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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어” 군 부실조사 대체 왜?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어” 군 부실조사 대체 왜?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어” 군 부실조사 대체 왜?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이 화제다.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원근 일병 사건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했다. 다만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한 것.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원근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의 부실한 사건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허원근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원근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원근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허원근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원근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SBS 방송 캡처(허원근 일병 사건)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일병 사건’ 결국 미스터리로… 대법 “사인 불명”

    ‘허일병 사건’ 결국 미스터리로… 대법 “사인 불명”

    전체 길이가 99㎝인 M16 소총의 총구를 자기 몸 쪽에 놓고 양쪽 가슴에 각각 한 발, 머리에 한 발 등 모두 세 발을 쏴 자살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의문을 둘러싸고 31년간 진실 규명 시도가 이어져 온 ‘허원근 일병 사망 사건’의 실체는 결국 영구 미제로 남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과 같이 “수사기관의 부실한 사건 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 일병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 책임은 기각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 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허 일병 사망 사건은 전두환 정권 시절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으로 꼽힌다. 1984년 4월 2일 강원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당시 22세)은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가슴과 머리에 3발을 쏴서 자살하기 어려운 점, 현장 사진에 피가 거의 없었던 점 등으로 미뤄 타살된 뒤 시신이 옮겨졌다는 의혹이 짙었지만 군은 자살로 결론 냈다. 이후 이 사건의 결론은 여러 차례 뒤집혔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당시 중대원 전모씨가 “술에 취한 하사관이 ‘끓인 라면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 내무반에서 허 일병을 쏴서 죽였다. 중대원들이 동원돼 시신을 옮기고 물청소로 핏자국을 지웠다”고 진술한 것이 근거였다. 하지만 의문사위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때부터 특별조사단을 꾸린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전씨를 제외한 다른 중대원 모두 허 일병이 자살했다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내밀었다. 그러나 2004년 2기 의문사위가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고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항소심은 그간의 자살 사례 등으로 볼 때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가슴과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허 일병의 부친은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 군이 확인 사살을 해 놓고 자살로 꾸며 냈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결국 의문사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판결 나온 배경은?

    허원근 일병 사건, 결국 의문사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판결 나온 배경은?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결국 의문사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판결 나온 배경은?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양측의 공방은 이어졌고, 결국 논쟁은 법정으로 갔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군 부실조사로 자살-타살 알 수 없어” 31년 전 무슨 일이?

    허원근 일병 사건 “군 부실조사로 자살-타살 알 수 없어” 31년 전 무슨 일이?

    허원근 일병 사건 “군 부실조사로 자살-타살 알 수 없어” 31년 전 무슨 일이? ‘허원근 일병 사건’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원근 일병 사건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했다. 다만 허원근 일병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원근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의 부실한 사건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허원근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원근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원근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허원근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원근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네티즌들은 “허원근 일병 사건, 안타깝다”, “허원근 일병 사건, 대체 왜 부실 조사했나”, “허원근 일병 사건, 이런 일이 많았지”,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이든 타살이든.. 군에 문제가 있으니까 부실조사 한 듯”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SBS 방송 캡처(허원근 일병 사건)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왜? 이유 알고보니..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왜? 이유 알고보니..

    ‘허원근 일병 사건’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 일병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 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사진 = 서울신문DB (허원근 일병 사건)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무엇?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이 기록 남을까봐, 비싸서… 정신병원학교 외면

    아이 기록 남을까봐, 비싸서… 정신병원학교 외면

    서울 강북구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이미정(14·가명)양은 지난 4월 자살을 시도했다. 자신이 사는 18층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려고 했다. 다행히 경비원에게 발견돼 제지를 받았다. 이양은 초등학교만 4차례 옮길 정도로 잦은 전학과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이양은 학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낯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힘겨워했다. 전문가는 지난 5월 이양이 일반 학교에서 생활하는 건 어렵다고 진단하고 치료와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청소년 정신질환자 대상의 병원학교를 권했다. 그러나 이양이 병원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시간은 단 하루뿐이었다. 이양의 어머니가 “정신질환자라는 의료기록이 딸의 인생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라며 강제 퇴원을 시켰기 때문이다. 중증 정신질환으로 장기 치료가 필요한 학생들의 교육과정 중단을 막기 위해 설립된 병원학교들이 정작 학부모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병원학교는 3개월 이상 입원 치료가 필요한 청소년 환자에 대해 병원 내에서 교육 지원을 하는 기관이다. 학부모마다 자녀의 미래에 정신질환 치료 행적이 악영향을 줄까 두려워 진료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교육부가 관리하는 병원학교는 국립서울병원의 ‘참다울 병원학교’와 국립공주병원의 ‘어울림 병원학교’, 국립나주병원의 ‘느티나무 병원학교’ 등 전국에 세 곳이 있다. 학생수는 지난해 말 기준 각각 20명, 11명, 46명으로 환자 수요에 따라 신축적으로 조정된다. 세 곳 외에도 교육 당국이 집계하지는 않지만 대학병원에서 운영되는 병원학교와 개인병원에서 대안학교 형태로 운영되는 사설학교들이 있다. 하지만 2011년 기준으로 10~19세 정신질환자가 5265명인 점에 비춰 보면 병원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극소수인 셈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신질환으로 병원학교에 입학해도 학교생활기록부에 병명이 기록되지 않을뿐더러 정상 출석으로 표시된다”며 “학부모들이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을까 걱정하는데 이는 잘못된 오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을 앓는 학생일수록 저소득층이 많은 점도 치료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 지적한다. 저소득층 청소년 환자에 대한 지원이 없다 보니 병원학교 비용 자체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국립 병원학교의 경우 교육비는 무료이지만 진료비와 식비 등은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김다솜(17·가명)양은 병적인 거식증 환자다. 키는 165㎝이지만 몸무게가 30㎏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월 65만원이나 드는 병원학교 입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했다. 성나경 전국전문상담교육자협회 대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에게는 진료비가 무상으로 제공되지만 차상위계층의 저소득자들은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신질환의 경우 천천히 진행되는 만큼 입원이 필요 없을 정도의 상태일 때 부모가 적극적으로 아이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방수영 노원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병원학교는 입원으로 교우 관계가 단절된 학생들에게 또래 관계를 제공하고 학업 중단으로 인한 우울감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병원학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복잡한 입교를 위한 행정절차,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 지원 제도 등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새 영화] ‘사랑이 이긴다’

    [새 영화] ‘사랑이 이긴다’

    민병훈 감독은 이 영화를 끝으로 한국에서의 영화 제작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영화 예술로서 사회적 기능은 약화되고 오락적 기능만 부각되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더이상 영화 제작을 하는 데 의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사랑이 이긴다’를 보면 감독이 왜 그런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절박한 심정이 느껴진다. 영화는 청소년 자살과 가정의 해체라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한국에서 청소년 자살은 2~3일에 한번꼴로 일어날 정도로 심각한 문제지만 우리 사회의 위기의식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민 감독은 한 신부에게 자신의 시목 구역에서 3명의 학생이 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기획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 가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하지만 속으로는 위태롭기 짝이 없다. 매사에 자신만만했던 어머니 은아(최정원)는 결혼 이후 찾아온 불만족스러운 현재를 딸을 통해 보상받으려고 한다. 딸 수아(오유진)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선수인 데다 수학뿐만 아니라 과학, 외국어에도 능통하지만 엄마는 늘 수아가 성에 차지 않는다. 수아의 아버지 상현(장현성)은 대학병원 내과 의사로 성공한 인텔리다. 하지만 조교와의 성추행 문제에 휘말려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성격의 그는 아내에게 신뢰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 이들은 서로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어긋난 방법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1등주의에 사로잡힌 엄마는 “애매하게 공부하면 애매한 인생을 살게 된다. 오직 1등만 살아남는 세상”이라고 다그친다. 엄마는 모든 것이 딸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하지만 어린 수아가 감당하기에는 버겁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경쟁에만 내몰린 수아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외로움의 끝에서 결국 수아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가정에는 위기가 찾아온다. 은아는 자신의 잘못을 구하고 용서를 비는 남편을 쉽게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 제목인 ‘사랑이 이긴다’는 다소 역설적이다. 자신과 가정이 무너지는 상황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사랑과 용서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주제 때문에 자살을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카톨릭문화원에서 제작비를 전액 투자했다. 강한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구성이 아쉽지만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영화 ‘벌이 날다’(1998)로 토리노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고 전작 ‘터치’(2012)로 호평받은 민 감독은 “상업 영화를 제외하고는 개봉관을 잡기도 힘든 데다 상영과 동시에 내려야 되는 국내 영화 시장이 아쉽다”면서 “앞으로 다양성 영화에 대한 작업 환경이 좋은 외국에서 한국 영화를 계속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결국 묻혀버린 진실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결국 묻혀버린 진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원근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의 부실한 사건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허원근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며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원근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원근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허원근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다시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군 부실 수사만 인정해 3억원 지급 확정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군 부실 수사만 인정해 3억원 지급 확정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군 부실 수사만 인정해 3억원 지급 확정 허원근 일병 사건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군의 부실 수사만 인정한 것이어서 유족들의 반발을 샀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양측의 공방은 이어졌고, 결국 논쟁은 법정으로 갔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의문사로 남게 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유족 울분

    허원근 일병 사건, 의문사로 남게 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유족 울분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의문사로 남게 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유족 울분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유족에 3억 지급 판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유족 “잘못된 판결” 울분

    허원근 일병 사건, 유족에 3억 지급 판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유족 “잘못된 판결” 울분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유족에 3억 지급 판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유족 “잘못된 판결” 울분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유족에 3억 지급 판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된 일?

    허원근 일병 사건, 유족에 3억 지급 판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된 일?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유족에 3억 지급 판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된 일?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고 밝혀 유족들의 반발을 샀다. 대법원은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대법원은 다만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이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가 자살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병대가 군수사기관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 일병의 사망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했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허 일병의 죽음은 다시 ‘의문사’가 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이 자살로 꾸며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도대체 무슨 일? 충격

    허원근 일병 사건, 도대체 무슨 일? 충격

    ‘허원근 일병 사건’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 일병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 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끝내 의문사로..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 끝내 의문사로..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 일병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 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어”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알고보니...

    허원근 일병 사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어” 의문사로 남게 된 이유는? 알고보니...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 일병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 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허원근 일병 사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무슨 일?

    허원근 일병 사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무슨 일?

    대법원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국가가 유족에 3억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다만 현재 남은 자료로는 허 일병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허 일병의 사망에 대한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사건 당시 부실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0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처럼 ‘수사기관의 부실조사로 지난 31년간 고통 받은 유족들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허원근 일병 사건은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이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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