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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죽음을 얘기하다 삶의 해결책을 찾기도 합니다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죽음을 얘기하다 삶의 해결책을 찾기도 합니다

    세계 89개국 9000명 회원 둔 비영리단체1998년 설립 이후 2700명 조력자살 도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했는지 꼼꼼히 확인 준비할 때 가족·친구가 모든 여정 함께해야 위험하고 고독한 자살 시도 줄이는 데 중점 사람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게 목표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지원하는 ‘디그니타스’는 전 세계 89개국 9000여명의 회원을 둔 비영리 단체다. 1998년 5월 취리히에 설립됐으며, 최근 6년간 매년 200여건의 조력자살이 이곳을 통해 이뤄진다. 조력자살은 의사가 처방한 독약을 환자가 스스로 복용하고 생명을 끊는 것이다. 스위스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약을 주입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적극적 안락사와 구분한다. 서울신문이 디그니타스와 처음 접촉한 건 지난해 9월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디그니타스에 회원 가입한 한국인은 있지만 실제 조력자살을 시행한 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취재 결과 디그니타스를 통해 향후 안락사를 계획하거나 고민 중인 한국인 수는 47명이며, 이미 한국인 2명이 각각 2016년과 2018년 현지에서 조력자살을 감행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서울신문은 지난 1월 스위스 취리히주 포치에 있는 디그니타스 본부를 방문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실반 룰레이 디그니타스 공동대표와 대면 인터뷰했다. -디그니타스가 하는 일은.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이어 나가고, 그 삶을 마감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죽음을 돕는 일뿐만 아니라 말기 환자들을 위한 완화의료, 자살 시도 예방, 돌봄 계획, 생애말 선택 등에 관한 다양한 일을 한다. 하는 일의 핵심은 위험하고 고독한 자살 시도를 줄이는 데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외롭고 비밀스럽게 자살을 시도하는데 이 중 상당수는 실패한다. 종종 이런 자살 시도는 또다시 반복된다. 끔찍한 시도를 줄이기 위해 우리가 취하는 접근 방식은 터부를 깨는 것이다. 죽음과 고통, 자살에 대해 터놓고 얘기한다. 우리에게 전화한 사람들은 “죽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디그니타스는 “그래요. 그건 당신의 죽을 권리예요. 그것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라고 말한다. 고통과 절망감,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역설적으로 삶을 이어 갈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외국인 조력자살을 지원하는 법적 근거는. “스위스 형법은 이기적인 동기로 자살을 도우면 처벌 가능하다고 정의한다. 즉 이기적인 동기가 없다면 죄가 되지 않는다. 또 법은 스위스 외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은 똑같다. 어려움과 고통을 끝내고자 하는 희망은 스위스인이나 한국인이나 다르지 않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못 하게 한다면 오히려 차별이다.” -최근 단지 고령의 노인이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 조력자살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데. “2006년 스위스연방대법원은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끝낼 것인지를 결정할 권리도 자기결정권’이란 결론을 내렸다. 물론 자유롭게 결정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전제다. 권리는 정신병 환자나 노인에게도 똑같이 있다. 불치병을 앓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고통이 덜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정신병이 있는 경우엔 평가를 받기 위해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아야 하는 등 추가적인 절차는 필요하다.”-조력자살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의료 기록과 개인사다. 의료 기록을 통해 병이 무엇이며, 얼마나 오랫동안 앓았고, 어떤 약이나 수술을 통해 치료를 했으며, 치료 효과는 있었는지 등을 본다. 또 조력자살을 하려 한다면 스스로 결정한 건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여러 가지 자료와 질문지 응답을 통해 살펴본다. 현 상태에서 이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뭔지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 등도 꼼꼼히 살펴본다.” -스위스에서는 조력자살은 허용하지만 의사가 직접 치명적인 약을 환자에게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하지 않는다. 적극적 안락사 도입이 필요한가. “스위스는 개인의 자율, 개성, 책임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조력자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든 과정을 자신이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 있다. 가족들에게 자신의 뜻을 지지해 달라고 할 수는 있지만 실제 행동은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조력자살을 위한) 약을 대신 먹여 달라거나 의사한테 주사기를 눌러 달라고 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몸을 완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에는 조력자살을 하기가 어렵다. 이런 경우엔 약 먹는 것을 도와주는 기계를 만들어 실행 버튼은 본인이 직접 누르게 한다. 일부 특수한 경우에는 선택적으로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다. 아직까지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더라도 거의 모든 상황에서 환자를 도울 수 있다.” -조력자살이 허용되면 경제적으로 치료를 받을 만한 돈이 없는 사람들이 사실상 자살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 않나. “조력자살이나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모든 국민이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공공 의료 시스템과 통증 완화의료 제도도 동시에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치료를 받을 돈이 없거나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조력자살을 선택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현재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들은 모두 이런 공공의료 시스템이나 완화의료 제도가 매우 잘 갖춰져 있다.” -지켜보는 가족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트라우마)가 매우 크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트라우마를 남기는 건 가족에게 말 없이 혼자서 위험한 자살을 시도했을 때다. 우리는 조력자살을 준비할 때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족과 친구들이 조력자살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경우엔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모든 여정의 동반자가 돼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조력자살(assisted suicide)이라고 하지 않고 동행자살(accompanied suicide)이라고 한다.” -디그니타스가 너무 비밀스럽다는 얘기도 있다. 사무실 주소는 왜 공개하지 않는가. “우리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이 12명밖에 되지 않는 비영리 단체다. 그런데 전 세계 사람들이 매일같이 온다고 상상해 봐라. 가끔 디그니타스를 병원으로 착각하고 멀리 외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전화나 이메일 등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한국도 조력자살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한국인은 한국에서 통증 완화 의료와 소극적 안락사, 조력자살, 적극적 안락사 등 삶의 마감에 대한 모든 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물론 이는 한국사람들이 결정할 문제다. 다만 한국인들도 스위스인과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있어야 한다. 농담 같지만 우리는 (디그니타스가) 없어지기 위해 일한다. 더이상 모든 사람들이 디그니타스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우리는 문을 닫을 것이다. 그게 우리의 목표이고 철학이다.” ※이 기사는 서울신문 홈페이지(www.seoul.co.kr)에서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결국… 저는 오랜 친구의 안락사를 도왔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결국… 저는 오랜 친구의 안락사를 도왔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정호와 오랜만에 통화 통증 때문에 안락사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함께 취리히 교외 파란 2층 집에 갔습니다 시내에서 피자 한 접시를 먹는 친구를 보며 한참 더 살 수 있을 텐데, 죽는 게 말이 될까 서울로 돌아가자 했지만 그는 남았습니다 암 투병으로 고통을 겪는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온몸이 부서질 듯한 통증 때문에 안락사하고 싶다고 합니다. 스위스에 함께 가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익명의 취재원 케빈(가명)은 실제로 스위스행을 결정했습니다. 타인의 자살을 도운 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러기엔 친구의 부탁이 너무도 간절했습니다. 케빈은 스위스에서 극단적 선택을 끝까지 말렸지만, 친구는 결국 그의 방식대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스위스는 유일하게 외국인의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국가로, 영화 ‘미 비포 유’의 남자 주인공이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10월부터 약 5개월에 걸쳐 ‘한국인의 존엄한 죽음’에 대해 취재했습니다. 외국인 조력자살을 돕는 글로벌 단체를 모두 확인하는 과정에서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감행한 한국인이 두 명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스위스 현지와 한국으로 오가는 추적 끝에 어렵사리 케빈을 만났고, 오랜 설득을 통해 그는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케빈은 지난달 자신의 소회를 담은 편지 한 통을 서울신문 앞으로 보내왔습니다. 그는 물론 한국인이며,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선택한 한국인 두 명 중 한 사람의 친구입니다. 그가 처음 케빈이라는 이름을 썼기에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케빈의 편지를 최대한 원문을 살려 상하로 나눠 싣습니다. 케빈의 요청 등을 고려해 안락사한 분의 나이, 가족 관계, 직업 등 구체적 신원과 사망일 등은 적지 않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저는 한국의 평범한 40대 가장입니다. 스위스에 다녀온 지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지금도 제가 한 일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아니면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앞서간 제 친구의 선택이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친구의 용기를 사회적으로 헤아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친구의 이름은 박정호(가명)입니다. 저는 정호와 함께 말기 암환자 등에게 조력자살을 도와주는 스위스에 있는 디그니타스라는 단체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친구는 더이상 이곳에 없습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정호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안부를 묻고 답하다가 대뜸 스위스에 같이 가줄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암투병을 해오던 걸 알았기에 저로서는 그 제안이 무척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그 기쁨이 잠시 뒤 눈물로 변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거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은 저는 너무나 떨렸습니다. 친구가 얘기한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을 끄집어 내려고 애썼습니다. 너무 혼란스러워 다 기억나지는 않았는데, 처음에 인터넷에 입력한 단어는 ‘스위스’와 ‘안락사’였던 것 같습니다. 검색어 아래로 충격적인 글과 사진, 동영상들이 나타났습니다. 검색된 글들을 읽다가 ‘조력자살’과 ‘디그니타스’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친구가 했던 이야기들이 이해가 됐습니다. 가슴이 뛰고 눈물이 콸콸 쏟아졌습니다. 디그니타스 직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약물을 환자가 스스로 마시고 곧 잠에 드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제 친구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 친구는 시한부 삶 선고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병세가 더 심해졌을 때 나타날 고통을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한 번은 저에게 물에 빠져본 적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러면서 상태가 더 악화되면 자신은 결국 익사하는 고통 속에서 죽게 될 거라며 그 전에 평화롭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가족이 겪을 고통과 경제적 부담도 내심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스위스까지 같이 가줄 수 있느냐는 말에 ‘아니’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는 제가 법적인 문제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 안 가도 된다는 말도 했지만, 제가 가겠다고 하자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난 얼마 뒤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직접 보기는 꽤 오랜만이었지요. 친구는 이전보다 훨씬 불편해 보이긴 했지만, 말도 잘하고 고집도 있고 아주 똑똑해 보였습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계절의 변화도 느끼고 차를 운전해 이곳저곳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만나서 그저 농담하고 이야기하니 예전처럼 즐거웠습니다. 친구와 죽음이라는 단어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스위스로 떠나는 날 아침에는 비가 쏟아졌는데, 출국장에 먼저 도착해 저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이미 친구의 몸이 많이 불편했기 때문에 우리는 공항 직원의 도움을 받아 탑승했고, 12시간이 넘는 힘든 비행 끝에 취리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스위스에서 보낼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사실 낯선 그곳에서 아픈 친구를 데리고 뭘 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호텔에서 가만히 있기가 뭣해 빌린 차를 끌고 일단 나섰습니다. 우리 중 누가 먼저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며칠 후 그가 죽을 장소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차량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시내를 빠져 나와 한적한 교외를 한참 달리니 파란색의 2층 집이 나왔습니다. 그 집 앞에 도착하는 순간 차에서 못 내릴 정도로 몸이 오싹했습니다. 우리는 차에 앉은 채로 파란색 집을 바라만 보다가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기분이 묘했고, 안 좋았습니다. 다시 돌아와 시내 구경을 했습니다. 양껏 시켜놓고 냄새 때문에 몇 점 먹지도 못한 스위스 퐁듀 맛도 보고, 피자도 먹었습니다. 피자 한 접시를 다 먹는 친구를 보면서 아직은 한참 더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일 모레 죽는 게 말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들은 대로 디데이(D-day) 이틀 전에 디그니타스에서 보낸 의사 한 분이 호텔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의사는 제 친구가 정말 죽을 의지가 있는지와 온전한 정신 상태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들을 했습니다. 컵에 든 물을 스스로 마셔 보라고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손으로 약물을 마실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같아 불편했습니다. 의사는 다음날 또 왔습니다. 친구의 마음이 바뀌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친구는 약을 마시고 죽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고, 의사는 5분 안에 잠들어 30분 안에 죽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의사는 자신이 처방한 약이 내일 디그니타스에 가면 준비돼 있을 거라고 말하며 면담을 마쳤습니다. “서울로 돌아가자.” 이날 밤 제 입에서는 결국 참고 있던 말이 터졌습니다. 12시간이나 비행기를 아무렇지 않게 타고 오고, 밥도 잘 먹고, 말도 잘하고, 나보다 더 똑똑한 친구가 이대로 죽는다는 게 말이 안 됐습니다. 혼자서 한국으로 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습니다. 일단 이번에는 돌아가고, 나중에 다시 함께 와주겠다며 친구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이번에 돌아가면 다시 오지 못할 것이라는 걸 직감한 듯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날 아침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친구는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했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친구가 택시를 부른 이유를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로 돌아갔을 때 자살방조죄로 곤욕을 치르게 될까 봐 배려한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마지막 배려를 말없이 받아들인 제가 창피하고 비굴하게 느껴집니다. 친구는 호텔방을 나서기 전 반으로 접은 메모지 하나를 주고 떠났습니다. 손으로 쓴 편지였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한참 후에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정호는 택시기사의 도움을 받아 차에 올랐습니다. 차창 너머로 저를 발견한 정호가 손을 내밀며 고맙다고 했습니다. 손을 잡았지만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점점 시야에서 멀어졌습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안락사 동행자 케빈의 고백 (하) 친구가 택한 존엄한 죽음, 내겐 존엄하지 않았다 ■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단독] 한국인 2명 스위스서 안락사… ‘존엄한 죽음’ 화두를 던지다

    [단독] 한국인 2명 스위스서 안락사… ‘존엄한 죽음’ 화두를 던지다

    2016년과 2018년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안락사로 숨진 것을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숨진 2명 외에 향후 해외 안락사를 준비 중이거나 기다리는 한국인도 10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죽음을 논하는 데 보수적이었던 우리 사회에 안락사 허용 논의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국제적으로 조력자살을 돕는 단체인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는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력자살을 한 한국인이 2016년과 2018년 2명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사망자와 관련한 일체의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는 지난 5개월간 두 한국인이 왜 스위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삶을 마감했는지 추적했다. 지난 1월에는 스위스 현지 취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 출신인 40대 남성 박정호(가명)씨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말기암 환자였던 박씨는 한 달간의 준비 끝에 스위스로 향해 삶을 마감했다. 서울신문은 또 박씨의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까지 동행했던 친구 케빈(가명)도 만날 수 있었다. 6일과 7일자 2회에 걸쳐 케빈이 전하는 박씨의 마지막 여정을 싣는다. 조력자살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시행하는 일종의 안락사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이를 허용해 왔다. 디그니타스를 비롯해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과 ‘이터널 스피릿’(Eternal Spirit) 등 3개의 단체가 외국인 조력자살을 돕는다.엑시트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호주의 104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조력자살을 도운 곳이다. 당시 구달 박사는 특별히 아픈 데가 없음에도 존엄한 죽음을 맞겠다며 공개적으로 안락사를 선택했고, 스위스로 향하는 도중 언론과 실시간 인터뷰를 해 많은 화제를 남겼다. 취재 결과 디그니타스 외 두 단체에는 현재까지 한국인 조력자살자가 없었다. 그러나 디그니타스와 엑시트 인터내셔널에는 각각 47명, 60명의 한국인 회원이 있어 이들 107명이 향후 조력자살을 신청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서울신문은 주스위스 한국대사관에 조력자살 사망 사실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지만, 알지 못한다는 답변만 받았다. 취리히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취리히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프롤로그 ‘병석의 아버지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세요. 편히 눈 감을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제발 안락사 논의를 부탁드려요.’ 지난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기사가 나간 후 안락사 문제를 기사화해 달라는 여러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안락사 허용’을 원하는 댓글도 수없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안락사´는 간병살인 시리즈 기획 단계부터 언급됐지만, 애써 외면한 주제였습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늦기 전에 미뤄둔 숙제를 꺼냅니다.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 과정에서 스위스에서 한국인 두 명이 안락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거듭된 설득 끝에 친구의 안락사 여정에 동행한 분을 어렵사리 만나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발달한 의료 수준에 비해 한국인의 죽음의 질은 낮습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처럼 확실한 건 없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이는 드뭅니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논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중환자실에서 온갖 장치를 주렁주렁 걸고서야 비로소 죽음을 고민하고 이야기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스위스처럼 안락사를 전면 허용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어떤 것이 존엄한 죽음인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성역 없이 고민하고 토론해 봤으면 합니다. 기사는 그런 논쟁의 출발점이었으면 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임종기 환자들이 가족들과 마무리할 시간도 없이 통증을 견디다 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스위스까지 가서 안락사를 결정한 이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단독] 한국인 2명 스위스서 안락사…107명은 준비·대기중

    [단독] 한국인 2명 스위스서 안락사…107명은 준비·대기중

    2016년과 2018년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안락사로 숨진 것을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숨진 2명 외에 향후 해외 안락사를 준비 중이거나 기다리는 한국인도 10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죽음을 논하는 데 보수적이었던 우리 사회에 안락사 허용 논의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국제적으로 조력자살을 돕는 단체인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는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력자살을 한 한국인이 2016년과 2018년 2명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사망자와 관련한 일체의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는 지난 5개월간 두 한국인이 왜 스위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삶을 마감했는지 추적했다. 지난 1월에는 스위스 현지 취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 출신인 40대 남성 박정호(가명)씨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말기암 환자였던 박씨는 한 달간의 준비 끝에 스위스로 향해 삶을 마감했다. 서울신문은 또 박씨의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까지 동행했던 친구 케빈(가명)도 만날 수 있었다. 6일과 7일자 2회에 걸쳐 케빈이 전하는 박씨의 마지막 여정을 싣는다.조력자살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시행하는 일종의 안락사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이를 허용해 왔다. 디그니타스를 비롯해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과 ‘이터널스피릿’(Eternal Spirit) 등 3개의 단체가 외국인 조력자살을 돕는다. 엑시트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호주의 104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조력자살을 도운 곳이다. 당시 구달 박사는 특별히 아픈 데가 없음에도 존엄한 죽음을 맞겠다며 공개적으로 안락사를 선택했고, 스위스로 향하는 도중 언론과 실시간 인터뷰를 해 많은 화제를 남겼다. 취재 결과 디그니타스 외 두 단체에는 현재까지 한국인 조력자살자가 없었다. 그러나 디그니타스와 엑시트 인터내셔널에는 각각 47명, 60명의 한국인 회원이 있어 이들 107명이 향후 조력자살을 신청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서울신문은 주스위스 한국대사관에 조력자살 사망 사실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지만, 알지 못한다는 답변만 받았다. 취리히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취리히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프롤로그 ‘병석의 아버지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세요. 편히 눈 감을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제발 안락사 논의를 부탁드려요.’ 지난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기사가 나간 후 안락사 문제를 기사화해 달라는 여러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안락사 허용’을 원하는 댓글도 수없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안락사´는 간병살인 시리즈 기획 단계부터 언급됐지만, 애써 외면한 주제였습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늦기 전에 미뤄둔 숙제를 꺼냅니다.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 과정에서 스위스에서 한국인 두 명이 안락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거듭된 설득 끝에 친구의 안락사 여정에 동행한 분을 어렵사리 만나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발달한 의료 수준에 비해 한국인의 죽음의 질은 낮습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처럼 확실한 건 없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이는 드뭅니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논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중환자실에서 온갖 장치를 주렁주렁 걸고서야 비로소 죽음을 고민하고 이야기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스위스처럼 안락사를 전면 허용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어떤 것이 존엄한 죽음인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성역 없이 고민하고 토론해 봤으면 합니다. 기사는 그런 논쟁의 출발점이었으면 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임종기 환자들이 가족들과 마무리할 시간도 없이 통증을 견디다 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스위스까지 가서 안락사를 결정한 이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단독] 결국… 저는 오랜 친구의 안락사를 도왔습니다

    [단독] 결국… 저는 오랜 친구의 안락사를 도왔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정호와 오랜만에 통화통증 때문에 안락사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함께 취리히 교외 파란 2층 집에 갔습니다 시내에서 피자 한 접시를 먹는 친구를 보며한참 더 살 수 있을 텐데, 죽는 게 말이 될까서울로 돌아가자 했지만 그는 남았습니다암 투병으로 고통을 겪는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온몸이 부서질 듯한 통증 때문에 안락사하고 싶다고 합니다. 스위스에 함께 가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익명의 취재원 케빈(가명)은 실제로 스위스행을 결정했습니다. 타인의 자살을 도운 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러기엔 친구의 부탁이 너무도 간절했습니다. 케빈은 스위스에서 극단적 선택을 끝까지 말렸지만, 친구는 결국 그의 방식대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스위스는 유일하게 외국인의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국가로, 영화 ‘미 비포 유’의 남자 주인공이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10월부터 약 5개월에 걸쳐 ‘한국인의 존엄한 죽음’에 대해 취재했습니다. 외국인 조력자살을 돕는 글로벌 단체를 모두 확인하는 과정에서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감행한 한국인이 두 명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스위스 현지와 한국으로 오가는 추적 끝에 어렵사리 케빈을 만났고, 오랜 설득을 통해 그는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케빈은 지난달 자신의 소회를 담은 편지 한 통을 서울신문 앞으로 보내왔습니다. 그는 물론 한국인이며,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선택한 한국인 두 명 중 한 사람의 친구입니다. 그가 처음 케빈이라는 이름을 썼기에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케빈의 편지를 최대한 원문을 살려 상하로 나눠 싣습니다. 케빈의 요청 등을 고려해 안락사한 분의 나이, 가족 관계, 직업 등 구체적 신원과 사망일 등은 적지 않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저는 한국의 평범한 40대 가장입니다. 스위스에 다녀온 지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지금도 제가 한 일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아니면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앞서간 제 친구의 선택이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친구의 용기를 사회적으로 헤아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친구의 이름은 박정호(가명)입니다. 저는 정호와 함께 말기 암환자 등에게 조력자살을 도와주는 스위스에 있는 디그니타스라는 단체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친구는 더이상 이곳에 없습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정호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안부를 묻고 답하다가 대뜸 스위스에 같이 가줄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암투병을 해오던 걸 알았기에 저로서는 그 제안이 무척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그 기쁨이 잠시 뒤 눈물로 변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거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은 저는 너무나 떨렸습니다. 친구가 얘기한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을 끄집어 내려고 애썼습니다. 너무 혼란스러워 다 기억나지는 않았는데, 처음에 인터넷에 입력한 단어는 ‘스위스’와 ‘안락사’였던 것 같습니다. 검색어 아래로 충격적인 글과 사진, 동영상들이 나타났습니다. 검색된 글들을 읽다가 ‘조력자살’과 ‘디그니타스’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친구가 했던 이야기들이 이해가 됐습니다. 가슴이 뛰고 눈물이 콸콸 쏟아졌습니다. 디그니타스 직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약물을 환자가 스스로 마시고 곧 잠에 드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제 친구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 친구는 시한부 삶 선고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병세가 더 심해졌을 때 나타날 고통을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한 번은 저에게 물에 빠져본 적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러면서 상태가 더 악화되면 자신은 결국 익사하는 고통 속에서 죽게 될 거라며 그 전에 평화롭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가족이 겪을 고통과 경제적 부담도 내심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스위스까지 같이 가줄 수 있느냐는 말에 ‘아니’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는 제가 법적인 문제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 안 가도 된다는 말도 했지만, 제가 가겠다고 하자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난 얼마 뒤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직접 보기는 꽤 오랜만이었지요. 친구는 이전보다 훨씬 불편해 보이긴 했지만, 말도 잘하고 고집도 있고 아주 똑똑해 보였습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계절의 변화도 느끼고 차를 운전해 이곳저곳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만나서 그저 농담하고 이야기하니 예전처럼 즐거웠습니다. 친구와 죽음이라는 단어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스위스로 떠나는 날 아침에는 비가 쏟아졌는데, 출국장에 먼저 도착해 저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이미 친구의 몸이 많이 불편했기 때문에 우리는 공항 직원의 도움을 받아 탑승했고, 12시간이 넘는 힘든 비행 끝에 취리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스위스에서 보낼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사실 낯선 그곳에서 아픈 친구를 데리고 뭘 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호텔에서 가만히 있기가 뭣해 빌린 차를 끌고 일단 나섰습니다. 우리 중 누가 먼저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며칠 후 그가 죽을 장소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차량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시내를 빠져 나와 한적한 교외를 한참 달리니 파란색의 2층 집이 나왔습니다. 그 집 앞에 도착하는 순간 차에서 못 내릴 정도로 몸이 오싹했습니다. 우리는 차에 앉은 채로 파란색 집을 바라만 보다가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기분이 묘했고, 안 좋았습니다. 다시 돌아와 시내 구경을 했습니다. 양껏 시켜놓고 냄새 때문에 몇 점 먹지도 못한 스위스 퐁듀 맛도 보고, 피자도 먹었습니다. 피자 한 접시를 다 먹는 친구를 보면서 아직은 한참 더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일 모레 죽는 게 말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들은 대로 디데이(D-day) 이틀 전에 디그니타스에서 보낸 의사 한 분이 호텔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의사는 제 친구가 정말 죽을 의지가 있는지와 온전한 정신 상태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들을 했습니다. 컵에 든 물을 스스로 마셔 보라고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손으로 약물을 마실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같아 불편했습니다. 의사는 다음날 또 왔습니다. 친구의 마음이 바뀌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친구는 약을 마시고 죽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고, 의사는 5분 안에 잠들어 30분 안에 죽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의사는 자신이 처방한 약이 내일 디그니타스에 가면 준비돼 있을 거라고 말하며 면담을 마쳤습니다. “서울로 돌아가자.” 이날 밤 제 입에서는 결국 참고 있던 말이 터졌습니다. 12시간이나 비행기를 아무렇지 않게 타고 오고, 밥도 잘 먹고, 말도 잘하고, 나보다 더 똑똑한 친구가 이대로 죽는다는 게 말이 안 됐습니다. 혼자서 한국으로 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습니다. 일단 이번에는 돌아가고, 나중에 다시 함께 와주겠다며 친구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이번에 돌아가면 다시 오지 못할 것이라는 걸 직감한 듯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날 아침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친구는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했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친구가 택시를 부른 이유를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로 돌아갔을 때 자살방조죄로 곤욕을 치르게 될까 봐 배려한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마지막 배려를 말없이 받아들인 제가 창피하고 비굴하게 느껴집니다. 친구는 호텔방을 나서기 전 반으로 접은 메모지 하나를 주고 떠났습니다. 손으로 쓴 편지였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한참 후에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정호는 택시기사의 도움을 받아 차에 올랐습니다. 차창 너머로 저를 발견한 정호가 손을 내밀며 고맙다고 했습니다. 손을 잡았지만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점점 시야에서 멀어졌습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7일 2회에서 이어집니다. ■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정신건강연구소, 현대인 정신적 고통 평가 척도 개발 및 ‘MHSQ 프로그램’ 출시

    정신건강연구소, 현대인 정신적 고통 평가 척도 개발 및 ‘MHSQ 프로그램’ 출시

    정신의학신문 정신건강연구소가 현대인의 정신적 고통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를 자체 개발해 이를 적용한 ‘Mental Health Screening Questionnaire(이하, MHSQ) 프로그램’을 출시했다고 5일 밝혔다.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사용되고 있는 정신증상 검사 대부분은 90년대 이전에 만들어져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카페인 중독을 포함한 각종 중독 질환 같은 현대인의 고통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길게는 30분까지 걸리는 검사 결과가 단순히 점수로만 나와 환자들에게는 검사 결과를 아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많은 환자들이 정신과 진료를 받을 때 설문 검사를 하는 것 자체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구성된 정신의학신문 정신건강연구소 연구진이 현대인의 정신적 고통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를 개발했다. 또한 척도 검사 결과에 대해 정신의학신문 필진이 직접 기획하고, 작성한 결과지가 평균 A4 20장 분량의 보고서 형태로 제공될 예정이다. ‘MHSQ 프로그램’는 크게 정신건강검진 설문검사(MHSQ)와 결과 보고서, 그리고 결과에 따른 개별화 된 정신건강 컨텐츠 제공으로 구성된다. 정신건강검진 설문검사(MHSQ)는 정신 구조 36문항(단축형 스키마 척도, BSQ), 정신 증상 59문항 그리고 스트레스 12문항(정신 건강 척도, MHQ)으로 구성되어, 한 사람의 정신 구조와 스트레스 그리고 현재 겪고 있는 정신 증상을 동시에 평가할 수 있다. 정신 구조, 스트레스, 증상을 동시에 평가하면, 현재 개인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의 원인과 결과를 비교적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즉, 정신 구조의 취약한 부분에 스트레스가 가해져 정신 증상이 발생하게 되는 흐름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의 검사들이 현재 발생한 정신 증상만 파악 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이 부분이 MHSQ가 가지고 있는 강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MHSQ 프로그램은 결과 보고서를 통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고통의 구조와 심하기를 상세하게 알 수 있게 한다. 과거에는 검사 결과를 간단히 주치의를 통해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다. 치료와 상담만으로도 진료 시간은 늘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진료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주치의 설명이 없이도 피검자 자기 자신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결과 보고서를 제공한다. 이 보고서를 통해 자기 자신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진료실에서는 더 중요하고 심도 깊은 상담을 할 수 있다. 실제로 결과지를 받은 환자가 아닌, 일반인 대상자 천 여 명을 기준으로, 40%에 해당하는 인원이 상담을 받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방문했다. 이들 중에서는 즉각적인 약물치료가 필요한 대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경증의 정신증상을 가지고 있는 정도였다. 또 그 중에는 연구진이 설정한 정신질환의 조기발견에 해당하는, 아직 정신 증상이 전혀 없는 단계에서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도 있었으며, 이들은 자기 자신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 방문했으며, 결과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이 척도를 통해 우울, 불안, 공황, 특정공포, 강박, PTSD, 신체화 장애, 불면, 조증, 편집증, 정신증, 자살사고를 평가할 수 있으며 카페인, 알코올, 담배, 도박에 관한 중독장애도 평가할 수 있다. 여기에 의료진의 판단을 보조할 수 있는 비일관성과 긍정/부정 왜곡 평가 문항이 더해져 있으며, 스키마 기반의 정신구조 문항과 스트레스 평가 문항도 포함되어져 있다. 척도의 신뢰도와 타당도에 관한 논문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지 2019년 2월호에 실릴 예정이다. 척도와 보고서의 강점 이외에도, 집이나 병원 대기실에서 온라인으로 검사를 스스로 하고, 결과 보고서를 온라인으로도 확인 할 수 있어 편리성도 강화되었다. 또한, MHSQ 결과 보고서에 연동해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작성한 정신의학신문의 컨텐츠들이 맞춤식으로 제공될 예정으로 확장성을 갖췄다. 현대적인 MHSQ 프로그램을 통해서 검사부터 결과, 결과 이후의 생활까지, 자신의 정신 건강을 더 효과적으로 지켜나갈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인 남편 둔 영국男 “역겨운 게이가 아니라 사랑하는 부부입니다”

    한국인 남편 둔 영국男 “역겨운 게이가 아니라 사랑하는 부부입니다”

    영국서 혼인신고… 한국 오니 남남동성혼 인정 받으려 할수록 혐오만대법원 직원·변호사 “그냥 떠나라”“한국은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 낮아”“왜 성소수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한국에서 살 수 없나요?” 한국인 남편을 둔 영국 남자 사이먼 헌터 윌리엄스(35)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반문했다. ‘왜 동성혼이 합법인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윌리엄스는 수년째 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동성혼을 인정받아 결혼이민비자를 받고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다. 그는 2011년 한국에 온 뒤 2014년 남편을 만났고 1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했다. 2015년 영국에선 혼인신고를 마쳤지만, 부부가 살고 싶은 곳은 영국이 아닌 한국이었다. 최근 남편이 가족 곁을 떠날 수 없는 개인적 사정이 생기면서 한국 정착은 더욱 절실해졌다. 하지만 그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동성혼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회화지도가 가능한 E-2 비자를 가지고 있다. 결혼이민비자와 달리 가르치는 일 외에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없고 때마다 갱신해야 한다. 윌리엄스는 “구청은 물론 국민청원, 국가인권위원회, 대법원 등을 찾아다니며 우리의 결혼을 인정받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혐오와 맞닥뜨렸다. 3년 전 대법원의 한 직원은 “여긴 한국이다. 우린 게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환영하지도 않는다”며 “한국을 떠나는 게 좋겠다”고 면박을 줬다. 조언을 구하기 위해 만난 변호사는 “동성애자라면 한국을 떠나는 게 좋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떠났다”고 했다.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만 해도 “게이인가보다. 역겹다”는 소곤거림이 들려왔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보낸 청원에도 법무부는 ‘동성혼 불가’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이제 그의 남편은 사실상 동성혼 인정을 포기한 상태다. 오히려 신상이 알려질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다. 윌리엄스가 본 한국은 ‘현대화되어 있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나라’였다. 심지어 그가 지하철에서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할 때에도 보호받지 못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남자가 남자를 만진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자살을 택하는 성소수자 친구들을 종종 보게 돼 마음이 아프다”며 “이제 단순히 우리 부부만의 문제가 아닌, 자신들을 숨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없는 동성커플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물론 성소수자를 싫어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공존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수많은 거절 끝에 최근 작은 희망이 보이는 응답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인권위는 그의 동성혼 관련 진정을 각하하면서 “정책적으로 논의해볼 사항”이란 단서를 달았다. 윌리엄스는 “응답했다는 자체로 기뻤다”며 “앞으로도 거절을 당하겠지만 한국 성소수자(LGBT) 커뮤니티의 어떤 구성원도 차별받지 않도록 애쓰겠다”고 덧붙였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한국인 남편 둔 영국남자 “역겨운 게이 아닌 사랑하는 부부”

    한국인 남편 둔 영국남자 “역겨운 게이 아닌 사랑하는 부부”

    윌리엄이 말하는 ‘한국의 성소수자’ 동성혼인정 받으려 할수록 혐오만대법원 직원도, 변호사도 “그냥 떠나라”“성소수자 싫어할 순 있지만 우린 공존해야” “왜 성소수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한국에서 살 수 없나요?” 한국인 남편을 둔 영국 남자 사이먼 헌터 윌리엄스(35)씨는 지난달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반문했다. ‘왜 동성혼이 합법인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윌리엄스는 수년째 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동성혼을 인정 받아 결혼이민비자를 받고 남편의 고향에서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다. 2015년 영국에선 혼인신고를 마쳤지만, 부부가 살고 싶은 곳은 영국이 아닌 한국이었다. 최근 남편이 가족 곁을 떠날 수 없는 개인적인 사정이 생기면서 한국에서의 정착은 더욱 절실해졌다. 윌리엄스는 2011년 한국에 처음 온 뒤 2014년 남편을 만나 1년 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했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인 광화문에서 서로에게 프로포즈를 했다”면서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한 뒤 그 곳에서 결혼식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영국과 달리, 법적으로 동성혼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회화지도가 가능한 E-2 비자를 가지고 있다. 결혼이민비자와 달리 가르치는 일 외에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없고 때마다 갱신을 해야 한다. 윌리엄스는 “각 구청은 물론 국민청원, 국가인권위원회, 대법원 등을 찾아다니며 우리의 결혼을 인정 받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혐오와 맞닥뜨려야 했다. 대법원의 한 직원은 “여긴 한국이다. 우린 게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환영하지도 않는다”며 “남편과 이혼하고 한국을 떠나는 게 좋겠다”고 면박을 줬다. 조언을 구하기 위해 만난 변호사는 “동성애자라면 한국을 떠나는 게 좋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한국을 떠난다”고 했다.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만 해도 주변에선 “역겹다”거나 “게이인가봐”라는 소곤거림이 들려왔다. 관계기관 역시 ‘동성혼 불가’ 입장을 되풀이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국제결혼한 동성부부도 결혼이민비자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서를 보냈지만, 출입국정책 관할부처인 법무부는 ‘불가’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이 과정들을 거치며 그의 남편은 사실상 동성혼 인정을 포기한 상태다. 오히려 직장 동료 등에게 자신의 신상이 알려질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다. 윌리엄스는 “외국인인 나와 다르게 한국인으로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더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면서 “남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를 보호하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윌리엄스가 본 한국은 ‘현대화 되어 있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나라’였다. 심지어 그는 지하철에서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할 때에도 보호받지 못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남자가 남자를 만진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윌리엄스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인정 받지 못해 결국 자살을 택하는 성소수자 친구들을 종종 보게 돼 마음이 아프다”며 “이제 단순히 우리 부부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에서 자신들을 숨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없는 동성커플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성소수자를 싫어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공존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런 그는 최근 수많은 거절 끝에 인권위의 응답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윌리엄스의 동성혼 관련 진정을 각하한 인권위는 “정책적으로 논의해볼 사항”이란 단서를 달았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작은 희망이 보이는 대답이었다. 이에 대해 윌리엄스는 “응답했다는 자체로 기뻤다”며 “앞으로도 수많은 거절을 당하겠지만 한국 LGBT 커뮤니티의 어떤 구성원도 차별받지 않도록 애쓰겠다”고 덧붙였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위세 떨치던 IS 최후의 점거지역 시리아 바구즈에서 마지막 교전

    위세 떨치던 IS 최후의 점거지역 시리아 바구즈에서 마지막 교전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국가 수립을 선포하며 시리아와 이라크에 위세를 떨치던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미국을 필두로 하는 연합군과 지난 2일(현지시간)부터 시리아에 남은 최후의 점거 지역에서 마지막 교전을 치르고 있다.알자지라는 미군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민병대와 시리아민주군(SDF) 연합이 포탄과 공습 등을 이용해 마지막 남은 IS 전투원들과 시리아 북동부 데이르에조르 지역의 작은 마을인 바구즈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3일 전했다. 앞서 열흘 이상 여성과 아이들을 난민수용소로 대피시킨 연합군은 이날부터 본격적인 공격에 들어갔다. IS무장 조직원들은 스나이퍼와 자살 폭탄 차량, 부비트랩 등으로 응수하고 있다. 바구즈에 있는 SDF 지휘관은 이날 로이터 인터뷰에서 “무장 세력이 2일 밤 폭탄이 장착된 차량을 끌고 공격에 나섰다”고 전했다. 무스타파 발리 SDF 대변인은 트위터를 통해 “이틀 동안 미국 연합군이 IS전투원들의 공격을 저지했다”면서 “SDF를 공격하려는 3대의 폭탄 차량을 파괴했다”고 말했다. IS 전투원들은 밤에는 야간 투시경이 없어 제대로 공격에 나서지 못했고, 연합군은 이 때를 틈타 반격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연이은 폭발로 불길이 일자 마을은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연합군에 따르면 IS 전투원들 가운데 지하에 매복해 있는 이들도 있어 정확한 수를 가늠하긴 힘든 상황이다. 연합군 측은 현재 1000~1500여명의 남성들을 비롯해 9000여명의 여성과 아이들이 마을에 남아있는 것으로 관측된다고 밝혔다. IS는 2014년 전성기 시절 시리아 서부에서 이라크 동부에 이르기까지 8만 8000㎡에 이르는 영역을 장악했다. ‘이슬람 왕조’ 탄생을 주장하며 800만명의 지역주민들을 가혹하게 다스렸던 IS는 석유와 갈취, 절도, 납치 등을 통해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래퍼 쿠시 마약 혐의 모두 인정 “우울증·공황장애로 유혹에 넘어가 후회”

    래퍼 쿠시 마약 혐의 모두 인정 “우울증·공황장애로 유혹에 넘어가 후회”

    코카인을 구입해 자택에서 수차례 흡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래퍼 겸 음악 프로듀서 ‘쿠시’ 김병훈(35)씨가 법정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검찰은 쿠시에게 법정형의 하한인 징역 5년을 구형했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는 4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씨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김씨는 2017년 11월부터 12월까지 2차례에 걸쳐 코카인 총 2.5그램을 지인으로부터 사들여 7차례 흡입하고, 3번째 매수 시도는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경찰 조사 및 검찰 수사 과정에서부터 혐의를 모두 인정해왔다. 김씨는 이날 재판에서도 모든 혐의를 인정하며 선처를 구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중증의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인해 길거리에서 수차례 응급실로 이송됐으며 자살시도도 수차례 있었다”면서 “지속적 정신과 치료가 절실한 상황이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16세 때부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해 오랜 무명 생활을 견뎌내면서 우울증세가 날로 심해졌다”면서 “지인이 우울증과 불면증에 좋다는 말로 수차례 회유했는데 그걸 벗어나지 못하고 범행에 이르러 깊이 후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수사 초기부터 범행을 모두 자백했고, 수사를 받을 때는 마약 판매책과 유통책을 잡기 위한 과정에 적극 협조했다”면서 선처를 구했다. 마지막에 진술할 기회를 얻은 김씨는 “이 일이 있고 나서 정말 소중한 게 뭔지 알았고, 제가 어떻게 행동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는지도 뼈저리게 느꼈다”면서 “평생 만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피고인에게 동종 전력이 없고 범행을 자백하고 있다”면서도 “본 사건 법정형의 하한이 징역 5년인 점을 감안해 징역 5년을 구형한다”고 밝혔다. 김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오는 18일 열릴 예정이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우스만 첫 아프리카 출신 UFC 챔피언, 존스는 타이틀 1차 방어 성공

    우스만 첫 아프리카 출신 UFC 챔피언, 존스는 타이틀 1차 방어 성공

    카마루 우스만(31·나이지리아)이 타이론 우들리(36·미국)를 판정으로 물리치고 첫 아프리카 출신 UFC 챔피언에 올랐다.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난 우스만은 3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에서 진행되고 있는 UFC 235 웰터급 타이틀 매치에서 우들리에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두 심판이 50-44를 채점했고, 한 심판이 50-45로 우스만의 손을 들어줬다. 여덟 살 때 베닌 시티를 떠나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 텍사스주 알링턴에서 성장한 우스만은 23년이 흘러 우들리를 상대로 첫 타이틀 도전에 나서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둘렀다. ‘얼티메이트 파이터’ 쇼 우승자 출신인 우스만은 14연승에 UFC 10연승을 자랑했다. 우스만의 데뷔 이후 10연승은 로이스 그라시에, 안더슨 실바,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와 어깨를 나란히 했는데 최다 데뷔 연승은 실바의 16연승이다. 5년 가까이 패배를 모르며 다섯 번째 방어전에 나섰던 우들리는 일방적으로 우스만에 당했다. 존 존스(31)는 앤서니 스미스(30, 이상 미국)와의 라이트급 타이틀 1차 방어전을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으로 이겼다. 세 심판 모두 48-44로 존스 손을 들어줬다. 존스는 4라운드 무릎 가격 반칙으로 주심으로부터 2점 감점을 당했지만 타이틀을 지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17개월 동안 옥타곤을 떠나 있다가 지난 연말 공석인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전을 벌여 알렉산데르 구스타프손(스웨덴)을 물리치고 타이틀을 되찾은 존스는 2015년 이후 처음 방어에 성공했다. 2011년 이후 그가 이처럼 빠르게 타이틀 매치를 연이어 치른 적도 없었다..재미있는 것은 그가 음주운전이나 폭행, 금지약물(도핑) 징계 때문에 타이틀을 잃은 적은 있지만 타이틀 매치를 통해 방어에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는 특이한 진기록을 이어갔다. 텍사스주 출신인 스미스는 다른 종합격투기(MMA) 단체에서 26전을 치른 다음 2013년 UFC에 데뷔, 안토니오 브라가 네토에게 패한 뒤 경력 단절이 있었지만 아홉 경기 가운데 7승을 올려 존스를 상대로 45번째 프로 전적을 썼지만 판정패로 아쉽게 됐다. 앞서 실로 오래 기다려 데뷔전을 치른 벤 아스크렌(34·미국)은 전 웰터급 챔피언 로비 로울러에 1라운드 TKO 승리를 거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레슬링에 출전했으며 MMA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던 아스크렌은 웰터급 최고의 파이터로 여겨지지만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와 언쟁을 벌여 사이가 좋지 않아 데뷔가 늦어진 아픔도 씻어냈다. 또 우들리와 아주 친하지만 둘이 한 대회 옥타곤에 나란히 나서는 것도 10년 이상 만의 처음이었다. 올해 초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아파트 앞에서 강도에게 휴대폰을 빼앗길 뻔했지만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혼쭐을 내 화제를 모았던 폴리아나 비아나(브라질)는언더카드 첫 게임으로 진행된 스트로급 대결에서 26세 동갑인 하나 사이퍼스(미국)에게 1-2(28-29 29-28 28-29) 판정으로 졌다. 지난해 8월 JJ 올드리치에게 판정패한 데 이어 두 경기 연속 판정으로 고개를 숙였다.한편 제레미 스티븐스(32)는 자빗 마고메드샤리포프(러시아)와의 페더급 경기에서 심판 전원 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세 심판 채점 모두 29-28로 자빗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야후! 스포츠 는 똑같은 채점표로 스티븐스의 손을 들어줬다. 스티븐스는 코너 맥그리거(아일랜드) 때문에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맥그리거가 그 미국X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알바에게 1라운드 KO패를 당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지 싸우느라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털어놓아 동료 선수들에게 대단한 용기를 냈다는 격려를 들었다. 에릭 델 피에로 코치로부터 라스베이거스의 자살 경력자 모임에 나가보라는 조언을 듣고 응해 마음을 바꿔 먹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파이터로 보지만 나 역시 여러분이 만나본 가운데 가장 터프한 친구 중 하나일지모르겠지만 나도 때로는 의기소침해진다. 나 역시 감정과 느낌을 지닌 진짜 인간일 따름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스스로 목숨 끊겠다고 예고한 후 과정 중계한 BJ

    스스로 목숨 끊겠다고 예고한 후 과정 중계한 BJ

    한 인터넷 방송 진행자(BJ)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예고한 뒤 그 과정을 영상으로 내보냈다. 마포경찰서는 지난달 27일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과 유튜브 등을 통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과정을 방송하던 A(32)씨가 마포구 망원동의 자택에서 극적으로 구조됐다고 오늘(2일)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자신의 방 안에서 자살 시도 장면을 촬영해 실시간으로 내보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 여자친구에게도 해당 동영상을 보냈다. 동영상을 받은 전 여자친구와 채널 구독자들은 이를 즉각 신고했고, 경찰과 119 구조대원이 함께 출동해 집 현관문을 뜯고 들어가 A씨를 구조했다. A씨는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았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최근까지 아프리카TV와 유튜브 등 채널에서 BJ로 활동해왔으며 이처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이유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카슈미르 영토 분쟁이 인파 갈등

    카슈미르 영토 분쟁이 인파 갈등

    지난 26~27일 사실상 ‘핵보유국’끼리 공습을 벌이며 갈등의 소용돌이속으로 빠져든 인도와 파키스탄의 70년 분쟁 중심에는 카슈미르 영토분쟁이 있다. 현재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아자드 카슈미르)과 인도령(잠무 카슈미르)으로 분단돼 있다. 당초 이 지역은 힌두교를 신봉하는 봉건 지배자와 대다수 무슬림을 다스려 왔다. 영국 식민지를 겪은 뒤 1947년 인도·파키스탄으로 분리됐다. 인도가 지배하고 있는 잠무 카슈미르 지역의 대다수 구성원도 무슬림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힌두교도가 대다수인 인도보다는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으로 귀속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 점이 끊이지 않는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 수립 이후 끊임없이 무슬림 과격세력들이 무력 봉기를 일으키면서, 인도에서 분리 독립을 시도했다. 인도는 이 때마다 파키스탄이 뒤에서 사주하고 이 같은 무력 봉기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고 비난하면서 파키스탄과 대립해 왔다. 이번 양국 충돌도 지난 14일 잠무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인도 경찰 40여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인도는 늘 그러하듯 파키스탄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을 선언했고, 파키스탄 정부는 자살폭탄 테러와는 무관하다며 “증거를 보여달라”고 반박하면서 대립했다. 종족 구성상 카슈미르가 파키스탄에 귀속되는 것이 순리라고 보는 시각이 크다. 그러나 인도라고 영토를 순순히 내놓을 리도 없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이 지역을 통치하던 봉건 지배층들은 힌두교도들이어서 인도도 양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초 독립 초기인 1947년 10월 카슈미르를 지배하던 힌두교 지배층은 인도에 붙으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무장세력들이 잠무 카슈미르의 핵심 도시인 스리나가르를 침공하면서 양국의 70년의 갈등의 불이 붙었다. 당시 카슈미르 봉건 지배자이던 마흐라자 하리 싱은 곧바로 인도에 지원을 요청했고, 분쟁은 이듬해 인도와 파키스탄 간 첫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그 뒤 두 나라는 유엔 중재로 한발 뒤로 물러났고,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인 아자드 카슈미르와 인도령인 잠무 카슈미르로 분단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도는 주민투표를 통해 잠무 카슈미르의 미래를 결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미루다가 잠무 카슈미르를 인도 연방의 하나로 편입해버렸다. 그 뒤 파키스탄은 1965년 수천 명의 게릴라를 앞세워 2차 전쟁을 일으켰다. 카슈미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양측은 1947년의 휴전선을 사실상 국경인 정전 통제선(LoC)으로 교체해 유지해 오고 있다. 이번 갈등이 주목받은 것 중 하나는 양측이 48년 동안 지켜오던 LoC를 침범하면서 서로를 공격했다는 점이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파키스탄, 억류 인도 조종사 공개…사태 해결 실마리 될까

    파키스탄, 억류 인도 조종사 공개…사태 해결 실마리 될까

    억류 인도 조종사는 아비난단 바르타만파키스탄 정부 영상 삭제하고 대화 요청 파키스탄 공군에 격추 당한 인도 전투기 조종사가 공개됐다. 이 조종사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 해결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8일 인도 현지언론과 외신 등에 따르면 파키스탄에 억류된 인도 공군 조종사는 ‘아비난단 바르타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날 파키스탄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인도의 미그 21 전투기 조종사다. 파키스탄 정부가 바르타만의 영상을 공개하면서 인도 정부가 발끈했다. 바르타만은 최초 눈이 가려지고 얼굴이 피범벅인 상태로 공개됐다. 이후 붕대를 풀고 차를 마시는 모습도 공개됐다. 파키스탄군은 바르타만에게 임무를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파키스탄 측 관계자에게 “파키스탄군이 (화난) 군중으로부터 나를 구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고 깍듯하게 존칭까지 썼다. 그가 전투기에서 끌려 나와 주민에게 구타당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도 온라인에 공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정부는 모욕적인 영상이 공개되자 강력 반발했다. 영상과 사진을 유포한 것은 포로를 보호해야 하는 제네바협정 규정과 인권 관련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인도 외교부는 주인도 파키스탄 대사 대리를 초치해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파일럿을 즉시 풀어주고 무사히 돌려보내라”고 요구했다. 양국은 26∼27일 이틀 연속으로 공중전과 지상 박격포 공격 등을 주고받으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다만 파키스탄 정부는 논란이 일자 곧바로 공개된 영상을 삭제해 사태 수습 의지를 표명했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27일 TV 성명을 통해 “앉아서 대화하자”고 인도 측에 유화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바르타만의 송환 여부가 이번 분쟁을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은 70년 이상 이어졌다. 특히 2008년 민간인과 군인 등 180여명이 사망한 ‘뭄바이 테러’ 용의자가 파키스탄 테러단체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양국의 관계가 크게 악화했다. 인도 정부는 뭄바이 테러에 파키스탄 정부가 개입했다고 주장했고 양측이 카슈미르에 군사력을 대거 동원하면서 긴장이 크게 고조된 바 있다. 지난 14일에는 잠무-카슈미르주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인도 경찰 40여명이 사망했다. 인도는 파키스탄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을 선언했다. 26일에는 인도 공군이 카슈미르 지역 국경선으로 통하는 통제선을 넘어 파키스탄 내 바라코트 지역을 공습했다. 1971년 이후 48년만의 파키스탄 공습이었다. 현지 언론은 공습으로 훈련캠프 내 무장병력 200~30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인도 측은 테러조직 훈련캠프를 공격해 파괴했다고 주장했고, 파키스탄은 현지에 테러조직 건물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바로 다음 날 파키스탄 전투기는 카슈미르에서 인도 전투기를 격추하고 지상에 폭탄을 투하하며 보복전을 이어갔다. 핵보유국이 서로 공습을 주고 받은 것은 사상 최초다. 유럽연합(EU)은 27일 인도와 파키스탄 간 군사적 충돌 및 갈등 고조와 관련, 두 나라에 자제를 촉구했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성명을 내고 최근 양국 간 사태에 대해 “양국은 물론 이 지역에 심각하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국은 최대한 자제하고 더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외교적 접촉 재개와 긴급한 조치의 이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파키스탄, 하루 만에 인도 보복…전면전 치닫나

    파키스탄, 하루 만에 인도 보복…전면전 치닫나

    핵 보유국 간 공습은 처음…갈등 최고조 인도 ‘분쟁 핵심’ 카슈미르 지역에 비상령인도와 파키스탄이 분쟁지역 카슈미르에서 공군기를 동원한 공습을 주고받으면서 양국 갈등이 1971년 3차 전쟁 이후 최고조로 치달았다. 전면전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파키스탄 공군기는 27일 카슈미르 영토 분쟁지역에서 인도 공군기를 격추하고 지상에 폭탄을 투하했다. 인도 공군이 지난 26일 48년 만에 휴전선 격인 정전 통제선(LoC)을 넘어 파키스탄을 공습하자 바로 다음날 보복 공격을 가한 것이다.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끼리 공습을 주고받은 것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파키스탄군 대변인이 이날 트위터를 통해 파키스탄 공군이 정전 통제선을 넘어온 인도 항공기 두 대를 격추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측은 “공격이 파키스탄 영공에서 이뤄졌다”며 “인도 파일럿 한 명을 지상에서 체포했다”고 덧붙였다. 격추된 두 인도 항공기는 인도 공군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인도 측은 파키스탄 공군기가 오히려 인도 영공을 침범했다고 반발했다. 인도는 인도령 카슈미르(잠무 카슈미르주) 지역 4개 공항의 이착륙을 금지하는 등 비상 상황을 발령했다. 파키스탄도 영공 폐쇄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은 파키스탄 영공을 지나는 비행편을 취소하거나 우회하고 있다. 정전 통제선 부근 10여곳에서 26일 밤부터 총격전도 발생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앞서 인도는 지난 14일 잠무 카슈미르주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경찰 40여명이 사망하자 파키스탄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을 선언했다. 이어 인도 공군은 26일 1971년 이후 처음으로 사실상 국경인 정전 통제선을 넘어 파키스탄 내 바라코트 지역을 공습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47년 영국에서 각각 독립한 뒤 지난 70년 동안 3차례의 전면전과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을 겪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갈라진 양국 분쟁의 핵심은 카슈미르였다. 다른 인도 지역과 달리 카슈미르 주민 대부분은 무슬림이었지만 지배층은 힌두교를 믿었다. 1947년 10월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무슬림 분리 세력의 무장 봉기가 이듬해 인도와 파키스탄 간 첫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주는 무슬림 분리주의자들의 무장 봉기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인도는 그 배후로 파키스탄을 지목하면서 보복을 가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앞서 양국은 1999년 인도 카길 지역의 무슬림 무장봉기를 계기로 대규모 국지전을 벌였으나, 이번 충돌은 1971년 이후 처음으로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추락사고로 만신창이된 전직 승무원, 3D 기술로 얼굴 재건

    추락사고로 만신창이된 전직 승무원, 3D 기술로 얼굴 재건

    추락사고로 얼굴을 심하게 다친 전직 승무원이 3D 스캐닝 기술의 도움으로 얼굴 재건에 성공했다. 중국일보에 따르면 쓰촨항공 국내선 승무원이었던 첸 리단(26, 여)은 4년 전인 2015년 5월, 중국 하이난의 한 호텔 7층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구조대는 에어컨 실외기에 매달려 있던 첸을 설득했으나, 그녀는 구조용 에어매트리스가 채 펴지기도 전에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진 첸은 머리에 300여 개가 넘는 심을 박는 대수술을 치렀다. 미모의 승무원이었던 첸은 이 사고로 얼굴 전체가 망가졌으며 치아 역시 모두 빠지고 말았다. 머리 모양도 추락의 충격으로 완전히 바뀌었으며 기억마저 잃었다. 첸의 아버지는 “딸은 사고 후 이름과 나이 외에 기억의 대부분을 잃었다. 기억상실과 학습장애로 고생하고 있으며, 시력도 거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이후 고향인 쓰촨성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진 첸은 두개골 복구 수술을 진행했다. 의료진은 3D 스캐닝 기술을 이용해 수술을 진행했고 첸의 얼굴을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약 2년간의 치료를 받은 첸은 현재 자신의 얼굴에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 첸은 자신의 새 얼굴에 대해 “이전과 거의 똑같다. 과거에도 예뻤고 지금도 예쁘다”며 기뻐했다. 한편 사고 후 4년이 지나도록 첸의 추락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한때 연인과의 불화로 인한 자살시도가 아니었느냐는 추측도 나왔으나 첸의 가족들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첸의 아버지는 “사고 당시 딸은 남자친구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름과 나이는 기억나지만 내가 그날 누구와 함께 있었으며 왜 추락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딸의 사고에 얽힌 진상을 규명해 실추된 명예를 되찾을 것이라며 의지를 내비쳤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테러리스트 소탕 작전이라더니...인도 공격에 민간인 4명 사망

    테러리스트 소탕 작전이라더니...인도 공격에 민간인 4명 사망

    파키스탄이 26일(현지시간) 인도군의 공습 이후 군사 충돌로 4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핵보유국인 두 나라간 긴장이 한껏 고조되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더 이상의 군사 행위를 중지하라”고 주문했다.AFP통신과 알자지라는 이날 인도 공군이 파키스탄을 공습한 이후 두 나라 간의 충돌 과정에서 아이 2명과 아이들의 엄마를 포함한 4명의 시민이 사망했으며 7명이 부상당했다고 보도했다. 지역재난관리당국의 샤리크 타리크는 AFP통신와의 인터뷰에서 “인도가 쏜 박격포가 인도와 파키스탄 경계선 부근에 있는 나크얄 지역의 민가를 덮쳐 집에 있어 어머니와 그의 딸, 아들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나머지 한 명의 사망자는 준자치지역인 쿠이라타 마을에서 보고됐다. 인도 정부는 이날 인도 공군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지역에 테러리스트 캠프를 소탕하기 위해 경계선을 넘어 공습을 가했으며, 그 결과 300여명 이상의 테러리스트와 요원들이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해당 지역은 파키스탄의 테러리스트 단체인 ‘자이쉬 에 무함마드’(JeM)의 최대 훈련지로 알려져 있으며, JeM은 인도 보안군 42명을 사망케 한 자살폭탄테러의 주범이 자신들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달 발생한 이 테러는 이번 공습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그러나 파키스탄 측은 공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이나 사람은 없으며 수풀 지역을 공격했을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파키스탄 정부는 그간 JeM의 존재를 부정해왔다. 공습 직후 임람 칸 총리는 민관군 수뇌부가 참여하는 국가안보위원회 회의를 주재했으며 27일 파키스탄의 최고 핵 의사결정기구인 국가사령부 특별회의를 소집했다. 한편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나는 인도와 파키스탄은 자제력을 발휘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의사를 양국 장관에게 전달했다”면서 “또 두 장관에게 직접적인 대화를 우선하고, 추가적인 군사 행동을 피하라고 촉구했다”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파키스탄 공군 “인도 공군기 두 대 격추” 긴장 최고조

    파키스탄 공군 “인도 공군기 두 대 격추” 긴장 최고조

    지난 26일 인도 공군의 파키스탄 공습으로 양국 간 갈등이 크게 고조된 가운데 27일 인도 공군기가 분쟁지인 카슈미르 지역에서 파키스탄 공군에 격추됐다고 NDTV 등 현지 매체와 외신이 보도했다. 파키스탄군 대변인인 아시프 가푸르 소장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파키스탄 공군이 통제선을 넘어온 인도 공군기 두 대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그는 “파키스탄 공군의 공격은 파키스탄 영공에서 이뤄졌다”며 “한 대는 파키스탄 지역으로 떨어졌고, 한 대는 인도 쪽으로 추락했다”고 덧붙였다. 가푸르 소장은 “파키스탄군은 인도 파일럿 한 명을 지상에서 체포했다”고 덧붙였다. 전날 인도 공군의 파키스탄 지역 공습에 이어 이날 인도 항공기가 파키스탄 공군에 의해 격추됨에 따라 양측 간 긴장은 일촉즉발 상황으로 고조되는 분위기다. 인도 공군은 전날 카슈미르에서 사실상 국경인 통제선을 넘어 파키스탄 내 바라코트 지역을 공습했다. 1971년 이후 48년만의 파키스탄 공습이었다. 현지 언론은 공습으로 훈련캠프 내 무장병력 200~30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인도 측은 테러조직 훈련캠프를 공격해 파괴했다고 주장했고, 파키스탄은 현지에 테러조직 건물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파키스탄 총리는 자국민에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알려져 양국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파키스탄군도 “시간과 장소를 정해 대응에 나서겠다”고 인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인도의 파키스탄 공습은 오는 4∼5월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는 나렌드라 모디 정부의 ‘선거용 카드’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로이터통신은 핵무기 보유국끼리 이처럼 이틀간 서로 공습을 주고 받은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보도했다. 인도는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 4개 공항의 이착륙을 금지하는 등 비상상황에 돌입했다. 통제선 인근 지상 10여곳에서는 26일 밤부터 총격전도 발생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한편 앞서 지난 14일 잠무-카슈미르의 풀와마 지역에서는 인도 경찰 2500여명을 태운 차량 행렬을 겨냥한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해 40여명이 사망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카슈미르 반군 자이쉬-에-무함마드(JeM)가 공격의 배후를 자처했으며 인도는 파키스탄이 실제 배후라고 주장했다. 이에 인도 보수층을 중심으로 파키스탄에 즉각 보복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핵 앙숙’ 인도 공습에 파키스탄 ‘핵 지휘부’ 소집 맞대응

    ‘핵 앙숙’ 인도 공습에 파키스탄 ‘핵 지휘부’ 소집 맞대응

    인도령 카슈미르서 테러 인도 경찰 40여명 사망인도 전투기 동원…테러거점 파키스탄 영내 공습48년만의 인도 직접 공격에 파키스탄 보복 다짐인도 총선 앞두고 들끓는 보복 여론에 공습경제난 파키스탄 사기 진작 위해 보복할듯전문가 “양측 갈등 관리 실패시 확전” 경고 인도 공군이 테러 거점으로 지목한 파키스탄의 한 마을을 공습하자 파키스탄이 26일(현지시간) ‘핵 지휘부’를 소집하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핵보유국이자 앙숙인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갈등이 높아지고 있다. 양측이 갈등의 통제하는 데 실패하면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으로 치들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발단은 인도 공군이 지난 14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전투기 12대를 동원해 파키스탄 영내 테러조직 캠프를 공습하면서 비롯됐다. 이 자살 폭탄 테러로 40여명이 사망했는데, 사망자 대다수가 인도 경찰이었다. 테러 배후로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카슈미르 반군 자이쉬-에-무함마드(JeM)가 자처했다.들끓는 보복 여론에 인도가 26일 새벽(현지시간) 테러 거점으로 지목된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 약 190km 떨어진 발라콧 마을 부근의 무장 조직 캠프를 공습했다. 인도 정부 관계자는 “무장조직원 300여명이 숨졌다.”라고 말했다. 인도가 파키스탄을 직접 공습한 것은 1971년 이후 48년만이다. 인도가 파키스탄 영토를 공습하자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핵전력을 관할하는 ‘국가지휘국’을 소집한 직후 자국민에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며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파키스탄군도 “시간과 장소를 정해 대응에 나서겠다.”라며 인도에 대한 압박 수위를 올렸다. 반면 선거 유세장으로 향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주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오는 4~5월 총선을 앞둔 모디 총리는 카슈미르 테러 공격에 대한 강경 대응 압박을 받아왔다.파키스탄 역시 경제난을 겪는 국민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배출하기 위해 보복에 나서겠지만 본격적인 전쟁을 원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이유로 현지에서는 파키스탄이 반격에 나서더라도 군사시설이나 민간인 거주지 등 민감한 지역은 피한 채 ‘안전한 곳’을 타격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인도 공습은 전쟁 전조라기보다는 가식적 행동”이라며 “지난해 7월 총선 승리로 막 정부를 출범시켰지만 경제난을 겪는 칸 총리나 총선을 수주일 앞둔 모디 총리 모두 전면전을 벌일 여력이 없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양측이 워낙 첨예하게 맞선 예상치 못한 확전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 윌슨 센터의 마이클 쿠겔만은 더타임스에 “이번 공습으로 두 핵보유국 인도-파키스탄 간 대립이 새로운 불안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도 “양측이 상황을 통제하는데 실패하면 위기 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두 자녀·쌍둥이 조카들 목조른 미국 40대 여성 “함께 죽고 싶었다”

    두 자녀·쌍둥이 조카들 목조른 미국 40대 여성 “함께 죽고 싶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40대 여성이 자신의 두 자녀와 여동생, 여동생의 쌍둥이 딸 등 총 5명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고 CNN방송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날 기소된 샤나 디크리(45)는 자신의 딸 도미니크 디크리(19)와 함께 펜실베이니아 북동부 모리즈빌 자택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두 사람에게는 존속살해 등 총 6건의 혐의가 적용됐다. 샤나 디크리는 “모두 함께 죽고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샤나 디크리 가족이 거주 중인 자택 침실에서는 그의 13세, 25세 자녀 2명과 그녀의 여동생인 자밀라 캠벨(42), 캠벨의 9살짜리 쌍둥이 딸 2명의 사체가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동반자살 시도 의혹에 대해 “현재로선 추측일 뿐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 모녀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샤나 디크리는 자신의 여동생인 캠벨 역시 어린 자녀들을 질식시키는 데 동참했다고 진술했으나 도미니크 디크리는 자신이 먼저 이모를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미니크 디크리의 목에서는 목이 졸린 흔적이 발견됐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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