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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데리고 나가겠다”…대형화재서 시각장애인 구출한 영웅

    “우리가 데리고 나가겠다”…대형화재서 시각장애인 구출한 영웅

    2017년 6월 14일 새벽 0시 54분, 영국 웨스트런던 켄싱턴 북부에 있는 24층 높이의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무려 70여 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이 화재사고는 당시 경보기도 울리지 않고 스프링클러도 작동하지 않아 예고된 인재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다행히 생존한 후에도 각종 후유증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최근 당시 현장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구조된 것으로 알려진 시각장애인의 후일담이 알려졌다. 영국 더 타임스의 6일 보도에 따르면 사연의 주인공은 시각장애인인 엘피디오 보니파시오라는 이름의 남성으로, 그는 아내와 36년 동안이나 그렌펠 타워 11층에 거주했다. 사고 당일, 아내가 일을 하러 나간 뒤 보니파시오는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늦은 밤 아내가 건 몇 번의 전화를 받지 못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뒤늦게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직감적으로 불이 났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이미 불길이 그의 집 앞까지 다가왔고, 앞을 보지 못하는 그는 홀로 나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수건을 들고 창밖을 향해 구해달라고 소리쳤지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화마와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그는 “아내는 내게 전화를 걸어 욕실에 있는 수건을 적셔 코에 대고 구조를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거실의 거울이 깨지고 집안 공기가 뜨거워질 만큼 불길이 다가온 후였다”면서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곧 불길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불에 타 죽는 것이 너무 끔찍할 것 같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도 했지만, 자살은 나의 신념과 맞지 않았다. 나는 그저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그를 포기하지 않고 찾아온 것은 바로 소방대원들이었다. 소방대원들이 벽을 부수고 그의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앞에 선 소방대원들은 “진정하세요. 우리가 당신을 데리고 나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보니파시오는 72명의 사망자를 낸 그랜펠 타워 화재 사고에서 12시간 만에 구조된 마지막 생존자다. 그는 자신을 구조하러 온 소방대원들을 두고 “신이 나의 기도에 응답했다”면서 “건장한 몸을 가진 4~5명의 소방대원들이 나를 붙잡고 순식간에 밖으로 나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시간이 흘렀지만, 당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애썼던 소방대원들에게 감사하기 위해 그때의 일을 기록하기로 결심했다”면서 “나는 소방대원들에게 내 삶을 빚졌다. 나를 구해준 그들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사진=2017년 그렌펠타워 화재 현장에서 구조를 요청하던 시각장애인 보니파시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자치광장] 역사에 대한 존경, 어르신 공로수당/서양호 서울 중구청장

    [자치광장] 역사에 대한 존경, 어르신 공로수당/서양호 서울 중구청장

    폭염 특보, 겨울 한파 때마다 회현동 쪽방촌, 중림동 호박마을, 다산동 문화시장 뒷골목, 황학동 중앙시장 뒤 여인숙촌 등을 방문한다. 주거와 생계 빈곤으로 삶이 벼랑 끝에 내몰린 이분들에게 한파 대비를 당부하는 것은 한가한 소리다. 젊음을 바쳐 경제 발전에 헌신했지만 벼랑 끝에 몰린 노년의 모습을 보면서 서글펐다. 어르신들이 좀더 나은 삶을 보낼 수 있도록 할 수 없을까. 그런 고민 끝에 ‘어르신 공로수당’을 만들었다. 중구가 전국 최초로 시도하는 노인 복지 정책인 어르신 공로수당은 관내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 및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매월 10만원씩을 추가 지급하는 것으로, 1만 3000여명이 수혜 대상이다. 관내에서만 쓸 수 있는 카드형 지역화폐로 지급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매출을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2013년에 고령사회로 진입한 중구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노령화지수 1위, 85세 이상 초고령층 빈곤율 1위, 노인 고립 및 자살 우려 비율 1위의 지역으로 노인 생활 안정이 시급하다. 하지만 기초연금 등 정부 지원 정책만으론 노인 빈곤 해결에 한계가 있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가 기초연금을 받으면 소득으로 파악해 그만큼 수급자로서 받던 지원액에서 공제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올해 소득 하위 20%를 시작으로 2021년부터 모든 수급자에게 기초연금 30만원을 지급하는 등 어르신 사회보장급여 확대는 대세다. 2014년 기초연금제도 도입 후 서울시 65세 이상 자살률 감소 등 사회보장급여 효과도 검증된 바 있다. 공로수당은 중구 전체 예산의 3.6%인 156억원이다. 불필요한 토목사업 등을 줄여 마련했다. 지난해 연말 구의회도 통과했다. 남은 관문은 진행 중인 보건복지부와의 협의다. 정부의 복지정책 방향이나 무상급식·청년수당처럼 지자체에서 제안해 보편적 복지 제도로 자리잡은 정책들을 볼 때 지자체가 맞춤 복지를 펼치도록 물꼬를 터 줘야 한다. 복지는 못 하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것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를 불문하고 의지만 있다면 불요불급한 예산 조정을 통해 얼마든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존경’을 담은 어르신 공로수당이 고달픈 어르신들의 삶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 신재민은 왜 고파스에 폭로·유서 남겼나… 익숙해서? 지원 기대?

    신재민은 왜 고파스에 폭로·유서 남겼나… 익숙해서? 지원 기대?

    다른 대학보다 이용률 높고 반응 즉각적 재학 때 많은 소통…활동 학생과도 친분 ‘동문’ 신뢰감…학내 우호적 여론이 다수청와대의 KT&G 사장 인사 개입설과 적자 국채 발행 압력설을 폭로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폭로 창구로 유튜브와 고려대 재학생·졸업생 커뮤니티인 ‘고파스’를 택했다. 파급 효과가 가장 확실한 유튜브를 선택한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고파스에 폭로 글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카카오톡 대화 캡처 사진, 심지어 자살 기도 직전 작성한 유서까지 올린 것은 의외다. 신 전 사무관은 우선 모교의 커뮤니티가 주는 익숙함과 영향력, 신뢰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2007년 생긴 고파스는 까다로운 인증 절차에도 고려대생의 절반 이상이 사용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고파스 운영진이 2017년 ‘10학번’부터 ‘17학번’을 대상으로 이용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서울캠퍼스 학부에 등록된 학생 3만 5613명 가운데 고파스 가입자는 74.9%(2만 6675명)에 이르렀다. 최근 1주일 내 이용자수도 2만 2240명에 달했다. 고려대 졸업생 유모(33)씨는 “신 전 사무관이 대학 재학 시절 고파스를 통해 많은 소통을 했던 것 같다”면서 “고파스는 다른 대학의 커뮤니티에 비해 이용률이 높고 글을 남기면 반응이 즉각적이어서 사회적인 이슈가 될 만한 내용을 알리는 데 적합한 통로”라고 말했다. 신 전 사무관은 또 자신의 주장에 더 많은 공감을 얻고자 자신에게 우호적인 공간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신 전 사무관은 애교심이 남달랐고, 고파스 내에서 활동하는 재학생과도 친분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사무관의 입장을 대변하겠다며 호소문을 낸 이총희 회계사는 신 전 사무관과 대학 시절 야학에서 2년간 함께 활동한 동문이다. 신 전 사무관의 글을 고파스에 대신 올려주는 동문도 있었다. 졸업생 최인언(31)씨는 “고파스는 폐쇄적이지만 결집력이 매우 강하다”면서 “신 전 사무관의 폭로에 대해 고파스 내에선 우호적인 여론이 다수였다”고 전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연이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사안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보다 ‘동문’이라는 이유로 신뢰를 주는 경향이 있다”면서 “신 전 사무관 역시 그런 ‘지원 사격’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각 대학의 커뮤니티는 2000년대 이후 생겨나 동문 간 교류의 장으로 성장했다. 중고서적 교환, 익명 연애 상담 등의 목적으로 사용됐던 커뮤니티는 최근 학내 성폭력을 폭로하는 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신재민에 ‘나쁜 머리’·‘양아치’… 역풍 맞는 손혜원의 막말

    신재민에 ‘나쁜 머리’·‘양아치’… 역풍 맞는 손혜원의 막말

    신 전 사무관 폭로에 인신공격성 발언 유서 남기고 잠적 소식에 해당글 삭제 한국당 “인격살인” 바른미래 “징계해야” 민주당 중진 의원도 “통제 불능” 토로 손 의원에 항의성 ‘18원 후원금’ 몰려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와대 관련 의혹을 폭로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을 향해 ‘나쁜 머리’, ‘양아치’ 등 연일 막말을 쏟아내 역풍을 맞고 있다. 손 의원은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역사학자 전우용씨의 글을 공유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현직에 있는 사람이 해고될 각오하고 조직의 비리를 폭로하는 게 공익제보다. 이미 퇴직한 사람이 몇 달이나 지나서 헛소문을 퍼뜨리는 건 보통 양아치 짓”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지난 7월 기재부에서 퇴직한 신 전 사무관의 뒤늦은 폭로를 의도가 불순한 ‘양아치 짓’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 전 사무관을 겨냥한 손 의원의 인신공격성 발언은 또 있다. 손 의원은 지난 2일에도 “신재민은 2004년 (대학에) 입학, 2014년 행정직 공무원이 됐으니 고시 공부 기간은 약간 긴 편”이라며 “나쁜 머리 쓰며 의인(義人)인 척 위장하고 청산유수로 떠드는 솜씨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손 의원은 지난 3일 신 전 사무관이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해당 글을 삭제했다. 그러고는 하루 뒤 다시 글을 올려 “신재민 관련 글을 내린 이유는 본인이 한 행동을 책임질 만한 강단이 없는 사람이라 더이상 거론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정치권은 일제히 손 의원의 태도를 비판했다. 윤영석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6일 “2016년 (최순실 사태를 촉발한) 고영태와 사진 촬영을 한 후에는 ‘의인 보호’를 운운하던 사람이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인격살인하는 데 대해 분노를 넘어 안쓰러움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민주당이 신 전 사무관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손 의원을 당장 징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여당 중진 의원조차 “통제 불능”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최근 손 의원에게는 ‘18원 후원금’도 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18원 후원은 정치인을 향한 항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손 의원이 경솔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에게 “아시안게임 우승이 그렇게 어려운 우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2017년 3월에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계산된 것”이라고 해 진보진영 지지자들의 분노를 샀다. 같은 해 7월엔 위안부 피해자인 김군자 할머니 빈소에서 양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사진을 찍었다가 사과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몰카 영상 뿌려진 뒤 시작된 지옥…피해자 10명 중 1명 극단 선택 시도

    [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몰카 영상 뿌려진 뒤 시작된 지옥…피해자 10명 중 1명 극단 선택 시도

    영상 유포 피해자 45.6% “자살 생각” 불법 촬영 49.7% ‘아는 사람’에 당해 10명 중 8명 “영상 찍힌 줄도 몰랐다” 범인 실형 선고율은 고작 11.1% 그쳐 여정연 “대처 가능한 사회 환경 필요”몰래카메라나 비동의 유포 성적 촬영물(속칭 리벤지포르노)이 온라인에 유출된 피해자 절반은 자살을 생각했다. 이 중 20%는 실제로 자해를 했다. 실제 성추행 피해자나 살인 사건 유가족보다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둘 중 하나는 오히려 범인에게 빌며 영상을 지워 달라고 애원했다. 경찰을 찾아가 피해를 신고한 이는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 6일 서울신문이 단독 입수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여정연)의 ‘온라인 성폭력 피해실태 및 피해자 보호 방안’ 연구보고서 내용이다. 여정연은 지난해 9월 온라인 성폭력을 당한 전국 여성(15~49세)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일부 기관이 단편적으로 온라인 성폭력 피해자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은 있지만, 이처럼 대규모 실태조사는 처음이다. ▲온라인 성적 괴롭힘(1648명) ▲디지털 성폭력(불법 촬영·유포 협박·실제 유포, 352명) ▲그루밍 성폭력(피해자로부터 호감을 산 뒤 성적 가해를 하는 범죄, 중복응답 106명) 등 모든 온라인 성폭력 피해를 망라해 조사했다. 영상이 유포(재유포 포함)된 피해자 45.6%가 자살을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 중 42.3%는 구체적인 자살 계획까지 세웠고, 19.2%가 실제 자살 시도를 했다. 찍힌 영상이 유포되지 않고 협박만 받은 피해자도 정신적 충격이 컸다. 41.7%가 자살을 머릿속에 그렸고, 이 중 17.5%는 실제로 ‘행동’을 했다. “부모도 잠을 못 자고 번갈아 가며 (피해자) 옆을 지켜요. 창문을 다 잠그고 방범창까지 달죠. 뛰어내릴까 봐….” 비동의 유포 성적 촬영물이 온라인에 퍼진 한 여성의 변호사는 피해자와 가족의 파탄 난 삶을 이렇게 전했다. 설문과 함께 진행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측정 결과는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보여 줬다. ‘한국판 사건충격척도 개정판’(IES-R-K)을 통한 측정에서 유포 피해자는 평균 53.9점. 유포 협박 피해자는 52.4점으로 집계됐다. 0~88점으로 채점되는 이 검사는 높을수록 심리적 외상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일반인은 17~18점 이상이면 ‘부분 PTSD’, 24~25점 이상은 고위험군인 ‘완전 PTSD’로 진단한다. 직업상 스트레스가 많은 소방공무원이나 군인도 44~45점 이상이면 심각한 위험 수준으로 보고 치료를 받는다. 성추행 피해자나 살인 사건 유가족의 경우 각각 49.1점과 48.4점으로 측정됐다는 연구(김태경 우석대 심리학과 교수) 결과가 있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는 이들보다도 심각한 ‘정신붕괴’ 수준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랑하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이 고통을 가중시켰다. 불법 촬영 피해자 49.7%는 ‘아는 사람’에게 당했다. 이 중 50.9%가 이성친구나 연인(옛 연인 포함)이었다. 헤어진 사람보다 곁에 있는 사람이 더 악랄했다. 배우자를 포함해 현재 연인(78.0%)이 범인인 경우가 옛 연인(15.9%)보다 5배 이상 많았다. 10명 중 8명은 영상이 찍힌 줄도 모르고 당했다. 강요나 협박에 의해 찍힌 경우도 14.2%에 달했다. 그럼에도 경찰 신고는 고작 10.8%에 그쳤다. ‘신원 노출에 대한 불안감’(27.3%), ‘경찰에 대한 불신’(23.6%)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못하고 범인에게 삭제를 요구(46.9%)하거나 아예 무대응(38.3%)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현실 세계 성폭력 피해자는 지난해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과 함께 양지로 나왔지만,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는 그렇게 음지에서 죄인인 것처럼 얼굴을 가린 채 떨고 있다. 실제 영상이 유포된 피해자는 ‘주변 사람’(40.4%)에게 전해 듣거나 ‘우연히’(14.0%)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범인이 직접 알려 준 경우(10.5%)도 있었다. 카페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27.3%),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21.2%), 웹하드(16.7%) 등에 주로 유포됐다. 불법 촬영 피해자가 가장 바라는 것 중 하나는 ‘범인 처벌’(27.2%)이다. 하지만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이다. 여정연이 2017년 서울지역 5개 법원의 디지털 성폭력(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1심 판결문 360건을 분석한 결과, 실형 선고율은 10명 중 한 명인 11.1%에 그쳤다. 그나마도 징역 1년 이하인 경우가 80.8%에 달했다. 벌금형이 54.1%로 가장 많았고, 집행유예로 풀어 준 비율도 27.8%나 됐다. 상습범인 경우가 대다수다. 이들의 판결문에 기재된 촬영 횟수는 총 4102회. 한 명당 11.4회씩 찍은 셈이다. ▲허벅지, 치마 속, 가슴 등 신체 일부 3550회 ▲옷 갈아입거나 용변 보는 장면 199회 ▲성관계 모습 177회(사진 117회, 영상 60회) ▲나체 및 샤워 현장 176회 등이다. 디지털 성폭력의 대상과 장소, 패턴 등도 바뀌고 있다. 앞서 한국여성변호사회도 2011년~2016년 4월 판결문 1540건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집이나 모텔 등 숙박업소에서의 범행 발생 비율은 3.3%에 불과했다. 하지만 여정연의 이번 분석에선 23.9%로 무려 8배나 증가했다. 지하철(54.7%→48.1%) 등 공공장소에서의 불법 촬영은 감소했다. 불특정 다수의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던 디지털 성범죄가 연인이나 지인 등 ‘아는 사람’ 위주로 바뀐 것이다. 단순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데 그치지 않고 온라인 등에 유포한 비율도 4.2%에서 9.7%로 2배 이상 늘었다. 여정연은 “디지털 성폭력은 ‘무제한 복제’라는 특성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피해가 지속된다”면서 “대다수 피해자가 경찰, 지원기관 등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직접 해결하거나 감추려는 대응방식을 보이는데,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나쁜 머리” “양아치” 신재민 겨눈 손혜원 거친 비난, 거센 후폭풍

    “나쁜 머리” “양아치” 신재민 겨눈 손혜원 거친 비난, 거센 후폭풍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와대 관련 의혹을 폭로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을 향해 ‘나쁜 머리’, ‘양아치’ 등 연일 막말을 쏟아내 역풍을 맞고 있다. 손 의원은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역사학자 전우용 씨의 글을 공유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현직에 있는 사람이 해고될 각오하고 조직의 비리를 폭로하는 게 공익제보다. 이미 퇴직한 사람이 몇 달이나 지나서 헛소문을 퍼뜨리는 건 보통 양아치 짓”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지난 7월 기재부에서 퇴직한 신 전 사무관의 뒤늦은 폭로를 의도가 불순한 ‘양아치 짓’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 전 사무관을 겨냥한 손 의원의 인신공격성 발언은 또 있다. 손 의원은 지난 2일에도 “신재민은 2004년 (대학에) 입학, 2014년 행정직 공무원이 됐으니 고시 공부 기간은 약간 긴 편”이라며 “나쁜 머리 쓰며 의인(義人)인 척 위장하고 청산유수로 떠드는 솜씨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손 의원은 지난 3일 신 전 사무관이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해당 글을 삭제했다. 그러고는 하루 뒤 다시 글을 올려 “신재민 관련 글을 내린 이유는 본인이 한 행동을 책임질만한 강단이 없는 사람이라 더이상 거론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정치권은 일제히 손 의원의 태도를 비판했다. 윤영석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6일 “2016년 (최순실 사태를 촉발한) 고영태와 사진 촬영을 한 후에는 ‘의인 보호’를 운운하던 사람이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인격살인하는 데 대해 분노를 넘어 안쓰러움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민주당이 신 전 사무관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손 의원을 당장 징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여당 중진 의원조차 “통제 불능”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최근 손 의원에게는 ‘18원 후원금’도 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18원 후원은 정치인을 향한 항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손 의원이 경솔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에게 “아시안게임 우승이 그렇게 어려운 우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2017년 3월에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계산된 것”이라고 해 진보진영 지지자들의 분노를 샀다. 같은 해 7월엔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군자 할머니 빈소에서 양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사진을 찍었다가 사과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고령화에 보험가입 나이 10년간 7세 높아지고 어린이 가입은 30% 감소

    고령화에 보험가입 나이 10년간 7세 높아지고 어린이 가입은 30% 감소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보험 가입연령이 10년 전에 비해 7세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저출산 기조로 인해 어린이 보험 가입자 수는 30% 줄어들었다. 보험개발원이 6일 최근 10년간 주요 보험지표 변화를 분석한 결과 보험가입자의 사망률은 2017년 기준 10만명당 134.8명으로 연평균 3.7% 감소했다. 신규 보험가입자의 나이는 평균 42.4세로 10년간 7.1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국민 평균나이는 36.0세에서 40.7세로 4.7세 증가했다. 보험가입자 중 사망한 사람의 나이도 평균 58.8세로 7.5세 늘어났다. 저출산으로 인해 어린이 보험가입자 수는 크게 줄었다. 생명보험 가입자 중 15세 이하 어린이 수는 2007년 537만명에서 2017년 374만명으로 30% 감소했다. 10년 동안 15세 이하 인구 수가 23% 줄어든 데 비해 보험가입자의 감소 폭이 더 컸다. 연령대별 보험가입자 구성을 보면 2007년엔 20~39세가 36.5%를 차지해 가장 많았지만 2017년엔 40~59세가 38.3%로 1위를 차지했다. 2017년 기준 보험가입률은 65.9%로 2007년(62.9%)보다 3% 포인트 증가했다. 생명보험 가입자의 사망 원인은 암, 심장질환, 자살, 뇌혈관질환, 폐렴, 교통사고, 간질환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살은 2007년 5위에서 2017년 3위로 상승했다. 10만명당 자살률은 2008년 8.6명, 2009년 12.3명, 2010년 13.5명 등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년간 급격히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1년간 인권위 서랍속에 갇힌 유성기업 노동자 정신건강실태조사

    1년간 인권위 서랍속에 갇힌 유성기업 노동자 정신건강실태조사

    “제가 이 자리에 설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실태조사 위원이었던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4일 중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의 유성기업 노조파괴 및 정신건강실태조사 늦장 결정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지난 1년간 참고 또 참았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참담함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한 사무처장은 “실태조사 위원단은 급기야 어제 (인권위의 늦장 공개를 규탄하는) 성명을 낼 수밖에 없었다”며 “처음 1년은 회사의 방해 때문에 (조사가 늦어졌고), 두 번째 1년은 인권위에서 (조사 결과를) 묵히고 있는 상황이다”고 비판했다.금속노조 유성지회와 유성 범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8년 상반기 내 발표한다던 유성기업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가 인권위 서랍 속에 잠자고 있다”며 “정신건강실태조사의 결과 및 대책에 대한 인권위 차원의 공개 발표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인권위는 2016년 3월 유성기업 한광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2017년 6월부터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도성대 유성기업 지회장은 “마지막 희망으로 붙들었던 곳이 인권위였다”며 “그런데 (인권위가 실태조사에 나선) 2년 동안 동지들 3명이 쓰러졌고 급기야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람 인권을 이야기하는 곳에서 인권이 무시될 줄은 몰랐다”며 “한 해에 최소 5명의 동료나 가족들이 자해를 시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성민 유성영동지회 사무장은 “정신건강문제를 삭히고 삭히면 스스로를 해치고, 이를 바깥으로 표출하면 폭력이 된다”며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9명이나 정신병이 있다며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것이 말이 되느냐”고 호소했다. 충남노동인권센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유성기업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성기업 노동자 255명 중 53.4%가 우울증 고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민 평균(5.0%)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 2017년 일 년 동안 자살을 시도한 노동자는 5명이었고, 20명은 구체적으로 자살을 계획했으며, 62명은 자살을 생각해봤다고 답했다. 인권단체들도 인권위의 제 역할을 촉구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인권이 유보되면 생명을 앗아간다”며 “결론이 났으면 공개를 해야 노동자들이 심리상담을 받고 치료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11월의 폭력과 12월 (조합원의) 죽음은 철저히 인권위의 책임이다”며 “믿을만한 국가기관이 하나도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더 깊은 절망감에 빠지는 것 아닌가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양한웅 조계종 노동사회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정부와 국회가 노동자를 외면할 때 인권위라도 노동자의 죽음과 노동조합 파괴에 온몸으로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인권위원장 면담을 요청하는 서한을 인권위에 전달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가축 살처분 4명 중 3명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인권위 제도개선 권고

    “가축 살처분 4명 중 3명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인권위 제도개선 권고

    가축을 살처분한 4명 중 3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가축 살처분 작업 참여자의 트라우마 예방과 치료를 위한 제도개선을 농림축산식품부와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4일 인권위가 의뢰해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수행한 ‘가축매몰(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축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 및 공중방역 수의사 268명 중 76.0%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였다. 살처분 참여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평균점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추정하는 점수인 24~25점보다 높은 41.47점이었다. 또한 조사대상의 우울 평균점수는 14.99점으로 나타나 평균적으로 경우울증(10~15점) 증상을 보였으며, 23.1%는 중우울증(24~63점)에 해당하는 점수를 나타냈다. 가축 전염병인 구제역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때마다 공무원 및 공중방역 수의사 등은 많은 수의 가축들을 살처분 한다. 2010년 11월 경북 안동에서 발생해 전국으로 확산된 이른바 구제역 사태 때 공무원 48만 8000명, 군인 33만 8000명, 경찰 14만 6000명, 소방 공무원 30만 6000명, 민간인 69만 2000명(이하 누적 인원)이 동원돼 145일 동안 약 350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했다. 인권위는 “살처분 작업에 참여한 공무원 등이 자살이나 과로로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고, 이에 살처분 작업 참여자가 겪는 트라우마의 심각성과 심리 지원의 문제가 대두됐다”고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 제49조 및 시행령에 따르면 가축 살처분 참여자에게 신청을 받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심리적·정신적 치료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위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사건에 대해 다시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 회피반응을 보여 스스로 적극적인 치료를 신청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인권위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가축 살처분 작업 참여자들에게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무적으로 안내하고, 작업 전후로 심리적·신체적 증상 체크리스트를 등을 통해 고위험군을 초기에 발견해 치료를 지원하는 등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살처분 작업에 일용직 노동자나 이주노동자 등의 참여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가축 살처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인권위는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트라우마센터가 가축 살처분 작업 참여자의 트라우마에 관한 조사연구를 실시해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더 좋은 나라 됐으면”…신재민 ‘유서 잠적’ 신고 4시간 만에 발견

    “더 좋은 나라 됐으면”…신재민 ‘유서 잠적’ 신고 4시간 만에 발견

    경찰 IP 추적… 관악구 모텔서 신씨 발견 목 부위에 찰과상 흔적… “의식은 명료” 신씨 회계사 친구 “소모적 논쟁 멈춰야” 오늘 기자회견 대신 호소문 배포 예정“정부가 KT&G 사장 교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적자국채 발행에 압력을 가했다”고 폭로한 신재민(32)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3일 자살을 기도해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신 전 사무관은 신고 4시간 20여분 만에 경찰에 발견됐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19분 신 전 사무관의 대학 친구인 이총희 회계사는 “신 전 사무관이 자택에 유서를 작성해 놓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오전 7시에 보내고서 사라졌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신 전 사무관의 자택인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고시원에서 A4 3장짜리 유서와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휴대전화는 신 전 사무관이 전날 만난 대학 선배가 “나와 연락하자”며 준 것이었다. 경찰은 여성청소년 수사팀과 강력팀을 투입해 신 전 사무관 동선 추적에 나섰다. 신고 3시간 뒤인 오전 11시 19분 신 전 사무관의 모교인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에 신 전 사무관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이 올라왔다. ‘신재민2’라는 아이디로 작성된 이 글에는 “아버지 어머니 정말 사랑하고 죄송하다. 긴 유서는 집에 있다.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친구가 유서를 올려 줄 것이다. 모텔에서 쓴 이 유서도 어떻게든 공개됐으면 좋겠다”면서 “그래도 제가 죽어서 조금 더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죽어서 아쉽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이 글이 작성된 컴퓨터의 인터넷 프로토콜(IP)을 추적한 끝에 낮 12시 40분쯤 관악구 봉천동의 한 모텔에서 신 전 사무관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신 전 사무관의 목 부위에는 찰과상 흔적이 발견됐다. 소방 관계자는 “발견 당시 의식은 명료했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려다 실패했거나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도 “건강상태는 양호하며, 일단 안정을 취하게 하려고 병원으로 후송했고, 안정되면 바로 퇴원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제 형사사건도 아니다”라면서 “신 전 사무관을 가족에게 인계하고, 다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가족에게 잘 당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 전 비서관은 이날 새벽 2시 30분쯤 모텔에 투숙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 전 사무관이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는 동안 그의 친구인 이 회계사는 “신 전 사무관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멈춰 달라”면서 “4일 대학 시절 신 전 사무관과 함께 활동했던 선후배들과 함께 호소문을 만들어 언론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은 열지 않기로 했다. 앞서 신 전 사무관은 지난달 29일과 30일 이틀에 걸쳐 유튜브와 고파스를 통해 청와대가 KT&G·서울신문 사장 선임에 개입하고 4조원 규모의 적자국채 발행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일에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적자국채 발행을 지시한 사람이 차영환 전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현 국무조정실 2차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신 전 사무관은 이 자리에서 “공익신고에 대한 법적 보호를 받고 싶다. 어떤 정치집단과도 연관 없는 순수한 공익 제보”라면서 “기재부에서 느낀 막막함과 절망감을 다른 공무원들이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기재부는 지난 2일 형법상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 등으로 신 전 사무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신 전 사무관은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 제보를 하겠다고 밝힌 상태에서 이날 돌연 자살을 기도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서울 아파트서 모녀 숨진 채 발견…유서엔 “딸 정신질환 힘들어”

    서울 아파트서 모녀 숨진 채 발견…유서엔 “딸 정신질환 힘들어”

    서울 목동의 아파트에서 정신질환을 앓던 딸과 어머니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 양천경찰서에 따르면 3일 오전 1시 30분쯤 양천구 목동로의 한 아파트 안방에서 A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 B씨가 발견해 신고했다. 집의 작은 방에서는 딸의 시신이 발견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A씨의 유서에는 딸의 정신질환 등으로 힘들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유서 등을 토대로 어머니 A씨가 딸을 숨지게 한 뒤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한편, 부검을 의뢰하는 등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물질의 유토피아, 정신의 디스토피아… 맨발의 청춘 울린 서울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물질의 유토피아, 정신의 디스토피아… 맨발의 청춘 울린 서울

    ‘2018년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는 이번 회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지난해 5월 12일 1회를 시작한 이후 매주 토요일 오전과 한여름 밤 그리고 추석 연휴 기간을 이용해 총 35차례에 걸쳐 서울 전역을 샅샅이 훑었습니다. 서울미래유산을 중심으로 서울의 역사 현장을 두 발로 밟았고, 사연을 톺아보았습니다.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 매회 정원 30명이 조기 매진됐고, 1회 평균 35명이 참석해 연인원 1225명이 서울미래유산과 함께했습니다. 투어는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배출한 서울도시문화지도사 17명이 해설자로 참여해 각양각색의 해설을 선사했습니다. 또 매회 투어 대상지의 역사적 맥락과 더불어 흥미진진 견문기, 서울미래유산 톡톡 등 3개 꼭지의 원고를 서울신문 지면에 실어 이해를 도왔습니다. 무료 답사프로그램으론 처음으로 오디오가이드시스템을 도입해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2019년에는 더 알찬 프로그램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드립니다.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5회 서울의 영화2(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편이 지난해 마지막 주말인 12월 29일 중구 명동과 종로구 청진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을지로3가역 12번 출구에 모인 참석자 40여명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영락교회~명동예술극장~유네스코회관을 거쳐 옛 반도호텔 자리인 롯데호텔과 아이스링크가 설치된 서울광장을 순례했다. 영하 11도의 한파가 몰아친 현장답사에 이어 청진동 라이나생명 전성기캠퍼스에서 영화스틸을 이용한 영화 해설과 함께 일정을 마무리했다.●빛과 그림자 양극단이 공존하는 서울 “영화에서 서울을 읽겠다는 것은 영화에 일시적으로 재현된 수많은 서울의 역사를 긍정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불연속적인 단편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서울이란 당위적으로 존재하는 관념의 장소가 아니라 우리 삶의 무한한 임시거처이며 그 삶들이 중층화되고 끊임없이 변경되는 현실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모더니티와 영화장치가 적극적으로 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이다. …서울은 유일한 대안이자 환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라고 영화평론가 변재란 순천향대 교수는 ‘근대화 시기 한국영화를 통해 본 영화 안의 서울’이란 논문에서 영화도시 서울을 분석했다.문학작품 속 서울처럼 영화 속 서울 또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일제강점기, 전쟁과 분단의 비극과 참상 그리고 서울로의 인구집중, 근대화 및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무자비한 개발이 낳은 인간성 상실과 사회병리 현상을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은 물질적으로는 유토피아지만 정신적으로는 디스토피아이다. 빛과 그림자의 양극단이 공존하는 거대도시이다. “경험은 기억 속에서 엄격히 고정돼 있는 개별적인 사실들에 의해서 형성되는 산물이 아니라 종종 의식조차 되지 않는 자료들이 축적돼 하나로 합쳐지는 종합적 기억의 산물”이라는 도시연구가 발터 베냐민의 지적처럼 서울이라는 도시는 영화필름에 담긴 영상적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영화 ‘맨발의 청춘’은 서울관객 25만명을 동원한 당대 최고의 흥행작이자 대중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 4·19, 5·16이라는 미증유의 변혁기를 거치면서 외국영화에 빠져 있던 젊은이들을 한국영화 전용상영관으로 끌어 모은 청춘영화의 결정판이었다. 김기덕 감독은 ‘청춘영화의 기수’라는 칭송을 한몸에 받았다. 김 감독은 1961년 ‘5인의 해병’으로 메가폰을 잡은 뒤 1960~70년대 흥행보증수표로 통했다. 모교인 서울예대 영화과 교수, 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이 영화를 빼고 한국의 대중영화를 말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수많은 아류작들을 배출했다. 1964년 아카데미극장에서 3·1절 특선영화로 개봉됐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60년대는 새마을운동과 남과 북의 체제 경쟁, 조국근대화의 계몽적 담론이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대학생을 젊은이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내세운 여느 영화와는 달리 사회의 암적 존재인 깡패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이 색달랐다. 시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불우한 개인사를 가진 두수를 통해 떠도는 젊은이의 억압된 열망을 보여 줬다. 그러나 일본영화 ‘진흙 속의 순정’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가져온 모방작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본문화의 유입이나 유행을 경계하는 부정적 시선이 엄연하던 때였다. 고아 출신의 불량배와 고위 외교관 자녀의 사랑이라는,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 설정과 지나치게 서구적인 소비문화, 동반자살을 택하는 극단적인 자유분방함은 허황된 낭만주의와 통속적이고 신파적이라는 혹평을 받았다.●신성일·엄앵란의 사랑의 불씨가 된 영화 신성일과 엄앵란이라는 당대 최고 청춘심벌을 결합시킨 작품이라는 영화 외적 측면도 무시 못 한다. 두 사람은 1962년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에서 콤비를 이룬 뒤 정진우 감독의 ‘배신’에서 최초의 키스 장면을 선보였고, ‘맨발의 청춘’이 최고의 흥행작이 되면서 사랑의 감정에 불이 붙었다. 김 감독의 ‘동백아가씨’를 찍은 부산에서 잊지 못할 하룻밤을 보낸 두 사람은 1964년 11월 14일 세기적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가정교사’, ‘청춘교실’, ‘떠날 때는 말없이’, ‘학생부부’ 등 80여편에서 호흡을 맞췄다. 신성일의 본명은 강신영이다. 신성일을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시킨 신상옥 감독이 ‘뉴 스타 넘버원’이라는 영어를 한자 예명으로 지어줬다. 신성일은 자신을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거칠 것 없는 자유인, 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삶을 산 로맨티스트라고 소개한다. 모두 506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60~70년대 청춘스타의 대명사였고, 한국영화배우협회 초대 이사장을 거쳐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영화에서 감초역을 맡은 아가리(트위스트 김)가 울면서 두수의 시신을 실은 리어카를 눈길 위에서 끄는 엔딩 장면에도 재미난 사연이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을 낳았고,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던 맨발이 나오는 장면이다. 그런데 눈을 찾아 대관령으로 간 촬영팀의 카메라에 잡힌 거적에 덮인 맨발의 주인공은 신성일이 아닌 제2 조감독이었다고 한다.●감독도 배우도 주제곡 부른 가수도 떠나고 두수라는 캐릭터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탄생했다. 신성일이 대한민국 최고의 멋쟁이로 여겼던 김두수 우석학원재단 이사장이다. 미국 배우 앤서니 퀸을 닮은 그에게 신성일이 전화를 걸어 “형, ‘맨발의 청춘’에 형 이름 써도 괜찮아?”라고 묻자 그는 “나야 좋지”라고 흔쾌히 허락했다. 두수는 뒷골목 사나이의 이름으로 어울렸다. 요안나란 이름은 세례명이다. 때 묻지 않은 고귀한 이름으로 뒷골목 사나이와 신분격차를 벌리는 역할을 했다. 주제곡도 히트했다.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밤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사랑만은 단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말라/그대를 태양처럼 우러러보는/사나이 이 가슴을 알아줄 날 있으리라” 첫 장면부터 짙은 페이소스가 풍기는 가수 최희준의 저음은 관객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이다. 3·1절 기념작으로 개봉 일정이 잡힌 영화는 촬영기간 18일 만에 급조됐다. 편집기사 출신으로 편집의 명수였던 김 감독은 촬영 중반부터는 아예 녹음실에 틀어박혔다. 현장에서 찍어서 녹음실로 보내면 녹음실에서 편집해 가면서 녹음을 했다. 신성일은 “영화는 조감독 고영남과 나, 엄앵란 셋이 현장에서 만들다시피 했다. 시간이 없어서 어떤 일을 못한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맨발의 청춘’은 장고 끝에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었다. …엄앵란과는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지낸다. 가정의 즐거움을 같이 누리면서도 애정 문제만큼은 상대방의 의지에 맡기고 구속하지 않는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우리나라 현실에서 미래의 부부상을 일찌감치 실천하는 셈이다”라고 자서전에 썼다. 김 감독은 2017년 9월, 가수 최희준은 2018년 8월, 신성일은 2018년 11월 각각 별세했다. 한시대가 저물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 김용균법 통과돼도 위험한 컨베이어벨트는 돌아간다

    이른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어도 김씨의 동료 노동자는 여전히 위험한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태안화력발전소 작업 중에 숨진 김씨의 동료 노동자 김경진씨는 2일 충남도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용균 조합원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작업현장은 산안법 개정 대상이 아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씨는 “태안화력 9·10호기는 정지됐지만 1∼8호기 컨베이어벨트는 지금도 죽음을 향해 돌아가고 있다”며 “하청 노동자들은 오늘도 생명과 안전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개정 산안법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하도급을 제한하고 있지만 법 적용대상 업무에서 발전소의 정비·관리는 제외돼 있다. 김씨는 “발전 노사에서 해결할 상황이 아니다”며 “안전한 일터를 만들지 않으면 죽음의 행렬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도성대 금속노조 유성지회장은 이 자리에서 “많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우울증 고위험 판정을 받았고 정신적 산재 승인을 10명이 받았다”며 “그런데도 회사는 산재 요양처분 취소청구 소송과 함께 1분 단위로 임금 삭감에 나서며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용균씨가 지난달 11일 숨진 뒤 같은 달 26일 예산과 아산에서 각각 근로자들이 기계에 끼어 사망하고 30일 우울증을 앓던 유성기업 조합원이 자살하는 등 근로자들의 사망사고가 잇따랐다. 도씨 등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월 유성기업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를 조사하고도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며 “고용노동부, 충남도, 산업안전공단, 도의회 등이 TF팀을 만들어 잇따른 노동자 작업 중 사망사고 진상조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곧 돌아와 결혼하겠다던 아들이 주검으로”

    “곧 돌아와 결혼하겠다던 아들이 주검으로”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딴저테이 아버지당국 단속 과정서 사망한 아들 소식에 고통 “아들의 죽음으로 제 오른팔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이제 전 그저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지난해 8월 법무부 불법체류자 단속 과정에서 사망한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당시 26세)의 아버지 깜칫(54)은 2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종로구 조계사 회의실에서 취재진을 만나 조심스레 심경을 털어놨다. 지난달 25일 한국에 입국한 딴저테이의 아버지는 이날 조계사를 찾아 딴저테이 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힘쓴 시민단체들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을 만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깜칫은 “아들 딴저테이는 병든 형 대신 자기라도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한국까지 훌쩍 떠나 4년 동안 번 돈을 남김없이 가족에게 보냈던 착한 아들”이었다면서 “비자가 만료될 즈음 자기가 꿈이 있어 1년만 더 일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날 아버지 깜칫은 마음에 담긴 말을 길게 꺼내놓지 못했다. 시종일관 목소리는 작았고, 대답을 할 때마다 곤혹스러운 듯 이마와 얼굴을 매만졌다. 마치 아들 사망의 무게가 그의 어깨에 놓인 듯 그의 어깨는 잔뜩 움츠려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다”고 했다. “법무부가 내놓는 자료만으론 누가 잘못했는지, 공개 영상 이전이나 이후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면서 “이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대통령께서도 힘써주시기를 꼭 좀 부탁드린다”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아직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이상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사건 발생 소식을 듣고 지난 9월 한국에 입국했던 깜칫은 아들의 뇌사 판정을 직접 들었다. 그는 “미얀마에서 아들이 잘못됐다는 소리를 한국에 있는 다른 미얀마 노동자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처음엔 병원 차트에 자살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전해들었다”고 했다. 그 외에 당국의 연락 등 일체의 사망 안내는 없었다. 아버지는 뇌사 상태였던 딴저테이의 장기를 4명의 한국인에게 기증하는 데 동의했다. 한국이 밉지는 않았냐는 질문에는 “아들은 어차피 죽어 살 수 없지만, 아들의 몸으로 아직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은 살 수 있다고 해 그렇게 결정했다”고 했다. 또한 “아들이 죽을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몰랐지만, 진실을 밝혀주기 위해 애써주는 분들이 계셔 마음이 나아졌다”며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자리에는 딴저테이와 한국에서 함께 살았던 노동자 등 동료 2명도 함께 했다. 한국에서 딴저테이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 노동자 A씨는 “딴저테이가 고국에 있는 여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이번 김포 건만 끝나고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김포 현장에서 이렇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2014년 3월에도 다른 단속을 본 적이 있지만 그땐 문 앞에서 신분증을 검사하는 식으로 차분히 진행됐는데, 이번엔 갑자기 들이닥쳐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잡아끄는 등 그때와는 많이 달랐다”고 증언했다. 딴저테이는 지난해 8월 김포의 한 건설현장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법무부 불법체류 단속 과정에서 공사 현장에 떨어졌다. 그는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지난 9월 8일 한국인 4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딴저테이는 2013년 취업비자로 한국으로 넘어와 2018년 초 비자 연장이 안 돼 불법체류자 신세가 됐다. 이주노동자단체는 단속 과정에서 국가가 안전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토끼몰이식 단속을 강행한 데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 사건을 조사중이다. 깜칫은 이날 오후 5시 서울 광화문광장 김용균 분향소에서 태안화력에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어머니를 만나 아들을 잃은 부모로서 서로를 위로했다. 글·사진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구글 맵 믿었다가 1년 반 주검 못 찾아, 애꿎은 사람 의심까지”

    “구글 맵 믿었다가 1년 반 주검 못 찾아, 애꿎은 사람 의심까지”

    호주의 46세 남성 대럴 사이먼이 브리즈번에서 서쪽으로 80㎞ 떨어진 레이들리 크릭 웨스트의 동거녀 집에서 사라진 것은 2014년 11월이었다. 수색대가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그의 주검은 2016년 5월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사유지를 인수한 사람이 근처 숲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와중에야 그의 주검이 확인됐다. 존 로크 퀸즐랜드주 검시사무소 부국장은 구글 맵의 엉터리 정보에 현혹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주검을 18개월 앞서 찾을 수 있었다고 지적해 눈길을 끈다. 경찰이 배포해 자원봉사자들이 수색할 때 참고한 지도가 잘못 되는 바람에 에 있는 사이먼의 사유지 가운데 절반만 수색해 그의 주검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자살한 것이 너무도 명백해 보였다. 로크 부국장은 지난달 완성한 보고서를 통해 “당시 수색했어야 할 지역의 절반만 해낸 지상 수색은 매우 통탄할 만하며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며 주검이 늦게 발견됨으로써 “가족과 친구들, 특히 부친의 슬픔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주검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돈 문제로 인해 갈등을 겪다 범죄에 희생된 것인지 하는 의심이 싹 텄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중상과 명예훼손에 가까운 의심들이 덧씌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로크는 사이먼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곳 근처에 무성하게 자라 있던 식물들 때문에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의 보고서는 구글 맵이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면서 고감도 GPS와 지도 작성 데이터를 활용하는 게 좋겠고, 수색에 나선 자원봉사자끼리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개선하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퀸즐랜드 경찰은 이미 두 가지 조언을 좇아 수색 방법을 개선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로크는 덧붙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고 임세원 교수 추모물결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고 임세원 교수 추모물결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고(故) 임세원(47) 강북삼성병원 정신의학과 교수에 대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임 교수는 지난달 31일 오후 5시44분쯤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복도에서 담당 환자 박모(30)씨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박씨는 조울증으로 불리는 양극성 장애를 앓아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했고, 수개월간 병원에 오지 않았다. 임 교수는 20년간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를 돌보며 10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한 정신건강의학 분야 전문가였다. 자살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힘썼고, 2016년에는 자신의 우울증 극복기를 담은 책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출간했다. 생전 남긴 SNS글에는 ‘힘들어도 오늘을 견디어 보자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 함께 살아보자고’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자신의 모친이 임 교수에게 5년간 진료를 받았다고 밝힌 네티즌은 “항상 친절하던 분이었다. 어머니도 착한 사람은 일찍 하늘에 가는 것 같다고 하신다. 늘 90도로 인사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고인은 본인에게는 한없이 엄격하면서 질환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을 돌보고 치료하고 그들의 회복을 함께 기뻐했던 훌륭한 의사이자 치유자였다”며 “우리나라의 자살 예방을 위해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던 우리 사회의 리더”라고 추모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새해 전날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 황망하고 안타깝다. 응급실뿐 아니라 진료실 등 병원 전반에서 의료인이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다”며 “병원 내 폭력 근절은 의사 안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치료환경을 위한 것으로 근본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해방구 佛조계지서 태동한 상하이 정부… 대한민국 국호 첫 명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해방구 佛조계지서 태동한 상하이 정부… 대한민국 국호 첫 명시

    1부 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②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중국 상하이는 명나라 말기부터 성장해 1880년대에는 동북아시아의 최대 상업 도시가 됐다. 1910년 대한제국 국권을 빼앗긴 뒤로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주목받았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이 독자적 주권을 행사하는 ‘조계’(외국인 자치구역)를 설치해 일본을 비롯한 다른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간섭을 피할 수 있었다. 특히 프랑스는 외국인에게도 건국이념인 자유·평등·박애 정신을 보장해 한국인에게는 말 그대로 ‘해방구’였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 민족의 두 번째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태동했다.●“첫 번째 ‘임정 터’ 못 찾아…대한민국의 숙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를 위해 지난달 중순 찾아간 상하이 최대 번화가 화이하이중루 일대. 사람과 차들로 거리가 넘쳐나고 전 세계 패션 브랜드가 건물마다 즐비했다. ‘자본주의 최전선’인 이곳이 정말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기자와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고층빌딩이 가득 찬 서금이로(옛 김신부로) 지역을 바라보며 “100년 전 이곳 어딘가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프랑스 정부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선포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상하이 임정 기념관은 ‘보경리 청사’로 1926~1932년에 썼던 곳이다. 이 작가는 “최근 중국인 학자가 첫 번째 임정 터를 찾았다고 간략히 발표했지만 이에 대한 고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시원(始原)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1919년 3월 17일 러시아 고려인들이 프리모르스키(연해주)에서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를 선포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때마침 서울에서도 임정 수립을 논의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상하이 독립운동가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같은 달 26일 프랑스 조계의 한 예배당에 모였다. “조선총독부에 맞서 서둘러 임시정부를 조직하자”는 의견과 “대표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국내 지도자들의 뜻을 들어 보고 정하자”는 반론이 맞섰다. 하지만 3·1운동 직후부터 중국과 러시아에서 거물급 인사들이 상하이로 모여들고 있어 정부 수립을 더는 늦추기 어려웠다. 앞선 노령정부에다가 서울에 임정(한성정부)이 또 생기면 독립운동의 주도권을 놓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퍼졌다. 4월 10일 이동녕(1869~1940)과 이광수(1892~1950), 여운형(1886~1947) 등은 우리 역사 최초의 의회인 임시의정원을 꾸리고 첫 번째 회의를 가졌다. 밤을 새워 토의하던 중 신석우(1894∼1953)가 “임시정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고종 황제가 선포한 대한제국에서 ‘대한’을 따오고 공화제 국가인 중화민국에서 ‘민국’을 가져온 것이다. 여운형이 “이 나라가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망했는데 또다시 ‘대한’을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묻자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 보자”고 재치 있게 응수했다. 의원 다수가 이에 공감해 상하이정부의 이름이 정해졌다. 다음날 이들은 국무총리에 이승만(1875~1965)을 추대하고 내무 안창호(1878~1938), 재무 최재형(1860~1920) 등 6부 총장(장관)을 임명했다. 우리가 국가기념일로 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4월 11일)은 여기서 유래됐다.●왕 아닌 인민이 주인인 민주공화정 첫 공식화 그렇다면 두 번째 임정은 왜 상하이에 세워졌을까. 독립운동가 양우조(1897~1964)·최선화(1911~2003) 부부의 임정 기록을 외손녀 김현주씨가 정리한 ‘제시의 일기’(1999년)를 보면 여기가 왜 임정의 적지인지 잘 묘사돼 있다. “중일전쟁(1937~1945) 전 상하이는 서양 문물의 향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와 똑같이 살 수 있도록 조계지로 분할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조계지가 시설이 가장 좋았다. 프랑스는 자유를 사랑하는 나라답게 망명객들에게 호의적이었다. 조선에서 온 이들이 다른 조계지에 숨으면 곧 붙들려 갔지만 프랑스 조계지에서는 안전했다. 설사 끌려간다고 해도 프랑스 정부가 항의하면 다시 풀려나올 수 있었다.”(1946년 2월 21일) 상하이정부는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노령·한성정부와 달리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명시하고 한국사 최초로 민주공화정 국가 건설을 공식화한 것이다. 새 나라가 대한제국(조선)을 계승하면서도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인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3·1운동 전까지 이어져 오던 복벽주의(나라를 되찾아 왕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를 완전히 단절시킨 것이다. 다만 상하이정부가 추구한 ‘외교독립론’은 훗날 임정이 끊임없이 갈등과 내분에 빠지는 단초가 됐다. 외교적 방법론은 당시 우리 민족의 현실적 역량을 반영한 전략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이기든 지든) 일본과의 전쟁을 수행하지 않고는 나라를 되찾을 수 없다고 믿는 무장투쟁론자들을 설득하진 못했다.●쑨원의 부인 추모 능원에 신규식 등 만국공묘 상하이지하철 10호선 쑹위안루역 2번 출구로 나오니 말끔하게 정돈된 공원이 있었다. ‘중화민국의 아버지’ 쑨원(1866~1925)의 두 번째 부인이자 ‘중국의 국모’로 불리는 쑹칭링(1893~1981)을 추모하는 곳이다. 공원 한쪽에 외국인 묘지를 모아 놓은 ‘만국공묘’가 나타났다. 묘비를 하나씩 더듬다가 낯선 한국인 이름 하나를 찾아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획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계자’로 인정받는 신규식(1880~1922)이었다. 나라를 위해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을 만큼 불 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특히 한쪽 눈을 가린 채 카이저 수염을 기른 외모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하지만 그가 초기 임정을 상하이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누구보다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충북 청원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신채호(1880~1936), 신석우와 함께 ‘산동삼재’(산동신씨 가문의 3대 수재)로 불렸다. 대한제국에서 군 장교로 활동하다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첫 번째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가족에게 발견돼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눈 시력을 잃었다. 지인들이 ‘애꾸눈’이라고 놀리자 신규식은 스스로를 ‘예관’(睨觀·한쪽 눈으로 흘겨봄)으로 불렀다.●신해혁명 경험삼아 민주공화정 개념 전파 1910년 8월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두 번째로 집에서 독을 마셨다. 때마침 대종교 종사 나철(1863~1916)의 눈에 띄어 다시 한 번 구조됐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이듬해 상하이로 망명했다. 중국의 공화주의 노력을 한반도에 적용하겠다는 생각에 쑨원과 천두슈(1879~1942), 천치메이(1878~1916) 등 혁명가 그룹과 친분을 맺었다. 쑨원이 이끄는 ‘중국동맹회’(1905~1912·중국 국민당의 전신)에 가입하고 청 왕조를 무너뜨린 신해혁명에도 직접 참여했다. 1912년 국내 독립운동 세력을 결집하고자 ‘동제사’를 조직했다. 총재 박은식(1859~1925)을 비롯해 김규식(1881~1950), 신채호, 조소앙(1887~1958) 등 동제사 출신은 후일 임정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다. 이들은 1917년 7월 임시정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했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2년 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촉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 임정이 상하이에 자리잡은 건 신규식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대한민국 국호를 제안한 신석우가 바로 신규식의 조카”라며 “신규식은 자신의 신해혁명 경험을 독립지사들에게 소개해 대한민국의 토대가 된 민주공화정 개념을 설파했다”고 설명했다. 1921년 11월 쑨원이 이끄는 중국국민당이 베이징 군벌정부에 대항해 광둥에 호법정부를 세웠다. 신규식은 국무총리·외무총장 자격으로 그를 찾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식 국가로 승인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쑨원은 혁명동지 신규식을 극진히 예우했다. 호법정부의 정치·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았음에도 그의 부탁을 일부 받아들였다. 이는 국제적으로 정식 주권기구로 인정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임정이 국민당의 후원을 받아 다소나마 활로를 찾는 계기가 됐다. ●해외서 문전박대 뒤 임정 외교독립론 도마에 1922년 대통령 이승만이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고자 워싱턴회의에 갔다가 개최국인 미국으로부터 문전박대 당해 쫓겨났다. 임정의 외교독립론이 논란이 됐다. 신규식은 이런 임정의 처지를 비관해 25일간 단식하다가 같은 해 9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일각에서는 그가 1921년 쑨원을 만났을 때 황제에게 예를 표하는 ‘만세’를 외친 것을 두고 사대적 자세를 지적한다. 하지만 대의명분을 누구보다 중시하던 신규식의 평소 성격에 비춰 볼 때 그런 굴욕을 참아내며 쑨원을 대한 건 오로지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으리라. 상하이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기고] 대한민국 위기 극복, 자치분권에 달렸다/양승조 충남지사

    [기고] 대한민국 위기 극복, 자치분권에 달렸다/양승조 충남지사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놨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명의 ‘30-50’ 클럽에 일곱 번째로 가입하는 국가가 된다.한국전쟁 뒤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에 불과했던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참으로 눈부신 성과다.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간과해선 안 될 여러 위기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 양극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저출산 문제다. 우리나라는 2002년 이후 줄곧 합계 출산율이 1.3명 미만인 초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는 0.98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저출산은 위기의 악순환을 불러온다. 생산인구와 소비인구를 감소시켜 경제 규모 축소로 이어지고 다시 인구의 감소를 가져와 경제 몰락이 가속화된다. 또 다른 하나는 고령화다. 지난해 10월 기준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14.7%를 넘어 이제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지금 추세라면 2026년에는 노인 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는 막을 수 없다.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노년 부양비 급증과 노인 자살률 증가 등은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위기 징후이기도 하다. 사회 양극화 위기도 심각하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에서 전 세계 156개국을 상대로 국민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국민의 70%가 이민 가고 싶은 나라,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회적·경제적 신분이 상승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55%인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적 통합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위기를 극복할 방안은 무엇인가. 나는 그 답이 ‘자치분권의 확대와 정착’에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와 농촌이 혼재된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돼 보니 3대 위기의 파고는 지방이 훨씬 심각했다. 중앙정부의 일률적이고 통일적인 정책은 파급력이 크지만 정책 여건이 성숙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시행 속도가 더뎠다. 중앙이 대기업이라면 지방은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은 빠른 정책 실험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지방에서 선도적 극복 모델을 만들면 바로 전국에 확산시킬 수 있다. 자치분권은 3대 위기 극복에 가장 핵심적인 열쇠를 쥔 지방에 필요한 시대적 요구다.
  • 日초계기, 광개토대왕함 150m 위 ‘가미카제 비행’

    日초계기, 광개토대왕함 150m 위 ‘가미카제 비행’

    정상 비행 땐 300~450m 고도 유지“자살 공격 가능한 위치… 책임 물어야”아베, 방위성 반대에도 영상 공개 지시日 내부서도 “근거 약하다” 비판 속출한국 해군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해상초계기(P1)에 추적(조준) 레이더를 쐈는지 여부를 놓고 한·일 당국이 대화에 나선 지 하루 만인 지난 28일 일본이 일방적으로 당시 영상을 공개해 그 저의가 의심되고 있다. 특히 공개된 영상에는 일본 초계기가 구조 활동을 벌이던 광개토대왕함을 향해 위협적인 저공비행을 한 사실이 드러나 오히려 의도적 도발이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영상에서는 일본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에서 거리 500m, 고도 150m로 저공비행으로 통과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보통 초계기가 300~450m 상공에서 비행하는 것과 비교하면 위협 비행으로 여겨질 만하다. 일본은 앞서 광개토대왕함을 향한 저공비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상에서 저공비행을 한 모습이 나타나자 일본은 고도 150m 이하로 비행을 금지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안전협약을 준수했다며 또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ICAO 안전협약은 민항기에 해당할 뿐 군용기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게 한국군 당국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일본 초계기의 저공비행이 흡사 과거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 군함을 향해 자살공격을 감행하던 ‘가미카제’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근식 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은 “일본 초계기가 군함의 500m 거리로 접근한 건 이례적인 위협 비행으로 함정을 향한 자살 충돌공격도 가능한 거리”라면서 “일본이 어떤 이유에서 위협적인 저공비행을 감행했는지에 대해 책임을 묻고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했다. 설령 일본 측 주장대로 한국 군함이 추적 레이더를 쐈다 치더라도 당시 일본 초계기의 대응은 납득하기 힘들다. 추적 레이더를 받으면 즉각 현장을 회피하거나 대응태세에 들어가야 하는데 초계기는 기다렸다는 듯 태연히 ‘당신의 사격통제(FC) 안테나가 우리를 향해 있다.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추궁하듯 한국 군함에 묻고 있다. 그 때문에 일본 정부가 한·일 갈등을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실제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27일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에게 해당 레이더 동영상 공개를 지시했다. 도쿄신문은 방위성이 “한국을 더 반발하게 할 뿐”이라며 신중론을 폈지만 아베 총리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내년 통일지방선거와 참의원선거라는 2개의 대형 정치 이벤트를 앞둔 상태에서 최근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곤혹스러워해 왔다. 이 때문에 한국과의 갈등을 부각시켜 보수·우익의 표를 결집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동영상 공개와 관련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방위성이 핵심 증거인 레이더 주파수 데이터는 ‘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상자위대 소장 출신인 이토 도시유키 가나자와공대 교수는 “이번 동영상은 일본 측 주장의 근거로는 약하다”고 했다. 서울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작은 힘 모아 사회적 약자 지원…소송비용 모금 ‘크라우드 펀딩’ 일본에서 확산

    작은 힘 모아 사회적 약자 지원…소송비용 모금 ‘크라우드 펀딩’ 일본에서 확산

    일본에서는 지난 10월 ‘리갈 펀딩’이라는 이름의 크라우드 펀딩(어떤 목적을 위해 일반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 사이트가 출범했다. ‘당신의 지원이 사회를 바꿉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리갈 펀딩은 영어 명칭 그대로 재판 등에 필요한 소송비용 마련을 위한 모금 사이트다. 공익적인 성격의 재판에 필요한 비용을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30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약자의 권익 찾기와 같은 사회적 이슈 관련 재판에서 대중들이 힘을 모아 소송을 지원하는 크라우드 펀딩이 일본에서 확산되고 있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돈이 없어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거나 중도에 소송을 취하하는 등 서민에게 과도하게 높은 법의 문턱을 조금이라도 낮춰 보자는 목적이다. 리갈 펀딩이 참여한 첫 번째 사건은 올 3월 발생한 걸그룹 ‘사랑의 잎 걸스’ 멤버 오모토 호노카(사망 당시 16세)의 자살과 관련해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이다. 오모토의 유족은 “과도하고 가혹한 노동환경과 처우가 자살의 원인”이라며 소속 연예기획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기획사 등 피고 측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무료 변론에 나선 변호사들의 교통비 등 300만엔(약 3000만원) 모금을 목표로 캠페인이 시작돼 현재까지 378명으로부터 약 200만엔이 모였다. 여자 수험생들에게 불리한 성적조작을 한 도쿄의과대학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에서도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되고 있다. 당초 목표는 250만엔이었지만 현재까지 약 680만엔이 모였다. 리갈 펀딩을 주도하고 있는 모치즈키 히로무 변호사는 “돈이 없어 재판을 포기하는 사람을 줄이고 싶었다”고 마이니치에 말했다. 그는 “공익성이 큰 사회문제에 관한 소송은 장기화돼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경향이 있어 원고 측이 중도에 소송을 취하하는 경우가 많다”고 경제적 약자를 위해 크라우드 펀딩에 나서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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