력사망을 희망하는 등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조력사망 신청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대상자로 결정된 뒤 그로부터 1개월 지나거나 본인이 담당 의사 등 전문의 2명에게 의사를 표시하면 조력사를 이행할 수 있다. 이 법안에는 민주당 의원 10명과 국민의힘 의원 1명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안 의원은 2017년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이 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당시 구순이 넘은 어머니는 임종을 앞두고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고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병원에서도 더는 안 되겠다고 하고 어머니도 집에 가서 끝내고 싶다고 했지만, 정작 병원에서는 어머니를 보내 주지 않았다. 영양분을 억지로라도 공급하지 않으면 자칫 소극적 안락사로 간주돼 병원이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안 의원은 “본인도, 가족도 괴로운 상황을 지켜보며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살 미화 아닌 죽음도 귀하다는 뜻 안 의원은 법안을 내며 의사조력사망 제도를 두고 ‘조력존엄사’라고 이름 붙였다. ‘존엄사’라는 표현이 자살을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그는 “혹자는 자살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삶이 존귀하므로 죽음도 아주 소중하고 귀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만 현재 발의된 법안대로라면 그 대상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암처럼 단계가 뚜렷한 질환이 아니면 존엄사의 취지대로 적용받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고통은 심하지만 기대 여명을 예측하기 어려운 마비 환자나 말기 질환은 없었지만 104세에 죽음을 앞두고 스위스로 가 조력사망한 호주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 같은 경우다. 안 의원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처음에는 최대한 촘촘히 짜서 시작한 다음 차츰 넓혀 나가야 할 것”이라며 “현 단계에선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정기국회를 앞두고 전방위적으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이해를 구해 계류 중인 법안이 최대한 빨리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는 게 1차 목표다. 그는 “어떤 법이든 양과 음이 있고 찬성과 반대가 있겠지만 국리민복과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좋겠다”면서“국민 80% 이상이 찬성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를 지렛대 삼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해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 “조력존엄사, 국민의 생사 결정짓는 민생 법안” 안규백 의원 인터뷰 [금기된 죽음, 안락사]

    “조력존엄사, 국민의 생사 결정짓는 민생 법안” 안규백 의원 인터뷰 [금기된 죽음, 안락사]

    국내 첫 ‘조력존엄사법’ 발의 안규백 의원어머니 임종 지켜보며 법 필요성 절감“적용 대상 까다로워야 부작용 최소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요. 선진국들은 이미 인권의 관점에서 조력자살을 인정하고 있는데, 아시아권에선 우리가 존엄사를 선도할 때가 됐어요.”한국에서 처음으로 의사조력사망을 허용하자는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한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일 “이 법이야말로 국민의 생사를 결정짓는 민생 법안”이라며 국회의원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서울신문 설문조사에서 국회의원 응답자의 87%가 조력존엄사 입법화에 찬성 의견을 밝힌 것에 대해 안 의원은 “국민과 국회의원의 인식이 다르지 않다”면서 “실은 찬성 비율이 더 나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의료계·종교계의 반대 여론을 의식해 참여하지 않은 의원이 많다는 얘기다. 안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로 발의한 조력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보면 ▲말기 환자이면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으며 ▲자신의 의사로 조력사망을 희망하는 등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조력사망 신청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대상자로 결정된 뒤 그로부터 1개월 지나거나 본인이 담당 의사 등 전문의 2명에게 의사를 표시하면 조력사를 이행할 수 있다. 이 법안에는 민주당 의원 10명과 국민의힘 의원 1명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안 의원은 2017년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이 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당시 구순이 넘은 어머니는 임종을 앞두고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고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병원에서도 더는 안 되겠다고 하고 어머니도 집에 가서 끝내고 싶다고 했지만, 정작 병원에서는 보내 주지 않았다. 영양분을 억지로라도 공급하지 않으면 자칫 소극적 안락사로 간주돼 병원이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안 의원은 “본인도, 가족도 괴로운 상황을 지켜보며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법안을 내며 의사조력사망 제도를 ‘조력존엄사’라고 이름 붙였다. ‘존엄사’라는 표현이 자살을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그는 “혹자는 자살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삶이 존귀하므로 죽음도 아주 소중하고 귀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만 현재 발의된 법안대로라면 그 대상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암처럼 단계가 뚜렷한 질환이 아니면 존엄사의 취지대로 적용받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고통은 심하지만 기대 여명을 예측하기 어려운 마비 환자나 말기 질환은 없었지만 104세에 죽음을 앞두고 스위스로 가 조력사망한 호주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 같은 경우다. 안 의원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처음에는 최대한 촘촘히 짜서 시작한 다음 차츰 넓혀 나가야 할 것”이라며 “현 단계에선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정기국회를 앞두고 전방위적으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이해를 구해 계류 중인 법안이 최대한 빨리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는 게 1차 목표다. 그는 “어떤 법이든 양과 음이 있고 찬성과 반대가 있겠지만, 국리민복과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좋겠다”면서 “국민 80% 이상이 찬성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를 지렛대 삼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 [단독]의사 절반 “조력사망 찬성”…“한국, 존엄한 죽음 맞이하기 어려워”[금기된 죽음, 안락사]

    [단독]의사 절반 “조력사망 찬성”…“한국, 존엄한 죽음 맞이하기 어려워”[금기된 죽음, 안락사]

    국민 81%·의사 50% ‘조력사망 도입’ 찬성“환자 요청하면 조력사망 도움도 줄 수 있다”2008년 6%, 2016년 27%에서 증가 추세의사 41% 반대…“말기환자 경험따라 차이”英의협, 절반 찬성에 ‘반대→중립’ 입장 변화 절반의 찬성. 의사조력사망 도입에 대한 의사 찬성률 50%는 국민 찬성률 81%와 비교해 얼핏 낮아 보이는 수치다. 하지만 그동안 의사협회의 반대 성명 등을 통해 존엄사 문제에 관해 의사들이 보여 온 보수적인 태도를 고려하면 매우 전향적인 인식의 변화다. 서울신문이 지난 4월 2일부터 한 달간 진행한 한국의료윤리학회·한국정신종양학회·대한노인병학회 소속 의사 대상 설문조사에서 응답자(215명)의 66%는 ‘회생이 어렵고 통증이 심한 환자에게 의사조력사망 또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의사 두 명 중 한 명(50.2%)은 현 시점에 우리나라 의사조력사망을 도입하는 데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대한다’는 41.4%였으며, ‘잘 모르겠다’는 답변은 8.4%에 그쳤다. 이번 조사 결과는 이전에 진행된 설문조사와 비교해 의사조력사망 도입에 대한 의사들의 찬반 기류가 크게 달라진 것을 보여 준다. 앞서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가 2008년 국립암센터에 있을 당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암 전문의 303명 중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조력사망)에 동의한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8.3%와 6.3%에 불과했다. 2016년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크게 증가해 의사 928명 중 35.5%와 27.3%가 각각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에 동의한다는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반대 기류가 강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조력사망에 대한 찬성 비율이 20%포인트 이상 증가하면서 반대 비율보다 높아졌다. 특히 이번 조사에 참여한 의사들의 절반 이상은 제도 도입에 찬성할 뿐만 아니라, 환자가 조력사망을 요청하면 자신이 의사로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답했다(50.7%). 환자의 죽음을 돕는 것은 의사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의사들의 생각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고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국내 의사들도 조력사망에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한다.윤 교수는 한국 의사들의 이같은 응답 결과가 최근 세계적 흐름과도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실제 2020년 영국의사협회가 의사 15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2만 8986명)의 50%가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법 개정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영국 의사들은 또 의사협회가 조력사망 허용을 위한 법 개정을 ‘지지해야 한다’에 40%가 찬성했다. ‘반대해야 한다’는 의견은 33%였다. 윤 교수는 “조력사망에 반대 입장을 보였던 영국의사협회는 여론 조사 결과를 확인 한 뒤 협회의 공식 입장을 반대에서 중립으로 바꿨다”면서 “이번 조사 결과에서 보듯 우리 의사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는데 의사협회가 이를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의협 차원에서 전체 의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3차병원·대학교원 의사는 반대 더 많아“연명의료 결정제도 안착도 어려운 현실” 다만 응답자가 속한 병원의 규모나 말기 환자를 보는 정도에 따라 답변의 차이는 있었다. 이는 같은 의사라 하더라도 말기 환자를 맡아 본 경험에 따라 조력사망 제도를 바라보는 깊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1차 병원 소속과 개원 전문의, 일반의 응답자는 의사조력사망 찬성 비율이 각각 67.2%, 64.7%, 64%로 높게 나타난 데 비해, 3차 병원 소속과 대학교원은 반대 비율이 각각 55.6%, 56%로 찬성보다 높았다. 즉 말기 환자를 더 많이 만나 본 의사들이 조력사망 도입에 대해 더 보수적으로 답한 것이다. 한국의료윤리학회 윤리위원장인 조성준 강원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개원의는 임종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 과정에 참여할 일이 거의 없지만, 3차 병원과 대학병원 의사들은 말기 돌봄과 의료복지 제도가 여전히 부족하고 연명의료 결정 제도도 제대로 정착하지 않은 현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조력사망 제도가 도입되면 환자가 쉽게 삶을 포기하도록 사회적 압력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한다”고 설명했다. 연령 따라 ‘고통·가족 부담 경감’ 등 이유 다양“자기 결정권만으로 돌봄과 임종 대비 어려워”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의사조력사망 찬성 이유도 주목할 만하다. 우선, 의사와 국민은 모두 ‘자기 결정권 보장’(각각 44.4%, 29%)을 찬성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는데, 이는 그만큼 현실에서 환자가 자기 결정권을 갖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예컨대 ‘한국 사회가 죽음을 엄숙하고 존엄하게 맞이할 여건이 갖추어진 사회라는 데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에 의사 77.2%와 국민 46.9%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두 그룹 모두 같은 비율로 ‘연명의료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다’(32.5%)는 것이었다.‘각자도사 사회’ 저자 송병기 의료인류학자는 국민 여론조사에서 나이에 따라 조력사망 찬성 이유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점에 주목했다. 비교적 건강한 상태인 만 19세부터 40대까지는 ‘자기 결정권 보장’을 주요하게 꼽았지만, 지인이나 가족의 돌봄에 관여하거나 투병을 경험하게 되는 50대부터는 ‘병으로 인한 고통 경감’, ‘편안한 임종’, ‘가족의 정신적·경제적 부담 경감’ 등을 골고루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자기 결정권만으로 말기 돌봄과 죽음을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죽음에 관한 판단은 각자의 연령과 처한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국민에게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도 ‘임종 시기와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35.6%)이라는 답변이 가장 높게 나왔지만,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것’(24.8%), ‘가족 등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고 가는 것’(20.5%) 역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70세 이상 응답자는 ‘가족 등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고 가는 것’(34.3%)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조 교수는 환자의 임종 과정에서 자신의 결정 외에 ‘가족 결정권’이 강하게 작용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자기 결정권의 개념이 대중에게 충분히 스며들지 않아 연명의료 결정 제도를 실행하는 것 조차 많은 어려움이 있다. 조력존엄사의 전면적 도입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조력사망에 반대하는 이유로 국민은 ‘종교적·윤리적 신념에 위배’(41.9%)를 가장 먼저 꼽았다. 반면 의사들은 ‘돌봄 및 의료복지 강화가 우선’(25.8%), ‘오·남용 우려’(24.7%), ‘사회적 논의 부족’(21.3%) 등 사회적 시스템에 관한 우려를 주로 내세웠다. 국민, 종교에 관계없이 높은 찬성률“죽음에 관한 사회적 논의 확대해야” 의사들은 ‘의사조력사망 제도 등 존엄한 죽음에 관한 사회적 논의 확대’(41.9%)가 가장 시급하다고 봤다. 그밖에 ‘활발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10.0%),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다’(8.9%),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7.8%) 등의 의견도 주관식 문항에 남겼다. 이번 조사에서 국민은 종교에 관계 없이 전반적으로 높은 찬성률을 보였다. 응답자 가운데 불교는 88%, 천주교는 78.8%, 기독교는 69.5%가 조력사망 도입에 각각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 80% 찬성률이 나왔다고 해도 젊은 사람들의 경우 죽음에 대한 의식이나 이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청소년기부터 죽음에 대한 교육을 시작하고, 현재의 연명의료 결정 제도를 더 발전시켜 나가면서 조력 죽음까지 논의를 점차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 마약값 벌려고…10대 친딸들에게 성매매시킨 태국 여성 [여기는 동남아]

    마약값 벌려고…10대 친딸들에게 성매매시킨 태국 여성 [여기는 동남아]

    마약값을 벌기 위해 3명의 10대 친딸들에게 성매매를 시킨 태국 여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10일 태국의 비영리단체인 사이마이 서바이벌은 사회개발안전부와 함께 친모에 의해 성매매를 강요당한 11세와 16세 소녀를 성공적으로 구조했다고 현지 매체 더타이거는 전했다. 친모 A(52)의 범행은 큰딸인 B양(19)의 신고로 드러났다. B양은 “두 여동생이 엄마에 의해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다”면서 도움을 호소했다. 과거 B양도 엄마의 마약 값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성매매를 당한 바 있다. 이후 모친의 성매매 강요를 견딜 수 없었던 B양은 가출했지만, 두 여동생과는 꾸준히 연락을 해왔다. B양은 두 여동생도 친모에 의해 성 접대를 강요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B양은 이웃 주민들에게 동생들의 처지를 알리며 도움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얼마 전 16살 동생이 자살 시도를 하다 겨우 살아난 뒤 B양은 하루빨리 동생들을 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비영리단체에 친모의 파렴치한 행위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비영리 단체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지난 9일 A의 주거지를 급습했다. 현장에서 10대 딸 두 명을 구조하고, A를 검거했다. 검거 과정에서 A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큰 소리로 항의했다. 한편 마을 주민들은 “A는 평소 동네에서 자주 싸움을 일으키며 소동을 벌였다”면서 A의 체포 사실에 크게 안심했다. 피해 소녀들의 이모이자 A의 언니는 “과거 여러 번 조카를 도우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A는 화를 내면서 흉기로 위협해 더 이상 접근하기가 어려웠다”고 전했다. 친모 A는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10대 딸들은 당국의 조치로 건강 진단과 심리 상담을 진행 중이다. A는 마약 흡입에 따른 처벌 외에도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추가 처벌을 받게 된다. 
  • ‘스위스 조력사망’ 동행 가족, 자살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금기된 죽음, 안락사]

    ‘스위스 조력사망’ 동행 가족, 자살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금기된 죽음, 안락사]

    “법 적용 가능하지만 처벌은 쉽지 않아”“고의성·사회 정의 해친다 보기 어려워”“사법부 판단 나와야…존엄사법 개정 필요”독일 등 잇따라 헌재 ‘위헌’ 결정에 주목 임종을 앞두고 스위스로 가 조력자살을 하기로 결심한 말기 환자가 마지막까지 망설이는 대목은 동행인이다. 자신의 의지로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하겠다고 내린 결정이지만 행여나 동행한 가족이 자살방조죄(형법 제252조 2항)로 처벌받게 될까 봐 ‘가족 모르게’ 떠나려는 이들도 있다. 11일 현재 스위스에서 조력자살로 숨진 한국인은 1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동행인이 한국으로 돌아와 기소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 조사를 받은 사례는 있으나 검찰 단계에서 기소되진 않았다. 실제 스위스 조력자살에 가족이나 지인이 따라간 경우 자살방조죄로 처벌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전문가 다수는 현행법상 자살방조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순수하게 동행한 가족이나 지인을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고 봤다. 자살방조의 고의성이 있거나 사회 정의를 해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우선 조력자살이 합법화된 나라로 가서 이를 시행한다면 한국인에게 자살방조죄가 적용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은 하다’. 형법은 속지주의뿐 아니라 속인주의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마리화나가 합법인 나라에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한국으로 들어오면 처벌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관건은 어디까지를 ‘방조’로 볼 수 있느냐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방조에는 ‘총·칼 등 자살 도구를 빌려주거나 조언·격려를 하는 등 적극적·소극적·물질적·정신적 방법’이 모두 포함된다.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가족이 조력자살 임종에 동행하는 것조차 자살방조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존엄사를 위해 본인이 스스로 택한 임종 행위를 자살로 간주해 형법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김재련 변호사는 “현행법상 동행도 자살방조죄 카테고리 안에 들어올 수 있지만 이를 존엄사에 동행한 가족에게 적용하려는 것은 생명권의 주체인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므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의 적극성을 띠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동행만으로 기소와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은 더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연명의료결정제도 마련의 계기가 된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에서 김 할머니 측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신현호 변호사는 “죄가 되려면 고의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입증하기가 어렵고, 설령 자살방조가 된다고 해도 사회 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행위는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해 처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조력자살과 관련해 기소된 사례가 없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족이나 친구가 따라간 것만으로는 이들이 의사의 조력자살 ‘방조 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검찰 역시 이를 자살방조죄로 기소했을 때 국가가 얻을 공공의 선이 과연 무엇인가를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존엄사의 한 방법으로 이뤄지는 조력자살에 대한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살방조죄 적용 문제를 해소하려면 일차적으로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게 중요하다. 남준희 변호사는 “현 상태에서 기소가 되면 오히려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위헌법률 심판을 통해 자살방조죄가 폐지될 가능성조차 있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조력사망을 허용하도록) 현행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조력자살을 금지한 법령에 잇따라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법이 바뀌는 추세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위스에서 조력자살한 외국인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던 독일은 이를 막겠다고 2015년 자살관여죄를 신설했으나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20년 이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승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유럽 각국의 헌법재판소에서 자기결정권으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헌법재판소에서 먼저 나서면 좋을 것 같다”면서 “법원이나 헌재의 판단을 통해 사회적 논의가 시작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해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 [단독] 그는 왜 스위스서 죽음을 준비하나 [금기된 죽음, 안락사②]

    [단독] 그는 왜 스위스서 죽음을 준비하나 [금기된 죽음, 안락사②]

    <2> 그린라이트를 기다리는 사람들 ‘죽음의 선택권’이 주는 희망 “나답게 살고 싶어 스위스로 간다” 10명. 2016년부터 최근까지 스위스에서 조력사망한 한국인의 숫자다. 그리고 300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조력사망을 신청하기 위해 스위스 조력사망 지원 단체에 가입했다. 그들은 왜 8770㎞를 날아 그 먼 곳으로 죽기 위해 떠나려는 걸까.서울신문은 지난해 10월부터 8개월간 스위스 조력자살 지원 단체 가운데 하나인 디그니타스에 가입한 한국인 회원 2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 중에는 암, 신부전, 뇌종양,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등의 질환을 앓는 사람도 있었고,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에 가입했지만 공통적으로 한국 사회가 존엄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데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저는 간호사였어요. 내과 병동에서 일할 때 마약성 진통제로도 통증을 조절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말기암 환자들을 자주 봤어요. 그랬던 제가 환자가 되고 보니 한국에서 죽는 게 두렵더라고요.” 이소연(41·가명)씨는 13년째 만성골수성백혈병과 싸우고 있다. 2021년 11월 갑작스레 암 수치가 증가했을 때 디그니타스 가입을 결심했다. 치료제가 듣지 않는 급성기나 말기가 되면 스위스로 가 조력사망하기 위해서다. 한때 간호사였던 이씨가 마지막 순간에 병원 대신 안락사를 택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병원이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이씨 남편 역시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환자가 빨리 죽여 달라고 할 만큼 고통을 호소해도 병원에서는 환자의 의식이 떨어질까 봐 진통제를 쓰는 데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통증 조절을 해 줘도 환자가 아픔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에요.” 지난 2월 경북 왜관의 자택에서 만난 이씨는 “의료계에 있어 본 사람치고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스스로 백혈병 진단을 받고 10여년을 투병하며 그런 고통을 때때로 경험했기 때문이다.2010년 겨울 이씨는 회사 복도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살짝 넘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시커먼 멍이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더니 백혈구 수치가 이상하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 두 곳을 찾아 검사한 결과 백혈병이었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글리벡’이라는 혁신적인 표적 항암제가 개발된 덕에 관리만 잘하면 장기 생존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생존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고통과 두려움이 옅어지진 않았다. 약 부작용은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만큼 독했고, 때때로 죽음과 맞바꾸고 싶을 만큼 심한 통증과 맞닥뜨려야 했다. 평소엔 온종일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피로감에 시달렸다. 이씨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이라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몸 상태를 예측할 수 없어 약속을 잡거나 장시간 외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도 이틀 전부터 배가 아파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라고 했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처음 사용한 약이 글리벡이었다. 이 약은 숱한 백혈병 환자를 살린 기적의 치료제로 불렸지만 피부와 장기가 얇아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근육이 파열되고 인대가 늘어났다. 배란이 출혈로 이어져 두 번의 난소낭종 파열 수술을 받고 나선 평생 피임약을 복용해야 했다. 이씨는 “어딘가에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유리처럼 부서지는 영화 ‘글래스’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일이 덜 고될 듯해 초등학교 보건 강사로 자리를 옮겼지만 2016년 무렵엔 아예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하루 대여섯 번씩 찾아오는 설사는 외출을 어렵게 만들었다. 새로운 일을 해 보려고 직업전문학원에 다니던 어느 날, 학원에 도착해 강사에게 인사하려는 순간 느닷없이 설사가 터진 일도 있었다.#통증항암치료와 부작용 반복에 죽음과 맞바꾸고 싶은 고통“후회 없을 만큼 다 해봤어요” “신호도 없이 나오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요. 다행히 패드를 하고 있어서 참사는 막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에 너무 놀랐어요. 그 무렵 터널을 지나면 뱅글뱅글 돌며 어지럽더라고요. 공황장애가 생긴 거예요.” 글리벡의 부작용이 한계에 이르면서 이씨는 2019년 두 번째 항암제인 ‘타시그나’로 약을 바꿨다. 이번에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하면서 담석이 생겼다. 결국 지난해 3월 담낭절제술을 받았다. 세 번째 수술이었다. 그는 “수술 후 깨는 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팠다. 통증이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얘기하는데도 경증환자 대하듯 참으라고만 하던 주치의를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새로운 부작용이 나타날 때마다 대항하고 적응하며 십 년 넘게 암과 싸워 왔는데, 2021년 가을 정기 추적검사에서 암 수치가 올라갔다는 결과가 나왔다. 항암제가 듣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약에 내성이 생기거나 부작용이 심해지면 세 번째 약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때부터는 골수이식도 염두에 둬야 한다. 다행히 검사 결과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씨는 오래전부터 생각한 디그니타스 가입을 결심했다. 더 늦기 전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애초에 골수이식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더는 부작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골수이식을 하고 나면 자기 몸에서 하나 정도는 잃어버려요. 실명하는 분들도 있고, 숙주 반응으로 폐나 장이 망가지기도 하고요. 제가 아는 분은 골수이식을 하고도 재발해 세 번이나 이식했어요. 몸이 건강한 상태이고 처음이라면 시도해 보겠지만 이제는 어떤 고통을 겪게 될지 빤히 알거든요.”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골수이식 대신 안락사를 택하겠다는 뜻을 남편과 언니에게도 전했다. 이씨의 ‘버킷리스트’(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는 ‘잘 죽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 진단을 받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이제는 예측된 죽음을 준비하고 싶어요. 갑자기 코로나나 폐렴에 걸려서 죽지 말고, 마지막에 스위스까지 무난히 갈 수 있는 체력이 남아 있기를 바라요.”#일상15개월 ‘시한부 선고’ 받았지만항암치료 대신 ‘남은 일상’ 선택“말기 환자에게 선택지 너무 부족” “항암치료를 꾸준히 했을 때 15개월 정도 예상됩니다.” 2020년 1월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의사의 말에 최수진(52·가명)씨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병원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 있는 어머니 생각뿐이었다. 갑자기 쓰러진 어머니는 평소 절대로 하지 말라던 의료 장치들을 두 달째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이거 다 치워라.’ 어머니가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다시 깨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 형제들은 어머니를 보내 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씨는 일 년에 한두 번 받던 산부인과 정기 검진에서 우측 신장 옆에 종양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술과 조직검사 결과는 육종암이었다. 이름조차 낯선 육종은 악성 종양 중에서도 1% 정도밖에 안 되는 희소 암이었다. 이미 대장과 대정맥, 복막 등 장기 주변에 퍼진 4기였다. 의사는 항암치료가 잘 듣지 않는 병이라고 말하면서도 수술로 육종을 완전히 제거하긴 어려우니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더 큰 병원을 찾았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항암을 하면 나을 수 있나요?” 최씨의 질문에 의사는 ‘고식적 항암’이라는 어려운 말로 답했다. 치료 단계는 이미 지났으니 암의 진행 속도를 늦춰 생존 기간을 늘리자는 뜻이었다. “그럼 항암을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항암치료를 받다가 체력 소진과 부작용으로 몸이 더 안 좋아지는 사례를 더러 봤기 때문이다. 최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한다면 괜찮겠지만 회사까지 그만둬야 한다면 진짜 시한부 환자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게 싫어 병가도 내지 않고 수술한 뒤 직장에 복귀한 터였다. 의사는 “항암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며, 주의를 주듯 “이 상황에서 항암을 안 하는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온 최씨는 다음 진료일을 앞두고 주치의 앞으로 편지를 썼다. 마음은 이미 항암을 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1년 반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나답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만 의사에게 항암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몹시 부담스러웠다. 병원은 계속 다니면서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관리해 나가고 싶은데, 항암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의사 말을 듣지 않고 진료를 포기하는 것처럼 비칠 듯했다. 게다가 3분도 안 되는 진료 시간은 이런 뜻을 충분히 전달하기에 너무 짧았다. 그는 A4 용지 한 장짜리 편지를 써서 진료일 전에 도착하도록 했다. ‘저는 항암치료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제 삶을 일상생활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 채 사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존 기간이 1년 미만으로 단축될 수 있고, 수개월 안에 위중한 상태에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지만 이제부터 의미 있는 일정으로 채워 나가며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계획을 세우려고 합니다….’ 최씨에게 한 가지 고민은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병원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문득 친구들과 먼 훗날쯤으로 생각하고 얘기했던 ‘안락사’를 떠올렸다. 어렵사리 스위스 조력자살 단체를 찾아 가입하고, 필요한 절차와 서류를 준비했다. 지난 1월 경기도에서 최씨를 만났다. 1년 반도 안 남았다는 시한부 진단을 받은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어머니는 최씨가 진단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돌아가셨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어머니를 보낸 게 너무 힘들었는데 적어도 난 준비할 시간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병원의 예측과 달리 항암치료 없이도 직장과 일상생활 모두 그대로 이어 가고 있었다. 암세포가 요관을 누르고 있어 이를 확장하는 스텐트 시술을 한 것 외엔 별다른 통증 없이 건강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항암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병을 낫게 하는 치료가 아니라 제가 걱정하는 안 좋은 기간을 늘릴 뿐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항암이 잘 듣지 않는다고 하면서 항암을 권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더라”라며 말기 환자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부족한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씨에겐 일상의 삶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생각은 마지막 3개월을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임종한 어머니를 보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최씨는 스위스행을 준비하게 되면 그 여정을 빠짐없이 기록할 거라고 말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를 거쳐 먼 나라까지 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력사를 합법화한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제가 남길 기록이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될 국내 다른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생존고문 같은 통증… 진통제만 24알조력사망 승인받고 삶 달라져“오늘 하루도 더 최선 다하게 돼” “주변에서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자살했다는 얘기가 30명 넘게 들렸어요. 어느 순간 트라우마보다는 이 사람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경태(43)씨는 11년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앓고 있다. CRPS는 특정 부위를 다친 후 극심한 신경성 통증이 계속되는 만성질환으로, 겉으로는 건강해 보여도 환자는 정신을 잃을 정도의 통증을 느끼는 희소질환이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아 진단과 치료도 쉽지 않다. 김씨의 통증은 2013년 5월 자전거 사고로 왼쪽 팔을 다친 뒤 시작됐다. 갑자기 찾아온 고통은 “가스레인지 불에 손을 올려놓은 듯” 뜨거웠다. 이후로도 수시로 몰려드는 통증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중에는 통증을 참느라 손톱과 발톱을 남김없이 뜯었다. 김씨가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하루에 먹는 약만 24알이다. 모르핀, 옥시코돈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와 신경 안정제, 근육 이완제 등이 포함돼 있다. 그는 “하루하루 사는 게 고문을 받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김씨가 디그니타스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는 2019년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고, 이후 방송과 유튜브 등에서 공개적으로 조력사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임종 직전이 아니지만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진정을 넣었지만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통증에서 탈출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다른 대안이 없을 땐 안락사라는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웰다잉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모두 회피하고 있어요.” 김씨는 2021년 12월 디그니타스에 조력사망을 신청해 ‘그린라이트’(승인)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2월 스위스행을 계획하던 중 ‘신약이 개발되고 있으니 3년만 더 참아 보자’는 의사의 권유로 조력사망을 보류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 선택권이 주어지자 역설적으로 삶에 최선을 다하게 됐다고 한다. 이는 디그니타스 회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씨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사업을 시작했다. 체력을 기르려고 무에타이도 꾸준히 배우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스스로 설계하고 나면 오늘 하루도 더 알차게, 최선을 다할 수 있어요. 저는 그걸 보여 주려는 거예요.”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기획취재부 유영규 부장, 신융아·이주원 기자
  • 옳고 그름을 떠나…모두에게 ‘어떻게 살아낼 건가’ 묻고 있었다 [금기된 죽음, 안락사②]

    옳고 그름을 떠나…모두에게 ‘어떻게 살아낼 건가’ 묻고 있었다 [금기된 죽음, 안락사②]

    <2> 그린라이트를 기다리는 사람들 심리부검 전문가가 읽은 다그니타스 회원의 심리 서울신문은 심리부검 전문가인 박지영 상지대 교수에게 디그니타스 한국인 회원 20명의 인터뷰(진술)에 대한 질적 분석을 의뢰했다. 조력사망을 선택했거나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를 기자가 아닌 전문가의 눈을 통해 보다 깊게 분석하고 읽어 내기 위해서다. 심리사회적 경험 분석은 익명화 과정을 거쳤다. 최종 분석 내용은 최대한 박 교수의 분석문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20인의 이야기 속에는 누구든 한 번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경험과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늘어난 시간 대부분을 노인으로 살아야 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의과학에도 질병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 존재 의미에 대한 갈등은 의료적 시스템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0인의 사연을 읽으며 비록 조력사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바로 나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한 디그니타스 회원 20명은 2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였다. 이들 중 조력사망까지 신청한 사람은 7명이었다. 신청 결과 2명은 승인, 1명은 거절됐으며 다른 4명은 신청 과정에서 서류 작성의 어려움, 공증 등 절차상 어려움으로 인해 일시 중단한 상태였다. #투병하루 사는 만큼 더해지는 고통 “병든 상태로 나이는 들어가고 몸은 점점 아픈데 약은 안 듣고 처방도 안 되고 돈도 없어지는데 일은 할 수가 없고….” (회원 5) 살기 위한 노력은 꽤 오랜 기간 치열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30년이 넘도록 이들은 평생 복용해야 하는 약물의 부작용을 견디며 일상이 된 투석을 버티고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치료를 받으며 투병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살기 위해 선택한 치료는 시간을 거듭해도 병과 증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살아갈 만한’ 일상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랜 약물 복용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했고 마약류 진통제에도 내성이 생겨 고문 같은 통증을 혼자서 참아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더는 약물과 증상을 견뎌 낼 체력과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반신 통증은 마약 패치도 효과가 거의 없어 못 견디겠고 병원에서는 진통제 용량을 늘리면 내성이 생길 수 있다고 참으라고 합니다. 상반신도 복부 압박이 심해 호흡이 불편하고 위를 눌러 식욕도 없어요. 소변줄을 차고 있으나 소변이 안 나와서 응급실에 가 소변줄을 갈고 나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어요.”(회원 9) “유방암 항암제 부작용이 심해 자율신경계가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아요. 현재는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심각한 이명, 청각과민증, 청력소실로 동네 마트 외출도 힘든 상태가 됐어요.”(회원 10) 평생을 환자로 살아야 하는 삶에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 온 ‘나’란 존재가 사라진다. 목숨을 이어 가는 ‘연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병은 평범한 일상을 중단시켰을 뿐 아니라 먹고 자고 배설하는 생리적 욕구조차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통증에 대비해야 하는 시간은 두렵고 치료 과정에서 생긴 공황, 설사, 탈모, 발진 등은 자신이 최소한 지키고 싶었던 ‘인간다운 삶’과 멀어지게 했다. 의료와 복지서비스가 다양해지고 돌봄시스템이 확장되고 있다지만 이들이 체감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환자의 증상보다는 질병 유형만을 기준으로 약물이나 치료비 수준이 결정된다. 이 때문인지 젊은 암 환자나 혈액투석 환자들은 사회가 자신을 후순위 환자로 여긴다고 말한다. “호스피스도 알아 봤지만 혈액투석은 포함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을 단계가 아니면 투석 환자에게 호스피스를 연결해 주진 않더라고요.”(회원 12)#희망일그러진 일상, 대안의 탐색 “간병 문제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안락사를 고려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말기 암 환자나 식물인간처럼 사는 사람은 경제적 문제로 인한 게 아닙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라도 가족에게 부담을 덜 주고 질 좋게 죽는 것을 바랄 거예요.”(회원 11) 처음부터 죽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가졌던 희망은 병전(病前) 생활로의 복귀였다. 완치가 어렵고 평생 약을 먹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역할을 유지할 수 있다면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두 달도 아닌 수년, 수십 년 동안 치료와 일상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무리였다. 점점 약해지는 체력 때문에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졌다. 쉬어야 할 시간에 투석을 하고 웃을 일에도 통증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경우가 계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직장에도, 주변 사람에게도 미안해졌다. “열여덟 살부터 (서른여섯 살인) 지금까지 혈액투석을 하고 있어요. 4시간씩 소요되는 투석을 직장에 다니며 하루 걸러 진행하는데,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요.”(회원 12) “새 직장 출근 5개월 만에 공황과 우울,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생기면서 체중이 늘어나고 그러면서 대인 기피증까지 왔어요. 잠깐 쉬려 했던 게 2년째 쉬게 됐고 이제 완치에 대한 희망을 접었어요.”(회원 13)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고통이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까지 확대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때문에 아프고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일도 점점 어려워졌다. 상황을 끝낼 방법은 자살뿐이라는 생각이 커졌다. 이들은 자신의 마지막을 존중하고 가족에게도 충격과 상처가 덜할 수 있는 마지막 대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남의 도움 없이 살기 어려운 상태에서 연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내가 사는 게 아니거든요. 안락사의 기회가 없다면 저는 자살할 것 같아요.”(회원 2) #선택나를 위한 마지막 권리 이들이 조력사망을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은 ‘내 의지’였다. 그래서 의식이 명료하고 기력이 남아 있는 지금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조력사망 신청 절차를 진행하고자 했다. 이는 자신을 위한 마지막 권리이자 언젠가 자신의 죽음을 결정해야 할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이라 여겼다. “통증으로부터 탈출할 수도, 견딜 수도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디그니타스 문을 두드렸어요.”(회원 3) “평소 웰리빙보다 웰다잉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조력사망은 그런 점에서 준비된 죽음이에요. 내가 의식이 없으면 안락사하게 해 달라고 평소 자녀들한테도 말해 뒀어요.”(회원 6) 조력사망의 결정은 역설적으로 삶을 버티는 새로운 동기가 됐다. 환자로서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치료와 고통에 압도되지 않고, 언제든 고통을 멈출 수 있는 조력사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여지가 현 상황을 버티며 살아내고자 하는 원동력이 됐다. “저는 투병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치료에 전념할 것입니다. 다만 조력사망 승인은 앞으로의 투병 여정에 꼭 필요한 마음의 큰 위안이자 안전장치입니다.”(회원 8)이제 우리 사회도 죽음의 질을 이야기할 때다. 이는 제3자로서 조력사망을 옹호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뷰에 응한 디그니타스 회원들의 경험을 빌려 누구나 죽음 앞에서 맞닥뜨릴 질병과 고통의 시기에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고 개개인은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작은 틈으로나마 드러내 보자는 것이다. 여기 스무 명의 이야기가 그런 의미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영 상지대 교수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 머스크도 맞았다는 위고비·삭센다 ‘살 빼는 주사제’ 충격적 부작용

    머스크도 맞았다는 위고비·삭센다 ‘살 빼는 주사제’ 충격적 부작용

    세계적 갑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영화배우 킴 카다시안도 효과를 봤다는 위고비와 삭센다, 오젬픽 등 비만 치료 주사제가 자살이나 자해 충동을 일으킬 개연성이 제기돼 유럽연합(EU) 당국이 조사에 착수했다. 10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보도에 따르면 유럽의약품청(EMA)은 최근 EU 회원국인 아이슬란드 당국으로부터 비만 치료 주사제를 사용한 뒤 자살·자해 충동을 느낀 사례 3건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고 산하 약물부작용감시위험평가위원회(PRAC)에서 해당 제품 성분의 안전성을 조사·평가하도록 했다. PRAC의 안전성 평가 대상은 삭센다의 성분인 리라글루티드와 오젬픽,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티드다. EMA 관계자는 “아이슬란드 의약품청에서 3건의 사례 보고와 함께 ‘실마리 정보’를 제기함에 따라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마리 정보(signal)란 약물과 부작용 간 새로운 인과관계나 기존에 알려진 인과관계의 새로운 측면을 제시해 추가 조사가 필요한 정보를 뜻한다. 이 관계자는 또 “아이슬란드에서 보고된 사례 3건 중 2건은 자살충동 관련으로 1건은 삭센다를, 다른 1건은 오젬픽을 사용한 뒤였다”며 “나머지 1건은 삭센다 사용 후 자해 충동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리라글루티드와 세마글루티드는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수용체 작용제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GLP-1과 비슷한 효과를 내 주기적으로 주사하면 체중의 15∼20%가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2형 당뇨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체중감량 효과가 뛰어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살 빼는 주사제’로 인기를 얻고 있다. 당뇨병 환자들에게 공급되는 물량까지 부족할 정도다. 일단 PRAC는 우선 리라클루티드와 세마글루티드가 포함된 비만치료제의 위험성을 평가할 계획이며 이후 다른 GLP-1 수용체 작용제도 평가가 필요한지 검토할 예정이다. 리라글루티드와 세마글루티드의 부작용으로는 메스꺼움, 구토, 두통, 설사, 변비, 복통 등 소화기계 증상 외에 우울증, 자살충동이 있다. 삭센다와 오젬픽, 위고비 등의 제품 설명서에도 이 같은 부작용을 언급하면서 “사용 중 정신적 변화에 유의하고 기분·감정·행동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경우 곧바로 의료진과 상의하라”고 돼 있다. 다만 ‘자살 행동’은 부작용에 포함돼있지 않다고 BBC는 전했다. 이들 제품을 생산하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는 이와 관련, 사용자의 안전을 최우선시하고 있으며 EMA의 조사에 협력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BBC는 덧붙였다.
  • [단독]“안락사 희망 20인의 사연…결국 우리 이야기였다”[금기된 죽음, 안락사]

    [단독]“안락사 희망 20인의 사연…결국 우리 이야기였다”[금기된 죽음, 안락사]

    서울신문은 심리부검 전문가인 박지영 상지대 교수에게 스위스 존엄사 단체 ‘디그니타스’ 한국인 회원 20명의 인터뷰(진술)에 대한 질적 분석을 의뢰했다. 조력사망을 선택했거나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를 기자가 아닌 전문가의 눈을 통해 보다 깊게 분석하고 읽어 내기 위해서다. 심리사회적 경험 분석은 익명화 과정을 거쳤다. 최종 분석 내용은 최대한 박 교수의 분석문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20인의 이야기 속에는 누구든 한 번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경험과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늘어난 시간 대부분을 노인으로 살아야 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의과학에도 질병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 존재 의미에 대한 갈등은 의료적 시스템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0인의 사연을 읽으며 비록 조력사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바로 나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한 디그니타스 회원 20명은 2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였다. 이들 중 조력사망까지 신청한 사람은 7명이었다. 신청 결과 2명은 승인, 1명은 거절됐으며 다른 4명은 신청 과정에서 서류 작성의 어려움, 공증 등 절차상 어려움으로 인해 일시 중단한 상태였다.①투병, 하루 사는 만큼 더해지는 고통 “병든 상태로 나이는 들어가고 몸은 점점 아픈데 약은 안 듣고 처방도 안 되고 돈도 없어지는데 일은 할 수가 없고…” (회원 5) 살기 위한 노력은 꽤 오랜 기간 치열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30년이 넘도록 이들은 평생 복용해야 하는 약물의 부작용을 견디며 일상이 된 투석을 버티고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치료를 받으며 투병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살기 위해 선택한 치료는 시간을 거듭해도 병과 증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살아갈 만한’ 일상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랜 약물 복용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했고 마약류 진통제에도 내성이 생겨 고문 같은 통증을 혼자서 참아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더는 약물과 증상을 견뎌 낼 체력과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반신 통증은 마약 패치도 효과가 거의 없어 못 견디겠고 병원에서는 진통제 용량을 늘리면 내성이 생길 수 있다고 참으라고 합니다. 상반신도 복부 압박이 심해 호흡이 불편하고 위를 눌러 식욕도 없어요. 소변줄을 차고 있으나 소변이 안 나와서 응급실에 가 소변줄을 갈고 나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어요.” (회원 9) “유방암 항암제 부작용이 심해 자율신경계가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아요. 현재는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심각한 이명, 청각과민증, 청력소실로 동네 마트 외출도 힘든 상태가 됐어요.” (회원 10) 평생을 환자로 살아야 하는 삶에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 온 ‘나’란 존재가 사라진다. 목숨을 이어 가는 ‘연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병은 평범한 일상을 중단시켰을 뿐 아니라 먹고 자고 배설하는 생리적 욕구조차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통증에 대비해야 하는 시간은 두렵고 치료 과정에서 생긴 공황, 설사, 탈모, 발진 등은 자신이 최소한 지키고 싶었던 ‘인간다운 삶’과 멀어지게 했다. 의료와 복지서비스가 다양해지고 돌봄시스템이 확장되고 있다지만 이들이 체감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환자의 증상보다는 질병 유형만을 기준으로 약물이나 치료비 수준이 결정된다. 이 때문인지 젊은 암 환자나 혈액투석 환자들은 사회가 자신을 후순위 환자로 여긴다고 말한다. “호스피스도 알아 봤지만 혈액투석은 포함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을 단계가 아니면 투석 환자에게 호스피스를 연결해 주진 않더라고요.” (회원 12)②‘보통의 삶’에 대한 희망…그리고 죽음을 고민하다 “간병 문제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안락사를 고려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말기 암 환자나 식물인간처럼 사는 사람은 경제적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라도 가족에게 부담을 덜 주고 질 좋게 죽는 것을 바랄 거예요.” (회원 11) 처음부터 죽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가졌던 희망은 병전(病前) 생활로의 복귀였다. 완치가 어렵고 평생 약을 먹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역할을 유지할 수 있다면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두 달도 아닌 수년, 수십 년 동안 치료와 일상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무리였다. 점점 약해지는 체력 때문에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졌다. 쉬어야 할 시간에 투석을 하고 웃을 일에도 통증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경우가 계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직장에도, 주변 사람에게도 미안해졌다. “18살부터 (36살인) 지금까지 혈액투석을 하고 있어요. 4시간씩 소요되는 투석을 직장에 다니며 하루 걸러 진행하는데,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요.” (회원 12) “새 직장 출근 5개월 만에 공황과 우울,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생기면서 체중이 늘어나고 그러면서 대인 기피증까지 왔어요. 잠깐 쉬려 했던 게 2년째 쉬게 됐고 이제 완치에 대한 희망을 접었어요.” (회원 13)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고통이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까지 확대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때문에 아프고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일도 점점 어려워졌다. 상황을 끝낼 방법은 자살뿐이라는 생각이 커졌다. 이들은 자신의 마지막을 존중하고 가족에게도 충격과 상처가 덜할 수 있는 마지막 대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남의 도움 없이 살기 어려운 상태에서 연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내가 사는 게 아니거든요. 안락사의 기회가 없다면 저는 자살할 것 같아요.” (회원 2)③나를 위한 마지막 선택 이들이 조력사망을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은 ‘내 의지’였다. 그래서 의식이 명료하고 기력이 남아 있는 지금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조력사망 신청 절차를 진행하고자 했다. 이는 자신을 위한 마지막 권리이자 언젠가 자신의 죽음을 결정해야 할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이라 여겼다. “통증으로부터 탈출할 수도, 견딜 수도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디그니타스 문을 두드렸어요.” (회원 3) “평소 웰리빙보다 웰다잉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조력사망은 그런 점에서 준비된 죽음이에요. 내가 의식이 없으면 안락사하게 해 달라고 평소 자녀들한테도 말해 뒀어요.” (회원 6) 조력사망의 결정은 역설적으로 삶을 버티는 새로운 동기가 됐다. 환자로서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치료와 고통에 압도되지 않고, 언제든 고통을 멈출 수 있는 조력사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여지가 현 상황을 버티며 살아내고자 하는 원동력이 됐다. “저는 투병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치료에 전념할 것입니다. 다만 조력사망 승인은 앞으로의 투병 여정에 꼭 필요한 마음의 큰 위안이자 안전장치입니다.” (회원 8) 이제 우리 사회도 죽음의 질을 이야기할 때다. 이는 제3자로서 조력사망을 옹호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뷰에 응한 디그니타스 회원들의 경험을 빌려 누구나 죽음 앞에서 맞닥뜨릴 질병과 고통의 시기에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고 개개인은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작은 틈으로나마 드러내 보자는 것이다. 여기 스무 명의 이야기가 그런 의미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 [단독]“한국에서 죽는 게 두렵다…” 안락사 원하는 사람들[금기된 죽음, 안락사]

    [단독]“한국에서 죽는 게 두렵다…” 안락사 원하는 사람들[금기된 죽음, 안락사]

    10명. 2016년부터 최근까지 스위스에서 조력사망한 한국인의 숫자다. 그리고 300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조력사망을 신청하기 위해 스위스 조력사망 지원 단체에 가입했다. 그들은 왜 8770㎞를 날아 그 먼 곳으로 죽기 위해 떠나려는 걸까.서울신문은 지난해 10월부터 8개월간 스위스 조력자살 지원 단체 가운데 하나인 디그니타스에 가입한 한국인 회원 2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 중에는 암, 신부전, 뇌종양,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등의 질환을 앓는 사람도 있었고,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에 가입했지만 공통적으로 한국 사회가 존엄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데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통증 “저는 간호사였어요. 내과 병동에서 일할 때 마약성 진통제로도 통증을 조절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말기암 환자들을 자주 봤어요. 그랬던 제가 환자가 되고 보니 한국에서 죽는 게 두렵더라고요.”이소연(41·가명)씨는 13년째 만성골수성백혈병과 싸우고 있다. 2021년 11월 갑작스레 암 수치가 증가했을 때 디그니타스 가입을 결심했다. 치료제가 듣지 않는 급성기나 말기가 되면 스위스로 가 조력사망하기 위해서다. 한때 간호사였던 이씨가 마지막 순간에 병원 대신 안락사를 택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병원이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양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이씨 남편 역시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환자가 빨리 죽여 달라고 할 만큼 고통을 호소해도 병원에서는 환자의 의식이 떨어질까 봐 진통제를 쓰는 데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통증 조절을 해 줘도 환자가 아픔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에요.” 지난 2월 경북 왜관의 자택에서 만난 이씨는 “의료계에 있어 본 사람치고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 스스로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10여년을 투병하며 그런 고통을 때때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2010년 겨울 이씨는 회사 복도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살짝 부딪혔다고 생각했는데 시커먼 멍이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더니 백혈구 수치가 이상하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 두 곳을 찾아 검사한 결과 백혈병이었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글리벡’이라는 혁신적인 표적 항암제가 개발된 덕에 관리만 잘하면 장기 생존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생존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고통과 두려움이 옅어지진 않았다. 약 부작용은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만큼 독했고, 때때로 죽음과 맞바꾸고 싶을 만큼 심한 통증과 맞닥뜨려야 했다. 평소엔 온종일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피로감에 시달렸다. 이씨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이라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몸 상태를 예측할 수 없어 약속을 잡거나 장시간 외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도 이틀 전부터 배가 아파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라고 했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처음 사용한 약이 글리벡이었다. 이 약은 숱한 백혈병 환자를 살린 기적의 치료제로 불렸지만 장기와 피부가 얇아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근육이 파열되고 인대가 늘어났다. 배란이 출혈로 이어져 두 번의 난소낭종 파열 수술을 받고 나선 평생 피임약을 복용해야 했다. 이씨는 “어딘가에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유리처럼 부서지는 영화 ‘글래스’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일이 덜 고될 듯해 초등학교 보건 강사로 자리를 옮겼지만 2016년 무렵엔 아예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하루 대여섯 번씩 찾아오는 설사는 외출을 어렵게 만들었다. 새로운 일을 해 보려고 직업전문학원에 다니던 어느 날, 학원에 도착해 강사에게 인사하려는 순간 느닷없이 설사가 터진 일도 있었다. “신호도 없이 나오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요. 다행히 패드를 하고 있어서 참사는 막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에 너무 놀랐어요. 그 무렵 터널을 지나면 뱅글뱅글 돌며 어지럽더라고요. 공황장애가 생긴 거예요.” 글리벡의 부작용이 한계에 이르면서 이씨는 2019년 두 번째 항암제인 ‘타시그나’로 약을 바꿨다. 이번에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하면서 담석이 생겼다. 결국 지난해 3월 담낭절제술을 받았다. 세 번째 수술이었다. 그는 “수술 후 깨는 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팠다. 통증이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얘기하는데도 경증환자 대하듯 참으라고만 하던 주치의를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새로운 부작용이 나타날 때마다 대항하고 적응하며 십 년 넘게 암과 싸워 왔는데, 2021년 가을 정기 추적검사에서 암 수치가 올라갔다는 결과가 나왔다. 항암제가 듣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약에 내성이 생기거나 부작용이 심해지면 세 번째 약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때부터는 골수이식도 염두에 둬야 한다. 다행히 검사 결과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씨는 오래전부터 생각한 디그니타스 가입을 결심했다. 더 늦기 전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애초에 골수이식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더는 부작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골수이식을 하고 나면 자기 몸에서 하나 정도는 잃어버려요. 실명하는 분들도 있고, 숙주 반응으로 폐나 장이 망가지기도 하고요. 제가 아는 분은 골수이식을 하고도 재발해 세 번이나 이식했어요. 몸이 건강한 상태이고 처음이라면 시도해 보겠지만 이제는 어떤 고통을 겪게 될지 빤히 알거든요.”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골수이식 대신 안락사를 택하겠다는 뜻을 남편과 언니에게도 전했다. 이씨의 ‘버킷리스트’(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는 ‘잘 죽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 진단을 받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이제는 예측된 죽음을 준비하고 싶어요. 갑자기 코로나나 폐렴에 걸려서 죽지 말고, 마지막에 스위스까지 무난히 갈 수 있는 체력이 남아 있기를 바라요.” #자기 결정 “항암치료를 꾸준히 했을 때 15개월 정도 예상됩니다.” 2020년 1월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의사의 말에 최수진(52·가명)씨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병원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 있는 어머니 생각뿐이었다. 갑자기 쓰러진 어머니는 평소 절대로 하지 말라던 의료 장치들을 두 달째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이거 다 치워라.’ 어머니가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다시 깨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 형제들은 어머니를 보내 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씨는 일 년에 한두 번 받던 산부인과 정기 검진에서 우측 신장 옆에 종양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술과 조직검사 결과는 육종암이었다. 이름조차 낯선 육종은 악성 종양 중에서도 1% 정도밖에 안 되는 희소 암이었다. 이미 대장과 대정맥, 복막 등 장기 주변에 퍼진 4기였다. 의사는 항암치료가 잘 듣지 않는 병이라고 말하면서도 수술로 육종을 완전히 제거하긴 어려우니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더 큰 병원을 찾았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항암을 하면 나을 수 있나요?” 최씨의 질문에 의사는 ‘고식적 항암’이라는 어려운 말로 답했다. 치료 단계는 이미 지났으니 암의 진행 속도를 늦춰 생존 기간을 늘리자는 뜻이었다. “그러면 항암을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항암치료를 받다가 체력 소진과 부작용으로 몸이 더 안 좋아지는 사례를 더러 봤기 때문이다. 최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한다면 괜찮겠지만 회사까지 그만둬야 한다면 진짜 시한부 환자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게 싫어 병가도 내지 않고 수술한 뒤 직장에 복귀한 터였다. 의사는 “항암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며, 주의를 주듯 “이 상황에서 항암을 안 하는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온 최씨는 다음 진료일을 앞두고 주치의 앞으로 편지를 썼다. 마음은 이미 항암을 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1년 반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나답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만 의사에게 항암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몹시 부담스러웠다. 병원은 계속 다니면서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관리해 나가고 싶은데, 항암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의사 말을 듣지 않고 진료를 포기하는 것처럼 비칠 듯했다. 게다가 3분도 안 되는 진료 시간은 이러한 뜻을 충분히 전달하기에 너무 짧았다. 그는 A4 용지 한 장짜리 편지를 써서 진료일 전에 도착하도록 했다. ‘저는 항암치료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제 삶을 일상생활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 채 사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존 기간이 1년 미만으로 단축될 수 있고, 수개월 안에 위중한 상태에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지만 이제부터 의미 있는 일정으로 채워 나가며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계획을 세우려고 합니다….’ 최씨에게 한 가지 고민은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병원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문득 친구들과 먼 훗날쯤으로 생각하고 얘기했던 ‘안락사’를 떠올렸다. 어렵사리 스위스 조력자살 단체를 찾아 가입하고, 필요한 절차와 서류를 준비했다.지난 1월 경기도에서 최씨를 만났다. 1년 반도 안 남았다는 시한부 진단을 받은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어머니는 최씨가 진단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돌아가셨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어머니를 보낸 게 너무 힘들었는데 적어도 난 준비할 시간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병원의 예측과 달리 항암치료 없이도 직장과 일상생활 모두 그대로 이어 가고 있었다. 암세포가 요관을 누르고 있어 이를 확장하는 스텐트 시술을 한 것 외엔 별다른 통증 없이 건강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항암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병을 낫게 하는 치료가 아니라 제가 걱정하는 안 좋은 기간을 늘릴 뿐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항암이 잘 듣지 않는다고 하면서 항암을 권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더라”라며 말기 환자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부족한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씨에겐 일상의 삶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생각은 마지막 3개월을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임종한 어머니를 보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최씨는 스위스행을 준비하게 되면 그 여정을 빠짐없이 기록할 거라고 말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를 거쳐 먼 나라까지 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력사를 합법화한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제가 남길 기록이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될 국내 다른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생존 “주변에서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자살했다는 얘기가 30명 넘게 들렸어요. 어느 순간 트라우마보다는 이 사람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경태(43)씨는 11년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앓고 있다. CRPS는 특정 부위를 다친 후 극심한 신경성 통증이 계속되는 만성질환으로, 겉으로는 건강해 보여도 환자는 정신을 잃을 정도의 통증을 느끼는 희귀질환이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아 진단과 치료도 쉽지 않다. 김씨의 통증은 2013년 5월 자전거 사고로 왼쪽 팔을 다친 뒤 시작됐다. 갑자기 찾아온 고통은 “가스레인지 불에 손을 올려놓은 듯” 뜨거웠다. 이후로도 수시로 몰려드는 통증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중에는 통증을 참느라 손톱과 발톱을 남김없이 뜯었다. 김씨가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하루에 먹는 약만 24알이다. 모르핀, 옥시코돈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와 신경 안정제, 근육 이완제 등이 포함돼 있다. 그는 “하루하루 사는 게 고문을 받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김씨가 디그니타스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는 2019년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고, 이후 방송과 유튜브 등에서 공개적으로 조력사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임종 직전이 아니지만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진정을 넣었지만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통증에서 탈출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다른 대안이 없을 땐 안락사라는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웰다잉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모두 회피하고 있어요.” 김씨는 2021년 12월 디그니타스에 조력사망을 신청해 ‘그린라이트’(승인)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2월 스위스행을 계획하던 중 ‘신약이 개발되고 있으니 3년만 더 참아 보자’는 의사의 권유로 조력사망을 보류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 선택권이 주어지자 역설적으로 삶에 최선을 다하게 됐다고 한다. 이는 디그니타스 회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씨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사업을 시작했다. 체력을 기르려고 무에타이도 꾸준히 배우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스스로 설계하고 나면 오늘 하루도 더 알차게, 최선을 다할 수 있어요. 저는 그걸 보여 주려는 거예요.”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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