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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두율칼럼] 사회자본의 미래

    [송두율칼럼] 사회자본의 미래

    한국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표출된 때가 대략 15년 전쯤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의 영향력은 그동안 대단히 커졌다. 급속한 사회변화에 따라 생긴 환경, 양성평등, 평화, 교육, 정보 등과 같은 다양한 문제는 당연히 새로운 문제의식과 이에 근거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운동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일어난 ‘민중’운동의 자리에 시민사회운동이 들어선 배경에는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세계사적 변화도 한몫을 했다. 그러나 최근 국가보안법의 철폐문제를 둘러싸고 표출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은 시민사회운동도 ‘남북갈등’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족쇄로부터 여전히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남북갈등’은 빈부, 지역, 세대간의 ‘남남갈등’과도 서로 뒤엉켜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기까지 한다. 유럽과 미국의 사회학계는 시민사회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90년대에 사회적 갈등을 억제시키고 사회성원간의 연대성을 강화시키는 규범이나 사회적 연결망, 개인과 집단 사이의 상호신뢰성과 같은 무형의 자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을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회자본은 계산될 수 있는 경제적 자본과는 달리 깨끗한 공기처럼 좁은 의미의 공공의 자산으로서 사회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보았다. 이러한 추세에 발 맞추어 ‘세계은행’도 사회자본의 축적을 후진사회개발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평가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강한 스웨덴, 프랑스, 독일과 같은 서유럽형 시민사회, 이탈리아나 스페인처럼 시민사회와 가족·교회와 같은 전통적인 사회관계가 공존하고 있는 남유럽형 사회, 교회나 클럽, 자치단체의 공익활동이 활발한 미국의 사회자본 분석과 함께 일본이나 한국과 같이 혈연, 지연, 학연에 기초한 연고집단의 뿌리가 깊은 사회의 사회자본과의 비교연구도 활발해졌다. 연구결과는 대체로 서유럽형이 개인보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더 강하며 사회복지정책으로 인해서 사회자본이 감소되었다고 보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하여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로 빚어진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해 미국의 사회자본은 그동안 상당히 손실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는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아직 낮으며 가족과 친지중심의 비공식적인 연결망에 오히려 국가나 정당, 교회도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사회적 유대와 연대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는 한탄과 자성의 소리가 여러 곳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연대’라는 단어를 조직이름의 앞이 아니면 뒤에 붙인 사회운동단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이 양질의 사회자본을 확충할 수 있다고 보는 데 대해 물론 비판적 시각도 있다. 이른바 ‘시민 없는 시민운동’에 대한 지적이 바로 그러한 시각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시민사회는 지난 시기의 압축적 성장이 남긴 사회적 문제와 세계화와 정보화의 충격이 끊임없이 몰고 오는 새로운 사회문제가 서로 얽혀 있는 복잡한 구조 속에 갇혀있다. 따라서 과거처럼 혈연, 지연, 학연 등에 의거한 폐쇄적인 연고집단의 ‘신뢰성’이나 노동자나 농민조직의 ‘집단성’에만 기대어 사회자본을 확충하는 것은 힘들게 되었다. 또 뿌리깊은 정치불신과 신앙생활의 굴절된 세속화 때문에 정당이나 종교적 자성(自省)에 의지한 사회적 연대에 거는 기대도 어렵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끼리끼리의 닫힘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림으로 다가서는 건강한 시민사회운동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남남갈등’과 ‘남북갈등’이 뒤섞인 한국적 상황을 타개하는 데 있어서 열려 있으면서도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은 사회자본의 축적에 있어서 앞으로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⑤-금융 계열사 CEO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⑤-금융 계열사 CEO

    지난 2002년 5월24∼25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그룹 연수원 ‘창조관’에 삼성의 금융사 7인의 ‘수장’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속속 모여 들었다. 직전 전자사장단 회의에서 “현재 실적에 자만하지 말고 미래를 대비하자.”고 주문했던 이건희 회장이 무슨 말을 던질지 모르는 상황. 오후 3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캐피탈, 삼성증권, 삼성투신운용 등 업종별로 중장기 전략을 발표한 뒤 새벽 1시까지 토론이 이어졌다. 회의를 함께 한 이 회장은 “문제가 있는 경영방식은 즉각 고쳐 금융사들도 삼성다운 ‘일류경영’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해외 선진 금융사들의 본격적인 진출에 대비해 핵심 금융전문인력을 확보하고 벤치마킹해 상품·서비스 개발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토종 대 외국자본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미리 대비한 것이다. 이 회장은 2001년 회의때도 “사고가 난 뒤 보험료율만 올리지 말고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연구개발(R&D)에 노력하라.”고 주문해 삼성화재가 최초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를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이 전자계열에 이어 금융사 사장들과 전략회의를 가진 데서 나타나듯 금융업은 전자와 함께 삼성의 양대축이다. 삼성은 지난 세월 현대·LG 등과 늘 수위를 다퉈왔지만 금융만큼은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현재 자산기준으로 삼성생명이 90조원을 넘어섰고 삼성화재 14조원, 삼성증권 6조원에 육박한다. 웬만한 시중은행과 맞먹는 수준이다. ●자산 90조, 삼성의 ‘젖줄’을 일군 사람들 삼성생명은 57년 4월 강의수, 전중윤, 윤삼영, 강일성, 김용수, 강화두 등 7인의 경제인이 57년 공동으로 세운 동방생명이 전신이다. 초대 사장과 회장을 지낸 고 강의수 회장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장인이다. 당시 동방생명 마산지부장이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었다. 동방생명은 설립 2년 만에 국내 생보업계 1위로 뛰어오른 데 이어 62년에는 동남증권(현 하나증권) 설립, 동양화재 주식 매입,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인수 등 사세를 넓혀 나갔다. 하지만 63년 1월 강 회장이 운명하자 곧바로 어려움에 빠졌고 그해 7월 삼성의 일환이 된다. 삼성생명은 삼성의 지배구조를 지탱하는 ‘대들보’로서 그만큼 부담도 안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자동차 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내놓으면서 해외 및 국내여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때 일부 해외언론은 이 회장을 가리켜 ‘책임을 질 줄 아는 유일한 경영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재용 상무가 최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가 갖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 19.34%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에버랜드는 지난해 말 삼성생명 지분 6%를 제일은행에 5년간 신탁하면서 금융지주회사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데 당국의 결론이 주목된다. 참여연대가 지난해 4월 이수빈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배임혐의로 고발한 것도 걸려 있다.99년 회사가 손해를 봐 가면서 우리은행과 주식을 맞교환해 지배주주에게 ‘이득’을 안겨줬다는 주장과 삼성자동차 ‘우회지원 대출’ 등이 고발 사유였다. 이같은 경영외적인 비중을 제외하고도 삼성생명은 국내 생명보험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는 선두업체로 올해 자산 100조원 돌파가 예상되는 등 화려한 실적을 자랑하고 있다.2003년 미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가운데 생보사 부문 19위에 랭크됐다.2010년까지 자산 200조원, 매출액 47조원을 달성하여 ‘글로벌 종합금융서비스회사’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과거 삼성의 계열사 가운데 삼성생명 돈을 빌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삼성생명빌딩과 중앙일보빌딩, 종로타워, 강남의 하이닉스빌딩 등 수많은 빌딩이 삼성생명 소유다.1116개 지점의 영업용 부동산의 장부가만 3조 5158억원에 달한다. ●생명의 산 증인, 이수빈과 배정충 삼성생명의 경영은 99년 12월부터 배정충(60) 사장이 책임지고 있다. 전북 전주생인 배 사장은 전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69년 삼성생명(당시 동방생명)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삼성생명의 자산은 30억원(현재 90조원)에 불과했다. 생명보험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던 70∼80년대를 영업 현장에서 보낸 배 사장은 삼성화재 대표를 거쳐 99년 ‘친정’의 대표이사로 금의환향했다.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한달에 걸쳐 전국의 영업현장을 순회한 일일 정도로 현장을 우선시한다. 한번 본 숫자는 거의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수리’에 밝다.4년 만에 삼성생명에 돌아왔을때 사장실에 불려 간 간부들이 업무와 관련된 통계숫자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자 일일이 수정해주며 ‘불호령’을 내린 일화는 유명하다. 반면 아무리 바빠도 회사 임직원이나 거래처, 지인들의 상가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할 정도로 인간적인 면도 강하다는 평이다. 이수빈 회장도 삼성생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65년 삼성그룹 공채 6기로 입사,13년 만에 제일모직 대표이사로 초고속 승진한 그는 25년간 제일합섬, 제일제당, 삼성항공, 삼성생명, 삼성증권의 CEO와 삼성 금융그룹 회장을 맡아 ‘직업이 사장’으로 불린다. 보험 경영에 손익과 효율을 중시하는 경영 방식을 접목했고 생명보험 경영의 핵심인 영업소장과 설계사의 위상 강화를 통해 업계 1위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생명은 그 역사만큼이나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2대 사장을 지낸 이호씨는 20대,31대 내무부장관과 8대,20대 법무부장관을 역임했다.63년 삼성으로 넘어 오면서 새로 구성된 경영진에는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3남이자 이병철 회장의 둘째 사위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시아버지인 정상희씨는 71∼78년 회장을 지냈고 김만제 전 포철회장도 경제부총리를 마치고 91∼92년 회장을 맡았다. ●사돈과 사위가 맹활약한 삼성화재 삼성화재는 1951년 3월 경남 함안 출신의 구진현씨가 세운 재단법인 ‘훈세사(勳世社)’에서 출발한 안보화재와 한국일보 창업주인 고 장기영 회장이 초대사장을 지낸 안국화재가 전신이다. 안보화재와 안국화재는 63년 합병으로 한 회사로 태어났고 93년 말 삼성화재로 이름을 바꿨다. 삼성화재의 사사에는 유난히 ‘인척’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맹희씨의 장인인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는 삼성에 인수된 직후인 61년 안국화재 사장을 맡은 뒤 운명(76년)하기까지 사장을 지냈다.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자 손영기씨의 아들인 손경식 CJ 회장은 93년 7월 당시 제일제당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경영을 맡았다. 이병철 회장의 4녀 덕희씨의 남편인 이종기씨와 자리를 맞바꾼 것이다. 이종기씨 역시 2000년 3월 경영에서 물러날 때까지 삼성화재를 국내 대표 손보회사로 키워놨다. 안국화재 지분이 많던 이맹희씨도 65∼67년 임원을 지냈고 부인 손복남씨도 85∼93년 상무로 일했다. 삼성화재 역시 긴 역사만큼이나 거물급 인사들을 많이 배출했다. 동부화재 김순환 사장은 2001년까지 부사장을 지냈고 조용철 CJ홈쇼핑 사장도 99년까지 삼성화재에서 일했다. 박해춘 LG카드 사장, 박종익 전 손보협회 회장도 삼성화재 출신이다. ●신경영으로 이끈 이학수와 이수창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이 실질적으로 삼성화재 대표를 지낸 것은 94년 12월∼96년 8월로 1년 8개월밖에 되지 않지만 삼성화재의 ‘경영체질’을 혁신적으로 바꿔 현재의 고도수익을 낳는 경영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본부장은 94년 초 제일제당 대표로 잠시 나갔다 돌아오고 나서 바로 삼성화재 CEO로 부임하자마자 17%였던 시장점유율을 30%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삼성화재 임원들은 ‘불가능한 목표’라며 주저했지만 “삼성이 명색이 ‘영남기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구에서 4위, 부산에선 3위, 경북은 7위라는게 말이나 되느냐? 전부 1위로 끌어 올리자.”는 이 본부장의 격려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94년 17.6%였던 삼성화재의 점유율은 96년 23.6%로 급등,2,3위와의 격차를 10%이상 벌렸고 2001년 대망의 ‘30%’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본부장은 또 자동차보험의 공격적인 확대, 설계사 수당 100% 인상, 품질보증제 시행 등 ‘신경영’을 도입하며 삼성생명에 비해 뒤처져 있던 삼성화재의 위상과 직원들의 사기를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구단 창설, 삼성화재배 세계바둑대회 등을 통해 회사 이미지 개선에도 기여했다. 이 본부장, 배정충 현 삼성생명 사장의 뒤를 이어 99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수창(56) 사장의 경영성적도 눈부시다.99년 26.9%였던 점유율을 지난해 32%로 끌어 올리며 2,3위업체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2003년,2004년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로부터 국내 민간기업 중 최고등급인 A+를 받았다. 매월 마지막주에는 영업점과 보상 현장을 깜짝 방문하는 등 ‘현장경영’에 철저한 이 사장은 2002년 업계 최초로 ‘삼성애니카’라는 브랜드 경영을 도입했고 2001년 진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은행의 손해보험업 진출이 예정된 올해는 향후 10년간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한 시기”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경북 예천의 대창고를 졸업한 이 사장은 독특한 전공(서울대 수의학과)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결국 경영인으로 성공했다. ●아직 꺼지지 않은 카드의 ‘불씨’ 삼성의 금융사업 가운데 가장 고전하고 있는 분야는 신용카드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1조 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한데 이어 올해도 1조 2000억원의 증자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46%), 삼성생명(34.5%), 삼성전기(4.7%), 삼성물산(3.1%) 등 삼성 계열사들은 지분만큼 증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삼성카드의 적자로 인한 지분법 평가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이미 2002년 “신용카드가 신용사회 저변확대에 기여했지만 과열 경쟁으로 인해 사회·경제적인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지만 카드사태는 현실화됐다. 유석렬(55) 사장은 신용카드 부실이 불거진 2003년 대표이사를 맡아 그동안 삼성캐피털과의 합병, 유상증자, 해외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등으로 숨가쁜 시간을 보냈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거쳐 74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유 사장은 입사직후 회사의 권유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공학과에 진학한 ‘드문’ 케이스다. 삼성전자 반도체 미국법인 근무를 거쳐 91년부터는 비서실 재무팀에서 일했다. 미국법인 관리부장 시절 동료가 최광해 현 구조본 재무팀장이다.97년 삼성캐피털 대표이사로 CEO 생활을 시작한 유 사장은 삼성증권 사장, 삼성생명 자산운용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투자은행’으로 변신중인 삼성증권 92년 국제증권을 인수하면서 출범한 삼성증권은 98년 수익증권 판매고 최단기간내 10조원 돌파 등 짧은기간에 업계 선두권으로 도약했다. 일찍부터 ‘약정경쟁’을 지양하고 자산관리형 영업으로 변신을 시도, 현재 투신수탁고가 20조원에 달해 자산관리부문에서 은행 등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조흥은행, 국민은행 지분 매각 작업에 공동주간사로 참여하는 등 외국계 대형 증권사들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ing) 부문에서도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토종증권사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영입된 황영기 전 사장에 이어 지난해 5월 삼성증권 사장에 취임한 배호원(54) 사장은 삼성그룹 내에서도 대표적인 자산운용 및 재무 전문가로 꼽힌다. 배 사장은 경남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77년 제일합섬 경리과를 시작으로 비서실 재무팀 부장, 삼성생명 자산운용본부장, 삼성투신운용 사장, 삼성생명 자산·법인부문 총괄 사장 등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금융전문가답게 깔끔한 이미지지만 직원들과 ‘해장국 미팅’을 즐기는 등 소탈한 모습도 갖고 있다. ●벤처투자, 투신운용, 선물 등으로 확장되는 금융사업 삼성은 삼성물산의 벤처사업팀을 확대,99년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육성하는 삼성벤처투자를 설립했다.2003년 대표이사로 부임한 김상기(55) 사장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 삼성생명, 삼성증권에서 주로 일했다. 지난해 말 현재 수익증권 22조 2000억원, 뮤추얼펀드 1000억원, 투자자문 38조 1000억원 등 60조가 넘는 자산을 관리하고 있는 삼성투자신탁운용은 2003년부터 삼성화재 부사장을 역임한 황태선(57) 사장이 맡고 있다. 경북 상주생으로 김천 성의종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선물 관련 제품의 판매·컨설팅, 정보 수집 등을 담당하는 삼성선물은 지난해 3월부터 정주영(57) 사장이 맡고 있다. 정 사장 역시 황 사장의 고향인 경북 상주 출신으로 상주고와 서울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생명을 거쳐 삼성증권 리테일 사업본부장을 역임했다. ukelvin@seoul.co.kr ■ 삼성의 금융비화 삼성은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제일모직, 제일제당, 삼성전자 등 거의 모든 회사를 손수 일궜지만 오늘날 100조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금융사업은 대부분 인수한 것이다. 묘하게도 인수한 금융사는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삼성이 직접 설립한 금융관계사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지난해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추대되자 재계에서는 곧바로 삼성의 우리은행 ‘인수설’이 불거져 나왔다. 우리은행이 삼성자동차의 주 채권은행인데 삼성에서 잘 나가던 황 사장이 굳이 자리를 옮길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삼성의 부인이 아니더라도 삼성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한때 시중은행의 대부분을 소유했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제1금융권 진입을 노렸던 삼성인지라 의혹의 눈길은 쉽게 거둬지지 않는다. 고 이병철 회장은 50년대 중반 이승만 정부가 추진한 시중은행 주식 공매에 참가해 12억 9000만환에 흥업은행(구 한일은행) 주식 83%를 소유하게 됐다. 이어 조흥은행주 55%를 매입했다. 흥업은행 신탁부에서 상업은행주 33%를 갖고 있었으므로 삼성은 당시 4개 시중은행 가운데 3개 은행을 직간접적으로 지배했던 것이다. 황영기 회장이 맡고 있는 우리은행이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친 것이므로 삼성과 우리은행의 인연이 질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5·16 쿠데타로 삼성이 소유하고 있던 은행 지분은 정부 소유로 돌아갔다. 삼성으로서는 한국비료(한비)와 대구대·은행을 박정희 정권에 뺏긴 셈이다. 하지만 삼성과 금융사업의 인연은 58년 안국화재 인수로 재개된 뒤 63년 동방생명 인수로 본격화된다. 금융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고 이병철 회장은 63년 봄 동방생명 임원이 찾아와 회사를 인수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회고했다.5월22일 당시 동방생명 임원 대부분의 주식이 먼저 삼성으로 넘어왔고 강의수 회장의 유족들도 7월16일 지분을 넘겼다. 강 회장의 유족이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부인 강지연 여사다. 삼성과 민노당의 ‘악연’도 역사가 긴 셈이다. 삼성은 92년 11월 배현규씨 등 국제증권 대주주로부터 영업권을 양도받아 삼성증권을 탄생시켰다.96년에는 국제선물(현 삼성선물)을,98년에는 동양투신(현 삼성투신운용)을 인수했다. 반면 88년 설립한 삼성카드는 현재 그룹의 ‘뜨거운 감자’로 전락했고 95년 설립한 삼성캐피탈도 부실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삼성카드와 합병해야 했다.99년 설립한 삼성벤처투자도 ‘벤처 붐’이 사그라지면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ukelvin@seoul.co.kr ■ 생명·화재 역대 대표이사 ●삼성생명 강의수(57.4∼62,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장인) 이 호(∼63, 전 내무부·법무부 장관) 조우동(∼69, 전 삼성중공업 회장) 이겸재(∼71) 원종훈(∼78) 고상겸(∼83) 배상욱(∼84, 전 체신부 장관) 박태원(∼85) 이수빈(∼91) 황학수(∼95, 전 삼성카드 부회장) 이수빈(∼99, 현 삼성사회봉사단장) 배정충(∼현재) ●삼성화재 손영기(∼76, 이맹희씨 장인) 손경식(∼93, 현 CJ회장) 이종기(∼2000, 이병철 회장 넷째 사위) 강경수(∼93) 홍종만(∼94, 전 삼성자동차·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 이중구(∼94, 현 삼성테크윈 사장) 이학수(94∼96, 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배정충(∼98, 현 삼성생명 사장) 이수창(∼현재)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좋은도시 만들기] (11)토지공개념제도

    [좋은도시 만들기] (11)토지공개념제도

    중앙정부가 행정수도를 이전한다고 발표했을 때 충청도 땅값이 다락같이 올랐다. 토지보유자들이 얻게 될 엄청난 불로소득은 그외 지역 주민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겨줬다. 정부가 기업도시 건설을 추진하자 기업이 얻을 막대한 토지개발이익의 환수 장치가 미흡하다며 시민단체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주요 원인으로 부동산 자산이 지목되어 왔다. 따라서 토지 문제 해결을 위해 본격적으로 토지공개념 제도가 재도입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 인/터/뷰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과거 정부의 국공유지 불하는 잘못된 것”이라며 “이제부터라도 국공유지 매각을 중단하고 국가가 땅을 사들여 공장이나 주택부지 등으로 싸게 임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도입된 종합부동산세는 토지공개념으로 가는 첫 걸음”이라며 “앞으로 토지가격을 서서히 떨어뜨리는 것이 바람직하며 참여정부는 분명히 부동산투기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부동산세 도입에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토지공개념의 재도입을 어떻게 보시는지. -1990년대 택지소유상한 등 토지공개념 법의 입법 과정에서 다소 문제가 있어 위헌 판정을 받았지만 올바른 정책이었다. 종부세는 이런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에 해당한다. 이 위원장은 경북대 교수 시절 미국의 사상가 ‘헨리 조지’의 책을 다른 학자들과 집필했다. 헨리 조지의 사상은 한국에도 적용가능한가. -헨리 조지는 토지란 자연의 선물이며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토지공유제를, 또 지대(地代)차익을 세금으로 전액 환수해야 한다며 토지가치세(land value tax)를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공유제는 어렵다. 이미 토지의 사유화가 너무 진전되어 있는 데다 땅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다만 땅값이 오르는 데 따른 지대는 불로소득으로 노동과 투자활동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우리도 지대조세제로 가는 정신은 옳다. 종부세는 충분치는 않지만 그런 방향으로 가는 조치 중의 하나다. 종부세가 충분치 않은 이유는. -당초 과세대상자가 10만명이었으나 5만∼6만명 선으로 줄었다. 앞으로 너무 낮은 수준인 부동산 보유세를 올리는 반면 거래세는 낮춰가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기업도시 조성의 경우 땅값 상승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공공 용도로 사용할 만한 국공유지가 너무 적다는 지적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국공유지 비중이 전국토의 20%미만이다. 이는 면적 기준이며 토지가치를 기준으로 하면 더 낮을 것이다. 미국은 50%, 스웨덴은 60∼70%선이며 싱가포르는 거의 대부분이다. 해방이후 정부가 줄기차게 국공유지를 불하한 것은 잘못됐다.▶앞으로 국공유지를 늘려야 하나. -국공유지 매각은 이제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늦었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지금부터라도 땅 매입을 늘려야 한다. 정부의 토지 매입 재원이 부족하지 않겠나. -땅값이 비싼 서울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이라도 사들여서 땅을 필요로 하는 기업의 공장이나 임대주택 부지용으로 싸게 빌려주고 토지임대료를 받아 다시 땅을 매입하면 된다. 시군구 자치단체들도 공유지를 늘리게 되면 기업유치 등에 유리할 것이다. 참여정부의 부동산억제정책으로 부동산값이 하락하는데. -부동산값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도 위험하지만 올라서는 안 된다. 공유지를 늘려가면서 보유세를 강화해서 토지 가격을 서서히 떨어뜨리는 게 바람직하다. 서서히 떨어지면 정부가 땅을 사기도 쉬워질 것이다. 부동산 값을 반드시 잡아야 할 이유는. -부동산차익은 최대의 불로소득이다. 천문학적인 불로소득이 굴러다니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자신의 머리를 쓰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돈을 벌 생각을 하는 것이야말로 시장경제체제이다.1988년 서울올림픽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근로정신이 해이해진 망국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땅값이 오르면 경제효율이 떨어지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며 시장경제를 좀먹는다. 부동산 신화는 깨져야 한다. 종부세나 토지공개념 도입을 놓고 좌파적이란 비난도 있었는데. -정반대다. 부동산 투기를 옹호하는 것이야말로 시장경제를 망치는 것이다.1990년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30명이 당시 러시아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서한은 헨리조지의 사상을 담고 있다. 민영화와 자본의 사유화 추진은 옳지만 토지까지 사유화해서는 안 되며 지대는 정부가 흡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들 경제학자들 가운데는 토빈, 솔로, 모딜리아니와 윌리엄 비크리 등 4명의 저명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도 있었다. 서구 자유경제에서는 토지공개념이 이미 제도로 구체화되어 있다. 이상일 논설위원 ■ 토지문제해결 다양한 시각들 서울시 양윤재 부시장은 “아파트 거주자들은 자기 땅 지분이 얼마인지 잘 알지 못하며 거의 관심이 없다.”고 지적하고 “토지에 대한 인식이 소유보다 사용위주로 바뀌는 한 사례”라고 말했다. 양부시장은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의 토지 보유를 늘려야 한다.”고 전제하고 “국가의 매입대상 토지 가운데 아파트 등 공동 주택 부지, 기업보유 토지 등을 제외하면 실제 매입 토지는 얼마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0년 정도만 꾸준히 사들이면 국가가 필요로 하는 땅은 모두 매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임종철 전 서울대 교수는 토지문제 해결을 위한 토지세 강화에 반대했다. 강화된 조세부담은 결국 수요자에 전가되며 토지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대토지수요자란 이유에서다. 임 교수는 토지 국유제에는 반대하며 토지공유제를 주장한다. 그는 “공유제에서 국민들은 토지 이용권만 갖지 매매와 형질변경은 불가능하다.”면서 “공유제에서는 토지사용이 공공목적에 위배될 경우 이용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토지공유화의 시행 방법으로 그는 토지보유세와 토지 임대료를 전부 사유지 매입에 투입하거나 아니면 일본 메이지 유신때처럼 지가증권(地價證券)발행을 통한 일시 매수를 들었다. ■ [기고]“토지개발권양도制 체계적 시행을” 토지는 인간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자연이 베풀어 준 것이란 점에서 인공물처럼 특정 주체가 독점적·배타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일반재화와는 달리 토지의 배타적 사용이 허용되는 경우라도 사용방식에 있어서는 공적인 제한이 따르고 있다. 토지소유 제도는 사유제와 공유제로 대별할 수 있다. 사유제는 사적 주체가 사용권, 처분권, 수익권, 개발권 등을 모두 갖는 형태이며 토지공유제는 정부가 이를 독점하는 경우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은 양 극단의 사유제 혹은 공유제만을 채택하기보다 두 제도를 혼합한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사유제의 보완으로 토지의 사용과 처분은 사적 주체에게 맡기되 토지가치만은 정부가 징수하는 방안, 그리고 공유제의 보완으로 토지의 처분권과 수익권은 정부가 가지되 토지사용은 사적 주체에게 맡기는 방안 등이 있다. 영국은 1940년대 후반 토지개발권을 공유화하여 지주는 토지사용권만 가질 뿐 개발권은 국가가 갖게 하는 ‘개발허가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개인의 토지소유권으로부터 개발권을 분리하여 공공에 귀속시키면, 개발로 인한 이익을 정부가 흡수할 뿐 아니라 지가 안정 및 투기를 예방·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국은 개발권을 분리하여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다른 장소로 이전하여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발권양도제도(TDR)’를 이미 1960년대부터 실시했다. 초기와 달리 최근에는 환경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보호, 난개발 방지, 저소득층 주거지역의 확보 등 다양한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난마처럼 얽힌 우리의 토지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첫째 사유제를 근간으로 하는 시장경제하에서는 국공유지비율이 낮은 경우 토지문제해결에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국공유지비율이 전 국토의 20%에 불과하다. 일본만 해도 30%에 이른다. 국공유지 비율을 높이는 거시적 접근이 요망된다. 둘째, 우리나라는 토지 거래세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반면 토지 보유세는 상대적으로 낮아 토지공급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거래세는 가볍고 보유세는 무거운 것이 옳은 방향이다. 셋째,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개발허가제도나 개발권양도제도 등을 보다 체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모든 토지의 데이터 베이스화한 토지종합정보망이 하루빨리 구축되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도 없이는 토지이용의 효율성과 형평성중 어느 한 가지도 달성하기 힘들 것이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③-삼성전자를 이끄는 CEO들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③-삼성전자를 이끄는 CEO들

    삼성전자의 지난 2004년 연간 매출은 57조 6324억원, 영업이익 12조 169억원, 순이익은 10조 7867억원으로(103억달러)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순수 제조업체로는 도요타에 이어 두번째다. 일본의 요미우리(讀賣)신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은 삼성전자의 실적을 경제면 머리기사와 사설 등으로 취급하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전자의 지난해 이익은 마쓰시타(松下)전기, 히타치(日立),NEC, 도시바(東芝), 후지쓰(富士通), 미쓰비시(三菱), 오키(沖)전기 등 일본 10대 메이커의 지난해 순이익 합계 5370억엔(약 5조 3700억원)의 2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이병철 회장,37년전 “전자사업하겠다” 삼성전자의 이같은 고속 성장은 69년 전자업계의 후발주자로 출발할 당시 ‘중복투자’ 등의 비난에 휘말렸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고 이병철 회장은 68년 사돈인 고 구인회 LG회장(이 회장의 차녀 숙희씨가 구 회장의 삼남 자학씨의 부인)과 안양골프장에서 라운딩 도중 전자사업 진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68년 12월30일 창립 발기인은 조우동 동방생명 사장, 손영기(이병철 회장 장남 맹희씨의 장인)안국화재 사장, 이병철 회장, 정상희(이병철 회장 5녀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시아버지)씨, 이맹희(당시 삼성물산 부사장)씨, 김재명(삼성 창업공신으로 이후 동서식품을 설립, 당시 제일제당 사장)씨, 정수창(당시 삼성물산 사장)씨였다. ●윤종용 부회장,“초밥이든 휴대전화든 속도가 생명” 삼성전자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삼성전자의 주요 경영진들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96년말부터 9년째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는 윤종용(61) 부회장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그동안 숱한 상을 받았던 윤 부회장은 올 초에도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최고경영자상을 받았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2004년에 이어 두번째 선정(Repeat Perfomer)으로 조 후지 도요타 사장, 스티브 잡스 애플컴퓨터 사장, 카를로스 곤 니산 회장 등이 윤 부회장과 함께 연속 선정됐다. 경북 영천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66년 삼성에 입사했다. 윤 부회장은 상무시절인 80년대 중반 잠시 네덜란드 필립스 본사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지만 이건희 회장의 부름을 받고 88년 삼성으로 돌아왔다.VCR와 DVD를 더해 빅 히트를 친 ‘콤보’제품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윤 부회장은 오늘날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반도체나, 휴대전화 등을 한번도 맡아본 적 없고 가전부문에서 잔뼈가 굵었다. 스스로도 “나는 비전문가요 ‘사이비’”라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하지만 98년 7월 한달에만 무려 1700억원의 적자를 냈던 삼성전자를 오늘날 10조원대 이익을 내는 회사로 만든 데 윤 부회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윤 부회장은 컬러TV의 재고를 줄이기 위해 수없이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던 삼성전자의 고질적인 문제를 과감히 혁파했다.97년말 8조 7000억원에 달하던 재고와 채권을 99년말 5조 2000억원으로 40%나 줄인 것이다.97년 국내 5만 8000명, 해외 2만 5000명이었던 인력은 각각 30%(1만 7400명),40%(1만명)나 회사를 떠나야 했다.120개가 넘는 사업과 제품을 매각하거나, 철수, 분사, 합작했다. 그래서 ‘진정한 혁신가’,‘기술 마법사’ 등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많은 별명 가운데서도 ‘구조조정의 달인’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삼성전자 주주총회때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참여연대 관계자들에게 “당신 주식 몇 주나 가졌어? 나도 주주야.”라며 호통을 칠 정도로 솔직하고 거침없는 화법으로 유명하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까지 겹쳐 투박하게 들리지만 간결하다. 윤 부회장을 대표하는 경영 키워드는 ‘스피드’인데 그는 “초밥이든 휴대전화든 모든 부패하기 쉬운 것은 속도가 생명이다.”는 말로 핵심을 잘 설명한다. 스피드에 대한 윤 부회장의 애착은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도 남이 건너간 뒤에야 건넌다.”던 이병철 회장과 달리 “돌다리가 아니라 흙다리라도 있으면 건넌다.”는 지론에서 잘 드러난다. 윤 부회장은 “우리는 지금 초일류로 가느냐, 추락하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직원들을 다그치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위기’를 강조한다.1993년 3월 이건희 회장의 제2창업 5주년 기념식사인 “21세기를 앞두고 남은 7년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살아남느냐 주저앉고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결단의 순간이 될 것이다.”란 말에서 모티브를 빌려 왔다. 이 회장의 ‘선문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윤 부회장다운 벤치마킹이다. 아들 태영(31)씨는 탤런트로 활동 중이다. ●황창규 사장, ‘황의 법칙’은 계속된다 경북 월성 출생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마친 이윤우(59) 부회장은 기흥공장장으로 일하던 80년대 중반 일본업체의 덤핑공세와 반도체 경기침체기에도 과감하게 256KD램과 1메가D램 양산 체제를 갖춰 삼성반도체의 신화를 이뤄냈다.68년 삼성전관(삼성SDI)으로 입사했다가 76년 삼성반도체 생산과장으로 반도체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황창규 사장에게 반도체총괄사장 자리를 물려주고 신설된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올해 인사에서는 삼성전자 기술총괄(CTO)을 맡았다. 삼성 기술의 총아인 삼성종합기술원도 관장한다. 최형인(56)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가 부인이다. 황창규(52) 반도체총괄 사장은 아직 5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삼성전자 대표 사장으로 거론된다. 황 사장이 총괄사장을 맡은 지난해 삼성반도체는 매출 18조 2200억원, 영업이익 7조 4800억원으로 41%라는 기록적인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삼성전자 전체 이익의 62%가 반도체의 몫이었다. 16메가D램 개발팀장을 맡았고 세계최초로 256메가D램 개발에 성공하는 등 탁월한 연구개발 능력에 언변까지 화려하다. 엔지니어 출신 사장들이 커뮤니케이션에 약한 것과 대조된다. 딱딱한 주제인 반도체로 강연을 하면서도 5분 간격으로 수강생들의 웃음보를 터뜨릴 정도로 센스가 좋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 마찬가지로 핵심을 정리하는 브리핑 능력도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2001년 당시 난드플래시의 강자였던 도시바가 전략적 제휴를 제의해 온 것에 대해 그룹의 의견이 반반으로 갈리자 이건희 회장에게 반대 논리를 펼쳐 결국 제휴를 무마시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난드플래시 세계 점유율 65%로 독보적인 1위를 달렸다. 부산 출생으로 부산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반 만에 2배로 증가한다.”는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법칙을 깬 ‘황의 법칙’(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증가한다)으로도 유명하다. ●이기태 사장, 승부욕이 휴대전화 성공신화로 이기태(57) 정보통신총괄 사장은 세계에서 가장 감각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는 삼성 휴대전화를 책임지는 사령관답지 않게 ‘불도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휴대전화를 벽에 집어 던져 삼성 제품의 튼튼함을 확인시키는 것으로 해외 바이어와의 협상을 시작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95년 3월 구미사업장에서 벌어진 무선전화, 팩시밀리 등 15만대의 ‘불량제품 화형식’을 지켜보면서 다져진 오기 덕분이다. 대전 출생으로 보문고와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73년 삼성전자 라디오과에 입사한 뒤 줄곧 제조쪽에서 일하다가 90년 화상무선기기사업부로 옮기면서 휴대전화와 인연을 맺었다. 승부욕 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며 사표도 두어차례 냈지만 이건희 회장의 돈독한 신임을 받고 있다. 선비 같은 용모의 최지성(54)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은 강원도 삼척 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거쳐 77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85∼91년 반도체 구주법인장을 지냈는데 당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삼성반도체를 ‘007가방’에 가득 싣고 험한 알프스 산맥을 자가 운전으로 넘어 다니며 애걸하다시피 영업을 했다고 한다. 삼성전자 사장단 가운데 유일하게 비서실에서 2차례(81∼85년,93∼94년) 근무해 시야가 넓은 편이다. 이상완(55) LCD총괄 사장은 서울고와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마치고 76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반도체분야에서 생산기술·마케팅 등을 담당하다가 93년 걸음마를 뗀 LCD사업을 맡았다. 초창기 아직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던 삼성 LCD를 팔기 위해 도시바, 소니, 미쓰비시 등 일본업체들을 일일이 직접 만나는 등 개발부터 판매, 품질까지 책임진 ‘톱 세일즈’로 유명하다. 천안공장, 세계 최대 LCD단지인 충남 아산 탕정공장 준공 등으로 LCD사업을 삼성전자의 ‘수종사업’으로 키워 놓았다. 경쟁사 대표의 ‘배신자’라는 비난에 유난히 속상해 하는 등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상운(53) ㈜효성 사장이 친동생이다. 지난해 윤종용 부회장이 직접 맡았던 생활가전총괄 사장으로 최근 부임한 이현봉(56) 사장은 경남 함안출생으로 진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6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상현 전 삼성전자 중국본사 사장,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 박양규 삼성네트웍스 사장의 진주고 1년 후배다. 인사부장, 인사팀장 등 주로 인사부문에서 일한 때문인지 중앙인사위원회 자문위원, 중앙노동위원회 사용자 위원 등 외부활동이 많았다.2001년부터 2년간 국내영업사업부장을 맡으며 까다롭기로 유명한 내수시장 공략에 공을 들여왔다. ●최도석 사장, ‘안방살림’ 꼼꼼히 챙겨 인사, 재무, 기획, 홍보 등 스태프 기능을 총괄하는 최도석(56) 경영총괄 사장(CFO)은 마산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5년 삼성 재무인력의 양성소인 제일모직 경리과로 입사했다. 이학수 부회장이 당시 관리본부장이었다.80년 삼성전자로 옮긴 뒤에도 줄곧 경리·관리·재경·경영지원 등 ‘안방살림’을 도맡아 왔다. 삼성 사장단 가운데 가장 술이 셀 정도로 화통한 스타일이지만 연 매출 70조원(연결기준)이 넘는 회사의 재무를 총괄하고 있는 만큼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꼼꼼한 편이다. 삼성은 전자-SDI-전기-코닝-코닝정밀유리-테크윈으로 이어지는 ‘전자소그룹’을 유지하고 있다. 전자소그룹의 지난해 본사 매출(코닝·코닝정밀유리는 2003년)은 무려 69조 8897억원, 순이익은 11조 9618억원원에 달했다. 전자를 제외하고 가장 중량감 있는 CEO는 삼성SDI 김순택(56) 사장이다. 72년 그룹 공채로 입사해 제일합섬 소속으로 회장 비서실에서 주로 일했다.92∼94년 삼성전관 기획관리본부장을 지낸 인연으로 96년말 비서실을 떠나 삼성전관에 둥지를 틀었다.2000년부터 5년째 삼성SDI 대표이사를 맡으며 사업구조를 브라운관에서 PDP,OLED,2차전지, 모바일LCD 등으로 바꿔놓았다. ●김순택 사장, 작년 해외출장 거리만 27만㎞ 무슨일이 있어도 신입사원 교육에는 빠지지 않는 데다 신입사원이 부서에 배치된 후에는 직접 이메일을 보내 안부를 묻는다.“기업의 가장 위대한 자산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년 110일 이상을 현장에서 보낸다. 중국, 말레이시아, 독일, 헝가리, 멕시코, 브라질의 10개 공장을 방문한 지난해 해외 출장거리가 27만㎞에 달했다. 삼성전기 강호문(55) 사장은 경기 부천 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석재(57)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이 전기공학과 68학번 동기다. 황창규 사장은 72학번, 권오현 사장(시스템LSI사업부장)은 71학번이다. 첫 사회생활은 금성전선에서 출발했지만 곧바로 삼성전자로 옮겨와 반도체, 컴퓨터, 네트워크 등을 담당했다.2002년부터 삼성전기 사장을 맡으며 삼성전기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큰 키(180㎝)에 미소가 인상적이다. 성균관대 예술학부장인 임학선(55) 교수가 부인이다. 브라운관 유리를 생산하는 삼성코닝은 충북 보은 출생으로 용산고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송용로(60)사장이, 세계 최대 LCD유리기판 업체인 삼성코닝정밀유리는 이석재 사장이 맡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와 항공기 엔진 등을 담당하는 삼성테크윈은 삼성물산·영상사업단·삼성생명 대표를 역임한 이중구(59) 사장이 책임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IT축’인 삼성SDS 김인(56) 사장은 경남 창녕, 대구고와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그룹 비서실 인사팀장, 호텔신라 총지배인 등을 역임했다. 네트워크, 인터넷전화·국제전화 등을 영위하는 삼성네트워크 박양규(57) 사장은 삼성SDS, 삼성자동차의 설립 작업에 관여했다. ukelvin@seoul.co.kr ■ 삼성반도체 ‘30년 비화’ 삼성은 지난해 12월6일 반도체사업 30주년 기념식을 갖고 2010년까지 25조원을 투자해 누적매출 200조원, 신규 일자리 1만개를 창출키로 했다.12월6일은 이건희 회장이 1974년 사비를 들여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한 날이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한국경제를 먹여 살린다는 평을 받는 반도체지만 출발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본지가 입수한 1992년 삼성그룹 비서실의 보고서 ‘삼성의 반도체 사업’에 따르면 사업 초기 삼성은 기술확보에 애를 먹다 해외업체에 지분을 양보하고서라도 기술을 도입하려 했었다. 이 보고서는 91년 4월 반도체 사업의 어제와 오늘, 문제점 등을 파악하라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의해 작성됐다. 삼성반도체의 시련은 고 이병철 회장이 일본 NEC의 고바야시 사장을 초빙, 기술지원을 요청했지만 76년 방한한 NEC 엔지니어들이 기술이전을 기피하면서 시작됐다. 선진국과의 기술격차 등으로 반도체가 적자를 면치 못하자 이번에는 이건희(당시 부회장)회장이 미 페어차일드 본사를 수차례 직접 방문, 기술이전을 요청했고 마침내 승낙을 받아냈다. 페어차일드의 요구조건은 삼성반도체 지분의 30%를 내놓으라는 것. 이 회장은 지분을 양보하더라도 기술 이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협상을 위해 미국에 파견된 이모 상무 등 실무진은 “삼성의 기술수준으로는 신기술(당시 페어차일드는 64KD램 개발에 성공)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 기술도입이 좌절됐다.79년 더 이상 반도체사업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병철 회장은 당시 가전·TV생산담당이었던 김광호(이후 삼성전자 회장을 역임)이사를 반도체로 보내 사업정상화 특명을 내렸다. 당시 강진구 반도체사장은 직원들에게 김 이사를 소개하면서 “만약 김 이사로도 삼성반도체를 살리지 못한다면 더 이상 반도체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강진구 회장은 삼성전자 사장(73∼82년), 삼성전자 회장(88∼92년,93∼98년)은 물론 한국반도체 사장(75∼79년), 삼성반도체통신 사장(81∼88년), 삼성GTE통신 사장(77∼80년) 등을 역임하며 오늘날 삼성전자가 있기까지 많은 공헌을 했다. 김 이사는 대방동과 부천으로 나눠졌던 공장을 부천으로 통합하고 80년말 삼성반도체를 삼성전자에 인수합병시키는 한편 홍콩 시계칩 시장을 집중공략, 전세계 시계칩 시장의 50%를 차지하던 홍콩 시장 점유율을 60%로 끌어 올리며 흑자회사로 변신시켰다. 82년 2월8일 유명한 ‘도쿄선언’으로 반도체 사업 본격화를 선언한 이병철 회장은 부천공장을 대체할 대규모 반도체공장 부지를 물색했는데 후보지로 수원, 신갈저수지 부근, 관악골프장 부근, 판교 부근, 기흥이 선정됐다. 국내외 지질·수질 전문가들과 이 회장이 직접 헬기를 타고 조사한 끝에 12월18일 기흥지역이 최종 낙점됐다. 하지만 당시 기흥은 절대농지에다 산림보존지역으로 공장 설립이 불가능했다. 이에 이 회장과 내무부장관을 역임했던 최치환 반도체부문 사장 등이 정부를 끈질기게 설득,1차로 10만평에 대한 허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수도권 공장 억제 정책과 땅값 문제 등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고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열린세상] 일자리 창출 기업에 맡겨야/이만우 고려대 경영학 교수

    청년실업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기업 규모와 업종을 가릴 것 없이 신입사원 채용공고만 냈다 하면 수만명의 지원자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환경미화원 모집에 대학원 졸업자가 지원했다는 보도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이 됐다. 싸늘하게 식은 취업전선과는 달리 자동차, 전자, 조선 등 잘 나가는 수출기업이나 정유, 통신 등 내수호황기업에서는 최고수준의 임금에 더하여 종업원들의 복리후생 요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과 비정규직 근로자들 사이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실업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계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중년 직장인들은 자신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일처리도 더 빠르고 힘도 더 센 자녀들이 직장을 못 잡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한숨을 쉬고 있다. 자신의 월급의 절반만 주고 자녀들을 대신 채용한다면 언제라도 직장을 떠나겠다는 근로자들도 많이 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고용조정이 어려워 신규채용을 못 하다 보니 종업원 연령구조도 극히 비정상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고용인원을 계속 줄여가는 기업의 경우는 근로자 평균 연령이 계속 올라가고 있어 고임금 부담뿐만 아니라 순조로운 업무승계까지 걱정하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도 연두 기자회견에서 노동시장의 양극화의 심각성을 거론하면서 대기업 노동조합의 양보를 촉구하고 나섰다. 기업들이 자금을 쌓아두고도 신규투자를 기피하는 것은 매출수익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생산된 제품의 판매가 확실히 보장된다면 당연히 기업투자가 몰릴 것이다. 그러나 매출예상이 불투명한 것이 일반적이고 투자 실패로 확정될 경우 이를 정리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토지나 건물 등 유형자산은 어느 정도 손해를 보면 일부라도 원금회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규직을 고용할 경우 해고가 쉽지 않고 명예퇴직금 등의 해고관련 비용이 추가로 소요된다. 투자실패시 고용조정에 들어가는 막대한 추가비용을 우려하여 투자자체를 포기하게 되고 따라서 일자리 창출도 어렵게 되는 것이다. 투자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여서 투자를 촉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고용조정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비정규직을 활용해야 한다. 투자가 성공하여 기업이 성장궤도에 들어서면 숙련된 근로자의 안정적 확보가 필요할 것이고 기업 스스로가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여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것이다.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완화하는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대통령과 노동부장관이 이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서는 데 비해 정치권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정체불명의 제자집단으로부터 노동자 죽이기에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다면서 사퇴를 요구하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경제살리기에 올인하라는 주장을 입에 달고 사는 여야 정치권은 경제살리기의 핵심과제인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서는 근로자들의 표를 의식해서 입을 다물고 있다. 정부는 올해 1조 4000억원을 투입하여 청년 및 취약계층 46만명에게 직업훈련 및 장단기 일자리를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임시방편 대책은 자칫하면 청년들이 평생직장을 잡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고 실업을 고착화시킬 우려가 있다.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이익을 내는 우량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도록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신규 투자를 결정한 기업이 당해 투자안의 성패에 따라 고용을 쉽게 조정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해야 한다. 지난해 새로 도입된 신규고용 촉진을 위한 세제지원의 실효성을 높이고, 특히 청년층 인턴사원 채용시는 지급된 급여 총액을 모두 세액공제로 돌려주는 획기적인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경제활동의 주역은 기업이 돼야 하고 정부의 간섭은 최소한으로 줄여 나가야 한다. 아무리 사정이 급하더라도 일자리 창출은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는 기업에 맡기는 것이 정도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 교수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어느 시대에나 나라와 집단을 움직이는 인맥은 있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시절에는 권력 중심의 인맥이 조명을 받았지만, 요즘은 자본을 토대로 형성된 인맥집단이 눈길을 모은다. 지난해 말 단행된 주요 그룹 인사에서 창업자의 2,3세들이 사장이나 임원으로 속속 승진하면서 재계의 ‘가계도’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다. 사실 재계의 인맥과 가계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계급간 갈등이 악화되는 현실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해 왔듯이 90년대 이후 재벌가문의 인맥도는 정략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의 주요 그룹들이 창업에서부터 2세,3세로 내려오면서 어떻게 가업을 승계해 왔고, 총수와 더불어 대그룹을 일군 주역들이 누구인지를 주 1회씩 연중 기획으로 조명해 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후원자인 메디치가, 근세유럽 최고의 명문가로 알려진 합스부르크왕가, 미국의 케네디·부시가 등 서양에는 그 사회가 인정해 주는 명문가가 있다. 한국에도 수백년 내력의 명문가문이 존재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존재가 미약하다. 대신 일제치하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자본을 축적한 ‘재계 명문가’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권력이 최우선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금력의 위력이 커질수록 재계 명문가의 위상도 커지고 있다. 재계 명문가를 일군 창업주들은 대부분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고 고등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대를 내려오면서 후손들은 명실상부한 상류층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한국의 몇 안되는 ‘상류층 클럽’의 최정점에 재벌 2,3세들이 서 있고 또 그 정상에는 삼성가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일군 ‘삼성가’는 오늘날 대한민국 재계의 대표 가문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1938년 29세때 자본금 3만원과 은행자금 20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만주에 청과물과 건어물을 수출하고 제분업을 병행하면서 1년 만에 두배의 이익을 거뒀고 이를 토대로 연산 7000석 규모의 ‘조선양조장’을 매입하며 삼성의 기틀을 세웠다. 현재 삼성은 자산규모 92조원으로 공기업인 한국전력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지난해 자산을 꾸준히 늘려 올 4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가 나면 명실상부한 재계 1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삼성은 지난해 매출 136조원, 세전이익 19조원이라는 경이로운 경영성과를 이뤄냈다. 직접 수출만 527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2542억달러)의 21%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한때 120조원을 넘었다가 현재 94조원에 달한다.2위인 LG그룹(36조원)과 비교해 보면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은 또 CJ, 신세계, 한솔, 새한그룹과 연결돼 있고 중앙일보그룹, 보광그룹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세계 5조 2000억원(21위),CJ 4조 9000억원(23위), 한솔 3조 4000억원(36위), 중앙일보·보광 1조원 등을 더하면 ‘범 삼성가’의 자산은 106조 5000억원에 달한다. ●다양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혼맥 이런 위상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특히 이건희 회장대로 내려오면서 특별한 집안을 ‘간택’하지 않았다. 이미 재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삼성가로서는 더 이상 혼맥을 통해 뭔가를 기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병철 회장 사후 삼성은 91년 11월 신세계와 전주제지(한솔),93년 6월 제일제당(CJ),95년 7월 제일합섬(새한),99년 중앙일보 등을 독립시키며 세포분열을 거듭했다. 새한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영역에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8명(3남 5녀)이나 되는 자녀를 분가시켰지만 명성만큼 화려한 혼맥은 아니었다. 이맹희씨가 그의 회고록에서도 밝혔듯이 이 회장은 혼사를 통해 권력층과 줄을 잇는 체질이 아니었다. 다만 자유당 시절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역임한 고 홍진기씨 집안과 사돈(이건희 회장)을 맺은 것이나 둘째딸 숙희씨를 LG의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3남인 구자학씨에게 시집보낸 것 정도가 눈에 띈다. ●비운의 장손가, 화려한 부활 장남 이맹희씨는 어릴 적부터 약조가 돼 있던 손영기 전 경기도 지사의 딸 손복남씨와 결혼했다. 한때 17개 계열사 경영을 맡으며 장남의 역할을 다했지만 일찌감치 그룹 경영에서 발을 빼야 했다. 맹희씨의 존재는 항상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묻어둔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 등의 회고록에서 “고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제일모직 등 ‘제일’자 계열과 안국화재(현 삼성화재)를 나에게 넘기기로 했었다.”고 발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맹희씨는 현재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살고 있다. 당대에 이루지 못한 맹희씨의 꿈은 지난 2002년 장남인 이재현씨가 CJ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어느 정도 풀렸다.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은 삼성과 무관한 씨티은행에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 경리부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 그는 이후 93년 잠깐 현재 이재용 상무 자리인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제일제당과 함께 했다. 이 회장은 비록 CJ그룹이 삼성그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 차이가 나지만 삼성가의 장손으로 그 위상이 만만치 않다. 이병철 회장의 부인인 박두을 여사도 2000년 타계하기 직전까지 서울 장충동에서 이 회장과 함께 살았다.87년 이병철 회장 장례식때 영정을 들고 앞장선 사람도 이 회장이었다. CJ그룹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미국에 머물던 이 회장의 누나인 미경씨를 CJ엔터테인먼트,CJ CGV,CJ미디어 및 CJ아메리카 담당 부회장에 임명했다.CJ는 이 회장의 외삼촌 손경식 회장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새한의 도전과 좌절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인 이영자씨와 연애 결혼한 차남 창희씨는 91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비사건(사카린 불법유통사건)으로 한때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고 67년 삼성이 인수한 새한제지(전주제지) 이사로,68년에는 삼성물산 이사로 일했지만 그룹 경영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었다. 창희씨는 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와세다대 동문이다. 창희씨 사후 새한은 부인 이영자씨를 회장으로 97년 새 CI를 선포하며 독립그룹으로 발을 내디뎠지만 곧바로 경영위기를 겪고 만다.2000년부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했는데 채권단에 따라 ㈜새한 계열과 새한미디어 계열로 나눠졌다. 새한미디어는 현재 론스타로의 매각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새한은 99년 일본 도레이사와 3대7 합작을 통해 도레이새한을 출범시켰다. 2000년 지분을 채권단에 양도한 이영자 전 회장과 아들인 이재관 전 부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한은 삼성의 분가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몰락하고 말았지만 혼사만큼은 화려했다. 장남 재관씨는 동방그룹 김용대 회장가의 딸인 희정씨와 중매로 결혼했다. 재관씨는 ㈜동방 주식 1만 6000여주를 갖고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재찬씨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인 선희씨, 재원씨는 김일우 서영주정 사장의 딸과 결혼했다. 막내딸인 혜진씨도 조내벽 전 라이프그룹 회장가로 시집갔다. ●글로벌 삼성을 만든 이건희 회장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2대 회장이 된 것은 유교적 전통과 장자승계가 원칙인 한국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70년대에 이미 ‘3남 후계’ 방침을 확정했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 맹희는 주위의 권고와 본인 희망대로 그룹 경영을 일부 맡겨 봤지만 6개월도 못가 맡겼던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면서 “창희는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고 희망해 희망대로 해주었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와세다대 1학년때 중앙매스콤을 맡아보라고 했더니 본인도 좋다고 했는데 조지워싱턴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룹 경영에 차츰 참여하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기업경영이 하도 고생스러워 중앙일보만 맡았으면 하는 심정이었지만 본인이 하고 싶다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양녕대군, 효령대군 대신 3남인 충녕대군(세종)을 택한 태종의 결단과 닮은 꼴이다. 87년 11월19일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12일 만인 12월1일 삼성의 2대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7년 만에 삼성의 차원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매출 13조 5000억원과 비교하면 14년 만에 매출이 10배로 늘어났다. 세전이익은 1900억원에서 19조원으로 100배나 늘었다. 원달러 환율이 100원 이상 절상된 올해도 삼성은 매출 140조원, 세전이익 14조 6000억원을 목표로 세웠다. 이 회장의 ‘신경영 전도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최근 이 회장의 ‘17년 경영’을 이렇게 평가했다. “반도체 투자 같은 천문학적인 액수는 보통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한때 잘나갔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도 CEO들이 결단을 내리지 못해 투자시기를 놓쳤다. 반면 삼성은 이 회장이 전략을 제시하고 투자를 결정해 줌으로써 강력한 리더십이 생긴다. 계열사 사장들은 회장의 비전 제시를 책임감 있게 충실히 이행하고 구조본은 이 과정에서 정보분석 등 보좌업무를 수행한다. 삼성의 힘은 이같은 ‘3각 경영시스템’에서 나온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이 ‘우리 회장’을 진심으로 따르고 승복하니까 이같은 영향력이 나오는 것이다.” 이 회장과 홍라희 여사의 만남은 부친들끼리 미리 약조가 돼 있는 상태에서 66년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처음 이뤄진 뒤 7개월 뒤인 67년 5월 결혼으로 이어졌다. 홍 여사는 당시로는 큰 키(165㎝)에 미모와 지성을 갖춘 재원으로 이후 한국 재계의 ‘퍼스트레이디’로 자리매김했다. 서울대 미대(응용미술학과) 출신인 홍 여사는 79년 막내 윤형씨를 낳고 난 뒤인 83년 현대미술관회 이사로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67년 삼성으로 시집온 뒤 이건희 회장의 후계구도가 확정된 71년부터는 삼성그룹의 사실상 ‘안방마님’이었지만 서열상으로 엄연히 형님(맹희·창희씨 부인)들이 있고 위로 시누이가 넷(인희·숙희·덕희·순희씨)이나 있어 편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홍 여사는 85년부터 98년까지 친정아버지(고 홍진기씨)가 회장으로 있는 중앙일보 상무로 재직했다.95년 호암미술관장으로 취임한 홍 여사는 96년에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까지 맡았지만 98년 이사장직을 남편인 이 회장에게 돌려줬다. 지난해 4월 현대미술관회 부회장으로 선임됐고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 옆에 국내 최고 수준의 미술관인 ‘리움(Leeum)’을 개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해외활동도 활발해 93년부터 CIMAM(국제근현대미술박물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박물관 국제이사회 회원, 영국 테이트갤러리 국제이사회 회원이다. 이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96년 프랑스 문학예술훈장인 ‘코망되르’를 받았고 2003년에는 제57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딸들의 맹활약 삼성가는 딸들의 경영활동이 활발하기로 유명하다.5명의 딸 가운데 덕희(숙명여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다. 장녀인 이인희씨는 경북지방의 대지주였던 조범석가로 시집갔다. 남편인 조운해씨는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이사장 및 병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도 맏사위 자격으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일부 갖고 있다. 인희씨는 91년 삼성에서 분리,92년 한솔그룹으로 이름을 바꾸며 새 출발했다. 한때 계열사가 16개에 이르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현재는 8개 계열사로 줄었다. 장남인 조동혁 회장에 이어 현재 그룹 경영은 3남인 조동길 회장이 맡고 있다. 차남인 조동만 전 한솔PCS 회장은 PCS 사업매각 관련 비리로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차녀인 숙희씨는 LG가로 시집을 갔다. 남편인 구자학씨는 해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제일제당, 동양TV 이사, 호텔신라 사장, 중앙개발 사장 등 처가에서도 활발한 경영을 펼쳐 눈길을 끈다. 그는 삼성이 전자사업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본가로 돌아간 뒤 금성사 사장,LG반도체·LG건설 회장 등 굵직한 자리를 맡다 지난 2000년 외식산업인 ‘아워홈’을 갖고 독립했다. 지금도 LG가에서 구자학 회장은 ‘구씨답지 않게 낭만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인물’로 회자된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을 국내 처음으로 내놓는 등 여성적인 섬세함은 ‘LG가’보다는 ‘삼성가’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숙희씨의 아들 본성씨도 한때 삼성 계열사에서 일했다. 딸인 명진씨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3녀 순희씨는 대학교수와 결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4녀 덕희씨는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의 대지주 이정재씨 집안으로 시집갔다. 마산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온 남편 이종기씨는 중앙일보 부회장, 제일제당 부회장을 거쳐 삼성화재 회장까지 지내다 은퇴했다. 그는 지금도 삼성전자 주식 8만주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큰손’이며 동서인 조운해씨와 마찬가지로 에버랜드 주식도 갖고 있다. 삼성가의 딸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은 5녀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 회장의 시아버지는 4·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씨로 남편인 재은씨가 차남이다. 남편인 정재은씨는 경기고·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 삼성항공·삼성종합화학 부회장, 삼성전기 회장,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삼성그룹에서 맹활약하다 분가와 함께 삼성을 떠났고 현재 신세계 고문직을 갖고 있다. 신세계가의 후계자인 정용진 부사장은 미스코리아 출신 고현정씨와 결혼했다가 2003년 이혼했다. ●최고의 사돈감,‘소박한’ 결혼 이건희 회장은 홍 여사와의 사이에서 재용(삼성전자 상무), 부진(호텔신라 상무보), 서현(제일모직 부장), 윤형(학생)씨를 낳았다. 이재용 상무는 경복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마쳤다.91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으며 차분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중장기 전략담당인 이 상무는 최근 소니와의 7세대 LCD(액정표시장치)합작사인 ‘S-LCD’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S-LCD는 삼성과 소니가 ‘명운’을 걸고 시작한 사업. 차기 CEO로 꼽히는 구타라기 겐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이사로 내세운 소니는 삼성측에 이 상무의 이사 등재를 특별히 부탁했다. 이 상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첨단기술에 관심이 많아 혼자서도 사업장을 둘러보고 관련 전문가들에게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등 열심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평이다. 이 상무는 98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인 세령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당시 ‘미원-미풍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이 사돈을 맺었다는 점과 연세대(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었던 세령씨의 빠른 결혼, 영호남 대표기업의 혼사 등이 화제를 모았었다. 임씨는 삼성가 며느리라는 지위 외에도 ㈜대상 주식 10.22%를 보유하고 있는 등 만만치 않은 재력을 자랑한다. 세령씨의 서문여고 동창들에 따르면 학창시절부터 말수 없이 조용한 데다 미모를 갖춰 일찌감치 ‘최고의 신부감’으로 꼽혔다고 한다. 지난해 초 호텔신라 상무보로 승진한 부진씨는 연세대 아동학과 출신으로 99년 삼성 계열사의 평범한 회사원 임우재씨와 결혼했다. 임씨는 현재 삼성전자 소속으로 미국 유학중이다. 미국 뉴욕의 패션전문학교 파슨스 출신인 둘째딸 이서현 제일모직 부장은 2000년 동아일보 사주인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재열씨와 결혼했다. 재열씨는 지난해 초 제일모직 상무로 승진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윤형씨의 배필이 누가될지 벌써부터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화여대 불문과 98학번인 윤형씨는 지난해 싸이월드에 개설한 미니홈피가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었다. 당시 윤형씨는 재벌가의 딸답지 않는 소탈하고 귀여운 글을 많이 남겨 ‘삼성가’에 대한 세인들의 궁금증을 어느정도 풀어줬다. 지금은 활동이 중단됐지만 ‘다음’의 윤형씨 팬카페(이뿌니 윤형이네) 회원수가 1만 2000여명이 넘을 정도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씨가와 홍씨가 LG가 구씨-허씨의 ‘합작품’이라면 삼성은 이씨와 홍씨가 함께 이끌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 홍진기 회장의 장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최근 각을 세워왔던 노무현 정부의 주미대사로 내정됨에 따라 현 정권과 중앙일보, 삼성가로 이어지는 관계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과 고 홍 회장의 인연은 4·19 직후 홍 회장이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이 회장이 면회를 가면서 시작됐다. 전 국무총리 신현확씨의 소개로 이뤄졌는데 신현확씨도 이후 삼성물산 회장까지 지내며 삼성과 돈독한 인연을 유지했다.87년 이병철 회장 사후 이건희 부회장을 2대 회장으로 추대한 회의도 신현확씨가 주재했다. 홍 회장은 65년 라디오서울(동양방송 전신) 개국 4개월 뒤 경영을 맡았는데 80년 신군부에 동양방송을 ‘강탈’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의 중앙일보를 일궈냈다. 홍 회장이 삼성그룹에서 직접 경영한 것은 중앙일보(66∼67년,68∼86년)밖에 없지만 그가 삼성에 끼친 영향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다. 삼성의 언론사업에는 비화가 있다.‘호암자전’과 ‘삼성 60년사’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60년대 초 정계 투신을 결심했었다. 기업가의 사회적 공헌이 전적으로 무시되고 오히려 ‘부정축재자’,‘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한비의 국가 헌납 등)에 환멸을 느낀 이 회장이 직접 정치를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1년간의 고심 끝에 정치보다는 언론사업을 택했다. 이른바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은 무한하다.’는 세간의 ‘이치’를 일찌감치 간파한 셈이다. 홍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타계 직전인 86년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이 회장은 조사를 통해 “당신은 내 일생을 통해 제일 많은 시간을 접촉한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 온 같은 임원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로는 나의 사돈이었다.”며 진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관·언·재의 홍씨 4형제 홍씨 가문은 네 아들을 뒀는데 하나같이 훤칠한 용모에 좋은 머리를 갖고 있다. 주미대사로 내정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미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의 엘리트로 30대(39세)에 세계은행(IBRD)의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 정부쪽 일도 수행했다. 홍 회장은 삼성코닝 상무·부사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뛰다 99년 중앙일보의 계열분리를 계기로 중앙일보 회장에 취임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에 올라 국제사회에도 그 이름을 알렸다. 홍 회장의 장인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고 신직수씨다. 사시 18회인 둘째 홍석조 인천지검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지검 남부지청장(현 남부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홍 지검장은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홍 지검장의 부인은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동생 양기식씨의 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은 86년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삼성코닝 이사로 입사했다.95년 삼성전관(현 삼성SDI) 상무로 이동, 기획홍보팀장을 거쳐 2002년 부사장(경영기획팀장)으로 승진했다.‘로열 패밀리’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을 정도로 자상한 면모를 갖고 있다. 선친때부터 살아 온 서울 성북동 집을 지키고 있다. 4남인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회장으로 승진, 오너 경영을 본격화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홍 회장은 79년 제13회 외무고시에 합격, 외무부 의전과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홍 회장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95년 외무부 기획조사과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홍 회장은 보광 상무이사로 경영활동에 뛰어들었다. 제8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 대한스키협회 부회장, 한국광고업협회 부회장, 서울대 기성회 회장 등 외부활동도 활발하다. 보광그룹은 아직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편의점인 보광훼미리마트, 자판기 유통업체인 휘닉스벤딩서비스, 보광창업투자,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문화상품권 발행사인 한국문화진흥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 부품업체인 휘닉스PDE, 반도체 관련 업체인 휘닉스디지탈테크, 반도체패키지 제조업체인 STS반도체통신 등 전자 계열사들은 사돈기업인 삼성전자, 삼성SDI 등과 거래가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 코스닥에 등록된 휘닉스PDE는 홍 회장이 13.89%, 홍석조 인천지검장,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 홍라영씨가 나란히 10.89%를 보유해 눈길을 끈다. 홍씨가의 주력은 중앙일보 그룹이지만 실제 ‘자금줄’은 보광그룹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보광이 주요그룹으로 성장한다면 정·관계, 언론계를 주름잡은 이 가문이 재계에서도 능력을 검증받게 된다. 막내인 홍라영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둘째아들인 철수씨와 결혼했다. 노 전 총리의 장남 경수씨는 현대산업개발 정세영 명예회장의 큰딸 숙영씨, 차녀 혜경씨는 ㈜풍산 류진 회장과 결혼했다. 이대 불문과, 미국 뉴욕대 예술경영학 석사 출신인 라영씨는 95년 삼성문화재단 기획실로 입사, 현재 삼성미술관 부관장직과 한국박물관협의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ukelvin@seoul.co.kr ■ 이병철 회장의 경영어록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잘 모르는 경우에는 가리지 말고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2∼3년이 지나면 물어보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 것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혼자 삼성 전체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과거 오랫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1983년 6월 반도체회의) ●“인재제일, 인간본위는 내가 오랫동안 신조로 실천해온 삼성의 경영이념이자 경영의 지주이다. 기업가는 인재양성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에 전달되어 있는 한 그 기업은 무한한 번영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1982년 10월 기고문) ●“사람을 관찰해 보면 세 부류가 있다. 첫째 어려운 일은 안 하고 쉬운 일만 하며 제 권위만 찾아 남만 부리는 사람, 둘째 얘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 셋째 알아듣긴 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1982년 9월 사장단 오찬회의) ●“모든 설비투자계획에 있어서 5년 정도만 내다보고 세우지 말고 10년 이상 50년 정도의 장기 안목 위에서 세워야 한다.”(1977년 6월 삼성조선 건설현장) ●“미국에서는 사람의 후천적 교육에 치중하고 소질은 별로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선천적 소질 내지는 능력에 60%를 두고 교육에 40%를 둔다. 사람은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지만 아무나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은 따로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1976년 6월 ‘재계회고’) ●“일이 잘돼 나갈 때 오히려 다가올 불행을 각오해야 한다. 기업가도 뜻하지 않은 좌절을 겪어본 기업가가 좌절을 모르고 자라난 기업가보다 훨씬 더 강인한 기업경영 능력을 갖고 있다.”(1975년 9월 ‘최고 경영자와의 대화’) ■ 이건희회장의 경영담론 ●“그동안은 세계의 일류 기업들로부터 기술을 빌리고 경영을 배우면서 성장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어느 기업도 우리에게 기술을 빌려 주거나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기술 개발은 물론 경영 시스템 하나하나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자신과의 외로운 경쟁을 해야 한다.”(2005년 1월3일 신년사)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경영진들이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너무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산업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반도체에서 시기를 놓치면 기회손실이 큰 만큼 선점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2004년 12월 반도체 30년 기념식) ●“4∼5위에서 2∼3위로 가는 것하고 2∼3위에서 1위로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2003년 11월 휴대전화사업 격려 자리에서) ●“행정규제, 권위의식이 없어지지 않으면 21세기에 한국이 일류 국가로 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1995년 4월 중국 베이징 특파원 오찬간담회) ●“선친이 장사하는 것을 보며 세살 때부터 주판을 갖고 놀았다. 정치보다 장사를 잘 알고 거기에 맞는 사람으로 키워졌다. 난 양복과 잠옷만 있고 중간 옷이 없다. 잠옷 입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잠옷을 입고 정치할 수는 없지 않으냐.”(94년 10월 마이클 헤슬타인 영국 상공부 장관과 만찬자리에서 정치 참여에 대해) ●“변하는 것이 일류로 가는 기초다. 앞으로 5년이면 회장 취임 10년인데 10년 해서 안 된다면 내가 그만두겠다. 자기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93년 6월 신경영 선포)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공직생활 6개월… 행자부 최원경씨의 새해 소망

    공직생활 6개월… 행자부 최원경씨의 새해 소망

    “사랑받는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우리나라 공무원들도 싱가포르처럼 존경받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지난해 6월 행정자치부에 임용된 새내기 7급 공무원 최원경(36·전자정부지원센터)씨는 “그동안은 실수투성이었지만 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해내는 공무원이 되겠다.”며 새해 소감을 밝혔다. ●“철밥통은 옛말”… 자기개발에 열중 이제 갓 공직생활 6개월째인 최씨는 “공무원이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다면 그건 분명 공무원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정부의 역할이 국민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 만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충실하게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공무원이 ‘철밥통’이라고 인식되기도 하는데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난 것 같다.”면서 그동안 느낀 공직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최씨는 “사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한 이유는 안정적인 삶을 기대했기 때문이었지만 실제 일을 해 보니 이 곳 역시 치열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이라며 “뭔가 변화를 꾀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긴장감도 느껴진다.”고 소개했다. 실제로도 함께 임용된 동기들을 만날 때마다 ‘더이상 철밥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곤 한단다. 그는 “주위 선배들만 봐도 없는 시간을 쪼개 어학공부를 하거나 학위준비를 하는 분들이 많아 새내기들도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류학을 전공한 최씨는 프리랜서로 의상디자인을 하다 공직에 들어온 케이스. 그는 “전공분야가 전혀 달라 처음엔 단순한 서류처리작업에도 애를 먹는 등 실수의 연속이었지만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나만의 장기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어 “전공자나 경력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참신한 시각이 나의 장점일 것”이라고 자신감도 나타냈다. 민간기업의 현장에서 일해 본 경험도 그만의 자산이다. 새내기답게 의욕도 넘치고 욕심도 많다.“일부터 배우고 기회가 된다면 행정학 이론도 깊게 공부하고 싶다.”고 의지를 보였다. ●도·농격차 해소…지역발전에 관심 많아 대학 졸업 후 프랑스에서 2년 정도 생활을 했었다는 최씨는 지역 특성을 살리면서도 도·농간 격차없이 풍요롭고 여유로운 생활수준을 누리는 그 나라의 모습이 부러웠다고 한다. 최씨는 “프랑스 생활을 통해 지역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지자체 업무를 주관하는 행자부를 지원한 것도 그 때문”이라며 “지역 발전에 뭔가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고용없는 성장’ 뚜렷

    ‘고용없는 성장’ 뚜렷

    ‘고용없는 성장’이 통계지표로 뚜렷하게 현실화하고 있다. 제조업 생산이 크게 늘었는데도 고용 증가율은 여기에 턱없이 못 미친다. 투자동향을 알려주는 제조업체의 유형자산 규모는 3년 전만도 못하다. 대기업과 영세기업간, 정보기술(IT)산업과 전통산업간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도 통계치로 확인됐다.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3년 기준 산업총조사 잠정결과’(5년마다 발표)에 따르면 종업원 5명 이상 제조업체는 지난해 말 11만 2710개로 전년 말 11만 356개보다 2.1%가 늘었다. 출하액은 6.8% 늘어난 674조 2000억원, 부가가치는 5.6% 증가한 255조 9570억원이었다. 그러나 이런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종업원 수는 지난해 월 평균 273만 4000명으로 전년(269만 6000명) 대비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종업원 수는 1999년과 2000년만 해도 각각 7.9%와 5.8%의 증가율을 보였으나 2001년 0.2% 감소세를 보인 이후 2002년 1.8% 등 미미한 증가세를 보이며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투자부진도 통계에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해 말 종업원 5명 이상 제조업체의 유형자산(기계장치·건물·구축물·차량운반구 등) 잔액은 262조 3180억원으로 전년 말(261조 2260억원)에 비해 고작 0.4% 증가했다.3년 전인 2000년 말 264조 190억원보다 2조원이나 적은 것이다. 업종간 격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제조업 출하액 693조 1100억원 중 IT분야는 5년 전인 98년에 비해 81.6% 증가한 130조 2030억원을 차지했다. 제조업내 비중도 16.3%에서 18.8%로 2.5%포인트 올라갔다. 영세업체들의 도태 현상도 두드러졌다.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중국 농촌경제 부양 都農격차 완화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정부는 공공지출 감소와 산업 구조조정 가속화 등을 골자로 하는 내년도 거시경제정책 요강을 발표했다. 거시정책 결정기구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8일 ▲산업 구조조정 가속화를 통해 당국의 경제 조절을 강화하고 ▲농촌 활성화를 위한 사회사업 전개를 통해 빈부격차를 완화시키며 ▲도시·농촌의 소비를 활성화시켜 소비수요를 확대하고 ▲농촌 및 빈곤 층 생활수준 제고를 통해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한편 빈민들을 구제하고 ▲체제개혁 가속화로 공산체제를 강화한다는 등 5가지를 내년도 거시경제 정책 목표로 제시했다고 관영 신화사가 보도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즈신(朱之 ) 부주임은 ‘2005년 중국 경제 보고회’를 통해 “내년도 중국 경제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지속하되 농촌 문제 해결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5가지 정책 목표 중 3대 지표를 농촌경제 부양을 위해 배정함으로써 도농 격차 해소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재정부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공공지출을 줄여 경기과열을 진정시키되, 농가 세금 감면을 확대해 농촌 소비를 진작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동부 및 북부 도시에서 시범실시 중인 부가가치세 제도를 2006년부터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올들어 9월까지 집행된 중국 중앙정부의 공공투자는 5010억위안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늘었으나, 지방정부와 공기업의 투자액까지 합치면 26% 늘어난 1조 8600억위안에 달했다. 산업 구조조정은 국유기업 개혁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낙후 생산설비 교체와 효율적인 생산방식 도입에 집중될 것이라고 경제 전문가들이 분석했다. 중국 당국은 과열경제 억제를 위한 거시조절 정책을 지속하되 농촌과 도시의 내수시장, 소비력 제고 등을 추진, 성공적인 연착륙을 전망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거시경제연구원은 내년에 중국 당국의 강력한 경기과열 억제 정책으로 경제성장률이 8.0∼8.5%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9%대에 이르는 올해 성장률보다 1%포인트 이상 낮은 수치이다. 거시경제연구원은 올해 과열 억제정책이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투자수요 확대를 중심으로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내년 고정자산 투자 증가율은 18% 정도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급랭 가능성에 대해 중국 경제는 내년에 연착륙 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에는 이에 따라 내년에도 토지 규제와 함께 신용대출 억제, 철강·시멘트 등 과열업종 투자 억제 정책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oilman@seoul.co.kr
  • 상장사 10% ‘M&A 노출’

    상장기업 10개 중 1개는 외국인의 지분율이 국내 최대주주 지분율보다 높아 경영권 위협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12월 결산 485개 상장사(신규상장, 관리·감자종목 등 제외) 가운데 이달 26일 현재 외국인의 전체 지분율이 국내 최대주주 지분율을 웃도는 기업은 48개로 9.9%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말 39개에 비해 23%가 늘어난 것이며 전체 상장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86%포인트가 상승했다. 이 기업들의 외국인 지분율은 평균 43.83%로 국내 최대주주 평균 지분율 26.87%보다 16.96%포인트가 많았다. 외국인 지분율이 50% 이상인 기업은 12개로 지난해 말의 2배로 늘어났고 30% 이상∼50% 미만이 48개,10% 이상∼30% 미만이 84개,10% 미만이 341개였다. 외국인과 국내 최대주주의 지분율 격차가 가장 큰 곳은 포스코로, 외국인 지분율이 68.75%에 달했으나 최대주주인 포항공과대학의 지분율은 12.55%에 불과했다. 현대산업개발도 최대주주인 정몽규 회장의 지분율이 17.02%로 외국인 지분율 65.77%에 크게 못미쳤다. 소버린 자산운용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에 시달리고 있는 SK㈜의 외국인 지분율은 61.18%로 최대주주 SK C&C의 지분율 17.53%보다 훨씬 많은 상황이다.‘제2의 SK’ 우려를 낳기도 한 삼성물산의 외국인 지분율은 39.53%로 최대주주인 삼성SDI의 지분율 16.04%를 크게 앞서고 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차이나 리포트 2004] (38)한·중 인터넷기업 합작

    [차이나 리포트 2004] (38)한·중 인터넷기업 합작

    한국과 중국 인터넷 업체간 짝짓기가 한창이다.특히 온라인게임 등 양국의 닷컴기업간 제휴가 본 궤도에 올랐다.폭발적인 성장세인 중국의 인터넷 시장과 온라인게임을 중심으로 수익모델이 정착된 한국의 닷컴업계가 일단은 ‘찰떡 궁합’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상하이 구본영특파원| 이미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륙의 온라인 게임시장은 한국 업체들이 장악한 지 오래다.모영주(牟榮宙)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베이징사무소장은 “정보기술(IT)분야에서 현재 중국에 비교우위를 확실히 지키고 있는 분야가 온라인게임 분야”라고 귀띔했다. ●대륙 사로잡은 한국 온라인게임 한국 온라인게임 개발업체들이 게임 개발력과 중국시장 친화적인 서비스 지원 능력 등에서 중국기업은 물론 유럽과 미국·일본 등을 앞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 온라인게임시장을 주도하는 한국 게임은 총량에서 여전히 60%를 차지한다.유료 사용자 확보 등 비교적 성공한 게임에서 한국제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3분의2에 이른다고한다. 엑토즈소프트의 ‘미르의 전설(Mir2)’,웹젠의 ‘뮤(Mu)’,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CCR&CV의 ‘포트리스2’,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등이 중국 게임시장에 안착한 사례들이다. 올 들어서는 인터넷 포털업체 NHN이 중국 최대 게임업체 하이훙(海紅)과 손잡기로 하는 등 한국 게임개발업체들의 중국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역으로 중국업체들의 한국 진출도 두드러지는 추세다.올 들어 중국업체들의 한국 게임기업 인수나 합병 등 기업사냥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BBMF와 차이나닷컴의 자회사인 차이나닷컴모바일인터렉티브(CMIC) 등이 국내 게임개발회사 인수를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이다.상하이샨다가 국내 게임인 미르의 전설을 중국에 서비스하는 등 종전의 한·중 제휴 패턴보다 훨씬 적극적인 방식이다. 완성된 게임 소프트웨어의 중국 판권을 확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 ▲국내 게임개발사에 초기에 투자해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 ▲국내 게임업체를 통째로 인수하는 방안 ▲합작법인을 중국에 설립해 공동개발하는 방안 등으로 중국업체의 한국 게임업계 제휴 및 공략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는 셈이다.중국의 스모(世模)사와 한국의 조이맥스사가 ‘실크로드’를 공동개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중 닷컴기업 윈·윈의 길 이같은 현상은 적어도 단기적으로 한국업계에는 호재다.2004년 현재 4조원 규모인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은 총량적 측면에서 다소간 정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게임 인구가 1400여만명에서 별로 늘어날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의 온라인게임 인구는 현재 2347만명(유료이용자수는 1190만명)으로 추산되나,2006년에는 남한 인구와 맞먹는 4490만명(유료이용자수는 2227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중국 게임시장은 한국업체들에 황금을 캐는 엘도라도는 아닐지언정 개척해야 할 ‘서부’임엔 틀림없다. 이와 관련,베이징에서 만난 리밍청(李明成) 전 중국 국가경제무역위 처장은 “한국이 산업공동화를 우려할 필요없이 어차피 국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제조업은 빨리 중국으로 과감히 이전하고,IT나 금융서비스산업 등을 육성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충고했다.한국측 전문가들의 시각도 엇비슷하다.즉 “중국과의 새로운 형태의 분업구조를 이뤄나가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한갑수 한국산업경제연구원 회장)는 것이다.한마디로 제조업은 중국에 내주더라도 고부가가치인 소프트웨어개발 등 IT시장은 한국이 선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머잖아 한·중간 온라인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기술력 격차가 평준화되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관측도 나온다.중국이 막대한 자본과 저렴하지만 비교적 양질의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인해전술식 연구개발(R&D) 투자를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한·중 양국 업계가 공동으로 게임을 개발해 중국시장에 출시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인지도 모른다.그 과정에서 양국 회사가 그래픽이나 서버 등 기술력이나 게임 콘텐츠 현지화에서 각각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함께 경쟁력있는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으로선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요원을 대량으로 육성하려고 하는 중국의 교육시장을 선점할 필요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정부는 현재 관련 주요 대학에 게임관련 학과를 개설하고,민간 관련 교육센터 설립을 추진중이다.이를 계기로 한국 교육단체가 여기에 진출하는 것은 기왕에 선점한 중국의 게임시장의 맥을 새로 짚어내는 일에 다름 아니다.한국은 교육협력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한편 중국에 한국 게임 개발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소비시장을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물론 이에 앞서 “규제일변도의 ‘게임물 등급분류제도’등을 친시장적으로 개선하는 등 세계 최강 한국 온라인게임의 경쟁력을 안에서부터 좀먹게 하는 제도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국내 게임업체 J사 대표)는 지적이다. kby7@seoul.co.kr ■[기고] 해외투자 활로 찾기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중국의 국내시장은 더욱 개방되고 있고,중국기업 역시 격렬한 국제경쟁 시기에 접어들었다.시장이 개방됨에 따라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 본토에서 생산하고 본국에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기업들이 국제분업 구조 속에서 최하 단계인 제조업의 비교우위에 만족한다면 국제경쟁에서 위험한 지위에 빠지게 될 것이다.이 때문에 국제 경쟁력을 갖춘 중국 다국적 기업을 육성하는 게 기업생존의 절실한 요구조건이다. 중국정부에서는 2000년에 “쩌우추취(走出去·해외로 나가자)’ 전략을 세웠고 2003년 공산당 16전회에서 중국 다국적 기업들의 해외투자를 촉진시키기로 결정했다. 현재 일부 중국기업은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올 5월말까지 상무부에서 비준한 해외 중국기업(누계)은 160여개 국가에 7720개로,이들이 해외에 직접투자한 규모는 300억위안(4조 5000억원)을 초과했다.지난해 중국에서 새로 설립된 외국투자기업(境外企業)은 510개로 전년보다 50%가 늘었다. 중국 해외투자는 거의 절반이 홍콩과 마카오에 집중돼있고 북미,호주,유럽 순이다.무역형 기업이 다수를 차지하고 투자영역은 자원개발과 해외가공무역,농업 및 농산품 개발,관광,상업,자문 서비스 등을 포함한다.부가가치가 낮고 노동집약형 업종이 주류이다. 자원개발형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중소 프로젝트이다.기업 평균 자본규모는 198만위안(약 3억원)이다.자금·경험 부족으로 중국 해외투자는 대다수가 독자·합자기업 방식을 취하고 있다.총체적으로 중국기업의 해외투자는 시작단계에 있다.규모는 작고 업종은 다양하다. 중국정부는 향후 대외투자 규모를 점차 확대하고 해외가공무역·조립을 크게 발전시킨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다국적 합병·인수(빙거우·幷購) 등의 투자방법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해외자원의 합작개발을 강화,석유·가스와 광물 등 자원영역의 탐사·개발·가공합작을 통해 중국의 실용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이외에 ▲해외농업 합작 ▲해외 과학기술자원 밀집지역에서의 연구개발(R&D)센터 건립 ▲서비스 무역 합작 등도 주요 분야다. 해외기업 합작을 위한 국제환경 조성을 위해 지난 1일부터 새로운 ‘대외무역법’이 발효됐다.외환관리제도도 기업의 해외투자를 제약하고 있지만 국가외환관리국에서는 조건을 갖춘 다국적 기업 자체 소유의 외화자금을 해외 운영에 사용토록 개정할 방침이다. 국가외환관리국은 우선 2002년 10월부터 저장(浙江)·광둥(廣東)성 등의 14개 도시를 해외투자 외환관리개혁 실험도시로 지정,외화심사 금액·권리 제한을 풀어주었다.종합 국력을 높이기 위해 대기업과 그룹을 양성·발전시켜 그들로 하여금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게 함으로써 중국 공업화를 추진한다는 중대한 전략이다.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에서는 체제 개혁·구조개혁을 강화,대기업 발전을 위한 견고한 기초를 마련했다.앞으로 행정심사 절차를 간소화하고 기업의 투자주체 지위를 확립,다국적 경영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루퉁(魯桐) 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硏 다국기업연구실 주임
  • 동·서독 통일 15년 경제격차 더 벌어진다

    동·서독 통일 15년 경제격차 더 벌어진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동·서독이 하나가 되기는커녕 양측의 경제·사회·정치적 격차가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3일 분석 기사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 15년후 독일의 현주소를 다뤘다. 독일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329일째인 90년 10월 3일 동독 인민회의가 서독기본법 23조에 의거해 동독의 서독편입을 발표하면서 공식 통일됐다. 우선 경제적 격차다. 통일비용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지금까지 1조 5000억유로(약 21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독일 언론들이 추산하고 있다.결과는 참담하다.옛동독지역의 경제성장률은 연간 1.4%,옛서독은 2.3%다.할레경제연구소의 거시경제부문 책임자인 우도 루드비히는 “양측이 비슷해지려면 동독의 경제성장률이 서독 수치의 최소 두배는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업률은 두배 이상 차이가 난다.지난 8월말 현재 동독 실업률은 18.3%다.통일 직후였던 91년말 16.5%보다 높아졌다.서독 지역의 지난 8월말 실업률은 8.4%다.또 동독 5개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 8000유로로 서독 11개주에서 가장 가난한 주의 2만 2900유로에도 못미친다.동독 주민의 절반이 국가보조금으로 살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은 정치 불신을 가져왔다.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여론조사기관인 유로바로미터가 2000년 동·서독 지역 주민들의 민주주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만족한다.’는 응답은 서독 60%,동독 38%였다.그러나 2003년 같은 조사에서 서독은 66%로 선호도가 늘어난 반면 동독은 32%로 줄어들었다.지난 19일 치러진 주의회선거에서는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사회당(PDS)이 동독이었던 브란덴부르크와 작센에서 각각 28%와 23.6%의 지지를 얻었다.반면 야당인 기민당은 브란덴부르크에서 19.4%,집권당인 사민당은 작센에서 9.4%의 지지를 얻는데 그쳤다.현 정부는 5년전 베를린으로 수도만 옮겼을 뿐 “서독 사람을 위해 서독 사람이 운영하는 정부”라는 게 PDS측 주장이다. 현 난국은 정부가 자초했다는 지적이다.통일 직후 동독 화폐인 오츠마르크와 서독의 도이치마르크를 금융당국의 경고를 무시한 채 ‘정치적 고려’로 1:1로 전환하면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장치를 없앴다.또 비생산적인 자산을 주로 지원하고 신산업에 대한 세금지원을 꺼려 동독 경제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했다. 통일비용이 늘면서 경제부담이 늘고 지난해 독일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자 서독 내부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독일 여론조사기관인 포르자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결과 서독인의 24%가 베를린 장벽의 복원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동독경제의 성장은 동독만의 문제는 아니다.동독재건위 위원장인 클라우스 도흐난위는 “서독이 GDP의 4%를 동독에 쏟아붓는 한 정부의 어떤 경제개혁도 소용이 없다.”며 “동독에 대한 지원방법을 전면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경고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깜짝 M&A’ 주의보

    국내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전체 상장회사(674개)의 4.6%인 31개사가 외국인 투자자에 최대주주 자리를 내준 가운데 외국인이 2대 주주로 부상한 기업도 전체 상장회사의 5분의1을 넘어섰다.특히 최대주주와 외국인 2대 주주 간의 지분율 격차도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지난해 소버린자산운용(영국)의 SK㈜ 경영권 인수 시도에서 드러났듯 외국인들의 국내 주식시장 참여 확대가 곳곳에서 토종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외국인이 2대 주주인 기업 19% 증가 15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이 2대 주주인 상장회사는 138개로 지난해 말보다 19.0%(22개사) 늘었다.최대주주와 외국인 2대 주주간 지분율 격차가 10% 이내인 기업이 14개에 달하는 등 조만간 1대와 2대 주주의 위치가 뒤바뀔 곳도 늘고 있다.쌍용자동차 2대 주주인 JF자산운용㈜의 지분율은 11.07%로 최대주주인 대우중공업(11.22%)과 불과 0.15%포인트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흥아해운도 최대주주인 윤효중씨가 13.41%를 보유하고 있지만 2대주주인 페어몬트파트너㈜는 이보다 0.34%포인트 적은 13.07%를 확보한 상태다. 코오롱유화와 대구은행의 외국인 2대주주와 최대주주간 지분율 격차도 각각 1.03%포인트와 1.25%포인트에 불과하다.SK㈜와 전북은행의 외국인 2대주주 지분율도 최대주주 지분에 각각 2.59%포인트와 2.97%포인트 못 미친다. ●경영권 인수관심 급증 외국인의 국내기업 경영권 위협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올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순매수 기조를 유지하며 보유 지분을 꾸준히 늘려온 데 따른 것이다.상장기업 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6월 말 35.6%에서 올 7월 말에는 43.9%로 급등,불과 1년여 사이 8.3%포인트나 뛰었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진 것은 외자도입이나 합작 등 우호적 지분참여로 이뤄진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도 있어 경영권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면서 “특히 최근 들어 외국인들이 배당이나 주가차익 등 투자성과를 높이기 위해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사들인 주식을 주식시장에 내다 팔기보다는 경영권을 확보한 뒤 여기에 프리미엄을 얹어 기업매각을 하려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증권업계는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시가 국내 투자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것도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한 증권사 관계자는 “5%룰(지분율이 5%를 넘으면 공시를 해야 하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외국인이 펀드를 지분율 3∼4% 정도로 맞춰 여러 개로 분산해 들어올 경우 경영권 공격을 미리 알아채기 힘들다.”고 말했다. 증권연구원 노희진 연구위원은 “평소 대주주가 우호지분 확보나 자사주,우리사주제도 등을 활용해 단단히 방어막을 쳐야 할 것”이라면서 “특히 경영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해야만 외국인들이 단순히 높은 지분율을 내세워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다음네티즌이 꼽은 서울신문] 파업이 보약된 기업들

    |서울신문 김경두기자|‘악재 뒤집어 보니 전화위복(?)’ 노조의 전면 파업에 따른 일부 대기업의 ‘대차대조표’가 예상과 달리 밑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향후 경영 환경을 감안하면 무형의 자산까지 얻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칼텍스정유는 업계 초유의 파업을 겪었지만 노조의 ‘백기 투항’으로 손실을 어느 정도 만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LG정유는 파업에 따른 공장가동 중단으로 유·무형의 손실이 수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그러나 성과도 적지 않다.우선 파업으로 재고물량을 소진했다.또 매년 단협 타결 이후 직원(2500명)들에게 지급했던 200%의 성과급과 100만원 안팎의 격려금을 올해는 파업 때문에 생략했다.LG정유의 연간 성과급은 450% 수준이다. 가장 큰 소득은 향후 노사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게 됐다는 점이다.파업을 내세워 해마다 사측을 압박한 노조에게 명분 없는 파업은 성공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주지시킨 사실이다.매년 사측의 일방적 양보로 단협을 타결시킨 전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대신증권 안상희 연구위원은 “LG정유가 유가 강세라는 기회 비용을 날려버린 측면이 있지만 성과도 적지 않았다.”면서 “구체적으로 손익을 따졌을 때 큰 타격은 입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00자 의견 ●배부른 노조를 비난하다가… 아이 옹호자님 기업가들과 주주들 배만 불려줬잖아.나같음 차라리 배불러 터진 노조에 먹을 걸 주겠다. ●솔직이 rivaldo님 대기업 생산직에 들어가고 싶다.정말이지 대졸이라는 경력을 속여서라도 가고 싶다. ●기업의 성장력 대비 임금상승은 이미 포화상태 해커님 이젠 임금의 격차를 줄여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 복지를 개선해야지 귀족노조들의 횡포에 힘 없는 노동자와 국가경제가 망가져선 안됩니다. ●빈익빈 부익부를 양산하는 시장원리 반대 포도님 사장과 임원,관리자들의 능력(?)이 있다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관리하는 능력이겠지요. ●포도님 참 답답하군요 hsnsk730님 기업 임원은 능력과 시장원리에 의해 연봉을 받습니다.그러나 귀족노조들은 시장원리가 아니라 집단적 힘에 의해 임금을 받는 것 아닙니까? ●결론이 뭐냐 dogssegi님 파업하면 항상 교섭하지 말고 공권력 투입해서 때려잡자 이 말이냐?
  • [차이나 리포트 2004] (21) 조선족사회의 명암

    [차이나 리포트 2004] (21) 조선족사회의 명암

    |옌볜(중국 지린성) 김규환특파원|“한국을 너무 고맙게 생각합니다.무엇보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사업 기반을 잡은 덕분이죠.위성방송을 통해 한국 기업의 성공·실패 사례를 보면 사업을 하는 데 많은 도움도 되고요.”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시에서 한국 음식점 ‘징시궁(慶熙宮)’을 운영하는 김은자(金銀子·44) 사장은 기자를 보자마자 한국에 대한 감사의 마음부터 건넸다.그는 “한국에 간 조선족들 가운데 임금도 제대로 못받고 차별대우를 받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대부분 돈을 벌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김 사장은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 파출부 등 밑바닥 생활을 하며 모은 15만위안(약 2300만원)으로 음식점을 시작,지금은 250만위안(3억 7500만원)을 투자한 직원 40명의 대형 음식점 사장으로 변신해 ‘코리아 드림’을 이룬 대표적 인물이다. ‘옌지 베이싱(北興)제과’의 김영숙(金英淑·60 사장도 한국에서 배운 제과기술을 발판으로 백만장자 반열에 올랐다.옌지에만 10여개의 제과 체인점을 두고 있는 그는 자산 6000만위안(90억원)대의 ‘재벌’이다.옌지백화점에서 양복점을 경영하는 허창호(許昌浩·42)씨도 한국 기술을 익혀 ‘준재벌’로 성장했다.91년 한국 명동의 한 양복점에 취직,재단기술을 배운 뒤 양복점을 차려 승승장구,10여명의 재단사 등을 거느린 중소기업 사장이 됐다.수입이 적은 날이라도 2000위안(30만원)은 너끈히 번다고 한다. ●10년 모은돈 한국行에 ‘올인’ 중국 조선족은 한국이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엘도라도(황금마을)’라고 여기고 있다.한국에 들어가 2∼3년 일해 착실히 돈을 모으면 집을 사거나 조그마한 가게를 마련하는 등 생활기반을 잡을 수 있다.한국행을 위해 10년 가까이 한푼도 안쓰고 모은 7만위안(1050만원) 정도를 몽땅 털어넣거나,목숨을 건 밀항을 서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린성 룽징(龍井)시의 즈신(智新)진 신화(新化)촌.옌볜 지역 주민들이 ‘전입 희망’ 1순위로 꼽는 마을이다.300가구 중 290여가구가 조선족인 마을의 절반 이상이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있다.이들이 한국에 많이 나가는 이유는 즈신진 정부가 창춘(長春)에 노무기지를 건설해 보증을 서주는 등 대(對)한국 노무 수출을 적극 지원하기 때문.비자 수속비는 전문브로커의 3분의1밖에 안되는 2만 6000위안(390만원)이다. 이곳에서 만난 조선족 박정길(朴貞吉·47)씨는 “한국에 한번 나갔다 오면 아이들을 도시에 내보내 교육을 시키거나 집을 사는 데 쓸 수 있는 돈을 벌어오기 때문에 살림이 활짝 펴진다.”며 “한번 나가 평균 5년 체류해 30만위안(4500만원) 정도를 버는 것 같다.”고 말한다.중국인 천쉐제(陳學杰·63)는 “옌볜 전체에서 한국에 나가는 사람이 20%도 안되는데,유독 이곳만은 50% 이상이 한국에 나가 인근 주민들이 부러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덕분에 옌볜 지역의 경제는 탄탄해지고 있다.10여년 전만 해도 이 지역은 중국 안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사회였다.하지만 90년대 초반부터 한국 바람이 불면서 양상이 바뀌어 조선족 사회가 중국 어느 지역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현동일(玄東日) 옌볜대 경제·관리학원 원장은 “옌볜 조선족자치주의 경우 조선족이 한국에 나가 벌어온 외화수입이 재정수입보다 더 많다.”며 “지난해 외화수입 6억 5000만달러(7800억원) 가운데 대부분이 한국에서 벌어들인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발전 이면에는 악재도 생겼다.벌어온 돈의 대부분이 생산에 투자되기보다 대부분 소비산업에 쓰이고 있는 탓.옌볜자치주의 주도(州都)인 인구 30만명의 옌지가 택시 5000여대,나이트클럽·다방·사우나 등 소비업소 1000여개가 난립해 들어서는 바람에 유흥도시로 전락한 것이다.박창욱(朴昌昱) 옌볜대 민족연구소 교수는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조선족은 한국에 가는 기회가 많아 자본주의를 학습하는 기회가 생겨 도움이 됐다.”면서 “그러나 한국 바람이 불면서 조선족 사회는 과소비 풍조와 한국에 나가지 못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등의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이트·사우나등 난립 유흥도시로 전락 특히 ‘조선족 사회의 해체’라는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조선족 젊은이들이 코리아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몰려 가는 바람에 옌볜내 농촌지역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지린성 허룽(和龍)시에서 만난 고성자(高成子·72) 할머니는 “조상들이 피땀 흘려 일궈놓은 땅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며 “하지만 요즘 농촌에는 노인들밖에 없어 삶의 터전이던 땅이 한족에게 넘어가고 있어 억장이 무너진다.”고 털어놨다.따라서 현재 옌볜은 이름만 조선족자치주일 뿐 정치·경제적으로 한족이 압도적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 ‘정체성의 혼란’도 겪고 있다.옌지에서 만난 조선족 김달영(金達永·35·택시운전사)씨는 “중국 조선족은 한족으로부터 소수민족이라고 냉대받고,북한으로부터 자본주의에 물들었다고 비난받으며,한국인으로부터는 못산다고 무시당하는 등 ‘안팎곱사등이 신세’”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khkim@seoul.co.kr ■ [기고] “조선족 시장경제 적응력 뛰어나” 중국에는 한족(漢族) 외에 55개 소수민족이 있다.2000년 기준으로 12억 4300만명 중 소수민족이 8.4%이다.비율은 크지 않지만 이미 1억명을 초과했고 국토 면적의 64%에 분포돼 있다. 소수민족의 평등 권익과 경제발전 보장 측면에서 중국처럼 과중한 임무를 가진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다.민족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중국의 성공적 경험은 인류사회에 커다란 공헌이다. 중국의 민족정책은 ▲정치평등 ▲경제발전 ▲문화번영 ▲사회보장을 특징으로 한다.민족구역 자치제도를 주체로 비교적 완성된 국가정책의 하나이다. 민족자치제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기본 정치제도의 하나로 법률적 보장은 1984년에 반포,2002년에 수정된 ‘중화인민공화국 민족구역자치법’이다. 소수민족 집중 거주지구는 민족·지구 특징에 따라 5개 자치구,30개 자치주,120개 자치현이 건립됐다.법률규정에 의해 민족 자치지방의 정부 최고급 영도는 소수민족이 담당한다. 동시에 55개 소수민족은 인구와 상관없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대표가 된다.소수민족의 정치적 평등 지위는 물론 경제발전·문화교육·의료위생 등 사회 각 방면의 권리를 보장해 주고 있다. 중국의 현대화·도시화 발전 과정에서 더욱 많은 소수민족들이 도시로 진입하면서 ‘도시 민족사업조례’를 제정,이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측면에서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중국내 조선족(朝鮮族)은 2000년 인구 통계로 보면 192만 3400명이다.주로 중국 지린(吉林·114만명),헤이룽장(黑龍江·38만명),랴오닝(遼寧·24만명) 등 성·자치구에 분포됐다.지린성 옌볜조선족 자치주는 84만명으로 전체 조선족의 43%를 차지한다.이외에 4개 성 자치구와 47개 민족향을 건립했다. 조선족은 근면하고 창조 정신이 뛰어나고 교육을 아주 중시한다.문화교육 수준에서 중국 소수민족 중 제1위이고 전체 지표도 한족보다 높다.중국에서 유일하게 문맹이 없는 민족이다. 현대화 과정에서 조선족은 시장경제에 적응하는 능력과 개척성이 뛰어나다.농촌 노동력의 도시 이전 붐에서 조선족은 대외 노무수출에 참여하고 중국의 동남 연해지구 및 중심도시로 진입하는 비율이 매우 크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조선족 인구는 하강하고 있다.대량의 인구가 고향을 떠나 외지로 취직을 위해 떠났으며 결혼 연령에 도달한 여성들이 아주 많다.일부 농촌에서는 젊은 여성들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조선족 농촌의 성비율은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지리적 관점에서 보면 소수민족은 주로 지역이 넓고,자원이 풍부하며 경제기초가 빈약한 서부 지구에 몰려 있다.2만 2000㎞의 국경지역에 30여개 소수민족의 집중거주 지역이다. 이 때문에 중국정부는 지역균형 발전과 민족 문제 해결을 위해 서부 대개발 전략을 제기했다. 다민족의 평등·단결을 실현하려면 공동의 물질적 기초가 필요하다.민족간의 빈부격차가 있다면 사회의 공정과 평등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족 문제는 장기적이고 복잡한 문제다.21세기 중반까지 중국이 중등발달 국가의 현대화 목표를 실현하려면 민족 문제를 포함한 기타 사회 문제도 잘 처리해야 한다.민족구역자치제도를 포함한 중국 민족정책 시스템도 시대의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완성해야 한다. 허스위안 中,사회과학원 인류학연구소장·중국 민족학회 회장
  • 저축銀에 돈 몰린다

    저축銀에 돈 몰린다

    주부 박모(50)씨는 지난달 부동산을 처분하고 얻은 2억여원을 어디에 둘까 궁리한 끝에 결국 H저축은행 정기예금에 넣었다.4000만∼5000만원씩 아들,딸 등 가족명의로 분산해 여러 개의 통장을 만들었다.박씨는 “대형 저축은행이어서 나름대로 안전한 듯 하고,사고가 나도 1인당 5000만원까지는 원리금 보장이 된다고 해서 처음으로 저축은행을 찾았다.”고 말했다.회사원 윤모(34·서울 송파구 문정동)씨는 지난주 은행예금 3000만원을 빼내 동네 J상호저축은행의 1년짜리 정기예금에 넣었다.은행에는 1년동안 묻어놔 봤자 이자가 100만원 남짓에 불과하지만 저축은행 금리로는 170만원이나 됐다. 삼화저축은행 서울 삼성동지점은 지난 20일 하루에만 10억여원의 신규예금을 유치했다.정진희 팀장은 “지난 12일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하 이후 슬슬 늘기 시작한 일일 수신고가 4억∼5억원대로 커지더니 급기야 10억원을 돌파했다.”면서 “지난해 이맘때 600명선이던 1억원 이상 예금고객도 지금은 130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하루새 예금 10억원 이상 증가” 정책금리(목표 콜금리) 인하,실세금리 하락 등으로 은행 예금이자가 갈수록 쪼그라들면서 금리를 상대적으로 높게 쳐주는 상호저축은행에 가계자금이 몰려들고 있다.현재 저축은행의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는 업체에 따라 5.4∼6.0%선.은행권 3.4∼3.6%에 비해 최소 2%포인트 이상 높다.이 때문에 미세한 금리차에도 민감한 서울 강남지역 부자들이 대거 이쪽을 찾으면서 은행 PB(프라이빗뱅킹·부자고객 자산관리)센터와 저축은행간 경쟁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22일 상호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업계 총 수신고는 30조 2000억원으로 지난해 말(26조 9400억원)보다 12.1%가 늘었다.같은기간 예금은행(일반은행+특수은행)의 실세총예금은 515조 5000억원에서 506조 9000억원으로 1.7%가 줄었다.이달에는 콜금리 인하에 따른 고객이동이 더욱 심해져 증감률 격차가 더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금이자 내려도 고객은 더 늘어 특히 일부 저축은행들은 금리를 낮췄는데도 예금이 오히려 증가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현대스위스은행은 콜금리 목표가 인하된 지난 12일,1년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연 5.6%에서 5.4%로 내렸지만 여기에 아랑곳없이 수신고는 매일 꾸준히 2억∼3억원씩 늘고 있다.윤춘섭 전략기획실장은 “다른 때 같으면 금리인하 이후 예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을 텐데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면서 “주식 등 위험자산 투자를 기피하는 50∼60대 이자소득 생활자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안정적 소득을 위해 변동금리보다는 확정금리형 상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강남 테헤란로 100m마다 저축은행 서울 대치동,도곡동,청담동,압구정동 등 부자들의 접근이 쉬운 테헤란로 일대는 저축은행간은 물론,저축은행과 은행 PB센터간 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다.서울에 본사를 둔 27개 저축은행의 60%인 16개가 강남구(14개),서초구(2개) 등 강남지역에 몰려 있다.특히 서울 지하철 2호선 삼성∼선릉역 사이에는 100m 간격으로 삼화,솔로몬,한솔,현대스위스 등 10여개 대형 저축은행들이 밀집해 있다. 이에따라 저축은행이 ‘서민금융’으로서 원래 기능을 저버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한국금융연구원 서근우 연구위원은 “그동안 서민금융 확대에 기여해 온 상호저축은행들이 은행수준의 예금자보호(1인당 5000만원) 적용을 이용해 PB영업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에 갈만한 신용도가 안돼 저축은행을 찾는 사람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운용수익(대출이자와 예금이자의 차이)을 내기가 쉽지 않아 예금증가가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다.”면서 “이에따라 이달 말까지 개별 저축은행들의 총회가 끝나는 대로 금리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그는 “저축은행을 이용할 생각이 있다면 금리가 떨어지기 전에 확정금리형 상품에 가입하는 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균 김유영기자 windsea@seoul.co.kr
  • [차이나 리포트 2004] (17)마이카 붐의 허와 실

    [차이나 리포트 2004] (17)마이카 붐의 허와 실

    올 들어 중국의 마이카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2003년 승용차 생산량이 전년보다 배가 늘어난 200만대를 넘어서면서 막연히 보고서 전망치 속에 갇혀 있던 마이카 시대는 광저우(廣州),상하이(上海) 등 연해지역의 고소득 도시와 베이징(北京),톈진(天津),선양(瀋陽),다롄(大連) 등 기타 주요 도시에도 도래하게 됐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 말 국내외 모든 자동차 전문예측기관은 중국 주요도시의 자동차 대중화 또는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의 시작을 2005년쯤으로 전망했다.WTO 가입 당시 중국의 수입 승용차 관세는 80%에 달했으나,2006년에는 25%로 하락해 국산 승용차 가격하락을 유도,주요 연해도시에서 마이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게 당초 예측이었다. ●너무 일찍 찾아온 마이카 시대 최근 통계에 의하면 현재 베이징의 자가용 보유대수는 128만대로 해마다 27만대씩 늘고 있다.상하이의 자가용 보유대수도 25만대로 연간 50% 이상 급증하고 있다.2001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승용차와 개인용 차량 보급이 늘어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90년대 자동차 수요의 대부분을 점유하던 ‘관용차’의 퇴장이다.한국의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려는 상하이기차(SAIC)와 독일 폴크스바겐 합작사인 상하이VW에서 1984년부터 생산한 배기량 1800∼2000㏄급 승용차인 싼타나(Santana)의 경우 90년대 생산된 200만대 중 70%가 관용차로 구매된 바 있다.2000년부터 중국정부는 예산절감과 기구축소를 목적으로 ‘관용차’와 기사제도를 없애고,관용차 운용에 필요한 자금을 해당 공무원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해 자가용을 사서 스스로 운전하도록 유도했다.관용차 제도의 개혁은 각 부처 국유기업으로 확산됐다.그 결과 2001년 자가용 보유대수가 770만대에서 불과 2년 만인 2003년에는 58.3%가 늘어나 1219만대에 달하게 됐다. 둘째는 정부의 승용차 구입장려 정책이다.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할부금융을 통해 개인의 승용차 구매를 장려한 점이다.국유 상업은행의 자동차 대출은 1999년 말부터 허용됐으며,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15만위안(약 2250만원)이 넘는 배기량 2000㏄급 승용차의 경우 차 값의 최대 90%를 최장 5년 4.5% 금리로 대출받아 살 수 있다. ●늘어나는 자동차의 명암 자동차의 급격한 대중화는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실대출의 증가다.중국정부는 2004년 초부터 철강·부동산·자동차 등 일부 투자과열 산업에 대해 강력한 억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고,여기에는 자동차 대출도 포함돼 있다. 2004년 5월31일 중국 언론에는 다소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됐다.2003년 11월 말 현재 자동차 대출잔액은 1800억위안이 넘었으며 이중 은행이 자체적으로 회수불능 판정을 내린 대출잔액은 52.5%인 945억위안에 달한다는 것이다.2003년 말 중국이 밝힌 주요 국유상업은행의 부실채권 총액은 2조 1100억위안.이중 무려 4.5%가 불과 3년 전에 시작된 ‘신생’ 자동차 대출에서 초래된 불량자산이라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개인신용평가제도 부재를 들 수 있다.중국은 아직 전국적인 통합 전산망을 통해 신용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이 시기 자동차 판매영업소의 광고문구는 ‘당신의 한달 월급으로 자가용을 마련하세요.’였을 정도다.결국 상환능력이 없는 월소득 5000위안(75만원) 정도의 소비자가 A은행에서 대출로 차를 구매하고,이를 상환하지 않으면 A은행에 돌아오는 것은 가치가 떨어져 팔리지도 않을 압류 중고차뿐이다.도덕적 해이에 빠진 소비자는 A은행에서는 신용불량자이지만,다시 B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새 차를 구매하는 악순환이 몇 년간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마이카 시대의 도래로 중국이 겪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도로망 부족과 자동차 문화 부재로 인한 교통사고 증가다.자전거와 뒤엉킨 도로 위에서 비보호 좌회전이 일상화된 중국내 주요 도시에서의 크고 작은 사고는 불가피해 보인다.경력이 오래된 택시기사나 회사 기사들이 새로 나온 자동차 번호판을 보고 나서 ‘초보 운전자’를 피해 다니는 일은 베이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2003년 10만 4000명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중국은 자동차 사망자 수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구조적인 문제점과 향후 전망 중국 자동차산업 하면 단골 메뉴로 여러 회의나 보고서에 등장하는 말이 ‘중복 투자’다.이는 연간 생산규모 444만대의 중국에 완성차 메이커는 96개사에 달한다는 점이며,이중 기본적인 규모의 경제 시현이 가능한 연산 100만대급 대기업은 한 곳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물론 상하이기차,중국일기 등 2대 그룹은 연간 80만대 규모이나,1사당 생산량을 단순 계산하면 4만 6000대라는 결과가 나온다.이렇듯 31개 각 성(省),시(市)에 자동차 메이커가 분산돼 있고,이들 지방정부는 모두 자동차산업을 지역 육성전략 산업으로 지정,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이러한 산업적·지역적 연유로 중국의 마이카 붐은 앞으로도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될 전망이다.자동차 불량대출의 경우 중국 중앙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출기한 단축과 대출비중의 축소에 불과하다.급기야 가장 많은 자동차 대출 불량자산을 보유한 농업은행은 올 8월부터 개인용 자동차 대출을 중지했다.그럼에도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중국의 마이카 붐은 다소 문제점이 많은 조급함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그러나 한국 돈으로 1억원이 넘어가는 아파트보다는,그 10%에 불과한 자동차를 먼저 사겠다는 중국인 동료와 결혼식까지 미루어가며 ‘찜’해 두었던 중고차를 구입하려는 그의 또 다른 친구들이 하루하루 거대한 소비군으로 자라나고 있는 한 중국에서의 진정한 ‘마이카 붐’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베이징 김동하 포스코 경영연구소 연구위원 dhkim@posri.re.kr ■ 빈부격차로 계급갈등 심화 |베이징 이석우특파원|심화되는 빈부격차로 중국사회에 빨간 불이 켜졌다.이로 인해 계급간 적대감이 확대되고 있을 뿐 아니라 빈부격차가 고스란히 세습되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중국사회과학원 사회과학연구소 리웨이(李) 박사는 “후진타오·원자바오의 신 정부는 전과 달리 인민내부의 계급간 모순을 언급하면서 그 심각성을 주시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1995년 무렵부터 계급간 긴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설명이다.그는 이어 “권력유착을 통한 축재와 불로소득의 척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압력이 커가고 있는 것이지요.”라고 덧붙였다. 안후이성 부성장 왕화이중(王懷忠) 사형선고,랴오닝성 부성장 류커톈(劉克田) 면직 및 사법심사,선전시 전 부시장 왕쥐(王炬) 20년형 등 고위급 관리들의 부패에 대한 사법처리도 이같은 사회적 압력에 부응하기 위한 공산당의 안간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간 계층은 엷고 부자·빈자로 구성된 양극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어 사회불안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지난해 상하이의 경우 18%의 소비지출 증가는 자동차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진행됐다는 조사결과도 부익부 빈익빈의 진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변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과 관련,리 박사는 노동자계급의 급격한 지위하락을 꼽았다.“노동자계급이 영도하는 나라란 과거 헌법규정은 역사책에만 남아 있지요.어느 특정계급에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장쩌민 전 주석이 퇴임 직전 헌법에 삽입한 3개 대표론도 기업가 등 전국민,전계층이 나라의 주인임을 명시한 것입니다.” 중국 사회는 제도상 혁명적인 변화를 앞두고 있다.호구제도의 폐지가 그것.리 박사는 “정부가 호구제의 전면 폐지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빠르면 올해나 내년 중에는 결정이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도시민과 농민이란 이원적 호적제도에 따라 자유로운 거주이전을 막아 왔는데 열린 사회로의 진전이 이뤄지면서 사회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농촌 등 다른 지역에서 대도시로 유입돼 온 부모들의 자녀들도 호구제란 제도로 인해 의무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자녀 교육을 위해선 한 학기에 600∼800위안가량의 학비를 납부해야 한다.농민의 자녀,호구를 얻지 못한 저소득 전입 인구의 자녀들은 돈을 내지 못해 의무교육의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리 박사는 호구문제가 해결돼도 “재정문제를 감안할 때 향후 10년 안에 외래 유입자의 자녀들이 의무교육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교육기회의 불평등으로 인한 빈곤 세습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사회주의 초급단계론’에 기초를 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의 진전이 남미처럼 엷은 중간계층에 부자와 빈자로 양분된 양극 계층구조로 굳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swlee@seoul.co.kr
  • [차이나 리포트 2004] (16)부상하는 중산층

    [차이나 리포트 2004] (16)부상하는 중산층

    중국에서 중산층이라는 단어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인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신개념이다.노동자와 농민 등 무산계급(無産階級)에 의해 1949년에 성립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서문에서는 무산계급이 타도해야 할 주적으로 자본가와 소자본 기업주를 들어왔지만,이제 이들은 중산층의 가장 큰 구성원으로 등장했다. 중국 중산층에 대한 정의는 자가용과 주택을 소유하고,연소득이 1만위안(1207달러)에서 20만위안(2만 4154달러)에 달해야 한다는 등,그 격차만큼이나 인식과 의미가 혼재되어 있다.그러나 현대 중국 경제사회의 주류를 형성해 나가고 있는 이들은 공산당이나 국유기업이 아닌 중산층이다. ●중국 사회계층의 변화 중국이 개혁·개방을 결정한 1979년 이전 중국의 계층은 3단계로만 구분되어 왔다.즉 노동자(工人)계급과 농민계급 그리고 지식분자(知識分子) 계층이 그것이다.개혁·개방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노동자 계급은 육체 노동자,사무직원(화이트 칼라),당정 및 국유기업 간부 등 5개 계층으로 세분화됐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이후 새로운 계층이 중국에 등장하게 되는데,학교·기업·정부에서 뛰쳐나온 교사·연구개발(R&D)인력·공무원들이 민영기업을 창업한 경우다.또한 전문직 종사자는 중국이 법치화를 위해 90년대부터 회계법,변호사법 등 각종 법률을 제정하면서 생성된 계층이다. 결국 중국에서도 선진국의 중산층과 유사한 성향을 가진 계층이 등장하게 된다.중국에서는 1999년부터 덩샤오핑이 주창했던 선부론(先富論)에 입각,이들 계층을 포괄하여 선부계층(先富階層)으로 지칭하고 있다. ●중간 계층의 등장과 10대 계층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중산층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기점은 2001년 12월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작성한 당대 중국 사회계층 연구보고서가 발표되면서부터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중국 중산층은 서구의 중산층 개념이 포함하고 있는 ‘사유재산’ 혹은 ‘사유영역’을 통해 형성된 계층이 아니라는 이유로 ‘중간계층’이라는 표현이 더욱 중국 실정에 부합한다고 밝히고 있다.그러나 사회과학원에서 소득구성 구조를 설명하고 있는 경제적 개념을 보면,서구 중산층과 일치한다.노동자,농민,지식분자로 삼분되어 오던 중국의 사회계층은 이제 10대 계층으로 분화된다. ●중국 중산층의 특징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밝힌 중국 중산층의 경제·사회적 특징을 보면,우선 엔지니어링 설계,기술자 등 정신 노동자이며,중간급 간부로서 소속 부서와 그 구성원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수입은 전체 사회의 중간수입 수준에 해당되며,1인 개인소득은 연간 2만 5000∼3만 5000위안(3019∼4227달러) 정도이고,1가구 3인,맞벌이 가정 기준으로 가구당 연수입은 5만∼7만위안(6039∼8454달러) 수준이다.2002년부터 중산층을 특징짓거나 구성하는 요소로 자동차와 주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또한 2003년 7월 7387명의 중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피설문자의 44%는 주택 및 자동차 보유를 중산층 진입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원 관점과는 달리 여러 실증자료를 검토하면 중국 중산층의 연수입은 12만위안(1만 4495달러)으로 추정된다. ‘연수입 12만위안=중국 중산층’이라는 기준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실제소득과 음성소득간의 관계이다.중국 통계연감에서 보여지는 실제 소득과 각종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나는 총소득간의 차이를 계산하여 산출한 음성 소득비중은 실제소득의 15% 이상이며,가장 많게는 50%에도 이른다. ●중국 중산층의 규모 중국 사회과학원은 당대 중국 사회계층 연구보고서에서 최초로 평등사회를 추구했던 중국 사회를 상,중상,중중,중하,하 등 5등급으로 나누어 분류한 바 있다.여러 사회계층 가운데 중·고급 당·정 간부,대기업 간부,고급 전문기술 인원,대형 사영기업주 등은 사회 상층으로 분류되었으며,중간급 관리 간부들은 중상층으로,초급 기술인원과 소기업주 일반사무원 등은 중중층에 분류되었다.사회과학원이 규정한 중국 중산층은 이들 5등급 중 중상층,중중층,중하층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등급별 각 점유비율은 18.5%,37%,44.5%에 이른다. 2002년 7월 중국 국가통계국 도시 거주민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가정의 48.5%가 15만∼30만위안(1만 8116∼3만 6232달러)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따라서 중국 인구(12억 8400만명)의 39.1%를 점유하고 있는 도시 거주민 5억 212만명 중,7079만가구(2억 4300만명,1가구 3.44명 기준)가 넓은 의미의 중산층에 속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중국 중산층을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저축 규모를 통해서다.2003년 3월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발표에 따르면 2003년 2월 말 현재 인민폐 및 외화예금 잔고가 1조위안을 초과해 1조 300억위안을 기록했다.가장 최근에 밝혀진 예금구조를 살펴보면 국내 예금잔고의 51%는 상위 20%의 소수 예금자가 보유하고 있음이 나타났다. 이상과 같은 자료에 근거하면 현재 중국의 중산층 규모는 9000만명에서 2억 4300만명(2616만∼7079만가구) 규모로 추산된다. ●중국에서 중산층의 역할과 의미 후진타오(胡錦濤) 신정부는 중산층 육성전략(擴中·保低·調高)을 추구하고 있다.이중 중간층 확대(擴中)는 분배제도 개혁을 통해 중간관리층과 기술직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입을 제고하는 것이다.극빈층 보호(保低)는 농촌 도시화 정책을 추진하여 농촌 잉여 노동력이 도시 혹은 비농업 취업 시스템에 편입되도록 하여 저수입층인 농민의 최저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상위층 조절(調高)은 개인소득세 개혁을 가속화하여 고소득 수입자의 세금부담을 조정하여 자연스러운 부의 환원을 시도하는 것이다.결론적으로 이러한 중국 중산층의 등장과 중국 정부의 중산층 확대정책은 정치적 성향은 다를 수 있으나 경제적 자유로움의 향유 추구라는 공통 이익목표를 가진 거대 사회계층을 형성시킬 것이 분명하다. 베이징 김동하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 dhkim@posri.re.kr ■ [기고] 간부층이 유일한 권력집단 아니다 중국사회의 계층구조 변화는 ‘새로운 세대의 중국인’의 움직임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중국 사회의 향후 변화를 알려면 개혁·개방 이후 새로운 중국인의 발전기회와 이 기회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이들이 개혁·개방 20여년 동안 중국사회 변화의 추진력이기 때문이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좌경 정치’ 의식 형태의 틀에서 중국사회 구조는 2개 계급,1개 계층(노동자·농민 계급과 지식분자 계층)의 신분 등급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하지만 1978년 공산당 11기 3중전회 이후 개혁·개방 전면 실시로 고도로 집중된 중앙집권 계획경제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전환됐다.전통 농업사회는 현대 공업사회로,봉쇄 구조가 개방 구조로 변화된 것이다. 개혁·개방은 중국 사회구조,계층구조의 변화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국가에서는 많은 자원을 사회 혹은 시장에 넘겨주었다.중앙집권 재분배 제도가 인민들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시켰고 사회적 자유도를 높였다. 사회 분화 진전에 따라 일부 신 사회계층이 탄생했고 다양한 사회 계층 사이에서 경제사회 지위를 변화시킨 것이다.이에 따라 전통적 이원신분 시스템이 붕괴·와해되면서 신분 등급 차별은 점차 사회적 의미를 잃었다. ‘도시-농촌 이원화 신분’은 여전히 존재하나 도시로 밀려오는 농촌 노동자(民工)에 의해 점차 파괴되는 과정에 있다.간부 계층도 속출하는 민영기업인과 학술·연예계 스타들의 탄생과 함께 중국사회의 유일한 권력 집단이 아니다.계급·계층 구조는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게 된 것이다. 국가제도가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던 시대는 기본적으로 끝났다.사람들은 출신 배경과 사회적 관계,개인의 노력에 따라 새로운 사회 계층구조 시스템에서 자신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중국 사회과학원이 내놓은 ‘중국사회구조 변화연구’에 따르면 2001년 기준으로 현재 중국 사회엔 10개의 다양한 사회계층이 존재한다. 즉,1.국가·사회 관리자(2.1%) 2.매니저(1.6%) 3.민영기업인(1.0%) 4.전문기술인력(4.6%) 5.행정·사무직(7.2%) 6.개인 공·상업자(7.1%) 7.서비스 계층(11.2%) 8.산업 노동자(17.5%) 9.농업 노동자(42.9%) 10.실업·반실업자 계층(4.8%) 등이다. 문제는 사회계층 구조에서 최하위 계층(노동자·농민)이 점한 비중이 매우 크고 중간층 비율이 적다는 점이다.2001년 기준 중간층은 전체 노동인구의 15% 안팎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빈부 격차는 전면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이다.빈부차를 가늠하는 지니계수는 91년 0.282에서 2000년 0.458로 10년간 1.62배가 높아졌다.국제적 기준을 넘어서 심각한 상황에 왔다. 중국정부는 전사회적으로 확대되는 빈부격차를 중시,상응 조치를 취하고 있다.90년대 말에 완성된 개인소득세 납세제도는 사회 각계층의 빈부격차를 줄이는 주요한 재분배 수단이다.고수입 계층의 탈세 등 위법행위를 엄격히 감시하면서 농촌 세금제도 개혁으로 향후 5년간 농업세를 전면 면제시켰다.중국사회 수입 분화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중국정부는 경제성장과 도시·농촌의 균형발전의 신(新)전략을 짜고 있다.향후 중국은 빈부 격차를 축소하는 새로운 발전관을 선보일 것이다. 첸광진(陳光金) 중국사회과학원·사회학硏 연구원
  • 배부른 은행권 배고픈 제2금융

    배부른 은행권 배고픈 제2금융

    제1금융권(은행)과 제2금융권(보험·증권 등)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금융의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은행권으로 쏠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금융당국에서조차 나오고 있다.특히 2금융업계는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한 ‘집단고사(枯死)’ 가능성을 앞세워 정책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은행 실적 전년의 4배 올 4∼6월 하나은행의 1인당 영업이익은 4억 5300만원에 달했다.반면 같은기간 국내 증권업계의 1인당 평균 영업이익은 522만원에 불과했다.두 수치를 단순 비교하면 무려 87배의 격차다.올 상반기 국내은행(시중·지방·특수은행)의 당기순이익은 3조 5900억원으로 전년동기의 4배에 가까운 2조 8500억원이 늘었다.19개 전 은행이 흑자를 냈다.대출채권이 늘면서 이자수익이 크게 늘어난 반면 거액의 신규부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특히 은행은 경기침체 속의 안전자산 선호경향 덕도 톡톡히 보고 있다.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반면 올 1·4분기(회계연도 기준 4∼6월) 국내 증권사들의 세전 이익은 2291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3360억원(59.5%)이 줄었다.대우증권의 경우 1분기 순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92.9% 감소한 31억원에 그친 데 이어 7월에는 225억원 순손실을 냈다.삼성증권의 영업이익도 4월 260억원,5월 132억원,6월 96억원 등 큰 폭의 둔화세다.수익성이 크게 낮아진 가운데 개인투자자들이 썰물처럼 증시를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도 대형사를 중심으로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생보업계 ‘빅3’ 가운데 대한생명은 순익이 3008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6.6%,교보생명은 1118억원으로 42.5% 줄었다.손보업계도 비슷해 올 1분기 현대해상은 전년동기 대비 41.4% 줄어든 177억원,동양화재는 34.0% 줄어든 101억원의 순이익을 각각 기록했다. 신규가입이 줄고 중도해약이 늘어나는 것 등이 주된 이유다.신용카드업계의 적자행진도 계속되고 있다. ●증권·보험 대부분 감소 대책 호소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은행은 보험·증권 등에 비해 경기를 덜 탄다는 게 불황기를 맞아 외형상 은행으로 힘이 쏠리게 보이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제2금융권은 업종의 성격 외에 정책적인 불균형도 한몫한다고 주장한다.한 증권사는 최근 내부 보고서를 통해 “정책당국이 1금융권 위주의 차별정책을 폄으로써 시중자금의 은행권 편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예를 들어 증권·투신업계의 업무영역은 은행권에 무제한 열려 있는 반면 은행의 업무영역은 증권·투신업계의 접근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계도 방카슈랑스(은행창구에서의 보험상품판매)에 불만을 쏟아놓고 있다.보험개발원 안철경 연구위원은 “은행이 2금융권에 비해 우월적 지위에 있어 향후 보험업계가 더욱 열세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히 내년에 2차 방카슈랑스(자동차보험,종신보험 등 판매)가 시행되면 보험사들에 결정적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한 증권사 임원은 “현 상황은 한쪽은 다리를 묶어 놓고 뛰게 하고 다른 쪽은 풀어 놓고 달리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증권·투신업계가 은행권에 완전히 잠식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발전 위해 불가피” vs “2금융권 고사” 은행으로의 쏠림현상은 업계는 물론 정책당국 안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금감위·금감원 등 감독당국이 ▲내년 2차 방카슈랑스 연기 ▲장기 주식투자에 대한 비과세 혜택 등을 주장하는 반면 법률권한을 가진 재정경제부는 반대 입장에 서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금감원 은행 담당자는 “증권사가 어려운 것은 경기가 나쁘기 때문이지 구조적인 문제는 아니다.”면서 “특히 금융 겸업화는 세계적 대세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2금융권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촉진,장기적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반면 같은 금감원의 2금융권 담당자는 “은행쪽으로 힘이 과도하게 몰리면서 보험·증권사들이 어려움을 겪게 돼 큰 문제가 발생하면 그 피해가 국내 금융권 전체에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이와 관련,재경부 관계자는 “2금융권의 주장에 대해서는 정부에서도 주시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뚜렷한 조치를 취할 만큼 문제가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기업인 黨포진…中 ‘붉은 자본가’들이 뜬다

    기업인 黨포진…中 ‘붉은 자본가’들이 뜬다

    |베이징·상하이 구본영특파원|중국 사회에 이른바 ‘붉은 자본가들’이 뜨고 있다.붉은 자본가란 본디 중국 정부에 의해 임명돼 국영기업을 경영하는 인사를 가리켰다.그러나 올해까지 최근 수년간 이윤동기로 무장한 신흥 기업인들이 중국 공산당의 고위간부 대열에 대거 합세,또 다른 의미의 붉은 자본가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새로운 의미의 ‘붉은 자본가’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나 마오쩌둥 이론에서 보면 전형적인 부르주아 계층이지만,이제 역설적으로 공산당에 입당해 핵심 간부직에까지 오르고 있다. ‘차이나 리포트’ 취재팀이 만난 중국 공산당의 한 고위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현재 장관급 위상인 중국 공산당의 중앙위원회 위원과 전국인민대표자회의(全人大·의회격) 대표의 20∼30%가 기업인”이라면서 “국가정책 결정과정에 기업인 참여비율을 높이는 것이 중국 공산당의 최근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공산당 간부일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무역위·국유자산관리위 등을 거친 그는 “중국 최대 백색가전업체인 하이얼의 장뤼민(張瑞敏) 총재도 올해 공산당 최고위급인 정치국 후보위원이 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의 전자업체 톰슨과 합작으로 세계 최대 TV생산라인을 구축한 중국의 TCL집단 최고경영자인 리둥성(李東生) 회장도 대표적인 붉은 자본가.그는 2002년 중국 공산당 16차 전국대표대회 대표로 선출된 바 있다.하지만 올들어 그는 자신이 이끄는 TCL집단의 지분구조를 확 바꿔 버렸다. 미 경제지 포천에 따르면 TCL이 지난 1월 3억 3000만달러를 증자하는 과정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후이저우(惠州) 시정부 지분을 25%(종전 40.97%)로 줄이고 민간이 38% 차지하는 구조로 조정한 것이다.1996년 후이저우시 지분이 80%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TCL은 이제 더이상 국유기업이 아니라 ‘민영기업’으로 거듭난 셈이다. 계층 분화,즉 빈부 격차의 확대와 붉은 자본가의 본격 등장이라는 ‘현실’ 앞에 마오쩌둥 이래의 홍기(紅旗)는 빛이 바랜 지 오랜 느낌이다. 그렇다면 “중국식 ‘시장사회주의’의 실체는 무엇인가,덩샤오핑식 개혁·개방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라는 등의 의문이 제기된다.중국 공산당은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다.이에 대해 중국 공산당 소식통은 “덩샤오핑 동지의 개혁·개방 노선에 따라 중국은 착실히 시장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라며 체제 동요설을 단호히 부인했다. 그러나 그의 언급과는 별개로 붉은 자본가의 급부상은 이제 중국 공산당 내부나 중국경제의 생산양식에 ‘화학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웅변하기에 충분하다.붉은 자본가의 출현은 장쩌민의 간판 이론인 ‘3개 대표론’(부르주아의 입당 허용이 핵심)이 당 강령에 삽입되면서 싹이 텄다.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민간영역의 경제가 급속히 확대됐지만,법적 보장이 미흡해 경제 활동에 커다란 걸림돌이 됐음을 감안한 것이다. 올해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2차 회의를 통해 사유재산 보호 조항은 더욱 강화됐다.특히 헌법 제11조의 사영경제 조항도 보다 구체화됐다.사영경제의 개념은 이번에 ‘국가는 비공유제 경제발전을 고무·격려·지지한다.’는 표현으로 뚜렷이 명문화됐다.자본주의 색채가 더욱 짙어진 것이다. 이같은 변화가 종국에는 종전의 중국 사회주의체제를 환골탈태시킬 것인지,아니면 중국 공산당의 주장대로 중국식 시장사회주의의 발전과정에 불과한지는 현재로선 장담하기 어렵다.분명한 것은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차이나호는 이제 세계경제의 최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왼쪽(사회주의 사상 강조)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시장 및 경제 중시)으로 달리고 있는 열차’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kby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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