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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인은 어떻게 계급이 됐나

    백인은 어떻게 계급이 됐나

    할리우드 영화 속 백인 우월주의 고전·회화 등 서구 문화의 관행 인종주의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 문화수출국 된 현실에서 과제로할리우드 영화는 백인을 다른 유색인종에 비해 우월하게 부각시키는 숨은 장치를 갖고 있다. 또 서구 문화는 기본적으로 백인 우월의 인종주의를 품고 있다. 이런 의문 또는 찜찜한 백인 우월주의 코드를 어렴풋이 느꼈던 이들이라면 ‘화이트’를 통해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감지할 수 있을 듯싶다. 킹스칼리지런던과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영화학과 명예교수인 리처드 다이어는 할리우드 영화와 대중문화를 집중 해부해 `백인성´(White 혹은 Whiteness)이야말로 서구 문화에서 특권적인 위치를 형성해 온 문화적 구성물임을 명쾌하게 밝혔다. 1980년대 말 개봉된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주인공은 어렵사리 만든 영화의 시사를 마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애써 만든 영화들이 모두 할리우드 영화의 연출 장면을 베껴 이어 놓았을 뿐임을 뒤늦게 자각하곤 죽음을 택한 것이다.`화이트´는 그 `헐리우드 키드´의 자살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문화 비평서라고 할 수 있다. `헐리우드 키드´의 죽음이 단순히 영화를 베꼈다는 자책 때문이 아니라 백인 우월의 인종주의를 따랐다는 자괴감 탓이었음을 실감 나게 풀어 보인다. 저자 다이어가 영화를 보는 시각은 그저 오락거리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인식이 재구성되는 문화적 장르다.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고 지각하는 방식은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 문화가 남겨 놓은 기호학적이고 물질적인 흔적´이라는 영국 역사학자 폴 길로이의 지론과 맞닿아 있다. 재현의 장르인 영화는 `백인 헤게모니´가 형성되고 재생산되는 기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나우 유 시 잇´의 교훈처럼 시계를 싼 껍질을 벗겨 가듯이 시선을 탈중심화하고 방향을 바꿔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우라고 주장한다.책의 큰 특징은 고전문학과 대중음악, 르네상스 회화, 20세기의 사진술, 1950년대 이탈리아 영화부터 할리우드 SF영화까지 서구 대중문화를 아우르며 기독교, 인종, 식민주의 맥락에서 더듬어 가는 `백인성´ 찾기다. 백인 얼굴을 표준으로 삼아 발전한 사진술, 할리우드 영화에서 백인 스타를 비추는 조명 관습, 기독교적 분위기에 맞춘 빛의 사용이 대표적인 흔적이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들은 백인의 피부를 아름답게 조명하면서 백인 남성을 인류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백인 여성에게는 그 숭고함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부여한다. 결국 백인성은 백인의 인종주의적 우월성의 근거로 작동해 모든 유색인을 개인성을 확립하지 못한 미개하고 이해할 수 없고 비이성적인 집단으로 타자화하는 인종차별적 태도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백인성의 권력이 사실상 모든 서구 문화의 기저에 관행으로 스며들어 있음을 드러내는 과정을 좇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금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한류와 한국 사회의 얼굴이 포개진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30만명을 넘어선 한국은 과연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어두운 피부색의 외국인에게 우호적인가. 옮긴이는 이 대목에서 “한국 사회는 결코 인종주의나 피부색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우리의 시선 속에서 또 다른 백인성이 작동한다”고 꼬집고 있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책머리에 남긴 글을 통해 “세계 속 문화 수출국이 되어 새로운 미의 위계를 형성하는 여러 산업적, 문화적 실천을 전파하는 입장에서 이미 인종주의는 우리의 문제이고 한국의 미백과 뷰티 실천은 이 문제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지적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대구 신세계백화점서 30대 남성 투신…결국 사망(종합)

    대구 신세계백화점서 30대 남성 투신…결국 사망(종합)

    4일 오전 11시 20분쯤 대구 동구 신세계백화점 점 안 9층 난간에서 30대 남성 A씨가 추락했다.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A씨는 백화점 안전관리팀 직원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목격자 등을 상대로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영남대, 코로나블루 극복 위해 ‘심리방역 상담’ 실시

    영남대가 코로나 블루(코로나19+우울감) 극복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심리방역 상담이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영남대 학생상담센터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맞춤형 심리방역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기존 대면 상담을 전화나 화상 등 다양한 비대면 상담 프로그램으로 전환해 운영하고 있다. 미술치료, 영화치료, 사진치료 등 다양한 온라인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6월 11일까지 참가자를 모집한다. 현재까지 약 100명의 학생이 참가 신청을 해 6월 3일부터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특히, 학년별 맞춤형 상담 프로그램이 눈길을 끈다. 1학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슬기로운 대학생활’ 프로그램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오리엔테이션, 입학식, 신입생 환영회 등 대부분의 행사가 취소되면서 정상적인 캠퍼스 생활을 경험하지 못하고 대학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입생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 심리·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학년 학생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도 호응이 높다. 영남대 학생상담센터는 ‘YU PEER 서포터즈’를 선발해 센터의 프로그램과 활동에 대한 홍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3개 팀, 총 10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YU PEER 서포터즈는 코로나 블루 및 자살 예방을 위한 카드 뉴스와 웹툰, 영상물 등을 제작해 센터 홈페이지와 공식 SNS, 서포터즈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알리고 있다. ‘Y또! 프로그램’도 심리방역 상담에 활용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Y또’는 영남대 또래상담자를 의미한다. 멘토 교육을 이수한 학생이 어려움이 있거나 대학생활 적응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상담자 역할을 하는 학생 간 멘토-멘티 프로그램이다. 이 밖에 영남대 학생상담센터는 온라인 교수 특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학생상담 가이드북과 자살위기대응 매뉴얼도 제작하여 배포하는 등 교수자의 학생상담역량 강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향후 실제 영남대 교수들의 상담 및 면담 우수사례들을 발굴해 공유할 계획이다. 영남대 학생상담센터 임성우 센터장은 “학생상담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해 잘 모르고 있거나 선뜻 다가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학생상담센터에서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유근식 의원, 생명사랑단 코로나19 방역 시행

    유근식 의원, 생명사랑단 코로나19 방역 시행

    경기도의회 광명상담소에서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코로나19에 대비하여 도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생명사랑단의 도움으로 실내 소독을 실시하였다. 경기도의회는 지역상담소는 도의원들이 주민의 입법·정책 관련 건의사항을 수렴하고 지역발전을 위한 주민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정에 반영하며 생활불편 등 각종 민원사항 해결을 위한 논의의 장소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자살예방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광명시 생명사랑단(단장 김동주)은 지난 2015년 5월 발족해 생명존중 생명사랑 문화 확산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단체로 코로나19 발생 후에는 광명시 공공기관, 다중이용시설, 취약계층 시설 방역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생명사랑단 자문위원장인 경기도의회 유근식(광명4, 더민주)의원은 방역활동을 마치고 “시민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한 만큼, 많은 사람이 찾는 도의회 상담소도 방역을 철저히 실시하여 코로나19 감염 차단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의회 광명상담소는 출입 시 체온측정과 방명록 작성, 매일 출입문 손잡이를 소독하는 등 코로나19 감염예방 및 확산방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0년 지기 죽였다니”…이재명 측, ‘가짜뉴스’ 37건 고발

    “30년 지기 죽였다니”…이재명 측, ‘가짜뉴스’ 37건 고발

    “이재명 지사는 신천지 신도다” “이재명 지사는 30년 지기인 친구를 살해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지지하는 백종덕·최정민·서성민 변호사는 2일 ‘코로나19 가짜뉴스 대책단’을 발족하고 경기도와 이 지사에 대한 악의적이고 상습적인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신고·접수 받아 법률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대책단은 최근 온라인상에 반복적으로 유포되는 37건의 허위사실에 대해 오는 4일 경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고발 대상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의 질병관리본부와 경기도의 갈등설, 이 지사의 신천지 신도설, 이 지사의 30년 지기 친구 살해(자살유도)설 등이다. 백 변호사는 “예컨대 도지사가 30년 지기 친구를 살해했다고 유포되는 내용대로라면, 이미 사망한 사람이 보름 뒤 환생해 지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꼴”이라며 “각기 다른 두 사건을 하나로 짜깁기한 대표적으로 황당한 가짜뉴스”라고 말했다. 대책단까지 발족한 취지에 대해서는 “상습적 허위사실 유포로 도와 도지사의 방역행정에 발목을 잡아 도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차단하려는 것”이라며 “악의적이고 상습적인 가짜뉴스를 근절한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대책단은 온라인 신고센터를 개설해 후속적인 고발도 추진한다. 대책단 공동단장인 백 변호사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이 지사 캠프의 대변인을 맡았고, 지난해 11월 이 지사 사건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 선고의 근거가 된 공직선거법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해 헌법 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대책단 발족이 대권 예비주자 중 한 명인 이 지사의 지지도가 최근 급상승한 시점이라는 점을 들어 “이 지사 측이 선제적인 주변 관리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에 대해 대책단 측은 “코로나19 국면에서 과감하고 선제적인 대응으로 경기도와 경기도지사에 대한 주목이 높아진 만큼 악의적인 음해성 가짜뉴스 역시 대폭 증가했다”며 “방역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앞서 도는 지난 2월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이 지사의 조치를 칭찬하는 트위터 글에 한 네티즌이 ‘이 지사가 신천지 교인’이라는 허위 댓글을 달아 도와 도지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경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文대통령이 태종?… 태종은 정치 술수·살상도 주저하지 않았다

    文대통령이 태종?… 태종은 정치 술수·살상도 주저하지 않았다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후 문재인 대통령은 공연한 구설에 휘말렸다. 5월 초 이광재 당선자의 영 개운치 않은 비유 탓이었다. “노무현·문재인은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 태종 같다. 이제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 피선거권 박탈로 10여년 만에 재기해 흥분한 탓일까? 총기는 사라지고 욕심만 넘쳤다. 3년 전 문 대통령 당선 후 20년 집권 운운했던 이해찬 대표의 언급과 다르지 않았다. 좌충우돌 독설가 진중권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이 나라가 조선 시대로 돌아간 듯”, “서로 징그럽게 얽혀 백 년은 해 드실 듯”. 욕먹어도 쌌다. 어떻게 쿠데타로 아버지(태조)와 형(정종)을 몰아내고 왕좌에 오른 태종에 비유했을까. 더 고약한 것은 ‘세종의 시대’를 언급한 부분이었다. 문 대통령은 장차 도래할 ‘성군의 치세’로 건너가는 교량이라는 것일까? 칭찬인지 가르침인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세종이란 누구를 염두에 둔 것일까. 이광재 본인? 태종이라면 대역죄로 처단했다. 그는 ‘차기’와 관련한 확인되지도 않은 발언을 빌미 삼아 처가의 씨를 말렸다. 물론 전제왕조에서 최대 과제는 왕권의 안정과 안정적 승계였다. 이 점에서 조선의 국왕 28명 가운데 태종을 능가할 사람은 없었다. 세종의 치세는 태종의 칼끝에서 나왔다. 그는 왕권의 안정을 위해 정치 술수와 공작, 무고한 살상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으로선 꿈도 꾸지 못할 짓이었다. 태종은 1404년(태종4) 반정공신 이거이, 이저 부자를 숙청했고 1407년 처남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사사했으며 이무, 윤목, 유기 등의 목을 베었다. 1416년엔 나머지 처남 민무휼, 민무회 형제를 죽였으며 같은 해 야심가 이숙번을 축출했으니 1418년 선위할 때 조정엔 왕권을 위협할 척신도 공신도 없었다. 단 하나, 세종의 장인 심온 집안이 문제였다. 심온은 신중했다. 권세를 부리거나 권력을 탐할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집안은 조선 최대의 권벌. 부친 심덕부는 태조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에서 회군한 조선 창업 공신이었다. 그의 형 심인봉은 군사령관인 의흥삼군부 도총제를 지냈고 동생 심정은 의흥삼군부 동지총제로 군부의 실세였다. 동생 심종은 태조의 사위였으며 심온은 세종(이도)의 장인인 데다 태종의 처남 민무휼과 사돈 관계였다. 비록 권력욕은 없다 해도 그 주변엔 권력의 부나비들이 꼬였다. 1418년 6월 3일 태종은 세자(이제, 양녕대군)를 폐하고 이도(충녕)를 새로이 책봉했다. 6월 9일 명나라에 주문사를 보냈다. 8월 8일 명의 인가가 떨어지기도 전에 느닷없이 왕위를 선위하겠다고 선언했다. 승계를 청하는 주문사를 명에 파견하기로 하고 9월 3일 심온을 영의정에 앉혀 사은주문사로 임명했다. 심온은 졸지에 왕의 국구(장인)에 영의정 그리고 조선을 대표하는 사절이 됐다. 그러나 그것이 낚싯밥일 줄이야…. 9월 8일 심온 일행이 한양을 출발했다. ‘세종실록’은 그날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심온은 임금의 장인으로 나이 50이 못 되어 수상의 지위에 오르게 되니 영광과 세도가 혁혁하여 전송 나온 사람으로 장안이 거의 비게 되었다.” 이런 기록도 있었다. “심온 환송식에 나온 사람들의 말과 마차가 일으킨 먼지가 한양을 뒤덮었다.” 태종은 예의 주시했다. 얼마 전 병조참판 강상인 사건까지 있었다. 선위할 때 태종은 상왕으로서 군사 문제는 직접 주관하겠다고 밝혔다. 군령권을 상징하는 직인도 직접 보관했다. 그런데 참판 강상인이 병조의 일을 세종에게 직보한 것이다. 대관들이 벌떼처럼 일어났지만 태종은 일단 강상인이 원정공신이라는 이유로 낙향 조처로 일단락했다. 11월 병조좌랑 안헌오가 참소했다. 심온의 경쟁자인 박은이 태종의 심기를 헤아려 꾸민 일이었다. “강상인과 동지총제 심정(심온의 동생), 병조판서 박습이 사적인 자리에서 말하기를 ‘요사이 호령이 두 곳에서 나오는데 한 곳에서 나오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역린을 건드렸다. 26일 태종은 즉각 추국을 지시했고 강상인은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했다. “병조판서 박습, 이조참판 이관, 의흥삼군부 동지총제 심정과 그런 말을 했으며 심온에게도 ‘군사는 마땅히 한 곳에서 명이 나와야 한다’고 하자 ‘옳다’고 대답했다.” 태종은 곧바로 강상인, 박습, 이관, 심정을 모반대역죄로 처형했다. 심온은 의주에 도착하자마자 체포해 12월 22일 한양으로 압송했다. 심온은 고문으로 무릎이 부서졌지만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대질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수사 책임자인 유정현이 귀띔했다. ‘태종의 뜻이외다’, ‘자백해야 당신 선에서 끝날 것이오’. 심온은 불러 주는 대로 자백하고 사약을 받았다. 14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태종은 이미 자신의 처가를 숙청했다. 장인 민제는 태종의 스승이었고 처남 민무구와 민무질은 이른바 ‘혁명의 동지’였다. 게다가 세 왕자는 골육상쟁의 피바람 시절 외가에서 보호를 받으며 자랐으니 외삼촌들과 더 끈끈할 수밖에 없었다. 1404년 태종은 이제(양녕대군)를 세자에 책봉하면서부터 처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했다. 당시 무구, 무질 두 처남은 병권을 쥐고 있었다. 마침 일부 공신이 장인 민제를 앞세워 세자와 명나라 공주의 혼사를 추진하려 했다. “나와는 상의도 없이 세자의 혼사를 논의해?” 태종은 별렀다. 이화가 나섰다. ‘(두 처남이) 어린 조카를 끼고 권세를 잡으려 한다’는 것인데, “민씨 형제가 왕자의 난을 거론하며 ‘임금에겐 아들이 하나만 있어야 한다’고 했다”더라고 탄핵했다. 태종은 두 처남을 제주도로 유배했다. 이런 상소도 올라왔다. 태종이 신하들을 떠보기 위해 선위 파동을 일으켰는데, 그때 백관 가운데 두 처남이 히죽거렸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참소였지만 처형하라는 주청이 잇따랐다. 두 처남은 유배지에서 사사됐다. 셋째, 넷째인 무휼과 무회도 형들의 결백을 토로했다는 이유로 ‘자살’ 형식으로 죽였다. 처가를 정리하기 직전 태종은 이거이와 이저 부자를 숙청했다. 이저는 태조의 사위고 그의 동생 이백강은 태종의 사위였다. 태종의 사병 혁파 명령에 반발할 정도로 말발이 셌던 이들이었다. 이때 나선 것도 이화였다. “두 사람이 말하기를 ‘아들들을 모두 제거하고 녹록한 상왕(정종)을 모시는 게 어떤가’라고 했습니다.” 태종은 두 사람을 고향으로 내쫓았다. 총애했던 이숙번도 그렇게 숙청했다. 나이도 젊고 비상한 두뇌에 결단력과 배짱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위험한 인물이었다. 1416년 서너 달 동안 궁궐에 나타나지 않자 대관들이 불충을 이유로 처벌을 주장했다. 태종은 못 이기는 척 함양으로 유배 보냈다. 이에 비해 연로한 하륜은 수많은 비위 사실과 탄핵에도 철저하게 보호했다. 그는 태종보다 20살이나 많았으니 왕권에 위협이 될 수 없었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했다면 태종은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6조 제도를 정착하고, 전국 8도 체제를 세웠으며, 사대교린 외교로 국가 안보를 다졌고, 대간 제도 확충으로 관리들의 부패와 신권의 확장을 견제했으며, 정책 결정 과정을 모두 문서로 남기도록 했다. 게다가 왕권의 승계도 안정적으로 이뤘다. 그는 성공한 군주였다. 한 정권의 성공은 후계의 완성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은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노무현을 세워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고 못다 한 계획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반면 노무현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서 김·노 10년간 이룬 성과도 물거품이 됐다. 이명박·박근혜는 견원지간이었다. 둘은 지금도 감옥에 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입술이 허옇게 부르터 있었다. 대통령의 건강은 최고급 비밀인데, 본인은 그런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그는 정치적이지 않다. ‘정치적’이란 말에 담긴 술수, 모의, 기획과는 담을 쌓았다. 조선 정치 최고단수 태종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노무현이 그랬듯이 문 대통령도 아끼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정치하지 말라’고 할 사람이다. 솔직히 그것이 그의 가장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걸 이용해 먹을 자도 있겠지만…. 논설고문 kbc@seoul.co.kr
  • 2018년 자살률 9.5% 증가… 10대는 22.1% 급증

    2018년 자살률 9.5% 증가… 10대는 22.1% 급증

    10만명당 26.6명… 80세 이상 69.8명 10~30세 정신, 31~60세 경제적 원인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자(자살률)가 2018년 26.6명으로 전년 대비 2.3명(9.5%) 늘어났다. 1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펴낸 ‘2020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 전체 자살자는 전년보다 1207명 증가한 1만 3670명이었다.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2011년과 비교해서는 자살자는 2236명(14.1%) 줄었고 자살률도 5.1명(16.1%) 감소했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오명은 그대로였다.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은 11.5명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2016년 기준 24.6명으로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연령대별 자살률은 80세 이상이 69.8명으로 가장 높았다. 10대는 5.8명으로 가장 낮았지만 전년 대비 22.1%나 증가했다. 2017년과 비교해 80세 이상의 자살률은 0.4% 포인트 감소했지만 나머지 모든 연령층에서는 2017년보다 늘었다. 자살 동기는 연령대마다 달랐다. 10~30세는 정신적 어려움으로 자살을 택하는 사례가 많았다. 31~60세는 경제적 어려움, 61세 이상은 육체적 어려움이 주된 이유였다. 성별로는 남성의 자살률이 38.5명으로 여성(14.8명)보다 2.6배 높았다. 전체 자살 사망자 가운데 남성은 72.1%를 차지했고, 자살률은 남성이 여성보다 2.6배 높았다. 월별로는 매년 3~5월에 증가했고 겨울철인 11~2월에 줄었다. 지역별 자살자 수는 경기(3111명), 서울(2172명), 경남(971명) 순이었다. 최근 5년간 무학, 초등학교 및 중학교 졸업 자살자 수는 감소 추세였지만, 대학교 이상 졸업 자살자 수는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 법원 “아이 동반 극단 선택은 아동학대 범죄”

    법원 “아이 동반 극단 선택은 아동학대 범죄”

    생활고와 우울증, 가정불화 등을 이기지 못해 어린 자녀와 함께 세상을 등지려다가 자신만 살아남은 2명의 엄마가 지난달 29일 법정에 섰다. 재판부는 심신이 피폐해진 두 엄마의 모습에 비통해하면서도 ‘아이와의 동반자살은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 범죄’라며 엄중한 죗값을 치를 것을 주문했다. 1일 울산지법에 따르면 형사11부(부장 박주영)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42)씨와 B(40)씨에게 징역 4년씩을 선고했다. 생활고와 우울증을 앓던 A씨는 2018년 12월 중순쯤 방 안에 착화탄을 피워 만 2세였던 자신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등지려다가 아이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도 심장과 호흡이 멈추는 등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가 사흘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사건 후유증으로 자신의 범행을 기억하지 못하고 언어장애를 보이는 등 인지능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B씨는 자폐성 발달장애 2급으로 사회적 연령이 2세 5개월 정도에 불과한 9살 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혼자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딸의 양육 부담과 경제난 등으로 우울증을 앓았다. B씨는 2019년 8월 딸이 처방받아 먹던 약을 한꺼번에 딸에게 먹인 뒤 자신도 약을 먹었다. 딸은 숨졌고, B씨는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았다. 재판부는 A씨와 B씨 사건이 별개지만 선고일을 같은 날로 잡았다. 박주영 부장판사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은 ‘자녀의 생명권이 부모에게 종속돼 있다’는 그릇된 생각과 그에 기인한 온정적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며 “이 범죄의 본질은 자신의 아이를 제 손으로 살해한 것이고,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 범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왜 중국 남성은 서울에서 7살 딸을 살해했나

    왜 중국 남성은 서울에서 7살 딸을 살해했나

    서울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7살 난 딸을 살해한 중국 남성이 22년형을 선고받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일 한국 언론을 인용해 장이란 성만 알려진 중국 남성이 서울에서 딸을 살해한 사건을 자세히 보도했다. 장은 2017년 아내와 이혼한 뒤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이 여자친구가 2번의 유산 원인으로 전처의 딸을 들며 아이가 ‘악마’라고 비난했다. 지난해 8월 중국 남성은 호텔 화장실에서 딸을 살해하고 호텔 바로 가서 술을 마신 뒤 방으로 돌아와 딸이 사망했다고 신고했다. 장은 살인 혐의를 부인했으며 술을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 보니 딸이 사망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여자친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와 감시카메라 그리고 부검 결과, 딸을 살해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은 “오늘 할거야…중요한 곳에 감시 카메라가 몇대 있어”란 문자메시지를 여자친구에게 보낸 사실이 밝혀졌다. 장이 이혼하고 새로 여자친구를 사귀기 전에는 딸과의 사이가 좋아 한국, 일본, 대만 등으로 몇차례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또 이혼 뒤에도 전처 집 근처에 살면서 딸을 유치원으로 데려다 주기도 해 어린 딸도 아빠와의 서울여행에 따라나선 것으로 짐작된다. 장의 새 여자친구는 두번이나 유산으로 태아를 잃자 자살 시도까지 했으며, 장은 서울 여행 첫날 딸을 살해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는 “여자친구의 딸에 대한 분노가 극심했기에 무고한 피해자가 사랑했던 아버지로부터 죽임을 당해야 했다”며 “법정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생명을 앗아간 행위에 상응하는 형벌을 내린다”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공창제 여파로 만연한 성병 치료약/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공창제 여파로 만연한 성병 치료약/손성진 논설고문

    조선시대에 성매매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기생 제도가 있어서 사실상 매춘을 하고 있었고 은근자, 탑앙모리, 색주가 등도 매춘과 연관이 있었다. 한말에 와서 기생은 일패, 이패, 삼패로 등급이 나뉘었는데 이패를 은근자, 삼패를 탑앙모리라고도 했다. 은근자는 기생 출신으로서 남몰래 매춘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탑앙모리는 매춘을 업으로 삼는 여성이었고 기생이 하는 노래와 춤을 할 수 없었으며 한다고 해도 잡가 정도였다. 색주가는 술과 함께 젊은 여성의 몸을 파는 집을 말하고 색줏집이라고도 했다. 이곳 여성들은 기예 없이 하층민을 상대로 술과 몸을 팔았고 갈보, 작부라고도 불렸다. 청일·러일전쟁 이후 일본 군인과 군속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서울과 지방에 매음녀들이 늘어났다. 일본인을 따라 일본 창기들도 흘러들어 왔다. 1909년 서울에만 2500여명의 매음녀가 있었다고 한다. 덩달아 성병이 번져 사회 문제가 됐는데 1906년에 처음으로 매음녀들을 상대로 성병 검사를 시작했다. 성병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매춘업을 그만두어야 했기에 기생들의 반발이 심했다. 성병이 없는 매음녀들에게는 건강증을 나누어 주었다. 성병 검사는 곧 공창제도 도입을 의미했다. 일본 창기와 함께 조선인 매음녀를 고용한 유곽이 나타난 것은 서울에서는 1904년, 부산과 원산에서는 1902년 무렵이라고 한다. 서울 최초의 유곽은 현재의 중구 묵정동에 생긴 ‘신정유곽’이며 1906년에는 용산 도원동에 ‘도산유곽’이 만들어졌다. 1918년 무렵에는 신정유곽 옆 현재의 쌍림동에 ‘병목정 유곽’이 들어섰다. 일제는 1904년 ‘예기취체규칙’에 이어 1916년엔 ‘대좌부 창기취체규칙’을 만들어 공창제를 제도적으로 도입했다. 유곽에서 세금도 거뒀다. 일본의 창기 진출과 공창제 허용의 영향으로 이른바 ‘화류병’이라 불리는 성병, 즉 매독과 임질 등이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만연하게 됐다. 처음에는 일본 군인이나 민간인들이 주로 유곽을 찾았지만 조선인들의 출입도 잦아졌다. 식민지 지배와 수탈에 대한 반발을 합법적 성욕 해소라는 퇴폐적 수단으로 잠재우려는 일제의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성병 검사를 정기적으로 한다고 해도 최소한 몇 %의 매춘녀들은 성병보균자여서 유곽을 찾는 남성들에게 전염됐다. 성병약 광고가 1910년대 초반부터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 매독은 치유가 어려워 인육이나 수은이 매독에 좋다는 헛소문을 믿고 따라하거나 매독을 비관해 자살하는 사건도 허다하게 발생했다. sonsj@seoul.co.kr
  • “장군의 아들까지 알 수 없는 죽음 당해…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軍 변하지 않아”

    “장군의 아들까지 알 수 없는 죽음 당해…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軍 변하지 않아”

    “훈이 생각하면 너무 기가 막혀. 내 마음을 정리해서 표현할 문구를 아직까지 못 찾았어. 슬픈데 얼마나 슬픈지, 고통스러운데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아직도 정확히 말할 수가 없어요.” 육군 장교의 부인으로 평생 ‘꽃길’만 걸으며 살았던 ‘사모님’이 50대 중반에 돌연 ‘투사’가 됐다. 아버지를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가겠다는 아들을 말리면서도 내심 자랑스러웠던 것은 그만큼 남편이 몸담았던 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가 22년째 군을 상대로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초소에서 사망한 김훈(당시 25세·육사 52기) 중위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고, 자살한 것으로 몰아간 것을 잘못했다는 말을 군으로부터 듣기 위해서다.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동에서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77·육사 21기) 예비역 중장과 함께 만난 어머니 신선범(76)씨 눈에는 아들을 먼저 보낸 참척(慘慽)의 아픔을 풀어내는 내내 연신 눈물이 맺혔다. 19년 만에 순직 결정 직후 국가 배상 ‘다시 시작’ 김 중위는 숨진 지 19년 만인 2017년 10월 가까스로 순직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부모에게는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었다. 부모는 “국방부가 사망 원인을 자살로 고집하며 20년 가까이 순직 결정을 미뤘다”며 순직 처분 다음해 국가를 상대로 다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곧바로 항소해 지난달 20일 항소심 판결이 선고될 예정이었다가 재판부의 변론 재개 결정으로 오는 25일 다시 재판이 열리게 됐다.사망원인 여전히 외면… 1심 패소·오는 25일 항소심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심 재판 과정은 어땠나. “재판은 분노의 연속이었다. ‘진상규명 불능’일 경우 순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근거 조항이 없었다며 1심이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그사이에도 우리는 국방부에 ‘훈이의 사망 원인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과거 훈이를 자살로 몰며 순직 결정을 미뤄 온 데 대해 사과하면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런데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던 지난 4월 13일 국방부는 재판부에 낸 참고서면에서도 ‘재판 중인 사항에 관하여는 공식 답변이 제한된다’며 끝내 우리를 무시했다.”(김) -국가(국방부)를 상대로 낸 소송이 이번이 두 번째다. “2000년에는 군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훈이가 자살했다고 결론 내고 사망 사건을 은폐·조작했다고 소송을 냈다. 2006년 대법원에서 군의 1차 수사 과실이 최종 인정됐고, 처음 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고 명백히 밝혔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2009년 10월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 냈다. 이후 추가 조사도 안 이뤄졌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순직 처분을 미루고, 여전히 국회 국방위원회를 비롯한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훈이를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자로 몰았다. 2017년 5월 정부가 바뀐 뒤 군 의문사가 ‘적폐’로 규정된 뒤에야 그해 순직 처분이 됐다. 두 번째 소송에서는 대법원 판단 이후 11년간의 시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김) -순직 결정으로 유족들의 요구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인식도 있다. “그래서 순직 처분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거다. 우리는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훈이는 ‘직무수행 중 사망한 사람’으로 분류됐다. 애국자로 정당한 예우를 받아야 한다. 가끔 만나는 사람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됐으니 다 끝난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런데 군 안에서는 여전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약한 군인으로 기록돼 있다. 처음부터 제대로 조사하기는커녕 진실을 덮은 뒤 순직 결정을 미뤄 온 그 시간들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돌려놓고 싶은데 여전히 국방부는 훈이 사망 원인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김) “장군의 아들도 의문의 죽음… 우리가 멈추면 軍 안 변해” -어떤 과정들이 특히 고통스러웠나. “훈이 아빠가 3성 장군 출신으로 평생 군에 몸담았는데도 훈이가 떠난 그 순간부터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았다.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공공연히 훈이가 자살했다’며 우리의 목소리를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1998년 12월 특별합동조사단이 꾸려져 재수사를 할 때도 ‘형님, 형수님’ 하며 따랐던 후배 장군마저 ‘조사단 회의를 지켜보게만 해달라’던 우리를 부하들을 시켜 끌어냈다(당시 특조단이 연 법의학자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8명 가운데 가족들이 추천한 노여수 박사만 유일하게 타살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후 특조단은 1999년 4월 다시 한번 김 중위의 사망 원인을 자살로 발표했다).”(신)-김 중위의 사망으로 가족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겠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결국 가족들이 나서야 했다. 훈이와 함께 근무했던 전역한 병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었고, 훈이 육사 동기생들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확보했다. 서울역 버스정류장 앞에서 약국을 하던 친언니가 문산에서 오는 버스에서 내리는 군인들이 볼 수 있도록 약국 벽에 훈이 사진과 제보 요청 글을 써 놓기도 했고, 진상을 밝혀 달라는 내용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평생 정갈하고 예쁘게 삶과 가정을 꾸려 왔던 나의 인생이 거친 길을 헤매고 시도 때도 없이 울분을 토하는 것으로 뒤바뀌었다.”(신) “훈이가 떠난 그날 오후 군에 남아 있던 동기로부터 ‘너희 집 무슨 일 있니? 훈이가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은 뒤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마음 편히 밥을 먹은 날이 없다(김척 예비역 중장은 1997년 예편). 우리뿐 아니라 훈이 동생까지 평온하던 가정이 깨지다 못해 하루아침에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지옥 속에 들어갔다. 훈이가 갑자기 떠난 것도 아프지만 그 죽음이 헛되게 매도당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군인을 하겠다’던 아이였고 워낙 올곧은 원칙주의자여서 육사 동기생들 사이에서 별명이 ‘곰’이었다. 그런 훈이를 두고 ‘부모의 강압적인 입대 권유 등 가정 환경의 영향을 받아 우울함으로 자살했다’고 한 군을 용서할 수 없었다.”(김) -군 의문사 진상을 밝히기 위해 싸우는 부모들이 여전히 많다. “내가 멈출 수 없는 게 바로 그 이유다. ‘장군의 아들’도 이렇게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하고, 엘리트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그 진실을 풀기가 이토록 힘든데 다른 부모들은 오죽하겠나. 간단한 자료 하나 얻기도 어렵다. 3성 장군을 지낸 사람이 어떻게 군을 상대로 그렇게 싸우냐고 나무라는 이들도 많았는데, 내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더 싸워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싸우지 않으면 군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순수하게 나라를 위해 고생하는 군인들이 많은데 군에서 혹시 잘못되더라도 명예로울 수 있다는 믿음을 그들에게 줘야 한다.”(김) -22년째 이어 온 싸움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고 싶나. “진실을 밝히는 것과 진심의 사과를 받는 거다.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국방부가 공식 사과를 한다면 소송도 취하할 것이다. 오히려 재판은 국방부가 ‘당시 법령 등 근거가 명확지 않았다’며 순직 결정을 미뤄 온 이유를 합리화할 수 있는 면피 수단이기도 하다. 소송은 돈 때문이 아니라 훈이가 정신질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는 거다. 아버지이자 전우로서 훈이 죽음의 진실을 밝혀야만 하는 의무가 나에게 있다. 훈이 사건은 또 다른 ‘드레퓌스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가족들은 군의 규정을 어긴 누군가의 큰 잘못을 덮기 위해 훈이가 죽게 된 것이라 믿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밝혀졌듯 언젠가 훈이 죽음의 진실도 밝혀질 것으로 믿고 그때까지 버텨 낼 것이다.”(김) “우리 훈이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대에서 군인들과 함께 뛰고 자라면서 군인을 꿈꿨다. 육사를 졸업하고도 공수부대에 자원하려고 했다. 군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이 컸다. 나 역시 군인의 아내로 살며 군을 사랑했다. 부대 병사들 간식이며 생일잔치까지 챙겨 줬고, 수색대대를 떠난 뒤에도 수색대 병사들만 보면 반가워서 남편 주려고 산 떡이나 담배를 아낌없이 쥐여 보냈다. 편안히 군 생활에만 신경쓸 수 있도록 철저하게 내조했다. 국가를 위해 평생 헌신한 남편이 자랑스러웠고, 그 길을 이으려던 아들이 멋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군이 이토록 잔인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지난 시간들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다.”(신)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11년 만에 다시 출근… ‘제2의 무쏘’ 만들 생각에 떨려

    11년 만에 다시 출근… ‘제2의 무쏘’ 만들 생각에 떨려

    쌍용자동차 마지막 복직 대상자 35명이 지난 4일 일터로 돌아갔다. 2009년 쌍용차가 2646명을 구조조정한 지 10년 11개월 만이다. 이들은 두 달 교육을 거쳐 7월 1일부터 현장에 배치된다. 길고 지난했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복직 투쟁은 사회안전망이 미흡한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 14일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5월에 복직한 조문경(57), 김성국(52), 이민영(44)씨를 만나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복직자들은 교육을 받으면서 현장에 적응하려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02년 쌍용차에 입사한 이씨는 “빨리 현장에 돌아가 차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차량 정비사로 일하다 1994년 입사한 조씨는 “처음 회사 들어갔을 때는 주어진 일을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항상 있었는데 현장을 11년 동안 떠나 있었으니, 작업 속도나 과정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좀 두렵다”고 말했다. 복직 노동자 교육을 맡은 강사가 이들에게 처음 던진 질문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냐”였다. 건설 현장 일용직이나 자영업으로 입에 풀칠하느라 바빴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11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김씨는 “충남 천안, 경기 안성 등에서 노가다(막일) 현장도 뛰고,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도 했다”면서 “시설관리공단에서 일할 때도 있었는데 잠을 재워 주고 4대보험도 나와서 좋았다”고 기억했다. 이씨는 “일하느라 전국에서 제주 빼고는 다 가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낙인 탓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라는 타이틀은 주홍글씨처럼 이들을 따라다녔다.조씨는 “쌍용차에 다녔다는 이력을 알고 나면 그만두라고 하더라. 그러니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막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대출금을 갚기도 막막했다. 적금이나 애들 앞으로 들어 둔 얼마 안 되는 보험까지 모조리 해약했다”고 회상했다. 2009년 4월 8일 회사가 인력 감축을 발표할 때만 해도 해고는 실감나지 않는 단어였다. 하지만 전체 인원(7130명)의 36%인 2646명이 쫓겨날 것이라는 얘기가 돌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너 아니면 내가 해고”될 판이었다. 어느 날 해고를 알리는 ‘노란 봉투’가 날아왔다. 조씨는 “사장이 주는 상도 받고 성실히 일했는데, 나까지 잘리진 않겠지 생각했었다”면서 “상 받은 사람들도 한꺼번에 잘렸다”고 말했다. 이씨도 해고 통지를 받자마자 “‘내가 왜 대상이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함께 공장에서 일하던 김씨의 동생은 “형 거야”라면서 노란 봉투를 건넸다. 그의 동생 역시 일자리를 잃었다.날벼락 같은, 납득할 수 없는 해고를 통보받은 1000여명의 노동자들은 평택 공장에서 77일간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파업에 돌입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보다는 물리적인 충돌만 부각됐다”고 기억했다. 당시 시위에 투입된 경찰특공대는 크레인을 타고 공장 옥상에 진입해 방패와 진압봉을 휘둘렀고 수십명이 크게 다쳤다. 경찰은 유독성 최루액과 테이저건 등 대테러 장비와 헬기까지 동원하는 등 전쟁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경찰이 쌍용차 파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50명의 ‘인터넷 대응팀’을 운영하고 조현오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이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의 반대에도 직접 청와대 고용노동 담당 비서관에게 전화해 공장 진입을 승인받은 사실 등은 2018년에야 밝혀진 사실이다.해고 노동자들은 경찰의 강제 진압이 남긴 트라우마와 싸워야 했다. 조씨는 경찰에 두들겨 맞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여러 번 봤다. 그는 “세어 보니까 27대를 맞았다. 원 없이 맞았다”면서 “뒤쪽으로 끌려가서 니킥으로 가슴을 맞기도 했다”고 했다. 이씨는 “첫날에는 정신이 없으니 아픈 줄 몰랐는데, 다음날부터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고 했다. 김씨는 위독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파업 현장에서 일찍 나왔지만, 헬기 진압 장면을 목격한 뒤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는 “집에서 공장이 보이는데 헬기 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면서 “유서를 쓸 생각도 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2009년 정리해고 이후 해고자와 가족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승섭 교수팀의 ‘2015 함께 살자 희망 연구’에 따르면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50.5%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다. 걸프전에서 포로로 잡혔던 미군(48.0%)보다 높은 비율이다. 2018년 발표된 쌍용차 해고자 배우자 실태조사에서는 해고자 배우자(28명)의 절반인 12명(48.0%)가 ‘지난 1년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급격한 사회경제적 지위의 하락과 사회적 지지의 단절 속에서 해고자는 모든 부담을 신체적·정신적으로 감내했다”면서 “그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것이 국가와 정책 입안자의 책무이자 역할”이라고 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정부 고용센터로부터 구직 과정에서 실질적 도움을 받은 경우는 9.1%에 불과했고, 60%는 친구나 지인, 가족들의 도움을 받았다.경찰은 2019년 강제 진압과 관련해 노조에 사과했지만 당시 노동자들이 새총으로 쏜 너트와 볼트에 기중기·헬기 등이 파손됐다며 해고 노동자와 노조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철회하지 않았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노조 지부장은 “폭력 진압에 대한 사과는 받았지만 지연 이자를 포함해 100억원에 달하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같이 처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면서 “2016년 (경찰의 손을 들어 준) 2심 판결이 내려진 뒤에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가 나온 만큼 대법에서 빠르게 파기 환송을 해 법리를 다퉈야 한다”고 말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70m 높이 굴뚝에서 89일간 머물고, 두 팔꿈치, 양 무릎, 이마까지 바닥에 대는 오체투지 행진도 했다. 노력 끝에 2016년 18명을 시작으로 2017년 19명, 2018년 79명이 복직했다. 2020년 복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47명까지 163명(12명 휴직)이 회사로 돌아갔다. 회사로 돌아가지 않거나, 세상을 떠나거나 정년을 넘겨 회사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도 있다.복직을 선택한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김씨는 명예회복을 꼽았다. 2014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쌍용차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9개월 뒤 ‘양승태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김씨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4, 5년쯤 지나니까 ‘그만하자’고 했다. 내가 옳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면서 “옛날처럼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내면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회사를 사랑해서 마지막까지 좋은 차를 만들고 싶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더라”면서 “전국을 다니면서 일하면 돈은 더 많이 벌 수 있지만 가족들과 평택에서 자리 잡고 지내고 싶었다”고 했다. 쌍용차의 존속은 안갯속이지만, 복직자들은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져 도로를 누비던 차를 떠올렸다. 김씨는 평생 무쏘의 거북등(차체)을 만들었다. 2002년 뉴렉스턴 조립 라인에서 일을 시작한 이씨는 차도 뉴렉스턴만 몰았다. 품질관리(QC)와 조립 라인에서 일했던 조씨는 동료들 이야기를 듣더니 쌍용차 대표 모델의 역사를 줄줄이 읊었다. “2001년 렉스턴이 처음 양산될 때는 대한민국 상위 1% 차였죠. 저는 뉴 훼미리를 팔 때쯤 입사했는데, 무쏘가 히트를 칠 때는 품질 관리에서 일했습니다. 그다음에 체어맨이 나왔는데….” 글 사진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BTS 슈가, 영국 앨범차트 7위···한국 첫 톱10

    BTS 슈가, 영국 앨범차트 7위···한국 첫 톱10

    솔로 믹스테이프, 한국 최고 순위‘사이비 교주 연설’ 샘플링 논란도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슈가가 개인 믹스테이프(비정규 무료음반)로 세계 양대 팝 차트 중 하나인 영국 앨범 차트 7위에 올랐다. 한국 솔로 뮤지션으로는 최고 기록이다.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슈가가 지난 22일 활동명 ‘어거스트 디’로 공개한 믹스테이프 ‘D-2’는 29일(현지시간) 영국 오피셜 앨범차트 톱100 중 7위에 랭크됐다. 오피셜 차트는 홈페이지에 “영국 앨범 차트 톱 10에 사상 처음으로 진입한 한국 솔로 아티스트”라고 설명했다. 앞서 방탄소년단은 지난 2월 낸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 7’으로 앨범 부문 1위, 타이틀곡 ‘온’으로 싱글 부문 21위의 기록을 썼다. 타이틀곡 ‘대취타’도 오피셜 차트 싱글 부문 68위로 톱 100 안에 들었다. 궁중 음악 대취타를 샘플링해 판소리와 꽹과리 등 국악기와 슈가의 랩을 접목한 곡이다. 이번 믹스테이프는 슈가의 두 번째 작업으로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담은 10개 트랙을 선보였다. 해외 음악 플랫폼에서는 유료 구매할 수 있고 사운드클라우드와 구글 등에는 무료로 공개됐다. 한편 슈가가 발매한 이번 믹스테이프 수록곡 중 ‘어떻게 생각해?’에 미국 사이비 종교 교주 제임스 워런 짐 존스의 연설이 샘플링 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짐 존스는 1950년 미국에 인민사원이라는 사이비 종교를 만든 뒤 1978년 11월 신도들에게 음독 자살을 강요한 사이비 교주로, 당시 900여명이 사망했으며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떻게 생각해?’의 도입부에는 1977년 짐 존스의 연설 음성이 짧게 들어가 있다. BTS의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킨 범죄자의 메시지를 곡에 인용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과 함께 “샘플링을 통해 안티팬들의 행태를 반어적으로 비판하려는 것”이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코로나19와 심리방역, 어떻게 해야 할까?

    코로나19와 심리방역, 어떻게 해야 할까?

    2020년 5월 현재,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로 인해 대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급기야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3월 11일, 설립 이래 3번째로 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인 ‘팬데믹(pandemic)’을 선포했다. 이제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신체질환의 문제 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심리적 불안과 공포 등의 정신건강도 위험하고 취약한 상황이다. 즉, 감염 가능성에 따른 대인관계의 불신과 회피, 사람들의 사망이나 질환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반응 등은 다양한 정신건강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동시에 소비생활의 위축과 생산 활동의 저하 등을 초래해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또다시 생활 전반에 대한 불안을 유발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닥친 사회적 재난이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할 것인가가 우리에게는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고, 아직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높아 감염에 대한 불안이 증가하고 사람들이 심리적 불편감을 크게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반응이며, 따라서 이전에 경험한 신종플루나 메르스에 비해 ‘심리방역’이 더욱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코로나 블루’라는 새로운 용어가 나올 정도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우울, 불안, 초조, 걱정 등의 심리적 불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심리방역을 해야 할까? 우선 코로나19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며, 자신의 신체 및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모니터링 함으로써 본인의 상황에 맞는 스트레스 대처방안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한국심리학회 홈페이지(http://www.koreanpsychology.or.kr/)에 탑재된 “간편 심리건강 자가진단 검사(우울, 불안, 자살사고, 활력수준 검사)”를 활용해 자신의 심리상태를 체크하고, 필요할 경우 정신건강 및 심리전문가를 찾아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심리적인 어려움을 경험한 모든 사람이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일시적인 심리적 불편감은 누구나 경험하는 정상적인 반응임을 알고, 한편으로는 신체의 교감신경계의 과잉활성화에 의한 과각성에 대처하는 안정화 방법들을 적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구체적으로는,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기, 적당한 정도의 운동하기, 명상하기, 복식호흡하기, 자신의 하루를 간단하게 적어보기, 좋은 영화보기, 영상이나 전화통화로 심리적 지지가 되고 의미 있는 타인과 연결을 유지하기 등 자신의 환경이나 성향에 맞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면 심리방역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한국심리학회는 2020년 3월9일부터 질병관리본부와 연계해 심리전문가들의 무료 심리 상담을 제공하고 있으며, 5월 16일 현재 678건의 심리 상담이 진행되고 있다. 주요 상담내용으로는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불안(26.8%), 일반적인 불안(16.8%), 우울(10.6%),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8.8%), 가족 갈등(5.6%), 경제적인 어려움(5%) 등의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한국은 코로나19의 방역 우수국가로 평가받고 있지만 코로나19가 신체적인 질병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어려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예방 활동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면 보다 효과적인 심리방역을 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사회적 재난 상황에 처했을 때 필요한 재난위기의 특성, 가짜뉴스나 오정보의 식별, 향후 초래될 구체적인 어려움, 자가진단 및 모니터링, 전문기관과의 의뢰체계구축 등이 조금은 이루어졌지만 전 국민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고도 인구 특성에 따라 정교하게 특화된 심리서비스가 전달될 필요가 있다. 심리방역과 관련해 우리나라도 OECD국가는 물론 많은 나라들이 시행하고 있는 국가전문자격심리사(Licensed Psychologist)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심각한 정신질환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이 지닐 수 있는 경도에서 중등도 수준의 정신건강문제에 대해 심리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시급하다. 특히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심리건강을 위한 예방과 조기개입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심리서비스의 실시가 필요하며, 이제는 국가위기 재난 부서에 심리방역을 위한 심리학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난 상황일수록 우리 사회는 저소득층, 장애인, 어린이,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돌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방역 현장에서 일하는 보건의료인과 관련 공무원을 포함한 서비스 제공 인력을 위한 소진(burn out) 관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제는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 국민 모두가 의료방역 뿐 아니라 심리방역을 각자의 위치에서 함께 실천할 때 우리나라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증진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장은진 침례신학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 “성적 학대 당해”...BJ 한미모, 여배우 A씨 성매매 알선혐의로 고발

    “성적 학대 당해”...BJ 한미모, 여배우 A씨 성매매 알선혐의로 고발

    BJ 한미모가 여배우 A씨를 성매매 알선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유명 배드민턴 국가대표 출신의 전 아내인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파이낸셜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한미모 측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상습도박 등 혐의로 A씨에 대한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한미모 측은 고발장에서 “친분이 있던 A씨가 소개한 것은 엔터테인먼트 대표 B씨와의 성매매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발인이 그 제안을 거절하면서 성매매는 이루어지지 못했다”면서도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23조에서 제19조의 알선행위에 대한 미수도 처벌하고 있는 바 A씨 죄의 성립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미모는 지난해 9월 A씨가 “1000만원은 손에 쥐게 해주겠다”, “언니 10억원 정도 들어오거든”이라며 자신이 살고 있는 필리핀 마닐라에 와 일을 도와줄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당시 생활고를 겪고 있었던 한미모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약 한 달 뒤인 10월쯤 A씨는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B씨를 한미모에게 소개해줬다. 한미모는 A씨가 단순히 이성을 주선해준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B씨와 마닐라에 온 후 성적 학대에 시달렸다는 게 한미모의 주장이다. 한미모는 “A씨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제가) 성노예 같아요’라며 당시 심경을 전달하기도 했다”면서 “경제적 상황이 좋지 못해 B씨와 마닐라에 온지라 같이 지낼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빌미로 B씨의 강압적 행위를 거부하거나 벗어날 수 없었다”고 했다. 한미모는 A씨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로 A씨와 B씨의 텔레그램 대화를 검찰에 제출했다. A씨의 상습 도박 혐의에 대해서는 “B씨 출국 후 저는 A씨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면서 “A씨의 상습적인 도박행위를 도와야 했다. 낯선 도박장에서 감금된 생활이 이어지자 자살 시도까지 했다”고 말했다. 한미모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해율의 임지석 대표변호사는 “심각한 충격을 받고 제대로 된 금전적인 수입도 벌지 못한 채 한국으로 들어온 고발인에게 A씨는 자신의 성매매 제안을 합리화했다”며 “자신의 불법 도박 사실을 누설한 것으로 오해해 고발인에게 지속적인 협박과 폭언을 했다”고 밝혔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39년 전 고문 트라우마 극복… 민주주의 기념 공간 ‘문지기’ 꿈 이뤄”

    “39년 전 고문 트라우마 극복… 민주주의 기념 공간 ‘문지기’ 꿈 이뤄”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박록삼 논설위원이 만났습니다1976년 지어진 치안본부(현 경찰청)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벌어졌던 공간이다.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의 죽음은 지독한 비극이었다. 그 비극으로 한국 현대사의 물꼬는 새로 트였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고 있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의 1976년 작품이다. 김수근은 한국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꼽히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을 둘러보면 일제와 독재정권에 부역한 시인 서정주(1915~2000)나, 나치 당원으로 활동했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이 연상된다. 지난 26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다. 남영역 바로 곁에 있어 전철을 타면 늘 무심히 지나치는 곳이다. 대공분실 건물 곳곳에서 실용적 목적과 예술적 감성이 접목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육중한 철문을 지나면 무표정한 검은색 벽돌로 지어진 7층 건물(김수근 건축 당시에는 5층)이 나오고 그 뒤편에 부드러운 곡선을 활용해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게 만든 뒷문이 있다. 거기에서 시작된 나선형 계단은 2~4층을 거치지 않은 채 5층만을 연결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 작품 층수를 짐작조차 할 수 없이 규칙적으로 빙글빙글 돌며 오르게 했다. 중세의 원형 감옥을 떠올리게 한다. 유신 시절은 중세 못지않은 야만의 시대였다. 눈이 가려진 채 어딘지도 모르는 공간으로 끌려온 이들에게 세상의 끝에 홀로 내몰린 듯한 극도의 공포를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5층에 있는 15곳의 취조실(고문실) 역시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지그재그로 만들어졌다. 5층의 창문 또한 나머지 층과 다르게 좁게 만들어졌다. 자살 방지 목적이었다. 취조실 문을 열어 놓아도 다른 방에서 고문받는 또 다른 동료와 눈빛조차 나눌 수 없도록 절묘히 만들어졌다. 또한 15개 모두 똑같은 고문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방들이지만 크기와 구조, 색깔을 각기 달리했다. 예술가로서 김수근은 개성 없음과 단조로움은 용납할 수 없었으리라. 그 실용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무수히 많은 ‘무고한 간첩’들이 만들어졌고, 누군가는 주검으로 실려 나가 의문사로 처리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김수근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나기 한 해 전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속죄의 기회도, 변명의 시간도 갖지 못했으니 영원한 논란의 대상으로만 남게 됐다. 공포와 불안을 극대화하도록 만들어진 공간. 그곳에서 많은 이들은 세상에 신이 없음을 원망하며 비명을 내질렀고, 살이 찢기고 뼈가 비틀리며 피범벅이 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마저 포기한 채 짐승처럼 바닥을 기어야 했다. ●2022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정식 개관 유동우(71)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40년이 흐른 지금 유씨는 이곳의 ‘보안관리소장’이다. 유 소장의 설명을 들으며 공간을 둘러봤다. 2018년 12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경찰청으로부터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와 건물을 넘겨받았고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민주인권기념관은 2022년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그냥 직함이 그렇고, 그냥 문지기입니다. 백범 선생이 독립된 정부의 문지기를 하고 싶다 하셨잖아요? 저는 한국 민주주의를 기념하는 공간의 문지기가 됐으니 백범 선생의 꿈을 대신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네요.” 그는 1980년대 노동자 기록문학의 고전인 ‘어느 돌멩이의 외침’의 작가다. 노동운동, 학생운동 하는 이들의 필독서였고, 금서 목록에 들어 있었다. 또한 그는 1980년대 한국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의 핵심 활동가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노동 현장의 밑바닥을 전전하며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온몸으로 접하고 스스로 노동자로서 정체성을 깨쳤다. 이른바 ‘학출’(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의 도움 없이 홀로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련 법을 공부했다. 이어 인천의 삼원섬유에서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당연히 해고됐고 구속됐다. 1980년 5월 결성된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의 핵심 지도부인 중앙위원으로서 전국을 돌며 노동자를 교육하고 조직화시켰다. 그는 1981년 8월 예비군 훈련을 받다 남영동으로 끌려왔다. 전두환 신군부는 전민노련과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 등 처음 전국적으로 체계를 갖추고 진행된 노학연대 조직에 용공을 덮어 씌워 와해하고자 했다. 이른바 ‘학림사건’이다. 유 소장은 자신이 끌려왔던 5층 10호실로 데리고 들어가 39년 전 처참했던 기억을 생생히, 하지만 덤덤히 떠올렸다. “벽과 천장 모두 짙은 붉은색으로 칠해진 방이었는데 팬티만 남기고 옷을 다 벗기더라고요. 그리고 풍채 좋고 잘생긴 사람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너 공산주의자지?’라고 묻고 ‘아니다’라고 했더니 다시 ‘그럼 사회주의자야?’라고 묻더라고요. 역시 ‘아니다’라고 하자마자 주먹과 발이 마구 날아왔습니다.” 조사관들은 그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한다. 유 소장은 한참 뒤에야 그가 누군지 알게 됐다. 일제 고등계 형사로 ‘고문왕’이었던 노덕술의 부하였으며,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상사였고, 훗날 김근태 고문, 박종철 고문치사까지 모두 깊숙이 개입한 박처원 전 치안감이었다. 그때부터 유 소장에게 시작된 집단구타, 물고문 등은 꼬박 37일 동안 이어졌다. 광주의 피 위에서 집권한 신군부에게는 ‘용공 반국가단체 사건’이 필요했다. 갈비뼈 세 대와 치아 네 개가 부러졌다.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온통 피멍이 들고 퉁퉁 부었다. 경찰병원 응급실로 세 번이나 이송돼야 할 정도였다. 유 소장은 “자살하기 위해 창에 머리를 밀어넣어 봤지만 15㎝쯤 되는 좁은 창폭으로 몸이 들어가지 않았다”면서 “욕조 옆 콘크리트에 머리를 두어 차례 찍어 피가 줄줄 흘렀지만 죽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두꺼운 철문 밑을 가리키며 “빨갱이가 되길 원하면 빨갱이가 돼야 했고, 국가 전복 음모를 원하면 그렇게 돼야만 이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아니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용공 조작을 시인하면 무조건 사형당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아내와 당시 갓 한 돌 지난 딸,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며 굴복하지 않았죠. 저들의 의도대로 자백하는 건 동료들에게도 또한 못할 짓이라 판단했죠. 물론 끝내는 항복했지만요.” 고문 후유증은 컸다. 전민노련 사건 구속 이후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노동계 상임공동대표로 참여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지만, 87년 13대 대선 때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구로구청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다. 오랜 시간에 걸쳐 몸과 가슴속에 깊숙하게 새겨진 폭력의 트라우마는 곪고 곪아 결국 터지고 말았다. “집에 혼자 있으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일이 많아졌고, 자꾸 총 들고 누가 잡으러 올 것 같은 두려움이 들어 집을 나가야만 했습니다. 노숙도 하고, 구걸도 하다 뒤늦게 연락받은 가족들이 찾아와서 데려가는 생활이 10년 가까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2012년 재심 전민노련사건 무죄 판결 국가가 개인에 남긴 폭력은 깊고 뚜렷했다.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소장 이화영)의 도움을 받아 집단심리상담을 받는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좀더 정확히 깨달았다. 허리, 머리, 다리 등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국가폭력의 흔적에 대한 치료는 물론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 공포의 정체 또한 분명히 알게 됐다. 2012년 재심을 통해 전민노련 사건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힘겨웠지만 고문 후유증 또한 극복해 냈다. 자신의 책 제목처럼 단단한 돌멩이처럼 옛 노동운동가로서의 정연한 논리와 기억력 또한 완전히 복원됐다. 당시 정치 조직 사이 운동 방향을 둘러싼 갈등 및 이론 논쟁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의 40여년 전 책이 이달 초 다시 복간됐다. 많이 팔릴 것 같으냐는 물음에 그는 “한 글자도 고치지 않은 채 다시 책을 냈는데,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부끄럽기만 하다. 누가 보겠느냐”고 짐짓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 이후 활동을 통해 직접 겪고 느꼈던 부분을 다시 책으로 써내면 어떻겠냐고 묻자 이번에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저야 지금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지만, 당시 민주화운동 내부에서 있었던 미세하거나 분명한 차이가 지금도 현실 정치 등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민주주의가 한 걸음이나마 진전하도록 하기 위해 조금씩 정리하고 있습니다.” 성직자가 되고 싶었지만, 민주화운동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복판을 살아온 유 소장의 ‘또 다른 외침’이 기대된다. youngtan@seoul.co.kr
  • 본지 이근아 기자 자살예방 우수보도상

    본지 이근아 기자 자살예방 우수보도상

    서울신문 이근아 기자가 2020년 2분기 자살예방 우수보도상을 수상했다. 이 기자는 ‘일가족 동반 자살? 엄연한 자녀 살해’(3월 2일자 16면) 보도를 통해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자식을 살해하는 사건은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가장 극단적인 아동학대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회 복지 차원에서 자살 예방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와 한국기자협회는 2011년부터 자살예방에 기여한 언론보도를 선별해 분기별로 수여하고 있다. 시상식은 28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
  • 갑질 당한 경비원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갑질 당한 경비원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제도적 보호 못 받아’ 판단에 극단 선택 전문가들 “가해자 처벌 대폭 강화해야”주차 관리를 위해 아파트 입주민의 차량을 밀었다는 이유로 폭언·폭행에 시달리다가 지난 10일 목숨을 끊은 경비원 최희석씨는 딸들을 매우 사랑하는 가정적인 아빠였다. 그가 남긴 마지막 봉투에서는 현금 30만원과 딸의 이름, ‘사랑해’라는 글귀가 발견됐다. 화목했던 평범한 가장, 그는 왜 극단적 선택을 한 걸까. ‘갑’ 위협 반복→자존감 손상→공포·불안감→만성무력감→개인 행복·주관적 삶 포기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갑질 행위를 ‘인격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는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살 행위는 여러 사건이 누적돼 발생하는데 최씨의 경우는 갑질을 당한 것이 ‘방아쇠’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개 갑질에 취약한 사람들은 현실에 순응적이며 참는 성향을 많이 띠는데 이를 악용한 갑질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인격 말살 행위이자 준인격적 살인에 해당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갑질 행위는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 중 두 단계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최씨는 매슬로 단계 중 존경받고 싶은 욕구와 사랑(소속감)받고 싶은 욕구에 큰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연관된 부분이라 견디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 왔던 최씨의 경우 인격적 착취와 무시를 당하면서 신체적·심리적 고통이 매우 컸을 것으로 보인다”며 “갑의 위협이 반복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과 공포감, 가장으로서 힘이 없고 (역고소 등) 되레 피해를 줄 것이라는 판단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무엇보다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판단이 최씨를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국민 10명 중 9명은 ‘갑질 피해 경험’갑질 제도적 해결 불신, ‘언론에 폭로’ 선호 끝없는 ‘갑질 문화’, 개인·사회 모두 망가뜨려“갑질 피해 누적될수록 법·사회 신뢰도 떨어져” 실제 각종 연구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갑질로부터 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렇다 보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언론에 기대 ‘폭로’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정한율 한국리서치 전문위원과 조계원 고려대 교수의 ‘갑질 문화에 대한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2018년 한국 성인 10명 중 9명이 갑질을 경험했고 ‘사법 조치’ 등 제도적 해결보다 ‘피해자 규합 집단행동’, ‘SNS-언론에 폭로’가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가해자에 대한 ‘망신 주기’는 가능하나 여론이 수그러들면 다시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끝없는 ‘갑질 피해’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컸다. 개인에게는 상대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자존감을 손상시키고 수동성을 강화해 행복하고 주관적인 삶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고 봤다. 자신이 당한 모욕을 더 약자에게 되갚는 ‘갑질의 악순환’도 나타났다. 갑질 피해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법의 공정성과 사회에 대한 신뢰도도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 교수는 “갑질 문화는 피해자 개인에 그치는 게 아닌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 약화 등 한국 정치사회 시스템의 위기로 전환된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인격 살인’인 갑질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갑질 관련 중재 제도나 무료 상담실 등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동우 교수는 “갑질에 대한 법적 처벌을 강화하는 반면 갑질 가해자는 자기애적 경계성 장애를 가진 경우들이 많고 공격성이 높아 치료 명령이 필요하다”면서 “갑질 피해자의 경우 자기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방어 훈련과 심리적 치료로 면역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곽 교수는 “해외에는 커뮤니티내 상담시설이 복지시설처럼 잘 되어 있다”면서 “갑질을 당했을 때 상담시설을 떠올려 찾아오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 홈페이지에는 공공분야 ‘갑질피해 신고센터’가 운영 중이며 정부민원안내 ‘국민콜110’ 홈페이지에서도 ‘갑질피해상담’ 코너가 마련돼 있다. 민간분야의 갑질 피해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 제보와 상담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강주리 기자의 K파일은 강주리 기자의 이니셜 ‘K’와 대한민국의 ‘K’에서 따온 것으로 국내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취재파일입니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사까지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온라인 서울신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jurik@seoul.co.kr
  • 의식불명 엄마 곁에 6살, 10살 남매 숨진 채 발견

    의식불명 엄마 곁에 6살, 10살 남매 숨진 채 발견

    신변 비관해 자녀 살해 뒤 극단적 선택 시도 추정서울 은평구의 한 빌라에서 남매 관계인 6살 여아와 10살 남아가 방 안에 나란히 누워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 곁에는 어머니 A(44)씨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상태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28일 오후 2시 30분쯤 40대 여성 A씨와 자녀인 2명의 어린이가 숨진 채 발견돼 지인과 가족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소방관과 경찰관이 출동할 당시 방 안에는 A씨가 스스로 불을 피워 연기가 가득했고, A씨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A4 용지 1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에 별다른 침입 흔적이 없고 A씨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의 내용 등을 토대로 A씨가 신변을 비관해 자녀들을 살해한 뒤 스스로 극단적 시도를 했을 개연성에 비중을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갑질 당한 경비원, 왜 죽음 선택했을까 [강주리 기자의 K파일]

    갑질 당한 경비원, 왜 죽음 선택했을까 [강주리 기자의 K파일]

    끝없는 ‘갑질 문화’, 개인·사회 모두 망가뜨려아파트 입주민의 폭행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은 경비원 고(故) 최희석씨는 딸들을 매우 사랑한 가정적인 아빠였다. 그가 남긴 마지막 봉투에서는 현금 30만원과 딸의 이름, ‘사랑해’라는 글귀가 발견됐다. 최씨는 지난달 21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주차 관리를 위해 입주민의 차를 밀었다는 이유로 해당 주민에게서 폭언과 폭행해 시달리다 지난 10일 투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화목했던 평범한 가장, 그는 왜 극단적 선택을 한 걸까. “갑질, 인간 존엄성 짓밟는 ‘인격 살인’” “매슬로 인간욕구 5단계 중 존경·소속감 두 단계에 큰 타격…버티기 힘들었을 것”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갑질 행위에 대해 ‘인격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는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살 행위는 여러 사건이 누적돼 발생하는데 최씨의 경우는 갑질을 당한 것이 ‘방아쇠’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개 갑질에 취약한 사람들은 수용적이고 현실에 순응적이며 반박보다 참는 성향을 많이 띠는데 이를 악용한 갑질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인격 말살 행위이자 준인격적 살인에 해당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갑질 행위는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의 인간의 욕구 5단계 중 두 단계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최씨는 매슬로 단계 중 존경 받고 싶은 욕구와 사랑(소속감) 받고 싶은 요구에 큰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연관이 된 부분이라 정상적인 생활을 해왔더라도 견디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슬로의 인간의 욕구는 1단계 생리적·생명유지 욕구, 2단계 안전의 욕구, 3단계 사회적 및 소속감(애정)의 욕구, 4단계 존중 받고 싶은 욕구, 5단계 자아실현 및 성취의 욕구로 이뤄진다. 사회적 분위기가 폭력을 지양하는 사회로 바뀌면서 최씨가 받았을 상대적 타격이 더 컸을 가능성도 언급됐다.‘갑’ 위협 반복→자존감 손상→공포·불안감→만성무력감→개인 행복·주관적 삶 포기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왔던 최씨의 경우 개인의 인격적 착취와 무시를 당하면서 신체적·심리적 고통이 매우 컸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갑의 위협이 반복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과 공포감, 가장으로서 지켜나갈 힘이 없고 (역고소 등) 되레 피해를 줄 것이라는 판단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씨는 입주민 A씨의 괴롭힘이 계속되자 지난달 경찰에 고소했지만 A씨로부터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맞고소를 당했다. 곽 교수는 무엇보다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판단이 최씨를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갑의 위치에 있는 입주민에 대항할 수 없었던 최씨는 목소리를 내는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한 듯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최씨는 생전에 남긴 유서에서 “A씨에게 맞으면서 약을 먹어가며 버텼다”면서 “(경비원)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고 산에 가서 100대 맞자고 하더라. (A씨가) 길에서 보면 죽여버린다고 했다”며 두려움과 억울함을 호소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 27일 상해와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된 입주민 A씨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국민 10명 중 9명은 ‘갑질 피해 경험’갑질 제도적 해결 불신, ‘언론에 폭로’ 선호 “갑질도 ‘모방학습’…당하면 더 약자에 되풀이”“갑질 피해 누적될수록 법·사회 신뢰도 떨어져” 실제 각종 연구에서는 한국사회에서 갑질로부터 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갑질을 억제하고 해결할 사회 규범이나 법·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소셜미디어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언론에 기대어 ‘폭로’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들이 빈번해지는 추세다. 정한율 한국리서치 전문위원과 조계원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교수의 ‘갑질 문화에 대한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2018년 한국 성인 10명 중 9명이 갑질을 경험했고 ‘사법 조치’·‘공공기관 상담·청원’ 등 제도적 해결보다 ‘피해자 규합 집단행동’, ‘SNS-언론에 폭로’가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가해자에 대한 ‘망신주기’는 가능하나 실제적 권력 균형을 가져오기 어렵고 여론이 수그러들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갑질, 개인·사회 모두에 부정적 영향 끝없는 ‘갑질 피해’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크다고 봤다. 개인에게는 상대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자존감을 손상시키고 수동성을 강화해 개인의 행복하고 주관적인 삶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당한 모욕을 더 약자에게 되갚는 ‘갑질의 악순환’도 나타난다. 손상된 자존심을 보상 받기 위해 더 취약한 ‘을’에게 갑질로 되갚아 주는 것이다. 곽금주 교수는 “어린 시절 가정폭력이 ‘학습’ 행위를 낳듯이 갑질도 당하면 ‘모방 학습’이 기계적으로 나타나기 쉽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도 갑질 피해를 많이 입은 사람일수록 법의 공정성과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 교수는 “갑질에 순응·굴복하는 경험이 누적될수록 사회의 신뢰자본이 뚜렷하게 약화된다”면서 “이는 갑질 문화가 피해자 개인에 그치는 게 아닌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 약화 등 한국의 정치사회 시스템의 위기로 전환된다”고 우려했다. 문화심리학자 한민 우송대 교수는 이러한 갑질이 지위의 고저, 신분의 귀천 등 서열에 따른 특권과 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오랜 한국사회의 권위주의적 문화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갑질 처벌 대폭 강화해야…치료명령 필요”“무료 상담실 활성화 등 접근성 높여야” 전문가들은 ‘인격 살인’인 갑질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만성적인 악질 가해자의 경우 치료 명령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갑질에 대비해 중재 제도를 만들고 무료 상담실 등을 활성화해 피해를 당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를 충분히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동우 교수는 “갑질에 대한 법적 처벌을 강화하는 반면 갑질 가해자는 자기애적 경계성 장애를 가진 경우들이 많고 공격성이 높아 치료 명령이 필요하다”면서 “갑질 피해자의 경우 자기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방어 훈련과 심리적 치료로 면역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곽 교수는 “해외에는 커뮤니티내 상담시설이 복지시설처럼 잘 되어 있다”면서 “갑질을 당했을 때 상담시설을 떠올려 찾아오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 홈페이지에는 공공분야 ‘갑질피해 신고센터’가 운영 중이며 정부민원안내 ‘국민콜110’ 홈페이지에서도 ‘갑질피해상담’ 코너가 마련돼 있다. 민간분야의 갑질 피해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 제보와 상담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강주리 기자의 K파일은 강주리 기자의 이니셜 ‘K’와 대한민국의 ‘K’에서 따온 것으로 국내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취재파일입니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사까지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온라인 서울신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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